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47-시와 산문의 차이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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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미학산책47-시와 산문의 차이

 

1)

앞에서 말했듯이 헤겔은 문학[Lietrature]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포에지[Poesie: 시문학]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문학은 문자에서 나온 말이니, 문자를 사용하는 것을 모두 다루게 되며, 굉장히 포괄적인 말이다. 헤겔의 경우 시문학의 질료는 관념이지만, 단순히 관념을 질료로 한다고 해서 시문학 즉 포에지[Poesie]가 되는 것은 아니다.

헤겔은 시문학 즉 포에지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기존에 문학에 포함하는 많은 영역을 시문학에서 배제하고 산문의 영역에 집어넣는다. 예를 들어 문학 교과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플라톤의 대화편이나, 성경, 인도의 베다, 시저의 웅변, 그리스 로마 신화, 헤로도토스의 역사 등은 시문학에서 배제된다. 이런 산문은 문학에 속할지는 모르지만 시문학에 속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이런 영역을 문학에서 배제한다면, 문학의 영역이 너무 좁아지지 않을까? 그 보다 중요한 물음은 곧 그런 영역이 배제된다면 그 기준이 무엇일까 다시 말해 시문학의 종차, 정의는 무엇인지 하는 의문이다. 이것은 시와 산문의 구별과 관련된 물음이라고 하겠다.

 

2)

흔히 시문학과와 산문은 언어적 기호 즉 음소가 지닌 리듬(운률이나 압운 등)과 관련시킨다. 헤겔은 시문학에서 기호의 측면은 부차적인 요소로 간주하므로, 기호의 리듬이 시를 산문으로부터 구별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리듬이 없는 서사시를 시문학에 집어넣는 것만 보아도 리듬이 시문학의 종차는 아니다.

다음으로 시와 산문은 관념의 중류에 따라 구분되기도 한다. 시는 감각적 표상이나 구체적 이미지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추상적인 관념이 주를 이루는 산문과 구분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문 가운데서도 역사는 구체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사건을 서술하기도 하며, 웅변이나 설교는 감동을 끌어내기 위해 화려한 감각적 관념을 제시하기도 한다. 거꾸로 시문학에서도 조국애나 사랑, 진실과 정의 등과 같은 추상적 관념이 감각적 표상의 매개 없이 직접 표출되는 경우가 많으니, 이런 구분은 무용지물이라고 하겠다.

시문학 즉 포에지가 창조적 형상화라는 의미에서 시문학의 형상은 환상적인 것이며 반면 산문의 경우 그 형상화는 어디까지나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구분도 사실 엄밀하지 못하다. 포에지도 역사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현실적인 형상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서사시일 것이다. 거꾸로 철학이나 종교적 문학도 환상적인 경우가 많으니, 성경이나 플라톤 대화록이 그렇다고 하겠다.

 

3)

그렇다면 대체 헤겔은 시[시문학]와 산문을 어떻게 구분하는 것일까? 헤겔은 미학강의에서 시를 다루면서 시와 산문의 구분에 관하여, 상당히 길게 논의하고 있는데, 여기서 시와 산문의 구분은 정신의 이념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다. 헤겔은 시적 표현 방식이 지닌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해서 설명한다.

-먼저 시에서 감각적 관념은 이념과 관계하여 ‘유기적 총체성’의 관계에 있다. 즉 여기서 질료가 되는 감각적 관념은 이념을 통해 전체적으로 통일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자체 내 완결되어 있어야 하고 서로 조화하는 총체성이어야 한다. 이런 통일성은 물론 물질적인 인과적 통일성은 아니다. 그것은 합목적적인 통일성이니, 모든 개별적 관념은 최종적인 목적에 나름대로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로 개별적 감각 관념이 목적인 정신적 이념에 대해 단순히 수단적이고 외적인 관계만을 갖는다면 그것은 시문학에서 총체성은 아니다. 그런 외적 수단적 관계는 추상적 보편성에 지나지 않는다. 시문학에서 개별적 감각 관념은 독자적인 형상을 가지니, 그것은 표면적으로 본다면 이념과 무관한 자립적인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개별 감각 관념은 생생하게 구체적으로 현존하는 것이 된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 피어나는 꽃과 같은 모습을 지닌다.

-마지막으로 개별적 감각적 형상은 이념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야 하나, 그 연관은 필연적이지만, 구체적 관념의 독자성을 살리는 것이야 하므로 비밀스러운 것이어야 한다. 이런 필연성은 겉보기에 자유롭게 나타난다. 작가는 의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의도를 관철한다. 여기서 진행은 개별적인 감각적 관념을 즐기면서 가므로 느릴 수밖에 없으나, 어느 순간 그 속에서 필연성이 떠오르면서 사건은 급작스럽게 종말에 이르게 된다. 헤겔은 정신적 이념과 개별적 관념 사이의 이런 관계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특수한 부분이 독자성을 띤다. 이것은…. 통일성과 모순되는 양 보이지만 사실 이런 모순은 거짓된 외양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자립성은 개별 부분의 상호 절대적인 분리의 방식이 아니라 단지 상이한 측면이 자기 자신 때문에 독특한 생동성 속에서 묘사되고 고유하고도 자유로운 지반 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한에서만 타당하게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1]

 

시문학의 성립 조건은 즉 자유롭고 생동적인 관계인데 이 조건은 예술의 성립조건과 동일하다. 예술이란 본래 정신과 그 감각적 표현 사이에 자유롭고 생동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다른 예술 장르의 경우, 감각적 표현 수단은 그 자체 자립성을 지니므로, 정신의 통일적인 지배를 벗어나는 측면을 지닌다. 반면 시문학의 질료인 감각적 관념은 그 자체가 정신적인 것이니 감각적인 측면에서 자립성을 갖더라도, 정신적인 것이라는 측면에서 정신적인 것의 통일적 지배에 완전하게 복속할 수 있는 것이니, 가장 완전한 예술적 장르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문학은 예술 장르 전체를 대표하는 장르라 할 수 있다.

 

4)

이런 시문학에 반해서 다양한 산문은 이런 유기적 생동적 총체성을 결여 한다. 일상적 의식에 기초하는 산문은 개별적이고 우연적인 관념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며, 그 속에서 어떤 전체를 통일하는 정신적 이념을 발견하기 어렵다.

또 웅변이나 설교에서 나타나는 산문의 경우 구체적 표현은 자신이 전달하려는 의도에 대해 어떤 관계를 지닌다고 하더라도 이 관계는 외적인 수단적인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설득에 기여하는 것일 뿐이다. 여기에는 구체적 표현 자체가 지니는 독자성, 자유로움이 상실된다. 시문학이 구체적 표현을 향유한다면, 웅변이나 설교에서는 그런 향유가 없다.

사변적 철학은 유기적 총체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시문학과 가장 유사하지만, 이런 사변철학은 사유를 통해 필연적으로 전개되는 반면 시문학은 자립적인 감각적 관념 속에서 비밀스럽게 전개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시문학과 가장 혼동되기 쉬운 것이 역사적 산문이다. 역사는 정신적 의미가 전개되는 것이기에 유기적 총체성은 역사적 산문 속에서도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역사를 전개하는 구체적 사건은 창조될 수는 없으며 오직 발견될 수 있을 뿐이기에 역사는 엄밀하게 정신적 의미에 충실할 수는 없다. 반면 시문학에서 정신적 이념을 전개하는 구체적 관념은 작가가 환상적으로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니 정신적 이념의 전개에 충실하다.

이런 차이 때문에 시문학이 역사를 토대로 작성되는 경우(서사시, 송시, 극시 등) 이미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이 시적 의미와 어울리지 않아 시적 전개를 방해한다. 거꾸로 시가 사실을 창조하게 되면, 이미 알려진 역사적 사실과 충돌하면서 시적 감상을 방해하기도 한다.

 

5)

시문학이 이처럼 산문을 배제한다면, 시문학의 범위가 너무 좁혀지는 것이 아닐까? 헤겔이 이런 산문을 문학에서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술 즉 포에지에서 배제할 뿐이다. 과연 산문을 예술에서 배제하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

사실 웅변과 역사, 철학저서는 비록 그 속에 부분적으로는 예술적 측면이 존재하더라도 예술이라 하지 않더라도 쉽게 반발하기 힘들다. 여기서는 개별적 감각 관념은 어디까지나 추상적인 의도, 법칙, 관념에 수단으로 복종하는 것이 너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교 경전이나 신화나 전설, 영웅 이야기 등은 예술에서 배제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여기서는 좀 혼란스러운 측면이 있다. 고전 시대나 낭만 시대에 종교적 관념이 고전적 현상이나 낭만적 가상으로 표현되는 경우 그게 예술이라는 것은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고대 상징적 예술의 시대에는 종교와 예술은 서로 중첩되어 있다. 특히 종교적 관념이 감각적 물질로 표현되는 경우(건축이나 조각, 회화, 음악)는 물질적 차이 때문에 쉽게 구별되지만, 특히 종교적 관념[환상]을 시문학적 관념[상상, 이미지, 감각 관념]으로 표현되는 경우, 둘 다 관념이니 양자는 거의 서로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런 상징적 문학의 경우 그것은 종교적 표현일까 아니면 예술적 표현일까? 난감한 문제다.

이런 이중성 때문에 헤겔에서도 혼란이 나타난다. 헤겔은 예술 형식에서 고대 상징적 예술을 다루는 경우, 언어로 된 종교적 경전과 신화에서 많은 예들을 찾아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시문학을 다루는 경우에는 서사시로부터 시작하면서, 경전이나 신화 등을 배제하고 있다.

여기서 상징이 지닌 이중적 의미에 주목해 보면 어떨까? 한편으로 상징은 비밀스러운 연관을 지닌다. 이 경우 상징적 기호와 그것이 상징하는 것 사이의 단절이 눈에 띈다. 다른 한편으로 상징은 적어도 기호적 연관을 지닌다. 상징은 종교적 관념의 한 부분이거나 인접해 있는 알레고리이기 때문이다. 만일 상징을 비밀스러운 연관의 측면에서 본다면, 그 연관은 종교적이니, 종교적 표현에 가깝다. 반면 그 연관이 합리성을 띄면서 예술적 표현에 다가간다.

헤겔의 경우 상징적 예술은 종교의 수단이었으니, 상징 예술에서 경전과 신화를 다룬 것은 그 종교 측면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시문학이라는 예술 장르를 다루는 경우 예술 측면에서 판단하면서 경전과 신화를 배제한 것이 아닐까 한다.


[1] 미학강의 3권, 2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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