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강해(84)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 강해(84)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타락한 정치체제들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5. 참주정과 참주정적인 인간, 불법적인 욕구(562b-제9권 576b) – (2)
* 정의로운 사람이 부정의한 자보다 행복한 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제2권부터 논의가 대문자 비유를 거쳐 국가 단위로 확대된 후 이상적인 정치체제로서 철학자 왕정이 말을 통해 제시되었고, 이제 제8권부터는 앞서 살폈듯이 그 연장선상에서 그 비교 대상으로서 타락한 현실 정치체제가 그 또한 말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전자가 말로 이상 국가를 건설하는 상승의 국면이었다면 후자는 그 나라가 말로 해체되는 하강의 국면이다. 그런데 이상국가가 해체된다는 것은 그 나라가 지성과 철학, 교육과 설득을 통한 수정과 극복의 체제를 갖추고 있는 한,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비교를 위한 논의의 방편 상 실제와 다르게 무사이 여신들의 입을 빌려 철학자 왕정에서 그 지성과 철학, 영혼의 이성 부분이 마비된 경우를 상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전제했을 경우 철인왕정으로부터 어떻게 명예정, 과두정정, 민주정으로, 그리고 각각 그것에 상응하는 개인으로 순차적으로 타락의 정도를 더해가며 해체 타락해갈 수밖에 없는지를 다각적으로 살핀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비교 대상으로서 최악의 정치제제로서 최종 도착지 참주정에 이르렀다. 이런 점에서도 앞서 수차례 밝혔듯이 제8권 이후 이상국가의 타락과 해체과정은 비록 정치제제 변동과 관련한 플라톤 자신의 성찰을 포함하고는 있지만 그 순서 그대로 정치체제가 변화해갈 것이라는 정치체제와 관련한 플라톤 자신의 역사적 견해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전 과정의 근간이자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성과 철학, 그것에 바탕한 교육과 설득이 덕과 제도로써 작동하고 있는 상태와 그 모두가 결여 또는 마비되어 있는 상태를 비교할 경우, 최악의 정체로서 참주정의 나라와 참주정적인 개인이 정의와 행복과 관련하여 얼마나 정반대의 귀결을 갖게 되는지를 이치의 측면에서든 심리적 측면에서든 극명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566d-569c 제8권 끝]
* 이제 소크라테스는 행복εὐδαιμονία과 관련한 참주정의 실상을 살피기 전에 참주의 모습과 특징을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1) 참주τύραννός는 처음 얼마 동안에는 자신은 참주가 아니라고 하면서 사적으로도ἰδίᾳ 공적으로도 δημοσίᾳ 많은 것들을 약속하고 채무χρέος를 탕감해주고 토지γῆ를 나누어 주며 모두에게 상냥하고 부드러운 척한다. 그리고 그는 끊임없이 전쟁πόλεμος을 일으킨다. 부과된 전쟁경비 때문에 궁핍해져서 그날그날 먹고사는 일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도록 그리고 그만큼 참주에 대해 음모ἐπιβουλεύειν를 꾸미는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그리고 자유인다운ἐλεύθερος 생각을 갖고 자신의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으리라고 의심되는 자들을 적에게 넘겨 파멸시킬 구실을 갖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566d-567a)
2) 참주를 비판하며 거침없이 얘기παρρησιάζεσθαι하는 자들 있다면 친구든 적이든 조금이라도 유용한ὄφελος 자들, 이를테면 용감하고 야심이 있고 현명하고 부유한 자들을 적으로 삼아 온 나라를 정화할 때까지 음모를 꾸며 모두를 제거해야만 한다ὑπεξαιρεῖν.(567b-c) 이에 아데이만토스는 아름다운καλός 정화καθαρμός라고 말하고 소크라테스는 의사ἰατρός들은 나쁜 것을 제거하고 좋은 것을 남겨놓지만 참주는 그 반대로 한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축복받은μακάριος 필연ἀνάγκῃ이라고 언급한다.(567d)
3) 이에 따라 시민πολίτης들의 미움을 받게 되면 될수록 믿을 만한πιστός 경호창병δορύφορος들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참주는 보수μισθός를 주면 저절로 날아드는 외래종 수벌들 즉 외국인 용병들과 시민들에게서 빼앗은 자국인 노예δοῦλος 즉 토종 수벌들로 경호창병을 구성한다.(567e) 이들은 신참 시민으로서 참주와 어울리겠지만, 양식 있는ἐπιεικής 시민들은 그를 미워하고 피한다.(567e-568a)
4) 그러나 에우리피데스 같은 비극τραγῳδία 작가들과 다른 시인들은 영리한πυκνός 생각διανοία에서 ‘참주들이 지혜로운 건 지혜로운 자들과의 어울림συνουσία 덕분’이라고 말하면서 참주정을 ‘신과 같은’ἰσόθεος 것이라고 찬양한다. 비극시인들οἱ τῆς τραγῳδίας은 지혜로워서σοφός 우리들이 그들을 참주정의 찬양자ὑμνητής들이라는 이유로 우리 체제 안에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들은 양해할 것이다.(568b) 그들은 다른 나라들을 돌아다니면서 군중을 끌어 모으고 목소리가 아름답고 우렁차며 설득력 있는 자들을 고용해서는 그 나라의 정치체제를 참주정이나 민주정으로 끌고 다니며 그에 대한 보수를 받고 또 존중도 받는다τιμῶνται.(568c)
5) 참주들은 신전 재물ἱερὰ χρήματα 같은 나라 재산과 자신들이 파멸시킨 자들의 재산으로 전쟁 경비를 쓰고(568d) 민중에게는 세금εἰσφορά은 낮게 부과하다가(568d) 결국 자금이 동이 나면 마침내 자신은 물론 그의 술친구συμπότης들도 그의 남녀 패거리ἑταῖρος도 모두 참주를 낳아준 아버지 즉 민중 δῆμος들을 수탈한다.(568e)
6) 아버지(민중)가 아들(참주)을 낳고 키운 까닭이 부자들과 소위 ‘아름답고 뛰어난’ καλῶν κἀγαθῶν 사람들에게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한 것임에도 반대로 이제 다 큰 아들이 어버지의 돈을 빼앗는 꼴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과 아들의 골칫거리 술친구들을 집에서 내쫓으려 해도 그들보다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들이 어떤 짐승θρέμμα을 낳고서는 그를 반기고 키웠는지 알게 된다.(569a-b)
7) 그리하여 아들인 참주가 아버지에게 완력βιά을 쓰려 들고, 아버지가 자신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으면 때리기τύπτειν라도 하는 상황 즉 참주가 부친살해범πατραλοίας이자 가혹한 노인부양자γηρότροφος가 되는 처지에 이르게 된다.(569b) 민중은 자유민이 노예가 되는 연기καπνός를 피하려다가 노예가 주인δεσποτεία이 되는 불 속으로 뛰어들고 만 셈이 된 것이다. 예전에 입었던 지나치고 철에 맞지 않는 자유 대신, 노예들의 노예가 되는 가장 가혹하고χαλεπωτάτην 쓰라린πικροτάτην 옷으로 갈아입은 처지 한마디로 참주정의 예속 상태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이것이 민주정으로부터 참주정이 어떻게 변화해 나오는지에 관한 전말이다. (56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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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7b ‘유용한hophelos 자’ ; 참주 비판에 가담하거나 도움이 될 만한 사람. 이어 나오는 용감하고 야심이 있고 현명하고 부유한 자들이 그에 속한다.
* 567c ‘계속 통치하려면 친구든 적이든 조금이라고 유용한 자는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제거해야 하네.’ : 이것은 참주가 왜 혼자 고립되어 황폐해진 영혼을 지닌 불행한 개인이 될 수밖에 없는지 그 내적 필연성을 함축하고 있다.(헤로도토스<역사> 5권 92절, 아리스토텔레스<정치학> 3권 13장 1284a 26 이하, 5권 10장 1311a 20 이하) 에우리피데스 <탄원하는 여인들>은 정적의 제거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들을 담고 있다.(445~449) 그 가운데 헤로도토스의 기록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코린토스의 독재자 페리안드로스가 밀레토스의 독재자 트라쉬불로스에게 ‘어떻게 해야 나라를 가장 안전하게 다스릴 수 있는지’를 전령을 보내 물었다. 트라쉬불로스는 말없이 전령을 밀밭으로 데려가 이삭들 중 가장 크고 유독 높이 자란 이삭들을 골라 잘라버렸다. 전령은 이 행동의 의미를 모른 채 페리안드로스에게 보고했고, 페리안드로스는 이를 ‘국가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위협이 될 만한 엘리트)들을 처형하라’는 조언으로 이해하고 실행에 옮겼다.”(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에서는 두 인물의 역할이 반대로 기록되어 있다.)
* 567d ‘축복받은 필연’ : 앞서 설명한 내적 필연성 즉 평생 대중의 미움을 받고 살거나 죽을 수밖에 없거나 양자택일일 수밖에 없는 참주의 삶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 567d ‘숱한 자들이 날아 들 겁니다. 외래종 수벌’ : <법률>에도 이들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거론할 가치가 있는 외국인들은 네 부류입니다. 첫째 부류 중 상당수는 돈벌이하러 다니느라고 한 해의 이맘때쯤 바다 건너 다른 나라로 그야말로 날개라도 단 것처럼 날아들지요.’(952e) 외국인 용병으로 구성된 경호대는 그리스 참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었다. 크세노폰의 <히에로>(Xen. Hiero 5.3), 특히 디오니시우스에 관해서는 그로트(G. Grote)의 저서 <그리스 역사>(History of Greece X P. 221)를 참조. J. Adam 해당 부분 노트 참고. 외래종 수벌은 비 그리스계 외국인을 말하고 토종 수벌은 전쟁 포로가 되어 자국 시민의 노예가 된 사람들로서 비(非) 그리스계 외국인, 그리스계 다른 폴리스 출신자 모두를 포함한다.
* 568a-b ‘지혜로운 자들과 어울림 덕분’, ‘비극 시인을 체제 안에 받아들이지 않아도’ : 여기서 ‘지혜로운 자들’이란 참주와 어울리는 당대 비극 시인들을 말한다. 에우리피데스는 참주 관련 부분에서 ‘지혜롭다sophos’라는 단어를 유독 많이 사용한다. 물론 그것은 참주들이 ‘부자의 문간’(489b)으로 몰려드는 현자들로부터 지혜를 얻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의도를 담고 있다. 하지만 플라톤은 여기서 그 말을 참주와 그 주변에 몰려드는 시인들에 대한 찬사로 바꾸어 그들 모두를 지혜로운 자들로 비틀어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플라톤이 여기서 인용한 말 중 ‘비극은 지혜롭다’는 표현 자체는 사실 에우리피데스가 아니라 소포클레스의 <작은 아이아스> 중 한 구절이다. 플라톤의 이 오류는 <테아게스> 125b에서도 반복된다. 많은 주석가들은 아마도 에우리피데스가 ‘지혜로운σοφός’이란 말을 상투적으로 과도하게 반복하고 있었던 탓에, 그런 오해가 발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J. Adam 해당 부분 노트 참고) 에우리피데스가 참주정을 ‘신과 같은 것이라고 찬양했다’(568b)는 말도 사실 그것이 실린 <트로이 여인들>에서는 다른 맥락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플라톤은 진정한 비극은 아름답고 좋은 삶을 모방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기본적으로 당대 비극 시인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사실 5세기 아테네에서 전성기를 이룬 연극들은 비극과 희극을 불문하고 모두 부자들의 공적 기부로 유지되면서 권력을 비판하기보다는 당대 민주정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도구 즉 대중용 교육과 선전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장치로 이용되곤 했다. 이곳에서도 그들은 ‘다른 나라들을 돌아다니면서 군중을 끌어 모으고 목소리가 아름답고 우렁차며 설득력 있는 자들을 고용해서 그 나라의 정치체제를 참주정이나 민주정으로 끌고 가는 자들’로 묘사되고 있다.(568c) <법률>에서도 플라톤은 아테네 손님의 입을 통해 새로 세우는 나라에 비극시인을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817a-d 참고)
* 568b ‘그들은 양해할 것입니다.’ : 비극시인들을 참주정 찬양자로 우리들이 배척해도 그들 중 일부는 왜 자기들이 그렇게 불리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의미. 이곳에서도 ‘지혜롭다sophos’와 ‘세련되다kompsos’라는 표현 모두 반어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 568c ‘정치체제들의 오르막을 따라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숨이 차서 더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그들에 대한 존중timē은 그만큼 더 시들고 마네.’ : 시인들은 기본적으로 지혜롭고 영리하여 현실과 타협하여 참주나 민중들의 즉물적인 요구에 잘 부응하고 그들로부터 존중을 받지만, 옳고 그름만을 기준으로 나라가 운영되는 철학자 왕정에 가까이 갈수록 그 기준에 부응할 능력을 갖추지 못해 존중받기 힘들다. 이것 역시 당대 시인들에 대한 플라톤의 기본 시각을 잘 보여준다.
* 568c ‘옆으로 새서eksebēmen’ : 참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비극 시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새 나간 것을 말한다.
* 568d ‘신전 재물이 나라에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일에는 그것을 쓰고, 또 자신들이 파멸시킨 자들의 재산을 쓰리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 실제로 디오뉘시오스 1세는 신전들을 약탈함으로써 헬라스의 도덕관념에 큰 충격을 주었다.(그로트 <그리스 역사> X p. 300, 302) 시라쿠사의 기사 테오도로스(Theodorus)가 디오뉘시오스 1세를 고발한 탄핵서(Diodor. XIV 65)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그러나 이 자는 신전들을 약탈하고, 사유 재산을 그 소유주들의 목숨과 함께 빼앗은 후, 주인들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그 집의 종들에게 급료를 주고 있다.” J. Adam 해당 부분 노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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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주tyrannos는 일반적으로 귀족과 평민의 대립을 이용하여 비합법적 수단으로 정치권력을 차지하고 독재를 일삼는 사람을 말하지만 세습 참주를 비롯해 참주마다 집권 배경과 행태가 조금씩은 차이가 있다. 이곳에서 가장 타락한 정치체제로서 참주정을 이끄는 참주는 민주정의 제멋대로의 자유가 초래한 위계질서의 붕괴와 그로 인한 계층 간 갈등과 빈부격차의 심화를 틈타 침 달린 수벌 즉 선도자가 대중의 이익을 내세워 환심을 얻은 후 민회 등 민주정의 의사 결정 체제를 무력화시키고 불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여 오직 자신만의 권력과 이익, 안위를 위해 오히려 민중을 노예로 삼아 폭압적으로 지배하는 자로 그려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는 멀게는 기원전 6세기 초 코린토스의 페리안드로스Periandros, 기원전 6세기 중후반 아테네의 페이시스트라토스Peisistratos와 그의 아들 히피아스Hippias, 기원전 5세기 시라쿠사의 히에론Hieron 1세와 겔론Gelon 등이 있었고 플라톤이 <국가>를 저술하기 전 만나거나 목도했던 참주들의 경우에는 기원전 404년 민주정의 혼란을 틈타 스파르타를 등에 업고 권력을 차지한 30인 참주들과 플라톤 자신이 시칠리아를 처음 방문했을 당시 목도한 시라쿠사 참주 디오뉘시오스 1세가 있다. 특히 플라톤의 <일곱 번 째 편지>를 보면 30인 참주정과 소크라테스를 처형한 당시 민주정에 대한 절망적인 탄식과 함께 플라톤 자신 그러한 타락한 정체들이 철학자 왕정을 꿈꾸게 된 기본 배경이었음을 고백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326a)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품고 그의 나이 40세 때 방문했던 디오뉘시오스 1세 참주정 치하 시라쿠사 사람들의 타락상이 그 뒤를 이어 세세하게 그려지고 있다.(326b-c) 이 점을 고려하면 이곳에서 플라톤이 언급하고 있는 참주들의 행태는 이전 시대 참주들에 대한 전승도 일부 포함되어 있겠지만 가장 직접적으로는 그가 실제로 겪은 30 참주들과 시라쿠사의 참주 디오뉘시오스 1세의 폭압적 행태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불확실한 전승에 따르면 디오뉘시오스 1세가 그곳을 처음 방문한 플라톤을 초청하여 자신과 친교를 맺을 것을 강권하자 그에게 ‘강한 자가 덕에 있어서 뛰어나지 않는 한, 강한 자의 이익은 자족적이지 않다’고 입바른 소리를 하여 디오뉘시오스 1세에 의해 노예로 팔릴 뻔했으나 퀴레네 사람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 돌아왔다고도 전해진다. 그럼에도 그의 편지에는 정작 당시 시라쿠사의 타락상은 언급되어 있어도 디오뉘시오스 1세의 이름은 한군데에서조차 거론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주석가들은 시라쿠사에서 그가 겪은 수모가 플라톤 자신 얼마나 입에 담기조차 싫어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사례로 해석하기도 한다.(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편지들> 부록 ‘플라톤의 생애’ 참고)
*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완벽한 의미의 참주정을 ‘1인 지배자가 책임 추궁을 당하지 않으면서 지배 받는 자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더 나은 사람들 모두를 지배하는’ 정치체제로 규정하고 있다.(<정치학> 1295a 20 이하) 아리스토텔레스의 참주정에 대한 위와 같은 규정은 다른 정치체제들에 관한 규정과 마찬가지로 지배자의 숫자와 지배 목적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플라톤은 다른 정치체제들을 다룰 때도 그랬듯이 그러한 외적인 양태나 지배 목적만이 아니라 지배 원리가 과연 철학과 지성에 입각해 있는 것은 아닌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것에 더해 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 상태 내지 내적 욕망구조까지 유기적으로 함께 고려한 상태에서 참주정과 참주정적 인간을 규정하고 있다. 그만큼 플라톤의 정치체제론은 복합적이다. 그에 따라 이곳에서 참주정은 외적 통치구조에서 계층 간 상호 분업적 조화와 공존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 즉 나라의 모든 권력이 오직 참주 한 사람만의 이익을 위해 집중되어 있는 체제로 규정됨과 동시에 내적 욕망구조에서 영혼의 조화가 완전히 마비된 상태 즉 영혼의 이성 부분이 자신의 사적 탐욕을 극대화하는 도구적 계산적 이성으로 전락하고 기개 부분과 욕구 부분은 그것에 철저히 예속된 상태로 규정되고 있다. 요컨대 철학자 왕정의 통치구조와 욕망구조 모두가 그야말로 완전하고도 철저하게 와해된 상태가 곧 참주정인 것이다.
* 이곳 제8권 말미에서는 우선 참주정의 행태와 특징이 다루어지고 이어서 제9권부터는 참주정적 인간의 행태와 특징이 다루어진다. 그러나 이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참주정의 행태와 특징만 보더라도 참주정이 철학자 왕정과 비교하여 얼마나 정반대의 위상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 전형적인 특징들을 간략히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처음에는 채무 탕감과 토지 분배 등 대중을 위한 유화정책을 편다.
2) 민중이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처지에 놓이도록, 먹고 사는 일 외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그리고 체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파멸시킬 구실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도발한다.
3) 자신을 옹립하는 데 협력한 자들일지라도 참주를 비판하는 자들이 있는 경우에 친구든 적이든 조금이라도 유용한 자는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모두 제거한다.
4) 자신의 안위를 담보하기 위해 외국 용병을 끌어들이거나 내국 노예들을 빼앗아 자신의 경호창병으로 삼는다.
5) 자신을 지혜로운 자로 칭송하며 아부하는 시인들 세칭 지식인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자신을 찬양하는 시를 짓게 하고 목소리가 우렁차고 설득력 있는 자를 고용하여 참주정을 옹호하는 연극을 공연하도록 한다.
6) 신전 재물 등 국가 재산은 물론 자신들이 파멸시킨 자들의 재산을 빼앗아 쓰고 민중에게 부과하는 세금은 낮추다가 그것마저 동이 나면 폭력으로 민중들을 수탈한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고대 그리스 참주정의 자기 보존 방식을 이곳보다 훨씬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이곳의 특징들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다. 참주정이 얼마나 최악의 정치체제인지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그 주요 내용을 추려서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정치학> 1313b 1-1314a 10)
1) 특출한 사람 높은 기상을 가진 사람을 제거한다.
2) 정치적인 모임, 사적인 잔치 등을 허용하지 않는다.
3) 자부심과 신념을 형성케 하는 모든 것을 경계한다.
4) 학파나 학문적 동아리가 생겨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5) 도성에 있는 사람들을 항시 보이는 곳에 있도록 한다.
6) 남자들에 대한 험담을 누설할 수 있도록 여성과 노예에게 선의를 베푼다.
7) 피지배자들의 말과 행위가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도록 염탐꾼을 갖고 있어야 한다.
8) 일상에 매달려 음모를 꾸밀 수 없도록 여가를 없애고 피지배자들을 가난하게 한다.
9) 지속적으로 지도자가 필요한 상태에 있게끔 끊임없이 전쟁을 도발한다.
10) 고분고분한 사람, 아첨하는 사람들에게 영예를 부여한다.
* 참주정이 갖는 이와 같은 특징들은 언론, 출판, 결사, 사상의 자유를 금지하고 시민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일상으로 삼았던 20세기 인류가 겪은 최악의 정치체제로서 파시즘과 나치즘을 그대로 연상시킨다. 오늘날 나날이 득세하는 인종주의, 극우주의, 신종 매카시즘, 무한경쟁과 배타적 이기주의 및 그로 인한 각자도생의 삶도 그러한 피폐상이 사라지기는커녕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말해준다. 게다가 절망스럽게도 초국적 기업들의 정보 감시 및 통제 시스템은 대중을 위한 서비스라는 명목으로 대중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환호를 바탕으로 더욱 정교함을 더해가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트럼프를 비롯한 현대판 참주들은 그러한 행태들이 초래하는 문명적 환경적 위해들에 눈을 감고 오히려 그것들을 경쟁 우위의 발판으로 삼아 군사적, 경제적 온갖 수단을 다해 끊임없이 전쟁과 침탈을 자행하고 있다. AI로 표징되는 현재 정보문명의 급속한 발달 또한 그것을 선도하는 일부 소수의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머지 대부분의 나라를 거의 불가역적인 양극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부 선진 소수의 나라에 속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그것의 선도적 개발에 목을 매고 있지만, 자칫 초인간 인공지능이 통제 불능의 수준으로까지 발달하는 경우 거꾸로 인류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설사 그것이 고도의 혜택과 효율성을 가져다준다고 해도 어쩌면 속칭 부자 나라 잘난 사람들만 그것을 누리고 그렇지 못한 나라들과 사람들은 그들에 예속되어 가난과 억압을 숙명으로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초국적 신종 계급사회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거기에 기후 및 환경파괴까지 더해질 게 필연이라면 인류의 미래는 더욱 암울하다. 만약 AI가 초고도의 인공지능을 갖고 있으면서 사람과 똑같이 자의식과 함께 생물에 준하는 생존 및 번식 욕구, 정치적 능력까지 갖추어 ‘자기를 무력화시키거나 제거할 수 있는 힘의 개입’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른다면 또는 그런 AI를 최상위 수준으로 운용하는 초강대 국가들과 초국적 기업들이 있다면 그것들은 모두 그 자체 이미 참주적 특징을 내면화한 것들로서 필연적으로 상호 패권투쟁을 유발하면서 인류를 공멸의 위기로 몰고 갈 수도 있다. 물론 위와 반대로 그에 대응하여 그 만큼 도덕적 AI들이 등장한다고 해도 인류 전쟁사가 보여주듯이 그들 간 적대적 싸움 자체가 초래하는 피 흘림의 역사는 오히려 크기와 정도를 더해가면 더해갔지 결코 줄어들거나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이러한 비관적 상상들이 매우 극단적이고 단선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지성의 결여가 초래한 고대 참주정의 폐해가 오늘날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고도로 발달한 기술 문명의 힘을 바탕으로 더욱 강고하고 보다 주도면밀한 방식으로 더욱 광범위하고도 심각하게 유포, 심화, 고착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것은 오늘날 최선의 정치체제로서 평민 다수의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체제를 강제로건 속임수로건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2500년 전 참주정의 참혹상을 겪은 플라톤은 아래와 같은 신념을 가슴 깊이 새기고 평생에 걸쳐 이상국가를 구상했다. 그러나 그의 이상적 신념의 밑바닥에는 그 이상의 크기와 깊이에 못지 않게 신의 도움에 기대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자신을 절망에까지 이끌었던 참담한 기억들이 무거운 근심으로 함께 자리하고 있다. “올바르고 진실되게 철학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권좌에 오르거나 각 나라의 권력자들이 모종의 신적 도움을 받아 진정 철학을 하기 전에는, 인류에게 재앙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일곱번째 편지> 326a, <국가> 473d)
* 아리스토텔레스는 참주정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플라톤이 <국가>에서 정치체제의 변화를 논하면서 그러한 변화가 실제 역사에서는 플라톤의 말처럼 반드시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과 함께 참주정 또한 정치체제 변화의 한 국면인데도 그 참주정이 또 어떻게 변화해갈 것인지는 다루고 있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다.(<정치학> 1316B) 그러나 이것 역시 오히려 <국가> 제8권에서 플라톤이 제시한 정치체제 변동론이 정치체제가 실제로 어떻게 역사적으로 변화해가는가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다만 최악의 정치체제로서 참주정이 최선의 정치체제로서 철학자 왕정으로부터 행복과 정의와 관련하여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방편적 논의 차원의 것임을 반증해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여러 번 언급했지만 플라톤의 철학은 역사철학이건 정치철학이건 바람직한 목적과 방향은 제시되어 있을지라도 그 실제 진행은 나라건 개인이건 능력에 따라 그렇게 갈 수도 있고 가다가 다시 반대 방향으로 전환할 수도 있는 이른바 양상적으로 가능성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박홍규 선생이 플라톤의 철학을 목적론이되 동적인 목적론으로 부르는 이유도 플라톤 철학 자체가 그러한 변화의 역동적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박홍규의 존재론적 사유에 담긴 플라톤의 정치철학’, <박홍규 형이상학의 세계> 참고) 이런 의미에서도 오늘날 정치적 문명적 위기 또한 정치의 지성화를 강조하는 플라톤의 가르침대로라면 그것의 해결 및 극복 모두 우리 손 특히 현대 정치지형을 떠받치고 있는 시민들 각자가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지성의 힘을 어떻게 깨우치고 어떻게 함께 사회 변혁의 역량으로 모으고 키워 나아갈 것인가에 달려있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경우 최고 권력자의 참주적 행태로 나라가 큰 위험에 처했을 때 평범한 일상의 시민들이 보여준 위기 극복의 모습들은 시대의 모순을 혁파하고 변화를 담보하는 민중의 지성, 집단지성의 발현이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런 의미에서도 평화적 시민 혁명으로서 촛불 혁명은 현대 문명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를 알려 주는 실로 세계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 이로써 참주정에 관한 논의는 제8권으로 끝난다. <국가>의 권수는 본 강해 서두에서 밝혔듯이 기본적으로 당대 파피루스 권당 기준 분량에 따라 나누어진 것이라 각 권이 꼭 주제에 맞추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참주정적에 인간에 대한 논의는 참주정과 쌍을 이루는 논의임에도 제9권으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것이 마무리된 후(576b) 타락한 정치체제에 관한 논의의 최종 목표 즉 가장 최선의 정치체제로서 철학적 왕정과 철학자 그리고 가장 최악의 정치체제로 다루어진 참주정과 참주정적인 사람과 가운데 과연 누가 왜 얼마나 더 행복한가에 대한 비교 판정이 이루어진다.(576b- 제9권 끝 592b) -끝-
다음 주제 : VI 본론 3 : 부정의와 현실 비판 – 타락한 정치체제들 분석(제8권-제9권)
A. 부정의한 나라들과 부정의한 개인들.
5. 참주정과 참주정적인 인간, 불법적인 욕구(562b-제9권 576b) –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