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소개] 박종성, <막스 슈티르너, 유일자와 그의 소유>, 커뮤니케이션북스, 2026

 

 

[신간 소개] 박종성, <막스 슈티르너, 유일자와 그의 소유>, 커뮤니케이션북스, 2026

 

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어떻게 우리의 삶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외부의 힘에 종속되지 않고 나 자신을 창조하며 소유할 수 있을까? 막스 슈티르너는 개성을 짓밟는 교리와 신념, 개인을 둘러싼 뿌리 깊은 고정 관념에 타협하지 않는 자기중심주의로 맞선다.

대의의 근거를 ‘창조가 깃든 무’에 두고 나에게 이질적인 모든 신성한 것을 파괴하라고 역설한다. 이러한 자기사랑과 자기해방의 철학은 우리에게 유일자가 되는 방법, 즉 정신과 정신세계의 창조주이자 소유자로 우뚝 설 방법을 가르쳐 준다.

 

막스 슈티르너-유일자와 그의 소유, 박종성 지음, 145쪽, 커뮤니케이션북스.

 

이 책은 슈티르너의 주저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중심으로 슈티르너 사상을 열 가지 키워드로 살핀다. 자기중심성이 어떻게 종교·철학·도덕 배후의 공허함을 폭로하고 서로가 서로를 향유하고 이용하는 ‘유일한 개인들의 연합’으로 나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슈티르너가 어떻게 니체에 앞서 허무주의로의 전환을 포착하고 ‘창조가 깃든 무’를 반본질주의적인 자아 개념으로 세웠는지 확인할 수 있다.

슈티르너를 둘러싼 평가는 다채롭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슈티르너 철학을 맹렬하게 공격한다. 이는 슈티르너가 마르크스와 헤겔 좌파들에게 미친 막대한 영향을 방증한다. 이후에도 슈티르너는 시대에 따라 니체의 선구자, 실존주의의 선구자, 초기 포스트구조주의자, 개인주의 아나키즘의 시조로 재평가받았다. 그만큼 슈티르너의 사유는 지속력과 여러 세대에 유효한 가치를 지닌다. 이제 그 사유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 1806∼1856)는 1806년 바이에른주 바이로이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1807년 4월 19일, 37세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어머니는 약사와 재혼했고, 서프로이센의 쿨름에 정착했다. 20세가 되었을 때 베를린 훔볼트대학교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문헌학, 신학, 철학을 공부했다. 이후 자신의 사상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헤겔의 강의에 출석했다. 1841년 베를린에 머무르는 동안 자유인 모임에 참여했다. 주저로 ‘유일자와 그의 소유’가 있으며, 이 책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에 ‘슈티르너 비평가들’을 써서 반박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애덤 스미스와 장바티스트 세의 글을 번역했다. 1852년에 ‘반동의 역사’를 썼고, 1856년 벌레에 물린 뒤 열병을 앓다가 그해 6월 25일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브루노 바우어와 루트비히 불만이 참석했다.

지은이 박종성은 건국대학교에서 ‘슈티르너의 유일자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2014)’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논문으로는 “슈티르너의 ‘자유주의’ 국가 비판의 현대적 의미”(2011), “슈티르너의 ‘변신’ 비판의 의미”(2020, 제8회 소송학술상 수상), “유일한 사람의 사랑”(2021), “식민지 조선에서 슈티르너 철학의 변용과 그 의미 및 한계: 염상섭의 「지상선을 위하여」를 중심으로”(2022), “철학자를 조롱하는 철학자”(2023) 등이 있다. 현재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이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강사이고, 한신대학교, 건국대학교 강의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글은 <매일일보>에 게재된 신간 소개를 재인용한 것입니다.

https://www.m-i.kr/news/articleView.html?idxno=1401362

 

 

『논어』 속 이상적 인간상의 비교 (1) [건국대학교 논어 강독팀]

『논어』 속 이상적 인간상의 비교

—인자(仁者)와 지자(知者) 그리고 군자(君子)를 중심으로—

 

 

건국대학교 동양철학전공 석사과정 오서진

 

 

    1. 서론

『논어』에는 여러 인간상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시로 군자(君子)가 있다. 『논어』 내에서 군자는 타의 모범이 되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덕목을 갖추고 있으며 또한 백성을 이끌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흔히 ‘성인군자’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군자는 유가(儒家)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이자 이상적인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로서 추구해야 할 인간상이다.

그런데 『논어』에는 군자 이외에 인자(仁者) 그리고 지자(知者)와 같은 인간상이 등장한다. 직관적으로 봤을 때, 군자는 이미 인자와 지자의 면모를 모두 갖춘 것처럼 보인다. 군자가 이상적이고 모범이 되는 인간상을 나타낸 것이라면 훌륭한 성품과 덕성 그리고 지적 역량을 모두 갖추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어』의 구절들을 살펴보면 때로는 군자가 인자와 지자를 포함하는 것처럼, 또 어떨 때는 군자, 인자, 지자가 각각 별개의 개념처럼 보인다.

한 개념은 다른 개념과 명확히 구분되며 문장 몇 줄로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사고방식은 중국 고대사상에 접근하는 바람직한 방식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 개념이 함축하는 의미 그리고 그 개념이 다른 개념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사상가의 주장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본문에서는 강독 모임 중 더 알아보고 싶었던 인자, 지자, 군자의 의미에 대해 모임에서 다룬 내용을 중심으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공자 초상 이미지

    2. 본론

2.1. 인자(仁者)와 군자(君子)

우선 인자와 군자의 관계에 대해 의문이 생긴 구절은 「옹야」(雍也) 편에 있다. 공자의 제자 재아(宰我)는 공자에게 인자에 대해 질문한다.

 

재아가 물어 말했다. “인자는 누군가 그에게 ‘우물 안에 인(仁)이 있다’고 말하면 그 말에 따릅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군자는 (우물 앞까지) 갈 수는 있어도 (우물에) 빠질 수는 없다. 속일 수는 있어도 해칠 수는 없다.”

이 구절을 읽고 가장 먼저 든 궁금증은 ‘재아는 인자에 대해 질문했는데 왜 공자는 군자로 대답했는가?’이다. 마치 인자가 곧 군자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아니면 재아의 질문 의도를 파악한 공자가 일부러 ‘군자’라는 표현을 썼을 수도 있다. 혹은 일상 대화이기 때문에 생긴 사소한 표현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인자, 군자 등의 개념 자체가 맥락에 따라 유연하게 사용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러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겠으나 분명한 점은 인자와 군자는 아주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두 인간상 모두 『논어』에서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바람직한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인자가 곧 군자는 아니라는 근거가 『논어』 내에 있다. 「헌문」(憲問) 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이면서 인하지 못한 사람은 있을지언정 소인으로서 인한 사람은 아직 없다.”

위 구절에 따르면 군자 중에는 인자가 아닌 경우가 있다. 반면 소인(小人)이면서 동시에 인자인 경우는 없다. 다시 말해 군자는 인자인 경우와 인자가 아닌 경우로 나뉘고, 소인은 인자가 아니다. 즉 군자이면서 인자가 아닌 경우가 있으므로 인자와 군자는 동격으로 볼 수 없다.

위 구절처럼 군자와 소인을 비교하여 언급하는 내용은 『논어』 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리인」(里仁) 편을 보면 “군자는 덕을 마음에 두고 소인은 땅을 생각하며, 군자는 법도를 지키려 하고 소인은 이익만을 바란다.”,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利)에 밝다.”라는 구절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구절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군자가 철저하게 소인과 대비되는 인간상이라는 것이다. 소인이 땅(재물)을 생각할 때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이 이익을 바랄 때 군자는 법도를 지키려 한다. 또 소인이 이(利)에 밝을 때 군자는 의(義)에 밝다. 군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덕, 법도, 의는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이자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필요한 가치이다. 소인이 사리사욕을 챙기는 인물이라면 군자는 집단을 바로 세우는 인물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군자는 인자와 구분된다. 군자는 덕이 충만한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책임과 역할을 진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군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인 의(義)는 다른 어떤 덕목보다도 사회 정의와 관련이 깊다. 의는 몫의 분배와 규범에 관한 덕목이다. 올바른 기준에 따라서 재화나 지위를 나누고,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규칙과 제도를 제정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또는 지키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의(義)의 실현이다. 그러므로 의를 행한다는 것은 제 가족을 보살피고 이웃을 돕는 일상적인 일보다 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의 일일 수밖에 없다. 공자 이전 시기에 군자는 신분이 높은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었고 공자 역시 군자를 일반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는 사용하지 않은 듯하다. 군자는 자신과 공동체 모두를 바르게 이끌 책임이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인자와 다르다.

그러나 인자와 군자는 여전히 공유하고 있는 지점이 많다. 군자는 잠재적 인자이다. 이 말은 모든 군자는 인자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군자와 의가 분리 불가능하듯 인 또한 군자가 품고 살아야 할, 소홀히 해서는 안 될 덕목이다. 그러므로 인자와 군자는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지만, 유가 사상에서 추구하는 인간상을 설명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조각들이다.

 

(계속)

『논어(論語)』「옹야(雍也)」의 여러 해석 가능성에 대하여(3) [건국대학교 논어 강독팀]

『논어(論語)』「옹야(雍也)」의 여러 해석 가능성에 대하여(3)

 

 

건국대학교 철학과 학부 김종범

(이어서)

 

– 「옹야」20

 

아래 인용은 「옹야」20의 원문과 스터디 시작 전 스터디 구성원들이 미리 번역해온 문장이다.

 

子曰:「知之者不如好之者好之者不如樂之者。」(자왈:「지지자불여호지자호지자불여락지자。」)

재국: 선생이 이르길, “앎이 있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 좋아하는 이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종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며 좋아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수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 알기만 하는 자는 그것을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그것을 즐기는 자만 못하다.

 

「옹야」20의 번역에서 공유하고자 하는 부분은 ‘지지자(知之者)’와 ‘호지자(好之者)’, ‘락지자(樂之者)’의 의미이다. 『논어』 안에서 단계적으로 좋음과 나쁨을 설명하는 부분은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본고에서는 그 기준을 마음과 형식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구절은 「위정(爲政)」7, 「팔일」3, 4, 「양화(陽貨)」11이다. 네 구절 모두 형식만을 지키고, 마음이 없는 것에 비하여 실제로 마음이 있는 것이 더 낫다고 공통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그 이면에는 실제로 마음이 있으면서, 형식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다는 암묵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대응하여 ‘지지자’와 ‘호지자’, ‘락지자’를 해석한다면 ‘지지자’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방법만을 알 뿐 알고 있는 그것을 실제로 행할 마음은 없는 사람인 것이다. 다음으로 ‘호지자’란 좋아하는 그것을 행할 마음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을 잘 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락지자’란 즐기는 그것을 행할 마음도 있으며, 그것을 잘 행할 방법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공자 초상

이러한 해석은 ‘지지자’와 ‘호지자’, ‘락지자’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에 도움을 준다. 또한, 『논어』 안에서 다른 구절들과도 크게 모순이 되는 부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올바른 해석이라고 확언하기에는 부담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로 『논어』 안에서 단계를 들어 설명하는 부분은 위의 예시가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계씨(季氏)」9에서 공자는 네 가지 단계를 통해서 사람의 단계를 표현하는데 태어나면서 아는 자가 가장 위이고, 배워서 아는 자가 다음, 어려움이 있어 배우는 사람이 그다음, 어려움이 있지만 배우지 않는 자가 가장 아래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공자의 설명에 따른다면 ‘지지자’와 ‘호지자’, ‘락지자’는 충분히 다른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논어』 안에서 ‘지(知)’와 ‘호(好)’, ‘락(樂)’이 앞서 설명한 단계에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인가?”라는 점이다. 적어도 ‘지’는 『논어』 안에서 방법만 아는 상태를 지칭하는 단어로만 사용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논어』 안에서 ‘지’는 72단락에서 117번 사용된다. 이 중 ‘지자(知者)’와 ‘지지자(知之者)’로 그 사용을 줄이면 ‘지자’는 「이인」2, 「옹야」23, 「자한(子罕)」29, 「헌문(憲問)」28, 「위령공」8, 「양화」24에서 그리고 ‘지지자’는 「술이(述而)」20, 「계씨」9에서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지지’가 사용된 것을 확인해보겠다. ‘지지’의 사용은 크게 4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다. 첫 번째는 ‘인자(仁者)’와 ‘지자’를 대비하여 인자를 높이고 지자를 낮추는 방식으로 서술한 것으로 「이인」2와 「옹야」23이 이에 해당된다. 두 번째는 ‘지자’와 ‘인자’, ‘용자(勇者)’를 병렬로 서술하여 이 셋의 특징을 서술한 것으로 「자한」23과 「헌문」28이 이에 해당된다. 세 번째는 지자를 단독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며 지자를 높이고 있다. 「위령공」8이 이에 해당된다. 마지막은 제자의 발화 안에서 ‘지자’가 나온 것으로 이때 ‘지자’는 살피는 지혜로 여기는 사람으로 엄연히 말하면 아는 사람으로 ‘지자’가 사용된 것이다. 「양화」24가 이에 해당된다. 첫 번째의 방식으로 「옹야」20의 ‘지지자’를 이해한다면 ‘지지자’를 방법만 아는 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에 근거가 될 수 있으며,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방식으로 「옹야」20의 ‘지지자’를 이해한다면 ‘지지자’를 방법만 아는 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한 반례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 ‘지지자’가 사용된 것을 확인해보겠다. 두 구절에서 공통으로 확인할 수 있는 표현은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이다. 이는 주로 ‘태어나면서 아는 자’로 해석되며 「술이」20에서는 공자가 ‘생이지지자’가 아니었음을 밝히고 있고, 「계씨」9에서는 ‘생이지지자’가 가장 높고 그 아래로 순서대로 ‘학이지지자(學而知之者)’ 즉 배워서 아는 자, ‘곤이학지(困而學之)’ 즉 부족해서 배우는 사람, ‘곤이불학(困而不學)’ 즉 부족하지만 배우지 않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지지자’의 해석은 ‘지지자’를 방법만 아는 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의 근거가 되는 방법으로 해석을 할 수도 반대로 그 해석의 반례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해석에 근거가 되는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생이지지자’라는 것은 태어나자마자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닌 방법만을 아는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다. 즉, ‘생이지지자’ 또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그 이후에 노력이 필요하다. 반례가 되는 방식으로 생각하자면 ‘생이지지자’는 태어나자마자 성인의 경지에 다다른, 즉 이미 마음과 방법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지자’ 중에서도 이미 마음을 다 갖춘 상태를 말할 수 있으며 이는 ‘호지자’와 ‘락지자’와는 구분되는 ‘지지자’의 특징과 모순되는 것이다.

 

– 글을 마치며

 

이렇게 『논어』 「옹야」13, 18, 19, 20의 해석 가능성에 대하여 논해보았다. 이 글을 읽으면서 그동안 『논어』를 읽으면서 고민해보지 않았을 부분에 대한 것을 보고 새로운 시각을 경험했을 수도 있고, 혹은 이미 독자가 해보았던 생각일 수도 있으며, 이 글에서 독자의 견해에서는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이 있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수많은 감상에도 불구하고 본고에서 전하고자 했던 『논어』가 단순한 격언 모음집이 아니라는 감상만큼은 전달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이 독자들의 『논어』 읽기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수 있기를 바란다.

(끝)

이원론 사고 대 다양체 사유: 비례중항 대 조화중항 [천 하룻밤 이야기]

이원론 사고 대 다양체 사유: 비례중항 대 조화중항

2026 02 19 우수(雨水): 겨울이 지나가는 기호(sign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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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언론지평 또는 공론장이라 하는 소통의 방식이 왜 이분법에 매여 있을까? 음양, 천지, 건곤, 용호 등의 용어에 습관적으로 익숙하기 때문일까? 통시적 습관과 현 사회의 공시적 습관은 다를 것이다. 내가 서울에 올라와서 철학을 공부하면서도 이런 사유방식에 어떤 문제가 들어 있다고 여겼다. 고대철학을 연구하는 철학도들도 이 문제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지금도.

언어라기보다 입말의 분석에서 나온 공시태라 할 수 있는 현상에서도 사건들에 대한 설명과 설득을 위한 인용을 보면 더욱 흥미롭다. 언론이든 학자이든 인용하는 학자들의 소속 또는 계열을 보면 그러하다. 현 상황에서도 맑스도 공산주의도 주제로 올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맑스를 입에 올리는 자들이 맑스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한다. 이 문제만이 아니다. 민주정을 말하면서도 아테네 민주정이 아니라, 영국이나 미국이 민주제를 말한다. 공화정을 이야기하면서 로마 황제제 이전의 공화정을 말하지 않고, 나아가 프랑스 대혁명의 공화정을 말하지 않고, 민주제 앞에다 자유와 민주라는 용어를 붙여서 자유민주공화국이라 한다. 이런 담론들이 유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서양사 또는 세계사를 이해하는 방식은 조선말 또는 대한 제국시대부터일 것이니, 동학이후로 치면 140여 년 쯤 될 것이다. 세계사 속에 편입의 시기에서, 코로나 이후에 눈떠보니 우리가 전지구적 삶을 살고 있다고들 한다. 우리가 세계의 일부를 넘어서 세계사 속에 가로지르며 흐르는 것은, 누리소통 이래로 AI시대에 세계 속에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아직도 세계사 속에서 파편들만 우리의 누리소통에서 전개될 뿐이지만, 소통의 연결방식은 무한정하게 열려있다. 이제 배치와 배열을 유기적으로 조직화하는 방식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일 수 있다.

공시태 속에서 주류(상층)가 지도적 역할을 한다고 한다. 내류(심층)는 이 부류에 끌려가고 있다고 한다. 통시적으로 오랜 과정에서 주류의 학문(사서삼경)은 인민에게 명령 또는 지배의 논리였지, 내류의 삶과 심정과는 따로 놀았다. 그럼에도 주류 중의 일부는 항상 백성이 하늘이라고 한다. 백성이 하늘이 되기에는, 세계사에서 보아 백성의 소통(입말)이 문자화되어야 하는 데, 우리에게는 한자문화 속에서 상층과 심층이 따로 가고 있었다. 내류가 표면으로 오른 것은 겨우 80여 년이라 할 수 있다. 표면에서 심층이 내공을 가지고 표면의 각질을 균열내고 솟아나는데 시간이 필요했고, 아직도 필요하다. 내류의 강도가 축적된 내공은, 상층이 심층을 가르치는 정보의 획일화와 위계질서에 따른 명령과 지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심층의 자각으로 자치성과 자율성, 공시태 속에서도 연대와 소통에 있다.

백성이, 인민이, 민중이 입말의 소통을 배치와 배열을 바꾸는 것은 두 가지 습관(역사적 습관, 현실 제도적 도덕)에 젖은 사고방식에서는 쉽지 않았다. 지금도. 바꾸고자 하는 과정에 걸림돌이 세계사를 재단하고 선전하는 상층의 방식이 공시태의 습관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들 중에서 하나는 유럽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서양이 또는 이방인이 우리나라, 중국, 일본을 합하여 동양이라고 하고, 우리나라의 특성을 무시하고 중국과 일본의 역사 또는 근대사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서 복속되어 있다고 하는데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화를 낸다. 우리나라는 중국도 일본도 아닌 우리의 고유성이 있다고 한다. 그 고유성이 상대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국뽕처럼 답한다. 그게 답이 아니다. 언어와 문자가 아니라, 입말과 문자화 방식이, 유기적 조직화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고, 이런 차이는 어느 차이보다 크다. 여기에 대해 우리나라 언론지평에서 인용하는 것을 보면, 유럽에서 영국, 독일이 거의 8할에서 9할이며, 프랑스는 언급일 뿐이다. 그리고 영국과 대륙이라고 이원화하면서 독일과 프랑스가 같은 대륙 사상이라고 독일이야기로 덮는다. 우리나라 사람이 화를 내듯이 프랑스인도 화를 낼 것이다. 프랑스의 고유성이 먼저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통시태로 보아, 단군과 고조선 이래로 중국과 다르다고 한들, 훈민정음(1446년)에서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라는 것보다 더 차아가 나는 것이 없을 것이다. 대략 보아 유럽 3국의 차이가 르네상스 시기(1500년대)라 보면 비슷한 시기이다. 철학사에서는 이시기에 인류가 자의식의 발현의 시기라 한다. 중국은 금나라의 송나라 침입으로 자의식의 발현으로 신유학(주자학)이 생겼다고 하나, 이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원나라를 몰아낸 명나라(1368-1664)에서 통일된 중국을 갖는 점에서 중국의 자의식의 성립으로 본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오랜 관습상으로 중국 사상의 일부로, 현시대의 공시태로서 서양학문의 수입의 습관에서 일본 사상의 일부로, 서양인들이 알고 있다. 냉전의 산물로서 남북전쟁이래로 피폐해진 나라에서 코로나의 방역으로 세계사의 표면에 오르면서, 세계가 우리나라를 중국과 일본과 다른 나라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유럽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사상을 같은 대륙사상이라고 하면, 그 이방인이 우리나라를 모르듯이, 우리가 프랑스를 모르는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사상적 차이와 통시적 차히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차이와 차히보다 더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현시점에서 언론 지평에서, 사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갈등과 대립에서는 독일과 일본의 흐름과 영국과 미국의 사고방식을 따라 가고, 프랑스 사유를 밀어낸다. 내가 알기로 공산당과 사회당으로 집회 결사 뿐만 아니라 언론의 자유는 프랑스가 유일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상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말하면, 이분법 사고에 젖어서, 마치 중국의 유학의 공화과 불교의 평등을 밀어내는 것처럼, 이것들을 이상하게도 사교(邪敎) 또는 빨갱이 취급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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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민주당에서 합당 문제에서도 그러하다. 합당의 주제로서, 또는 우리나라가 나갈 중요한 화두로서,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는 사회권과 자연권을 표면위로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사회권이란 상층의 공론장이 아니라 민중의 의식화의 표현, 심층의 표면화이다. 이 용어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부제로서 인용하는 정치권(le droit politique)과 같다. 이 시기는 그리스 민주제처럼 인민의 의사에 의한 발의와 결정이 제도화하는 것을 말한다. 프랑스가 르네상스 이래로 프랑스 입말을 쓰기 시작하여 200여년이 걸려서야, 상층이 문자화를 통해 지배하던 라틴어가 물러나는 시점이다. 이 귀결이 프랑스 대혁명이다. 다른 하나는 이런 계약의 사회에서, 철학적으로 ‘자연배후학(형이상학)’은 자연이지, 신이나 지배층이 만든 법률이 아니다. 법치는 자연권의 토대위에 있다. 모든 사회적 계약과 규약이 인민의 의사에 의해서 이루어지듯이, 세계는 자연의 자치와 자기과정 또는 자율성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의 배후에는 자연의 자치성과 자율성이 있다. 인간도 스스로 자치와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유는 입말이 소통장에서, 표면에서 자유로울 때이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여러 별종들이 성행했다는 것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서유럽의 세 나라, 프랑스, 독일, 영국에 대해 좀 더 깊이있게 들여다보고 생각해야하듯이, 우리나라, 중국, 일본에 대해 공시태에 머물지 말고, 오랜 과정의 삶의 방식에서 나온 통시태의 사유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특이성이 뛰어나다. 일본이 한자와 자국어의 병행이듯이 중국의 고문과 간자체의 병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입의 구강(신체의 유기적 조직화)과 함께 하는 입말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차이는 공시태의 차이가 아니라, 통시태의 오랜 과정에서 만들어진(창조된) 차히이다. 이로서 이원론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에서, 다양체가 아니라도 삼원적으로 또는 다원적으로 다루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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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을 대하는 태도에서 다른 하나는 서양사상사에 대한 이해가, 내가 보기에,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학자들이 또는 식자들이, 거의 9할이 일본과 미국에 젖어있다. 일제와 미제의 영향을 당연히 여기는 것은 꺼삐딴 리와 같은 사고방식이리라. 내가 서울에 와서 천재와 수재라고 불리는 이들을 많이도 보았다. 철학에서도 이들 중의 9할 이상이 앵글로색슨(영미, 독일철학)에 젖어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나도 잘은 몰랐었지만 박홍규(朴洪奎, 1919~1994 : 前 서울대 철학과 교수) 선생님에게는 열에 ‘하나’가 특이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를 이어가는 이는 드물다. 내가 가끔 농담처럼 이야기하기로, 왜 프랑스 철학을 선택했는가 하면, 2천년의 중국의 너울에서 벗어나고, 100년의 일본의 학문적 영향에서 떠나고 싶고, 미국의 철학이 우리를 지배하려 드는 것이 싫어서라고 한다. 인도나 중동을 선택하지 않고 프랑스를 선택한 것도 서울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은 통시적으로 조선시대에 훈구파로서 상층을 유지하려는 사장파, 서인, 노론, 주자학으로 이어지는 외세 의존파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런 계보에서 학문적 편견으로 “사문난적”이라는 방식으로 편 가르기 하면서, 달리 사유하기를 배제를 넘어서 그런 사유를 은연 중에 악의 소굴처럼 만들었다. 이에 비해 내재적 발현을 이어가는 사림파, 동인, 남인, 실학 이후에도 문체반정에 대해 별종의 발언들이 있었으며, 이는 20세기에 만주에서 다른 계열로서 자주 독립파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원적 분화의 설명도 또한 이중성으로 한정되는 것 같지만, 여전히 영토에서는 상층의 지배가 있었다. 심층이 표면으로 올라오지 못했던 시절에 이원화는 표면 위에서 이원화이지, 자연배후학의 자연과 정치권(사회권)의 주체로서 인민을 포함하는 이원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의 한계였다. 그럼에도 120여 년 동안에 자의식의 발현으로 80여 년 전부터 입말이 표면에 올라오면서 삼원성이 드러났다. 그리고 현재는 상층과 심층의 대립(모순이 아니다) 사이에 표면의 이중성이 드러났다. 이런 표면의 이중성을 주류 언론은 현실을 인정하자면서 공시태로서 사실(만들어진 것)들을 보자고 하고, 통시태 입장에서는 사건(연관들의 조화)들을 만들어가자고 할 것이다. 사건은 접속하는 연관의 사유에 덩어리로서, 이 사건이 굴러가는 방식에 따라 그 시대의 카이로스(또는 변곡점)를 드러내 보인다. 그 변곡점을 잘 들여다보면서, 사람들의 발언과 조화를 이룰 평결에 관심을 기울이는 시대이다. 이번에 유시민의 발언은 변곡점을 찍었을 것이며, 이런 사유의 흐름을 잡고 있었던 이는 이해찬(1952-2026)이라고들 한다. 이런 과정에서도 빨갱이니 공산주의니 하는 용어들로 공론장에서는 이런 화두를 매장하려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인류가 통시적으로 주장해온 사상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이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사상의 자유에서 등장하는 자유가 자본주의와 우리나라 현실에서 모순이라고 여기는 이들이다. 모순은 유일신앙자의 논리이고 존재론의 비례의 논리이지, 자연배후학이든 실증철학사의 조화의 논리가 아니다. 전자에서는 사실에서 만들어진 것들의 비교와 수량적 비례로서 참과 거짓, 또는 아군과 적군을 구별한다. 이에 비해 후자에서는 사건에서 다양한 접속에서 대립과 차히가 있지만 사유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 사유 방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실들(les faits)과 사건(les événements)의 차히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속에서 차이가 악마화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아류의 비례중항(比例中項)을 중요시하는 것이고 앵글로색슨의 사고방식이다. 이에 비해 사건 속에서 다양한 접속에 대립을 종합하는(진정한 의미에서 변증론) 과정에서 조화중항(調和中項)을 찾는데, 이는 소크라테스와 공자의 사유에 있다. 이 후자들의 특징은 유일신이 없다는 것이다. 유일신으로 상승하는 사고에서 최고 류개념의 성립을 변증법이라고하는 것은 자연배후학이 아니고 유일종교의 신학이다. 철학은 신에 대한 경배가 아니라, 자연에 대한 자기성찰이다. 신을 믿는 자들은 그 신이 자신들의 소유 또는 대변자라고 착각한다. 이에 비해 자연배후학에서 자연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누구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자치와 자율성과 자발성에 대한 성찰과 집중에 있다. 변증법이란 이름으로 대립을 모순으로 몰아 적대시하는 사고와, 공동체에서 소유 없는 공산의 사회의 조화와 공감, 누리소통에서 공명을 찾는 사유, 이 둘 사이에 차히는 어디서 왔을까? 나로서는 박홍규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무엇인가 다르긴 다른데 어떻게 다른지, 선생님의 설명이나, 뒷풀이에서 그 제자들 사이에서의 해석의 차히가 있다는 것은 느끼지만 무엇에서 나왔는지를 알 수 없었다. 공시태와 통시태, 우주론과 우주발생론, 존재론과 자연론, 공간론과 시간론, 참주제와 민주제, 황제제와 공화제, 진위론과 실증론 등에서 사유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이 차히의 근원이 무엇일까?는 늘 고민이었다. 벩송은 두 가지가 근원에서 차이가 있다고 했다. 정지와 운동, 공간과 시간이란 용어를 내비쳤지만, 나로서는 젊은 시절에 운동(정확하게는 지속)의 설명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는 사유의 단위(l’unité)에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왜 벩송은 수의 하나(un)라는 단위의 비판에서 출발했을까? 수학책을 열권이상 읽으면서도 잘 찾을 수 없었다. 수학사에서 한 가지 얻은 것은, 모든 수학들은 수로 환원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브룅슈비끄는 달리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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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하게 설명하기 위해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하나의 단위, 그 다음으로 둘째 단위, 두 단위의 설명과 둘 사이의 유사성과 상사성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늘과 땅, 음과 양, 좌파와 우파, 0과 1은 편리를 위한 사고방식이다. 그 둘은 유사성보다 상사성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양자를 쌍으로 보는 경우, 대립으로 보는 경우, 조화와 순환으로 보는 경우, 그리고 극한에서 모순으로 추상하는 경우, 등은 각각이 다르다.

하나의 단위에서 둘로 구별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는 사고방식과 달리 하나에서 여럿이 발생한다는 사유는 다르다. 둘은 자르면서 생기는 것이고 이로부터 사고를 하는 이들이 간단명료해 보인다. 그럼에도 자연은 하나에서 여럿을 창조하고 생산하며, 여럿들 사이의 발생과 생장이 서로 다르다. 여럿을 모두 이야기하기 어려워서, 셋으로 줄여서 간략하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넷 또는 다섯으로 다루기도 한다. 인간의 의식도 얼(혼)과 행(삶)의 이분법이 있는가 하면, 현실에서 상층과 표면과 심층(로고스, 에토스, 파토스)로 구별하여 사유하는 이들도 있고, 나아가 사상처럼 넷으로 구별하는 경우도 있으나, 수학사에서 1차, 2차, 3차, 4차를 나누기도 한다. 그런데 공간상으로 4차를 구해내기 어렵다. 그러면 점을 1차로 선을 2차로 면을 3차로, 체적을 4차로 생각해 보면 되지 않을까하는 이들이 있다. 점이란 것이 그렇지 않다. 이 점은 아톰과도 다르고, 산수학에서 수와도 다르고, 언어논리에서 항목 또는 용어들과도 다르다. 이런 차이들을 숙고하는 쪽은 (플라톤과 플라톤주의 이래로) 일자와 다자에 대한 구별에도 고심을 한다. 편리의 사고는 플라톤주의, 루소주의, 맑스주의 등으로 쉽게 구획정리로서 나름의 경계를 그은 것이다. 플라톤에서 페라스(한계)를 상충에 두는 이유이기도 한다. 그러면 반대편의 아페이론은 무엇인가? 페라스의 범위 밖인가? 페라스를 생산하는 토대 또는 재료일까? 그 자름의 경계는 무엇인가?

플라톤의 사유 깊이는 소크라테스로부터 이어지고, 대를 이어간 아카데미아 학당장(총장)들로 연결된다. 플라톤의 「폴리테이아」편에서 선분의 비유는 편리한 사고였다. 네 등분인데 이등분으로 보면 인식과 비인식(억측)이라는 이분법이다. 그러나 수학사는 흥미롭게도 인식(에피스테메)에 산술학과 기하학, 비인식 부분에 천문학(책력)과 음향(입말, 음악)을 포함시켰다. 이로서 중국의 주역이나 사상의학처럼 4가지로 분류된다. 그런데 플라톤이 후기에 가서 「티마이오스」편에서 이데아계, 데미우르고스, 아페이론계로 삼등분했다. 삶의 현실에서 로고서, 에토스, 파토스의 세 측면을 고민했다고 해석한다. 여기서 중간항처럼 보이는 에토스에는 서로 겹치는 듯하지만 다른 기하학과 천문학이 있다. 얼핏 보아 천문학이 상층에, 기하학이 심층에 가까울 것 같다. 이런 고민이 아카데미아 학당장들은 괴롭혀서 회의론으로 개연성으로 고민했다고 한다. 플라톤의 천문학은 이집트 책력에서 온 것이라 하며, 책력은 삶의 터전에서 생활양식의 필수요소이다. 그 당시에 12별자리든 24절기든 농사와 연관이며, 인간이 먹거리와 잠자리의 중요성이 표출된 것이다.

그러면 음향은 무엇일까? 비빌론과 이집트의 음악(율려)에 대한 전승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악기가 주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리스의 연극 극장을 생각해보면, 반원의 중심(촛점)에서 연기자가 이야기 한다. 관객에게 골고루 전달되는 방식이며, 그리스 민주정의 전성기에 시인 작가들이 또는 연설가, 변론가들이 시대 이끈 주인공들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언설들이 난무하는 길거리에 이야기들을 종합(담론, 평결)을 하고자 한 인물로 보자. 그러면 플라톤의 고민은 아테네 시민의 의견들의 종합으로 실행방식이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페라스를 전달하는 지자의 역할일까, 아니면 아페이론의 다양한 입말의 발설들을 종합하는 현자의 길이었을까? 앵글로색슨 철학사가들은 전자에, 프랑스 실증주의는 후자에 방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카데미아의 후대 학당장이든 플로티노스이후 플라톤의 계승자들은 책력과 음향에서 그리고 수학의 내용에서 운동과 변환은 산술학의 단위 1과 기하학의 단위 점과 다른 것으로 보았다. 이 단위는 산술학도 기하학도 아닌 조화중항이라는 단위가 있다는 것이다.

학문사에서 늦게서야 이분법의 단위가 아닌 다른 단위가 있음을 확증했다. 비례중항이 맞다 틀리다를 따진다면, 조화중항은 소크라테스와 공자처럼 훌륭타 장하다를 다루었을 것이다. 되돌아가서 플라톤은 이원적 비례중항이 아니라, 삶에서 다양한 발생(아페이론의 생성)을 고심했다고 보았다. 그 삶에서 발현, 발생의 다양한 방향과 다양한 계열의 종합이 플라톤이 사유했던 변증법일 것이다. 이로 후대의 학자들은 4가지 분류방식의 종합은 상층의 산술과 기하의 비례방식의 중간을 기본으로서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원(공)의 운행과 변화와 음향의 확장과 전파에 대한 것을 포함하여 종합으로서 변증법적 중앙, 즉 조화중앙을 찾으려했다고 보았다. 삶에서는 비례중항이 중하고 먼저라고 보았다. – 아마도 후대에서 플라톤의 다자의 조화에 대한 해석을, 상층의 이데아들의 조화가 아니라 아페이론에서 발생된 준이데아들의 조화로 보았을 것이다. – 브룅슈비끄 수학사는 이를 흥미롭게 전개한다. 양자 대결에서 진위, 선악의 구별은 비례중항이란 이름으로 유일신앙의 착각이지만, 이에 반해 삼자 또는 다자의 조화중항은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 상부상조, 약속, 계약, 평결, 협약 등에서 드러난다. 우리나라에서 비례중항주의자들이 언론 공론장을 이야기하면서 중립적이라고 하는 말은 상층의 지배를 감추고 있는 사기에 가깝다. 비례중항에서 중립은 선과 악, 진과 위 사이에 서는 것으로, 전형적인 유일신앙의 이분법적 사고이다. 이 중립이라는 항은 현실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상층(극우)에 편드는 경계선을 긋는 작업이다. 이런 작업을 플라톤주의 또는 아리스토텔레스 정의에서 끌어내어 이야기 한다. 플라톤의 사상에서 초기부터 이분법이 있었지만, 그것은 영혼의 역량에 대한 마부의 비유에서, 하나에서 둘로 갈라지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 하나에서 둘만이 아니라 여럿이라는 점을 선분의 비유로서, 우주의 생성에서 새로이 다루고자 하였으나, 당대의 입말과 수학들의 전개방식의 한계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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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일제에서 벗어나 20세기 후반에 입말의 발생과 확장이 극대화 되었다. 이런 발생론적 과정이 서울이라는 틀에, 즉 스스로 페라스를 긋는 작업에 갇히어, 또는 조선 시대 관습이래로 상층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남북의 경계를 긋는 자들에 포획되어, 이런 사고가 이분법에 머문 것은, 앵글로색슨 철학을 심은 일제의 강압도 있었지만, 사문난적과 문체반정의 영향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서울은 사대주의의 연장에 서 있었고, 미국이라는 제국으로 갈아타면서 앵글로색슨의 분석철학을 심었고, 정의론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비례중항을 심었다. 그 속에 미국의 정의, 독일의 공론장을 말하고 있다. 그나마도 플라톤에 대한 깊은 탐구와 이해가 있었음에도, 서울이 사문난적이래로 3백여년 습관과, 현실에서 영어를 간판으로 만드는 공시적 습관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덧씌운 플라톤주의도, 그리고 맑스주의도, 비례중항이라는 이름으로 젖어서, 중립적이고 하며 중간자의 입장이라고 하며, 민주와 정의를 말한다. 이들의 사고에서는 플라톤이 고민했던 에토스에 이르는 발생의 책력과 음향은 제국의 체제에 맞게 짜여가고 있었다. 그리고 산술과 기학의 이중성에 대해 언어 추리로서 최고류로 종합이 현시대를 지배한다. 그 지배는 로마 황제제 이래로 전쟁을 통한 지배와 수탈이며, 이 그늘 속에서 서울은 인민의 최종심급의 평결장을 법치라는 이름으로 공론장을 만들고 있으며, 발생과 생성을 거짓과 악으로 몰아가려 한다. 이번에 극우파의 제국 추종주의와 달리, 달리 사유하기의 방식으로 사회권(루소의 정치권리)과 토지에 대한 자연권을 화두로 올렸으나, 제국의 주구들이 덤벼들어 다양체의 논의를 공론장의 논의로 바꾸었다. 아직도 앵글로색슨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나, 누리소통을 4천5백만이 손안에 쥐고 있는 나라에서 다양체의 발현은 이미 도래했다. 상부상조, 공감, 공명의 종합으로서 변증법적 사유인 조화중항을 널리 사유할 때이다.

플라톤이 흥미있게도 정의를 조화라고 했다. 영혼, 가슴, 팔다리의 삼자가 조화로울 때정의롭고, 이를 실행하는 이가 훌륭타. 영혼의 발산은 용기와 절제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진다고 하는 것은 발생과 과정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이를 고정시키는 자들이 이분법주의이자이며, 플라톤이 아니라 플라톤주의자들이다. 이들의 사고방식으로 보아, 그러면 용기는 선이고 절제는 악인가? 하나에서 여러 방향으로 전개되지만 설명 상 두 가지일 뿐이며, 발명과 창안은 여러 다른 방향의 길들이기도 하다. 유일신앙의 지배아래 아리스토텔레스를 두고 공론장이라는 비례중항의 정의는 편 가르기이다. 이에 비해, 마치 빛의 발산과 같은, 자연의 다양한 발현과 생성에서, 다양체들의 조화중항을 이루는 시대가 왔다. 5천만 중에서 4천5백만이 손바닥에 재료와 도서관 자료를 볼 수 있는 누리소통의 도구가 우리 입말과 더불어 빛처럼 퍼져나간다. 그 빛의 발산이 윤석열의 내란을 막지 않았는가? 이제 플라톤주의가 아니라, 소크라테스 제자인 플라톤의 진솔한 사유인 조화중항을 이루고자 노력하며, 내공을 쌓은 이들이 먼저 하나의 디딤돌을 놓을 것이다. (6:05, 59MLH) (6:39, 59M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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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19일 오후 4시경 내란 혐의 재판에서 선고 하였다. 윤석열 무기징역,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징역 30년, 민간인 노상원 18년․‥….

사람들은 걱정했다. 이병철 변호사의 말: 법원에서 90%가 보수이고 80%이상이 극우이라고 한다. 조희대, 박영재, 지귀연, 우인성이 극우라고들 하는데, 지귀연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간다. (59MLI)


필자 류종렬: 한철연 회원, 철학아카데미
『깊이 읽는 베르그송』(2018), 『처음 읽는 베르그송』(2016) 등을 번역했고, 『박홍규 철학의 세계』(2023),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2015) 등을 함께 썼다.

코너명인 ‘천 하룻밤 이야기’는 트라우마에 걸린 한 인간을 바꾸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천 하룻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설화에서 따왔다.
이 지면에 천 하룻밤 만큼 이어진 한 사람의 생각을 적는다.

헤르만 둔커(Hermann Duncker), “막스 슈티르너의 철학은 실제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 ② – [유령(Spuk)을 파괴하는 슈티르너(Stirner)]

헤르만 둔커(Hermann Duncker)[1]

Max Stirner’s Philosophy Is Actually Worth Reading

막스 슈티르너의 철학은 실제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 ② –

이 글은 헤르만 둔커(Hermann Duncker, 1874~1960)의 글을 2024년에 훔볼트 대학교 사회비판센터 연구원 야콥 블루멘펠트(Jacob Blumenfeld)가 영역하고 이것을 다시 우리 말로 옮기면서 옮긴이가 주석을 단 것입니다.

옮긴이 박종성(한철연 회원)

 

  •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한 철학

어떤 사람은 ―이론뿐만 아니라 민중을 위한 과학,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한 예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실천은 또한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교육과 지식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는 작품을 사람들에게 제공했습니다. 디츠출판사(the Dietz publishing house)에서 나온 다양한 역사서, 노동자 도서관Workers’ Library의 과학 및 경제 서적은 프롤레타리아가 ―그 책들을 손에 넣기만 한다면―이미 이른바 “고등 교육”으로 세례를 받은 부르주아지보다 지적으로 우월해질 수 있는 지식의 보고(寶庫)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지적 산물의 다양성을 감안할 때, 한 영역이 거의 완전히 지나쳐 버린 것처럼 보이는 것은 놀랍습니다: 철학! 사회주의자의 세계관은 철학에 기반을 둘 것을 요구하지 않나요? 이러한 필요성에 대한 느낌 때문에 당시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오이겐Eugen] 뒤링Dühring[1]에 대한 논쟁[2]을 더 광범위하고 대중적 방식으로 수행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과학 혁명(revolution of science)은 그의 작업의 비판적 성격이 수반하는 것처럼 철학적 파편들을 하나로 묶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 일에서 체계을 뽑아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한 체계를 만들려는 시도는 레오폴트 야코비(Leopold Jacoby)[3]의 『발전의 이념』(Idea of Development)[4]에서 착수되었으며, 그 중 1-2부가 출판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작가의 죽음으로 인해 작품을 하나의 전체(a whole)로 확장하고 완성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코비가 발전시킨 것은 어느 정도 자연 철학(philosophy of nature)입니다. ―그 자신의 직업은 자연 과학자(natural scientist)였습니다. 자연 과학의 부산물인 철학은 수많은 대중적 철학 논문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가설(hypotheses)의 다소 심각한 모호함은 철학을 비난합니다. 우리는 [루드비히] 뷔히너의 『힘과 물질』(Force and Matter)[5]에서 일어난 것처럼 오래 전에 쓸모없고 입증되지 않은 그들의 이론들이 값싼 대중 판의 경노(channels)을 통해 노동 대중에게 스며든다는 사실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왜 현대의 인생관은 자연 과학을 통해(via) 장거리 우회를 통해서만 발전되고 촉진되어야 할까요?

칸트학파의 인식론적 철학(노동자 철학자인 [조제프Josef] 디츠겐Dietzgen[6]은 그의 저서 『철학의 긍정적 결과』(Positive Outcome of Philosophy)[7]에서 여전히 이 철학을 고수하고 있음)은 자연 철학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연 철학 역시 심리적 토대를 찾는 새로운 철학적 접근을 위한 길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과학적 지평의 변화와 함께 철학자의 대상도 바뀌었는데, 이전에는 철학자의 대상이 관념론의 영혼(idealistic soul)에서 유물론의 육체(materialistic body)으로 넘어갔다면, 이제는 두 대상이 하나로 결합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 안에서(in oneself) 이러한 결합을 인식했기 때문에, “현실의 나”(realistic I)는 철학적 성찰의 출발점이자 대상이 되었습니다.

[헨리크Henrik] 입센(Ibsen)[8], [표도르Fyodor] 도스토옙스키(Dostoyevsky)[9], [리하르트Richard] 데멜(Dehmel)[10] 등의 현대 예술 작품에서 격언처럼 들리기도 하고, 프리드리히 니체에서 가장 젊고 눈부신 대표자를 찾기도 했던 “나 철학”(I-philosophy)은 개인에서만 출발합니다. 전제 조건이 없다는 점, 즉 자신의 자기 지식(self-knowledge)에 국한된다는 점에서 이 철학은 특히 노동자에게 적합합니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안전(hide)을 시장에 내놓게 만든 자본주의 체제는 대학에서 자신의 나(ego)에 화려한 모자를 씌우는 부르주아 소년보다 훨씬 더 쉽게 그의 인격(personality)을 일깨워줍니다. 노동자가 존재를 위한 투쟁에서 풍부하게 수집하는 삶의 경험은 곧바로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worth) 또는 가치(value)[11]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일은 자신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자기 인격의 가치 또는 유산 계급(propertied classes)의 세계와 관련하여 그 가치(worth) 부족에 대해 쉽게 숙고하게(to reflections) 됩니다. 사회주의자 운동을 지탱하는 것이 대중의 각성된 자기의식(awakened self-awareness)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여기서 자기의식(Self-consciousness)과 자기확신(self-confidence)은 상호 연관되는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는 다른 하나 없이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소유한 것보다 자신이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따라서 정의와 폭력, 국가와 법, 재산과 가족에 대한 생각은 상속받지 못하고 재산을 빼앗긴(dispossessed) 프롤레타리아의 머릿속에 쉽게 자리 잡습니다. 그의 생각은 현상 유지(status quo)[12]에 얽매이지 않고, 국가라는 신성한(hallowed) 기관에 머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지만, 승리할 세상이 있기 때문입니다![13]

 

이 나-철학의 가장 명확하고 심오한 구축자는 막스 슈티르너이며,

『유일자와 그의 소유』는 모든 생각하는 노동자의 손에 있어야 하는 책입니다.”

 

이 모든 사고방식은 “개인의 철학”과 평행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후자는 이미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해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현상을 개념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훨씬 더 힘들고 불완전하게 시도했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적 치료는 체계의 전체 구조를 통해 개인의 관찰을 일깨우고 지원하며, 철학적으로 사색하는(philosophizing) 개인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통찰력과 전체상(overview)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큰 이점이 있습니다. 이 나-철학의 가장 명확하고 심오한 구축자는 막스 슈티르너이며, 『유일자와 그의 소유』는 모든 생각하는 노동자의 손에 있어야 하는 책입니다.

니체는 종종 슈티르너의 후계자라고 불렸고, 연대기적으로 볼 때 이에 반대할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슈티르너는 니체보다 약 40년 전에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내용에 따르면, 슈티르너는 니체의 파편들(fragments)을 완성하고 종합하기 때문에 관계를 뒤집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철학적 교사로서 슈티르너를 우리에게 가장 추천하는 것이기 때문에, 둘 사이의 큰 대조를 언급해야합니다.

니체는 귀족, 슈티르너는 평민(올바른 의미에서 평민을 뜻함)입니다. 니체는 문화(culture)에 지친 교양인(cultured)을 위해 세련되고 예술적 문체로 글을 썼는데, 이는 무한한 여가 시간과 이해를 위한 긍정적(positive) 지식을 전제로 하며, ―노동자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어렵게 획득할 수 있습니다.

슈티르너는 편견과 환상뿐만 아니라 국가 권력과 착취(exploitation)라는 수 세기에 걸친 노예 상태의 멍에를 떨쳐내야 하는 자기중심적 사람(egoist)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의 언어는 꾸밈없고 거칩니다. 그리고 그는 자유로운 시선(free gaze)과 자유로운 마음만을 전제로 합니다. 그는 여러 곳에서 프롤레타리아의 감정과 프롤레타리아의 힘에 호소합니다.[14]

먼저 슈티르너를 읽어야 한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독교와 1840년대의 자유주의에 대한 그의 긴 논쟁의 일부는 건너뛰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인민”(people), “자유주의”, “공산주의” 같은 용어는 역사적 맥락(historical context)에서 설명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이 이미 5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곧 잊어버릴 것입니다.

부르주아지 발전의 역사, 교회와 국가, 법 이론 등에 대한 그의 발언에는 광범위한 통찰력이 풍부하게 담겨 있습니다. 빈곤(pauperism) 문제, 즉 그 시대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 그가 말한 내용은 294페이지에 나와 있습니다(하지만 아마도 몇 가지 예가 가장 좋은 통찰력을 제공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국가들이 집단 빈곤을 없애야만 한다고 요구하였다. 나한테 그것은 국가가 자기 자신의 머리를 베어서 자신의 발 앞에 놓아야만 한다고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15]

 

그리고 더 나아가 p. 296:

집단 빈곤은 나의 무가치성이고, 내가 나를 이용할 수 없다는 현상이다. [282] 그 때문에 국가와 집단 빈곤은 하나이고 같은 것이다. 국가는 나를 내 가치에 도달하도록 허용하지 않고 내 무가치함을 통해서만 계속 존재한다. 비록 국가가 나로부터 얻은 그런 소비는 오로지 내가 자식(proles)414(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을 조달하는 데 있다 하더라도, 국가는 항상 나로부터 이익을 얻는 것에, 다시 말해 나를 착취하고 철저히 이용하며, 소비하는 것에 여념이 없다. 그러니까 국가는 내가 ‘국가의 창조물’이길 원한다.

나로서의 내가 나 자신을 가치 있게 사용할(verwerte) 때, 내가 자신의 가치(Wert)를 나 자신에게 줄 때, 그리고 나 자신의 값을 스스로 만들 때, 그때만 집단 빈곤은 없어질 수 있다. 나는 번영하기 위해서(umemporzukommen) 반드시 저항해야(empören) 한다.[16]

 

이 시점에서, 불행하게도 오늘날 종종 결정적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요점을 다룰 수 있습니다.

슈티르너가 ―“아나키즘의 철학자”로 의심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철학에 대한 이러한 의혹에 대해 누구도 충분히 호되게 반대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누구에게나 이용당할(be exploited by)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슈티르너가 현대 사회주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심지어 [빌헬름Wilhelm] 바이틀링(Weitling)과 [Pierre-Joseph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의 공상적 공산주의에 맞서 싸운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철학을 사회정치적sociopolitical 체제의 좁은 틀 안에 전혀 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나(the I) ―와 연합(the union)이기 때문입니다! 슈티르너 자신(315~318쪽)이 가장 생생한 색채로 그런 어떤 연합(union)의 파업strike을 묘사한 것처럼, 연합(The union)은 현대의 투쟁 조직인 노동조합(the trade union)의 한 유형에 지나지 않습니다![17]

프랑스의 한 비평가는 군주(monarch)로서 남긴 책인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우리가 군주를 떠나는 책(un livre qu’on quitte monarque)라고 부릅니다. 글쎄요, 프롤레타리아트는 한 번쯤 주인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랫동안 노예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역할을 위해서는 주인 의식(consciousness)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슈티르너를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큰 교훈이자 결실입니다.

모든 자유는 본래—자기해방(Selbstbefreiung)이라는 말을, 다시 말해 내가 내 자신의 자기소유성(Eigenheit)을 통해 얻는 자유만큼만 나는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인정하지 못한다. 아무도 사람들의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양같이 온순한 사람들한테 무슨 쓸모가 있는가? 그들은 계속 우는소리를 한다.[18]


[1] 카를 뒤링(독일어: Karl Eugen Dühring, 1833년 1월 12일 ~ 1921년 9월 21일)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베를린 대학에서 법률학을 배운 다음 사법 실무를 수습하던 중에 실명하였다. 1864년에 베를린 대학의 철학, 경제학 사강사(私講師)가 되고 눈먼 학자로서 명성을 날렸다. 과거의 거의 모든 철학과 기독교에 반대하여 일종의 유물론인 ‘현실철학’을 제창하고 과학과 인류의 변혁자로 자처하였으며, 또한 반유대주의자였다. 1870년경부터 사회주의를 표방, 파리 코뮌을 찬미하는 진보파였으나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하였다. 1877년에 사강사 직에서 쫓겨나자 대학 내외에서 강력한 뒤링 지지 운동이 일어났다.

[2] 엥겔스는 1870년대 후반 <반뒤링론>이라는 책을 출판한다. 이 책은 독일 사회주의노동자당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오이겐 뒤링의 사상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뒤링이라는 이름 또한 엥겔스의 저작으로만 역사에 남아 있다. 하지만 당시 오이겐 뒤링의 사상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같은 당대 독일의 주요 지식인조차 확고한 지지를 표방할 만큼 위력적이었다. 뒤링은 반유대주의를 노골적으로 표방한 사상가였다. 엥겔스의 <반뒤링론>은 공상주의적 사회주의가 만연한 독일의 사회주의 운동을 과학적 사회주의를 통해 현실화하려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의도가 담긴 책이다. 지금은 이름조차 낯선 뒤링이라는 엉터리 사상가 한명을 저지하기 위해 엥겔스와 마르크스라는 두 대가는 친히 전장에 나섰다.

[3] 레오폴트 야코비(Leopold Jacoby, 1840- 1895)는 독일의 사회주의 시인이었습니다.

[4] 야코비가 쓴 Die Idee der Entwickelung, Teile 1-2는 라는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진화와 발전Entwicklung의 개념을 다룬 철학적 논문이다. 저자는 생물학, 역사,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화론의 개념을 탐구한다. 그는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발된 다양한 이론과 접근 방식을 설명합니다. 야코비는 또한 이 과정에서 인간이 수행하는 역할과 인간의 행동을 통해 발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조명합니다. 이 책은 발전 철학Philosophie der Entwickelung에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이 분야의 고전으로 간주됩니다.

[5] Kraft und Stoff는 인류에 대한 광적인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뷔히너는 물질의 불멸성과 물리적 힘의 최종성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루트비히 뷔히너(Ludwig Büchner)의 유물론은 독일 자유사상 운동 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1881년에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 자유사상가 연맹 ”(Deutsche Freidenkerbund)을 창설했습니다.

[6] 페터 조제프 디츠겐 (Peter Josef Dietzgen, 1828- 1888)은 독일의 사회주의 철학자 , 마르크스주의자 , 언론인이었습니다.

[7] https://www.marxists.org/archive/dietzgen/1887/positive-outcome/index.htm, 이 책은 1887년 출간되었다.

[8] 헨리크 요한 입센(노르웨이어: Henrik Johan Ibsen, 1828년 3월 20일 ~ 1906년 5월 23일)은 노르웨이의 극작가이자 시인이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극작가 중의 하나로, 근대 시민극 및 현대의 현실주의극을 세우는 데 공헌하였다. 따라서 그를 “현대극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9]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러시아어: 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 문자 개혁 이전: Ѳедоръ Михайловичъ Достоевскій, 영어: Fyodor Mikhailovich Dostoevsky,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옙스끼, 1821년 11월 11일/구력 10월 30일 ~ 1881년 2월 9일/구력 1월 28일)는 러시아의 소설가이다.

[10] 리처드 페도르 레오폴트 데멜 (Richard Fedor Leopold Dehmel, 1863년 11월 18일 ~ 1920년 2월 8일)은 독일의 시인이자 작가였습니다.

[11] worth는 value와 바꿔 쓸 수도 있지만 worth는 주로 인간의 정신으로 느낄 수 있는 가치를 말함: Few knew his true worth. 아무도 그의 참 가치를 몰랐다. value 효과상의 가치, 중요성, 또는 금액으로 환산되는 가치: the vɑlue of experience 경험의 가치〔중요성〕.

[12] 기존의 사회구조, 가치관, 체제 등을 현재의 상태로 유지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13] “그러나 잃어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어떤가? [126] 그러니까 프롤레타리아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는 잃어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자신의 ‘아무것도 없음’을 위해 국가의 보호가 필요로 하지 않다. 국가의 보호는커녕, 피보호자에게서 저 국가의 보호를 빼앗는다면, 그는 이익을 얻을 것이다.”, 『유일자와 그의 소유』, 180쪽.

[14] 『유일자와 그의 소유』, “노동자는 엄청난 힘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만일 언젠가 그들이 엄청난 힘을 철저히 자각하고 그 힘을 사용하게 되었다면, 아무도 그들에게 저항할 수 없다. 그들은 동맹 파업을 하고, 노동의 산물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향유하기만 하면 된다. 바로 이것이 여기저기에서 불쑥 나타나는 노동 불안의 의미이다.” 182쪽.

[15] 『유일자와 그의 소유』, 390쪽. 독일어본은 280쪽이다.

[16] 『유일자와 그의 소유』, 393쪽. 독일어를 병기한 것은 슈티르너의 글쓰기 특징을 살히고자 한 것이다. 그는 흔히 유사한 단어를 활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치면서 상대방의 주장을 조롱하곤 한다.

[17] 『유일자와 그의 소유』, “노동자는 엄청난 힘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만일 언젠가 그들이 엄청난 힘을 철저히 자각하고 그 힘을 사용하게 되었다면, 아무도 그들에게 저항할 수 없다. 그들은 동맹 파업을 하고, 노동의 산물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향유하기만 하면 된다. 바로 이것이 여기저기에서 불쑥 나타나는 노동 불안의 의미이다.” 182쪽. 이 밖에도 『슈티르너 비평가들』에서 그리는 연합도 참조하면 좋습니다.

[18] 『유일자와 그의 소유』, 261쪽.

이규성 철학 연구회 2025년 6월 제18차 정기세미나│『중국현대철학사론』 5장. ‘체용불이’와 ‘흡벽’ 생성론: 웅십력(熊十力)-발제: 김제란│2025.06.20. 영상 [월례발표회•세미나]

– 주제: 『중국현대철학사론』 5장. ‘체용불이’와 ‘흡벽’ 생성론: 웅십력(熊十力)
– 발제: 김제란 선생님
– 일시: 2025년 6월 20일(금) 오후 4시
– 장소: 한국철학사상 연구회 세미나실 & ZOOM 온라인 회의실

벌써 연구모임이 18차에 해당하는군요. 2개월마다 한 번씩 했으니 3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이규성 선생의 저작 중 마지막으로 『중국현대철학사론』(2020)을 읽고 있는데, 총 8장 가운데 이번이 5장에 해당합니다.
5장에서는 웅십력을 다루고 있습니다. 웅십력은 이규성 선생의 소개에 의하면, 신해혁명에 가담했으나 군부의 타락과 부패를 보고 실망하여 이후 철학에 뜻을 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불교의 유식학을 연구하면서 우주의 본체를 증득하려 했으나 불교의 탈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양명학의 성현지학과 연결해서 우주를 관통하는 내적 생명을 통해 본체와 생멸의 세계를 하나로 결합하려 시도했다고 합니다.
아래 인용문은 그의 고민을 잘 표현하는군요.

“그러한 참된 것이 없다면 환상이라고 깨닫는 자는 누구일 것인가? 이러한 깨달음이라는 현상이 사라지는 것이라면 환상은 또 왜 있는가?”

“과연 환상이 쓸모없는 것이라면 어찌해서 참된 것에 의지해서 환상이 일어나는가/ 참된 것에 의지해서 환상이 일어나는 데 왜 환상을 끊고 참된 것을 찾는가?”

1949년 중국 사회주의 시대, 그는 비타협적 정신 속에서 고립 속에 살아갔고 1967년 문화대혁명에서 비판받았으며, 1968년 병원에서 쓸쓸하게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의 시대 사람들은 그를 ‘광철(狂哲)’이라 불렀는데, 철학자의 고독을 잘 보여줍니다.
웅십력의 철학을 소개한 이규성 선생의 글 속에는 광철 웅십력을 통해 그 자신이 이 시대에 느끼는 고독을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튜브 출처: https://youtu.be/Sepe2ydYln4

헤겔 형이상학 산책31-무한 판단에 대해[흐린 창가에서- 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31-무한 판단에 대해

1)

존재론 2장 현존 2절 C 항의 제목은 ‘무한성’이다. 실제로 헤겔의 진정한 무한 개념 즉 ‘대자 존재’는 2장 3절에서 다루어지니, 그 앞의 2절 C 항은 사실 진정한 무한 개념에 이르는 과정에서 등장한 무한 개념을 다룬다. 여기서 다루어지는 것은 ‘악 무한’과 ‘무한 진행’이라는 개념이다.

무한성 개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양적 범주에 속하는 무한성 개념이며, 다른 하나는 질적 범주에 속하는 무한성 개념이다. 전자는 구체적 예를 들자면, ‘무한대’ ‘무한소’와 같은 개념을 다루며, 후자는 ‘규정할 수 없는 것’ 등을 말한다.¹

주1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수학적 무한성과 역학적 무한성을 구별했는데, 그 가운데 역학적 무한은 우리가 저항할 수 없도록 엄청난 위력을 지닌 자연을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솟아오른 절벽이나 엄청난 화산의 폭발과 같은 것이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것도 양적인 무한성에 속한다. 칸트에서는 질적 무한성은 선험적 분석론에서 제시한 것과 같이 감각의 정도에서 제한적인 것을 말한다.

칸트는 양적 무한성 개념 다음에 질적 무한성을 다루었으나,² 헤겔은 질적 무한성 개념을 양적 무한성 개념보다 먼저 다루었다는 차이가 있다. 헤겔 논리학 존재론 2장은 질적 범주를 다루므로, 여기서 무한성 개념은 질적 무한성 개념이라 하겠다. ‘악 무한’이니, ‘무한 진행’ 또는 ‘진 무한’ 등의 개념은 모두 질적 무한성 개념과 관련된다.

주2 칸트에서 12 범주, 판단 형식은 먼저 양 범주가 나오고 다음에 질 범주가 나온다. 그러나 헤겔에서 12 판단 형식은 먼저 질 범주가 나오고 양 범주가 나온다. 칸트와 달리 헤겔에서 각 범주는 내적으로 다른 범주로 이행하므로 이런 이행 연관에서 볼 때 양 범주는 질 범주 끝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2)

헤겔 논리학의 전개 과정이 칸트의 12개 판단 형식 또는 12 범주를 바탕에 깔고 있다고 했는데, 그것에 비추어본다면, 여기서 무한성 개념을 통해 다루어지는 것은 소위 질적 범주의 무한 판단 형식이다. 이제 헤겔의 무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이 무한 판단 형식을 사유의 실마리로 삼아서 시작해 보자.

알다시피 형식논리학에서는 무한 판단 형식이란 독자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무한 판단은 부정의 부정이니, 긍정 판단과 같다. 형식논리학의 가장 기본적 법칙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중 부정의 법칙 즉 ‘-(-p)=p’이다. 형식논리학에서 무한 판단 형식을 굳이 따로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칸트는 선험 논리학의 차원에서 무한 판단 형식에 고유한 의미가 있다고 보면서 이를 독자적 판단 형식으로 격상했다. 칸트는 질적 범주는 그 의미가 시간의 내용과 관련된다고 보면서, 질적 무한성의 판단 형식 또는 무한성 범주는 ‘제한성’을 의미한다고 본다. 참고로 질적 범주에서 긍정 판단 형식은 실재성을, 부정 판단 형식은 부정성을 의미한다.

칸트가 무한 판단 형식을 독자적인 것으로 승인했을 때, 여기에는 무한 판단 형식에 관한 칸트 나름의 고유한 생각이 들어 있다. 보통 무한 판단 형식은 긍정적 무한 판단 형식과 부정적 무한 판단 형식으로 구분된다. 부정적 무한 판단은 계사는 부정이고 여기서 그 유에 속하는 모든 술어가 부정된다. 예를 들자면 “이것은 빨갛지 않고, 파랗지도 않으며, 노랗지도 않다 등”이다. 긍정적 무한 판단은 계사가 긍정이며, 여기서 술어는 그 유에 속하는 모든 술어 전체를 부정하는 술어다. 구체적 예를 들자면 “이것은 불멸적 존재다”와 같다.³

주3 부정적 무한 판단은 다음과 같이 변형할 수 있다. ‘이것은 P가 아니며, -P인 것도 아니다.’ 예를 들자면 “이것은 빨갛지 않고 빨갛지 않은 것도 아니다”와 같은 판단이다. 이 식은 긍정 판단과 부정 판단이라는 모순적인 것이 결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식은 부정적 무한 판단과 긍정적 무한 판단의 중간적 형태다. 사실 긍정적 무한 판단과 부정적 무한 판단 그리고 모순 판단은 차이가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만 다르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의 판단 형식으로 집어넣은 것은 긍정적 무한 판단의 형식이다. 그런데 긍정적 무한 판단에 관한 위의 예에서 술어 ‘불멸적 존재’란 ‘어떤 가사적 존재도 아닌 것’인데, 형식논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런 ‘불멸적 존재’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을 지시하는지를 알 수 없다. 그것에 도달하려면 모든 가사적 존재를 부정해야 하므로 그런 불멸적 존재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불멸적 존재가 어떤 구체적 존재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한자를 지시하는 술어가 되는데, 무한자는 경험적으로 주어지지 않으므로 시간적 내용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칸트가 무한 판단 형식을 12 범주에 집어넣은 것은 무한자에 대한 어떤 경험적 단서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면서 칸트는 그 무한적 술어가 적용되는 경험적 단서 즉 시간적 내용을 ‘제한성’이라고 했는데, 긍정 판단 형식의 의미인 ‘실재성’도 아니고 부정 판단 형식의 의미인 ‘부정성’도 아닌 제한성이란 대체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칸트는 선험적 분석론에서 지성 개념의 도식성을 다루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감각은 각기 도나 양을 자기며 이것에 의해서 감각은 동일한 시간을 즉 한 대상의 동일한 표상에 관한 내감을, 감각이 없음-영 또는 부정-에 이르러 끝날 때까지 다소간에 메꿀 수 있다.”(칸트, 순수이성 비판, 최재희 역, 박영사, 1972, 170쪽)

이어서 칸트는 지성 개념의 원칙을 다루는 가운데 ‘지각의 예료’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험적 직관에서 감각에 대응하는 것이 실재성이요, 실재성의 결여에 대응하는 것이 부정성 즉 영이다. 모든 감각은 줄어들 수 있고 따라서 감각을 없애서 점차로 소멸할 수 있다. 그래서 현상에서는 실재성과 부정성 사이에 많은 가능적인 중간적 감각들의 연속적 연관이 있다.”(칸트, 순수이성 비판, 최재희 역, 박영사, 1972, 185쪽)

여기서 말하는 ‘중간적 감각들’이 말하자면 감각의 내포량에서 제한적인 것과 관련된다. 무한 판단 형식은 이런 시간적으로 주어지는 중간적 감각 내용에 상응하는 판단 형식이라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 무한 판단 형식에 관한 칸트의 설명은 감각의 정도 즉 내포량과 관련되는데, 내포량의 제한성이 왜 무한성의 범주와 관련되는지에 대한 분명한 설명은 없다. 그러나 짐작하건대 제한성은 긍정성과 부정성의 가운데 있으며, 그런 한 긍정과 부정의 결합이다. 앞에서 주3에서 설명했듯이 무한 판단은 긍정적 무한 판단이든 부정적 무한 판단이든 모순 판단으로 환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칸트가 제한성을 무한 판단의 의미로 본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제한성은 내포량의 측면을 말한다. 그런데 질적 판단 범주에서 내포량을 끌어들이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 없다. 나중에 보듯 헤겔은 외연량과 내포량이라는 개념을 양적 범주와 관련해서 다룬다.

4)

헤겔 역시 논리학에서 무한 판단 형식을 끌어들여 독자적 의미를 부여했는데, 그 이유는 앞에서 칸트가 그러했듯이 무한 판단 형식이 독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헤겔 역시 무한성 개념을 ‘제한성’에서 끌어냈다는 것이다. 물론 헤겔은 제한성을 감각의 정도 즉 내포량의 정도로 파악하지 않는다. 제한성 개념은 앞에서 설명했는데, 기억을 위해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이미 앞에서 유한성의 범주를 다룰 때, 규정성[Bestimmtheit]과 규정[Bestimmung]을 구분하였다. 규정성이 감각적 성질과 상응하는 것이었다면, 규정은 일반적인 속성과 상응하는 것이었다. 인식적 경험이 일반적 속성을 발견하기에 이름에 따라서 논리적 범주도 규정성에서 규정으로 발전했다.

어떤 것은 일반적 규정을 지니지만, 동시에 외적이 여러 규정성을 지닌다. 이 규정성은 어떤 것에 대해 무차별한 외적인 것이다. 예를 들자면 소금에서 짠맛이 규정이라면, 흰색은 무차별한 규정성이며, 이런 규정성은 외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다. 소금은 흰색이기도 하며, 보라색이기도 한데, 여하튼 짠맛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것에서 우리의 경험이 더 발전하면 어떤 것에서 여러 속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다양한 속성들은 한편으로 독립적인 성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사물의 속성인 한에서 동일한 어떤 사물에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즉 시공간적으로 공존한다는 말이 아니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동시에 있어야 한다. 이를 비유적으로 교차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5)

어떤 사물에 대해 이렇게 교차하는 속성들이 발견될 때 이런 인식적 경험을 기초로 해서 어떤 속성은 ‘그 자체에서 자기를 부정’하게 된다. 왜냐하면, 어떤 속성은 다른 속성이 있으므로 해서 더는 어떤 사물의 고유한 규정 즉 그 자체 존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규정 즉 속성이 다른 규정에 대립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에서 자기를 부정하는데, 이 규정이 부정된다는 점에서는 제한성이다. 그 자신에서 자기를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당위다. 그 사물의 당위는 제한을 넘어선다. 예를 들어 소금의 속성인 짠맛은 소금의 다른 속성인 입방체와 대립한다. 그런 점에서 짠맛은 제한성을 지닌다. 그런데 이런 제한성을 스스로 넘어선다는 점에서 짠맛은 동시에 당위다.

여기서 보듯 헤겔은 제한성을 칸트에게서처럼 감각의 정도와 관련시키지 않고 어떤 속성이 지닌 제한성과 관련시킨다. 즉 어떤 속성이 그 자체에서 자기를 부정한다는 측면 때문에 그것은 제한적인 것이다.

그 자체에서 자기를 부정하면, 외적인 부정에서처럼 그것 외 다른 모든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소금의 ‘짠맛’을 그 자체에서 부정하면, ‘수3’이 되거나 ‘코끼리’가 되거나 ‘학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짠맛’과 다른 속성 즉 ‘입방체’가 된다. 즉 그 부정은 일정한 한계 내에서 일어나는 부정이며, 그러므로 그 부정은 ‘특정한 부정[bestimmte Negation]’이다.

이러한 그 자체에서 자기를 부정한다는 것은 외부에서 부정된다는 것과 구분된다. 소금이 ‘흰색’이었다고 ‘보라색’으로 바뀌면, 즉 규정성이 변화하면(양상 변화) 이는 외적인 양태에서의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변화는 소금의 ‘흰색’이 그 자체에서 일어나는 부정은 아니며, 외적인 방식으로 일어나게 된 부정이다.

6)

어떤 속성 즉 규정이 제한적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당위와의 관계는 앞에서 설명했다. 어떤 것이 제한적이므로 그 자체에서 부정이 일어나면서 부정 판단 형식이 출현한다. 그런데 이런 하나의 속성은 다른 많은 속성과 교차하고 있으므로 이런 자기 부정성은 끝없이 계속될 수 있다. 헤겔은 이런 계속되는 부정성을 통해 무한 판단 형식이 출현한다고 본다.

칸트에서 무한 판단 형식이 긍정적 무한 판단이었다면 헤겔에서 무한 판단 형식은 일단 부정적 형식을 취한다. 구체적 예를 들면 “소금은 짠맛도 아니고, 입방체도 아니며, 또 …도 아니다 등.

“그러나 무한한 것은 단적으로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무한한 것은 유한한 것의 부정으로서 규정되며, 따라서 무한한 것 속에서는 명백하게 제한성과의 관계는 제거되고 그런 제한성은 무한한 것에서는 부정되기 때문이다.”(논리학 재판, GW21, 124쪽)

그러나 이런 무한 판단 형식은 사실 부정 판단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반복되는 것일 뿐 제한성의 수준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헤겔은 이런 무한성을 악무한이라고 하며, 이런 악무한의 단계를 다시 벗어나게 될 때 진정한 무한 개념이 출현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제한성의 부정을 통해서 무한한 것은 사실상 이미 제한성과 유한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주요한 것은 무한성의 진정한 개념은 악무한으로부터 구별되며, 이성의 무한한 것은 지성의 무한한 것과 구별하는 것이다. 후자는 유한화된 무한한 것이다.”(논리학 재판, GW21, 124쪽)

웹진 연재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 단행본 출간에 즈음하여 [이종철의 에세이 철학]

웹진 연재 ‘『그대에게 가는 먼 길』 1부’ 단행본 출간에 즈음하여

 

이종철(소설가)

 

∗웹진 [연재소설]  <그대에게 가는 먼 길>이 단행본 출간을 맞아(2025.04.08.) 연재를 잠정 멈추고 자전적 소설에 대한 작가의 변을 들어보려합니다. 격동의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대학에서 강사와 연구자로 살아간 한 인물이 소설이란 장르를 이용해 자신의 철학적 삶과 삶의 철학을 어떻게 표현하려 했는지 그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그대에게 가는 먼 길』이란 책은 내가 처음 써 본 소설이다. 이 소설은 격동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다. 이 소설은 2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는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이고, 2부는 1990년대 후반부부터 2020년대 전반부에 걸쳐 있다.

필자가 이 소설을 쓴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 시대를 치열하게 겪은 한 개인의 사적인 삶을 정리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철학적으로 반성해 보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필자는 나 자신의 삶을 주변부 인생(marginal man)으로 규정하곤 했다. 나는 상고를 나와 법대에 진학했지만, 그것은 내가 향학열이 높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몸이 불편해서 은행이나 기업체에 입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오기가 있었는지 나는 유신 독재 시절에 대학을 보낼 때 법대생으로서 사법고시 1차 시험 한 번 보지 않았다. 법대를 졸업하고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을 해서 박사 종합시험까지 통과했지만, 나는 대학을 떠나 거친 사회에서 10년을 보냈다. 남들은 유학을 가거나 학위 논문 쓰느라고 매진할 때 나는 일반적인 연구자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사회 경험을 많이 했다. 나중에 회사가 부도가 나서 실업자 생활을 할 때 유학을 다녀온 후배들과 다시 만나면서 대학으로 복귀할 기회를 가졌다. 뒤늦게 학위 논문을 썼지만 그 후 나의 삶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선생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기 힘든 시간 강사로 점철되었다. 그런 삶이 싫어서 몽골의 울란바토르에 한국인이 세운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생각보다 너무나 열악한 환경 때문에 1년 만에 다시 한국의 대학으로 복귀했다. 모 대학의 초빙교수로 정년퇴직을 한 다음에는 비로소 프리랜서 작가로서 자유롭게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런 나의 삶을 ‘주변부 인생’이란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때문에 나는 중심을 해체시키려 하고, 기성에 대해 비판과 부정으로 대하는 것이 체질화되었다. 임제 선사의 “부처를 보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보면 조사를 죽여라.”라는 말은 나의 삶과 정신을 이끄는 길잡이와도 같다.

다들 알고 있듯, 한국의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한국인들은 유신 독재와 광주 항쟁, 민주화 투쟁과 1987년의 민주주의의 쟁취 등으로 점철된 고통스럽고 의미 있는 역사적 경험을 겪었다. 동시에 이 시기는 사회과학의 전성기이자 온갖 이론과 사상이 난무하던 지적 르네상스의 시기이기도 했다. 물론 특정한 세계관과 사상이 지배적이기는 했지만, 이 시대는 그것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상으로 한국 사회의 변혁운동과 맞물려 상호 피드백 하면서 백가쟁명의 절정을 이루었다. 필자는 이 시기를 프랑스의 6.8 혁명 못지않은 시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인들은 6.8 혁명을 겪으면서 자신들의 이론과 사상을 정립해서 세계인들에게 내 보였던 반면, 한국인들은 그런 귀중한 역사적 체험을 그저 그런 과거의 기억으로만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우리가 겪은 이 시대의 체험을 철학적으로 반성하고 의미화하고 싶은 욕구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표현해 본 것이다.

필자의 본업은 철학이고 그중에서도 서양철학이자 독일 근대철학이다. 이런 철학자가 소설을 쓴다는 것이 한국 사회에는 다소 생소해 보이지만, 프랑스 철학에서는 그다지 낯설지 않다. 사르트르의 경우는 철학자로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는 소설도 꽤 썼다. 나중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지만 사르트르는 철학자의 신념을 지키고자 그 상을 거부했다. 포스트모던 사상이 주류가 됨에 따라 전문 영역을 넘어 새로운 글쓰기 실험도 이루어지고 영역들 간에 소통도 자연스럽다. 10여 년 전 영화로도 나온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인 파스칼 메르시어의 본명은 피터 비에리(Peter Bieri)인데, 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 철학부 출신으로 독일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한 철학교수이다. 한국에서도 찾아보면 없지는 않다. 경성대 철학과의 김재기 선생이 2002년에 장편 『알라 하임』을 쓴 적이 있다. 아무튼 지금의 시대는 전통적인 영역을 벗어나는 일이 시대적 트렌드가 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일상을 소재로 쉬운 일상어를 가지고 자신만의 철학을 담을 수 있는 ‘에세이철학’에 심취해왔다. 거의 매일같이 쓰는 철학 평론을 페이스 북과 네이버의 프리미엄 서비스나 브런치 스토리 같은 곳에 올리다 보니 동서와 고금을 넘나들고 전문 영역을 넘어서는 글을 쓸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문체도 자연스럽게 학자들의 논문 형식의 문체와 에세이 성격의 문체를 넘나드는 경험을 할 수가 있었다. 이 소설은 그런 실험적 글쓰기의 연장 속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필자는 이 소설의 형식을 통해 본업인 철학에 대해 반성하는 경험을 많이 했다. 철학자가 소설가들에게 배워야 것이 하나 있다. 철학자들은 허구한 날 남의 철학이나 사상을 끌어들여 해석하고 해설하는 일에 평생을 보내는 데 비해 3류 소설가라 해도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체험과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려고 한다. 물론 철학자들은 개념화된 사유를 하기 때문에 주관적 언어를 쓰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한국의 철학자들은 그 정도가 심해서 남의 언어와 남의 철학을 가져오지 못하면 사유를 하지 못할 정도다. 때문에 그들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는 자신들의 시대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철학을 구성하기보다는 여전히 바깥의 수입 철학에 의존하고 2천 년도 넘은 공맹과 노장사상을 주석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있다. 이런 지적 식민성과 사대주의가 한국의 지성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겪은 위대한 경험을 과거로 묻어 버린 채 그저 바깥에서 들어온 새로운 이론과 사상 혹은 오래된 사상에 목을 매달고 있을 뿐이다. 『조선 사상사』를 쓴 교토대 철학과 교수 오구라 기조의 말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외래 사상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재구성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으로 바꿔치기하는 전면적 개변(改變)에만 의존하는 성향이 강하다. 한 사상이 물밀듯 들어와서 한 시대를 지배하다가 시효가 되어 사라지고 다른 사상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개변의 일반적 형태이다. 과거 불교와 유교가 그랬고, 근대에 들어서는 유교와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그랬다. 손바닥 뒤집듯 일어나는 개변의 가장 큰 단점은 사상의 축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데 있다. 외래 사상만을 끊임없이 찾다 보니까 그런 사상의 축적이 이루어지기 힘들고, 더욱이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는 데도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는 오늘날 한국철학계가 부닥친 커다란 딜레마의 진실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이런 생각과 틀을 바꿔야 되지 않을까라는 것이 필자가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시대 체험과 생각, 자신들의 언어를 살려서 자신들의 철학을 정립해 보자는 것이다.

이 소설은 격동의 한국 사회를 한 개인의 지적 모험을 통해 재구성해 보자는 데 있지만, 사실 이런 시도는 잘못하면 죽도 밥도 되지 못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필자의 시도는 철학적 소설을 겨냥했지만 철학도 되지 못하고 소설이라는 면에서도 실패할 수 있다. 최대한 이러한 실패를 피하려고 했지만, 그 판단은 필자의 손을 떠나 읽는 독자들이 내릴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문제의식에 대한 공유를 통해 우리 철학을 정립하는데 하나의 초석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파주의 우거에서

2025년 3월

헤겔 형이상학 산책30-당위와 제한, 세계의 유한성[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29-당위와 한정성

1)

앞에서 내재 존재와 한계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어떤 것의 속성은 어떤 것을 어떤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점에서 내재 존재다. 그러나 그 속성은 동시에 어떤 것을 어떤 것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한계기도 하다. 예를 들어 짠맛은 소금을 소금으로 만들며, 짠맛이 없으면 소금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의 경험이 또 발전한다. 우리는 소금이 짠맛만이 아니라 소독제라는 속성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지금까지 소금은 짠맛을 지닌 것으로만 알았으나 경험이 증가하면서 우리는 소금이 짠맛이 아니더라도 소금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즉 짠맛은 소금에 공통적인 필연성 즉 속성이지만, 소금을 소금으로 만드는 진정한 고유성은 아니다. 짠맛을 소금의 내재 존재인 동시에 한계로 보았던 판단은 이제 자기를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통해 새로운 판단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당위와 제한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통해 규정되는 판단이다.

내재 존재와 한계라는 범주나 당위와 제한이라는 범주는 동일한 속성(예를 들어 소금의 짠맛)을 규정하는 논리적 범주, 판단 형식이다. 다만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른 범주가 사용되었을 뿐이다. 어떤 것의 속성이 아직 하나만 드러나서, 그것이 곧 어떤 것의 고유성으로 여겨지면, 여기서 한계나 내재 존재라는 범주가 사용된다. 그런데 어떤 것의 속성이 여러 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 속성 사이의 관계 때문에 새로운 범주 즉 당위와 제한이라는 범주가 사용된다.

2)

구체적 예를 들어 설명하자. 소금은 그 속성으로 짠맛만 지니는 줄 알았는데, 입방체¹라는 속성까지도 지닌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하자. 양자가 서로 무차별한 것이 아니라 동일한 소금에 동시에 존재한다.

주1 입방체는 소금의 분자 결합체(Nacl)의 구조를 말한다.

여기서 짠맛과 흰색의 관계와 짠맛과 입방체의 관계가 다르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짠맛은 흰색이 아니지만, 흰색과 짠맛은 서로 무차별하다. 소금에서 흰색은 우연적 성질이기 때문이다. 짠 소금에서 흰색은 보라색으로 변하더라도, 그 변화는 소금과 무관하다.

반면 소금에서 짠맛과 입방체는 둘 다 소금에 내재하는 속성이니 짠맛과 입방체는 서로 떨어져 있을 수는 없다. 서로 다른 것이면서 서로 떨어져 있을 수 없는 관계가 짠맛과 입방체의 관계다. 우리는 사유를 통해 양자를 반성적으로 관계하게 한다. 소금에 속하는 두 속성 짠맛과 입방체는 서로 대립하는 타자다. 짠맛은 입방체가 아니며 입방체는 짠맛이 아니다.

입방체는 짠맛과 대립하지만, 짠맛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짠맛 그 자체에[an ihm selbst] 존재한다. 그 자체에 존재한다는 것은 내재하면서도 외재적이라는 뜻이다.²

주2 고대에서는 속성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다공성 개념을 끌어들였다. 즉 각자에 구멍이 있어서 다른 것이 그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다공성이라는 개념에는 각자가 공간 속에 따로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제거되지 않았다. 헤겔은 두 속성이 서로 대립하면서도 통일되는 관계를 ‘그 자체에서[an ihm selbst]’라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이 관계는 개념적으로 ‘부정적 통일’로 규정되기도 한다.

속성들 사이에서 내재적 부정, 그 자체에서 부정이라는 이 관계에 관해 헤겔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나 규정은 타자 존재를 어떤 것의 그 자체 존재에 속하는 것으로 포함할 것이며, 타자 존재의 외면성은 한편으로는 어떤 것의 고유한 내면에 들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외면적인 것으로서 그 내면성으로부터 구분된 채 머무른다.”(논리학 재판, GW21, 118)

“나아가 [내재적] 타자 존재는 한계로서 부정[외부적 타자존재]의 부정으로서 규정되는 가운데 어떤 것에 내재하는 타자 존재는 두 측면의 관계로서 정립된다. 어떤 것의 자기와의 통일성은 … 자기 자신에 대립하는 관계이니, 다시 말하자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규정이 자신에 내재하는 한계를 자기 속에서 부정하면서 자신의 한계에 관계하는 것이다.”(논리학 재판, GW21, 119)

3)

어떤 것은 자신의 한계가 그 자체에서 타자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갈 수밖에 없다. 부정적인 타자가 이미 자기 안에 침투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계는 해체되니 어떤 것은 한계를 넘어가게 된다.

한계는 한계이면서 동시에 내재 존재다. 그러므로 한계가 해체되면 그것은 곧 자기를 부정한다는 말이 되니,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은 자기를 넘어선다는 말이 된다. 그런 자기 부정 때문에 이제 한계는 단순한 경계선이 아니라 그것을 몰락하게 하는 것 즉 제한하는 것[Schranke]]임이 드러나게 된다.

여기서 제한한다는 것은 그것을 넘어 나가지 못하게 하는 울타리라는 의미가 아니다. 여기서 제한한다는 것은 곧 외부의 침투를 막는 울타리를 해체함으로써 더는 그것이 되는 것을 제한한다는 것 다시 말하자면 그것을 몰락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모든 존재는 몰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몰락은 외부에서 어떤 힘이 가해지면서 시작되더라도 이미 자신 속에 타자성을 포함하고 있기에 몰락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런 가능성 때문에 모든 것은 스스로 몰락한다. 즉 모든 존재자는 몰락하는 존재 즉 제한된 존재, 즉 유한한 존재다.

“어떤 것에[an] 있는 한계가 제한이라 불리려면, 어떤 것이 자기 내에서 동시에 자기를 넘어가는 것이어야 하며, 그 자체에서 비존재자로서 한계에 관계해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 어떤 것의 현존은 그의 한계 옆에 한계와 무차별하게 머무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것은 사실 자신의 한계를 다만 넘어갈 뿐이다. 왜냐하면, 어떤 것은 한계가 지양된 존재 즉 한계에 대해 부정적인 그 자체 존재이기 때문이다.”(논리학 재판, GW21, 119)

이 구절에서 “한계가 지양되어 있다”라는 말은 한계 안에 머물러 자기를 지킨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계가 사실 그 자신의 내재 존재인 한에서 그 말은 자기를 넘어선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한계는 동시에 내재 존재 즉 어떤 것의 고유성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어떤 것은 자기의 한계를 넘어가는 한, 지금까지 그의 고유성으로 규정된 것은 이제 주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소금은 짠 것이었으나, 이제 더는 짠맛이 소금의 고유성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주관적 고유성을 헤겔은 ‘당위[Sollen]’라 한다. 독일어 ‘Sollen’은 흔히 당위로 번역된다. 그러나 존재자를 논하는 존재론에 갑자기 윤리학적 개념이 튀어나와 혼란스럽다. 독일어 ‘Sollen’은 ‘가정된다’ 또는 ‘흔히 그렇게 여겨진다’라는 의미도 있다. 그러므로 ‘Sollen’이라는 말은 가정적으로 그렇게 여겨지는 것 또는 요청된 것이라는 의미에서 주관적 당위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³

주3: 예를 들어 다음 문장을 보자. “Es soll morgen schneien.” 이 문장은 “내일 눈이 와야 한다”라는 말이 아니고 “내일 눈이 올 것 같다, 또는 내일 눈이 온다고 한다”라는 추측 또는 가정의 뜻이다. 도덕적 당위라고 할 때 그것은 객관적인 법이 아니라 요청된 것, 요구되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4)

소금은 짠맛이 아니더라도 소금이 될 수 있으니, 짠맛은 소금의 주관적인 고유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금의 짠맛은 흔히 그렇게 여겨지는 가정이나 주관적 요청일 뿐이다. 그것이 당위라면 이미 그 말 속에 그것은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 함축된다. 소금의 짠맛은 동시에 소금은 이미 짠맛이 아니더라도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당위는 이중적 규정이 있다. 하나의 규정으로 보면, 가정은 부정에 대립하는 그 자체 존재하는 규정이다. 다른 규정에서 보면, 가정은 제한성으로서 비존재 즉 그 자체로 존재하는 규정과 구분되지만 동시에 그 스스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규정인 비존재이다.”(논리학 재판, GW21, 119)

소금을 예로 들어 볼 때 소금에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규정’ 즉 짠맛과 ‘구분되지만, 동시에 그 스스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규정’은 소금에서 나름대로 하나의 속성(예를 들어 소독제라는 규정)이다. 그것이 소금의 짠맛 자체에서 이미 존재하는 ‘비존재’다. 이 비존재 때문에 짠맛으로서 소금은 주관적 요청인 당위에 불과하다.

그러고 보면 소금의 짠맛은 여러 가지 논리적 범주가 된다. 그것은 한계이며, 내재 존재고 제한성이며 당위다. 동일한 짠맛이 이처럼 맥락에 따라서 다양한 범주로 서술된다. 동일한 것이 이처럼 서로 다른 논리적 범주로 서술되는 것은 그만큼 경험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짠맛이 소금의 고유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경험을 통해 짠맛이 아니더라도 소금이 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겔은 이런 경험의 과정을 거꾸로 설명한다. 즉 짠맛은 이미 자기 내에 타자성을 포함하므로 소금은 짠맛을 넘어가며, 짠맛은 소금의 요청이나 가정 즉 당위에 불과하니 진정한 고유성은 아니다는 것이다.

5)

어떤 것의 한계가 곧 어떤 것의 제한성이라는 것 즉 어떤 것은 자체 내에서 자기의 부정으로 이행한다는 것은 질적으로 부정적인 판단 형식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서 중요한 단서가 된다.

어떤 질적 긍정 판단 ‘이것은 빨갛다’를 부정하는 판단이 곧 ‘이것은 빨갛지 않다’라는 질적 부정 판단이다. 여기서 부정은 형식논리학에서는 판단 내용에 대해 외면적으로 일어나며, 판단이 현실에 관한 것이라면, 그 부정은 사유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헤겔 논리학에서 질적 부정 판단은 형식논리학에서와 다른 의미다. 헤겔에서 질적 긍정 판단은 ‘이것이 희다’이지만, 질적 부정 판단은 ‘이것은 짜지 않다’이다. 그게 그것처럼 보이지만, 두 판단 사이에는 엄청난 경험의 발전이 전제된다.

‘이것은 짜지 않다’는 판단은 ‘이것은 희다’에서 ‘이것은 짜다’라는 판단으로의 발전이 전제된다. 전자는 우연적 감각적 성질의 판단이며 실재성의 논리적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후자는 사물의 필연적 속성에 관한 판단이다. 더 나가서 ‘이것은 짜지 않’다는 판단은 단순히 사유에서 ‘이것은 짜다’라는 판단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이것이 짜지 않다’라는 판단이 나오려면 우리의 경험이 더 발전해서 어떤 것은 짜지 않더라도 어떤 것이 될 수 있으며 즉 짜다와 대립하는 다른 속성이 그것에 들어 있다는 사실이 경험되어야 한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이것은 짜다’라는 판단 그 자체에서 ‘이것은 짜지 않다’라는 판단으로 이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이행은 판단 내용인 사태와 대립하는 사유에서 일어나는 부정이 아니며 판단 자체에서 일어나는 부정이다. 판단 형식이 무슨 조화를 부려서 새로운 판단으로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경험을 토대로 그런 이행이 일어난 것이지 단지 사유에서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사유가 부정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유는 공허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유가 현실에 따라가야 하는 한에서는 경험이 토대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런 판단으로 이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6)

모든 것은 몰락한다. 우리는 자주 역사가 남긴 앙상한 유해를 보면서 비애에 젖어 그렇게 말한다. 세계가 유한하다고 할 때, 양적인 의미에서 그럴 뿐만 아니라 세계 속의 모든 존재자가 몰락하고 사라진다는 의미를 지닐 것이다. 유한한 세계 앞에서 비애에 젖어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의 삶 역시 언제가 끝나고 말 것이 아닌가?

헤겔의 관점에서 본다면 세계가 유한하다는 생각은 일면에서는 옳고 일면에서는 그르다. 세계가 유한한 것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에 관해 우리가 주관적으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물의 고유성을 나름대로 규정해 놓는다. 이런 규정은 사실 주관적이며 그렇기에 몰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세계가 유한하다는 것은 우리의 사유가 주관적인 것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한에서 불가피한 결론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세계의 유한성은 영원하다고 한다. 헤겔은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유한성은 사물이 지닌 불변적 성질 즉 그 타자 다시 말해 긍정적인 것으로 이행하지 않는 성질이다. 그러므로 유한성은 영원하다.”(논리학 재판, GW21, 117)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세계가 유한하다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어떤 것이 한계를 지닌다는 것은 어떤 것은 그 한계적 속성이 아니라 다른 속성도 지닌다는 것이며, 따라서 어떤 것은 그 한계 넘어 지속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소금은 짠 것이라면 이미 그 속에 소금에는 짠맛과 대립하는 다른 속성이 있다는 말이며, 따라서 소금이 짜지 않더라도 여전히 소금이라는 의미가 이미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세계의 유한성 자체자 스스로 소멸하는 규정이라고 말한다.

“유한성의 주장에는 오히려 명백히 그 반대가 출현한다. 유한성[Das Endliche]은 제한된 존재이며 소멸적인 것이다. 유한성은 다만 유한자지, 비소멸적인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 유한성의 규정이나 표현 속에 직접 들어 있다.”(논리학 재판, GW21, 117)

역서 “유한성이 제한된 존재”라는 말은 언뜻 보면 유한한 존재가 한정성을 지닌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유한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제한된 것이라는 뜻이다.

헤겔 형이상학 산책29-내재 존재와 한계, 무용지용[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 비평]

헤겔 형이상학 산책29-내재 존재와 한계, 무용지용

1)

두 가지 이상의 ‘규정성[Bestimmtheit]’이 상호 교차할 때, ‘어떤 것[etwas]’이 나온다. 예를 들어 소금은 희고, 짜며, 입방체다. 여러 규정성 가운데 필연적인 것(일반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개별적인 것)이 구별되니, 필연성이 ‘규정[Bestimmung]’이고 우연성이 ‘양상[Beschaffenheit: 모습]’이다. 소금에서 입방체이거나 짠맛은 규정이며, 흰색은 양상이다.

존재론 2장 현존 장의 2절은 규정과 양상이라는 쌍 개념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관계는 곧 이어서 ‘내재 존재[Insichsein]’와 ‘한계[Grenze]’라는 쌍 개념으로 나간다. 앞에서 헤겔 논리학이 의식 경험의 전진에 따라 평행하게 나간다는 것을 헤겔 논리학 해석의 대강으로 삼았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양상과 규정은 서로 무차별하다. 그러므로 규정이 변화함이 없이 양상은 변화할 수 있다. 소금의 성질은 흰색에서 보라색으로 변화하더라도 소금의 짠맛과 입방체라는 성질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이 좀 더 발전하게 되면 우리는 규정에 속하는 속성도 사실은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¹

주1: 참고로 말하자면, 성질이니 속성이니 하는 용어는 인식론상의 용어다. 규정성이니 규정이니 하는 용어는 논리적 범주 즉 서로 다른 판단형식에 속하는 용어다.

2)

소금의 짠맛을 보자. 소금은 짠맛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러면 더는 소금이 아니다. 왜냐하면, 소금의 규정은 짠맛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소금의 규정을 짠맛으로 정하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며 또는 일상적인 맥락에서다. 앞에서 소금은 락스로도 쓰인다고 했는데 소금의 규정을 소독제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떻든 일단 소금의 규정을 주관적으로 짠맛으로 했을 때 이를 경계로 소금과 소금이 아닌 것이 구별된다.

양상 역시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부터 구별해 주지만, 이 구별은 외면적인 구별이다. 흰 소금이나 보라색 소금은 서로 다르지만, 소금이라는 사실을 변화하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짠맛은 다르다. 짠맛은 어떤 것의 규정에 속하므로, 짠맛이 없으면 소금은 이제 더는 소금이 아니다. 어떤 것을 다른 것과 구별해 주는 것을 헤겔은 한계[Grenze]라 한다.

‘규정’이란 논리적 범주가 ‘한계’라는 논리적 범주가 되면서 서로 다른 것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똑같은 속성 예를 들어 짠맛이 한편에는 규정으로 다른 한편에는 한계가 된다. 헤겔이 이렇게 같은 것을 지칭하면서 논리적 범주를 달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규정은 양상에 대하여 사용되며 이 경우 하나의 사물 내에서 규정성 사이의 관계가 논의된다. 그러나 이것을 한계라고 할 때는 어떤 것과 다른 어떤 것 사이의 관계가 논의된다. 짠맛은 이 두 가지를 비교하는(외적으로 반성하는) 가운데 어떤 것을 구별해 주는 것이다.

3)

헤겔은 양상의 변화를 ‘대타적 존재(우연성, 양상)에 따른 변화’라고 하면서 이것과 구별하여 이 한계를 통한 변화를 ‘어떤 것에 정립된 변화’라고 한다. 이 부정은 “그 자신에 내재적인 것으로 정립되기”(논리학 재판, GW21, 112) 때문이다.

양상에서 어떤 것의 다른 것과의 관계는 무차별하다. 그러나 한계에서 어떤 것의 다른 것에 대한 관계는 자기 자신에서 나오며, 타자 존재는 어떤 것에 자신의 고유한 계기로 정립된다.

“어떤 것은 자기 자신에서 타자에 대해 관계한다. 왜냐하면, 타자 존재는 그 어떤 것에서 그것의 고유한 계기이기 때문이다.”(논리학 재판, GW21, 113)

한계를 넘어서면 어떤 것은 어떤 것이 아니게 되지만, 거꾸로 이 한계가 있기에, 어떤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것이 될 수 있다. 어떤 것은 짜기에 소금이 된다. 이처럼 어떤 것이 한계 안에 있는 것으로 규정되면 이를 헤겔은 내재 존재[Insichsein]라 한다.

앞에서 ‘규정’과 ‘한계’라는 논리적 범주가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는데, ‘한계’와 ‘내재 존재’는 논리적 범주로서 똑같은 필연성 즉 속성을 지칭하지만, 쓰이는 맥락에서 달리 쓰인다. 예를 들어 어떤 소금이 소금이 아닌 어떤 것(예를 들어 설탕)과 구별되면, 그 구별은 짠맛이라는 한계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다른 것(예를 들어 죽염)이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소금이라면 그것은 짠맛이라는 내재 존재 때문이다. 한계라는 범주와 내재 존재라는 범주는 동전의 양면이 된다.

한계는 그것을 넘어서면 어떤 것이 더는 그것이 아니므로, 어떤 것의 부정이 된다. 내재 존재는 그 한계 안에서 한계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부정의 부정’이다.

“ 이제 내재 존재가 타자 존재의 비존재이며, 이 타자 존재는 존재하는 것으로서는 어떤 것과 구별되면서도 이 어떤 것 속에 포함되어 있으니, 그런 한에서 어떤 것은 부정이며, 그 자체에서 타자를 지양하는 것이다. 어떤 것은 이 타자에 대해 스스로 부정적으로 관계하는 것을 통해서 자기를 유지하는 것으로 정립된다.”(논리학 재판, GW21, 113)

4)

한계는 그것을 넘어가면 더는 그것이 아니므로 한계는 어떤 것의 자기 부정성이다. 동시에 이 한계는 그것과 다른 것을 부정하는 타자의 부정성이다. 한계는 어떤 것과 다른 것의 경계선에 있으며 즉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경계선에 있다는 것은 그 한계가 어떤 것 안에 있기도 하며 어떤 것 밖에 있다는 뜻이 된다. 어떤 것 밖에 있다는 점에서 한계는 어떤 것의 부정성인데, 어떤 것 안에 있다는 점에서 이 부정성은 어떤 것 내부의 부정성이다.

어떤 것의 부정성이 그것과 다른 것을 의미한다면, 어떤 것 내부에 있는 부정성은 어떤 것 내부에 자기와 다른 것이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한계는 내 속에 있는 나의 타자다. 내 속에 나의 타자가 있으니 나는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한계로부터 자기가 부정되는 운동이 일어난다. 나는 나의 한계 때문에 무너진다.

“또 다른 측면은 어떤 것이 그 속에 내재하는 한계 내에서 어떤 것이 지니는 동요다. 이 동요는 곧 어떤 것을 자기 자신을 넘어서 나가게 만드는 모순이다.”(논리학 재판, GW21, 115)

거꾸로 생각해 보자. 한계는 어떤 것과 다른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계는 다른 것을 배제함으로써 어떤 것 자신을 존재하게 만든다. 나는 나에게 고유한 한계가 있으므로 나는 다른 것을 물리치고 스스로 존속할 수 있다. 나에게 한계가 없다면 다른 것의 침범에 의해 나는 이미 무너졌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 자신의 한계가 나를 살린다.

“한계는 본질상 타자의 비존재이므로, 어떤 것은 동시에 그의 한계를 통해 존재한다. … 어떤 것의 존재는 그 한계를 통해 그 어떤 것의 본래 모습으로 되며, 그 한계 속에서 자신의 질을 갖는다.”(논리학 재판, GW21, 114)

헤겔은 한계와 내재 존재에 관해 흥미로운 예를 제시한다. 즉 점과 선(또는 선과 면)의 관계다. 선의 한계는 점이다. 선은 점에서 중지하며, 선은 점의 안에서 존재한다.(이쪽에서 보면 점의 안에 있다는 것은 반대쪽에서 보면 점 밖에 있다는 것이니, 선은 점 밖에 있다.) 점의 안에서 선이 존재하므로, 점은 선이 시작하는 출발점이며, 이 점에서 선으로 이행한다. 즉 선은 점에서 발생한다.

여기서 점과 선은 사실 양적인 규정이어서 정확한 비유라고 볼 수 없다. 여기서는 질적인 규정이 문제가 되므로 짠맛과 소금의 관계로 다시 설명하자면, 짠맛은 소금의 한계다. 소금은 짠맛이 있기에 소금이 되지만, 짠맛 때문에 소금은 소금이 아닌 것으로 된다.²

주2: 소금의 짠맛은 특정한 분자결합 때문에 나온다. 분자구조는 같으면서도 분자 사이의 특정한 결합은 언제라도 다른 방식의 결합으로 바뀔 수 있다. 소금이 락스가 될 수도 있는 것은 그 분자결합 때문이다.

한계가 지닌 이중성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자주 보는 예를 가지고 말해보자. 어떤 사람의 장점은 그 사람의 본분, 규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가 지닌 이 장점 때문에 몰락한다. 마음이 따뜻한 남자는 대체로 무기력하고 무능하다.

이번에는 거꾸로 보자. 어떤 사람의 한계 즉 단점이 그 사람의 감추어진 능력을 의미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장자가 말한 ‘無用之用’이 그런 뜻일 것이다.

“장인(匠人) 석(石)이 돌아왔는데 사(社)의 상수리나무가 꿈속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 또한 나는 쓸 데가 없어지기를 추구해 온 지 오래되었는데, 거의 죽을 뻔했다가 비로소 지금 그것을 얻었으니, 그것이 나의 큰 쓸모이다. 가령 내가 만약 쓸모가 있었더라면 이처럼 큰 나무가 될 수 있었겠는가?”(장자, 내편, 인간세, 무용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