농촌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은 균형이 깨지기 마련이다 [썩은 뿌리 자르기]

농촌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은 균형이 깨지기 마련이다 [썩은 뿌리 자르기]

장 민 수(목부)

 

시골에 살다보면 과일을 잘 사먹지 않게 된다. 제철과일이나 하우스 작물을 서로서로 나누는 경우가 많아서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작물 같은 경우 너무 많아서 가끔 감당이 안 될 때도 있다. 이런 곳에 살다보면 과일을 사먹을 때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특히나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간 학생들을 보면 그리 품질이 좋지 않은 과일을 돈 주고 사서 먹어야할 때 특히나 아깝게 느낄 수밖에 없다. 비단 과일뿐만이 아니라 시골에 살다보면 서로서로 먹는 것이나 쓰는 것을 참 편하게 나누는 경우가 많다. 물질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이웃이 큰일이 있을 때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 당연히 도우러 오는 아름다운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게 흔히 말하는 시골인심일 것이다.

오랜 시간을 얼굴을 마주하고 살고, 같은 일을 하게 되고,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시골에서는 이런 나눔의 삶이 결국엔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알기에 자연스럽게 퍼져있는 것 같다. 철저한 계산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연관이 없는데 나눔을 이어가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즉 이 나눔 속에는 어디까지나 삶의 과정을 좀 더 수월하게 만드는 집단의 선택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친절을 받기 위해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방식이 반복되고, 내가 도움을 얻기 위해 당장 아무이익이 없더라도 타인을 도울 수 있는 게 이곳의 방식이다. 농사는 대부분 사람의 손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러한 삶의 자세가 언제나 최선의 삶의 형태가 된다. 도시에서는 많이 약화되어 있는 이웃 간의 협동과 나눔이 아직 시골에는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의 중심이 도시가 되고나니 사람들은 자신이 갖지 않아도 되지만 지켜졌으면 하는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중 하나가 이 “시골인심”이다. 즉 도시민들은 자신들은 나눔이나 배려를 가지는 삶의 자세를 매우 약화시켜 놓고는 시골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농사보다는 신산업이 경제적 이익이 더 큰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비도시에 양보와 희생을 강요하는 시대적 상황을 만들고 인간의 삶조차 그런 식으로 몰아가는 현실에 살아간다.

시골 길가에 핀 꽃 한 송이, 나무에 열린 열매를 마음대로 꺾는 사람들에게 이곳의 주민으로서 항의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심운운하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티비 프로그램에서는 언제나 시골사람들은 무지하고, 순박하며 뭐든 퍼주는 사람으로 그려내고 있다. 심지어 시골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는 여전히 현대화된 시골보다는 과거의 모습을 이어가는 것만 그려내려 조작하기도 한다.

 

여전히 시골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미디어

 

한우농장에 가서 일을 도와주고 소고기를 먹는 모습, 뜬금없이 초가집에 가마솥을 걸어놓거나, 우물에서 물을 마시는 모습, 도시에서 온 사람들을 신기해하는 모습까지 우리는 심심치 않게 티비에서 만들어내는 시대에 뒤떨어진 시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모두 현실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전혀 공감 할 수 없는 모습이다. 언제까지나 시골이 그런 모습을 지키기를 원하는 것인지 시골사람임에도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그려내는 것을 보며 과연 이 사회가 시골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디어에 자주 나오는 시골의 모습은 잘 나누어주면서도 더럽고 무지하다. 이러한 방식의 표현은 이들을 희생시켜도 되는, 혹은 도태되어야만 하는 이미지로 그리는 것이 아닐까. 이 사회를 주도하는 사람들이나 매체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가진 편견 속에서 시골이 희생되는 것을 지켜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인정과 나눔의 삶을 가진 사람들이 왜 희생과 도태의 삶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어째서 사회가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로 몰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이것이 인심의 문제라면 문제가 크지 않겠지만, 사회는 지금 더 이상 산업의 주체 혹은 경제의 주체가 되지 않는 모든 것에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도시에 관련된 정책의 중심에는 도시민이 있어야하고, 농어촌에 관련된 정책에는 농민이 있어야한다. 하지만 수입제품이 싸거나, 토지의 개발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농어촌정책은 농어민을 위한 정책이 아닌 토건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투기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될 때가 많다. 예를 들자면 말 많던 한미 FTA를 하고 나서 축산민을 위해 정부가 우선 시행하며 생색을 냈던 정책이 바로 폐업 장려금이다. 경쟁력이 약한 산업이니 다른 일을 찾아보기 위해 현재 사업을 중단하면 장려금을 주겠다는 이야기인데, 바꿔 말하면 농업이 망해도 다른 산업에서 돈을 벌 수 있으니 그냥 접으라는 이야기다. 농민의 입장에서 이게 지금 우리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미국정부에서 하는 일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미국 농업의 이익을 위해 발벗는 대한민국
전농등 농민단체는 15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쌀협상국회비준저지 농민대회‘를 열었다. ⓒ프레시안구제역이 일어났을 때도 발 빠른 조치보다는 정치인들의 환심 사기를 위해 피해지 방문이 줄을 이었다. 무조건적인 살처분이 이어졌고, 그로인해 한국의 축산업은 큰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적 가축의 감소와 더불어, 그 이후의 후폭풍은 여전히 남아있다. 정책은 급하게 만들어졌고, 후속조치는 조잡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좋아하는 “선진화”라는 허울 좋은 명분은 현실과 동떨어진 결과물만 축산업종사자들에게 통보되어졌다. 한국의 축산품의 이미지는 바닥을 쳤고, 덕분에 수입농산물을 엄청나게 들여올 수 있는 명분이 섰다. 이번 정부가 차라리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였으면 축산민들이 덜 억울했을 텐데 최근 광우병 발생 후 국가가 취한 태도는 축산민들의 분노를 사지 않을 수 없는 태도였다. 구제역이나 광우병은 세계가 인정하는 위험질병이다. 그럼에도 광우병 걸린 미국산소고기는 아무문제 없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수입을 막지도 못했고, 흐지부지 지나고만 있다.

한국정부가 한국의 축산물보다 미국산 축산물에 대한 안전성 홍보에 열을 올리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미국의 값싸고 질 좋은 소고기를 홍보하고 나서니 축산인 으로써 기가 찰 노릇이다. 내 나라의 정부가 자기 국민보다 타국의 집단을 위해준다면 과연 어떤 국민이 그 정부를 신뢰하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정부가 취하는 농어민에 대한 태도는 과연 이 정부가 우리나라의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농어민이 겪어야하는 불합리함은 정부정책에 휘둘리는 것뿐 만아니라 시장에서도 드러난다. 농어민 같은 생산자들은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임에도 위치만큼 시장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한다. 언제나 소비자보다도 중간상인이나 정부에 휘둘려야한다. 이는 매우 불합리하지만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해 매년 부채가 늘어나는 농민이 허다하다. 소를 예로 들어보면 누구나 소고기는 비싸다 생각한다. 이는 식당이든 정육점이든 어디를 가든 소고기 값이 항상 비싸기만 하고, 내리는 건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소고기 가격이 산지에서는 조그만 일만 있어도 탄력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한다. 심지어 구제역파동 이후에 산지에서 곤두박질친 소의 가격이 소고기에는 전혀 적용이 안 되거나 겨우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내린 게 전부였다.

이로 인해 일반 소비자들은 한우의 가격에 대해 언제나 비싸다는 인식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상 값싼 외국산 고기를 구매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언제나 생산자들에게는 무항생제, 깨끗한 환경, 동물복지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중간마진이 엄청난 유통과정은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결국 소비자와 생산자만 손해를 보고 중간에서 이익을 취하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은 결국 시골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산업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고, 결국 시골경제의 몰락을 가져오고 있다.

정책과 시장에서 자리를 잃은 시골사람이 어디에 가서 하소연 할 수 있을까. 시위를 나가더라도 농민의 시위는 제대로 인권조차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다. 의사의 시위에 경찰이 곤봉을 들고 진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농민의 시위에는 어김없이 강경진압이 이루어지거나 시위자체를 봉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농민은 사회적 약자이자 국민이다. 국민간의 차별을 정부나 매체가 스스로 만들어 낸다면 이야말로 불합리한 사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도시와 농촌의 공생 절실

 

부농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시골사람이 사실 다 부자인데 앓는 소리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맥이 풀린다. 시골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시골사람이 가난하다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국가 내에서 시골과 도시가 차별이 존재하며, 정책이 시골 위주의 산업보다는 도시 위주의 산업에 집중된다. 국가 간 무역협정에서도 언제나 농어업, 축산업은 포기하더라도 다른 산업에 이익을 늘릴 수 있다면 너무 쉽게 시골의 주요산업들을 포기시킨다. 많은 FTA가 이루어질 때마다 농민들이 자살하며 소리 지르고 시위를 벌이지만 정부는 지원책을 펴줄테니 조용히 하라고 한다. 그리고 불법시위라 규정하고, 제목소리 내는 것조차 눌러버린다.

힘이 없는 국민이 자신의 직업을 잃게 만드는 정부를 향해 소리 지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정부를 바른 정부라 할 수 있겠는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농민의 산업을 알아서 폐기시키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인지는 의심해 보아야 한다. 국가의 총이익이 늘어날지 몰라도, 정책으로 인해 산업이 망해서 피해를 보는 사람과 이익을 얻는 사람이 따로 있다면 이는 분명 불합리한 일이다. 이대로 시골과 도시의 격차가 벌어지고, 계속해서 시골에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가 지속된다면 결국 우리 사회는 불균형을 견디다 못해 한쪽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사회란 유기체인데 한쪽이 무너지고 다른 쪽이 선다고해서 그 사회가 얼마나 오래 제대로 서 있을 수 있겠는가.

나눔과 공생의 시골이 누군가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어째서 한쪽에만 희생을 강요하는지, 이게 상식적 사회인지 의심해야한다. 시골사람에게 계속 시골인심이 있길 바란다면 사회가 이대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아름다운 모습을 버리고, 시골에서조차 무분별한 이익만을 쫓아가게 만든다면 우리사회는 돌아 갈 곳을 잃고 말 것이다.

 

 

핏자죽이 어린 길 [치유시학]

?

김성리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산 속에 내던져지다

 

아, 내 인생길이

왜 이다지도 가시밭길인가.

찌를 때마다 피 흘러

걸을 때마다 핏자죽이었네.

걸을 때마다 잡초에 휘말려서

엎어지며 넘어지며

또 한 자국 걸을 때마다 자갈밭

또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진흙이 떡반죽 된 길

하나도 평탄한 길이 없더라

이것이 내 인생길인가.

– <내 인생길> 중에서-

 

할머니는 한스러운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가시밭길이자 자갈밭, 그리고 핏자죽이 어린 길이라고 노래했다. 태풍을 피해 을숙도에서 나왔지만, 한센인들은 마을로 들어가지 못했다. 잠시 머무르던 긴급대피 장소인 학교에서도 더 이상 지낼 수 없었던 그들은 캄캄함 밤에 쓰레기를 싣고 다니는 차에 실려 지금의 땅에 내던져졌다. “비가 억수로 왔다. 그냥 말없이 타라 하데. 우리도 이대로 있다가는 죽겄다 싶어서 그냥 탔제. 한참을 가더니 내리라 하는 기라.”

그냥 내린 곳이 지금의 마을이었다. 아니, 그때는 산이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두운 밤에 그들은 산 속에 버려진 것이다. “벌레가 따로 없제. 그냥 발 잘못 디뎌 굴러떨어지면 죽는 기라. 안 죽을 거라고 꿈틀꿈틀 기어 다녔제. 그래도 살아볼 기라고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면서도 비를 피할 데를 찾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옷 보따리 뿐인데. 그리 울던 아도 안 울더라. 지도 무서운 기라. 본능적으로 무서웠던 거라.”

사람들은 조그마한 바위틈만 있어도 기어 들어갔다. 달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비를 맞으며 그들은 온몸으로 기어 다니며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혹시나 굴러 떨어져 산 어딘가에 머리를 박고 죽는 줄도 모르고 죽을까봐 손을 잡고 기어 다녔다. 큰 돌에 부딪치는 줄도 몰랐고, 나뭇가지에 얼굴을 긁히는 줄도 몰랐다.

그러는 사이 다시는 올 것 같지 않던 아침이 왔다. 비로소 서로의 얼굴을 보고, 그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흙을 뒤집어쓰고 비에 젖어 산발이 된 모습은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참혹했다. “모두 흙투성이라. 아침이 되고 사방을 살펴보니 산이라. 산 위에 길이 있는데, 간간이 트럭 소리만 나더라. 차 소리만 나면 모두 숨었다. 나무 뒤로 흙더미 뒤로…”

“왜 숨으셨어요? 임자가 있는 산이었나요?” “아이다.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잡혀가면 이제 죽는 것 밖에 더 있겄나.” 그들은 사람들을 피해 산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길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산이 있었는데, 그 중 아래쪽에 있는 산에 그들은 버려졌던 것이다. 흙투성이의 몸으로 그들은 먹을 수 있는 뿌리와 나물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산에 버려졌거나 빗물에 쓸려 내려온 비료 자루나 거적을 찾으면 그것으로 움막을 만들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오목한 곳이나 바위틈, 그리고 흙이 쓸려 내려가 드러난 큰 나무의 밑둥이 있으면, 그 곳을 손으로 파서 사람이 들어앉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앞을 비료 자루로 막아 거처할 곳을 만들었다. 어쩌다 자연적으로 움푹 패인 언덕바지라도 발견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비가 와서 미끄러지고 온 몸이 흙투성이는 되었지만, 나뭇잎이 쌓여 흙이 된 곳은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부드러운 흙이라도 파낼 수 있는 도구가 없었기 때문에 병든 그들의 손은 흙 반 진물 반으로 반죽이 되었다. 다행히 비는 그쳤다. 낮 동안은 햇빛이 있어 견딜만 했지만, 해가 지면 산속의 기온은 사정없이 내려갔다.

“더 무서운 거는 산짐승이라. 괭이가 있나 호미가 있나. 짐승이 덮치모 방도가 없는 기라. 어린 아를 가운데 두고 어른들이 삥 둘러 잤다. 잠도 깊이 못 잔다. 춥고 배고프고 살아갈 길이 막막하고…” 삶이라고 할 수 없는 정경이었다. “지금하고 마이 다른 기라. 그때는 그래도 산에서 굶어 죽지는 않겄더라. 그런데 봐라, 김선생. 겨울이 되면 뭐 먹고 살기고? 겨울이 오기도 전에 얼어 죽고 굶어 죽을 판이라.”

할머니의 얼굴은 열기를 띠고 붉어졌다. 숨소리도 가빠지고 있었다. 불편한 두 손으로 옷자락을 꽉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겨우 일군 삶의 터전을 떠나서 산짐승 소리가 지척에서 들리는 산속에 내던져졌을 때가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 같았다. 할머니의 깊은 한숨 소리가 나의 심장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고통을 느꼈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나의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당신의 삶을 치유하겠으니 지나온 이야기를 해보라는 나의 요구가 과연 정당한 것인가? 나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가? 고통에 가득 찬 저 삶을 누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당혹감과 함께 낭패감을 느꼈다. 내가 과연 저 ‘핏자죽만’ 남아 있는 삶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몸도 뜨거워지고 있었다. 부끄러움으로.

 

집이 생기다

 

어느 날, 여러 대의 트럭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황급히 숨기에 바빴다. 트럭이 지나갔다 싶던 순간에 다시 차 소리가 들렸다. 몇 대의 트럭이 후진하여 돌아오고 있었다. 모두들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트럭에서 내린 사람들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하야리아 부대 미군들이더라. 지나가다 누가 우연히 우리를 본 모양이라.” 미군은 잔뜩 긴장하여 총을 손에 들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영어로 큰 소리로 뭐라 하는 기라. 몇 명이 내려왔는데 저거끼리 부르는 소리에 마이도 내려오더라. 또 두 명은 계속 큰 소리로 떠들면서 다시 올라가데.” 미군들은 한센인들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군들과 한센인들은 마주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 처음 보는 사람의 형상에 놀라기도 하고 긴장도 했다. “대장인갑더라. 옆에 있는 미군한테 뭐라 하더라.” 그 미군은 차에 가서 건빵 박스를 들고 왔다.

미군들은 한센인들에게 건빵을 몇 박스 주었다. 한센인들은 미친 듯이 건빵을 먹었다. 젖배를 곯던 아이에게는 씹어서 입에 넣어주었다. 그들이 건빵을 먹는 동안 미군들은 산을 살피고 다녔다. 비료 포대나 거적을 걷어보는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귀신같은 몰골의 한센인들을 말없이 지켜보다 미군들은 떠나갔다.

“야~~~, 도깨비한테 홀린 것 같더라. 키는 멀대 같이 크제. 코는 왜 그리 뾰족하노. 얼굴은 꼭 밀가루 덮어 쓴 것 모양으로 허옇제.” 건빵으로 허기를 채운 그들은 미군들의 정체에 대하여 설전을 벌였다. 그날은 그렇게 답을 얻지 못하고 지나갔다. 그들을 한밤에 산속으로 내던지면서 식량을 가져다주겠다던 공무원은 그날도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 해가 채 안 떴제. 그냥 날이 밝아오는 시간이라.” 트럭 소리가 길 위에서 멈추더니, 소란한 소리가 들렸다. 움막에서 나온 한센인들의 눈 앞에는 전날의 미군들이 와 있었다. 그들은 수십 명이었다. 미군들은 나무를 옮겨오고, 약상자를 들고 오고, 밀가루 포대를 어깨에 메고 산으로 내려왔다. 아무 말도 없이 미군들은 삽을 들고 땅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무들을 땅에 고정시켰다.

나무틀 위에 천막을 덮었다. 훌륭했다. 그랬다. 너무나 좋은 집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미군들이 간이 천막을 짓고 있는 동안 한센인들은 상처를 소독하고 치료를 받고 붕대를 몇 개씩 받았다. 어제와 달리 같이 온 한국군이 치료를 받는 동안 통역을 해줬다. 처음으로 치료하고 광목이 아닌 붕대를 감은 손이 남의 손처럼 보였다. 상처를 싸매고 있던 광목은 빨아서 계속 썼기 때문에 넝마가 되어 있었다. 미군들은 구덩이를 파고 그 넝마 조각들을 모아 태웠다.

미군들은 오기 전에 역할을 분담한 듯이 각자 다른 일들을 했다. 천막집을 만드는 팀, 치료를 하는 팀, 주변 나무의 잔가지를 치는 팀, 주변을 소독하고 다니는 팀 등. 한 팀이 땅을 고르면 다른 팀이 그곳에 나무를 이용해 집틀을 만들고 다른 팀은 천막을 씌우고, 그러면 또 다른 팀은 천막집 주변의 나뭇가지를 정리했다. “척척 하더라. 그 통역관 말이 전날 우리 꼴을 보고 가서 충격을 받았단다. 미군들이 도와야 한다고 부대장한테 말해서 몇 시간 동안 회의를 했단다. 그리고 팀으로 나누어서 일을 맡았다더라.”

산에 흐르던 물줄기를 어떻게 막았는지 공동의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호스가 연결되고 커다란 고무 물통에 그 호스 끝을 연결하여 식수통을 완성했다.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공동 공간도 만들어졌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때쯤 일은 마무리 되었다. 천막 안에는 땅의 한기가 올라오지 못하게 베니어판이 깔려 있고, 그 밑에는 방수 깔개가 깔려 있었다.

일을 마친 미군들은 한센인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들의 옷은 땀으로 젖어 있었지만,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한센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대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기만 했다. 하루 동안 눈앞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저의가 있는 건 아닌지 내심 불안했다.

미군들은 한센인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그 손을 잡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미군들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들이 손을 흔들며 트럭을 타고 떠나가자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때는 누가 우리를 돕는다는 거는 상상도 못했다. 저것들이 이렇게 천막 쳐 놓고 내일 와서 우리를 쫓아내면 우짤기고.” 아무도 믿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미군들이 가져다 준 밀가루로 수제비를 만들어 배부르게 먹고 잠을 청했던 그날 밤, 한센인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그들에게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하루 사이에 물이 질척거리는 맨땅이 아니라 보송보송한 베니어 판 위에 몸을 누인 것이 꿈만 같았다. 딱딱한 베니어판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금침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다음날에도 미군들은 다시 왔다. 그들은 건빵과 설탕과 밀가루를 또 들고 왔다. 모포도 들고 와 집집마다 넉넉하게 나누어 주었다. 전날 보지 못했던 미군이 두 명 새로 왔다. 통역군인은 그들이 의사라고 했다. 두 명의 미군은 한센인들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리고 약이 주어졌다. 그 약은 예전 집단촌에서 먹던 약보다 양이 적었다. “나병약이라 하더라. 그 약은 속이 안 아프더라. 다른 영양제도 주더라.” 을숙도에서 나온 이후 약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병세는 악화되어 있었다.

미군들이 준 약은 위의 통증이 없었다. 몸에서 힘이 빠지고 어지럽던 증세도 없었다. 그날 이후 미군들은 정기적으로 찾아와 주변을 소독하고 밀가루와 통조림을 공급해 주었다. 때때로 건빵도 가져다주었다. 미군들의 도움은 장기적으로 지속되었다. “좋은 약 먹고 소독하니까 금방 좋아지대.” 미군들이 지어 주었던 천막집도 시간이 지나면서 집의 형상을 갖추어 나갔다. 그 집들은 이후 정부에서 특별조치법이 시행되었을 때 그들의 집으로 허가가 났다.

 

기억 속의 하야리아

 

할머니는 도움을 주지 않았던 대한민국을 원망하거나 비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좋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군에 대해서 말을 할 때에는 얼굴에 화기가 돌며 엷은 미소까지 지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기억 속에서 사라질 만도 하건만 할머니는 마치 어제의 일을 말하는 것 마냥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할머니에게는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반미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타나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50여 년 전의 미군들만 기억되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한미 FTA는 무조건 좋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미국과 하는 계약이니까. “갸들이 우리한테 손해나게는 안 한다. 우리끼리 싸우는 거제.”

할머니에게 기억 속의 미국은 지금의 미국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미군들이 지나쳐도 될 것을 다시 돌아와 한센인들을 발견하고 오랫동안 도움을 주었던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 것만큼 알고 아는 것만큼 믿는다. 죽음의 문턱에서 잡았던 도움의 손길은 따뜻하고 믿음직하다. 나는 할머니에게 50여 년 전의 하야리아 부대의 미군들 외의 미군들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군에 대한 그 기억 한 자락은 ‘진흙이 떡 반죽 된 가시밭길’ 같은 삶의 여정에서 따뜻한 등불이 되어 있었다. 그 누구도 미군을 이야기하며 얼굴에 홍조를 띠고 잠시라도 행복해하는 할머니를 욕할 수 없으리라. 지금의 우리는 그 당시 미군들과 달리 한센인들을 거부했던 사람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없었다. ‘지나 간 일이라고, 그때는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들었다고,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고 말할 수 없었다.

실제로 사라호 태풍 당시의 신문을 찾아보면 산속에 고립된 한센인들에게 식량을 보급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는 기사가 있다. 동네 사람들이 한센인들에게 가는 산의 입구를 가로막고 식량보급을 차단하여 한센인들이 아사 지경에 이르고 있지만, 대책이 없다는 내용이다. 동네 사람들은 한센인들이 그들의 주거지 부근에 삶의 터전을 마련할까봐 비상식량마저 보급을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신문에 기사화된 곳과 할머니가 강제 이주된 곳이 다르지만, 행정 소속이 같은 부산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할머니와 그 동료들에게 식량을 보급하지 못하여 애를 태운 공무원이 있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미군들이 한센인들을 도와줄 수 있었다면 대한민국 정부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모두가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었다고 애써 변명해보지만, 안타까움은 내내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재산 우리 손으로 지키자, 지주형의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나태영 [보고 듣고 생각하기]

[보고 듣고 생각하기]

우리 재산 우리 손으로 지키자

지주형의『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글: 나태영(교육강좌 수료, 한철연 회원)

“아님 밤중에 홍두깨”
“아이엠에프(국제통화기금) 사태 때문에 교통사고가 잘 일어나지 않는답니다.”
“왜요?”
“사람들이 너무 긴장해서 교통사고가 잘 일어나지 않는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1997년 아이엠에프 사태 발생 후 직장 동료와 내가 차를 타고 가면서 나눈 대화내용이다. 아이엠에프 사태는 너무도 어이없이 당하게 된 사건이었다. 우리가 죄 지은 것도 없었는데 가혹한 벌을 받은 것이었다. 달러에 비해서 우리 돈 가치가 약 두 배 떨어졌으니 애써 모은 우리 재산이 하루아침에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사건이었다. 경제학자들도 미리 알지 못했던 사건이었다. 동남아에 주식을 투자했던 주식분석가들 소수는 알고 있었다. 간혹 아이엠에프 사태를 미리 말하는 사람이 소수 있었으나 그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조선일보가 우리 경제 튼튼하다고 기사 내보내서 그 목소리는 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왜 아이엠에프 사태가 발생했을까요? 왜 막지 못했을까요? 그 많은 경제학자들은 그 사태를 왜 예측하지 못했을까요?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아이엠에프 사태가 발생한 지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드디어 갑갑했던 내 속을 확 풀어주는 책이 나왔다. 지주형이 지은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이 바로 그 책이다. 미국은 작정하고 아이엠에프 사태를 최대한 미국에 이익이 되도록 했다. 미국한테 피로 맺은 나라 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외환 위기 당시 박영철 금융연구원장은 “미 재무부는 위기를 아시아로 확대하지 않고 타이에서 문제를 끝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미국이 동아시아의 금융 위기를 방조함으로써 이 지역에 구조 개혁과 시장 개방을 관철하고 미국 자본의 투자 기회를 확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세계무역기구(WT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약속했던 자본 시장 개방이 더디게 진행되자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에 외환 위기 가능성을 경고하거나 동남아의 위기가 한국에 확산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을 이유가 없었다. 1980년대의 라틴 아메리카에서처럼 위기를 한국의 시장 개방을 가속화하는 데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일설에 따르면 1997년 7월 CIA는 한국에 50여 명의 요원을 급파해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샅샅이 조사하고 돌아갔고 같은 시기에 한국에 상주하는 15명의 CIA 요원들도 매우 바쁘게 움직였다고 한다. (…) CIA는 8월에 이미 한국의 외환 위기 가능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에 외환 위기와 관련해 어떠한 경고도 하지 않았고 외환 위기의 확산을 적극적으로 막지도 않았다.’ (171~173쪽)

지주형은 원래 이 책 제목을 『신자유주의의 지구 정치경제와 한국 자본주의의 전환』 으로 하려고 했다. 이제는 우리나라 일만 잘 해결한다고 해서 우리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지구 전체의 정치경제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든 또 아이엠에프 사태를 당할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노동력이나 복지를 삭감하는 것을 ‘군살빼기’라고 했습니다. 사회의 군살들을 빼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이것이 저항에 부딪치니까 바깥으로 눈을 돌립니다. 그래서 1990년대 넘어가면서부터 지구화가 일어나죠. 민족 국가 단위로 신자유주의 정책이 확장됩니다. 국내에서 싼 임금으로 쥐어짜는 게 안 되니까 더 싼 임금이 있는 다른 나라로 자본이 이동하는 것이죠.’(남구현, 작은책www.sbook.co.kr, 2012년 6월호, 95쪽)

이 세상에서 거래되는 돈 액수가 물건 거래 액수보다 약 7천배 많다는 이 초현실적인 현상을 어찌 이해해야 될 지 난감할 뿐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세월은 흘러간다.
‘먼저 새로운 지구 정치경제의 ‘카지노 자본주의’적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금융의 지구화는 실물 산업부분에 대한 투자보다는 자유로운 금융투자에서 단기수익을 추구하는 거대한 도박판을 만들어냈다(Strange 1997). 외환투기와 파생금융상품거래같이 불확실한 미래의 가격 변동에 대한 예측과 베팅에 기초한 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예를 들면 국제 외환시장의 하루 거래량 대비 연간 전 세계 교역량이 5퍼센트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은 외환거래가 가격변동성에 기인한 실수요와 무관한 단기차익의 원천으로 이용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하루 외환거래량은 연간 국제무역량의 20배가 넘는다.’(70쪽)

‘금융투자를 통한 축적과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산업부분에 대한 투자 사이에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 예를 들면 금융자본은 산업과 고용창출이 아니라 이윤에 일차적인 관심이 있기 때문에 주당이익배당dividend을 늘리고 투자 자원을 감소시켜 오히려 산업투자를 제약하기가지 한다.(71쪽)

이 세상 정치경제를 잘 알면 우리는 좋은 결과를 이룰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무상 급식만 해도 빨갱이 얘기가 나오고 그러는데 제가 있었던 독일은 무상 급식 정도가 아니라 박사 학위까지 다 무상 교육입니다. 의료도 다 무상이고요.’

‘각종 제도들이 만들어져 있어 콜이나 대처 이런 사람들이 등장해 그것을 무너뜨리려고 노력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학자들은 이것에 대해서 복지의 불가역성이라고 말합니다. 복지는 한 번 도입하면 거꾸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얘기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복지 자체에 불가역성이라는 괴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지금 유럽에서 연금 삭감하고 거꾸로 가려고 그러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다 들고 나옵니다.’

‘실제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까지 유럽에서 노동자 총파업이 엄청나게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노동자들과 학생, 대중들의 투쟁이 격렬하게 터져 나왔기 때문에 거꾸로 돌리지 못한 겁입니다.’(남구현, 작은책www.sbook.co.kr, 2012년 6월호, 94, 95쪽)

지주형이 글 쓰는 방식

이 책은 경제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읽기에는 좀 어려운 책이다. 다만 아이엠에프 사태 글은 쉽게 읽힌다. 무협지 읽히듯이 쉽게 읽힌다. 이 지구에 신자유주의가 생겨난 배경 내용이 어렵다. 그래서 지은이는 쉬운 부분부터 읽으라고 권한다. 어려운 책이라서 지은이는 독자들을 많이 배려해준다. 가끔씩 내용을 요약해준다. 지주형은 원인-결과 틀로 문장을 이어간다. 촘촘하게 차근차근 문장을 이어간다. 단락과 단락 연결도 매끄럽다. 끈기만 있으면 경제 지식이 부족한 사람도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는 이 세상 정치경제를 잘 몰랐기 때문에 아이엠에프 사태 당했다. 우리가 잘 몰랐기 때문에 한미매국협정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우리는 앞으로 한미매국협정 그만둘거야.”라고 팩스 한 장만 보내면 한미매국협정은 없던 일로 된다. 6개월 뒤에 그리 된다. 미국 대통령이 반대할 수도 없다. 한미매국협정 협정문에 똑똑히 적혀있다고 이해영은 말한다. 하지만 이 땅에 이러한 사실마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아는 사람들도 과연 그리할 수 있겠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는 미국과 소수 재벌에게만 이익이 되는, 다수 서민에게 재앙이 되는 한미매국협정을 지속시키려고 한다. 지지도가 높은 안철수는 한미매국협정에 대해서 자신 의견을 아직도 밝히지 않고 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은 한미매국협정 폐기할 생각을 못하고 있다. 협정문 조금 고치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 답답하다. 미국은 아이엠에프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길을 알면서도 우리에게 그 길을 알려주지 않은 나라이다. 대한민국 혈맹이라는 미국이 말이다.

아이엠에프 사태 때문에 하루아침에 우리 재산이 절반이 되었다. 그 이후 이 땅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절반이 넘게 되었다. 이 땅 사람 가운데 절반 넘는 사람들이 항상 불안하게 산다. 자살률이 오이시디(OECD, 경제협력 개발기구) 국가중 1위가 되었다. 애낳지 않으려는 비율이 또한 오이시디 국가중 1위가 되었다. 오죽 세상 살기 힘들면 사람들이 종족 보존을 피하려 하겠는가? 한매매국협정이 시작되었기에 우리는 서서히 더 무서운 피해를 볼 것이다. ‘IMF사태 후 10년 간의 결과를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한미FTA입니다.(『한미FTA 핸드북』, 11쪽, 송기호, 녹색평론l사, 2007년) 이 책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이 어렵지만 꼭 읽어야만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 누구도 우리 재산을 지켜주지 않는다. 이명박대통령각하가 우리 재산 지켜주신다. 꿈 깨시라. 대다수 국회의원들도 우리 재산 지켜주지 않는다. 국회위원 딱 한 번만 해도 그 인간들은 죽을 때까지 한 달에 120만원씩 연금 받는다. 굳이 우리 재산 지켜주려고 목숨 바칠 이유가 없다. 물론 진보당 국회의원과 민주당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가운데 35프로 빼고 말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 재산 지켜야 한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더불어 한미매국협정 관련 책도 읽어야 한다. 네이버에 이해영, 우석훈, 송기호, 홍기빈 치면 한미매국협정 책 제목 나온다. 우리 재산 우리 손으로 지키자.

숭고의 존재론/칸트 숭고론의 탈(반)칸트적 해석/김상현 [5월 월례발표회]

?[2012년 5월 월례발표회]

 

논문 제목: 논문 제목: 숭고의 존재론/칸트 숭고론의 탈(반)칸트적 해석
발표자: 김상현 (서울대)

 

칸트의 ‘숭고론’으로부터 칸트를 벗어나다

후기: 박영미(학술1부장, 한양대 외래교수)

 

 

서양의 근대를 대표하는 칸트에서 근대의 균열 또는 근대를 벗어날 새로운 모색이 보여진다고 발표자는 말한다. <숭고의 존재론-칸트 숭고론의 탈(반)칸트적 해석>에서 칸트의 숭고론에 숨어 있는 진리에 대한 재고찰 가능성을 논의한다. 칸트적 입장에 대한 반칸트적 또는 탈칸트적 해석을 통해 인식능력들의 조화와 균형을 통한 진리 규정에서 벗어나 인식능력들의 균열과 그 균열의 틈새에서 삐져나오는 존재 진리의 다른 국면들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발표는 칸트 숭고론에 국한되지 않고 칸트의 판단 전반과 그 속에서의 상상력의 역할과 가능성을 토론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그는 우리가 칸트를 이해하는 것에만 머무는 것이 의미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칸트 속에서 칸트로 대표되는 근대의 진리를 반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인간론과 사회론의 새로운 길을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길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이는 그에게도 아직 큰 숙제인 것 같았다. 아쉽지만 그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이렇게 오고가는 대화에서 글에서는 다 읽어낼 수 없었던 한 연구자의 고민과 열정이 전해졌다.

 

2.

발표의 전반부 내용은 칸트의 숭고론에 대한 이해이다. 칸트에게 숭고의 감정은 불쾌가 쾌로 전환되는 데서 오는 일종의 환희이다. 숭고는 수학적 숭고와 역학적 숭고로 구분된다. 수학적 숭고는 대상의 공간적 크기에 대한 감정으로, 대상의 공간적 크기는 유한함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마주치는 감정상의 크기가 무한하다고 여기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숭고이다. 역학적 숭고는 대상이 가진 힘의 크기에 대한 감정으로, 매우 강력한 위력을 가진 대상과 만나게 되었을 때 감성적?신체적 능력은 이 대상 앞에서는 완전히 무력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것이 공포(불쾌)의 원천이 되며 이 불쾌감은 곧 존경(경외)로 전환된다. 역학적 숭고의 예로 칸트는 절벽에 서 있을 때, 거대한 폭풍우와 마주하게 됐을 때를 제시한다.

이러한 숭고판단은 ‘상상력과 이성의 조화’에 의해 성립된다. 숭고판단은 인식판단에서 상상력이 지성의 개념에 적합하도록 직관의 다양을 종합할 뿐 그 활동이 자유로울 수 없고, 취미판단이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유희와 조화’에 의해 성립되는 것과 다르다. 숭고에 있어서 상상력은 무능력하다. 그러나 상상력의 무능력은 인식능력들 간에 적절한 위계를 확인하는 일이 된다. 상상력의 무능력은 그 자체로 이성능력에게는 합목적적이며 이로써 위계의 조화라는 역설이 성립된다. 그러므로 상상력과 이성의 조화는 수직관계의 조화이다. 이러한 숭고에 대한 분석을 통해 칸트가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이성의 탁월성이자 상상력의 무능함 또는 이성과 상상력의 위계에 따른 질서이다.

발표의 후반부에서 발표자는 칸트 숭고론에 내재하는 역설의 탈근대적 가능성을 언급한다. 먼저 J. F.리오타르가 칸트의 숭고론을 인식능력들의 조화보다는 분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칸트에게서 이성이란 이념능력을 말하며, 이념이란 ‘직관으로 현시할 수 없는 개념’을 말한다. 그리고 상상력이란 ‘현시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드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므로 상상력이 이성의 이념과 일치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는 모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칸트의 숭고론은 칸트 자신이 의도하고자 한 대로 해석하기 어려운 내용을 많이 포함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진리와 가상의 문제이다. 발표자는 이로부터 리오타르가 지적했던 칸트의 인식론적 역설과 유사하게, 존재론적 역설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칸트에게서 판단이 성립하는 과정의 핵심은 상상력과 지성(또는 이성)의 관계이다. 사물 자체로부터 촉발된 직관을 감성이 수용하지만, 감성이 수용한 직관을 개념과 관련하여 종합하는 것은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념(이념) 능력인 지성(이성)은 상상력이 종합한 그 표상에 대해 규정을 내려 판단(인식)을 종결짓는다. 칸트는『판단력 비판』에서 판단력을 ‘특수를 보편에 포섭시키는 능력’으로 규정하고, ‘보편이 주어져 있는 경우’인 규정적 판단력과 ‘보편이 주어져 있지 않은 경우’인 반성적 판단력으로 구분한다. 칸트의 반성적 판단력의 언급은 상상력이 지성이나 이성의 입법으로부터 벗어나 활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이데거는 이로부터 “이 세계에 있어서 인간 경험의 모든 국면이 범주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경험의 도덕적 차원과 미감적(감성적) 차원은 이론적 지성에 의해 영원히 은폐된 존재의 어떤 국면을 개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발표자는 초험적 진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어쩌면 숭고판단의 상상력이 가장 그 진리에 가까울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진리에 대해 다시 묻는다. 우리는 진리가 항상 개념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개념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은 항상 이것과 저것의 다름 그리고 그 다름들 중에서 옳은 것과 틀린 것을 명확히 할 수 있음의 근거가 된다. 하지만 만약 진리의 참모습이 개념으로도 규정할 수 없고 이성으로도 확정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우리 지산의 판단이나 인식들을 평가하고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을 것인가? 상상력이 지성이나 이성으로부터 벗어날 때 일순간이나마 초험적 진리가 드러날 수 있듯이, 일체의 법칙이나 이념으로부터 벗어날 때 우리는 그 자체로서의 우리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3.

월례발표회는 새로운 글만을 발표하는 곳이 아니라 이미 발표된 글도 다시 토론할 수 있다. 이번처럼. 김상현 선생님의 논문은『시대와 철학』제22권 1호(2011년 봄호)에 실려 있다. 발표형식은 4월부터 시도하기 시작한 새로운 방식이었다. 지루할 수 있는 논문 발제를 과감히 없애고 사회자가 준비한 질문을 통해 발표내용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번처럼 이미 발표된 논문인 경우 미리 논문을 읽고 온 후 사회자의 꼼꼼한 정리와 질문 그리고 발표자의 답변을 듣고, 중간 중간 참석자의 질문이 더해지면서 딱딱한 발표형식에서 벗어나 마치 세미나를 하고 있는 듯 편안하게 발표하고 참여할 수 있었다. 기존의 발표형식과 새로운 발표형식 서로 장단점이 있지만 앞으로 월례발표회는 새로운 발표형식을 토대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희랍철학 고전읽기] 플라톤 국가 543a~555b

[희랍철학 고전읽기] 플라톤 『국가』 2012.06.02

발제: 8권 543a~555b (명예지상정체, 과두정체) 추 은 혜

* 네 가지 정체(政體) _ 성격들이 개인들보다는 정체들에서 한결 더 뚜렷하게 드러남

[크레테 및 라코니케식 정체(명예지상정체/명예지배정체)/ 과두정체/ 민주정체/ 참주정체]

“그 하나는 많은 사람한테서 칭찬을 받고 있는 것으로서, 크레테 및 라코니케식 정체가 이것일세. 그리고 둘째 것이며, 역시 버금가는 것으로서 칭찬을 받고 있는 것은 과두 정체라 불리는 것으로, 많은 나쁜 것으로 가득 찬 정체일세. 이것과는 화합하지 못하는 것으로서, 그 다음에 생기는 것은 민주 정체이네. 그리고 그야말로 특출한 참주 정체는 이 모든 것과도 판이한 것으로서, 나라의 넷째 것이며 말기적인 질병일세.” (544b)

“그렇다면 정체의 종류가 여럿 있듯, 인간들의 기질(tropos)의 종류도 그만큼 있게 마련이라는 것을 자네는 알고 있는가? … 즉 라코니케(스파르타) 식 정체에 따라 생기게 된 사람으로서 ‘승리(이기기)를 좋아하고’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을, 그리고선 과두 정체적인(과두 정체를 닮은) 사람과 민주정체적인(민주정체를 닮은) 사람 그리고 참주 정체적인(참주정체를 닮은) 사람을 언급하는 순으로 말일세. 그렇게 해서 가장 올바르지 못한 자를 본 다음에, 이 사람을 우리가 가장 올바른 사람과 맞서게 하자는 것이지. 따라서, 순수하게 ‘올바른 상태’와 순수하게 ‘올바르지 못한 상태’가 그걸 지닌 사람의 행복 및 불행과 관련해서 도대체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한 우리의 고찰도 완벽해졌으면 해서지.” (545a-545b)

? (1) 크레테 및 라코니케식 정체 (명예지상정체/명예지배정체)

– 발생배경: (최선자들의 정체 ? 명예지상정체)

“일단 내분이 생기게 되면, 통치자들 중에서 철과 청동의 성분을 갖는 두 부류는 [정체를] 각기 돈벌이와 토지, 가옥, 금은의 소유 쪽으로 끌어당기나, 이와는 달리 황금 및 은의 성분을 갖는 두 부류는 본성상 가난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부유해서, [사람의] ‘훌륭함’(덕)과 옛날의 체제 쪽으로 이끄네. 그러나 이들은 서로 격렬하게 다투며 항거하다가는, 중간선에서 합의를 보게 되네. 그래서 그들은 땅과 집을 분배하여 사유화하는 한편으로, 이전에는 자유로운 친구들로서 그리고 그들의 생계를 돌보아주던 사람들로서 그들의 수호를 받아오던 사람들을 노예들로 만들어, 예속인들로 그리고 가노(家奴)들로 갖고서는, 그들 자신이 이들을 상대로 한 전쟁과 이들에 대한 수호에 골몰하게 되네.” (547b-547c)

 

– 경영방식: (최선자 정체와 과두 정체의 중간)

? 최선자 정체와 유사점: “그렇다면 이 정체는 통치자들을 존중하고 또한 이 나라의 전사 집단으로 하여금 농사와 수공예 및 그 밖의 돈벌이를 멀리하게 하는 한편으로, 공동식사가 마련되고 체육과 전쟁훈련에 마음을 쓰는 등” (547d)

? 과두 정체와 유사점: “그렇지만 이 정체는 지혜로운 사람들(hoi sophoi)을 관직에 앉히길 두려워하는데, 이는 이 정체가 보유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더 이상 단순하지도 열심이지도 않고 혼합되어 있어서일세. 그리고 격정적이며 한결 더 단순한 사람들 쪽으로, 성향상 평화보다는 전쟁 취향인 사람들 쪽으로 기울며, 전쟁과 관련되는 계략과 전술들을 존중하고, 전쟁을 하는 가운데 온 세월을 보내는 등, 이런 유의 많은 것을 이 정체는 그 자체의 특유한 것들로 또한 갖게 되겠지?”

“또한 그런 사람들은, 과두 정체의 사람들이 그러듯, 재물에 대해 욕심을 내는 사람들로 될 것이며, 비밀히 금과 은을 끔찍이 우러러 모시는데, 그들이 금고와 사사로운 창고를 갖고 있어서, 이곳에다 이것들을 보관하여 숨겨둘 수 있기 때문일세. 게다가 또 집들에 담을 둘러쌓고서, 영락없는 자기만의 보금자리로 갖고서는, 그 안에서 여인들한테 그리고 자기들이 원하는 그 밖의 사람들한테 낭비를 하며 많은 지출을 할 수 있을 걸세.” (548a-548b)

* 나쁜 것과 좋은 것이 혼합된 정체

“ 그러나 격정적인 것이 우세한 탓에, 이 정체에서는 한 가지 것만이, 즉 승리에 대한 사랑과 명예에 대한 사랑만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네.” (548c)

 

– 명예지상정체에 일치하는 사람: 경쟁심(승리에 대한 사랑: philonokia)을 가진 이

(아데이만토스가 정체에 일치하는 사람으로서 글라우콘을 내세우자 소크라테스는 그가 성향상 일치하는 것 같지 않다고 대답한다. 글라우콘은 최선의 수호자가 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훌륭함과 관련해서 순수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반기게 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cf. 최선의 수호자: “시가(詩歌)와 혼화된 이성(이성적 사고: logos)을 갖춘 자일세. 이것이 생김으로써만이, 이를 지닌 자에게 일생을 통해서 훌륭함(덕)의 보존자가 깃들일 걸세.” (549b)]

: 잘 다스려지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는 훌륭한 아버지의 어린 아들

“그의 아버지는 그의 혼에 있어서 헤아리는(이성적인) 부분을 조장하며 키우나, 다른 사람들은 욕구적인 부분과 격정적인 부분을 조장하며 키우네. 그는 천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남들과 나쁜 교제를 가짐으로써, 이들 양쪽에 끌리어서 그 중간에 오게 되어, 자신에 있어서 주도권을(혼의) 중간부분, 즉 이기기를 좋아하며 격정적인 부분에 넘겨 주어서는, 도도하고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네.” (550b)

 

? (2) 과두정체 (평가재산에 근거한 정체, 부자들이 통치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통치에 관여 못함)

– 발생배경: (명예지상정체 ? 과두정체)

“황금으로 가득한 각자의 그 금고가 그런 정체를 무너뜨리지. 먼저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그걸 소비할 길을 찾는데, 이를 위해 법률을 왜곡하네. 그래서 자신들도 그들의 아내들도 법률을 따르지 않게 되네. … 다음으로 저마다 다른 사람이 그러는 것을 목격하고서, 서로들 경쟁을 하게 되어, 자기들끼리 그런 무리를 이루게 되네. … 그들은 돈벌이를 점점 더 진전시켜 가고, 그들이 이를 더 귀히 여길수록, 그만큼 (사람의) 훌륭함(덕)은 덜 귀히 여길 것이네. 혹시 훌륭함(덕)과 부는 아주 상반되는 것이어서, 마치 저울의 양쪽 저울대에 놓인 것들처럼, 늘 반대편으로 쏠리지 않는가?… 그리하여 그들은 승리를 사랑하고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들에서 마침내 돈벌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 부자에 대해서 찬양하며 찬탄하여, 그를 관직에 앉히지만, 가난한 사람은 멸시하네” (550e-551a)

“따라서 이들은 그때 자산액을 산정하여 과두적인 정체의 기준을 법으로 정하게 되는데, 과두 정체의 성격이 더한 곳에서는 그 액수가 더 많으나, 그 성격이 덜한 곳에서는 그 액수가 더 적네. 자산이 정한 평가액에 미달하는 사람에겐 관직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선언한 다음, 이를 무력에 의해 관철하거나, 또는 그러기에 앞서, 공포감을 조성하여 그런 정체를 수립하네.” (551b)

 

– 과두정체의 특성(결함) (551c-552a)

(1) 평가 재산을 근거로 삼음에 따라 능력 있는 가난한 사람은 정치에 참여할 수 없음 (ex.조타수)

(2) 필연적으로 하나가 아닌 두 나라; 가난한 사람들의 나라와 부유한 사람들의 나라이므로 같은 곳에 거주하면서 언제나 서로에 대해서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의 나라

(3) 어떠한 전쟁도 할 수 없다는 것(무장한 대중을 이용함으로써 적보다 대중을 더 두려워하고, 결국 자신들이 소수자임이 드러나게 됨/ 재물을 좋아하므로 돈을 기부하지도 않음)

(4) 참견하는 것; 같은 사람들이 동시에 농사짓는 사람들이며 돈벌이 하는 사람들이고 전쟁하는 사람들 “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팔고, 다른 사람은 이 사람 것을 사서 갖는 것이 허용되는 것, 그리고 이를 다 판 사람이, 이 나라의 어떤 구성원도 아니면서, 즉 돈벌이를 하는 사람이나 장인으로도, 기병이나 중무장 보병으로도 불리지 못하고, 가난뱅이로 그리고 빈털터리로 불릴 뿐인 자이면서도, 이 나라에 거주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 말일세.” (552a)

 

“그러니까 자네가 거지들을 볼 수 있는 나라에서는 그곳 어딘가에 도둑들과 소매치기들 그리고 신전 절도범과 이런 유의 온갖 나쁜 짓을 하는 자들이 숨어 있는 것이 분명하이.” (552d)

“그렇다면 이런 나라들에는 침을 가진 못된 자들이 또한 많이 있어서, 이들을 통치자들이 조심스레 힘으로 제압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는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그와 같은 사람들이 거기에 생기게 되는 것은 교육부족과 나쁜 양육 그리고 나쁜 정치체제로 인하여서라고 우리는 말하지 않겠는가?” (552e)

 

– 과두정체에 일치하는 사람: (재물을 가장 귀히 여김, 인색하며 부지런히 일함, 무엇에나 이윤을 남겨 창고에 쌓아둠으로써 대중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 아버지가 무고를 당해 사형 또는 재산을 몰수 당하는 일 등을 보고 겪은 아들

“여보게나, 아들은 이런 일들을 보고 겪은 데다 재산마저 잃게 되자, 겁을 먹고서, 명예에 대한 사랑과 저 격정적(기개적)인 부분을 자신의 혼에 있는 그 옥좌에서 잽싸게 몰아내 버릴 것이라 나는 생각하네. 또한 그는 가난으로 비천해진 나머지, 탐욕스레 돈벌이로 전향하여, 조금씩 절약하며 일을 하여, 재물을 모으게 되네.” (553c)

“그는 헤아리는(이성적인) 부분과 격정적인 부분을 욕구적인 부분 아래 땅바닥 양쪽에 쪼그리고 앉게 하여, 노예 노릇을 하게 하면서, 앞엣 것에 대해서는 어떤 수로 더 적은 재물에서 더 많은 재물이 생기게 되겠는지를 셈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 나는 생각하네. 그런가 하면, 뒤엣것으로 하여금 부와 부자들 이외에는 아무것에 대해서도 감탄하며 존중하지 못하도록 하며, 또한 재물의 획득이나 그것에 도움이 되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자랑거리로 여기지 못하도록 할 걸세.” (553d)

“즉 그런 사람은, 자신이 올바른 것으로 여겨져서 좋은 평판을 얻고 있는, 그런 여느 계약 관계들에 있어서는 자신 안에 있는 여느 나쁜 욕망들을 자신의 어떤 적절한 부분에 의해서 힘으로 제압한다는 것을 말일세. 그러나 그가 이러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걸 설득해서도 아니며, 말로써 고분고분하도록 만든 것도 아니고, 강제와 공포감에 의해서요, 자신의 다른 재산에 대해 두려워해서라는 것을 말일세.” (554d)

“따라서 이런 사람은 내면적으로 분쟁 없는 상태에 있지도 못하며, 한 사람 아닌 이중적 인간일 것이네. 비록 대개는 더 좋은 욕망들이 더 나쁜 욕망들을 억제하겠지만 말일세.” (554e)

“더 나아가, 이 인색한 사람은 어떤 승리나 훌륭한 것들에 대한 그 나라에서의 여느 경쟁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보잘것없는 경쟁자이네. 그는 명성을 위해서나 그와 같은 경쟁을 위해서는 재물을 쓰려고 하지 않으며, 낭비적인 욕구들을 불러일으켜 이것들의 동맹과 승리욕을 위해 이것들을 불러 모으는 걸 두려워하여, 과두 정치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소수 병력을 갖고 싸움으로써 대개는 패배하면서도 부자로 지내네.” (555a)

[502d~521c] 좋음의 이데아, 태양의 비유, 선분의 비유, 동굴의 비유 정리

2.1. 좋음의 이데아

 

[502d] 남아있는 논의 : 정체의 보존자들이 어떻게 생기게 되는지, ①방법 ②교과(학문) ③활동 ④어떤 연령의 사람들이 그 각각에 관여할 때 생기는지

[502d~503d] 이 부분에서는 소크라테스는 앞서 건드리기 어려워 주저하고 있었던 문제에 관해 논한다. 처음 논의는 통치자 아내들의 소유에 관한 문제이다. 소크라테스 자신도 아내들의 소유에 관한 문제가 반드시 추구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반감을 살 것이고 실현되기도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것은 처음부터 추구하듯, 추구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소크라테스는 통치자들의 기본적인 자세에 대해서도 다시금 강조한다. 첫째로 통치자는 괴로운 일?즐거운 일을 겪더라도 나라를 사랑해야한다. 둘째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치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끝으로 이러한 원칙을 잘 지킨 통치자에 대해서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예와 상을 주어야하고 살아서는 위의 원칙을 따르는 사람을 통치자로 옹립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위의 기본적 자세를 가진 자들을 옹립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즉, 철학자들이 ‘엄밀한 의미의 수호자’로 임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선 철학자에 대한 성향(자질)들을 다시 한 번 언급하고 그 성향을 모두 가진 이(철학자)가 드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언급한다. 우선 철학자의 기본성향은 ①쉽게 배우고 ②기억력이 좋고 ③재치 있고 ④민첩하고 ⑤여타의 다른 성향들도 활기차고 당당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들의 민첩한 성향은 그것에 의해 다른 성향들이 활기차게 하고 당당하게 한다. 혹여 그와 반대되는 ①조용함 ②안정됨 ③절도 있게 살아감 같은 성향들은 철학자에게는 유지될 수 없다. 그것은 민첩함이라는 성향이 그들을 스스로 이끌어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철학자의 성향이 소수만 가지게 되는 이유는 그 성향(자질)이 천성으로 결합된 상태에서 자라기는 힘들고 그 각각의 성향들마저도 대부분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철학자들- ‘엄밀한 의미의 수호자들’이 소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503d] 앞서 설명한 철학자의 성향과 반대되는 ①조용함 ②안정됨 ③절도 있게 살아감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안정되고 변하지 않는 성격들이기에 그들은 믿음직한 진술들로 쉽게 이용되게 된다. 그들은 설령 전쟁에 대해서도 믿음직한 진술들에 의해 설득 당하게 되어 좀처럼 동요하지는 않지만, 배움에 임해서도 같은 반응을 보인다. 즉, 그들은 배움에 대해서 철학자들이 느끼는 경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향이라고 해서 ‘엄밀한 의미의 통치자’가 배제할 것이 아니라 양쪽 성향을 훌륭히 겸비해야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교육/명예/통치 그 어떤 것에도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말한다. 아마도, 교육/명예/통치 와 같은 부분은 통치자가 관여해야할 부분이기에 진정한 통치자는 양쪽 성향을 모두 가져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503e]이어서 소크라테스는 통치자가 될 인물들이 가장 중요한(최고의) 학문들을 감당가능한지 시험하고 살펴보기 위해 그들에게 노고, 두려움, 쾌락 등을 시험해야하고 많은 교과 들을 통해서도 단련을 받아야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양쪽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기인하는 것이다.

[504a~505a] 이 부분부터 ‘중요한(최고의) 학문’들은 어떤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부터 본격적인 선에 이데아에 관한개념이 등장한다. 우선 최고의 학문이란 것은 좋음의 이데아를 지칭한다. 구체적으로 이 부분은 [503e]에서 소개한 최고의 학문을 감당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서 왜 노고, 두려움, 쾌락을 시험받고 많은 교과들로 단련 받아야하는지 이유에 대해 말한다. 본질적으로 혼의 3요소인 절제, 용기, 지혜와 같은 것들을 훌륭하게 더 잘 알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더 멀고, 다르며, 피해 돌아가야 하는 즉, 더 어려운 길을 거쳐야한다.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길을 돌아옴으로써 척도(metron)가 실재에 미치게 하고자 함이다. 풀어 설명하자면 개인이 가진 여러 가지 기준들(척도)이 좋음의 이데아(실재)에 다가가게 하기 위하여 어려운 방법으로 훈련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국가와 법률의 수호자(통치자)는 다양한 교과를 공부하는 것처럼 어려운 방법으로 시험받지 않는 다면 그들이 가지는 척도(metron)는 좋음의 이데아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신체단련 못지않게 공부하는 데 있어서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504e~505d] 우선 [504e~505a]에서는 좋음의 이데아가 ‘가장 큰(중요한) 배움’이자 이것 덕분에 올바른 것들과 그 밖의 다른 것들이 유용하고 유익한 것들도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좋음의 이데아는 모든 것의 궁극적 원리(arche)라는 것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혹시 자네는 소유가, 정작 좋은 것이 아닐지라도, 모두 이득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는가? 혹은 ‘좋음’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이해하면서도, 정작 아름다운 것이나 좋은 것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지다도 그렇겠는가?”(국가, 429)

 

라는 질문을 글라우콘에게 던진다. 아마도 이 질문은 ‘좋음’이라는 것이 반드시 철인에게만 가지고 있는 관념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도 가지고 있는 개념이라는 것을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지혜를 좋다고 생각하는 세련된 사람들이 그들도 지혜를 모르기 때문에 좋음에 대한 지혜라고 말하는 점이나, 쾌락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다중들이 쾌락에는 나쁜 쾌락도 있음을 동의하는 데에서 보건데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매우 부분적이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구체적인 좋음에 대한 정의(쾌락이나 지혜와 같은 정의)를 논할 때 달리하게 되고 단순히 좋음에 대한 것이라고 정의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여겨지는(판단되는) 것들’(doxa의 것들)을 행하고, 소유하고, 택하겠지만 실제로 ‘좋은 것’들은 ‘doxa의 것들’에 만족하지 않고 ‘사실로 그런 것들’(ta onta)을 추구하기에 즉, ‘좋은 것’들은 실재의 세계(이데아계)의 것들을 추구하기에 의견(판단: doxa)를 경멸하게 된다.

[505e~506b]여기에서는 앞서 제시 미약한 정의들을 바탕으로 보았을 때, 공통된 ‘좋음’에 관한 속성을 종합하여 좋음의 이데아에 대해 정의를 도출한다. 좋음의 이데아라는 것은 모든 혼이 추구하는 바로 그것,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을 행하게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좋음의 이데아가 있는지 혼은 예감은 하면서도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당혹해한다. 또한 그것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확고한 믿음을 갖지 못한다. 이렇게 확고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원인 때문에 혼은 다른 것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얻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중요한 좋음의 이데아를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 즉, 지도자들이 그런 것들을 몰라서는 안 되며, 지도자들이 그것을 모를 경우 그를 따르는 이들은 그를 대단치 못하다고 생각하기에 따르지 않게 된다. 그러나 수호자가 이것을 제대로 아는 상태에서 정체(국가)를 다스린다면 그 정체(국가)는 완벽하게 다스려질 것이다.

[506b~506e]글라우콘은 이때까지의 논의를 진행해오면서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신념 즉, 다른 사람들의 의견(doxa)을 논의에서 다뤄 왔지만 정작 자신의 신념(dogma) 다르게 말하면 자신의 의견(doxa)를 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에 대해 인식(앎: episteme)가 결여된 의견(판단:doxa)는 설령 그것이 가장 인식에 가까웠을 지라도 창피스런 것이라 말한다. 여기에서 소크라테스는 눈은 멀었어도 길을 바로 가는 사람들의 비유를 통해 글라우콘의 생각을 한 번 더 지적한다. 또한 ‘밝고 아름다운 것들을 남들한테서 들을 수 있으면서도, 창피스럽고 맹목적이며 일그러진 것들을 보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서 그는 인간의 참된 것을 아는 인식(episteme)의 능력의 가능성을 언급함과 동시에 의견(판단:doxa)의 것들로 빠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아마도 이러한 언급은 아마도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무지의 언명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이어지는 글라우콘의 좋음의 이데아에 관한 구체적인 물음에 소크라테스는 자신 또한 좋음 자체를 말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는 일이기에 불가능하다고 말하나 좋음의 소산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좋음의 이데아를 설명할 때 그것 자체를 설명해주기 보다 그와 가장 비슷하게 여겨지는 태양을 통해서 좋음의 이데아를 설명한다. 그리고 글라우콘은 진정한 ‘좋음’에 대해 설명 받지 못한 것을 아버지는 나중에 받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헬라어에서 소산이라는 말이 이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빗대어 원금을 아버지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소크라테스가 가장 많이 알고 있음에도 좋음에 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그가 가진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무지의 언명에 따른 겸손에서 비롯된 것이라 파악해야한다.

 

2.2. 태양의 비유

 

[506e~509c]부분에서 본격적으로 좋음의 이데아를 설명하기 위한 태양의 비유가 언급된다. ‘감각에 의해 지각될 수 있는 것들’(ta aistheta)은 각각 다른 감각(aisthesis)들로써 지각한다. 만일 보는 것의 경우에는 눈에 보이게 될 물체들과 눈이 가지는 능력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시각과 물체 사이에는 제 3의 것이 필요하게 된다. 즉, 우리가 눈으로 물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인 시각과 물체가 보이게끔 하는 힘 사이에는 그것을 매개물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시각과 물체(보이는 것) 사이에는 왜 빛이란 것이 필요할까? 그것은 빛이 없을 때의 가정을 들어보면 적당하다. 예를 들어 빛이 없는 상황에서는 눈은 시각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어둠이 가득하기 때문에 볼 수 없으며, 사물은 색을 가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도 어둠에 의해 즉, 빛이 없기 때문에 색을 가질 수 없다. 이와 같이 빛은 능동적인 인지자로 하여금 최대한 잘 보게끔 해주며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즉 사물에 대해서는 최대한 잘 보이게끔 만들어준다. 그리고 빛 중에서도 가장 그것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태양이다. 이에 따라 이 비유를 태양의 비유라 일컫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각각의 기관은 그 고유의 능력만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눈은 시각을 귀는 청각을 코는 후각을 담당하는 것을 들어볼 수 있다. 그래서 각각의 기관들 중에서도 태양과 가장 닮아 있는 기관은 시각을 담당하는 기관인 눈일 것이다. 하지만 눈도 그것의 능력인 시각도 태양 그 자체는 아니다. 다만 다른 감각기관들에 비해서 가장 많이 닮아 있기에 눈은 그 힘인 시각을 태양으로부터 받게 된다. 따라서 태양은 시각 그 자체가 아니라 시각의 원인이다. 그렇기에 태양 또한 시각에 의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양과 눈, 시각 그리고 각기 다른 물체들의 관계는 좋음의 이데아와 혼, 지성(정신:nous) 그리고 지성에 알려지는 것들(ta nooumena)과 그 관계가 대응될 수 있다. 단, ‘좋음’이란 것은 ‘지성에 의해서[라야]알 수 있는 영역’에 있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고 각각의 것들은 이데아를 상정한다. 이에 반해 앞의 것들은 ‘눈에 보이기는 하나 지성에 의해 알려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전자의 것들과 후자의 것들은 각각의 영역을 달리하는 것이다.

위의 비유를 적극적으로 대응하자면 혼은 진리와 실재가 비추는 곳에 갈 때에는 지성에 의해 그것을 알고 인식하게 되며 결국은 지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하지만 만일 ‘어둠과 섞인 것’에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에 다르게 말하면 현상계에 혼이 가게 될 경우 ‘의견’(판단:doxa)를 갖게 되고 의견을 바꾸어 가지면서 혼은 더욱 침침한 상태로 빠지게 된다. 이렇게 침침한 상태의 혼은 지성을 가지지 못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좋음의 이데아는 태양과 마찬가지로 “인식되는 것들에는 진리를 제공하고 인식하는 자에게 그 ‘힘’,”을 제공한다. 하지만 태양과는 다르게 좋음의 이데아는 ‘인식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착오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인식과 진리 그리고 좋음의 이데아는 같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인식과 진리는 ‘좋음’과 닮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만 어느 것 하나가 곧 ‘옳음’이라고 해서도 안 되며 그 훌륭함에 있어서도 더 월등하기에 ‘좋음’ 그 자체의 상태에 관해서 온전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 말고도 좋음의 이데아는 그 자체는 생성되는 것(genesis)은 아니지만 생성과 성장에 영향을 준다. 즉, 좋음의 이데아는 물체가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물체가 존재하게 되고 그 ‘본질’(실재성:ousia)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즉 그 것은 지위와 힘이 ‘존재’를 초월하여 있는 것이다.

 

2.3. 선분의 비유

 

[509b-511e]

508a 인식과 진리가 이데아를 구분, 이데아는 그것들 보다 훌륭한 것이다. 이데아를 태양으로 비유하지만 태양으로 믿는 것이 옳지 않듯, 좋음이라 말하는 것을 그 자체로 간주하는 것은 바르지 않음. 이데아는 그것보다 더 귀중한 것임. 이데아 그 자체는 인식과 진리를 제공하지만 그것 자체는 아름다움을 뛰어 넘어선다.

509b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태양이 생성과 성장 그리고 영양을 제공해준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태양 그 자체는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한다. 이데아도 마찬가지이다. 인식대상물들이 인식가능하게 되는 것은 좋음으로 인해서일 뿐아니라 그것들이 존재하게 되고 그 본질(실재성 : ousia)을 갖는 것도 그것에 의해서이다. 따러서 좋음이란 것은 그 지위와 힘이 존재를 초월해서 있는 것이다.

509c~e 여기서 플라톤은 가시적인 것과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것을 구분했다는 앞선 논의의 결론을 재조명한다. 그리고 나아가서 두 부류를 같은 비율로 나누고 각각이 상대적인 명확성과 불명확성이 드러난다. 즉 명확성의 부류에 의해서 그림자나 매끄러운 표면에 비춰진 상들과 같은 불명확한 것들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510a 그리고 나서 우리주변의 동식물 및 인공적인 물건들을 그림자와 같은 부류(영상 : eikon)로 간주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의견의 대상인 것(to doxaston)과 ‘인식 가능한 것(인식 대상 : to gnoston)’의 관계처럼 닮은 것과 닮음의 대상으로 된 것이 같은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510b소크라테스는 이제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것(to noeton)의 부분을 어떻게 분할 할 것인지 고찰한다. 그는 그 구분을 위해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혼이 영상들을 이용하여 결론으로 나아가는 방식의 탐구이고 즉, 연역적인 탐구와 다른 하나는 무가정 원리 즉, 영상들이 없이 형상들 자체를 이용하여 나아가는 탐구이다. -선분의 비유는 인식의 분할에 관해 논하는 것이다.

510c~e 이 부분에서는 위에 제시된 두 가지 탐구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고 있다. 그것들은 수학이나 기하학의 탐구원리와 같다. 홀수와 짝수 도형, 세 종류의 각과 같은 것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서 가정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들이 명백한 것으로 설명이 필요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것들을 고찰하여 나오게 된 결론은 일관성이 있다.(즉, 모순이 없다.) 그리고 그것들은 추론적 사고에 의하지 않고서는 얻어낼 수 없는 것들이다.

511a 소크라테스는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noeton) 것이라 말한 종류의 탐구들은 어쩔 수 없이 가정을 이용하게되고 원리(근원)으로는 나아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것들이 가정을 벗어나서 탐구되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정들은 아래의 것들 즉, 가시적이거나 감각적인 것들에 비해서 명백한 것으로 판단되고 존중되기 때문에 그것을 모상으로 이용한다.

511b 다음으로 소크라테스는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종류의 또 다른 한 부분으로 ‘이성 자체가 변증술적 논변의 힘(능력)에 의해서 파악되는 것’을 제시한다. 이 때의 가정들은 앞서와 같이 원리로서가 아니라 무가정의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근원(좋음의 이데아)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 발판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탐구도 형상들 자체만을 이용하여 형상들을 통해서 탐구에 들어가며 또한 끝을 맺는다.

511c~e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가 암시하는 변증술적 논변의 학문과 기하학이나 그와 비슷한 학문이 가지는 한계를 지적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이것에 긍정하며 다음과 같이 지성에 의해서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정리한다.

 

 

 

 

-다음의 표는 509d~511e에 걸친 인식론적 업급을 도표로 만든 주석(책 441페이지)을 인용한 것이다.
가시적인 것들(ta horata)

감각 대상들(ta aistheta)
지성에 의해서 알 수 있는 것들

(ta noeta)

대상들
상(영상, 모상), 그림자
실물들(동식물들 및 일체의 인공물들)
수학적인 것들(도형들 홀수, 짝수 등)
이데아 또는 형상들

주관의 상태들
상상,짐작

(eikasia)
믿음, 확신

(pistis)
추론적 사고

(dianoia)
지성에 의한 앎, 인식

(noesis, episteme)

의견, 판단(doxa)
지성에 의한 앎 (이해) (noesis)

2.4. 동굴의 비유

 

[514a~521b]동굴의 비유는 교육(paideia) 및 교육 부족(apaideusia)과 연관되는 성향을 나타낸 것이다. 동굴의 비유에 등장하는 동굴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강한 빛에 노출된 입구를 지닌 지하 동굴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있다. 이들은 사지가 결박당하고 목과 얼굴은 동굴의 안쪽 벽면에만 고정되어 그곳만을 응시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그 죄수들의 행렬 뒤로는 담장이 세워져 있고 그 위로는 인형들을 올려 죄수들에게 그림자 인형극을 보여준다. 그리고 죄수들은 그 그림자로 비춰진 상들만을 바라보며 서로가 서로를 보지도, 혹은 뒤를 돌아보지도 못한다. 이렇게 그림자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죄수들은 벽면에 있는 그림자들만이 실재들(ta onta)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듣는 목소리는 오로지 벽면에서 울리는 메아리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죄수들은 그림자와 메아리에 익숙해져 감정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그것만을 진실 된 것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러한 죄수들 중 어느 하나가 결박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되어, 불빛을 쳐다보는 것을 강요받고 바깥에 있는 빛의 세계로 끌려나온다면 어떠할까? 설령 그 과정이 눈에 광휘로 가득차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그 길이 험하고 가파른 오르막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동굴 밖으로 나오게 되었을 때 그는 그 이전의 과정은 고통스럽고 짜증이 났겠지만 차차 빛의 세계에 익숙하게 되면서 그는 그 태양에 관해 자신들이 보았던 모든 것의 ‘원인이 되는 것’(aitios)이라고 인정하게 된다. 그러고 나서 그는 동굴 안에 있었던 동료들에 대한 연민으로 인해 그들을 구해내기 위하여 어두컴컴한 동굴 속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광휘의 세계에 있었던 탓에 그는 어둠의 세계에 익숙하지 않아 앞을 분간할 수 없는데 더군다나 그가 이끌어 가려고 했던 동료 죄수들은 그의 능력에 관해 경합을 요구한다면, 조롱과 야유를 받기도 하고 자칫하면 죽임까지도 당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여기에 등장하는 ‘오름’(anabasis) 즉, 동굴 밖으로 나옴이, 감각적으로 지각되는 세계를 넘어서서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영역’으로 향하는 혼의 등정과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어려운 등정 끝에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좋음의 이데아’가 되는 것이다. 앞서 태양의 비유의 결론에서 말했던 것과 같이 이 이데아는 가시적 영역에서의 것들이 원인이 되는 것이다. 비유에서는 그림자의 원인이 되는 것이 동굴 밖의 광원인 것과 같이 이 이데아는 현실세계의 원인되는 그 무엇에 해당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동굴의 비유는 교육에 관한 것들을 암시하고 있다. 즉,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교육이란 동굴 속에서 어둠으로만 향해있던 몸의 방향을 빛의 세계로 돌리듯, 혼 전체를 생성계(현상계)에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인간에게는 보는 능력자체는 지니고 있지만 그 방향성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진정한 앎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그 혼의 능력중 하나인, 똑똑함의 ‘훌륭함’(덕:arete)들 유용하고 유익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무용하고 해로운 영향을 준다면 그것은 못된 사람들이 그것을 ‘나쁨’에 이용하여서 그렇게 된 것이며 혼에 대해서 여러 가지 쾌락들이 그 눈길을 아래로 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훌륭한 성향(자질)을 지닌 자들에게 좋음의 이데아가 무엇인지 아는 배움에 이르도록 강제해야한다. 하지만 그렇게 훌륭한 성향을 지닌 자들이 그 좋음의 이데아를 보게 되었을 때는 더 이상 그들이 그것만을 보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즉, 동굴의 비유에서 한 죄수가 연민을 느끼고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 다른 죄수동료들을 구출해내려 하듯 그러한 능력을 지닌 자들도 올바르지 못한 방향을 보고 있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도와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법(nomos)에 의해서 강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법은 나라에 있어서 한 부류만이 잘 살게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온 나라 안에 좋음의 이데아가 실현되도록 관심을 갖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즉, 소크라테스는 아는 자들이 단지 앎 그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자들에 대한 앎의 재분배를 강제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서 국가는 안정되고 단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그들의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장윤경(애견 훈련사)

 

나는 올해 32살의 여성 애견훈련사이다. 개와 고양이, 새나 병아리 심지어는 길에서 주운 쥐를 키우겠다며 집에 들고 와 어머니를 기겁시킨 일도 있었던 것을 보면 어려서부터 나는 동물을 참 좋아했던 것은 분명하다. 나는 그렇게 많은 동물을 키웠다. 그들의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에 웃고 우는 유년기를 보냈으나 중학교 이후 내게 주어진 삶은 동물들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 훈련소에서중학교 진학과 함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따라간 화실의 그림공부는 내 생활의 일부분으로 시작해 점점 내 생활의 전부가 되어갔다. 활동적이지 않은 성격 탓이었겠지만, 그림을 그리느라 대여섯 시간을 줄곧 앉아 있어도 좀이 쑤시지 않았고, 재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운 좋게도 세차고 드센 비바람 한 번 만나지 않고 고무 튜브에 몸을 맡긴 채 잔잔한 강물을 따라 흘러가듯 흘러가 도착한 곳은 예술 고등학교였다. 딱히 내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해보니 적성에 맞았다. 어쩐 일인지 별 노력 없이도 그림을 잘 그렸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생각 한 번 없이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돌이켜 보면 잘 그린다는 칭찬을 받고 기대도 받으며 살아가는 일이 나쁘지 않았던 듯하다, 아니 분명 꽤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려서 전문 화가가 되어야 하겠다든지, 아니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어떤 미래를 가지게 될지 같은 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내 어머니, 당신이 꿈꾸고 계획해 놓은 내 미래의 청사진을 듣는 순간, 웬일인지 그 길이 내 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머니의 입에서 ‘교수’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그런 것은 결단코 되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강렬하게 나를 덮쳐왔던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꿈이었지, 나의 꿈은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그 길을 벗어났고, 길을 잃었던 것이 분명하다.

무엇이 될지, 무엇을 할지 방향을 정하지 못하는 혼란과 방황의 대학 시절을 보내다 힘든 시기에 힘이 되어준 지금의 남편과 생을 함께하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첫 번째 반려동물인 개 캐니를 집으로 데려왔다. 라브라도 종인 캐니는 아주 영리한 개였고, 우리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캐니가 너무나 자랑스럽고 예뻤던 나는 둘째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마침 캐니가 다니던 훈련소에서 태어난 쵸콜렛색 라브라도가 디키 주니어라는 이름으로 캐니의 동생이 되었다. 아파트에서 대형견 두 마리를 키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목줄을 매고 나선 산책길에서, 사람이 지나갈 때면 혹여 작은 피해라고 줄까 염려해 목줄을 꼭 부여잡았지만 큰 개를 키운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얻어먹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특히 뉴스에 개에게 물려 목숨을 잃거나 큰 부상을 당한 사람의 사건이 보도되기라도 한 다음 날이면 소중한 맹인 안내견으로 쓰여도 충분할 정도로 순한 개들이었건만 단지 덩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면전에서 대놓고 참기 힘든 말을 듣기도 했고 그로 인해 행인과 언성을 높이는 일도 일어났다. 몇 년간 지속된 그런 일에 서서히 지쳐갔고, 결국 우리는 두 마리의 우리 가족을 위해 이사를 결심했다.

도시 외곽의 넓은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한 후 우리 부부는 보다 많은 반려견들을 식구로 받아들였다. 예닐곱 마리의 대형견을 능숙하게 통제하며 돌아다니는 젊은 여자는 어딜 가나 눈에 띄었고, 예상치 않은 반려견 훈련부탁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런 부탁을 접하면서 스스로 내 인생의 주체가 되어보기로 결심했다.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 훈련사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흐르는 강물에 다시금 뛰어들기는 했지만, 그것은 다른 그 누구의 결정이 아닌 바로 나의 뜻과 의지에 따른 것이었으며, 이번 여행에는 믿음직한 남편 또한 함께였다. 사랑스러운 반려견들을 키우면서 손에 잡기 시작했던 애견 훈련에 대한 공부는 이때부터 전문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외국 서적을 주문해 사전을 뒤적이고 밑줄을 치고, 노트를 해나가며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세계적인 훈련사들의 동영상을 찾아보고 그들의 노하우를 배워 나갔다. 그때까지의 실제 대형 반려견들과의 생활 또한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우리 부부는 세계 애견 연맹인 FCI가 공인한 한국애견연맹이 주관하는 훈련사 자격 시험에 합격했다. 프로 훈련사가 된 것이다.
▲ 훈련소의 개들그러나 생전 처음으로 스스로 결정한 나의 일, 애견훈련사가 되는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고 그 어려움은 지금도 이어지는 듯하다. 다른 이에게 이끌려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뛰어든 이 강 위에서 세찬 비바람도 만나고 드센 여울목도 만나는 중이다. 프로 훈련사로서의 초년병 시절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보다도 애견훈련이 천한 직업이라고 여기는 듯 함부로 말하고 나를 대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부모님과 친지들조차 나의 직업을 하찮게 여기는 듯한 말과 태도를 취하곤 했었고 사실 그것은 지금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건 큰 상처였다. 거기다 애견 조련은 나의 첫 직업이었고, 조련사로서의 생활은 학교 졸업 후 난생처음 하는 사회생활이기도 했다. 나는 사람, 특히나 내게 자신들의 개를 맡기거나 그러고 싶어 하는 견주들을 대하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견주들을 대하는 일이 어색했고 나는 말재주가 전혀 없었다. 개들을 돌보는 일, 견종에 따라 달라지는 훈련 방식과 그 과정, 그러한 훈련 과정을 통해 달라지는 개들의 상태를 멋지게 설명하지 못했을 뿐더러, 이후 견주들에게 개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물어보는 전화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그들이 프로로서의 나의 능력을 알아주고, 또 평가해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저 묵묵히 개들을 받고, 돌보고 훈련시키고, 돌려보냈다. 초년병 시절 나는 내가 과연 전문 훈련사로서 유능한지 무능한지 자신이 없었다. 남편이 함께 했지만, 나는 한 사람의 독립적 전문 훈련사이기도 했으므로, 내 능력에 대한 초조함에 휩싸여 몇 번이나 이 길을 들어선 것을 후회했다. 그것은 매우 부담스럽고 힘든 일이었다. 그 심적 부담에서 벗어날 방법은 예전에 튜브를 뒤집고 강에서 나와 멀리 도망간 것처럼 도망치는 방법뿐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이것은 내가 선택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내 삶을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두었을 때에는 잘되면 내가 잘나서요, 못되면 네가 못나서라고 책임을 돌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내가 결정한 일에서 내가 도망치면 나는 다시는 한 사람의 주체적 인간으로서, 제대로 된 사회인으로 재기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 일에서 다시 실패한다면 그것은 온전히 나의 책임이며 나의 역량부족인 까닭이라는 사실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니 어쩌겠나. 나는 흔들릴 때마다 마음을 다 잡았고 부족한 부분을 찾아 채우고 다시 도전해 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은 적어도 내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 능숙한 애견훈련사가 되었고 우리 부부의 훈련소의 규모도 많이 커졌다.

그렇다고 해서 어려움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견주 중에는 애견훈련소에만 보내면 자신의 개가 가진 모든 문제가 사라질 거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자신의 개가 사람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들은 리모컨 달린 인형이 아니다. 애견 훈련은 반려견을 기계로 키우는 훈련이 아니다. 애견 훈련사로서의 내 철학은, 내가 맡은 개들이 훈련을 통해 반려견으로서 주인과 어우러져 실생활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한 가정의 가족으로서 생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견훈련이 기계처럼 딱딱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명령어에 무조건 복종하게 하는 훈련보다는 마치 자신의 주인이 사랑하는 개에게 말하고 개가 그 말을 따르는 것처럼 편안한 훈련을 한다. 그것을 추구하기에 새로운 개가 오면 원래 처음부터 우리집 가족이었던 냥 집에서 함께 지내며 서로에게 적응해 나간다.

그러다 보니 내 옷은 심지어 외출용 옷에도 개털이 묻어 있기 일쑤고, 모임을 가지기 전 날 미리 세탁해서 말려둔 옷을 입고 나가도 개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특히 검은색 옷은 금기 의상이다. 양말이며 옷, 이불 등등에 이르기까지 검은색만큼 개의 털을 돋보이게 해주는 색상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의를 표하러 갈 때가 참 곤란하다. 신기하게도 밖에서 검은 옷을 바로 사 입고 가도 어느 사이 옷 여기저기에 털들이 붙어있다. 그러한 사실이 민망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남들보다 가볍고 예의가 없는 사람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치 나란 사람이 제정신이 박히지 않았다는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내 앞에서 뒤에서 소곤대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참 속상하다. 속상한 마음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끔은 화가 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탓을 개에게 돌리고 싶을 때도 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울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 때 녀석들은 꼬리를 흔들며 달려온다. 나도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을 만큼 우울한 날이면 그런 녀석들을 다 물리치고 혼자 우울하게 방문을 닫곤 하지만, 그럼 뭐하나. 그토록 냉정히 저희를 뿌리친 내가 방문만 열고 나와도 또다시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사랑을 표현해대는 것을. 난 늘 생각해왔다. 반려동물들은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세상을 살아나갈 수 없다고. 그것이 반려동물을 집으로 데려온 이상 그 생명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라고. 나의 매정함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나를 사랑해주는 그들을 보면 나 역시도 그들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 그것이 반려 동물과 인간이 서로 어우러져 사는 이유인 것이며, 우리는 준 사랑과 받은 사랑 모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인간인 것이다. 견주들이 길에다만 개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훈련소에 개를 버리기도 한다. 연락이 끊어지거나, 때로는 개를 적당한 곳에 버려달라는 요구를 받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이유가 무엇이든 마음이 많이 아프다. 필요할 때만 반려 동물을 취하고 귀찮아지면 매정하게 버리는 사람들은 내게 사랑의 의미와 그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개들과의 생활은 나를 보다 더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삶의 스승 아닐까. 나는 내가 개들로 인해 행복하고 나로 인해 개들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개도 그러하기를 그 무엇보다도 희망한다.

 

 

아버지의 눈빛으로 아들의 사랑으로, 영화 ‘맨인블랙3’ /강지은 [보고 듣고 생각하기]

[보고 듣고 생각하기]

아버지의 눈빛으로 아들의 사랑으로

영화 ‘맨인블랙3’

?글: 강지은(편집주간)

 

그들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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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인블랙MIB, 그들이 돌아왔다. 검은 수트에 검은 선글라스. 자체 발광하는 A급 배우 윌스미스와 토미리 존스.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를 고르는 나의 눈을 끌기에 충분하다. 어찌 보면 흔하디흔한 블록버스터이지만 1편부터 맨인블랙은 신선함을 주는 코미디 블록버스터였다.

대부분 영화에서 외계인은 소탕해야 마땅한 존재로 등장한다. 왜냐하면 외계인은 일종의 제국으로서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맨인블랙의 외계인은 지구가 좋아 또는 자신이 살고 있는 행성의 불화를 피해 이민 온 이방인들이다. 게중에는 불법 이민 온 외계인들도 더러 있다. 지구는 외계인의 존재가 알려졌을 때의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이 외계인들을 감시하고 단속하는데 그걸 담당한 형사들이 검은 수트의 맨인블랙이다. 지구의 문명은 이 외계인들이 가지고 온 뛰어난 문명 덕택에 진화를 이루었다. 영화의 작동방식은 낯선 이방인을 필요에 의해 받아들이면서도 철저하게 자신의 핵심 영역에서 배제하는 인간사회와 꼭 닮았다. 그러나 외계인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살아간다해도 어떤 식으로든 티가 나기 마련인데 영화에서는 유명한 배우나 가수가 바로 외계인들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왠지 나도 설득당하는 기분이었다. 맞다. 그들이 외계인이 아니었던들 그리 뛰어난 재주를 발휘할 수 있었겠는가.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

1편은 어떤 영화든 그렇지만 시리즈의 기본 설정을 모두 보여주는 베이스이다. 맨인블랙도 헐리우드의 영웅을 그리는 영화이니 당연히 악당이 등장한다. 1편의 악당은 바퀴벌레 외계인. 은하계를 손에 넣기 위해 우주에서 납작한 비행접시를 타고 날아왔다. 바퀴벌레가 달큰한 음식물을 좋아하는 것처럼 이 바퀴벌레 외계인도 설탕물을 좋아한다. 또 동족이 발에 밟혀 내장이 터지는 것을 제 몸 아파하는 것처럼 안타까워하는 감성도 지녔다. 은하계를 찾으러 온 또 다른 우주인들이 지구 밖 우주공간에서 지구를 폭파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급박한 상황. 맨인블랙 콤비는 외계인의 뱃속에 들어가는 것도 마다않고(사실 어떤 유기체의 뱃속에 유기체가 들어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활약을 펼쳐 바퀴벌레 외계인이 탈취한 은하계를 구해낸다. 그런데 은하계는 지구를 포함해 수십억 개가 넘는 거대한 별의 집단인데 그게 어떻게 뺏고 뺏기는 물건처럼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을까. 여기에서 맨인블랙의 상식을 뒤집는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우주란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크기라는 선입견에 얽매여 있으면 결코 자신이 처한 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법. 또한 자신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불교에서 속계의 모든 인연을 벗어나 해탈할 수 있는 길은 모든 선입견에서 벗어난 무아지경이다. 나도 없고 대상도 없는 상태. 결국 대상이 내가 되는 역전이 벌어지면서 나와 타인의 구분이 없어지는 대자대비의 부처가 되는 길을 불교는 이야기한다. 맨인블랙에서 은하계는 고양이의 목에 매달린 방울 속에 있다. 방울 속에 우주가 있으니 우주란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영화는 내 마음을 내가 어찌 못하는 현대인에게 ‘마음먹기에 달렸어’라고 속삭인다. 영화의 엔딩은 어쩌면 신일지도 모르는(부처님일 수도 있고 하나님일 수도 있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손이 우주의 구슬을 가지고 놀다 주머니에 넣는데 그 속에도 구슬 우주가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이 광대한 우주라는 것도 신들의 눈으로 보면 작고 앙증맞은 유리구슬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인간의 유대 vs. 가족?

맨인블랙 1편의 주인공 파트너 요원 K(토미리 존스)와 요원 J(윌 스미스)는 능력에 맞추어 이루어진 단짝이다. 맨손으로 외계인을 잡은 뉴욕 경찰 제임스(윌 스미스)를 MIB 요원으로 캐스팅한 자가 K이다. 둘은 좌충우돌 부딪힐 때도 많지만 결정적인 순간 나쁜 외계인을 물리치는 데에 기가 막히게 손발이 척척 들어맞는다. 요원 K는 비록 무뚝뚝하지만 똑 부러지는 원칙과 행동 속에 믿음과 신뢰가 가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이에 비하여 요원 J는 원칙대신 동정과 사랑으로, 기준 대신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판단한다. 궁합이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K와 J는 불일치 속에서 일치점을 찾아나가고 서로의 장점과 약점을 알고 이해해주는 인간적 유대를 1편과 2편에서 지속한다.

1편에서는 요원 K가 주축을 이루는 이야기의 중심라인이었다면(1997년) 2편(2002년)에서는 둘 이 대등한 중심점을 갖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3편에서는 요원 J의 과거사가 주축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1편에서 요원 J는 맨인블랙 요원 신참으로서 요원 K의 목숨을 사리지 않는 투혼에 감동받는다. 2편에서는 맨인블랙을 떠났던 요원 K를 요원 J가 다시 데리고 옴으로써 둘의 관계가 이전의 관계와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2편에서는 샤크라의 빛을 손에 넣어 우주를 정복하려는 나쁜 촉수 외계인에 맞서 그 빛을 과거에 수호하려했던 요원 K가 요원 J를 돕는다. 맨인블랙의 실세가 된 J는 거북하게 원칙을 들이대는 K가 없으니 날개를 단 셈이지만 도무지 손발이 맞는 파트너를 찾을 수가 없어 난감하다. 카오스에도 인간이 알 수 없는 질서가 있기 때문에 카오스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성격이 좋은 파트너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예쁜 파트너라고 하더라도 손발이 맞아야 일을 할 수 있다. K와 J는 다시 합심하여 지구를 구한다. 인간적인 유대는 그렇게 생겨나고 유지된다. 출신 성분이나 인종은 아무런 방해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 3편의 맨인블랙은 이러한 인간적 유대를 스스로 버렸다. 전편들에 비해 볼거리가 적은 것도 아니고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이 대목에서 힘이 빠질까. 그렇다고 막장 SF처럼 “내가 네 애비다”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고나 할까. K와 J는 처음부터 인종이 달랐으니 부자지간의 연을 맺기는 어려운 관계다. 하지만 이번 3편에서 K는 양아버지의 존재로 그려지며 J의 성장과정을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한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사실을 꿈에도 몰랐던 J는 어릴 적 지구의 위기를 구하는데 일조를 한 아버지의 죽음에 자책감을 느낀 K를 보며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K를 향한 연민의 감정을 드러낸다. K는 J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며 그의 아들 J의 곁에 선다. 이제 맨인블랙은 아버지와 아들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읽혀진다. 아버지는 아들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 엄한 법을 들이대고 아들은 반항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길을 따라간다. 숨겨왔던 부자지간의 인연을 말하려고 수화기를 든 K의 얼굴엔 한없는 아버지의 자애로움과 아들을 지키고자 하는 비장미가 드러난다. K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아니 아들을 구하기 위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결심한다. 자신이 달 감옥에 가둔 나쁜 외계인이 탈출해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려고 하는 지금 이 순간, K는 아예 그를 없애버리려 과거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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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미국, 미국인

?SF의 볼거리 생각거리를 총동원한 맨인블랙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미국과 미국인의 우월함을 한껏 과시한다. 맨인블랙은 소련보다 먼저 달에 우주인을 쏘아올리던 1969년,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영화에는 텔레비전으로 우주선 발사 장면을 보는 미국인,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놀이공원이 등장한다. 영화는 텔레비전을 집에 소유한 단란한 핵가족의 풍요로움을 여러 차례 화면에 등장시킨다. 그리고 전편들에서 뛰어난 지구인들은 거의 외계인이라는 설정이 미국인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스토리 라인에 현대 미술의 거장 앤디 워홀을 등장시켜 그를 MIB 요원으로 설정한다. 이제 지구를 지키는 훌륭한 지구인은 MIB 출신이다. 게다가 영화의 흥미진진함을 반감시키는 또 다른 요인은 예지력을 가진 외계인이 조력자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물론 블록버스터의 정석은 영웅이 악당을 물리쳐 승리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과정에서만큼은 영웅도 좀 얻어맞고 관객은 그런 장면을 보며 “그가 죽을지도 몰라, 어쩌지”하는 맛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예지력을 가진 털모자의 외계인은 슬쩍슬쩍 정답을 흘리고 다니며 영화보는 맛을 떨어뜨린다.

 

그래도 MIB

?그래도 맨인블랙은 재미있다. 영화가 보는 이들을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거나 인생을 되돌이켜 보게 해주어야만 명작은 아니다. 순간순간 빵 터지는 재미도 필요하고 뒤통수를 때리는 반전도 있어야 하고 멋진 배우도 있어야 한다. 너무 무리한 주문인가? 맨인블랙은 이들을 고루 갖춘 블록버스터이다. 외계인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코믹적인 감각도 전편을 걸쳐 유지하고 있다. 우주가 어떤 거대한 존재의 구슬에 지나지 않는다는 1편의 엔딩과 지구는 무수히 많은 우주의 외계생명체에겐 물건을 담아두는 수많은 사물함 문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2편의 엔딩은 내가 최고라는 지구인들의 오만함에 썩은 미소를 날린다. 또 한 가지, 영화 《아이 로봇》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던 그 자체 초콜릿 복근과 팔뚝 근육을 자랑하는 윌 스미스도 감탄을 자아낸다. 윌 스미스는 집에서 비디오게임을 하는데 왜 꼭 런닝 속옷만 입을까. 팬들에 대한 보답 말고는 답이 없다. 어찌 되었든 오늘도 외계인의 공격으로부터 안심하고 편안하게 잠잘 수 있게 해준 《맨인블랙3》는 재미있다.

 

 

 

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임종국 평전』/나태영 [보고 듣고 생각하기]

[보고 듣고 생각하기]

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정운현이 쓴 『임종국 평전』
글: 나태영(교육강좌 수료, 한철연 회원)

 

‘특유의 씨익 웃음’(240, 241쪽)

책 얼굴에서 임종국 선생이 웃으신다. 웃으신다. 해맑게 웃으신다. 장마비 내린 뒤 방긋웃는 햇님처럼 밝게 웃으신다. 달님이 시기할 정도로 밝게 웃으신다. 나도 덩달아 웃는다. 『임종국 평전』 책 얼굴 디자인 한 사람 참말로 멋지다. 은은한 바탕색에 개구쟁이같이 웃는 임종국선생 사진을 책 얼굴에 멋지게 올렸으니 말이다. 당신이 해맑게 웃을 수 있었기에 친일문학론을 쓸 수 있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친일문학론』을 쓸 수 있었다. 벼락이 떨어져도 임종국 선생은 당신 서재를 뜨지 않으셨다. “죽어서 하느님 앞에 가서 너 다시 태어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시면, 연자맷돌에 온 몸이 갈리더라도 다시는 태어나지 않겠다”(456쪽)고 말했을 정도로 선생 삶은 감당하기 힘든 삶이었다. 그런데도 선생은 당신 서재를 뜨지 않으셨다. 벼락이 선생을 무서워했다.

 

임종국 선생은 왜 『친일문학론』을 썼는가?

‘한 일본군 병사가 그에게 물었다.

“우리는 전쟁에 졌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나?”

“예! 조선이 독립하게 돼서 기쁩니다.”

순간 그 일본군 병사는 마치 죽일 듯이 그를 노려보았다. …

“20년 후에 다시 만나자!”

▲ 임종국 평전, 정운현 지음, 시대의 창 펴냄

그로부터 꼭 20년 후인 1965년 여름, 한일회담 반대 데모로 그해 여름은 뜨거웠다. “꼭 20년 후에 만나자”더니, 정말 20년 만에 쪽발이 놈들이 다시 몰려오게 되는구나! 그놈들은 일개 병사조차 “20년 후에 다시 만나자”는 신념을 갖고 있었는데 우리는 장관이란 사람이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타령을 하는 판이었다. …

회담이 타결되기도 전에 그런 타령부터 나온다면, 그것이 타결된 후의 광경은 뻔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물밀듯이 일세日勢는 침투해올 것이요, 거기에 영합하는 제2의 이완용이, 제2의 송병준이, 제2의 박춘금이가 얼마든지 또 생겨날 것이다. 묵은 친일파들이 비판받는 꼴을 본다면, 제2의 이완용, 박춘금이 그래도 조금은 주춤하겠지? 이런 생각에서 친일문학론을 쓰기로 작정했다.(237, 238쪽)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다. 318년 후 1910년 일본이 조선을 강점했다. 2012년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지 7주갑(420년)이 되는 해이다. 대통령 이명박은 2008년 7월 15일 일본 후쿠다 총리와 정상 회담을 했다. 이 회담에서 일본 총리가 “다케시마의 내용을 일본 교과서에 싣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대통령 이명박은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임종국 선생이 『친일문학론』을 쓴 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대통령이 지닌 역사의식이 참으로 낮다는 생각이 든다. 이 땅에 이런 대통령이 다시는 나와서는 안 된다. 그리 되려면 『친일문학론』, 『친일파는 살아있다』, 『임종국 평전』 이 세 책이 이 나라에서 많이 읽혀야 한다. 학교 선생님과 이 나라에서 여론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열심히 해 주길 기대해 본다.

선생은 『친일문학론』을 내면 책이 많이 팔릴 것이라고 확신 했다. 뭔가 지식인 사회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여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우선 출판사들이 책 출판을 꺼렸다. 용케도 나서는 출판사가 있어서 어렵사리 책이 출판되었다. 하지만 반응은 그리 신통치 못했다. 『친일문학론』에서 이야기 대상이 된 당사자들과 그들과 관련된 인간들이 서로 이 책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선숙의 증언에 따르면, 평화출판사 이전에 몇몇 출판사에 출판을 제안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고 한다. 특히 그의 고대 동문인 신일철, 민영빈 등은 “나중에 안 좋다”며 책 출간을 말리기도 했다고’

‘허 사장은 초판 1000부를 찍으려다 500부를 더 얹어 1500부를 찍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결과는? 역시 허사장의 예측이 맞았다. 초판 1500부를 소화하는데 꼬박 13년이 걸렸다. 1979년 10?26이 난 뒤에 가서야 겨우 재판을 찍었다. 하나 놀라운 사실은 초판 1500부 가운데 500부는 국내에서 소화되고 나머지 1000부는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허 사장은 전했다.’(253, 254쪽)

‘문단의 내로라하는 거물들을 실명으로 비판하고 나섰으니 상식적으로 본다면 언론도 대서특필하고 또 당사자들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명예훼손이니 어쩌니 난리법석을 피웠을 만도 하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모두 빗나갔다. 마치 서로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언론도, 문단도 모두 의외로 조용했다.(물론 전연 보도가 안 된 건 아니다. 다만 비중이나 관심도가 낮았다는 애기다).’(255, 256쪽)

『친일문학론』이 많이 팔리지 않게 되어 임종국 선생은 크게 실망한다. 지식인 사회의 무반응이 그를 더 힘들게 했을 것이다. 이혼, 힘겨운 밥벌이 등이 그를 힘들게 했다. 임종국 삶을 알게 되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다’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사진은 많은 것을 말한다. 글이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임종국 평전』 452쪽 사진은 선생의 삶이 힘들었음을 잘 말해 준다. 이 책을 쓴 정운현은 그 사진 밑에 이렇게 썼다. ‘죽어서는 ‘바람’이 되고자 했던 종국, 요산재 옆 눈밭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이 한없이 쓸쓸해 보인다.’

 

임종국을 만든 사람들?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이라는 책이 있다. 거북선을 만든 나대용 장군, 조선 최고의 해전 전문가, 정걸 장군, 물길 연구에 삶을 바친 어영담 등이 그들이다. 임종국을 만든 사람들은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보다 더 많다. 임종국 할머니, 할아버지, 임종국 엄마, 아버지, 김대기, 임경화 등이 그들이다. 임종국 아버지 임문호는 호연지기의 대명사이시다.

‘끝으로 종국이 부친 임문호의 친일 행적을 친일문학론에 싣게 된 경위를 알아보자. 이에 대해서는 경화의 증언이 있다(순화도 같은 증언을 했다).

“1966년 1월쯤이라고 생각됩니다. … ‘아버지! 친일 문학 관련 책을 쓰는데, 아버지가 학병 지원 연설한 게 나왔는데, 아버지 이름을 빼고 쓸까요? 그러면 공정하지가 않은데…’ 하자 아버지께서는 ‘내 이름도 넣어라, 그 책에서 내 이름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고 하셨습니다.”(366쪽)

평화출판사 허창선 사장은 『친일문학론』을 이 세상에 낸 사람이다. 재혼한 아내 이연순과 김대기, 임경화는 임종국선생 말년 5년을 함께한 사람들이다. 백기완 선생은 감옥에서 『친일문학론』을 퍼뜨린 사람이다. 이근성, 서화숙, 나문순은 기자로서 임종국 선생을 언론 매체에 알린 사람들이다. 백기완 선생은 “한국의 진보는 임종국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리영희 선생은 임종국 선생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임종국 선생을 크게 칭찬한 사람이다.

‘당대의 지성’ 리영희(1929년생, 77세, 전 한양대 교수)는 지난 1984년 한길사에서 펴낸 『분단을 넘어서』에서 “임종국이라는 사람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와는 일면식고 없지만 이 분이 펴낸 『친일문학론』은 앞으로 세워질 독립기념관의 현관, 제일 눈에 띄는 위치에 진열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독립기념관은 1987년 8월 15일 개관됐기 때문에 리영희의 글은 미래시제이다.)(294쪽)

이외에도 임종국을 만든 사람들이 이 책에 많이 나온다. 선생을 사랑한 사람, 선생을 존경한 사람, 선생을 애틋하게 바라본 사람, 그들이 임종국을 만들었다. 그들이 『친일문학론』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임종국선생은 이 사회를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만들었다.

선생이 어려움 속에서도 친일파 청산에 나섰기 때문에 이 땅에서 『친일인명사전』이 나오게 되었다. 이 땅 친일파 후손들이 친일인명사전이 나오지 못하게 막았다. 이 땅 친일파 국회의원들이 친일인명사전 나오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이 땅에 깨어있는 민주시민이 있었다. 김호룡씨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네티즌 모금운동을 맨 처음 제안했다.

‘2004년 1월 8일 오후에 시작된 『친일인명사전』 제작비 국민모금은 만 4일이 채 지나지 않은 12일 오전 11시 30분 이미 1억원을 넘어섰다. …

이번 캠페인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7일자 정운현 칼럼 ‘다떨어진 헌 고무신짝을 부여잡고’ 아래 독자의견으로 붙은 ‘참세상(kimhr)’이란 네티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비용을 모읍시다’라는 글이 도화선이 됐다.’(《오마이뉴스》, 홍성식, 2004. 01.12)

이 켐페인은 시작된지 열 하루만에 5억원의 사업비를 민족문제연구소에 안겨놓고 말았다. 최종적으로 7억원이 모금되었다. 그리하여 친일파 국회의원이 막았던 『친일인명사전』이 바로 이 땅에 나오게 되었다. 임종국 선생이 땅 속에서 ‘특유의 씨익 웃음’을 지으실 것 같다.

 

호방하고도 섬세한 시인 임제(林悌)선생이 황진이와 당신 직계 자손 임종국(林鍾國) 죽음을 슬퍼하며 이 시를 지었나보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었난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난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몸은 곤궁하나 시는 썩지 않네』, 송재소 씀, 한길사, 147쪽

 

나도 시간 내서 임종국 선생 묘소에 한 번 들러야겠다. 정운현이 쓴 『임종국 평전』을 한 권 들고 선생 묘소에 한 번 들러야겠다. 선생께 『임종국 평전』에 싸인 해주십사 부탁하러 당신 묘소에 한 번 들러야겠다. 독자 여러분도 그리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