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인민이 최종심급 [천 하룻밤 이야기]

총선: 인민이 최종심급

..2024 03 20. – 춘분(春分): 올해 윤년이라 춘분이 3월 20일이다.

 

들뢰즈/가타리가 보는 역사적 흐름은 사뭇 다르다. 들뢰즈 이야기하기 이전에, 서양에서 역사를 이야기한 이들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도 있었지만 이들은 역사의 긴 과정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당대와 연관에서 교훈 또는 의미를 찾고자 했었다. 그리고 서양의 사상사에 아직도 난점으로 남아있는 크리스토스(메시아)란 용어의 유입은 사유의 역사를 뒤집어 놓았다. 인간의 사유가 유한하다는 것은 어떤 현자나 지식인들도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영원의 역사는 예언자(점쟁이)의 것으로 여겼다. 45억 년의 역사를 지닌 지구가 45억 년 이후에도 영원할 거라는 말은 불경스러운가? 그래서, 백성을 자기들이 가르쳐 놓고는 백성의 편을 든다는 명목으로, 멍청하게도 성직자들은 역사가 신의 뜻에 있다고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으로 착각했다.

역사가 자연의 흐름과 같은 방향에서 전개된다고 여기는 것은 드물게 생각되기도 했지만, 신화를 배격하면서 또는 어린이 교육과 같은 훈육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있어왔다. 상식을 벗어나 양식으로, 양식의 한 길과 다른 길이 있다는 다음 측정의 길도 제시되었다. 자연의 이법(la raison)과 흐름에 신의 통일성과 영원성과는 다른 길이 있다고 여긴 것은 오래되었지만, 과학과 실험을 통해 증거를 제시한 것은 “빛의 세기(les lumières 18세기)” 이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파라노이아에 갇힌 완고한 성직자는 – 세계는 6천4백 년 전에 신이 창조했다고 믿지는 않더라도 – 자기의 이익과 지위를 위해 신도들에게 온갖 등록된 문자의 이야기를 끌어다가 증거하면서 설교하고 있다. 신천지도 그렇고 전광훈은 또 어떤가?

자연의 이법조차 신의 의지인 것으로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버린 그 종교의 성직자들의 완고함 때문에, 과거의 현자들도 상식(오관을 통한 인식)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고 한 곳에서 오래 살아온 농민에게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이런 경우에 떠돌이 현자(유목인)는 무엇을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나마 알아 들을 수 있는 사대부들과 논쟁한들, 그 사대부 또는 지배층은 백성이 믿는 대로 따라야지 하면서 물러서지 않았고, 지배와 사적 이익 유지에 골몰한다. 그런 가운데 몇몇 현자들과 지자들은 변증법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이야기했지만 19세기 중반의 생물학과 열역학 이전에는 선방에서 선문답을 하듯이, 그저 유머나 풍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변모한다. 변화하고 움직인다는 것에서 출발하는 사유는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혁명적으로 솟아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서양사상사를 생각해보면, 하늘이 열리고(부르노의 무한), 또한 바다의 길이 열리면서(갈릴레이의 동시성과 진자), 가장 흥미로운 대상은 “빛”이었다. 빛이라는 광원은 경험적으로 분명히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면서 멀어지면 어두워지는데, 어째서 태양에서 오는 빛은 지구 전체에 평행으로 올까? 그리고 거리와 관계없이 동일한(동등한) 방식으로 비출까? 신의 의지가 보편이고 전지전능이라고 하면서 빛도 신의 것이라고 하고 싶겠지만, 이미 자연의 이법은 신과 별개라는 것이 알려졌다. 그 신은 실재로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겁주기 위한 수사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진실로 빛은 생명을 살리는 원인에 속한다. 왜냐하면 빛이 없으면 식물도 죽고, 동물도 병들다가 간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빛이 만물의 근원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빛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누구의 신앙의 주장으로 자기의 것(전유)으로 전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인에게 평등하게 모든 지역에 골고루 비춘다(물론 북극과 적도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이 수학적 증명이 아니라 증거에서 밝혀야 한다는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 이래로 널리 알려졌다. 신의 존재가 아니라 현존은, 수학적 증명이 아니라 경험적 증거여야 한다. 그 증거의 가장 큰 난점이 성령의 육신화였다(부활이니, 재림은 육신화가 가능해야 나올 수 있다). 어떻게 증거할 것인가? 기적과 은총으로, 그런 사례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럴 때 현자가 그러면 너가 한번 해보라고 한다.

마치 화두를 지닌 선승이 선문답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해보라고 하듯이, 그리스 철학에서, ‘그래 여기 지금 뛰어보라’고 하듯이, ‘다음 섬에 가는지를 보자’ 이런 이야기에 대해 현실과 세상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움직이는 과정이 필요한데도, 과정을 제거하고 처음과 끝이 연결되어 하나라고 하는 것은 여섯 살 꼬마에게 달나라의 토끼와 계수나무를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현자가 기적과 은총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그 기적과 은총을 한번 맛본 자가 경험적으로 다시 구현하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는 것, 죽어서 기적처럼 살았다는 것을 긍정하는 현자가 성직자에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보라고 하면 아무도 실행할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그 성직자의 증거는 본인의 증거인지는 몰라도 세상사의 증거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예를 들어 당나라 6조 선사 혜능 주변과 그 이후로도 너무나 많다. 서양에서도 보나벤투라와 아퀴나스의 변증법적 논쟁과 중국 선종들의 그 많은 논쟁들과 맞대응 시켜서 생각해보시라. 우리 시대에 공부가 적어서 그렇다고 해야하지 않겠는가? 박홍규(1919~1994) 선생의 말씀처럼 이 나라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은 학자들이 공부를 제대로 안 해서 그렇다는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의 난점은 유한하다는 것이다. 이를 핑계 삼아 자기를 제외하고 그 약점을 꼬집는 이들이 황제와 그 주구들이다. 이미 12세기에 생긴 대학에서 교수들은, 이런 등록된 문자를 근거로 하는 학설들이 자연이 지구상에 새겨 놓은 이야기에 비하면 하찮은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미니크파에 반대하는 프란체스코파의 수도사들(불교의 이판 선사들 비슷한데)은 학설이 문자와 그 철학자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과 경험에 근거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인간이 스스로 역사를 만들면서 과정을 거쳐온다고 생각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인간은 여전히 신의 역사 속에 있었다.

표면의 밑에서는 자연의 이법과 인간의 인식이 같은 방향으로 간다고 감지하고 있으나, 만약 발설하면, 마남 사냥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수도사들은 그들 속에서만 문헌에서 문헌으로 연구를 하였다. 이쯤에 ‘역사’는 신의 역사든, 신화의 역사든, 문자로 등록된 서사의 역사 등과는 다른 기나긴 역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깊이 과거로 들어갈 수 있는 역량이 없기도 했지만, 감히 신의 역사를 벗어나 자연의 역사를 말하는 것은 브루노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겁을 먹고 있었다. 18세기 빛의 시기에, 대학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여러 가지 자연의 이법을 생각하고 기록한다. 백과전서파들이 대학교수가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장소에 따라 다른 생각을 한다. 즉 같은 해에 태어난 린네와 뷔퐁은 과거에 벗어나서 자연의 모습을 달리 기록했다. 린네는 오랜 관습대로 형상(꽃모양과 열매)을 중요시 했고, 뷔퐁은 생명체가 자라는 과정을 중요시 했다. 이는 자연을 서술하는 다른 방식이었다. 자연은 어쩌면 빛처럼 여러 갈래로 생명체와 삶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는지, 그러나 쥐시외에서 뷔퐁으로 이어지는 자연에서 생명의 생성과 형성 과정의 이야기도 신의 말씀(명령)에 어긋나면 표면 밑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19세기의 생물학과 진화론이 표면 위 자리를 차지하기를 기다려야 했다. – 생물학의 역사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도 지구도 자연 속에 등록된 기나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지층이든 유전자든. 어느 성직자가 인류 역사 6,400년이라고 기록된(문자로 등기 된 경전) 것으로 증거 했다고 한들 –

서구에서는 지구가 둥글다고 바다로 나간 자들이 중국의 문화를 알면서 놀랐다고 한다. 공자라는 인물이 있다는 기록을 보고서 놀라, 독일의 볼프나 이탈리아의 비코는 달리 사유를 했다. 신이 없는 지역에서 신을 믿는 유럽보다 더 나은 도덕성을 보았던 것이다. 유럽은 같은 크리스토스를 믿는데도 엄청난 전쟁과 혼란을 겪는데 비해, 중국은 신 없이도 매우 높은 도덕과 제도를 만들고 살아간다는 데 충격을 입었다고 한다. 비코가 물론 크리스트교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흘러간 역사의 큰 줄기들이 있다고 달리 생각했다. 신들의 시대, 영웅들의 시대, 인간들의 시대, 즉 신정체, 귀족정체, 인간적 정부가 있다고 생각했다. 후대의 사학자들 중에서 미슐레 같은 사학자는 비코(Vico, 1668-1744)를 역사학의 창시자로 꼽는다. 비코의 활동 시기도 자연의 이법(la raison)인 빛의 시기였다. 그리고 이런 사유의 확장은 프랑스 사회학의 창시자인 꽁트(Comte, 1798-1857)에게도 나타난다. 그는 인간의 진보에서 있어서 우선 신학적 단계에서 형이상학적 단계를 거쳐서 실증적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이런 진보의 사유는 신의 명령(계율)과는 다른 시대에서 달리 사유하기에 여기에 들어섰음을 알린 것이다. 이 계보에는 맑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시대에,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며 프랑스 사상가들은 인류가 스스로 평등과 자유를 실현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지를 현실적으로 실천해 봤다. 이런 노력의 일부가 미시시피강 유역에서도, 소련의 콜호스, 이스라엘 초기의 기부츠에도 있었고 쿠바의 자생적 경제에도 있다. 농본 사회인 프랑스와 달리 산업사회의 산업가가 주도세력인 영국에서는 식민지 지배를 통하여 산업과 상업이 국가의 부와 인민의 안녕과 편리(유용성)를 가져다준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런 상층의 사고논리의 허구를 뚫어본 맑스는 과학적 공산사회를 주장하면서, 역사의 발전은 원시공산사회, 고대 황제(참주)제의 노예제, 중세 영주의 봉건제, 근대 산업사회의 부르주아 자본주의, 그리고 플롤레타리아(인민)가 산업도구를 지배하는 공산사회로 나갈 것으로 보았다.

이런 발전적 역사관은, 역사는 흐른다는 관점을 통해 어떤 진보의 과정을 겪는다는 것을 발설하고 정리해 나간 비코의 『새로운 과학』(1725)으로부터 우리 시대에 까지 겨우 300여 년이 지났다. 맑스로부터 150년 정도이다. 들뢰즈/가타리가 인간의 역사를 신석기 시대가 시작이라 치더라도 만년의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비해, 길게 잡아도 300여 년 사이에 인간의 역사에 대한 통시적 관점이 생겨났다. 서양사상사에서 달리 생각하기란, 어찌 되었건 문자의 등록, 청동기든 철기든 간에, 도구의 활용과 전유, 통치의 체제, 정치제도 등에서 온 것이다. 그렇다면 왜 들뢰즈/가타리인가? 바로 인류 삶의 과정은 자연의 입법(la raison)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들뢰즈/가타리는 흥미롭게도 만년 전부터 하나의 사물이 도구와 무기라는 양면성을 지녔다고 보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모든 생성체는 양면성(다양체)이상 일 것이다, 파라노이아가 아니라 스키조가 기원일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도구 사용이든 무기 사용이든, 자연(지구 위에서)에서 토지와 토지 위에 식물과 동물, 즉 재배와 사냥에 연관된 것을 먼저 다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인류에게서 도구/무기라는 과정은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었고, 그리고 도구/무기를 통한 생산력의 발달은 제도 또는 체제를 갖추어 집단을 형성하였을 것이고, 그리고 그 집단에 우두머리 또는 참주의 등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두머리든 참주(황제)든 어떻게 있어 온 것인지는 역사 이전에는 유적이 말할 것이나, 도구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철기문화가 인민들에까지 통용되기 전까지는 참주의 시대가 지배적이라고들 한다. 참주제에서도 인간이 토지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으며, 이런 감성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토지와 물(강)을 통한 생산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토지 생산에서 철기는 생산력을 높여주었고, 참주는 무기의 사용으로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참주에 맞는 제도를 만들었다. 들뢰즈는 참주가 – 아마도 무기 생산을 쥐고 있는 대장장이와 우두머리의 결탁이라 여긴다 – 갑자기 도래했다고 한다. 그 참주(황제)의 시대에 인민은 제도와 관습을 몸에 각인하고 살아야 했다. 문자가 지배적이 되면서 상층은 각인된 문자에 의해, 모르는 인민을 제도하고 명령하면서 터전에 묶어 두었다. 그러나 (움직이는 또는 욕망하는 존재자들인) 인민은 삶에서 토지의 능력과 배려(기후이지만)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제도로서 참주제는 성의 높이와 넓이로서 지배력을 강화하였고, 인민은 그 지배력의 바깥에서 삶과 활동을 이어갔다. 토지의 시대에서 참주는 자연의 변화와 인민의 흐름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단지 강압적으로 몰살하는 것을 규준(코드)으로 삼았다(얼마나 많은 참주가 도시를 불 싸지르고 멸망시켰던가?). 참주제가 세습을 한다고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참주제는 제도의 확장과 균형을 맞추어, 상부층(행정력)을 구성하는 군주제로 변환하게 될 것이라 한다. 그럼에도 이런 군주제에서, 18세기 절대 왕정에 이르기까지 또는 19세기 짜르(또는 영국의 빅토리아조,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에 이르기까지 전제정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토지의 지배력 때문일 것이다.

토지의 산물과 교환의 한계를 넘어서, 기술의 발전으로 산업의 생산물들은 노동력의 투여 이상의 것을 생산하였다. 이것을 잉여라고 부른다. 잉여생산을 소비하는 대상을 찾는 것이 식민지 개척이기도 하다. 19세기 유럽에서 산업사회의 100여 년은 인간의 이기심을 부추기며, 참주제의 변형으로 국가의 등장 시기이며, 국가의 군대를 통하여 식민지를 수탈하였던 것이다. 토지의 기나긴 시대를 지나, 군주제(참주제가 아니라)의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제도 시대로 전환하였다. 서양 사상가들 중 일부는 인간의 행복과 자유가 확장되는 것이라고 선전하였지만, 그것은 상층부의 상업과 수탈의 자유이며, 식민지 인민에 대한 억압이었다. 참주의 폭력과 달리 국가의 억압은 산업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교육과 의료, 군대와 감옥이라는 훈육제도를 체계화 하였다. 이로부터 인민에게 억제를 심었다. (니체는 긴 종교사의 분석에서, 참주시대의 원한을, 크리스트교의 지배력 강화를 위하여서는 신자들에게 원죄를 심었다. 전기의 억압에서 후기의 억제로 바꾸었다. 국가는 억압에서 억제로 바꿀 것이고, 억제에서 프로이트가 등장할 것이다).

서유럽은 이런 과정을 여러 세대를 거쳐서 조금씩 변화하였고, 두 차례 대전쟁 과정의 식민지 쟁탈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세계의 재패로서 “제국”을 형성한다. 달러라는 제국을. 양차 대전이 이후 질서의 재편에서 과거의 생산도구의 장악(국가독점자본주의)에서 금융의 지배(제국의 탈코드화)로 탈바꿈했던 것이다. 들뢰즈의 설명을 간단히 보면, 토지의 시대, 국가의 시대, 제국의 시대로 요약된다. 서양이야 이런 시대를 오랜 역사, 몇 세기, 몇 세대를 거치면서, 과정의 과거와 현재라는 단계들이 있는 편이지만, 우리나라는 묘하게도 토지의 시대에서 중국의 참주제와 연관 속에서 군주제를 유지하다가, 19세기 말에 갑자기 산업사회가 일제로부터 들이닥쳤다. 마치 토지 제도 위에 참주가 침입하듯이, 제국주의가 지배하였다. 이런 역사적 비극이, 특히 남녘의 120년 굴곡의 역사 속에 있다. 일제 참주제의 식민지 총독이 나가고, 미국이란 제국이 들이닥쳤다. 인민이 스스로 흐르는 과정 안에서 세대를 거쳐서 삶의 터전을 각인하고 제도로서 등록하기도 이전에, 참주와 같은 식민지를 지배하는 군대가 상부에 자리를 차지하고 명령과 억압을 한 것이다. 인민이 일제의 각인에서 제도 방식을 우리 입말로 등록할 수 없었지만, 이 다음에 우리 입말을 세우기도 전에 상층에서 영어가 지배하고 명령하는 제도가 들어선 것이다. 해방과 더불어 인민이 스스로 등록할 방법을 찾기도 전에, 미군정은 일제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의 입말과 등록을 허용해 주는 척하면서, 그들의 영어 규준과 코드에 맞게 정리하고 적용하게 만들었고, 자본의 전유처럼 사고에서도 전유하게 되었다. 즉 우리 입말은 영어의 하부로서 토지에 사는 인민의 보조물일 뿐이었고, 요상하게도 외래 종교의 경전이 이런 지배방식의 중심을 이루었다.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보다 더 많이 교회를 세웠다.

들뢰즈가 말한다. 참주는 하나(지배방식)가 오고 그리고 갑자기 모든 분야에서 참주파들이 들어와서 장악한다고 하였는데, 아마도 골짜기에도 교회가 생기는 것으로 보아 우후죽순 생겨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제국은 보다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토지체에서 산업화로 전향시켰는데, 산업화의 방식이 일제의 잔재와 같은 방식일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참주는 일제 제국주의 시대에 인민을 전쟁물자 생산의 도구에서, 미제 제국의 산업화의 도구로 전환시켰다. 토지의 인구를 산업화의 도시로 몰아가면서 제국의 식민체제는 제도상으로 확장되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관점이 있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저 곤륜산맥에서 환시대로부터 단군세기라는 고조선의 시대는 토지의 시대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 좋은 토지를 찾아 온 종족들은 동쪽의 땅이 살만하다는 것을 느꼈으리라. 적어도 삼국의 시대에는 철기를 잘 다루는 쪽이 우월한 지위를 차지했을 것이고, 산맥들로 분리되어 있는 토지에서 황제제가 아니라 서양의 영주들과 군주제에 맞닿아 있는 고려시대의 군주제에서, 유학의 제도와 상층의 사대부 무리들이 형성되면서 조선시대의 군주제를 이끌어 나갔을 것이다. 이런 군주제는 토지를 토대로 하였기에 인민의 소중함도 그나마 느꼈을 것인데, 말기에 상층의 주도세력(majeur)이 인민의 흐름에서 벗어나 일제에 협력하거나 또는 그들에게 부역하기에 이르면서, 우리 스스로 근대화와 부르주아 형성의 길을 놓쳤다고들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라 한다. 그래도 상층의 일부와 인민들도 일제에 부역하지 않아서 입말과 삶의 등록방식이 그나마도 남아있었고 해방되었다.

미제에 부역하는 자들이 입말을 영어로 바꾸기 위해 우리 입말을 살려두는 척하면서 제도를 제국의 하부제도로 변형하였다. 일제와 미제의 방식을 우리 스스로 수용하거나 또는 우리 방식으로 변형할 시간과 노력을 갖기도 전에, 이미 일제에서 익숙했던 상층의 부역자들이 미제로 사고방식으로 갈아탔다. 이 갈아타기는 기독교를 이용했다. 영어란 곧 크리스트교 경전의 영어가 언어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우리말도 그 번역어가 주인이 되었다. 지식인들은 우리식(?)으로 진리와 학문의 발전을 위한다고 일본에서 서양으로 갈아탔지만, 자기 터전 없는 지식은 독일식에서 미국식으로 바꾸었다고들 한다. 그런데 미국은 독일지식인을 수용하여 만든 도구주의 입장을 미국의 것이라고 여기지만, 독일식에다가 영국 공리주의를 보탠 미국식 철학을 만들었다. 이런 것을 우리에게 강요한 것이다. 서울대가 렘프레이트의 “철학사”를 번역한 것도 같은 일방향(bon sens, 양식)이다. 이런 제국으로서 미국은 로마제국의 식민지 지배방식을 그대로 따라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제3세계를 지배하려 하였다. 일제와 미제를 벗어나는 길은 없는가?

우리는 자연의 이법 속에서, 그리고 우리 역사 속에서 “뭣”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환과 단의 나라, 고조선의 이야기기를 지층을 통하여 창안하고, 불교 천 년과 유교 오백 년의 이야기도 우리 토지 위에서 이루어진 것을 이어가면서, 새로이 전개되었던 20세기의 근대화를 넘어서 21세기 규소의 시대에 맞는 입말과 문화, 여러 학문들을 흥미진진하게 혼성(조성, la composition))해야 할 것이다. 그 노력의 과정에서 행복도 찾을 것이고,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훌륭한 인물들과 호걸과 군자들도 만날 수 있으며, 현자와 선인도 배출할 수 있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 것이다. 그런 시기가 도래했다. 과거의 한문으로 된 우리 이야기를 더 많이 번역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새로운 이야기를 또 생산하고 창조하여, 흐름들을 연결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무능하고 사적 이익만 챙기고, 강압적인 윤석열이라는 인간이 얼치기 참주 짓을 하고 있다. 뭐, 세상에 회자되는 이야기로 윤석열은 박근혜의 무지하고 무능함, 이명박의 이기적이고 사악함, 전두환의 기괴함과 요사함을 겹쳐 놓은 인물이라 한다. 이를 퇴진시켜야 한다. 선거라는 소환권을 가지고 끌어낼 수 있는 기회이지 않는가? 인민은 언제나 토대이며 최종심급이다. 항상 소환권이 있어야, 참주가 아닌 착한 위정자를 만들 수 있는데, 그런데 소환권이 없으니 얼마나 답답한 노력인가? 그래도 지금까지 120여 년 동안에 우리에게 각인된 것과 등록된 것을 많이도 메꾸었다. 이것들을 엮어서 혼성하면서(composer), 우리 스스로 제도 상 필요한 인물을 선출해야 할 것이다.

인민은 토지와 같은 토대이기도 하고, 인민이 산업과 기술을 실질적으로 수행하기도 하고, 산업사회와 제도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야 국가든 공산사회든 이루어질 것이며, 이런 노력으로 만든 체제에서, 프랑스 혁명가인 루이 블랑이 말했듯이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서, “필요에 따라” 필수품을 받는 즐겁고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야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학습 수준과 노력하는 활동은 이런 나라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된다.

누가 이 나라에 눈 먼 돈이 많다고 했는가? 그 말하는 자가 도둑이며 악마이다. 우리 전통에는 청백리가 있고, 서양에서 귀족의 의무(노블레스 노블리제)가 있다는 것은 신의 세계 또는 신앙과 무관하다. 제국의 원리가 있다고 가르치는 크리스토스 신앙은 서양에서도 서서히 물러나고, 세계사의 부분으로서 역사와 사회, 정치 경제가 바뀌고 있듯이, 규소의 시대에 걸 맞는 삶의 터전과 체제를 새로이 혼성(다양한 분야의 조화로운 협약과 연대)해서 만들 능력과 재원이 인민들에게 충분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권능으로 상층의 억압 된 표면을 뚫고 솟아나는 용출선, 곧 저항이다. 이런 저항들이 용출선을 변곡점으로 만드는 것도 인민이다. 인민이 스스로 변곡점의 마루를 만드는 것이 혁명이며 최종심급이다. 혁명의 미래를 성취한다고 말하는 자는 사기꾼에 가깝고, 들뢰즈가 보듯이, 혁명은 과정이며 변화이다. 어쩌면 조국혁신당이 이 시대의 용출선처럼 표면 위로 솟아났다. 문화에서도 삶의 터전에서도 용출선이 도처에서 솟아나고, 윤석열을 탄핵하려는 변곡점을 거치는 과정이 변혁(變革)이며, 이 변역(變易)에 수적으로 다수이나 권력 상으로는 소수자가 인민이 있다. 벩송은 자유가 간헐적으로 솟아난다고 했는데, 들뢰즈 식으로 보면 혁명은 간헐적으로 솟아나 표면을 매끄럽게 흐른다.

인민이 스스로 일어나는 저항, 항거, 봉기, 혁명은 인민의 미덕이다. 이를 혼란, 소요, 사태, 반역이라고 강압하고 억압하는 체제는 사악한 체제이다. 현대에서 이런 못된 말을 하는 자들은 마남사냥의 시대에서 교황청보다 사악하고 기괴한 악마들이다. (5:25, 57NLIJ: 6:36NLJ)

***덧글 ***

# 달리 사유하기.

오늘 점심시간에 언론을 보니, 도주 이종섭의 귀국과 회칼 황상무의 사퇴를 건의한 것이 한동훈이라 한다. 그리고 한동훈은 민심을 반영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아직도 인민이 최종결제권자임을 무시하고는 민심을 반영했다고 한다. 인민은 토대(심층)이자, 최종심급이면서도, 심급의 과정에서 범위를 확대해가는 결재권자이다.

윤석열은 참주행세를 한다. 참주도 아니면서 말이다. 참주(황제)는 제국을 가진 쪽에서 참주이지, 결제 받고 지배 받는 나라에 참주란 없다. 그는 참주의 지시에 따른 식민지 지배의 총독 역할을 할 따름이다. 이 총독이 자기 나라를 제국에 맡기려는 점에서 부역자이고, 이 나라를 제국에 넘겨주는 자들은 매국노들이다. 윤석열은 부역자 또는 매국노의 길을 갈 것인가? 인민이 이를 소환하고 심판하는 최종심급에서 그의 지위를 박탈할 것인가? 박탈과 더불어 친인척의 부정 취득의 재산을 환수하는 것은 인민의 손에 달려 있다. 극우들은 미국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그들을 제국의 부역자이기에, 심판대 위에 세워야 한다.

반영이란 중국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뜻으로 물 그릇을 들여다보는 것을 감(監)이라 하고, 역사를 통시태로서 흐름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거울을 보는 감(鑑)이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자치통감(資治通鑑)이 관리 등용의 과목으로 나중에 들어왔다고 한다. 유럽의 중세에서 비추어 보는 것을 스뻭뀔라시옹(speculation)이라 하는데, 사변(思辨)이라 번역했다. 스뻭뀔라시옹은 라틴어 스펙쿨라시오(speculatio)에서 온 (크리스트교 지배하의) 중세의 용어이며, 관찰하다 또는 거울에 비추어보다는 의미라 한다. 상층(재배층)이 심층(인민)을 내려다보는 것이 관찰과 거울 비추어보기인 셈이다. 한동훈도 그 용어를 썼다는 의미에서 서양 중세의 크리스트교 지배 하의 방식을 드러낸 것이다. 인민의 의사를 존중하고, 겸허히 그에 따르겠다고 해야지. 조선시대 용어로 이종섭을 압송하고 황상무 파직해야지.

인민이란 용어는 로마시대 네 구역 중의 하나에서 생긴 용어라고 하는데, 다수의 인민(권력의 소수자)은 황제(참주)제에 묻히어 표면 밑으로 침잠하여 흘렀다. 성직자들이 인민을 졸로 보고 십자군을 독려하던 시대에, 프랑스에서 알비파의 거센 저항에서 있었으나 도시 자체가 몰살당했다(19세기의 중국에서 마치 태평천국의 항쟁처럼). 표면으로 저항과 항거는 르네상스의 지식인들, 브르노와 갈릴레이에게도 있었다. 시간이 필요하다. 인민이 표면 위로 오른 것은 “빛의 시대(Les Lumières)”(계몽으로 번역한 것은 인민을 교화의 또는 훈육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이다. 즉 빛이 신의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연의 보편편재라는 실재성을 깨닫는 시대에서야 가능했다. 사회에서 또는 제도에서 보편편재는 인민에서부터라는 자각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인민이 수적으로 다수이지만 폴리스(성내에서)의 사대부 또는 부르주와에 비해 힘이 없었기에 소수자(mineur)라 불렸다. 통시적으로 인민이 인구 수에서 소수인 적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역사적으로 그 인민이 빛의 보편편재의 실재성을 드러낸 것은, 지식분자들이 제3신분임을 자처하였고, 프랑스대혁명을 일으키면서 가능했다. 이 혁명의 4년을 지속하고, 다수자(majeur, 귀족층)에 의해 역전 당하고 난 뒤, 인민은 또 다시 표면 밑으로 흐르고 있었다. 4년 이후 표면의 균열을 내고 나온 용출선이 있었으니, 바뵈프(Babeuf, 1760-1797) 등이 결성한 “평등당”이었다. 이들도 혁명파들처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이후로 소위 말하는 저항운동의 조직체(여러 계절사)들이 있어왔고, 우리나라에서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극우는 이들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지만). 인민(소수자, 인구의 다수)의 흐름은 계속해서 흘러, 프랑스 19세기는 “혁명의 세기”가 되었다. 이 과정들은 인민의 ‘반영’이 아니라, 인민의 저항, 분출, 항쟁, 발산, 혁명이었다. 프랑스에서 누가 감히 소요니 사태니, 반역이라 말하겠는가?

여전히 구체제 또는 참주제의 잔당에게는 인민의 발산이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정지된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인민은 빛처럼 움직이며 펼치고 퍼져간다. 그 인민은 심급의 과정이기도 하고, 결국에는 최종심급이다. 이번 총선에서 인민의 결제가 끝나지 않을 것이고, 인민의 역사적 과정은 계속 중일 것이기에, 5년의 권력 윤석열과 그 하수인들이 겁을 먹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도 안다. 인민의 결제가 대선, 총선, 지선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결재권뿐만 아니라 소환권, 헌법 제정의 발의권까지 인민이 언젠가는 가질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 인민은 언제 어디에나 있으며, 빛의 보편편재처럼 인민의 권능 발현은 인간이 각성해 감에 따라 이루어지리라. 그 각성 속에 자유가 있다. (8:09, 57NLJ)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달리 말하기 [천 하룻밤 이야기]

달리 말하기

–셋 또는 아홉으로 갈라지는 선들 중의 하나의 선을 만들며

2024 02 19 우수(雨水) 대동강 물도 녹는다는 절후이다.

옛날에 나 어디서 태어났냐고 꼬마가 물으면 아저씨들과 할배들은 놀리느라 농담 같은 이야기로 ‘다리 밑에서 주워왔지’, ‘다리 밑에 거지들이 너의 아버지야’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네 엄마를 비하’하는 내용 의식이 숨어있다. 이런 이야기를 심리학 또는 정신분석학적으로 볼 때, 여성의 지위를 거지처럼 여기는 의도도 있지만 사실 여성의 다리 밑에서 태어났다는 비유도 함축하고 있다. 예전에 가까운 어떤이를 두고 내가 알기로는 괜찮은 사람이라 여겼는데, 왜? “그의 할배가 만주에서 개장사를 했지?”라고 나의 속 이야기를 물었을 때, ‘그래 개장사 한거야, 아직도 저러고 있지’라는 대답에 일제의 어려운 시기에 먹고살기 위해 만주로 피난 갔다가 돌아와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고로… 정도 생각했었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청년 기를 지나 과거 역사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할 때였다. 사람들은 왜 ‘만주에서 독립운동 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개장수를 했다고 했을까? 더욱 나이가 들어 일본으로 갔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만주로 갔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을 때, 마치 다리 밑에서 주어왔다는 농담조의 비유처럼, 왜 독립운동 했던 사람들을 호명할 때 개장수라는 비하의 방식만이 남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재의식(무의식)이 궁금해 프로이트를 읽으면서도 ‘개장수를 하면 했지, 일본에 그리고 미국에 빌붙지는 않았다는, 그들에게 예속된 삶을 살지 않으려 했을 진대…’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다른 사상을 가졌다는 것을 일상적으로 말할 수 없는 시대와 터전에서, 그들은 엿장수나 하면서 살거나 또는 각설이로 나섰다는 풍자로_막걸리 타령으로 시름을 달래는 이야기로 남았을 것이다. 나는 일흔이 가까워서야 풍자도, 아이러니도, 유머도 진솔한 사유를 하는 길이 아니라고 말했다. 들뢰즈는 “의미논리”를 쓰면서 정신분석학적 소설을 쓴다고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말할 것인데? 들뢰즈와 가타리는 달리 말하기를 대하 소설처럼 쓴 것이 “앙띠 외디푸스”라고 한다. 그렇다면 개장수라 말하지(부르지) 아니하면, 공산주의 운동했지라고 말해야 할 것인데, 말 못하는 사정은 무엇인가? ‘그 놈의 참주 외디푸스 때문이야’라고 두 철학자는 말한다. 달리 말하기, 그리고 그에 맞게 진솔하게 사유하는 길은 무엇일까? 토지와 자연, 그 위에서 들뢰즈/가타리가 대하를 넘어서 대양의 소설을 쓴 것이 “천개의 고원”이다. 달리 말하기, 달리 사유하기, 달리 살기, 혁명하기이다. 그래 빨강이다 왜, 파랭이 자식이….

   풍자를 하면서 자기를 빼고서 말하는 자조적 이야기가 파라독사라고 엘리스의 이야기를 비추어 누누이 말한다. 하늘나라에 환인과 환웅이 있다는 이야기도 파라독사이고, 극락에 미륵보살, 관세음 보살이 잘 지내고 있다는 것도 파라독사이고, 천당에 베드로와 요한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도 파라독사라고 캐럴이 “훌륭한 나라 엘리스”에서 말한 것이다. 자기를 빼면, 또는 단 하나의 예외를 두면, 김건희든 윤석열이든 하나의 예외를 두면, 호롱 속에 지구를 담을 수 있고, 아라비아 이야기처럼 램프 속에 마왕도 담을 수 있는 것도 파라독사이다. 삶은 하나의 예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증거가 있으며, 그 증거를 수학적 증명이 아니다. 그 증거는 한번 있었는데, 또다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가? 어느 생명체도 죽고 난 뒤에 다시 산 증거는 없다. 수학의 증명은 다시 할 수 있다. 이 증명과 증거가 다르다. 신의 현존은 증명(demonstration)이 아니라 증거(prouver)라고 되어 있은데 요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신의 존재 증명이라고 한다. 그게 거짓말쟁이들의 장난이다. 그 장난을 알아차리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은 온유하고 인내하며 등으로 말하는 사랑은 아가페이지 아무르가 아니다. 아가페처럼 가진 것을 다 내어 주면, 어디에 교회라는 그런 건물과 재산이 있을 수 있겠는가. 저네들의 사기꾼 같은 이야기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실재적이고 구체적인 현존과 증거를 입말로 하자는 것이다.

   현실의 고달픈 삶에서 제도에 복속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하고, 그렇다고 전쟁을 겪으면서 어려운 시기에 새로운 삶을 만든다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게다가 현실적인 삶에 동의하며 합류하기에도 마땅찮았을 것이다. 구속의 동네를 떠나서 사는 것이 개장수가 아니라 엿장수이고,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여 각설이로 나섰다는 이야기는 과거를 회복할 수도 없고,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도 없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자조일 것이다. 그나마도 민중신앙이나, 무당이나, 불교 같은 공동체 의식이 남아있는 것조차, 엿장수처럼 되었던 것은 토지체의 삶이 아니라, 기계 체계(기계체)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산업 체제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인민이 일제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제도화되고 연쇄적 고리들로 연결된 기계조립 과정의 부속이 되지 않으면, 낙후되거나 게임에서 진 패배의 그늘 속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근대화 과정이 있었다. 그럼에도 기개와 의리가 남아서 전국의 호걸과 현자인 척하며 거지로 나섰다는 인물들 사이에 연결이 있었으리라. 이런 이들의 저항과 항거가 역사에서 있어왔다. 이들이 입말을 하지 않으니 개발싸게같은 파랭이 자식들이 빨갱이니 친일파니 이승만이니 박정희 같잖은 소리를 한다.

    유일신앙의 종교들이 시골 골짜기 구석구석에까지도 스며들어 대종교, 무당(몸주가 단군), 불교 등을 마치 악마들처럼 몰아내고 토지와 터전을 차지했다. 백성들에게 새 학문을 배우게 하면서 지역과 사회를 서양근대화로 만들려고 하면서(게다가 악마화하면서), 불교 천년과 유교 오백년을 무시하고 잡 사상을 버리게 하기에 6,400년 역사를 달달외게 하고 졸개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면 취직도 하여 산업사회의 장점과 변화를 따라가 근대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근대화에는 우리가 스스로 일어나기 전에 일제가 참주(외디푸스)처럼 들어와서 4,500여 년 역사를 깡그리 다리 밑 거지처럼 만들고 산업과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는 루저들로 취급했으며, 미제는 한 수 더 떠서 우리 역사 자체를 없애는 것으로 인디언을 몰아내듯이 하고 있다. 일제의 부일파와 미제의 숭미파 속에서 개장수나 하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부일자들과 숭미자들은 해방 공간의 우선 일제의 잔재들(부일파와 종일파)을 끌어들일 수 밖에 없었다. 전쟁 후에 산업화에서 일제의 구식 산업화를 미제에 맞게 신식으로 바꾸어 놓았다(숭미파와 모미파). 이런 부류들이 21세기에는 이명박근해와 윤석열 정권에서 이어지고 있다. 달리 말하기에 입말은 제국의 언어가 아니다. 이미 훈민정음에서 말했다. 나라 입말(말씀)이 중국과 다르다라고 말이다. 입말은 대상화가 먼저가 아니라, 삶에서 일반화가 먼저이다. 삶에서 훌륭타와 탁월하다는 역사에서 영웅과 천재라는 대상과 다르다. 증명이 아니라 증거는 삶에서 일반화이다. 이런 의미를 도덕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제와 미제를 거치면서 도덕성이 밥먹여주냐고 한다. 이런 이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무엇을 부역하고 있는가 숭배하고 있는가. 고교생들의 수능에서 사유할 것을 가르치지 않고 대상으로 지적하게 한다. 이렇게 식민지 지배에 노예처럼 살게 하는 것이 논리학의 체계이고, 그 논리학에 맞는 지배방식이 제국의 황제의 체제이다. 이에 굴종이 살길이라고 가르치는 것이, 그 단어를 알아야 한다는 의미론이다. 의미가 포장의 기술이 아닌가, 삶에서 기호가 발현되는 것과 전혀 다른 길이다.

   포장의 기술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도 있었지만, 당대의 스토아 학자들이 삼단 논법의 항들은 대상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비판 했을 때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도 상위 류의 개념이 상징 또는 사고 추리의 극한에서 성립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런 일반화의 개념을 소쉬르가 기표라고 했을 때, 이미 상징, 개념, 용어, 항목은 현실의 경험에서 있는 실재하는 나무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실재가 아닌 용어나 항목이 현실적 대상인 것처럼 속이고 있는 것이, 천국이니 천사니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것들이 현실에서 “있음”이라고 여기는 것은 사유가 아니라 상상이며, 추상의 항들은 공상에 가깝다. 그 망상을 진실인 것처럼 은폐하기 위해 쓰는 용어가 초월이라는 단어이다. 초월적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초월적 현존이 없다는 것이다. 없는 것을 있음으로 만드는 재주는 자기를 제외한 황제(외디푸스)의 것이며, 오로지 예외적인 신이란 용어에만 속한다. 상상을 넘어서 추리하는 극한은 망상이다. 누군가가 우주의 넓이가 25억 년 광년의 거리라고 하면서 실재인 것처럼 말하는데, 그게 상상의 극한이고, 그 극한을 넘어서는 “뭣”이 있는데 라고 물을 때, 그 언어와 과학의 논리가 추리를 넘어서 망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해 보라. 더 이상 확장할 수 없는 도구와 상상 때문이고, 과학적 도구의 한계라면 수긍이나 가지만, 상상의 한계는 그보다 훨씬 넓고 멀고 깊다.

    무엇인가 있는 것처럼 추리하는 사고는 망상으로 치닫는다. 망상이 망상인 줄 한계 지우면 상상의 영역이다. 그런데 이런 망상을 실재하는 세계의 일부로 또는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논리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상징 또는 기표로 불렀고, 그 기표에서 가장 크고 넓고 높은 것이 신이야. 이게 망상이야. 들뢰즈가 좋게 말하여 파라독사라고 해서 그런 소리 그만하자는 정도로서, 그런 정도 소설은 나도 쓸 수 있어 나도 신(부처)이야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추리를 넘어서 초월하든, 초월의 10에 무량대수만큼 하든 그 망상은 파라독사야.신을 꿇게 하거나 신에게 배웠다는 이들은 모두 공상을 넘어 망상에 그리고 착란에 빠진 것이다. 루신이 말하듯이 그런 자를 패야한다고 한다. 그나마도 들어 줄 수 있는 상상은 아폴로가 갔건 말건, 여섯 살 꼬마에게 보름달을 보면서 저기에 계수나무가 있고, 그 밑에서 토끼 두 마리가 방아를 찢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엘리스는 이해한다는 것이다. 입말에는 삶의 진실이 있지만, 언어에는 삶을 떠나 즉 실재성을 떠나 기표로서 상징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말하고 살고, 말에 맞게 문자를 남긴다. 우리 문자(한들) 이렇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절이 인류의 역사에 있기나 있었던가? 언즉시야라는 문자의 대리 표상이 아니라, ‘그래’ 또는 “뭣꼬”라는 말과 같은 입말을 인민들 사이에, 입말과 문자의 대응을 맞추어가면서 말하는 것이 해방 후 겨우 79년 정도이다. 3-4천년의 유사 언어(인도유럽)를 쓴 자들의 논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에 맞추면서 입말도 문자도 해보자는 것이다. 달리 말하기 달리 쓰기는 터전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다. 상상은 상징에 맞게(제국주의 똘만이)가 아니라 실재성에 맞게(자치와 자주로) 살아보자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서양 고대 철학사에서 이미 실재성이라고 하는 문제가 제기 되었다. 그들도 현실이 공상(상징, 신들의 세계)에 사로잡혀서 사는 것인가 실재(자연, 휠레 물질)에 맞게 사는 것인가를 고민했었다. 그 당시의 오관(상식)을 통한 설명에서 보여줄 수는 없지만 말할 수 있는 것을 규정하여 실재성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에게서 이데아는 실재성이었다. 규정할 수 없는 것은, 스토아학자들이 말하듯이, 시간과 공간이다. 이데아는 시간과 공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두 학파 간에 실재성은 다른 용어 또는 대상이었다. 왜 철학사에서 플라톤주의가 스토아학자들을 이겼느냐는, 지금의 기독교가 가난하지 않고 부자편인 것과 같다. 그 원죄는 살았던 예수를 하늘나라에 살고 있고 게다가 다시 온다고 거짓말한 바울 아류들 일 것이다. 예수가 다시 내려와 지금의 목사와 신부들을 단죄한다면 이렇게 실재적으로 살아갈 이는 아무도 없다고들 한다.

   1,600여 년이 지나 오관을 종합하여 사유하는 방식에서 실재성이 있을 것이라고 여긴 데카르트가 수학을 통해서 무한을 실재하는 것으로 상정하듯이, 무한이 있다고 해야, 그 무한보다 더 적은 수많은 수학적 부분들이 성립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런 추론에서 무한이 실재성이 된다. 그렇다고 신이라는 용어가 실재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신은 수학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완전하고 모든 곳에 있다고 규정하는 자들이 있어서 그렇다면 그것을 증거 해보라고 하면, 신이 삶의 현장에 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를 댈 수 있는 것은, 이런 종교인들의 사악한 돈 벌레 속에서, 거의 기적과 같은 경우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 인간은 실재하는 자연 속에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지, 하늘나라로 간다는 것을 증거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신이 무한하다는 것은 수학의 추리 전개에서 증명하는 것이지, 삶에서 증거하는 것이 아니다. 고대철학에서 파르메니데스 같은 이들은 제우스를 상식의 측면에서 말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는 현존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도 잘 안다는 의미에서이다. 데카르트에게서 신의 “존재”가 아니라 “현존”이라고 말하는 것은, 스콜라철학자들이 오랫동안 신의 보편 편재가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현존에 대한 것이었고, 게다가 현존은 추리에서 무한 소급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데카르트도 논리적 증명이 아니라 현실적 증거를 보편적으로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제수이트들이 증거할 수 없는 신을 말하는 데카르트를 무신론이라고 단죄 하려 들었지만, 이미 망원경의 시대라 마남(魔男)사냥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제수이트들도 보편적 까지는 거의 할 수 없고, 일반적으로도 증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증거는 마치 기적처럼 그것을 독실하게 믿는 자에게도 그의 생애에 한 두 번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인데, 그 증거를 일상으로 보편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 번의 기적같은 신의 증거를 삶을 통해서 다시 증거되기를 바라면서 착하게 순수하게 산다는 것을 누가 나무라겠는가? 불교에서 돈오로서 부다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는 이들이 삶의 내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돈오를 할 수 없어서 봄 가을로 그 경지를 맛보려고 안거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 안거가 부다의 경지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 매번 알면서도 또 다시 안거에 들어가 반성, 성찰, 명상, 집중, 홀림을 맛보려 하는 것이다. 서양도 철학자들도 집중(recueillement)과 홀림(possession, 신들림)을 말한다. 플로티노스가 생애에 다섯 번 환희의 일체를 이루었다는 것도 홀림의 일종이다(무당의 신내림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홀림이 그나마도 이런 길을 따라가는 것의 한 방법이라고, 그는 “엔네아데스”를 쓴 것이다. (4:30, 57MLI) – <이어지는 글>

    열여덟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열여덟 해 동안에, 매일 해가 뜨듯이 자고 먹고 싸고 동일반복 같지만 매일 매우 조금씩 자라고 또한 달리 생각하며 얼마나 많은 이질적 반복을 했던가를 생각해 보시라. 그 긴 과정이 하루의 순간처럼 느껴지는 것이 실재성이다. 이 실재성이 고대철학자들이 말한 두 실재성 – 시간과 공간 – 중의 하나이다. 실재성이 과거 추억들의 조각들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그 나이에서야 진솔한 사유(도학, 철학)을 시작한다. 인간이 오랜 경험을 거쳐서 이런 정도의 과정은 일반화와 보편화해야 만이 공동체(공산사회) 또는 자연(세계)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종교집단에서도 즉 스님이든 수도사든 목사든 신부이든 간에 이 나이가 되어야 입문식을 한다. 왜 그 나이이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19세기 말에서 시작한 심리학이 얼마나 많이, 항목, 용어, 개념, 상징, 기호, 기표 등을 가지고 논의하면서, 개체발생은 종 발생의 이질반복이라는 점을 넘어서려고 했으나, 역시나 인간은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열여덟에서야 추상적 사유를 전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유가 시대의 고비[마루]마다 일반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고중세에서 플라톤 이래 이데아가 실재성이라 여겼고, 근대에 데카르트 이래로 자연의 이법(raison)을 실재성이라 여겼다. 근대에서야 추론하는 청년이면 무한과 정해지지 않은 수(부정수)의 실재성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정수는 없는 수(부정수)가 아니다. 정해지지 않은 수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이법도 정해진 원리가 아니지만 실재한다. 추리의 극한으로서 무한도 신도 실재해야 한다고 한다.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무한(정해지지 않은 수들 중의 하나)도 있다고 해야만 학문이 성립하듯이 소위 말하는 좌표도 성립한다. 신의 경우에,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지만 있다고 해야 도덕과 감정 등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데카르트의 신은 이론적 신, 즉 이신론이라고 부른다. 이런 이신론의 등장은 예수를 크리스토스로 동격화 시키는 것이 논리의 추리의 하나이지, 현실적 현존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크리스토스는 미래에 올 메시아인데, 이미 만들어져 1,600년 전에 있었다는 것이고, 논리적 추론에서 증명되는 것도 도덕적으로 증거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19세기말 심리학의(프쉬케학) 성립은, 이 시기에서야 인간이 실재성과 현실성을 개념으로 정립하려 하니, 묘하게 뒤바뀐다는 것을 알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헤겔을 뒤집어 사유하는 맑스의 이야기도, 이런 소설 같은 사유의 이야기들의 한 부분에 속한다(자본론은 1867년에 나왔지만, 1859년에 정치경제학의 비판을 냈다) 여기서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소설처럼 읽어보라는 것이다. 열여덟이 넘어서 장편 소설을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초등과 중등 시절에 위인전 과학들에 대해 요약본을 읽소서 자란다. 이때서야 10권 짜리 장길산을 읽고 나서 남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으면 그저 한마디로 말할 수 없지만 그 속에 “뭣”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공자의 논어든, 플라톤의 향연이든, 싯달다의 법구경이든, 벩송의 물질과 기억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한 항목의 연속이라 여기고 읽어보시라. – 한가지 다 읽은 경우에도, 50여 년이 지나도 읽기는 읽은 것인데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게 되지만, 그거 읽다가 말아서 몰라 라고 하지는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추억처럼 장면이 없다는 것이지 없어진 것이 아니다. 열여덟의 나이에 초등학교 선생님 또는 고등학교 선생님 이름과 행동이 눈에 선하듯이 기억하면서 동창들이 모이면 추억들의 장면들을 이야기한다. 각각의 추억들 중에서 서로 서로 모르는 것이 많지만, 그래 맞다고 하며 서로의 이야기(소설같이)들을 즐긴다. 그래 삶은 추억들로 사는 것이 아니라 기억으로 산다. 기억의 일반화는 “뭣”이라고 규정할 수 없지만 있다는 것을 안다. 이 부정(정할 수 없음)이 실재성이라고 벩송이 말한다. 이 실재론은 플라톤주의자들의 이데아의 실재론을 완전히 뒤집어 엎은 것이다. 이런 혁명적 사유는 벩송에서 유래하기보다, 오히려 인간의 사유의 발달에서 학문들의 발달에서 온 것이다. 이런 발달 때쯤에서야 실재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터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고대의 상식, 근대의 양식과 달리 현대에는 고등양식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열여덟의 이질 반복의 과정에서 고등양식의 성찰과 집중에 들어서는 것이다. 맑스 뿐만이 아니다.

     신 존재가 아니라 신 현존으로 사유하는 것도 또 다른 변화이다. 그런데 그 현존이 이론적 신인 이신론의 범주에 속한다고 하는 것은, 십자군 이후에 수많은 인민 대중이 신은 우리 속에 있지 하늘나라는 사기 또는 거짓이라고 여기다가, 마남 사냥으로 불 속에서 물 속에서 이름 없이 순교했다. 이들이 실재로서 순교자이다. 그 분들에게 나무아미 안녕을! 프란체스코학파의 그 많은 순교와 끈질긴 싸움에서 오캄과 같은 과학적 사유 등이 나왔고, 브루노의 살신성인의 등장하였다 그러고 난 뒤에야 데카르트가 나온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의 인류의 기억 속에서 누구하나 소중하지 않은 이가 없다. 종교를 믿는 자 또는 선택받은 자들이 기쁨과 환희가 실재한다는 것은 사기, 기만, 망상, 착란이라고 말하는 심리학의 발달도 몇 가지 인간과학들이 성립하면서였다. 기나긴 과정에서 새로운 변화는 간헐적으로 또는 갑자기 솟아난다.

   19세기 초엽에서 보면 칸트가 말한 인간이 계몽의 나이가 되었다는 것은 14세 정도일 것이다. 칸트(1724-1804) 시기까지도 추상이 실재성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던 시기이라, 헤겔까지 가는 것이다. 우선 꽁트(1798-1857)가 현실의 세상이 실재성이라고 여기고 신학과 형이상학에 벗어나야 한다고 실증철학을 주장했다. 꽁뜨의 실증은 독일법학의 실정법과 같은 것이 아니다. 검사집단은 실재성에 대한 이해 없이 실정과 실증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이는 앞에서 말한 언어의 일반화의 개념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증적(positif)이란 용어가 긍정적이라는 용어와 같은 단어이다. 그러면 대구(對句)에서 긍정적의 대립은 부정적인데, 실증의 대구는 허구일 것이다. 허구와 부정은 같은 의미일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 우리의 입말에서 아직 사유의 깊이로 들어가기 어렵게 한다. 부정은 없다(아니다)라는 쪽도 있지만, 잘 모르지만 그래도 뭔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있지만 아직 미지수로 있는 어떤 것으로서 부정신학은 데카르트의 이신론으로 보면, 착하고 솔직한 사고이다. 신이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뭣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긍정이라는 것은 부정의 성립 위에 있다. 없는 것 위에가 아니라, 다른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을 제외하고 있는 것이라는 긍정을 다룬다. 현실적으로 “있다”는 주위에 다른 것이 “없다”는 것 위에 성립한다.

    사유의 총체로서 “긍정”은 현재에 없는 다른 것도 합해서 사유할 때이다. 이에 비해 속 좁은 지성에서, 긍정적이라는 것은 현실에서 긍정적이라기보다, 자기 이외에 배타적이고, 자기고집적이고, 자기 완결적으로 외골로 사유이라는 것이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그 긍정이란 용어가 절대자, 유일신앙에 붙어 다니는 경우에, 그 신앙이 거꾸로 가장 많은 부정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정성을 내포한 긍정성이 제국주의 사고이다. 또한 부정성을 제외하면서 긍정적이라는 유일신앙이 자기가 모르는 부정성을 악마 취급하는데, 그것은 자기 속의 오류, 착오, 허위 등의 부정성(잠재적으로 있음)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 중세의 마남(魔男)사냥과 그 많은 선량한 인민들을 이단이라고 죽여 놓고 반성 없는 자들이, – 주기철에 대해 한경직도 마찬가지 – 자기편의 죽은 자들은 대대손손 순교자라고 떠받들고 숭상하는 것이야 말로 기만, 사기이라고 한다. 그들은 저 많은 인민들뿐만 아니라, 단지 사유가 다르다고 종교재판으로 죽은 자들에게 참회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역사에서 그렇게 죽은 이들이 악당, 악마인가를 다시 묻는 것도 19세기말의 실재론 등장의 일부이다. 이를 감추기 위해, 그들은 타 문화에 전도한다는 이름으로 관심을 바깥으로 쏟았던가. 게다가 학문적으로는 반성하기도 한다. 긍정의 논리적 사고가 착오와 오류가 있다는 것은 논리학자인 러셀이 “모든 사람은 죽는다”를, 그리스가 일찍이 난제로 삼았던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 장이”를 다시 사유하면서, 전칭긍정명제가 파라독사라고 했다. 러셀은 나중에 왜 기독교인 아닌가라는 글도 썼다. 뭐, 들뢰즈가 보면 수많은 소설같은 이야기들 중의 하나인 것을 논리학자들은 진리라고 하고, 나아가 심리학의 실재론을 거짓과 착오로 몰기 위해 상징의 가능성과 실재성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했지만, 그 상징은 실재성이 아니라는 것이 소쉬르 언어학에서 간단하게 정리했다. 그러면 뭣을 왜, 철학하니.

     실재성에 대한 고대 상식의 사고와 근세의 양식의 추리를 뒤엎는 것은 철학자 꽁트의 이야기에서 시작하며, 여 우리나라에는 수운 최제우의 득도(1860년)의 이야기도 있다. 다시 서양 사유의 발달사를 들여다보면, 비유클리트 기하학이 전복적 사유를 했다. 유클리트 기하학이 절대공간의 사고이며, 뉴턴과 칸트의 사고체계는 절대공간의 성립과 전개이라는 것이다. 실재성에서 공간은 오목공간도 볼록공간도 있다는 것이고, 이런 사유를 다양체 사유라고 들뢰즈 이후에 유행하고 있다. 절대공간의 실재성들은 상징성이며 논리적 추상의 항목들이다. 이런 절대공간의 개념을 뉴턴에 이어, 천문학에서 아인슈타인이 실재성을 증명했다고 하지만 아인슈타인도 데카르트와는 조금 다르지만 여전히 우주의 통일성을 믿는 이신론에 가깝지만, 평생을 통일성을 주장하는 측면에서 그 또한 유일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생물학 쪽의 발달은 더욱 흥미진진한 대하소설을 넘어서 난바다(대양)의 소설이다. 18세기 생물학의 분류학의 논쟁에서 시작하여, 19세기 초 화석의 논쟁은 생명체의 생장과 변형에 대한 것이었다. 현미경의 발달로 미생물의 발견은 자연계가 통일성을 갖는 실재성이란 사고방식이 깨어지는 것이다.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했을 때는 이미 생명체의 다양성과 변형론에는 내재적 힘(벩송에서 엘랑)이란 것이 있어서 무작위로 다변화한다는 것이 널려 알려졌다. 그럼에서 다윈류들이 하나의 통일적 방향으로, 그 중에서 인간의 방향이 가장 발달된 또는 선별된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이 스며들어, 이 방향이 맞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외부의 신)를 끌어들였던 것도 유일신상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고들 한다. 그 사고는 실재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 유전과 유전자의 발견으로 이어지면서, 생명체는 자연의 산물이고, 자연의 이법(raison)은 신앙의 통일성과는 별개이라는 것이다. 자연의 실재성은 유물론자들을 자극할 것이다. 통속적 유물론자는 공간(볼 수 없는 공간)에서 원자들의 움직이고 구성하고 구축하는 놀이에 빠져, 레고 장난 같은 결합과 조합을 유물론으로 또는 실재론으로 설명했었다.

   그러다가 공간이 “뭣”인가라고 다시 물으면서, 실재성에서는 “뭣”이라는 토대와 같고 알 수 없는 영역이 오관(상식)과 추리(양식)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뭣이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사물과 물체를 놀게 또는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무엇(기저, 깊이)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사유하면서, 실재하는 것은 “뭣”이며 그 속에서 또는 그 위에서 사고하는 것은 인간의 속 좁은 이성의 상상과 공상이었구나 하는 것이 바슐라르의 과학적 사고였다. 그는 자기 사유를 스스로 물의 철학이라 불렀다. 실재성은 부정성(아직 모르는 것)의 실재성이며, 그것을 철학사에서는 오래 전에 “휠레”라고 불렸고 중세에서 물질로 번역된 것이며,

    이 휠레라는 실재성은 이오니아학파의 학문적 토대였다. 이 학문적 관심을 우주발생론이라 한다. 이에 비해 엘레아학파가 뭣의 기초가 존재[상징에 가깝다]라 여기고, 이를 실재성으로 규정했던 것이다. 이 존재의 실재성이라는 주장이 유일신앙자들에게 요상하게 꼬여들어 변형되면서 신학이라는 항목 속에 들어갔다. 그 변형에서 이 항목의 주장자들이 이 항목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얼마나 착하고 순진한 이들을 추방하겨 죽였던 것인가. 이런 오류와 과오를 감추기 위해 억압과 강제로, 긴 시대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굴종과 예속을 따랐던가. 이들은 선량한 사람들의 죽음을 악마의 죽음으로 만들었던 논법을 브루노 화형에까지 1600년을 공공연하게 실행했고, 현 남한 땅에서 빨갱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들이 악마의 화법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인디언을 거의 몰살한 그 유일신앙이 악마의 화법인데, 이 화법에서 대항하기 위해 달리말하기는 중요하다. 일제에 협력자를 친일파라니 부일파이지, 미국의 딸랑이 친미파라니 숭미파지. 실재성에 맞는 용어를 쓰는 것이 그들과 달리말하기이다. 들뢰즈가 제국주의자의 예속의 학문을 정신분석학이라고 하면서, 이들과 달리말하기를 넘어서 달리 학문하기로서 분열분석학을 제시한다. 게다가 맑스가 달리 살기를 말하면서 포이에르바하 명제 11에서 혁명을 말했듯이, 달리 실천하기를 들뢰즈는 다양체로서 리좀 흐르기라 한다.

     19세기의 1859년을 기점으로 신에서 벗어난 인간이 “뭣”이냐는 문제제기는 비유클리드 기하학, 언어학회, 진화론에서 뿐만 아니라, 인류학회를 만들면서 인류학의 성립에서도 있다. 뭣이라고? 지금까지 남은 기록들 모든 것을 인정한다 해도 유대 경전에 인류 역사가 6,400년 정도라고 한다. 뻥을, 상상을 좀 더 하지 한 만년 정도로 그런데 그들에게 아마도 만년을 생각할 수 없었던 시기일 것이다. 요즘에는 만석꾼, 만에 하나라는 용어가 통용하지 않으니, 억 년 전으로 잡았어야지. 그래야 엄청나게 기나긴 대하소설들이 되었으리라.

    화석과 지층의 도움으로 인류의 역사에서 구석기와 신석기를 다루면서, 추억들의 장면 같은 조각들이 발견하듯이, 인간의 과거의 역사들의 파편을 찾기도 하고, 생명체들 중의 추억들에서 거대한 뼈다귀로 남은 멸종된 생명체들도 알게 된다. 인간에게 추억들에서 망각은 무엇인가? 잊고 싶어 하는 것이 망각일까? 황제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반대파들의 기록을 없애는 것이 망각일까? 요즘 윤석열 정권은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한 홍범도를 지워버리고 이승만을 불러낸다고 하면서 무슨 영화를 보게 한단다. 망각에서 자기에 맞는 것을 불러들이는 것이 정신분석학의 트라우마 논의가 아닌지를 생각해 보시라. 러시아의 미하일 솔로호프 소설 “고요한 돈강”에서 자본주의자들의 트라우마로서 적군에 죽은 귀족인가, 인민의 트라우자로서 백군에 죽은 적군의 가담자들인가? 두 전쟁에서 피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유일신앙의 역사에서 그들의 종교에서 순교의 피와 이교도 사냥과 마남(魔男) 사냥에서 죽인 피의 무게를 달아보는 것이, 어쩌면 역사에 대한 망각에 대한 논리와 실재성에 대한 논의의 차이일 것이다. 왜 프랑스 아닐학파들이 맑스의 역사적 관점을 받아들였으며, 미슐레는 왕조사를 읽기를 그만두고, 먼지 속에 쌓여있었던 프랑스 대혁명과 인민의 청원서를 읽었겠는가. 역사의 실재성은 상층의 트라우마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서 살아간 실재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풀어내는 것이라 한다. 실재성은 트라우마를 시간의 간격을 넘어서 현실에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고, 데카르트는 그런 사고는 백 배로 빨리 돌려도 같은 값이라고 했던 것과 같은 것이다.

   과정의 실재성을 소설처럼 읽으시라, 자신이 그 과정을 겪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고, 그렇게 거쳐가는 과정이 누구에게나 기억으로 흐르고 있다. 생명체의 역사에서도. 개인의 삶에서도. 실재성에 대해 진솔하게 대하면, 이 뭣꼬를 테스형까지는 아니라도 “뭣”에 대한 진솔한 문제제기를 할 때가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누구나(그렇다고 아무나는 아닌 것 같다) 실재적으로 열여덟에서부터, 부모와 가족이란 관습적 틀을 벗어나, 진솔하게 시작한다는 것은 거의 비슷하다.

   여기에서 실재론은 관념론의 전복도 아니고 유물론의 변이도 아니다. 실재론에 들어서면서 볼 수 없는 것으로서 둘 중의 둘째 것으로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깊이 생각하며 성찰하는 시기는 누구에게 있다. 양식의 추리를 저 너머 또는 달리, 다시 추론하는 것이다. 추론은 다양한 과정들의 자료를 함께 놓고서 사유하는 것이다. 실증철학, 비유클리드 기하학, 생물학, 진화론, 언어학, 인류학, 유전학, 역사학, 기억론 등을 펼쳐 놓고 이것들의 과정을 함께 논의해 볼 때, 스스로를 확장하는 자기교육(책읽기, 벗과 동지 만나기), 자기 함양, 자기형성의 시작이다. 열여덟의 다음으로 삶의 과정을 평생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 이런 삶에서 배워야하는 실재성은 우선 눈으로 보거나, 말을 듣거나, 손(발)으로 노동하면서 그리고 생산하면서, 익히고, 자기 몸(내재의식)에다가 등록하면서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것이 이치(raison, 이법, 자연의 과정)를 탐구하면서, 더하여 타인과 공감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배운다. 유교에서 “선한 일이 사소하다고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勿以善小而不爲(물이선소이불위)]”라고 하듯이, 불교에서 이치를 구하라고 법구경이라 한다.

    고등 교육을 마친 이후에 대학의 교육이 필요한 경우는, 한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 없기에, 한 영역에서 삶을 정착하기 위한 것이다. 실재성은 한 부분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간다는 점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활동과 실천에 있으며, 완전성과 통일성이 먼저 있지 않기 때문에, 셋, 아홉, 여든하나가 모일 때의 실재성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그 너비의 확장에는 입말과 글자를 포함하는 언어의 활용이 중요하다. 만남에서 입말도, 책에서 문자도, 자연에서 절후마다 달리 등장하며 또한 터전마다 다른 풍경을 읽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이 언어 전체는 기호(signe)로 표면에 또는 현실에 드러난다. 이런 언어를 배우고 읽히는 것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삶의 연속성만큼이나 이어지기에 좋은 길 또는 좋은 선(線)을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 그 선을 따르거나 또는 살아가면서 점점 만들어 가는데, 그 선에서는 함께 논의하는 입말이 필요하다. 이런 입말에서는 보안법이 없어야 하며 또한 빨갱이라는 악마화 용어가 사라져야 한다. 아직도 이런 시대에서 달리 말하기를 실재성에 비추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 1859년 언어학회가 생길 때 언어 기원은 논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지만, 이제는 언어가 기호의 등장 전체를 의미하고, 서로 소통에서 입말의 역할을 구분하기에 이르렀다. 입말을 중심에서 구강의 역할이 호흡(생명), 노래(옹알이), 언어, 음식, 애정 등을 발현하는 다양체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런 삶의 터전에서 언어학은 논리학과 별개이다. 언어학에서 입말은, 논리적 명제의 개념들을 말하기보다 내면의식을 포함하는 삶의 일반화를 표출한다. 입말이 문자에 귀속되는 것은 들뢰즈 식으로 제도에 복속되는 것인데, 인류 역사상 기억 속에서 입말은 문자보다 먼저이다. 입말이 문자를 모방하는 것으로 여기면 입말을 하는 부류들이 제도와 체제에 예속되는 것이고, 입말이 자연의 순리에서 나온 것으로 여기면 삶의 여러 가지치기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방식에서 내재의식(무의식)이 현실에서 출현하는 방식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데카르트의 두 실체와 스피노자의 두 속성에 맞물려 있다. 더 과거로 우주발생론과 우주론, 휠레와 이데아와도 맞물려 있다. 철학사가 중요한 의미이다. 정신이 물질을 다룬다고 여기는 것은 플라톤주의였다면, 볼 수 없는 것에 공감하며 내 뱉는 입말에는 (인간의) 자연의 발현이 있고 보는 쪽은 퀴니코스학파와 초기 스토아학자들이다.

    논리적 개념작업으로 개념들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 논리학이라면, 입말을 통해 삶의 터전에서 일반화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언어학 또는 심리학의 방식이다. 전자에서는 앵글로 색슨에서 의미론이 주축이라면, 후자에서 언어학의 토대 또는 기원으로서 기호(signe)를 다루는 쪽은 기호학이 있다. 다음에 말하겠지만, 우리의 내재의식[무의식]의 발현으로 입말이 문자와 결합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1446년에 훈민정음을 발표했지만, 언어와 기호, 입말과 삶의 과정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실재적이고 현실적 활동은 해방이후 일 것이다. 인민이 자유롭게 입말을 하는 시기가 얼마되지 않는다.

     서양이 자국의 언어로서 문화적 양상을 바뀌는 것은 르네상스 1,600년경이었지만, 그들은 꾸준히 자기 문화의 창달을 했는데 비해, 우리는 갑자기 도래한 것처럼 1945년 이후에 활발해졌다. 아직도 우리 입말이 문자로도 삶의 현장에서 실재성을 드러내기에 어렵다. 열다섯에서 학문의 시작(자기 형성)을 세웠다고 하는 공자가 시편을 정리한 일흔 나이에 까지를 생각해보면, 한 인간에게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달리 말하기를 하며, 선들을 셋에서 아홉으로 만드는 과정을 겪으면서, 여든에 이루기까지, 지나갈 세월이 50여 년이나 된다. 고승이 50년 되어서 할! 한다고 하는데, 젊은이여, 열여덟에서 시작하여, 종속과 관례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면서, 달리 말하기와 선(線, la ligne)을 만들면서 즐겁고 유쾌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팔천오백만이 입말을 공유한 지 75년이란 입말-문자의 역사에서 보면 비록 짧지만, 우리 한글과 입말이 즐겁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데 매우 좋은 도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철학자 윤구병이 말한 것처럼 제2외국어를 꼭 하나 하시라. 가깝게는 러시아어와 중국어, 미국어와 일본어도 있지만 아랍어도 있고, 유럽어로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도 있다. 젊은 시절 시작해서 50여 년을 매일 조금씩 행하는 이질적인 반복은, 당신을 달리 말하는 새로운 세상에서 살게 할 것이다. 혁명은 여기에 있다. (7:09, 57MLH) (10:08, 57MMC)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광기(파라노이아): 외디푸스 = 크리스토스 [천 하룻밤 이야기]

광기(파라노이아): 외디푸스 = 크리스토스

2024 01 20 대한(大寒)

푸꼬가 근대사상의 역사를 광기의 역사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뭐 학자가 그런 소리 할 수도 있지 정도로 생각했다. 자연의 피폐, 즉 본성의 피폐는 광기의 역사이다. 들뢰즈가 이를 이어받아서, 그 광기의 주축인 변증법에 대해 두 가지를 말한다. 신화 같은 참주(황제, 자본)에 이르는 변증법 사고(思考)가 광기이고, 그리고 2천 년이 지나도 오지 않은 크리스토스를 온 것으로 만든 그 사고가 파라노이아 이라는 것이다. 참주의 억압을 외디푸스(Οἰδίπους)의 억제로 바꾼 것은 프로이트이지만, 참주에 의해 인민의 원한과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에 의해 원죄를 심은 것을 비판한 철학자가 니체라고 한다. 이런 어마어마하게 길고도 풍부한 이야기를 공시태에서 보면 간단히 상승의 명령과 지시에 못 이르는 원한과 원죄가 있다. 그 터전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민이 있고, 최후의 심판을 받는다는 공포를 심었다. 이에 비해, 통시태에서는 인민이 기본심금으로 쭉 흐름이고, 그리고 분출하여 용출선을 만들어 전복하는 최종심급이다.

동서양의 사상을 공시태로가 아니라 통시태로 읽으면, 상식 시대, 양식의 시대, 그리고 고등양식의 시대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곳에서나 인간이 도구들, 즉 자연의 돌들 속에서 주워다 쓰는 시대(구석기 시대)에서, 도구를 만들어 쓰는 시대(신석기 시대)를 거쳤었다. 그리고 돌덩이 속에서 구리, 금, 은, 철이 자연적으로 있지만, 열을 가해 녹여서, 인간의 몸의 도구와 유사하게 도구를 만들면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안다. 이런 정도는 5관(상식)을 통해서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체를 지닌 인간이 몸과 달리 소통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도 안다. 이 소통은 자연에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스스로 만들었는지를 5관을 통해서 하나로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에는 누구나 공부, 즉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하면서, 5관을 통일을 조성하는(composer) 것을 식(識)이라 하고, 이 여섯 가지를 함께(하나로가 아닐 것인데) 지닌 인간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이것이 무엇인가? 이뭣꼬의 새로운 단위 설정하기에 이르는 것도 변증법이다. 이런 사유에 이르게 되면서, 원본이 없기에 사유의 깊이와 넓이를 달리하는 자들이 나온다. 이들 사이에 서로가 지 잘났다고 하는 경우들과 더 많이 더 높이 안다고 하는 경우들이 생긴다. 그럼에도 각자는 하나의 조성하는 단위를 인정하는 점에서 중요한 변증법을 체득하고 있다. 서로 다른 이유는 다음 차원일 것이다.

깊이에서 표면으로 생성하는 쪽에서도 상식을 통하여 이런 과정의 변화를 설명하는 방식이 있으나, 규칙과 법칙을 잘 찾기 어려워서 함께 어우르는 방식을 변증법이라는 용어를 썼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이뭣꼬는 거의 전체 또는 전부에서부터 규명의 노력을 하여 부분들을 설명하려는 방식이라 여긴다. 이에 비해 생활에서 또는 터전에서 도구의 공용화와 전승에서 원형 또는 원본에 준하여 도구 생산을 하기에, 잘 만들어진 또는 견고한 원본이 있어야 한다(필요하다는 것이다)고 한다. 이 원본을 만드는 과정은 여러 재료들과 도구들을 사용했음에도 원본이 만들어지고 또는 제시되면서, 만드는 데에 따른 순서와 규칙, 공동체에서 사용하는데 규율과 기준 등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여, 전수와 전달에서 그 도구가 없더라도 대화 또는 거래의 소통에서 그 무엇을 먼저 규정해야 서로 소통이 가능하다. 잣대가 먼저 있다고 여긴다. 그 때 그게 뭣꼬의 뭣꼬를 묻는다. 여러 과정을 거쳐서 하나의 원본을 이르는 과정도 방법 또는 기술이라 하지만, 입말로서 이리하면 안 되고 저리해야 하고, 이것을 섞으면 안되고(폭발하고) 저것을 섞으면 조성(합성)이 된다고 하는 방법이 있듯이, 삶에서 진선미를 추구함에서 합성하는 이뭣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원본은 합성이 아니라,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전제로서 오류일 것인데, 그대로 순수한 원본이 있다고들 한다. 말하자면 원본으로 순수소나무가 있다고 해보자, 소나무의 뿌리, 줄기, 가지, 바늘잎들이 어디 순수한 것이 있겠느냐마는 원본 비슷한 소나무가 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일반화의 덕분이다. 소나무가 없는 곳에서도 소나무를 말하면서 이런 저전 이야기를 소통할 때, 그 말의 소나무는 일반화의 개념을 넘어서 추상화로서 관념이라고 부른다. 이런 공통감관의 재료에서 일반화를 거쳐서 추상화의 과정도 변증법이라 부른다. 서로 같은 원본인 것 같지만 실재성에서 다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고대의 상식시대에, 일반화가 잘 안 되는 것이 두 가지 더 있다. 아마도 용어는 나중에 만들어졌겠지만 공간과 시간이다. 어디까지 경계를 지어야 공간이며, 아무 것도 없는 허공만이 있는 것을 공간이라고 또는 빈 것이라고 할까? 빈 것이라고? 고대인들은 속이 빈 갈대 줄기를 잘라서 앞뒤를 자르고 막아서 물에 넣고서 양쪽을 떼면, 방울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아 공간이란 것이 물과 다른 무엇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갈대가 없는 빈 허공은 어디까지 공간인지를 오관을 통해서는 불가능하지만, 일반화와 추상화의 과정처럼 공간이라는 어떤 것을 설정한다. 그것이 뭣꼬라고 물으면 어떤 기준점이든 대상을 통해서 응답해야 하는데, 신체를 지닌 자체가 이미 너비(공간)을 지니고 있기에 인정하는 방식이 소통과 다른 방식으로 담는 그릇이 없이도 이미 담겨져 있는 신체라는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이 없으면 무엇이라고 설명할 것인가?

다른 한편 과거와 현재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어떤 지속이 있다는 것은 사람이 죽어서 세상을 뜨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과거는 현재에 없다고 하지만, 한사람이 살면서 없어진 과거의 어린 시절의 추억은 노인이 되어서도 문득 떠올릴 때 마치 어제처럼 또는 조금 전처럼 느껴지는 실재성은 새로 만들어진 것인가 또는 잔존하는가? 한사람의 과거도 60여년의 과거가 어제 같은데, 인류사에서 6백년, 6천년, 6만년이 어제 같을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당연히 부정하겠지만, 고등양식의 시대에 DNA를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 속에 기나긴 과거가 있다는 것은 화석과 지질학을 배워서 아는 것 이상으로 기나긴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6백년전 고려 불교 불상과 고려 대장경은 어제의 것인지 먼 과거의 것인지, 심하게 이야기하여 바로 전의 찰나의 것인지 라고 물으면, 거짓이라고 하는 이들이 원효의 대승기신론을 이야기할 때, 마치 조금 전의 사실들처럼 알고 읽으면서 진리에는 시간이 없고 공간도 없다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간은 마치 공간처럼 있기는 한데, 오관과 식(識)이라는 6식을 통해서는 설명이 안 된다. 더군다나 고려나 남한이나 하면서, 과거와 현재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처럼 대화도하고 소통한다.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시간이란 통째로 덩어리가 전부가 있고 부분으로 고조선이니 고려니 조선이니 나눈 것이 아닌가. 공시태가 한꺼번에 전체에서 부분을 보여준다는 거처럼 여기는 것은 시간을 공간화하는 방식이다. 이런 공간화를 공시태 속에서는 논리적으로 타파할 수 없다고 한 이는 엘레아학파의 제논이며 그의 논법도 변증법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합리한 논리보다 실재적 삶에서 대화와 소통의 방식으로 공간과 시간이 먼저 있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그 속에서 서로가 무엇을 이루고자 하였는지를 공부하는 방식으로 대화법도 있다. 통일성을 찾았거나 말거나 어정쩡한 상태를 두고서 서로 소통하는 대화법도 또한 변증법이라고도 한다.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과정, 무엇인가를 합의 보려하는 과정, 무엇인가 서로 다른 점을 좁혀보려는 과정, 아무리 그래도 다양한 방식들이 통일된 방식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현실적으로 이정도로 약속하고 합의를 보는 것은 사회적 삶이다. 이것은 변증법이 아니라고 하는데, 아니 이런 과정을 걷고 있는 거이 변증법이다. 자연에서, 논리에서, 불가인식적인 것에서만 변증법의 소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제도에서도 변증법이 있다. 단지 그 방법이 다른 방법보다 우월하다는 정도는 이해하지만, 절대적이다거나 완벽하다는 것에서, 주장자의 오만과 치기가 개입하는 것이 아닌가? 그 개입을 어떤이는 변증법이라고 착각하는데, 개입은 상태와 흐름을 자르는 것이지, 다발의 형식으로 종합과 통합과 다르다.

하나의 답이 있고,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다고 여기는 변증법은 변증법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가만히 정지해 있을 경우에 적용 가능한 것이지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에 적용은 자신이라도 움직이지 않아야 적용과 개입이 가능할 것인데, 자신도 움직이면서 적용은 마치 나는 맞고 너희들은 틀렸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가만히 정지해 있는 것이면, 그것은 무엇‘이다’이지, 활동하는 현존이 아니다. 무엇에 쓰임이 있으면, 그게 무엇이냐고 물으면서 다루어보아 한다. 그 무엇을 다루면 되는 경우와 잘 안되는 경우가 있는데, 잘 안되는 경우가 기존과 잘 되는 것과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잘 되는 경우와 달리 무엇이 이루어지고 있느냐는 문제는 다른 것이다. 이런 다른 과정과 방향이 현실에서 수없이 많음에도 하나의 방향이라 여기는 것은, 다른 것을 배제하거나 무시하는 경우일 것이다. 시간의 경과에서 달리 생겨나는 것은 마치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한 방식이 다른 방식을 모르거나 적용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 방식이 세상을 잘 만들어간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저 다른 방식보다 어쩔 수 없이 또는 한시적으로 우연히 선정하여 행할 뿐이다. 사람들은 한시적 선정을 통일된 합의라고 하지만, 그저 부분적인 합의에 지나지 않는다. 공간의 무제한성과 달리 시간의 흐름은 지나온 과정은 마치 통합된 방식으로 흘러온 것으로 착각하다. 미리 말했지만 근대 300여 년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비합리적이었고, 정상이라고 거쳐왔고 거쳐가고 있는 상태가 비정상이며 광기라고 하는 것은 생태계의 시계를 측정하는 방식에 보고 있다. 같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무슨 일이라도…

메시아의 번역어로서 크리스토스는 미륵불과 같은 미래에 올 무엇의 모습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이다가 아닌 무엇인가, 하나의 방향이 아닌 무엇에 쓰이냐는 방식으로 다루면서 통시태 과정에서, 온갖 이야기와 논설과 담론이 전개되었다. 전개의 방식이 너무나 다양한데 하나의 방식이 맞다 하는 것도 변증법이고, 다양하게 전개되는 이법이 풀어가는 방식도 변증법인데, 서로 마주 견주어서 통합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변증법이고, 아니 하나의 방식을 있다고 강요하면서 만들어가고 구축해나가는 것도 변증법이라고 한다.

역사는 하나의 방식이 다른 방식을 거세하고 배제하여 성립한다고 믿는 자들이 이끌어 온 것처럼 서술되었으나, 언제 하나의 방식의 변증법 이외에 다른 변증법도 여럿이라는 것은 신의 이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환, 상제, 천신, 하나님, 제우스, 데우스, 고도, 디외, 갓, 야훼, 알라, 마나 등등 터전을 달리하고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명칭이 다르다는 것은 잘 알려졌다. 서로의 터전을 유지한 체 다른 터전을 존중하는 관용이 아니라, 지배와 피지배에서는 어느 이름이 맞고 어느 이름은 틀리다고 주장하면서, 자기 신은 선(善)하고 타의 신은 악마처럼 여기는 풍토가 왜 생겼을까? 그나마 서양철학사에 사색(speculation, 서로 비쳐보는 대조하는)이라고 하는 것이 생겨서 13-14세기에 서로 다른 길을 비추어보자고 했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하나가 맞다는 상식의 놀이가 지배하면서 다른 쪽을 마남사냥으로 못된 짓을 하였고 사실상 아직도 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한 종교를 믿는 신앙자들이 어느 곳에서나 마이크로 떠들어도 아무도 그만 하라고 말하지 않는데, 무속은 산속에서 불교는 절집에서 다른 몇몇은 그들이 뒷방에 모이듯이 구석진 곳에서 모여서 숨죽이며 노래하고 전수하고 전파하다.

어느 시대에나 이런 상반된 또는 다양한 것이 있었지만 하나로 나가는 변증법적 통일의 길이 맞고, 진리이고, 선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지배하고 있다. 이 지배방식은 다른 터전과 영토에서도 적용하고, 그 적용에 들어오지 않는 자들을 악, 악의 축으로 모는 것은 여전하다. 사색한다가 서로 비추어본다고 하면서, 아마도 서양철학사에 두 개의 실체의 인정에 이르는 이원론이 등장했을 것이다. 이런 비추어봄은 동양에서 감(鑑)이라 할 것인데, 비춰봄에는 다른 방향들이 여럿 있다는 것이고, 그 시대 그 제도에서 합의와 계약의 방향을 잡는 것이 감일 것이다. 물론 요즘 감(感)잡았다는 감화작용의 일반화를 알아챘다는 것이며, 사변적인 감(鑑)과는 다르다. 이런 여러 갈래를 비추어보는 작업으로 64갈래를 사유하는 주역이 흥미롭다. 여러 갈래들 중에서 우리의 관심이 두 갈래라고 한 것은 스피노자였지만, 갈래를 둘로 사유했던 이는 데카르트였다. 다른 실체는 둘이 서로 다른 것이지만, 사회 도덕적 사변에서는 종속 또는 예속이 되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야 정신이 물질을 지배한다. 나아가 신은 자연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방식이 21세기에 와서 지구를 황폐하게 하는 사상이며, 이기심에 의한, 파라노이아 또는 외디푸스적 사고일 것이다. 이런 한 방향의 인식과 지배방식이 소위 말해서 양식(bon sens) 시대인데, 좋은 방향을 하나의 방향으로 삼아서 절대자로 국가로 변형된 추리를 만든 것도 변증법이었다. 이런 변증법이 악의 축을 만드는 변증법이며, 전쟁을 조장하는 변증법이며, 자본과 제국에 예속하는 변증법이었는데도 거의 3세기 동안에 지배적 사고였다는 것이다. 반성과 성찰이 없지 않았지만, 그 변증법의 위세에 눌려서 말도 못하고 의식은 5관을 보탠 6식으로 다른 길로 가려고 또는 용출선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시대마다 논의의 줄기들 또는 구조들에 따라 변증법이라는 이름이 다양하게 불렸다. 이상하게도 이런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자신들은 자유롭다고 하였는데, 변증법에서 일반화를 거쳐 추상의 지위에 종속되었다는 것을 그들이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 되어도, 그 제도와 체제 속에서 쌓아온 부와 지위를 버리지 못하여, 외디푸스(참주)와 크리스토스(미래불)의 추종자가 되었다. 불교에서 미래불은 저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 지금 행하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라도 뒤처지지 않게 같이 가자고 한다.

우리 역사에서 천 년의 불교, 오백 년의 유학이 있었다. 그리고 근대화에서 실학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일본제국주의를 만난 것이 굴절이었고, 또한 미국의 자본 제국을 만난 것이 또한 더욱 굴절하여, 자연에서 나온 다발이 뭣인지를 알기에 어렵게 되었고, 공부와 노력은 두 배 세 배를 더해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중에 상식과 양식의 시대를 넘어 고등양식으로 가는 시기에, 일제로부터 배제와 배척의 사고가 들어와 보이지 않게 외디푸스가 장악하였다. 참주의 지배였다. 거기에 보안법이 역할을 했다. 그 다음에 외디푸스 그 위에 크리스토스가 덥혀졌고 인민을 원죄의식으로 굴종시키듯이 헌법과 법률로 다스린단다. 입법은 인민의 것이지 외디푸스도 크리스토스의 것도 아니다. 참주과 제국 속에 연구하는 이들이 그 이중굴절에 자기의 위상조차 잃어버렸다. 국가보안법이 굴절을, 크리스토스의 계율같은 헌법이 재굴절에 더하여, 이뭣꼬도 모르는 변증법적 사고의 방향이 자연에서 드러나는 생성과 창발을 휩쓸어 가버렸다.

환(桓, 밝다, 영원)에서 단(旦)으로 그리고 고조선의 전승은 이야기 곧 신화이다. 환을 중국인들은 영원이라고 한다. 왜 영원인지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이야기는 어느 영토와 어느 시기에는 한 번씩 거쳐가는 것이다. 꼬마 애가 나는 어디서 나왔냐고 묻듯이, 세상을 신이 만들었다고 하면, 신은 누가 만들었는 데라고 묻듯이 말이다. 모르는 사실을 지속의 과정에서 풀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지, 누구의 것이 맞다는 이야기(파라독사) 만큼이나 다른 이름들로 출발하는 것도 이야기(파라독사)에 속한다.

이야기 과거가 현재하지 않는 점에서 현존이 아니지만, 역사가 우리 속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기억은 통시적으로 거의 무한하다. 이렇게 말하면 생명역사 35억년이라고 한계가 있다고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이 양식의 변증법을 사용하면서 정신은 무한하다고 하면서도, 35억년은 유한다고 하여 진리의 축에 들지 않는 것처럼 말한다. 그 변증법이 외디푸스에게 예속이다. 몽테뉴가 인간의 예속에 대해 말하면서 다른 길(방향)과 견주어 의심해보고, 자기의 완전성과 무한성이 없는 만큼이나 타인의 방향과 추론을 존중하는 관용을 갖추라고 한 것이다. 이런 타와의 사색이 감(鑑)일 것이다. 여럿을 비추어보지 못하는 사변도 감도 없는 사회가 예속과 굴종의 사회이다. 그 사회에는 보안법이 존속하고 있다 게다가 미군 점령지로서 이땅의 기준 언어가 영어라는 점에서 외디푸스에서 크리스토스 지배를 받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식민지 종속의 외디푸스와 달리, 식민지에서 외디푸스를 넘어서는 길이 무엇인가를 말해준 것은 들뢰즈이다. 용출선(탈주선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을 만들어라, 기존의 각질에 균열을 내고 리좀을 연결하라. 즉 달리 말하라, 달리 사유하라고, 여기에 전복 즉 혁명이 있다고 한다.

일제 외디푸스 사고의 영향 60여년, 미제의 크리스토스 사고의 영향 60여년을 지나면서, 기나긴 과거를 무시하고 또는 배제하면서, 120여 년의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는 것으로 착각한 이들이 현 정부다. 외디푸스와 크리스토스의 카르텔에 학문하는 이들이 그 예속에 있지 않는가. 미국의 하부인 일본에게 그 하부로 들어가자는 정책을 펴는 이들이 윤석열 정부와 그 관계자들이다. 이름 하여 숭미자이며 부일자들이다. 우리는 우리 입말로 소통해야 할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래로 분류상, 이런 극우들이 설치는 터전에서 뭣을 다루어야 하고 뭣을 할 것인지를 젊은이들과 함께 공부해야 할 것이다.

이 토지에서 알게 모르게 유일신앙을 믿는 자들은 제국의 체계와 체제에 복속되지 않으면 그 시대 그 국가에서 살수 없을 정도이고, 더하여 지탄받아서 그들의 터전과 영토에서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기왕 이 터전과 영토에 살고자 한다면, 여기서 체계와 체제를 순서대로 익혀서 살아가는 것이 편안하지 않는가? 라고 한다. 이런 순서대로 익히고 사는 것은 사회제도 속에서 휩쓸려가면서 보고 듣고 말하면서 움직이면 된다. 이런 활동이 종속적이고 예속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시대와 제도 속에서 출세하며 또는 지식이 높다고 칭송받고 살아가는 길이라 여긴다. 그렇다 그 속에서 사는 편안하고 세상을 향유한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이 좁은 한계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좁은 자아와 그 자아의 추구방식이 좁지, 예속이든 종속이든 사회라는 테두리 또는 남한이라는 영토가 자아에 비해 매우 크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에서는 평생을 두고 남한 90만 평방 킬로미터의 너비 속에 안 살아본 곳이 살아본 곳보다 더 많다는 것도 이런 사고하는 자들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제도와 체계 속의 이 영토에는 자기가 하나의 질서 속에 예속되어 있듯이 하나의 질서와 체제 속에 종속되어 있어서 다 가볼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즉 바닷물을 다 먹어보고서 짜다고 하지 않고, 약지 손가락을 찍어서 맛보고 짜다고 하듯이, 한 영토의 삶의 양태들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그 질서의 논리 속에 안정과 편안을 누릴 정도만 활동하고 움직인다. 그게 인류의 습관인지, 기나긴 역사의 전승인, 불교식으로 인연연기인지를 물을 필요 없다. 왜냐하면 작은 자기가 큰 기존 사회에 동의하고 합의하여 세상을 향유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다, 선하다, 정의롭다 고 규정하고, 타를 부정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자기 긍정과 자기 동일성이 근사한 학문처럼 보이지만, 긍정의 바깥을 무시하는 부정적 사고이며, 오만과 치졸함에 빠진 사고이다. 자기 이외를 불손으로 불량으로 불의로 더 나아가 악마로 악의 축으로 보는 것은 중세의 마남사냥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유일신앙의 기원과 크리스토스를 유일 신성으로 받는 종교 시노드(함께 가는 길)에서 나온 것이라고 니체는 그 기나긴 책들 속에서 시들로 써 놓았다. 그 시들을 읽는 이들 중에서 흐트러진 다른 길들을 가는 이들이 악마화 된 길을 가는 허무주의로 간주하고, 니체의 시를 “함께 가는 길”이라고 읽는 이도 있다는 점에 “함께 가는 길”이란 참 좋은 말이다.

이 지구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영토와 삶의 양식을 지니고 살아간다. 지구와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 “함께 살아간다.”는 이들 중에 참으로 이상한 이들이 2천년 정도의 역사에서 있어왔다. 세상 또는 크게 보아 우주라는 말이 그리스에서는 코스모스, 라틴에서는 유니버스로 번역되어 쓰인다. 이 두 단어가 차이가 사유과 사고만큼의 차이이며, 이런 차이는 조화와 분배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유니버스(하나의 길로, 로마로)의 사고에 빠진 철학에서 벗어나 코스모스(자연)속에서 코스코폴리탄(사해동포주의)로, 일 방향을 따라갔던 인문주의자(humaniste)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인성을 공부하는 인도주의자(humanitaire)로, 제국의 지배 하에서 예속과 패거리의 주구(走狗)로서 자유를 누린다고 생각하는 상품자유주의자(liberaliste)가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인간이 살아가면서 자유가 뭣꼬라고 물으면서도 이법에 따라 사는 인성자유주의자(libertaire)로 살아가는 노력의 방향이 진솔한 자연이법, 즉 자연 변증법일 것이다. (4:41, 57LLJ) (6:20, 57LLJJ)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자연 순환, 그 회귀 [천 하룻밤 이야기]

자연 순환, 그 회귀:

관습 또는 습관을 넘어설 것인가?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중.

— 2023 12 22, 동지(冬至).

 

누구에게나 삶이 자신을 속이지는 않는다고들 한다. 단지 속는다고 여기는 것은 인간의 자기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경향과 관습을 이어가면서, 임의적으로 여러 갈래 길에서 하나로 밖에 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냉정하다. 이것을 따뜻하게 느끼는 것이 착각이다. 이런 착각과 달리 착오는 비교에서 온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하는데, 또는 제 눈에 들보를 못 보면서 남의 눈에 티끌을 따져든다고 한다. 신체를 가진 삶은 상식[sens commun,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다섯 감각: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영향을 받는다. 그다음으로 생각하는 의식이 있다고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좀 더 깊이 사유한다는 편들은 원래 영혼의 사유하는 양식(bon sens)과 신체의 느끼는 감각작용이 다른 길도 있다고 한다. 어째거나 이 둘의 통합이 가능하다고 믿는 쪽이 있고, 서로가 다르게 작동하는데 어느 쪽을 우선을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고도 한다.

그런데 상식의 사유도 양식의 사유도 인간의 이기심 앞에서 무력하다고 한다. 그 이기심이 삶과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권력, 권세, 권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결정은 상식과 양식과 다른 의사결정의 기제(메카니즘)이 따로 있다고 하면서, 그래서 결정권을 가진 어떤 능력을 의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개인의 활동에 좀 더 깊이 들어가서 보면, 그 의지라는 것도 오래 익숙해진 습관과 같은 관례적 또는 본능적 결정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면서, 어떤 본능이 상식과 양식과 다른 인식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인간이 다른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무상보시나 희생 등의 예를 들면서 인간이 행동 결정에서 의지가 본능을 넘어선다고들 한다. 의지라는 것을 설정하면서 상식과 양식과 다른 길이, 즉 의지가 인간의 내부에 능력으로서 있다고들 한다. 다른 한편 그 의지가 협박과 고문 등에 의해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은 과오 또는 오류 정도로 취급한다. 그럼에도 강압적이 아닌 유혹과 회유에도 다른 길을 선택하기 할 때, 그것은 의지와 상관없이 지성이 계산하여 선택한 것으로, 그것은 의지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의지를 잘만 사용한다면 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의지를 다른 어떤 능력과 달리 상위에 두고자 한다. 그 의지의 결단이 지성의 계산 없이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이들은 의지도 최종결단에서는 자기 지식으로서 상식과 양식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잘 사용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결단이 맹목적이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관습적으로 만들어진 자기신념이든 종교 신앙이든 지성의 영향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사건들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사건의 영향 아래 더 깊은 본능에 충실한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본능이 자기보존에 맹목적이라는 가정을 받아들이면서, 지성과는 다른 방식을 사용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본능을 동물적 또는 아메바적이라고 비하해버리면, 간단히 지성이 우위이고, 지성의 계산하는 판단과 달리 포괄적이고 전체적인 판단에는 의지가 작동한다고 여긴다. 사람들은 신체의 감성, 의식의 지성, 그리고 삶의 판단의 의지가 따로라고들 한다. 이런 논의들도 인간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사유하는 것이라고 본다.

살아간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문제는 인간이 생명체로서 자연의 흐름과 절단 그리고 자연의 순환과 재생산에 익숙했던 시절을 지나, 산업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에게 다가와 있다는 것이다. 우선 토지와 더불어 자연생산을 위주로 하는 삶에서는 자연 순환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인간이 먹을 것을 저장하고 집을 짓고 옷을 입는다고 해도, 자연 속에서 자연생산은 자기 회귀의 길을 간다. 곡식이든 집이든 세월의 흐름에서 변질하고 소멸한다. 그 변질하는 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생명 있는 존재들은 잘 알고 있었다. 먹고 싸고 자고 일어나고 하는 흐름의 과정에서 생물체들이 자기 방식대로 순환하는 방식을 형성하고 관습대로 다양하게 살아간다. 그러다가 인류가 도구를 발달시키면서 점점 더 흐름의 절단을 잘하게 되고, 또 그 절단을 고정해서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안정되게 한다고 믿고 산다. 자연에서 고착적이고 고정적인 면들을 만들면서, 자연 속에서가 아니라 자연을 도구로 또는 대상으로 삼고, 그 자연의 자기순환과 회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철학사의 시작을 두고 자연의 이법(理法)에 대한 관심이 신화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 전환했다고들 한다. 그 이법을 아는 것이 순리대로 사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법을 신화와 더불어 참주의 법치와 대립으로서만 생각했으나, 참주의 법률에 익숙해진 관습에 젖으면서, 이법을 따르는 것이 법률을 따르는 것보다 열등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법을 대상에 대한 자연법이라고 여기고, 이것을 본능의 삶이라 여기면서, 법률의 영속성을 위해 지성의 체계와 원리들을 창안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법률 그 위에 신법을 설정하기에 이른다. 그러다가 이런 신법을 무한 소급하여, 자연법 이전에 신법이 있었다고 추론하는 사고가 등장하면서, 자연은 법치의 하부, 게다가 신법의 하부 중의 하부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자연을 떠나서 사회 또는 체제 속에서 권력이 우세하고, 다른 한편 법률의 권력을 넘어서 원리의 권위가 우선하다고 여기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런 전도된 방식은 이상하게도 철학사에서 기원전 300년 경에 논리학과 기하학의 체계가 성립하는 시절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삼단논법의 증거하는 방식과 기하학원론의 증명하는 방식은 전혀 다른 방식이다. 증거와 증명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논리학의 증거와 기하학의 증명이 언어와 도형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언어의 대상은 그래도 사물이며, 도형의 대상은 추상된 점과 선이다. 이 둘의 정합적 체계가 하나의 방향으로 여기는 것이 양식에 가깝다면, 이 두 방향이 다르지만, 평행을 이룰 수 있다고 여겨, 초기에 더는 묻지 않고서 상식에 근거하여 유비적으로 타당성만을 근거로 삼는다. 이런 상식과 양식이 사유체계의 우위를 차지하면서, 철학을 한다고 하는데, 이는 삶 또는 실재성과 멀어진 것이리라. 어쩌면 철학적 사유는 이미 자기도 모르게 또는 암묵적으로, 인간이 자연보다 상위 또는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나아가 자연을 대상으로 다루면서 탐욕과 오만에 빠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다루는 자들이 이것을 내면적으로 아는 자들을, 사용가치가 없다는 명목으로, 열등하게 취급하였고, 다루는 자의 방식에 따라오지 않은 자들을, 자기들과 비교해 도착자들로 규정하였다.

대상을 다루는 자는 공감하며 상부상조하는 자들이 자기의 이익에 맞지 않는다는 법리로 배척하고 제외하려 하였다. 그들은 다른 이들을 먼저 억압하고 또는 공포를 심으며 협박하였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 우월성에 대한 다른 대처 방식으로 정복과 식민지 노예로 삼는 폭력이 있었다. 이 정복은 상대 토지에서 삶을 몰살시키기를 서슴지 않은 것이다. 로마는 카르타고에 소금을 뿌렸다고 했던가. 지배자는 더 이상 그 토지에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만들고자 했다. 자연은 사용자의 논리에 속하지 않는다. 자연은 복원하고 그 토지에는 추어들과 기억을 지니고 지금도 살고 있다.

사람들은 사고 체계가 있기 전에도 인간은 도시를 건설하던 시기로서 기원전 7천 년 전부터 수많은 전쟁과 소멸이 있었다고 한다. 전쟁은 있었지만, 소멸이 있었을까? 아니면 전쟁의 과정에서 절단을 피해 다른 곳으로 흐르지 않았을까? 그보다 자연재해도 소멸의 한몫을 했을 것인데 흐름은 돌아서 돌아서 회귀의 과정을 걷고, 새로운 토지 위에 삶을 영위해 나간다. 긴 세월의 이야기 즉 신화와 설화로 남았다.

그런데 인종들 간에 전쟁에서 노예로 삼는다는 조건 이전에, 노예로 살기보다 죽음을, 이라고 말하며 저항했던 시대가 있었을까? 아무래도 노예보다 자유라는 용어를 역사상으로 떠올리는 것은 종족의 집단이 관습과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 방식이 가능할 때라고 본다면, 전설 따라 이야기에서 기록상 이집트 왕조 시작의 기록으로 보아 기원전 3천200여 년 경으로 어림잡을 수 있을 뿐이다. 또는 바빌론 3천여 년경, 중국의 3천여 년경, 인더스 문명도 마찬가지로 잡는데, 이 시대들이 정복과 투쟁의 시대였을까? 문명의 건설에서 상부상조 노력의 시대였을까?

물론 삶에 이익과 편리를 추구한다는 점을 기본으로 하면, 사냥에서 전쟁의 방식이 인종들 간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도 그 많은 문자 이전의 설화는 전쟁의 설화라는 점이다. 그 흐름의 절단면은 전쟁이 전부였을까? 들뢰즈는 흐름은 단절의 장애를 우회하기도 하고 밑으로 흐르기도 하고 산과 벽을 넘기도 한다고 했다. 왜 이른 리좀의 흐름의 이야기는 사라지고, 절단의 단면으로 문명의 지배로 역사가 쓰였을까? 지금도 자본제국의 이야기를 떠들고 있음에서, 값싼 노동력의 인민들은 세계를 흐르고 있다. 자본이 흐르는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산업사회 이후로 전쟁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은 전쟁이라는 말을 끄집어내면서 어느 사회집단이 부를 획득하고 지배권을 누릴 방편으로 용어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세기 전 1차 대전에서 유럽 국가 간의 부의 경쟁에서 식민지 쟁탈전이었다고들 한다. 내가 들었던 이야기로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십자군 전쟁 이후로, 다시 한번 교회와 왕권들이 자기들의 기반을 다지려는 방편이었다고도 한다. 그래서 1차 대전에서도 교회가 전쟁을 막기보다 부추겼다고 한다. 이런 근거로서 중국에게 전쟁을 걸게 하는 것은, 선교사의 박해를 핑계로 교회 권세의 확장에 국가권력을 끌어들인 것이라고들 한다.

‘어떻게 종교가 인민이 죽어 나가는데, 권력들의 전쟁에 동의하면서까지 교권의 권세를 누리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던가’에 대한 대답으로, – 그 이야기를 하는 자는 크리스트교든 유대교든, 이슬람교든 자기들의 재산을 지키는 방편으로 전쟁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금도 엄창난 부를 누리고 있으며, 그때에도 이름하여 ‘성전(聖殿)이라는 교회’의 부를 지키자는 암묵적 동의 아래 전쟁을 수행하였고, 교회의 재산은 인민에게 나누고 전쟁을 반대하자는 반대파를 제거할 때는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반(反)애국으로 몰았고, 종교 자체에서는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박해하였다는 것이다. 이 혼란한 세상을 조장하면서 이합집산으로 교회 전체의 총괄하는 부를 늘여갔다는 것이다.

13세기에 프란체스코파들이 말하듯이, 교회가 가난한 자의 천국을 말로 하기보다 교회 재산을 인민에게 환원하면 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말로만 가난을 구제하고 전쟁 없는 평화를 이야기 해봤자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14세기에 파리의 프란체스코파 학자들이 도미니크파 학자들에 대해 비판하다가 당했지만, 18세기에 아나키스트들이 말했고, 20세기 초에 프랑스 공산당이 독일과 전쟁을 반대하면서 주장했던 것이다. 파괴는 다음 건설에서 어느 한쪽으로 부 또는 자본을 몰아주는 방식이라고 한다. 이런 방식이 산업화 이래로 불평등은 점점 심화되어 2세기 전의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차이보다 21세기 차이를 엄청나다고 한다. 지금의 러시아와 우크라니아 전쟁과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에서, 어디에서 누가 재화의 집중화와 자본의 재영토화를 실행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자본제국으로서 미국이 몰락하는 중이고, 다극화의 세계를 여는 중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전쟁을 부추겼던 종교와 국가는 주구로서 하수인을 키워왔고 또한 보수화라는 이름으로 존속되게 만들었다. 이 점에서 권세와 권력은 여전히 탐만치에 빠져있다. 어쩌면 탐만치를 벗어나기 위해 주구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은 저항과 항거가 공염불이 될지도 모른다. 주구가 아니라 근원을 폭파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근원 폭파의 노력은 있어왔다. 프랑스의 샤르트르학파, 프란체스코학승들, 아나키스트들,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로 이어지면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토마다 다 같은 것이 아니고, 살아온 관습과 습관은 전혀 달리 살아가는 방식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 당연을 넘어서는 것은 인식의 차이라기보다 교육이다. 교육 자연은 자기 방식으로 흐른다는 알게 하는 것이다. 윤구병 말대로 어린 시절에는 토지 위에서의 교육이 필요하다. 윤구병의 “특별기고(2017)”는 참조할 수 있다.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흐르면서 줄기를 창발하는 것이다. 탈주로를 찾고 있다. 역사 속에서 이 많은 글과 이론들을 전개해 왔음에도, 이제도 그 글에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살고 있다는 한계에서 흐름은 개념도 관념도 아니라 이미지이다. 이미지를 만드는 중이다.

다른 한편 아직도 천문학과 물리학이 생물학과 심리학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이 있다. 물리학처럼 중심은 하나라고 쳐봐도 1초에 퍼져나간 구(공)위에 무수히 많은 점은 다양하다. 다양한 점들만큼이나 생명체들이 있다. 각 생명은 자연 자체의 여러 방향 중의 하나이다, 그 하나 중에서 다른 하나에 쿼크니, 끈이니 초끈이니 하는 이야기를 붙인다. 그 끈이든 초끈이든 1초 만에 우주가 생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지구상의 생명체에 관하여 말하자면 흐름의 과정이 삶인데, 그만큼 많은 시간을 흘러가야 현 생명체의 삶이다. 그 흐름이 언제 시작했으며 언제쯤 끝날 것인가를 말하는 것은 이미 혁명을 포기한 자이다. 들뢰즈는 혁명이 이미지라 한다. 마치 한 사람의 삶이 마감할 때 그 사람의 이미지가 있듯이, 혁명은 다른 세상을 만들었을 때, 한 시대를 마감할 때 이미지가 있다. 이미지를 만드는, 즉 창발하는 자는 완성을 말하지 않는다.

그 이미지의 형성은 자연의 과정일지 아무도 모르지만, 흐름의 한 줄기로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레닌을 이름으로 하여 소비에트 연방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마오쩌뚱의 이름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20세기 후반에는 미국의 패배가 낳은 호치민의 이름으로 베트남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미지 만드는 과정과 작동은 혁명이며, 들뢰즈에게서는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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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볼 수 없는 것(l’invisible)”, 시간과 공간 [천 하룻밤 이야기]

“볼 수 없는 것(l’invisible)”, 시간과 공간

2023 12 07 대설(大雪) {젊가13010형이상23시공}

 

교육의 문제는 인류사에서 난제일 것이다. 교육의 필연성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지만, 르네상스 이래로 교육이란 일반인을 포함하는 교육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프랑스에서 교육이 1882년에 요즘 말하는 평등, 무상, 세속(무종교) 교육이라는 법령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모든 어린이에게 어떻게 학년 구분의 교육방식과 교육의 내용을 설정할 것인지를 고민하여, 요즘의 각 학년의 구분을 검사하는 제도를 만들어서 어느 지식을 갖추면 몇 학년 등으로 분류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70년대에는 초등 3학년에서 구구단을 외우게 했는데, 요즘은 초등 2학년 때 한다고 한다. 전에는 중등 1학년 때 인수분해를 배웠는데, 초등 6학년이 되면 이미 인수분해를 알아채고 다룬다고 한다. 수학 만이 아니라, 물리학, 그리고 생물학, 건강을 위해 인간의 신체를 다루는 방식은 학년에 따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세계가 교육 방식에서 거의 공통의 진행방식을 따라간다. 유전자(DNA)에 연관과 미토콘드리아 역할은 고등교육에서 다룬다. 그런 교육의 배치와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종합과정으로 철학을 해야 한다고 한다. 프랑스만이 철학을 대학입학 자격시험으로 네 시간에 걸쳐서 논술을 보고, 그리고 개인 능력의 실험으로 구두로 문답시험도 본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는 한자를 익히기 위해 ‘천자문’이란 단어의 기초를 배운다고 하지만, 어린이용으로는 “격몽요결”이 있었고, 사회의 생활을 위한 “명심보감”이 있었다. 그리고 제도 속에서 행정과 실무를 위해서 필수적으로 “사서삼경”을 통과해야 했다고 하는데, 중앙에서 관직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사대부들이 사서삼경과 이에 걸맞은 다른 문헌들도 탐구했다. 학문의 방법과 사회제도의 연관은 유교를 바탕으로 하는 조선 시대에 사서삼경이 중심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서양은 일곱(7) 예비학문이 있다. 문법, 수사학, 변증학의 삼학(trivium)과 산술, 기하학, 점성술, 음악의 사과(quadrivium)이다. 숫자로는 동서양이 모두 7학문이 기초이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서 임무를 맡기 위해서, 그들은 이런 기초보다 더 많은 공부를, 동양은 예기 춘추 등을 포함하는 10경을 읽어야 한다고 하듯이, 서양에서는 7학문을 넘어서 자연철학과 도덕론, 그리고 신학을 포함하였다. 이런 단계적 방식의 교육은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고대와 중세의 상식에 준하는 지식의 이해는 초등학교에서, 근대에서 개별학문의 등장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학문을 다루는 과정은 중등과정에서, 19세기의 다양한 학문이 생성되고 분류되는 시기를 다루는 것은 고등학교에서 할 것인데, 그 고등학교에 마지막 학년에서는 현대에서 여러 갈래로 벌어지고 있는 학문들에 대해 맛보기 정도를 한다. 대학에 가서 학문의 가지 중 하나를 잡고서 공부하라고들 한다.

각자의 관심에 따라 분류들의 가지를 따라가기에 앞서, 인류가 이 지점까지 오게 된 과정의 종합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 종합이 철학인데, 그 철학을 다루지 않는 우리나라 교육에서 교육의 방향 설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많은 이들이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 시행할 배치와 배열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고 있지 않다. 왜일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깊이 또는 여러 방식으로 철학을 다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 고중세나 서양 고중세에 종교의 힘이 강했다. 한쪽은 불교가 다른 쪽은 크리스트교가, 그리고 서양이 르네상스를 겪듯이 우리에게 신유학이 있었다. 등으로 보면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비슷한 길을 걸었던 것은 인류의 지식과 인식이 한계에서 오는 것이리라. 고중세에서 아무리 하늘과 우주가 무한하다고 말했다 하더라도 상식(5관)을 통한 지식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인류가 망원경이 발명하면서 눈으로 보는 세계 이상의 우주를 설정하고 설명하는 노력이 필요했고, 그와 더불어 다양한 사회 변화에 맞는 도덕론과 과학들을 다루게 될 것이다.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여러 학문들이 생겨남에도 기본적으로 자연(la nature)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중요하다. 서양철학사를 읽으면, 근대에 와서 신의 ‘자연(les natures)’, 인간의 ‘자연’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이 자연을 본성이라 번역했지만, 그 자연이 학문과 삶의 토대인 것은 분명하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부류들과 자연을 대상으로 삼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지식으로 삼는 부류들은 다르다. 자연을 공존이라 하는 공산주의자와 자연을 소유로 하려는 자본주의의 차이가 있지만, 인간의 자연은 상부상조와 사적 소유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두 부류가 있는 것은 현실 세상이다. 사람들은 세계관이 다르다고들 한다. 그 세계관이라는 관망(vision, 통찰)에 대한 견해들이 왜 다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다루는 방식을 나로서는 형이상학이라 부른다. 이런 문제 제기에는 탐만치가 들어있다고 본다. 형이상학은 탐만치를 벗어나려는 노력에서 나온 학문이리라. 탐만치의 이면에 들어있는 난제를 풀어야 한다.

 

서양철학사에서 여러 난제(수학, 언어, 운동부정)가 있었고, 그 난제들을 해결했다고 하면, 더 깊이 또는 더 멀리 난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그중에서 수학적으로 1을 깊이 들어가는 경우와 무한을 더 멀리(?) 나가는 경우는 일상인에게는 문제 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 1보다 깊이 있는 문제를 잘 보아야 탐만치를 벗어날 수 있다. 그러함에도 이런 문제 같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문제로서 제기되었던 것이 1(단위) 보다, 공간과 시간이었고, 형이상학에서 아직도 논의되는 문제이다.

문제 같지 않은 문제라, ‘우선 공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터전이 공간이잖아, 그리고 시간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이 시간이잖아’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서양철학사를 읽으면서 왜 이오니아의 질료에 이어서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의 한 축인 퀴니코스-스토아로 이어지는 현자들이 ‘볼 수 없는 것’(l’invisible)을 사유의 문제로 다루었을까? 그 스토아 현자들은 여러 방식으로 말했지만, 볼 수 없는 것을 거의 네 가지로 나열할 수 있었으리라. 공간, 시간, 원자(아톰), 영혼(퓌쉬케)이다. 유물론이니 실재론이니, 이미지니 하는 문제는 이 네 가지의 “볼 수 없는 것”에 관한 견해에서 나올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볼 수 없는 것’임을 통상적으로 인정하지만, 공간이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사유한 현자들에 대해서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현자들의 말하는 공간은 물건과 물건 ‘사이’가 공간도 아니고, 그리고 물건이 자리를 차지하는 ‘위치’도 공간이 아니며, 이 공간이 어떻게 있는지를 모르면서, 물건이 있고 사람이 있으니까 공간이라고 하는 것은 “공간”의 부분을 설명하는 방식이지, 공간이라는 전체 또는 현존을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공간을 불가분성과 측정 불가능성은 아무래도 현자들의 말놀이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이 현자들은, 이데아들이나 논리의 항들이 말놀이라 여기고, 공간의 실재성을 다루려고 하는 것이 말놀이가 아니라 삶이라는 것이다.

우선 시간을 보자, 시간이란 ‘볼 수 없는 것’이라는 인정하기는 쉽다. 그런데 그 시간이라는 것이 하늘의 수를 땅으로 환원하려는 플라톤의 시간처럼, 시간의 지나감을 설명하는 것이 시간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은, 지나간 흔적으로 설명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보면 그가 살아온 과정(흐름) 전체가 시간인데, 이 흐름 전체를 대상화하여 시간이라 부른다고 하는 것은 흐름을 사물처럼 대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벩송(Bergson)은 흐름을 대상화하지 않고서 ‘이미지’라고 스토아학자들처럼 말했다. 그 흐름은 어제라는 과거의 과정, 이제라는 현재, 그리고 내일도 살아갈 것이라는 아제가 있다. 시간은 어제, 이제, 아제의 세 단위를 잘라서 구별할 수 있다면 삼차원이다. 흐름에서 삼차원 이상을 인간으로서 생각할 수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제-이제-아제를 하나로 이미지로 생각하는 것과 차원 셋으로 잘라서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이 세 과정을 하나 보아, 생(Vie)이라고들 하는데, 현자들이 말하듯이 어제-이제-아제를 이런 의미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간은 시간과 달리 위치 또는 사이(간격)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그 너비 또는 부피 또는 무한으로부터 생각하는 것도 공간이 아니라고 한다. ‘볼 수 없는 것’으로서 공간(허무, 빈 것)이 논리적으로 점, 선, 면, 체적, 우주 등으로 차원을 달리하면서 위치와 크기의 관점에서 공간을 설명하기 위한 항목들을 설정할 수 있다. 문제는 단위 설정이다. 점으로부터 설명할 때, 점이 위치와 크기가 없는 차원인 0차원이고, 선이 1차원이라 한다. 이 0차원에서 점이 공간을 설명하는 항목 또는 대상이 아닐 것 같다. 다른 한편 수학에서 지수의 도입으로 x의 3승이 체적이면, x의 4승은 무엇이며, x의 5승은 무엇일까? 수학자들은 5승 이상을 다루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재하지 않는 차원이 사유에서 있을 수 있듯이 공간은 볼 수 없고 나아가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차원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무한이 수의 나열에서 무한이 아닌 다른 차원이 있을 수 있다면, 공간은 시간과 달리 ‘볼 수 없는 것’이 다른 차원일 것 같다. 왜 원자론자들이 원자와 ‘빈 것’이라 했는지, 그 빈 것이 볼 수 없는 공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원자가 볼 수 없는 것으로 삼았던 현자들의 사유가 형이상학의 사유일 것이다.

앙리 벩송(Henri-Louis Bergson, 1859~1941)

 

시간을 볼 수 없지만, 삶의 과정과 천체의 운동으로 보아도 ‘흐른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없고, 그럼에도 생명체인 한에서 흐름이 실재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어제-이제-아제의 삼차원으로 설명하는 것이 그럴듯하다. 이와 유비적으로 추리하여 공간을 삼차원에 한정시키는 것은, 흐름으로서라기보다 부피[너비]를 지닌 생명체인 한에서 신체가 공간 속에 어떤 자리 또는 위치를 차지하는 체적이라는 점이다. 시간과 달리 공간 속에 체적으로서 물체 또는 신체는 3차 이상의 차원을 현실화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사유에서 실험적으로 3차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지만, 생명체를 다루는 한에서 3차원의 방식과 시간의 3차원을 겹쳐서 우화적 이야기가 난무한 것이 세상사일 것이다.

주역에서 8괘를 넘어서 4차원을 사유하지 않고, 삼차원을 두 겹으로 겹쳐서 64괘를 설정한 것은, 내가 보기에 나와 타인과의 관계 설정과 유비적으로 두 3항을 겹쳐서 삶의 양상들을 64가지로 나눈 것이며, 이는 요즘 MBTI의 8괘의 방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말하자면 MBTI는 상식적 차원에서 인간의 자연들(본성)을 구별했다면, 복잡한 국가 또는 사회 체제에서 다양한 자연들(양상들)을 64가지로 분류하면서. 각 괘가 한 인간의 전형 또는 한 사건의 전형을 넘어서서 해석하는 틀로 보았을 것이다. 자연에 대한 설명을 이런 이분법적 나눔으로 해석하는 것이 3차원 이상을 다룰 수 없다 또는 다루기 어렵다는 것을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공간을 이분법적으로 다루는 것에 익숙하여 MBTI로 다루거나 좀 더 깊이 있게 64괘로 다룬다고 하더라도, 생명체의 삶의 과정은 이런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판단하려고 할 때 어떤 단면을, 의식상에서 추억, 또는 현재의 찰나를 기준으로 그 인간에 대해 해석하고 판단하려 한다. 그러나 그 인간은 흐르는 과정이며 변화와 운동 중에 있다. 그런 운동과 변화 중을 공간상에서 정지된 측면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안다. 과정이고 흐름이기에 공간이라는 위치 설정도 궤적도 아니지만, 이런 방식으로 해석이 편리하다는 것도 사람들은 안다. 현자의 ‘볼 수 없는’ 공간은 어쩌면 원자보다 영혼과 맞물려 있을 것 같다. 그 영혼은 볼 수 없는 것이므로 점, 선, 면, 체적 속에 속하지 않지만, 그래도 해석과 설명을 위해 삼차원(신체)으로 환원해야 편리하다는 정도일 것이다. 공간 속에서 점이 움직인다고 여긴 쪽이 원자론자라면, 공간 속에서 영혼이 움직인다고 하면 스토아 현자들일 것이다. 이 두 계열로서 퀴레네학파와 퀴니코스학파는 공간 설정이 학문의 기초라고 보았거나, 공간 설정이 안 되지만 공간과 같은 설정이 필요하니까 영혼을 삼차원의 방식에 유비적으로 다루었을 것이다.

그런데 벩송은 공간이든 시간이든 이미지 덩어리가 활동 중이며, 스토아의 체와 마찬가지로 이미지로 설정했던 이유가 있다. 그 운동 중이란 우주도 이미지이고, 운동 가운데에서 운동하고 있는 개체도 이미지이며 운동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 우주라는 운동 중인 이미지가 자연이라고 하면, 이오니아학파의 자연 즉 휠레로 거슬러 올라가고, 휠레 속에 연속적이 운동하는 개체의 이미지는 언젠가는 우주의 이미지로 되돌아간다고 하게 되면 자연회귀이고 그 자연의 운동 중이라는 의미에서 자연의 자기 활동성 또는 자발성이 형이상학의 기초가 된다. 이것을 스토아학파를 본떠서 벩송의 형이상학을 설명하면, 자연론, 휠레론, 유물론이며, 공간과 시간은 운동중인 이미지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벩송은 플로티노스를 통해서 스토아로, 퀴니코스로, 소크라테스로, 이오니아로 심층에서 연속하는 흐름을 철학으로 보았다. 철학은 운동하며 역동적이다. 이런 사유는 부동의 신을 사고하는 소르본 대학의 신학적 관점에 빠진 관념론들과 다르다.

운동하는, 흐르는, 덩어리가 이미지이며, 코스모스의 이미지이다. 이것이 그리스 철학의 코스모스에서 로마철학으로 넘어가면서 유니버스로 향하였다. 그 유니버스에서 사적 소유를 과거-현재-미래의 차원에서 유지하는 신학이 바울 이후 323년 삼위 격의 성립이다. 그 삼위 격이 상호부조 공동체를 버리고, 부동의 신의 자연에 사적 소유을 안겼다. 서양철학사 2천 년에서 공동체와 사적 소유의 논쟁이 형이상학의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관점의 차이이다. 종교가 사적소유를 인정하면서 어떻게 변질되었는지를 잘 안다. 그들은 볼 수 없는 것을 대상으로 만들고 크리스토스라고 부르면서, 상부상조의 공동체를 주장하는 이들을 즐겨 마남(魔男)사냥을 했다. 벩송이 보는 철학사적 관점이다. (4:08, 56WKG)

(4:31, 56WKGG)

 

♦ 참조:

성격학(caractérologie)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hilosophie, Larousse, 1988, p. 41.(P.304)

성격들의 연구.

이 용어는 분트(Wilhelm Wundt 1832-1920)에 의해 창안되었다. 성격학은 성격의 분류와 그 형성에 관해 연구한다. 분류는 시험(tests, épreuves)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며, 가장 유명한 것은 로르샤흐(Hermann Rorschach 1884-1922)의 시험인데, 그 시험은 두 장의 종이 사이에 잉크 점을 으깨어서, 이 흔적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 불러일으키는 생각을 물어보는 것이다. 비에르스마(Wierzma, 홀란드)와 헤이만스(Corneille Heymans 1892-1968 벨기에)가 행한 매우 복잡한 “격자칸”(les grilles)의 시험이 있는데, 이 시험을 이용하여 매우 유명한 분류법을 확립하였다. 그 분류는 1. 정서(l’émotivité), 2. 활동(l’activité), 3. [반향으로서] 주도적 또는 부차적(la primarité ou la secondarité)으로 한다. 여기서 선도자(le primaire)이란 현실적 운동 속에서 살아가는 자이고, 조연자(le secondaire)는 자기 안에 경험들이 흔적으로 또는 깊은 반향(retentissement)으로 남아있어서, 이런 사실 때문에 과거 경험에 의해 여전히 제재를 받는 자이다.

단순히 사람들은 일반적인 방식으로 내성적(introverti) 성격과 외향적(extraverti) 성격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자시 자신으로 향하는 성격이고 후자는 수다를 떨고 세상에 개방적이며, 내재성에 관계하지 않고 한계까지 가보는 성격이다. 예를 들어, 내성적인 성격은 그림을 감상하거나 세계의 광경을 보는 경우 특히 “움직임”(le mouvement)에 민감하며, 분열상(schizoïde)의 경향을 띤다. 그 예로 반고호(Van Gogh 1853-1890)의 『측백나무(les Cypres)』는 특히 이런 해석에 알맞다. 외향적 성격은 특히 “색깔”(la couleur)에 민감하다. 그리고 사물들의 “형태”(forme)에 주목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학식 있는 지성의 전형이며, 우울(mélancolie)하다 [형상주의는 철학적으로 좋게는 금욕주의, 이상에 대한 실망에 따른 허무주의에 가깝다]. 이 움직임, 색깔, 형태의 세 가지 모두에 균형적인 전형이 있는데, 이 대표자로서는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로 소개된다. 내성적 성격과 외향적 성격 사이의 대립은 근본적으로 문학과 과학 사이에 나타나는 대립이다. (아래 도표 참조)

(43TKC)

 

성격학caractérologie 표

(이 도표는 8괘의 전형과 닮았다) (43TKC)

이런 상식으로, 물체가 정지 또는 운동을 그 자체로부터 설명할 수 없다고 여긴 것을 넘어가는 것이 갈릴레이와 뉴턴이다. 물체는 움직이고 있고, 게다라 나아가 진동하고 있다는 것은 열역학 다음으로 전자기학의 설명에서 등장한다. 물체는 움직이는 중이라는 것은 1930년대 불확정성의 원리 이후에 우주는 움직이는 중이 된다. 고대 이오니아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후 퀴니코스-스토아 계열에서 정리하기를 “볼수 없는 것”으로 공간과 시간, 원자와 영혼이라고 할때도 움직이며 변화하지만, 대상들처럼 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문제 제기 한 것이다. 마치, 거짓말쟁이 파라독사든지, 원이 직선으로 환원되는지에 대한 문제 등도 마찬가지로 풀 수 없는 난제였는데, 이런 난제에 거리를 두고서 출반한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56WKJ)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만에 하나 [천 하룻밤 이야기]

만에 하나

2023, 11, 08, 입동(立冬)

     요즘 입말로 밥 먹기 전에도 길거리에서도 중얼 거린다. 세월이 흐른다. ‘평화통일 영세~ 중립코 리아~’(11자)라고. ‘나는아무 것도~ 하지않 겠다~’(11자)는 바틀비가 웅얼거리며 세상을 향해 뱉어낸 내밀한 무의식적 무의미(파라독사, 염불)가 아니다. 세상에 아무도 이 말을 주목하지 않는 점에서, 무(無) 또는 공(空)과 같다고 충고들 한다. 아니야, 그래도 이 입말을 리토르넬로(반복)처럼 중하게 여기지는 아닐지라도 한 번쯤은 반복적인 염불을 외는 이들이 있을거야. 그래 그 사람들이 만에 하나라도 매우 소중하고, 그들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후렴처럼 계속하는 반복에서 혁명이 있다니까. 그 반복은 동일반복이라기보다 이질반복으로 흐른다. 그 혁명은 없는 것 같은 공집합(φ 피)에서 나온다. 그 공집합에서 저항, 봉기, 항쟁, 혁명이 있다고 하는 이들이 우리나라에도 만에 하나, … 그러니깐 8천만명에 8천명이 되다니, 놀라워서, 만에 하나 상호소통과 공감을 리토르넬로로 ‘평화통일 영세~ 중립코 리아~’.

  만에 하나란, 길거리에 1천만 서울시민에게 한 종이비행기를 날리면 그 비행기에 맞을 확률이라고 치면, 천 명이나 된다니. 이런 논리가 세상에 적용되다니. 초월자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다니. 이런 사고에서는 점(點)과 같은 사고를 한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점, 그것은 사실상으로도 권리상으로도 볼 수 없는 것에 속한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문제가 아니라도 그러한 점은 차원이 없다. 선이 일차원이고 면이 이차원이라 한다. 그럼에도 점처럼 사고하는 것을 빗대어, 볼 수 없는 것임에도 원자처럼 사고하는 것을 유물론이라고들 하는데, 왜 벩송이 볼 수 없는 점(원자)을 상정하는 것을 통속적 유물론이라고 했겠는가. 우리나라에서 벩송에 대한 오독 중에 가장 큰 문제는 “추억들”과 “기억”을 구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추억들은 원자들과 유비로 쓴 것이고 기억이 실재성이며 흐름이다.

   소크라테스 이래로 소크라테스를 현실적으로 또는 사건적으로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했던 이들은 플라톤도 크세노폰도 아니라, 퀴니코스 학파의 창시자인 안티스테네스라고 한다. 그는 헤라클레스를 모범으로 삼는 시나고르게스 학교를 나와 걸승처럼 흘러서 살았다. 이 퀴니코스학파를 중요하게 여긴 프랑스 철학자는 푸이예 였고, 벩송은 플라톤주의와 달리 소크라테스 계승자로서 신플라톤주의의 플로티노스를 이야기하듯이, 푸이예의 소크라테스를 이야기 한다. 이 퀴니코스학파는 ‘개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하는 이들은, 마치 점이 현존이라고 사고하는 요상한 사람들이며, 점은 존재이며 현실을 사는 이를 개돼지 취급하는 극우들이다. 철학사를 잘 읽지 못해서 퀴니코스 학파를 비하 또는 빨갱이 악마로 만든 것이다. 점을 숭배하는 이들이 철학사를 잘못 읽었다고 들뢰즈가 한탄하지 않았던가. 벩송은 전도된 철학사였다고 했다.

    퀴니코스를 이어 초기 스토아학자들은 철학의 어려움을 다루면서 제기한 문제거리로서, 볼 수 없는(l’invisible) 것이면서도 현재하고 있는 것이 셋 또는 넷이라 전했다. 우선 시간이고 그만큼이나 공간이며, 또 다른 하나는 원자이고(스토아학자들은 통속적 유물론을 그나마 인정해준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첨가할 수 있다면 아마도 소크라테스가 문제 삼았던 프쉬케(영혼)일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야 보고 느끼고 만지고 하는 것이 아니면서도 철학사에서 모든 철학자들의 반찬거리처럼 등장하였지만, 철학사적으로 주식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철학자는 적어도 19세기 중반까지는 거의 없었다. 그런 이유는 점의 유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불교에서는 점이 한편 공이고 다른 한편 공은 곧 색이라고하며, 대중의 사유를 꼬이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나름의 이유(la raison)가 있었다. 유학은 신유학에서 태극이니 무극이니 하면서 받아들이는 척하다가, 도덕과 현세에서 적용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챘다. 초월자를 현세에 적용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문제는 태극 즉 무극에서,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삼는다는 것이라기보다, 잘 모르는 것에서 알아가면서 있는 것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다는 사유일 것이다. 다음으로 ‘양은 있는 것, 음은 없는 것’으로 분할을 현실로 삼게 되면 주역 자체가 무너질 것이다. 둘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교대와 변화의 관계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묘하게 불교에 가까이 가는 것 같지만 유교는 시간과 공간에 연관이 많고, 불교는 영혼과 기원에 더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어째거나 현실 또는 현존하는 있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학은 사건의 철학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사고의 논리 끝까지 탐구하여 기를 원리로 삼던, 리를 원리로 삼던, 둘 사이에 구별(차이)을 분할의 방식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표면의 철학이다. 그럼에도 슬그머니 무는 사라지고 변화의 복잡성을 차이(차히가 아니다)로서 64개를 분할(구별)하고 거기에 다양한 의미와 개념을 부어넣었다(한자를 알아도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제각각이다. 서양 말로 파라독사들의 잔치인데, 너무 복잡하여 마치 실증적으로 대응되는 것 같기도 하고 의미 있는 것 같기도 하게 여긴다). 이에 비해 불교는 없는 것 같으면서 있는 것 같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는 것이라는 상호변전 또는 상호침투 같은 것을 인정하면서도, 분할이 없기에 각각이 없지만, 말로 하는 “찰나”에는 분할의 각각이 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자아(영혼)은 각각이 있지 않고 흐르니까, 각각을 말하는 “순간”에도 각각의 실질적 사태 또는 현상으로 다루기보다, 이어지며 흐르는 의식의 흐름을 다루려 한다. 둘이 아니라, 넷이 아니라 하나인데, 벩송도 말하듯이 찰나가 아니라 순간 지속이 있듯이, 진여의 흐름이 있다. 뭔가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또는 표현할 수 없으면서도 삶은 변화와 변전, 생성과 창조를 이루며 흐른다. 둘도 하나도 아닌 것, 불립문자, 개구즉착. 그리스 철학의 볼 수 없는 것(l’invisible)의 문제제기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이 문제는 서양 철학사가 어느 정도 전개되어 하나(존재)와 그에 대립으로 무(비존재)를 설정할 수 있는가에 있었다. 철학사는 무를 설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부분인데 비해, 신앙에 물든 자들은 무를 인정해야 논리적(로고스) 사고를 전개할 수 있었다. 이 착각을 벩송이 첫째 착각이라 한다. 그러나 무는 없다. – 이점은 불교도 유교도 마찬가지이다 – 그럼에도 하나의 대비로서 무는 왜 나오는가? 착각이 환상을 낳고 환상이 망상을 그리고 파라노이아를 낳는다.

   하나를 성립시키는 논리 방식에서, 여럿 속에서 하나는 뽑아내는 즉 추상하는 방식으로 나온 ‘하나는 있다’가 아니라, ‘하나는 이다’라는 것이다. 즉 추상의 하나는 현실과 실재와는 아무 연관이 없다. 그럼에도 신앙자들은 그 하나(1)가 없으면 삶의 편리와 안전은 없어 진다고들 한다. 그들은 하나가 흐른다고 하면, 무엇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대상화에서 일반화의 방식이 나오고 일반화에서 개념작업이 그리고 개념작업을 통한 개념들에서 추상의 상징(대상)이 나오며, 이를 이데아라고 하던 에이도스라고 하던 간에, 그 상위의 상위 것은 “있다”와는 별개의 것이라고 한다. 그 논리적 사고의 의미에서 추상은 있다가 아니라 ‘이다’이다.

   언어학에서 소쉬르가 입말에서 들리는 “기표”와 들은 것의 사유 속의 의미를 생각하는 “기의”를 설정했을 때, 기표와 기의는 사물의 실재성과 아무 연관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의 개념과 상징으로서 구축된 관념(초월이라고 하든, 신이라고 하든)은 자연의 실재성과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언어학에서 추상 또는 상징은 있다(existence)가 아니라 ‘이다(etre)’이다. 이 ‘이다’에서 ‘일 이다’ 모순의 개념화작업이 ‘일 아니다’이다. 일 있다와 일 없다는 논의도 실증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있다와 없다로 담론, 시론, 논증, 논리로 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논리 적으로만 ‘하나’ 그 외의 것은 ‘아니다’ 이다. 그런데 ‘아니다’가 ‘없다’로 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아니다와 없다는 전혀 다른 사유이다. 나로서는 이다 아니다는 사고(차이)에서 있다 없다는 사유(차히)에서 다루어진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다는 맞고(진리), 없다는 틀렸다(비진리)라는 이들은 더욱 심각한 광기 즉 파라노이아에 빠진다.

   ‘이다’와 ‘아니다’는 간단히 말하면 책 이다와 책 아니다 에서, 책이 아닌 것은 책인 것보다 무수히 또는 거의 모든 것(나무, 구름 등등)이다. 즉 아니다에 속하는 것이 훨씬 많다. 그러면 ‘이다’를 ‘모든 것이 이다’고 하면, 아니다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며, 전부다 있으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이다’를 ‘모든 것이 있다’로 바뀌는 것을 아날로지(유비)라고 부르자. 아날로지(유비)는 이다와 있다의 차이를 연관시켜 말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다와 있다는 아날로지라기보다, 빗대어 겹치는 알레고리에 가깝다는 것이다. 볼 수 없는(invisible) 것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아날로지 또는 여러 파라독스라 치더라고, 그 대상이 있다고 바뀌는 것은 알레고리일 것이다. 유비는 닮은 점(동상)이 있다고 여기는데 비해, 비슷함(상사)에는 전혀 다른 차히라는 것이다.

    하나를 전체로 규정하는 경우는 하나를 무한으로 규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날로지가 아니다. 하나와 무한은 전혀 다른 차히를 지니지만, 둘 다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오류이다. 여기에서 철학이 고민하였다고 할 때, 어떤 흥미를 느끼는 집단이 고민하지 말고 하나가 곧 전체야 무한이야 면서 변증법적으로 되는 거야라고 한다. 이 집단의 사고는 알레고리를 신앙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 집단이 전체인 하나를 신으로 여긴다. 말그대로는 자연이 즉 신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다를 있다로 바꾼 이는 상징의 대상의 하나를 있다로 바꾼 것이다. 이 기이한 집단에게 고대철학을 제외하고 서양철학사에서 철학자들이 질식할 정도로 이어져 왔다고 하는 것이 들뢰즈이다.

   이런 관점이 기원후 2-3세기에 참주(황제)에 빌붙어서 주도권을 가지려하면서 요상한 집단을 형성하였다. 그런데 왜 철학은 이런 요상한 집단에 밀려서 답하지 못했을까 하는데,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 황제(참주) 권력에 짓눌려서 밀려난다. 다른 하나는 종교의 권세가 미래의 죽음이라는 공포를 심으며 억압했을 때 굴복하였다. 다른 하나는 진리의 논법이 1+1은 2이라는 이다의 논리에 대해 생성으로 대꾸해 보았자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그 상식의 논리에, 실재성의 사유는 거의 질식할 정도로 지내게 되었다. 이 셋째는 그래도 끊임없이 이의 제기를 여러 번 하였지만, 번번이 황제의 권력과 종교의 권세에 밀려났는데, 예를 들어 세네카에서 있었고, 브루노에게 심했고, 갈릴레이에게 약과였다. 논리의 교육과 사변(거울효과)을 통해 권력과 권세의 편에 붙어서 암묵적으로 봉사하면서, 권위를 누리는 쪽을 택한 것이 진리는 하나라는 보편학의 양식을 추구하는 길이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사이의 갈들을 보면 그러하다. 결국은 보편학이 종교 편에 붙는다. – 벩송이 보기에 스피노자가 보편학으로 갔다면 라이프니츠가 숨통을 열었다고 본다.

   하나가 있다가 아니라 이다라는 문제제기 하기에는 각 학문들의 실증적 발달이 있기 전까지는 거의 역부족이었다. 들뢰즈 표현으로 자연의 생성과 자발성의 견해는 “질식”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프로이트와 라깡의 파라노이아에 대해, 들뢰즈와 과타리의 스키조를 얼마나 비하시킬려고 앞장섰서 세계를 돌아다녔던 지젝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1이라는 하나의 항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고, 2의 항에는 4가지 경우가 있고, 3의 항에는 8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요즘 MBTI도 8가지 경우를 인간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이미 19세기 말에 있었던 상징적 분할의 규정들이며, 이 논리적 규정에서는 자연 즉 피(φ)가없다. 또 다시 상식이 자연을 질식시키는 논법이 유행하는 듯하다.

이를 4상과 8괘에 붙여보면 간단히 아날로지가 성립한다. 전통의 유학에서 3천년을 이어온 것은 사물과 인성의 갈래(분류)들과 변화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인데, 그 내용을 한자로 읽지 못하는 세대에 성격학이 인성을 해명해주거나 규정해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 8가지 성격규정이나 8괘에는 이다의 논리에서 전개되었던 무가 없다는 점에서 권력과 권세에 아부했던 권위들이 했던 점과 닮았다. 8가지 분류를 수학적으로 보면 7가지는 개별적인 것이 있고 하나는 공집합이다. 그 공집합(φ피)이 실재한다고 여기면서 러셀을 수학의 여러 파라독사를 전시했다.

    다시 하나로 돌아와서 1과 φ집합에 대한 로고스 논리를 누스 사유의 측면에서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한다. 논리학상으로 1은 대상이 되고 φ는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볼 수 없는(invisible) 어떤 것(φ)을 무화시켰다. 있다의 누스 사유에서는 둘 다 현존한다. 관심있는 대상(1)이 있고 관심없지만 현존하는 여러 지각작용들(φ)도 있다. 다시 말하면 몸을 지닌 자아가 있고, 자아가 살아온 시간과 공간의 과정은 볼 수 없지만 현재에 내재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말한다. 보이는 것으로 신체가 있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영혼이 있다면, 거봐 보이지 않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철학이 되느냐고 한다. 영혼은 이 문제에서 벗어나고 두뇌의 신경(AI)이 그 자리로 들어설 기세이다. 그럼에도 고대로부터 짓눌렸고 근세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던 누스의 사유에서 보이지 않는 것(l‘invisible, 엥비지블)을 철학의 전면으로 올린 철학자가 벩송이다. 그래 일과 같은(아날로지 상) 것으로 원자도 ‘엥비지블’하다. 공간과 시간도 엥비지블하다, 영혼도 엥비지블하다. 보이지 않는 것, 그것이 하나이다. 그 하나가 다양체이라 한다.

    지구는 하나다 조국은 하나라고 할 때, 현존하는 실재성으로 지구와 조국은 하나이고 자아(영혼)도 하나이라고 한다. 그래서 스토아학자들의 유물론은 이런 하나라는 전체가 인간의 지성으로서는 다 알 수 없지만, 흐르고 변전하지만, 예지(누스)로서 파악하면, 있는 것(현존)이고, 이 현존에서 생명, 숨결이 나오는데, 그 갈래에 따라 각각의 사물들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하나를 우리는 온(전부), 환(환하다)현존이라 한다. 환(온)은 그 자체로서 다양체이며, 움직이고 있고 시간에서 흐르고 있다. 우리가 다 볼 수 없고, 다 생각할 수 없지만, 환은 현존한다. 지구의 사실들을 보자, 지진, 태풍, 엘리뇨, 온난화 등은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도 현존하는 삶의 상태에서 여향을 주고받으며 부딪히며 느끼고 그것과 더불어 살아간다. 어느 때는 상호침투하고 어느 때는 배격하기도 한다. 자연이 배격하는 것은 잔인하고 냉정하다(들뢰즈가 말하는 자연 즉 여성이고 영혼 즉 여성이며, 페미니즘이다). 자연 살아있을 때 즉 생을 같이 할 때 상부상조로 온화한 것 같지만, 자연이 데려 갈때는 잔인하고 냉정하다. 누구는 봐주고 어느 인간을 살려주는 것이 없다. 자연이 온다양체이며, 생명이 환다양체이명 영혼이 다양체이다. 이것이 질료의 자기 변화이며 자발성이다. 이 다양체가, 요즘말로 화산과 지진, 날씨와 생태계 이상으로 복잡계이다.

    지구 또는 우주의 온다양체에서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명(삶)은 환다양체이다. 다양체의 속에서 서로 상호침투하고, 상부상조하면서, 공동체와 까마라드리(동지애 또는 휴마니떼르)를 만드는 것이 인류의 살아가는 양식이 아니겠는가. 허리 잘려서도 아프지 않고, 가보지도 않고서 하나가 맞다고 다른 하나는 틀리다는 권력과 권세, 그리고 그것에 침을 바르고 글을 쓰며 학문한다는 권위에 대해, 다양체는 무관의 제왕(들뢰즈 용어이다)이다. 그 속에서 인민이 토대이며 최종심급이다. 인민의 권리가 공집합의 자연 권리와 같기에 경우의 수들을 교정할 수도, 수정할 수 도 있고, 권력을 끌어내릴 수도 있고, 권세를 뒤집어엎을 수도 있다. 인민이 자연(nature 본성)으로부터 자연 권리를 지니고 있는 실재성이고 현실성이기에 저항 항거, 항쟁, 혁명은 자연권(le droit naturel)이다. 한편으로 자연은 상부상조와 공명으로 따뜻함과 은총으로 살게, 다른 한편 자연은 냉정과 잔인으로 사라지게 한다는 것을 인민도 파라노이아 정부도 자연사의 흐름을 느끼게 될 것이다.

(3:34, 56VKE) (4:05, 56VKF) (5:06, 56VKH)

• 덧:

영혼, 그리스어 프쉬케(ψυχή)가 로마로 넘어오면서, 아니무스(animus, 남성형)와 아니마(anima, 여성형)로 바뀌고, 라틴어에서 아니무스는 정신으로 아니마는 영혼(l’âme, 여성형)으로 쓰인다. 그리고 아니무스는 정신(l’esprit, 남성형) 또는 성령으로 유비적으로 바뀌면서 유심론으로 이어진다. 영혼은 정신에 밀려나 질식하지 않고 물질성(아페이론, 휠레)에서 나온 것으로 유비적으로 유물론과 나란히 간다. 이로부터 상층의 지배와 심층의 무화 또는 결핍(나아가 악마화, 빨갱이화, 그나마도 19세기 후반에 눈치 챈 이가 니체이다)으로 여긴 것은 플라톤주의를 유일 신앙자들이 왜곡한 것이다. 따라서 상층의 권력, 권세, 권위의 패거리를 만들면서, 상층의 하나가 있다고 하고 심층의 하나를 비하시켰고 마남사냥을 서슴없이 행했다. 인민이나 여성이 당연히 자연처럼 비하되었고, 악마화되었다(페미니즘은 자연으로부터, 생성으로부터 사유를 해야 할 것이다). 벩송은 아니무스(남성형)의 철학이 아니라 아니마(여성형)의 철학을, 형상(관념)이 아니라 질료(물질)의 철학을, 정신이 아니라 영혼을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 자연(하나, φ피)과 신(하나, 1) 중에서 자연의 자발성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사유로서 – 19세기 전반에 생물학, 후반에 의학, 심리학의 성립으로 – 자연 즉 유물론이 전개될 수 있음을 알렸다. 사람들은 벩송을 유심론(spiritualisme)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틀린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자연 권리(자연권)로부터 사유해야, 생태계, 여성주의, 인민의 사유로서 창발, 창조가 나오고, 이런 창조가 자유이다. (56VKF)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소탐대실(小貪大失) [천 하룻밤 이야기]

소탐대실(小貪大失)

2023. 10. 08. 한로(寒露)

    어떤 교인이 북(北)에다 퍼부어주는 집단이야 말로 악마같은 집단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악마와 교류하자고 하는 이들이 나쁘다고 한다. 이에 대해 다른 어떤이는 매년 수조의 돈으로 무기를 사들이면서, 북에 비해 남(南)이 국방비를 많이 쓰면서도 자주국방을 하지 못하는 것은 위정자가 악마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자에게 어느 악마가 실재로 악마이냐는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전자는 정치이야기는 그만하자고 한다. 정치의 ‘정’자가 나오면 정치 이야기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북에 퍼부어 준다는 말은 정치와 다른 입장인 척 말하면서 정치 이야기를 그만하자고 하는 그 논리방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전자처럼 자기가 먼저 자기 판단을 말해놓고, 다른 견해를 말하면 그만하자는 사고방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마도 제 눈에 들보를 보지 않고서 남의 눈에 티끌을 나무라는 격인데, 나로서는, 그가 남을 비판하여 말해 놓고서, 그의 견해와 다른 견해를 함께 논의해보자는 데는, 이미 그가 맞고 남이 틀리다는 그 고약한 사고가 중세 종교재판의 사고일 것인데, 왜 20세기를 넘어서 21세기에도 진행되고 있는가?

    플라톤 전문가였던 박홍규 교수는 철학이 있는 자료들을 모두 다 놓고서, ‘어떤 이론이든 학설이든 자료에 근거해서 사유해야 한다’고 하였다. 모든 자료들을 삶에서 통 털어서 함께 보자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 수학,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그리고 인간과학들인 역사학, 사회학, 정치경제학 등이 있다고 길게 언급하면서, ‘새내기들이 그거 언제 다 해요, 하나 하기도 힘들고 바쁜데, 철학하는 사람들은 머리가 돌아버리는 것 아닌가요? 그래, 머리가 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돌고 있다고, 하나라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을 잘 이해하기 위해, 하나에서만 답을 찾는 것을 조심하라’고 하였다. 여럿을 함께 다루는 방식을 추론적 사유라 부르고, 하나가 다른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는 방식을 추리적 사고라고 한다. 전자에는 경험의 총체를 추론하여 다루지만, 후자에서는 논리의 선후에 맞는 추리만을 한다. 전자에서는 ‘이다’에서 답이 있다고 여기고, 후자에서 ‘있다’에서 답을 찾기 위해 합의하고 계약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우리 입말에는 ‘이다’와 ‘있다’가 구별이 있지만, 서양 언어들에서는 그리스에서 로마로, 그리고 각국의 언어에서 분화하면서도 여전히 두 가지 사이의 구별이 모호하여 학문을 규정하는 방식이 늦게서야 등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들 한다.

    현대사에서 현실에는 패거리(카르텔)가 있다고들 한다. 카르텔의 설명하는 ‘이다’에서는 상식을 기반으로 순서와 배열이 먼저 있다고 공상하고, 반면에 ‘있다’는 자료들을 현실의 평면위에서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한다. 자료들의 분류와 배치에서 각자의 견해와 삶의 방식이 나올 것이다. ‘이다’는 현실이 아니라 상징의 배열로서 다루고, ‘있다’는 실재적 삶에서 무작위에 가까운, 어쩌면 무권위의 배치에서 출발하는 것이리라. 잘 모른다는 것은 무작위의 자료들을 어떻게 된 배치인지 배열인지를 먼저 알 수 방식이 없다는 것이다. 산과 계곡, 들과 강처럼 자연이 나누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연(nature humaine, 인간본성)도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이 어떠한 방식들로 풀어놓았을 것 같은데, 그 본성(자연)을 다룬다는 것은 어렵다. 자연의 배치와 배열을 요즘은 수학적으로 복잡계라고 한다. 복잡계는 ‘있다’를 다루는 것이지, 산술학과 기하학처럼 정해진 단위로 ‘이다’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있다’로서 현실은 두께를 가진 덩어리와 같다. 그럼에도 긴 역사 속에서 간략하게 보면, 3세대가 사는 두께도 평면이라 부를 정도로 얇은 층일 뿐이다. 열여덟 쯤에서 젊은이, 장년, 노년의 3세대가 현실의 평면의 각 층들이다. 이 평면들이 오랜 역사적 과정에서 길고 깊은 두께로서, 고조선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각각의 질서와 배치가 있었다고 한다. 시대의 평면을 겉으로 보아 단절과 새 질서로 보이지만, 깊이의 흐름은 연속적이고, 인간의 자연(본성)을 실현하려는 노력의 과정이었고, 맑스주의자가 말하듯이 생산력과 생산관계에 따라 깊이[심층(深層)]의 흐름이 표면으로 올라오는 역사라 한다. 영혼의 자연이 표면으로 올라오는, 그 표출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루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왕조 시대 다음으로 식민지 나라에서 국가주의가 이식되면서 겉모습이 바뀌고, 깊이에서 흐름은 겉모습에 짓눌려 없는 것처럼 여겼으나, 백성, 중생, 대중, 시민, 인민으로 불리는 삶의 노력들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국가주의의 권력은 법률로서 정하고 있다고 여긴다. 오랜 관습과 전통의 흐름위에 변전하는 법률과 위계가 있건만, 얇은 평면위에서 심층은 법률의 권력에 눌려서 평면의 밑바닥으로 흐르고 있었다. 식민지 지배에서 법률을 누가 만들었던가 라고 생각해보면, 인민의 제헌헌법이 아니었고, 제국주의의 법률이었다. 그 법률에 의해 해방 이후에도 부역자들은 권력으로 남아 있다가 미국 제국주의로 넘어가서도 식민지 정치에서도 숭미파로 자처하면서 상층으로 남아있다. 권력은 겉으로 계속되는 것보다 더 강하게 이 터전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방식을 만들고 있다. 그 방식이 남쪽에서 여러 번의 봉기와 항쟁으로 혁명을 해보려고 했으나, 인민이 원천이면서 최종심급인 법률을 만들지 못했다. 국가주의에 이익을 챙기는 사적이익의 추구자들은 왕조시대에도 식민지시절에도 제국주의 지배 하에서도 여전히 상층이다. 이들이 헌법을 수정하며 몇몇 공화국들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이들은 과거의 미덕이었던 청백리도 아니고 사변적(통감, 거울에 비추기) 사유도 하지 않았다. 사적 이익, 돈을 위계의 꼭대기로 만들었다. 그 권력은 국가라는 공동체에서 구성원들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상층만이 누리는 방식을 만들면서, 앞선 시대의 덕목들조차도 악처럼 취급하려들었다. 홍범도 이야기만이 아니다. 어찌하여 공직에서 수십억 대 돈을 벌고, 97만원의 접대를 받아도 귀양 가거나 사약을 받지 않는가라고 하면, 그들은 그것이 구시대의 방식이고, 지금은 능력이 있으면 공무도 맡고, 돈도 번다고들 한다. 그것도 공공의 일을 하면서 말이다. 상층이 사적 축적을 당연시 하는 나라. 이들은 그래도 개인의 이익이 곧 나라의 이익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이를 비호해주는 이들이 있지 않는가? 인민 대중을 개돼지 취급하며, 상층의 논리를 만들어준 것이 누구인지를 아무도 묻지 않는 듯하다. 그 상층은 일제의 마름들이었고, 미국이라는 제국의 주구인데, 현 정부는 일본의 주구가 되기를 자청하는 듯하다. 그 상층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인민의 피와 땀을 팔아버린다는 점에서, 과거 산업시대의 매판과는 다른 정보시대의 매판인 것 같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나라와 터전조차 팔아치울 듯한, 이 소탐대실을 권력이 자행하고 있다. 이 귀결에는 세월의 경과 속에서 두께 있는 평면의 요동으로 드러날 것이다. 이 요동은 자연의 필연성에 의해서이며, 이름하여 복잡계와 같다. 생태계 뿐만 아니라 영혼도 복잡계이니, 개인의 특이성도 복잡계이다.

    국가주의의 등장 배경을 보면 유일신앙에서 교리(도그마, 독단)와 이론(체계)의 변형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 신앙자체로서는 이론적으로든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실재로는 없다. 인간 사유와 추론의 발달 과정에서, 또는 유일신앙의 사고는 평결과 계약에서 이익과 잉여를 취할 궁리로 만들었고, 이런저런 논의들 중에서 신앙에 맞는 것을 추리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어서, 철학적 이론을 유비와 알레고리를 사용하여 신앙자들을 현혹하여 그 집단의 제도적 체계를 만들었다. 이것은 삼위일체성립에서 스콜라철학까지의 과정이 증거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이단이라는 명목으로 처단, 화형, 잠수 시켰음에도 반성도 참회도 없었다. 잘났다고 무오류라 한다. 신앙의 무오류와 체계의 완전성이 있기나 한가? 그들은 권세라고 한다. 이런 권세를 누린 방식을 국가라는 단위로 옮겨서 권력으로 변신시켰다. 이로부터 유일신앙은 권력의 뒤에서 권세를 누렸고 누리고 있다. 성직자들과 교회들이 가난한 자에게 아카페를 실행하지 않고서, 왜 부를 축적하고 있는지를 되물어보면 알 것이다. 학문들 각각이 제자리를 잡기에 어려웠던 것은 권세의 독단이 거대한 힘을 발휘하였고, 천문학으로부터 물리학, 화학으로 차차 독단이 무너지면서 19세기 후반에서야 달리 말하기가 등장하였다. 그 유일신앙이 권세를 누린 것은 중세의 종교재판과 마남(녀)사냥의 방식에 있었다. 마남사냥을 본따서, 현대에 와서는 사상검열이라는 이름으로 악의 축만들기, 빨갱이 만들기를 하며 악마사냥을 하고 있다. 이런 전도된 사고를 뒤집으면 악의 축을 만드는 자들이 악귀같은 자들인 셈이다. 자기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선량한 의도를 가진 자들을 물속에, 불속에 넣어버렸지 않았던가. 일제는 독립운동을 종교재판 같은 보안법을 만들었고 해방 후에도 이런 권력은 마남사냥처럼 보안법을 휘둘렀다. 그 권력과 권세의 사고는 ‘있다’는 현실의 평면보다 ‘이다’라는 논리의 단면으로 재단하여 판결하고 심판하려 든다. 인민이 죄종심급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암묵적 카르텔이라기보다더 구체적으로 논리적 사고에서 동일성을 유지하였으며 서로는 유비와 알레고리로서 교환하고 있다. 이 악귀들은 그들이 저지른 악남(惡男)사냥에 대해 회개하지도 않았고, 공동체 또는 공공의 삶의 실천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산업시대에는 정치경제학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정당이 실천으로 나가는 길을 모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역사이다. 규소시대에는 아직 미지수인 것이 복잡계와 같다.

    서양의 중세이든 동양의 왕조시대이든, 정해진 학문의 틀 밖으로 나가서 사유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서양에도 동양에도 틀 밖의 사유를 하는 별종(anomalie)은 여전히 쭉 있어왔다. 별종이 어쩌면 인간의 자연(본성)을 온자연(Nature) 속에서 찾으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있다’에 관한 자료들(la donnée, les données)을 다루려고 했는데 비해, 비유와 알레고리에 젖은 하늘나라와 국가를 동일시하는 ‘이다’의 사고에서는 자료들(le donné, les donnés)을 상징처럼 다룬다. 전자에서는 자료들을 함께 다루어야 하기에 특이자, 개별자, 일반자, 관념자(이데아)의 성격들과 그것들의 능력과 기능을 총체적으로 다룬다. 이에 비해 후자에서는 1, 무한, 하나, 통일, 전체, 완전이라는 ‘하나’를 ‘이다’로서 다루었는데, 이들 모두는 ‘이다’의 ‘1’(하나)에 대한 추리로서 동일성의 귀결들로 향하고, 비유와 알레고리를 통해 동일성의 최상위 ‘1’을 완전하게 절대적이라 추리한다. 이 양자의 경우에, 전자에서는 실재적으로 사실상 ‘차히’를 다룬다. 이에 비해, 후자에서 추리상 또는 논리상, 벩송의 용어로 ‘권리상’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동일자에 대한 유비적 표현이고, 이를 종교적으로 옮기면 하나님 논리(로고스)와 같은 알레고리가 성립한다고 믿는다. 이런 후자의 주장자들의 철학적 배경에 이데아들과 원자들이라는 것의 요술적 조립방식에서 나왔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도 ‘진리’라는 용어를 주장하는 이들은 동일성의 ‘하나’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믿는데, 그 추리들이 계열들이 파라독사임들을 그들도 알게 되었다. 현실에서 생활하고 실천하는 ‘진리인 것’은 그나마도 인민의 평결에 의해 또는 제헌의회에 의해 합의되고 계약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사유 대 사고의 차이에서 논리적 사고자들은 권력과 권세의 대열들에서, 이제 이 사고자들도 누려보고자 늦게서야 이 양자 속에 개입하였다. 19세기 말에 현상을 통해 상징을 재현화하는 논리실증주의가 그러하다. 그들은 이 논리의 ‘진리’가 부의 축적을 가져다주고, 삶의 편리와 향유를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이런 관련을 비유적으로 하면, 상징의 배치를 놀이로 삼아 그 놀이를 노름으로 여기듯이, 또는 투자를 투기로 바꾸어 부를 누리고자하는 속셈을 드러냈다. 학문이 인류의 자유와 평화가 아니라 개인의 영달과 부의 축척의 부속물이 되었다. 권력이 공공이 아니라 사적 지배로 바뀌고, 신앙의 권세가 인민에가 아니라 성직자의 부의 축적과 출세의 수단과 같이 된 것도 세상의 현실이었다. 이 탐만치에 빠진 카르텔에, 진리추구의 논리분석이 예속의 길을 택한 것이다. 진리에는 부의 축적도 명예도 권력과 권세도 없다. 신앙에는 말할 것도 없고. 현실에서는 진리에 맞는 실천에서 ‘훌륭타’에 있다. 이들은 훌륭타는 버리고, 타인보다 더 많이 ‘안다’ 또는 더 높은 정도의 진리를 ‘안다’는 것을 주장한다. 마치 천사의 계급이 18등급이나 되고 그 등급을 따라 올라가 1등급을 넘는 인식(안다)에서 신의 세계로 들어간 듯이 말하는 이들이 ‘진리’를 말하고 있다. 이런 추리자들 또는 논리자들이 권위를 누리고자, 권력과 권세에 야합하여 만든 것이 -마치 사적 이익의 축적과 확대라는 지본 시장에 투자가 아니라 투기판을 만들 듯이- 학문의 세계에도 위계를 정하듯이 다단계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진리라는 이름으로, 지식의 실천을 투기로 노름으로.

    권력, 권세, 권위가 서로 암묵적으로 또는 내밀하게 패거리를 만들어 악귀로서 서로 투합하여 만든 것이, ‘진리를 안다’이다. 복잡계도 모르면서. 투자한 것만큼, 아니 수배 또는 수십배 이익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들 한다. 이들에게 대중, 민중, 인민은 그저 수탈과 착취의 대상일 뿐이다. 좋게 말해서 권력 다단계나 종교 다단계를 학문적으로 비유하여 최고 상위의 축적을 정당화하는 것을, 그 ‘안다’는 진리를 자기들만이 안다고 한다. 그런 학문을 하면서, 신앙을 지니면서, 권력에 가담하면서, 지식분자는 권력과 권세에 예속하는 또는 종속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이 자랑의 끝이 하늘의 ‘일’(하나), 이데아의 ‘일’자를 안다는 것이다. 그 지식의 진리에서 논리상의 근거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명제, 판결, 심판이다. 그러나 그 명제를 누구도 증명하지도,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설명한 이는 벩송이다. 이 명제는 ‘이다’의 선전제의 논리이지 현재 여기에 살아가고 있는 것도, “있다”의 현실도 아니다. ‘이다’의 허상을 믿는 탐만치에 빠진 자들이 인간과 자연, 지구와 생태계를 생각하지도 않는다. 제 눈의 들보를 보지 않고 남의 눈에 티끌을 문제삼아 악마로 모는 카르텔 속에서 치열하게 악마사냥을 하면서, 이익과 향유를 즐기려 한다. 그들은 허상이라고 하지 않고 재현(표상)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다’에는 현실과 실재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돈, 돈, 즉 자본에 예속하여 마름, 주구, 예속으로 자처하는 사고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다단계를 하듯이, 계급이 올라서 상위로 올라가는 것을 명예로 삼게 하는 국가권력 위에, 돈도 벌고 지위도 높이 올라가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는 종교권세가 뒷바침하고 있다. 게다가 현실 평면을 잘라서 단면으로 사고 하게하는 논리 속에서, 또한 놀이 속에서, 나아가 놀음 속에서 “진리”가 있다고 하는 권력에 아부하는 학자들에게도 있다. 말하자면 파라노이아 극한에서 무오류를 배워서, 무소불위로 행사하려는 자들에게 미친 악귀들이 있다.

    이런 추리와 논리 추구를 따르는 이들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판단 속에서 그 자신은 속하지 않는다고 믿는 자들이다. 이 명제 자체가 그들 논리자의 표현으로 파라독사이다. 그럼에도 파라독사를 진리로 믿는 자, 믿게 하는 자, 믿고 권력추구에 줄서는 자, 이들은 인간의 자연(본성)에게, 자연의 생태계에게 빚지면서도 사적이익에 목매고서 소탐대실하는 것이다. 게다가 인민을 제국의 황금알을 낳는 거북이로 만들면서 말이다.

    인민은 권력이든 권세이든 권위이든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터전에서, 이 모든 자료들의 기원적인 이유(raison)이고 근원적인 토대이다. 게다가 인민의 합의와 계약은 최종평결이다. 이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인민을 어린 자식이라는 알레고리로 만들고 인민의 평결은 인민재판이라 유비로 만든다. 인민이 세상의 평결을 하기에 대혁명에서 제헌의회가 있었고, 반동들이 들어섰을 때는 비밀 계절사, 그리고 민중단체, 나중에는 프롤레타리아 정당 등을 만들었다. 인간의 자연(본성)에서 창조와 생성의 노력에 대해, 빨갱이니 반역이니 악마니 하는 이름을 붙이는 이들이 자신들의 잘못과 악을 감추기 위해, 마남(魔男)사냥 때처럼 상대를 (브루노처럼) 산채로 화형에 처넣으려는 악귀같은 자들이다. 자연(본성)은 수십억년전 지구 생성의 그 때도 지금도 복잡계이며, 그 복잡계에서 생성한 생명체도, 인간의 영혼도 복잡계이다. 이를 완화된 표현으로 인간 세상사를 들뢰즈가 “다양체”라고 불렀다. 한 인간의 일생도 다양체이다. 다양체의 두께 있는 평면은 여전히 역동적이고 혁명적이다.

(4:05, 56UKG), (4:36, 56UKH) (5:08, 56UKHH)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이판사판 [천 하룻밤 이야기]

이판사판

2023. 09. 08. 백로(白露)

– 아침 오솔길 가장자리의 풀잎에 이슬이 맺는다.

— 결로(結露)는 더운 쪽이 찬 쪽을 만나 결실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인류가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려는 방식은 구석기와 신석기시대부터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것을 아는 것은 지층이 보존하였던 유물 정보들이다, 돌에서 쇠의 시대로 전환과정에서 구리와 청동을 지나 철기가 시작된 것은 기원전 1200년경이라 한다. 각 시대의 지층과 같이 기념물(추억들)의 특성이 우리에게 전설로서 전승되는 것은 전쟁에서 이겼다는 영웅들의 신격화이다. 그러면 신격화는 철기시대 이전에도 있었다는 것인데, 그러한 계보학적 전승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줄줄이 엮어서 만들었을 것이다. 이 계보학의 전승이 세대마다 부자 세습의 연결이 잘 안 되는 것은 이집트의 기록된 고왕조들(기원전 3천년경)의 승계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국에서는 요(堯)에서 순(舜), 그리고 우(禹)로 넘어가는 것도 세대의 변화보다 다른 계보의 등장인 셈이다. 생명이라는 종의 역사에서 인간이 스스로 위대하고 여기고, 자연에 대해 지배력을 갖는다는 생각하는 것은 도구로서 돌을 넘어서, 열을 통해 새로이 제작하는 쇠(구리와 철)의 시대에 와서일 것이다. 청동이나 철을 다루듯이 자연의 대상들을 다룬다면, 그 자연에 대해 다른 것들도 잘 다룰 수 있는지를 고민하였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기원전 6세기 정도라고 한다.

맑스주의자는 이 시기에 철기가 일반화까지는 아니라도 생산도구로서 인민들에까지 퍼진 시대라 한다. 이 시기 이전에 현자는 세상을 알기 위한 떠돌이로서 양떼를 몰든지, 소나 말을 몰든지 하면서 천막을 가지고 자치적이고 자주적인 부분을 지니며 소그룹으로 다녔다고 한다. 알레고리로서 이야기를 보태면 고대 그리스의 아르고선원들이 이야기나, 유명한 오디세이 이야기도 초기 철기시대의 도래 이지만, 상부들이 전쟁의 도구로서 청동기를 잘 다루었던 시기에 주인공들의 이야기라 한다. 그런데 6세기 정도에는 농사의 도구에도 철기가 보태지면서 생산력이 과거에 비해 비약적 발전을 했다고 한다. 그런 시기에서야 떠돌이 거지, 걸승이 등장할 수 있다고 여긴다. 유비적으로 공자의 주유도 그러하고, 싯달다의 고행 후 평생의 걸승도 그러하고, 고대그리스의 소크라테스 주변에 헤라클레스를 본받은 퀴니코스 학자들도 그러하다.

이런 철기 문화에서 거푸집을 통해서 동일한 물건들을 재생산하는 방식은 인간의 지성과 예지의 사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하였다. 거푸집이 튼튼하고 영구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여 비슷한 것과 다른 것들을 생산할 수도 있었으리라. 물레를 돌리면서 만드는 항아리는 거의 비슷한 것을 만들지만, 거푸집을 사용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거의 닮은 것을 만들어내는 좋은 거푸집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닮음을 보다 정확하게 만들어가는 긴 과정에서 서구에서는 르네상스시기에 언어와 논리에서도 닮음을 재현하듯이, 도구들도 다시 만들어도 동일한 것이 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시기를 철학에서 일반개념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일반화로 만든 개념들은 거푸집의 동일성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고 여겼다. 물론 일반관념보다 거푸집과 같은 모형의 관념이 먼저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관념은 현실의 변화와 동떨어져 있었는데 비해, 개념들은 사물과 현실에 접근하였다.

물론 이런 개념적 생각에는 가설적으로 이어온 관념과 공리(공준)의 완전함이 먼저라는 것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이 인정의 뿌리는 깊다. 영웅시대 이래로 앞에서 있었던 것 다음으로(시간적) 뒤이어 오는 것이 있다는 것은 암묵적이고 실질적으로 인정해온 것이다. 그 실질적 이어짐의 과거의 깊이 또는 기원이 무엇인지를 모르지만 있었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고, 지금도 이어지고 다음을 생각하며 행동하고 실천한다. 이런 이어짐을 5관(안,이,비,설,신)을 통해서는 알 수 없고, 또한 보이지 않지만 있는 것이라 한다. 이런 생각 다음으로, 사람들이 사는 터전에서 여기와 저기는 마치 앞과 뒤, 위와 아래가 있는 것을 구분하는데, 이런 터전에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도 5관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전설따라 삼만리에서 지평선의 끝을 따라가면 낭떠러지가 있다는 생각도, 평면의 시작과 끝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직시하면서 사람이 사는 터전의 전체가 볼 수 없는 것이라 여겼고, 데모크리토스는 ‘빈 것’이라하고, 그러고 나서 공간이라는 일반화의 개념이 생긴다고 여긴다. 볼 수 없는 공간이라는 관념이 생길 것이다.

시간을 볼 수 없듯이, 터전을 이루는 공간을 볼 수 없는 것이고 여긴, 그리스 사유가 인류사에서 철학의 기원이 되는 것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당시의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지적 분자들이 머리를 짜내고, 깊이 토론하고, 생각을 교환했기에 발생한 것이라 한다. 뭔가를 알고 노력하며, 거지같이 지내는 떠돌이들이 어디를 안 가 보았겠는가. 현자들이 지성과 예지를 합하여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보아도, 그 당시의 상식(5관)으로서 해명할 수 없는 것, 볼 수 없는 것을 네 가지 정도로 규정했다. 시간, 공간, 원자, 영혼(프쉬케)이다

로마에 항거한 이들이 십자가 처형을 당한 것은 한 두 사건들이 아니었다. 노예의 항쟁으로 스팔타쿠스(기원전 73년)도 있었고(몇킬로의 거리에 십자가를 매달았다던가?), 프랑스인 조각가이면 꼭 한번 작품으로 거쳐 가는 로마에게 저항한 항쟁자 베르셍제토릭스(기원전 50년경)도 있었고, 유다왕국에서 나자렛의 예수(전04-후31경)의 저항도 있었다. 이런 시대의 과정에서 누구는 전사에, 누구는 열사에, 누구는 성자의 반열에 올려놓는 것은 후대의 이야기꾼(역사가)들이 것이었고, 파라독사들 중에서 이익이 챙기는 경우에 더욱 미화하고 재미있게 이야기가 전승되었던 것이다. 21세기에는 “해리 포터(Harry Potter, 1997-2016)”와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1954-1955)”이 휩쓸 듯이, 넷 플릭스에서 “오징어게임”은 짧은 시기에 전 세계의 이야기 거리로 만든 것도 파라독사의 이야기 거리이다. 그럼에도 실재와 현실에서는 여전히 여러 갈래들 사이에 부조화도 있고 갈등도 있으며, 그 보다 깊이에서는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음에도 겉보기로서 표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들릴 뿐이다. 사람들은 예전의 현자처럼 거지로서 떠돌이라는 것은 사라졌다고 여길 것이다. 왜? 그래도 여전히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는 젊은이들 또는 탐험가들도 있고, 그리고 명상과 관조를 추구하는 공동체를 찾아다니는 이들도 있다. 철기의 시작으로 걸승이 가능했던 그때나, 사적 소유가 엄격하여 담 넘어 사과 하나 먹지 못하게 하는 법률이 엄하더라도, 걸승이 움직이고 사유하는 세계는 현실을 직시하는 세계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 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이, 즉 시간과 공간 그리고 영혼이 실재한다는 것을 느끼는 현자는 세계(코스모스)를 연결하고 연대하는 역동적인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인류의 기나긴 욕망과 그 작업이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 실재적이고 현실적 판(평면)위에서 지속하고 있다.

이 현실의 찰나의 평면만을 공간이라고 아는 이는, 공간이 잘려져서 마치 종잇장처럼 또는 원반처럼 있을 것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유에서 그 평면은,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두께를 갖는 불럭과 같은 것을 지닌 평면이다. 말하자면 현실태의 평면은 갓난애들로부터 현 찰나에 숨을 거두는 이들까지 두께가 있고, 먹고 싸고 자고 일하는 평면 위룰 말한다. 터전, 영토라는 말은 도덕적, 정치적 표현의 일부일 것이다. 시간적으로 평균하여 그 두께 있는 평면은 0세- 87세(평균연령)까지의 과정이며, 평면의 두께에는 여러 나이뿐만이 아니라 여러 색깔의 인종과 여러 직업(임무)에 종사하는 이들과, 그리고 거지(무소유)로서 떠돌이들도 있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공간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 평면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고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찰나에도 태어나는 이가 있고, 세상을 뜨는 이도 있지만, 이 흐르는 공간(코스모스)은 여전히 평상처럼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철학적으로 보아, 대통령 김대중은 정치를 아는 분이다. “정치는 생물과 같아 끊임없이 움직인다.”고. 역동적이다. 그리스 인들이 공간이 생물처럼 움직이고, 그 판이 역동적으로 울렁거리면 진동하고 파동을 친다고 생각하는 부류들이 있었다. 이 파동 속에서 어느 경우에 파고가 높아서, 그 파고 위를 타고 가는 한 두 계열들이 선두에 서서 시대의 사명과 운명을 걸머질 때, 혁명이 솟아나는 것이다. 조용한 평면은 어쩌면 투쟁 속에서 준안정상태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가만히 있는 평면이 아니라 움직이며 살아있는 듯한 공간. 그 공간을 지성과 이성(로고스)이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예지와 누스(Nous)로 추구하는 자들이 사유한다. 이 잘려진 평면 위에 점과 같은 존재들이 현재 사는 각 개체이며, 이들의 집합을 전체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사고가 평면 위에 개념과 명제로 그림을 그리듯 세상을 서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평면은 두께가 있고 진동하며 움직인다. 그런 평면의 두께가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과거의 지층과 같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이런 두께의 변화과정에서 안중근이 살았던 평면과 전봉준이 살았던 평면과도 뗄 수 없는 과정이기에, 시간의 경과와 과정도 포함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 시간도 마찬가지도 공간처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과 별개로 있는 것이다. 이런 공간과 시간을 관통하여 느끼는 것은 영혼이리라.

영혼만이 시간과 공간과 별개로 무어라고 규정할 수 없지만, 인간들 각자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느끼고 있는 것이다. 먹고 자고 싸고 일하며, 노력하며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 느낌은 오관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포함하여 또 다른 것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스에서 공감성이니, 불교에서 여섯째 식(육식, 칠식..)이니 하지만, 나로서는 다섯을 포함하여 관통하는 다른 어떤 것인데, 지각작용(perception)이라 부른다. 영혼이 이런 지각작용으로 등장하였는데, 사람들은 다섯 기능에 보태어 한 기능을 더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오관과 따로, 신체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따로 만드는 이들이 돈 받고 종교를 만드는 자들인데, 불교에서 사판승과 같다. 이런 사판승에 저항하는 이를 이판승이라 한다. 서양 종교에서 사제들과 목사들과 달리 수도원에서 청빈, 노동, 순명을 따르며 공동체 생활을 하는 수도사가 이판승인 셈이다. 이판승과 같은 이어짐은, 독립운동에게 만주에서 뭐했냐고 물으면 그냥 개장사 했지라고 할 때도, 사판승처럼 지내는 것이 아니라 국경 없이 무장투쟁하면서 지낸 시절을 그냥 이야기로 전하는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는 돈 받고 가르치지 않았고, 싯달다도 돈 받고 설법하지 않았으며, 예수도 돈 받으려고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이야기를 남긴 것이 아니다.

인간이 솔직하지 못하고 이익을 챙기는 이들은, 이 두께있는(볼 수 없는) 평면을 종잇장과 단면으로 생각한다. 나는 이들을 매우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또한 위기가 기회라고들 떠들고, 전쟁이 자기를 살린다고들 한다. 이 자른 평면의 사고자들은 사적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이지, 공동체와 인민에 대한 생각도 이익의 창출로서만 생각한다. 이는 자본주의가 잉여착취를 위한 제도, 즉 제국주의와 제국을 고수하려는 것과 같다. 이런 부류의 사고는 현실이라는 평면 위에, 수탈과 착취를 위한 평면을 그리기에 두께도 없지만, 또한 시간의 과정도 없다. 그리고 그러한 집단이 얇은 평면위에 사람과 사물들을 나열시키고 그리고 위계질서로서 제도를 만들어 그 꼭대기에 앉아 있다고 여긴다. 거기에 현재 위계상으로 사판승과 같은 윤석열이 있다고들 하며, 그 위에 일본이, 그리고 또 그 위에 미국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안다. 그 평면을 잘라서 사고하는 이들이 백선엽의 동상을 세우려는 속좁은 이성의 사고, 파라노이아 광기에 빠져있다(푸꼬가 광기의 이야기를 잘 썼다). 이에 비해 볼 수 없지만 실재하고 있는 공간의 평면의 두께 속에는 현실의 두께만이 아니라 볼 수 없는 시간을 포함하는 과거의 두께도 있으며, 홍범도, 안중근, 전봉준도 있고, 그 속에는 이순신도, 강감찬도, 을지문적도…  단군도 있다. 파라독사라고 하더라도, 다른 이야기로서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보다 흥미진진하고 가슴을 울리는 파라독사라는 이야기가 있다.

법률 조문이라는 명제들로 이어진 문장들을 외우는 것과 같은 사판의 외우기가 공부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안다. 그럼에도 외워서 적용하는 이긴다는 속좁은 이성의 머리는 위계질서 속에 꼭대기에 있다고 한다. 그 꼭대기가 누구 밑에 있는지를 아는 이는 다 안다. 볼 수 있는 것은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도 있고, 영혼도 있다고 했다. 그 영혼(프쉬케)의 문제는, 속좁은 사고의 전체와 부분에서 전체가 먼저 있다고 여기는 것인데, 그 전체라는 것이 프쉬케를 사유하는 자에게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다시 공간, 시간, 영혼, 전체는 볼 수 없는 것인데도, 이것과 연관하여 살고 있는 신체는 어떤 능력을 개발하고 작동하려 하는지를 고민했던 이들이 걸승과 같은 이들이었다. 내가 이판승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사판승에 대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고 저항, 항거, 항쟁하였다. 이판과 사판의 투쟁은 겉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어쩌면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독립 운동가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이판사판의 투쟁을 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전체라는 것이다. 그 전체를 지금도 볼 수 없지만, 8천5백만을 사유해 보고, 21만 평방킬로가 넘는 터전을 사유해보라. 미친(파라노이아)사고가 고작 5천만과 9만 평방킬로미터를 사고하는 탐만치(貪慢癡)에 빠진 자들이라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이 공유하는 느낌은 인민의 미덕이며, 기본 심급이다. 권력을 엎어버리는 것도 인민이라는 의미에서 최종심급도 인민이다. 새로운 공동체의 건설은 달리 말하기, 달리 사유하기, 달리 실천하기에 있다. 두께가 거의 무한정한 터전이 우리 안에 있다. 이 생명의 터전을 벩송은 다양체라 부르고, 이 다양체는 다발(묶음)로 되어 있다고 한다. 묶음들의 계열 중에서 먼저 솟아나는 계열의 혁명의 선두 일 것이고, 이들이 투사와 전사이다.

나는 이들을 좋아하고 존경하며, 내 벗도 좋아한다. 그 만치 그리스 철학자들 중에 파라노이아에 빠지 않았던 헤라클레이토스와 소크라테스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만물은 투쟁 속에서 생겨난다고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다. (56T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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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글,

윤구병이 이오덕1을 좋아하는 이야기에서,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범(우리말이다), 호랑(虎狼)이가 아니다. 범, 즉 밤(ᄇᆞᆷ)은 산넘어 일하고 늦게 돌아오는 오마니를, 엄마 떡 하나하나 먹듯이 다리와 팔과 그리고 온 몸을 먹어 치운다. 이 범 또는 밤이 애들에게 찾아가 문 열어 달라고, 이런저런 속임수로 동생에게 문을 열게한다. 방안에 빛으로 보아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도망 나온 자매는 밤을 이기는 빛으로서 해와 달이 되었다고 한다.> 밤은 낮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대결의식을 넘어서, 밤과 낮의 교대의 이야기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왜 단군 신화에서 범과 곰이 등장하는지에 대해서도 우리의 전승에서는 굴(자궁)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지를 사유하는 것이 윤구병은 현자라고 생각한다. 누가, 우리의 파라독사가 신앙 없는 이야기로 악마의 이야기처럼 만들었던가. 입말을 통해 면면이 이어져 왔었고, 한글로 팔천오백만이 공유하는 평면의 두께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사람들은 파라노이아(편집증)의 집단이 위계질서의 꼭대기에서 조문(코드)를 가르친다고 하는데, 두께 있는 평면과 기나긴 시간의 기억이 넘실거려 큰 파고의 높이를 만드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혁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들뢰즈는 혁명은 어느 시대 어느 평면에서든 일어난다고 생각했으며 “혁명의 미래에 대한 질문은 나쁜 질문입니다.”(p.176)고 한다(들뢰즈, 「정치들 II (Politiques II, 1977)」) 혁명은 현재 평면 안에 있다. 혁명은 평면을 잘라서 계산하고 배치하는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의 역동성과 현실 평면의 두께 울렁임이, 다른 말로 하면, 시간의 횡축과 공간의 가로축이 만나는 순간에 파고의 마루를 형성할 때이다. 벩송 자유의 실현은 간헐적이고 폭발적이라 한다. 그 자유를 혁명으로 바꾸어 읽으면 같은 이야기이다. (5:12, 56TKH)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입추(立秋): 파라독스 [천 하룻밤 이야기]

파라독사들: 여러 사건의 생성

– 2023, 08, 08, 화요일

— 입추(立秋): 아무리 더위가 심해도 가을은 온다: 순환은 또 다른 회귀이다.

여섯 살 꼬마가 산타클로스 할배가 선물을 갖다 준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다른 애들을 만나면 할배가 아니라 부모가 전날 갖다 놓은 것이라는 것을 안다. 믿음과 사실은 다르다. 열여덟까지 세상이 가장 큰 것도 있고 무한도 있다는 것을 믿는다. 무엇보다도 크고 완전하고 무한하며, 모든 것을 포함하여 충만하다고 믿는다. 선을 그으면 무한히 가지. 누구도 무한히 가지 못하지만, 무한히 선이 가고 있지. 중고등에서 데카르트의 좌표기하학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을 배우면서도 계산하며 답을 찾는데 메이다가, 학력고사를 마치고 나서 조용히 생각해보니, 그 무한히 나아간다 또는 무한히 자른다는 것이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면, 신이 무한하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산타 할배와 같고, 무한을 넘어서도 하나님을 넘어서도 계산할 수 있을까? 한계 또는 경계를 넘는다는 것이 인간의 현실 또는 현존의 문제거리일까 공안이지 화두일까?

청춘의 젊은이에게 아버지의 아버지(할배)가 있고, 할배의 할배(한할배)가 있고, 그 큰 한아비의 한아비가 단군이며, 단군의 할배는 환(桓)이다고 말하면, 에이 그것 전설이잖아. 학문적으로 파라독스 같은 이야기이지. 그런데 예수의 아버지를 거슬러 그리고 다윗으로 다윗을 거슬러 아브라함으로, 또 올라가서 아담이 있지, 아담은 누가 낳았는데, 신(하나님)이 만들었지. 그러면 그 신은 누가 만들었는데, 그러면 그 이상을 묻으면 안 된다고 한다. 서양 신학이런 완전한 것으로부터 만들어지는 모든 것을 해석하는 것을 독단론(dogmatisme)이라 한다. 신은 누가 만들었는데 라고 묻는 것은 학설(doctrine)이라 한다. 학설적으로 완전하고 충만한 것을 누가 만들었냐고 물었던 이들은 퀴니코스학파와 스토아학파이다. 학설을 완전한 것이 자체적으로 있는 거야. 그리고 자체적으로 있는 것을 묻지 않기로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오르간)의 불문율이야. 더 이상 묻지마.

하늘나라에 옥황상제가 있는 곳에는 맛있는 과일이 있고 선녀들이 있으면, 누구도 아프지 않고 즐겁고 상괘하게 지낸다. 한 젊은이가, 에이 그거,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잖아 라고 한다. 그래 들뢰즈가 답하기를 파라독사야. 불교에서 극락세계에서는 석가모니와 사리자(舍利子) 마하가섭가섭(摩訶迦葉), 아난존자(阿難尊者), 수보리(須菩提)가 둘러 앉아 얼마나 오랫동안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하는 하는지를, 갠지스강의 모래만큼 많은 항하사(恒河沙 1052)수 만큼 해를 거듭해야 사람으로 태어나고, 불가사의(不可思議 1064)수 만큼 거듭해야 아라한으로, 무량대수(無量大數 1068)해야 부처가 된다고 설을 풀고 있다고 하면, 불교 설화잖아. 그래 파라독사야. 가이야에서 만년을 지나 우라노스시대로, 천년을 지나 크로노스시대로, 그리고 천년을 지나 제우스와 함께 지상을 지배하는 신들이 올림푸스에서 노닐고 있었는데로 이어가면, 그거 그리스 이야기 잖아. 그래 파라독사라고. 산타클로할배이야기보다 재미있지, 하늘 나라에 하느님과 18계급의 천사가 있고, 예수는 하나님 옆에 앉아 있다고 하면, 그거 ‘말되네’, ‘말씀이야’ 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 파라독사야.

들루즈는 ‘말 되네’가 바로 의미(sens)를 갖는다는 뜻이라고 하였는데, 파라독사 같은 난센스(non-sens)가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그가 보기에, 난세스는 사실도 아니고 진리도 아닌데, 그 믿음을 크리스트교 신학자들은 독단(dogma, 교리)이라고 부른다. 그것을 알아보는 이들 속에서, 선택받은 자들 속에서, 푸꼬 표현으로 정신 나간 자들(aliénés) 속에서는 자기들끼리 모여, 마치 공자는 맹자의 손자인 것처럼, 스스로 진리라고 한다. 그래, 그 이야기가 의미있다(sens). 다른 것은 의미 없고(non-sens)이다. 의미는 무의미를, 처음에는 겉보기 또는 현상으로, 그리고 거짓 또는 착각으로, 나쁨 또는 허무로, 천년을 지나가면서 무의미가 악마처럼되었다. 19세기에 언어분석철학자들이 대상과 사실에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모두 넌센스라고 생각했었다. 러셀은 고대철학에서 거짓말쟁이 역설이, 논리학에서 수학에서 언어학에서 등등 넌센스가 넘친다는 것을 알았다. 어, 그 이야기는 넌센스이네, 그래 그 모든 전설따라 삼천리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들 모두 파라독사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도 여섯 꼬마에게 그것보다 유용한 것도 거의 없다.

하늘나라 이야기가 넌센스이고 파라독사인데도 왜 의미가 있다고 하는가? 그것을 믿는 이들에게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야기하는 시절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꼬마애가 산타할배가 의미 있듯이, 청춘기(헤베, ἥβη, 젊음, 혈기, 용기)에는 완전하고 위대함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무협지 등이 청춘에게 읽히고 있었던가. 그가 자연에 순환에 대해, 요즘으로 대기의 순환에서 엘리뇨와 번개를 잘 관찰하여보면 달리 생각하는 길을 발견한다. 자연을 진속하게 대하면 달리 사유하기가 등장한다. 중국의 [대학]에는 ‘격물치지성의정심,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는데, 젊은 시절에 학교 교육과 달리 자연(본성)에서 사회에서 격물(格物)에서부터 스스로 깨쳐나갈 길을 찾는 것이다. 자연과 사회에서 자연이 먼저 이며 앞서[앞에가 아니라] 있다. 겉멋만 들은 검사들은 수신제가를 말할 것이지만, 젊은이는 사물의 진수를 아는 것이 먼저이다. 불교에서도 싯달다가 여섯 해 동안 고민고민 끝에 처음으로 젊은이들을 만나서 한 이갸기가 [념처경(念處經)]인데 그 속에서 ‘신수심법’의 네 단계의 노력과정을 통해 선업을 쌓기를 이야기 한다. 그 ‘신’은 신체에 관한 것인데,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격물과 닮은 데가 있다.

스스로 가정과 동네를 떠난 삶을 살아가는 시기에, 헤베(청춘기)를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 한다. 사회는 제도 속에서 규율과 훈육에 따라 살아가가는 과정을 촘촘히 순서를 만들어, 그 순서를 따라야 살아가는 것으로 체제를 만들었다. 너희들 덜 고생시키려고. 이 체제 속에서 벗어나면 낙오자(루저)니, 못난이(개돼지)니, 타락자(소외자)니, 결국에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자 정도로 여긴다. 삶은 산업사회 속에서 제도만이 아니라, 절후를 간직하며 사는 풍토와 터전이 기본 토대로 있고, 그 위에 도구의 사용으로 산업이 있고, 그리고 자고 먹고 싸고 일하는 것만이 아니라 유쾌하게 삶을 사는 놀이도 하거나 구경도 하면서 교양 문화를 지니며 산다. 자연, 산업, 문화 등이 중첩되어 있다. 청춘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휩쓸려서 어쩔 수 없이 사는 사회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지만, 삶의 긴 과정에서 자신의 길을 살아가는 방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세상에 현실적인 평면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방식으로 살고 있지만, 국가라는 체제를 꾸리는 쪽에서 보면 5천만은 평면위에 보이지 않는 그물 속에 있다. 체제는 어장관리를 하듯이 그물을 줄이고 넓히면서 적당히 키우고 그 에너지를 제도 속에 소비하기를 바란다. 열심히 살아서 제국에게 에너지를 제공하는 밧데리가 아닐까? 이런 이야기는 파라독사 일까? 하늘나라 속에서는 진짜이고, 그물 속에서 삶은 넌센스일까? 들루즈가 말하기를, 환의 이야기든, 옥황상제 이야기든, 보살세상의 이야기든, 제우스 이야기든, 예수이 이야기든, 이런 이야기들은 파라독스(paradoxa)인데, 그 논리(추리) 속에 성숙되어 에너지를 공급하는 인간으로 자라고 있다는 것은 독사(doxa)라는 것이다. 현실의 평면 위에 오천만은 누구의 에너지를 위한 소모품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성찰하고, 명상하며 사유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이 반성의 토대에 가장 기본적으로 자연이 있다. 24절기가 있다. 서양철학에서 자연을 본성이라고 번역하는 바람에 이상하게도 자연과 인간, 자연과 삶, 자연과 신이라는 주제가 먼저(앞서)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버리고 파라독사에 빠져서, 위대함, 완전함, 충만함, 연속성, 동일성, 불멸성, 영원성을 말하면서 철학한다고 설레발친다. 이런 이라는 넌센스(non-sens)를 철학이라고 하는데, 불교에서 비신자에게 던지는 공안 정도이다. 청춘에서 청년으로 공안을 넘어서 선문답으로 가면 여러 경우를 한자리에 놓고 추론하기를 배운다. 그리고 삶의 문제거리를 화두로 삼아 장년이 되어 자기 길을 스스로 깨닫는 데로 향한다. 공자는 그 나이 쯤이면 불혹이라 하고, 세상사에서는 그 나이에 자기 얼굴에 다쓰여있다고 한다.

넌센스의 이야기와 달리, 현실 세계의 평면을 잘 생각해보라. 5천만은 현재의 평면과 같은 설국열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그 열차의 칸들 속에 어디서 어떤 이들이 내릴지 모르고, 어떤 이들이 탈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 열차는 하나의 현실 평면과 같다. 한배를 탔다고들 하지만 배는 가는 곳까지 주변은 물이다. 열차는 철로 위로만 달리지만, 현실 평면 위의 삶은 매끈한 공간 위로 달린다. 어디에서 내리면 반천리 금수강산의 어느 터전 위에 있을 것인가? 그 내린 지점이 어느 현존들과 같이 할 것인지를 모른다. 열차 칸 안에서 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바깥에 대해 잘 모르고 있듯이. 그럼에도 산업사회를 넘어서 규소(디지털)시대로 가면서도 잘 모르니깐, 굴을 파고 은둔하는 이들도, 터전을 만드는 이들도, 열차와 관계없이 영토 위를 이리저리 쏘다니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리좀처럼 연결될 수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하늘에 번개가 치듯이, 터전의 평면 위에 서로 간에 드문 벙개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저항과 항거는 지금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작은 리좀의 연결이 지방에서도 나라에서도 세계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맑스의 포이에르바하 테제 11번의 해방만이 아닐 것이다. 그 세계가 하늘나라이며 화엄의 세상일 것이다.

이 삶의 평면 위에서, 깊이 탐구하는 이들이 넓게 리좀을 연결할 수 있다. 살아있고 움직이는 리좀들이 터전에서 매끈한 면 위에서 마주칠 것이다. 그 마주침이 한꺼번에 연결되는 것은 하늘의 번개가 동일하지 않듯이, 이 땅위에서도 동일한 벙개를 형성하지 않을 것이다. 벩송의 말대로 자유와 혁명은 간헐적으로 솟아나며, 폭발적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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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