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의 행동학(?thologie)과 되기(devenir) 개념의 실천적 의미[2월 월례발표회]

?[2014년 2월 월례발표회]

 

들뢰즈의 행동학(?thologie)과 되기(devenir) 개념의 실천적 의미

 

발표: 김은주(동덕여대)
후기: 김범수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4년 2월 26일. 한철연에서는 <들뢰즈의 행동학과 되기 개념의 실천적 의미>라는 제목으로 김은주 선생의 논문 발표회가 진행되었다. 많은 인원이 참석하지 못해서 아쉽기도 한 자리였다. 그렇지만 이 주제는 지금 시대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되기 코스프레는 매우 훌륭하다.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은 약자를 보듬고 배려하는 상징처럼 간주된다. 이 코스프레와 함께 코드화된 폭력만 잘 활용하면 대통령도 될 수 있다. 물론 취임 1년 후에도 안정적인 지지율 50%도 가능하다.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 참으로 여성-되기 코스프레는 위대하다. 또한 이런 사건도 기억해 볼 수 있다. 어떤 여성은 어머니의 심정(엄마 코스프레?)으로 회사의 노동자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바로 여성의 힘이다! 이런 시대에 여성되기는 오히려 구조적 파시즘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런 코스프레가, 이런 어머니가 여성-되기일까? 여성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여성-되기라는 개념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나같이 평범한 사람에게 들뢰즈의 행동학, 특히 되기의 문제는 비판과 동시에 지지라는 양가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마음가짐과 문제의식으로 들뢰즈의 행동학을 해석하면서 여성되기의 가능성을 연구한 성과를 정리하는 김은주 선생님의 2월 발표는 무척이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배치부터 심상치 않았다. 2시간을 훌쩍 넘는 발표와 토론이었지만, 여기에는 모종의 지지와 비판이라는 이중주가 넘실거릴 수 있는 배치였다. 프랑스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성적 태도로 철학을 접근하는 사람들과 늘 대립각에 서야만 한다. 그리고 늘 한편에서 조용하게 혼잣말을 한다. ‘문제제기부터 잘못됐어!’ 발표자인 김은주 선생님(이하 발표자로 명한다.) 오른쪽에는 가따리 전공자가, 반대편 왼쪽에는 여성철학이지만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공부한 분이 앉았다. 이런 배치는 오묘한 이중주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임과 동시에 프랑스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긴장의 강도를 가늠하게 해준다.

발표자는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 설정부터 설명한다. “들뢰즈에게 있어서 윤리적 작업은 규범을 따르는 의무의 논리에서 벗어나, 힘을 실행하고 존재하는 방식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는 윤리적 논의를 ‘~해야만 하는 바’라는 형식적 보편타당성을 따르는 자율적 의무의 입각점에서가 아니라 존재 방식들을 새롭게 정의하고 가치의 문제를 새롭게 발견하는 비판과 구축의 작업으로 접근한다. 그의 입장은 도덕을 비판하는 니체를 계승하고, 존재의 역량(puissance)으로 설명하는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새롭게 해석하고 보다 구체화시킨 것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인간 중심주의에 의해 재단된 삶에 저항하며 새로운 존재론적 조건을 생성해내는 행동학의 정치적 함의를 이해할 수 있다.”

ⓒ 서영화

ⓒ 서영화

문제 설정부터 많은 설명을 요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발표에서는 니체의 선악비판보다는 스피노자의 윤리학, 특히 신체의 역량에 관한 문제에 집중해서 행동학의 의미를 접근했다. 발표 후 토론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신체의 의미부터 보충설명하고 싶다. 신체란 구체적으로 인간의 신체, 동물의 신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은 모두 신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들뢰즈의 제자인 일본 철학자 우노 구니이치는 corps(신체)라는 말이 한자 문화권에서 쓰는 體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근대에서는 신체에 대해서 심과 신의 이원론적 대립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스피노자나 니체의 경우에는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무의식이나 심층적 의식의 지위를 신체 개념에 포함시키기도 하고, 나아가 신체는 변이의 힘을 갖고 있는 바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발표자의 경우에는 이를 신체의 역량을 변용과 변용능력이라는 두 축에 따라 정의하면서 역량 강화의 윤리적 측면을 정리하였다. 이로부터 생성하는 되기의 개념을 힘들(초기 존재론에서는 강도로 설명한다)의 관계를 통해서 정립되고 설명되는 지평으로 나아간다.

발표자는 이런 정리를 한다. “신체를 규정하는 지점에서 보자면, 경도는 신체들 간의 관계를 제시하며 신체들의 결합과 합성을 의미하는 변용(affection)이다. 위도는 한 신체에 있어서 역량의 증가와 감소라는 강도적인 변화 상태와 그 정도를 보여주는 정동(affect)이다.” 그리고 이 정동은 새로운 신체를 구성하는 개체성, 즉 이것임(hecc?it?)으로 나타난다. 이것임은 원래 둔스 스코투스 학파가 존재들의 개체화를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한 haecceitas에서 유래한다. 들뢰즈의 경우 이 개념을 사건과 관련해서 사용하는데, 사건은 인칭적인 자아를 구성하지 않는 개체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것임은 정동을 통해서 신체를 조성하는 생산하는 되기 개념과 만나게 된다.

발표자는 되기(devenir)의 의미에서 신체 결합의 관계를 중심으로 해석한다. 즉 되기의 블록(bloc de devenir)으로서 둘 사이의 관계성으로 발전적 관점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는 개체화가 가능한 심층적인 접힘과 펼쳐짐을 해석할 수 있다. 발표자는 공진화(co-evolution)를 설명할 수 있는 이중 포획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되기 개념이 실재의 변화 ‘과정’이며 ‘상호 변용’의 결합으로 명쾌하게 정리했다. 이런 해석 안에는 신체의 역량 강화라는 일차적인 의미와 함께, 여기서 비롯되는 의지적 주체의 도덕을 비판하는 함의가 깔려 있었다.

이 설명 안에는 주체도 목적도 없는 되기가 마치 상대주의, 심지어는 허무주의적 색채로 가득하다는 비판의 날이 설 수 있다. 특히 되기가 어떤 당파성을 견지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 들뢰즈의 되기가 막연하게 신체적 역량 강화라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어쩔 수 없이 파시즘적 역량 강화의 측면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은 쉽게 던질 수 있는 비판의 내용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밝히기 위해서 발표자는 되기의 구체적 실천의미를 정리했다. 되기는 인간 중심주의에 의해 벗어나서 그 구분의 경계를 횡단하고, 다수의 권력 지점이라는 중심으로부터도 벗어나는 것이다. 말하자면 다수적인 것의 되기는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로부터 존재 방식에서는 자아 중심적 사고, 인간중심적 사고를 해체하고 도처에 사람들이 서로 만나면서 이루어지는 익명적 ‘아무개’로서 윤리 정치적 존재론의 의미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런 정치존재론은 자유로운 인간들의 합의체(합의라는 신체)로서 새로운 형태의 존재 조건들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과정인 것이다. 이로부터 이미 주어진 수동적인 역량, 혹은 이미 주어진 절대적 권력 앞에서 복종 대신에 도주와 새로운 창조를 가능케 하는 힘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되기의 과정이 들뢰즈와 가따리가 말하는 여성되기에 해당한다.

중국의 지식(인)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10월 월례발표회 후기]

?[2013년 10월 월례발표회]

 

중국의 지식(인)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발표: 조경란(연세대)
후기: 진보성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동북아시아에서 센카쿠 열도(중국명:댜오위다오) 분쟁에 이어 이어도를 중심으로 한중일 3국의 방공식별구역(ADIZ) 갈등이 연일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중재자로 개입하면서 동북아시아의 영토분쟁 문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첨예한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제3자의 일인마냥 이 문제를 좌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동북아 정세를 감안한다면 지난 10월에 있었던 월례발표회에서 장장 3시간 30분에 걸친 논의도 어찌 보면 부족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주제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발표와 토론이 진행된 발표회는 근래에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조경란 선생님이 들고 나온 문제의식은 단순 담론을 넘어 우리 주위 현실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이었다. 반드시 우리의 가장 가까운 미래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급변하는 동아시아에서 그 중심 자리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중국이다. 조경란 선생님의 이번 발표에는 현재 동북아시아의 정세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중국의 부상에 대해 학자적 양심에 의한 견제와 비판이 담겨 있다. 특히 정치경제적인 중국의 부흥에 편승해 우러러 박수만치는 친중화주의적 태도가 아니라 인문학적 분석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앞으로 책으로 출간될 이번 논의에서 제기하는 중요한 문제의식은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동아시아의 역사궤적에서 중국의 서양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 던지는 질문이다. 바로 근대성 얘기이며 서구의 근대성과 동아시아에서 근대란 과연 무엇이었는지의 문제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중국사회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 그리고 북경거리에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오와 마주보게 된 부활한 공자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번 월례발표회는 중점적인 이 문제들을 심도 있게 다루기 위한 전초적인 과정의 일환이기도 하다.

현재 중국 내부에서 중국을 보는 관점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중국의 경제성장 이후 양지에 주목하는 낙관론이다. 경제성장을 통한 중국인들 스스로 자신감의 소산이다. 또 하나는 비관론으로 중국의 현 상황을 비판적으로 보는 관점이다. 신좌파와 유교중국을 꿈꾸는 자들이 힘을 합해 세계문명으로써 바라마지 않는 제국주의를 경계하고 이런 모습에 거리를 둔다. 다시 말해 비관론자들은 세계를 지배해 왔던 유럽적 보편주의(근대성) 문제에 대해 중국이 새로운 보편으로서의 근대적 민주주의를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젝은 이런 중국을 두고 “눈물의 계곡을 거쳤다”고 했다. 중국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가는 국가들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중국의 국가능력은 이미 보통을 넘어섰다. 그러나 지금 중국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빈부의 차이와 화려한 도시에서 처참하게 죽어나가는 민공들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지금의 중국이 제대로 된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생각해보면 예전에 동양에서 능력(能)은 곧 덕(德)을 말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후진타오 전 국가 주석이 달성하자던 전면적 소강(小康)사회가 중국의 정치적 부흥과 경제적 성장만을 두고 말한 것이었다면, 또는 청중들이 이것을 염두하고 소강을 이해했다면 현대 중국에서 ‘인(仁)에 바탕을 둔 가족윤리’의 전면적이고 전방위적인 확장은 불가능하다. 그런 사회에서 ‘인(仁)’은 이미 사회의 최소단위에서 형성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부에서 보는 중국은 굴기에 대해 고무적이지만, 외부에서 보는 중국은 위중해 보인다는 것이다. 내부에서는 외부에서 보이는 것들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와 이제 중국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자기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지금 중국의 정치사회권의 분위기를 보자면 신좌파는 극우가 되어가고 있고 이 신좌파와 대륙 신유가의 관계는 서로 밀접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유학의 ‘화(和)’개념을 통해 뒤에서 유가의 등을 밀고 있지만 동시에 통제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들은 지난날 중국의 사회주의가 중국 내부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면서 지젝의 지적처럼 현재 중국 사회주의의 경제적 성공은 사회주의의 권위주의와 자본주의의 권위주의가 만나 결국 국가독점 자본주의를 형성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중국은 과거 유교의 ‘천하’개념을 통해 국가독점 자본주의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동아시아에 대한 수평적 인식을 포기한다. 아시아가 중국이고 중국이 곧 아시아인 것이다.

중국의 지식인들이 주장하는 중국모델론은 ‘문명-국가(civiliztion-state)’의 틀을 제시하는 것이라 볼 수 있고 이것이 중국 지식인들이 고민하는 핵심문제이다. 중국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위치에 있으면서 이른바 유교사회주의공화국을 주장하는 간양(甘陽)과 같은 사람은 ‘대중화문명-국가’ 개념을 제시하면서 이것이 21세기 중국 사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경란 선생님은 이 대목에서 중국 21세기의 핵심개념인 ‘문명-국가’의 논리가 과거 유교적 천하통치주의였던 ‘천하-문명’과 과연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한다. 만약 중국모델론이 그 내용에 있어서 인문학적 통찰에 근거한 합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모더니티와 민주주의를 보여줄 수 있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헤게모니에 의해 국가와 ‘공모’한 중국모델론은 결국 중국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표출할 수밖에 없다.

 

?박영미

 

마치 과거 중국 제국주의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듯하다. 그런데 과거 동아시아 역사에서 중국은 19세기 말 서양의 제국주의의 형태와는 다르게 당시 조공제를 통해 어느 정도 평화적 체제를 유지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왕후이(汪暉)는 자신의 분석을 통해 이 조공체제를 재구성하여 현대에도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혹시 중화문명으로서 중국이 편제한 동아시아의 문명은 서구의 문명과는 다르기 때문에 과거 동아시아에서는 서구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이것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마치 B급 중화반점식 짬뽕논리와 같은 막무가내 낙관론은 아닐까? 조경란 선생님은 이런 입장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역으로 서구도 중국과 같은 배경이었다면 국가 관계에 조공제를 썼을 것이고, 이 조공제라는 것 자체가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었다고는 하지만 상호필요에 의해 위선을 전제한 서로의 주고받기의 평화 유지 방법이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논의들을 살펴보면 우리는 중국의 사회주의가 서구를 극복한 대안체제였는가? 라는 질문에 바로 ‘Yes’라고 대답할 수만은 없는 중요한 지점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사회주의는 서구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나타났다고 할 수 있지만 결국 중국 사회주의도 근대성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현재 중국의 상황이 독립적인 지식인들의 윤리적 공동체가 만들어지기 쉽지 않고, 사회 안에서 일정한 공론장도 형성되기 어렵다고 본다. 다른 나라보다 오히려 국가와 자본의 지배가 강력하며 국방비 지출 보다 국가 통제 시스템을 위한 지출이 더 많다는 사실이 이것을 잘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지식인이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은 중국의 정치경제적 신장에만 기대하여 교류를 위해 중국의 긍정적인 면만을 보고 접근하면서 중국 내부의 문제나 중국과 우리 사이의 문제적 상황에 대해서는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새로운 소중화주의 아닌가.

실패한 서구의 극복 차원에서, 또는 서구의 대안으로써 근래 사람들은 중국을 주목한다. 이런 관심은 서방 중심의 세상은 이제 종결되었다는 전제 아래, 중국은 기존의 것들과는 뭔가 다르며 유럽적 보편주의와 미국적 보편의 가치를 뛰어넘은 새로운 보편을 제시할 수 있다는 기대에 기인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서구의 좌파들이 중국의 좌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결국 중국의 모순적인 현 상황을 눈감고 지나갈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한국에서 중국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마찬가지 상황일 것이다. 조경란 선생님의 언급처럼 보편성은 가치로써 존재하는 것이고 현실을 견인해 내는 것이지만 보편적 보편주의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 아닌가. 서양좌파들이 중국의 좌파들에게 기대하는 것 자체가 근거가 없다. 자기들의 사회와 체제는 문제제기하고 비판하면서 그 연장선상에서 중국에는 희망을 건다. 어떻게 중국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보이지 않을까? 이들은 세계 중심의 힘이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보는 것 같다. 그들은 이를 문명의 전환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런 문명론은 매우 허구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보편주의라고 불렀던 서구식 지식구조가 동서양의 패권구도, 현실사회의 강약구도에서 불평등을 은폐할 뿐 아니라 양극화를 조장하고 유지해오는 데 어떤 작용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와 함께 현 중국 자본주의가 ‘괴물자본주의’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현실에서 중국 내부의 ‘민족-국가’ 지배체제와 자본의 이중지배, 그리고 그 아래에서 어느 때보다 주변화 되고 있는 민(民)과 이(夷)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발표문 중에서 –

중국이 향후 50년 동안 어떤 새로운 대안적인 틀로써 ‘보편적 보편주의’를 제시할 수 있을지의 문제는 사실 어느 정도 지켜봐야할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 논의한 내용들을 통해 현 동북아시아 정세를 두고 본다면 그다지 긍정적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중국의 미래를 둘러싼 이해방식은 곧 한국의 미래에 대한 이해방식과 연결될 수 있다. 이것은 중국연구자로써 조경란 선생님 자신도 말한바 ‘또 하나의 도전’인 셈이다. 이 도전이 어떻게 진행될 지도 우리로써는 관심 있게 지켜볼만하다. 이번 발표회에서 논의된 내용들의 흥미진진함은 앞으로 출간될 책에서 더욱 풍부한 식견과 내용을 기대하기에 충분하다.

들뢰즈의 반복과 영원회귀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12> 들뢰즈

 

들뢰즈의 반복과 영원회귀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들뢰즈

 

강사 :김범수(숭실대 외래교수)
후기 :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80년대 마르크스 수용에서 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의 변화와 현대 철학

마르크스의 『자본』은 혁명의 시대였던 80년대 중반에 한국에 들어온다. 당시 대학생들은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었고 그 실천을 모색했었다. 그런데 동구권의 몰락이 시작된 89년 이후 90년대 초반에 이런 분위기는 깨진다. 동구권의 몰락은 당시 사회주의적 기조의 지식인은 물론 지성사 전반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르크스를 대체할 사람을 찾기 시작한다. 그 대안이 처음에 하버마스와 푸코, 알튀세르 등이었다. 이어서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이 일어났고 현재는 프랑스 철학이 현대철학을 대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90년대 알튀세르와 푸코가 등장하면서부터 사람들은 혼란스러워졌다. 이른바 과도기라고 할 수 있는데, 과거 이데올로기와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모습을 보여준다. 학계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이 불지만 한국 사회현상은 이걸 못 쫓아갔다. 그래서 한국의 학자들은 첨단 현대철학의 본령이라 부르는 프랑스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포스토모더니즘이라는 말은 프랑스에서는 1930~40년대에 사용된 말이었다. 당시 한국은 서양의 첨단 학문을 미국을 통해서 들여오다 보니 미국에서 쓰는 말 그대로를 들여왔던 거다.

▲ gilles deleuze

그럼 우리의 이상적인 모습을 담은 이른바 미래학자는 누가 있을까? 찾아봐도 없었다. 여기에 있어서 우리는 지금도 헤어 나오지 못한다.

2000년대 들어와서 라캉 이후에 학계 전반에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가 유행하게 된다. 우리의 지성사에서 우리는 프랑스 철학자들을 보면서 도대체 주체가 누군가라는 것을 따지곤 한다. 이 주체는 독일적 관점에서는 선험적 자아로서의 주체로 볼 수도 있겠으나 궁극적으로는 사회변혁의 주체이다. 프랑스에서도 따지는 부분이 이거다. 그런데 들뢰즈는 주체가 없다. 그럼 우리는 들뢰즈를 어떻게 봐야할까?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의 마지막 강좌 열두 번째 시간에는 들뢰즈의 철학을 만났다. 특히 이번 강의에서는 니체와 관련된 들뢰즈를 보기로 했다.
 
들뢰즈의 철학사

들뢰즈는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출생했다. 당시는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던 시기였는데 어린 들뢰즈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던 그의 형이 포로수용소로 가는 길에 불행하게도 총살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그의 삶의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 총살 사건이 있던 곳에서는 프랑스에서 유명한 수리철학자들이 있었는데, 카바이예스와 로트망과 같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쟁의 와중에 그는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고 나중에 소르본느에서 철학을 공부한다. 이 역시 매우 특이한 이력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거의 유일하게 고등사범학교 출신이 아닌 사람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1948년에는 철학 교수자격시험 아그레가시옹을 통과하게 된다. 이후 들뢰즈는 1956년도에 베르그송(Bergson, 1859~1941)에 관한 논문을 쓴다. 그리고 60년대 중반까지 철학사를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한다.

들뢰즈의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던 철학자는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스피노자(Spinoza, 1632~1677), 베르그송(Bergson, 1859~1941)을 들 수 있다. 들뢰즈가 보기에는 이 세 사람은 공통점이 있었고 이 공통점이 들뢰즈 사상의 핵심이 된다. 여기서 김범수 교수는 들뢰즈의 철학에 기반한 철학사의 구분은 1930년대와 그 대척점에서 1960년대 이후의 두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고 한다.

김범수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1930년대는 문화적인 충격과 과도기의 상황을 가진 시대였다. 이 시대에 프랑스 철학계에서는 어떤 일이 생겼는가? 프랑스 철학계는 1930년대부터 60년까지 ‘3H’의 시대로 요약된다. ‘3H’란 헤겔(Hegel), 후설(Husserl), 하이데거(Heidegger)를 말한다. 이 시기는 나치가 집권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왜 헤겔인가? 프랑스 내에서 이때까지 헤겔 번역이 안 되었다. 20년대와 30년대는 헤겔 번역본이 없었다. 프랑스는 1930년대까지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번역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실존철학과 함께 헤겔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행사되었던 시기이다. 이때 코제브(Alexandre Kojeve, 1902~1968)의 강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제브는 헤겔을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중심으로 소개하면서, 이를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게 했다.”

반면 60년대에는 실존주의 현상학과 대립되는 방향으로 니체와 노골적으로 변형된 마르크스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60년대 이후는 프랑스에서는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을 새롭게 해석하는 견해가 형성되면서 구조주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대표적인 학자는 라캉과 알튀세르 등이 있다. 그리고 ‘3H’의 대척점에 있는 철학자로 메를로-퐁티와 사르트르를 들 수 있다.

들뢰즈에 영향을 준 철학자들 :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

30~60년대 : 헤겔, 후설, 하이데거 ↔ 60년대 이후 : 미를로-퐁티, 사르트르

들뢰즈에 영향을 준 철학자 :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

들뢰즈는 스스로 베르그송주의자임을 밝힌다.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초월성 비판이다. 아울러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 이 세 사람은 초월성에 대해 비판하는데, 초월은 우리의 경험을 넘어서고 ‘이념(이데아)’을 넘어선 것이다. 이들은 도덕적 ‘선(善)’의 개념을 넘어서고 비판했다.

서양철학에서 문제가 되는 점은 확실한 무엇인가를 찾다 보니까 결국 신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헤겔은 ‘절대정신의 자기전개’를 얘기했는데 절대정신은 결국 신으로 귀결된다. 여기에 선한 개념을 더 붙여서 ‘세계정신’, ‘신의 정신’이 발현된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을 향해 가는 것이 바로 헤겔 철학의 일면이다. 여기에 대해 비판한 사람이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이다.

니체는 대놓고 ‘비극의 가치’에 대해서 얘기한다. 기존의 가치의 기원을 따져서 ‘가치를 전복’시킨다. 그리고 신을 죽여 버린다.

스피노자의 경우에는 ‘실체개념’이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실체’는 바탕과 기저에 깔려있는 것으로 이것이 근대에 와서는 ‘자존적인 존재’로 바뀐다. 다른 것에 원인 받지 않고 존재한다는 개념을 두고 보면 인간은 자존적 존재는 아니다. 그럼 자존적 존재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자체일 것이고 실체는 곧 ‘자연자체’이다. 이 실체는 중세 철학에서는 신이었기 때문에 스피노자는 ‘신적 자연’이라는 말을 한다. 스피노자가 말한 자연에는 초월적인 신이 개입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연유로 스피노자는 네덜란드 유태인 공동체에서 퇴출된다.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를 얘기한다. 생명 자체는 가지고 있는 어떤 목적도 없다는 것인데, 이 얘기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을 붕괴시킬 수 있는 요소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쟁에서 헤겔, 후설, 하이데거는 ‘이성’으로 문제의 해결을 도모한다.

그 해결의 종착점은 ‘초월성’이고, 곧 ‘신’이었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광인들을 격리시켰고. 제도권으로 폭력을 통해 감금시켰음을 폭로했다. 이것이 이성의 폭력이었고 광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의 시각이다. 이것은 바깥으로부터의 사유이다. 이 바깥으로부터의 사유를 하는 사람들을 포스트구조주의자라고 얘기한다.

김범수 교수는 이렇게 보면 프랑스 철학의 계보는 엄밀히 얘기하면 30년대부터의 이성적 전통의 부류와 반대편에 있는 부류가 섞여있는 셈이라고 한다. 실제로 프랑스 철학은 강단철학과 대중철학으로 양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대중철학에는 들뢰즈와 푸코가 자리하고 존재론과 이성적 탐구를 하는 강단철학은 헤겔, 후설, 하이데거가 포함된다고 한다. 이어서 김범수 교수는 “하버마스는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에서 하이데거, 아도르노, 푸코, 데리다와 같은 학자들을 니체를 계승한 탈근대 철학자들로 규정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규정은 프랑스 철학의 진영에서 보자면 반가운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헤겔과 반(反)헤겔의 규정으로 나누는 것을 선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김범수 교수

베르그송주의와 들뢰즈

데꽁브((Vincent Descombes, 1943년 출생)의 경우 현대철학의 과제를 헤겔 비판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는 하이데거노선에 따르면서 실존주의, 현상학, 해석학 등으로 연결되는 노선과 후기구조주의 노선으로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러한 분류에 따르면 들뢰즈는 후자의 노선에 서 있는 학자이다. 이 시기 들뢰즈는 「구조주의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를 통해 구조주의를 특징을 밝히면서 자신과의 차이를 정리했다.

들뢰즈는 68혁명 목도 후 국가박사가 되는데 이후 가타리(Felix Guattari, 1930~1992)를 만난다. 들뢰즈는 가타리와 조우하여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공저로 『반-오이디푸스』, 『천 개의 고원』이 있다. 이후 들뢰즈는 혼자서 몇 권의 책을 출간한다. 문학과 예술에 관한 책이 주류를 이루는데, 마지막 글은 「내재성 : 하나의 생명」이라는 짧은 논문인데, 이 논문은 자신의 존재론을 정리하는 아주 중요한 글이다. 여기서 들뢰즈는 자신의 지적 스승은 니체, 스피노자, 베르그송임을 밝히고 그 중에서도 베르그송주의를 드러낸다. 들뢰즈는 이 글을 끝으로 1995년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투신한다.

베르그송은 수학에 천재성이 있었지만 수학과 물리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과학사에서 뉴턴에서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지는 실증주의는 ‘양화(量化, 이성)’를 통해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베르그송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물리적 양화로 설명할 수 없음을 주장한다. 베르그송은 시간이라는 것도 양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자연과학에 대한 비판에는 생물학을 이용했다.

그런데 들뢰즈는 구조주의자이기는 하지만 라캉의 노선과 다른 구조주의자로서, 들뢰즈는 변화율을 다루는 미분방정식을 통해 베르그송과는 다른 수학에서 나온 개념을 도입한다. 이를테면 ‘특이점’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특이점’은 다른 것과 교환될 수 없는 독특한 점이다. 김범수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예를 들면 야구를 소재로 한 3D 애니메이션 영화의 모션 캡쳐 촬영이 있다고 치자. 그리고 타자의 운동을 모션 캡쳐 한다고 할 때 이 때 센서들은 타자의 방망이나 팔과 다리 등 운동성이 보이는 곳에 부착될 것이다. 이곳에 부착된 센서들은 배우의 머리에 붙여져 있는 센서와 서로 교환될 수 없는 특이한 성격을 가진다. ‘특이점’은 이런 비유와 같다. 들뢰즈는 이것을 가지고 ‘역동적인 생성의 체계’를 설명하려 했다.”

베르그송의 원뿔 도식과 들뢰즈 경우에의 변용

베르그송은 유명한 ‘원뿔 도식’을 통해 ‘지속’을 눈덩이에 비유했다. 우리의 기억은 몸속에 계속 복합적으로 쌓여간다는 것이다. 기억의 만들어짐과 이것이 어떻게 현재화 되었는지를 말한 것이 『물질과 기억』이다. 그런데 김범수 교수는 베르그송의 그림은 반만 그린 그림이라고 하면서 이것을 들뢰즈의 철학에서 본다면 마치 거울에 비추어져 있는 원뿔의 모습과 같이 변형시킬 수 있다고 한다.

위 그림을 보면, 과거의 시간대 부분이 ‘잠재되어 있는 무의식의 세계’가 될 것이다. 들뢰즈는 ‘이념(Id?e)’을 무의식의 세계에 가져다 놓는다. 들뢰즈가 여기서 말하는 이념은 무의식 세계에서 말하는 ‘욕구’들을 말하고 이것은 끊임없이 문제를 발생시키는 존재이다.

들뢰즈는 후기에 가면 이념이라는 말 대신에 ‘욕망’이라는 말을 직접 쓴다. 이 욕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인간은 ‘욕망하는 기계’가 된다. 이 욕망하는 기계가 제도를 깨부수는 것이 ‘탈영토화’이다. 탈영토화는 정해져 있는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 탈영토화는 한 번의 ‘역량’으로 만들어진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을 구조적으로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로 나누었다. 이 때 충동대로 움직이려는 것은 이드이고 초자아는 나를 억압하는 기제이다. 초자아의 억압이 사회적으로 나타나면 법_제도가 된다. 사회문화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반영하지만 법과 시회적인 제도는 초자아가 양심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

이런 제도적인 가치가 있으면 사회적인 금기가 강해진다. 그런데 이 금기는 깨부수어야 할 것이다. 무정부주의자는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이것을 관통해서 나오는 인간형이 ‘스키조(Schizo)’라는 인간형이다. 일종의 정신 분열자라고 할까. 여기서 말하는 정신 분열자는 임상에서 말하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bermensch)’이 이것이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와 같은 인간이다.

김범수 교수는 니체의 초인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기존의 인식이 너무 잘못되어 있다고 한다. “니체의 초인이 단순히 인간을 넘어서는 뭔가가 아니다. 초인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평범한 인간과 같다. 변화를 통해 늘 ‘생성’하려고 했던 존재가 바로 초인이다. 슈퍼맨이 아니다. 스키조도 방향 없이 제도적인 억압을 뚫고 지나려는 사람들이다.”

위의 그림에서 생성되는 원리는 ‘반복’이다. 그런데 우측 원뿔(상에 비친 부분)에서도 반복이 일어난다. 이 경우는 ‘동일성에 의한 반복’이고 좌측 원뿔인 과거는 영역은 ‘차이나는 것들에 의한 반복’이다. 그리고 ‘강도’라는 것은 터지려고 꿈틀거리는 것을 말한다. ‘강도’라는 말은 그 자체로 힘이 들어가 있다. 이 힘들이 응축되어 늘 터져 나오려고 한다. 그리고 현재를 상징하는 가운데의 꼭지점과 비대칭으로 이루어져 늘 ‘생성’되려고 한다. 강도의 차이는 고도차로 인한 기압의 차로 인해 공기가 순환되는 구조에 있을 때 강도의 차이다. 이것은 빅뱅이라는 비유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이념’과 ‘차이’가 밖으로 터져나오려하면 ‘생성’이 되고, 분명 사회적으로 억압하는 기제들이 있는데 그것은 ‘초월성’이 된다. 사회적인 것은 또한 인간의 무의식적인 것을 반영하는 것이 된다.

위의 그림은 들뢰즈가 설명하려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설명하고 있다. 참고로 김범수 교수는 리처드 도킨스가 유전자는 생존기계라고 말했다는 것을 거론하면서 들뢰즈의 철학에 의거한다면 유전자를 생존기계라고 표현한 것은 탁월한 용어 선택이었다고 한다. 들뢰즈는 ‘초월성의 체계’, ‘재현체계’, ‘표상체계’를 싫어한다. 특히 들뢰즈는 인간에 대해 ‘유기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기계’라는 말을 쓴다. 이는 가타리도 마찬가지다. 가타리는 인간을 ‘욕망하는 기계’라고 표현했다.

들뢰즈가 말하는 이념(Id?e)의 의미와 몇 가지 용어들

프랑스어 ‘Id?e’에서 대문자 ‘I’를 쓰는 것은 서양철학의 이데아를 의미한다. 들뢰즈는 자신의 철학을 칸트의 철학체계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그대로 대문자를 쓴다. 대신 그 내용과 용어는 완전히 뒤집어서 쓴다.

‘이념(Id?e)’의 구성요소는 ‘강도’와 ‘미분’이다. 강도는 고도차, 위도차, 압력차처럼 힘으로 가득한 것들이고 이것을 설명해주는 역동적인 수학체계로서 미분이 있다. 미분에는 ‘차이를 담고 있는 요소’란 의미가 있다. 또 ‘생물학적 분화의 요소’가 포함되고, ‘나의 창조적 행위’도 포함된다.

이 강도와 미분은 힘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가만있지 못하고 터져 나오려는 상태에 있다. 개체인 인간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나도 모르게 어떤 행동을 하려는 성향이 있다. 이것은 ‘억압’ 때문이다. 그 행동은 일종의 ‘반복 강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과거의 무의식 영역이 현재로 터져 나오려고 하는 것을 존재론적으로 말하면 ‘반복’이라고 한다. 반복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과거의 ‘경험과 습관에 의한 반복’이 있고(옷 입은 반복), ‘새로 생겨난 반복’의 경우가 있다.(헐벗은 반복) ‘옷 입은 반복’이란 풍성하다는 의미이고 ‘헐벗은 반복’은 빈약하다는 의미인데 이 때 한 개체가 가지는 ‘욕망’은 ‘자발적인 면’이 있는 반면에 ‘비자발적인 면’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를 만들어가는 또 다른 형태로서의 ‘개체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들뢰즈의 후기저작으로 가면 ‘강도는 잔존’하지만 ‘미분과 이념’에 대한 얘기는 빠진다. 빠진 그 자리를 들뢰즈는 ‘욕망하는 기계’라는 말로 대신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은 가타리의 개념이다. 이것을 뚫고 나가는 힘을 ‘스키조’라고 하고 들뢰즈는 지구 전체를 ‘알’로 표현한다. ‘생명이 분화’되기 때문이다. 생명은 ‘분화’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들뢰즈는 지구를 ‘기관 없는 신체’에 비유하기도 한다. 들뢰즈는 이런 새로운 개념들이 만들어지면서, 이를 일컬어 ‘새로운 사유의 인지’라고 했다. 또 그것이 구성되는 속성에 대해서는 ‘내재성의 평면’이라고 했다. 우리 ‘경험세계의 응축성’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반대의 지점에는 ‘표상체계’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재현’과 같고 이것은 ‘억압하는 것’이다. 정해져 있는 ‘체계’가 있고 그 체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표상’이다. 어떤 목적이 정해져 있고 그 ‘합목적성’에 의해 맞춰서 형성되는 것, 즉 ‘주체’에 대해서 들뢰즈는 비판하는데 여기서 ‘주체’는 ‘초월’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이것은 ‘이념(Id?e)’의 정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그림에서 보이는 점선의 영역 미래는 ‘영원회귀’라고 할 수 있다. 영원회귀는 예전에는 자연의 주기에 맞추는 ‘동일성의 반복’이라고 보았지만 들뢰즈는 세계에는 같은 것이 없고 생성만이 이루어지고 ‘생성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개념으로 썼다. 영원히 돌아오는 것은 ‘생성’이다. 동일한 내가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영원회귀’를 ‘원형의 반복’이라고 보는 관점은 들뢰즈가 보던 관점 이전의 것이다. 예를 들어 동일한 사태에 의해 80년에 죽은 누군가와 90년대 죽은 누군가는 원형의 반복이다. 이것은 종교적 제례의 의식이나 역사적 사건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반복하는 대상이 ‘동일’하다.

그림의 꼭지점 부분 현재는 습관적인 체계에서 과거를 끄집어낸다. 그런데 ‘비자발적으로 나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 되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생성’이다. 미래를 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젊었을 때 여행을 간다고 가정해보자. 자유롭다. 자유로운 이유는 속박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관습적인 체계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새로운 뭔가를 시도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내게 된다. 미래의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재성의 존재론

김범수 교수는 들뢰즈의 서양철학의 탄생과 그 처음의 성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토스(mythos)에서 로고스(logos)로. 이 말은 서양철학의 탄생과 발전을 압축적으로 담은 문구이다. 다시 말해 서양철학은 ‘확실성’을 추구했고, 이것은 철학의 출발이다. 존재를 연구하는 기본 전제는 변화나 생성이 아니라 ‘정지’였다. 이것임과 저것임이 동시에 주장되는 것은 존재의 규정으로 말할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가 추방을 선택하지 않고 독배를 선택했던 이유는 결국 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이것과 저것이 공존하는 세계가 아닌 확실성으로, 존재로 충만한 저 세계에 대한 동경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으면 죽음을 선택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전통에서 ‘불변’은 ‘선한 가치’를 담고 있다. 서구 지식인들의 의식에는 불변과 선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봤고, 이를 추구하는 의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세상은 아무 변화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로 가득하고,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이것이 들뢰즈 철학의 문제의식이다. 기존 철학에서 플라톤의 이데아는 가장 확실한 것이었다. 가장 잘 규정 할 수 있는 것. 불변의 것, 정지해 있는 것이 가장 선한 것이고 확실한 것이라고 믿었다. 서양철학은 가장 실체적이라는 정지에서부터 출발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도덕적 의미에서 선(善)이라는 개념이 들어간다.

이 ‘선의 기원’을 따져보자는 것이 들뢰즈가 말하는 ‘내재성의 원리’이다. 이것은 니체의 계보학에서 왔다. ‘가치의 기원’을 따져보자는 것이다. 들뢰즈는 내재성의 철학에서 첫 번째로 얘기하는 것이 ‘사유란 어떻게 만들어지는 가’이다. 어떤 장소에 몇 명의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인식’의 영역이다. 이것은 사유가 아니다. ‘사유’는 충격이 오고, 하나의 사건이 만들어지고, 무언가 생성이 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변화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고 거기에 대해 생각해 내는 창조적 과정이 사유’이다. 기존의 관습체계가 아니란 말이다. 만약 확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지를 기반으로 말한다면 실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할 수 없다. 그 사유체계는 들뢰즈에게 있어서 일종의 나쁜 것이다. 이것을 니체는 ‘독단적 사유의 이미지’라고 했다. 사유는 사건의 조건과 환경을 따져서 해야 한다. 이것이 푸코가 말한 ‘바깥으로의 사유’이고 들뢰즈는 바깥으로 나가 사유의 전제조건을 봤던 것이다. 들뢰즈는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 또는 확실성의 확보를 모두 제거하고 이것 없이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통해 우리의 경험으로 응축된 새로운 사유를 하고 적극적 생성에 대해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 들뢰즈의 ‘내재성’이다.

근대 이성의 본질을 폭로하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11> 푸코

 

근대 이성의 본질을 폭로하다-광기, 권력, 폭력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푸코⑪

 

강사 :박민미(동국대 외래교수)
후기 :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누구인가?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마르크스주의가 한발 물러서고 그 대안을 찾아 헤맬 때 미셸 푸코의 철학은 사람들에게 마르크스의 대안으로서 현대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폭로하는 사상적 기준으로 다가왔고 철학적 전개의 중심을 제시했던 인물이다.

푸코가 콜레즈 드 프랑스(Coll?ge de France)에 교수로 있을 때 ‘사상사(The History of Systems of Thought)’를 가르쳤던 사실은 그의 사유가 철학적 쟁점에 대한 논쟁을 동반한 논증에 점철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점이다. 그는 사회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상가였으며 자신의 철학을 연장으로 사용하는 실천의 철학자였다. 마찬가지로 그의 글은 인문학, 사회과학의 많은 영역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열한 번째 시간에는 “나는 내 책이 메스나 폭약, 아니면 지뢰를 파묻는 갱도 같은 것이 되어서 조명탄의 불꽃처럼 한 번 사용된 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과감히 선언했던 푸코의 철학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소수자로서 푸코와 그의 운동 : 미시권력을 파악하기까지

 

박민미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푸코의 학창시절 외로웠다고 한다. 성적 소수자로서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 것을 내면으로 가지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일종의 악이라고 지시되면서 교정의 대상이 되는 성향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푸코는 자신을 기준으로 하는 실존의 문제가 절실했다. 그래서 학창시절에는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병리학처럼 다른 사람의 심리분석을 통해 대상에 병리적 접근을 하는 것과는 다르게 심리적으로 다른 형태의 대안으로서 심리학을 했다.

푸코는 공산당에 입당한 경험이 있었고, 68혁명 당시에는 프랑스에 없었고 아프리카 튀니지의 튀니스에 있었다. 이것이 그에게는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유럽 외부의 소외되고 배제된 타자이자 주변으로 밀려난 곳에 실제로 있으면서 정치적 변화의 물결을 겪었다. 오히려 프랑스보다 제3세계에서 운동을 지켜보면서 68혁명을 또 다른 입장에서 더 넓고 포괄적으로 억압과 착취, 지배에 저항하는 현실을 보게 된다. 푸코는 68혁명 이후 전 세계의 이슈가 있는 곳에 항상 갔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사르트르, 들뢰즈, 이브몽땅(공산당원), 시몬느 시뇨레 등 투사 동지들이 항상 함께 했다.

그러다가 1968년 말에 프랑스로 돌아오면서 얼마 후, 1971년 ‘감옥정보 그룹’ 발간을 추진한다. 당시 유럽사회 처벌의 공간이었던 감옥이 어떠한 논리로 사람을 가두는가, 얼마나 처참한 모습으로 배재된 인간들을 주조해내는가를 관찰했다. 감옥에 들어온 사람 중 동성애자로 쫓기다가 감옥에 들어온 후 자살하는 사례, 장발장처럼 생활고에 배고픔에 저지른 범죄에 의해 평생 낙인찍히며 그 사람의 신병을 사회체제가 보장해 주지 않다보니 결국 또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상황에 대해 푸코는 관찰만 한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 지에 대해 자기 스스로 그것을 진술하고 수기를 기록하고 직접 출간하여 사람들에게 널리 공유하게 하는 적극적인 방식을 취한다. 푸코는 ‘왜 사람들의 영혼이 끊임없이 추적되고 감시받아야 하는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푸코는 자신이 이 사회에 존재하는 것들 중 도저히 관용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열거했다. 그것으로 재판소, 경찰, 병원, 요양소, 학교, 군대, 신문, 텔레비전, 국가를 든다. 이 사회의 기존 질서를 옹호하고 수립 권력에 직접 지배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관과 단체를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 권력기관에 대한 이런 파악은 푸코로 하여금 국가와 정부 사법기관 등이 우리를 장악하고 우리를 부자연스럽게 하는 이유는 직접적 체제나 기관이라기보다는 더 미세한 것들이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했다. 내 신체 정신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의 미세한 원인을 푸코는 ‘미시권력’이라고 한다.
 

미셸 푸코(1926~1984)


 
이런 국가권력현상(power)에서 권력은 거시적 차원은 ‘state’에 해당하지만, 미시적 차원은 ‘body’에 해당한다. 우리 몸에 샅샅이 작용하여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차원의 권력을 폭로하는 것이 푸코의 의도이다. 곧 ‘억압’을 얘기하는 것. 그런데 푸코는 억압만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권력을 얘기한다. 인간의 지식, 앎이라는 영역과 긴밀히 얽혀서 억압당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억압이 아니어서 억압당하는 줄 모르게 만드는 상태의 ‘미시적 권력’이 항상 작동하고 있다는 것. 푸코는 이것을 폭로한다.

– 우리의 삶에 모세관처럼 샅샅이 퍼져있는 권력, 곧 현대 권력 –

푸코에게는 시기적으로 학문적 관심도에 따라 고고학기?계보학기?윤리학기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969년 『지식의 고고학』을 썼을 당시까지가 푸코에게 있어서 고고학기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의 문제에 대해 역사학적 관점과 인식의 틀의 입장에서 연구. 푸코 초기의 연구경향을 보인다.

1972년 『담론의 질서』에서 1975년 『감시와 처벌:감옥의 역사』, 『성의 역사 1:앎의 의지』 이런 책까지, 권력에 집중했던 계보학 시절인데 권력을 폭로하는 활발한 운동 시절이다.

그 이후 1982년 『주체의 해석학』이후 주체에 대해 집중하던 시기로 『성의 역사 2, 3』을 집필하기도 한다. 주체의 양식을 모색하던 시기로 윤리학기라고 할 수 있다.

 

푸코에게 철학의 의미와 사유 여정, 그리고 계보학

 

푸코는 철학은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철학은 곧 철학적 활동”이라고 인식한다. 그리고 1984년 죽기 전 『성의 역사 2』에서 철학은 “사고에 대한 사고의 비판 작업”이라고 하기도 한다. “진실의 작용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변형시키는 것”,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호기심” 등 푸코가 얘기한 철학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실질적으로 푸코 자신의 철학에 해당되면서 푸코 철학의 진면목을 대변하는 말은 “연장통”이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세계를 변형시키는 도구로써의 철학이라고 했다. “나는 내 책이 메스나 폭약, 아니면 지뢰를 파묻는 갱도 같은 것이 되어서 조명탄의 불꽃처럼 한 번 사용된 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는 말이 바로 연장통을 의미한다. 세계를 변혁하고 폭발시키는 연장으로 철학을 사용하겠다는 선언이다.

푸코의 신조로써 철학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호기심이기도 하다. 변형은 자기가 다르게 되는 것이고 곧 생성을 뜻할 것이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가 다르다는 것이 내가 다르게 된다는 말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다른 나로 변한다는 실존적 문제이기 보다는 내가 내 테두리 바깥으로 나가서 타자의 영역으로 간다는 것이다. 변형은 곧 배재되고 소외되었던 타자로 가는 길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규정을 푸코는 ‘에토스(ethos ; ethics:윤리학)’라고 한다. 자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변형시킬 수 있는 우리 삶의 태도이다. 다른 사람에게 규칙처럼 다가가는 윤리적인 틀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의 활성화로 변형이 가능해진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다. 니체가 신을 왜 죽였을까? 인간을 자기의 행위와 가치에 대해 판단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 가둔 신을 죽였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초인(?bermensch)’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초인은 현대인의 모습이어야 하고 그 핵심은 기존의 관습 관행 습관적 사고들에 대해 칼날대고 저항하는 모습이다. 니체는 이런 형태의 삶을 지지했다.

이런 니체 의식의 직접적 계승자는 푸코다. 푸코는 먼저 하이데거를 접하고 하이데거에 의해 해석된 니체를 접하면서 누구나 알고 있다는 보편적 인식 틀을 거부한다. 고고학기의 작업이 그렇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니, 고대, 근대, 현대의 인식 틀인 ‘에피스테메(episteme)’가 다르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에피스테메는 주어진 한 시기에 인식론적 제 형상, 과학, 형식화된 체계를 발생시키는 담론적 실천의 총체로써 주어진 시대의 제 과학을 담론적 규칙성의 수준에서 분석할 때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관계의 총체를 말한다. 푸코가 고고학기 얻었던 중요한 면모이다.

『광기의 역사』에서 광기의 개념을 살피며 얻은 고고학시기 결론은 르네상스시기에는 광기를 인간의 중요한 능력으로 여겼다는 점이다. 고전주의시기에는 광인으로 몰고 배제의 대상으로 악과 결부시켰고, 근대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 정신병리학으로 치부했다. 이 때 푸코는 니체의 생각 이어받아서 인간의 광기에 대한 체험으로 질서정연함을 강조하는 아폴론적 사고가 아닌, 인간의 본성을 더욱 강조할 수 있는 디오니소스적 사고를 경험할 수 있었는데, 사람들은 광기를 배제하면서 아폴론적 인간의 이성능력만 발전시켜 형이상학적 철학으로 타락해 갔다는 점에 동조한다. 광기가 중세 때 까지는 인간의 신적인 능력, 신의 계시를 받는 독자적 능력이라 여겨졌는데 이후 ‘정신착란(d?raison;탈 이성상태)’이라고 불려지게 된다. 이성 중심적 사고로 광기를 배제하는 모습이다. 푸코는 광기를 배제하는 이성중심주의가 그들이 말하는 광기에 더 가깝다고 본 것이다.

‘계보학(genealogy)’은 니체가 제시했다. 니체는 계보학을 색상에 비유하면 회색이라고 했다. 같은 사태에 대한 여러 해석의 덧 씌워짐은 회색과 같다. 자명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겹겹의 해석이 깔려있는 것이다. 고로 자명한 사태와 해석은 없다. 계보학은 회색빛의 머리카락을 한 모습이다. 그것은 매사에 꼼꼼하고 끈질기게 자료를 섭렵한다. 그것은 거대한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확립된 사실과 일치하는 작은 진실을 축적한다. 계보학은 관념적인 의미현상이나 불확실한 목적론들로 된 메타역사학적 전개와 대립된다. 또 그것은 ‘기원(Ursprung)’의 추구와 대립된다.

푸코는 사람들의 겹겹해석을 살피고 기존문헌을 살피면서 문헌 안의 개념 현상, 사물의 본질을 탐색하는데 보편적 본질을 찾지는 않는다. 계보학은 어떤 분류로 갈라져 나왔는가를 살피는 것뿐이다. 기존의 철학자들은 역사학자들이 연구한 것을 차용했지만 푸코 자신은 1차 문헌의 ‘날 것’을 스스로 탐구하는 것을 지향했다. 기존의 덧씌워진 해석과 개념을 벗겨내려 한 것이다. 대표적 저서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가 계보학 시기에 만들어진 결과물들이다.

‘파레지아(parrhesia, 진실을 말하기)’라는 말이 있다. 윤리학기에는 푸코가 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처럼 완성할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였던 시기였다. 시대에 종속된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자아로 살아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푸코에 따르면 근대인은 자신을 아는 일에 몰두(인식중심)하지만 고대인은 자신을 만드는 일에 몰두(창조중심)한다. 기존 니체의 문제의식이었던 작은 진실을 발견하고 구축해나가는 방향을 추구하면서 우리 삶의 소소한 문제로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것에 대해서 역사를 써보겠다는 것이 푸코의 계보학적 특성이다.
 

박민미 동국대 외래교수

 
고고학기에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을 확실히 했다고 한다면 계보학기에는 ‘장치 dispositif’=‘장치(apparatus)’라는 개념에 매진했다고 할 수 있다. 영어로 혹은 ‘배치(arrangement)’라고 번역된다. 이 장치는 우리 사회의 여러 것과 연관하여 마치 기계처럼 이루어져 있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현상으로 계속 우리에게 사물처럼 작용한다. 권력과 함께 같이 사용한다. 예를 들면 섹슈얼리티도 장치이고 감옥과 같은 것도 장치이다.

 

『감시와 처벌』과 규율권력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는 장치를 ‘규율권력(disciplinary power)’이라고 칭한다. 규율권력은 전체 우리 사회에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작동한다. 여기에 대한 폭로가 『감시와 처벌』의 주 내용이다. 푸코의 저작에는 아주 미세한 지식들이 텍스트에 촘촘히 들어가 있다. 딱 떨어지게 정리하여 규정하기 보다는 애매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읽는 사람이 알아서 가져다가 해석하라는 태도이다. 저자를 지우는 글쓰기 방식이다.

푸코는 일부 소수의 사람들만 가는 장소로 인식되는 감옥이라는 것을 기재로 자신의 폭로를 이어나간다. 『감시와 처벌』의 첫 장면은 다음과 같다. 첫 장면은 다미앵의 처형 장면으로 “사형수를 처형대 위에서 가슴, 팔, 넓적다리, 장단지를 드겁게 달군 쇠집게로 고문을 가하고…쇠집게로 지닌 곳에 불로 녹인 납, 펄펄 끓는 기름, 지글지글 끓는 송진, 밀랍과 유황의 용해물을 붓고, 몸은 네 마리 말이 잡아끌어 사지를 절단하게 한 뒤, 손발과 몸은 불태워 없애고 그 재는 바람에 날려버린다.”

그리고 푸코는 판옵티콘을 설명한다. ‘Panopticon(pan여기저기 다 있다+optic시각+on~하는 존재) 이것은 중앙 감시망 탑으로 중앙 감시탑에 모든 수감자의 그림자(실루엣)가 다 비쳐서 확인되지만, 중앙의 탑에는 누가 있는지 수감자들이 있는 방에서는 알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비유이며 규율권력(체계) 안에 갇혀 살고 있다는 것이다.

『감시와 처벌』의 내용

1부 신체형

1. 수형자의 신체 2. 신체형의 호화로움

신체의 가해지는 고문의 형태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졌지만 좀 더 규칙적이고 법칙적, 유순해진 처벌로 변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신체형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자유주의사회가 되면서 인간의 가치와 권리에 대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인간화의 결과가 신체형의 소멸을 가져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신체형의 소멸의 이유는 형벌의 대상과 목표가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감시와 처벌의 첫 번째 가설이다. 변형된 양상을 설명하자면 작동하는 권력의 작용 방식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권력은 결국 미시적으로 작동하는데 우리의 부자유를 낳는 것은 감옥이라는 장치의 영향이다. 그렇다면 권력은 어떻게 살펴봐야 하는가? 권력의 미시 물리학을 분석하는 체계는 다음과 같다. (1) 권력에 대해서는 폭력과 관념의 대립, 소유권에 대한 비유적 표현, 계약이나 정복의 모형을 버려야 하고, (2) 지식에 대해서는 ‘이해관계가 있는’ 것과 ‘이해관계가 없는’ 것 간의 대립, 인식의 모형과 주체의 우월성을 버려야 한다.

푸코가 이미 감시와 처벌에서 중요하게 보는 시각은 기존의 권력관, 즉 권력을 소유로 보는(혹은 양도 가능한) 사회계약설의 입장이 아니다. 푸코가 보기에 권력은 양도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현상 속에 미세한 망의 장치처럼 작동하는 권력현상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푸코는 권력에 대해 법률로써 규칙적으로 작동하는 국가라는 안정된 기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2부 처벌

1. 일반화한 처벌 2. 유순해진 처벌

사람들을 일정한 척도와 기준에 부합하는 과정으로 처벌을 생각한다. 18세기에 관찰되던 현상 중 하나는 형벌의 완화이다. 이렇듯 형벌이 완화되는 것에 대해 푸코는 규율권력은 별도의 메카니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의 흐름과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관계가 권력의 변화를 추구하는 큰 배경 중 하나였다는 것을 말한다.

부르주아 계급의 전략은 두 가지가 있다. 한편으로는 군주권의 자의성에 제한을 가하고(사법개혁과정에서 관철),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이 재산권에 도전하는 것을 제어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사람들에게 처벌의 효과를 분명히 만들어내면서 자신들의 군주에 대한 저항을 가능케 하는 두 가지 사안을 확보하는 데 있었다. 처벌이 유순해지는 과정에는 부르주아 계급이 반드시 개입되어 있었다.

처벌의 본보기라는 기능은 항상 고려되었다. 신체형 중심의 처벌 제도에서의 본보기는 범죄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이중적 표현 방법으로서, 범죄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것을 제압하는 군주의 권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후 고전주의시기로 넘어오면서 본보기의 징벌이란 이제 과시적인 의식이 아니고, 범죄를 방지하는 데 뜻을 둔 기호가 되었다.
신체적 형벌에서 유순해진 형벌로의 이행은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라는 측면과 동시에 앞으로 일어날 범죄의 방지를 목표로 하는 전략이 짜여 진 것이었다.

처벌의 방법은 기술적이고 공학적으로 작동한다. 몇 가지를 얘기하면 (1) 가능한 한 자의적이 아닐 것. 법은 사필귀정인 것처럼 보여야 하고, 권력은 부드러운 자연의 힘처럼 자신이 모습이 드러나지 않은 채 작용해야 한다.(법 집행의 필연성) (2) 형벌과 그것의 불이익이라는 표상이 범죄와 범죄에 따르는 쾌락에 관한 표상에 비해서 훨씬 더 선명하도록 해야 한다. (3) 결국 형벌의 시간적 조정과 배분의 효용성이 문제된다. 장기간에 걸친 일련의 권리 박탈 상태는 일시적인 고통의 형벌보다 훨씬 더 죄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4) 징벌은 특히 다른 사람들을, 즉 죄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삼는다.

이런 과정은 모두 사회 관련된 사람들에게 응당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감옥에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5) 그런 점에서 교묘한 경제적 광고 효과가 생겨난다. 범죄가 행해지면 지체 없이 처벌이 따르게 되고, 형벌이 집행되는 현장에 아이들이 찾아올 수 있어야 하고, 그곳에서 시민 교육의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그것이야말로 ‘법의 정원’, 치안 박물관에서의 산교육인 것이다. (6) 그렇게 되면 사회에서 범죄에 관한 전통적인 담론은 전도될 수 있을 것이다. 범죄자를 영웅시하는 찬양 대신에, 가시적 형벌이자, 수다스러운 형벌로서, 모든 것을 입에 올려 설명하고 정당화하고 설득한다. 즉, 모든 징벌은 바로 교훈담이다.

<표1>

감금 모형 원형: 암스테르담의 ‘라스푸이’

1596년 개설. 원칙 1. 형기를 수감자의 행위 여하에 따라 일정 범위내 변용 가능. 원칙 2. 노동이 의무적이고 공동 작업이며 수당 지급. 원칙 3. 일과 시간, 의무 조항, 감시, 격려, 종교적 독서 등 선으로 이끌려는 일련의 조치로 일상 규제.

모형 강 형무소 영국의 모형 필라델피아 모형
형태 노동 중심 독방 중심 강의 원칙 승계
특징 범죄자가 주로 무위도식자이므로, 이들에 대해 보편적 노동 교육을 전담. 잡거는 공모 가능성을 높이므로, 독방에서 자기 반성, 선의 목소리 재발견. 수형자가 생산 노동에 종사. 출소 때에 자금 마련.
평가 장점: 범죄 수사 건수 감소. 부랑자로부터 침해받는 삼림 소유자의 세금 감면 불필요. 임금 하락. 극빈자는 자선 혜택 효과. 신교적인 영국에서 경제적 인간과 동시에 종교적 양심 재건 수단. 법과 도덕으로의 복귀. 잃어버린 신하가 국가로 되돌아올 개인적 변화 장소. 신체와 습관 개조. 정신적 배려 통한 정신과 의지 개조 과정. 품행 통제 속에서 개개인에 대한 지식 축적. 상설 감시 시설. 지식의 도구.
일치점 교정 시설은 범죄의 소멸이 아니라 재발 방지 장치. 징벌은 교정 기술을 포함해야 한다. 형벌을 개별화해, 징벌의 기간, 성격, 경중, 방법 등을 다른 사람에게 위험을 주는 정도에 따라 조정되어야 한다.
차이점
  개혁자 교정 중심 형벌 기구
개인에 대한 접근법 기호 체계와 표상. 표상이 아니라 신체 자체. 일상의 습관, 행동, 정신.
압력을 주는 방식 표상. 법전의 기호 체계 재활성화. 법 주체로서의 개인의 재규정화. 강제권의 형식. 훈련. 시간표, 일과 할당표, 공동 작업, 좋은 습관 등.
개조의 도구 사회 계약 속 권리 주체.

법적 주체의 재구성.

복종의 주체. 명령에 복종하는 개인. 복종의 주체 형성.

 

3부 규율

1. 순종적인 신체로 만들고 2. 효과적인 훈육 방법을 쓰면서 3. 일망감시 방법(판옵티시즘)

고전주의 시대의 신체는 권력의 대상이자 표적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이 발견되었다. 17세기와 18세기를 거치면서 규율이 지배의 일반적 양식이 되었다. 신체의 활동에 대한 면밀한 통제를 가능케 하고, 체력의 지속적인 복종을 확보하며, 체력에 순종-효용의 관계를 강제하는 이러한 방법을 바로 ‘규율(discipline)’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 규율은 개인을 제조한다. 규율, 훈련의 위계 질서화 된 감시를 통해 권력은 하나의 물건으로서 소유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의 소유물로서 양도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기계장치처럼 작용한다. 더욱더 교묘하게 ‘물리적’으로 될수록 표면적으로는 한층 덜 ‘신체 중심적’으로 되는 그러한 권력인 것이다. – 규율권력 –

규율 중심적인 장치가 만들어 짐으로써 보이지 않는 곳에 가두어 놓으면서 가두어 놓아진 사람들이 새로운 신체로 변모되는 이른바 ‘규율적 신체’가 된다.

권력 경제학이라는 말이 있다. 권력이 아주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말이다.

권력 경제학은 처벌에서 이전에는 본보기, 전시와 교육 효과를 노렸으나, 보이지 않는 곳에 가두는 ‘감옥 장치’(사법기관 및 법률집행 원리와 결부)는 위법자의 고통을 줄이거나 위법자의 인간성을 돌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위법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고통 및 인간성을 돌보는 효과를 낳으며 ‘인간’이라는 척도, 인간 과학을 작동시킨다. 그러면서도 장시간 동안 위법자의 인체에 영향을 끼치며 강도 높은 규율 권력을 작동시킨다. 그리고 이 ‘감옥 장치’를 둘러싸고 ‘행형 장치’(경찰과 같은 관할 영역에 포함)가 있다. 감옥 장치가 위법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행형 장치’는 위법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은 비행자를 대상으로 끊임없이 관찰하고 추적한다. 이 ‘행형 장치’를 작동시킴으로써 비행자의 정신과 인체에 작동하는 권력 기술을 드리운다. 이 둘은 항상 같이 작용하는 구조에 있다. 그래서 감옥은 단지 감옥에 갇힐 대상인 범법자만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것이다. 이 부분이 감시와 처벌에서 규율 권력과 관련하여 폭로하는 내용의 핵심이다.

4부 감옥

1. 완전하고 준엄한 제도 2. 위법행위와 비행 3. 감옥체계

감옥이라는 것은 처벌이 교훈의 효과에 쓰기보다는 오히려 죄인을 꼭꼭 숨겨둔다. 이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이 푸코이다. 이렇게 해서 작동한, 만들어진 효과는 무엇일까?

이 규율 권력의 핵심적인 모델은 바로 ‘판옵티콘’이다. 이 권력 기술은 수감자가 스스로 권력의 전달자가 되는 것이다. 물리적 충돌 없이 권력이 영원히 승리하는 모델이다. 이 세계에서 가장 큰 재판 위원회인 전체화 메커니즘 속에서 생산을 증대시키고, 경제를 발전시키며, 교육의 기회를 넓히고, 공중도덕의 수준을 높인다. 이 장치는 감옥장치이면서 행형장치이고 넓게는 예를 들어 군대, 학교, 회사(마치 대기업 삼성과 같은) 등을 포함한다.
여기서 작동하는 ‘규범(정상, normal)’이라는 척도는 ‘권력-지식’을 가동시키며 ‘인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정상적인 인간’을 만들어내려 한다. 그리고 앎을 생산하는 권력을 통해 사람들의 영혼은 자발적으로 권력에 예속화되고,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피지배자 일반에 대한 규범이 법을 대체하여 사람들의 삶 속에서 샅샅이 작동하게 된다. 이것이 규율권력의 사회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규율권력이 항상 사회에서 작동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건, 어디에 있든 간에 이 작동의 방식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규율권력은 특정방식으로 행위 하도록 우리의 신체를 제조하고 있지만 부자연스러움을 느끼면서도 저항의 방법을 찾지 못한다. 미시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미시 물리학적으로 파악될 수 있지만 그 이후 어떻게 해야 하는 지의 문제에 대해 푸코는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테제를 제시한다.

푸코의 실천적 방식은 감옥을 관찰하고 폭로하며 위법자라고 지칭된 사람들이 끊임없이 말하게 하고 이것을 팸플릿으로 옮긴다. 그리고 감옥의 역사라는 책을 썼다. 모든 사람들의 해방을 위한 실천을 한다기보다는 배제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계보학적으로 증명해 나갔다. 인간을 배제하는 메카니즘에 대해서 드러내고 폭로하는 지식인의 실천을 푸코 스스로 ‘특수 지식인’이라고 지칭한다. 사르트르가 모든 민중을 대변하는 보편적 지식인의 상을 제시했다고 한다면, 푸코는 자신이 알고 있는 특별한 앎을 총 가동하여 삶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에 저항하게끔 하는 지식인이다. 그 과정은 그의 저술에 집약되어있다.

 

푸코의 신자유주의 비판

 

사람들은 자신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메카니즘에 살고 있으면서 거기에 젖어 수동적으로 살게 된다. 예속된 삶이다. 스스로 판옵티콘에 갇혀있으면서 갇힘을 모른다. 규율권력은 개인과 개인을 개인화라는 형태로 미세하게 갈라놓고 있다. 비정규직노동자라고 할 때 이 노동자에 대해 관찰하는 세부적인 리스트가 우리를 규제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테스트, 시험, 규정을 들이댄다. 사람들을 서열화하고 있다.

푸코는 사람들을 세밀화하고 쪼개고 분류하면서 갈라 놓이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차이를 주목한다. 개인화의 면모로 규율권력은 한편 사람을 개인화시킨다. 그러면서 동시에 규율권력은 사람들을 전체화하는 권력이다. 하나의 특정한 규준으로서의 이상으로 사람들을 몰아간다. 그래서 저항 조직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냥 이대로 흘러간다.

이런 사회모습을 『감시와 처벌』에서는 규율권력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이 이후의 저서들에서는 최근 번역된 『안전 영토 인구』 이후에는 규율권력만을 폭로하는데 그치지 않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논리가 펼쳐진다. 신자유주의에서는 1%를 위한 사회나 질서를 지칭하면서 경제나 금융의 문제로만 몰아가는 경향이 있었으나 푸코는 규율권력이라는 모판을 신자유주의 질서에도 적용을 한다. 사람들을 인구차원에서 안전을 내세우며 국가의 통치를 좋은 행위로 포장하고 있고, 그 이면에서는 이 사회의 모든 결과물의 책임을 각각의 당사자 자신에게로 돌린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안에 있는 통치자는 아무런 잘못과 책임이 없다.

이 때 중심되는 비판의 포인트는 ‘경쟁이 강조되는 사회’에 있다. 자유주의 초기 시대에는 평등과 법의 이념을 강조했다면 신자유주의에서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견제하는 상황으로 내 몬다.

<표2> John Protevi 정리 도표 번역 “푸코 사회 권력 도표”

전성기 1650-1789 1780-1820 1820-1968 1850-현재 1980-현재
권력 양식 주권 권력 사회 권력 규율 권력 생명 권력 통제 권력
권력 이론 법률 이론 이데올로기 미시물리학 통치성 신자유주의적 이론
일차적 행위자 법률가 전문가 주체 자기 기업가
일차 타깃 신체들 영혼들/권리들 생산적-정치적 능력들 삶들: 개체/인구 자기(개인) 자본
타깃에 접근하는 일차적 방법 고통 기호들 훈련 연구/고백 진단/시장 조사
목표 달성 위한 일차적 실천 의식(예식) 표상 연습/시험 규범화/위험 관리 치료/투자
최강 형식 신체형 극적 처벌 판옵티콘 약리유전학
희망 산출물 복종 공동체 유순함 자동-통제 투자에 대한 최적 대가
지식 형식 법전 철학에세이 서류더미 통계 매뉴얼 가격 그래프
특권적 과학 법률학 철학적 심리학 인간 과학들 정치 경제 미시경제학
통제의 경제적 형식 선취(단순세금) 공공 작업 벌금/보상 복지/보험 빚(공적/가계)

 

신자유주의의 핵심 메카니즘인 ‘경쟁의 질서’ 안에서 사람들은 또 하나의 차이가 구획된다. 이전에는 규율사회에서는 한 개인이 정상적 인간에 대해 측정되고 비교되었다면 신자유주의는 타인이라는 관계 속에서 우위의 위치를 가지기 위해 가치 측정되는 형태로 속성이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기존 권력모델이라 할 수 있는 한 사회 안에 작동하는 권력이 평등하게 법치아래에서 잘 작동하여 우리 사회가 잘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푸코의 가장 큰 폭로이고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불평등, 차이를 구획하는 권력은 작동하고 있다. 이 때 권력은 비가시적이지만 끝없이 작동하는 장치로서 우리 삶을 부자연스럽게 만들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에 저항하는 길은 무엇인가? 푸코는 ‘대항 품행’을 든다. 그리고 대항 품행의 실천의 가장 대표적인 방식이 ‘파레지아’, 즉 ‘진리 말하기’이다.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다. 사회적 위계, 서열 등의 차이를 무릅쓰고 솔직하게 말하기.

박민미 교수는 장치처럼 작동하는 방식에 저항하는 방법이 혁명이었고, 혹은 제어하는 것이 기존 부르주아 사회, 사회주의 사회까지의 저항의 신념이었다면 현 시대에 저항적 실천의 방식을 물었을 때, 규율권력에서는 현실에 대해 폭로하고 진단하는 특수지식인의 실천이 되겠고, 현실 질서 속에서 사람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전체적인 질서를 자본주의로 집약했다고 할 때 그 저항의 방식은 기존과는 다른 삶을 계획하는 것이다. 이 때 다른 사람과의 차이는 규율권력이 만들어내는 다른 사람과의 차이와 다르다. 규율권력이 만들어내는 차이는 배재를 위한 차이이고 다른 삶을 계획하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평균적인 삶과는 다른 차이를 생성해내는 지평이다.

이 사회가 경쟁 일변도로 가고 인권에 대해 몰이해가 사회에 만연해 있을 때, 서로 연합이라는 것을 조직하면서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주체적 삶을 만들어가는 실천이 중요하다.

강의 말미에 박민미 교수는 푸코의 평생의 문제의식을 잘 요약한 말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열망”을 거론하면서(『자유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열망』, 정일준 역, 새물결, 1999) 푸코는 사회계약설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권리체계가 있다는 것에 의문을 품었던 것이고, 우리사회가 과연 민주적인 사회인지, 감옥이 신체형에서 과연 유순해 졌는지, 이런 질문들을 계속 하면서 현실에서 우리를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규칙과 질서와 보이지 않는 힘들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폭로하는 태도가 푸코 평생의 연구의 핵심적 태도라고 설명했다. 그 실천의 일환으로 오늘의 강연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처럼, 사회에서의 하루 일과가 끝나고 습관적으로 소주잔을 기울이는 대중의 모습과 달리, 철학 강좌를 듣거나 사회의 문제에 대해 공론의 장을 펼치는 이런 모습들도 소소하지만 푸코가 생각했던 자유로워지는 삶의 태도가 아닐까.

 

타자의 얼굴과 환대의 윤리[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⑩

 

타자의 얼굴과 환대의 윤리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레비나스⑩

 

강사 :문성원(부산대 철학과 교수)
후기 :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지금, 철학의 이미지와 레비나스의 철학

 

“과학에 있어서의 철학은 섹스에 있어서의 포르노그래피와 같습니다. 더 싸고, 더 쉽고, 어떤 사람들은 더 좋아하기는 하죠.” 스티브 존스(제레미 스탱룸 편, 김미선 역, 『세계의 과학자 12인, 과학과 세상을 말하다』, 지호, 26~27쪽.)

“멀쩡한 사람도 누구나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묻는다. 그러나 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대체로 정신병자밖에 없다. 누구나 이런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을 진심으로 중대하게 여기는 사람은 정신병자로, 그는 언제나 신념체계를 세우는 사람이다.” 대리언 리더(대리언 리더 저, 배성민 역, 『광기』, 까치, 97쪽.)

철학은 무엇일까? 과학에 있어서 철학은, 비유하자면 실제 섹스를 따라가지 못하는 포르노그래피와 같아서 비록 가짜이지만 그 힘든 과학적 발견에 앞서서 세계와 사회의 현상을 풀어주고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자들은 과학 이전에 철학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철학자들이 평가절하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자기 나름의 일관성을 가지고 완벽한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려는 자세가 정신병자와 같은 기준에 서 있다는 점이다. 현실과 부딪힌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철학을 도모하고 세계를 남김없이 설명하려는 철학자들의 일관성은 흡사 정신병자들이 가지는 트라우마 때문이기도 하다.

현대철학은 이런 비판과 맞닿아 있다. 서양에서 근대까지 철학자들은 단순하고 일관적인 원리를 가지고 세계를 설명하려 하였다. 철학자들이 제시하던 세련된 근대적 세계관은 일방적이며 일관적으로 세계를 장악하려했던 시도들로 점철되었다. 서양인들이 이른바 제3세계를 식민지화하려했던 역사의 이면에는 서양인들의 전체성과 인간과 자연을 조작 가능한 것으로 봤던 이성주의에 대한 무비판적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열 번째 시간에는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의 철학을 통해 근대적 세계관과 그 이해의 연장선에서 발생하는 억압되는 타자, 그리고 타자를 장악하는 나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나와 타자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런 현상은 신자유주의의 심화와 함께 우리 사회에 일반화된 모습들이다. 얼마 전 『해체와 윤리 – 변화와 책임의 사회철학』(그린비, 2012.03)을 펴낸 부산대 철학과 문성원 교수는 이 책에서 추상적 원리만 남고 우리 삶의 구체적 현실은 논외가 되어버린 철학이 과연 정체된 현실과 퇴색된 가치를 뛰어넘어 우리 문화와 사회 전반에 변화를 제시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타진하면서 신자유주의 극복의 실마리를 레비나스의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번 레비나스 철학 강좌를 통해 레비나스의 ‘환대’라는 개념이 우리사회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면모를 명확히 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상학적 전통과 레비나스의 ‘환대’

 

레비나스는 서양철학이 가지고 있는 전체성이라는 거대한 폭력적 성향과 인간의 이성이 인간과 자연의 모든 것을 관장하고 조작할 수 있다는 이성주의의 폐단을 지적한다. 이런 레비나스 시각의 배후에는 현상학적 전통이 자리 잡고 있다.

현상학이라는 철학 운동의 시발점에 서 있는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은 자연과학적 세계관의 무비판성을 문제시 하며 현상의 근원성과 본질을 탐구한 철학자이다. 특히 인간의 의식과 관련하여 무엇인가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지향적 의식의 구성 작용에 주목했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존재와 관련하여 존재자와 존재 차이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존재자에 매몰되어 있던 서양의 전통을 근원적으로 반성해보려는 시도를 한다. 문성원 교수에 의하면 레비나스에게는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영향력이 가장 컸을 것이라고 한다.

레비나스 보다는 나이가 어리지만 레비나스에게 있어서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레비나스는 후설과 하이데거를 비판하기도 하는데 데리다는 1964년 “폭력과 형이상학”(『글쓰기와 차이』)이라는 글을 통해 레비나스의 철학을 소개하면서 비판한다. 후설과 하이데거의 견지에서 역으로 레비나스의 후설, 하이데거 비판을 반(反)비판하는 작업이었다. 물론 데리다 역시 하이데거의 영향력이 굉장히 강했다.

잠시 데리다의 ‘해체주의(deconstruction)’를 살펴보면 하나의 문제점이 발견된다. 해체를 통해보면 어떤 철학도 내부 모순을 가지고 있어서 계속 분석하다보면 그 체계는 다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곧 어떤 하나의 개념체계를 가지고 세계를 일관되게 설명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하게 된다. 문제는 이런 해체 뒤에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해체주의는 무엇을 얘기하려는 것인가? 이런 과제가 남게 되는데, 이 대목에서 데리다는 ‘환대’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내세운다. ‘환대(hospitality)’, 즉 ‘기꺼이 받아들이다’


‘환대’라는 개념 뒤에는 근대적 이성주의, 이 세계를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근대적 사고방식에 대한 반성이 있다. 먼저 근대 계몽주의의 계보를 살펴보면 세상을 인간이 합리적으로,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는 노동 모델을 중심으로 근대를 이끌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문성원 교수는 농부 철학자로 유명한 변산공동체의 윤구병 선생이 주장하는 대로 인간의 역사에는 ‘기르는 문명’과 ‘만드는 문명’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기르는 문명’에서는 인간이 자연에 의존적이었고 자연은 숭상의 대상(신격화)이었다가, 인간이 머리가 깨고, 기술이 발전(산업혁명)하면서 인간이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의식이 지금까지 연장되고 있다. 이 근대에 들어서 인간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시건방진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런 생각이 인간을 서로 싸우게 만들고 자연까지 망가뜨리는 주된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과 갈등을 내재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많은 철학자들이 사회주의 모델을 제시했는데 80년대 후반 소련을 위시로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그 기반이었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회의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났다. 이 시기 팽배해진 기존 철학의 불완전성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그 대안을 제시했던 철학자가 레비나스이다.

 

윤리를 제1철학으로, 타자의 호소에 응답하라

 

레비나스는 철학에서 ‘제1의 과제’는 ‘존재’가 아니고 ‘윤리’라고 말한다. 여기서 핵심적인 주장은 “죽이지 말라”이다. 1?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인간들은 죽음의 강을 건너왔다. 실제로 레비나스는 전쟁의 상흔을 가진 인물로써 리투아니아에서 유태인 부모 아래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2차 세계대전 때 두 동생을 나치에 의해 잃은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우리(나)는 유한자이고 그러면서 스스로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여기지만 우리가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제한되어 있어서 우리가 느끼는 것 이상으로 우리 바깥의 세계는 넓고 높고 심오하다. 그러기에 우리의 바깥을 마음대로 죽일 수 없다. ‘타자’는 바깥이고 우리 세계가 포섭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삶은 ‘타자’에 근거해 있는 것이지 ‘타자’가 우리 삶에 종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어서 레비나스는 더 적극적으로 “타자가 우리에게 ‘호소(appeal)’한다면 여기에 ‘응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세계의 기준으로 보면 ‘타자’는 약하고 부족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우리(나)의 기준이다. 만약 ‘타자’가 약자의 얼굴로 호소해 온다면 우리는 거기에 응답해야할 ‘무한한 책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 때 주체는 지배하는 주체가 아니라 ‘응답하는 주체’이다. ‘호소’하는 자에게 ‘응답’하고 호소하는 자로서의 ‘타자’와 관계하는 주체이고 더 나아가 ‘타자’에 의해 형성된 주체이다. 그러므로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의 소리를 듣는다’고 할 때의 중립성을 내세우는 ‘존재’를 철학의 기본적 카테고리로 삼아서는 우리 삶을 제대로 읽어 나갈 수 없다. 자기중심적이고 계산적인 전체론적 사고방식은 서양의 근대적 발상에서 기원한 사회의 기본적인 이데올로기이다. 이런 입장에서 레비나스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고방식과 통하는 면이 있다. 다른 점은 보다 적극적으로 ‘타자’의 우선성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동일자와 타자라는 개념

 

레비나스는 나와 타자를 ‘동일자(the same)’와 ‘타자(the other)’로 나누어 설명한다. ‘동일자’는 자기는 물론 자기 근처의 남들도 자기와 같아야 한다는 ‘동일성’을 지향한다. 이 ‘동일성’은 사실 여러 다채로운 군상들이 살아가는 세상살이에서 가장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기는 하다. 똑같은 것을 대한다는 것은 예전의 방식을 현재의 사고와 행위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는 규범까지 ‘동일화’ 시켜 그 안에서 살아간다. 자연과학적 법칙을 발견하고 그것을 인간과 사회에 적용시킨다. 질서정연한 사회다. 세상의 법칙을 안다는 것은 세상을 구성하는 ‘동일성의 배열’을 잘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으로 대상을 분절시키고 배열해서 규정하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통하는가?

근대인들은 대체로 ‘동일성을 강요’하는 것 속에 ‘자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속에서 그 규칙을 따르면 자유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틀에 맞지 않으면 제외시키고 소멸시킨다. 유럽이 문명과 비문명을 나누어 아프리카나 아시아를 대하던 식민지정책의 태도가 바로 동일자가 지향하는 동일화의 길이다. 서구의 근대적 사고에서 ‘인격적 개인’이라는 것은 합리적인 ‘이성’을 가지고서 ‘이성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는 개인이다. 이들이 합의를 도출하여 균형을 맞추면 서로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이 서양의 정치철학이다. 그러나 이 틀에 맞지 않는 존재는 다 내쳐진다. 이런 문제의 대상은 광기, 정신병자, 소수자 등이며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언급은 서구 문명에 대한 자기비판이었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을 찾다 보니 주요하게 부각되는 개념이 ‘타자’이다. ‘타자’는 ‘동일자’의 틀에 잘 안 들어오는,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대상이다. 이 ‘타자’는 서구의 근대적 입장에서 자유를 확보하는데 지장이 있는 타자로써 매우 불편한 존재이다. ‘타자’의 영역은 내가 지배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면 보인다. 그래서 ‘동일화’의 세계는 ‘유한의 세계’이다. 테두리를 벗어나면 ‘타자’의 영역이고 ‘무한으로서의 타자’의 세계이다. 무한은 끝이 없다. ‘타자’의 특성은 ‘무한’이다.

 

레비나스에게 있어 타자의 특성

 

레비나스가 얘기하는 타자의 정의에 대해 몇 가지로 나누어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 무한으로서의 타자 : 레비나스는 ‘타자’를 우리의 한계와 틀을 넘어서는 무한하고 ‘초월(transcendence)’적인 것이라고 했다. 레비나스는 처음에 이 ‘초월’이라는 말이 신을 떠올리게 하니까 ‘외월(外越, exscendence)’이라는 말로 바꿔 쓰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다시 ‘초월’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레비나스는 ‘타자’를 우리와 같은 선상에서 보면 안 되며 우리보다 높이 봐야한다고 했다.

? 비(非)지배(non-dominance) : 지배자는 동일적인 것이고 ‘타자’는 내가 잘 모르는 다른 면모, 새로운 것을 가지고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안정된 상황을 목적으로 하는 테두리 안으로 예상 못하게 다른 것이 넘어온다. 이 때 넘어오는 것을 레비나스에 의하면 막을 수 없다고 한다. 자본과 파워가 있어도 테두리는 언젠가는 무너진다. 유한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자’는 ‘호소’하고 ‘명령’한다고 한다. 이것은 결코 타자가 지배한다는 뜻이 아니다. 타자의 호소와 명령은 안 들을 수는 있지만 도망갈 수 없는 것으로서 이것은 마치 ‘죽음에서 도망갈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리고 ‘타자’를 극복하려 하지만 ‘타자’는 이미 내 틀을 벗어나있기 때문에 실제로 ‘타자’를 극복하지 못한다. 문성원 교수는 마치 예수의 생애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어찌 보면 이런 이율배반적인 결합은 우리에게 이미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 종교라는 의미의 라틴어 ‘religio’(영어→‘religion’) : ‘religio’는 관계 맺는다는 뜻이다. 종교는 나와 같은 ‘동일자(the same)’끼리와의 관계가 아니고 ‘타자(the other)’와의 관계이다.

? 무차별하지 않음(non-in-difference) : ‘타자’는 나와 다르지만 무관심하게 방치하지 않고 무관심하지 않은 관계가 설정된다. 다르지만 관계 맺지 않을 수가 없다.

? 비대칭성 : ‘타자’와의 관계는 ‘상호성’을 넘어선다. 상호성은 장사와 무역에서 거래의 핵심이다. 근대 질서에서 상업성이라는 행위는 동등한 가치의 상품 교환을 기초로 한다. 상호성이 정치로 가면 너와 나는 ‘같은 권리소유자’라는 것을 기반으로 하여 서로를 합리적 거래를 통해 이해한다. ‘사회계약’이 그것이다. 사회계약은 상품거래자들의 상호적 거래를 정치질서로 정착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신 상태에서 인간은 같은 동일자들의 세계만 끌어안는다. 그리고 이 속에서 싸움(전쟁)과 경쟁은 끊이지 않게 된다. 정작 ‘give & take’라는 거래는 확실하지 않다. 이 속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비대칭성’은 더 확실해진다.

 

타자의 나타남과 타자의 얼굴

 

그렇다면 ‘타자’와 비대칭적이거나 무관심하지 않으면서 ‘타자’는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나와의 관계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인간의 활동 영역에서 ‘본다는 행위(시각)’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에게는 일본을 거쳐서 중역된 말이기는 하지만, 철학의 ‘철(哲)’자가 의미하는 것처럼 밝게 해서 환하게 비추면 뭔가를 알게 된다. 그러면 훤히 보이는 대상을 ‘지배’하고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 근대 서구인들의 생각이었다. 전쟁에서 높은 고지를 ‘점령’하는 이유는 뭘까? 내 눈앞의 것을 모두 발밑에 두고 낱낱이 알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이다. 첨단을 자랑하는 미국의 고공정찰기나 인공위성은 근대의 판옵티콘이 현대화된 것으로 ‘모든 것을 보는 눈’으로써 미국 제국주의 최전선에서 근무하는 첨병이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청각’을 강조한다. 기존에 강조하던 ‘시각’은 ‘지배’와 ‘점령’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었지만 타자와 같은 불확실한 것을 파악하는 데는 좌표를 직시하는 ‘시각’보다 ‘청각’이 더 필요할 수 있다. 공자나 석가, 예수의 ‘대기설법(對機說法)’이 바로 그렇다. 불확실한 청자의 다양함을 전제하는 방법이다. 세상이 무한하고 ‘타자’도 무한하니 이에 대응하고 책임지는 방식도 다양해 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청각’의 영역과 관계한다.

그리고 어떤 표현이 그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전부일 수는 없다. 그렇듯 ‘타자’는 말로 나타난다. 화가가 표현하는 방식은 그 화가의 표현 중 하나이지 그것이 화가 전부를 대변할 수는 없다. 무수히 다른 그림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 표현 하나하나에 그 화가의 정신이 들어가 있다. 그것을 ‘참가(attendance ≠ participation)’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레비나스는 ‘타자’가 우리에게 ‘얼굴’로 다가온다고 했다. 사진과 같은 어떤 형태의 시각적 현상이 아니라 ‘나타남’이다. 또한 얼굴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호소’하고 메시지를 주고 느낌을 전달한다. 레비나스는 ‘벌거벗은 얼굴’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얼굴을 통해 직접적으로 ‘타자’와 가리지 않고 만난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말로 옮기면 ‘현현(顯現, manifestation?epiphany)’이라할 수 있겠다. 낯선 자가 매개 없이 직접적으로 내개 다가와 호소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동일자와 타자, 그리고 향유

 

앞에서도 언급했던 ‘동일자’와 ‘타자’라는 개념어는 『전체성과 무한』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 ‘동일자’는 ‘유한자’가 되고 ‘무한자’는 ‘타자’가 된다. 레비나스는 동일자는 항상 테두리 바깥의 타자를 향한 형이상학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때 형이상학적 욕망은 대문자 ‘D’를 써서 ‘Desire’로 표기한다. 욕구(need)로써의 ‘욕망(desire)’과 구별한다. 당장의 결핍을 전제하지 않고서 하는 욕망으로, 예를 들어 높고 멋진 산악의 풍경이나 경외감이 드는 광경을 목격할 때 드는 인간의 감정 상태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동일자의 속성인 유한은 무한에서 ‘분리(seperation)’된 것이다. 이 때 말하는 분리는 무한이 전체이고 부분이 유한자여서 전체에서 부분이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니다. 문성원 교수는 “마치 불교의 설명처럼, 눈을 감거나 우리가 살다 죽으면 경험하는 그 세계가 사라지는 것과 같이, 내가 경험하는 세계, 전체화 할 수 있는 세계가 분리이다.”라고 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전체는 ‘유한자’에게서만 만들어지는 것으로 ‘동일자’들이 모든 것을 ‘동일화’ 시키는 것을 두고 전체화 했다고 이해하기 쉽지만 레비나스의 시각에서는 ‘동일자’의 성립 자체가 분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안과 밖을 구분했을 때 동일화된 테두리가 전체가 되어 동일화 되지 않은 밖을 분리시키는 것은 성립될 수 없다. 역으로 무한이 전체이고 부분이 유한자라는 이해도 성립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전체라는 개념을 상정하는 유한이 있어서 무한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무한은 전체라는 개념이 있을 수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 ‘무한’이 있음으로 해서 ‘유한’과 ‘무한’이 생겨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의 분리이다. 그것이 레비나스에게 있어 ‘안과 밖(interiority & exteriority)’의 성립이다. 안은 항상 밖을 전제하고 밖과 더불어서 성립하는 것이다.

레비나스는 인간은 분리된 상태로 어떻게 살아나가는지에 대해 설명해 나간다. 그 첫 번째로 제시하는 개념이 ‘즐김(jouissance)’이다. 하이데거의 경우 ‘불안’ 또는 ‘죽음을 향한 존재’ 등의 얘기를 하는데 레비나스는 하이데거가 인간의 존재 의미를 한계 짓고 규정하려 한다고 하면서 대단히 부정적인 출발이라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불안에서 출발하지 않고 즐김에서 시작한다. 향유이다. 그리고 인간은 어떠한 현실적 상황에 있건 간에 우리의 주위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공기, 물, 기본적 먹거리 등)에 대한 ‘향유’로 귀결된다고 한다.

문제는 ‘자연적 향유’의 영역이 항상 ‘불안정성’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테두리 치고, 재화를 수집하고, 집이 생겨나고, 소유, 노동의 개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동일성을 확보한다. 그래서 내 ‘집’, 내 ‘영역’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문성원 교수는 이것을 레비나스 고유의 주장이라고만 볼 수 없다고 한다. 하이데거도 이런 얘기를 먼저 했었기 때문이다. 단, 레비나스는 ‘타자’와 관련짓기 위해 앞서의 언급을 재해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레비나스는 기존 서양철학의 제 문제를 재해석 하여 근사하게 풀어내고 있다.

 

응답과 환대

 

레비나스에 의하면 ‘타자’는 내 테두리 밖에 있는 존재이기에 ‘낯선 자’이지만 내 옆에 붙어 있고 항상 나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이웃’이다. 어찌 보면 같은 한 테두리 안에 있는 이웃들 중에도 나에게는 낯선 부분이 분명 있어서 사실 ‘이웃’과 ‘낯선 자’는 다르다고 볼 수도 없다.

문성원 교수는 레비나스가 항상 ‘호소에 대한 응답(response)’은 곧 ‘책임(responsibility)’과 관계 지었다고 한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소유하고 나의 혹은 우리의 테두리가 있으니까’라고 생각하면 ‘타자’와의 관계는 끊기고 자신은 테두리 안에 매몰된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이것은 삶이 아니라 죽은 삶이다. 이에 유일한 소통은 ‘응답’하는 것이다. 내 집 밖의 타자를 내 집에 맞아들임, 이것이 ‘환대(hospitality)’이다. ‘환대’야 말로 우리 삶의 근본적인 자세라고 『전체성과 무한』에서 강조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의 약점은 언제나 내 집의 테두리라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비나스는 나중에 이것을 잘 언급 하지 않는다. 이후 레비나스는 누군가 내 것을 따지기 이전에 ‘타자’는 이미 나한테 와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내 집이라는 생각과 내 테두리를 고수하려는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레비나스의 환대는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환대’와는 다른 점이 있다. 먼저 계몽주의자의 연결 선상에 있는 칸트는 환대를 ‘상호적 관계’에서 말한다. 칸트의 환대는 상호적인 관계이다. 남이 나의 집에 오면 ‘환대’하듯이 나도 남의 집에 가면 ‘환대’받을 권리가 있다는 ‘권리의 측면’에서 말한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는 거다. 내 의지의 주장이 입법의 원리에 의해 보편적으로 타당하다는 것. 역지사지로 네가 환대 받고 싶으면 네가 먼저 환대하라는 말이다. 이것은 ‘조건적 환대’이다. 가장 현실적이고 승률이 높은 태도이다. ‘give & take’ 전략이랄까.

그럼 ‘무조건적 환대’는? 레비나스는 칸트의 방법만 가지고는 삶에 비전이 없다고 생각했다. 레비나스는 ‘무조건적 환대’가 더 근본적이라고 한다. 마치 부모가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문성원 교수는 물론 자연과학자들이나 진화론자 중에는 무조건적 환대도 ‘give & take’의 일부분이라 말한다고 하지만 레비나스는 현상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 내 입장에서 내 삶의 유의미한 입장은 ‘무조건적인 환대’라고 보았다. 그래서 무조건적인 환대가 조건적인 환대와 결합해야 제대로 된 ‘환대’로서 작동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데리다의 『환대에 대하여』가 있다.

레비나스는 ‘타자’를 ‘환대’해야 하는 근거 중 하나는 내가 태어나 이 세상의 테두리 안에서 내 집이 나를 받아주는 것처럼 안락함으로 받아주는 세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듯이 타인을 받아주어야 한다. 레비나스는 그것과 관련하여 받아들이는 것을 ‘여성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존재와 달리, 존재성을 넘어서

 

‘존재’에는 이해 ‘타산적(inter-esse)’인 속성이 있다. 우리가 ‘존재’에 집착하게 되면 내 것을 지키려하고, 규정하려하면 다툼과 전쟁을 피할 수 없다. 내가 내 집을 차지하면 내 집을 차지하지 못한 사람은 그 영역에서 밀려난다. 이것이 ‘존재’의 ‘점령’하며 ‘독점’하려는 속성이다.

레비나스는 우리가 ‘독점’한 자리를 말하면서 “태양 아래 나의 자리(Pascal)”에 대해 묻는다. 이 자리는 다른 사람이 내가 거기에 있음으로 해서 밀려난 자리이다. 내가 정규직이 되면 다른 사람은 비정규직이 된다. 이것은 곧 “내가 존재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연결된다. 내가 내 자리를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 일종의 ‘찬탈’이라는 것이다. 레비나스에게 있어서 영역을 차지하고 점령하고 밀어내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존재와 달리’ 살아야 한다. ‘존재성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존재와 달리’하는 방법은 자신이 차지하는 곳에 대해 버겁게 생각하고 타자에 대해 공경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문성원 교수는 이런 점에서 레비나스가 조금 극단적으로 나간 부분이 분명 있다고 한다. 그래서 레비나스의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은 레비나스의 주장을 거부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또한 실행하기도 어려운 것 아니냐고 한다. 방향은 있는데 따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레비나스가 말한 ‘존재와 달리 사는 지평’이 가능한지의 여부가 레비나스 철학이 우리에게 남긴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쨌든 여기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쓰기와 차이[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데리다⑨

 

해체란 무엇인가 – 글쓰기와 차이[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데리다⑨

강사 : 이정은(연세대 외래교수)
후기 :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한국사회에서 민주화 운동이 강렬하게 일어났던 1980년대는 맑스-엥겔스의 사회주의 노선에 입각한 이론이 사회적 대안으로 자리 잡았었다. 그러다가 90년대 이후 공안정국이 약화되고 사회 전반에 민주화가 일정 정도 진척되면서부터 과연 유물론적인 입장이 우리사회의 대안으로 기능하기에 적합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한국사회를 설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입을 추구하는 시도가 있었다. 실제로 포스트모더니즘을 통한 여러 대안이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포스트모더니즘 안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철학자가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이다.

데리다는 프랑스에서 살고 거기서 죽었지만 태어난 곳은 알제리이다. 이 평범하지 않은 경력은 그가 알제리 출신으로서 프랑스 문화와의 충돌과 차이에서 느끼는 이질감을 통해 자신을 주류 프랑스 사회에 대한 이방인이자 타자라고 여기는 근간이 되었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아홉 번째 시간에 만나 본 철학자 데리다의 이런 생각은 까뮈(Albert Camus, 1913~1960)의 소설 의 내용과 오버랩 된다. 이번 강의를 맡은 이정은 교수는 사람들이 보통 프랑스 사회를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회로 이해하지만 한편으로 인종문제와 같은 첨예한 사안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영향력의 범위 안에서 오히려 폐쇄적이 될 수도 있다고 하면서 데리다는 까뮈가 고발한 프랑스 사회의 모습을 통해 어떤 집단의 규정 밖에 존재하는 인간(이방인)의 실존적 고민이 남의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고 자신에게 진지하게 다가왔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크 데리다/ 출처: www.fjalareview.com

 

타자의 경계를 해체

 

데리다는 이방인, 즉 타자의 경계를 ‘해체’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 해체의 과정에서 타자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그렇지 않다고 하기에도 힘든 그런 지점이 있음을 설명해내고 싶어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방인이나 타자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집단의 규정 안에 있는 인간으로서, 주체와 경계 밖의 타자로서 주체가 아닌 것의 구분은 굉장히 유동적이고 자의적이다. 양자를 구분하는 차이 역시 그렇다. 그렇다면 이 차이는 무엇을 가지고 규정하고 만들어지는가?

무언가를 둘로 나눌 때 작동하는 차이는 기존의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이 차이를 만드는 근저의 또 다른 ‘차이’가 있다. 데리다에 의하면 이 차이를 만드는데 작동하는 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다. 그러나 차이를 만들어 내는 ‘차이’가 작동하는 것은 확실하다. 이방인과 비이방인이 나누어지는 것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고 이것은 기준이 되는 차이에 의해 나누어진다.

데리다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차이를 근본적으로 반성하면서, 차이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개념적으로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경계를 만드는 기존의 지점은 해체되고, 나누는 기준이 사라지니까 이 모두를 다시 새롭게 규정해야할 상황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데리다는 기존철학사 전체를 한마디로 설명해내려 한다.

 

탈근대로서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해체주의

 

데리다는 포스트모드니즘을 ‘탈근대’라는 개념으로 규정했고 ‘해체주의’라는 독자적인 용어를 써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다. 데리다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차이’로서의 근원적인 어떤 것을 얘기하면서 자신의 이런 생각은 예전부터 계속 있어왔던 사유의 전통에서 발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철학사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그 선구적인 인물을 발견하여 지목한 것이 니체(Nietzsche, 1844~1900)와 하이데거(Heidegger, 1889~1976)이다. 그리고 이들을 분석하다보니 자기가 말하는 지점에 더 가까운 사람을 니체라고 봤다. 그런데 이정은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객관적 입장에서 니체를 본다면 오히려 후기구조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더 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것을 해체하는데 그 특징이 있지만 이러한 발상을 가지고도 결과적으로 새로운 구조가 만들어짐을 인정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와 그것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가 존재한다. 데리다는 후자의 입장이다. 이정은 교수는 데리다가 탈근대라는 개념에 이어 다시 해체주의라는 용어를 만들고, “나의 발상은 니체에 연원한다”고 했지만 사실 니체를 잘 들여다보면 데리다가 거부했던, 구조를 깨고 또 깨 봐도 부수적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다는 점을 수용한 사실이 분명 있다고 한다. 푸코의 구조주의에 대한 입장(후기 구조주의)이 이와 같고 이런 발상을 전개시킨 사람들의 계보는 니체-푸코-들뢰즈로 연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리다가 니체를 자기사상의 선구자로 말하는 이유는 먼저 ‘실체’ 개념을 거부했다는 점에 있겠다. 그러나 ‘실체’ 개념에 대한 거부는 니체 이전의 경험론자들이나 고대의 회의론자들도 모두 언급한 얘기다. 데리다에게 있어 니체를 해체주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점은 ‘인과관계’를 거부했다는 점이다. 보통 ‘인과관계’는 어떤 학문의 지식체계나 개념체계이던지 간에 그 체계의 기본 틀로 전제된다.

 

인과관계를 거부

 
흄(David Hume, 1711~1776)과 같은 경험론자들에 의하면 개별적 현상과 내가 사고하는 인과개념은 서로 이질적이다. ‘물건 A’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소리현상 B’가 일어난다는 명제가 있다고 할 때, ‘A’와 ‘B’에 대해서는 인지했지만 다시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경험했는가? 라고 묻는다면 경험론자들은 그 둘 사이의 인과성 자체를 경험한 것은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서로 다른 현상들을 경험한 것뿐이다. 또 경험론자들은 모든 지식은 감각경험으로 환원되지 않으면 지식이라 할 수 없다고 한다. 흄은 인과관계는 필연성이 없지만 인간의 지성이 마치 필연성이 있는 것처럼 여겨서 지식을 만들어내고 학문이라는 체계를 만들어 냈다고 했다. 그리고 니체는 인과관계에는 필연성이 없으므로 반드시 거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정은 교수는 다음같이 설명한다. “예를 들어보자, 사람들이 돌멩이는 단단하다고 하지만 돌멩이의 단단함은 경험의 결과이다. 내가 돌멩이가 단단하다고 느낀 것과 자연물인 돌멩이의 단단함 사이에는 아무 인과관계가 없다. 돌멩이를 만졌을 때 스펀지와 같이 말랑말랑 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돌멩이에 대해 결과적으로 단단하다고 말한 것을 돌멩이에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 니체의 입장이다. 돌멩이는 단단하다고 본질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돌멩이가 스펀지와 같다고 규정 한다면 이경우도 스펀지와 같다고 느낀 나의 감각과 돌멩이 사이에 인과관계를 적용시켜야 하기 때문에 성립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설명해보면 어떤 존재에 대해 파악하고 개념규정을 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형성’된 것으로서 여기에 인과관계가 성립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결과적인 것은 본질이라고 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왔던 모든 학문, 지식체계나 경험적인 현상들도 실제 대상과 일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돌멩이가 단단하다는 것은 본질적 규정이 될 수 없다.

돌멩이는 상황에 따라 단단하게 또는 물렁하게도 느껴질 수 있다. 니체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세상에 있는 인간 외의 모든 존재들은 생물적인 감각에 있어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똑같은 돌멩이도 다른 존재들에게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규정된다. 니체가 말한 ‘다른 세계’라는 것은 똑같이 보편적으로 규정된 세계를 각각 다르게 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체가 본 세계가 곧 자기의 세계 전부라는 것이다. 똑같은 세계를 경험한 것처럼 보이지만 똑같은 세계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본래의 모습이라는 것은 없고 오직 구성된 결과물만 있다. 인과관계는 없다. 그래서 인과관계로 만들어지는 개념도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고, 그 개념으로 만들어지는 체계도 없다.

데리다는 본질적인 돌멩이의 단단함은 없는데, 돌멩이의 단단함이 없다는 그 ‘지점’만을 말하려 한다. 데리다는 니체가 본질적인 것을 깨는 그 지점을 보았고, 봤던 그것만 말하겠다는 입장이다. 데리다는 항상 인과관계를 가지고 이 세계를 구성하게 되면 구성되는 방식이나 지점마다 여러 개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한계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리고 데리다는 니체가 구조주의적인 맥락이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 개념적인 이성의 체계를 깨고 나서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을 고민하다가 결국 웃음을 날려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 평한다.

 

로고스적 질서를 비판

 
‘로고스(logos)적 질서’를 가지고 있는 것들은 모두 ‘이원론적’인 특징으로 전개된다. 남자와 여자, 선과 악, 해와 달, 이성과 비이성, 정상과 비정상 등의 이항대립으로 나누고 이렇게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경계를 설정한 후에 양자에 대해 좋고 나쁨의 가치를 평가하고 대입한다. 정리하면 근대를 비판한다는 것은 모든 로고스적 체계를 가지고 있는 질서에 대한 비판이다. 이것은 인간의 사유에 이분법적 가치평가를 개입시키는 이원론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 로고스적인 질서의 꽃은 철학이다. 데리다는 형이상학적인 모든 철학체계를 비판하고 이와 유사한 모든 학문체계, 개념체계를 비판하겠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고대로부터 이어진 로고스적 전통을 해체시키기 위해서는 현대의 인간과 근접해 있는 근대 철학의 자아 중심, 주체적 철학, 주관주의 요소와 특징을 해체시키는 것이 주요하다고 보았다. – 근대 철학의 정점(Hegel 철학)에서 변곡점이 생겼을 때 프랑스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구조를 통해 철학을 위시한 근대 전반을 비판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 데리다는 근대 전반을 비판하는데 이 비판은 이성비판, 종교비판(신비주의), 선악대립비판, 실체비판, 개념비판(은유) 등 대부분의 영역을 대상으로 한다.

보통 이성중심주의는 로고스 중심주의이고 로고스 중심주의는 ‘음성중심주의’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로고스는 인간의 이성으로부터 나오는데 전통적인 생각 안에서 이성은 영혼의 작용이다. 그리고 영혼의 사유는 이성적 작용으로서 밖으로 표출되는데 이 때 표출되는 형태는 ‘음성’이다. 이 음성은 언어체계를 만들고 이것은 다시 문자로 표현된다. 기존의 철학체계에서는 모든 것이 영혼의 울림이 음성으로 드러나는 것에서 출발하여 음성중심주의적 체계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완결된다. 음성은 이른바 신의 계시를 상징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가 ‘신탁’을 받았다는 표현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신적 질서를 뛰어넘지 못하는 전통적인 기존의 철학체계에서는 항상 이성 위에 음성이 있다.

이를 비판하기 위해 ‘문자중심주의’를 사용하는데, 데리다는 기존과 다르게 새로운 개념의 문자학 만들기를 선언한다. 이른바 ‘그라마톨로지(Grammatology:신문자학)’이다. 데리다가 말하는 ‘그라마톨로지’는 새로운 대안의 지평을 드러내는 글쓰기로, ‘일반적 글쓰기’이다. 차이로 담기지 않는 차이로써 ‘차연’을 그려내는 과정이다. – 바로 차이를 만들어 내는 차이가 ‘차연’이다. – 이 차이는 개념적 질서나 로고스적 질서로 잡히지 않는 차이이며 기존의 개념규정으로도 잡히지 않는다. 개념으로 잡히지 않고 언어로 접근도 안 되지만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흔적’(또는 ‘자취’, ‘발자국’)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기존의 개념적 체계를 가지고 접근하기 때문에 그 차이를 잡을 수가 없다. 또 존재 자체를 언어로 설명하려고만 하면 그 경계밖에 있는 차이는 잡히지 않는다. 이런 것을 잡아내려면 새로운 글쓰기로 찾아내야 한다.
 

음성과 문자의 사이

 
데리다는 음성과 문자의 관계에 있어서 문자가 음성의 영향을 받아 음성을 표현해 내는 수단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음성을 일탈하는 부분도 있다고 한다. 기존의 로고스적인 전통에서는 문자가 음성에 일탈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제거하고 음성에 맞게 만들었지만 데리다가 보기에는 음성과 문자는 각각 따로 작동하는 체계이다. 이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지만 기존의 개념으로는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데리다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차이’이면서도 보이지는 않지만 작동하는, 파악되지 않는 무언가 있다고 한 것이다.

우리가 예를 들어 이방인과 비이방인의 개념을 구별하듯이 하려면 둘을 나눌 수 있으면서 눈에 보이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 이 개념은 로고스적인 방법으로써 철학자들이 보여주는 장치이다. 그렇다면 데리다가 말한 잡히지 않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데리다의 용어 ‘차연’은 ‘diff?rance’라고 쓰고 프랑스어로 기존의 ‘차이’라는 말은 ‘diff?rence’라고 적는다. 이 두 단어의 발음은 [dife???ːs]로 서로 같다. 이정은 교수는 알파벳 ‘e’와 ‘a’에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 음성 발음은 같지만 눈으로 보면 이 둘은 분명 다른 단어이다. 데리다는 이 두 단어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고 하면서 동시에 음성중심의 문자 체계는 이 둘의 차이를 드러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음성중심주의의 개념체계 아래에서 ‘차이-diff?rence’는 있지만 ‘차연-diff?rance’은 없는 것이 되고 문제가 있어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여기게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둘이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며 나중에는 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diff?rence’만 맞다 한다면 이 개념에 맞는 대상만 이성적 질서에 맞는 체계라고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이해체계로 잡히지 않는 모든 것은 거짓이고 틀린 것이 된다. 또 더 나아가 틀렸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있는지 조차도 생각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조차도 망각해버린 상태가 되고 만다.

이정은 교수는 차이에 대해 모순적 질서를 바탕으로 확인해 들어가 보면 이 둘 사이에 경계를 구획하는 ‘차이’가 있어야 하는데 이 차이조차도 음성중심적인 구조로 진행되다 보니까 그 질서를 벗어나는 것을 간과하게 되었고, 처음엔 알았지만 무시(은폐)하게 되고 더 나아가 시간이 지나면서 무시(은폐)했다는 것조차도 잊어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존재자가 존재에 의해 드러나는 우리 세계의 구성 안에서 단순히 세계가 존재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고 인식하다보니까 마침내 존재에 대한 망각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존재가 망각된 것조차도 모르고 살 수밖에 없던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데리다는 음성과 시각 사이에서 작용하는 흔적을 보여줬다고 했다. 이 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그것은 일반적으로 ‘신비’라고 인식된다.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비가 곧 성스러움이 되고 성스러움이 신비로운 감정에서 나오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종교가 그 신비주의를 강화하여 사용하는 것을 목도한다. 종교적인 입장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사실 데리다는 종교를 비판하려는 입장에서 이런 얘기들을 했는데 오히려 역으로 그들을 강화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인간은 흔적, 또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그 밑에 있는 그것을 신비로 알아차린다.

 

차연의 의미와 상징

 

차이를 만드는 근간이 되는 배후의 무엇이며 보이지는 않지만 작용하고 있는 이것을 ‘차연’이라고 한다. 들리지도 않고 시각적으로 파악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데리다는 음성과 문자를 통해 그 상황을 앞서와 같이 보여주고 있다.

‘차연’에 운동이 있는데 그것이 ‘자취’(‘흔적’ 혹은 일종의 ‘발자국’과 같은 이미지)를 만든다. 그러나 자취가 ‘차연’은 아니다. 이것을 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아우라aura’라고 할 수 있겠다. 차이를 만들어내는 ‘차연’이 있고 그 차연이 만들어낸 차이를 토대로 철학자들이 사용하는 ‘동일성과 비동일성’, ‘동일성과 차이’ 이런 개념들에 차이들이 작동하고 있고 이 차이에 대해 그 배후에서 차연이 작동하고 있다. 보통의 우리들은 차이까지는 알 수 있지만 ‘차연’은 잡아내지 못한다. 그리고 마치 있지도 않은 것처럼 처리해 버린다. ‘차연’이라는 지점은 이성적이거나 감각적인 질서와 체계로 파악이 되지 않는 어떤 지점이다.

데리다는 기존에 만들어 놓은 체계가 앞서의 얘기들을 무시하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런 체계와 개념들의 분류는 정확한 나눔이 아니라 일시적인 경계일 뿐이라고 한다. 데리다가 이런 설명을 한 이유는 diff?rance ‘a’를 통해서 ‘trace’([t?as]프랑스어:발자국, 자취, 흔적) 와 같은 세계를 설명하려고 하는 의도였으며 이렇게 ‘차연의 유희’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예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말하려했기 때문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헤겔(Hegel, 1770~1831)도 그랬다.

이정은 교수는 다음과 같이 예를 든다. “헤겔은 우리가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앞에 쇠로 만든 망치가 있다고 치자. 그리고 이 망치에 ‘물건A’라는 또 다른 이름을 부여하자. 이 ‘물건A’-망치는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객관적 질료인 쇠를 재료로 만든 물건이다. 단, 만약에 이 물건의 용도와 이름을 정확히 모른다면 우리는 일단 쇠붙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물건A’-망치는 개별적으로 경험 가능한 대상이다. 이것이 못을 박는 도구인 망치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물건에 쇠붙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쇠붙이라는 이름은 여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순전한 쇳덩어리 ‘물건B’에도 적용되는 보편적인 이름이 된다. 그랬을 때 내가 개별적으로 경험한 망치로서의 ‘물건A’와 순전한 쇳덩어리 ‘물건B’ 사이에는 쇠붙이라는 이름의 불일치가 일어나게 된다.(‘물건B’가 쇠붙이라는 개념에 더 가깝게 일치하는 이름이다)”

“그런데 인간은 감각적으로 경험한 어떤 것을 개념으로 규정하려는 버릇이 있다. 앞에서 예를 든 바에 따르면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것과 개념적인 것 사이에는 불일치가 일어난다. 그래서 인간은 불일치를 극복하고 양자를 연결하여 설명하기 위해 이 사이에 이런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중간개념으로써 쇠붙이 이미지를 부착시키는 기호를 붙여준다. 그리고 기호가 정착되면 이름을 붙인다. 이 때 중간의 매개 고리로서 기호가 만들어지는데 데리다는 그것을 알파벳 소문자 ‘a’라고 했다. 기호는 감성과도 연결되고 보편적 개념과도 연결된다. 그리고 둘 다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기호가 보편적 개념으로 완전히 전화되는 순간이 오면 기호는 쓸모가 없어지게 된다. 이 쓸모없는 기호를 헤겔은 죽어있는 무덤 피라미드와 같다고 했고 알파벳 대문자 ‘A’라고 표현했다. ‘A’가 보편적으로 잡히지 않는 어떤 상징적인 장치라는 것이다.”

알고 보면 헤겔조차도 우리가 지금까지 말한, 보편개념으로 잡히지 않는 어떤 지점을 언급한 것이다. 로고스적 체계가 강한 헤겔은 ‘A’라고 표현했고 이런 사실을 토대로 데리다는 ‘a’라고 표현했다. 차연으로서 ‘a’가 음성중심적인 질서에서 사라지고 없어지며 은폐되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곧 ‘A’는 차연 ‘a’의 무덤이자 거대한 묘비이다. – ‘A’의 삼각 형태는 피라미드(무덤)의 형태와 닮았다. – 죽어있는 무덤이기에 누가 죽어있는지, 더 나아가 죽어있는지조차 모르는 그런 상황이 된다. 데리다는 헤겔이 이것을 ‘A’라는 기호로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데리다는 자신이 말하려는 이런 상황과 경제학의 차원이 비슷하다고 했다. 문자 ‘a’의 죽음이 경제학의 차원과 설명하는 것이 닮았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철학자들의 개념 중심적, 로고스 중심적, 의미 중심적 차원을 ‘제한 경제학’이라고 불렀다. 데리다는 전통 철학자들의 제한 경제학적인 구조를 비판하면서 데리다 자신의 대안으로써 철학을 경제학에 비견하면 실은 ‘일반 경제학’적인 질서와 같다고 한다. 특히 헤겔에게는 제한 경제학만 있기 때문에 일반 경제학으로 전환하여야만 이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여기에서 일반적 글쓰기가 등장한다. 이것이 새로운 문자학의 이름이다. 물론 데리다의 이런 설명은 무덤의 어원 ‘oik?sis’와 경제(economy)의 어원인 ‘oikos’가 서로 동족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에서 출발했다.

 

차연이라는 용어의 문제

 

차이라는 것은 로고스적인 질서 속에서 나온 용어이다. 그래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차이라는 방식으로 ‘차연’을 설명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더 세밀하게 보면 데리다는 자기가 말하는 ‘trace’를 설명하기 위해 ‘차연’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존재자 배후에 있는 존재의 모습인 ‘차연’을 사람들은 계속 놓치고 있다는 것.

그런데 데리다 자신도 기존의 철학적 질서에 속에 있는 인간이기에 ‘차연’이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하다보니 이것이 일정한 개념으로 고착됨을 느꼈다. 자신의 방식이 기존의 체계에서 설명하는 방식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그래서 데리다는 ‘차연’이라는 용어를 고정시키면 안 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데리다는 ‘차연’을 ‘유보’, ‘원문자’, ‘원흔적(공간화&시간유보)’, ‘공간화’, ‘대치’, ‘약’, ‘처녀막’, ‘변두리-흔적-움직임’ 등으로 대체한다.
– 예를 들어 ‘약’이라는 것의 의미는 이렇다. 우리가 약이라고 쓰는 것들 중에는 본래는 독약이라고 불리던 것들도 있고 독약이 아닌 순한 약성을 가진 것이 있을 수도 있다. 현대에도 보면 전문의약품의 경우 투약 대상이 아주 건강하거나 의약품의 효능에 맞는 증상이 아닐 때, 그 상황에서는 100% 약이라고 할 수 없다. 약이라는 용어의 의미 설정은 굉장히 주관적이고 자의적이다. 그래서 이런 용어가 사용되는 영역은 존재자의 질서이지 존재의 질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데리다는 용어를 이렇게 자주 바꾼다. –

 

철학은 상징과 은유에서 출발

 
기존의 로고스적인 질서를 통해 만든 개념들은 지극히 자의적이다. 소쉬르(Saussure, 1857~1913)는 언어를 문자로 만든 그 사이에 연결고리가 없어 문자는 지극히 자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언어를 만들기 위한 기표도 자의적이다. 이를 토대로 우리도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들이 자의적임을 주지할 수 있다.

이정은 교수는 “여자화장실 표시를 볼 때, 그 기표가 여자화장실을 상징함을 알지만 사실 둘 사이에 본질적인 관계는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성과 영혼의 울림 작동도 그렇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표현하는 문자체계인 한글과 영어도 자의적이 된다. 음성과 문자 간에는 자의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자의적인 것을 규정해놓고 절대적이라고 인정하는 태도 자체가 존재의 본래 모습을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근간이 되고, 이른바 우리가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성의 결과물인 언어, 개념, 철학 체계가 모두 자의적인 체계라는 것을 또한 알 수 있다”고 한다.

데리다에 의하면 철학은 자체가 은유이다. 은유에서 철학이 탄생했고 개념도 은유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철학언어 모두가 수사이다. 다만, 감각적 모습을 가지고 비유적인 모습을 설명했는데 이후 감각적인 개념이 탈각되면서 기존의 것은 마치 비감각적인 개념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착각조차도 지워졌다. 그래서 철학은 이성적?논리적 개념이라고 인식하지만 알고 보면 철학체계는 모두 은유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감각적인 아픔을 표현할 때 어떤 것에 비유한다. 마찬가지로 철학의 경우 이데아에 대한 설명도 비유에서 시작했다. ‘동굴의 비유’가 그렇지 않은가. 플라톤의 이데아는 무엇인가? 이정은 교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플라톤의 이데아를 설명할 때 논리적인 설명으로 이해를 못하면 곧잘 태양에 비유해서 설명한다고 한다. “이 세상은 태양이 있어야 빛과 어둠을 구별한다. 모든 존재자의 구별 근거가 태양이고 모든 생명체의 에너지활동의 근원이 태양이다. 마찬가지로 선의 이데아는 태양과 같아서 모든 이데아의 근원이 된다.”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가 쉽다. 그러다가 학생들이 선의 이데아를 이해하게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양을 잊는다. 잘 살펴보면 학생들은 개념적인 파악 이전에 비유를 통해 대상을 이해했다. 그런데 시험시간이 되면 감각적인 설명이 아닌 논리적인 설명으로 기억하고 답안지를 써내려간다. 그리고 감각적인 설명이 있었는지 조차 잊어버리고 철학은 이성적인 논리체계라고 기억한다.

 

로고스적 질서에 기생하기

 

옛날에 양피지에 쓴 글은 시간이 지나 오래되면 글이 흐릿해지면서 지워지게 된다. 그리고 후대 사람들은 그 위에 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전에 쓴 글의 흔적이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희미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현대미술에서는 시약을 써서 이 사실을 밝혀낸다. 마찬가지로 감각적 체계로 글자 모양이 만들어진 이후에 개념적 체계로 이전의 글 위에 문자를 덧썼다면 개념적 체계 배후에 감각적 체계가 있고 다만 그 감각적 체계는 지워진 것처럼 흔적이 흐릿하게 남을 뿐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의 영역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 데리다는 철학자들이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말하는 텍스트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간극이 보인다고 했다. 헤겔이 보편개념으로 잡히지 않는 어떤 지점의 상징인 기호 ‘A’를 얘기 했듯이 텍스트 사이에 들어가면 그 간극이 보인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형이상학적 체계 안으로 들어가 형이상학적 체계를 상징하는 거인 위에 ‘등 타기’ 하여 앉아서 얘기하거나 ‘기생’하여 철학하는 방법을 말한다. – 데리다는 자신을 기생충이라고 비유한다. – 대신 형이상학적 체계를 깨버리거나 죽여 버리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기생충은 숙주가 죽으면 자신도 죽기 때문이다. 데리다에게 ‘차연’은 ‘기존 형이상학적 질서’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차연’을 얘기하면서 ‘차연’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차연’을 은폐한 로고스적 질서를 죽이지는 않는다. 또 ‘차연’은 ‘차연’만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다. 기존의 텍스트 속에 들어가 줄타기 하면서 얘기해야 한다. 데리다는 로고스 중심주의를 비판하지만 로고스적 질서 안에서 기생하는 기생충으로서 숙주인 로고스적 질서에 일치되지 않고(될 수도 없고) 다만 기생충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알리는 것이다.

데리다는 해체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서 ‘차연’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이런 과정을 보여주는 상황이 ‘차연’의 상황이 된다. 만약 데리다의 철학을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 Ponty, 1908~1961)의 몸철학과 비교한다면, 몸철학에서는 주체와 객체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육체가 정신을 컨트롤하기도 하는데, 간혹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구분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 애매한 것이 바로 몸이다. 데리다의 해체는 그 구분하기 힘든 상태를 맞닥뜨린 상황에서 몸을 통해 구분하는 절대적인 상태를 깨부수는 것이다. 이성적이거나 비이성적인 상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종의 이분법에 대한 비판으로 작용한다. 쉽게 말하면 메를로-퐁티가 말하는 차원은 차이의 차원에 머물지만 데리다의 ‘차연’은 그것보다 하나 더 나아가는 개념이라고 설명 가능하다. 메를로-퐁티와 데리다는 서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데리다가 더 멀리까지 간다.

<존재의 충만, 간극의 현존>?[8월 월례발표회 후기]

?[2013년 8월 월례발표회]

 

<존재의 충만, 간극의 현존>

후기: 박은미 (건국대)

 

 

 

어렵다. 책 제목 너무 멋있는데 멋있는 만큼 내용이 어렵다. 토론 사회를 맡은 죄(?)로 6만원이 넘는 거금을 책값에 투여하고 두꺼운 책을 마주 했다. ‘으와 좋겠다, 광제형은…이렇게 멋있는 강해서를 내시다니! 나는 흉내도 못 내겠는 걸!’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막상 강연회에서 나는 사회를 보느라 내 질문을 삼켜야 했다. 열띤 질문을 비집고 사회자가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글은 후기라기보다 사회자의 못 다한 질문을 하는 글이 될 것이다. 사실 질문이라기보다는 나의 이해가 맞는가 하는 확인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후설 연구서로 『의식의 85가지 얼굴』(그린비), 퐁티 연구서로『몸의 세계, 세계의 몸』(이학사)등을 써오신 내공으로 이제 퐁티의 원류라고도 할 수 있는 사르트르 강해까지 쓰셨으니 현상학을 거의 다 훑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책으로는 쓰지 않으셨지만 하이데거와 푸코에 대한 연구를 거쳐 사르트르에까지 이르셨으니 이렇게 말해도 될 것이다.

철학의 제 1의 물음이 ‘도대체 이 모든 것은 왜 존재하는가?’임은 철학에 관심 가진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다. 그리고 이 문제가 궁금하지 않은 인간이 있을까? 사실은 이 질문 때문에 우리 모두는 그리도 외로운 것이다. 자신이 그렇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든 모르든 말이다. 자기 안의 어두움이나 막막함을 외면하고 회피하기만 하는 사람은 자신이 이 질문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이 질문에 시달리고 있다. 도대체 왜 존재해서 이렇게 고통스럽냐는 말이닷!

모든 철학자들의 철학은 이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는 특히나 이 질문을 상당히 성실히 물고 늘어진 역작이라 생각된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즉자 존재의 우연성’을 열심히 입증하고 있다. 존재는 단적이다. 존재가 왜 존재하느냐 하는 질문은 인식에서 나온다. 이 놈의 존재는 인식과 상관없이 ‘그저 있다’.

ⓒ 박영미

“존재는 그 자신으로 꽉 차 있고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존재는 그 자신에게 불투명하다”고 사르트르는 말한다. 존재는 존재 자체를 의문시하지 않는다. 존재가 스스로를 의문시한다면 이미 그 존재는 그저 단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광제 선생님은 강해에서 “사르트르는 즉자를 무한한 밀도를 지닌 존재의 충만으로 보고, 그 존재의 감압에 의해 의식 즉 대자가 생겨난다고 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쉽게 표현할까?

생각해보자. 우리 아이를 기를 때 나는 아이를 기르는 과정이 ‘행복하다’고 의식하지 못했다. 지나놓고 보니 행복했다. 아이가 걷고 말을 하고 재주를 하나씩 늘려 갈 때마다 순수하게 기뻐했다. 그 성장에 순수하게 기뻐하면서도 나 스스로 기뻐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 때도 생활비 걱정, 어르신들 걱정이 있었으니 다른 걱정거리에 마음을 뺏겨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 순간만큼은 기뻤던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그게 아니라 인식은 늘 미네르바의 올빼미처럼 늦게 찾아오기 때문인 것 같다. 행복은 사라진 후에야 빛을 낸다는 영국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정말 행복하면 자신이 행복한지 어쩐지 판단할 새 없이 그 순간 충분히 행복해서 행복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행복하기에 바빠 행복하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참으로 인식에로 저주 받았다. 행복할 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행복이 달아날까봐 무서워요” 이렇게 말하는 순간, 이미 그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 행복한 순간에도 행복하지 않을 순간에 대한 걱정을 미리 당겨 함으로써 행복을 상실한다. 행복할 때 그저 행복하면 좋을 것이다. 슬플 때 그저 슬프면 될 것이다. 왜 나는 슬퍼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편할 것이다. 그러니까 쇼펜하우어 말이 맞다. 인간은 고통 때문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표상 때문에 괴롭다! 존재는 그저 존재하면 되고 존재는 누군가에게 인식되기를 기대하지 않는데 인간은 특이하게도 중뿔나게도 그 놈의 인식을 해댄다.

그러니까… 존재의 충만, 간극의 현존이라는 책 제목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나에게는 이렇게 이해된다. 존재는 그 자체로 충만하다, 그런데 인간 인식이 존재를 존재로 인식하는 순간 즉, 존재로만 충만하지 않게 되는 순간, 간극이 현상적으로 존재해버린다. 그래서 이 간극으로 인해 인식이 가능해진다. “즉자라는 존재 속에는 최소한의 공백(le moindre vide)도 없다. 즉 무가 끼어들 수 있는 최소한의 틈(la moindre fissure)도 없다.” 존재에 이 놈의 무를 집어넣는 것이 인간들이 하는 짓거리다. 이 놈의 무를 집어넣지 않고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게 두면 될 것을! 그래서 니체가 말하는 어린아이로 살면 될 것을! 그게 바로 해탈일 것인데 말이다….

무를 집어넣지 않으면 현존과 존재가 분리되지 않을 것이고 그리하여 우리는 괴롭지 않을 것이다. 즉 그 순간이 바로 사르트르가 말하는 ‘즉자대자적인 신적인 경지에의 욕망’이 실현되는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간은 그러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존의 삶을 이끄는 우리로서는 끝없이 존재와의 완연한 일치를 알게 모르게 추구한다.”는 조광제 선생님의 설명은 해탈 열반의 경지에 오르고자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터이다. 나도 잊고 너도 잊고 나와 너의 관계도 잊는 순간을 인간은 영원히 추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존재하는 한, 우리는 이런 순간을 단지 순간으로서만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저주받은 인간의 존재양식이므로!

제가 제대로 이해했나요?

P.S. 조광제 선생님께서는 박은미 선생님의 질의에 대해 ‘잘 이해했다’는 답변을 주셨습니다.(학술1부장)

글로벌 스타 싸이? ‘세계정신’은 이들이 최초![청춘의 고전 시즌3] -②

헤겔과 베토벤

 

강사 : 이관형(서울과학기술대학교 외래교수)
정리 : 박태근(알라딘 인문 MD)???

 

* 이 글은 <프레시안>의 기사를 재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프레시안>, 출판사 알렙이 기획한 ‘교양 대한민국, 청춘의 고전’ 시즌 3 두 번째 강좌.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외래교수 이관형이 강연자로 나서 근대 철학과 근대 음악의 거장으로 꼽히는 헤겔과 베토벤을 겹쳐보며 철학과 예술을 통한 인간 정신의 자유가 어떻게 가능한지 살펴본다.

이날 강연은 바이올리니스트 최윤정, 피아니스트 최규진이 함께 연주한 베토벤의 <로망스>로 시작했는데, 정작 강연 안에는 음악이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만 없을 뿐 인간 정신의 자유가 만들어내는 화음은 어느 음악 못지않게 매혹적이었다. 헤겔이 전하는 묵직한 철학의 사유, 베토벤이 전하는 감각적인 음악의 사유에 들어가 보자. <편집자>

 

ⓒ알렙(조영남)

공교롭게도 베토벤과 헤겔은 1770년 같은 해에 태어났습니다. 서로 알고는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헤겔이 베토벤에 전혀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살아서 로시니, 죽어서 베토벤’이란 말이 있는데 로시니는 생전에 각광을 받았고, 베토벤은 그렇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빈 고전파를 띄우기 위해 베토벤 영웅 만들기를 시도한 게 아니냐는 평가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도 베토벤 그리고 ‘짜자자잔’ 하는 <운명>은 다들 알고 있잖습니까. 오늘 강의에서는 베토벤과 헤겔을 차례로 살펴보면서 당대의 지적 배경과 의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세계의 세계화’는 근대의 산물이다

한동안 ‘글로벌’이 유행했지요. 그런데 요즘 글로벌이라고 하면 글로벌 금융 위기밖에는 없습니다. 글로벌, 그러니까 세계화라는 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 과거를 돌아보면 교류가 있었다고 해도 ‘세계가 하나다’라는 인식은 없었을 겁니다. 근대화가 되면서 그런 의식이 생겨난 거지요. 근대의 핵심은 상공업에 있는데, 농업에 기초한 이전 시대에서 벗어나 획기적인 삶의 변화가 생긴 겁니다. 산업혁명을 통해서 농업 사회에서 상공업 사회로 바뀐 거지요. 이 과정은 혹독했습니다. 산업혁명 초기에 어린이와 여성의 노동 참여가 그랬지요. 물론 이를 통해 여성이 참정권을 얻기도 했지만요. 세계화와 관련해, 당시를 지배한 제국주의를 생각할 수 있을 텐데요. 서양이 동양에 올 때 배에 태우는 세 부류가 있습니다. 선교사, 상인, 군인이지요. 이게 바로 근대의 표상인데요. 기독교와 자본주의와 폭력입니다. 무력과 상품과 종교를 매개로 유럽이 전 세계를 유린한 겁니다. 지금도 유럽의 평화 뒤에는 아프리카의 고통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우리는 여전히 그 세계를 벗어나지 못한 걸로 보입니다. 우리도 근대화에 성공한 국가죠. 그 증거가 바로 이 자리입니다. 우리가 지금의 생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면 베토벤이나 음악 이야기를 할 수 없었겠지요.

제가 왜 근대화, 세계화 이야기를 먼저 꺼냈느냐 하면, 바로 ‘세계정신’이란 표현을 헤겔과 베토벤에게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각각 철학과 음악에 세계정신을 담아낸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근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중세에는 신이 주인이고 주어입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서면 인간이 주인이 됩니다. 인간이 주체가 되는 거지요. ‘신은 죽었다’는 표현도 근대에 들어서야 등장한 겁니다. 그런데 이때 신만 죽은 게 아닙니다. 자연도 죽습니다. 이성을 지니지 못한 존재는 곧 죽은 겁니다. 그래서 자연이 죽은 거지요. 이제 인간의 이성만 남았는데, 이런 생각을 시작한 데카르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동물은 사유하지 않고, 정신적 세계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동물은 기계와 똑같은 순수 메커니즘일 뿐이다. 누군가 동물을 때리면 그 동물은 곧 울부짖는다. 이것은 누군가가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기만 하면 즉시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김춘수의 시에도 이런 말이 나오지요.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다.” 데카르트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표현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제국주의를 통해 이런 근대정신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데, 이 영향으로 사람들이 마주한 새로운 삶의 양식이 바로 근대입니다. 과거 로마나 몽골이 큰 영토를 장악했다고 해도,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바꿔놓지는 못했기 때문에 세계화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근대에 이르러서야 ‘세계적’이라는 말이 가능한 거지요. 근대에 들어서면 그 사람이 유럽에 살든지 동아시아에 살든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잖아요. 물론 문화적 차이야 있겠지만요.

 

‘세계정신’ 탄생의 역설

 

그럼 베토벤과 헤겔이 활동한 독일의 근대화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괴테는 독일문학을 세계문학으로, 헤겔은 독일철학을 세계

▲ 베토벤. ⓒko.wikipedia.org

철학으로 만들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베토벤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표현인데요. 베토벤도 독일음악을 세계음악으로 만든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왜 이들에게 ‘세계적’이란 표현을 쓰느냐 하면, 이들이 근대정신의 총아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근대화와 세계화의 연관성에 대해 말씀드린 걸 떠올려보면 이해가 될 겁니다.

당시 독일은 유럽에서 후진국에 속했습니다. 독일이라는 하나의 국가도 형성하지 못한 상태였지요. 이런 후진국에서 각 분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거장이 동시에 출현한 건 역사의 아이러니 아닐까요. 영국은 명예혁명과 산업혁명을 주도한 나라고, 프랑스는 풍요로운 농업 자원에 시민혁명이 더해져서 현실에서의 자유국가를 실현하는 상황이었는데, 독일은 시민이란 계급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혁명을 주도할 세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계몽’에 집중한 거지요. 시민을 키워내야 했으니까요. 물론 당시 유럽 전역이 계몽주의의 열풍이었지만, 독일은 혁명의 가능성이 적었기 때문에 여기에 더 집중을 한 겁니다. 이런 분위기에 현실에서의 자유국가 형성에서도 어려움을 겪으니 ‘사유의 자유’에 더욱 힘을 쏟은 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터졌을 때, 유럽의 지식인들이 열광을 했지요. 자유, 평등, 사랑의 정신에 입각한 정치 제도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혁명의 성공 이후 공포정치가 나타났지요. 로베스피에르 같은 사람이 꿈꾼 건 절대적 자유와 평등인데 ‘절대적’이라는 게 현실에서 가능할 리가 없잖습니까. 여기에서 이탈한 사람들을 가차 없이 죽이기 시작하는데, 결국 그 자신도 교수대에서 목숨을 잃게 된 거지요. 이런 상황을 보고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절대 자유는 현실에 없는 게 아닐까?’ 이런 의문을 품으면서 사상에서의 자유를 꿈꾸게 된 겁니다.

당시 나폴레옹이 자기네 나라를 쳐들어올 때 지식인 사회는 이를 크게 반겼는데, 프랑스 혁명을 자기 나라에 전파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헤겔이 <정신현상학>을 쓰다가 나폴레옹 군대가 들어온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저기를 보라, 말을 탄 세계정신이 지나간다.”고 말하기까지 했겠습니까. 베토벤은 어떻습니까. ‘보나파르트’라는 곡을 만들어 헌정하려고도 했지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어떻게 됐습니까. ‘보나파르트’라는 곡이 <영웅>으로 바뀌지 않았습니까. 혁명이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거지요. 이런 답답함이 사유와 내면에 집중하게 된 결과를 낳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독일에서 비슷한 시기에 대문호, 대철학자, 대음악가가 나온 거지요.

 

헤겔의 자유; 예술, 철학, 종교

 

이제 헤겔과 베토벤이 자유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헤겔은 독일에서 분열을 봤습니다. 분열된 국가 그리고 분열의 소산인

▲ 헤겔. ⓒgreenbee.co.kr

근대, 두 가지 분열을 동시에 본 겁니다. 근대는 세분화되어 각각 독자적 발전을 추구하거든요. 정치권력 분권, 경제적 분업, 분과 학문이 그 모습이지요. 한편 근대는 통합이기도 합니다. 시장 원리로의 통합 말입니다. 그러니까 돈 없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된 거지요. 돈은 많아졌는데 돈에 대한 면역 체계는 떨어졌다고 하겠습니다. 이렇듯 근대는 분열과 통합이 동시에 일어나는 과정인데, 헤겔은 여기에서 분열을 본 겁니다. 무슨 분열을 봤느냐. 바로 주관과 객관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연과 정신, 이론과 실천, 진리와 도덕, 자유와 필연의 분열과 대립입니다.

근대 이전까지는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삶이었지요. 그런데 근대 문명의 발달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소원하게, 서로 소외시키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자연은 인간 앞에 놓인 대상이 된 겁니다. 이런 주인과 대상 간의 분열을 철학에서는 주관과 객관의 분열이라고 합니다. 자연과 정신이 나뉘는 거지요. 이때부터 인간의 사유는 무한을 지향하기 시작합니다. 자연을 한계로 보고 그걸 넘어서려 하는 겁니다. 여기서부터 자연과 정신의 조화는 없습니다. 근대 자체가 이 조화를 깨뜨리고 나온 거니까요. 자연과 조화롭게 산다는 건 동물적 삶이겠지요. 그런데 인간은 이미 선악과를 따먹은 겁니다. 문명화의 길에 들어선 거지요.

저는 근대 이후 둘의 화합은 불가능하다고 보는데, 인류가 파멸로 간다는 세간의 말이 어쩌면 맞을지도 모릅니다. 헤겔이 말한 분열이 바로 이겁니다. 그는 여기에서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말하는데, 예술, 종교, 철학(학문)이 인간 정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본 겁니다. 자연 세계는 법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돌이나 인간이나 중력의 법칙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건 매한가지잖아요. 이에 비해 인간의 사유는 법칙에 구속받지 않고 여러 상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의 가능성은 결국 정신에 있는 것인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 뭐냐. 헤겔이 볼 때는 그게 바로 예술, 종교, 철학이라는 겁니다. 절대정신이 실현되는 영역이 이 셋이라는 거지요.

오늘은 예술에 대해 얘기해볼 텐데요. 헤겔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하찮게 봤습니다. 특이하죠? 우리 상식에는 자연이 예술보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칸트도 우리처럼 생각했거든요. 예술은 자연의 모방일 뿐이라고요. 그런데 헤겔은 알프스를 보고도 ‘무한하게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형식의 나열’이라는 재미없는 말만 했거든요. (웃음) 자연이 아름답다는 건 기껏해야 ‘조화롭다’ 정도라는 겁니다. 헤겔은 인간의 정신을 훨씬 높이 평가했습니다. 흙에서 나온 인간이 흙을 사유하게 되었다는 데서 의미를 찾은 거지요. 이걸 가능하게 해준 게 바로 정신이니까요. 그래서 헤겔이야말로 진정한 근대주의자라고 불리는 겁니다.

헤겔은 예술이 가장 발전한 시대를 고대 그리스 시대로 꼽습니다. 헤겔은 예술이 상징적 예술 형식, 고전적 예술 형식, 낭만적 예술 형식으로 발전해왔다고 보는데, 상징적 예술 형식의 단계에서는 인간의 의식 수준이 자연의 풍요로움을 따라가지 못한 상황이라고 보고, 고전적 예술 형식의 단계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가장 잘 조화를 이루던 때라고 보는데, 이걸 잘 드러낸 게 그리스 건축이라는 겁니다. 마지막 낭만적 예술 형식에 이르면 무한한 인간 정신이 유한한 자연을 압도하기 때문에 예술의 아름다움은 더 이상 발견될 수 없는 거지요. 예술을 통해서는 정신의 자유가 드러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종교와 철학을 이보다 높은 단계로 보고, 철학을 통해서만 인간 정신의 자유가 드러날 수 있다고 한 겁니다. 이제 그림이 그려지시죠?

정리하면 헤겔이 보기에는 철학을 통해 세계에 대한 개념적 파악을 하는 게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자유인 겁니다. 그런데 제가 해보니까 전혀 자유롭지 않더라고요. 매일 책만 읽는다고 아내에게 구박을 받습니다. (웃음) 개념적 파악과 현실적 상황의 괴리 때문이겠지요. (웃음) 어쨌든 헤겔은 이렇게 봤다는 거죠. 제가 농담처럼 말씀드렸지만, 어떤 면에서는 헤겔에 동의하는 부분이 있어요. 철학 공부를 하다 깨닫는 희열이 있거든요. 그런데 정말 예술, 종교, 철학 빼고 자유로울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저도 찾아보려 노력했지만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헤겔이 유효한 까닭이기도 하겠지요.

베토벤의 음악; 정신적인 생명을 감각적인 생명으로

이제 베토벤을 살펴볼까요. 그런데 헤겔은 베토벤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 합니다. 모차르트나 로시니에 대해서는 극찬을 하면서도 베토벤에 대해서는 말을 안 했거든요. 헤겔 전집에 베토벤이라는 이름이 아예 나오질 않습니다. 왜일까요. 이번에는 베토벤이 말하는 자유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베토벤은 형편이 좋지 못했고, 그래서 음악을 하는 과정을 보면 생계를 위한 모습도 종종 보입니다. 그 삶을 살펴보면 베토벤이 공부를 깊이 있게 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로맹 롤랑의 <괴테와 베토벤>(웅진닷컴, 2000)을 보면, 베토벤이 “음악은 정신적인 생명을 감각적인 생명으로 옮겨주는 행위”라고 했다는 부분이 나옵니다. 헤겔과 똑같은 말인데요. 예술이라는 건 인간 안의 정신을 감각화시키는 거라는 말인데, 헤겔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야 이렇게 생각하지만 보통은 이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술이라는 건 아름답게 꾸민다거나 인간의 정서에 도움을 준다거나, 이렇게 생각을 하겠지요.

어쨌든 헤겔과 베토벤이 이 부분에서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헤겔도 예술이 자유의 영역인 이유는 인간 정신을 감각적인 형태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라고 말했거든요. 달을 가리키는데 달을 봐야지 왜 손가락을 보냐는 이야기가 있지요. 헤겔의 예술관은 손가락을 보는 겁니다. 예술 작품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입니다. 예술 작품 속에 진리가 들어있고, 예술 작품은 진리가 감각화되어서 나타났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헤겔처럼 진리를 찾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면 너무 피곤하겠지요. (웃음) 예술 작품이 주는 미라는 건 진리가 던지는 미가 투사되어 나타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얼마나 진리를 잘 드러내느냐에 따라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이 가려지는 겁니다. 헤겔 미학은 그의 철학과 함께 헤겔 사후 현대 사상에서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예술이라는 게 정신을 감각화시킨 것인지, 예술이라는 게 과연 진리를 가리키는 손가락인지. 이 부분에서 헤겔과 베토벤의 생각이 겹치는 겁니다. 헤겔과 베토벤은 다른 영역에서 활동했지만, 각자의 영역을 통해서 자신의 정신세계와 정신의 진리를 철학과 음악을 통해 나타내고자 했다는 거지요. 헤겔이 베토벤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둘 사이에는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지요. 오카다 아케오의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서양 음악사>(삼양미디어, 2009)에 나온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보았는데요.

“고전주의 이전의 음악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18세기 중엽 시민계급의 성장과 계몽주의의 전개와 함께 고전주의가 출현하였으며 이로부터 근대 시민을 위한 음악이 시작된다. 그렇지만 음악적으로 귀족 세계와 연을 끊게 되는 것은 고전주의(빈 고전주의)의 3대 거장 중에서도 베토벤에 이르러서다.”

▲(오카다 아케오 지음, 이진주 옮김, 삼양미디어 펴냄). ⓒ삼양미디어

그러니까 베토벤 역시 귀족의 후원으로 연명을 했지만 귀족 세계를 드러내는 음악의 형식을 처음으로 거부했다는 겁니다.

“교향곡을 예로 들면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경우 제3악장은 반드시 미뉴에트를 쓴다. 그리고 미뉴에트의 중간에는 민중적인 성격트리오가 들어간다. 귀족의 만찬에 농민들도 초대하여 양자가 어우러짐을 상징하기 위해서이다. 그렇지만 이런 화해는 귀족의 덕과 포용력에 의한, 즉 귀족의 우위에서 이루어지는 일시적인 화해, 위장된 화해에 불과하다. 베토벤은 여기에 교향곡 제1번 제3악장에서 보듯 제목은 미뉴에트이지만 실제로는 스케르초를 집어넣는다. 미뉴에트에서와 같은 화해는 더 이상 없다.”

그래서 베토벤에 이르러서야 정말 시민을 위한 음악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겁니다. 보통 빈 고전주의를 시민 음악의 시작으로 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귀족 세력과의 결별은 베토벤에 와서야 가능했다는 거지요. 또한 마지막 악장에서도 차이가 있는데, 대개 4악장은 해피엔딩으로 끝나거든요. 그런데 베토벤의 6번 전원 교향곡을 보면 마지막 악장에서도 계속해서 상승합니다. 타협을 하지 않는 거지요. 베토벤 9번 합창 교향곡도 특이한데, 이 합창에는 천 명, 만 명이 참여할 수 있거든요. 모차르트의 음악에는 이런 참여가 불가능합니다. 귀족적이고 선이 가늘기 때문이지요. 이런 면에서 베토벤에 이르러서야 근대 시민의 음악이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베토벤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이처럼 베토벤과 헤겔은 사유와 정신의 자유를 보여주는데, 제 생각에는 인류사가 지속하는 한 두 사람은 거의 불멸의 존재로 남을 거라고 봅니다. 두 사람이 다룬 주관과 객관, 정신과 자연의 분열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고, 둘 사이에서 나름의 자유를 보여준 두 사람의 철학과 음악의 수준을 우리는 여전히 뛰어넘지 못한 걸로 보이거든요. 현대 철학에서는 여전히 헤겔 죽이기가 과제인데, 이는 그만큼 헤겔이 쉽게 죽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요.

전통적으로 진선미란 세 가지 정신적 가치가 있는데, 진리를 모르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고, 선이 없으면 나쁜 놈 소리를 듣기 쉽습니다. 그리고 미의식이 결여되면 센스가 없다는 평가를 받지요. 사실 선이 없는 게 제일 안 좋은 거죠. 물론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진리를 모르는 것도 치명적이겠지만요. 그나마 제일 문제가 덜 되는 게 미적 감각입니다. 그런데 사회가 바뀌면서 경제적인 소외나 복지뿐 아니라 문화적 소외, 문화적 복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미의식에서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나뉘는 겁니다. 그래서 요즘 젊은 친구들은 미의식이 결여된 걸 창피한 일로 여깁니다. 어쩌면 오늘 헤겔과 베토벤을 불러내 인간의 자유를 철학과 예술에서 찾아본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근대에 대한 평가는 각자 다를 수 있겠지만, 근대에 드러난 이 ‘세계정신’은 여전히 눈여겨봐야 할 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강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상품의 ‘사회적’ 의미[지금,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②

상품의 ‘사회적’ 의미-2강?

 

김우철(호서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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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자본주의 사회’란 ‘자본(capital)’을 중심으로 모든 사회생활이 영위되는 사회형태를 일컫는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또는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자본’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자본’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매우 복잡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자본 개념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을 분해하여 이해한 다음, 그 단순한 요소들의 체계적인 조립을 통해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자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최초의 실마리 개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자본의 기본적 의미는 누가 보더라도 ‘부(富)’의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자본은 그 자체로 일정량의 부 또는 재산을 뜻할 뿐 아니라 더 많은 부를 창출하기 위한 유력한 수단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본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에 해당하는 ‘상품(commodity)’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상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분배-유통-소비의 전 사회과정을 관통하는 기본 요소로서, 사회적 부를 구성하는 ‘세포’ 형태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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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품의 두 요인: 사용가치와 가치

 

상품은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유용한 물품(또는 용역)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유용성을 가리켜 상품의 사용가치(use value)라고 한다. 하지만 상품은 사용가치 말고도 또 하나의 성질을 갖고 있는데, 바로 다른 상품과 교환될 수 있는 성질, 곧 교환가치(exchange value)를 갖고 있다. 교환을 전제하지 않는 상품은 ‘생산물(또는 생산품)’일 수는 있어도 ‘상품’이라고 불릴 수 없다. 모든 상품은 사용가치와 아울러 교환가치라는 두 요인을 갖고 있어야 한다.

상품의 사용가치는 이해하기가 비교적 쉽다. 그것은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 그래서 유용한 갖가지 감각적, 물질적 성질을 가리킨다. (쌀, 상의, 집 등의 사용가치) 그러나 상품의 교환가치는 눈에 보이거나 만질 수 있는 자연적 성질이 아니다. 교환가치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교환가치는 우선 어느 한 종류의 사용가치가 다른 종류의 사용가치와 교환되는 양적인 관계로 나타난다. 두 개의 상품, 예를 들어 쌀과 상의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쌀 20kg이 상의 1벌과 교환된다고 하면 ‘쌀 20kg = 상의 1벌’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데, 이 등식은 이들 상품의 교환가치가 같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쌀 20kg = 상의 1벌’이라는 이 등식은 같은 크기의 공통된 무엇인가가 두 가지 다른 사물 안에 있음을 뜻한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사물들의 양적 비교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것들이 공통의 질(質)로 환원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과연 쌀 20kg과 상의 1벌 속에 들어있는 ‘질적으로 똑같은 것’이란 무엇일까?

쌀과 상의를 동일한 것으로 만드는 공통의 속성은 상품의 자연적 속성일 리는 없다. 다양한 상품들이 교환된다는 사실은 그 상품들의 사용가치, 곧 자연적 속성이 남김없이 제거(=抽象)되어 공통의 속성으로 환원되고 있음을 전제한다. 따라서 우리가 교환가치에만 주목하면 모든 상품들 사이에는 사용가치상의 어떤 차별이나 구별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모든 상품을 같게 만드는 공통된 성질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노동생산물’이라는 사실이다. 쌀과 상의는 둘 다 노동생산물이라는 점에서 아무 차이가 없고 똑같은 사물이다. 단, 여기서 노동이라고 할 때 이 노동은 경작노동이라든가 재봉노동과 같은 유용한 물품을 만들어내는 구체적 형태의 노동이 아니다.

구체적 유용 노동은 그 형태와 질이 서로 다르므로 상품들에 내재하는 문제의 그 공통의 속성을 설명해 줄 수 없다. 곧 구체적인 지출 형태와 무관하게 단순히 인간의 두뇌, 근육, 신경, 손의 지출이라는 의미의 ‘인간노동 일반’의 지출, 이것만이 모든 상품들의 공통의 속성을 설명해 줄 수 있다. 이와 같은 (구체노동을 추상한) ‘추상적 인간노동’이 대상화, 물질화되어 있는 것이 모든 상품에 내재하는 공통의 속성이다. 그리고 이 공통의 속성이 바로 가치(value)이다. ‘교환가치’는 한 상품에 내재하는 가치가 다른 상품들과의 교환관계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가치의 현상형태’를 말한다.
어떤 물적 존재는 가치가 아니면서도 사용가치일 수가 있다. 천연의 초원이나 야생의 수목과 같이 그 효용이 인간노동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 특정한 물건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사용가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사용가치 곧 ‘사회적’ 사용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사회적 생산물은 반드시 교환이라는 절차를 통해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야 한다. 상품 가치는 이와 같이 상품과 상품을 만들어낸 노동의 ‘사회성’을 실증하는 징표라고 할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가치가 없는 생산물 또는 교환에 실패한 생산물은 사회성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고, 나아가 그 생산물을 생산한 노동 역시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노동이라는 사실을 실증한다.

이제 분명해졌듯이, 어떤 상품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그 안에 추상적 인간노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품의 가치 크기는 그 상품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추상적 노동의 양에 의해서 결정된다. 물론 노동의 양은 노동 시간으로 측정된다. 따라서 상품의 가치크기는 결국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단 이 경우 노동시간은 개별 생산자가 실제로 소비한 노동시간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이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이란 특정 시점에서 사회적으로 표준적인 노동조건과 노동숙련 및 노동강도의 사회적 평균도를 가지고 어느 한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을 말한다.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은 노동의 생산성이 변함에 따라 당연히 변동한다. 노동의 생산성 그 자체는 특히 노동자의 평균적인 숙련도, 과학과 그 응용의 발전단계, 생산수단의 이용범위 및 자연환경에 의해 좌우된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노동의 생산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어떤 상품의 생산에 요구되는 노동시간은 그만큼 단축되고 그 가치도 그만큼 작아진다. 상품의 가치 크기는 그것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의 양에 정비례하고 노동의 생산성에는 반비례하여 변동한다.

칼 마르크스(1818 ? 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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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치형태의 발전

 

앞서 확인했듯이, 상품은 사용 대상인 동시에 가치의 담지자라는 이중적인 물건인 한에서 상품이다. 상품은 자연형태(natural form)와 가치형태(value form)라는 이중 형태를 갖는 한에서만 상품이다. 문제는 사용가치의 대상성과 달리 가치의 대상성(value-objectivity)이 그 자체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하나하나의 상품을 아무리 비틀고 세밀히 관찰해 보아도 우리는 그것을 가치물로서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상품의 가치가 순수하게 사회적 현실을 갖는다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성의 획득은 상품들이 (추상적) 인간노동이라는 하나의 동일한 실체를 표현하는 한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 가치라는 것이 상품과 상품의 사회적 관계로서만 나타난다는 사실 또한 자명해진다. 이제 우리가 확인해야 할 점은 화폐형태에 이르기까지 상품의 가치관계에 함축되어 있는 가치 표현의 발전과정을 추적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화폐의 수수께끼도 마침내 풀리게 될 것이다.

먼저 다음과 같은 단순한 가치형태에 주목해 보자.

x량의 상품 A = y량의 상품 B
또는 x량의 상품 A는 y량의 상품 B의 가치가 있다

예) 쌀 20kg = 상의(上衣) 1벌
(쌀 20kg은 상의 1벌의 가치가 있다)

여기서 보듯이, 쌀이라는 한 단일 상품의 가치 표현은 상의라는 다른 상품과의 가치관계로 나타난다. 여기서 두 종류의 상품은 서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데, 쌀은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고, 상의는 그 표현의 재료가 된다. 전자는 능동적 역할을 하고 후자는 수동적 역할을 한다. 즉 쌀의 가치는 (상대를 통해 가치를 표현하는) 상대적 가치형태(relative value form)로 표시되고 있고, 상의는 (쌀의 가치를 직접 표현하는) 등가형태(equivalent form)로 존재한다.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서로 속해 있고 서로 제약하는 불가분의 두 계기이지만, 동시에 동일한 가치 표현의 상호 배타적이고 대립적인 양극이다.

어떤 상품이든 그 가치는 오직 상대적으로만, 즉 다른 종류의 상품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쌀의 상대적 가치형태는 다른 어떤 상품이 그것에 대해 등가형태에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반면 등가형태로 등장하는 이 다른 상품은 동시적으로는 상대적 가치형태로 존재할 수 없다. 이 점에서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극단적으로 서로를 배제한다.

가치형태의 양극인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에 대해 좀더 살펴보자. 위의 예에서 가치가 표현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쌀이라는 상품이다. 쌀 20kg의 가치가 자신과 상의 1벌의 가치관계 속에서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라는 양극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가치 표현에서 쌀의 상대적 가치형태는 자신의 가치존재를 상의라는 다른 상품의 사용가치를 빌려 표현한다. 다시 말해, 쌀이라는 상품의 가치는 상의라는 상품의 자연형태를 빌어 그 자신의 사용가치와 구별되는 ‘자립적’ 존재형태를 획득하고 있다. 한 상품의 가치가 다른 상품의 사용가치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사용가치로서의 쌀은 상의와 물질적, 감각적으로 구별되지만, 가치로서의 쌀은 상의와 동등한 것이며 따라서 상의와 같은 것이다. 이리하여 쌀은 자신의 자연형태와 구별되는 가치형태를 획득하게 된다.

등가형태에서 보게 되는 첫번째 특성은 사용가치가 그 대립물인 가치의 표현형태로 된다는 점이다. 한 상품의 상대적 가치형태는 자신의 가치 존재를 그 물질적 속성과 완전히 구별되는 다른 상품과 등등한 것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이 표현 자체는 그것이 어떤 사회적 관계를 감추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그러나 등가형태의 경우에는 그와 반대이다. 등가형태는 어떤 상품, 곧 있는 그대로의 물적 존재가 가치를 표현하고 따라서 그 자연 형태의 모습 자체로 가치형태를 띤다는 사실에서 성립하므로, 마치 그 등가형태라는 속성을 본래부터 지닌 듯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등가형태의 수수께끼이며, 이 등가형태가 완전히 발전되어 화폐의 형태로 전개될 때에 그 수수께끼는 비로소 모든 사람의 눈에 들어오게 된다. (참고: 구체적 노동이 그 대립물인 추상적 인간노동의 현상형태로 된다는 점 그리고 사적 노동이 그 대립물인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형태의 노동으로 나타난 점이 각각 등가형태의 두 번째, 세 번째 특징을 이룬다.)

상품 A의 가치는 상품 B가 자기 자신과 직접 교환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표현된다. 상품 B에 대한 가치관계 속에 포함되어 있는 상품 A의 가치표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가치관계 속에서 상품 A의 자연형태는 사용가치의 모습으로서만 의미를 갖고, 상품 B의 자연형태는 가치형태나 가치 모습으로서만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하여 한 상품 속에 갖추어져 있는 사용가치와 가치의 내적 대립이 하나의 외적 대립을 통해 표시된다. 즉 자신의 가치가 표현되어야 할 한 쪽의 상품은 직접적으로는 오직 사용가치로서만 인정되고, 그 가치가 표현되는 다른 쪽의 상품은 직접적으로는 오로지 교환가치로서만 의미를 갖는 두 상품의 관계를 통해 표시된다. 따라서 어느 한 상품의 단순한 가치형태는 그 상품에 포함되어 있는 사용가치와 가치 사이의 내적 대립이 겉으로 드러난 외적 대립의 형태다.

모든 노동생산물은 어떤 사회 상태에서나 사용 대상이다. 그러나 사용물의 생산에 지출된 노동을 그 물적 존재의 대상적 속성으로 표시하는 역사적으로 규정된 하나의 발전단계에서만 노동생산물은 상품으로 전화(轉化)된다. 그러므로 상품의 단순한 가치형태는 동시에 노동생산물의 단순한 상품형태이고, 그리하여 상품형태의 발전은 가치형태의 발전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치형태의 발전은 화폐형태를 거쳐 자본형태에 도달할 때 최고 단계에 이르게 된다.

세계경제를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찰하기[지금,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①

세계경제를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찰하기-1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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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 [지금,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 강좌의 강의록을 연재합니다.

????| 운영기간 : 2013년 4월 4일(목) ~ 7월 18일(목) (총 15강)?????? 매주 목요일 19:30~21:30

?????| 장?? 소 : 광진정보도서관 도서관동 1층 이야기방
?????| 대?? 상 : 성인, 50명
?????| 주?? 최 : 광진정보도서관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 건국대학교
?????| 주?? 관 : 문화체육관광부 도서관정보정책기획단
?????| 후?? 원 : 알렙출판사

 

 

“핵심의 자유노동과 주변의 강제노동 간의 조화는 자본주의의 본질이며, …… 노동이 모든 곳에서 자유로울 때, 사회주의가 될 것입니다.”

“영향을 준 인물들을 물으신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분들을 거론하고 싶습니다. 칼 맑스, 페르낭 브로델(아날 학파), 요셉 슘페터, 칼 폴라니, 일리야 프리고진(신과학 운동) 그리고 프란츠 파농.”

월러스틴은 세 영역에서 세계체제 분석에 관하여 글을 썼습니다. 근대 세계체제의 역사적 발달, 자본주의적 세계경제의 현대적인 위기. 지식의 구조가 그 세 영역입니다. 다음과 같은 책들이 이 각각의 세 영역에 대응합니다. <근대 세계체제 3부작>, <유토피스틱스, 21세기를 위한 역사적 선택들> 그리고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19세기 패러다임의 한계들>.

이매뉴얼 월러스틴 ?프레시안

·『세계체제 분석』(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_ 이광근 옮김_ 당대)


이 소책자는 20세기 마지막 사반세기부터 세계화와 이에 대한 반작용인 테러리즘이 지배하고 있는 시대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국가들의 외적인 관계인 국제적인 틀로 이해하지 않고 장기간과 대규모의 시각에서 세계 체제로서 이해하는 월러스틴의 연구를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좋은 입문서이다. 세계체제 분석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정치학, 경제학, 사회 구조, 문화라는 상자들로 나누어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이 상자들은 실재가 아니라 상상적인 산물에 불과하다. 이렇게 현상들을 전문화하여 분석하는 것은 철학과 단절하여 부상한 19세기 사회과학의 특징적인 한계이다. 사회 현실은 신과학 운동에서 말하는 복잡성의 시스템이다. 그래서 다학문적인 방식이 아니라 일학문적인(unidisciplinary) 접근이 필요하다. 이것이 역사적 사회과학으로서 세계체체 분석이다.

·『자유주의 이후』(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_ 강문구 옮김_ 당대)


1980년대 말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연이은 구소련의 해체는 자유주의의 궁극적인 승리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월러스틴은 이에 대해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라 이야기한다. 오히려 이 사건들은 자유주의가 붕괴되고 ‘자유주의 이후’의 세계로 확실히 들어섰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자유주의는 그 자신의 논리 때문에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궁지에 몰렸다. 자유주의는 인권의 정당성과 민족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이 권리들의 완전한 실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약 인권과 민족의 권리가 모두에게 동등하다면, 항상 그래 왔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러할 이 불평등한 자본주의 세계 경제는 유지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이 공개되면 이익을 많이 얻지 못하거나 손해 보는 계급들에게 이 체제는 정당성을 갖지 못할 것이다. 체제의 정당성이 사라진다면 체제는 존속하지 못한다. 이러한 위기는 총체적인 것으로, 이를 극복하며 살아야 할 사람들이 만들 새로운 역사 체제는 아마도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체제는 아닐 것이다.

1. 월러스틴에 따르면 긴 16세기(1450-1640년)에 자본주의적 세계 경제의 탄생 이후 세 번의 역사적 전환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1) 16세기 자본주의적 세계 경제의 탄생, 2) 1789년 프랑스 대혁명, 3) 1968년 세계 혁명(근대적 세계체제의 헤게모니, 즉 중도 자유주의의 몰락의 결정적 계기). 여기에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 있는 콩종크뒤르(국면)적인 역사적 전환점으로 1) 1989년 동구권의 현실 사회주의 몰락(실은 자유주의의 몰락의 반증), 2) 2008년 美國發 세계 금융 위기가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하려면 1876년 강화도조약에 의거한 개항, 1945년 광복과 1950년 6?25전쟁, 1960년 4?19민주화운동과 1961년 5?16군사정변, 1987년 민주화운동, 1997년 IMF외환위기 등도 우리에게는 중요한 역사적 시점들입니다.

2. 초역사적인 불변의 구조와 법칙을 탐구하는 법칙정립적인 형식주의적 사회과학과 사건 중심의 에피소드를 기술하는 개성서술적인 실증주의적 역사의 이분법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구조와 역사의 변증법의 결과로 나타난 주기(cycle) 개념으로 19세기 사회과학의 기본 전제인 일직선적인 발전 또는 진보 개념을 비판하며, 구조를 역사로부터 파악하고 특히 근대 세계체제(자본주의적 세계경제)의 역사적인 생성과 팽창 그리고 위기와 소멸을 추적합니다. 그것이 역사적 사회과학으로서의 세계체제론입니다.

3. 역사와 관련된 네 가지 시간 개념이 있습니다. 부수적이고 진정한 현실을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되는 실증주의적 사건적인 또는 에피소드적인 역사와 신화에 불과한 영원불변의 구조 대신에 역사적으로 장기 지속하는 구조적 시간과 그 구조 안에서의 중기적 주기적 과정으로서의 시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조적 시간으로는 자본주의적 세계경제로 대변되는 근대 세계체제의 탄생과 소멸의 기간이 대표적이고, 주기적 과정으로서의 시간에는 콘트라티에프 주기(50-60년 동안의 상승과 하강의 두 국면으로 이루어진 장기 파동 주기)가 대표적입니다.

4.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재규정(맑스로 다시 돌아가기)을 시도하여 임금노동 중심의 생산 일변도와 교환관계라는 유통 중심의 일면적 분석을 넘어서 제3세계 종속이론의 영향을 받아 핵심적인 생산과정과 주변적인 생산과정으로의 분업으로 세계체제를 분석함으로써 국민국가중심의 분석틀에서 벗어납니다. 상품이 독점적일수록 핵심에 속하고 경쟁적일수록 주변에 속하게 됩니다. 독점적일수록 자본가에게 돌아갈 잉여가치의 몫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본주의를 시장과 동일시하고 않고 독점과 동일시합니다. 자본주의는 반시장입니다. 이윤 창출에 장애가 되는 자유 경쟁 시장이란 ‘인민의 아편’에 불과하고 현실의 시장은 그런 모습을 띠지 않습니다.

5. 근대 세계체제의 구조적 위기는 기존 체제에서 지구적인 잉여가치를 공유하는 인구의 수가 팽창되어 자본가들이 더 이상 이윤을 창출하기 어려울 때 나타납니다. 신자유주의는 헤게모니를 잃어가고 있는 미국의 자본가들이 현실 사회주의 몰락과 정보기술혁명을 빌미로 경제발전의 속도가 빠르고 기존의 헤게모니에 도전적인 국민국가들의 보호주의를 타파하여 인건비와 관세를 낮추려는 보수주의자의 일시적인 몸부림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반동적인 세계화 전략으로는 이 구조적 위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에 이제 근대 세계체제는 조만간 분기점에 도달할 것입니다. 다가오는 분기점에 대비하기 위해 모든 모순을 해결한 몰역사적인 유토피아 대신에 현실적인 역사적인 대안체제를 성찰함으로써 (물적인 불평등의 해소라는) 역사적으로 가능한 유토피아를 모색하는 유토피아학이 있어야 합니다.

 

김성우(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알렙

 

아프리카 연구에서 세계체제 분석으로

 

193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M. Wallerstein)은 1951년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아프리카 연구로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유명해진 것은 전공과는 무관한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발상과 ‘근대 세계체제’라는 개념 덕분이었어요. 이 개념들은 1968년에 일어난 세계 혁명*에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는 1958년부터 대학 강단에 섰고, 1968년 세계 혁명이 일어날 당시에는 컬럼비아 대학 사회학과에 재직하면서 아프리카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었어요. 그런데 식민지에서 막 독립한 아프리카 신생국들에 대한 연구인지라, 항상 신문 표제(신문이나 잡지 기사의 제목)를 뒤쫓아 다니는 기분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시사적인 성격이 강한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를 더욱 깊이 있는 역사적 시야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때 그에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서유럽의 국가들도 신생국 시절이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신생국이던 시대의 서유럽 국가들을 연구해야겠다는 발상을 하게 된 거죠. 대략 16~17세기, 곧 근대적 국가 구조가 형성되던 시대 말이에요. 이런 생각으로부터 출발하여 역사적인 관점에서 근대 세계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의 역사적 역동성을 밝혀 낼 수 있었던 겁니다.

한편 그가 연구에 몰두한 때는 정치적 격동의 시기이기도 했어요. 게다가 1968년 일련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서방 세계에서 대규모 사건이 최초로 터진 곳이 바로 컬럼비아 대학이었습니다. 파리의 학생 봉기보다 한 달 앞서 일어났지요. 학생들이 내세운 주된 쟁점은 두 가지였어요. 첫째는 베트남 전쟁 문제였는데, 대학이 국방부와 다른 정부 기관을 위한 베트남 전쟁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등 전쟁에 연루되어 있다는 거였어요. 둘째는 인종 차별과 관련된 내용으로, 컬럼비아 대학이 흑인 지역 사회가 사용하는 공원 땅을 사들여 체육관을 지었다는 점 등이 문제가 되었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교수들이 재빨리 모임을 만들어 중재 노력을 했지만 결국 실패했어요. 이때 월러스틴은 이 모임의 공동 의장이었습니다. 일주일 뒤 학교 당국은 경찰 개입을 요청했고, 경찰이 학생들을 대학 건물에서 내쫓으면서 그들의 더 큰 분노를 불러왔죠.

학생 운동 사태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결국 월러스틴은 컬럼비아 대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예일대 석좌 교수이자 뉴욕 주립대 산하의 ‘경제, 역사 체제 및 문명들의 연구를 위한 페르낭 브로델 센터’(뉴욕 주립대 빙엄턴 캠퍼스에 위치)의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죠.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은 현대 역사학계에 큰 영향을 끼친 프랑스 아날학파(Annales School)**의 대표적인 역사가로, ‘프랑스 아날학파 세계 사회 학회(ISA)’의 회장을 역임한 인물입니다.

* ?1968년 세계 혁명- 1968년에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를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서 학생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규모 시위를 말한다. 이들은 권위주의를 비판하고 베트남전 같은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는데, 특히 프랑스에서는 드골 정부에 항의해 400여만 명이 파업에 돌입했다. 68 혁명의 영향으로 체제가 흔들린 드골 정부는 이듬해 실시된 국민 투표에서 패배했다.
** 아날학파- 1929년 뤼시앵 페브르와 마르크 블로크가 처음 만든 역사 잡지 〈경제 사회사 연보〉(Annales d’histoire ?conomique et sociale, ‘아날’은 연보라는 뜻임)를 중심으로 모인 역사학자 집단을 가리킨다. 이들은 근대 전통 역사학에 반기를 들고, 인간의 삶에 관한 모든 학문 분야를 통합해 생활사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하여, 1970년대 이후 세계 역사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사회 과학의 기존 틀에서 벗어나기

 

월러스틴이 1968년에 일어난 대규모 사태를 ‘세계 혁명’이라 부른 가장 큰 이유는 전 세계 여러 곳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에요. 미국을 비롯해 서유럽과 아시아, 동유럽,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벌어졌죠. 형태는 제각각이었지만 그 바탕에는 되풀이되는 두 가지 공통된 내용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자유주의를 대표하는 ‘미국’과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구(舊)소련’이, 외견상으로는 대단한 적대자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공모 관계라는 사실이었어요. 그리고 둘째는 반항하는 모든 사람의 주된 과녁이 자유주의적 보수(우파)가 아니라 ‘공산주의적 진보(좌파)’라는 점이었죠. 곧 1968년의 혁명 세력은 구(舊)진보 세력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도리어 문제의 일부가 되었다고 보았어요. 구진보는 모두 실패했다고 선언한 거죠.

이러한 생각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공통 주제는 그의 표현대로 하면 ‘세계체제를 지배하고 있는 자유주의적 지구 문화(geoculture, 전 지구적으로 대부분 받아들여지는 이념이나 가치)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러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는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인종주의, 성차별)를 들 수 있어요. 이는 과거의 인종 혐오주의나 가부장제와는 달리 자본주의 제체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자본주의적 축적을 뒷받침하는 요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유주의적 지구 문화에 대한 도전은 어느 나라에서든 옳은 사람들이 권력을 잡기만 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그들이 체제를 의미심장할 정도로 개혁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 대한 도전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실제로 1945년에서 1968년 사이의 세계 지도를 보면, 아주 많은 나라에서 진보를 대표하는 공산당 아니면 사회 민주당, 민족 해방 운동 세력이 권력을 잡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1968년의 사태는 진보 세력이 권력을 잡아도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 거나 다름없었죠. 이로써 자유주의적 합의를 자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금이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현실에서는 사라진 구(舊)자유주의가 다시 신(新)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출현합니다. 신자유주의의 대부(代父)로 불리는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2006, 자유방임주의와 시장 제도를 통한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주장한 미국의 경제학자)은 1968년 이전만 해도 미국 학계의 우스갯거리였어요. 그런데 1970년대 들어 갑자기 사람들이 그를 진지하게 대하더니 1976년에는 노벨 경제학상까지 주었죠. 그 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프리드먼과 관점을 같이하는 경제학자들이었어요.

결국 1980년대 말 공산주의가 몰락한 뒤에 부활한 자유주의적 보수 세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힘을 갖게 됩니다. 그렇지만 월러스틴은 역설적으로 이 때문에 진보 세력이 새로 대두할 공간도 열렸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제기한 ‘세계체제 분석(world-systems analysis)’ 작업이 호응을 얻게 된 것도 바로 이런 분위기에서였죠.

월러스틴은 『세계체제 분석』에서 30년 동안 계속해 온 자신의 작업을 총괄적으로 요약하면서, 자신에게 제기된 비판들에 대해 간략하지만 종합적으로 반대 입장을 제기합니다. 여기서 그는 자유주의적 합의의 바탕을 이루는 일련의 지적 개념들이 기존의 사회 과학 전반을 지배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회 과학을 ‘탈사고(unthink)’ 해야 한다고 말하죠. 탈사고란 기존의 지배 관념들로부터 사회 과학을 해방시키자는 의미로, 진보적 사회 과학의 출발점을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이 ‘세계체제 분석’ 작업에서 월러스틴은 무엇보다도 분석의 단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어요. 종전에는 하나하나의 민족 국가를 분석의 단위이자 별개의 실체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각각의 나라가 일종의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있다고 주장하는 서구 중심적인 발전 단계론에 알맞은 전제였죠. 낮은 계단에 있는 비유럽 국가들이 위에 있는 서유럽의 선진국을 학습하면서 위쪽으로 올라가게 된다는 거였어요. 이러한 생각은 근대화 또는 선진화 논리의 핵심이 됩니다.

이와 달리 월러스틴은 어떤 국가들이 아래 있는 건 다른 국가들이 다른 곳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아래로 밀려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곧 위아래가 모두 하나의 체제를 이루는 일부일 뿐이므로, 국가 단위의 분석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월러스틴은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더욱 발전시켜,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연구했어요. 더 나아가 세계체제에는 경제 외에 그 나름의 정치적인 구조, 곧 국가 간 체제(interstate system)가 있고 주도권(hegemony)의 발흥과 쇠퇴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게 되죠. 이와 더불어 그는 이러한 체제에 저항하는 반체제 운동들도 연구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21세기의 역사적 선택

 

학문적 연구와 더불어, 월러스틴은 우리에게 정치적 실천에 나설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죠. 이와 관련해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 1917~2003, 러시아 태생의 벨기에 과학자로, 1977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음)의 ‘복잡성 연구(complexity studies)’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연구를 자연 과학, 곧 물리학·화학·수학·생물학 등의 내부에서 진행되는 지식 운동이라 불렀어요. 그리고 이 아이디어들을 자신의 작업에 어떻게 하면 활용할 수 있을지를 연구했습니다.

프리고진에 따르면, 한 체제 또는 체계가 균형 상태로부터 멀리 움직여 갔을 경우 체계는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못합니다. 아니, 못한다기보다 진동이 너무 커져서 분기(分岐, bifurcation)가 일어납니다. ‘분기’란 과학자들의 전문 용어인데, 갈라지면서 이쪽으로 갈 수도 저쪽으로 갈 수도 있어서 어느 쪽으로 갈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미리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쪽이나 저쪽으로 약간의 힘이 더해지기만 해도 아주 그리로 가게 되는 거죠.

월러스틴은 현재 세계체제가 위기와 혼란의 상황을 맞았다고 진단하고 있어요. 이와 관련해 우리는 이미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사건들을 목격했습니다. 2001년 9월 11일 쌍둥이 빌딩에 대한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1957~ )의 영화 같은 공습은 물론,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투기 세력 등 곳곳에서 높은 수준의 폭력이 자행되고 있죠. 따라서 우리는 이런 체제의 위기 속에서 분기의 두 방향 가운데 어느 곳으로 진행할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이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어떤 것인가.’ 이것이 바로 월러스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인 동시에, ‘21세기의 역사적 선택들’이 뜻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