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에 선 철학; 상처와 화해의 철학[한철연 교육강좌]- ⑪

[한철연 교육강좌]- ⑪

판문점에 선 철학; 상처와 화해의 철학

 

강사: 이병수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
후기: 한 길 석(한철연 교육부장)

 

분단 이후 남북 관계의 기본 특성은 적대성이라고 규정될 수 있다. 적대는 군사 및 이념적 적대와 생활 문화적 적대로 대별된다. 생활 문화적 적대는 남북 주민들 간에 자발적으로 동의된 적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남북 구성원들의 무의식 속에 각인된 적대성이라 그 심각성이 더욱 크다. 같은 동족임에도 남북 국민 모두는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껄끄럽고도 혐오스러운 존재로 여긴다. 적대감이 무의식 속에 내면화된 상태라면 분단은 이미 사회과학적 사태가 아니라 인문학적 고찰을 요구하는 사건이다. 우리 몸과 마음의 분단이라는 차원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병수 통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그렇다면 홉스봄의 ‘역사적 국가 historical state’ 개념을 활용해 분단 적대성의 원인을 심층적으로 살펴보자. 역사적 국가란 혈연, 언어, 문화, 정치, 역사적 동일성이 구조화된 국가 상태를 의미한다. 동아시아 삼국은 천여년 이상 영토 경계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각자의 역사적 국가 상태를 구성해왔다. 그런데 20세기 이후 이런 상태가 붕괴되면서 한반도는 망국, 이산, 분단이라는 현실에 휘말렸다. 과거 한국인들은 한반도라는 일정 공간 내에서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던 역사적 국가를 이루고 있었는데, 현재는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지 않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디아스포라적 상태는 재중 동포, 재일 동포, 재러 동포 등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엄밀히 보자면 남과 북 국민들 모두가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지 않는 상태라고 할 수있다. 오랜 역사적 국가 상태 속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민족과 국가의 불일치 현상은 일종의 치욕감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한민족 구성원들은 분단이라는 비정상적 상태에서 벗어나 통일된 역사적 국가 상태를 희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서로를 증오하는가? 서로의 정부를 가짜로 치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을 어머니, 국가를 아버지라 해보자. 우리는 분단으로 인해 두 아버지(두 개의 정부)를 둔 민족의 자손이 되었다. 남북은 서로를 가짜 아버지의 자식으로 치부하면서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 들었다. 여기에 분단 적대성의 원인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적대성의 근저에는 강력한 동질화의 욕구가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서로 전망하는 동질화의 상태가 상이하기 때문에 상대방과의 화해를 통한 동화는 거부하고 있다. 각자가 상대방을 자기 모습대로 동화하려드는 왜곡된 욕구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적대는 더욱 심해진다. 한국전쟁은 훼손된 민족 국가의 동질성을 회복하려던 왜곡된 몸부림이었다. 동질화의 욕망이 왜곡된 형태로 전개될수록 적대 행위는 심화되고 그것으로 인한 상처는 무의식 속에 강하게 각인된다.

현대사에서 우리 민족은 식민 트라우마, 이산 트라우마, 분단 트라우마라는 세 가지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현실의 불행한 대립의 역사는 이 트라우마를 이성적으로 치유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롯한다. 그렇다면 트라우마화된 적대성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화해의 형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상대방과 내가 다름을 받아들이고 상실한 민족 공동의 서사를 공유하는 것이다. 전자를 인정의 노력이라 한다면, 후자는 민족통합서사를 이룩하려는 노력이라 하겠다. 인정의 노력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단순히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방이 이해되지 않고 여전히 못마땅하지만 대립하는 것이 손해이기 때문에 갈등 상황을 멈추고자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식에는 자신의 관점을 잣대로 상대방을 평가하는 태도가 여전하다. 이것은 일종의 전술적 고려 속에서 나온 인정의 태도에 불과하다. 세력이 비등하므로 억지로 상대방을 인정할 뿐이다.

또 다른 인정의 노력은 타자의 인정이다. 이것은 자기의 정체성과 가치관, 그리고 현재적 상태의 변화를 감수함을 의미한다. 남한만 옳고 북은 고쳐야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상대방이 보기에는 각자의 체제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식하고 자기 체제의 문제점을 상대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민족통합서사의 구축은 과거의 통합된 역사를 오늘에 되살리려는 복고주의나 보수적 민족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한반도 구성원들은 식민, 이산, 분단을 겪으면서 각자 상이한 문화, 의식, 역사, 생활양식을 구성해왔다. 이런 상태에서 민족 공통의 서사를 발견하기란 불가능하다. 잊혀진 과거에서 결합의 흔적을 찾다가는 혈통적 민족주의를 자극할 수도 있다. 현대사에서 공유한 역사적 수난을 바탕으로 하여 남, 북, 해외동포 등의 각 구성원들이 구성한 문화적 성과물들을 결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남북 교류의 확대와 지속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질문1) 탈북 주민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는?

탈북인의 절반은 자신을 북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있다. 체제적 정체성은 포기했으나 북에서 형성한 공동체, 풍습의 정체성은 고수하고 있다. 상이한 문화적 정체성을 주장하지만 그래도 이들은 같은 민족으로서의 공통적 정체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여기서 분단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이들로서의 공동의 정체성을 인식해야 한다. 탈북인을 같은 동포로 보고자 하는 것은 단지 혈연적 동일성의 차원에서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질문2) 체제 세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삼대 세습은 분단 구조가 낳은 독특한 체제이다. 분단 구조는 북한 혼자만이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삼대 세습 제도를 유발시키거나 그것을 지속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책임에 대해서는 남한도 자유롭지 않다. 삼대 세습은 현대적 사고에서는 비상식적 사건이다. 그러나 비상식적 사건의 극복은 비난과 조롱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세습 문제를 낳은 분단 구조에 대한 면밀하고도 성찰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후기

남북 문제를 민족의 문제와 국가의 문제로 대비해서 고찰해 볼 수 있는 심층 강의라고 본다.

평소 관심이 있었던 민족 정체성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통일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선생님이 제기하신 민족적 트라우마 개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분단 이후 국가 정체성과 민족 정체성이 다른 한반도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 속에서 국가 폭력이 개인의 폭력으로 이어져 가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차이의 인정을 넘어서 타자성에 대한 이해로 남북 체제를 바라보는 화해와 상생을 위한 길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교수님의 강의에 감사드립니다.

기존의 통일에 대한 생각과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강의였습니다.

“기존 이념과 국가가 하나가 되는 통일 개념이 잘못하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소통과 교류를 중시하는 과정으로서의 통일로 통일 개념이 바뀔 필요가 있다” 귀한 말씀이었습니다.

민족과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 폭을 많이 넓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