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 내재적ㆍ심층적 의식의 생성과 변전으로서의 권능[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베르그송③

직관, 내재적ㆍ심층적 의식의 생성과 변전으로서의 권능[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베르그송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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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류종렬, 창원대 외래교수
후기-진보성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도덕과 종교의 사기꾼들

악마들이 날뛰는 세계”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마 높은 권좌에 앉아 ‘우매’하고 ‘무지’한 대중들을 굽어 살피며 모두 한결같은 ‘바른 삶’으로 계도하는 ‘그들’이 도덕과 종교적 신념이 불확실한 현시대를 안타까워하면서 내뱉는 탄식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악마는 도덕과 종교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속이고 사기를 치는 ‘그들’을 말한다. 이름 붙이면 ‘기세도명(欺世盜名)’하는 자들이다.

우리 역사에서 왜곡된 가부장적 유교주의 체계를 통해 탄생되었고, 그것을 통해 사문난적(斯文亂賊)을 만들어냈던 중국 제국주의자들의 앞잡이 서인-노론,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 앞잡이들이 만든 국가보안법, 그 바통을 이어받아 현실을 지배하는 미국 제국주의까지, 압제의 역사를 떠올리게 되면 우리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봐야하며 어떤 철학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막연함에 부딪힌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심정을 느낄 수밖에 없던 서양의 역사가 있다. 1632년 갈릴레오(Galileo)가 하늘의 원리가 지상에도 있다고 말하면서 회부된 종교재판에서 가톨릭교회와 교황은 동일성의 원리 아래에서 변화와 생성의 사유를 해방시키려는 시도를 짓눌렀다. 이들이 바로 도덕과 종교를 연설하면서 전쟁과 공포를 말하고(전 미 대통령 조지 부시) 죽음 이후를 핑계로 다른 사람들의 돈과 영혼을 긁어모으는 ‘사기꾼‘들이다.

동일성의 철학을 반대한 베르그송

이 도덕과 종교의 이름으로 민중들을 탄압하던 자들이 주장하던 ‘동일성’의 원리는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이 세계는 불완전한 것이며 현실세상의 불완전한 존재들은 저 너머 상층 이데아의 완전하고 이상적인 것을 모방해야한다’는 생각에 기반하고 있다. 이 동일성의 원리는 종교에서 절대적인 유일신을 상정하게 만들고 기독교의 종교적 입장을 굳건히 하는데 일조해 왔다.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세 번째 시간에는 동일성의 원리에 반대했고 변화와 생성의 철학을 주장했던 베르그송(Bergson, 1859~1941)의 내재적인 심층의 철학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베르그송 철학의 길안내를 해준 류종렬 교수는 “공중에 붕 떠서 발 디딜 곳이 없던 추상적 이상주의 철학을 땅 위에 발붙인 것이 베르그송”이라고 하면서 베르그송이 이런 철학적 사유를 하게 된 배경에는 프랑스의 역사와 사회적 현상들이 많은 영향을 주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서구 철학사에서 도덕과 윤리를 사회 또는 국가와 연관된 문제로 삼게 된 것은 1789년 프랑스 혁명부터이고 이 혁명과 더불어 서구인들의 삶을 바꾼 것에는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가 관련한다. 루소는 1600년 로마 교황청 광장에서 자연의 무한성을 얘기하며 화형 당한 르네상스 시기 자연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의 자연의식을 승계하여 “인간은 피조물이 아닌 그 자체로 자연 속에서 살게 되었다”고 했으며 “인민은 뛰어난 한 개인보다 중요하고 더 힘세다는 자는 없다”고 말했다. 베르그송 또한 루소의 발언과 같은 맥락에서 자신의 철학을 전개한다.

▲ 베르그송 ⓒ프레시안

베르그송의 네오칸트주의 비판

베르그송은 첫 저작 DI(『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에서 “인격”을, 그 다음 심리학작품 MM(『물질과 기억』)에서 “기억”을, 생물학적 작품 EC(『창조적 진화』)에서 “생명“을, 그리고 사회학적이고 종교적인 작품 MR(『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에서 “인류”(새로운 공동체)를 꼽고 있다 류종렬 교수에 의하면 베르그송은 자신의 첫 저작에서 칸트를 비판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네오칸트주의를 비판했다고 한다. 또 칸트가 기본적으로 입자론자에 가깝다고 하면서 칸트주의자들이 세계와 인간, 신의 관념을 요소나 부분의 집합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베르그송은 비판적 견해를 제시했다고 한다. 요소나 부분들의 조합으로 어떤 하나가 된다고 보는 것은 ‘공간적 사유방식’이고 전체가 다양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관점은 ‘시간적 사유방식’이다.

“내가 어제와 다르다는 것은 내가 어제의 나를 이루는 요소의 수와 오늘의 나를 이루는 요소의 수가 다르다는 것이 아니고, 어제의 변화를 포함한 오늘의 변화가 다르다는 것이다” 전자는 ‘산술적’이며 ‘기하학적’인 것이고 후자는 ‘심리적’이며 ‘생물학적’인 것으로 양자 간에 차이가 존재한다. 차이는 매우 커서 이 둘은 전혀 다르다고 봐야한다.

변화는 운동을 수반하는데 주지주의-플라톤에서 칸트-헤겔에 이르기까지 운동의 의미는 정지 상태 ‘A’지점에서 정지 상태 ‘B’지점으로 움직이는 것이었지만 베르그송은 기하학적인 점과 점을 연결한 직선이 운동을 표현했다고 보지 않는다. 연속선상에서 원과 곡선운동을 수반하는 계속적인 움직임을 운동이라고 본다.

베르그송의 ‘기억’이라는 개념도 칸트주의자 혹은 네오칸트주의자들이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네오칸트주의자들은 기억에 대해 설명할 때 예를 들어 인간의 나이를 ’10~20세의 기억’/ ’21~30세의 기억’ 이런 식으로 구분하여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을 전체 기억이라고 한다. 그러나 베르그송이 말하는 기억은 이것저것의 다양한 방면에서 분열적으로 발생하는 기억들을 섞어놓은 것이다.

이렇듯 부분의 결합(‘1’-‘2’-‘3’-‘4’-‘5’…)과 요소의 결합(‘점’-‘점’-‘점’-‘점’⇒’선’)이라는 ‘환상’을 사람들에게 심어 놓은 것이 기하학이며 리만(Riemann)이 ‘비(非)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정지 상태 ‘A’지점에서 정지 상태 ‘B’지점을 연결하는 직선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을 제출하기 전까지 통설로 인정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1632년 갈릴레오의 종교재판 이후 시작된 종교의 기만은 19세기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베르그송은 주지주의가 가지고 있던 2,500년의 신념을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부수기 시작한다.

이 세계는 ‘아자르(hasard)’ : 동일성의 체계 거부

동일성의 철학은 ‘체계의 철학’이다. 이 철학은 칸트와 헤겔에 들어와서 그 체계가 잡히는데 부분이나 요소로 하는 철학은 체계라고 할 수 있지만 베르그송에 있어 실제세계는 체계가 아니다. 오히려 체계가 없는 것이 맞다 했다.

베르그송은 세상이 체계를 가진 채로 어떤 법칙이나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지 않았다. 베르그송은 “내일 이 세상과 우리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주사위를 의미하는 아랍어 ‘al zahr’에서 파생된 프랑스어 ‘아자르(hasard[azaː?])’는 ‘우연’ 또는 ‘운명’이란 뜻으로 확률성을 함축하고 있다.(독일어 ‘hasard[ha|zart]’ 도박;모험) ‘나’라는 존재의 안에는 수많은 ‘내’가 있어 어떤 ‘내’가 발현되고 밖으로 드러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고 그 가능성은 다양하다. 다시 말해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정해진 채로 박혀 있는 것이 아니고 존재 간에 연속되고 서로 상호 침투되며 흐르고 운동하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실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완전하고 부동하며 절대적인 개념이지만 심층은 불완전하고 움직이며 어떤 경우에는 모자란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류종렬 교수는 “누구나 자기 얼굴에는 수많은 자기인생의 내용적 변화들이 담겨져 있다”고 하면서 이 내용적 변화들을 하나로 뭉쳐서 얘기한다면 ‘흐름’, ‘유동성‘이라고 한다.

베르그송은 이 세상이 이질적인 것들의 종합이라고 했다. 류종렬 교수는 “인간은 20조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 인간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생물의 세포에는 ‘미토콘드리아’가 들어있어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는 식물세포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이질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 이질적인 요소들의 결합방식은 다른 이질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수행되며 동일적인 체계로 계속 동일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이것을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식물-되기’, ‘동물-되기’라는 ‘되기’의 개념으로 표현하는데 이를 두고 들뢰즈는 국가가 제약하는 사회적 인간보다 훨씬 자유롭고 더 인간다운 것이라고 한다. 들뢰즈는 우리 안에 이미 많은 가능성이 존재하고 이것이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다양한 양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대상도 필연성과 관련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연성과 관련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도덕과 인륜 : 인격성의 문제

베르그송은 서양의 철학사를 ‘상층(上層)’, ‘평면(平面)’, ‘심층(深層)’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Plato)에서 1500년 까지 기독교주의가 지배했던 중세를 기점으로 상층의 철학이라고 한다. 이후 르네상스에 이르는 시기를 거치고 1632년 갈릴레오가 관성의 법칙을 끄집어낸 것을 데카르트(Descartes)가 철학적으로 정리하면서 평면의 철학으로 내려온다. 1809년에 오면 라마르크(Lamarck, 1744~1829)가 『동물철학』에서 동물 종의 변화에 대한 내용으로 책을 출간한다. 그 후 1830년까지 프랑스에서는 생물학 분야에서 학문적 전개가 매우 활발하게 전개된다. 심층에서 자연내재를 탐구하기 시작했고 변화하고 움직이고 생동하는 자연의 진짜 모습과 그 의미를 찾는 작업을 진행한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1800년대 전후로 철학이 다시 상층으로 올라간다. 칸트(Kant)는 사회와 국가라는 인격성을 인륜 속으로 포함시켜 상층으로 올려버린다. 그리고 1831년 헤겔(Hegel) 이후 계속 독일철학은 상층의 철학 노선을 가게 되었다. 헤겔철학은 국가라는 것을 이상으로 삼아 이것을 상층에 둔다. 류종렬 교수는 이 점에서 독일철학이 제국주의 철학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학문적으로 그리스 주제를 삼등분 할 때 ‘로고스(logos)’,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분야로 나눌 수 있는데 프랑스 혁명을 전후로 시작하여 19세기 낭만주의는 에토스의 넓이를 확장하고, 파토스가 상호 침투하는 것이 주제로 부상한다. 한편, 개인의 품행과 행실이라는 면에서 개인의 ‘인격성(personnalit?[프랑스어])’을 다루게 되는데 다른 한편으로 사회 공동체도 인격이 있다고 제기한 것이 인륜성(die sittlichkeit[독일어])이다. 헤겔이 사회 공동체도 인격이 있다고 하면서 국가의 인격성을 말한 것이 이 맥락이다.

프랑스 혁명은 개인의 자유를 기반으로 일반의지와 닮은 사회[공동체, cit?]의 인격을 다루기도 하지만, 사회 인격은 개인 인격처럼 주체로서 이루어지기보다 집합으로서 인격화(personnifier)이다. 헤겔은 변증법적 통일에 의해 사회성의 최고단계로서 국가는 인륜성을 실현하는 것으로 보았고, 그 인륜성 속에서 개인의 자유가 실현될 것으로 보았지만 베르그송은 이 변증법적 통일이 근거가 없는 것으로 여기고, 합의와 연대가 개인의 자율성 없이 이루어질 경우에 그 통일은 강압과 폭력일 수 있으며, 이를 은폐하려는 수단으로 외부에 전쟁을 거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류종렬 교수는 참고로 당시 헤겔을 반대했던 네 명의 대표적인 철학자들을 거론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중요한 시기에 독일에 없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독일철학이 상층으로 올라가던 시기에 그 철학의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 1813~1855)는 덴마크 사람으로 국가보다 개인의 결단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자아의 실체성과 실존성에 대해 강조했고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1845년에 이미 독일을 떠나 자본론을 쓸 때는 영국에 있으면서 영국의 모습을 통해 본 자본제의 현실을 파악했다. 마르크스는 헤겔철학의 국가 윤리적 동일성이 이항대립에서 하나의 통일성을 가지게 되면 이것이 사회의 폭력성을 양산한다고 생각하여 반대하였다. 또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도 일찌감치 독일을 떠나 스위스에 있었는데 『비극의 탄생』에서 독일 철학이 상층으로 올라가는 걸 보면서 그렇게 흠모해 마지않았던 바그너(Wagner)와 결별한다.

그런데 그의 ‘힘에의 의지’와 ‘짜라투스트라’, ‘영원회귀’와 같은 개념들은 프랑스화 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힘에의 의지와 영원회귀는 자연이라는 거대 속에서 되돌아와 새로운 사물이 되는 것으로 프랑스적 관점이다. 그래서 힘에의 의지는 ‘권력에의 의지’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프랑스적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권능에의 의지’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린다. 니체와 베르그송의 공통점은 상층의 실체성이 아닌 평면의 현존성을 중요시 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무의식이 의식보다 더 중요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우리들의 삶의 현실들이 밖으로 드러난 것 보다 내재성이 훨씬 더 크고 중요한 작업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의식은 빙산의 일각처럼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헤겔의 동일성에 대해 반대하는 경우와 유사한 주장이다. 이 당시 프로이트는 비엔나에 있었다.

베르그송의 철학과 도덕론

베르그송은 독일의 체계철학과 상층의 철학을 비판했다. 상층에서의 명령과 계율의 철학은 전쟁의 철학이고 저 밑 심층에서 솟아나는 철학은 연대의 철학이고 공생의 철학이다. 류종렬 교수는 “다시 말하면 전자는 이른바 가부장적인 철학으로 절대의 철학이며, 후자는 생산의 철학으로 여성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베르그송은 도덕과 종교에는 두 원천이 있다고 했다. 주지주의 철학과 내재성의 철학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19세기 후반부터 자연수 밑의 음수도 수(數)라고 볼 수 있는지의 문제가 제기되는데 네오칸트주의자들은 이것들을 동일성의 논리로 통합시킨다. 이를테면 무리수 ‘π’와 ‘√2’는 사실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같다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이 주지주의의 동일성의 논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류종렬 교수는 베르그송이 주장하는 내재성의 철학이 주지주의자들의 철학보다 더욱 실재성이 있다고 본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단한 공과 같은 것이라 여겨지던 ‘원자(atom , 原子)’를 쪼개면 쪼갤수록 원자핵과 전자에서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나눠지고 더 작은 미립자와 소립자로 나누어진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물질의 내부로 갈수록 그 양태는 훨씬 더 다양해지고 그것이 실재와 더 가깝다는 것이다. 동일성을 주장하는 자들은 이 실재성의 한 부분 껍데기만을 강조하며 심지어 통일성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전체로 통일되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도덕성과 종교에도 들어있다는 것이다.

주지주의-상층의 철학에서 동일성을 생각하는 자들은 완전을 모방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이 세상의 여러 현상들이 존재한다고 말하는데 마치 기독교에서 완전한 신과 반대되는 불완전한 인간에게 원죄를 멍에를 씌우듯이 완전한 것을 가지지 못했기에 불완전한 인간은 완전하지 못한 ‘빚’을 진 존재가 되는 것이다. 결핍되어 모자라는 유한한 존재이다. 그리고 이 존재들은 빚을 상부에 갚아야 한다는 것이 주지주의적인 판단이며 동일률의 원칙이 된다.

이것은 인격에게 사회가 강제하는 강요이며 칸트의 정언명법을 따르게 만든다. 하지만 베르그송은 이러한 사회는 생명의 본질을 배제하는 사회라고 하면서 이 습관이 배어버려 폐쇄된 사회(문명화 된 사회)에 저항하는 인간이 있다고 한다. 이 인간은 자기 홀로 저항을 위한 저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닫힌 사회의 ‘저항’에 새롭게 ‘저항’하는 인간이다. 이런 인간을 사회에서는 비정상이고 ‘별종’이라고 한다. 이것은 습관적인 사회가 스스로를 정상이라고 자부하는 데서 나오는 현상이다. 베르그송은 이 저항하는 인간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한다.

이 ‘도덕적 영웅’은 사회의 일반성의 밑바탕에 있는 영혼의 심층에서 끌어낸 인격이다. 류종렬 교수는 이런 사람들의 내재적 본성에 대한 호소는 아마도 루소의 연민(la piti?), 예수사랑, 베르그송의 헌신(devoument)일 것이라고 한다. 이 공감은 정언명법처럼 순차적인 이어짐이 아니라 상호 침투하는 공감이며, 직관처럼 단번에 서로에게 관통하는 것이다. 이 관통하는 힘은 감동과 정서에서 생성하는 내재적 추진력이다. 인식을 주관하는 이성이 아닌 ‘의지’의 측면이 강하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실천은 이 감동에 실려서 ‘확장’된다. 이 ‘확장’의 개념은 선적이고 단적인 개념으로서의 ‘진보’ 개념과는 다르다. ‘확장’이란 여러 관계를 만나고 자신을 확장시켜 더 많은 것을 경험하면서 자신과 모두를 ‘진화’시켜 나가는 측면에서의 개념이다.

동일률을 넘어 내재성의 확장으로

류종렬 교수는 현대 우리의 주변에는 아직도 동일률에 의거하여 우리 위의 아버지-아버지의 저 먼 아버지에게 부채(負債)를 지고 있다는 생각에 아직도 자신이 현존하는 근거를 상층에 갚기 위한 수행의 일환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동일성의 논리를 통해 인간을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집어넣는 사회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류종렬 교수는 강의록 말미에 『부채인간(인간 억압조건에 관한 철학 에세이』(마우리치오 라자라토 저, 허경_양진성 역, 메디치미디어, 2012)의 내용을 들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일론자들이 씌어놓은 부채(원죄, 죄의식, 모자란 존재, 결핍존재, 유한존재)라는 것은 권력자의 피지배자에게 쳐놓은 덫과 같은 것이다. 동물원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소외로 죽고, 들어가면 피를 빨려 죽는 그 동물원에 인간을 몰아넣는 것이 신자유주의이다. 아직도 신자유주의에서 윗목이 따뜻하면 아랫목도 따뜻할 것이라고 믿는가? 야만의 제국, 자본의 제국, 권력의 제국, 권력의 제국, 전쟁과 공포의 제국에서 윗목(이익)은 항상 피라미드 체계의 윗부분에만 있지 그 외에는 없다. 이 위계의 체계에 저항하고 봉기하는 혁명의 길이 진정으로 인간성을 찾는 것이다. 이 위계의 밖에서 고립된 ‘덕후(별종)’들의 공연성(公然性)을 공명하는 다양체가 새로운 ‘인민의지’이다. 이 인민의 의지로서 봉기와 혁명이야 말로 부채인간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동일률에 반대하는 인민 다양체의 자기 확장(생성)의 논리가 새로운 시대를 여는 한 방법일 것이다” – 류종렬 강의록 중 『부채인간』(45VLF)

▲ 류종렬 교수 ⓒ프레시안

내재성의 확장이야 말로 새로운 생성이며 힘센 한 사람의 지배적 지성이 아닌 집단적 지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지향하는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고 질서에 균열을 만들며 뚫고 나오는 것이 베르그송이 말하는 ‘도덕적 영웅’이다. 류종렬 교수는 ‘디시인사이드(DCinside)’의 집단지성이 보여주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그 단적인 예라고 하면서 ‘스키조(schizophrenic)’가 세상을 바꿀 것이며 신만 아는 편집증의 시대와는 고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버지의 후배가 아니고 이 세상의 모든 생명존재의 마지막이다. 이 자각이 있으면 우리는 자연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지며 어떤 기준에 의해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우리가 기존에 만들어 놓을 것을 바꿔나갈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도덕이 살아있는 사회이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티끌 속에 온 우주가 깃들어 있어 티끌 하나도 반짝이는 금과 같은 존재’처럼 모든 인간이 다 소중함을 체득해야 한다. 우리의 내재성이 확장된 방식으로…”

연대의 철학을 위하여 [한철연 교육강좌]- ⑬

[한철연 교육강좌]- ⑬

연대의 철학을 위하여

 

강사 : 서 유 석(호원대 교수)
후기 : 한 길 석(한철연 교육부장)

 

연대(solidarit?)라는 말과 사상이 역사에 의미있게 등장한 것은 프랑스 혁명기이다. 프랑스 혁명기에 연대는 ‘자유(libert?)’, ‘평등(?galit?)’과 함께 혁명의 이념으로 제시된 ‘형제애(fraternit?)’의 유사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 개념이 정치적 의미를 지니면서 오늘날 통용되는 의미로 정착한 것은 19세기 중엽 이후 노동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덕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연대에 큰 의의 부여한 까닭은 그것이 자본의 착취에 맞서는 무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에게 연대는 투쟁 수단만이 아니었다. 연대(연대적 삶)는 동시에 미래 이상 사회의 구성 원리이기도 했다. 이상적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과 연대적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68혁명을 전후하여 등장한 신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에서의 연대 역시 억압 구조의 타파를 이루기 위한 구성원들 사이의 정서적 결합과 상호협력을 의미했다. 사회주의 연대와 신사회운동의 연대는 양상의 차이(자본주의 타파냐 억압구조의 타파냐)는 있지만 연대 투쟁의 과정에 분명한 적이 있었고 목표(인간 해방)가 보편적이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서유석 호원대 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연대의 원리는 사회보장 정책을 정당화하는 원리로도 작용한다. 현대의 사회복지정책은 빈민구제가 아니라 제도화된 상호부조의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사회적 연대의 구현으로서의 사회권 쟁취 운동은 오늘날 나날이 강조되고 있다. 물론 사회보장 정책은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 사회보장정책은 체제 안정을 위해 지배자의 편에서 도입되었다. 독일의 사회보장이 비스마르크에 의해 제도화된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다른 한편 사회보장은 인권을 확보하는 투쟁을 통해 획득되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사민주의자들의 사회권 투쟁이 대표적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제기한 ‘해방 투쟁을 위한 연대’는 현실에서는 매번 좌절되었다. 맑스도 예상치 못한 보수주의자들의 반격인 복지국가 정책은 사람들로 하여금 변혁을 위한 연대보다는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었다. 그람시는 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하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시했다. 생활이 어려울수록 체제 위기가 와야 하는데 실제는 아니었다. 국가가 국민을 달래고 적당히 동의하게 만드는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의 지배는 폭력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주민의 동의에도 일정한 기초를 두고 있다는 말이 된다. 사회 또한 노동자 대 자본가라는 단순 구도로 구조화되지 않았다. 구조가 단순하지 않으니 그것을 변화시킬 싸움도 단순하게 전개될리는 만무하다. 단순한 기동전이 아니라 끈질긴 진지전이 제시되는 이유이다. 이 과정에서 변혁 세력은 국민적 동의를 얻어내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헤게모니를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도 기동전이 통하는 시기는 아니다. 자본주의적 체제의 자정 능력이 의외로 효과를 거두고 있는 단계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노동계급 중심의 사회주의적 연대가 아닌 다양한 계층의 실제적 삶 속에서 연대를 조직하는 진지전적 작업이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유효할 것이다. 주민 자치 운동의 활성화를 통한 연대적 삶의 조직은 실천적 사례가 될 수 있다.

지역 공동체의 주민자치운동은 민주주의를 일상의 삶 속에서 그리고 나와 이웃의 삶 속에서 구현하는 운동이다. 전국 단위를 중심으로 하는 대의제 정당 민주주의로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구현할 수 없다. 이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주민의 삶의 현장인 주거 공동체, 일터, 학교, 그리고 기초 단체의 행정 집행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구현되어야 하고 삶의 제 분야인 여성, 아동, 노인, 장애인, 이주 노동자, 교육, 먹거리, 교통, 환경 등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주민의 직접 참여에 의한 자치가 이루어져야 민주주의는 완성된다.

여기서 일본 ‘혁신 자치제’의 경험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민주 세력들은 1960년 중반 이후 공산당, 사회당이 중심이 되어 환경, 생활, 복지를 지방자치의 핵심 의제로 걸며 지방 자치의 혁신을 시도한다. 이것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생활 문제의 해결을 정치의 핵심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집회, 도민실 운영, 심의회 등 주민 참여형 행정이 도입되었다. 중앙정부도 지자체가 선도한 조처들을 국가 정책으로 받아들여 나가게 된다. 일본 지방 자치 연구소 스가와라 연구원은 이를 두고 당시의 전략은 “자민당이 주도하는 중앙 정부를 포위하는 구상”이었다고 평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등장한 주민자치운동의 사례도 진정한 연대적 삶의 구현이라는 차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산본 쓰레기 소각장 건설 반대운동은 ‘군포자치시민회’의 결성과 ‘수리산 자연학교’의 건립으로 이어져 지속적 주민자치운동으로 발전했다. 마포 성미산 지역에서는 생협운동, 공동육아운동, 대안학교운동, 친환경급식운동, 지역 차원의 대안경제운동 등의 다양한 공동체 운동이 발생하면서 개별 운동 영역간의 폐쇄성을 극복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들을 통해 주민들은 정치의 실제적 주체가 되고 정치적 영향력이 높아지고 정치적 고민의 폭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 지역 주민만의 정치가 아니라 일반적 시민의 정치까지도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들은 정치적 무관심, 정치적 무임승차 의식, 계급 배반 투표, 박정희 신드롬 등의 현상이다.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보편적 복지 구현이라는 진보정당의 강령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를 위한 세금 인상은 반대하고 있다. 세금과 규제는 피하고 각자 노력하여 많은 수입을 벌면서 제도적 혜택은 혜택대로 누리려는 무임승차 의식, 그리고 성장의 신화를 잊지 못하는 퇴행적 향수는 보수당에게 표를 몰아준다. 이런 이율배반 심리는 정치가 국민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진보 및 개혁 세력이 실제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지역 공동체의 주민자치 운동은 시민 스스로 무임승차심리를 극복하게 하고 박정희 신드롬을 극복하도록 하는 민주주의의 최상의 학교요 교육의 장으로서의 의미도 갖는다. 주민자치운동은 중앙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내부 소통과 숙고, 실천과 참여를 거치면서 공공성을 획득하고 시민운동으로 발전한다. 주민자치를 포함한 사회적 연대운동이 진정한 연대의 과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열린 연대운동이 되어야 한다. 집단 이기주의적 닫힌 연대는 배제되어야 한다. 노동 운동도 공동체 운동도 이 동질 집단에 대한 충성의 경향성이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스마트하게 혁명을?; 6월 항쟁과 촛불에 대한 철학적 성찰[한철연 교육강좌]- ⑫

[한철연 교육강좌]- ⑫

스마트하게 혁명을?; 6월 항쟁과 촛불에 대한 철학적 성찰

 

강사 : 박 영 균(건국대 HK교수)
후기 : 한 길 석(한철연 교육부장)

 

일반적으로 한국의 정치학자들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수립된 체제를 ‘87년 체제’로, 1997년 IMF 위기 이후에 형성된 사회 구성의 결과물들을 ‘97년 체제’로 일컫는다. 87년 체제의 특징은 군부 독재의 소멸과 대통령 직선제 등의 형식적 민주화의 구현이다. 97년 체제의 특징은 신자유주의의 본격적 도입이었다.

1970년대 한국 경제는 정부의 지도로 전개되었다. 대외 자본을 도입해 국내 경제를 키우는 이른바 ‘종속 파시즘 체제 전략’은 중남미나 한국이나 구조적으로 동일했다. 그러나 한국이 성공한 이유는 대외 자본을 국내 생산 체제의 건립으로 전용한 데에 있었다. 이를 통해 한국은 자립적 자본 축적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가가 노동 세력 및 자본 세력 모두를 절대적으로 통제하는 파쇼 체제의 면모는 여전했다. 특히 한국 정부는 기업의 돈줄을 쥐면서 자본을 통제하는 관치 금융 체제 전략을 취함으로써 민간에 대한 우위를 굳건히 지켜나갔다. 그렇지만 정부의 지원을 통해 자본 세력은 대기업 집단으로 성장했으며, 대단위 사업장의 등장으로 인해 거대 산업 노동자 집단이 형성될 수 있었다. 이 둘은 훗날 정부에 대항하는 두 가지 주요 세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의 통제력에 저항하던 중심적 세력은 대학 운동권이었다. 당시 대학생들은 1980년대에 도입된 소위 과학적 맑스주의(칼 카우츠키류의 속류적인 경제 결정론적 맑스주의)로 무장하면서도 동시에 지사적 순교자 의식을 지니면서 저항 운동에 뛰어들었다. 대학생은 예비 지식인이고 이른바 지식인은 노동자의 생산물을 거저먹는 이들이므로 그들의 삶을 위해 모든 생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녔던 것이다. 이렇게 저항하던 운동의 결실을 보게 된 시기가 바로 1987년 6월이었다. 당시 대학 운동 세력은 일정한 조직 역량을 바탕으로 저항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87년 항쟁은 조직적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벤야민이 말하듯이 마치 ‘메시아처럼 재림’한 폭발적 사건이었다. 항쟁의 역량이 갑작스레 증가한 이유는 사무직 노동자들로 대표되는 일반 시민의 참여에 있었다. 일반 시민들까지 거리로 나와 서울시 한 복판을 점령하자 파쇼체제는 6?29선언으로 후퇴했다. 이후 시위 군중의 수가 감소하면서 변혁의 동력은 갑작스레 사그라들었다. 항쟁 국면은 7, 8월의 노동자 투쟁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에는 어용화된 한국노총을 제외하고는 전국적으로 조직된 노동 단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거대 사업장을 필두로 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형국을 취했다. 노동자 총파업의 결실로 전노협이 건설되었다.

박영균 건국대 HK교수/ 사진:조배준 한철연 회원

87년 항쟁 이후 변혁의 동력이 꺼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6월 항쟁 이후 형성된 형식적 민주 체제로 인해 사람들은 제도 정치권에서 변혁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또한 민주화 이후 형성된 자유로운 분위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소비 및 향락의 욕망을 발산하도록 돋구었다.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자본은 소비자의 이러한 욕구를 시장에 연결시켰다. 사회주의 패망 이후 이 물결은 전국민의 의식을 휩쓸면서 변혁의 열망을 잠재웠다. 이 속에서 진보 세력 구성원 중 많은 이들이 이탈했으며 제도권 정치 혹은 신사회운동으로 전환했다.

1997년 이후 사회의 대결 구도는 민주 대 독재의 대결이 아니라 진보 대 보수의 대결로 구획된다. 이러한 구도에서 민주주의의 강화와 더불어 평등적 가치의 수립이 강하게 도입되었다. 6월 항쟁 이후 사람들의 의식 속에 민주적 사고가 자리잡았다. 이 속에서 사람들은 자존감과 자부심을 형성시킬 수 있었다. 각자가 민주적 시민으로서 인정받고 존중받지 못하면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촛불은 시민들의 이러한 의식 속에서 발현된 현상이다. 촛불은 단지 광우병의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 쇠고기 수입 과정에서 정부가 취한 굴욕적 태도가 민주적 시민으로서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힌 것이다. 시민들은 광장에서 자신의 상처를 문화적으로 치유했다. 최류탄과 몽둥이를 파이프와 화염병으로 맞서던 힘의 공간이 공연 및 토론의 문화적 공간으로 변화했다. 조직적 투쟁과 점거를 가능케 했던 87년의 지도부는 촛불 시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거리는 각자의 욕망을 해방시키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그 욕망은 자본 등에 의해 조성된 수동적 욕망이 아니라 자신이 발현시킨 능동적 욕망이었다.

변혁의 가능성을 여전히 모색하던 이들은 이렇게 변화된 환경에 맞춰서 새로운 논의로 시선을 돌렸다. 최근 진보적 지식인들이 들뢰즈식 맑스주의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전에는 지배 세력에 의해 조성된 이데올로기를 분쇄하려는 시도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소비자본주의 사회로 전환된 이후에는 진보적 지식인들도 욕망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욕망의 해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외적으로 주어지는 욕망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능동적으로 우러나오는 욕망에 주목했다. 이것은 향락적 말초적 단기적 욕망과는 다른 자기 존재를 순수하게 드러내는 존재론적 욕망이다. 존재론적 욕망은 소비 자본의 욕망과 대결하면서 대면하게 되는 자기 존재의 진정한 욕망이다. 소비자본주의는 다양한 개별적 욕망을 화폐 축적의 욕망으로 환원시킨다. 이 환원된 욕망에 저항하면서 자기 존재의 가능성을 진정으로 실현시키면서 해방감을 만끽하게 하는 욕망에 이를 때 우리는 진정한 해방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현재적 의미는 상당히 값지다. 그렇지만 그것은 개인적 노력의 부담을 지나치게 높게 부과한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기 욕망을 형성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단순히 자기 개인의 자체적 존재의 욕망을 파편적으로 펼치는 형태는 피상적 인간 관계의 형성으로 귀결될 수 있다. 진정한 자기 욕망을 찾기 위한 시도가 사회적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의 것을 형성하는 폐쇄적 형태로 전개되어서는 곤란하다. 따라서 욕망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획 및 조직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론적 욕망의 대의적(representative) 구현을 제안해 본다. 각자의 욕망을 네트워크화하여 전체적 비전을 창출해서 욕망의 길을 일정하게 선도하는 인물, 제도, 조직을 실현시키는 과정도 존재론적 욕망을 구현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새로이 요구되는 해방의 가능성은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후기

87-97-08로 이어지는 우리의 최근 역사를 정치 사회적으로 뿐 아니라 철학적 배경으로 곱씹어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변화된 우리의 생활과 생각을 어느 방향으로 어떤 방법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생각들은 비슷한 사람들이 갖는 ‘다른 방식’-구조(국가)- 자율체(다양성)에 관심이 많은데, 시사하는 바가 있어서 좋았고, 과거지사 주마등처럼 지나갔던 80년대 후반 90년대를 회상케 해주는 추억의 시간이었습니다.

 

흩어진 역사적 사건을 하나의 관점으로 중심축을 꿰는 곶감의 중심 막대기(?) 역할을 한 것같다. 미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국각는 자본을 더 대우해 주는 국가라 생각합니다. 국가를 잘 이용해서 집단의 희망을 대변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민을 위해 일하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존재론적 욕망이 생명의 힘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 믿고 있는(싶은)데, 선생님은 그것이 더 큰 고통, 지고의 삶의 경지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이견을 가지신다. 욕망의 대표적 실현, 재현을 위해 기획과 조직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아직은 공감하기 어렵다!!!

 

사이버 세계의 이상적 구축은 가능할까요? 민중이 현실에서 반응하는 양식이 비대면의 세계로 간다면 장점의 측면 뿐 아니라 단점의 측면도 하이퍼리얼화 시키지 않을지에 대한 의문을 안고 갑니다.

 

6?10, 노동법 총파엽, 촛불 집회가 가지는 관계성과 성격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더불어 한국에서의 정당의 역사성과 정당의 성격 분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실체가 모호한 춧불집회에 대해서 향후 어떤 형식의 혁명을 규정 또는 상상해 볼 수 있을까요?

 

사회가 변화하면 또 다른 변혁을 위한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원칙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판문점에 선 철학; 상처와 화해의 철학[한철연 교육강좌]- ⑪

[한철연 교육강좌]- ⑪

판문점에 선 철학; 상처와 화해의 철학

 

강사: 이병수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
후기: 한 길 석(한철연 교육부장)

 

분단 이후 남북 관계의 기본 특성은 적대성이라고 규정될 수 있다. 적대는 군사 및 이념적 적대와 생활 문화적 적대로 대별된다. 생활 문화적 적대는 남북 주민들 간에 자발적으로 동의된 적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남북 구성원들의 무의식 속에 각인된 적대성이라 그 심각성이 더욱 크다. 같은 동족임에도 남북 국민 모두는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껄끄럽고도 혐오스러운 존재로 여긴다. 적대감이 무의식 속에 내면화된 상태라면 분단은 이미 사회과학적 사태가 아니라 인문학적 고찰을 요구하는 사건이다. 우리 몸과 마음의 분단이라는 차원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병수 통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그렇다면 홉스봄의 ‘역사적 국가 historical state’ 개념을 활용해 분단 적대성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살펴보자. 역사적 국가란 혈연, 언어, 문화, 정치, 역사적 동일성이 구조화된 국가 상태를 의미한다. 동아시아 삼국은 천여년 이상 영토 경계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각자의 역사적 국가 상태를 구성해왔다. 그런데 20세기 이후 이런 상태가 붕괴되면서 한반도는 망국, 이산, 분단이라는 현실에 휘말렸다. 과거 한국인들은 한반도라는 일정 공간 내에서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던 역사적 국가를 이루고 있었는데, 현재는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지 않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디아스포라적 상태는 재중 동포, 재일 동포, 재러 동포 등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엄밀히 보자면 남과 북 국민들 모두가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지 않는 상태라고 할 수있다. 오랜 역사적 국가 상태 속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민족과 국가의 불일치 현상은 일종의 치욕감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한민족 구성원들은 분단이라는 비정상적 상태에서 벗어나 통일된 역사적 국가 상태를 희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서로를 증오하는가? 서로의 정부를 가짜로 치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을 어머니, 국가를 아버지라 해보자. 우리는 분단으로 인해 두 아버지(두 개의 정부)를 둔 민족의 자손이 되었다. 남북은 서로를 가짜 아버지의 자식으로 치부하면서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 들었다. 여기에 분단 적대성의 원인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적대성의 근저에는 강력한 동질화의 욕구가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서로 전망하는 동질화의 상태가 상이하기 때문에 상대방과의 화해를 통한 동화는 거부하고 있다. 각자가 상대방을 자기 모습대로 동화하려드는 왜곡된 욕구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적대는 더욱 심해진다. 한국전쟁은 훼손된 민족 국가의 동질성을 회복하려던 왜곡된 몸부림이었다. 동질화의 욕망이 왜곡된 형태로 전개될수록 적대 행위는 심화되고 그것으로 인한 상처는 무의식 속에 강하게 각인된다.

현대사에서 우리 민족은 식민 트라우마, 이산 트라우마, 분단 트라우마라는 세 가지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현실의 불행한 대립의 역사는 이 트라우마를 이성적으로 치유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롯한다. 그렇다면 트라우마화된 적대성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화해의 형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상대방과 내가 다름을 받아들이고 상실한 민족 공동의 서사를 공유하는 것이다. 전자를 인정의 노력이라 한다면, 후자는 민족통합서사를 이룩하려는 노력이라 하겠다. 인정의 노력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단순히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방이 이해되지 않고 여전히 못마땅하지만 대립하는 것이 손해이기 때문에 갈등 상황을 멈추고자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식에는 자신의 관점을 잣대로 상대방을 평가하는 태도가 여전하다. 이것은 일종의 전술적 고려 속에서 나온 인정의 태도에 불과하다. 세력이 비등하므로 억지로 상대방을 인정할 뿐이다.

또 다른 인정의 노력은 타자의 인정이다. 이것은 자기의 정체성과 가치관, 그리고 현재적 상태의 변화를 감수함을 의미한다. 남한만 옳고 북은 고쳐야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상대방이 보기에는 각자의 체제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식하고 자기 체제의 문제점을 상대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족통합서사의 구축은 과거의 통합된 역사를 오늘에 되살리려는 복고주의나 보수적 민족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한반도 구성원들은 식민, 이산, 분단을 겪으면서 각자 상이한 문화, 의식, 역사, 생활양식을 구성해왔다. 이런 상태에서 민족 공통의 서사를 발견하기란 불가능하다. 잊혀진 과거에서 결합의 흔적을 찾다가는 혈통적 민족주의를 자극할 수도 있다. 현대사에서 공유한 역사적 수난을 바탕으로 하여 남, 북, 해외동포 등의 각 구성원들이 구성한 문화적 성과물들을 결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남북 교류의 확대와 지속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질문1) 탈북 주민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는?

탈북인의 절반은 자신을 북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있다. 체제적 정체성은 포기했으나 북에서 형성한 공동체, 풍습의 정체성은 고수하고 있다. 상이한 문화적 정체성을 주장하지만 그래도 이들은 같은 민족으로서의 공통적 정체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여기서 분단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이들로서의 공동의 정체성을 인식해야 한다. 탈북인을 같은 동포로 보고자 하는 것은 단지 혈연적 동일성의 차원에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질문2) 체제 세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삼대 세습은 분단 구조가 낳은 독특한 체제이다. 분단 구조는 북한 혼자만이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삼대 세습 제도를 유발시키거나 그것을 지속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책임에 대해서는 남한도 자유롭지 않다. 삼대 세습은 현대적 사고에서는 비상식적 사건이다. 그러나 비상식적 사건의 극복은 비난과 조롱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세습 문제를 낳은 분단 구조에 대한 면밀하고도 성찰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후기

남북 문제를 민족의 문제와 국가의 문제로 대비해서 고찰해 볼 수 있는 심층 강의라고 본다.

평소 관심이 있었던 민족 정체성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통일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선생님이 제기하신 민족적 트라우마 개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분단 이후 국가 정체성과 민족 정체성이 다른 한반도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 속에서 국가 폭력이 개인의 폭력으로 이어져 가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차이의 인정을 넘어서 타자성에 대한 이해로 남북 체제를 바라보는 화해와 상생을 위한 길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교수님의 강의에 감사드립니다.

기존의 통일에 대한 생각과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강의였습니다.

“기존 이념과 국가가 하나가 되는 통일 개념이 잘못하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소통과 교류를 중시하는 과정으로서의 통일로 통일 개념이 바뀔 필요가 있다” 귀한 말씀이었습니다.

민족과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 폭을 많이 넓혔습니다.

골치 아픈 현대 미술; 근대 이후의 아름다움 [한철연 교육강좌]- ⑩

[한철연 교육강좌]- ⑩

골치 아픈 현대 미술; 근대 이후의 아름다움

 

강사 : 이병창(동아대 명예교수)
후기 😕 한길석(한철연 교육부장)

 

오늘(5월 27일)은 이병창 회원(동아대 명예교수)의 강의를 통해 아방가르드 미학에 다가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현대 예술의 경향을 리얼리즘과 아방가르드로 나누면서 후자를 ‘사기, 해체, 꿈’이라는 세 키워드로 풀이해 나갔다.

 

1)사기

백남준은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했다. 그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①예술은 가상을 마치 진짜 현실인 양 만드는 눈속임이다. ②예술은 장난(유희)이다. 이 말의 의미를 풀이해보기 전에 우선 청계천에 있는 이라는 조형물을 살펴보자. 이 작품은 클라스 올덴버그라는 스웨덴 출신의 팝아트 작가의 것이다. 아이디어는 부인이자 동료 팝아트 예술가인 코샤 반 브룽겐에게서 얻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 작품에 대한 평은 좋지 않다. 한국의 역사적 전통과 동떨어져 있으며, 조각품에 대한 일반인들의 기대와도 거리가 멀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병창 회원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소라를 귀에 대보면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소라와 같이 생긴 이 작품도 자연의 소리, 생명의 소리(물소리)를 품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인공적으로 복원된 청계천의 기만성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샘의 생명에 찬 분출력을 인공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이 작품은 청계천이라는 거대한 인공 개천을 마치 자연 하천의 복원인 양 여기는 한국 사회의 기만적 행태를 풍자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예술은 사기이되 현실의 사기(기만성)를 사기라는 형식을 가지고 드러내는 사기라 할 수 있다.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이병창 동아대 명예교수또 다른 예는 삼성이 세운 리움 미술관이다. 삼성은 서구의 세 유명 작가(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에게 의뢰하여 각각 독립적인 건물을 세우게 하고 지하를 통해 세 건물을 연결했다. 각각으로 보자면 대단한 작품들이다. 그러나 전체적 관계성을 고려해서 보면 이 건물들은 사기이고 기만이다. 건축물은 언제나 그것이 거기에 세워져야 하는 이유와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건축되어야 한다. 마리오 포타의 작품은 로마네스크 교회 양식이라는 역사적 전통과 현대성 간의 긴장 관계 속에서 그 미적 가치를 웅변한다. 그러나 리움 미술관에 들어 선 마리오 포타의 작품은 특유의 긴장 관계가 소멸된 무맥락성 속에 있다. 이것은 그저 재벌가가 자신의 재력과 왜곡된 교양을 자랑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역설적으로 이 작품들은 한국 재벌들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그들 혹은 한국 사회의 무비판성과 몰취미(기만성)를 폭로하는 ‘예술의 간교한 복수’를 감행하고 있다.

2) 해체

해체라는 개념은 프랑스의 작고한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대표적 개념이다. 우리는 세상을 개념틀을 가지고 본다. 이것을 넘어서는 것을 볼 경우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 자체를 거부하려 한다. 이런 대상과 직면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지닌 기존 개념틀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반성을 통해 잘 드러나지 않았던 기존 개념틀의 구조를 새로 인식하게 되고 그것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해체란 자신이 은밀히 지니고 있던 개념틀의 토대를 드러내고 그것의 한계를 폭로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기존 개념 구조틀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와 대면해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이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파이프 그림과 파이프가 아니라고 진술하는 문장 간의 갈등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회화 작업에 대해 갖고 있던 상식적 개념틀을 재검토하는 비판적 태도를 경험하게 한다. 라우셴버그의도 해체의 경험을 선사한다. 그는 당시 유명 화가였던 데 쿠닝의 작품을 사서 그의 그림을 지우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오직 지우는 작업으로 채워진 이 작품은 무언가를 그리는 것이 회화 작업이라는 통념에 도전했다. 사람들은 흔히 무언가를 남기고자 삶의 모든 양식에 집착한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지워나가는 작업에서 오히려 삶의 행복과 자유를 느낄 수 있음을 상념할 수 있다.

3) 꿈

예술은 꿈이다. 꿈은 우리가 무의식 속에서 소망하는 것이다. 우리가 꿈을 제대로 꿔내려면 무의식 상태에 진입해야 할 것이다. 무의식은 공포스럽다. 하지만 쾌락을 주기도 한다. 인간은 흔히 불온하고 금지된 것을 꿈꾼다. 그것은 처벌의 공포를 주지만 동시에 강한 쾌감을 선사한다. 무의식의 세계에 탐닉하는 자신은 의식 세계의 자아를 벗어나 변신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의식된 자아에서 해방됨으로써 우리는 자유를 만끽한다. 지금과 다른 존재로의 변신은 지금 상태에서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 보고 그것의 처지를 이해하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인간에게 이해 불가능한 대상 중 대표적인 것은 자연이다. 예술은 언제나 자연과의 화해라는 불가능한 꿈을 꿔왔다.
이화여대의 ECC관은 도미닉 페로의 작품이다. 이 건물은 건물이되 텅 빈 공간으로서의 인상을 준다. 어떤 공간을 채우는 형태의 건축이 아니라 공간 자체를 선사하는 건축 방식은 건축물 위에 공원이라는 자연 공간을 끌어옴으로써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이 건물은 자연과 인공물이 공존하려는 꿈을 보여주기 위한 건축물로 변신했다. 이종호의 작품 박수근 미술관 또한 자연이 건물이 되고 건물이 자연으로 변신하는, 자연과 인공물의 조화라는 예술의 꿈이 구현된 작품이다.

 

질문 1) 현대미술의 시기는?

연대 구분을 명확히 나눌 수는 없다. 대략 보자면 1920-30년대는 모더니즘, 50-60년대는 아방가르드, 70-80년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기라 할 수있다. 그러나 각 경향의 운동은 특정 연대에서 종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질문 2) 한국 사회 그리고 서울이라는 공간은 사실 전통 및 맥락과 단절된 곳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리움미술관의 무맥락성도 현실을 반영한 게 아닌가?

맥락은 단절의 관계이다. 기존 전통과 경향, 사건들이 현재적 상황과 충돌을 빚고 일정한 단절의 긴장을 형성함으로써 맥락적 관계가 등장한다. 그러나 리움은 뜬금없이 불쑥 세워진 완전한 무맥락성에 있다. 전혀 다른 의도와 맥락 속에서 등장한 구현물들을 아무런 고민도 없이, 아무런 긴장 관계의 형성도 없이 억지로 이어 붙인 것에 불과하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후기

철학과 예술 새로운 관점에서 둘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시선과 관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추천해 주신 한국 내 작품들을 보고싶어집니다.

건축은 예술 작품이지만 동시에 공공 생활을 책임지는 유산이 될 수있다고 느꼈습니다. 한국의 도시 계획이 앞으로 더욱 성숙하고, 건축이 미래의 유산임을 염두에 둘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예술은 느끼는 것일까? 이해하는 것일까? 문외한으로서 먼저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이 필요하다. 오늘 강의는 예술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 강의였다.

예술가는 ‘시작과 끝’만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말이 와 닿았다. 5년동안 감상해오던 ‘바깥 미술회’의 작품들이 그동안의 시간과는 달리 나의 심상의 영향을 받아 크게 감동받을 수 있다는 경험을 실제 했기 때문이다. 또 일본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지난해 그들이 겪었던 쓰나미의 슬픔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에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이건희 부인 홍라희가 비싼 예술품을 대중과 함께 즐기기를 바랍니다.

해체의 현 현상을 시적으로 살피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건축 미학에 대해 잘 모르고 지냈던 것 같다. 강의를 통해 예술에 대한 새 시각을 갖출 수 있었다.

인문학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기술이 골치 아픈 대상이듯이 공학 종사자에게 에술이란 대하기 두려운 대상이다. 이병창 선생님의 사례 제시와 설명으로 예술에 대해 두려움을 덜어내고 재미를 심는 시간이었다.

신성한 사적 소유? 사적 소유의 마법에서 깨어나기[한철연 교육강좌]- ⑨

[한철연 교육강좌]- ⑨

신성한 사적 소유? 사적 소유의 마법에서 깨어나기

 

강사 : 박종성(호원대 외래교수)
후기 : 한길석(한철연 교육부장)

 

 

박종성 회원(호원대 외래교수)이 강의한 이번 강의에서는 마르크스의 사적 소유론에 대한 일반의 오해를 해명하는 작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강의 제목에서와 같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적 소유에 대한 맹목적 신뢰 의식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사적 소유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회 구조의 변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강의로 ‘사적 소유의 퇴마’가 성공할 수는 없다는 말일까?

박종성 호원대 외래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분명히 마르크스는 사적 소유를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소유 자체를 없애자거나 조야한 수준의 공유제를 만들자는 말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의 사적 소유철폐론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근대 이성에 대한 성찰부터 시작해야 한다.

근대 이성은 모든 것을 계량화시키는 이성으로서의 특성을 지녔다. 근대의 계량적 이성은 모든 것을 양적 기준으로만 평가하고 이를 통해 그것을 제어하고자 했다. 아도르노의 도구적 이성 비판은 바로 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만물의 계량화는 각 개별 존재자의 질적 특성을 무시하고 양적 기준 하나로 추상화(균일화, 동일화)시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동일화 원리가 화폐라는 양적 기준을 통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 사회에서는 화폐를 얼마나 소유했고, 소유할 가능성이 있는가에 따라 인격을 평가하고 서로를 견준다. 사람들은 누구나 화폐를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운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로는 서로를 수단으로 대우하면서 낯선 존재가 되어버린다. 사적 소유 관계는 이러한 소외 관계를 일반화시킨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 관계의 앙상블을 만드려면 사적 소유 관계의 철폐가 가장 좋은 길이 된다.

사실 사적 소유 철폐론은 마르크스만 주장한 것은 아니다. 플라톤, 토마스 모어 등도 공유제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공유제는 조야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히 플라톤의 공유제는 모든 것(아내와 자식마저도)을 말 그대로 함께 소유하면서 사회를 유지하도록 권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이 체제는 만인에 의해 사적소유로서 소유될 수 없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 한다. 가령 재능과 같은 것을 폭력적 방식으로 도외시하려고 한다. 물리적, 현시적 소유만이 생과 생활의 유일한 목적으로 간주되는 것이다.”(MEW, 1, 534) “이 여성공유사상이 이 완전히 조야하고 반이성적인 공산주의의 노골적인 비밀…..이 공산주의는 인간의 개성(Pers?nlichkeit)을 도처에서 부정”(같은 책, 같은 쪽)한다. 사실 마르크스가 바라보는 공산주의는 개인들이 갖고 있는 잠재적 본질력을 표현하는 표현주의적 경향이 짙게 베어있다. 그의 사적 소유 철폐론도 모든 개인적 소유의 철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개인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적극적으로 소유하도록 장려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라는 견해를 지니고 있다. “개인은 (타인과의) 공동 관계에서 비로소 그의 자질을 다방면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된다. 그리고 공동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인격적 자유가 가능해진다.”(『독일이데올로기』 74쪽 / 128-9쪽)

마르크스에 의하면 사적 소유는 소외된 노동의 결과물이다. 자본가가 소유하고 있는 기계나 공장과 같은 생산 수단 및 그 밖의 소유물들은 원래 노동자가 생산한 생산물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생산물들이 착취되어 자본가의 소유가 된다. 따라서 자본가의 사적 소유물은 노동자의 소외된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나중에는 이러한 관계가 심화되어 사적 소유 관계가 노동 소외를 더욱 심화시킨다. 생산 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노동자를 고용한다. 노동자는 임금을 통해 화폐 및 생산물의 사적 소유를 추구하지만 그것은 이내 좌절된다. 임금 노동 관계에서 노동자가 만든 것은 노동한 사람의 몫이다. 그러나 임노동 계약 관계에서는 노동자가 생산한 생산물은 자기 것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임노동 관계 밖의 노동자는 자기가 만든 노동 생산물에서 자아실현의 기쁨을 맛본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임노동 계약 관계에 묶인 노동자는 자아 실현의 기쁨은 커녕 노동 생산물의 상실로 인해 좌절감을 느낀다. 오히려 자신의 생산물에 의해 제어되는 이율배반을 경험한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노동 소외라고 규정했다. 노동자의 좌절과 예속 상태는 결과적으로 생산물의 제어력을 자본가에게만 인정하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제에서 비롯한다. 이렇게 맺어진 사적 소유 관계는 결국 인간 관계 전체를 왜곡시킨다. 그런면에서 볼 때 “사적 소유의 지양은 모든 인간적 감각들과 속성들의 완전한 해방이다. […] 이러한 감각과 속성들은 인간적으로 되고 […] 대상은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대상 즉 인간으로부터 기인하여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대상으로 전화된다. […] 대상적 현실이 인간의 본질적 능력(die menschlichen Wesenskr?te)의 현실이 됨으로써 따라서 자신의 고유한 본질적 능력의 현실이 됨으로써 […] 모든 대상들은 자기 자신의 대상화 즉 인간의 개성(Individualit?)을 확인하고 실현하는 대상이 된다.”(?M 540-1쪽) 여기서 우리는 지양(Aufhebung)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다 제거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존의 생산적인 성과를 받아 안으면서 새로운 창조로 나아감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사적 소유 폐지론은 사적 소유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사적 소유와 분업이 철폐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개인들이 자신의 소질과 능력을 전면적으로 발휘할 수 있으므로 총체적인 개인으로 발전할 수 있다. “개인은 (타인과의) 공동 관계에서 비로소 그의 자질을 전면적으로 도야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된다. 그리고 공동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인격적[개인적] 자유(pers?liche Freiheit)가 가능해진다. […] 현실적 공동체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들의 연합 속에서 그리고 그러한 연합을 통해서 자신들의 자유를 획득한다.”(『독일이데올로기』74쪽 / 129쪽)

개인들의 자유로운 연합으로서 공동체 속에서 개인들은 ‘인격적[개인적] 자유’도 획득하게 된다. 계급 사회에서 물질적 조건들은 개인들에게 외적인 것, 우연적인 것으로 주어져 왔는데, 인격적[개인적] 자유란 “일정한 조건들 내에서 방해받지 않고 우연성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독일이데올로기』 75쪽 / 130쪽)를 가리킨다. 지금까지 계급 사회에서 인격적 자유는 물질적 조건을 마음대로 향유할 수 있었던 지배 계급의 성원들에게만 주어졌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계급이 폐지되므로 개인들은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물질적 수단이나 조건들을 활용할 수 있는 이러한 인격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처럼 공산주의 사회에서 개인들이 누리는 인격적 자유는, 물질적인 강제력에 포섭된 계급 사회에서 개인들이 누리던 자유보다 훨씬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9강 후기

제가 알고 있던 마르크스보다 좀 더 말랑말랑한 마르크스를 만난 강의였습니다. 얼마나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나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자존주의 체제 하에서 착취가 공공연히 일어나는 사회 현상에서 사적 소유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 수 있었다. 강사님의 거침없는 날 것으로서의 표현 방식이 신선하고 매우 공감적이었다. 강사님 짱!!

 

자본주의를 있게 하고, 심화시키는 사적 소유에 대해 철학적인 면과 함께 구체적인 현실을 살펴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맑스에 대해 우리의 언어, 현실의 언어로 이해하기 쉽도록 강의한 박종성 선생께 감사합니다.

 

‘16-14-12-10-8’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 단축 투쟁의 역사를 보여주는 숫자의 나열이다. ‘사회적 관계의 총화’로서의 인간의 본질을 실현 해나가는 투쟁의 역사를 보여준 것. 나 또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맑스가 추구한 인간은 전인적 인간, 미학적 인간

 

힘든 몸 이끌고 강의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강의 내용 재밌고 유익했습니다.

 

 

여성주의적 근본주의를 넘어서 [한철연 교육강좌]-⑧

[한철연 교육강좌]-⑧

여성주의적 근본주의를 넘어서

 

강사 : 강지은(건국대 외래교수)
후기 : 한길석(한철연 교육부장)

 

 

5월 20일에는 강지은 회원(건국대 외래교수)의 여성주의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강의는 성차별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수성을 보여주는 사례에서 시작되었다. 세계경제포럼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 평등 순위는 135개 국가 중 107위였다. 이 기관이 지니고 있는 평가 기준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일단 한국 사회가 그다지 성적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점은 대략 짐작할 만한 자료라 여겨진다.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이 강하게 요청되는 현실적 단면이다.

 

강지은 건국대 외래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페미니즘은 성 차별적 억압을 종식시키는 투쟁이다. 페미니즘의 목적은 어떤 특정 집단 여성들이나 특정 인종 및 계급의 여성들에게 이익을 주는 데 있지 않다. 또한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더 많은 특권을 줄 것을 주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의 삶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페미니즘은 서구에서 19세기 중반 이후 ‘여성 권리에 대한 옹호’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역사적으로 페미니즘은 하나의 고정된 의미나 실체를 가진 것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갈래의 이념적 토대와 관점을 견지하는 사상, 이론, 행동주의로 구성된 묶음이다. 페미니즘은 통상 다음의 세 가지를 의미한다. ①여성은 체계적으로 억압당해왔으며, ②젠더 관계는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비롯되거나 절대적으로 규정되는 것은 아니며, ③불평등한 젠더 관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정치적 실천.

여성주의 이론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고 답한다. ①여성은 어떤 방식으로 종속되어 왔는가? ②우리는 어떻게 특정 사건을 개별적 불운이 아니라 성(sex)에 기반한 사회적 억압의 한 부분으로서 이해할 것인가? ③우리는 어떻게 억압적 상황에 대해 명확히 이해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④여성은 어떤 방식으로 종속에 저항할 수 있는가? ⑤여성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⑥삶의 어떤 영역에 초점을 맞추어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할 것인가? ⑦여성의 종속은 인종, 민족, 국적, 계급, 섹슈얼리티에 근거한 억압들과 어떻게 연결되어있는가? 등등.

페미니즘의 사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① 자유주의 페미니즘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개인의 권리 개념을 발전시킨 18, 19세기 자유주의 정치철학에 근거하여 설명한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전략은 자유, 평등, 정의라는 자유주의적 가치에 근거하여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법적, 사회적,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는 데에 있다. 최근에 프랑스에서 남녀 동수 공천을 강제하는 법을 제정한 것도 이러한 사조에 기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②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자본주의 사회 구조가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임을 주장한다. 여기에서 여성의 종속은 사유재산제의 도입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제, 계급사회, 여성 억압은 필연적 관계를 갖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편의 역할은 임노동을 위해 가정일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도록 구조화된다. 아내는 임노동 체제의 지속을 위해 가사에 종사하도록 강제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사노동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이유는 가사노동의 위상이 대량 생산적 임노동 체제를 보조하는 것으로 배치된다는 데에 있다. 시장과 가사노동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기혼 여성은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저임금의 유동적 노동력을 제공하는 산업예비군이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여성문제를 확장시킨 데에 이바지 한 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에 의한 여성 억압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남성 문화에 의한 여성 억압의 문제를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③ 급진주의 페미니즘

1960년대 후반에 생겨난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성에 의한 여성 억압, 즉 가부장적 억압이 모든 형태의 사회적 억압 중 가장 근본적이라고 보며 여성들의 공통된 경험에 주목한다. 급진주의의 주장은 첫째 여성은 역사적으로 최초의 피지배 집단이며, 둘째 여성 억압은 사실상 모든 형태의 사회에 존재하는 가장 보편적 현상이고, 마지막으로 여성 억압은 근절하기 가장 어려운 억압 형태로 계급 사회 철폐와 같은 변화만으로는 제거할 수 없는 아주 뿌리 깊은 것이다. 이들은 공적인 영역에서의 기회 평등을 추구하는 제도 개혁의 방식만으로는 여성 억압을 해결할 수 없으므로 가부장제 문화를 전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④ 사회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의 중요 요인인 문화적 제도들(가족, 섹슈얼리티 등)을 이해하는 데 관심을 둠으로써 마르크스 페미니즘과 급진적 페미니즘의 통찰을 결합시킨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생산 양식의 변화만으로 여성 해방을 이룰 수는 없다고 본다. 여성 해방은 경제적 예속에서의 해방과 더불어 정신적 혁명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거나 되고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지난 2월 나꼼수의 비키니 파동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나꼼수를 지지하는 한 여성이 비키니 차림으로 가슴에 ‘가슴이 터지도록, 나와라 정봉주’이라고 쓴 사진을 미권스(정봉주와 미래권력들) 게시판에 보냈다. 나꼼수 멤버들은 ‘가슴응원사진 대박, 코피를 조심하라’고 쓴 정봉주 접견서를 인터넷에 올렸고 나꼼수에서 비키니녀의 사진을 보고 ‘생물학적 완성도’에 감탄하는 발언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꼼수가 여성을 성적 대상화했느냐 아니냐가 논란이 되었다. 나꼼수는 인간을 성적대상화하는 것과 동지의식은 같이 갈 수 있다고 해명했다. 과연 그럴까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강사는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조정희 씨의 자료를 예로 들며 김어준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소개했다. 열내는 페미니스트는 이제 필요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여성성을 더 드러내는 ‘쿨한 엠브라’가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정희 씨는 남성 마초에 대응하는 여성 엠브라는 성적인 여성성을 충분히 드러내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여성이 대세라고 하였다.

그러나 강사는 우리 웹진 <이 시대와 철학> 2월 15일에 실린 황주영 씨의 ‘(나)꼼수’에 속지 말고 닥치고 페미니즘‘은 김어준 씨의 의견이나 조정희 씨의 견해가 갖는 허점을 날카롭게 찔렀음을 보여주었다. 아래는 황주영 씨의 기사를 간략하게 정리한 글이다.

다행히도(?!) 나꼼수 멤버들은 (이번에 배운 건지 정말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어지간한 진보적 남성 지식인에 비해서는 약간 더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방송에서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의 판단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 가해자의 의도의 유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 여성이 이런 이슈에 민감할 권리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고, 자기들은 배운 남자라고 항변했다. (이 정도 기본 지식을 가지고 칭찬받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미안하지만 배운 여자들은 배운 남자들만큼 못 믿을 사람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특히 ‘진보적인’ 혹은 ‘비판적인’ 배운 남자들은 더 그렇다. 대학에서, 진보적 운동 단체들에서, 운동권 학생회에서 중심적인 활동을 했던 수많은 남성들과 교수들이 자신의 여성 ‘동지들’을 성폭력 피해자로 만들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는 걸 김어준씨가 모르진 않겠지.

삼국카페는 공동성명서에서 여성을 치어리더로 삼는 남성중심의 ‘반쪽 진보’인 ‘나꼼수’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믿음, 동지의식을 내려놓는다’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런 심정으로 오래 몸담았던 진보적 집단에 등을 돌렸고, 페미니즘을 공부하거나 여성운동을 시작했던가! 나꼼수 멤버들이 다른 남성들에 비해 1그램 정도 낫다거나,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변한 게 없다거나 하는 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사실 이번 일에 대한 (나꼼수 멤버를 포함한) 남성들의 반응은 너무 빤하기 때문에 새삼 놀랄 것도 없다. 페미니스트들이 봐야 할 것은 저 삼국카페 회원들이 낸 공동성명서이며, 그들과 페미니스트 이론 사이의 격차, 그들과 비키니 응원 여성 및 그녀를 모방하며 나꼼수를 지지하는 여성들 사이의 격차, 그리고 이 후자의 여성들과 페미니스트 사이의 격차다.

김어준씨의 말대로 피해자 프레임의 페미니즘은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반성은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 내부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으며, 여러 방식으로 수정보완하려는 노력들도 있어왔다. (이런 걸 언급하지 않은 걸 보니, 아마 김어준씨는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에 관심을 끊었나보다.) 문제는 그 파급력이다. 현재 페미니즘이 20대 여성들에게 매력이 없는 건 이전 세대들과 지금 20대의 삶이 크게 다른 데 비해 페미니즘에는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페미니즘은 더 이상 20대 여성들의 삶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큰 변화나 도약이 없는 것은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 여성들의 삶이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아를 실현하는 데 있어 그 누구보다 많은 독려를 받으며 자란 젊은 여성들은 소위 알파걸이라고 불리고 엄친딸을 지향하며 산다. 이들은 제2의 수퍼우먼이지만 선배들이나 엄마처럼 지독하게 혹은 청승맞게 애쓰지 않는다. 여성성을 한껏 뽐내면서도 학업이나 일에서 좋은 성과를 내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다. 싸워야 할 상대는 남성이 아니다. 이들은 싸우지 않는다. 애교로 의존하는 척 하면서 구워삶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다른 세대에 속하는 여성들은 물론이고 현재 20대의 많은 여성들도 여전히 고군분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저런 특별법이 마련되었어도 여성들은 여전히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여성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아직도 임노동과 가사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이중부담을 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과 관련된 현장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이라면 피해자 프레임의 페미니즘이 아직도 절실할 것이다. 이건 김어준씨가 스포츠 중계하듯이 ‘피해자 프레임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와 줘야 되는데 안 나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김어준씨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정치적 표현의 수단으로 도구화하기로 결정한 그 여성을 골빈 년으로 만드는 폭력”을 경계한다. 그리고 이 폭력이 피해자 프레임 페미니즘의 콜래트롤 데미지(부수적 피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김어준씨가 간과한 또 하나의 부수적 결과가 있다. 그게 바로 비키니 응원 여성이나 코미디언 곽현화, MBC 이보경 기자와 같은 여성들이다. 이들은 피해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걸 원하는 여성이야 없겠지만, 이들이 원하는 것은 피해의식도 없는 아주 당당한 여성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거칠고 민감한 페미니스트와도 거리를 두고 싶고, 고통스러워하고 청승맞은 피해자와도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을 ‘도구화’하고 어떤 여성들의 ‘피해의식’을 비꼬는 패러디물을 만들고, 나꼼수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비키니 응원에 참여한다. 이들은 개인이다. 이들은 여성 집단에 대해서 아무 고려도 하지 않는다. 이 여성들은 한편으로는 이른바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적 존재로 자신을 등장시키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이라는 집단에 대해서는 대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성적 존재로 노출시키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으로서 자기가 처해있는 성적 입장에 대해서는 의식하지 않는다. 이는 기존의 페미니즘이 피해자 프레임과 더불어 속박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자아를 실현하면서 살라는 일종의 강령이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에 포섭되고, 남성중심적 권력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과이다. 게다가 이는 부수적인 게 아니라 결정적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어떤 여성들은 자신의 몸이 ‘도구화’ 되는 것도 스스로 ‘도구화’ 하는 것도 모두 거부하고,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피해의식’에서 출발해 그것을 정치적 활동의 역량으로 확대하면서, 하이힐 신고 아스팔트를 걸으며 가카 퇴진을 외치고, 시위대에 먹거리를 제공하거나 플래시 몹을 선보이는 등 ‘발랄한’ 시위 방식을 보여주었다. ‘대의’를 위해서 어떤 취약 계층을 배제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타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여성들이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사유해야 하는 것은 피해자 프레임을 넘어선 이야기들을 제시하는 페미니즘 이론과 여전히 피해자 프레임을 필요로 하는 여성운동 및 여성의 현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느 쪽과도 관계되고 싶어 하지 않는 여성들과 그와 동시대를 살면서도 페미니스트 의식을 지니고 있는 여성들 사이에 어떤 공통성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차피 나꼼수를 이길 순 없다. 우리에겐 그만한 명성도 권력도 미디어도 없다. 게다가 그런 ‘팬덤’도 없다. 나꼼수의 지지자들은 이미 동지도 지지자도 아니다. 그들은 마치 아이돌의 팬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오빠들 믿고 배신하지 말자’며 팬심을 다지듯이, 다 필요 없고 김총수가 알아서 잘 판단할 것이고 그 판단에 맡기고 우리는 한 길만 가자고 서로를 도닥이는 분위기다. 이렇든 천군만마를 가진 나꼼수는 꼴페라고 만날 욕만 들어먹는 여성들에게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사과한다면 잘해야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정도겠지만, 이런 소릴 할 캐릭터들이 아니다. 앞으로도 이런 문제에 대해 여성들이 민감할 권리는 있어도 자신들의 입을 틀어막을 권리는 없다며, 조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논점을 ‘표현의 자유’ 문제로 돌리면서 회피해 가는 이런 담론에 또 휘둘릴 필요 없다. 그러는 대신 담론의 판을 새로 짜야 한다. 사과를 받아내는 일이나 대의가 뭐냐, 여성문제는 사소한 일이냐 하는 케케묵은 논쟁은 그만두자. 이런 쟁점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어떤 쟁점을 다루든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위해서는 여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선에서, 여성들이 서로를 마주보게 하고 대화하게 하고 협상하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8강 후기

여성과 남성은 분명히 다른 존재이고 여성은 역사적으로도 소수이자 약자의 모습을 가져왔던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여성이 신체적 측성으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육아, 가사노동이 페미니즘에 관한 인식으로 변화, 남성들의 공감과 사회적 인식을 이끌어내길 바랍니다.

 

여성의 권리가 상당히 발전되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는 소수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고 정당한 권리 확보를 위한 유익한 강좌였다.

 

누군가 여성 해방이 인간 해방의 마지막 단계라는 말을 했다.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진 인간 사회에서 여성 해방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의 문지에기도 하다.

 

여성은 소수자이다. 소수자인 여성이 중심에 서서 문제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페미니즘 운동은 계속 되어야 한다. 남성은 더 교육 받아야 한다.

 

여성의 성이 착취당해 온 인류의 역사를 볼 때, 여성이든 남성이든 의식 속에 각인된 성 청체성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성만이 또 남성만이 피해자나 가해자라는 입장보다 우리의 의식에 고착화된 이성애주의에 대한 비판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복지제도의 철학적 정당화: 가난뱅이만 얻어먹기? [한철연 교육강좌]-⑦

[한철연 교육강좌]-⑦

복지제도의 철학적 정당화: 가난뱅이만 얻어먹기?

 

강사 : 곽노완(서울시립대 HK교수)
후기 : 한길석(한철연 교육분과장)

 

 

일곱 번째 한철연 강좌는 열기가 뜨거웠다. 이번 강의에서 곽노완 회원(서울시립대 HK교수)은 단순한 복지제도의 시행이 아니라 기본소득제도의 실천이 한국 사회에서 적절한 대안이라고 제안했다.

곽노완 서울시립대 HK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기본소득제도는 1986년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BIEN 비엥)의 창립을 통해 확산되었다. 2010년 한국에도 비엥의 지부가 설립되었다. 이 단체 창립 구성원은 대부분 철학과 경제학을 연구하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지구가 모은 인류의 것’이라고 주장한 토마스 페인, 칼 맑스, 존 스튜어트 밀, 버틀란드 러셀 등의 정신을 잇고 있다. 기본소득 이론의 현대적 대표자는 벨기에 출신의 필리페 판 파레이스이다. 그는 이 제도가 착취를 없애고 정의를 실현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제도라고 주장한다. 네덜란드 출신의 학자 판 돈젤라는 이에 반대한다. 그는 기본소득제가 부의 생산자인 노동자의 정당한 몫을 게으름뱅이들에게 아무 댓가 없이 가져가도록 방조하는 제도라고 평한다. 그래서 돈젤라는 일하는 자들에게만 기본소득제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임금 노동만이 생산적이라는 전통적인 노동물신주의 속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내세운다. 그러나 현대에는 비사회적 노동과 비생산적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유익한 노동 활동의 영역이 부각된다. 이들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소득을 보장해줘야 한다.

생산적 노동은 사적 자원만을 이용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사실 공유 자원(자연, 역사적 유산, 사회 성원들의 역량, 전통 등)을 배제하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로마시의 생산 성과 중 대부분은 역사 유산이라는 공유 자원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그 수익은 이 공유 자원의 임자인 국민들에게 잘 돌아가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기본소득제가 알맞다.

한국 사회에서 복지제도에 대한 논의가 부각된 계기는 무상급식 문제였다. 무상급식은 현물로 주어지는 부분적인 기본 소득이라는 면에서 기본소득제와 연관된다. 그러나 기본소득제는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적절하다. 그래서 현물보다는 현금 지급이 낫다. 또한 무상급식 등의 복지제도는 일정한 자격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면에서 의도하지 않은 차별, 자괴감 등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제는 무조건적으로 제공되는 보편적 복지제도이다.

기본소득제의 실천에서 걸림돌로 작용하는 문제는 재원 마련에 관한 것이다. 세금을 많이 거두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란의 경우 대부분의 재원을 석유 판매금으로 마련했다. 천연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마땅한 재원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불로소득액을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돌리는 방안이 있기 때문이다.

고도 자본주의 사회일수록 불로소득 비율(구미 60%, 한국 70%)이 높다. 한국의 경우 부정의한 불로소득액이 막대하다. 만약 이러한 불로소득의 일정부분을 기본소득제의 재원으로 돌린다면 재원 확보에 대한 염려는 적어질 수 있다. 기존 좌파는 불로 소득이라는 요소를 부정하거나 과소평가하면서 노동 소득을 기초로 분배하자는 견해를 고수했다. 그러나 이것은 고도자본주의 현실에 눈감고 있는 이론이다. 차라리 불로 소득의 존재와 기능을 바로보고 그것의 지배권을 특정 계급이 독점하도록 허용하기 보다는 기본소득제를 통해 국민이 공유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연기금 재원 300조는 현재 불로소득원이다. 이것을 가지고 순환출자를 통해 국내 재벌 기업의 소유권을 지배할 수 있다. 국민이 중심 기업의 주인이 되므로 국민들은 기업의 수익 창출에 관심을 갖게 되어 열심히 일하게 된다. 배당 이익을 기본소득제의 형식으로 돌려받는 일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화폐 주조 차익을 기본소득제의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매년 발행하는 화폐 액수를 약 100조원으로 잡는다면, 화폐 주조를 위한 생산비는 약 5조원 정도가 될 것이다. 나머지 95조는 시중 은행에 저리로 대여되면서 이른바 ‘산업을 키우고’, ‘기업을 살리며’, ‘물가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손쉽게 대부된 대부분의 돈은 오너들의 비자금과 사적 재산으로 흡수되고 일부만이 노동에 대한 댓가로 지급된다. 만일 화폐 주조 차익의 일정 부분을 기본소득제를 통해 국민에게 유통시키면 재원 부담을 낮출 수 있으며, 국민경제의 내실화에도 기여한다. 불필요한 토건 예산을 줄이거나 공기업의 이익분을 국민에게 배당하는 방법 등도 제안될 수 있다.

 

 

7강 후기

 

‘복지제도의 철학적 정당화’를 공유했다. 사회적 안전망-복지 제도의 추상성을 극복하는 구체적인 복지 제도 개념으로 ‘기본소득’은 인간의 존엄성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기회의 균등함을 이룰 수 있는 기초다. ‘노동이 부의 원천은 아니다.’ 노동물신주의를 넘어서야 하는 어려움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사회적 의식’으로 확대되어야 하는 과제다.

 

우리 사회에 복지 담론이 이슈화되면서 기본 소득에 대한 정당성과 착취에 대하여 논의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무조건적인 기본소득 보장보다는 출발선 상에서부터의 기회 균등을 통한 노동시장의 안정성 구축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노동시장 안정성상에서의 기본소득 보장의 대안사회를 바라본다.

 

기본소득에 대한 철학적 정당화를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평소 생소한 개념이었던 기본소득이라는 것의 현실 가능성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영혼까지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다는 현재 젊은이들의 구직난과 고용 불안을 완화하게 해주는 하나의 돌파구로서 작용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 걱정되는 부분은 전체 1%의 재벌들의 노동 의지에 대한 부분이다. 그러나 단지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고 싶다는 욕망이 아닌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불로소득을 향한 통찰은 꼭 필요하고 여론으로 확산시켜야 하는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기본소득 5만원으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강의를 듣고보니 기본소득을 실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착취 개념의 확장에 대한 논의가 인상 깊었습니다. 기본소득에 대한 다양한 관점에서 알 수 있는 강의였던 것 같습니다.

 

복지를 도덕적, 윤리적 문제로만 생각해 왔는데 이번 기회에 좀 더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개념이란 걸 알게 되었음

 

경제와 철학이라는 두 동떨어져보이는 분야 간에서 새롭게 생겨난 경제철학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관심이 생깁니다. 텍스트를 더 읽어보고 싶은 영역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이 많은 철학 분야인 것 같습니다.

 

경제+철학은 저에게는 어려웠던 강의였습니다. 가깝기는 하나 너무 먼. 기본 개념조차 정립되지 못한 듯하여, 이번 강의는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욕망 논의에서 라캉의 ‘구조’와 가타리의 ‘기계’의 차이점/신승철 [1월 월례발표회]

?[2013년 1월 월례발표회]

 

논문 제목: 욕망 논의에서 라캉의 ‘구조’와 가타리의 ‘기계’의 차이점
발표자: 신승철 (동국대)

 

생각의 빈칸

후기: 윤지영( 명지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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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난해에서 신년으로 넘어가는 시간적 단절성은 우리에게 새로운 비약과 도약의 에너지를 퍼 올리게 한다. 13개월이라는 연속성이 아니라 새로운 해의 1월 앞에서 우리는 생각의 빈칸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빈칸 앞에서 라캉의 구조와 가타리의 기계 개념의 대결 구도는 그 논쟁점의 풍요로움만으로도 매혹적이었다.

신년 모임과 함께 진행된 1월 월례 발표회는 평소보다 더 많은 인원의 참석 하에서 토론과 논의의 장이 펼쳐졌다. 2013년이란 새로운 해에 어떻게 현실 좌표축을 재구성하고 재의미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가타리의 욕망하는 기계 개념의 이론 틀 안에서 모색될 수 있었다.

신승철 선생님의 이 논문은 라캉의 욕망 개념의 보수성을 날카로이 비판하고 있다. 라캉의 욕망 개념이 여전히 거세의 법에 종속되어 있음으로써 엄마-아빠-아이라는 삼자적 가족 관계의 이데올로기성에서 벗어나 있지 못함을 드러낸다. 정상화의 메커니즘으로서 무엇을 병리화하는가에 주목하고 있는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논의는 여전히 욕망의 생산성과 생성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은 물론 이를 억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신승철 선생님은 라캉의 욕망은 예속 집단을 양산하지만 가타리의 욕망하는 기계는 주체 집단을 생산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종속성과 자발성의 포지션이 명확하게 이분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권력과 저항은 분리된 두 포지션으로 고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상호 작용과 유동성으로 접점과 모순항을 양가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지대이기 때문이다.

ⓒ박영미

프랑스 철학계에서 제대로 된 사상적 엄밀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가타리의 개념들을 재평가할 수 있는 논문이라 할 수 있다. 기호-흐름이라는 개념을 통해 라캉의 의미론-팔루스라는 전제적 기표를 축으로 한 협착적 기호화 과정을 비판할 수 있는 점이 주목할 만 하다. 왜냐하면 본인역시 라캉이 규정하고 있는 남근 이성 중심적 언어 질서에서 어떻게 벗어나 새로운 언어 형식을 모색하는가란 문제의식을 심화 발전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안에서 가타리의 비기표적 기호론은 퍼스의 우연성의 경제학과 알튀세르의 만남의 위상학과 더불어 새로운 언어 형식-의미의 열린 양태와 부유, 표류라는-을 구상하는 데에 커다란 영감을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논평을 통해 본인은 가타리의 개념들이 포스트 휴먼적 사상 지류와도 이어질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타리가 생태계라는 표현을 통해 더 이상 인간 질서로서의 상징계에 포박당하지 않는 탈 인간주의적- 인간이란 거대 서사의 폭력성과 한계를 드러내는 트랜스 휴먼적, 포스트 휴먼적 사유와 실천 양식 등을 상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박영미

신선생님의 발표와 본인의 논평은 미리 주어진 각본대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피드백과 질문의 질문들에 의해 비예측적으로 논의가 확장되기도 심화되기도 한 점이 흥미로웠다. 라캉이 제시한 쥬이상스 (jouissance)가 여전히 협착적 쾌락인가 아니면 팔루스란 고정점, 누빔점을 파기해 버리는 분리적, 저항적, 혁명적 지점인가에 대한 논의는 합의점에 도달하지 않은 채 갈등과 긴장성이란 생동적 힘을 품고, 열린 논의의 장으로 미끄러져 갈 수 있었다. 이러한 팽팽하면서도 상호 교류적인 토론의 장을 통해 혁명적 상상력과 지적 호기심, 나아가 앞으로 후속 연구를 통해 항해할 사유의 모험과 궤적들이 기대되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철학이 끊임없는 생성과 창조의 과정이 되기 위해선 생각의 빈칸들을 남겨둬야 하는 비움의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그 생각의 빈칸에서 예측치 못한 영감이 솟구치고 앎의 견고한 단선체에 균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균열과 파열의 힘을 가타리는 접속과 배치라는 용어를 통해 드러내며 나아가 욕망이란 복합적 다면체들의 스펙트럼을 펼쳐내길 우리에게 촉구하는 것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