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삶·사회 연구 분과’ 12월 공개세미나 「니체와 20세기 초 한국 정신사-‘니체주의’와 ‘톨스토이주의’ 논쟁을 중심으로」(발표자: 김정현) [월례발표회•세미나]

‘근현대 삶·사회 연구 분과’ 12월 공개세미나

「니체와 20세기 초 한국 정신사-‘니체주의’와 ‘톨스토이주의’ 논쟁을 중심으로」 (발표자: 김정현)

 

근현대 삶·사회 연구 분과(한철연)

 

2020년 12월 28일 20시, 한철연 ‘근현대 삶·사회 연구 분과’는 원광대 철학과의 김정현 선생님을 초빙하여 특별 세미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날 발표 논문은 독일의 니체연구지

Nietzscheforschung』, Bd.23(2016)에 게재된 글로 한국에서 첫 니체 수용의 의미를 밝힌 것입니다. ‘개인’과 ‘개인적인 것’, ‘근대적 개인주의’의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저희 분과에서는 김정현 선생님의 연구가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논의된 내용들을 간략히 소개하며 뜻깊었던 자리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우선 논문에서 김정현 선생님은 왜 니체가 동아시아에서 문제가 되었는지를 물으며 니체 연구의 수용사가 20세기 한국의 시대적 문제의식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주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이어 본문을 통해 저자는 크게 두 개의 주제와 연관하여 논의를 발전시키고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동아시아 정신사에 자리 잡고 있는 니체의 위치를 점검하고 후반부에서는 니체주의와 톨스토이주의의 비교를 통해 한국의 니체 수용사의 구도를 고찰합니다.

일본지성계와 중국지성계의 상황을 비교하는 전자의 논의에서 흥미롭게 지적된 점은 일본에서의 니체 논의는 국가주의, 개인주의, 사회주의와 연결되었던 반면 중국에서의 니체 논의는 구습의 폐지, 신문화 창조, 민족주의의 담론으로 이어졌다는 부분이었습니다. 또한, 후자에서 다룬 서북학회의 니체 수용사는 이 시기의 지식인들이 사회진화론을 위시한 서구 인권사상, 민중 계몽의 사상 등을 확산시키면서 니체와 톨스토이의 사상을 대비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 주었는데, 두 사상가들이 다룬 개념들을 20세기 동아시아라고 하는 특수한 지형 속에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논의였습니다.

특히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언급된 ‘윤리 및 개인과 사회의 관계’ 부분은 1909년 <서북학회월보>를 통해 소개된 ‘애기(愛己)’와 ‘애타(愛他)’에 관한 필자불명의 두 편의 글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었는데, 김정현 선생님은 이 시기의 니체 연구가 동아시아 전반에 걸쳐 있었던 시대정신과 분리될 수 없음을 밝히면서 윤리적이고도 사회적인 개인의 발견과 근대성의 이해 문제가 대한제국의 자기인식이라는 숙제와 연관되어야 함을 지적했습니다.

3.1운동을 거쳐 1920년대 초반까지 진척되었던 한반도 사상계 속 개인과 사회, 국가에 대한 새로운 물음들은 톨스토이와 니체를 중심으로 한 대결적 구도 속에서 근대 인식의 지도를 구성하고 있었는데, 이 가운데 언급된 특징들이 일본이나 중국과도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날 분과원들을 비롯하여 동·서양 철학을 전공하는 30여 명 정도의 인원이 참석하였습니다. 모두 김정현 선생님과 열띤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졌고 수많은 흥미로운 발언들 속에서 저마다의 숙제를 담아갈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의미 있는 마무리가 된 것은 김재현 선생님이 동과서 출판사에서 근현대 한국 총서 시리즈로 출간된 양일모 선생님(팀)의 최근 연구서(들)을 소개하면서 발표자인 김정현 선생님이 앞서 언급한 필자불명의 글이 일본학자의 것임을 부연해주었다는 점입니다. 이날의 세미나는 참으로 21세기의 한국철학을 만들고 있는 ‘젊은’ 한국 철학자들의 만남이라 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즘 여기저기에서 동서양 연구의 만남에 대해 가치 운운하던데, 바로 오늘 같은 만남(20세기와 21세기를 횡단하고 동양과 서양의 연구가 교접하는 ‘across the sophia-phile’) 이상의 또 뭣이 중할 수 있겠습니까?


*flex: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분과 모임인 <근현대 삶·사회 연구 분과 세미나>는 2019년 5월 28일 첫 모임을 시작으로 매달 마지막 주 저녁 8시에 진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오후 4시경쯤 서교동에 있는 한철연 세미나실에서 모였으나, 팬데믹 이후 Zoom을 통해 저녁에 회합하고 있습니다. 요일은 그때그때 다르기에 관심 있는 분들은 미리 연락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현재 멤버는 김교빈(분과장), 김문용, 김재현, 김제란, 김홍경, 연효숙, 이종란, 이찬희, 이현구, 인현정, 황희경입니다. 참고로 저희 스터디의 aka가 ‘복덕방 스터디’로 알려졌는데 왜 이런 경이로운 소문이 퍼졌는지, 올해로 평균 연령 21세가 되는 멤버 모두가 갸우뚱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인보, 이기, 최남선, 신채호 등의 글들을 살펴왔고, 앞으로도 근현대 인물들의 삶과 철학을 폭넓은 관점과 주제로 공부할 예정입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0년 11월 월례발표회 영상 – “정동적 변화와 윤리적 존재화 – 순자철학을 중심으로”(유튜브링크) [월례발표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0년 11월 월례발표회 – “정동적 변화와 윤리적 존재화 – 순자철학을 중심으로” – 윤태양 회원 발표

 

링크: https://youtu.be/eS6II1sNO18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0년 11월 월례발표회

2020년 11월 26일에 줌(ZOOM)으로 진행한 월례발표회 영상입니다.

 

-일    시: 2020년 11월 26일 (목) 오후 4~6시

-주    제: 정동적 변화와 윤리적 존재화 – 순자철학을 중심으로

-발표자: 윤태양(건국대 모빌리티인문학연구원)

-토론자: 배기호(충북대 철학과)

 

“이 발표문은 윤리적 행위를 해낼 수 있는 존재가 되는 한 가능성으로 정동적 변화를 지목하고, 그것이 어떻게 이동성과 다양성이 만연해진 현대사회에 효과적인 제안이 될 수 있을지 탐구한다. 한국 학계에 있었던 ‘정동(情動, affect)’ 개념을 둘러싼 토론을 정리하고, 순자 성악설의 논리구조와 ‘정안례(情安禮)’를 중심으로 모빌리티 패러다임 안에서의 정동적 변화와 윤리적 존재화의 길을 모색한다.”

한철연 2020년 10월 월례발표회 영상 – “리인(利仁)과 안인(安仁) – 윤리적 태도와 이념에 관한 주자의 인식 고찰”(유튜브링크) [월례발표회]

2020년 10월 월례발표회 – “리인(利仁)과 안인(安仁) – 윤리적 태도와 이념에 관한 주자의 인식 고찰”

김나윤(중앙대) 발표 2020.10.22.

 

 

링크:  https://youtu.be/RdOJenOs3Io

사진: http://www.hanphil.or.kr/photo01/view.asp?Page=1&Board_Key=349

 

안녕하십니까? 한철연 학술1부입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0년 10월 월례발표회 줌(ZOOM)진행 영상입니다.

이번 월례발표회는 동양철학 전공자인 김나윤 선생님의 발표와 박영미 선생님의 토론으로 진행됩니다.

 

– 주 제 : 리인(利仁)과 안인(安仁) – 윤리적 태도와 이념에 관한 주자의 인식 고찰

– 발표자 : 김나윤(중앙대 철학과)

– 토론자 : 박영미(한양대 철학과)

– 일 시 : 2020년 10월 22일(목) 오후 4시 ~ 6시

– 오프라인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강의실

– 온라인 : 줌(ZOOM)

한철연 2020년 8월 월례발표회 영상 – “박세채 『범학전편』의 구성과 특징- 저술을 통한 조선 도통의 재구축”(유튜브링크) [월례발표회]

한철연 2020년 8월 월례발표회 영상 – “박세채 『범학전편』의 구성과 특징- 저술을 통한 조선 도통의 재구축”(유튜브링크) [월례발표회]

링크https://youtu.be/iPgwkp4YGcQ

 

 

한철연 학술1부입니다.

“‘지금, 우리’의 전통철학 – 유학의 현대적 연구”라는 주제로 동양철학 특집으로 2020년 하반기 월례발표회를 총 4회 진행합니다.

그 처음은 김정철 선생님의 지난 8월 발표로 시작합니다.

– 주 제 : 박세채 『범학전편』의 구성과 특징- 저술을 통한 조선 도통의 재구축
– 발표자 : 김정철(한국학중앙연구원)
– 토론자 : 조현웅(한국학중앙연구원)
– 사회자 : 박민철(한철연 학술1부장, 건국대)
– 일 시 : 2020년 8월 1일 오후 3시
– 장 소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강의실
– 방 식 : 비공개 방식(오프라인 촬영 및 영상 업로드)

한철연 2020년 5월 월례발표회 “슈티르너의 역사철학 – 인간의 삶과 인류 역사의 미래”(유튜브링크) [월례발표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0년 5월 월례발표회

 

 

한철연 학술1부입니다.

이번 2020년 5월 발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응으로 온라인 녹화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새롭게 시도되는 방식의 첫 번째 월례발표회는 건국대의 박종성 선생님과 경희대의 이병태 선생님께서 맡아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제목: 슈티르너의 역사철학 – 인간의 삶과 인류 역사의 미래

발표자 : 박종성(건국대 상허교양대학)

논평자 : 이병태(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일시: 2020년 5월 30일(토) 오후 4시 – 6시

장소 : 건국대학교

방식 : 비공개 방식(오프라인 촬영 및 영상 업로드)

 

BTS 예술혁명 강연 후기: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과 연결 짓기 ② [2019년 3월 월례회]

BTS 예술혁명 강연 후기: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과 연결 짓기 ②

 

한철연 회원 이상하

출처:https://image.aladin.co.kr/product/14212/80/cover500/k082532437_1.jpg

  • 지난 1부에 이어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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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아즈마는 글을 쓰면서 프랑스 현대철학 전공자답게 들뢰즈의 철학에 대해서도 의식하며 글을 쓰고 있다. 대표적으로 들뢰즈의 수목형이 아닌 뿌리-줄기 리좀 모델과는 다른 자신의 데이터베이스 소비 모델에 대해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표층적인 세계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 표층을 규정하고 있는 심층 즉 커다란 이야기가(거대 담론) 있다. 따라서 근대에서는 그 심층의 구조를 밝히는 것이 학문의 목적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포스트모던의 도래에 의해 그 트리형 세계상은 붕괴되어버렸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던의 세계는 어떠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가? 80년대 일본에서는 그 하나의 후보로 심층이 소멸하고 표층의 기호만이 다양하게 결합해가는 ‘리좀’이라는 모델이 많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포스트모던의 세계는 오히려 데이터베이스 모델(읽어내기 모델)로 파악하는 편이 더 이해하기 쉽다. 그 알기 쉬운 예가 인터넷이다. 거기에는 중심이 없다. 즉 모든 웹페이지를 규정하는 감춰진 커다란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리좀 모델과 같은 표층적 기호의 조합만으로 성립하는 세계도 아니다 오히려 인터넷에는 한편으로는 부호화된 정보의 집적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저의 읽어내기에 따라 만들어지는 개개의 웹 페이지가 있는 별종의 2층 구조가 있다. 이 2층 구조가 근대의 트리 모델과 크게 다른 것은 거기에서 표층에 나타난 겉모습(각각의 유저가 보는 페이지)을 결정하는 심급이 심층이 아니라 표층에, 즉 감춰진 정보 자체가 아니라 읽어내는 유저 쪽에 있다는 점이다. 포스트모던의 데이터베이스형 세계에서 표층은 심층만으로는 결정되지 않고 그 읽어내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

 

“필자의 생각으로 이러한 모델의 변화는 단순히 사회적으로 인터넷의 출현뿐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자기조직화나 인공생명, 신경망 등 90년대에 널리 주목받은 복잡계통 과학의 발상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 데이터베이스는 유저 측의 읽어내기에 의해 얼마든지 다른 표정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일단 ‘설정’에 손을 대기만 하면 소비자는 거기에서 원작과 다른 2차 창작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상황을 표층으로만 파악하면 오리지널 작품=원작이 무질서하게 시뮬라크르의 바다에 삼켜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우선 데이터베이스=설정이 있고 그 읽어내는 방식에 따라 원작도 가능하고 2차 창작도 가능한 현상이라고 파악하는 것이 옳다.” -아즈마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68-71쪽에서 인용.

 

즉 들뢰즈의 리좀 모델은 심층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표층들의 조합으로서 성립하지만, 아즈마의 데이터베이스 모델은 심층은 존재하지만 유저가 표층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며 ‘2차 창작’으로 얼마든지 다른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과 그 음악에 대해서 이걸 적용해보자면, 이지영은 들뢰즈의 리좀 개념을 빌려와서 팬덤 아미가 탈중심화해서 방탄과 결합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럼에도 방탄이라는 중심, 심층, 그리고 빅히트 기획사라는 공식official 설정이 부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국의 팬이 자신의 언어로 방탄의 음악을 번역하고 그 가사로 <뱁새>나 <불타오르네> 같은 노래를 부를 수는 있겠지만 그 팬이 자신이 원작이며 심층이라고 주장한다면 수많은 다른 아미 팬들이 한국어 원작이 엄연히 있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온갖 비판과 비추를 받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인 것이다. 만약 이런 소동이 크게 난다면 빅 히트 기획사 차원에서 법적 대응을 하고 공식 성명을 낼 것도 불보듯 뻔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심층 자체가 없는 들뢰즈의 리좀이 아니라 아즈마의 데이터베이스 모델이 이 포스트모던의 현실을 설명하는데 더 적확한 면이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BTS 예술혁명』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한국에는 ‘부친살해’의 구전설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분이었다. 오히려 ‘자식살해’ 즉 부모에게 효를 다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아비가 아프면 자식이 솥에 들어가서라도 효도를 실천해야 한다는 끔찍한 설화가 전국 각지에 퍼져있다는 사실이었다. 허나 이 부분에서 이지영은 또 방탄과 아미가 이러한 부친살해, 기존의 사회 시스템과 문화를 파괴하는 한국의 첫 사회 문화적 혁명의 사례인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서태지와 신해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90년대 한국에 일본문화가 개방되고 일본 만화와 음악이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시기에 유년기를 보낸 지금의 30대 이하 세대는 또다시 고개가 갸우뚱 해질 따름이다. 세계 판매 1위를 기록한 대표적인 작품인 드래곤볼의 손오공은 어릴 시절에 외계인임에도 자기를 키워준 할아버지 손오반을 죽였고, 자신의 형제이자 뿌리인 사이어인 라데츠가 외계에서 찾아와 지구를 멸망시키자고 하자 반기를 들며 형을 죽인다. 에반게리온은 아버지에게 버려진 주인공 신지가 부당한 아버지의 명령에 저항하고 적응하다가 결국은 부친을 죽이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원피스는 만화 내내 세계의 질서를 지키는 해군과 세계정부와 싸우며, 가장 자유로운 해적왕이 되기 위해 자신을 키워준 해군 할아버지마저도 공격하는 루피가 주인공이다. 부친살해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소녀용 취향이라 여겨지는 카드캡터 체리(사쿠라)도 알고 보면 옛날 크로우라는 마법사로가 만든 마법의 카드로 소동이 나고 체리가 크로우 카드를 대체해 새로운 카드의 주인이 되는 이야기다.

구전설화 같은 옛날이야기보다 TV영상 쪽이 훨씬 더 지금 2030 세대에게는 강렬한 이미지로서 기억에 박혀있고, 심지어 본인 같은 30대 세대 이후로는 옛날이야기도 할머니의 구전설화 같은 방식이 아니라 배추도사·무도사 같은 TV애니메이션을 통해서 효 사상에 대해 배워왔다. 어쩌면 이것이 한국에서 방탄소년단이 덜 새롭게 느껴지고 인기가 외국보다 상대적으로 덜한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이미 어릴 적 봐온 만화가 더 부친살해적 코드로 가득하다!

 

이지영은 방탄의 노래가사를 분석하고 설명하는데 들뢰즈의 소수자-생성 또는 소수자-되기라는 개념을 가져온다. 이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들자면 노동자로 태어나지 않은 자본가가 노동자의 입장에 서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들뢰즈는 주로 카프카의 문학을 비평하기 위해 이 개념을 사용한다. 허나 미국 시장에 아시아인으로써 ‘뱁새’같은 노래를 부르는 도전자의 입장일 때는 그러한 소수자 생성으로 방탄과 아미를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이지영 본인이 강연에서 말했듯이 세계 음반 판매량 1위를 달성하고 빌보드차트 1위를 달성한 슈퍼스타가 된 방탄소년단이 계속 그러한 소수자-되기를 계속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쩌면 사회에서 난민이나 퀴어 같이 극도로 소외받고 약한 소수자들이 볼 때는 하나의 기만, 강하게 표현하면 박완서의 소설 제목처럼 ‘도둑맞은 가난’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닐까?

일례로 나루토나 원피스 같은 소년만화는 점점 장기연재가 되고 길어질수록 만화 설정상의 구멍이 많아지고 독자들의 감정이입이 힘들어져 판매량도 떨어지는데, 다른 원인들도 있겠지만 이는 처음의 약하고 보잘 것 없던 주인공이 점점 세계관의 최강자에 가까워져서 ‘노력, 우정, 승리’라는 점프 만화의 주제가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것과 큰 연관이 있다. 10년이 넘는 장기방영 끝에 종영한 무한도전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평균이하 남자들이라는 루저의 정서로 시작하고 국민적인 팬덤이 생길만큼 큰 사랑을 받았지만, 그들은 이제 누가 봐도 사회의 승자들이고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도 루저 개그 등을 소화하기 버거워했다. 방탄소년단도 월드스타가 되면서 그와 같은 불안과 패배를 노래하는 승자의 딜레마를 겪을 텐데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어설픈 기만술로는 J.비버같은 다른 아이돌처럼 순식간에 대중의 외면을 받지 않을까?

후기를 끝내면서.

 

주유소 -벤야민 일방통행로 중에서 첫 글 주유소 전문.

 

삶을 구성하는 힘은 현재에는 확신보다는 사실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 한 번도, 그 어느 곳에서도 어떤 확신을 뒷받침한 적이 없었던 ‘사실’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진정한 문학적 활동을 위해 문학의 테두리 안에만 머물라는 요구를 할 수 없다. 그러한 요구야말로 문학적 활동이 생산적이지 못함을 보여주는 흔한 표현이다. 문학이 중요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오직 실천과 글쓰기가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괄적 지식을 자처하는 까다로운 책보다, 공동체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더 적합한 형식들, 예컨대 전단, 팸플릿, 잡지 기사, 포스터 등과 같은 형식들이 개발되어야 한다. 그와 같은 신속한 언어만이 순간 포착 능력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견해란 사회생활이라는 거대한 기구에서 윤활유와 같다. 우리가 할 일은 엔진에 다가가서 그 위에 윤활유를 쏟아 붓는 것이 아니다. 숨겨져 있는, 그러나 반드시 그 자리를 알아내야 할 대갈못과 이음새에 기름을 약간 뿌리는 것이다.

 

『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에서,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 서문에서 대중들이 마치 자신의 구원인 것처럼 자신의 예속을 원하며, 들뢰즈는 이것이야말로 정치철학의 근본 문제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방탄소년단 같은 대중적인 주제와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철학을 통해 둘 사이의 접점을 꾀한다는 저자의 시도는 의미 있는 이정표를 남긴다. 강연 중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대학교 강의에서 읽으라고 해도 읽지 않는 니체나 융 같은 고전을 방탄의 뮤비 해석에 필요하니 알아서 찾아 읽고 심지어 팬들끼리 모여서 공부하는 세미나를 여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웬만한 학문의 석·박사 전공자보다도 그 분야를 즐기면서 파고든 오덕이 더 깊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전공자와 비전공자 같은 이분법이 점차 해체되고 있는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앞서 들뢰즈가 말한 것처럼 더 이상 철학이 고루한 형식만을 고집하지 말고 더욱 새로운 방식으로, 벤야민이 일방통행로에서 주유소에 대해 말한 것처럼 사유에 윤활제를 뿌리는 새로운 글쓰기가 필요해지는 시대가 아닐까.

아즈마 히로키또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을 끝내는 마지막 말로 -뛰어난 작품에 대해 하이컬처다 서브컬처다, 성인용이다 어린이용이다, 예술이다 엔터테인먼트다 하는 구별없이 자유롭게 분석하고 자유롭게 비평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기 위해 이 책은 씌어졌다. 이 이후의 전개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에 맡기고 싶다.-로 마무리한다. 이 졸고에서는 줄곧 아즈마의 입장에서 이지영과 들뢰즈를 비판했지만, 이 맥락에서는 들뢰즈도 벤야민도 이지영도 아즈마도 이항대립을 비판하는 같은 입장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과 강연에 대해 처음 생각한 것 보다 좀 세게 비판을 쏟아낸 것 같다. 허나 그만큼 이지영 선생님의 저서와 강연에서 마주한 흥미로운 내용 덕분에 지속적으로 사유하게 되었고 많은 발상들이 떠오르는 기회를 맞이하게 되어 보잘 것 없는 역량이지만 이에 감응하여 촉발된 글이라고 봐주시면 감사할 따름이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들뢰즈의 시간-이미지와 이지영의 네트워크-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끝.

BTS 예술혁명 강연 후기: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과 연결 짓기 ① [2019년 3월 월례회]

[2019년 3월 한철연 월례발표 후기]

BTS 예술혁명 강연 후기: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과 연결 짓기 ①

 

한철연 회원 이상하

 

그림출처:https://image.aladin.co.kr/product/14212/80/cover500/k082532437_1.jpg

방탄소년단에 대한 강연(이지영)을 3월말에 한철연(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듣는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니 꽤 많은 반응들이 한결같았다. ‘걔들이 그런 책이 나올 정도로 대단해?’ ‘BTS 예술혁명(부제: 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이라는 강렬한 제목에 걸맞을 정도로 방탄의 실력과 명성이 대단한가? 그런 철학책은 비틀즈나 마이클 잭슨 정도의 세계적인 레전드에게나 헌사 되는 것 아닌가? 라는 의문일 것이다.

저자인 이지영 선생님이 책을 낸 작년 2018년은 이제 막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으로 뜨고 있다는 제목으로 한국 언론에 소개될 즈음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냥 해외에서 잘나가는 아이돌인가 보다 정도로 생각했었다. 작년에 총 음반 판매량 세계 1위를 달성하고 빌보드 1위를 찍은 후 한국에서 지명도가 작년보다는 높아졌지만 그래도 아직 국내에서 인기 체감이 다른 아이돌 그룹에 비해서는 미진하다. 아마도 한국 예능과 음악프로에 잘 나오지 않은 탓이 클 것이다. 트와이스 같은 경우엔 한국과 일본 방송에서 활동이 활발하기에 세계적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하지만 한국에서 존재감은 압도적이듯이 말이다.

물론 단순히 상업적으로 세계 1위라서 찬양한다면 한때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빌보드2위를 찍고 유튜브 조회 1위를 찍던 것과 별로 다르지 않고 굳이 철학적으로 비평하는 글이 나올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 이지영은 책과 강연에서 신자유주의적인 세계 질서 속에서 대다수 국가의 특히 청년들이 무한경쟁 청년실업 소외 등으로 힘겨워하고 있고, 다른 가수와는 달리 방탄소년단이 삶의 시련과 아픔 절망 두려움 등을 진정성 있는 자발성과 개성으로 팬덤인 아미(ARMY)와 ‘탈중심적으로’ 결합해서 음악을 표현하기에 BTS만의 음악적 탁월함을 성취했다고 말한다.

 

허나 이렇게 과연 방탄이 조상 없는 ‘기원’origin, 마치 처음으로 있는 현상이고 완전히 새로운 혁명처럼 이야기하는 부분에선 혹 팬심 때문에 대중음악의 계보에 대해 망각하신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한국으로만 봐도 서태지의 <교실이데아>·<울트라맨이야>, 신해철 넥스트의 <아 개한민국>, HOT의 <전사의 후예>·<아이야> 같이, BTS의 <뱁새>처럼 현실비판이 주 요소인, 아이돌과 아티스트의 경계를 해체하는 가수는 분명히 존재했고, 그들의 팬덤이 가수와 결합하여, 종종 가수라는 중심을 벗어나서 사회적인 힘을 발휘했다는 것도 부정하기 힘든 현실이 아닐까?

세계적으로 봐도 흑인인 마이클 잭슨이 <Black or White>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된 것, 비틀즈 존 레논의 <Imagine>같이 체제 비판적이고 대안, 희망을 노래한 것은 그들의 팬덤과 떨어뜨려놓고 가수 개개인들의 역량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일까? 심지어 저자도 『BTS 예술혁명』 23쪽에서 비틀즈와 소비에트 연합의 붕괴에 대한 논문을 이미 언급하고 있다. 다만 그들의 시대엔 스마트폰과 인터넷 인프라가 없거나 부족했고 지금의 시대엔 전 세계적으로 기술 보급이 되어있다는 것을 결정적 차이점으로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마치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손희정)’ 이후의 ‘넷페미’ 혹은 ‘영영페미’로 호칭되는 이들이, 자신들에겐 보고 배울 선배도 계보도 없고 자기들이 대한민국의 첫 페미니즘 세대라고, 역사의 시작점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이후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대한민국 넷페미史』 같은 논쟁적인 페미니즘 책이 나왔듯이 이 글에서 목표로 하는 것도 방탄소년단-아미에게도 계보가, 조상이 존재하며 그것은 흔히 덕후라 불리는 오타쿠, 아즈마 히로키(東浩紀)의 표현을 빌려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 아닐까 의문을 가져보는 것이다. 극단적이지만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에반게리온과 원피스-팬덤문화가 없었다면 방탄소년단-아미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BTS 예술혁명으로 돌아오면, 저자인 이지영은 방탄의 성공이 어떤 필연적 결과물이 아니라 방탄의 노래제목처럼 serendipity, 우연히 좋은 쪽으로 사건이 발생하고 전개되는 것이라 말한다. 또한 방탄과 팬덤 아미가 성공한 측면은 마케팅이 아니라 현재 세계 전체를 억압하고 있는 것들, 그 억압 아래에서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단절, 외로움은 어떤 것이고 사람들은 세상을 어떠한 방향으로 바꾸기를 욕망하는가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제기되어야 한다(『BTS 예술혁명』 17쪽)고 주장한다. 방탄의 팬들이 온라인에서 강력하게 연대하여 오프라인 현실 공간에 침투한 결과 영어 위주의 빌보드 차트에 한국어로 1위를 하는 등 기존 위계질서에 균열을 내었으며, 이러한 사회 문화적 변화에서 수목적 위계질서가 아닌 리좀Rizome, 계급이나 높낮이가 없는 뿌리-줄기적 혁명으로서의 정치적 함의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한국의 16-17년의 촛불혁명은 우리나라에 국한된 정치변화를 가져왔다면, 방탄소년단으로 인해 초래되고 있는 변화는 전 지구적인 규모의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변혁을 징후적으로 표현한다며 실로 방탄과 아미를 혁명을 초래하는 구원자처럼, 냉정한 비평과는 거리가 먼 기쁨에 찬 어조로 설명한다. 왜 이렇게 철학이나 비평과는 다른 글이 써지게 된 것일까? 단순히 팬심 때문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들뢰즈의 말을 참조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철학책을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글쓰기 방식으로 쓰는 것은 머지않아 곧 불가능해질 것이다. “아아, 고풍스런 스타일……” 철학의 새로운 표현수단의 탐구는 니체에 의해서 시작되었지만, 오늘날 그것은 연극과 영화와 같은 다른 예술의 혁신과도 제휴하여 속행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지금 즉시 철학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문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우리에게서 철학사는 회화에서 콜라주가 달성한 것과 비슷한 역할을 해야 한다.“

– 들뢰즈 차이와 반복 서문. 번역은 우노 구노이치의 『들뢰즈, 유동의 철학』에서 인용.

 

이지영은 강연에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한마디를 꼽자면 ‘수평성’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철학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논문이 아닌 대중서라는 형식과도 연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즉 들뢰즈가 말하는 것처럼 철학을 논문이라는 딱딱하고 엄밀한 글쓰기 형태로만 쓰는 것은 점점 불가능해지기에, 새로운 표현수단으로서 철학에 익숙하지 않은 방탄의 팬들도 읽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강연의 내용적으로 봐도 방탄과 아미가 수평적으로, 탈중심적으로 결합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탄소년단이 중심이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다만 그 가수라는 중심과 팬덤 아미 사이의 관계가 수직적이지 않은, 유동적인 중심이라는 것이 중요한 지점일 것이다.

가수와 관객은 더 이상 수직적 상하 관계가 아니라, 생비자Prosumer 라는 신조어처럼 관객은 끝없이 가수의 영상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며 새로운 편집을 하고 새로운 이미지의 네트워크를 생산해내는 소비자이다. 이러한 새로운 영상들의 배치를 이지영은 네트워크-이미지라고 이름 지으며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예술의 역할이라 할 수 있는 ‘공유 가치’를 제시한다고 말한다. 이전처럼 예술가가 생산한 작품을 수용자가 단순히 받아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예술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끝없이 가로질러지면서 네트워크와 작품의 경계가 유동적으로 변하는 예술 생산의 형식 속에서 예술가와 수용자가 함께 생산하고 실현해나가는 것이 바로 공유가치이다.(『BTS 예술혁명』 19쪽) 하지만 바로 이 대목에서 과연 이것이 방탄과 아미만의 새로운 예술 생산형식이라고 말할 수 있냐는 물음에는 ‘글쎄’ 하며 저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바로 오타쿠 한국말론 오덕, 만화나 게임 등의 서브컬쳐subculture에 대해 탐닉하며 2차 창작과 소비가 일상화되어있는 이들이다. 그리고 아즈마가 말하는 것처럼 오타쿠는 더 이상 일본만의 특수한 문화가 아니며 단순히 사회의 일부가 향유하는 소수집단만의 문화가 아니라고, 한국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이지영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입덕’ 같은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나 혼자 산다’같은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덕후, 오덕 출연자가 자주 등장하는데 덕후의 일상을 관찰 하는 게 최고의 시청률을 찍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오덕에겐 왠지 사회부적응자 같은 이미지와 고도소비사회의 문화에 적응한 얼리어답터 같은 양면적인 이미지가 여전히 씌워져 있으며, 이에 대해 아즈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반 권위적인 분위기가 강한 오타쿠들에게는 오타쿠적인 수법 이외의 것에 대한 불신감이 있으며, 오타쿠 이외의 사람이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를 환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현대사상 학술지로 논단에 나와 태생적으로 서브컬처의 세계와는 거리가 먼 필자는 이 점에서도 일부로부터 반발을 받아왔다. 즉, 간단하게 말하면 한편에는 애당초 오타쿠 따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다른 한편에는 오타쿠에 대해서는 특정 집단만이 이야기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는 입장을 취하기란 극히 어려웠던 것이다.

 

“이 책이 의도하는 바는 그 같은 기능부전을 회복하고 오타쿠계 문화에 대해, 그리고 나아가서는 일본의 현 문화상황 일반에 대해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분석하고 비평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우리 사회를 보다 잘 이해하는 것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아즈마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21쪽에서 인용

 

앨범을 계속 사는 적극적인 트와이스의 팬이나 방탄의 아미에게 쏟아지는 사회적 시선도 오덕에 대한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위에서 말했듯이 ‘입덕’ ‘덕통사고’같은 용어를 그들 팬덤에서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이어서 강하게 말하면, 방탄소년단과 아미 또한 이 오덕, 오타쿠 서브컬쳐 문화로부터 영향 받은 한 줄기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아즈마 히로키에 따르자면 일본이 선도하고 있는 서브컬쳐 오타쿠, 리오타르가 정의한 근대라는 거대 담론이 몰락한 ‘Postmodern’ 시대에 2차 창작이라는 데이터베이스적 소비를 하는,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문화야말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가장 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문화이다. 한국은 그걸 받아들인 영향으로 작곡가이자 빅히트 대표 방시혁이 방탄소년단을 탄생시켰고 ‘우연히’ 세렌디피티하게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방탄-아미의 탈중심화된 생산으로 대표적으로 거론하는 방탄의 노래 가사를 각국의 팬들이 협업해서 번역하고 유튜브에 자막으로 달아놓는 일은, 서브컬쳐계에선 유튜브가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부터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덕후라면 자연스레’하고 있던 일이였다. 대표적인 작품인 에반게리온과 원피스는 수십개 언어 버전으로 오프닝과 엔딩을 팬들이, 덕후들이 일일이 번역해서 광고도 달지 않은 채 유투브에 올리고, 저작권 문제가 생길 수 있는 티비판이나 극장판 애니매이션 영상도 각자가 번역해서 불법을 감수하고서라도 토렌트나 스트리밍 사이트등에 공유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전파했다는 각자의 ‘보람’ 정도 외에는 어떠한 보상도 인정도 존재하지 않지만 덕후들은 그것을 위해 생계를 이어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들이다. 또한 애니 영상을 자기 입맛대로 편집하거나 오프닝 노래를 자신이 다시 부른 영상은 도무지 셀 수가 없을 정도로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생산중이다. 이것이야말로 앞서 정의된 ‘공유가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원피스 덕후야말로 방탄-아미들의 문화적 조상이 아닐까?

 

물론 이는 나의 해석이며 지나치게 앞서간 것 아니냐며 고개를 젓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허나 아즈마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단순히 일본의 사례가 아니라 한국도 피해하기 어려운 정세적인 설명들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일본 오타쿠들이 미국에 패전했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의사 일본’(가상 일본)을 만들어내는 욕망을 표현한다는 부분이다.

 

즉 80년대 이후의 애니메이션을 ‘오타쿠적인 것’ ‘일본적인 것’이게 하는 특징은 실은 미국에서 수입된 기법을 변형하고 그 결과를 긍정적으로 재수용 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오타쿠적인 일본의 이미지는 이와 같이 2차 대전 후의 미국에 대한 압도적인 열세를 반전시켜 그 열세야말로 우세라고 주장하는 욕망에 뒷받침되어 등장한다. 그것은 분명히 라디오나 자동차, 카메라의 소형화에 대한 열정과 마찬가지로 고도경제성장기의 국가적인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 오쓰카가 주목한 2차 창작의 범람이나 <시끌별 녀석들>(란마와 이누야사의 작가 다카하시 루미코의 데뷔작)의 민속학적 세계 등 오타쿠계 문화의 ‘일본적’인 특징은 근대 이전의 일본에 소박하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같은 연속성을 괴멸시킨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미국주의(소비사회의 논리)에서 탄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70년대에 코믹 마켓을 패러디 만화로 가득 채웠던 욕망은 에도 시대의 정수라기보다 그 10년 전에 미국에서 팝아트를 낳은 욕망에 가까운 것이며, <시끌별 녀석들>의 작품세계 또한 결코 민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SF와 판타지의 상상력이 굴절된 곳에 일본적인 의장이 스며든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오타쿠계 문화의 근저에는 패전으로 인해 ‘좋았던 시절’의 일본이 망한 이후에 미국산 재료로 다시 의사적인 일본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복잡한 욕망이 숨어있는 셈이다.

 

“따라서 그 모습은 많은 일본인에게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품게 한다.”

-아즈마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34-36쪽에서 인용.

 

이를 읽으면서 평소에 오덕이라는 자의식이 아니더라도 만화에 관심이 있는 한국의 독자라면, 미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 일본과 한국, 아시아의 제국과 식민지였다는 현실의 역사에 대해 떠올리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흔히들 한국은 일본을 10년 정도 차이로 따라간다고 말하지 않는가. 이제는 일제강점기 시절 같은 격차는 분명히 좁혀져있지만, 그럼에도 만화부터 시작해서 사회적 관습이나 법 같은 분야까지 일본의 영향은 뿌리 깊게 드리워져 있다. 허나 일본의 패전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식민지 시절은 쉽게 말해서는 안 되는 일종의 사회적 금기로, ‘애국’ ‘반일’이라는 코드와 분리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남아있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아이돌 산업이 일본에서 유래, 더 정확히 말해서 모방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공연히 말해버리면 사회적 눈총을 받는 것이다. 마치 90년대에 인터넷을 뒤지다가 어린 시절 독수리 오형제가 사실은 한국인이 아니며 일본의 ‘과학닌자대 갓차맨’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말하게 되면 주변 친구들이 믿지 않거나 오히려 너 친일파지 라는 식으로 따돌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른바 K-POP이 국제적으로 성공하고 있다고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정부에서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이를 일본과는 다른 것으로 생각하고 싶어 하는 행태야말로 더 이상 식민지가 아닌, 패배와 굴종의 역사가 아닌 ‘의사 한국’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아닐까? 이런 이율배반적인 욕망에서 과연 완전히 자유로운 한국인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런 욕망의 계보를 제대로 분석함으로써 아즈마가 말하듯 이 사회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하고 변혁의 ‘뱁새’가 되는 것이 아닐까. 들뢰즈의 말처럼 ‘욕망은 혁명을 바라지 않는다. 욕망은 그 자체로 혁명적이다.’

1부 끝.

– 2부에서 이어집니다 –

[안내] 영화 <길> 공동체 상영 9월30일 토 3시

 

안녕하십니까? 한철연 학술 1부 입니다. 

9월에 한철연 공동체 영화 상영을 안내합니다.

한국 사회의 주요 적폐 중 하나가 사학 재단의 각종 비민주적 행태, 비리 문제입니다. 

우리 한철연 공동체 회원 다수가 대학 교육에 몸담고 있는 만큼 사학 재단 문제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이슈라 할 것입니다. 

이에 사학 민주화 투쟁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길>>을 상영하고자 합니다.

<<길>>은 오랜 세월 사학 재단의 횡포로 몸살을 알아온 상지대 40년 사학 민주화 투쟁사를 다룬 다큐입니다. 

한국 사학 재단이 안고 있는 각종 문제를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7월 지병으로 별세하신 故박종필 감독과 함께 이 영화를 만든 박주환 조감독과의 토론의 자리가 이어집니다. 

회원 여러분과 가족, 친구를 초대합니다. 

 

– 한국 철학 사상 연구회 2017년 9월 월례회 공지 

일시 : 9월 30일(토), 오후 3시

장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강의실 

내용: <<상지대 사학 민주화 투쟁 40년의 기록 – 길>> 상영 및 관람 후 박주환 조감독과의 토론

비용: 회원, 비회원 모두 3000원

(잘 아시다시피 한철연은 순수 학술 단체로 재정상 문제로 전액을 후원하지 못함을 양해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아래 언론 보도내용
………………………………………………………………..

<<상지대 사학민주화 투쟁 40년의 기록-길>>

비대위-`다큐인’ 제작 나서 
내달 서울 이대역서 시사회

【원주】원주 상지대 사학분쟁 민주화 운동이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된다.

상지대비상대책위원회는 다큐멘터리 제작집단 `다큐인’과 상지대 사학분쟁과 관련한 다큐 영화 `상지대 사학민주화 투쟁 40년의 기록-길’을 제작 중이라고 18일 밝혔다.

다큐 영화 길은 40년간 상지대 사학분쟁에 대한 눈물과 웃음이 교차하는 이야기를 상지대 구성원들의 인터뷰와 재연, 기록영상 등으로 그린다.

2002년 `장애인 이동권 투쟁 보고서-버스를 타자’를 연출했던 박종필씨가 프로듀서로 참가했고 뉴스타파 시사다큐멘터리 `목격자들’을 연출한 남태제씨가 연출을 맡았다.

텀블벅(Tumblbug) 인터넷 소셜 펀딩업체에서 3,000만원 후원을 목표로 한 달 동안 후원자를 모집했으며 지난 14일 최종 마감 결과 104% 초과 달성해 337명이 총 3,144만7,900원을 후원했다. 

영화는 내부시사를 통해 다음 달 12일 서울 이화여대역 앞 필름포럼 1관, 15일 오후 7시30분 원주영상미디어센터 모두극장에서 각각 시사회를 할 예정이다.

강원 일보- 김설영기자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오시는 길 : 2호선 합정역 2번출구, 도보10여분, 태복빌딩 3층

[안내]한철연 3월 <철학자의 서재 라이브> 안내

한국철학사상연구회 3월 <철학자의 서재 라이브> 안내

 

  “B급 철학자들과 함께하는 정치수다”

–  [B급 철학](알렙)의 필자들과 함께하는 난상 시국토론

 

 

1. 일시 및 장소 : 2017년 3월 25일(토) 오후2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세미나실

 

2. 토론 주제 : 2017년 대한민국의 정치를 논하다. 광장의 ‘정치’가 단순히 ‘통치’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또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촛불혁명(?)은 과연 진정한 변혁을 가져올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3. 진행방식 안내

– 처음 시도하는 편안한 파티 다과식 난상토론 : 생맥주 1잔, 간단한 안주와 다과.

– 단순한 책소개가 아니라, 책에서 논의된 주제들과 연관된 질문을 미리 선별해서 필자들과 공유 토론하고, 참석한 모든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유로운 토론의 장.

– 사회 및 진행 : 조은평(웹진 편집주간) / 이지영(학술1부장)

– 토론자 : [B급철학]의 필자 3인

  : 유현상(숭실대 강사), 한길석(가톨릭대강의교수), 박종성(호원대 강사)

 

– ※ 추신 : 토론회를 마치고 참여한 외부 회원분들 중 5명을 선정해서 [B급철학](알렙) 책을 선물로 드립니다.

 

* 본 토론회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학술1부와 웹진 (e)시대와 철학의 공동기획으로 진행합니다. 앞으로도 1년에 2회 정도 월례발표회 대신 <철학자의 서재 라이브>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기획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한철연 회원님과 독자님들 및 철학에 관심을 가지 모든 분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오시는 길 : 2호선 합정역 2번출구, 도보10여분, 태복빌딩 3층

 

[한철연] 10월 철학자의 서재 live 안내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선생님들과 독자님들께

안녕하십니까? 한철연 학술1부입니다.

10월 월례 발표회를 공지합니다. 10월은 철학자의 서재 live로 진행합니다.

진행은 버틀러의 저서 『혐오 발언』을 가지고 유민석 선생님이 하십니다.

“혐오와 혐오 발언”은 일베, 메갈리안 등의 활동이 촉발시키고 쟁점화되며 최근 한국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주제인만큼 회원 선생님들과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일시 : 10월 21일(금), 오후 6시

* 장소 : 한국철학사상 연구회

* 주제 : 버틀러의 『혐오 발언』 – “혐오 발언에 대한 대항은 가능한가”

* 진행 : 유민석 선생님(서울시립대)

 


<아래는 유민석 선생님이 보내주신 철학자의 서재 live 내용 개요입니다>

법학자들과 운동가들은 혐오 발언이 말하는 것 뿐 그것이 행하는 것에 근거하여 혐오 발언에 대한 금지를 종종 추구해왔다 (랭턴, 1993).
그들에 따르면 혐오 발언은 일종의 언어적인 따귀로, 표현의 자유의 보호를 받는 ‘그냥 말’이 아니며(매키넌),
수신자의 복부를 강타하고 종속적인 지위로 못박아 두거나(마츠다),
열등한 자로 서열을 매기고, 그들을 향한 차별을 정당화하며 사회적 약자들을 발언 불가능하도록 침묵시킨다(랭턴).

그러나 말은 의도된 대로 항상 행위하지 못한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주디스 버틀러는 잠재적으로 고통을 주는 말을 심문하고 수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말에 대한 금지가 아니라 말에 대한 반복에 위치시키면서 (1997)
“아무도 상처를 반복하지 않고서는 상처를 극복할 수 없다”(p.102)고 주장했다. (Eichhorn 2001)

『격분하기 쉬운 말Excitable speech』에서 버틀러는 포르노와 인종차별적 혐오 발언은 어떤 형태의 법적 제재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몇몇 페미니스트들과 반인종주의 이론가들을 비판한다.
버틀러가 인용하는 이론가들―레이 랭턴, 캐서린 매키넌, 그리고 마리 J. 마츠다―는 모두 발화의 규제에 대한 “평등equality” 논증의 어떤 형태를 제공한다.
즉 만일 말이 억압된 집단 구성원을 종속시키고, 주변화하거나 피해를 준다면, 말은 규제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J. L. 오스틴의 언어 행위 이론을 사용하면서 그리고 말의 열린 본성을 강조하면서, 버틀러는 이러한 논증들을 거부한다.
궁극적으로 버틀러는 그 같은 규제는 그렇지 않았다면 혐오 발언을 “재의미화resignigying”하고 “재상연restaging”함을 통해
이러한 말에 대한 도전을 불러일으켰을 자들을 침묵시키도록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혐오 발언에 대한 어떤 규제를 실행하는데 반대할 것을 조언한다. (Schwartzman 2002)

혐오 발언이란 무엇이며, 혐오 발화자는 누구일까?
혐오 발언에 대한 대항은 가능한가?
버틀러는 어째서 혐오 발언에 대한 발화수반행위론에 반대하며, 혐오 발언에 대한 국가 규제나 처벌을 반대하는가?
주디스 버틀러가 『혐오 발언 Excitable Speech』에서 개진한 발화효과행위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2016081619425923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오시는 길 : 2호선 합정역 2번출구, 도보10여분, 태복빌딩 3층

크기변환_한철연약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