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고조선 역사가 없으면 한국사도 없다: 윤내현이 쓴 『고조선연구』

‘고조선 역사가 없으면 한국사도 없다.’ – 신채호 선생

:윤내현이 쓴 『고조선연구』

 

나태영(한철연 회원)

 

이 책은 900쪽이 넘는 책이다. 그런데도 현재 고등학교 『한국사』 고조선 부분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 『한국사』 고조선 부분은 4쪽에 불과하다. 고조선 관련 참고도서는 통사 몇 권에 불과하다. 왜 이리 되었을까? 바로 지금 주류 강단사학자들이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내현은 원래 중국 상고사 공부를 했다. 공부하다가 고조선 관련 사료를 자주 보게 되었다. 현재 주류 사학자들이 받아 들이는 내용이 크게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류 사학계에 자극을 주려고 『한국고대사 신론』이란 책을 출판했다. 하지만 주류 사학계는 그가 제기한 문제를 귀담아 듣지 않고 그를 미친 놈 취급했다. 이런 까닭으로 중국상고사 전문가 윤내현은 한국상고사 곧 고조선 전문가가 되었다.
 

지금 남아 있는 우리나라 역사 책 중에서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서 고조선이라는 이름이 맨 처음 사용되었다. 일연은 단군조선만을 고조선이라고 부르고 있다. 따라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 고조선은 단군조선에 대한 이름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옳다.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을 고조선과 똑같이 보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기자조선은 고조선의 서쪽 변경지대인 난하 하류 동부유역만을 차지했다. 위만조선은 고조선의 서쪽 변경지대인 난하에서 대릉하에 이르는 지역만을 차지했다.
 

고조선 나라 수명이 서기전 2333년〜서기전 108년까지라고 말한다. 위만조선이 서기전 108년에 망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옳지 않다. 위만조선이 망할 때도 고조선은 훨씬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며 나라를 유지하고 있었다. 위만조선의 영토는 난하에서 대릉하까지였다. 고조선은 서기전 108년이 아니라 서기전 100년 전후까지 유지된 나라이다. 고조선은 위만조선이 망한 서기전 108년부터 고조선 제후국이었던 부여가 독립국이 된 시기 사이에 망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동부여가 독립국이 되었던 해는 서기전 59년이다. 따라서 고조선이 망한 시기는 서기전 108년〜서기전 59년으로 봐야 할 것이다.
 

1. 여섯 가지 조선 윤내현 선생님은 중국 역사 기록물에 나오는 조선을 여섯 가지로 나눌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1) 고(단군)조선
(2) 고조선 안에 있는 고조선 직할국(진국: 단군왕검께서 직접 다스린 땅, 지금의 요하부터 청천강 까지, 대조영이 발해 세울 때 진국이라 나라 이름 지은 것은 고조선 직할국 진국을 이었다고 볼 수 있다.)
(3) 기자조선(난하 동부유역)
(4) 위만조선(난하〜대릉하)
(5) 한사군의 낙랑군 조선현(난하 동부유역: 『한서漢書』 「지리지」 <낙랑군> ‘조선현’조를 보면 조선현에 대해서 동한의 학자 응소가 이리 주석을 달았다. ‘무왕은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 낙랑군의 조선현에 주 무왕이 기자를 봉했다는 것이다. 기자가 조선으로 망명한 시기는 서주 초인 서기전 12세기 말 즈음이었고 한사군이 설치된 것은 서기전 108년이었다. 따라서 한사군의 낙랑군 조선현은 기자가 망명했던 곳이라는 뜻이다. 기자조선 영토는 난하 동부유역이었다. 따라서 한사군 낙랑군 조선현은 난하 동부유역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당나라 역사 책『진서 晉書』 「지리지」 <낙랑군> ‘조선’조에 ‘(조선현)은 서주가 기자를 봉했던 땅이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6) 고조선이 무너진 뒤 단군 일부 후손들이 살았던 지역(『후한서』「동이열전」 <고구려전>에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1천 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남쪽은 조선, 예맥, 동쪽은 옥저, 북쪽은 부여와 맞닿아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기록은 동한시대에 고구려 남쪽에 조선이 있었음을 알려 준다. 이 조선은 고구려와 국경이 맞닿아 있고 그 남쪽에 있었다. 때문에 그 위치나 영토 넓이로 봐서 고조선과 다른 조선임이 확실하다.) 중국 역사 기록물을 읽을 때 조선이 몇 번째 조선인지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고조선 관련 유물/ 출처: www.koreaikultura.hu

고조선 관련 유물/ 출처: www.koreaikultura.hu


 
세 가지 요동(遼東)
 
고대 요동의 위치를 올바르게 알아야 고조선 서쪽 국경선을 올바르게 알 수 있다. 고대인들에게 요동이 어느 곳이었는지 그 이후 요동이 어찌 옮겨졌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중국 기록물에 나오는 조선을 여섯 가지로 구분해 봐야 하듯이 요동에 대해서도 한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로 구분해 봐야 한다. 앞으로 한국 상고사 책 읽을 때 요동이라는 땅 이름이 나오면 주의 깊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1) 난하로부터 동쪽 지역
(2) 요하로부터 동쪽지역
(3) 중국 행정구역 요동군

 
(1) 난하로부터 동쪽 지역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난하로부터 동쪽 지역이었다. 지금의 북경에서 동북쪽으로 위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고대에 요수(지금의 난하)라는 강 이름이 먼저 생기고 그 강 이름을 기준으로 하여 요동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고대 중국인들은 그들 영토의 동쪽 끝을 극동(極東: 동쪽 맨 끝 땅)이라는 뜻으로 요동이라 불렀다. 요(遼)라는 한자를 한자사전에서 찾아보면 첫 번째 뜻이 ‘멀다’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그들 영토에서 멀리 떨어진 동쪽 땅을 요동(遼東)이라 불렀다. 요동은 그 대부분이 중국 영토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이었다.
 
(2) 요하로부터 동쪽지역
 
오늘날의 요동은 지금의 요하(遼河)로부터 동쪽지역을 말한다. 이것은 요동이라는 땅 이름이 동쪽으로 옮겨갔음을 뜻한다. 요수(遼水)도 두 가지가 있다. 전국(전쟁나라)시대, 진제국시대와 서한 초기까지는 요수가 지금의 난하였다. 동한시대(23년)부터 요수는 지금의 요하(遼河)이다. 따라서 동한시대 이전에 요동은 난하로부터 동쪽지역이었다. 동한시대부터 요동은 지금의 요하로부터 동쪽 지역이다.
 
(3) 중국 행정구역 요동군
 
『후한서』「동이열전」과 진수가 쓴 『삼국지』「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吏傳)」의 <고구려전>에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남쪽은 조선과 예맥, 동쪽은 옥저, 북쪽은 부여와 맞닿아 있었다.’
동한시대 이후 고구려는 지금의 요동지역에 있었는데 고구려가 요동으로부터 천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는 이 기록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기록에서 요동은 중국 행정구역인 요동군을 말하는 것이다. 서한 무제 때에 서한 영토가 넓어짐에 따라 요수라는 강 이름과 난하로부터 동쪽 지역이었던 요동이 동쪽으로 옮겨갔다. 지금의 요하로부터 오른쪽 지역으로 옮겨간 것이다. 하지만 행정구역인 요동군은 지금의 난하 유역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는 지금의 요하로부터 동쪽 지역이었던 요동에 있었지만 중국의 행정구역인 요동군으로부터는 동쪽으로 천리 떨어진 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조선은 고조선 무너진 뒤 고조선 왕족 포함 일부 세력이 살던 나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진(秦)나라와 한(漢)나라의 행정구역이었던 요동군은 난하 하류유역 일부에 불과했다. 『한서(漢書)』 「장진왕주전(傳)」에는 번쾌가 노관의 반란을 평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상곡군, 우북평군, 요동군, 어양군을 평정하고 장성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은 요동군이 장성 안의 중국 영토였음을 말해 준다. 이 장성은 진시황제 때 쌓은 장성이다. 이 장성은 서쪽으로부터 지금의 난하를 가로질러 갈석산에 이르렀다. 따라서 요동군은 장성 안 쪽, 즉 갈석산 서쪽의 난하 유역에 있었다. 위만조선과 국경이 맞닿아 있었다.
 
여섯 가지 조선과 세 가지 요동을 구별할 수 있으면 21세기 한국상고사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사카구치 교헤가 쓴 『나만의 독립국가 만들기』[보고듣고생각하기]

노숙자분들이 우리들 스승이다:

사카구치 교헤가 쓴 『나만의 독립국가 만들기』

 

나태영(한철연 회원)

2015년 5월 5일부터 대략 세 달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처음 한 달은 컷팅 일을 했다. 건물 지하층과 옥상 콘크리트 바닥이 쪼개지는 걸 방지하기 위하여 1.5-2미터 간격 바둑판 모양으로 미리 콘크리트 바닥을 원형기계톱으로 쪼개는 작업이다. 약 90프로 지방에서 일했다. 하루 이동시간이 4시간에서 7시간이다. 어쩌다 한 번 오후 5시 퇴근했지만 보통 밤 9시 늦으면 밤 11시에 퇴근했다. 새벽 5시 반에 출근했다. 집에 와 씻고 맥주 한 잔 하면서 인터넷의 바다에서 놀다가 대략 새벽 1시에 잤다. 대략 4시간 잤다.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면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다. 건설현장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자고 나면 멍한 상태에서 조금 벗어난다.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하루는 1년 3개월 경력 반장, 나, 당일 처음 온 사람 세 사람이 마포구 공덕역 근처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일머리가 둔한 두 사람이 있었으니 일이 더뎠다. 당일 기준 사장이 건설주로부터 43만원 받았다면 비용 빼고 사장한테 떨어진 돈이 5만원 정도였다. 사장 입장에서는 서운했나보다.

 

사장: (여러 직원 있는 자리에서) “나태영씨가 공구를 못 챙겨서 공구 다시 가지러 오는 바람(20분 지체)에 오늘 일 느려진거야. 그런거 보면 나태영씨 일 파악하는데 1년은 걸릴 것 같아. 내가 공구 뭐 챙겨야할 지 하나 하나 적어서 줄 수는 없잖아. 퇴근한 뒤에 집에서 내일 일하는데 필요한 공구 미리 생각해봐.”

 

나는 이 말 듣고 열 받았다. 1. 여러 직원 앞에서 내가 무능력자라는 투로 말한 사실. 2. 공구 못 챙긴 책임이 나보다 1년 3개월 경력자에게 더 책임이 있는데 이제 겨우 한 달 되가는 내게 책임을 물었다는 사실. 3. 유치원생에게 말하듯이 비꼬아 말한 사실. 대략 세 가지 사실에 열 받았다. 퇴근 후 30분간 고민했다. 이곳을 그만둘지 아니면 이곳에서 계속 일할지 결론냈다. 이곳을 그만두기로. 다시 사장 찾아가서 당신이 나를 비꼬듯이 무능력자 취급해서 그만 두겠다. 일 파악하는데 1년 걸릴 사람 취급해서 그만 두겠다 그러니,

 

사장: “그 말은 1년 이상 함께 갈 사람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한 말이지.”

 

그 뒤 다른 건설 현장 일 하다가 일을 찾지 못해 쉬는 날이 많았다. 죽을 지경이었다. 자존심 죽이고 컷팅회사 사장한테 다시 일하게 해 달라고 말했다. 세 번 그리했다.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월급은 적지만 길게 일할 수 있고 덜 힘든 일자리를 잡았다. 화요일부터 일했다. 금요일 컷팅회사 사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다시 일하러 오란다. 좋은 말 해가면서 말이다. 과거에 서로 안 좋았던 일을 잊자고 말하면서 말이다. 고민했다. 안해 및 동료와 의논했다. 결론 내렸다. 컷팅회사로 다시 가서 일하기로. 일은 힘들어도 돈은 돼기 때문에 그리 결정했다. 금요일 저녁에 다니던 곳에 일 그만 둔다고 말하고 컷팅회사 사장한테 다시 가겠다고 말했다.

 

사장이 그런다.

“나태영씨 애처럼 행동해서는 안돼.

월요일 얘기 좀 하자구”

니미 거시기할놈 다니던 일자리 그만두고 전화했더니 튕긴다.

토요일 밤 컷팅회사 사장한테 알렸다.

“제가 애처럼 행동할 것 같아서 가지 않겠습니다.”

안해는 내가 컷팅회사 다시 다닐 줄로 안다.

 

나는 내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내 생각이 틀렸음을 나는 인정한다. 겉으로 봐서는 내 성격이 바뀐 것 같지만 결국 내 성격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한 번 사는 삶 꼴리는대로 살고’ 있다. 가족한테는 미안! 위 글 내용은 내가 이 책에 주목하게 된 까닭이다. 나는 고1 쌍둥이 딸 아빠이다. 7천 5백만원 보증금에 한 달에 30만원씩 내는 반 전세로 산다. 나는 우리 딸들이 학자금 대출 받으면서 대학 다니길 거부한다. 빚으로 사회생활 시작하길 거부한다. 그럼 우리 딸들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다녀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 대학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 학비 싸고 교수진 훌륭한 이 대학이 이 나라에서 너무 쉽게 무시당한다. 노숙자들은 맨 밑바닥에서 삶을 살아가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분들은 버려진 폐기물로 당신들 집을 짓는다. 이 책 글쓴이는 몇 만원 – 몇십만 원으로 멋진 집을 짖고 산다. 정치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 이 땅에서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책을 읽고 생각하는 길을 배워야 한다.

 

 

과거 역사를 현재 역사에 써 먹지 못한다면 역사책 덮어라!: 김 갑수가 쓴『전쟁과 운명』

과거 역사를 현재 역사에 써 먹지 못한다면 역사책 덮어라!:?김 갑수가 쓴『전쟁과 운명』

 

나태영(한철연 회원)

 

 

김갑수와 최장집

이명박 정권 초기에 전국 수만 명 대학교수가 시국선언을 했다.이명박 정권 비판하는 시국선언을 했다.?바로 이 순간 이명박 도우미가 나타났다.?최장집이 나타났다.?최장집이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틀린 말은 아니다.?선거로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말이다.?히틀러도 선거로 총통 자리에 올랐다.?최장집이 헛소리해도 최장집 비판하는 사람이 없었다.?그만큼 최장집 인맥과 학맥이 두텁다.?손호철,?정청래,?박상훈이 최장집 폐인이다.?김갑수 혼자서?<오마이뉴스>에서 최장집을 비판했다.

 

근대사를 통해 현대를 읽다.

김갑수는 백범 김구 선생을 존경한다.?인정한다.?다만 백범 김구 선생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한다.?한독당 김구가 한민당 이승만 생각을 받아들인 사실을 비판한다.?김구 선생이 친일파 청산을 먼저 하고 국가 건설했어야 했는데 국가 건설을 먼저 하고 친일파 청산하자는 이승만 꼬임에 넘어간 사실을 비판한다.?결국 이승만 의도대로 친일파 청산은 물거품이 되었다.?김구 한독당은 사라지는 비운을 당했다.?김구 선생도 암살당하는 비운을 당했다.?이런 사실을 꿰뚫고 있는 김갑수는 함부로 통합하는 것을 반대한다.?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억지로 합치는 것을 반대했다.?김갑수 말대로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억지로 합치다가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과거 역사를 오늘 우리 문제를 푸는데 사용할 줄 아는 김갑수 안목을 높이 살만한 부분이다.

김갑수는 통합보다는 한 세력이 강해지면 다른 세력이 강한 세력으로 빨려 들어오는 게 낫다고 말한다.?한독당 김구 선생 실패를 보고서 품은 생각이다.?나는 속 마음으로 김갑수 의견에 반대했다.?나는 진보당과 노동당이 합쳐져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다.?까닭은 보통 사람들 눈에는 두 당이 똑같은 당이라는 것이다.?괜히 쪼개져서 보통 사람들이 볼 때 진보는 세력이 작으면서도 왜 쪼개지냐는 비난을 받기 때문이다.?조금 다르더라도 합쳐야 한다고 나는 주장했다.?그래서 진보정당 지지율을 높여야 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생각보다는 김갑수 생각이 더 옳고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한다.?민주노동당(진보당)과 진보신당(노동당)이 쪼개질 때 앙금이 크다.?북조선 관련 사건이 터질 때 입장 차이가 생긴다.?특히 북조선 핵 문제가 생기면 입장 차이가 두드러진다.

그래도 노동당은 정의당 보다는 낫다.?국정원 내란음모 조작 사건이 터졌을 때 노동당은 정의당처럼 국정원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국정원을 비판하고 진보당 편을 들어줬다.?다행이다.?어쨌든 두 당이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상식적으로 비판적 지지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두 진보정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책 경쟁을 하면 좋겠다.?너무 급하게 통합을 밀어붙이면 일을 그르칠 것이다.

‘8·15?직후 김준연은 한민당 간부가 되어 이승만의 단정수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인사 중의 하나가 되었다.?그는 한민당의 선전부장이었다.?우리가 익히 알듯이 한민당은 친일지주와 친일 부역배들이 주축이 된 사이비 야당이었다.

같은 한민당 내에 장덕수라는 경쟁자가 있었다.?물론 장덕수는 화려한(?)?친일경력의 소유자였다.?하지만 장덕수는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 박사로서 세속적인 실력 면에서 김준연보다 우월했다.?장덕수는 한민당의 요직인 정치부장과 외교부장을 겸직했다.?동시에 장덕수는 김구와 황해도 동향으로서 김구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한민당과 한독당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도 하고 있었다.’

‘내부의 정적 장덕수도 제거하고 단정수립에 반대하는 임정 주도의 한독당까지 와해시킨다면?’?김준연으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는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을 만났다.?얼마 후 장덕수는 혜화동 자택에 카빈을 들고 찾아온 경찰에게 피살되었다.?김구가 미군정 재판정에 나가 미군 장교에게 모욕적인 심문을 받은 것은 장덕수 암살 배후 혐의를 받았기 때문이다.?이어 미군정 재판부는 한독당의 핵심인물인 김석황 조상항 손정수 등에게 사형을 언도했다.

이것은 한독당의 와해와 김구의 죽음,?그리고 친일청산 실패로 귀결되었다.?결국 단정수립에 반대하던 통일세력,?요즘으로 말하면?‘종북세력’인 한독당과 지도자 김구를 거세한 것은 미군정과 이승만이지만 그 앞잡이에 야당을 자임하던 김준연이 있었던 것이다.

김준연은 오늘의 누구와 닮았는가.?아니 오늘의 누가 김준연과 닮았는가.?최고학부,?독일유학,?운동권 장식 이력,?제1야당 출신,?반공단정세력,?미군정·독재정권을 배후로 하여 경쟁자와?‘종북정당’을 파괴한 이가 누구인가??공히 김준연 그리고 유시민이 아니었던가?’‘우리는?1950년대 진보당 파괴와 조봉암 법살의 역사를 알고 있다.?이것은 조봉암과 라이벌 관계에 있던 서상일계의 배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서상일(1887~1962)은 언제나 조봉암에게 날카로운 경쟁의식을 느꼈고‘진보?1인자’를 향한 야심이 만만치 않았다.?보성전문 출신인 그는 사사건건 조봉암에게 시비를 걸었다.

당권 장악을 위한 서상일계의 쿠데타가 벌어진 것은?1956년 대선 이후였다.?대선에서 조봉암의 진보당이 민주당 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수권정당으로 도약하자 미국과 이승만 집단은 진보당을 적출하려 들었다.?서상일은 여기에 앞잡이로 나섰다.?그는“조봉암의 주장은 너무 강하다(북에 가깝다)”고 하면서 진보의 혁신과 대중화를 표방, ‘혁신대동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서상일과 그 추종자들은 내부 쿠데타에 실패하자,?곧’민주혁신당’?창당에 나선다.?그러나 민주혁신당은 조봉암이 지향했던?’피해대중의 구제‘에는 관심이 없었다.?아무튼 민주혁신당의 창당은 조봉암 등의 진보세력을 고립시켰고 진보정당의 명맥을 끊어놓는 역할을 담당했다.

조봉암은 체포되었다.?서상일과?‘혁신’?세력들은?‘진보당 사건’?피의자들에 대한 재판에서,?조봉암과 진보당 인사들에게 교묘하게 불리한 증언만을 내놓는다.?즉?“진보당은 좌경사회주의 정당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주혁신당은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나 진보당에 비해선 우경화한 정당이다” “그들이 평화통일을 이룬 후 노동자,?농민들이 주도권을 잡도록 하기 위해 공산당과 합작 내지 같은 행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래의 일이므로 나는 모르겠다”등이었다.

민주혁신당은 오늘의 어느 정당과 닮아 있으며 서상일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그의 배후에는 누가 있었는가.?서상일은 오늘의 누구와 닮았는가??아니 오늘의 누가 서상일과 닮았는가.?진보의 선두주자 조봉암도 제거하고?‘종북정당’?진보당도 와해시키는 데 앞잡이 역을 자임한 사람은 공히 서상일과 심상정이 아니던가?’‘민주혁신당은 오늘의 어느 정당과 닮아 있으며 서상일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그의 배후에는 누가 있었는가.?서상일은 오늘의 누구와 닮았는가??아니 오늘의 누가 서상일과 닮았는가.?진보의 선두주자 조봉암도 제거하고?‘종북정당’?진보당도 와해시키는 데 앞잡이 역을 자임한 사람은 공히 서상일과 심상정이 아니던가?’?(김갑수, <주권방송>?페이스북 단상, 2013년?10월?16일)

김갑수는?『전쟁과 운명』?이 책에서 우리나라 근대사라는 거울에 오늘 우리를 비춘다.?누가 진국인지 도대체 누가 껍데기인지 보여준다.?진국은 통합진보당이다.?껍데기는 민주당이다.?정의당이다.?새누리당은 껍데기 메카이다.?껍데기 생산공장이다.?아니다.?작것이다.?철학자 윤구병이 말했다. ‘있어야 할 것이 있고 없어져야 할 것이 없어진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이다.’

껍데기는 더 있다. <오마이뉴스>에서 통합진보당과 이석기를 비난하는 인간들이 껍데기이다.?저들은 국정원이 만든 놀이터에서 열심히 논다.?국정원이 원하는 대로 논다.?국정원은 평범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었다.?평범한 사람을 억지로 감옥에 가두었다.?국정원이 저지른 나쁜 짓이 이 땅 현대사를 도배질한다.?국정원이 조작해서 만든?‘짜깁기 녹취록’은 절대로 증거가 될 수 없다.?그런데도 그?‘짜깁기 녹취록’을 근거로 통합진보당과 이석기를 비난하는 인간들이 많다.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다. <오마이뉴스>는 진보언론이다.?그런 진보언론에서 증거가 되지도 않는?‘짜깁기 녹취록’을 근거로 터무니없는 연속 인터뷰 기사를?1면에 올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손호철은 스스로를 진보교수라고 말한다.최소한 손호철은 박사학위를 딴 사람이다.?책도 여러 권 쓴 사람이다.?그런 과정에서 많은 논쟁을 했을 것이다.?자주 자기 생각을 다듬었을 것이다.?그런 손호철이 증거가 되지도 않는?’짜깁기 녹취록’을 근거로 통합진보당과 이석기를 비난한다.?착잡한 상황이다.?배움이 무엇인지 물음표를 던지고 싶다.

결론부터 말한다.?통합진보당은 김구 한독당처럼 죽지 않는다.조봉암 진보당처럼 죽지 않는다.

1970년대, 1980년대 이 땅에서 행해졌던 일이 이미 일제 강점기 때 행해졌다.?박정희는 친일파이다.?이런 박정희를 존경하는50대 이상 분들이 너무도 많다.?그 분들께 이 책?『전쟁과 운명』과?『중경의 편지』,?『압록강을 넘어서』를 선물하고 싶다.

 

이재유 선생 한 번 찾아 뵙고 싶다.

그 당시에 이런 멋진 분이 계셨다니 기쁘다. ‘그는 이념보다는 민족의 생존권과 독립을 당면 과제로 삼았다.’는 부분과?’그는 조직원들을 지도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원들과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들을 지원하는 투쟁 방식을 실천했다.’는 부분이 내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통합진보당과 노동당 사람들이 이 분한테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전쟁과 운명』을 읽고 외친다.

 

박근혜는 물러나라!?

『친일파는 살아있다』!
남한과 북조선은 단군 자손 국가이다!
발해와 신라가 싸운 전철을 밟지 말라!
주한미군 물러가라!
국가보안법 폐지하라!

한미서민패죽이기협정 폐기하라!

 

미디어 오디세이는 미디어의 역사다 [보고듣고생각하기]

미디어 오디세이는 미디어의 역사다:?김동민이 쓴?『미디어 오디세이』

 

나태영(한철연 회원)

 

 

강준만과 김동민

강준만은 무림고수이다.?강준만은 실명비판 대명사이다.?강준만은 공정한 평가를 추구한다.?무림고수 강준만한테 뼈도 뭇 추린 인간들이 많다.?강준만은 비판만 하지 않는다.?칭찬도 한다.?강준만한테 칭찬 들을 정도인 사람은 지성인이다.?강준만은 이 책?『미디어 오디세이』를 쓴 김동민을 칭찬한다.?자신은 글만 쓰는 데 김동민은 글도 쓰고 실천도 한다고 칭찬한다.?강준만은 김동민을 부러워 한다.?강준만이 부러워 하는 김동민 사상을 차분하게 들여다 보자.

미디어 오디세이는 미디어의 역사다

이 책 내용을 두 문장으로 줄이면?‘미디어 오디세이는 미디어의 역사다.’(16쪽)?‘미디어의 역사는 역사 속의 미디어를 조망하는 것이어야 한다.’(17쪽)란 문장이다.?언론학자 김동민이 이 책에서 역사를 다루는 이유는 당연하다.?역사를 다루지 않고 언론사를 다룰 수 없다.?언론사를 다루지 않고 언론에 대해 말 할 수 없다는 게 김동민이 주장하는 말이다.?이 책은 우선 대학 언론학 교재로 쓰려고 만들었다고 김동민은 말한다.?이 책에서는 한국 대학,?특히 한국 언론학과가 지니고 있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한국 언론학과가 지닌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뜻에서 김동민이 이 책을 썼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는 한국 언론사도 배우고 세계 언론사도 배웠다.?그러나 세계 언론사는 언제부턴가 종적을 감췄고 한국 언론사만 남았다.?그마저도 가르치지 않는 대학도 있고,?언론사 전공자는 찾아보기 어렵다.?대학이 상업주의에 물들어 기업처럼 운영되는 현실에서 역사교육을 소홀히 하는 풍토가 언론학계에도 만연해 있다.?미디어가 인류 공동체 속에서 생성되고 인류사회를 변화시켜온 역사를 모르고 미디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7쪽)

대학을 거부하는 학생이 있다.?김예슬이 대학을 거부했다.?다니던 대학을 그만 두었다.?그리고?『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아니 거부한다.』란 책을 썼다.?물론 대학 다니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수는 극소수이다.?대한민국 사회에서 대학 나오지 않고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대학총장,?대학교수들,?대학생들 분발을 기대한다. ‘대학이 상업주의에 물들어 기업처럼 운영되는 현실’을 비판하는 김동민 말이 큰 울림을 준다.

한국언론사와 한국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 우리는 다음 글에서 알 수 있다.?이 땅에서 서재필이 과대평가 받았다.?우리는 서재필을 있는 그대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미국인 신분의 서재필을 선택한 데서 오는 한계도 명백하다.’ ‘고종은 서재필에게’ ‘연봉으로?3천?5백환을 책정해주었다.?당시 소?1마리가?20원?40원이었으니 소?100마리 가격이 넘어 지금 가격으로?1마리에?2백 만원만 치더라도 연봉?24억 원이 된다.’ ‘나라가 어려워지자 남은 기간의 급여를 한꺼번에 받아 미국으로 돌아간 것만 보아도 그의 진정성을 의심할 만하다. <독립신문>의 한계는 창간주체의 한계인 동시에 서재필의 한계다.’ ‘서재필은 자신이 미국인임을 늘 강조했다.?제국주의 미국이 조선에서 이권을 강탈해가는 현실을 옹호하는 입장이었다.?심지어 미국이?1896년?3월 일본에?1백만 달러를 받고 이권을 팔아넘긴 경인철도 부설권,?평안북도 운산금광 채굴권(1896년?4월)의 강탈에 대해서도 환영하였다. “속마음을 의심할 필요가 없는 나라와 맺은 것이며 지금까지 어느 열강과 맺은 조약보다 유리한 계약”(The Independent, 1896. 4. 16.)이라는 것이다.’ ‘1898년 당시 그의 출국을 만류하는 독립협회 회원들에게 보낸 답장에는 조선 정부를?‘귀 정부’(貴 政府)라고 칭했다.(<독립신문>, 1898. 5. 5.).’(182, 183쪽)

김동민은 통섭형 학자이다

미디어 오디세이뒤풀이 자리에서 김동민이 자신은 맑스주의자라고 말했다.?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서 칼 맑스 목소리가 언뜻 언뜻 들린다.?지금 정치학과 경제학이 쪼개졌다.?정치경제학으로 합쳐질 필요가 있다.?이 땅에서 경제문제는 중요하다.?하지만 경제정책을 만드는 곳은 국회이다.?경제전문가와 정치가는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일반인들도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오늘날의 미디어의 진화와 자본주의의 등장 및 전개와 긴밀한 관련을 맺기 때문에 정치경제학의 관점은 필수적이다.’(6쪽)

‘자본주의를 사는 우리는 자본주의의 생산관계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언론학의 입장에서는 연구대상인 언론매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를 배제한 상태에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현상만을 관찰해서는 그마저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역사연구도 예외일 수 없다.?매스미디어 시대를 연 신문만 하더라도 그것은 상품으로 존재하며,?그 내용은 상품성을 추구한다.상품으로서의 신문을 규명하는 것이 기본이다.?마르크스는 상품을 세포에 비유했다.’(135쪽)

‘세포가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듯이 상품은 자연의 물질로 구성된다.?자연에서 얻은 재료 및 노동도구 등(생산수단)을 확보한 자본과 인간 노동력의 지출(노동)이 결합하여 상품이 된다.?그래서 상품의 핵은 상품에 체화된 노동이다.?상품은 자연에서 얻은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핵은 노동이라는 것이다.’(136쪽)

김동민은 언론학,?역사학,?철학,?정치경제학 고수이다.?아이엠에프(외환위기)?사태에 대해서 핵심체크 해주는 김동민 내공 대단하다.

‘외환위기 가운데 김대중 정부가 탄생했다.?김대중 정부는?IMF의 요구대로 거시경제 안정화 정책,?강력한 긴축정책,?금리의 대폭 인상, “외국인투자 촉진법”?제정 등을 시행에 옮겼다.?그러나 실물경제가 침체되면서 금리를 인하하자 주식투자로 돈이 몰렸다.?정부는 거시경제 안정화 정책 차원에서 구조조정을 실시했다.?금융산업 구조조정으로 규제철폐,?외국인 투자한도 폐지,?부동산 시장 전면 개방,?모든?M&A(인수합병)?허용,?외환거래 자유화 조치,?기업 구조조정으로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선진국 수준의 재무구조 추진,?핵심업종 중심의 강한 기업 유도,?계열회사 간 빚보증 관행 불식,책임경영,?노동시장 구조조정으로 정리해고제,?근로자파견제,?노사정위원회,?공공부문 구조조정으로 공기업 민영화 등이 추진되었다.?이로 인해?KT가 정부기구로부터 독립하여 민영화되었고, SK텔레콤,?포스코,?삼성전자 등 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이 상승했다.’(298쪽)

‘모든 신흥공업국의 은행들이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이러한 불안이 심화되면 일본의 은행들도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이렇게 될 경우 금융체계에 미치는 결과는 매우 심각할 것이다.?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우애를 발휘하여 은행 간 자금시장에서 커다란 문제들(한국의 금융위기로부터 비롯되어 파급되는)이 일어나는 사태를 방지하는 데 시급히 만전을 기해야 한다.그러나?<조선일보>는?8월?21일자?“불안하지만 위기상황 아니다”라는 사설에서?“외환시장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으나?‘외환위기’라는 표현을 써야 할 만큼 심각한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다음날에도?1면 머리기사로?“한국 성장률 높아진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297쪽)

조선일보는 아이엠에프 사태 예측을 제대로 못했다.?오히려 예측하지 못하도록 사실을 왜곡했다.?그런 조선일보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여전히 조선일보는 사실 왜곡하는 짓을 계속하고 있다.?조선일보는 친일파 신문이다.?친미파 신문이다. 1프로 종 역할 하는 신문이다. 1프로한테서 광고 받으려고 안달하는 신문이다.?조선일보는 다뤄야 할 것은 다루지 않는다.?부산 한진중공업으로 김진숙 만나러 가는 희망버스 다루지 않았다.?아니다.?조선일보는 신문이 아니다.?조선일보는 수구 언론기관일 뿐이다.?조선일보가 끄트머리 언론기관이 되어야 한다.?김동민은 조선일보 안 보기 운동을 현장에서 실천한 실천가이다.?이 책이 널리 읽혀 조선일보가 끄트머리 언론기관이 되길 기도한다.

이 책은 미디어 역사를 다룬다.?동서양 역사를 다룬다.?동서양 철학을 다룬다.?한국근현대사를 다룬다.?다루는 내용이 다양하다.?내용이 실하다.?이 책 한 권을 다 이해한다면 대단한 실력 소유자가 될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어렵지만은 않다.?대체로 글이 쉽다.?동서양 철학 다루는 부분과 칼 맑스 철학 다루는 부분이 일반인이 보기에 조금 어려울 뿐이다.?이 세상 언론문제에 울분을 토하는 사람들이 읽기에 맞춤한 책이다.?지적 욕구가 높은 사람들이 읽기에 맞춤한 책이다.?여럿이 모여서 함께 읽고 토론하기에 맞춤한 책이다.?대학 언론학과 교재로 맞춤한 책이다.?벌써 세 대학에서 이 책을 대학교재로 쓰고 있다.(2014년 현재)

 

배우고 읽히기에 맞춤한 책[보고듣고생각하기]

배우고 읽히기에 맞춤한 책:『다시 쓰는 맑스주의사상사』

 

나태영(한철연 회원)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콩쯔

보통 사람들이 이 책을 한 번 읽으면 머리가 아프다,?한 번 읽기도 힘들다.?세 번 읽으면 이 땅 모든 전문가들한테 휘둘리지 않는다.?일곱 번 읽으면 맑스주의 사상사 전문가 된다.이 땅에서 이 책 일곱 번 읽는 사람 아예 없을 것이다.?조선시대 선비 중에는 이런 책 일곱 번 이상 읽은 사람 여럿 있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없다.?그만큼?21세기 대한민국 문화수준 낮다.?그저 돈만 많이 벌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그러니 이명박 괴물과 박근혜 괴물이 태어났지.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랴?’

이 책 모든 꼭지에서 칼 맑스 이름이 나온다.?칼 맑스는 예수보다 뛰어난 사람이다.?예수가 한 말은 쉽다.?칼 맑스가 한 말은 너무 어렵다.?김성민이 말했다.?칼 맑스가 쓴?『자본론』?잘 이해 못하는 게 정상이다.?어려운 게 정상이다.?『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책쓴이들은 어려운 맑스주의 사상사를 조분 조분 이해하기 쉽게 썼다.?그래도 다루는 내용 자체가 어려워서 이 책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다.?최소한 세 번 이상은 읽어야 이 책 내용을 오롯이 이해할 것이다.

진보당 이정희대표가 이 책에서?<로자 룩셈부르크>, <레닌>, <마오쩌둥>, <그람시> <지젝>?다섯 꼭지라도 세 번 이상 반복해서 읽으면?20대 대통령 되리라고 확신한다.

 

다시 쓴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오월의봄 펴냄). ⓒ오월의봄다시 쓴다는 것은 고쳐 쓴다는 것이다.?더 많이 생각해서 다시 쓴다는 것이다.?더 많은 자료를 바탕삼아 다시 쓴다는 말이다.?성공과 좌절을 겪은 뒤에 다시 쓴다는 말이다. 21세기 한국 상황에 쓰일 수 있게 다시 쓴다는 말이다.?칼 맑스 제자들은 칼을 들어야 한다.?그 칼로 한미 서민패죽이기협정문을 베어야 한다.

예수한테는?12제자가 있었다.

이 책은 칼 맑스,?엥겔스와 칼 맑스 수십 명 제자들 사상을 담은 책이다.?제자들 강점과 한계를 다룬 책이다. 21세기에 그들 정신을 살리는 길을 모색하는 책이다.?이 책쓴이들은 묻는다.?맑스가,?엥겔스가,?레닌이,?그람시가,?로자 룩셈부르크가?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면 어찌할까??묻는다.?단호하게 묻는다.?진보당 대표 이정희한테 묻는다.?민주당과 정의당 인간들한테는 아예 묻지도 않는다.

나는 답한다.?저들이?21세기 대한민국 땅에서 숨 쉬고 있다면 한미 서민패죽이기협정(에프티에이)?날치기 통과 되지 않았을 것이다.?박근혜와 새누리당과 삼성제국 이건희가 환태평양 서민씨말리기협정(티피피)?밀어붙일 생각을 아예 못했을 것이다.?저들이 지금 바로 지금 이 땅에서 숨 쉬고 있다면 한미 서민패죽이기협정과 환태평양서민씨말리기협정은 뼈도 추리지 못했을 것이다.

 

칼 맑스는 저수지이다(서유석)!

산 골짜기 물이 저수지로 모여든다.?저수지는 고인물이다.고인 물은 썩는다.?알튀세르는 맑스 사상 자체에 문제 있음을 지적했다.?저수지 물이 썩지 않으려면 비가 많이 와야 한다.?맑스주의 사상가가 많이 나와야 한다.?칼 맑스는 아담 스미스가 쓴?<국부론>을?수백 번 읽었다.?저수지에서는 물이 찔끔 찔끔 흘러 내려간다.?왜??농사 짓는데 물을 써야 되기 때문이다.?큰 일 할 때 물을 써야 되기 때문이다.?큰 비가 내리면 저수지 물은 넘쳐서 넘쳐서 흘러 내린다.?온누리에 물을 보낸다.?온누리가 살아난다.?온누리가 저수지 물을 마시고 살아난다.?정치란 살림이다.

서유석은 말한다.?칼 맑스가 미친 영향력이 다윈이 미친 영향력 보다 크다.

칼 맑스는

첫째,?사회발전 법칙을 발견했다.

둘째,?자본주의 사회운동(경제발전)법칙을 발견했다.

셋째,?칼 맑스는 혁명가였다.

칼 맑스 비판자,?신자유주의 추종자 하이에크마저도 칼 맑스를 이리 칭찬했다.?이 세상이 자연(the natural)과 인간이 만든 것(the artificial)?이 두 가지로 이루어졌다고 많은 철학자들이 말할 때 칼 맑스는 인간이 만든 시장,?자본주의가 인간을 억압한다는 모순을 밝혀내고 해결책 찾으려고 노력했다.맑스는 공상적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자본주의 강점과 그 자본주의가 일으킨 폐혜를 정확히,?냉정하게 짚어냈다.

 

칼 맑스가 보지 못한 점이 있다.

칼 맑스는 억압받는 자들이 또는 노동자들이 인간 억압 푸는 선두주자로 나설 것이다.?진리의 편에 설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1차 대전 후 독일인 다수가 고난에 빠졌다.?하지만 그들이 히틀러를 투표로 뽑았다.?이 땅에서 노동자 절반이 박근혜 찍었다.?달동네 주민,?시골 사람들,?자영업자 다수가 박근혜 찍었다.?왜??저들은 강력한 지도자가 나와서 문제 풀어주길 고대했기 때문이다.?현대자동차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갈등 크다.?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에 대해서는 시늉만 하고 임금이나 수당 올리는 데 치중할 뿐이다.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은 조합주의 운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50년 전 칼 맑스 사상 반복은 어리석다.?칼 맑스 사상을 지금 상황에 맞춰야 한다.?칼 맑스가 지금 살아있다면 어찌했을까 고민해야 한다.?『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가 그래서 쓰여졌다고 볼 수 있다.?프랑스?68혁명 때 마르쿠제가 말했다.?미국 노동자들한테 기대 접는다.?노숙자 같은 룸펜이나 학생들이 전위부대이다.

‘마르크스의 폭넓은 관심 영영에서 항상 중심에 있었던 임금 노동자 계급은?’시민이면서도 시민이 아닌 자,?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자’였다.?그들은?’소외‘된 인간이었다.?소외는 젊은 시절 마르크스 저술의 배경 화면과도 같았다.?마르크스는 소외를 인간적 현상이 아니라 정치적 현상으로 파악했다.’

‘자본주의를 분석할 때 마르크스는 오히려 해부학자에 더 가깝다.?죽은 신체가 아니라,?자본주의라는 살아 있는 유기체를 취급한다는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20세기 사상 지도』, 27-28쪽)

 

레닌은 스피노자가 극찬한 마키아벨리 제자이다.

마키아벨리는 인민의 권력의지 만들려고 애썼다.?인민이 정치력 행사하는 세상 만들려고 애썼다.?그람시는 레닌 제자이다.?그람시는 헤게모니론(인민이 스스로 권력자)을 평생 다듬었다.?독일 사회민주당이 제국주의 전쟁 지지함으로써 제2?인터네셔널이 무너졌다.?레닌이 제국주의에 대한 대항세력 형성해서 제3?인터네셔널 만들었다.?레닌은 사회주의국가인 소비에트연방을 만들었다.?레닌은 파괴,?건설.?실패의 길을 걸었다.?레닌이 건설한 것 중시해야 한다.?레닌이 왜?실패했는지 보아야 한다.?맑스는 파리 코뮨 실패 예상하고 봉기 반대했다.?하지만 파리 코뮨 실패 후 왜?파리 코뮨이 실패했는지 연구했다.?『프랑스 혁명?3부작』을 썼다.?맑스는 파리 코뮨을 통해서 프로레타리아 독재 알게 되었다.

레닌은 제국주의 전쟁을 막으려고 소련이 전쟁하러 나가지 못 하게 자기 나라 군대를 힘 빠지게 했다.?중국 사상가 묵자가 전쟁 막으려고 두 나라 왔다 갔다 하면서 왕들한테 부탁했다.?하지만 레닌은 화끈하게 자기 나라 군대를 약화시켰다.?레닌이 하는 생각과 행동은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이를 박영균은 레닌의?‘극한적 사유’라고 말한다.

박영균은 말한다.?현대차 노조의?30년 근로자가 자식 취직 특혜 받으려고 협상할 게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 주장해야 한다고 말한다.?일자리 나누기 주장해야 한다고 말한다.?현실은 만만하지 않다.?현대차 노동자들은 노동 시간 단축을 반대한다.?임금 적어질 것을 두려워해서 반대한다.?사회가 지탱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이다.?맑스는 자본주의를 찬양했다.?자동화,?정보화 때문에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이 줄어들 수 있기에 자본주의를 찬양했다.?과거에?1천명이 할 일을 지금은?500명이 해낼 수 있다.?노동시간을 하루?8시간에서?4시간으로 줄일 수 있다. 21세기 대한민국 땅에서 하루 노동 시간을?6시간으로 하는 일터가 있다.윤구병이 이끄는 보리출판사이다.?다른 기업에서도 보리출판사 본받길 기도한다.?맑스는 줄어든 노동 시간을 향유하는 삶을 살 것을 권유한다.?하지만 자본은 노동시간 줄이지 않고 잉여인간 만들어 낸다.?노동자도 임금 깎이는 것 두려워해서 노동시간 줄이는 데 반대한다.

레닌이 지금 대한민국 땅에서 살고 있다면 노동시간을?4시간으로 화끈하게 줄일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그만큼 레닌은 화끈하게 살았다.?고독한 자리를 고수하며 살았다.

‘사람들에게 현재적 삶의 양식은?‘익숙한 것’?또는?‘자연스러운 것’이다.?또한 현재의 사회 체제에서 이득을 얻는 자들에게 변화는 기득권의 상실을 의미한다.?따라서 그들에게 레닌이라는 혁명가가 바꾸고자 하는 것,?행위 자체가 무시무시한 공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레닌은 이 점에 대해 누구보다도 단호했다’(52쪽)

레닌 사상 가운데?‘외부로부터의 도입’이란 개념이 어렵다.이 개념을 옳게 이해하려면?‘외부는 노동자에 대한 외부로서 지식 엘리트가 아니다.?오히려 그것은 노동자 자신의 내부에 있는?’외부‘이다.’(58쪽)?이 부분을 잘 이해해야 할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헤매게 된다.?김성민은?‘외부로부터의 도입’을?‘노동자 자신이 스스로 바뀌어 나가는 것’이라고 풀이했다.?나는 강연에서 김성민이 한 이 말을 듣고 이 책?58쪽에 실린?‘외부로부터의 도입’?설명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외부로부터의 도입’을 기독교처럼?‘거듭남’?유교 식으로?‘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나날이 더욱 새로워짐)이라 표현했으면 보통 사람들이 더 쉽게 받아들였을 거라 생각한다.?맑스주의 사상가들이 깊이 생각해주길 바란다.?그러고 보니 윤구병이 한글로 철학을 한다.?쉬운 한글로 풀이해주는 철학을 한다.?멋진 모습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노동자 자신의?’내부‘이고?’외부‘인가?’(58쪽)?노동조합적 계급의식이 내부‘이고 사회민주주의적 계급의식이?’외부‘이다.?곧?‘외부로부터의 도입’이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적 계급의식에서 벗어나 사회민주주의적 계급의식을 품는다는 말이다.‘내부’인 노동조합적 계급의식이 드러나는 경우는 이렇다.?현대차 노조의?30년 근로자가 자식 취직 특혜 받으려고 사장과 협상한다.?자신들이 받는 임금 높이려고 협상한다.

‘외부’인 사회민주주의적 계급의식이 드러나는 보기는 이렇다.?현대차 노조가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하는 것이다.?일자리 나누기 주장하는 것이다.?현실은 만만하지 않다.?현대차 노동자들은 노동 시간 단축을 반대한다.?현대차 노동자 부인들은 더 반대한다.?김진숙한테 들은 말이다.?임금 적어질 것을 두려워해서 반대한다.?그래서?‘외부로부터의 도입’이 실현되기 어렵다.?하지만 꿈을 꾸어야 꿈을 이룰 수 있다.?꿈도 꿀 수 없는 삶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공산주의 사회를 꿈꾸는 지젝 멋지다.

 

그람시는 노심초사했다

자본주의가 칼 맑스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지속될 것 같아서 노심초사했다.?미국 포드 자동차 회사가 노동자들한테 포드 자동차 살 수 있게 임금을 많이 올려주는 것 보고 노심초사했다. 2012년에 서유석한테 강연에서 들은 이야기이다.?서유석이 말한 대로 복지정책은 자본주의를 지속 시키는 정책이다.?하지만 이 나라에서 복지정책이라도 제대로 펼치면 좋겠다.?‘지도로 가장된 지배,?지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지도’ ‘오늘날의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지배/피지배,?지도/피지도 관계’보다?‘이 관계를 가장 잊기 쉽다는 것’에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이다.?그만큼 지배가 세련되었기 때문이다.다시 말하면 지배가 지도로 가장假裝될 뿐만 아니라 피지배자로 하여금 자신이 지배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지배하더라도 동의를 얻으면서 지배하기 때문이다.결국 지배와 지도는 잘 구별되지 않는다.’(169쪽)

박근혜는 시민들로부터 동의도 얻지 않는다.?대통령 선거 전에는 동의 얻는 시늉만 했을 뿐이다.?전태일 열사 동상 찾아간 것이 하나의 보기이다.?전태일 열사 동상만 찾아갔지 전태일 정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수동혁명이란 혁명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혁명을 더디게 하는 것이다.?바로 지금21세기 대한민국 땅에서 혁명을 더디게 하는 걸림돌이 무엇인가.?질문을 던진다.

 

마오쩌둥은 좀 거시기했다

레닌은 국제전을 내전으로 바꿨다.?제국주의 전쟁을 막으려고 소련군이 전쟁하러 나가지 못 하게 자기 나라 군대 힘 빠지게 했다.?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은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에 비해서 수가 적었다.?돈도 적었다.?미국은 장개석 국민당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마오쩌둥 공산당은 망하기 직전까지도 갔다.?그런데도 고난을 겪은 마오쩌둥 공산당이 중국이라는 나라를 세우자마자 외국 티벳을 침략했다.?나는 마오쩌둥이 레닌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레닌이 국제전을 내전으로 바꾼 사상을 마오쩌둥이 배웠어야 했다.

마오쩌둥이 주장하는 행과 앎이 과연 무엇인지 묻고 싶다.자기 나라 안에서만 통하는 행과 앎에 문제가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티벳이 중국을 침략하지도 않았는데 중국이 티벳을 침략할 명분이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역사를 중시한다는 중국,?명분을 중시한다는 중국은 한계가 많은 나라이다.?마오쩌둥은 중국 고전을 열심히 읽었다.?칼 맑스 책과 레닌 책도 열심히 읽었다.?이 땅 진보당 사람들도 마오쩌둥처럼 고전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진보당 사람들 수가 적으니 일당 백 역할 하려면 진보정당 사람들 실력을 키워야 한다.?진보당이 정권을 잡으려면 진보당 당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실력을 키워야 한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얼굴이 밉다

키도 작다.?장애도 앓았다.?로자 삶은 선생님들이 성공 모델로 학생들에게 권할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특히 외모에 열등감을 갖고 있는 학생들과 장애를 앓고 있는 학생들에게 선생님들이 권할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로자는 호연지기 대명사이다.?다음 글은 로자가 레닌을비판하는 대목이다. 귀 기울여 들을만한 대목이다.

‘당이나 조직된 노동대중이 없었던 러시아와는 달리,?독일에는 노동자 계급 출신의 관료가 두터운 층을 이루고 있었다.그래서 로자는 레닌이나 트로츠키보다 일찍 그리고 명확하게 노동 관료들의 부정적인 역할을 알고 있었다.?따라서 로자는 노동계급이?‘중앙위원회의 도구’가 되는 것에 반대했고 레닌주의적?‘?초중앙주의’를 비판했다.?로자는 스파르타쿠스 강령에서 사회주의 사회의 본질은 노동대중이 더 이상 지배당하는 대중이 아니라 스스로 지배하는 대중이어야 한다고 말했다.?왜냐하면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와 분리될 수 없으며,?타인의 억압을 담보로 한 자유는 자유의 특권화일 뿐 진정한 자유는 아니기 때문이었다.?맑스의 사회주의가?‘진정한 휴머니즘’,?즉?‘모든 개인이 완전하고 자유로운 발전을 지배적 원칙으로 하는 사회’라면 로자는 이를 실천하는 인도주의적 정열의 화신이었다.‘(104쪽)

중국에 맹자가 있었다면 폴란드에 로자 룩셈부르크가 있었다.?한국에는 남명 조식 선생이 계셨다.?레닌은 남명 조식 선생처럼 화끈했다.?남명 조식 선생과 레닌 선생이 만나 술 한 잔 한다면 두 분이 형님 아우님 사이 되었을 것이다.

 

<浴川>
남명 조식

全身四十年前累

千斛淸淵洗盡休

塵土?能生五內

直今?腹付歸流

<냇가에서 목욕하며>

사십 년 동안 쌓인 온 몸의 허물을

맑은 못의 천 섬 물로 다 씻어버리리

혹시나 오장에 티끌이 생긴다면

지금 당장 배를 갈라 물에 흘려보내리라

『몸은 곤궁하나 시는 썩지 않네』(송재소,?한길사, 2003년, 115쪽)

로자는 뜨겁게 살았다.?독일군 병사 개머리 판에 맞아 죽었다.?붉은 피를 흘리면서 죽었다.?그 뜨거운 붉은 피가 언젠가는?99프로를 위해서 쓰일 날이 있을 것이다.

서유석은 칼 맑스 사상을 제대로 알려면 우선 칼 맑스를 사랑해야 된다고 말한다.?공감한다.

 

대한민국은 삼성제국이다[보고듣고생각하기]

대한민국은 삼성제국이다: 김용철이 쓴 『삼성을 생각한다』

 

나태영(한철연 회원)

 

 

대학생들은 왜? 삼성에서 일하고 싶어 할까?

?‘대학생 선호 기업 1위에’…‘성별을 구분하지 않으면 전체 20.2%의 지지를 받은 삼성전자가 2004년부터 10년째 내리 1위 자리에 올랐다.’([경향신문] 디지털뉴스팀, 2013. 8. 12.)

현실이다. 많은 대학생들이 삼성에 취직하고 싶어 하는 사실은 현실이다. 그럼 왜 많은 대학생들이 삼성에 취직하고 싶어 할까? 우리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일 거다. 세상 사람들이 삼성에서 일한다고 하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일 거다. 결혼하기도 수월해지기 때문일 거다. 지방 중소기업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한 경우와 대조해 보면 왜 많은 대학생들이 삼성에 취직하고 싶어 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지방 중소기업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하면 2년 뒤가 불안하다. 2년 뒤에 계속 일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월급도 턱없이 적다. 결혼하기도 만만치 않다. 현실이다. 내 자식이 삼성에 취직하면 나는 기뻐할 것이다. 사실이다. 내 자식이 삼성에 들어갈 실력 되면서도 삼성 들어가지 않으면 내 자식은 자유인이다. 우리는 삼성의 민낯을 보아야 한다. 화장을 지운 삼성의 민낯을 보아야 한다. 김용철이 쓴 『삼성을 생각한다』 이 책은 화장기 없는 삼성의 민낯을 보여준다. 화장기 없는 이건희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건희는 삼성이다. 삼성은 이건희이다.

?‘이회장은 ‘고독한 황태자’로 키워져 왔다. 그는 사람보다는 영화나 대중매체와 더 어울렸다. 그가 강조하는 ‘입체적 사고’는 ‘영상매체적 사고’를 의미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영화 하나로도 큰 공부가 된다. 영화가 한 사람의 일생을 2시간으로 축약시킨다고 보면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겠는가? 이게 입체적 사고다.” 그런데 문제는 ‘입체적 사고’는 커뮤니케이션에 장애를 일으키기 쉽다는 점이다. 글과 달리 영화는 각자 ‘읽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75쪽) ‘삼성인들은 한국이라는 현실에서 살아온 반면 이회장은 ’가상 현실‘에서 지내왔다. 이러한 진단에 아직 동의할 수 없다면, 이회장이 경영진에게 수시로 강조한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보자. “양은 0%로, 질은 100%로 해라. 이를 위해서라면 시장점유율이 줄어도 좋고 회사가 1년 동안 문을 닫아도 좋다.” “기업이 돈 잘 버는 기계여서도 안 된다. 도덕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발언은 삼성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의 성장 이유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그간 한국 경제는 ‘질’이 아닌 ‘양’으로 커왔다. 그게 어찌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겠는가. 도덕 경영? 심하게 이야기하면 그 말을 듣는 순간 ‘놀고 있네!’라는 대꾸를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강준만이 쓴 『인물과 사상 1』, 85, 86쪽)

강준만이 한 말 중에서 ‘가상현실’ 네 글자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건희는 자신이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도 모른다. 자기가 저지른 죄가 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 이건희가 어찌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2009년 12월 29일 이건희가 죄를 짓고도 대통령 특별사면 받고 풀려났다. 그 뒤 이건희가 이런 말을 했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이건희는 가상현실 속에서 사는 게 맞다. 이건희가 가상현실 속에서 살기 위해서 한 일은 무엇인가? 이건희가 가상현실 속에서 살게 된 상황은 어떠한가? 이건희가 떡값을 뿌렸기 때문이다. 삼성제국이 광고시장의 제왕이기 때문이다. 장관, 대법원장, 검찰총장, 국정원장, 국세청장 될 인간들한테 미리 장학금을 줬기 때문이다. 삼성장학금을 줬기 때문이다. 이건희는 저들한테 큰돈을 퍼부어 줬다. 언론기관 월급쟁이들한테는 떡고물 뿌렸다. 그래서 언론기관 월급쟁이들은 이건희와 삼성제국한테 충성을 바친다. 진정 충성을 바친다. 삼성제국 이건희 황제를 위해서라면 마누라 빼고 다 바꾼다. 삼성제국을 무서워한다. 김용철이 삼성제국의 비리를 언론을 통해서 알리려고 해도 언론에서는 꺼릴 뿐이다. 삼성광고에 크게 의존하는 언론은 삼성제국을 무서워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KBS, MBC 등 방송사에 같은 내용을 제보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다들 누가 먼저 나서주기만을 바랐다. 상대가 삼성이 아니었다면 달랐을 게다.’ ‘그런데 삼성에 대해서는 다들 무서우리만치 조심스러워했다. 서로 공을 떠넘겼다.’(32쪽)

 

대한민국 관료는 삼성제국 종이다.

삼성제국은 1프로 정점에 서 있다. 1프로는 수가 적다. 99프로는 수가 많다. 제 정신 박힌 관료라면 99프로를 위한 정책을 펴야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07년 11월 20일, 경제개혁연대는 삼성화재가 이재용 재산 증식 과정에서 ‘금융산업구조개선에관한법률’(금산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동일계열 금융기관이 비금융계열사 지분을 5%를 초과해 취득할 수 없도록 규정한 금산법 제24조에 걸렸다. 이는 8일 전인 사제단 3차 기자회견 당시 공개된 “JY 유가증권 취득 일자별 현황” 문건을 기초로 분석한 결과다.’ ‘금산법 등 금산분리 관련 법령은 삼성의 약한 고리였다.’‘이명박 정부는 금산분리 완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명박 정부 초대 경제 수장이었던 강만수에 이어 기획재정부 장관에 오른 윤증현은 대표적인 금산분리 완화론자로 꼽힌다.’(65쪽)대통령은 5년에 한 번씩 바뀐다. 하지만 삼성제국 황제 이건희는 죽을 때까지 황제이다. 관료들이 영원한 권력자 이건희에게 잘 보이려고 애 쓰는 것은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다만 99프로 입장에서는 재앙이다.

 

진보언론은 제 역할을 해내는가?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기자들은 삼성이, 삼성경제연구소가 기획하고 노무현과 이명박이 밀어붙인 한미 서민패죽이기협정 폐기를 지금 외치지 않는다. [한겨레신문]은 한미 서민패죽이기협정 특집기사를 쓴 적이 있다. 폐기까지 외치지 못했다. 재협상 여론만 조성했을 뿐이다. [프레시안]은 2000년대 중반에 한미 서민패죽이기협정 반대 외친 것 자랑만 한다. [오마이뉴스]도 한미 서민패죽이기협정 반대 시위가 한창일 때만 관심 갖고 지금은 감감 무소식이다. 김대중은 남북통일 정책을 1970년대 초부터 약 40년간 다듬고 다듬고 다듬었다. 남북통일 정책을 물고 늘어졌다. 지금 진보언론은 그러지 못한다. 진보언론의 분발을 촉구한다. 한미 서민패죽이기협정 폐기하지 않고는 경제민주화, 복지정책은 가상현실 속 이야기일 뿐이다. 언론은 여론을 기사화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꼭 필요한 여론을 만드는 것도 언론이 해야 할 몫이다.

 

진보언론 기자들은 김유진이 하는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정론직필, 언론인의 길을 가는 대다수 사람들의 자부심이자 꿈일 것이다. 그러나 삼성에게는 어떤가. 조심스레 지켜보다가 더 이상 덮을 수 없는 문제가 되고서야 달려드는 언론, 누군가의 죽음으로 누구나 알던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나서야 들끓는 언론. 진실을 전하고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움직이고 희생하고 큰 문제가 되어야 움직이는 언론. 이것이 오늘의 전근대적이고도 세계적인 기업 삼성을 만든 일등공신은 아니었을까. 한국사회에서 삼성을 건드린다는 것은 ‘삼성에겐 어쩔 수 없다’며 숨죽이고 있는 수많은 권리와 정의를 되살리는 일이다. 이런 사회적인 힘을 키우는 대안언론의 성장을 지지하고 고대한다.’ (김유진, [미디어오늘], 2013. 11. 9.)

 

이상호, 노회찬은 괜찮은 사람이다.

김용철이 삼성 비리를 밝히다가 큰 고생을 했다. 삼성 바로세우기 하려면 어려움 감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삼성 비리를 물고 즐어진 노회찬과 이상호는 괜찮은 사람이다. ‘삼성 측은 중앙일보 부국장을 통해 2007년 5월 25일자 [한겨레] 1면 기사를 문제 삼았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었다. 누군가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삼성 측이 이 기사에 격분했다고 했다.’ ‘중앙일보 부국장이 전한 삼성 측의 항의 내용은 대략 이랬다. “가볍게 듣지 말라. 다른 기업들에게도 서정이 반(反)기업적인 변호사가 있는 로펌이라고 알리겠다. 그래서 영업을 못하게 하겠다.”’(25쪽) ‘대표 변호사들은’ ‘내게 삼성과 한화 등의 반발이 잠잠해질 때까지 두 달간 휴직하라고 지시했다.’‘서정 동료 변호사 둘을 만났다. 이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대략 이랬다. ”네가 복귀할 분위기가 아니다. 네가 먼저 삼성 이학수 부회장을 만나 사과하고, 그쪽에서도 근무시켜도 좋다는 연락이 와야 서정에 복귀할 명분이 있다. 삼성전자 최도석 사장도 김용철이 있는 한 서정과 거래할 수 없다고 말했다.’(28쪽) 물론 노회찬은 좀 거시기하다. 조선일보에게 아부했던 노회찬은 좀 거시기하다. 그래도 노회찬은 삼성제국에게 대들 줄 안다. 인정한다. 이상호는 기자이다. 송건호, 리영희 뒤를 잇는 기자이다. 조선시대 사관답다. 왕한테도 으르렁 거린 조선시대 사관답다. 호랑이 조선 왕 이방원이 가장 무서워한 사람은 조선시대 사관이었다. 노회찬, 이상호처럼 삼성제국한테 맞서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빈다.

99프로는 1프로 대표 삼성제국에 잘 맞서는가? 잘 맞서지 못한다. 이건희 꼭두각시 이명박, 박근혜에게 표를 준 99프로는 잘 맞서지 못한다. 오히려 자기 등에 그리고 다른 99프로 등에 칼을 꽂는다. 조중동, 종편, 새누리당에 놀아난 99프로 정신 차려야 한다. 제 밥그릇 챙길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가 제 밥그릇 챙기지 못하는데 그 누가 99프로 밥그릇 챙겨 주겠는가? 삼성은 치밀하다. 99프로는 느슨하다. 삼성에 대해서 공부하자. 삼성에 대한 공부가 전문가들 몫만은 아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 삼성제국 민낯을 정확히 보고 삼성에 맞서자. 삼성제국 민낯을 보여주는 이 책을 꼭 읽자. 삼성이 대한민국 법대로 하는 기업이 되게 하자. 삼성이 상식을 지키는 기업이 되게 하자. 삼성이 제 정신 차리도록 우선 삼성제국 물건 쓰지 않는 실천이라도 하자.

 

 

‘상식’이란 두 글자가 한 데서 고생이 많다. :『내란음모의 블랙박스를 열다』[보고듣고생각하기]

‘상식’이란 두 글자가 한 데서 고생이 많다. :『내란음모의 블랙박스를 열다』

 

나태영(한철연 회원)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은 그 놈이 그 놈이다. 박정희는 18년간 독재로 이 나라를 숨 쉬고 살기 힘든 나라로 만들었다. 박정희 시대에 중앙정보부가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죽었어야 했는데 명이 참 길다. 1980년 12월 31일자로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1999년 1월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김종필이 1963년까지 초대 중앙정보부장(현 국가정보원장)을 지냈다.

박근혜 아버지인 다까끼 마사오(박정희)를 1979년 10월 26일 총살시킨 사람이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재규이다.

‘권력에서 밀려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결국 자신이 모시던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했고 이는 유신독재의 몰락을 불렀다. 남재준 국정원장의 몰락이 박근혜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지 주목된다.’(문경환 글, 128쪽)

‘국정원’ 세 글자는 ‘피눈물’ 세 글자와 동의어이다. 국정원 때문에 피눈물 흘린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저는 공소장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검찰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부양능력 없는 엄마를 둔 조카를 돌보는 일조차 국가정보를 빼내기 위한 내란음모의 증거라며 억지로 들이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정원이 자신들의 대선부정을 덮기 위해 조작해낸 이번 사건에는 상식도 기본도 없이 광기만 존재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아이아빠가 갇혀 있는 하루하루가 억울하고 일분일초가 아깝습니다. 아이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아이 아빠를 보는 것도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

“도대체 이런 슬프고 말도 안 되는 일이 왜 생긴 걸까요.” 믿었던 30년 지기 친구가 국정원에서 돈을 받고 자기 양심을 판 것을 알았을 때도 분노보다는 처절한 안타까움과 연민을 먼저 가졌던 제 남편입니다.’(임이화 글, 7쪽)

국정원이 엄한 사람 간첩 만들어 죽였다. 엄한 사람 국가보안법이란 죄로 감옥에 가두었다. 감옥에 갇힐 인간은 다름 아닌 국정원장 남재준이다.

 

김갑수 외 공저, <내란음모의 블랙박스를 열다>, 도서출판615, 2013.

 

‘1968년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각종 고문과 가혹행위를 통해 조직한 사건으로 밝혀졌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간첩사건’으로 발표한 이 사건으로 ‘수괴’로 지목된 권재혁은 이듬해인 1969년 사형됐고, 이강복은 암으로 옥중사망, 이형락은 만기출소 후 자살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 진실화해위)는’ “19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가 ‘통일혁명당사건’과 함께 ‘남조선해방전략당사건’을 ‘간첩사건’으로 발표했지만, 별도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권재혁 등 13명을 연행해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를 통해 ‘남조선해방전략당사건’이라는 이름을 붙여 반국가단체로 조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중앙정보부는 ‘통일혁명당 사건’의 수사과정에서 권재혁 등 13명을 1968년 7월 30일 경부터 강제 연행해 3일에서 53일간 불법 구금하고, 구타와 잠 안 재우기 등의 고문과 가혹행위를 통해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앙정보부가 지인들 간의 친목모임을 ‘남조선해방전략당’이란 명칭과 강령을 가진 반국가단체로 확대 과장해 조작한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피고인들에 대한 검사작성 피의자 신문조서나 자술서 등은 임의성이 의심이 있는 억압적인 상태에서 작성된 것으로 판단되어 반국가단체 구성, 가입 내지 내란예비음모 등의 범죄사실에 대한 증거도 없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사과하고 ‘화해조치’를 취할 것과 재심을 권고했다.’(통일뉴스, 박현범, 2009.10.13.)

21세기에도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살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독자 여러분은 <구속노동자후원회>라는 단체 누리집 들어가 보기 바란다.

 

고등학교 교육만 제대로 받아도 국정원이 저지른 잘못 알 수 있다.

 

하지만 대학교 졸업하고서도, 박사학위까지 따고서도, 언론사 기자 일 여러 해 하고서도, 언론사 이끌면서도 국정원이 시키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당 국회의원들, 정의당 국회의원들, 손호철, 이대근, 오연호, 심상정, 진중권, 주대환 등등이 그들이다.

국정원이 프락치를 시켜서 진보당 모임 현장을 녹음했다. 녹음 내용을 조작하고, 짜깁기해서 녹취록을 퍼뜨렸다. 한국일보가 ‘짜깁기 녹취록’을 퍼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정원이 평소에 왜곡, 조작하는 데 선수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국정원이 퍼뜨린 ‘짜깁기 녹취록’을 먼저 의심해야 했다. 먼저 1차 녹음 파일을 정확히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해야 했다. 왜곡 없이 글로 옮겨진 내용을 바탕삼아 국정원이든, 진보당이든, 이석기를 비판해야 했다. 하지만 저들은 그리하지 않았다. 국정원이 퍼뜨린 ‘짜깁기 녹취록’을 바탕삼아 이석기와 진보당을 비난했다. 이 땅에서 ‘상식’이란 두 글자가 한 데서 고생이 많다.
‘진보적이고 배운 사람들이, 여전히 현상에 압도되어 본질을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매카시즘의 노예들과 별 차이가 없다.’(김대규 글, 뒤표지)

 

손호철을 비판한다.

 

‘그러나 이번에 밝혀진 녹취록 등은 사법적 판결이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와 상관없이 테러계획 등 그 내용이 충격적이다.’

손호철한테 말한다. 테러계획은 없었다. 정확히 파악하고 글을 써라.

‘문제는 이번 사태가 보여주듯이 국가보안법의 존재 등으로 인해 종북주의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노선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민주당의 묻지마식 반MB야권연대와 비례대표제가 더해져 이들의 정체성에 대한 엄밀한 대중의 검증이 없이 문제의 인물들이 국회에 진출한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오히려 국가보안법을 폐지해 종북주의자들이 떳떳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고 국민의 정치적 심판을 받도록 만들어서 민의에 의해 정치적으로 고사시켜야 한다. 또 민주당도 낡은 묻지마식 야권연대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2013-09-15[손호철의 정치시평]이석기를 넘어서)

진보당 국회의원들 괜찮은 사람들이다. 국정원에 놀아난 민주당, 정의당 국회의원들이 문제 많은 인물들이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합쳐야 한다. 민정당으로 합쳐야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되면 진보당 사람들이 더 힘을 얻는다. 진보당 사람들 죽지 않는다.

‘정의당 그리고 노동당으로 이름이 바뀐 진보신당 등 주사파에 비판적인 진보세력들은 진보의 존망이 걸린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대중의 올바른 선택이다. 시대착오적인 종북주의는 신랄하게 비판하되 그것이 ‘종북매카시즘’으로 나가는 것을 막고 올바른 진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대중의 몫이다.’(2013-09-15[손호철의 정치시평]이석기를 넘어서)

정의당은 한미 서민패죽이기협정을 옹호하는 국민참여당 계열이 함께한 정당이다. 손호철한테 부탁한다. 정의당한테 바라지 말라. 상처 입는다. 노동당(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에게 ‘종북’이란 주홍글씨 새긴 것 사과하라. 한나라당이 ‘친북’이란 두 글자 쓸 때 당신들은 ‘종북’이란 두 글자 썼다. 손호철 같은 진보지식인 척 하는 지식기술자들이 정신 차려야 이 땅 진보정당이 산다.

손호철처럼 진보당을 비난하는 사람들한테 손석춘이 한 말을 알려준다.

“언론이 이승만의 3·15부정선거와 비슷한 사건으로 대서특필해간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선출 방법만 보더라도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과 얼마든지 단순 비교가 가능하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부정선거라며 이승만까지 덧붙여 몰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여론몰이에 휩쓸린 사람들에게 정말 묻고 싶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비례대표 순위는 어떻게 결정하고 또 했는가. 더러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통합진보당과 경선 규칙이 다르다고 반박한다. 과연 그러한가. 좋다. 두 당은 통합진보당과 달리 당 지도부가 당 안팎의 인사들로 임명한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회’에서 결정했다. 그렇다면 그 심사위에서 결정한 순위대로 모든 게 이뤄졌을까? 그 과정에서 당 지도부의 영향력으로 순위가 조정된 사람은 없는가? 바로 그렇기에 조중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진보의 죽음을 들먹이는 사람들과 이 책이 서 있는 자리는 확연히 다르다. 진보정치 세력이 직면한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 또한 수구-보수세력과 민주세력은 달라야 한다.” (손석춘이 쓴 『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 21, 22쪽)

새누리당, 민주당 인간들아! 제발 냉수 마시고 속 차려라!

당신들 당내 비례대표를 구렁이 담 넘어가듯 뽑지 말고 진보당처럼 투표로 뽑아라. 진보당보다 더 멋지게 비례대표 뽑아라. 그런 다음에 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뽑는 길 비난하라.

 

‘이석기 사태’가 아니라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사건’이다.

 

‘태안 기름유출사건’이 아니라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건’이 맞다. 많은 언론들이 ‘태안 기름유출사건’이라는 표현을 쓴다. 심지어 진보언론에서도 이 표현을 쓴다. 옳지 않다. 태안 사람들을 두 번 죽이는 짓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삼성은 대통령 보다 힘이 세다. 삼성이 힘 있는 사람들한테 떡값을 돌렸다. 삼성이 언론사에 많은 광고를 준다. 언론사는 삼성한테서 광고 받지 못하면 밥벌이가 힘들어진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그래도 진보언론이라면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건’이란 표현을 써야 한다.

똑같이 ‘이석기 사태’라는 표현을 쓰면 문제 일으킨 국정원은 빠진다. 죄 지은 것 없는 이석기만 고생한다. 이석기가 문제 일으켰다는 분위기를 만든다.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사건’이란 표현을 써야 한다. 조중동, 종편, 지상파 방송한테는 바라지도 않는다.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은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사건’이란 표현을 써 주기 바란다. 진정 당신들이 진보언론이라면 그리해주기 바란다.

한국고대사 문제는 한국현대사 문제이다: 김 상태가 쓴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보고 듣고 생각하기]

한국고대사 문제는 한국현대사 문제이다: 김 상태가 쓴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

 

나태영(한철연 회원)

 

 

한국고대사 문제는 한국현대사 문제이다?

한국고대사는 말 그대로 한국고대사를 다루는 학문이다. 하지만 한국고대사를 다루는 사람은 현대인이다.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현대인들이 한국고대사를 주로 다룬다. 이 책 글쓴이 김상태는 그래서 지금 한국고대사를 다루는 한국 사학자들 연구 방법을 냉혹하게 평가한다.?

김상태,, 책보세, 2012


김상태는 실명 비판을 한다.?

김상태는 강준만, 김갑수처럼 실명 비판 한다. 실명 비판 한다는 것은 나를 던지는 것이다. 용기가 없으면 실명 비판할 수 없다. 실명으로 칭찬하기는 쉽지만 실명으로 비판하기는 어렵다. 잘못하면 비판받은 사람한테서 고소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왕따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상태는 훌륭하다.?

강준만, 김갑수, 김상태가 실명 비판하는 까닭은 공정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 이다. 우리 역사에서 90점 받아야 할 사람이 40점 받는 경우가 많다. 신채호 선생이 그렇다. 20점 받아야 할 사람이 90점 받는 경우가 많다. 안창호가 그렇다.?

김상태는 대고조선을 주장하는 학자 신채호, 리지린, 윤내현, 복기대, 이덕일, 이희진, 성삼제가 90점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고조선을 주장하는 이완용 양아들 이병도, 이병도 제자 이기백, 노태돈, 송호정, 오강원, 김정배, 이기동, 박노자가 마이너스 90점 받아야 된다고 주장한다. 박노자는 한국고대사 이야기 그만하면 좋겠다. 한국고대사 글 계속 쓰면 진보적인 글 쓰고 받은 점수 다 까먹는다. 진심으로 박노자한테 부탁한다.?

그래도 이병도는 죽기 전에 정신 차렸다. 최태영 선생 덕에 정신 차렸다. 정신 차리고 대고조선을 주장하는 책을 최태영 선생과 함께 썼다. 그런데도 이병도 제자들은 아직도 얼이 빠져 있다. 너무 게으르다. 솔직하게 자신들 실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력 있는 사람들을 무시한다. 그들은 문헌사학을 포기했다. 오히려 문헌사학 대가 윤내현을 비난한다.?

저들은 고조선 관련 자료가 적다고만 한탄한다. 하지만 고조선 관련 자료는 많다. 윤내현은 저들이 게으름 피울 때 다음과 같은 책에 흩어져 있는 고조선 관련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일을 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꽤어야 보배다윤내현은 서말이 안 되는 구슬을 꽤어 걸작품을 만들었다. 신채호 선생, 리지린한테 배우고 두 분을 뛰어넘는 일을 해냈다. 그런데도 저들은 윤내현이 이룬 것을 시기하고 질투만 한다. 윤내현을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매장하려고 한다. 나는 저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이 진정 학자인가??

한국사료:삼국사,삼국사기, 제왕운기, 고려사, 제왕운기, 고려사, 응제시주, 세종실록』〈지리지, 동국통감, 성호사설, 동국통감등등 ?… .중국사료: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 통전, 만주원류고(서평자 주: 청나라 정사, 신채호 선생이 인정하는 책, 책 나온 지 300년 만에 공무원이 번역), 요사, 대명일통지, 관자, 산해경, 수경주, 여씨춘추, 염철론, 전국책, 실원등등 ?… .(171)?


이기백은 비겁했다.?

이기백은 한국사 신론 에서 자신이 식민사관 없애려고 애썼다고 말한다. 거짓이다. 이기백이 한국사가 식민사관 벗어나게 한 것 별로 없다. 한국사 시민강좌편집장 이기백은 한국사 시민강좌서영수, 이기동이 잘못을 지질러도 침묵했다. 이완용 양아들 이병도 제자답다. 이기백은 똑똑한 인간이다. 일본이 저지른 식민사관 한계를 알 것이다. 그런데도 못난 스승 이론을 고치려고 애쓰지 않았다.?

이기백은 한국사 시민강좌2집의 편집인이면서도 서영수의 거짓과 이기동의 빨갱이 때려잡기를 교정하거나 만류하지 않고 그대로 용인했다. 아니 편집인으로서 그들을 옹호하고 조장했다는 쪽이 더 맞아 보인다. 이기백 자신이 이미 윤내현 때려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316)고상한 선비차림으로 행세해 온 이기백에 대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317)?


윤내현한테 몹쓸 짓한 이형구

‘1981년 필자가 귀국한 후 단국대학교 사학과 모 강사가 필자의 석사논문(45)을 빌려간 다음 이를 윤내현에게 전달하였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도 반환되지 않았다. 윤내현의 글(<기자신고>, 1983)에는 필자의 석사논문과 일치하는 견해도 있으나 어디에도 전거가 보이지 않는다.’(486, 이형구)결국 이형구의 석사논문의 결론은 기자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만주와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이론으로 한국 주류 고대사학계 이론의 방계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이것은 기자가 만주와 한반도에 온 적이 없다는 윤내현의 <기자신고>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이형구는 지금까지도 이 이론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견해가 윤내현과 일치했다는 말인가?그럼에도 이형구가 저런 주장을 떠들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인용한 자료 가운데 일부와 그에 대한 해석의 일부가 같다고 우기는 것이다.’(488)


이이화는 한국고대사 공부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이이화는 기초적인 내용도 모른다. 성실성도 부족하다. 성삼제가 쓴 고조선 사라진 역사만 봤어도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타깝다. 사마천은 사기란 책에서 사기 쳤다. 고조선 한나라 전쟁에서 고조선이 이겼는데도 한나라가 이겼다고 사기를 쳤다.?

한나라는 조선을 침략하여 승리하고 나서 한사군을 세웠기 때문에 굳이 왕검성을 버리고 요동에 낙랑군을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이이화, 이야기 한국사1, 266(이 책 93쪽에서 다시 인용)고조선과 한과의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데 한의 장군들이 작전 실패의 책임 등을 물어 연이어 처형당하고 있는 것이다.‘위산의 군대는 황제 직할의 정예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위산은 패수를 건너보지도 못하고 회군한다. 그러자 한 무제는 위산도 처형한다. 별다른 전과를 올리지 못한 위산에 이어 한무제는 제남 태수 공손수를 파병한다. 고조선을 침공하라고 추가 파병된 공손수는 도리어 아군 장수인 누선장군을 체포한다. 보고를 받은 한 무제는 제나 태수 공손수도 처형한다.‘(고조선 사라진 역사, 성삼제, 121)?

독자 여러분한테 묻는다. 당신들이 한 무제이다. 한나라가 고조선한테 이겼다면 당신들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장군들 목을 치겠는가??독자 여러분은 이 책에서 이 부분만 읽어도 이 책 산 보람을 느낄 것이다.?


소고조선의 뼈대와 삼국사기불신론

송호정은 자신의 주저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36쪽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 형성 과정을 중심 주제로 설정한 것은 고조선이 국가 형성과 동시에 곧바로 멸망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송호정이나 주류 고대사학계가 자신들의 입장을 이런 식으로 명확하게 밝히는 일은 거의 없다. 사실 이 문장도 상세히 읽어보지 않으면 여간해서는 찾아내기 어려운, 구석에 숨어 있는 문장이다.’?절반은 실수이고 절반은 이 책의 원본인 자기 박사논문의 지도교수가 노태돈이기 때문으로 보인다.’(189)? ?

어쨌든 고조선이 국가 형성과 동시에 망해버렸다는 것은 과거 고조선이란 조그만 부락이 위만조선이 등장하는 서기전 2세기 무렵에야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 수준으로 발전했다가 곧바로 한나라에 망해버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서기전 2400년경에 건국되어 반만년 민족사를 이루어왔다는 고조선의 역사는 틀렸다는 얘기다. 이것은 소고조선론의 핵심 논리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하나만 덧붙이면’ ‘바로 한사군 이야기다.’?

‘1. 고조선은 서기전 2세기 무렵 국가가 되었다가 곧바로 망해버린 나라다. 최소한 서기전 1500년 이전부터 국가를 이루었던 중국의 은()나라나 그 뒤를 이은 주나라 및 춘추전국시대의 나라들에 비추면 고조선은 그 기간 동안 줄곧 후진적인 부락 집단에 불과했다.?

2. 그 작은 나라를 한나라가 정복하여 한사군을 설치했고 이 가운데 낙랑군은 고조선 지역에 오래 남아 400년간 지속되며 이후 한반도 국가와 사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한사군 이야기다.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인데 이것도 꼭 기억해두어야 한다.?

주류 고대사학계가 가진 모든 이론적 논증구조의 핵심은 한사군이다. 이것은 일제시대 일본인 관변사학자들이 만든 전통으로서 그 일본 식민사학과 이것을 그대로 이어받은 한국 주류 고대사학계의 철의 법칙이다.?

이들은 고대사 어느 시대를 말하든 일단 한사군, 특히 낙랑군의 위치와 그 낙랑군이 존재하던 시기를 기준으로 한다. 한사군의 위치를 기준으로 고조선, 부여, 고구려, 옥저 등의 위치를 비정하고 한사군이 존재하던 시기를 기준으로 고조선, 부여, 고구려, 옥저등의 시기를 배정한다. 고조선이 미개한 부락집단으로 전락한 이유도 근본적으로 여기에 있다. 나아가 이들의 위치를 기준으로 만리장성의 위치를 설정하고 심지어 이들의 위치와 연대를 기준으로 삼국사기삼국유사의 기록까지 마음대로 뜯어 고친다.’?

둘째, 만일 한사군이 한반도 내부에 있었다는 이론이 무너지면 일단 고구려사를 연구한 송호정의 사부 노태돈의 평생 업적부터 휴지 조각이 된다. 한사군이 한반도 내부에 있었다고 보는 노태돈은 고구려 성립 시기부터 그 위치, 영역, 군사적, 정치적 활동 전체를 한반도 내부에 있는 한사군과의 관계를 통해 배치하고 정리하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일이 이쯤 되면 한반도 내부의 한사군을 전제로 한 기존의 신라사, 백제사, 가야사, 전체도 모두 무너진다. 다시 말해 이병도, 이기백, 김정배, 노태돈, 송호정으로 이어지는 해방 이후 70년간의 한국 주류 고대사학계의 고대사 이론 전체가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들이 윤내현 등장 이전에는 별로 신경도 안 쓰던 고조선사에 목숨 걸고 달려드는 실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디 이론만 무너지겠는가. 이론이 무너진 순간 그들의 수십 년간 나태와 권위주의와 학문적 무능력과 매국적 식민사학도 다 드러나게 된다. 국사 교과서에 이들의 수십 년 학문 내용의 오류와 본질이 기록되고 우리의 자녀와 후손들이 이 기록을 배운다고 생각해 보라. 이렇게 되면 한국 주류 고대사학계 전체는 밤잠을 못 이룰 것이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윤내현을 왕따시키며 심지어 역사학자로 역사 문헌을 포기하면서까지 한국 고대사를 왜곡하려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192)?

1프로에게 퍼주는 대한민국: 송기균이 쓴『고환율의 음모』[보고 듣고 생각하기]

1프로에게 퍼주는 대한민국

송기균이 쓴 『고환율의 음모』[보고 듣고 생각하기]

 

나태영(한철연 회원)

 

 

나는 왜 이 책을 읽고 공부하는가?

 

이 땅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이 펼쳐지려면 한미서민패죽이기협정(한미자유무역협정)이 폐기되어야만 한다. 그런데도 한미서민패죽이기협정 폐기하라! 외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1프로에게 저항해야할 사람들이 1프로에게 세뇌되어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1프로에게 저항해야할 사람들 의지와 끈질김이 약해서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99프로 가운데 다수가 삼성에게 일하고 싶을 것이다. 돈 많이 벌 수 있으니 그럴 것이다. 갈 길이 멀다. 나도 삼성에서 일하고 싶다. 내 자식들이 삼성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면 좋겠다. 내 바램이다. 사실이다. 그러니 문제 풀기 힘들다. 삼성을 비판하면서도 삼성에 안기고 싶어 하는 나를 포함한 99프로 서민들의 이중적인 심리상태가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이 땅에서 1프로가 지닌 힘을 알고 싶다. 이 나라가 99프로가 아니라 1프로를 위해서 봉사하는 나라임을 알고 싶다. 이 땅에서 대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보다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훨씬 더 많다. 국가가 중소기업 우선 정책을 펼쳐야 되는 데 대기업 우선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미서민패죽이기협정은 한국과 미국 1프로에게 퍼주는 정책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고 공부한다. 독자 여러분도 이 책을 읽고 공부하시길 부탁드린다. 모르고 당하는 것 보다 알고 당하는 게 더 고통스럽다. 그러나 내가 1프로에게 고통스러움을 당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1프로와 싸울 힘을 갖게 된다.

송기균,, 21세기북스, 2013

?
엄마의 마음

엄마에게 자식이 둘 있다. 삼성과 서민이란 자식 둘이 있다. 삼성은 금고에 산처럼 많은 돈을 쌓아놓고 산다. 서민은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간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는 2년 뒤를 두려워하며 산다. 무릇 엄마라면 서민에게 도움을 주려 할 것이다. 국가란 엄마처럼 해야 할 것이다. 복지국가를 꿈꾸는 국가라면 당연히 그리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박근혜 정부도 이명박 정부와 똑같이 행동한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샴쌍둥이이다. 둘은 1프로 삼성에게 퍼 준다. 서민에게 고통을 준다.

고환율이란 무엇인가?

고환율이란 달러와 원화가 서로 교환 될 때 달러를 높게 쳐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1달러에 1천 원이면 고환율이다. 1달러에 5백 원이면 저환율이다. 달러가 주인이고 원화는 비교대상이다. 1달러에 몇 원 하지 1천원에 몇 달러 라고 말하지 않는다. 국가가 저환율 정책을 펴면 한국 소비자가 이득이다. 원유 사 들여오는 값이 떨어져 자동차 기름 값이 떨어진다. 수입 물가가 떨어져 소비자가 득을 본다. 국가가 고환율 정책을 펴면 수출 대기업이 이득이다. 수출해서 벌어들인 달러를 외환시장에서 팔아 큰 돈을 번다.

박근혜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박근혜 후보는 18대 대선에서 중산층을 70프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참 대단한 배짱이다. 대낮에 두 눈 뜨고 거짓말을 해대다니 대단한 배짱이다. 그래도 이 말 믿는 사람들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산층을 70프로 만들려면 여러 가지 정책을 펼쳐야 한다. 한미서민패죽이기협정을 폐기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을 확 줄여야 한다. 저환율 정책을 펴야 한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는 게 없다. 계속 고환율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민을 위하여’ 란 말을 함부로 한다.

삼성은 고환율 정책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삼성은 대한민국 최고 기업이다. 세계에 내놔도 큰 기업이다. 18년 독재한 박정희 정부 때 큰 도움을 받았다. 거의 무이자에 가까운 대출을 받았다. 당시에 일반인들은 두 자리 숫자 이자를 내고 돈을 빌려 썼다. 삼성은 국가가 국산품 애용을 장려해서 국내매출에 큰 도움을 받았다. 국가가 수출장려정책을 펴서 큰 도움을 받았다. 삼성 이건희가 제 정신이 박힌 인간이라면 사회로부터 받은 빚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이건희가 하는 짓을 보면 열불이 난다. 어이가 없다. 아직도 무노조 삼성을 상식으로 생각한다. 삼성반도체 노동자가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돌아가셔도 산업재해 인정하지 않는다. 죄를 짓고도 이건희가 이런 말을 했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모든 국민들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괴기스럽다. 이런 이건희에게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처럼 계속 퍼주고 있다. 수입 물가를 올려서 99프로에게 손해를 끼치면서도 수출대기업 삼성에게 퍼주고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삼성전자든 다른 수출 대기업이든 환율 상승으로 누리는 이익이 모두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환율이 비정상적인 수준에서 이제 막 제자리를 찾기 시작하는데, 그래서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던 돈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상황인데, 기업들이 견디기 어려우니 환율 하락을 막아야 된다고 하는 것은 뻔뻔함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135쪽)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고환율정책은 174조 원의 손실만 입히고 돌려주는 것은 거의 없는 지독하게 나쁜 정책이었다. 상황이 이처럼 분명한데도 수많은 경제학 교수들과 보수 언론들은 마치 고장 난 녹음기처럼 ‘고환율 찬양론’만 되풀이하고 있다.‘(178, 179쪽)

키코사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중소기업 보다는 대기업에게 퍼주고 있음을 확실히 그리고 정확히 보여주는 보기이다.

’2007년 하반기‘… ’당시 국내외 경제정책연구소와 금융기관들은 모두 2008년 평균 환율을 900원 내외로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 기업들은 환율의 추가 하락에 따른 환차손을 피할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키코 거래였다.

키코란‘ … ’어느 수출기업이 환율이 950원일 때 상한(knock-In)환율 1000원, 하한(knock-Out)환율 900원인 조건으로 50만 달러의 키코 거래를 체결했다고 하자. 수출대금을 받는 시점의 환율이 900?950원이면 기업은 상대 은행에 950원에 50만달러를 팔고, 환율이 950?1000원이면 그 환율에 50만 달러를 판다. 따라서 환율이 900?1000원이면 유리한 가격에 달러를 팔 수 있으므로 기업에 이익이 된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 대가가 따른다. 환율이 1000원 이상 오르면 수출 기업이 은행에 100만 달러를 950원에 팔아야 하는 것이다.‘ …’그 손실은 환율이 오를수록 더 커진다.‘(58, 59쪽) ’2009년 9월 30일 농형경제연구소가이란 자료를 발표했다. 거기에는‘ …’47개 기업의 손실총액이 평가손실을 포함하여 4조 5000억 원에 달했다“라는 엄청난 분석 결과가 담겨 있다.‘(60쪽)

환율이 올라 삼성 등 수출 대기업은 이익을 보고 중소기업은 쪽박을 찼다.

지식인은 세상이 어려움에 처할 때 등대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 행동하는 대학교수가 있다. 이명박이 4대강 사업을 억지로 밀어붙일 때도 많은 대학교수들이 4대강 사업을 두둔했다. 대학교수 신세돈은 강만수가 저지른 고환율정책을 옹호했다.

1997년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를 공격하여 외환위기를 일으킨 주범은 미국과 유럽의 헤지펀드와 투자은행, 즉 금융기관들이었다. 헤지펀드가 투기를 주도하고 투자은행은 자금을 댔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때는 그들이 모두 엄청난 투자 손실을 입어 자금이 바닥난 상태였다. 그들에게 돈을 빌려줄 금융기관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투기 세력이 어느 국가의 통화를 공격하여 환율이 폭등했다는 뉴스를 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이었는데도 왜 유독 한국만 투기 세력의 공격을 받았을까? 얼마나 매력적인 먹이를 발견했기에 자금 부족에 시달리던 투기 세력들이 한국의 환율에만 몰려들었을까?

투자의 기본 원칙인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이 투기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어느 누가 “투기가 잘못되어도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장하겠다”라고 하면 어떨까? 투기꾼들은 고리의 사채를 빌려서라도 덤벼들 것이다. 더구나 그 말을 한 사람이 국가의 경제 정책을 책임진 자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99쪽)

당시의 한국 상황이 그랬다. MB정부 집권 초기 경제 정책을 쥐고 흔들던 사람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원화 환율이 지나치게 낫다” “환율이 올라야 한다”라고 외쳐댔다. 그들은 자신들의 발언을 실행에 옮길 권력도 쥐고 있었다.

투기 세력들로서는 호기를 맞은 셈이었다.(100쪽)

어느 대학교수(서평자 주: 신세돈교수)가 KBS 아침 방송에 나와 강연을 한다. 2010년 2월 가정주부들이 주로 시청하는 프로그램에서 진행하는 경제특강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환율을 너무 떨어뜨리고 외환보유고를 엉터리로 관리해서 경제가 위기에 처하게 됐다는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뒤 이런 말이 어이진다.

“다행히 재작년에 전설과 같은 인물이 등장하셨죠. 강만수 장관이라고. 들어오시자마자 환율을 올렸죠.”(86쪽)

‘게다가 어이없게도 “물가가 오르면 아파트를 사기 위해 대출받은 빚의 부담이 줄어드니까 주부들에게 득이 된다”라는 궤변으로 MB정부의 무책임한 고물가정책을 칭송해 마지않았다.’(87쪽)

서민으로 살기 팍팍한 세상이다.

서민들이 경제 공부를 해야 한다.

1프로에게 두 눈 뜨고 당하지 않으려면 경제공부 해야 한다.

이 책을 99프로 분들께 권한다.

나태영의 간도답사여행기[보고 듣고 생각하기]

나태영의 간도답사여행기[보고 듣고 생각하기]

 

나태영(한철연 회원)

 

 

나는 1997년 8월 31일 결혼했다. 인도네시아 발리로 신혼여행 갔다. 발리 사람들은 종교가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리 사람들이 전통 옷 입는 것 보고 큰 감명 받았다. 그 영향으로 나는 7년간 생활한복 입고 출퇴근 했다. 4계절 열 세벌 생활한복 입고 출퇴근 했다. 아내와 약속 했었다. 결혼 10주년에 쿠바 여행 가자고 약속 했었다. 밥벌이에 허덕이다가 그리 못 했다. 결혼 한 지도 벌써 16년이 되었다. 그 뒤 해외여행을 못했다.

그러다가 얼숲(페이스북) 김갑수 작가 담벼락에서 정보를 보게 되었다. 성서중학교 2학년 딸 쌍둥이 나은진, 나은성과 함께 여행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때 독립운동하신 선열 발자취를 밟아가며 생각하며 깨닫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들이 고구려 기상을 배우길 기대했다. 중국여행 경험 있는 아내에게도 큰 기쁨이 되리란 생각에 생명보험 약관대출 받아서 길벗투어에 네 사람 여행 신청했다. 내가 실수했다. 당사자 세 사람한테 물어보지 않고 여행 신청했다. 당연히 세 사람이 좋아하리란 생각에 그리 했다.

은성이가 그런다. “아빠 행동은 가부장제 모습이야! 민주주의 방식으로 의논을 먼저 했어야지!” ‘여든 살 노인도 세 살짜리한테 배울 것이 있다’는 속담이 맞다. 내가 딸한테 한 수 배웠다. 결국 나 혼자 중국 간도답사여행 다녀왔다.

?나태영

2013년 7월 19일부터 21일까지 여행했다. 광개토태왕 비는 작았다. 당신이 일찍 돌아가셔서 크게 짓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개토태왕 아들 장수왕 비는 크고 우람했다. 당신이 오래 사셔서 시간과 공을 더 들여서 크고 우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울 때 봐서 그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없었던 게 아쉬웠다. 광개토태왕비에 절을 했다. 중국 공안이 뭐라고 말하며 화를 냈다. 어이가 없었다.

“아니 내가 내 조상한테 절을 올리는 데 왜? 화를 내지?”

지금 중국이 억지로 밀어붙이는 하상주단대공정, 동북공정 한계를 절실히 느끼게 하는 경험이었다. ‘공정’ 이란 두 글자에는 이미 ‘거짓으로 꾸며댄다’는 뜻이 들어있다. 아침에 호텔 로비에서 김갑수 작가한테 물었다.

“우리가 간도 땅을 되찾아야 하지 않나요?”

김갑수 작가가 답했다.

“우리에게 힘이 있어야지요!”

21세기 대한민국에 서희 장군이 없다. 앞으로 이 땅에서 서희 장군이 나와야 한다. 전쟁으로 간도 땅을 되찾는 것은 우리에게도 중국에게도 재앙이다. 간도답사 여행은 흥청망청 여행이 아니었다. 공부가 곁들인 여행이었다. 김갑수 작가는 한국 근현대사 전문가이다. 한홍구 교수와 견줄만한 전문가이다. 나는 한국독립운동사에 대해 어는 정도 안다고 생각했다. 한홍구 교수 책을 읽었기에 그리 생각했다. 김갑수 작가 강연을 듣고 내 생각이 틀렸음을 정확히 알았다. 내가 모르는 게 너무도 많음을 깨달았다.

김일성은 대단했다. 체 게바라도 김일성을 극구 칭찬했다.

“우리는 날씨도 좋고 먹을 것이 풍부하고 지원도 많이 받았소. 당신들은 추운 날씨에 먹을 것도 없고 지원도 받지 못한 환경에서 싸웠으니 당신이 나보다 더 뛰어납니다.”

당시 만주에 일본군이 75만명 있었다. 그런 악 조건 속에서 김일성은 대단한 전과를 올렸다. 김일성이 ‘신출귀몰’했다는 평을 들은 게 헛말은 아니다. 보천보전투에 대해서는 한홍구 교수 글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언론에서도 자주 다뤄서 잘 알고 있다. 김일성이 이끄는 유격대가 국내로 들어와서 일본군을 쳐부순 전투였다. 이 전투로 말미암아 기운 빠진 독립군이 힘을 냈다.

간삼봉전투는 아는 사람이 드물다. 나도 김갑수 작가를 통해서 처음 알았다. 일본군 시체가 산을 이룬 전투였다. 일본군이 시체를 리어커에 싣고 갔다. 지나가던 사람이 거 뭐요? 물으니 일본군이 갑오자(호박)요 말했다

왜? 너무도 부끄러워서!

소덕수, 대덕수 전투에 대해서도 나는 처음 배웠다. 중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배우지 못했다. 일본군이 김일성 유격대를 양쪽에서 공격했다. 김일성 유격대가 살금 살금 빠져나갔다. 일본군끼리 서로에게 총질했다. 일본군 피가 바다를 이루었다.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길 고대한다. 이 땅에서, 전 세계에서 체게바라보다 김일성이 더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넬슨 만델라보다 김대중이 이 땅에서 전 세계에서 더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갈 길이 멀다.
그래도 길을 찾아 걸어가야지!

뚜벅 뚜벅!

?나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