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변증법 반성운동17-감각적 질로서 형식[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변증법 반성운동17-감각적 질로서 형식
1)
헤겔은 1편 3장에서 근거를 서술하면서 우선 근거에 관한 일반적인 개념을 서술하였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근거는 앞으로 전개되는 반성 규정 가운데 최초의 것이다. 근거는 근거지워진 것을 한편으로는 규정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근거지워진 것이 근거의 토대가 된다.
이 관계는 이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한편으로 양자는 각기 직접적인 것이어서 근거는 토대에 대해 외면적으로 관계할 뿐, 주관적인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근거는 자기 동일적인 것이지만, 이미 부정성의 자기 관계이므로 내적으로 토대를 내포하고 있으며 토대는 자기 부정적인 것이지만, 이는 곧 자기 관계하는 자기 동일성을 내포하니, 근거와 근거지워진 것은 이미 상호 함축하고 있다.
근거의 운동은 근거와 근거지워진 것 사이의 관계가 발전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양자는 직접적인 외적인 것이라는 관계를 넘어 상호 함축적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헤겔은 이 관계를 서문에 이어서 1절 절대적 근거에서 세 가지 관계를 통해 서술한다. 즉 형식과 본질, 형식과 질료, 형식과 내용의 관계이다.
이 관계는 제목 상 형식 즉 근거에 해당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근거지워진 것 즉 토대와 관련하여 본질, 질료, 내용으로 전개하니, 발전이 주로 여기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관계의 발전에서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오히려 형식이다. 형식의 의미가 변화하면서 그것에 대립하는 타자인 개체적 현존의 의미도 변화한다. 그에 따라 개체적 현존은 본질, 질료, 내용으로 재규정된다.
2)
이 세 가지 단계의 발전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헤겔이 존재론에서 1편 2장 현존 장에서 다루었던 내용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헤겔의 판단형식에 관한 설명을 보면, 존재론 질적 범주의 전개(1편 2장과 3장)는 질적 판단형식에 상응하는데, 본질론의 전개(1편 3장과 2편 전체)는 관계 판단형식에 상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질적 판단형식과 관계 판단형식은 술어에서 발전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반면 양적 판단형식과 양상 판단형식은 발전이 주어에서 일어난다.) 질적 판단형식에서 그 출발점은 긍정 판단형식에 대응하는 질의 범주다. 질은 유한성으로 나가고 대자 존재에 이른다. 대자 존재의 끝에서 부정 판단형식으로 이행한다. 본질론에서 관계 판단형식의 출발점은 근거이다. 이 근거는 유한한 근거로 나가고 무제약자로 이행한다. 이 무제약자에서 법칙으로 이행하면서 선언 판단형식으로 이행한다.
이런 상응 관계에 비추어 볼 때 근거를 다루면서 헤겔이 서술한 내용을 질적 판단에서 헤겔이 현존을 다루면서 서술한 것과 비교해 본다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3)
헤겔에서 처음 등장한 감각적인 질은 서로 무차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감각적 질은 쉼 없이 다른 것[Andersein]으로 바뀌어 나가는 명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감각적 질이 발전하면서 지각에서 나타나는 일반적 성질이 등장한다. 이런 이행은 경험이 발전하는 것에 따라 일어난다.
그러나 어떤 것은 하나의 일반적 성질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일반적 성질[Bestimmtheit]을 가지니, 이것들은 어떤 것[etwas, Realitaet] 속에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매체 속에 서로 공존한다. 그것들은 서로 분리되지도 서로 통일되지도 않은 상태로 존재한다. 헤겔은 그러므로 어떤 것은 그 자기 자신에서[an ihm selbst] 타자로 이행한다고 한다. 이들의 관계를 헤겔은 그 자체 존재[an sich sein] 과 대타 존재[Sein fuer anderes]의 관계로 설명했다.
여기서 경험이 더 발전하면, 어떤 것이 지닌 일반적 성질은 그것이 지닌 다른 일반적 성질과 결합해 있어서 그것은 서로 통일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서로 통일된 것은 이제 하나의 개별자를 형성한다. 여기서 개별자에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성질[속성] 즉 규정과 다만 몇몇 개별자에 속하는 상태[우연성]가 구분된다.
나아가서 하나의 개별자에는 두 가지 이상의 일반적 성질 즉 속성이 등장한다. 두 가지 성질이 서로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성질이 이미 그 자체에서, 본래[an sich] 타자로 이행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의 성질은 어떤 개별자의 고유성[형상]을 의미하는 것[Sollen]인 동시에 개별자의 고유성을 부정하는 한계[Grenze]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그런 개별자는 그런 성질의 관점에서 보면, 그 자체에서 한계를 지닌 것 곧 유한한 존재[Endliche]로 규정된다.
유한한 존재에서 개별자의 고유성으로 여겨진 하나의 형상은 관점에 따라서 선택된 주관적인 것임이 밝혀진다. 개별자의 진정한 본성은 오히려 이 다양한 속성들 사이의 관계 즉 법칙적 관계로 밝혀지면서 이 법칙적 관계를 매개하는 질적 무한자가 출현한다. 이것이 곧 대자존재다.
4)
이제 본질론에서 본질에서 근거와 근거지워진 것 즉 토대 사이에서도 유사한 관계가 펼쳐진다. 다만 앞에서는 하나의 성질과 다른 성질 사이의 관계 측면에서 전개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제 근거와 토대, 다시 말하자면 본질과 개체적 현존 사이에서 등장한다.
처음 개체는 곧 본질의 개체이다. 본질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체가 자기를 부정하고 다시 생산하는 과정에 존재한다. 이런 과정에서 개체를 개체로 규정하는 근거가 되는 본질은 이제 형식이 된다. 반면 본질이 생산하고 다시 자기로 되돌아가는 개체는 본질이 존립하는 토대[기체]가 된다. (헤겔은 이를 형식과 본질의 관계로 규정하는데, 여기서 ‘본질’은 개체적 현존으로서 본질을 의미한다.)
여기서 근거와 토대, 형식과 기체는 문법적으로 말하자면 문장의 술어와 주어의 관계가 된다. 예를 들자면, 앞에서도 거론했듯이 ‘이 (붉은) 꽃은 진달래다’라는 판단이다.
여기서 처음 형식은 개체가 지닌 우연성이다. 이는 감각적으로 인식되는 질이다. 이런 우연적 질은 개체를 개체로 규정하려 하지만, 곧바로 개체는 그것으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마치 감각적 질이 명멸하듯이 여기서 하나의 형식은 존재했다고 곧 사라지고 다른 형식이 출현하니, 그 형식은 개체적 현존에 대해 명멸하는 관계에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처음 생물의 세계에 들어가 보면 생물은 워낙 다양하기에 서로 어떤 공통성도 지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각각의 생명체는 각각의 생명체로 규정될 뿐이어서 우리는 그 앞에서 심지어 어지러운 현기증을 느낄 것이다. 밀림에 피어난 무수한 이름모를 꽃들을 보거나 바다에서 헤엄치는 한없이 다양한 물고기를 볼 때 우리는 찬탄할 뿐, 실상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한다.
5)
헤겔은 이런 감각적 질로서 형식이 개체적 현존과 외면적이지만, 이미 자체 내에서 상호작용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여기 본질론에서 다루어지는 감각적 질은 존재론에서 다루었던 단순한 물체가 아니라 이미 생명체의 종적인 개체*이기 때문이다.
주*) 개체가 여기서 종적 개체라는 점에서 헤겔은 형식이 감각적 질일 때, 형식과 개체적 현존의 관계를 형식과 본질의 관계로 규정한다. 여기서 본질은 본질 가운데 자기 부정성이라는 측면 즉 현존의 측면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이미 형식은 자기 부정성으로 동일성을 지니니 현존으로 넘어가며 현존은 동일한 것이지만, 부정의 부정을 내포하니, 형식으로 이행한다.
“자기 동일적인 부정적인 것[현존]과 자기와 동일적인 긍정적인 것[형식]은 하나의 동일성이다. 왜냐하면, 근거는 긍정적인 것의 동일성이거나 정립된 것의 자기 동일성[현존]이기도 하며 근거지워진 것은 정립된 것으로서 정립된 것이지만, 이런 자기 내로 반성하는 것은 근거의 동일성[형식]이기 때문이다.”(논리학, GW11, 294)
“형식은 그 고유한 동일성에서 본질을 가지며 이는 본질이 그 자신의 부정적 본성에서 절대적 형식을 갖는 것과 같다.”(논리학, GW11, 296)
그러나 이런 이행은 그 형식이 감각적 질에 한정될 경우, 마치 존재론에서 질적 규정이 명멸하듯이 여기서도 명멸하는데, 이는 단적인(또는 직접적인) 전도의 관계로 출현한다. 헤겔은 이런 전도의 관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서술한다.
우선 형식과 개체적 현존 사이에서 근거 관계가 전도된다. 한편으로 형식이 근거이고, 다른 한편 토대가 근거가 된다. 어느 편이 근거이고 어느 편이 근거지워진 것이든, 근거일 때 직접적 무차별하며, 근거지워질 때는 근거 관계 속에서 정립된다.
이하 인용 구절에서 헤겔은 형식이 한편으로는 ① 현존의 근거이며 무규정적인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② 현존에 의해 정립된 것이라는 규정을 갖는다고 한다.
“현존은 아직 다만 정립된 존재라는 의미를 가지므로 본질적으로 근거를 전제로 한다. ..직접적인 것[현존]은 차라리 정립된 것이고 근거는 정립된 것이 아닌 것이다.”(논리학, GW11, 294)
“따라서 본질이 근거로서 규정되는 것[Bestimmtheit]은 근거와 근거지워진 것으로 이중화된 규정이다. 이 규정은 처음에는 ① 본질[형식]을 근거로 삼아 정립된 것에 대립하는 본질이라고 규정되면서 정립되지 않은 것으로 존재한다. 두 번째로는 규정은 근거지워진 것, 직접적인 것인데[현존], 이는 그 자체로 대자적인 것이 아니라 ② 정립된 것으로서 정립된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정립된 것으로서 정립된 것은 마찬가지로 자기 동일하지만 부정성이 지닌 자기 동일성이다.”(논리학, GW11, 294)
6)
근거가 될 때는 어느 것이든 타자를 규정하지만, 근거지워질 때는 타자를 전제한다. 어느 것이든 타자를 규정하면서 자기를 존립(자립성)하게 하지만, 근거지워지면서 자기의 존립이 부정된다.
그러므로 개체적 현존도 이중적이다. 한편으로 현존은 직접 존립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근거에 의해 규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존립하는 것은 정립된 것이고 정립된 것은 존립한다.
그런 점에서 근거 관계는 ‘순수한 반성’과 ‘규정하는 반성’의 결합이다. 순수 반성에서 현존은 정립된 것일 뿐이며(본질과 무구별적 통일) 규정하는 반성에서는 현존은 자립적인 것인데(본질과 구별 속에서의 통일), 근거 관계에서 현존은 두 측면을 동시에 갖는다.
“따라서 이런 근거가 지닌 매개는 순수한 반성과 규정하는 반성의 통일이다. 그런 매개가 지닌 규정이나 정립되어 있음은 존립을 얻고 거꾸로 그런 규정의 존립은 정립된 것이다. 그런 규정이 존립한다는 것 자체가 정립된 것이거나 규정성을 갖기 때문에 따라서 그런 규정은 그 규정성의 단순한 동일성과 구별되며 본질에 대립해서 형식을 이룬다.”(논리학, GW11, 295)
이런 형식과 현존은 근거와 근거지워진 것이라는 근거 관계에서 끊임없이 상호 위치를 전도하는 유희를 전개한다. 헤겔은 이 유희를 ‘상호작용’이라는 말로 규정한다.
“이것이 형식과 본질의 절대적 상호 관계이어서 근거와 근거지워진 것의 이 단순한 통일[ 본질]은 그런 상호작용 속에서 그러나 바로 그 자체 규정되거나 부정적인 것이 되니, 토대로서 자신을 형식으로부터 구별하지만[무차별성], 동시에 형식의 근거나 계기로 된다.” (논리학, GW11, 296)
7)
이상에서 보았듯이 근거와 근거지워진 것의 전도와 더불어서 형식과 토대로서 본질은 각자 직접적인 것 존립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근거지워진 것, 정립된 것이 된다.
그런 이중성 때문에 이들은 한편으로는 각자 동시에 존립하고 무차별하며 바로 그 순간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연관된다. 이들을 연관의 측면에서 보면 서로 타자를 정립하고 이를 통해 자기를 존립하게 하고 동시에 그 순간 타자에 의해 정립되면서 이를 통해 타자를 존립하게 한다. 통일되는데, 이 통일성과 무차별성 역시 끊임없이 전도한다.
“그에 반해서 형식 규정은 본질의 표면에 있는 것으로서 규정이다. 본질은 그것들의 밑바닥에 있는 무규정적인 것으로 있으며 이 무규정적인 것은 자신의 규정에 대해 무차별하다는 규정 속에 있다. 반성규정은 그 규정 자체에서 존립을 가져야 하며 자립적이어야 한다고 가정된다. 그러나 반성규정이 자립적이라는 것은 반성규정이 해소된다는 것을 의미하니, 이 형식 규정은 타자에서 이런 해소를 갖는다. 그러나 그 해소 자체는 자기와의 동일성이거나 이 반성규정이 얻는 존립의 근거이다. ”(논리학, GW11, 295)
이런 형식과 본질의 관계에서 형식은 한편으로 형식이면서 곧바로 부정되며 토대 역시 한편으로 토대이면서 곧바로 부정된다.
① 형식의 몰락
“형식은 본질을 규정하지 않는다. 마치 형식은 진정으로 전제되어서 본질로부터 분리된 것처럼 말이다. 왜냐하면, 형식은 그렇게 하여 비본질적인, 끊임없이 몰락하는 반성규정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형식 자체는 오히려 자기를 지양하는 근거이거나 자신의 규정에 속하는 동일한 관계이다.“(논리학, GW11, 296)
“형식은 자기가 정립되는 가운데 지양되고 지양되어 있다는 데서 존립하게 되는 모순에 처해 있다.”(논리학, GW11, 296)
② 토대의 몰락
“규정하는 형식은 정립된 존재를 지양하는 것에 관계하며[토대를 부정] 이를 통해 형식은 하나의 자기 동일성에 대해 그것이 마치 타자인 것처럼 관계한다. 형식은 자신을 지양된 것으로 정립한다. 이를 통해 형식은 그 동일성[토대]을 전제로 한다.“(논리학, GW11, 297)
③ 양자의 상호 몰락
“반성규정이 자립적이라는 것은 반성 규정이 곧 해소된다는 것을 의미하니, 이 형식 규정은 타자에서 이런 해소를 갖는다. 그러나 그 해소 자체는 자기와의 동일성이거나 이 반성 규정이 얻는 존립의 근거이다.”(논리학, GW11, 295)
④ 형식과 토대의 구별과 통일
“본질과 형식의 이런 구별에서 외적 반성이 머물러 있곤 한다. 구별은 필연적이지만, 이 구별 자체는 그들의 통일이다. 마치 이 근본적 통일이 자기를 자기로부터 밀쳐내고[구별] 정립된 것으로 만드는 본질인 것과 같다.”(논리학, GW11, 2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