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 단편소설-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이 가장 진실한 것이다[철학을 사랑한 소설]

이재원 단편소설-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이 가장 진실한 것이다[철학을 사랑한 소설]

이재원(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설화산에 산재한 여러 암자와 굿 당,?그리고 절마다 모셔진 미륵들과 그 옛날 미륵에게 소원을 빌던 사람들의 관계를 생각하면 고보살,?혹은 연화의 소원과 그녀에게 현신(現身)했다는 미륵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옛 사람들은 특별히 정으로 형체를 조성하지 않은 돌에도 미륵이라 이름 붙였다.?미륵 관찰자가 되어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 해도 미륵이라 지칭하는 돌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미륵은 미래 세계에 도래할 부처이다.?불자가 아니라면 우선 미륵이 도래한다는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을지도 모른다.?누가 이 태평성세에 미륵 세계에 관심을 가질까??그러나 현실이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면 미륵 부처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미륵은 더 나은 세계를 바라는 사람들의 부처이다.?고통당하는 사람은 지금의 현실보다 더 나은 세계를 바랄 것이다.?이 때 미륵은 미래가 아니라 지금 더 나은 현실을 주관하는,?따라서 당대 세계를 주관하는 부처로 변모된다.

이렇게 해서 인간 삶과 유리된 사상이나 종교는 없다는 주장이 가능해진다.?그것이 교조화될 때에만 본래의 생명을 잃고 인간 삶과 유리하게 된다.?사실 봉건시대에 농민 혁명이 일어나면 그 중심에 미륵 사상이 있었다는 주장은 아주 흔하다.

내가 지금 이야기하려는 용화사 미륵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주 우연이다.?내 인생에서 중요한 일도 아니다.?다만,?이야기꾼으로서의 어떤 직감 같은 것 때문이었다.

미륵님이 절을 세운 분에게 현신,?현몽하여 땅에 뭍혀 있던 부처를 찾아내 모시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순전히 사람을 관찰하는 입장에서였지,?종교적 관심이 아니었다.?꿈에 미륵이 현신한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 가장 컸다고 말 할 수 있다.?앞에서도 언급했듯이,?행복한 사람이 미륵을 생각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그녀는 무엇을 생각하고 바랐는가??어떤 염원을 하면서 살았길래,?삶에서 어떤 질곡을 만났길래 미륵불을 만났을까??이런 관심은 특히 사람들이 고통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기도 했다.

나는 한동안 노동의 노역에서 벗어나 있었다.?설화산 월정사 밥을 얻어먹으며 책 읽거나 아무 일도 안 하거나,?잠자고 싶으면 자고,?취하고 싶으면 취하고,?걷고 싶으면 산길을 걷고는 했다.?그러다가 사람을 만나면 말 붙이기를 좋아했다.

월정사 주변 밭을 가꾸는 노인과도 자주 이야기했다.?노인이 쓰는 사투리로 보자면 이 지방 사람은 아니다.?그러나 노인의 이야기 내용을 보자면 동네에서 오래 살았다.?노인을 도와 함께 밭의 잡풀을 뽑기도 했다.?노인의 이야기는 줄거리를 잡기 쉽지 않았다.?그러나 내가 아는 월정사 정보는 모두 그에게서 들은 것이다.

노인에 의하면 원래는 만신이 월정사를 일으켰다.?그리고는 월정사를 팔고 안성 어디에 가서 절을 크게 일으켰다는 것,그 후임으로 오신 지금의 스님은 대단히 성실해서 아침,?저녁 예불을 쉬지 않는다는 것 등이다.?말끝에 노인은?“용화사 시님 굿이야말로 보기 좋았지러”,?했다.?나는 한참만에야 그 이야기의 뜻을 알아 차렸다.?그리고는 되물었다.

“스님도 굿을 해요?”

“아,?하디.?굿 해 달래는 사람이 있으믄 하디.?미력(미륵)?앞에다?(음식)?진설 하고서리 밤새 했디.?사람덜이 백설치듯 했디.?미력 파내고서리.?거 박씨덜이 섬기던 미력이었거덩,용화사 짓고는 스님이 되었디.”

“미륵을 파내요??땅 속에 있었던 것을 파내었다는 말씀인가요?”

“파냈디.?미력이 현신(現身)해서 파냈디.?시집 갔더래서,?시님이.?미력이 자꾸 선몽하니끼니 시집 못살고는 나와서 용화사 지었디.”

“미륵이 현몽을 했다면 꿈에서 보았다는 뜻인가요?”

“꿈인디 생새인디는 모르디.?현신해서,?선몽해서리 절 지었디.”

“지금도 살아계세요?”

“몇 년 전 죽었디.?지금은 동생이 살고 있디.”

나는 미륵이 현몽하여 스님이 찾아냈다는 이야기가 궁금했다.?그러나 할아버지에게 그 일을 상세히 듣기는 어려웠다.무엇보다도 할아버지의 이야기 내용을 선 후 순서를 맞추어 이해하기 어려웠다.?제정신으로 말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기도 했다.?그러나 궁금증을 풀 만 한 상대가 별로 없었다.댓걸음에 용화사로 달려갔으나 절은 텅 비어 있었다.

월정사에서는 예불이 끝나면 신도 몇 명이 함께 식사를 하곤 했다.?절에서의 식사라 하면 무엇보다도 조계사의 점심 공양이 생각난다.?점심 공양 법회에는 세 부류의 대중들이 있다.?법당에 모인 신자들은 찬불가 대원들이다.?법당 마당에 자리를 펴고 앉은 이들은 일반 불자들이다.?그리고 마당 한켠을 가로지르는,?공양간을 향해 길게 줄 지어선 이들은?<밥 줄>로 불리운다.?배식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다.식사는 물론 무료이다.?몇 천 명의 대중이 모두 불자는 아니다.?남루한 차림의 사람들도,?아주 지저분한 옷차림의 노숙인으로 보이는 이도 있다.?또는 수입이 없어 점심 얻어먹으려는 사람들도 있다.?그 동네만 아니라 인근의 빈민들에게 하루도 거르지 않는 조계사 점심은 유명짜하다.?한 끼니만 먹고 산다고 하는 사람들을 그곳에서 흔히 보고 들었다.?조계사에도 미륵이 있다.?북문 앞,?커다란 돌덩이가 미륵이다.

월정사 식사는 조계사의 그것만큼이나 소박하다.?공양에 참여하는 이들은 이 동네,?박 씨 성 집안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이곳이 박 씨 집성촌이기 때문이다.?나는 대개 남자들과 함께 식사했다.?그러나 그 날은 구태여 할머니들 틈에 끼어 식사하면서 넌지시 질문했다.

“용화사 미륵이 땅에 묻혀 있었는데,?스님 꿈에 현몽하여 파내었다는 것이 무슨 이야기예요?”

할머니들이 질세라 한마디씩 한다.

“스님이 시집가 살았지유.?그런디 미륵님이 현몽하시더래유.”

“미륵님은 돌로 만들었으니 얕히 묻히면 넘어지거든.?그래서 넘어지지 않게 깊이 묻었거든.?그런데 스님이 미륵님 발 밑을 더 파낸 거지,?잘 보이도록.”

“토사 밀려있지,?나무랑 풀이 엉켜있지,?꼴이 아닌디,?스님이 파내고 다듬어 지금처럼 단장했지유.”

“우리 동네 사람 누구나 미륵님을 섬겼지유.?우리 큰시숙이 미륵뎅이거든유,?박치성씨라구,?치성 들여서 낳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래유.?시어머니가 치성 디리구 미륵님이 선몽허셔 태어나셨대유.?그분두 무슨 일이 날라치먼 미륵님이 선몽허셨대유.”

“오호,?시숙님이 용화사 스님이 절을 지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나요?”

“맞아유,?용화사 출입이 잦았지유.?그러나 저간 사정은…”

설화산 상봉 아래쪽에서 세 갈래 줄기가 뻗어내리다가 작은 봉우리가 다시 솟아올라,?돌머리 마을 뒤까지 이어져 있다.월정사와 용화사는 지척으로,?남쪽을 향한 첫 번째 봉우리가 완만히 내려앉으며 형성된 평평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설화산에 대한 또 다른 주장도 있다.?이 또한 우연히 들은, 환경운동 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설화산처럼 처참하게 뭉개지는 산은 호서 지방에서 그 하나로 충분했으면 좋겠다.?산신령도 떠났을 것이다.?그 산에서 어찌 살겠는가?”

설화산 동남쪽은 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그러나 북쪽은 완전히 망가져있다.?수십 년간 골재 채취하기 위한 석산개발 탓이다.?환경운동가의?<산신령>이란 말,?그리고 산신령이 떠났다는 말도 허투로 들을 일이 아니다.?이 또한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산이 인간 삶에 요긴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병 치료하러 산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무수하고 산에 들어가면 굶어죽지 않는다는 옛 사람들의 이야기도 산이 인간 삶에 꼭 필요하다는 반증이다.?북쪽 산은 사막처럼 망가지고 흉측해졌다.?멀리서 보면 천 길 낭떠러지만 드러내고 있다.

석산 주변에 분진이 많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당대의 사람들이야 할 수 없이,?오갈 데 없어서 산다 하지만,?누구도 그곳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자의 반,?강요에 못 이겨 사람들은 떠났다.?사람들이 떠난 폐허가 된 곳에서 산신령으로 대변되는 일상적 신비로움도 떠나고 만다.

그러나 이 환경 운동가와 미륵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참혹해졌다.

“천국에서야 모두 평등하다지만,?미륵이 미래 뿐 아니라 현세에서 용화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은 헛된 희망을 사람들에게 주는 것일 뿐이다.”

나는 두 번 다시 이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용화사 미륵은 천 년의 이끼를 쓰고 있다.?두상은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다.?그러나 신체는 별로 다듬지 않았다.?언뜻 보면 하체는 그저 평범한 돌덩이 같다.?그러나 여러 번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미륵의 신체에도 정교하달 것까지야 없지만,?정성들여 다듬은 흔적이 있다.?이를테면 법복 자락을 표현하려 쪼은 선이 있다.?법복,?도포의 선은 어깨에서 무릎까지 흐르고 있다.?소맷동은 무릎 근처에서 다시 솟구쳐 가슴 앞,?두 손 모은 손목에까지 이어진다.?미륵을 쪼은 석공이 그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 작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랬다.?과거 어느 한때,?설화산 골짜기 박씨 종산 어귀에 미륵이 숨 쉬고 있었다.?나무와 풀숲이 가리고 있었으나 거기 이토록 친근감을 주는 미륵,?돌덩이가 있었다.

용화사 주변을 둘러보다가,?법당 옆에서 앞서 보지 못했던 고연화보살의 행적을 기록한 현판을 찾아낼 수 있었다.?이름을 보자면 현판을 쓴 사람은 스님 같지는 않다.?현판에는 최보살의 약력이 적혀 있었다.

<속명 고연화,?법명 청심화(靑心花)는?1928년 충남 광천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에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명산대천을 찾아 기도하며 전통 종교를 섬기던 중 여기 용화사를 지어 부처님께 바치니 이를 축하하여 현판을 드린다.?오서산인 금천.>

현판의 내용은 할머니들이 한 이야기와 조금 다르다.?고보살은 시집을 나와 곧바로 여기 용화사로 온 것이 아니다.?명산대천을 찾아 수련했다면 면벽하는 스님의 공부 방식과도 다르다.?월정사에서 보게 되는 동네 할머니에게 용화사 오기 전의 스님의 행적을 묻곤 했으나,?더 이상 신통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그 대신에 근동에 미륵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나는 일삼아 미륵 순례를 시작했다.

어느 마을,?어느 산 귀퉁이,?어느 절에나 미륵이 있었다.?더러는 세련되어 보이기도,?더러는 그저 돌덩이와도 같았다.가장 세련된 형태의 미륵은 송암사에 있었다.

송암사 미륵은 대웅전 앞 반듯한 터에 자리잡고 있었다.?그러나 분위기는 용화사 미륵과 완전히 달랐다.?송암사 미륵은 아주 잘 다듬어진 것이었다.?이목구비가 뚜렷했을 뿐 아니라,?신체의 균형도 적절했다.?한눈에 보아도 불교가 번성했던 시기의 것이요 솜씨 있는 석공이 정성들여 다듬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자주 송암사에 들렸다.?여러 번에 걸친 묘각(妙覺)?노스님과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다.

송암사는 고찰이 아니다.?노스님에 의하면 송암사가 생긴 것이 육십 년 전이라고 한다.?그렇다면 이토록 오래 된 미륵이 여기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스님이 추측하는 미륵에 대한 유래는 다음과 같았다.

이곳 송암사는 원래 큰 절터였으리라는 것이다.?이처럼 뛰어난 조각품은 대단히 드문 것으로,?대규모 불사가 있던 시절에나 형성이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불교를 중시하던 시대가 지나고 절은 점차 쇠락하다가 드디어 없어졌다.?특히 이조 말엽,?한양에서 큰 벼슬을 하던 이 씨 성을 가진 양반이 이 근처에 자리를 잡고 집성촌을 이루자,?절터 돌들마저 마을을 세우는 데 쓰였다.?이 씨 집성촌 마을을 돌아가며 조성한 석축을 볼라치면 부도에나 쓰였음직한 돌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짐작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송암사 노스님은 자신이 이곳에 터를 잡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평생 선방을 떠돌다가 칩거할 토굴을 찾았다.?평소에도 기도 발 잘 받는대서 설화산을 맴돌았으며,?마침 처분하기를 바라는 이 절을 인수해서 개축했다는 것이다.

노스님과 절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돌아가신 용화사 스님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고보살!?잘 알아.?내가 여기 오기 전 보살 한 분이 송암사에 있었지.?그분하고 고보살이 함께 동사(同事)한 적이 있었지.그래서 내가 고보살,?잘 알지.

동사하다가,?언제부터인가 고보살이 여기는 인연이 아니라 하고 여기서 나가 용화사를 지었지.?용화사 가서도 한참 머리를 쪽을 진 채로 살았어.?나중에야 머리를 깎았지.”

“쪽지고 살았다니,?그게 무슨 말이예요??스님이라면 당연히 머리를 깎고 살지 않나요?”

“보살이란 여러 가지 의미를 갖거든.?불자 여신도를 가리키는 의미지.?그런데 스님은 아니지만 수도하는 여자에게 붙이는 이름이기도 하지.?고보살이 신 기운(神氣),?무당들한테 있는 신기운이 있었다는 것이지.?그러니까 불교 승려라기보다는 불교와 무속을 혼합하여 섬기는 사람,?보살이었다는 거지.”

“이를테면 무당 같은 것인가요?”

“무당과도 다르지.?무당은 절에 와도 산신당에만 가거든.?고보살은 부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거든.?무당은 신 기운을 가지고 있지.?보살수업은 아주 다양해서 불교와 무속 모두 수용하기도 하지.?일종의 종교 혼합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그래서 보살이라 부르면 무당과는 차별화되는 것이지.”

“고보살이라고 해야 하나,?아니면 현판에 적힌 대로 청심화스님이라고 해야 하나,?하여튼 그 용화사 스님이 신기가 있었다는 말이군요.?그렇다면 시집살이를 안하고 나온 것도 신기운 때문이었나요?”

“저간의 사정은 확인할 수 없지.?그러나 시집살이를 못 한 것은 남편이 일찍 죽었기 때문이었지.?그러나 신기가 있는 사람이 정상적으로 시집살이 할 수 있겠어??지금도 자주 결혼생활 청산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을 보잖아?”

“그렇겠네요.?부잣집이라서 며느리 병치레를 할 수 있는 집이라면 몰라도.?그런데 고보살은 여기 송암사에서 왜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한 거죠?”

“무엇인가 갈등이 있었겠지.”

“이를테면 어떤 갈등인가요?”

“원래 땅주인은 고 보살이 아니었거든.?여기 송암사 계시던 보살이 남편과 사별한 후 이곳 땅을 마련했지.?고보살은 자식이 없었지만 어린 남동생이 있었고,?송암사 보살은 자식이 둘 있었거든.?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하자 의견이 잘 안 맞았겠지.”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은 당연하잖아요.?그런데 그게 왜 문제가 되죠?”

“원래 무슨 일이든 다 그래요.?입에 풀칠은 해야 하는 게 우선이지.?처음에는 그럭저럭 해 나갈 수 있었을 거야.?그러나 아이들 커지고 점점 더 입에 들어갈 것,?몸에 걸칠 것이 커지겠지.?자연히 보살 두 사람 머물기에는 이모저모로 절이 좁았겠지.?그러니까 두 동사자의 의견이 맞지 않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고 보살은 이곳이 인연이 아니라고 떠난 거겠지.”

“그렇다면 고보살은 이곳 송암사 재산 형성이나 불사에 조금도 기여하지 못했나요?”

“송암사 자리가 원래는 미륵님만 계신 산이었겠지.?두 동사자가 풀을 치우고 마지(부처님에게 올리는 공양식)나 올릴 만큼 미륵님 주위를 다듬었지.?매일 기도하러 오르고 내리기 힘드니까 아예 초막을 짓고 기거했을 것이고.?미륵님이 영험하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초막에서 서까래 올린 집을 지을 수 있었거든.?또 신도들을 주로 상대한 것이 고보살이었거든.?그러니까 고보살이 송암사를 일으키는 데 기여한 것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

“고보살이 쫓겨난 셈일 수도 있겠군요.?아니면 독립해서 돈을 혼자 만지고 싶었나?”

“뭐 그렇게 돈,?돈 할 것은 없고,?인연이 아닌데 어쩌겠어.”

“조금 어려운 질문인데,?이런거예요.?돌머리 마을 사람들은 고보살 꿈에 미륵이 현신해서 절을 지었다고 알고 있거든요.그런데 왜 하필이면 미륵님이 고보살한테만 현신했나??현신하는 데 특별한 매카니즘은 없는가,?또 어떤 연유로 그렇게 평생 염불하며 살았는가??이런 것이 궁금해요.”

“아 그야 우리 모두 다 불심이 있는 것 아닌가??공덕을 드리면 미륵님도 현신할 수 있는 것이고.?우리 모두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거지.”

“그게 납득되지 않아요.?고보살이 꿈에 미륵을 보았다면 반드시 그 이유가 있을 거예요.?그 이유가 뭘까?”

스님은 대답 대신 되물었다.

“그래 처사는 왜 그런 일에 관심이 많우??무슨 일을 하우?”

내 직업이 뭘까??뭐라고 대답해야 하나??수입과 신분이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강사도 직업에 들어가나??나는, ‘강사예요’?라고 말했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을 강의해요?”

나는 우물거리는 소리로, “철학이요”라고 답했다.

스님이 말했다.

“고보살 전쟁으로 남편이 일찍 죽었지.?가족 잃은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기는 참으로 어려워.?사람마다 틀릴 수 있지만서두.?이런 이야기는 참 곤란하지만,?가족 잃고 실성한 사람 여럿 봤어.?고보살이 탈속하게 된 계기를 여러 번 들었지.?남편 여의고 나서 정신없이 걸었다는게야.?목적도 없이,?밥 먹는 것도 잊은 채…?닿은 곳이 오서산이었다지.?고보살 친정이 광천이거든.?오서산은 광천에 있고.?아는 곳이란 한정되어 있게 마련이니,?실성한 듯,?친정 동네로 갔는지도 모르지.?그곳 산에서 보살 수업을 하면서 어느 정도 아픔을 치유했는지 모르겠어.“

나는 박치성에 대해서 동네 할머니들한테 들은 것이 있었다.박치성이 박 씨 종 터를 고 보살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이야기였다.?나는 노스님에게 마을 할머니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짧게 하고 나서 박치성이고 보살에게 땅을 나누어 준 이야기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노스님이 말했다.

“종산을 잘라 파는데 웬 말들이 없겠어??박치성씨가 나서서 자기 종친들을 설득했겠지.”

나는 갑자기 어떤 묘한 생각이 나서 다시 스님에게 물었다.

“박치성씨가 용화사 스님을 좋게 생각하셨나보죠?”

“고보살이이 총명하기야 짝이 없었지.?송암사 동사자와 헤어져 시집으로 들어가서는 동생을 공부시키며 인근 아이들을 함께 모아 가르쳤지.?박치성씨가 고보살을 예뻐했던 것은 사실이지.?그러나 박치성씨가 막되어 먹은 사람이 아니지.?고보살을 박치성씨가 많이 도와준 것은 사실이로되,?어떤 흑심으로 도와준 것은 아닐 거야.”

나는 다시,?용화사에서 본 현판을 생각하고는 오서산인 금천에 대해서 물었다.

“용화사 현판을 쓴 이가 오서산에서 살던 사람인가 봐요,?오서산인 금천이라고 썼거든요.?고보살과 금천이 어떻게,?어떤 관계였는지 혹시 아세요?”

“잘은 몰라.?뭐 친정 사람들이 금천이라는 사람 소문 듣고 그와 딸 병세 의논했을 수도 있고,?연화가 금천으로부터 일편 병 치료 받고 일편 수업 하구,?그런 식의 관계였는지 모르지.”

송암사 노스님의 대답이 그럴 듯 하고 또 자신감이 있는 어투여서 나는 미륵이 현신했다는 고보살의 꿈을 끈질기게 화제로 꺼냈다.?그리고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물었다.?노스님은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떤 사람이 무슨 일로 괴로워한단 말이지??그 사람이 잠을 자고 일어나서는,?아 잠자고 일어났더니 조금 괜찮네,?그러거든??꿈도 그런 거야.?그러니까 꿈이란게 감정을 누구려 주는게야.?고보살두 그런 경우가 아니겠나??송암사에서 고보살이 과부보살과의 관계가 바늘방석이라면 당연히 꿈꾸겠지.?괴로우니까 괴로움을 눅이려고.?과부는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읇었을 게고,?고보살이 귀찮었겠지.?그런 눈치 알고 고보살이 고민한다지만,?마땅히 수도할 곳이 없다??여기 저기 토굴 자리를 찾다가는,?들었거나 알고 있었거나,?용화사터 미륵님을 기억해 냈겠지.?그리고 고 보살은 자기 갈망을 꿈으로 보게 되겠지.”

나는 혼잣말처럼 조그맣게 말했다.

“그러니까,?꿈에 미륵이 현신한다는 것은 현재의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요,?동시에 현재의 소망을 꿈으로 표출한 것이라는 말씀인가요?”

무엇인가 미진했다.?이야기꾼으로서의 내 상상력을 보탠다 해도 미진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친정에서 돌아와 미륵 앞에 토굴을 꾸린 연화의 변한 모습에 박치성은 놀란다.?특별히 영민했던 연화는 눈에만 이상한 광채를 발할 뿐 초췌하기 짝이 없다.?그러면서도 연화는 애잔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박치성은 미륵 앞에 앉아있던 연화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박치성은 꿈을 꾼다.

미륵 앞에 연화가 앉아 있다.?박치성이 그 자리에 함께 있다.미륵이 연화에게 묻는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연화가 대답한다.

“누구에게 나를 빼앗기지 않고 살도록 도와주세요.”

박치성은 몸 둘 바를 모른다.?연화의 소원이 자기의 속마음을 드려다 보는 것 같지 때문이다.?혹시나 박치성의 열정 때문에 수도생활을 하지 못할는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연화가 미륵에게 그런 소원을 말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그는 자기의 감정이 새삼 두렵다.?혹시 어떤 식으로든,?착취적 의도는 없었는지 새삼 자신을 돌이켜 본다.

미륵이 연화에게 대답한다.

“내 너를 불쌍히 여겨 소원을 들어주마.”

박치성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리를 뻗고 다시 잠에 빠진다.?미륵이 옆에 있으니 자기가 어떤 두려운 행동,?이를테면 연화를 안아 본다거나 하는 행동은 안 하리라고 안심하는 것이다.

나는 고 보살이 틀림없이 미륵님과 만났으리라,?친견했으리라 생각해 본다.?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아내,?실성한 여인은 정신을 차리자 송암사 미륵 앞으로 돌아왔다.?전쟁 없는 세계가 미륵의 세상이다.?미륵이 그를 불렀을까,?그녀의 소망이 미륵을 현몽하도록 했을까?

어쨌든 그녀는 다시 미륵 앞으로 돌아왔다.

연화가 동사자 과부와 송암사를 일으킨다.?몇 년이 지나 과부와 갈등을 빚어 고민하던 연화는 지금의 용화사 터 미륵을 만난다.?그리고는 미륵을 찾아 소원을 빈다.?연화의 처지는 다급하다.?사이가 벌어질 대로 벌어진 과부 보살과 대면하기 정말 괴롭다.?이제 연화는 매일 용화사 자리 미륵을 꿈꾼다.?이 터가 꼭 필요하지만 근동에 쩡하게 세력을 떨치는 박씨 문중을 향해 땅을 팔거나 나누어 달라는 말을 꺼낼 수도 없다.?꿈에 현몽하는 미륵만이 연화의 위로요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연화는 날마다 눈뜨면 미륵 터로 달려간다.?기도하는 연화의 몸은 땀에 젖는다.?인적이 드문 저녁나절이면 연화는 미륵 옆 개울에서 목욕한다.

무료함을 달래려 산천경개를 구경하러 산책길에 오른 박치성은 우연찮게 목욕하는 연화의 벗은 몸을 본다.?연화는 여전히 그 빛나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박치성은 이제 아득히 그의 정념 속에서만 잠자던 연화에 대한 감정이 되살아난다.?박치성은 연화의 주위를 맴돈다.?용기를 내어,?그리고 견딜 수 없어 연화에게 다가간다.?그리고 연화와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날이 갈수록 박씨 종손의 고통은 더해 간다.

이윽고 연화의 소원을 알게 되자 박씨 종손은 이제는 더더욱 사랑을 고백할 수 없다.?박치성은 자기네들 종 터를 염원하는 연화에 대한 자기의 우월한 지위를 결코 이용할 수 없다.그의 양심과 그가 가진 사상이 그의 내면의 감정을 다잡아 주는 것이다.

박치성은 이제 밤마다 꿈을 꾼다.?연화가 미륵과 함께 있다.박치성이 옆에 있다.?연화는 그를 향하여 자세를 바로잡는다.?그러고는 말한다.

“제가 비록 쪽을 지고 살되,?출가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선생님 또한 이를 모를 리 없소.?어려서는 남편 잃은 제가 병들었고,?어른이 되어서는 수도에 몸을 들인 터라 남자를 알 기회가 없었으되,?저 또한 목석은 아니외다.?선생님을 원하기도 합니다.?그러나 선생님과 연을 맺게 되면 간신히 다잡은 나의 수도생활을 포기해야 하오.?그리고 수도생활을 포기한다면 내가 정상인으로 살 수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되오.?그러니 어쩌겠소.?고통을 알지만 선생님이 나를 잊을 수밖에.”

박치성은 꿈속에서 눈물을 철철 흘린다.?연화가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고마워서,?그리고 연화 자신의 처지가 딱함에도 불구하고 연화를 사랑하는 자기의 고통을 알아주는 것이 고맙고,?또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애닯아서이다.

박치성은 문중의 어른들을 설득하기 시작한다.?몇 평 안 되는 땅을 나누어준 들 박씨들이 묏자리 쓸 곳이 없는바 아니요,?우리 박씨들이 섬기던 미륵이라 하나 누가 더 가까이서 보살핀다 하면 우리 문중에 득이 되면 될지언정 손해볼 리 없다는 식이다.

그리고 마침내 연화는 박씨 종산 미륵 터 옆에 자리를 잡는다.?비록 고연화가 절 이름을 내세를 뜻하는 이름이되 미륵님이 가진 현세적 의미와도 통하는 용화사라 붙였지만,?미륵은 연화와 박치성 측에서 보자면 현세에서 분명한 도움을 준 부처이다.?연화와 박씨 종손은 삶의 고통과 사랑의 고통을 미륵님 덕분으로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혁명이었다.?혼자 사는 여자를 차려진 밥상으로 아는 현실에서 남 녀 간의 우정이 비록 에로스의 유혹을 받을지라도,?평등 세상을 향한 걸음일 터일 것이니.

 

이재원 단편소설-오래된 빈 무덤[철학을 사랑한 소설]

이재원 단편소설-오래된 빈 무덤[철학을 사랑한 소설]

이재원(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한 채 차도와 인도에 늘어서 있던 전투경찰들이 물러가자, 팽팽했던 긴장이 사라졌다. 눈에 불을 켠 채 경찰과 대치하던 유가족들과 젊은 사람들이 빈소 겸 숙소로 사용하는 건물, 엉성한 포장을 들추고 들어갔다. 밤을 지새운 탓에 눈을 붙이려는 것이다.

함께 온 백발의 이 선생이 서 교수, 김 시인과 둘러서서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플라톤의 농담을 번안하며, 속으로 웃었다. ‘백발만큼이나 현명하지!’

핸드마이크를 든 사람이 추모 미사를 올린다고 했다. 백발의 신부가 강론을 시작한 미사 텐트로 가서, 비닐 천을 깐 바닥에 앉았다.

“안식 후 첫 날 사람들이 제사지낸 스승의 묘를 찾았다. 스승은 억울하게 죽었다. 스승에게 애정을 가진 이들은 무덤이 멀리 있는데도 벌써 눈이 붉어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되 무덤은 사람이 들어갈 만 한 동굴을 만들고 문을 대신해 큰 바위로 빗장을 지르는 양식이었다.

무덤의 문이 열려있었다. 한두 사람이 옮길 만 한 돌이 아니었다. 스승의 시신은 거기 없었다. 기어이 비자연적인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에게 뿌리박힌 믿음이 있다. 언제부터 생긴 믿음인지 모른다. 비자연적인 현상은 비자연적인 현상을 부른다. 억울하게 죽은 자에게는 비자연적인 현상이 따른다. 사람들이 믿는 논리적 귀결은 빈 무덤이다.”

신부는 한참 뜸을 들였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2009년 1월 20일 아침, 서울 한복판에서 건물 옥상 위 망루가 시뻘건 불길에 휩싸여 있는 참혹한 현장을 중계하던 인터넷 방송 앵커의 목소리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뉴시스

남일당 앞, 백열등 몇 개를 켠 무대를 차린 문화패가 공연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백발이 많았다. 문화패가 공연을 시작했다. 나는 그곳으로 가서 앉았다. 사회자가 이교수의 손을 잡아 무대 앞으로 이끌었다. 사회자는 무엇인가 보는 눈이 있었다. 노래패의 연주가 흘러나오자, 미리 맞춘 듯 왈츠가 이어졌다. 백발이 성성한 여교수의 동작이 경쾌함에 놀랐다. 왈츠의 음악은 박수로 화답하는 관중들의 소음을 뚫고 마치 한적한 산속에 앉아 있는 느낌을 주었다. 그 때도 이런 느낌이었나? 충신 되기도 거부하고 가족을 위해 산천을 떠돌던 한 인간이 한적한 산 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시간도 멈춰버린듯 했던 그 곳, 최 군의 무덤 봉분을 만드는 뒤켠에 앉아있었던 1985년 겨울, 월계리(月桂理)로 거슬러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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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쪽방에서 홍제동 유진상가 앞 까지는 족히 40여분 거리였다. 오늘 하루 일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몇 십 명,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영하의 날씨도 일하려는 사람들을 막지 못했다. 사람들을 빼곡히 태운 봉고차 한 대가 유진상가 앞에 섰다. 나는 조수 대에 탄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보았다. ‘최 군이다’. 그 역시 나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차에서 내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 혀?”

악수하며 내가 말했다.

“목수.”

“타.”

누군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는 연장가방을 든 채 비집고 차에 올랐다. 최 군이 말했다.

“우리 같은 늠이야 이런데서 밖에 만날 디가 읇다야만, 대학생이 되었다며 웬일이냐?”

나는 대답대신 되물었다.

“반장이야?”

옆 사람이 말했다.

“군기반장이요, 군기반장. 말 잘 들으쇼.”

겨울 해는 벌써 사라졌다. 어둑하니 땅거미가 드리우고 있었다. 그 날 일 끝난 후, 평창동 택지개발 축대 거푸집작업 현장 함바에 마주 앉았다. 막걸리 잔을 앞에 둔 채, 자기자랑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그의 말은 처연한 것인지 자조적인 것인지, 짐작할 수 없도록 이중적이었다.

“별스럽지 않은 여자지만 함께 끼구 자는 것이 삶의 보람이라면 보람이다. 여자가 가족 없이 혼자 큰 티 안내구 아픈 노인네 보살핀다.”

“노인네가 아파? 어버지? 어머니? 누가 편찮으신데?”

“아버지, 시굴서는 술 한 잔도 안하던 양반이, 금호동 올라와서는 허구헌날 마시더니, 저 새파란 나이에 풍이다.”

고향에서는 제법 탁탁한 살림을 일구던 그의 부친은 제법 넓은 땅을 씨 한 톨 안 남기고 모두 팔아 서울로 이주했다. 큰 아들을 감옥에서 빼 내기 위해서라는 둥, 이주를 둘러 싼 소문이 무성했다. 최 군의 말에 의하면 친척에게 뜯기고 고향 사람에게 사기 당한 아버지는 시골 땅 판 돈으로 금호동에 간신히 가게 방 겸 방 하나 딸린 판자 집을 구할 수 있었다.

그의 형은 중앙 체육관 페터급 챔프였다. 그도 덩달아 중앙체육관에 다녔다. 그가 가장 즐겁게 이야기하는 대목이라서 알 수 있다. 그 때가 그에게는 호시절이었다.

낮에 그가 반장에게 말했다.

“내 고향 친구여. 대학생이여, 대학생. 계속 일 시켜줘.”

우리보다 한창 연배인 반장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팔자가 풀렸다. 반장이,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네모도 깔아’, 하면 최 군이 와서 일 요령을 알려주었다. 다시 반장이 와서,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판네루 대’, 하면 다시 최 군이 와서 일 요령을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꼭 한마디 말을 달았다.

“여기서 일하는 애덜 다 신당동 패거리여. 나는 목수루 왔지만, 반장은 신당동에서는 내 아우 뻘이여. 아무 걱정말구 시키는대루 혀.”

십 수 살이나 나이 많은 동생을 두고 있는 그를 전혀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주먹잽이였다. 반장 말에 토를 다는 인간은 그로부터 즉시 응징 당했다. 그가 앙앙대는 사람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아채 뒤집어 날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여러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를 뜯어 말리는 시늉을 했고, 응징당한 사람은 고분고분해졌다.

최 군 덕분에 나는 연탄난로가 확확 달아오르는 커다란 군용 텐트 숙소에서 잘 수 있었다. 저녁이면 저녁마다 함바에서 막걸리 한 사발 곁들이는 것도 여반사였다. 그는 주인을 향해, “어이, 이거 내 앞으로 달아놔”, 하고는 내 밥상에 막걸리 두어 병 안겨주었다. 나는 한껏 일에 버팅겼다. 달포가 지나자, 반장이 시키는 것도 무엇이든 최 군 도움 없이 할 수 있었다.

최 군과 손을 맞춰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힘도 좋고 일하는 요령도 좋았다. 삼육 패널 두 장을 힘도 안들이고 어깨에 메어 날랐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통에 일찌감치 할당량을 마치면, 그는 “가자”, 하고는 함바로 들어갔다. 해가 잔뜩 남았는데도 우리는 막걸리를 마셨다.

그러나 택지조성 축대 일이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방학이 다 해, 학교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리도 일이 맞아 떨어지는지, 마침 철 늦게 온 구정이라서 학교 돌아갈 시점과 간조 날이 엇비슷했다.

일찍 간조한 후, 그가 이끄는 대로 커다란 연장가방을 든 채 옥수동으로 향했다.

버스 종점에서 내리자 최 군이, “뭘 좀 사야겠어, 걔가 고기를 좋아해” 라고 말하고는 어둑한 상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산등성이에 올라서자 그가 말했다.

“이제 반 왔다잉. 한 참 더 걸어가야 혀”, 하고는 길 옆 어느 집 문을 열었다.

그의 집은 내가 상상했던 판잣집은 아니었다. 벽돌 골조에 슬레이트집이었다. 부친도 상태가 그리 나쁜 편으로 보이지 않았다. 말도 잘 했다. 그의 새댁은 수줍음을 많이 타 보였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큼지막한 몸을 하고 있었다. 얼굴 한 번 보여주고는 어디로 숨었다.

최 군을 따라 공동 수도 깐으로 갔다. 그는 돼지고기를 씻어 잘게 잘라 냄비에 담았다. 생선은 비늘을 제거하고 배를 가른 다음 깨끗이 씻어 토막을 치 다른 냄비에 담았다. 최 군이 멀뚱해 하는 나를 향해 말했다.

“쟈는 이런 거 못 혀. 친척 집에서 눈칫밥 먹고 컸을텐디 왜 이런 것두 못허는지 모르겄어. 그런디 아버지 옆에는 항상 붙어있어.”

최 군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가지고 온 것들을 들고 부엌(이라야 우습게 친 차양막) 으로 들어갔다. 소리를 죽인 최 군의 우렁우렁한 소리가 밖으로까지 들렸다.

“돼지고기는 고추장으로 비벼서 연탄에 올리면 되어. 생선은… 무를 이렇게…” 하고는 도마 소리가 들렸다. 최군에게 응답하는 새댁의 목소리는 분명하지는 않았으나, 다정다감한 것만은 분명했다.

밥상에서 그의 부친이 말했다.

“나 평생 용산 시장에서 지게 지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더군.”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최 군의 동생도 있었다. 모친은 보이지 않았다. 거리에서 저자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식사를 끝낸 후, 짐 보따리를 든 채 다시 그의 손에 이끌려 산을 넘었다. 그는 이 길을 매일 왕복해서 로드 웍을 했다고 말했다.

“실력이여, 실력. 한 두 방 맞는 것은 문제도 아녀. 노렸다가 날릴 수 있을라먼 하체거덩, 하체. 하체 단련은 로드 웍이거덩. 지금도 맞고 살지 않는 이유가 이거지 이거.”

이것이란 그의 허벅지였다.

“츰에는 맞구 다니지 말라구, 절대루 객지 와서 맞구 다니지 말라구 갈켜주었지. 형은 빵잽이여. 허구헌 날 빵이여.”

복싱을 배우게 해준 형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로도 들리고, 무책임한 형을 원망하는 이야기로도 들렸다.

어느 산등성이에서 그가 저 아래 보이는 커다란 돔 형 건물을 가리켰다.

“저게 장충체육관이여. 저기 서는 게 꿈이었는디, 이게 안 따라주는 거여, 이게.”

그는 자기 눈을 가리켰다. 그의 한 쪽 눈은 시력이 없다. 체력과 깡이 있으나 상대를 가격할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았다. 따라서 랭킹에 오른다거나 프로가 되기는 기대할 수도 없었다.

눈 때문에 그의 별명은 어원도 의미도 알 수 없는 ‘눈깔멩이리’였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나와 같은 학년이 없었다. 그의 집과는 근거리였으므로 우리는 초등 중등을 함께 걸어 다녔다. 군것질은 그의 몫이었다. 그에게 백리 사탕을 살 돈은 항상 있었다. 초등학교 때 나는 이름도 모르는 ‘나쇼날’ 라디오니, ‘딸라 장수’니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친척이 있어, 서울에서 그런 장사를 한다고 했다. 마침 이 고장을 덮친 해일의 원인과 영향, 태풍의 원인과 그 길목에 대해서도 자상히 알고 있었다. ‘나쇼날’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일 터였다.

그는 원래 깡다구가 있었다. 중학교 때 어떤 아이와 붙었다. 시골 이이들 싸움질은 무척 드문 일이라서, 한 구경거리가 되었다. 상대 아이는 몸이 잽싸기로 유명했으며, 유일한 취미가 싸움이라서 항상 누군가를 골탕 먹이고 싶어 했다. 상대방은 싸움이 시작되었는데도 얼굴에 살짝 웃음까지 머금고 있었다.

최 군이 먼저 코피가 터졌다. 코피 터지면 물러나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그가 주먹을 쥐고 앞으로 왔다 뒤로 갔다, 하며 기회를 엿보는 통에 상대방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가 뒤로 주춤거리자, 상대가 앞으로 조끔씩 전진했다. 그가 싸움터에 있는 야트막한 무덤으로 조금씩 뒷걸음으로 올라갔다. 무심코 좇아가던 상대방이 아차,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가 무덤 중간쯤에서 상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토록 잔인한 아이들 싸움은 처음 보았다. 위에 올라탄 그가 막무가내로 상대방의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 뒤로 아무도 그와 싸움하지 않았다. 오히려 싸움꾼들이 슬슬 그를 피했다.

그는 중학교 미술선생에게 자주 칭찬을 들었다. 그의 그림이 항상 복도에 걸렸다. 리얼하달까, 이삭 줍는 여인 비슷하게, 굴 따는 여인 그림도 있었다. 나는 옛날 생각이 나서 그에게 물었다.

“그림 그리고 싶어 했잖아? 그 쪽에서는 해본 거 없어?”

“그림이랄 것은 없지만, 극장 간판 그리는 거 배웠다. 몇 년간 극장에서 잘 놀았지. 그러나 간판이 사양길이라서 밥 먹고 살 수 읎을 뿐만 아니라 저 판자집을 지켜야 했어.”

그가 다시 말했다.

“저 집 지키려고 별 짓 다 해봤다. 저기서 밀려나면 갈 데 읎으니께. 형 한테 들은 이야기다. 빵 살다가 고명한 사람헌티 들었것지.

거 옛날 사람 하나가, 충신 시켜줄테니 순장 당하라는 명령을 거절했다며? 나는 가족을 지켜야겠다, 충신 되는 것도 싫다. 데리고 산천을 떠돌지언정, 나는 가족을 지켜야겠다고 했다며?

내가 그런 심정이었다. 안강망이라고 아나? 예닐곱 명 타는 배인디, 겨울마다 가서 배 탔다. 그게 그물 내렸다가 걷으면 마구 술을 마시거등. 첨 배에 올랐을 때 멀미를 심하게 하니, 조금 봐 주더라구. 죽는 줄 알았지, 모든 걸 다 토하는겨. 그게 익숙해지구 시간이 지나자 애덜이 사람 잡는겨. 선원덜이 오락거리가 읎잖은감. 츰 온 사람 개나 고양이 데리고 놀기지 뭐. 어떻게든 우그려뜨려 가지구 노는거여. 어떤 영감이 그러데. 죽기 아니면 살기루다가 걔들한티 뎀벼야지, 아니면 내가 죽는다는겨.”

그가 다시 주먹을 들어 올려 흔들며 말했다.

“이거루 살았다. 소주병 잇슈 마신 늠덜 서너 명이야 나 당할 수 있나? ”

그의 집에서 걷기 시작한지 한 참 만에 산을 건너, 길을 건너 신당동에 도착했다. 그가 어디로 시선을 고정하지 않은 채 말했다.

“한번 헐레?”

나는 단번에 알아들었다.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내가 이 동네 잘 알어.”

나는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신당동에 도착자마자 그가 안내한 곳이 여인숙이었다. 그가 주인에게 말했다.

“내 친군디 대학생이여, 대학생.”

지금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그곳 거리의 광경이 선하다. 뒷골목 술집은 안주가 다양했다. 막걸리 앞에서는 나는 속없는 인간이다. 처음에는 이야기가 통했다. 막걸리 빈 병이 몇 개 되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건장한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가 눈을 휘번덕 하더니만, 한 사람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짝 갈라진 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되었다구? 뭐라구 아가기 놀리고 다녔어?”

멱살 잡힌 사람이 켁켁거리며,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함께 온 사람들이 그를 얼렜다. 한 참이 지나서야 멱살 잡혔던 사람이 말을 시작했다.

“서울 교통 운전수들이 데모를 시작했어. 오야지가 깨라구 해서 몇 명 갔지. 버스에서 내리는 족족 운전수들 개패듯 팼어. 덩치 좋고 대찬 놈이 덤벼들자, 형이 냅다 발로 찼다. 그 냥 기절하데…

살인나는 줄 알았다. 병원 데리고 갔는데, 불알 터졌대. 그래 형이 달려 간거야.

엊그제두 면회 갔다 왔어. 홍성 교도소로. 우량 판정 받을랴구 애쓴다 하더라구. 나는 잘못한 거 없어.”

최 군이 말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말하구 다녀? 머, 형이 잘못해서 달려갔다구? 느이덜이 한 짓이잖여. 느덜두 같이 사람 팬 거 아녀. 왜 형한티 뒤집어 씌우디끼 허냐? 드런 느무 깡패새끼덜, 옳게 살어 옳게…”

나는 술이 다 깨버렸다. 그의 이야기 중에, 자주 들었던 것은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금호동에 재개발 계획이 있다. 부친 대신 자기도 그곳 재개발 협상 팀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은 중이다. 그가 말했다.

“나이만 먹었지, 무얼 알아야 조합에 들어가지. 갸덜이 나헌티 바라는 건 이거야, 이거.” 하며 그는 주먹을 들어 보였다. 그의 말을 듣자하면, 재개발 조합은 항상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땅과 건물을 함께 가진 사람은 극소수였다. 문제는 땅 없이 건물 권리만 소유한 사람들이나, 세를 사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딱지를 준다 해도 아파트 입주는 불가능했다. 그 동네 사람들이 새로 짓는 아파트에 입주할 만 한 돈이 없었다. 그의 집은 건물 소유권만 있었다. 따라서 까딱 잘못되면 그냥 거리에 나않게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고민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응답할 지식이 없었다. 내 관심이라야 학교에서는 기껏 책 읽는 시간, 책 몇 페이지 뿐이요, 그것 날아갈까봐 놀러 다니지도 못하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방학에는 몇 푼 버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와 헤어진 후 몇 학기가 지났다. 자취집 주인이 시골에서 연락이 왔다며, 고향 송 군의 전화번호를 주었다. 송군에게 전화 했다.

“최군이 죽었어. 윌기리(월계기)로 와. 최 씨네 종산.”

“어떻게 죽었는데?”

“얼어죽었대.”

“이 날씨에?”

“그러게, 그렇게 이야기 들었어.”

그의 운구를 따라 온 사람은 몇 명뿐이었다. 산일 하는 사람, 친구 몇 명, 그리고 일을 주도하는 최 군의 사촌 형과 새댁, 동생이 전부였다.

작지 않은 몸집의, 수줍었던 새댁은 여전히 수줍음을 타는 듯 했다. 아무에게도 얼굴을 안 보여주려 작심한 듯, 고개를 무덤 앞 땅에 밖은 채 엎드려 있었다. 누가 몸을 들어 올려도, 몸을 흔들어도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그의 죽음이 무척 의심스러웠다. 그의 사촌에게 넌지시 물었다.

“형님, 어떻게 된 거예요?”

“때려 부순 집에서 안 나가겠다고, 텐트 치고 잤대. 그날 밤에 얼어 죽었대.”

그의 사촌으로부터는 더 이상 들을 말이 없었다. 그의 동생을 찾았다. 몇 년 새 그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묘지 봉분을 만드는 뒤편에서였다.

“저는 그 때 공장에 있었어요. 동네 사람들한테 들은 이야기예요. 철거반 수십 명이 떼거지로 몰려왔대요. 아랫 쪽은 포클레인이 부수고, 포클레인이 올라오지 못하는 언덕에는 함마를 든 사람들이…”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 가재도구가 나뒹구는 소리, 벽돌에 가해지는 함마 소리, 공간이 빈 벽돌의 울림…

입에 갈증이 났다. 나는 저 아래편에 놓인 술짝으로 걸어가 술을 들고 다시 올라왔다. 그가 다시 말했다.

“형이 발악을 했대요. 철거작업자 두들겨 패구, 경찰 두들겨 패구, 신사복 입은 사람들, 회사 사람들 쫓아가서 패구. 여러 사람들한테 짓밟혔대요. 철거원, 경찰, 회사 사람 할 거 없이 달려들어 형을 짓밟았대요.”

떠날 곳 없는 철거민들이 거기에서 밤샘을 했다. 그는 뭉개진 나무를 치우고 벽돌을 들어내 텐트를 치고 기어 들어갔다.

아침에 그가 일어나지 못했다. 소리도 없이 신음도 없이 죽었다. 경찰이 의사를 대동하고 왔다. 사인은 ‘동사’였다. 동네 사람들이 경찰과 의사에게 항의했다. 어제 최 군에게 몰매를 준 사람들을 조사해야 한다.

그의 부친이 말했다.

“월기리루 가. 늬덜까지 죽으까 무섭다. 몇 백 명 눈 깜작 안허구 죽이는 늠덜이다.”

최군은 자기가 지킨 것들의 댓가, 벽돌 슬레트 집 보상금을 써서 장지로 향했다.

묘지 봉분 작업하는 옆에 서있던 그의 사촌이 우리 있는 쪽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최군 동생에게 말했다.

“동상, 일허는 사람덜 뭘 좀 멕여야겠는디, 식당에다가 국밥이라도 시키까?”

최군의 동생이, “그러셔야죠”, 하고는 주머니 지갑을 뒤졌다.

김이 자욱한 함바에서 처음 마주 앉았을 때,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참 용케도 만났구만, 객지에서”, 라고 너스레를 떨던 그의 모습을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면 나는 마음의 손가락으로 저 멀리 산 능선을 따라 그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 참 후에야 사람들이 모두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언젠가 평창동에 간 일이 있었다. 밤늦게 모임이 끝나, 나는 이 선생 집에 가서 잠자기로 했다. 택시를 타자 이 선생이, “평창동”하고 말했다. 나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동네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 동네를 돌아보았다. 이 선생 집은 빌딩과도 같았다. 집들이 모두 웅장했다. 동네는 깨끗했으며, 잘 다듬어져 있었다. 김을 풍기던 함바와 군용 텐트로 만들었던 숙소는 상상도 가지 않았다.

발전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금호동의 개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한강 물이 내려다보이는 수려한 그 곳을 돈 잘 버는 사람들이 그냥 놔 둘리 없다. 최 군이 금호동에 자리 잡은 것 자체가 비극의 씨앗이었다면, 그는 애초에 유랑하는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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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원 단편소설 ? 생명과 그 적대자 [철학을 사랑한 소설]

?이재원 단편소설 ? 생명과 그 적대자 [철학을 사랑한 소설]?

 

?이재원(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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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여정은 인생의 여정을 보여준다. 이 장미나무를 심어 놓으면 가지가 솟아 잎은 무성해지고 찬란한 꽃이 피울 것이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꽃은 시들고 잎은 마를 것이다. 인생이라는 이름도 장미의 이름과 마찬가지가 아니더냐. 마흔여섯 개의 염색체를 가진 생식세포는 오만 종의 유전자 쌍을 토대로 자기를 형성해 간다. 너는 나의 아들이지만 너와 나는 같지 않다. 신비한 어떤 기제가 있어, 각자 정보를 선택한 대로 자기를 만들어 가기 때문일 것이다.

장미의 유전자를 읽는 것은 인간의 유전자를 읽는 것보다 쉬울 것이다. 장미의 유전자는 몇 쌍일까? 일곱 쌍? 아니면 여덟 쌍 정도? 완두콩의 염색체가 여섯 쌍이니, 장미는 적어도 완두콩보다는 더 복잡한 염색체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완두콩에는 없는 여러 가지 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장미를 그 장미로 만드는 것은, 장미가 가진 유전자 정보뿐만 아니라 토질의 성분에도 달려있다. 장미는 뿌리가 흡수하는 자양분을 토대로 자기를 완성할 준비를 할 것이다. 자양분이 많다면 키도 더 클 것이고 꽃도 많이 필 것이다.

이곳 지표는 마사토이다. 나는 이 땅에 구덩이를 파고 깨끗한 황토흙을 채웠다. 황토 속에는 장미와 내 육체를 구성하는 성분들이 들어있다. 탄소, 질소, 산소 등. 이 장미는 번성하지는 못할지라도 건강할 것이다. 나는 이 장미가 무성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키가 크지 않아도 좋다. 아, 흰 장미라면 더 좋았을 것을. 역시 무덤가에는 색깔 있는 장미보다는 흰 장미가 더 어울릴 것이다.

네 엄마 무덤에는 국화를 심었다. 그때도 이렇게 황토를 복토해 국화를 심었다. 네 엄마는 살만큼 살았다. 네 엄마 무덤에는 국화가 무난하다. 명이 다해 죽은 사람이니까. 그러나 너는 네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렇다면 평화로워 보이는 국화로는 충분하지 않다. 네 무덤에는 장미가 적절하다. 너는 만개한 한 때를 살았다. 그러나 너의 죽음은 평온하고 자연이 만들어 낸 죽음이 아니었다. 저 바다의 죽음과 같은 격렬한 죽음이었다. 네 무덤에는 장미가 적당하다. 다른 식물들보다 더 격렬하게 사는 장미가 적당하다. 맹렬하게 꽃 피우는 것도 그렇고, 가을이 오기 전에 꽃이 시드는 것도 그렇다.

장미나무를 심는 것이 어쩌면 내 생 최후의 노동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내 생을 모두 타인의 노동에 맡겨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들아. 내가 이 장미꽃을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나는 알 수 없다. 나는 모든 정열을 다 써버리고 시드는 때의 장미 잎과 같다.

그러나 장미와 나는 다른 데가 있다. 내 육체는 쇠잔해 가는데, 정신은 이리도 청명하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정확히 들을 수 있다. 내 정신, 기억력은 여전하다.

너는 네 삶의 목표가 있었나? 너는 회사일, 그리고 출근하기 전과 퇴근 후에는 농사일에 매달렸다. 너의 인생을 계획하거나 돌아볼 틈이 있었을까?

네가 살아있을 때 나는 너를 위해 장미를 심어주지 못했다. 아! 장미를 보며 네 생을 계획하렴, 하고 네게 말 할 수만 있다면… 이제나마 나는 너를 위해 장미를 심는다.

나의 육체는 장미와 비슷한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우주 안에 어디 새로운 것이 있을쏘냐. 다 같이 흙이라는 한 고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름 붙여진 것들의 허망함이여!

의사의 말처럼 죽는 순간 나의 뇌는 전기신호를 멈출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과 죽어있다는 차이는 뇌의 전기신호 여부이다. 그러나 죽는 순간 나는 죽음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나를 진단한 의사가 하는 말들, 심히 걱정스러운지 진단결과를 내게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는 의사의 토막말들을 나는 재조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 약이 할아버지에게 잘 듣지 않는군요.”

“어째서 그런가?”

“할아버지의 몸이라는 기계가…… 그러니까 모든 기계는 쓰면 낡기 마련이잖아요? 약효가 좋지 않은 이유도 그런 거지요. 낡은 기계에 기름을 칠해도 삐걱거리잖아요?”

의사는 대단히 말을 조심했다. 나를 실망시키려 하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경우에는 표정관리를 잘 해야만 내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나는 고개를 끄떡이고는 의사에게 물었다.

“그러면 이런 기계로 나는 얼마나 살 수 있겠는가?”

“얼마나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죠. 하느님이나 할 수 있죠. 약이 잘 듣지 않는 것으로 봐서 몸이 쇠약해졌다는 것만은 알 수 있죠.”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전부터 생각해 왔던 일을 하기로 했다. 네 무덤가에 장미를 심는 일이다.

안순옥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는 다시 짐차를 몰고 돌아갔다.

“할아버지, 씩씩하게 장미 잘 심고 돌아가세요. 먹감나무 묘목 가지고 내일 다시 올게요,”

국밥을 먹다가 안순옥이 물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이렇게 국밥 잡수실 돈은 어디서 나세요? 아드님? 아니면 젊어서 돈을 많이 벌어놓으셨어요?”

“젊었을 때야 많이 벌었지. 그러나 지금 쓰는 돈은 내가 번 것이 아닐세.”

“그럼 누가 번 돈이에요?”

“아들이 남긴 유산.”

안순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아들이 간척회사 농장에 다니다가 사고로 죽었어. 보상금을 내게도 조금 주었지. 지금 내가 쓰는 돈도……”

안순옥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유 할아버지, 내가 괜한 질문을 했나봐요. 그렇다고 식사하시면서 우시면 어떡해요? 진정하세요, 할아버지.”

눈물처럼 신비한 것이 또 있더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감정이 보이는 물질적인 것으로 변하는 현상이 눈물이다. 그러나 나의 육체가 없다면 보이지 않는 감정도 없다. 나의 이 마른 몸에서 눈물이 솟아날 수 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다. 정신이 느낀 것이 생리적으로 표현될 때 눈물이 된다.

육체가 쇠잔한데도 정신이 말짱한 것이 신비이듯, 육체가 쇠잔해도 젊은 여인을 보면 웃음이 날 듯 반갑다는 것도 신비스럽다. 내 기억의 저편 어느 한 구석에 웃음 한 자락이 붙어있어, 내가 보는 대상에 따라 과거 활발했던 내 육체가 만들어 내었던 웃음처럼 반가운 기억을 일깨우는 것일 게다. 눈물과 웃음은 모두 기억이라는 정신이 육체를 통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이 노쇠하고 말라비틀어진 내 육체는 상황에 따라서 과거 내 육체가 경험했던 것을 복사해 낸다.

나는 장날마다 다릿목에 묘목장수가 좌판을 벌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농사짓는 일이 힘들어지면서 묘목을 심기 시작했다. 묘목장수는 우럭포 등, 말린 생선도 함께 팔고 있었다. 병원에서 나와 쉬엄쉬엄 걸어서 다릿목에 도착했다. 묘목을 파는 여인은 나를 기억했다. 나는 웃음을 머금고 묘목을 늘어놓은 곳으로 다가가 무릎을 구부려 않았다. 여인이 물었다.

▲ ⓒ프레시안(김하영)

“할아버지, 묘목 사시게요?”

“흰 장미 한그루 사고 싶은데.”

“흰 장미는 오늘 없고요, 혹시 꼭 필요하시다면 다음 장날 제가 가지고 나올 수도 있어요. 명함 드릴 테니 전화 주시겠어요?”

명함을 보고야 그녀의 이름이 안순옥이고, 집이 고북에 있는 무진농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다음 장날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내가 다음 장날 다시 나올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거든. 오늘 가지고 나온 장미는 무슨 색깔인가?”

“잡종이지요. 빨간 색도 피우고 노란 색도 피울 거예요.”

“좋네, 장미 한 그루 싸 주게.”

안순옥은 나무를 싸며 말했다.

“할아버지는 참 특별하시네요. 과일나무를 심으시다가, 이제는 장미까지… 묘목을 사 가는 노인들은 가끔 있지만…”

“노인들이 과일나무라…… 그 나무 열매 따먹을 때까지 살라는 보장도 없는데 과일나무를 심는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것인가?”

안순옥이 감탄을 섞은, 높은 소리를 내었다.

“스피노자! 할아버지, 공부 많이 하셨네요?”

“내가 예전에 수원 농림학교를 다녔거든. 내 선생이 후에 농림장관도 하고 그랬어. 그 선생한테 들은 말인데 갑자기 기억나네 그려.”

“와아, 인텔리셨네요? 그럼 할아버지는 젊어서 직업은 뭐였어요?”

“농사지었지.”

“공부하신 것과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셨네요?”

“선친께서 내가 대처로 나가는 것을 한사코 반대했지. 험한 세상이니 몸 사리고 집에 있으라고…… 농사도 짓고 고기잡이도 하면서 살았지.”

“염라대왕도 부러워했겠네. 어디에서 농사도 짓고 고기잡이도 하면서 살 수 있어요? 어디에서 사세요?”

“갈마리.”

원래의 마을 이름은 갈매, 쪽빛 강물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일정 때 마을 이름을 한문으로 표기하면서 갈마리가 되었다. 목마를 갈, 말 마 자를 붙여 갈마리라 했다. 그렇게 이름을 붙이자 호사가들이 나서 마을 이름에 뜻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저기 보이는 돌곳이 형국이 물을 찾는 목마른 말 머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 새로 지은 이름이 옛 이름을 당할까? 어디를 파나 물 잘 나오지, 황토에 거름 주면 농사 잘 되지, 사람 살기 좋은 땅이었다. 농사지을 땅 없는 사람도 이곳에서는 바닷물만 쫓아다녀도 배불렀다는 말이 있었다. 내 말은 그러니까, 이 마을에서는 누구나 먹고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땅 없는 사람도 이곳에서는 맨몸으로 바다에 가서 먹을 것을 벌어왔다. 큰 시내와 바다가 만나는 곳은 갈맷빛 그것이었다. 간척하기 전 까지는 그 이름이 적당했다.

생도둑놈들이다. 한 바다를 ‘내 것이다’라고 울타리 치는 놈들이 도둑놈이 아니고 무엇이냐? 이름붙일 수 없는 것에 네 것 내 것으로 이름붙이다니!

간척사업을 한 뒤로는 목마를 갈, 말 마, 갈마라는 지명이 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돌곳이 뻘, 기름져 만물이 살아 움직이던 물기 먹은 저 갯벌은 시체처럼 황폐해졌다. 햇볕에 굳은 갯벌 흙은 돌덩이처럼 차디차다. 농사지을 곳이라야 간척지의 일부분 정도 뿐, 나머지는 썩은 물로 차 있다.

나는 농부였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도수 어부이기도 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터 아래, 고기들이 먹이를 찾는 곳에 주낙을 놓을라 치면 바구니 가득 고기를 잡았다. 한바다 가득 물이 들어찬 꿈꾸기 여러 번이었다. 간척되기 이전의 바다를 꿈꾸고 일어나면 항상 목마르듯 슬픔이 차오르곤 했다.

나는 신화를 믿는다. 바다에서 생명이 태어났으며,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졌다. 신화는 이처럼 인간의 자궁을 두 곳으로 지목했다.

바다, 인간의 자궁도 죽을 수 있다는 증거가 저 간척지이다. 저 바다의 죽음은 자연적인 죽음이 아니다. 격렬한 죽음이다. 바다 속 만물이 일어나 죽음에 저항하다가 껍질만 남기고 전멸했다. 커다란 죽음 자체이다.

중환자실에 들어간 너를 담당한 의사가 내게 말했다.

“뇌사라는 것을 설명 드리기가 어렵군요. 뇌사란 곧 의사가 진단하는 죽음이에요. 뇌가 전기신호를 멈추었다 것은 인간이 죽었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지요.”

너의 심장은 아직 따뜻한데 의사는 네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너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의사의 다음과 같은 말에 너를 집으로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뇌사 이후 마흔 여덟 시간이 지나면 영안실로 모셔야 합니다.”

나는 너를 집에서 임종하도록 해야 했다. 태어난 곳에서 죽어서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내 신앙이었다. 그리고 여기 양지바른 곳에 너를 묻었다. 내가 너를 묻었기로서니 정말 너를 묻었을까?

네 무덤을 밟듯이 장미의 뿌리를 밟는다.

장미를 비닐봉지에 넣어 주며, ‘이 장미는 뿌리가 실해서 잘 살 것’이라는 안순옥의 말을 이어 내가 물었다.

“그래, 자네의 뿌리는 어디인고?”

“그게 무슨 말이예요, 할아버지?”

“그러니까, 자네 고향을 물은 거네.”

“뿌리가 왜 고향 이예요?”

“나는 고향 사람들, 특히 고향을 떠난 사람들을 생각한 거네. 갈마리에서 살던 사람들 중에는 농토 없이 바다에다 뿌리를 두고 살던 사람들이 많았거든. 그런 사람들은 바다가 간척지가 되자 마을을 떠났지. 일정 때 소작하던 땅을 잃고 유리하던 사람들처럼 자궁을 떠난 사람들의 곤궁한 삶을 아네. 자기 삶의 자양분을 빨아대는 곳, 그곳이 고향이요 자궁이 아니겠나?”

안순옥이 눈을 작게 하고는 말했다.

“간척회사에서는 지방 사람들 일터를 많이 만들어 주었다고 말하던데요? 신문에도 났었어요.”

나는 언성을 높였다.

“이 사람아, 수만 명 일터를 빼앗고, 몇 십 명 일터를 준다는 것이 대수야?”

“수만 명이라뇨?”

“도수어업이라고, 그러니까 배나 특별한 도구 없이 간단한 농기구를 들고 바다로 가서 해산물을 채취하면서, 저 바다를 끼고 도는 곳곳마다 사람들이 살고 있었네. 바다가 간척지가 되자 그 몇 만 명이 하루아침에 할 일을 잃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네. 뿌리, 자양분을 빨아들일 땅을 잃어버린 꼴이지, 그 사람들이나 나 모두.”

내 나름대로 심각한 이야기였으나, 안순옥이 꺄드득 웃음을 터트리고 말했다.

“그러면 제 고향은 장터네요? 저는 장바닥에 뿌리를 두고 살거든요. 이건 농담이고, 제 고향은 고북, 무진농장이예요. 농토 한 떼기 없는 그곳에서 태어났죠. 간척지 옆이예요. 전에는 경치가 아주 좋았어요. 지금은 삭막함 그 자체죠. 비행기가 농약이라도 뿌릴라 치면 빨래 걷으랴, 장독 덮으랴, 숨도 못 쉬고 살죠.”

“아버지가 무진농장을 운영하시는가?”

“아뇨, 조경 노동자였죠, 나무에 깔려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저런, 그럼 묘목은 누가 키우나? 누구하고 사나?”

“동생하고 함께 살죠. 묘목은 여기 저기 농장에서 받아오죠.”

나는 장미 나무를 받아들었으나 무엇인가 그냥 가기가 섭섭했다. ‘스피노자!’라고 소리치던, 그 활짝 웃던 모습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아니면 내 기억 저편에서 나와 함께 웃고 슬퍼했던 고향사람의 뿌리 잃은 모습을 안순옥에게서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일어섰다 않았다 하기를 반복한 후에 말했다.

“자네 내 이야기를 듣고 나를 노망든 노인이라고 하지는 말게. 일본에서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직업이 있다고 하네. 대개 노인들이 이야기하고, 젊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식이라네.”

안순옥이 두 손뼉을 부딪쳐 ‘짝’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아하, 제가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어 드릴까요?”

“아니, 더 있네. 내가 점심을 살 테니, 나하고 이야기함세.”

그리고 무진농장이라고 쓰인 짐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또, 내가 갈마리 가려면 택시를 타야 하네. 택시비 낼 테니 자네 차로 나를 갈마리까지 태워다 주지 않겠나?”

안순옥이 웃으며 말했다.

“어렵지 않아요. 점심은 어차피 먹어야 되고, 조금 있으면 동생이 잠시 교대해 주러 오거든요. 그런데, 제가 노인한테 대접해야지 오히려 얻어먹어서 되겠어요?”

“돈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되네. 나는 조금 지나면 이제 돈 쓸 일도 없어.”

우리는 장날마다 문을 여는 국밥집으로 가서 마주 앉았다.

그녀는 장사하면서 늦깎이 방송통신대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그녀는 배움에 미련이 있다고 했다.

“제 법명이 능인이었어요.”

나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스님이었다는 게야, 아니면 보살계를 받았다는 거야?”

그녀가 간단히 자신의 이력을 설명했다. 승가대학을 다닐 때 모친이 죽었다. 문제는 젖먹이 동생이었다. 부친도 몸이 불편해 아이를 돌볼 수 없었다. 그녀는 환속했다. 동생을 돌보며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운전하며 장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예 이 길로 나섰다. 크게 욕심 부리지 않으면 두 식구 먹고 살 수는 있지만,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기 동생이 한창 공부할 나이인데 장사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나는 젊은 시절, 중이 걸머지는 배낭에 주목했다. 암울한 시대였다. 항상 떠나는 것을 생각했다. 그러나 떠날 수 없었다. 부모를 모셔야 하고, 너를 키워야 했다.

나의 부친, 너의 조부의 임종을 기억한다. 한의사가 왕진 왔다가 돌아간 후 부친은 “칠성판을 가져오너라”, 하고는 그 위에 누웠다. 임종까지 열흘 동안, 가족들은 그의 머리맡에 앉아, 죽음과 싸우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떤 불평도 없이 끙끙거리다가도, 네가 방에 들어서면, “아가, 이리 오너라. 와서 네 찬 손으로 내 뜨거운 이마를 식혀주련?”이라고 말했지. 200여 개의 만장이 그의 운구 행렬을 앞서 갔다.

나도 그런 식의 임종을 맞이하고 싶었다.

국밥집을 나와 찻집에 앉자, 안순옥이 장미를 화제로 꺼내었다.

“장미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뭘까?”

“처녀성.”

나는 작지 않은 나이의 여성이 로맨틱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속으로 감탄하며, 장미의 부드러운 꽃잎과 여인의 은밀한 속살을 비교해 보았다.

“적절한 상징이로군. 그러나 해석이 필요하네.”

“어느 면에서요?”

“실패한 생명의 상징이랄까, 억지로 이어붙이자면 자궁이 더 좋을 듯하네. 생명을 잉태해야 할 곳, 그러나 실패한 자궁, 매번 생리를 하는 처녀의 자궁, 그리고 씨를 맺지 못하는 장미 꽃.”

간척회사는 바다라고 하는 이 처녀지에 새로운 농토를 만들겠다고 했다. 독재자는 그 회사 회장에게, “당신이 경제 대통령이요”라고 말하며, 조상들의 생명이었으되 후손들의 생명일 바다의 전권을 위임했다. 그러나 저 바다는 처녀지가 아니었다. 거대한 생명을 내포하고 있었다. 다만, 모든 이들의 것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려는 이들의 위장적 수사가 ‘처녀지’였을 뿐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났어도, 그리고 아무도 여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지라도 바다의 죽음은 아직도 나에게 모호함 자체이다.

짐차를 운전해 오면서 안순옥이 말했다.

“아드님은 몇 살에 사고를 당했어요?”

“……마흔 아홉.”

안순옥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내 나이였네. 무슨 일을 하시다가, 어떤 이유로……”

“간척농장에서 트럭을 운전했지. 농산물이나 부산물을 실어 나르는 일을 했지. 일찍 죽은 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큰 이유는 배운 게 없어 험한 일을 한 탓이겠지. 하나 더 꼽으라면 탕떼기라고 해서, 트럭 한 차 짐 실어 나르면 딱지 하나를 주는 식으루다 작업하는거지. 아이는 돈을 더 벌고 싶어 무리했을지도 몰라. 노동을 적대적으로 삼는 사람들이, 살아남으려면 더 뛰라고 말한 사람들이 이 아이를 죽인 셈 아니겠나. 내 아들은 그 회사 회장보다 훨씬 먼저 갔지. 그 회장은 이곳에 도서관을 지어 기증했거든. 도서관을 볼 때마다 생각되는 것은, 사람들이 합의 하에 어떤 일을 한다면 저처럼 생색낼 필요도, 회장이 떼돈 벌 이유도 없을 것이야. 회장은 여행할 때에도 간호원을 대동했다지? 그는 자기가 가진 특권 때문에 오래 살 수 있었겠지.”

뒷말은 나의 혼잣말이었다. 나는 잠깐 옆에서 누가 듣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안순옥의 말이 나를 다시 불러 세웠다.

“정말 죽음까지도 공평한 것이 아니네요?”

죽음도 사회적 계급에 따라서 다르다. 결코 공평하지 않다.

나는 특권을 누리는 삶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죽을 때 누군가가 손이라도 잡아 주었으면 좋겠다.

누구의 위로도 없이 혼자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은 싫다. 네가 살아있어, 내 죽음을 지켜보아 주었더라면……

그렇다. 누군가가 필요하다. 안순옥에게 제안했다.

“자네, 무진농장에 농토도 없이 쓰러져가는 집 한 채 뿐이라면 우리 집으로 이사 오지 않겠나? 소지주였던 부친 덕분에 집이 널찍하네. 밭도 작지 않네. 자네 알다시피, 밭에는 감나무를 심었지. 이왕 이렇게 된 거, 감나무를 더 심세나. 감나무 농사는 자네가 짓고, 수익도 가지게나. 대신 나를 돌봐 주고, 임종 시 손을 잡아주는 거야.”

“좋아요, 할아버지. 점잖으시고 지적이신 데다가, 잘 생기셨으니 맘에 들어요. 하하 농담이고요, 저도 감나무 농사지어서 안정되게 생활할 수 있다면 좋죠. 또 노인 돌보는 거야 제게 이력이 났죠. 부친의 경우도, 그리고 예전에 절에서 스승님 돌보는 것도 그랬죠. 상품 가치가 높은 먹감나무를 심어요, 우리. 내일 당장 심어요. 민주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살다가, 할아버지 임종 하실 때 손을 꼭 잡아 드릴게요.” 하고 그녀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그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 황혼이다. 저 빛은 잠시 후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것이다. 나 역시 곧 사라지겠지. 내가 죽으면 내 육체의 주인은 내가 아닐 것이다. 나는 타인들의 몫, 타인들의 평가의 대상이 될 것이다. 나는 타인들의 입장에서만 회자될 것이다. 하늘이 붉게 물들고 나면 어둠이 시작되듯이, 나에 대한 타인들의 평가도 또한 사라질 것이다.

잘 있어라.

이재원 단편소설 – 배추이파리 [철학을 사랑한 소설]

?이재원 단편소설 – 배추이파리 [철학을 사랑한 소설]

 

이재원(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두세 달 간 대웅전을 짓는 일을 하는 동안 덕암사 주지는 틈만 나면 사진기를 들고 와 일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다. 그가 찍은 내 사진만도 한 봉투나 되었다. 그는 절 지은 기념으로 그 사진들을 보관하겠다고 했다. 그 사진들 속에서 나는 일하고 있었다. 가장 활기 있던 나의 생의 한 시절이 그 사진 속에 들어 있었다.

절 지붕을 올리는 중인가 보다. 나는 용마루 위에 서 있다. 작업하다가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것이리라. 그 옆에 장씨가 몸을 구부린 채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다. 장씨는 항상 등산화를 신고 일했다.

장씨가 특별히 게으름 피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등산화를 신고 일하는 탓에 장씨는 항상 몸이 굼떠 보였다. 하 사장은 그런 장씨를 항상 못마땅해했다. 하 사장은 장씨에게 일 시킨 것을 후회하곤 했다. 장씨는 우리와 함께 일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덕암사 일을 시작하기 전, 안영사에서 종각 짓기를 마치자 함께 일하던 일꾼 두 사람이 빠져나갔다. 그러자 덕암사에 와 일할 사람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하 사장이 찾아낸 것이 장씨였다.

장씨는 토목공사 패거리를 따라 덕암사에 왔다. 덕암사 기단 공사랑 주변 축대 공사를 마치자 장씨는 혼자 덕암사에 남아 공사 잔거지를 하고 있었다. 하 사장은 그런 장씨를 뒷일꾼으로 썼다.

장씨는 마흔이 갓 넘었다. 그러나 미혼이었다. 막일로 몸이 굳은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요, 특별히 다른 기술도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평소에 무엇으로 소일했느냐, 누구와 사느냐고 물을라치면 그는, “머, 산으로 들로 돌아다녔에요. 갈 곳 없으면 형님 집에……” 라고 얼버무리곤 했다.

식사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도 있다. 모닥불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앉아 식사하고 있다. 양씨가 내 옆에 있고, 진옥 씨가 사람들 옆에 서 있다.

그녀는 다리를 절었다. 어떤 사람은 주지의 부모가 그녀가 어렸을 때 수양딸로 데려다 키웠다고 했다. 우리보다 먼저, 그리고 우리보다 오래 덕암사에 있었던 탓에 장씨는 절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장씨는 그녀가 공장을 다니다가 몸이 나빠져서 휴양차 이곳에 와 있다고 했다. 그녀가 딱히 절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공양주 보살을 도와 식사 준비도 같이 한다. 그렇다고 그녀가 전적으로 식사를 책임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주지 다음으로 절에서 중요한 일들을 관장하고 있었다. 요사채 겨울나기를 주도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장씨를 시켜 요사채 주변 헛간에 비닐로 문을 해 달기도 한다.

장씨는 그녀 말이라면 껌뻑 죽는 시늉이다. 말끝마다 “진옥씨가 불러서……”라고 한다. 진옥 씨가 자기에게 일시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은 태도이다.

원래 식사는 대웅전 공사 현장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요사채에서 했다. 그러나 하 사장이 공양주 보살에게 현장까지 점심을 날라다 줄 것을 부탁했다. 겨울이라 날이 짧아 그렇지 않아도 일할 시간이 적은데 점심 먹으러 오르락내리락 하니 일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 추운 데서 식사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로 그런 불만을 나타내는 이는 양씨 뿐이었다. 하 사장이 없는 곳에서 양씨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밥 먹는 시간이 을매나 된다구 밖에서 식은밥을 먹게 하누? 에이, 이번 일 끝나면 나는 일 그만할 께다.”

양씨는 50이 넘었다. 하 사장이 일을 들볶을 때 가장 괴로워하는 이가 양씨이다. 포를 조각하거나 끌 구멍 파는 데는 이력이 났지만 연목이나 인방 감을 메어 나르는 일에는 몹시 힘들어 한다. 무릎뼈를 다쳐 찬바람이 불면 시리다고 했다. 하사장이 일을 채근하는 눈빛을 보내거나 일을 채근하는 소리를 지를라 치면 양씨는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렇다고 하 사장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세화 김씨는 일꾼들 돈 떼어먹은 적 없고, 품값 주는 날 하루도 넘겨본 적이 없다는 면에서 하 사장이 성실한 사람이라고 칭찬하곤 했다. 물론 세화 김씨도 하 사장이 닦달하는 대상에서 비켜나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머뭇거리면 하 사장이 세화 김씨의 연장을 빼앗아서, 김씨 말대로라면 미친년 널뛰듯 지랄한다는 것이다.

사장이라고 하지만 하 사장도 함께 일하는 목수이다. 절 공사를 도급 맡아 일하므로 사장이라고 불린다. 하 사장은 입버릇처럼 퇴직금 이야기를 하곤 했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야 퇴직금이나 있지. 우리네야 퇴직금이 있나, 절 지어 돈 남으면 퇴직금 쪼로 작은 건물이라도 하나 마련해야 할 텐데, 이것 참 날은 춥지, 일 능률은 안 오르지, 이것 참.”

하사장의 말을 잡고 늘어지는 장씨와 그에 대한 하사장의 대거리는 우습지만은 않다.

“그래, 건물 살 만큼 돈을 거의 모았에요?”

“건물 살 돈 있으면 이 겨울에, 가족을 떠나서 이렇게 고생하겠소?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일해서 조금 모아 보려는 거지.”

하 사장은 장씨를 향해 눈을 치뜨고는 쏘아댄다.

“오늘 먹을 것만 있으문 돼요. 배추이파리는 낼모레 썩으니까.”

“돈이 썩는다면 사람들이 일하겠소? 너도나도 오늘 먹을 만큼만 일한다면 겨울엔 어쩔 거요? 굶어죽을 것 아뇨? 벌어놓은 것 없으니.”

“목수가 하루 일 하면 열흘은 먹는데 굶기야 하겠에요? 목수가 일 안 하면 아쉬운 건 사장들이겠지.”

“거 쓸데없는 말 그만 합시다.” 하고 하 사장은 대꾸를 피한다. 배추이파리 공화국(이것은 내가 장씨가 말하는 내용에 붙인 제목이다)을 이야기할 때의 장씨는 이 문제를 대단히 오랫동안, 그리고 열심히 생각해 본 사람과도 같다. 특히 화투판이 벌어질라치면 장씨는 배추이파리 공화국을 실현하려는 사람 같다.

저녁 식사 후 대개는 일찌감치 이불을 펴고 누워들 있다. 잠은 안 잘지라도 지친 몸을 쉬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화투판이 벌어진다. 대개 세화 김씨, 장씨, 나, 그리고 하 사장이 함께 한다. 하 사장은 내일 일을 설칠까봐 일꾼들이 밤늦게 자는 것도 꺼려하였다. 아니면 매일 화투판이 벌어졌을 것이다.

장씨는 화투판에서도 말끝마다 ‘배추이파리’이다. “배추이파리는 썩으세요. 웬만큼만 긁어가세요.”라거나, “배추이파리는 꼭 필요할 때만 좋은 것이세요.” 라는 식이다.

장씨가 돈을 따는 날이면 색다른 일이 벌어졌다. 하 사장은 일꾼들이 술을 먹는 것도 꺼렸다. 역시 내일 일을 설칠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씨는 하 사장의 그런 눈치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화투판이 끝나고 돈을 세어 보고는 장씨는 기세 있게 말한다.

“내가 이만큼 땄에요. 배추이파리 석장. 이걸 나 혼자 집어넣으면 배추 이파리가 썩어요. 술을 사오겠에요.”

그런 다음 예의 그 등산화를 신고는 산을 내려간다. 장씨는 술과 안주 등속을 사되, 과일이나 음료수, 과자 등속을 넣은 다른 꾸러미 하나를 더 만들어 온다. 그러고는 그것을 공양주 보살과 진옥 씨가 있는 방 안에 밀어넣어주곤 한다. 장씨와 진옥씨가 하는 이야기가 우리들이 자는 방까지 들려온다.

“공양주 보살은 잠들었어요. 저두 먹기 싫어요. 갖다 잡수세요.”

장씨는 막무가내로 들이미는 모양이다.

“우리는 술과 안주가 있에요. 두었다가……”

장씨는 우리 방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모두 장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숨 잠들어 있던 사람들까지 술 소리에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난다. 저녁 식사 후 시간도 적당히 지난 후라 술 한 잔은 그야말로 몸을 녹아나게 한다. 장씨가 돈을 따기를 바라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새삼스레 장씨의 배추이파리공화국을 되뇌며 잠드는 것이다. “배추이파리는 꼭 필요할 때에만 가치가 있에요.”

신정이 다가와 우리는 일을 며칠 쉬기로 했다. 우리가 쉬겠다고 한 것이기보다는 하 사장이 결정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나이 많은 축들은, 명절이란 구정이니 신정에는 일하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하 사장은 역시 일 능률을 먼저 생각한다.

“일이 안 돼요, 남들 쉴 때 일하면.”

일을 쉬기로 했다면 의당 일하던 사람들은 집으로 간다. 그러나 장씨는 마땅히 갈 데가 없는 눈치였다. 장씨를 제외하고 우리는 모두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두어 달 만에 집에 가는 것이요, 한꺼번에 받은 임금봉투도 두툼해 사람들은 흥에 겨워했다. 홀로 남게 된다는 생각 때문이라서 그런지, 장씨가 조금 쓸쓸해 보여 나는 말을 걸어본다.

“돈 받으니까 모두 기분들 좋아하네요. 이게 배추이파리라 한다면 사람들 기쁨이 줄어들지도 모르겠네.”

적어도 배추이파리를 화폐로 쓰자는 발상에 관해서만은 장씨 대답은 경탄스러울 정도이다.

“그 반대일지도 모르잖겠에요?. 배추이파리 한 보따리씩 갖구 가지만, 도중에 썩어버릴 테니까 나한테 한 주먹씩 나눠줄 것 아뇨, 술두 먹구, 진옥 씨 허구 맛있는 것 사먹으라구. 주는 사람 즐겁지, 받는 사람 기쁘지, 이형 생각과 같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에요?”

나는 웃으며 또 농쳐본다.

“그럼 진옥 씨 하고는 잘 되어가는 중이란 말예요? 아이구, 고목나무 꽃 필 일 생기네.”

장씨는 황망히 손 저으며 부정한다. 마치 나에게 달려들 기세이다.

“그런 게 아니라, 진옥 씨도 지금은 돈을 못 버는 처지이니 나누어 쓸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지, 내가 어떻게 진옥 씨와 잘 되어갈 수 있겠에요?”

며칠 집에서 쉬고 다시 덕암사로 왔을 때 장씨만이 덩그런 요사채를 지키고 있었다. 인기척이 있자, 진옥씨가 어디선가 나타나 잠깐 얼굴을 보이곤, 다시 어디론가 박혀버린 듯,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밤늦게 도착할 것이다. 장씨가 절에 남아 있는 것이 조금 의아했다. 하다못해 극장이라도 가거나 술 한잔 하러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무료히 요사채에 머물러 있을까.

저녁 준비를 할 때에야 무엇인가 느낌이 왔다. 일꾼들이 집에 가자 공양주 보살도 멀리 나들이한 터여서 식사 준비를 할 사람은 진옥 씨뿐이었던 것이다. 진옥 씨가 주방으로 들어가는 기척이 있자 장씨가 아주 익숙한 듯이 주방으로 갔다. 상을 내려 수저 등속을 준비하고 밥통을 열어 밥을 푼다. 진옥 씨가 한 일이란 국이며 찌개를 만든 것뿐이다. 마치 신혼부부가 다정스레 저녁을 준비하는 것 같은 정경이었다.

식사 후 장씨는 술 한잔 하자며 나를 이끌었다. 산길을 내려가면서 장씨가 말했다.

“이형이 하 사장과 일 한지는 얼마 안 되었다면서요?”

아마도 하 사장이 말을 한 모양이다.

일하겠다고 찾아온 내게 하 사장은 나의 목수 경력을 물었다. 목수들은 대개 함께 일하러 다니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목수가 일하겠다고 혼자 현장에 찾아오는 법은 드물다. 하 사장은 마땅히 물어볼 만하다.

나는 하 사장에게 사정을 말했다. 목수일 하기를 몇 년 쉬었다. 쉬는 동안 장사를 했다. 그러나 장사도 잘 안되어 다른 밥벌이를 찾아야 했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목수 일이었다. 함께 목수 일을 하던 옛 동패들을 찾아보니 모두 흩어져 있었다. 할 수 없이 나 홀로 떨어져 일거리를 찾아다니고 있다. 그러니 내게 일을 시켜다오.

나는 장씨에게 말했다.

“이럭 저럭 하 사장과 함께 일한 지 일년이네요.”

시내에 이르자 장씨는 앞장서 술집으로 들어갔다. 여러 종류의 술을 파는 집이었다. 장씨는 국산 양주를 시켰다. 나는 생맥주를 마시는 편이지만 장씨 주문을 막고 싶지도 않았다. 양주도 그 독특한 맛이 있지 않은가. 나는 계면쩍게 웃으며 말했다.

“간조했다는 말이지요, 비싼 양주를 산다는 게? 좋아요, 홀가분한 총각이 한번 써 보시오. 나는 다음에 생맥주를 사겠소.”

그는 소리나게 양주 한 잔을 마시고 말했다. 아니, 빨았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원래 나는 양주를 마십니다. 공사판 슬슬 따라다녀도 양주 마실 만큼 벌지 않겠에요? 머, 이렇게 사는 거지요.”

나는 그가 돈이 생기면 들로 산으로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를 생각해 내고는 말했다.

“양주 마시면 산에는 언제 갑니까? 돈 모아야 산에 가서 몇 달 살 것 아닙니까?”

“갈 형편이 되면 가지요. 산이나 들도 따뜻한 때라야지 지금 같은 겨울이야 어디 적당하겠에요? 지금은 들이나 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형과 술 한 잔 하자고 했에요.”

“어떤 이야기입니까?”

“이형 중매 해 봤에요?”

“아니요.”

“중매 한 번 해 보겠에요?”

“누구와 누구를?”

“나와 진옥 씨.”

“네?”

나는 비록 다리를 절지만 자태가 빼어난 진옥 씨를 떠올려 보았다. 답이 금방 나왔다. 속으로 조용히 머리를 흔들고는 술을 들이켰다.

“당사자끼리 부딪쳐 봐야 해결날 일 아닐까요? 데이트하자고 이야기해 보시지, 진옥 씨한테?”

“그렇잖아도 식사하러 나가자고 이야기 했더랬에요. 그런데……”

“진옥 씨가 거절합디까?”

장씨는 대답을 피했다. 그러고는 딴 말을 한다.

“진옥 씨가 이형을 좋게 생각하는 눈치였에요. 진옥씨가 그럽디다. 이형은 일 잘하는 목수라고. 또 노가다 티 내지 않고 젊잖은 사람이라고.”

“나를 좋아한다면 비참한 일이 생기지. 나는 결혼했는데. 이건 농담이고, 그래서 내가 말하면 진옥 씨가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거란 말이군요?”

나는 좀더 장씨의 개인사를 알고 싶어졌다. 묻고 들은 결과는 짐작했던 대로였다. 재산도 없다. 조실부모한 후로 형님 밑에서 컸다. 지금도 형님 집에서 얹혀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형님이 부자도 아니다. 독립해 볼 생각은 여태 하지 않고 살았다. 따라서 방 한 칸 얻을 돈도 없다. 공부도 많이 하지 않았다. 내가 장씨에게 말했다.

“장성한 조카들이 각자 제 밥벌이하는데 장씨 혼자 벌어 혼자 쓰기도 바쁘다면 형님이나 형수 눈총 받을 텐데?”

“내 이래 봬도 국수 뽑는 기술자였에요. 형님이 오랬동안 물국수 공장을 했었거든요. 형님댁에서 내가 쓸모 없는 인간은 아니었에요. 눈총 받을 일 없었에요.”

“그러나 지금은 결혼할 준비도 안 되었다는 게 문제지요. 공장을 했으면 형님이 장씨 월급도 챙겨 놓았어야 할 것 아니오?”

“월급을 따로 챙길 만한 공장이 아니었에요. 여러 식구 굶지 않고 먹고 사는 것으로 족했에요.”

“그러니까 형님 가족들을 위해 일했다? 좋아요, 장형이 배추이파리를 돈으로 쓰는 나라에서 사는 사람답게 살았다고 합시다. 그러나 지금 가정을 꾸릴 만 한 준비가 안되었으니, 진옥 씨 문제를 이야기할 처지는 아닌 것 같아요. 결혼할 준비만 되어 있다면 장형이 진옥 씨에게 직접 의중을 떠봐도 전혀 이상할 리 없죠. 그러나 지금 장형이 할 일은 청혼이 아닌 것 같네요. 하 사장 몇 년 착실히 따라다니면서 돈을 모으는 일 갖네요.”

장씨는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더이상 진옥 씨를 화제로 올리지 않고 술만 마셨다.

덕암사는 조금씩 형체를 갖추어 갔다. 양씨는 여전히 힘이 부쳐 보이되 견디어 나갔다. 장씨는 특별히 요령을 피우는 것은 아니지만 그 등산화가 항상 그를 방해했다. 하 사장은 장비를 쓰지 않고 순전히 사람 힘으로 절 구조를 짜 맞추어 나갔다. 대웅전 중심에 크고 긴 촉대를 세우고 도르래를 매달아 대들보와 서까래 등속을 끌어올려 지붕을 짜맞추는 식이다. 양씨는 하 사장이 없을라치면 항상 한마디 한다.

“크레인 불러 (대들보) 들어올리면 얼마나 편해? 몇 푼 아끼려고 사람을 이리 잡누? 에이, 이번 일 끝나면 나는 집으루 갈란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양씨를 비롯해 누구 하나 하 사장 앞에서는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덕암사 일을 마치면 북악사 종각을 짓기로 되어 있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각은 대웅전 짓는 것보다는 사람이 덜 필요하다. 목이 잘리지 않고 하 사장과 함께 일하려면 열심히, 말없이 일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덕암사 일을 마무리하면서 하 사장과 세화 김씨 둘만 소근거리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북악사에 가서 종각 지을 일을 계획하는 것이다. 누구누구를 데리고 갈 것인가를 의논할 것이다. 그들 둘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일일이 확인하고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화 김씨가 이야기했다.

“북악사 옹벽 거푸집 짤 때에도 이씨 혼자는 어려울 거라. 그러니까 장씨도 한몫 쓸 만할 거라요.”

하 사장이 나를 돌아다보며 말한다.

“이씨, 옹벽 거푸집쯤이야 혼자 할 수 있죠? 안영사 기단 거푸집도 이씨 혼자 잤는데, 뭘.”

내가 혼자 못 한다고 해서 장씨를 데리고 갈 하 사장이 아니다. 나는 그저 머리를 주억거릴 뿐이다. 그러자 하 사장은 김씨를 돌아보며 말한다.

“장씨를 데리고 간다 해도 옹벽 거푸집 짤 때만 필요할 뿐이잖소. 그러니까 장씨는 뺍시다.”

결국 장씨가 북악사 일에서 제외되었다. 장씨는 대단히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래서였을까, 장씨는 하나터면 사고날 뻔 했다. 밤새 서리가 내린 아침이었다. 장씨와 나는 대웅전 지붕에 올라갔다. 지붕 상판을 덮던 어제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장씨가 상판을 덮고 남은 재료를 밟고 미끄러졌다. 장씨는 미끄러지면서 허둥대다가 연목 끝에 박아놓은 발비를 잡고 나서야 간신히 미끄러지기를 멈추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장씨를 끌어 올렸다. 장씨는 간신히 지붕 위로 올라왔다. 장씨가 손이 거북스러운 듯한 몸짓을 했다. 나는 장씨의 장갑을 벗겨보았다. 장씨의 한 손가락 손톱이 벗겨져 있었다. 나는 그 손톱을 바로 펴고는 헝겊으로 싸매었다. 장씨는 내게 말했다.

“누구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맙시다. 말 나면 하사장 귀에 들어가고, 안전사고로 하 사장을 걱정시키면 들볶이는 것은 일꾼들이니.”

상량식날 밤에도 장씨는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그것은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덕암사 세면장은 작았다. 두 사람 간신히 씻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일을 마치고 얼굴과 손 발을 씻을라 치면 북새통이었다. 나는 혼잡을 피해서 저녁을 먹고 나서 세면장에 씻으러 가곤 했다. 그날도 느긋하게 혼자 씻고 있었다. 세면장에 들어와 작업복을 벗던 장씨의 주머니에서 무엇인가가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장씨가 갑자기 허둥대며 그것을 주어들고 안절 부절 못했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내가 안 것은 잠깐 후의 일이었다. 금반지였다!

상량식 하는 날 신도들은 대개 불전과 함께 몸에 지니고 있던 패물들을 단 앞에 꺼내 놓곤 했다. 패물들은 따로 추려서 대들보 한 쪽 홈에 넣어 봉해졌다. 나는 장씨를 뜨아 하게 바라보았다. 잠시 후 장씨가 말했다.

“이형, 죄송합니다. 모른 척 해 주세요.”

이윽고 덕암사 일을 마치는 날 일하던 사람 모두 시내에서 회식을 했다. 절로 돌아오기 전에 나는 장씨를 술집으로 이끌었다. 생맥주를 마시면서 장씨는 하 사장에 대한 불만을 자제했으나 쓸쓸함을 숨기지 않았다.

“덕암사에 같이 왔던 토목공사 패거리를 따라가지 않았던 것은 물론 공사 뒷마무리 작업과 요사채 일 때문이기도 했에요. 그러나 내 의중은 토목공사를 배우는 것보다는 절 일을 배우는 것이 좀더 품격이 있어 보였에요. 그런데 북악사 공사에는 데리고 가지 않겠다니 조금 챙피하네요.”

나는 할말이 없었다. 양씨는 세화 김씨와 처남 매부지간이다. 따라서 사람이 많다 해도 양씨를 집으로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또 목수들은 대개 하 사장과 오래 일한 사이이다. 따라서 장씨가 밀려나지 않았다면 내가 밀려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밀려나는 것이 일할 곳이 없다거나 돈 때문에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목수라고 간판 걸고 다니다가 일터에서 쫓겨난다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연장가방을 메고 다니는 것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생각해 온 터에 일 못해서 집으로 돌아간다면 체면이 말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만약 하 사장이 나를 자른다면 나는 가만히 잘리고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데리고 간다 해도 당신 손해 안 끼친다. 내 품값 내가 벌어먹을 수 있다. 사람 하나가 더 있으면 다른 사람들 일도 줄어들고 공사 기간도 그만큼 빨라질 것이 아니냐. 그러니 나도 데리고 가라.’ 그러나 내 코가 석자인 터에 장씨를 돌보아 줄 만한 여력이 내게는 없었다.

나는 장씨에게 앞으로의 거취를 물었다.

“스님이나 진옥 씨 모두 (내가) 마땅히 갈 곳이 없으면 절에 머물러도 된다고 하세요. 절 살림도 크니까 일할 사람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그러나 머, 내가 절에 있을 사람은 아니고……”

“여기 덕암사에서 겨울을 나는 것도 좋겠네요. 봄이 되면 어디 가서든 일 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웃으면서 장씨에게 말했다.

“그동안 진옥 씨하고 잘해 보세요.”

장씨는 헤벌쭉 웃으며 술을 들이켰다. 지금의 장씨 상황에서 진옥 씨를 보는 것만으로도 장씨에게는 희망이요 기쁜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북악사 공사 현장은 자동찻길에서 한참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자동찻길에서부터 지게로 일일이 연장이며 나무를 현장까지 져 날랐다. 그리고 기둥과 대들보 등은 목도를 해 날랐다. 좀처럼 불평을 하지 않는 세화 김씨가 지게를 지고 가다가 쉬면서 한마디 한다.

“장씨를 데리고 왔으면 얼마나 좋누? 이렇게 힘쓸 일이 많은데 꼭 필요한 사람만 데리고 와서는 사람 들볶는다니까. 저만 퇴직금 없나? 저만 빌딩 가져야 하나? 사람을 좀더 써서 우리 일을 덜어주면 어디가 덧나나?”

나는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어, 김씨에게 물었다.

“덕암사 상량할 때 주지가 돈 좀 안 놓았어요?”

“놓았겠지요.”

“누가 보관하고 있나요?”

“하 사장이 가졌겠지요.”

“그 돈 언제 나눠줄까?”

양씨가 내달아 말 했다.

“하 사장은 돈 안 나눠줘. 상량해 보아야 여태 맥주 한 잔 없었어.”

“상량 돈은 대개 나누 갖잖아요? 기와쟁이들 몫까지 나눠주는 법인데?”

김씨가 거들었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그거라요. 도대체 자기 뱃속만 생각하니, 이거 해 먹겠느냐고.”

북악사 일이 한창일 무렵 장씨 소식을 들었다. 북악사 주지가 모임을 갔다 와서 장씨 이야기를 했다. 덕암사 주지에게 들은 이야기라고 했다. 절 공사 후 뒷일이 많기도 하고 마땅히 갈 곳도 없어 보여 장씨를 덕암사에 있으라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지 며칠을 술에 취해 들어왔다. 그러더니 며칠 전 새벽녘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취해 쓰러져 장독처럼 몸이 굳어 있는 장씨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니 와 보라.

의사에 의하면, 온 몸에 동상을 입어 조금만 늦게 발견했더라면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는 것이다. 장씨를 병원에 옮긴 경찰이 덧붙이기를, 죽으려고 작정했는지 누워 있던 자리에 소주병이 여러 개 있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얹혀 살던 주제에 사고 쳤으니 절에서도 쫓겨나겠네. 이제 어디로 가누?”

“배추이파리만 찾더니 배추이파리도 필요 없는 나라에 갈 뻔했군.”

그러나 나를 비롯해서 우리 중 누구 하나 장씨를 문병 갈 만한 사람은 없었다. 공사판에서 만난 사람은 현장 일이 끝나면 인간 관계도 동시에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덕암사 사진을 볼 때마다 장씨에게서 들은 배추이파리 이야기는 생각해 볼수록 항상 새로운 느낌을 준다. 나는 만 원 짜리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뇌어 보았다.

“이것이 배추 이파리로 만들어졌다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