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48-시문학의 삼각형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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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미학산책48-시문학의 삼각형

 

1)

앞에서 다양한 예술 장르를 살펴보았는데, 각 장르를 규정하는 매체는 어느 경우에나 이중적이었다. 건축은 공간적 덩어리를 통해 정신을 표현하지만, 이 공간적 덩어리는 물질적 형상을 지니므로, 건축의 외적 형태도 정신을 표현하는 데서 간접적인 역할을 갖는다.

조각은 물질적 형상을 통해 정신을 표현한다. 그러나 이런 물질적 형상은 공간적 덩어리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니, 조각에서 공간적 덩어리는 물질적 형상의 이면이 된다.

회화에서 질료는 색채이다. 그러나 이 색채는 빛이 공간적 평면에 반사해서 출현하는 것이므로, 회화는 공간적 평면을 떠날 수 없다. 색채는 이 공간적 평면 위에서 정신을 표현한다.

음악의 질료는 소리이지만 이 소리가 주관의 시간적 평면에서 종합되지 않는 한, 대립하거나 조화할 수 없다. 음악은 이 시간적 평면이 실천적 감정의 차원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이처럼 모든 예술 장르에서 그 본질을 규정하는 질료는 각자 고유한 토대를 지니니, 엄밀하게 말하면 예술은 정신과 질료, 그리고 그 토대라는 삼각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이 점은 시문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시문학의 질료인 관념은 언어적 기호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여기서 관념과 언어적 기호의 연관이라는 어려운 언어철학적 문제가 제기된다. 하지만 이런 철학적 논의는 생략하자.[1] 헤겔의 경우 기호와 그것의 의미인 관념 사이의 관계는 우연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럼에도 기호와 그 관념 사이에는 비본질적인 관계가 없을 수 없다. 특히 기호가 소리로 이루어질 때, 소리가 지니는 다양한 리듬은 기호가 표현하는 관념과 무관할 수 없다. 어떻든 정신과 관념, 그리고 기호는 시문학의 세 가지 요소이다. 이를 우리는 시문학의 삼각형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2)

먼저 정신과 관념 사이의 관계를 보자. 시문학은 추상적인 정신을 구체적 감각적 관념을 통해 표현한다. 그러므로 시문학에서는 많은 비유법이 사용된다.

이 비유법에 관해서는 헤겔이 상징적 예술 형식을 다룰 때 상징적 예술의 마지막 형식으로 상세하게 설명했다. 우리로서는 문학적 기술[技術]에 속하는 비유법을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시적 표현의 특징으로서 비유법이 지니는 의미만 설명하자.

앞에서 설명했듯이 시문학이 정신을 표현하는 비유는 자립적이고 자유로운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은밀하게 정신을 표현할 뿐, 직접적 수단이 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시인이나 독자는 이 감각적 비유 자체에 머무르면서 그것을 음미하고 향유한다.

산문적 표현은 사태를 정확하고[Richterlichkeit] 규정적[Bestimmtheit]이며 이해 가능하게[Verstaend lichkeit]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니 이런 산문적 표현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문학에서 등장하는 비유는 불필요한 우회 또는 과잉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시문학은 비유를 벗어 던질 수 없으니, 시문학에서 비유의 목적은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려는 것도 아니고(그렇다면 그것은 시문학이 아니라 설득술이다), 화려하게 수식하기 위해서도 아니다(그렇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닌 장식술에 속할 것이다).

헤겔은 시문학이 비유를 사용하는 이유는 시문학이 예술인 한, 구체적 감각적인 것을 통해 정신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신을 표현하는 데 필요하지 않다면 비유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즉 정신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만을 비유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3)

이런 적절성은 그 시대 정신의 특징에 따라 변화하므로 사용되는 비유법도 시대성을 지닌다. 헤겔은 예를 들어 동양의 시문학에서 이미지가 화려하고 풍부한 직유법이 사용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동양의 정신이 추상적인 정신에 머무르고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상징적 이미지는 자립적인 것이니 직유를 통해 정신과 외적으로 연관시킬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런 감각적 상징은 아무리 표현해도 추상적 정신에 비추어서는 부족하니 무한히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상징의 시대에 모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물은 그 속에 정신이 현현하고 있으니 추상적 정신을 표현하는 상징은 도처에서 발견되고 무궁무진하게 널려 있다.

 

“동방의 시는 특히 이러한 이미지와 비유로 화려하게 가득 차 있는데, 까닭인즉 그 상징적 입장이 한편으로는 가까운 관계의 것을 필히 섭렵하여 의미의 보편성에 광범위한 구체적 유사 현상을 제공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직관의 숭고성 탓으로 의식이 찬양할 유일한 것으로 있는 일자의 장식에만 매우 다채롭고 다양한 찬란하기 그지 없는 것이 사용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2]

 

또한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게 되면, 은유가 비유법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정신의 무한한 주관성으로 회귀하므로, 정신을 표현하는 개별적 비유는 자립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를 지양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는 헤겔이 은유를 자기 부정적인 가상으로 파악한다는 점이 전제되어 있다. 낭만주의 시대 은유의 세계에서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이런 자기 부정성을 통해 서로 만난다는 사실이 시문학에 기지에 넘치는 생동적 활력을 불어넣는다.

 

“자신을 즐겨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낭만적 판타지는 이와 반대이니, 까닭인즉 여기서는 외물이 자신 안으로 물러간 주관성에 대해 하나의 부수물로 간주될 뿐 그에 적합한 현실성 자체로서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 멀리 떨어진 이 현상들의 은유적 사용은 자체가 목적이 된다. 감응은 중심점이 되고 그 풍부한 환경을 빛나게 하며, 그것을 자신에게 끌어들여 재기 넘치게 자신의 장식으로 사용하고 그것에 생명을 부여한다.”[3]

 

각 시대 마다 고유한 비유법이 있다는 헤겔의 주장은 후일 벤야민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벤야민은 박사 학위 논문에서 바로크 시대 비애극을 분석해 그 비애극의 기본 원리가 알레고리적 형식에 있다는 것을 밝혔다. 그는 이런 알레고리적 형식을 다시 바로크 시대의 이행기적 성격에서 찾았다. 이런 알레고리적 형식은 비단 예술에서만 출현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정신의 일반적 구조 속에 들어 있으니 벤야민은 그 시대 출현한 개신교의 특징 속에서도 그런 알레고리적 성격을 발견한다.

벤야민의 분석이 옳은가는 제쳐놓더라도 벤야민의 문제의식이 헤겔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헤겔 역시 직유와 은유를 역사적 시대와 연결시켰으니 말이다.

 

4)

이번에는 기호와 관념 사이의 관계를 보자. 이는 포에지의 측면이 아니라 시인적인 측면이다. 헤겔은 정신을 관념으로 표현하는 과정을 시적인 제작[Poetisch]으로 규정한다면, 이를 전달하기 위해 기호적 요소를 형성하는 것은 시인적인 것[dichterish]이라고 해서 구별한다.

시문학의 질료는 관념이고 언어는 전달을 위한 기호에 불과하다. 헤겔은 시문학에서 핵심은 포에지에 있으므로, 시문학은 굳이 낭독할 필요가 없으며 눈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가 전달되는 데 충분하다. 그것은 음악이 연주되지 않고 악보상으로 존재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과 정 반대가 된다. 악보를 읽으면서 즐기는 사람이 있을까?

시문학에서 부차적 요소에 불과한 기호를 시인은 전혀 무시할 수 없다. 기호적 요소는 간접적으로는 그 의미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기호인 소리와 그 의미인 관념 사이의 연관은 음악에서 음과 가사의 관계와 정반대가 된다.

음악에서 음의 전개는 그 자체로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뿐, 음악이 표현하려는 정신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관계를 가질 뿐이며, 그 때문에 정신을 더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표현하는 가사를 필요로 한다. 가사는 음악적 표현의 한계 내에 머물러야 하므로, 가능한 한 단순해 진다. 위대한 음악에서 사용된 가사는 의외로 단순하다.

반면 시문학에서 오히려 관념이 그것을 표현하는 기호를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의미를 강조할 경우, 그 의미와 연관된 기호를 강하게 발음한다.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는 말에서 어느 말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렇다고 기호적 요소가 전적으로 복종하는 것은 아니다. 소리라는 기호적 요소는 그 음악적 특성 때문에 감정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감정적 분위기는 시문학이 관념을 통해 표현하려는 정신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관계에 있지만 그럼에도 이런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데 주요하게 기여한다. 그것은 마치 영화 음악이 영화적 내용을 전개하는 데 기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기호의 형식적 측면을 포기하자는 주장에 반대한다. 오히려 위대한 시인 이런 외적 형식을 매개로 내적인 정신을 표현할 수 있고 이런 외적 형식이 내적 정신의 표현을 더욱 촉발한다는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헤겔은 레싱의 시도를 소개한다. 레싱은 운문적인 프랑스 희극에 반대하여, 산문적 어법을 도입하려 했다. 괴테와 실러도 처음에는 레싱의 주장에 동조하였으나, 나중에 모두 이런 시도를 포기했다고 한다. 레싱은 <현자 나탄>에서, 단장격으로 복귀했으며, 실러도 <돈 카를로스>에서 운율을 회복했고 그것은 괴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5)

헤겔은 시문학에서 기호적 요소가 지닌 특징을 상세하게 파악하는데, 이 자리에서는 그런 논의는 불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의 논의 가운데 핵심이 되는 것은 운율과 압운에 있다[4]는 점만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헤겔은 고대어는 운율이 중심이 되었으나 낭만주의 이후 압운이 중심이 된다고 한다. 운율은 음소의 장단과 강약 등 자연적인 발화에 기초한다. 자연어는 접두사나 접미사, 그 밖의 음운변화를 통해 운율을 발달시키는데, 고대의 시문학은 주로 이런 운율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격변화와 동사변화를 통해 어간이 여러 음향의 풍부한 음절로 발전되는데,… 그 수효와 확장을 통해 악센트가 즉각 어간음절로부터 실질적으로 분리되며, 이로써 주 의미와 강조의 악센트가 서로 분리되기 때문이다. … 이미 이를 통해 귀는 상이한 음절들의 음향을 듣게 되며, 또 그들의 운동[즉 운율]에 보조를 맞출 수 있다.”[5]

 

근대 게르만어에 이르면 시제 및 다양한 화법 조동사가 발달하여 음운변화를 대체하고 대명사가 분리되면서 동사변화, 격변화 등이 점차 소멸한 결과 압운법이 발달한다.

 

“이제 강조는 주 의미에 결속된 관계로, ..그 밖의 음절의 자연적 장단이 더 이상 부상하도록 두지 않고… 이러한 어근이…악센트를 거의 배타적으로 자신을 위해 요구한다면 이것은 의의와 의미를 철저히 우선시하는 악센트일뿐, 질료 즉 울림이 자유로울 법한 그리고 음절의 장단과 그 강세 두기가 어휘들의 관념 내용과 무관하게 주어질 법한 규정은 아니다.”[6]

 

압운은 동일한 음절이나 음소가 반복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압운적 요소는 자아가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헤겔은 게르만어에서 나타나는 압운을 해석하면서 이런 반복을 통해 자아가 드러나며 그 때문에 자아는 이런 반복 속에 만족을 얻는다고 설명한다. 자아가 개입한다는 것은 자아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런 성숙은 낭만주의 이후에 이르러 완성되므로, 중세 이후 언어에서 시문학은 주로 이런 압운에 기초한다고 말한다.

이 점과 연관해 한국어의 경우 압운은 배제되어 왔고 전체적으로 운율이 지배해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압운이 등장한 것은 1980년대 말 서태지의 가요가 등장하면서이다. 서태지는 랩을 한국어에 도입했는데, 그것은 깜짝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 이후 한국어에서 압운이 등장했다. 다만 여전히 시가 아닌 가요에서 한정된다. 이것도 헤겔처럼 1980년대 말 이후 한국사회에서 개인 자유가 확장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1] 관념은 기호와 무관한 것일까? 구조주의자에서는 기호 사이의 변별적 차이가 기호가 기호로서 사용되는 자격을 부여한다. 물론 그런 기호가 어떤 관념을 의미로 갖는가는 우연적이다. 반면 본질론적 언어학은 기호와 관념 사이의 본질적 연관성을 주장한다.

[2] 미학강의 3권, 282-283쪽

[3] 미학강의 3권, 283쪽

[4] 헤겔은 시문학에서 언어적 요소의 형식과 관련하여 다양한 요소를 제기한다. 그는 운율과 압운 외에도 표현법[Bezeichnung], 문채[Redefigur]와 문장 형성, 어투[Diktion]을 들고 있다. 이런 요소에 관한 상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관심 있는 사람은 헤겔의 미학강의 3건 287-291까지를 읽어보기 바란다. 이미 비유법에 관한 설명에서 보았듯이 헤겔의 설명은 개념적, 체계적이다.

[5] 미학강의 3권, 303쪽

[6] 미학강의 3권, 3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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