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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형이상학 산책 51-시공간은 무한한 것인가?[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 51-시공간은 무한한 것인가?

1)

시간, 공간은 무한한가? 앞에서도 밤하늘 무한한 천공 앞에서 숭고함을 느끼거나 시냇가 조약돌에서 아득한 시대 화석으로 남은 생물을 발견하면, 그 아득히 먼 시대를 상상하며 즐거움을 느낀다.

시간과 공간의 아득함에 관해 시인들은 많은 시를 지었는데, 헤겔은 양적 무한성을 다루면서 주석에서 할러의 시를 하나 인용한다.

숱한 산들처럼

엄청난 수를 쌓아 올리고

시간의 더미에 시간을, 세계의 더미에 세계를 쌓아 올리고

그리고 소스라칠 정도로 높은 곳에 올라가

아득하게 다시 너를 내려다보면,

수의 위력이 천 배가 증가하더라도,

아직도 너는 단 한 귀퉁이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차라리 내가 수의 위력을 떨쳐버릴 때

너의 모습은 생생하게 내 앞에 떠오를 것이다

헤겔은 이 시의 앞부분은 무한한 시공간 앞에 느끼는 숭고함을 표현했으나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이 오히려 의미심장하다 한다. 즉 차라리 무한한 수의 위력을 떨쳐 버릴 때 오히려 무한의 진정한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는 것이다.

헤겔이 말하는 수의 위력이란 곧 무한 진행으로서 악 무한을 의미할 것이다. 반면 진정한 무한의 모습은 곧 내재하는 무한성 즉 자기 부정성으로서 무한성일 것이다.

2)

우리 앞에 있는 세계의 무한성에 관한 논의는 곧바로 세계의 유한성이라는 주장으로부터 반박당한다. 세계에 시초가 있어야 하고 우주는 그 한계가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 이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주장을 통해서도 무한성에 관한 주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니, 형이상학의 세계는 곧 세계의 무한성과 유한성이라는 주장의 전장터가 되었다.

이런 전장을 최종적으로 흽쓸어 버리려 했던 철학자가 곧 칸트였으니, 칸트는 순수이성 비판에서 무한성이라는 주장이든 유한성이라는 주장은 이율 배반에 빠지고 만다는 것을 논증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칸트는 알다시피 순수이성 비판 변증론 2편 2장에서 순수이성의 이율 배반을 다루면서 네 가지 이율 배반을 제시했다. 이 네 가지 이율 배반은 네 가지 판단형식의 범주 즉 질적 범주, 양적 범주, 관계적 범주, 양상적 범주에 각기 해당한다.

그 가운데 질적 범주에서 나타나는 이율 배반은 사물이 합성체인지 단순 실체인지 하는 이율 배반인데, 칸트는 이를 두 번째 이율 배반으로 다루었지만, 양적 범주보다 질적 범주를 우선하는 헤겔은 오히려 앞에서 질적 판단형식을 다룰 때 이미 다루었다.

헤겔은 양의 무한성을 논하는 가운데 칸트가 말한 첫 번째 이율 배반을 다룬다. 헤겔은 이 이율 배반이 양적인 것과 관계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헤겔에서는 이 이율 배반이 두 번째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곧 시간과 공간이 시초나 한계를 지니는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이는 다시 말하면 세계가 양적으로 유한한가 아니면 무한한가 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3)

헤겔은 이 문제를 다루면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가 자신과 칸트가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직관의 형식으로 보았다. 반면 헤겔은 시간과 공간은 사물의 상호 관계하는 방식이라고 규정한다.

이때 관계 방식은 바로 양적인 것의 방식인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방식은 서로 동일한 일자와 일자의 외면적인 관계다. 나뭇잎과 나뭇잎, 물방울과 물방울의 관계에서 나뭇잎이나 물방울과 같은 구체적 대상을 제거한다면 바로 시간 공간적 관계가 된다. 이런 시간, 공간적 관계는 사물이 가진 모든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물이 지닌 모든 구체적 관계를 추상한 가장 외면적인 관계일 뿐이다.

칸트와 같이 추상적인 직관의 형식으로 보든, 헤겔과 같이 사물의 가장 외면적인 관계로 보든 일단 양적인 관계 즉 일자와 일자의 관계라는 점에서는 동일한데, 헤겔은 이런 양적인 관계에서 시간과 공간의 유한성과 무한성의 문제를 여기서(정량, c 절 양적 무한성, b 항 무한 진행, 주석 2) 다룬다.

4)

우선 정립은 세계가 유한하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시간에는 시초가 있으며 공간에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헤겔은 우선 이 정립에 관한 칸트의 증명을 인용하면서 소개하는데, 다음과 같다.

“세계가 시간상 시초를 갖지 않는다면 주어진 시점에 이르기까지 영원이 흘러가야 하며 세계 속에 상호 뒤따르는 사물 상태의 무한한 계열이 지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제 이런 계열이 무한하다는 것은 곧 이 계열이 계기적 종합을 통해서는 결코 완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무한히 흐르는 세계 계열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세계의 시초는 세계가 현존하기 위한 필연적 조건이고 이것은 처음 증명되어야 했던 것이다.”(칸트 재인용, 논리학 재판, GW21, S.229)

칸트의 증명은 간단하다. 시초가 없다면 어떤 현존도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현존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한한 계열이 지나가야 하는데 이 무한한 계열을 다 지나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 어떤 현존이 있는 것을 분명하므로, 시초가 없을 수 없다는 것이다.

헤겔은 이어서 공간의 한계에 관한 칸트의 증명을 소개한다. 이 부분은 칸트의 증명을 헤겔이 요약하는 방식으로 소개된다.

“공간상 무한한 세계 부분들의 총괄을 위해서는 무한한 시간이 요구될 것이다. 세계가 공간 속에서 형성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완전히 주어진 것으로서 여겨지는 한, 무한한 시간은 이미 흘러간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그러나 시간에 관한 증명의 앞부분에서 제시됐듯이 무한한 시간이 흘러간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논리학 재판, GW21, S.229)

이 증명의 핵심은 곧 공간이 한계가 없다면, 이 공간을 총괄하기 위해 무한한 시간이 걸리는데, 무한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불가능하니, 공간은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간을 우리가 총괄할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된다.

5)

위와 같이 칸트의 정립을 소개한 다음 헤겔은 이를 비판하는데, 그의 비판은 칸트의 소위 귀류법적인 증명은 증명 속에 증명돼야 하는 것이 이미 전제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미 칸트는 시간에는 시초가 있고, 공간은 한계가 있어서 총괄 가능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것은 세계에서 현존이 있으려면 요청되는 것인데, 증명을 통해 증명돼야 하는 사실이다. 칸트의 정립 증명은 시간의 시초가 있고 공간의 한계가 있어야 하므로, 무한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은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니, 사실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존이 있기 위해서 반드시 시간의 시초와 공간의 한계가 있어야 하는가? 어떤 것은 그 시초를 모르는 것이거나 공간상 한계 없이 펼쳐지는 것이더라도 현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내 앞의 우주가 언제 생겼는지, 어디까지 펼쳐지는지 모르더라도, 내 앞에 우주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증명되어야 하는 주장이 증명의 근저에 직접 놓여 있으므로 증명을 우회적으로 만들거나 증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영원(영원은 여기서 다만 악 무한적인 시간이라는 형편없는 의미를 지닌다)이 흘러가야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시점 또는 각 주어진 시점이 전제된다. 주어진 시점이란 곧 시간 속에 일정한 한계를 의미할 뿐이다. 그러므로 증명에는 시간의 한계가 실제로 있는 것으로 전제된다. 그러나 그런 한계는 증명돼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립이 주장하는 것은 곧 세계가 시간상 시초를 갖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논리학 재판, GW21, S.229)

6)

이어서 헤겔은 반정립을 살펴본다. 칸트가 말한 반정립은 세계는 시초를 갖지 않으며 공간상 한계도 갖지 않고 오히려 시간상이나 공간상으로 무한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칸트의 증명은 다음과 같다.

“세계가 시초를 갖는다 하자. 현존하는 이 시초에 앞서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 선행한다. 그러므로 세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 즉 공허한 시간이 선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공허한 시간 속에 어떤 사물의 발생도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 같은 시간의 어떤 부분도 다른 부분 앞에서 비 현존의 조건에 앞서 구별된 현존의 조건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 속에서 사물의 많은 계열이 시작할 수 있지만, 세계 자체는 시초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세계는 지나간 시간과 관계하여 무한하다.”(칸트 재인용, 논리학 재판, GW21, S.231)

이 증명은 사물의 발생이 시간 속에 현존하는 조건을 갖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만일 아무것도 없는 공허의 시간에는 사물의 발생할 조건이 존재하지 않으니 사물이 발생하려면 시초 앞에 시간에도 사물이 있어야 한다. 결국, 세계의 시초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물이 반드시 그 앞에 발생 조건을 가질 필요가 있는가? 아무 조건 없이 출현하는 사물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시초 앞에 공허한 시간이 있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헤겔은 이런 생각 끝에, 칸트의 증명이 정립에 대한 증명과 마찬가지로 증명돼야 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여기서는 발생 조건이 전제되는데, 이 발생 조건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시초가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시초가 없다는 것이 증명돼야 하는 과제인데 이미 발생 조건이라는 말 속에 함축적으로 전제되고 있다.

이어서 칸트는 공간에 한계가 없다는 주장을 증명하는데, 이 증명은 시간의 무한성 증명과 같은 논리를 반복한다. 즉 사물의 공간이 한계가 있다면, 그 밖은 공허한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면 공허한 공간 속에 사물의 공간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시간의 무한성 증명에서는 조건이라는 개념이 이용됐다면 공간의 무한성 증명에는 관계 개념이 이용된다. 어떤 것이 공허와 관계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무와 관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계가 있으려면 공허가 아니어야 하고 사물의 공간은 다시 더 큰 사물 공간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결국, 사물의 공간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발생 조건을 전제하는 것이 시간 앞의 시간을 전제하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공간의 관계를 전제로 하면, 이미 공간 너머 공간을 전제하는 것과 같으니,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증명돼야 할 것이 미리 전제된다고 하겠다.

7)

시공간이 유한하다거나 무한하다는 중장은 동시에 성립하지 않으니, 칸트는 이를 이율 배반이라고 주장한다. 칸트는 이런 이율 배반이 나오는 이유는 사유의 범주, 판단의 형식을 경험적 개념에 적용하지 않고 물 자체의 개념 즉 시간, 공간, 우주, 세계와 같은 물 자체의 개념에 적용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칸트는 이런 물 자체에는 유한성이나 무한성과 같은 사유의 범주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헤겔은 칸트의 이율 배반을 비판하면서 거꾸로 말하자면 유한성과 무한성이라는 주장이 시간과 공간에 동시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것은 곧 양적인 관계 즉 일자와 일자의 관계가 연속적인 동시에 불연속적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지닌 한 불가피하게 나오는 것이다. 연속적인 동시에 불연속적이라는 것은 곧 한계가 자기를 자기가 넘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어떤 정량은 자기 내에 무한성을 내포한다는 것을 말하는데, 헤겔은 칸트의 이율 배반을 비판함으로써 양적 무한성을 설명하려 했다.

헤겔은 칸트의 주장에 대해 이렇게 비판한다.

“세계에서 모순을 제거하고 반대로 모순을 정신 속으로 또는 이성 속으로 옮기고 그 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채로 존립시키는 것은 세계에 대해 너무나 나약한 태도다. 사실상 정신은 모순을 견딜 수 있을 만큼 강력하며 그러나 또한 모순을 해소할 줄도 알고 있다. 그러나 소위 세계는 어디에서도 모순이 없지 않으며 모순을 견딜 수 없고 그러므로 생성과 소멸에 희생된다.”(논리학 재판, GW21, S.232)

세계의 모순을 인정하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분투의 정신이 여기에 표현돼 있다.

산다, 생각한다, 떠난다 : 삶, 생각, 떠남 – 삶의 다양화, 사유의 다중화 [천 하룻밤 이야기]

산다, 생각한다, 떠난다: 삶, 생각, 떠남.

– 삶의 다양화, 사유의 다중화,

2025 11 22. 소설(小雪), 며칠 전 갑자기 겨울이 오는 것 같더니, 오늘은 풀렸다.

 

해안 보초를 서는 군대시절에 야간근무를 함께 한 동국대 불교학과 석사논문을 쓰는 방위병이 있었다. 그는 이틀에 한번 만나면, 흥미 있는 선문답의 과제를 나에게 이야기 했다. 서너 달을 같이 하면서, 당시에는 선문답이 한 주제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물을 수도 있고, 같은 문제에 대해 달리 대답한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내무반에는 다른 책이라곤 기드온에서 나온 영어 대역본 신약경전이 전부였기에, 이를 여러 번 읽고 있었다. 그와 대화에서 남은 것은 “깨달은 자 떠난다” 것인데, 기억으로는 각자이출(覺者而出)인 것 같았는데, 중이 절을 지고 갈 수 없듯이 깨달은 자가 떠난다고 여겼고, 뭔가 체계를 알았을 때 출세간(出世間)하듯이 스님의 출가(出家)가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정도였다. 이 출(出)인지 행(行)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학문의 노력 또는 깊은 수련이 있어야하고 그리고 세상에 나가 활동한다고 여겼다. 이제는 들뢰즈의 용출선(탈주선)도 같은 의미가 아닐까 한다.

서울에 와서 대학원을 다니면서, 세상에는 수재들과 천재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야기에서 서로가 길이 다르고 대척점이 있어도, 변증법이 아니더라도 하나로 모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함께 이야기하던 자리를 떠나면, 서로는 현실적으로 또는 구체적으로는 달리 살아간다는 것이 자연의 이법과 같다고 여겼다. 그래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완벽한 학문적 체계와 거의 완전한 제도적 체제를 창안하거나 만들어가는 것이 변역(變易)의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각자(各自)는 자기 생각대로 습관 또는 고집 같은 것이 안으로 있어서, 자기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 시기 쯤에서 생각이 다른 삶의 양식들은 각자의 세계관이 다르다는 표현으로 쓰였던 것 같다. 여러 만남들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학술적으로 왜 다양할까? 그리고 각자는 자기 방식을 좀 더 정합적으로 견고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세상의 관례와 맞는 이들은 즐겁게 지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세상의 체제와 제도와 어긋나는 이들 중에는 고민하며 노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이들은 냉소하고 회의하며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사이에 학술적 습득 과정에는 공통점이 없더라도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히 동일 표면 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

철학이라는 학문에 접한 지 쉰셋 해가 지나간다. 되돌아 보건데, 사람들은 먹물들 사이에 학문적 관심의 차이가 여전히 있다고 알고 있으면서, 삶의 터전을 무시하지 못하여, 이런 저런 방식으로 종합 또는 일반화라는 이름으로 통일성 또는 단일성을 추구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마음속에는 다른 길 또는 다른 관점이 있지만, 드러내고 말하는 것이 터전에서 쫒겨 날 것 같아서, 그저 속으로 삭힌다. 마치 속앓이 하듯이, 응어리로 남아있지만, 제도 속에 산다는 것이 그 제도에 알맞은 내용을 제외하고는 망각 속으로 밀어 넣는다. 다시 나오지 못하게. 그런데도 불쑥 불쑥 솓아날 때가 있지만, 애써 누르고 살다보면 늙어간다. 윤구병은 그의 저술의 화두로서 “산다는 것이 먼저이고 철학한다는 다음이라”(primum vivere, deiende philosophari)라고 하면서 삶, 앎, 함을 서술하려하였다. 벩송은 이런 말투를 처음 쓸 때는 산다가 먼저이고 그리고 비춰본다(speculer, 사색한다)라고 했다. 그리고 벩송은 이런 말을 덧붙이지 않았지만, 어느 연구자는 이 다음으로는 플라톤의 “철학한다는 죽는다를 배우다”는 것을 덧보태기도 한다.

세상에서 비추어본다고 하는데, 비추어본다면 세상 속에서 무엇을 비추어 볼까? 브레이어의 [서양] 철학사의 견해는 12세기쯤에서 평론파들이 등장하는 시기에 비춰본다는 용어가 등장한다고 했고, 중국에서 11세기에 통감(通鑑)한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살아온 과정에서 비춰본다는 것, 즉 역사적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인류가 자연에서 인간의 지위를 누리며 사는 것을 비춰 보리라. 그러나 기나긴 자연사에서 보면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두발로 걷는 곧추선 인류(호모 에렉투스)로부터 시작하지 않더라도, 문화적 표현이 남아있는 구석기 동굴의 예술을 생각하면, 거의 3만년 전이고, 신석기로부터 구리의 제련으로 청동기 시대는, 거의 5천년 전일 뿐이다. 인간이 긴 세월에서 손발의 움직임을 잘하여 도구 생산의 발달과 더불어, 집단적 삶에서 두뇌가 커지고 구강의 발달로 입말을 통한 소통을 문자화하여 소통한 것이 3천년 전(기원전 천년)쯤이라 한다. 우리나라는 홍산문명과 요하문명의 상고사를 생각하면, 문자화를 중국에 빌려오기 시작한 고조선의 역사가 있었다고 한다. 인류는 문자화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더불어 살았으며, 자연을 피조물처럼 대상으로 삼지 못했다. 더 좋은 삶의 터전을 찾아다니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토지와 쇠를 다룰 수 있는 산악을 함께 하는 지역에서 도구 문명을 발전시켰을 것이다.

도구의 발달은 생산력을 높이기도 하고, 이로부터 축적과 분업을 보다 잘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았던 것은 인간이 공동체에서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리라. 공동체의 생활은 채집과 사냥에서 재배와 목축으로 전환이후 일 것이다. 그런 공동체가 지구상의 좁은 지역과 집단에서 한정되어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자. 도구의 발달 이후로 주거와 축적방식의 발달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쯤에서 사물에 대한 수적 센다는 사유가 정초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공동체 생활의 규모가 커지고, 도시화를 이루면서 제도가 성립하는 시기에는 산술의 계산과 생활에서 배치와 배열이 이루어질 것이고, 산술에 체계화와 더불어 영토의 분할과 토지의 경작을 위한 측량술도 발달하리라. 이런 삶에서 토지와 하늘의 관계는 우주(코스모스 또는 세계)에 대한 체계적 관점을 구성하기에 이를 것이다. 하늘의 운행이 지상과 연대 또는 대응할 것이라는 관심일 일어났다. 토지 위에서 배치와 순서도 필요하지만, 세월의 변화에 종속되는 생명체들과 연관에서 나이를 세는 하늘의 운행도 숫적으로 세어 보았을 것이다. 하늘의 운행의 수는, 토지의 평면과 달리, 원이라는 기하학적 도형에서 찾았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하는 기술의 발달이 일반적으로, 고대 이집트와 영향 속에서 그리스의 학문의 발달과 연관이 많아서 서양 철학사는 고대 그리스에서 출발점을 찾고 있다.

대부분의 고대 수학사의 설명은 계산하는 기술로서 산술학 발달, 그 다음으로 하늘의 운행을 땅위에 비추어서 그려보는 시간의 관념이 성립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사상은 체계와 관련하여 산술학이 성립되고, 수라는 단위의 설정을 본떠서 사물들의 항목들을 정하는 언어의 논리학의 발달도 이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집트의 나일강의 범람시기를 측정하는 책력의 발달과 더불어 토지의 측정을 보태어 알렉산드리아에서 기하학의 체계가 이루었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수의 산술학과 하늘에 투영한 시간의 측정과 더불어 기하학, 사물의 항목에 대한 논리학과 수와 점을 함께 다루는 기하학이 성립했다고 순서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생각하는 기술로서 산술학, 기하학, 논리학, 도형학 등의 전개, 그리고 기초 학문의 정립과 발전은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이롭게 하여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리라. 여전히 삶이 먼저이고, 생각하는 것은 다음일 것이다. 이런 시기에 도시국가의 체제가 갖추어지고, 생각하는 얼개들을 종합하는 지식의 발달이 있듯이, 인간의 자기반성과 자기 성립에 관심이 확장되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그리스 반도에서 알렉산드리아로, 그리고 로마로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 서양사상사의 흐름이라 한다. [인용에서 이상하게도 우파는 로마 황제 시대에, 좌파는 아테네 민주제에 이야기 거리를 끌어오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행복과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나아가 자연을 다루면서, 인간이 자연을 이법을 찾아 자기완성과 자유에 대한 생각을 이어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인간이 세상에 나와서 살다가 떠난다는 자연의 섭리에서, 인간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필연을 받아들이기보다 자연을 극복하여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욕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에 상응하여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여겨, 자연의 법칙과 운행을 관통하는 지식 체계를 갖는다면 영원성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어쩌면 영원한 진리를 안다면 영원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지식 체계에서 난점들과 부조리를 제거할 수 있다면, 영원성에 다가가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이런 지적 체계에 전념하는 지자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 일찍이 천원지방(天圓地方)처럼 원과 네모가 서로 환원이 안 되듯이, 원을 선으로 바꿀 수 없다는 논리적 귀결을 깨달은 현자들은 널리 이롭게 하는 방식으로 삶의 터전에서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을 것이다. 간단하게 고대로부터 이론과 실천의 영역이 다르다(차히)는 것은 이미 내재해 있었던 것은 아니겠는가?

*

[내란을 일으킨 일당들과 이를 지지하는 자들은 종북좌파 빨갱이들을 척결해야 한다고들 한다. 이들을 극우라고 명명하는데, 이들의 사고에는 오랜 습관 또는 세뇌와 같은 사유의 방식이 있다. 그것은 통일성에 대한 믿음(신앙)이 있다. 수를 기본으로 항목 논리를 전개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체제에서는 참주제 또는 황제제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자연을 지배하려는 사고가 지배하였고, 이들은 나중에 개인의 탐욕을 부추기는 인문주의자, 시장자유주의자로 불린다. 이들은 학문적으로 단일화 또는 통일화가 먼저 있다고 착각하며, 이들 스스로도 실행하지 못하면서, 백성, 대중, 인민에게 자기들의 생각을 강요한다. 이들의 사고는 하나의 믿음의 길 이외에는 악마의 것이라고 하는 유일신앙자들의 사고 양태를 따르고 있다. 이들은 지난 세기에는 유일신, 국가주의, 제국주의를 숭배하는 독단과 탐만치에 빠져있었다. 이들의 사고에서는 인간이 자연 속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신의 창조로부터 생겨났다는 공상에 빠져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신화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통일성이라기보다 조화와 공감을 사유하는 자들은 생각하는 방법도 자연으로부터이며, 삶은 자연의 지배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생각을 한다. 이들은 여전히 인간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겸손을 지니고, 자연과 함께 살려고 이법을 탐구하며, 또한 체제와 제도 속에서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상부상조와 토대마련에 중점을 두어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이들 인도주의자와 인성자유주의자들은 인간들의 자의식의 발현으로 각자에게 필요에 따라, 각자는 능력에 따라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인간 종이 자연에서 생겨나서 자연의 재해와 타생명체로부터 발생하는 질병들을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오래 지식을 축적하면서 노력해 왔는지를 성찰한다.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의 생태계도 보존하면서 살아야한다는 반성을 하는 면에서 인도주의를 넘어서 자연주의에 가깝다.

[지식체계 정립도 창안도 필요하고, 자연 속에서 함께 산다는 지혜도 필수적이다. 그런데 하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신앙 체계가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오랜 걱정거리였다. 철학사에서는 이런 생각이 우파 또는 상층사고라고 한다. 좌파는 지식체계가 필요하고 더불어 인간과 자연을 보존하는데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이를 위해 인간은 새로운 발명과 창안도 하고,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한다. 나로서는 한 영토에서 같은 입말의 사용의 경우에, 좌파의 사유가 51% 우파의 사고가 49%의 비례이라면, 세상에서 행복과 안녕, 평등과 자유를 더 잘 이루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례라는 것은 단순한 이분법이 아니라 다양한 갈래들에서, 중세 평결론자의 논의들이나 비유클리드 기하학 이후에 쁘왕까레의 협약주의에서처럼, 조화로운 비례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는 우파의 사고는 편을 가르고 있다. 이에 저항하는 사유의 다양한 갈래는, 산업사회의 문명사관으로부터 21세기 문화의 관점으로 변역(變域)의 시대를 맞이하여, 다양체의 사유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극우든 우파이든 외통수의 사고는 사고하는 자에게 뿐만 아니라, 공동체도 서로 적대감을 심으려 피폐하게 만들었다. 우파에게서 난제 해결을 전쟁을 통해서 하려는 사고는 참주제, 황제제, 유일신앙, 제국주의와 제국 등에 오랫동안 보아왔다 그럼에도 왜 이런 편집증적(파라노이아)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나로서는 탐욕과 지배욕에서 나온다고 본다. 탐만치를 버리고, 상부상조와 조화의 세상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두뇌(또는 정신)를 외장하드처럼 외부에 둘 수 있다는 생각도, 지식체계의 통일성을 믿는 쪽이다. 지식은 삶을 이롭게 보존하게 하는 방식으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도구란 인간이 자기 특이성을 깨닫고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지, 그 외부지식이 인간의 삶의 목표도 목적도 아니라는 것이다. 살아가는 목표는 조화로운 삶이다. 플라톤이 일찍이 정의는 세 역량, 즉 지혜, 용기, 절제의 조화라고 하였듯이, 21세기에는 여러 갈래로 된 다양체로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찾아야 할 것이다. (58VK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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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사는 삶의 실천과 지식의 탐구 사이에 간격을 메우려는 노력의 역사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삶에서 상부상조와 조화를 통하여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노력이 있는가 하면, 이와 달리 지식의 체계와 확장을 통해 삶을 편리하고 유용하게 하면서 인간에게 이익이 되게 잘 살자고 한다고 한다. 이를 인간적 용어로 표현하면, 전자는 인도주의(위마니떼르)이고 후자는 인본주의(위마니스트)이다 또한 삶에서 조화로운 정의를 실현하면서 인민이 함께 자유를 누리자는 인성자유주의자(리베르떼르)가 있는가 하면, 권력과 권위를 통하여 상층의 자유를 최대화하려는 상품자유주의자(리베랄리스트)가 있다. 또한 세상은 양자의 뒤섞여 있을 진데, 중경과 선후를 정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품성들을 표출할 수 있다. 서양철학사의 발전은 이처럼 이중화 현상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표면에서 양면성을 지니고, 엎치락뒤치락했다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철학 이래로 양면성은 주로 세계(코스모스)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가 자주 언급했듯이 하늘의 운행의 기하학과 지상의 길이의 산술학이 사유의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고대에서도 이 양자를 통합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나, 그 시대의 지식체계의 한계 때문에 통합되지도 통일되지도 못했지만, 사람들은 세계가 하나의 뚜껑 같은 하늘아래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이로서 하나의 통일성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오니아학파의 자연에 대한 탐구와 엘레아학파의 존재에 대한 추론은 생각한다는 이중화 현상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후대의 철학 사가들은 이 양면성이 인간의 사유에서 이중화의 양태들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

이런 양면성이 형상과 질료처럼 인간에게 영혼과 신체의 연관처럼 보였다. 형상과 질료가 일대일 대응이 아니듯이, 영혼과 신체는 하나로 통일할 방법이 없어서, 결국은 영혼을 밖으로 내보낸다. 그것이 하늘나라를 믿는 신학이 개입하는 찰나일 것이다. 이러한 사유에는 생리학적으로도 심리학적으로 이중화를 해명할 방법을 갖추지 못하여, 하늘과 땅에 투사된 세계관(우주관)처럼 대우주와 소우주의 연관 관계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체계의 심층으로 들어가 보면, 플라톤은 우주의 발생론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론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이오니아학파가 좌파라고 부를 수 있다면, 엘레아학파는 우파이다.] 그 우주론은 하늘아래 땅위에 있다는 의미에서 세상살이인데, 세상살이에서도 자연의 섭리를 해명하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우주발생론을 해명할 과학들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플라톤의 우주발생론이 이집트의 학문을 수용했다고 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우주론은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의 변형이라고들 한다. 플라톤은 이오니아학파의 자연탐구 전통에서 자연의 생성과 변형에 관심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는 자연의 사물들을 파악하는 유물론자들의 원자들의 조립과 조합의 방식이 기계적이라 보았고, 그래서 인간의 사유능력에 의해 항목들을 설정하고 관계들을 다룰 수 있다고 여겼다. 유물론자들이 다룬 자연의 대상으로서 사물은 물체들인데 비해,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사유의 대상을 생물체로부터 시작하여, 생물체들 사이에 차이를 규정하고 이들의 치이에 의해 류(類)와 종(種)을 구별하였다. 이런 류의 상위에서는 생각하는 정신(또는 영혼)의 능력이 있고 그 능력에 의해 자연을 다루는 분류화작업이 가능하다고 여겼다.

덧말이지만, 플라톤의 사유에는 시간과 운동에 대한 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에는 공간과 위치 이동에 대한 사고에 젖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이어받은 로마의 황제제는 점과 수에 의한 세계의 해명을 실용적이고 제도적으로 옮겨놓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하나의 체계 속에다가 모든 방법을 수렴시키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생각은 하나의 길 또는 세계의 통일성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 제국은 무너졌으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류와 종의 이원적 분류에서 최고의 상층으로서 사유의 사유를 따라 크리스트라는 유일자를 상층에 올렸던 중세사유는 우주 발생론의 사유가 심층(深層)으로 가라안고, 황제의 체제를 닮은 위계제도 우주론이든 계급제도를 구축하였다. 삶에서 도구/무기의 발전과 지적 노력은 계속되어 둥근 지구와 하늘의 뚜껑을 열고, 진솔한 세계 즉 코스모스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로마 황제제로부터 중세 독단론에까지 우주론인 한에서 공간적 사고였으며, 르네상스에 이르러 시간의 사유가 표면으로 올랐다. 이오니아학파 이래로 좌파가 표면위로 표출되었다.]

항목의 논리학이 최고의 사유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은, 브루노에게서 우주의 무한이 열리면서, 그리고 위치 이동의 동시성이란 제논의 난점을 해결에서 시간의 측정 방식의 도래는 수학에서도 ‘생각하다’에서도 다른 길을 열었다. 공간을 기준으로 하는 항목의 고정성은 위치 이동의 운동에 난점 있었다. 이제 산술 수와 기하의 점을 결합하는 데카르트의 분석기하학은 “생각한다”의 방법을 수, 점, 항목의 추론에 한정하지 않았다. 점은 길이를 따라 무한히 나아가고, 점과 점 사이에 수가 정수가 아니라도 선들 위에 점의 연속성을 부정할 수 없다. 점의 운동은 공간의 운동이라기보다 사유의 운동이 되었다. 사유와 물체, 또는 정신과 물질의 이원성이 있다고 하는 두 개의 실체론을 전개하였다.

하늘과 땅, 이 두 가지의 이론화와 조직화는 인간의 영혼과 신체의 두 가지 조직화로 변환되었다. 그럼에도 초기 근대철학자들은 고대 이래로 시간과 공간 사이의 변환이 사유하는 방식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았듯이, 생각하는 자아가 움직이는 신체의 변환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착각하였다. 두 실체는 고대 철학이 하늘과 땅의 연대 또는 투사라고 사유하던 방식을 넘어서, 양자 사이에 대응하고 있거나, 또는 각각의 정합성이 서로 상응하는 것으로 여겼다. 여기서 각각의 정합성에서 사유의 정합성은 고중세의 사유에 이어져 왔지만, 물질 또는 신체의 정합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물질과 물체의 운동이 따로 독립적으로 자치성을 인정해야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관점은 자연은 신의 피조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난다. “빛들 세기”의 소박한 유물론자는, 자연에게 자치성을 넘어서 자율성을 부여하면서, 신의 부속물 또는 속성으로서 자연과는 다른 자연의 생성과 발산을 다루게 되었다. 이로서 정신과 ‘생각하다’(코기토)를 다루는 쪽이 데카르트 우파가 되고, 물질의 생성과 발전을 다루는 쪽이 데카르트 좌파가 될 것이다.

“빛들 세기”의 마지막에는 제도에서 교권과 왕권에 기댄 상층과 대비로, 민중에서 제3신분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기술과 과학의 체계화에서 생산도구의 발달로 삶의 터전을 성안에서 성밖으로 나아가 다른 세상으로 확장하였다. 생산력의 발전은 민중 또는 인민의 사유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상층의 두 권리의 지배와 강압에서 벗어나, 인민의 자치와 제헌을 주장하며 혁명을 일으켰다. 이 혁명에서 인민의 자치를 주장하며, 루소를 본따서 인민의 자연권과 정치권을 주장하는 자꼬방 산악파들이 혁명을 실천하였다. 이들이 제헌의회를 소집하였고, 그래도 과거의 사상에 의존하는 의원들이 의회의 오른편에, 자꼬방 당원들이 좌측에 앉았다. 이 시기에는 상층이 권력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권력을 생산하고 통제권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인민주권, 즉 인민이 기본 권력이며, 정부와 제도는 인민의 최종심급에 동의를 받아야 했다. 혁명은 공화정을 성립시키면서 삼색기를 선택하였고, 역사는 좌측이 붉은색을, 우측이 푸른색을 상징으로 삼았다. 통상적으로 좌파와 우파 구별은 이를 기준으로 한다. 자꼬방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바뵈프, 루이 블랑, 파리꼬뮨의 블랑키 등은 공산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붉은 깃발을 들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전파는 유럽에서 인간의 자유에 대한 정열을 불러일으켰으나,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공화정을 세우는데 실패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영국으로 망명한 맑스는 과학적 공산주의를 주장하며, 정치경제학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대 자본가의 대립을 보면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선언하는 공산당 선언을 하고, 계속하여 혁명을 주장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인민과 프롤레타리아에게 좌파를, 왕당파와 자본가에게 우파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선진 산업 국가들은 부강한 국가를 세우고자 식민지 수탈을 확대하였다. 이 시기에 유럽은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 국가 권력과 교회 권세에 저항하는 무권위주의자들도 등장하였고, 식민지 착취에 반대하는 제국주의 반대운동도 일어났다. 프랑스에서 장 조레스가, 다른 한편 러시아의 망명자인 레닌이 있었다. 제국주의는 식민지들에 쟁탈전이 일어나면서 결국에는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이로부터 세계사에서 좌파의 국가인 소비에트 연방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좌파 정부가 등장하였다. 두 국가는 다른 다양체였다. 세계사는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하여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을 하부에 두는 새로운 질서로서 냉전시대를 맞이했다. 전후에는 러시아의 혁명파급을 막기 위해 패전국인 독일을, 중국의 확장을 막기 위해 패전국인 일본을 이용하는 미국 제국의 시대였다. 이런 좌파와 우파라는 국가주의 개념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에서 좌파에 대한 빨갱이 취급으로 악마화 하는 것은 부일파와 일제 잔재의 사고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그리고 적대 의식의 강화에는 미국의 제국세력이 소련과 중국에 대한 적대의식으로 우리나라 남녘에 심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일제 강점기의 일본제국주의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차대전 이후에 러시아의 민족해방에 대한 억압정책을 심었을 것이고,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점령하여 새로이 등장한 중국 공산주의의 방패막이로 삼기 위해 남녘의 교육제도를 반공주의로 방향을 잡은 데서 기인한다. 이런 경향은 군부독재에 이어서 극우의 준동을 낳았다.

일본과 미국의 학문지배가 120년 정도 지나면서, 근래에 좌파척결을 내세우며 중화인민공화국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주도한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을 낳았다. 정권에 반대하는 자들을 제거하려는 지난해 계엄령에는 국회의장 우원식, 민주당 대표 이재명, 계엄에 반대하는 한동훈 등 정치인뿐만 아니라, 뉴스공장의 김어준 등을 잡아서 처단하려 했다는 끔직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왜 이렇게 우파는 다른 생각을 하는 자들을 악마화 할까? 시간과 우주발생론적 사유와 달리, 공간과 우주론적 사고는 유아적 사고의 고착, 즉 파라노이아에 빠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고가 민중들에게 확장된 것은 일제의 식민지교육과 미국의 반공교육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교육의 배경은 위에서 말한 시간과 공간의 역사 대비에서 공간론 쪽에 극단적으로 경도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것은 “시간 사유”가 서양 철학사에서도 늦게서야 벩송에게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알아 챈 우리나라 철학자 박홍규(1919-1994)가 있었고,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들뢰즈(1925-1995)가 거의 동시대에 살았는데, 지역을 달리하고 소통하지 않아도 같은 방향을 잡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데 놀랐다. 프랑스에 자료 수집차 가면서 벩송의 전집을 다 읽고 나서, 이것을 버리고, 루소와 프랑스 혁명을 다시 들고 들어오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벩송의 전집과 잡문집을 여러 차례 읽으면서 벩송이 루소 이상으로 새로운 혁명의 시발점을 제공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들뢰즈를 읽으면서 벩송과 프로이트 사이의 차이가 시간론과 공간론 이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공간론과 우주론과 형상(신학) 형이상학을 읽으면 혁명에서 멀어지고, 시간론과 우주발생론과 질료(자연)형이상학에서 사유할 때 혁명은 지속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브레이어의 철학사를 읽으면서 형이상학의 두 종류, 신학(독단) 형이상학과 자연(실증) 형이상학이 있다고 느꼈고, 사유의 이중화에서 좌파의 길과 우파의 길이 다르다는 것을 보았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코로나 발생 전 해에 라깡의 세미나의 참여하라는 선배와 또 같이 하자는 한철연 회원의 제안을 받았는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두 가지 방향(들뢰즈 대 라깡, 생성론 대 상징계)을 한꺼번에 공부할 머리도 안 된다고 했었다. 그 때만 해도 벩송의 새로 나온 강의록들도 읽지 못했고, 들뢰즈의 저술들도 10여권 정도 읽었는데, 코로나 덕분에 방콕하면서 벩송의 강의록 4권도 읽었고, 이제는 들뢰즈 저술을 20권을 넘게 읽고 있고, 에밀 브레이어 철학사를 세 차례나 읽고 나서 보니, 프랑스 철학이 신학에 대한 철학의 대립구도라는 것을 보았다. 앙드레 로비네는 일찍이 프랑스 철학의 특징이 신앙과 이법의 대립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철학 저술을 읽는다는 것의 어려운 점은 각 철학자가 자기 용어를 창안하여 쓰기에, 그 철학자의 용어와 어휘를 익히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제 생각해봐도, 내 머리로서는 벩송과 들뢰즈의 어휘와 흐름을 잡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나서는 데는 철학사, 수학사, 생물학사의 세 가지 실증적 연구사를 읽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한계의 인식에는 산다, 사유한다, 떠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여전히 자연에서 출발하는 좌파와 사유의 완전성으로 풀어가는 우파 사이에서, 51대 49의 비율로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여긴다. 그런데 우리 입말을 쓰면서 문자화와 이미지화 하는 누리소통의 시대에, 체제에서도 제도에서도 언론지형에서도, 그리고 학문에서도 합하여 남녘에는 2 대 98정도로 우편향 되어 있다고 본다. 그나마 우리 입말과 이지미의 전지구적 확장이 편향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다. 좌와 우의 대립이 아니라, 중세의 평결론의 시대, 자연에 대한 형이상학의 이중화 사유, 개연성이 높아지는 수학에서 쁘왕까레의 협약주의, 전지구에 대한 의식의 다원화 시대를 거치면서, 들뢰즈가 다양체로서 리좀이 움직이지 않고서도 세계와 연결(접선)이 빛살처럼 펼쳐져 있다는 설명을 이해할 것 같다. 그 리좀은 종교의 권세, 제국의 권력, 지식의 권위라는 세 패거리에 대해, 니체의 망치작업처럼, 무권위주의로부터 자연에서 출발이 필요할 것이다. 변역(變易)은 정태적이 아니라 동태적이고, 즉 열린 세상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 덧글:

나로서는 기댈 언덕으로 한철연이 있었기에 행운이었고, 그 속에서 세상과 달리 생각하는 방법을 찾았던 것 같다. 함께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즐겁고 유쾌하다. 요즘은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상호 연결하는 누리소통의 활동을 시작해 본다. 한철연의 “시대와 철학”의 최근 2년 치의 논문을 쭈욱 읽으면서, 한철연의 분위기가 우측으로 기울고 있다고 느낀다. 그 논문들에 대한 감상문은 다음카페 “천사흘밤”의 ‘한철연’ 항목, ( https://cafe.daum.net/milletune/S6O4 )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7:05, 58VMA) (8:16, 58VMB)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철학의 세계』(2023),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특별기고] 헤겔 정신현상학의 시대적 의의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정신현상학의 시대적 의의

 

이 글은 『정신현상학 번역과 주해』의 발간을 기념해서 25년 11월 27일 대안 공동 연구소에서 이루어졌던 강연의 원고입니다.

 

글: 이병창(한철연 회원)

 

1) 필자의 관심

필자는 본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대학 시절 실존철학이나 불교에 깊이 빠졌던 것도 그 때문이었으리라. 필자가 문학과 예술에 늘 마음을 빼앗겼던 것도 그 속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철학과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도 실존철학을 연구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는데, 어느 날인가 철학 하는 선배의 석사학위 논문을 읽다가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꾸어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읽기 시작했다. 그 논문의 주제는 『정신현상학』 자기의식 장에 나오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였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연구가 끝나지 않았다. 『정신현상학』은 도대체 이해되지 않았으니 처음엔 그저 한 쪽을 읽다가 잠에 빠졌으며 읽기를 매번 다시 포기했다가 얼마 뒤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이제 70대 노인이 돼버렸다. 그간 몇 권에 걸쳐 『정신현상학』의 비밀을 풀어보려 했으나 다들 중도에 그치고 말았다.

두서너 해 전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대, 문득 죽음이 부르는 듯한 환청처럼 듣고, 죽기 전 마지막 힘을 다해 이 책의 번역과 주해를 마쳐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만사를 제치고 집에 틀어박혔다. 생각해 보면 학자적 삶의 거의 전부를 『정신현상학』의 이해에 매달렸으니, 무엇이 필자를 이 책에 걸신들리게 했는지를 이제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몰두했던 것도 이 책이 본래 필자의 관심 영역인 마음의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마음 즉 정신이란 단순히 세계에 대한 인식이나 삶의 가치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심성 즉 실천적 의지나 정신적 표현의 문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많은 철학은 마음을 다루더라도 주로 인식과 가치의 문제만을 다룰 뿐이고 심성의 문제나 표현의 문제는 심리학이나 교육학 또는 예술의 문제로 넘겨버렸다. 심리학이나 교육학은 경험적 방법이나 실용적 목적이 지배하고 심층적 이해는 없었다. 예술은 표현을 개인의 천성의 문제로 돌렸으니 아쉬웠다. 일부 철학(예를 들어 실존철학)은 심성의 문제를 다루기는 했으나 적절한 방법론이 없이 내적인 수련의 문제로 여길 뿐이었기에 그 역시 필자로서는 답답했다.

그런 마당에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인식과 가치뿐만 아니라 심성이나 표현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학문적 방법론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필자로서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정신현상학』을 조금씩 이해해 나가면서 그 가운데서 인간의 실천적 의지나 정신적 표현에 관련된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여기서 상세하게 설명할 여유는 없지만, 그 이름만 들어보자면 자기의식 장에 나오는 ‘노예 의식’과 ‘불행한 의식’이라든가, 이성 장에 나오는 ‘덕성’과 ‘세속’의 개념, ‘성실한 의식’ 그리고 정신 장에 나오는 ‘인륜적 의식’ ‛세계의 주인’ ‘소외된 정신’ ‘분열된 의식’이나 ‛순수 의식’ ‘유용한 존재’ ‘절대적 자유’ ‛전치[Verstellung]’와 ‛아름다운 영혼’의 개념 등이 있다. 헤겔은 많은 문학 작품이나 종교적 형태에서 그런 모습의 원형을 찾으려 했다. 그가 참고했던 대표적인 소설만 들더라도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나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 야코비의 『볼데마르』 등이 있다. 그 모습은 필자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풍요로웠으니 그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필자로서는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헤겔은 그 모습을 역사적으로 출현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것은 과거의 모습을 극복하는 한에서 출현하며, 출현했다가는 역사적 운동을 거쳐 다시 자기 모순에 빠지고, 그럼에도 새로운 극복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 모습은 한편으로 보면 역사 앞에서 부딪히는 모순 때문에 비극적으로 몰락하면서 숭고성을 띤다. 그러나 다른 한편 현실의 역사를 은폐하려는 시도 속에서 풍자되고 희화화된다.

 

2) 정신현상학의 역사적 배경

그런데 헤겔이 정신현상학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 동기를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나는 그 시대 역사적 배경이며 여기서 정신현상학이 추구하는 목표가 나온다. 다른 하나는 철학적 배경인데 여기서 정신현상학이 전개되는 구조와 전개 방식이 나온다.

① 독일의 궁핍

우선 그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자. 헤겔 시대 이웃하는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이미 민족적 통일 국가와 근대적 민주주의 체제 그리고 활발한 자본주의적 발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은 여전히 중세 봉건적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17세기 초 30년 전쟁이 끝난 뒤 독일은 소 국가로 분열됐으며, 각 국가는 봉건적 지배 아래 있었고 자본주의적 발전은 오히려 후퇴하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프랑스 혁명의 기운을 전해 받고, 나폴레옹의 지배 아래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일부 개혁이 이루어지면서 독일에서도 혁명적 지식인이 출현했다. 헤겔 역시 이 시대 청년기를 보냈으며, 그런 혁명적 지식인의 이상을 공유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청년들은 프랑스 혁명 가운데 전개된 공포 정치에서 충격받았으며, 새로이 발전하는 자본주의의 불평등을 목격했으니, 혁명적 지식인들은 한편으로 근대적 체제를 실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공포와 불평등이 없는 이상을 실현하려 했다.

② 헨 카이 판의 이념

그것이 곧 헨 카이 판[hen kai pan]이라는 이념이었다. 이것은 곧 ‘하나이자 전체[All Einheit]’라는 사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한 것이다. 이 원리는 그리스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헤겔은 청년기부터 시인 횔덜린과 자연철학자 셸링과 더불어 가슴에 품고 있었다고 하는 원리다. 이 원리를 헤겔은 각자는 전체이면서 동시에 전체의 한 계기라는 의미로 재해석한다. 필자는 이를 간단히 공동체적 정신이라고 부르려 한다.

그런 이상의 가능성 보여준 최초의 인물이 곧 칸트였다. 칸트는 로베스피에르가 사사한 루소의 일반 의지 개념이 지닌 한계를 깨닫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순수 의지 즉 도덕적 자유의지 개념을 제시했으니, 칸트의 세례를 받은 청년 지식인들은 이런 도덕적 자유의지를 통한다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는 희망에 들뜨게 됐다.

그러나 칸트의 순수 의지 개념은 나름대로 문제를 지녔으니,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낭만주의자는 이를 양심 개념으로 발전시켰으며, 헤겔은 그것조차 넘어선 ‘하나이자 전체’라는 절대지의 개념을 제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헤겔은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칸트 철학에서 새로운 빛이 탄생했다고 한다. 이 빛은 철학적으로는 선험철학이며 사상적으로는 그의 순수 의지 개념이다. 칸트는 이런 순수 의지가 지닌 자체 내 한계 때문에 낭만주의의 양심 개념이 출현했다고 한다.

③ 낭만주의의 한계

헤겔은 낭만주의적 양심 개념을 정신현상학의 절대정신에 도달하기 직전에 다루었는데, 그만큼 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결정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 시대 낭만주의자들이 나갔던 길을 보면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독일 낭만주의는 여러 흐름이 있지만, 대체로 학생운동을 배경으로 한다. 이 학생운동은 예나 대학에서 시작돼서 전국적으로 파급됐다. 학생들은 학생조합이라고 할 부르셴샤프트를 조직해서 활동했는데, 초기에는 매우 급진적이었다. 학생운동은 독일의 통일과 민주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1807년 나폴레옹의 독일침략을 거치면서 학생운동은 분열했다. 상당수는 보수화했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전향했고 정치적으로는 민족주의적으로 전향했다. 그런 가운데 중세를 이상화했고 신성로마제국의 부활을 꿈꾸었으며 그 후예라고 할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 제국을 지지했다. 반면 급진파는 전쟁 이후 1814년 발트부르크 축제를 통해 보수파의 저서를 불태우는 등 급진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이렇게 낭만주의 운동은 급진파와 보수파로 분열된 가운데 온건 개혁파라고 할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 개혁 운동을 반대했다. 여기서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낭만주의와의 대결이 전개됐는데, 이때 헤겔은 낭만주의의 양심 개념이 지닌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보면서 이를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바로 이것이 그가 사상적으로 절대정신으로 이행하게 된 역사적 동기였다고 하겠다.

 

3) 정신현상학의 목적

헤겔은 이념적으로는 낭만주의자들이 지닌 이념을 지지했다. 그 역시 헨 카이 판의 공동체를 지지했으며 이를 통해 독일의 봉건제와 민족적 분열, 자본주의적 참상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방법에서 그는 칸트의 순수 의지도 아니고 낭만주의의 양심도 아니며 그것을 넘어선 절대정신을 요구했는데, 그렇다면 절대정신이란 무엇인가?

헤겔에서 절대정신이란 곧 공동체다. 이 공동체는 단순히 공동의 목적(이성, 법)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공동체는 그와 동시에 개별 의지의 통일체 즉 집단의지 또는 공동 자아를 말하며, 이는 국가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다음 구절을 참조하라.

“절대정신은 곧 공동체다. 이 공동체는 우리가 이성이 실천적으로 실현된 형태로 들었을 당시에는 우리에게 절대적 본질로 나타났으나 여기서는 자신의 진리에 도달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식된 인륜적 본질 즉 우리가 대상으로 삼는 본질로 등장한다.”(446 구절)

이런 절대정신은 구체적으로 두 가지 모습을 지닌다. 하나는 내적인 모습인데 그것은 사랑이라는 정신으로 출현한다. 이는 근대에서 개신교를 통해 출현했다. 다른 하나는 외적인 모습인데 앞으로 구체적으로는 국가로 출현해야 할 이상이다. 이는 곧 사랑이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사회 제도를 의미한다.

헤겔은 이 사회 제도를 나중에 법철학에서 제시했는데 이는 기독교의 삼위일체라는 개념에 기초해서 전개된 것이다. 즉 국가가 삼위일체와 같은 방식으로 구성되는 것을 말한다. 삼위일체는 각각이 전체이면서 동시에 전체의 한 계기라는 헨 카이 판의 원리에 기초하지만, 개별자와 일반자 사이에 양자를 매개하는 특수자를 개입시켜 세 가지 항이 각기 전체이면서 동시에 전체의 한 계기가 되도록 만든 것이다. 국가 속에서 이런 삼위일체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하는가는 법철학에서 나오지만, 여기서는 생략하도록 하자.

정신현상학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런 절대정신에 도달할 수 있는 가이다. 헤겔은 이와 같은 절대정신에 추상적인 윤리적 사유가 아니라 역사를 통한 실제 훈련을 통해 몸으로 직접 체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구체적으로 역사 속에서 이런 절대정신에 도달하는 길을 찾으려 했으니, 바로 이것이 정신현상학이 정신의 역사로 구성된 이유다.

 

4) 정신현상학의 철학적 배경

그렇다면 역사 속에서 정신이 어떻게 전개되는가? 여기서 헤겔은 정신이 전개되는 구체적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 이런 고민은 그 시대 철학적 문제와도 관련된다.

① 의식 경험의 길

『정신현상학』이 전개되는 방법은 헤겔이 「서론」에서 ‛의식 경험의 길’이라는 개념을 통해 밝혔다. 이 개념은 칸트의 선험철학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곧 대상이란 의식의 범주가 규정하는 것이라는 관점이다.

이런 관점에 서면 의식의 경험은 대상 너머에 있는 물 자체에 부딪히게 된다. 이는 곧 의식의 범주로 규정되지 않는 딜레마나 모순이 출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칸트 철학은 이런 물 자체에 부딪힘으로써 그 너머 영역은 인식 불가능한 영역으로 규정했다. 이 물 자체의 난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대의 과제였다. 직관으로 돌아간 셸링과 달리 헤겔은 칸트 선험 원리를 지키면서도 이 물 자체의 난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헤겔은 여기서 의식 경험의 개념을 제시한다.

헤겔에 따르면 의식 경험의 길에서 딜레마나 모순을 통해 드러나는 물 자체는 사실 그 의식이 이미 전제한 특정한 범주를 통해 대상을 규정하는 것 때문이다. 그런 특정한 범주를 벗어나게 되면 더는 딜레마나 모순이 출현하지 않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딜레마나 모순에 부딪히면 의식은 자기 내로 반성하여 기존의 의식 형태와 다른 새로운 의식 형태가 출현하며 이를 통해 의식이 자기 내로 반성하는 것이 곧 헤겔이 말하는 의식 경험의 길이다.

의식의 자기 내 반성은 그 의식에 대해 존재하는 대상을 넘어 물 자체 즉 딜레마가 출현하는 것을 매개로 한다. 의식이 딜레마를 매개로 더 일반적 의식으로 발전하면서 기존의 물 자체는 의식이 파악하는 현상 영역 안으로 들어오고, 이에 따라 의식이 규정할 수 있는 대상의 영역도 확장된다. 하지만, 이 새로운 의식 경험 역시 일정한 범주를 전제로 구성된 것이니, 다시 물 자체에 부딪히게 된다. 이렇게 매번 새롭게 등장하는 물 자체는 이전에 출현했던 물 자체보다 더 근본적인 물 자체가 될 것이다.

② 근거로의 복귀와 개념의 실현

 

이와 같은 ‘의식 경험’의 개념에 따르면, 의식은 개별적 형태에서 일반적 형태로 발전한다. 즉 좁은 영역에만 적용되는 의식의 범주는 이로부터 발생하는 물 자체까지 포괄하는 더 넓은 영역에 적용되는 일반적 의식 범주로 발전한다. 개별적 의식에 대해 일반적 의식은 근거가 되는 것이므로 의식 경험의 운동은 자기 내에 있는 근거로 복귀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 운동은 의식이 물 자체라는 대상에 부딪히는 운동이며, 마침내 의식과 대상이 통일되면서 자기의식이 되는 운동이다.

의식의 이런 운동은 출발점에서 본 운동이다. 이 운동을 그 결과에서 그리고 대상의 측면에서 본다면, 결과는 더 포괄적인 대상이므로, 이런 대상이 의식의 출발점에 가능성으로 있다가 마침내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운동은 추상적이며 가능적인 것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으로 나가며, 헤겔은 이런 운동을 개념의 자기실현 운동이라 한다. 여기서 추상적 가능성을 헤겔은 그 자체 존재라고 하고 이 그 자체 존재는 자기 밖의 물 자체에 대립하게 되면, 대자 존재와 대타 존재로 분리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을 그 자체이면서 동시에 대자적인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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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의식의 반성과 대상의 출현이 서로 매개한다. 의식이 자기 내로 발전하는 과정은 거꾸로 보면 대상의 본질이 드러나는 과정 즉 물 자체가 출현하는 과정을 매개로 한다. 거꾸로 대상의 본질이 드러나는 과정은 의식의 자기 내 반성을 매개로 한다. 의식이 더 일반적 의식이 되면서 더 근본적인 대상의 본질이 출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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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존재하는 한, 끝없이 그 의식을 넘어서 규정될 수 없는 물 자체가 출현할 것이니 이 과정은 개방적이고 열린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정한 시대에서는 더는 당시의 의식으로 규정되지 않는 대상은 없으니, 그런 한에서 이 과정은 닫힌다. 열림과 닫힘은 서로 교체된다. 열린 운동 끝에서 보면 닫힌 것이며, 닫혔다 하더라도 새로운 물 자체가 출현하면, 다시 열리게 된다.

의식의 경험에서 의식은 개별적 의식에서 일반적 의식으로 발전한다. 반면 대상의 실현은 추상에서 구체로 나가니, 양자는 서로 전도된 모습을 취하고 있다. 전자가 상향적이며 끊임없이 자기를 넘어서는 개방적 과정이라면 후자는 하향적이다.

의식 운동이나 개념 운동은 서로 매개하는 것이니, 의식 운동의 이면에 개념 운동이 있으며, 개념 운동의 이면에 의식 운동이 있다. 헤겔의 경우 대부분 학문은 개념 운동의 길을 택하고 있다. 학문의 경우(논리학이든 자연철학이나 정신철학이든) 개념 운동이 전면에 나오며 그 이면에 의식 경험이 전개된다. 반면 『정신현상학』의 경우는 의식 경험의 길이 전면에 나오며 그것을 매개하는 것이 대상의 개념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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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헤겔이 말한 의식 운동과 개념 운동을 연구 과정과 서술 과정으로 설명했다. 연구 과정은 경험적으로 얻어지는 개별 사실들에서 출발하여 가장 일반적이고 근거가 되는 원리로 나간다. 서술 과정은 연구 과정을 통해 발견된 원리로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추상적 원리를 구체화하면서 현실의 대상을 설명하게 된다. 마르크스의 경우에서도 연구 과정과 서술 과정이 서로 매개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보면, 장마다 먼저 개념적으로 서술한 다음 이를 다시 역사적인 발전을 덧붙이는데, 이는 연구 과정과 서술 과정이 매개됨을 보여준다.

③ 형태와 계기의 운동

 

의식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이전의 의식 형태는 이후의 의식 형태에 내면화[기억:Erinnerung ]되니, 이후의 형태가 전개될 때는 이전의 형태가 다시 반복된다. 다만 과거의 것이 똑같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식 형태를 지반으로 해서 반복된다. 그러므로 헤겔은 이를 개념의 계기가 된다고 한다. 의식 형태의 이행은 개념의 계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반영된다. 전자는 시간 속에서 일어나며, 이것이 곧 의식 경험의 길이다. 후자는 논리적 과정이며 이것은 앞에서 말한 대상의 개념 운동과 같은 것이다. 시간 속에서 이행과 사유 속에서 이행은 서로 다른 차원에 놓여 있음에도 서로 평행한다. 양자의 과정은 마치 계통의 발생 과정을 개체가 반복하는 것과 같다. 헤겔은 이를 형태와 계기의 관계라고 한다.

 

5) 정신의 전개 과정

헤겔에서 정신은 매우 포괄적인 개념이다. 이 정신은 세 가지를 포함한다. 즉 인식과 실천적 의지 그리고 표현이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이 세 가지 영역을 개별성과 일반성이라는 두 단계로 구분해서 다룬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보면 『정신현상학』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이 구성은 대체로 헤겔이 칸트의 범주표에서 끌어낸 4개 범주(12개 판단형식)에 대응한다.

정신현상학 내용 판단형식
의식 개별적 인식 개별자의 본질을 인식하려는 시도가 다루어진다. 질 범주
자기의식 개별적 의지

(자아)

형식적 자유의의 출현 과정이 탐구된다. 이는 노예의 노동을 통해서 내적으로 출현하고 스토이시즘과 회의주의 불행한 의식을 거쳐 현실적으로 출현한다. 양(본질) 범주
이성 일반적 인식 사물의 일반적 본질이 인식된다. 이는 자연에서는 분류학의 형태로 출현하며, 인간 사회에서는 정의의 개념으로 출현한다. 실체 범주
정신 일반적 의지

(일반적 자아)

개별 의지가 자기를 극복해서 일반적 본질 즉 정의를 실현하려는 이성적 의지로 발전하는 과정이 다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계몽주의, 프랑스 혁명, 칸트의 자유의지, 낭만주의의 양심 개념 들이 다루어진다. 개념 범주
절대정신 정신의 표현

(예술, 종교, 철학)

정신의 표현은 개별 의지를 공동 자아로 조직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그 공동 자아는 종교에서는 교회라는 형식으로 나타나며, 절대지의 단계에서는 삼위일체적 이상 국가로 출현한다. 이념

이런 과정에서 자기의식의 단계에서 개별적 자유의지가 출현한다. 이는 곧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의지, 결정하고 선택하는 의지를 말한다. 이성의 단계에서 사회의 공동 목표라고 할 정의가 파악된다. 그리고 정신의 단계에서 이런 공동의 목표를 수행하는 실천적 의지가 형성된다. 마침내 절대정신의 단계에서 이런 실천적 의지 가운데 공동체의 정신이 출현하면서 구체적으로 이상 국가의 출발점이 된다.

 

6) 정신현상학과 이 시대의 철학

마르크스는 역사가 반복된다고 했다. 한 번은 비극이고 다른 한 번은 희극이다. 마찬가지로 사상도 반복하는 것이 아닐까?

90년대 초 포스트모던 사상이 불어닥쳤다. 대체로 푸코, 데리다 등 포스트모던 사상가는 후기 구조주의에 기초한다. 포스트모던 사상은 진리도 부정하고 어떤 가치도 부정한다. 포스트모던 사상은 억압을 반대한다는 긍정적 가치도 지니지만, 모든 것을 상대화하고 결국 개인주의, 상업주의, 쾌락주의를 정당화해 왔다. 이는 이 시대 함께 퍼진 신자유주의 체제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전후로 신자유주의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포스트모던 사상의 상대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전개됐고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직관주의적 철학이 발전했다. 라캉은 이드를 직접 대면하는 순간이 있다고 보았으며, 들뢰즈는 사물을 생성하는 미분적 차이를 직관할 수 있다고 보았다. 직관주의는 포스트모던 시대 사라진 진리와 객관적 가치를 찾으려는 숭고한 노력이었으나, 직관 개념이 지닌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직관은 결국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수놓은 이런 사상의 발전은 거슬러 올라가면 헤겔 당시의 사상사적 발전을 상기시킨다. 칸트의 선험철학은 구조주의와 유사하다. 이어서 등장한 낭만주의 철학은 직관주의다.

헤겔은 칸트 선험철학을 계승한다. 즉 사태를 인식하는 데서 개념의 구조를 전제한다. 그렇게 된다면, 칸트가 말했듯이 물 자체의 아포리아에 부딪히고, 상대적 현상주의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헤겔은 개념의 구조를 전제하면서도 진리와 객관적 가치의 인식에 육박할 수 있다고 하면서 상대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개념을 거부하고 직관에 의존해 진리를 인식하려는 낭만주의를 비판했다. 즉 진리를 회복하려는 낭만주의의 이념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방법에서 헤겔은 직관이 아니라 구조적인 개념을 통해 가능하다 보았다. 그 과정에 곧 앞에서 말한 의식 경험의 길인데 즉 모순과의 대결을 통해 사유가 객관화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식 경험의 길을 통해 헤겔은 한편으로 자기가 진리다라고 주장하는 독선적 오만에 빠지는 것도 경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진리를 포기하고 상대적 세계에 머무르는 것도 거부한다. 헤겔은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는 모순에 온 몸으로 부딪혀 가면서 진리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는 고투 외에 다른 길이 없는 것으로 주장한다고 할 수 있겠다.

헤겔이 제시하는 정신적 고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이 뉴턴의 물리학을 포함하면서도 넘어서는 것이거나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의 노동 가치설을 수용하면서 이를 넘어서 독자적인 가치론을 확립한 것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헤겔 형이상학 산책50-양적 무한성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50-양적 무한성

1)

앞에서 셈법과 수의 종류를 다룰 때 정수에서 분수로 이행하면서 새로운 양이 출현한다고 했다. 정수는 외연 량을 표현한다. 그것은 길이나 무게와 같은 추상적인 개별 량이다. 분수는 비례 량을 표현한다. 이것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정량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무게와 부피의 비례인 비중, 거리나 시간의 비례인 속도와 같은 것이다. 이런 관계를 통해 성립하는 구체적인 양을 비례 량이라고 이름 붙였다. 양자를 매개하는 것이 내포 량 또는 정도다. 내포 량은 타자와 비교에서만 성립하지만, 여전히 추상적인 양이다.

외연 량(정수)에서 비례 량(분수)으로 나가는 과정은 경험적으로는 경험이 더 풍부해져서 개별적 정량을 넘어선 다른 정량들 사이의 관계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헤겔은 이런 이행을 추상에서 구체로 나가는 개념의 실현 운동으로 설명한다.

이 운동 과정에 대한 헤겔의 설명은 모호하다. 이는 c절 양적 무한성 절에서 설명되는데, 표면적으로 보면, ‘악 무한’에서 ‘진 무한’으로 이행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 사이를 매개하는 것이 무한 진행이다. 무한 진행이 악 무한(예를 들어 무한대나 무한소)으로 표현됐다가, 이것이 무한 진행임이 밝혀지고 나아가서 그 본질은 진 무한 또는 내적인 무한성 개념이라는 사실이 자각된다.

처음 악 무한을 다룰 때는 헤겔의 설명은 동일한 정량에서 정량의 운동(예를 들어 길이의 확장)을 설명하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진 무한 개념이 등장하면서 이 진 무한이 곧 비례 량 즉 다른 정량의 내적 관계임을 천명하면서 끝난다. 이 과정은 약간 어리둥절하게 보이며 이 과정을 분석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 헤겔이 논의를 전개하는 독특한 방법이 숨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 헤겔의 논의를 따라가 보자.

2)

먼저 헤겔에서 양적 무한성에 관한 개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 출발점은 하나의 정량과 다른 하나의 정량이 관계다. 이 관계는 길이나 무게와 같은 개별 정량에서 두 정량의 관계로 볼 수도 있고 비중같이 두 다른 정량 사이의 관계로 볼 수 있다. 차라리 헤겔의 개념 규정은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이 두 차원을 넘나든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개별 량와 비례 량이라는 구체적 내용의 차이를 무시하고 두 정량의 일반적 형식적 관계를 보자.

양적인 것은 대자 존재인 일자에서 동일한 대자 존재인 다른 일자로 이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서로 같은 대자 존재가 관계한다는 점에서 연속적이며 각 대자 존재는 고유한 일자라는 점에서 서로 구별되고 무차별하므로 이 관계는 분산적이다.

양적 관계가 이와 같은 이중성을 지니므로, 어떤 정량의 부정은 정량의 타자지만 또 하나의 정량이 된다. 그러므로 그 부정은 새로운 정량에 머무르지 못하며, 그 새로운 정량조차 자기를 부정하게 하니, 이 과정은 끝없이 계속된다. 새로운 정량은 기존 정량의 부정이면서 동시에 자기가 부정되니, 이중 부정 또는 자기 부정이며 이런 점에서 무한 정량, 즉 양적인 무한성이 된다.(이런 자기 부정성 개념은 길이나 무게 등 개별 정량의 무한 진행에서 잘 드러날 것이다.)

앞에서 질적 무한성 개념을 다룰 때도 양적 무한성에서와 마찬가지의 자기 부정성이 출현했다. 그러나 같은 자기 부정성이더라도, 질적 무한성과 양적 무한성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다르다. 이제 현존 절에서 다루었던 질적 무한성과 양 절에서 나타나는 양적 무한성을 비교해 보자.

3)

질적 존재에서 규정성은 어떤 것이 지닌 속성이다. 예를 들어 소금은 짜거[p]나 입방체[-p]다. 모든 소금은 짜며, 동시에 입방체다. 양자의 통일은 p가 아니고 -p도 아니며 동시에 p이면서 -p인 것이다. 이것은 서로 대립하는 p와 -p를 매개하고 자기를 p와 -p로 출현하게 하는 동시에 양자를 초월하는 일반성 즉 대자 존재다.

이 질적 무한성 즉 대자 존재는 자기를 때에 따라 p나 -p와 같은 대립하는 성질로 나타내는 운동을 의미하지만, 그 자신은 질적 성격을 잃어버리고 양적인 것으로 전환한다. 왜냐하면, 대자 존재와 대자 존재는 일자와 일자의 관계이며 양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즉 질적 무한성은 양으로 이행한다.

일반적으로 질적 규정성은 타자와 대립하는 가운데 타자의 부정을 통해(반성적으로) 규정된다. 예를 들어 짠맛은 입방체에 대립해서 짠맛으로 규정된다. 즉 p는 -(-p)이다. 양적인 것에서는 이런 타자에 대한 대립 관계가 사라진다. 그 때문에 질적 성격도 사라진다. 여기서는 동일한 대자 존재 그러나 서로 무차별한 존재 즉 일자와 일자 사이의 관계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적 존재에서 두 대자 존재, 즉 일자와 일자는 서로 동일한 것이면서도 서로 무차별한 것이다. 두 개의 나뭇잎, 두 개의 물방울은 서로 무차별하면서도 서로 동일하다. 그러므로 여기서 양적인 무한성 즉 p가 아닌 것은 그 자체가 p이므로 자기 자신도 부정할 수밖에 없으니 어떤 부정은 자기 부정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런 끝없는 자기 부정성이 곧 양에서 나타나는 양적 무한성이다. 이런 양적 무한성은 하나의 정량 내에서 이 정량이 자기를 부정해서 자기를 넘어서게 만드는 것 그러므로 내적인 무한성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정량에서 나타나는 자기 부정성이 독특하다는 사실이다. 정량의 자기 부정성은 어떤 정량의 타자가 곧 자기 즉 자기와 같은 대자 존재이므로 나타나는 자기 부정성이다. 그러므로 이 부정성은 타자를 부정해서 다시 자기가 되는 것이다. 전자의 측면에서는 타자로 미끌어지는 것(무한 진행)이며 후자의 측면에서는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미끌어진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무한성이다. 그러나 타자를 부정해 자기로 돌아온다는 측면에서는 규정성이다. 질적 규정성이란 타자에 대립해서 나타나는 부정성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무한성을 통해 양에서 질적인 것이 회복된다.

4)

예를 들어(이런 의미에서 양적 무한성은 개별 량에서보다 오히려 비례 량에서 더 잘 드러난다) 무게는 독자적인 정량일 수도 있고 부피에 비례하는 정량일 수도 있다. 후자가 비례 량이다. 전자일 때는 정량의 규정성(예를 들어 삼 미터)은 자기(길이)에 대해 외면적이다. 그 규정성은 자기에 무차별하다.

그러나 부피에 비례하는 무게 즉 밀도 또는 비중은 같은 타자에 대해 관계하는 정량이다. 비중이 크다는 것은 그저 무게와 무차별한 부피에 대해 무게가 외면적으로(사유를 통해) 비교된 것이 아니다. 비중은 부피라는 자기의 타자에 대해 관계하며 그것도 대립적으로 관계하니 즉 비중이 크다는 것은 자기의 부피를 축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중은 부피에 대립하고 부피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타자에 대립해서 규정되므로 질적인 규정성이 다시 회복된다. 비례 량을 이루는 구성 요소인 개별 양은 추상적이고 그 각각은 양적 관계를 갖지만, 비례 량에 이르면, 그 자체는 한편으로는 여전히 양적 관계에 머무르면서도 이제 질적 차이를 발생하게 한다. 이런 점에서 헤겔은 양적 무한성 즉 이중적 부정은 “어떤 정량으로서뿐만 아니라 정량 자체로서 지양된 정량이다.”(논리학 초판, GW12, S. 140)라고 한다. 즉 단순히 하나의 정량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량 자체를 부정하는 것 즉 질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정량은 자기의 비 존재 무한자를 매개로 하여 다른 정량 속에서 자기 규정을 갖는다. 즉 질적인 차원에서 정량의 본성으로 된다. 그러나 정량의 개념과 그 현존을 비교하는 것은 차라리 우리의 반성에 속하며 즉 여기서 아직 출현하지 않은 비례에 속한다. … 이제 외면성 속[정량의 타자]에서 자기 자신이라는 것, 외면성 속에 자기 관계하며 자신과 단순한 통일성 속에 있고 질적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 정립된다.”(논리학 재판, GW21, S. 235)

“이 비례 속에서 정량은 자기에 외면적이며 자기 자신과 상이하다. 그러나 이 자기의 외면성, 다른 정량에 관계하는 것이 동시에 그의 규정성을 이룬다. 이 속에서 무차별한 규정성이 아니라 질적 규정을 갖는다. 정량은 자기의 외면성 속에서 자기 내로 복귀한다.”(논리학 초판, GW12, S. 153)

5)

양적 무한성의 개념은 이처럼 자기를 자기가 부정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헤겔은 양적 무한성 개념을 통해서 무한대나 무한소, 무한 진행, 진정한 무한성이라는 세 가지 개념을 구분한다.

무한대, 무한소는 무한히 크고 무한히 작은 것을 실체화하여 실제로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할 때다. 그것은 마치 피안이 존재한다고 할 때와 같은 의미다. 반면 무한 진행은 정량이 극한에 도달한 순간 다시 그것을 넘어가는 것을 말하니, 비유하자면 수평선을 끝까지 가면 다시 더 멀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과 같다.

그러나 헤겔은 무한대나 무한소는 잘못된 이미지라고 보며 이를 일단 무한 진행이라는 개념으로 환원한다. 사실 엄밀하게 말해서 무한대나 무한소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헤겔에 따르면 그것은 무한 진행의 왜곡된 표현이며 이 무한 진행을 일정한 이미지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한대나 무한소로서 무한량은 본래 무한 진행이다. 그것은 크거나 작은 것으로서 정량이면서 정량의 비존재다. 따라서 무한대나 무한소는 표상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그 표상은 좀더 가까이 다가가 고찰해 보면, 무실한 그림자와 안개처럼 나타난다.”(논리학 재판, GW21, S. 233)

“정량을 넘어서는 것은 정량의 부정 즉 무한이다. 그러나 새로운 정량이 정립되면서 이것은 무한의 부정이다. 이 악 무한은 표상에서 절대자로 여겨지며 다시 지양되지 않는 최종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그것을 더는 넘어설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논리학 초판, GW12, S. 151)

헤겔은 이런 무한 진행 역시 넘어서면서 이 무한 진행은 진 무한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한 진행은 끝없이 자기를 부정해서 앞으로 나가는 운동인데, 진 무한은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를 넘어서는 탈자화의 운동 자체를 말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무한 진행와 진 무한은 다를 바가 없다. 둘 다 자기를 넘어서는 운동이다. 진 무한이라 할 때는 어떤 정량 속에 그것이 자기를 넘어서는 운동을 말한다. 무한 진행이라 할 때는 그런 진 무한의 운동한 결과 도달한 결과가 다시 넘어서서 끝없이 전개되는 것을 말한다. 진 무한이 내적 운동이라면 무한 진행은 그런 내적 운동의 표현이다.

자기를 부정한다는 것은 질적 무한성에서도 출현한다. 이때는 질적 무한성은 대립하는 성질을 넘어서는 포괄적 일반화로 즉 대자 존재로 나간다. 그러나 양적인 것의 평면에서는 자기 부정성은 즉 양적 무한성은 일반화가 아니라 옆으로 미끌어지는 무한 진행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무한 진행의 진정한 모습이 내적 부정성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외면적으로 끝없이 앞으로 나가는 모습만을 취해서 본다면 그것이 헤겔이 비판하는 무한 진행이다. 무한 진행은 아직 내적 부정성의 운동임을 모르고 있는 내적 부정성의 운동일 뿐이다. 거꾸로 무한 진행이 지닌 본래적 모습을 자각한다면, 그것이 곧 진 무한이다. 헤겔은 이 진 무한을 ‘정량의 개념’, ‘개념에 따라서 규정된 정량’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무한자는 다만 최초의 부정으로 규정되고 무한 진행 속에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무한 진행 속에서 그 이상의 것이 출현한다는 사실이 지적되어 왔다. 즉 부정의 부정 또는 본래적으로 무한자인 것이 말이다. 이런 사실은 정량의 개념이 이를 통해 회복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논리학 재판, GW21, S. 234)

5)

위에서 악 무한이나 무한 진행은 진 무한을 왜곡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헤겔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사실 이런 무한의 여러 종류는 자연의 운동 또는 수 운동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필자는 헤겔의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 헤겔의 설명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해 보았다.

앞에서 말했듯이 양적 무한성은 정량에 내재하는 운동이며 이는 곧 자기를 부정하는 또는 자기를 넘어가는[Hinaus] 운동이며, 자기를 벗어나는 운동 즉 탈자화[Aussersich]로 규정된다. 그런데 이런 양적 무한성은 정량의 종류에 따라서 다른 방식으로 출현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운동을 보자. 이 자연의 운동은 수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등속 운동 S=at a ; 1, 1, 1 (정수): 속도가 고정된 운동

등가속 운동 S=vt v=S/t : 1/2, 2/4, 3/6 (유리수적 분수)…. : 일정한 양으로 속도가 증가하는 운동

가속 운동 S=1/2at² a=2S/t² : 1/2, 1/4, 1/9(무리수적 분수) … : 속도가 가속적으로 증가하는 운동

여기서 세 가지 운동은 전혀 다른 운동으로 보이지만, 사실 하나로 환원될 수 있다. 즉 가속 운동이 단순화된 형태가 등가속운동이고 이 등가속 운동이 단순화된 형태 등속 운동이라는 것이다.

세 가지 운동을 이렇게 본다면, 이 관계를 다시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다. 양적인 영역에서 운동의 개념은 탈자화하는 운동이다. 즉 자기를 부정해서 또 다른 자기로 이행하는 운동이다. 그런 운동의 개념이 등속 운동에서는 가능성으로만 나타나고 비로소 가속 운동에 이르러 그 개념이 실현된다고 볼 수 있다.

등속 운동에서 운동의 개념이 가능성에 머무르고 감추어져 있다. 무한 진행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은 이 운동에서 운동의 개념인 운동의 기울기가 곧 0라는 것을 통해 표현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운동은 외면적으로만 나타나고 그 결과 운동은 악 무한이나 무한 진행이라는 외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반면 기울기가 일정수인 경우나 기울기가 증폭하는 경우에서도 그 운동은 무한히 확산한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무한 진행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운동의 개념이 이미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운동이 확산하거나 증폭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속에 있는 운동의 기울기가 내적 부정성, 진 무한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6)

자연의 운동이란 본래 두 가지 정량 사이의 관계다. 이는 등가속 운동이나 가속 운동이 분수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이런 운동의 개념은 이미 개별 양이 지속적으로 전개되는 등속 운동에서도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자면 등속 운동도 비례 량이다. 이미 거기서도 두 다른 정량이 관계하고 있다.

등속 운동에서는 비례 량이라는 사실도 드러나지 않기에 여기서는 마치 개별적 정량이 자기 내에서 서로 관계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나 등가속, 가속 운동에 이르러 운동의 개념이 드러나면서 두 다른 정량의 비례 량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존재론 현존 절은 판단 형식에서 질적 범주에 해당한다. 존재론 양적인 것은 판단 형식에서 양의 범주를 다룬다. 이때 1절 양적인 것은 양의 운동 일반을 다룬다. 2절 정량은 양의 판단 형식에서 최초의 판단인 단칭 판단의 형식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단칭 판단이 부정되는 가운데 양적 무한성 개념이 출현하고, 그 결과 등장하는 진 무한은 곧 특칭 판단 형식에 해당한다. 진 무한은 곧 비례 량이니 비례 량이 특칭 즉 양적인 어떤 것에 해당한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49-외연량, 내포량, 비례량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49-외연량, 내포량, 비례량

1)

앞에서 정량에 두 종류가 있다고 했다. 외연량과 내포량이다. 외연랑은 자기의 한 부분을 단위로 해서 자기를 잴 수 있다. 외연량은 이 단위가 몇 배인가[Vielheit]로 표시된다. 수적으로 표현하자면 외연량은 기수로 표시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물체의 길이나 무게와 같은 정량을 예로 들 수 있겠다. 헤겔은 이런 외연량은 “자기 내에서 개수”, “자기 관계하는 다수라는 규정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에 반해 내포량은 이런 몇 배라는 방식으로 표시할 수 없다. 한마디로 여기서는 기본 단위가 발견되지 않는다. 어떤 것의 내포량은 다른 것의 내포량과 비교를 통해 더 많거나 더 적거나 하는 방식으로만[Mehrheit] 표시된다. 수적으로 말하자면 내포량은 다만 서수로만 표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가 경도에서 스무 번째라 할 때 그런 점에서 경도가 첫 번째 되는 사물보다 다이아몬드의 경도가 스무 배 더 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여러 사물의 경도를 서로 비교해 볼 때 스무 번째라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내포량은 이처럼 타자와 비교를 통해 나오지만, 여전히 여기서 비교되는 정량은 하나의 정량이며 이는 비교되는 타자와 공유하는 정량일 뿐이다. 즉 물질의 경도나 강도나 감각적 뜨거움이나 가벼움 등과 같은 특정 정량이 비교된다. 그러므로 헤겔은 내포량은 “자기 밖에 있는 것으로서 개수,” “자기에게 외면적인 것으로서 규정성”을 갖는다고 한다.

헤겔은 외연량과 내포량을 넘어서 새로운 정량의 형태로 이행한다. 이 새로운 정량의 형태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비중과 같은 것인데, 이는 두 개의 정량(부피와 무게)의 관계 또는 비례를 통해 형성되는 정량이다. 이제 단순한 정량에서 관계 속에 있는 정량 즉 비례량으로의 이행을 살펴보기로 하자.

2)

자연에는 이처럼 두 개 정량 사이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정량이 많다. 비중을 예로 들었지만, 비중 외에도 등속도 운동을 보자. 속도는 시간에 비례한다. 등속 운동은 분수로 표현된다. 즉 p=V/t이다. 또 뉴턴의 힘의 법칙에서 힘은 질량이나 가속도에 비례한다.(즉 F=am)

앞에서 수의 종류가 발전하는 가운데 분수가 출현한다고 했다. 분수는 더하기, 곱하기를 거쳐 셈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이런 셈법은 단순히 사유의 유희는 아니다. 이런 분수가 곧 두 개의 정량 사이의 관계를 의미한다고 보면, 이 분수는 자연에 존재하는 어떤 정량 즉 두 개의 정량 사이의 관계 또는 비례를 통해 만들어지는 정량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분수를 통해 표현되는 정량은 외연량과 내포량보다 더 발전된 정량이다. 외연량이 자기를 단위로 하는 것이라면, 내포량은 타자와 비교하되 결국 동일한 단순한 정량의 측면에서 서로 비교되는 것이다. 그러니 내포량은 자기 관계를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새로이 등장하는 비중과 같은 비례량은 더는 단순한 정량에 머무르지 않으니, 여기서 비교되는 정량은 비교하는 정량과 전혀 다른 정량이다. 즉 하나의 정량이 타자를 통해 규정되는 것이다. 여기서 비교되는 것은 비교의 대상을 단위로 측정된다.

어떤 것이 단순히 자기 관계하지 않고 타자 관계 속에서 규정된다면, 그것은 질적인 것이 된다. 헤겔에서 질이란 타자의 부정성을 기본 성격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타자는 그 질과 대립하는 타자이며, 이때 두 가지는 반성 관계에 있게 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헤겔에서 빨강은 항상 빨강이 아닌 색과 대립해서만 빨강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정량이 단순한 자기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대립하는 다른 정량을 통해서 규정된다면 그때 이 정량은 질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

외연량과 내포량은 단순한 정량이다. 그 정량의 한계를 규정하는 방식 즉 몇 배수[Vielheit]냐 아니면 크고작음[Mehrheit]이냐 방식의 차이다. 그런데 외연량과 내포량을 측정할 때 다른 정량과 관계하는 방식으로 측정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외연량이나 내포량은 서로 환원될 수 있다.

외연적 크기는 내포량을 지닌 정량과 관계하면, 내포적으로 규정된다. 예를 들어 무게를 보자. 무게는 외연량이지만, 만일 피부에 가해지는 압박감을 통해 규정된다면 내포량으로 규정된다. 무거운 것은 강하게 압박하고, 가벼운 것은 약하게 압박한다.

“외연적 크기는 내포적 크기로 이행한다. 왜냐하면, 그 다수의 개수[Vieles]는 그 자체로 그리고 대자적으로 총수 즉 다수의 개수 바깥에 등장하는 총수로 몰락하기 때문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213)

거꾸로 내포량도 외연량을 지닌 다른 정량을 통해서 규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감각적 내포량인 뜨거움을 보자. 이 뜨거움은 수은주를 확장하는 효과를 지니는데, 그런 수은주의 확장은 외연량으로 측정된다. 그러므로 뜨거움도 외연량으로 규정될 수 있다.

“다르게 규정된 내포성에 무차별한 것으로서 이 단순한 것은 외면적인 개수를 그 자체에서 가지며, 따라서 내포적 크기는 본질적으로 외연적 크기다.”(논리학 재판, GW21, S. 213)

외연량과 내포량은 사실 단순한 정량이므로 실제 세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 인간이 필요에 따라 측정하기 위해 추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모든 정량은 항상 다른 정량과 관계 속에 있으므로, 이런 관계의 방식에 따라서 외연량은 내포량으로, 내포량은 외연량으로 전환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두 정량의 관계를 통해서 규정된 새로운 정량 즉 비례량은 외연량인 동시에 내포량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례량이라는 개념을 통해 헤겔은 외연량과 내포량을 통일한다. 앞에서 두 정량의 관계 즉 비례량을 통해 양적인 것에서 질적인 것이 출현한다고 했다. 이 두 가지 주장을 연결하면 다음과 같은 헤겔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양자[내포량과 외연량]의 동일성으로부터 질적인 어떤 것이 등장한다. 왜냐하면, 이 동일성은 자기의 구별을 부정하는 것을 통하여 자기에 관계하는 총수이기 때문이다.”(논리학 재판, GW21, S. 213)

4)

정량에는 수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것이 있다. 수가 분수로 발전하면서 단순한 정량은 관계를 지닌 비례량으로 발전한다.

분수는 다시 두 가지로 구분된다. 유리수에 머무르는 것과 무리수가 되는 것이다. 유리수적 분수가 자연수의 비례 관계로 표현한 것이라면 무리수에서는 제곱의 비례 관계가 출현한다. 예를 들어 등속도 운동 S=vT 와 가속도 운동 S=1/2aT² 을 서로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만일 분수에서 허수가 개입하게 된다면, 이는 원운동과 같은 것으로 출현할 것이다.

양자는 마찬가지로 분수로 표현되지만, 그 의미는 달라진다. 등속도 운동, 가속도 운동, 원운동은 서로 다른 운동을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들의 관계를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즉 등속도 운동도 하나의 가속도 운동이지만 가속도 운동의 가장 낮은 단계일 뿐이며, 마찬가지로 가속도 운동도 원운동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원운동의 가장 낮은 극한에서 등장한 한 운동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관계를 헤겔적 개념을 가지고 설명한다면, 등속도 운동에서는 개념이 아직 숨어 있고 마침내 원운동에 이르러 비로소 개념이 자기를 실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외연량, 내포량, 비례량을 서로 다른 자연의 운동을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달리 보면, 외연량은 내포량의 가장 낮은 극한이며, 내포량은 비례량의 가장 낮은 극한으로 볼 수 있다. 즉 비례량에서 표면에 드러나게 될 개념이 외연량에서는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렇게 감추어진 개념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숨어 있는 개념이 표면에 드러나는 과정은 어떻게 일어날까? 헤겔은 바로 그것을 부정의 작용으로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정의 부정이라는 이중 부정인데, 이런 이중 부정을 통해 정량에 감추어진 개념이 드러난다.

이 정량에 감추어진 개념이 곧 무한 개념이다. 헤겔에서 이 무한 개념은 곧 자연의 운동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이어서 헤겔은 2편 2장 3절에서 ‘양적 무한’ 개념을 다루는데, 여기서 헤겔은 비례량에서 드러날 무한 개념을 그 출발점에서부터 추적해 나간다. 무한 개념은 외연량과 내포량, 비례량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앞에서 나타난 무한 모습(무한소나 무한대/ 그리고 무한 진행)은 최종적인 비례량에서 나타나는 무한의 모습즉 진 무한을 암시하며 선취하는 것이다. 유의해야 할 것은 무한 개념의 발전 밑에는 정량의 종류에서 발전이 매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48-셈법과 수의 종류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48-셈법과 수의 종류

1)

앞에서 여러 번 수는 정량을 대표하는 정량의 화폐라고 말했다. 이 수를 세는[Zaehlen] 것을 셈법[Rechenschaft]이라 한다. 셈법은 초등학교 들어가서 배우는 제일의 기법이다. 누구나 셈법 하면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더하기 빼기는 그 가운데 더 초보적이고 곱하기에 숙달하려면, 외우는 것이 요구된다. 구구단을 얼마나 외웠는지, 이 나이 들어 자기 전화번호는 종종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구구단은 잘 외운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는 구구단이라 하는 데 독일 사람들은 일일단[Einmaleins]이라 한다. 이왕 농담하는 김에, 켐브리지 대학교에서 발간한 수학에 관한 소개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옛날 그러니까 중세 독일의 한 상인이 자식을 상인으로 키우기 위해 셈법을 가르쳐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 독일 대학교수(아마 수학 교수는 없었고 철학 교수였을 것이다)에게 자식을 데리고 가서 후하게 해 줄 테니 자식에게 셈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때 독일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예, 더하기 빼기까지는 저희가 가르칠 수 있지만, 곱하기 나누기를 배우려면, 이탈리아 유학을 가야 합니다.”

이 농담의 전거를 굳이 밝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시 독일에서는 아라비아 숫자를 쓰지 않고, 로마자로 수를 표현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럴듯하다. 솔직히 지금 필자는 로마자로 된 숫자조차 제대로 읽기 힘들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셈법이 이처럼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단순한 기술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헤겔이 논리학에서 이 셈법에 관한 철학을 제시했으니 말이다. 좀, 웃길 것 같은데, 사실은 헤겔의 논리학에서 정량에서 무한량 개념으로 이행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서 결정적인 것이다. 이 부분에는 전거를 밝힐 필요가 있겠다.

헤겔 논리학 재판에서 대체로 주석에 관한 한, 초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주석조차 초판을 대폭 확장한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이 바로 정량과 무한량을 다루는 절에 속한 주석이다. 무한량을 다룬 주석에서는 거의 100쪽에 가까운 광대한 주석을 달아서 소위 해석기하학의 근본원리 즉 무한계산의 원리를 철학적으로 다룬다. 그에 앞서서 정량의 1절(제목 수)에 덧붙인 주석 1에서는 초판의 주석에 덧붙여 바로 이 셈법을 철학적으로 다룬다.

2)

헤겔은 이 셈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항상 다만 동일한 것을 다루면서도 외면적으로 산출하는 셈법의 상이성은 셈해지는 수들의 상호 차이에 놓여 있다. 그런 구별은 어디 다른 곳에서 외면적인 규정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간단히 말해 셈법의 차이가 곧 수들의 차이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셈이란 동일한 수를 다루는 것이 아닐까? 더하기와 곱하기, 나누기에서 셈하기 전의 수와 셈한 이후의 수는 동일한 수다. 이런 수들은 소위 자연수 가운데 어느 한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니, 셈법의 차이와 수의 차이는 무관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헤겔은 수의 차이에서 셈법의 차이가 나온다고 하는데,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셈법에 네 가지가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우선 더하기와 빼기를 생각해 보자. 이건 어렵지 않다. 3 더하기 4는, 3개까지 개수를 세고, 더해서 4개의 개수를 더 센 것이다. 이것은 손가락으로 세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전히 개수가 그대로 보존된다는 것이다. 즉 7개의 개수가 아니라 8개나 6개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명제는 분석적이라 본다. 하지만 이 분석적 명제를 아는 데는 경험적으로 즉 손가락으로 세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 결과가 12개의 개수라는 사실은 분석적으로 알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떤 총수로 표현하는가를 알려면, 손가락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빼기는 더하기로 환원된다. 3 빼기 2은 3 더하기 -2이다. 즉 3에서 거꾸로 세워가면 된다. 빼기가 더하기로 환원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여기서는 -수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 수는 앞으로 가는 것이라면, -수는 거꾸로 가는 것이다. -수가 등장하면서 수가 하나의 벡터 즉 운동하는 방향을 지닌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우리의 시야가 공간의 좌우로 뻗어 나간 것이다.

3)

이제 곱하기를 생각해 보자. 더하기는 1이라는 단위를 개수만큼 반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3 곱하기 4에서, 곱하기는 3이라는 총수가 이제 기본 단위가 된다. 그래서 이런 기본 단위를 4번 반복하는 것이다. 즉 3+3+3+3이다. 3은 1+1+1이니, 위의 곱하기는 (1+1+1)+(1+1+1)…로 환원할 수 있어서, 곱하기는 더하기와 다름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의 기본 계기를 단위, 개수, 총수로 볼 때, 여기서 단위는 총수와 일치한다. 즉 총수가 기본 단위가 된 것이다. 더구나 3 곱하기 4는 4 곱하기 3이나 마찬가지다. 즉 3이라는 총수를 단위로 보고 4를 개수로 보든, 4를 단위로 보고, 3을 개수로 보든, 마찬가지다.

나누기는 곱하기를 변형한 것이다. 3 곱하기 4는 12라는 명제는 12를 4 또는 3으로 나누면 3 또는 4가 된다. 이는 얼마나 여러 번 기본 단위 3이나 4가 주어진 총수 속에 포함돼 있는가를 의미한다. 그 답이 곧 개수다. 또는 나누기는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다. 즉 어떤 총수를 주어진 개수(3이나 4)에 도달하도록 나누려면 기본 단위를 무엇으로 해야 하는가로 이해할 수도 있다.

어떻든 곱하기와 나누기는 총수를 원하느냐, 개수를 원하느냐, 단위를 원하느냐 하는 요구에 따라 달라지는 표현일 뿐이다. 일정한 과자를 자기 아이들에게 동일하게 나누어주려면 단위가 필요하며, 일정한 과자를 한 아이가 먹을 만큼 나누어주면 몇 명이나 먹일 수 있는가를 생각하려면 개수가 필요하다. 나가서 자기 아이가 먹을 만큼 과자를 사려면 얼마나 사야 하는지, 그 총수를 알려면 곱하기가 필요하다.

더하기는 양수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운동이다. 빼기에 이르면 수는 정수로 확장한다. 곱하기는 여전히 정수에 머무르는 것 같지만, 나누기에 이르면 이제 수는 분수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곱하기에는 여전히 자연수에 머무른다. 그러나 그것을 변형한 나누기에 이르면, 자연수를 넘어선 분수가 출현하게 된다.

곱하기는 다시 거듭제곱으로 발전한다. 거듭제곱 예를 들어 3³은 3*3*3이다. 이것은 처음 3이라는 총수가 단위로 되어 3의 개수만큼 반복한다. 그 결과는 9인데 이제 9가 단위가 되어 다시 3의 개수만큼 반복한다. 그러므로 이 거듭제곱은 곱하기로 환원되고, 다시 더하기로 환원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단순한 곱하기는 반복적이지만 여기서 곱하기는 누적적으로 일어난다. 누적하는 운동이 들어간다.

나아가서 거듭제곱은 새로운 수를 발생한다. 이는 그것에 대립하는 운동인 근의 운동에서 드러난다. 제곱근은 4의 제곱근은 +/-2이어서 지만, 5의 제곱근은 루트로 표현된다. 즉 무리수다. 나가서 삼제곱이나 삼제곱근에 이르면 허수가 등장하게 된다.

이처럼 셈법의 상이한 방식은 수의 종류와 연관된다. 한편으로 셈법이 발전하면서 수의 종류도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분수나, 무리수, 허수 등이 인간 사유의 산물로 생각한다. 그러나 헤겔은 오히려 거꾸로 설명한다. 즉 수의 종류는 자연 속에 이미 존재하는 정량의 운동과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며, 이 운동과 관계를 우리가 인식 또는 파악하면서 셈법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헤겔은 앞에서 말했듯이 셈법의 기원은 수의 차이에 있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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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수의 종류는 정량의 어떤 관계를 표현하는 것일까? 헤겔은 두 가지를 집중적으로 설명하는데, 분수와 무리수다. 무리수는 나중에 무한량(미분양)과 관계되는 데, 우선 정량을 다루는 데서는 분수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분수를 보자. 그런데 분수란 무엇인가? 헤겔은 이 분수를 단순한 수의 관계가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두 가지 정량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비중은 질량과 부피의 관계다. 가속도는 힘과 질량의 관계다. 분수는 이런 두 개의 정량이 갖는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자연 속에 정량은 하나의 양이다. 이 정량은 동일한 일자의 반복적 관계이며, 이 정량은 외연량과 내포량으로 구분된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외연량은 자기의 한 부분으로 자기를 측정한다. 이는 단순한 자기 관계다. 헤겔에서 단순하다는 것은 추상적이라는 말이며, 개별적이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길이나, 무게 등등 각각은 이런 추상적인 개별적 정량이다.

그런데 내포량에 이르면 이 내포량은 이런 추상적인 단순한 자기 관계를 벗어난다. 내포량은 다른 것과 비교해서만 측정되며, 즉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어떤 점에서 더 많고 더 강한 것이다. 헤겔은 이런 내포량은 타자를 매개로 해서 자기 관계하는 정량이라고 규정한다.

내포량에서는 아직 하나의 정량이 다른 정량에 대한 관계가 출현한 것은 아니다. 다른 것과 비교되지만, 그러나 비교되는 것 자체는 동일하다. 즉 다이어몬드의 강도와 유리의 강도가 강도라는 하나의 정량에서 비교된다.

그러나 이제 내포량을 넘어서 하나의 정량이 다른 정량과 관계하는 것을 통해서 출현하는 정량이 등장한다. 그게 바로 앞에서 예로 든 비중이나 가속도와 같은 것인데, 수로 보면 이런 관계는 분수 즉 비례나 관계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수가 분수가 된다는 것은 사유의 유희가 아니라, 자연 속에 존재하는 두 정량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분수가 고안된 것이다. 헤겔은 정량이 다른 정량과 관계하면 이 관계를 통해 질적인 정량이 등장한다고 본다. 양에서 다시 질이 되돌아온 것이다. 비중이나 가속도는 양적인 것이지만, 이미 질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다.

앞에서 질을 설명하면서 두 성질의 상호 관계를 통해서 대자 존재가 출현하고, 이로부터 양적인 것이 출현했다고 했다. 이제 거꾸로 양이 서로 관계 맺으면서 질을 발전시킨다. 이 질은 단순한 감각적 성질이 아니라 질적 성격을 지닌 양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양이 질로 발전한다는 사실은 양적인 것과 질적인 것을 대립하는 것으로 보고, 심지어 양적인 것을 자연에서 제거하려는 철학자들에게는 충격적인 주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