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지 쩌는’ 푸코; 자기의 테크놀로지와 정치적 실천[한철연 교육강좌]-⑥

[한철연 교육강좌]-⑥

‘간지 쩌는’ 푸코; 자기의 테크놀로지와 정치적 실천

 

김성우(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한 길 석(한철연 교육분과장)

 

 

화창한 봄날 햇살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강좌는 쉼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강좌는 김성우 회원의 푸코 강의였다. 20세기의 가장 통찰력있는 철학자 중 하나인 푸코의 철학을 소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의 흔적을 감추는 데에 능란한 ‘여우’를 별명으로 삼고 있는 푸코는 이해하기가 여간 수월찮은 철학자이다.

푸코의 철학이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는 서양 철학의 기나긴 역사와의 대결 속에서 그의 철학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푸코는 체계적 거대 서사를 거부한다. 서양 철학에서 거대적 체계를 제시한 대표자는 역시 헤겔이다. 그런 면에서 푸코의 철학은 헤겔 철학과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고상한 정신의 역사를 철학적으로 전개한 헤겔 역사 철학에 대항해서 정신의 어두운 역사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헤겔의 역사 철학이 이성 승리의 역사였다면, 푸코의 역사 철학은 승리한 이성의 건너편에서 우리를 응시하고 있던 정신의 이면을 드러낸 계보학이었다.

김성우 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은 근대 철학이 구축한 주체 철학의 주체 중심주의에 반발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전개했다. 푸코도 예외는 아니었다. 젊은 시절의 그는 스웨덴 도서관 등에서 접한 고문서를 가지고 자기의 철학을 펼쳐갔다. 사람들이 간과했던 부속적 행정 서류, 보고서, 일기 등으로 이루어진 고문서를 통해 그는 근대 역사의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합리적이지 않은 근대인들의 모습을 폭로함으로써 그가 노린 효과는 계몽적 이성에 대한 성찰이었다.

현대 사회는 이성이 발굴한 진리를 통해 구축된 합리적 체계라고 여겨지고 있다. 과학은 이러한 체계를 구축하는 데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 과학은 진리로 가는 유일한 길로 간주된다. 과학 아닌 것은 단순히 감정의 산물이거나 상상력의 판타지에 불과하다. 비과학이라는 딱지는 적을 공격하는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과학은 현대인에게 구원의 문이 되었다. 이러한 과학주의 분위기 속에서 철학도 과학을 닮고 싶어 한다. 유럽의 형식주의와 구조주의는 모두 과학적 객관성을 금과옥조로 여겼다. 구조는 사건과 사물들의 현상적 변화를 일어나게 하는 심층적 장이다. 이런 구조는 역사의 영향에서 거리를 두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것인 듯이 간주된다. 그러나 구조는 역사의 차원을 무시하기에 선험적이고도 불변적인 감옥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푸코는 구조의 역사적 변화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그는 현대 사회의 지식 담론을 형성하게 한 원천을 고고학적 연구 방법을 통해 드러낸다. 그에게 담론이란 어떤 지식인들이 그것을 발언하도록 만든 축적된 지식의 지층들이다. 이 지식의 지층 구조를 드러내고 발굴하는 작업이 ‘지식의 고고학’이다. 이런 시도들을 함으로써 푸코는 구조주의적 언어로 구조주의를 넘어선다. 후기구조주의자로서의 푸코의 모습이다. 그런데 푸코가 구조주의적 언어를 사용한 것은 주관주의적인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그의 고고학이란 이러한 과학적 객관성의 문턱을 넘지 못한 지식들에 관한 학문들을 탐구하기 위한 방법론에 붙인 이름이다.

‘지식의 고고학’ 제2기는 이 지식의 지층들을 가능케 한 근원 인자에 대한 탐구였다. 그는 이 근원 인자를 ‘권력’으로 보았다. 이것이 계보학의 시기이다. 특정 지식 지층을 진리의 반열로 올린 것은 ‘권력’이었다. 물론 그것은 정치 권력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탐구는 『성의 역사』 1권에서 다루어졌다.

이후 그는 근대 주체와는 다른 주체들에 대한 탐구를 전개한다. 그리스적 주체에 대한 연구는 이런 맥락에서 진행된다. 주체에 대한 탐구는 근대적 사회 이후의 모습을 전망하기 위한 대안적 이론의 제시를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푸코의 윤리학이다. 만약 내가 어떤 주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주체의 모습이 뭔지 먼저 탐색해봐야 한다. 이 윤리적 주체의 역사가 『성의 역사』 2권과 3권이다. 푸코의 후기 작업은 어떤 주체가 올바른 주체이며, 앞으로의 세계에서 어떤 주체를 지향해 봐야 하는가에 대한 탐구였다고 짐작된다. 그러나 푸코는 그것을 쓰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우리는 그 윤곽을 인터뷰, 강연, 단편 등을 근거로 하여 대략 그려볼 수는 있다. ‘자기의 테크놀로지’는 이 새로운 주체로 도달하기 위한 주체 수양에 관한 탐구였다. 푸코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기”를 지향했다.

그가 근대적 주체로부터 벗어날 것을 권유했다고 해서 그의 철학이 근대성 자체를 제거하는 방식의 극복을 주장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보다 그는 근대성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고 이를 ‘견디며 치유(Verw?ndung)’하고자 했다. 이 실천적인 비판을 통해서 “구체적 자유의 공간”을 넓히려 했던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적절한 저항은 자신이 처한 구체적 삶의 영역을 버리며 떠나는 식의 지사적 열정에 휩싸인 싸움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의 영역 속에 있으면서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와중에 그것을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자신도 변화시키는 싸움이 적절하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오늘날 지식인의 역할이 규칙을 설립하거나 해결책을 제안하거나 혹은 이런저런 예언을 하는 데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식인은 권력이 특정한 상황(내가 보기엔, 비판받아야 마땅한 상황)에서 작동하는 데 도움을 줄 뿐입니다.” 푸코는 자신의 역할을 “문제들을 효과적이고 현실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는 일상생활과 관련된 성, 광기, 범죄 등은 복잡한 문제여서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그 문제들을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관련된 풀뿌리 수준에서 해결하기 위해 발언과 정치적 상상의 권리를 사람들에게 되돌려주기 위해서는, 많은 세월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강좌 후기

푸코 철학의 가치.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

푸코 철학 어렵다. 서양 철학 어렵다.
계보학: 자기 자신의 분야에서 자기 분야의 역사를 쓸 필요가 있다.
장자의 언어가 푸코의 언어일 수도 있다 과학의 언어이면서도 시의 언어일 수 있다.

철학자가 문학하는 작가에 대해 강의할 때 ‘단독성’을 강조했던 것이 떠오른다. 현대의 지식인이 자신 또한 지배당하고 도구화 되고 있는 지배 체제 혹은 시대의 담론 체계에서 스스로의 ‘단독성’(구체성)을 확보하려면 어떤 투쟁을 구체화해야 하는가의 고민이 더 깊어졌다. 사소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되고 지나치는 개인의 경험과 사유가 각각 힘을 지니고 그것들이 생동하는 질서 속에서 진리 탐구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푸코’와 그의 저작들을 용기 있게 만나야겠다. 물고기는 물 속에서 헤엄칠 때 서로의 존재를 잊고 자유로워진다고 한 장자의 통찰에 다시 한 번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우리도 우리의 철학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요가하는 노장; 폼 나는 생태적 삶을 넘어서[한철연 교육강좌]-⑤

[한철연 교육강좌]-⑤

요가하는 노장; 폼 나는 생태적 삶을 넘어서

 

강사 : 송종서 (전 민족의학연구원 상임연구원)
후기 : 한길석(한철연 교육분과장)

 

 

 

4월 22일 태복빌딩 2층에서 송종서 회원의 강의가 있었다. 이번 강의는 동양 철학적 관점에서 생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강의는 부드럽고도 진중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한국에서 생태 문제가 적극적으로 제기된 시기는 1990년대 부터이다. 환경 위기가 우리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죽음의 문제’로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생태적 각성이 시작됐다. 북반구 선진국 주민들은 오늘날의 풍요를 지속하면서 동시에 생태적 부담을 증가시키지 않으려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그러한 삶에 대한 욕구가 퍼져 나가고 있다. 그러나 저 ‘지속 가능한’ 생태적 삶이라는 꿈은 오늘날의 생태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대안이 되지 못한다. ‘죽음의 시간’을 잠시 늦출 뿐이다. 진정한 생태학은 죽음에 직면한 자들의 처절한 성찰을 요구한다. 처절한 성찰의 와중에 목격하게 되는 진실은 우리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면 되리라는 희망적 전망을 선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절망적 현실에 대한 직시를 명령한다. 그래서 진정한 생태학은 희망의 학문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노자의 철학을 자연과 합일하여 소요유를 즐기는 반문명적 우주론에 기초하고 있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다. 오히려 노자 철학은 철저히 실용적인 관점에서 입각해서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고자 하는 ‘고도의 철학적 처세술’에 가깝다. 이러한 사고가 전개된 이유는 춘추전국시대의 사회적 변화에 대한 배경적 이해가 필요하다.

송종서 전 민족의학연구원 상임연구원/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춘추시대의 제후국들이 패업의 야망을 품을 수 있게 된 계기에는 생산성의 발전이라는 경제적 배경이 작동하고 있었다. 이는 춘추시대가 이미 기술을 가지고 자연을 이용하는 시대에 돌입했으며, 당대인들에게는 그것이 놀라운 성취로 간주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전국시대에는 자연 지배에 대한 의식이 강화되어 만물 현상의 원인을 추구하는(求其故) 작업이 활발했다. 이 작업을 주도한 학파는 묵가였다. 묵가는 전국시대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학파였는데, 그 구성원들은 장인과 기술 노동자 집단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기구를 만들기 위한 연구 작업을 진행하면서 자연에 대한 이론과 그러한 이론의 방법론으로서의 논리학을 발전시켰다. 묵가에서는 인간이 자연에게서 해방되고, 노동자 등이 지배자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기술임을 강조했다. 장자의 도가와 맹자의 유가 등은 이러한 묵가의 견해에 대한 안티 테제로서 자신의 이론을 성립시켰다.

학파들 간의 논쟁을 통해 이론을 성숙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제나라에 설치된 ‘직하학궁(稷下學宮)’의 역할이 컸다. 이것은 국가가 세운 일종의 학술원이었다. 이곳에서 당대의 학파들이 모여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파악하고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게 된다. 순자는 좨주(祭酒)를 세 번 역임하면서 이 기관을 대표한 당대 최고의 학자 중 하나였다. 순자의 학문은 당대의 학문적 성과를 종합하면서 자신의 이론적 체계를 세웠다는 점에서 잡가적 특성을 지닌다. 그래서 그의 이론에는 도가의 영향이 보인다. 이런 이유로 그는 인간을 윤리적 관점에서만 이해하지 않는다. ‘인간만이 선하다’든가 ‘인간이 만물의 중심’이라는 관점을 거부한다. 당대의 윤리학은 ‘자연은 신비로운 존재이며 이 신비로운 자연에 대해 인간 스스로가 행실을 삼가야 하고 그 속에서 윤리가 등장한다’는 이해 방식 속에서 전개되었다. 그러나 순자는 이러한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인간을 자연 지배의 군주로 보지도 않고, 자연을 지존의 위치로 격상시키지도 않는다. 다만 그는 인간과 자연에 일정한 거리두기를 취하면서 이해하려 했다. 한 편으로는 도가적이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묵가적이기도 한, 그러면서 인간의 윤리적 삶을 고찰했다는 면에서 유가적이기도 한 이같은 면모가 그를 당대 학문의 종합자로 파악하게 만든다.

최근의 학설에 의하면 『노자』는 진(秦)나라 말기에 서술된 책이라 한다. 이 시대의 정신은 생존이었다. 서민(소인)에게는 자기 보존이 문제였으며, 주류 계급(군자)에게는 세력 유지가 관심사였다. 『노자』는 이 실용적 시대정신에 호응해 안정적 생존을 가능케 하는 방도를 제시해 준 철학적 체세술이었다. 『노자』 철학에서 생존이란 자연의 전개 법칙을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을 인식하고 활용하려는 모든 의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노자 철학의 생태주의는 우주론적 각성에서라기보다는 생존의 요구에 충실하려는 인간적 욕구에서 발생한 것이 된다. 왕필에 의해 해석된 『노자』는 우주론적 관점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백서본(帛書本) 『노자』는 벌어진 상황에 가장 적절하게 처신함으로써 자기 보존을 연장하는 처세술로 해석된다. 이러한 이유로 『노자』가 제왕학, 즉 정치술의 경전으로 활용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황로학은 이렇게 설명된다. 정리해보면 노자류의 도가는 고급 처세술에서 시작해서 왕필에 이르러 생태학적 우주론으로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천하를 일통하고 그것을 안정적으로 소유하기 위해서 처신해야 할 방략을 제시하는 가운데 가장 통 큰 처세의 이론으로서 도가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런 연구 성과를 수용하게 되면 장자가 노자를 시대적으로 앞서게 된다. 내용상으로 파악해 봐도 노자의 정신과 장자의 정신은 다르다. 장자는 무정부주의적 정신을 강조하면서 개념화와 문명화에 대한 부정을 제시한다. 노자는 제왕학적 경향성을 지니면서 세상의 변화와 흐름에 적응해 갈 것을 권유한다. 이렇게 볼 때 노장사상을 하나로 합친다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장자와 노자 사이의 질적 상이성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기술 지배 시대에 대한 장자의 근본주의적 비판은 『장자』 「천지」, 「대종사」 등에서 살펴 볼 수 있다. 맹자도 기술 지배적 풍조에 비판적이었지만 장자만큼 급진적이지는 않았다. 그는 묵자와 장자를 변증적으로 지양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그는 『맹자』의 「고자」 상편에서 이 길을 우 임금의 치수에서 찾아내 ‘行其所無事’로 정식화했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생장하는 싹의 힘을 믿고 그 힘에 기대는 동시에 천지의 도움이 잘 이루어지도록 인간의 노동력을 투여하지 않는 계기, 즉 無事의 계기가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종자를 심고, 잡초를 뽑으며, 물을 대고, 퇴비를 주며, 보리를 거둬들이는 인위적 行의 계기가 필요하다. 이 무사와 행의 두 계기가 적절히 통일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맹자는 이 생태적 농사의 원칙을 인성 수양의 원칙으로 삼았다. 『맹자』의 「공손추」 상편의 어리석은 송나라 농부의 이야기는 이런 관점에서 해석된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강의 후기

문명의 편리함에 익숙해져서 환경 파괴적 삶을 살아오던 차에 동양의 도가사상을 통해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생태적 삶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기존에 알고 있던 도가를 바라보던 시선과는 다른 시선을 접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 그런데 장자의 철학은 회의주의적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었나?

멋진 강의였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선생님께 불교 철학 강의를 한 번 추가로 부탁 드리고 싶네요.

여러 사상의 연관성 이야기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맹자 사상 중에 농업철학이 있었다는 것을 새롭게 배워서 좋았습니다. 이준모 선생님을 알게 된 것도 큰 기쁨입니다.

생태적 삶을 넘기는커녕 생태적으로 살기도 어렵지 않을까?

삶에 대한 정의를 ‘생태적’이라 한다는 논제 자체가 비생태적일 수 있다는 것을 오늘 강의를 통해 느끼게 되었습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동양의 고전들에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안산의 공맹; 친친(親親)의 역설을 통한 이방인과의 소통, 이해, 그리고 연대[한철연 교육강좌]-④

[한철연 교육강좌]-④

안산의 공맹; 친친(親親)의 역설을 통한 이방인과의 소통, 이해, 그리고 연대

 

강사 : 김세서리아(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
후기 :한길석(한철연 교육분과장)

 

 

지난 4월 15일 한철연의 네 번째 교육부 강좌가 김세서리아 회원의 강의와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강의는 제 3강과 동일한 주제를 다루었다. 기획자의 의도는 상호문화적 상황에 대해 서양과 동양의 윤리학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 한국에는 다문화 가정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문화 간 혼인에서 태어난 아이는 매년 4천명에 달하고, 2010년에는 내국인과 외국인 결혼이 10.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이한 점은 1991년에서 2005년 사이에 한국 여성과 외국 남성 간의 결혼이 3배 증가한데 비해, 한국 남성과 외국 여성의 결혼 건수는 50배 증가했다는 데에 있다. 후자의 경우 한국 남성의 결혼 이유는 순종적이고 부모를 잘 모실 것 같은 여성이어서였다고 한다. 이는 문화 간 결혼이 상호문화적 이해와 인정에 의거하기 보다는 종족 보존과 가부장적 가정의 유지라는 유교적 윤리 의식에서 기인함을 반영한다. 전통 유교적 가족 관계에서 혼인은 생물학적 번식과 남녀 분업을 통한 생활 자료의 생산이라는 세속적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풀이된다. 또한 유가에서는 자손 생산을 통해 개별 생명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무한한 삶을 추구했다. 영혼 불멸이라는 초월적 관념 장치가 결여되었던 유가 철학에서 이러한 사고는 세속적 형태의 초월성 추구라고 해석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개체의 존재는 개인에게 온전히 속하는 것이 될 수 없다. 나의 실존적 의미는 조상 및 후손과의 연관 관계 속에서만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친족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윤리적 태도로 이어진다.

김세서리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유교적 윤리 의식은 친친(親親)의 원리에 의거하고 있다. 자신과 친한 이들에게 보다 친밀한 대우를 권고하는 이 의식은 육친을 우선시하는 윤리적 행위를 낳았다. 이는 사회적 정의와 가족적 우애가 갈등을 빚을 때 후자를 우선하게 만드는 일을 초래한다. 양을 훔친 아비를 고발한 아들을 윤리적이지 않다고 책망했던 예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정직’이라는 의미에 대한 해석차를 고려해야 한다. 공자와 섭공의 논박을 살펴보자. 섭공에게 정직이란 ‘사실을 객관적으로 고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공자에게는 ‘제 마음에 진실하게 임하는 것’을 뜻한다. 객관적 참을 추구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지 않는 한 정직의 의미가 온전히 발휘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친친(親親)의 원리가 사회 윤리보다는 가족 윤리에 기울어 사회적 정의의 확산을 가로막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친친(親親)의 원리는 혈연에 의해 친밀하게 이어진 관계에 대해서는 동화를, 그렇지 않은 관계에 대해서는 배척과 분리로 이어지게 하는 경향성을 갖는다. 친족 내의 이질성을 제거하고 남성 가장의 문화를 중심으로 혈연적 동화를 추구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친(親親)의 원리가 반드시 가족 이기주의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이 강조하는 바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윤리적 행위가 진실하다는 점에 있다. 유가 윤리는 ‘인(仁)’의 구현을 강조한다. ‘인(仁)’이란 ‘충서(忠恕)’, 즉 온 마음을 가운데에 모아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같게 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이는 추기급인(推己及人)과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의미한다. 『논어』 「옹야」 편에서는 인(仁)을 ’내가 서고자 하는 곳에 남을 세우고,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에 남을 도달케 한다‘는 것으로 풀이해준다. 타인과의 낯선 관계에서 이런 마음이 자주 나타날 리는 없다. 충서(忠恕)의 마음이 가장 잘 우러나오는 관계는 가족 관계에서일 것이다. 가족 관계 속에서 이런 마음을 익숙하게 체화하여 온 공동체로 넓히게 하는 것이 유가적 윤리관의 본래 의도라고 짐작된다.

현대 사회의 가족은 이미 유교적 사회의 그것과는 상이하고도 다양한 형태로 조형되고 있다. 혈연을 중심 고리로 묶이지 않은 가족도 등장하고 있으며, 이질적 문화와 종교 및 가치관을 그대로 지키고자 하는 가족 구성원들도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친친(親親)의 원리도 이에 걸맞게 해석되어야 한다. 과거에 그것은 육친과 혈연적 관계에 방점을 두고 적용되었다면, 현재에 그것은 ‘인(仁)’의 본래 정신을 구현하는 형태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타인의 마음을 섣불리 평가하지 않고 내 마음과 같이 생각해보려고 노력함으로써 이해와 화해를 도모하는 ‘인(仁’)의 정신은 문화 간 갈등 상황에 봉착하고 있는 현대사회에 일정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4강 후기

한국 사회의 다문화 현상을 친친의 확장 개념을 통해 재해석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상호문화주의에 대한 강의를 연속으로 듣게 되었다. 주제가 최근 한국 현실에 부합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직접 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깊게 생각해 보지 못한 주제였다. 앞으로 상황이 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비단 이주자 문제 뿐 아니라 현재 동료들과도 상호 이해, 차이의 공감 등에 대한 이론적 기반이 될 수 있도록 개념을 좀 더 확장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번 주의 강의와 이번 주 강의를 들으며 상호문화주의, 차이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 같다. 일방적인 동화 또는 이해로 포용하는 것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고 또다른 것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은 주제였지만, 앞으로 내 생활에 차지하는 면이 클 수 있는 주제에 대해 한번씩 생각해 볼 수 있는 듯 하다.

이번 강의의 주제가 일상에서 부딪치는 구체적 문제를 다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두 번의 다문화 관련 강의에서는 직접 경험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고 대부분 피상적 문제만 인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 혹시 앞으로의 강의에서도 이런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가능하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미리 일주일 전에 문제 제기를 해주시면 더욱 고맙겠다.

다문화주의를 고민하게 된 그 배경에 대해 궁금합니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고민은 전세계적 이슈로 봐야 하지만 먼저 이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금융 제국주의의 문제를 먼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전제 하에 논의되는 이 모든 문제들이 실제로는 경제 제국주의와 아주 밀접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상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경제의 획일화가 문화 획일화를 가져오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한다.

친친의 유의미성에 대한 부분이 이민자, 외국인, 다문화를 수용하는 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지 않아 아쉽다. 유교의 친친의 확장은 결국 나로부터 혈연, 지연, 학연 순으로 나아가는데 그 한계와 부정적 측면이 더 많을 듯 하다.

친친의 편파성과 그것의 도덕적 유의미성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부자 증세가 확실히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친친의 원리에 입각한 나라가 있을까?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미 다문화적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의 인식은 이방인과의 소통과 연대 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 친친의 원리를 극복하기 위한 열린 마음을 가지자.

‘우리’의 범위를 확장하자. ‘다름’은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같음’을 공감하고 연대하면서.

니체, 중심 가치의 전복과 새로운 가치 창조의 철학자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②

니체, 중심 가치의 전복과 새로운 가치 창조의 철학자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②

 

강사 : 연효숙(연세대 외래교수)?
후기 :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

 

▲ ⓒ프레시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현대철학을 개시한 장본인이다. 그는 근대철학을 마감하고 현대를 새롭게 여는 경계에 서 있던 사람으로 흔히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른다. 근대를 마감하면서 플라톤(Plato) 이후 2,500년간 서구인들이 가져왔던 중심 가치를 가차 없이 깨부수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존의 것을 뒤집어엎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 한 철학자이다.

 

전통적 가치의 전복

 

현대성은 아직까지 정체가 명확하지만은 않다. 20세기의 시작을 현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좁게는 1968년 5월 프랑스 ’68혁명’이 진정한 현대의 분기점이며 현대성을 구현한 것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니체의 철학의 길안내를 도와줄 연효숙 교수는 “현대성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형태로 분류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니체가 그 징후들을 포착했고 그것들을 니체의 철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점”이라고 한다.

헤겔(Hegel)은 ‘인간이 역사의 주인이고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이성의 시대’를 말했다. 그러나 니체는 그 이성 중심의 시대를 마감시키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이 점이 니체가 당시에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가 된다. 소크라테스(Socrates) 이후 헤겔에 이르는 중심 가치는 이성의 사유를 중시하는 전통이었기에 쇼펜하우어(Schopenhauer)의 ‘의지’ 같은 개념은 당시 서구인이 이해하기에는 생소했다. 니체가 말한 ‘힘에의 의지’ 또한 같은 맥락에서 취급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니체의 저작이 헤겔의 저작에서 보이는 일목요연한 체계와는 정반대의 특징을 보이는 점도 그의 사상이 당시에 평가절하 될 수밖에 없던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초기 예술적인 관점에서 쓴 저작 『비극의 탄생』(1871) 이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 『도덕의 계보학』(1887), 『힘에의 의지』(1887), 『니체 대 바그너』(1888) 등 그의 에세이적 글 속에 보이는 주옥같은 말과 통찰력 있는 문구들이 여전히 현대인들에게 창조적 발상의 길을 열어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현대적 사상의 기원으로서의 니체 : ‘신은 죽었다’가 의미하는 것

 

서양의 19세기 말, 서구인들은 스스로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일종의 ‘위기감’이다. 헤겔이 말한 ‘역사의 주인’이었던 인간이 근대의 막바지에는 오히려 ‘악마적’인 성향에 의해 규정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측면이 드러났고 역사를 지배하던 낙관주의적이고 통일적이었던 근대의 문화가 정점에 있다가 하향 곡선을 그리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1800년대 말 서구 유럽의 모습이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당시 시대의 변화를 느끼고 그것을 예술 활동을 통해 드러냈듯이 니체는 이 징조들을 감지하고 자신의 사상을 전개한다. 이른바 ‘신은 죽었다(Gott ist tot)’는 니체의 말은 근대적 주체인 ‘인간’의 죽음을 예고하는 말이다. 『안티 크리스트』(1888)에서 니체는 실제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기독교 절대존재의 허구성과 기독교적인 덕(德)의 체계는 절대 인간을 구원할 수 없고 진리를 구현하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라고 했다. 마르크스(Karl Marx)가 “종교(기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선언했던 것처럼 니체가 기독교를 비판했던 또 다른 요지는 절대적인 존재에 의지하여 고통스러운 삶을 감내하게 하는 거짓된 모순에 있었다.

근대인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던 기독교 중심의 삶의 가치는 더 이상 손에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그로 인해 오히려 삶의 허무함이 드러나게 된다. 니체가 말한 ‘니힐리즘(Nihilism)’은 바로 근대 주체의 사망을 선고하는 신호탄이었고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대신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니체는 삶을 제대로 살아보자는 의미에서 ‘삶을 긍정하는 철학’을 통해 미학ㆍ심미적인 것과 예술적 창조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부상시킨다.

 

미학주의와 반관념론(anti-idealistic)적 경향

 

연효숙 교수는 니체 이전 서양에는 ‘진선미(眞善美)’의 위계가 뚜렷했다고 한다. ‘진(眞)’은 소크라테스부터 헤겔에 이르는 진리체계를 지칭하고 ‘선(善)’은 인간이 지녀야 할 윤리적 덕목의 가치이며 ‘미(美)’는 인간의 심미성과 미적 감각을 말한다. 니체는 가장 하위에 있던 미학적인 것을 가장 우위에 두면서 서양 고대의 형이상학, 근대의 인식론, 진리 위주의 경향을 전복시킨다.

니체는 이러한 가치의 전복을 통해 플라톤적 이상주의의 종말을 고하면서 근대까지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만이 아름다움과 선함을 가지는 실체라는 생각을 버린다. 인간 외의 사물(생명)에 대해 그 존재가치를 평가 절하해 버렸던 것이 근대까지 서양 인식론의 기본이었다. 이 연장선상에서 서양은 서양 이외의 아시아, 아프리카 등 다른 문화의 가치도 ‘인간 이외의 것’으로 치부하면서 서양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의식을 확고히 했다. 니체는 ‘반인간주의(anti-humanitarian)’를 주장하면서 ‘인간주의(humanism)’가 오히려 인간을 더 인간답지 않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보았다. 자연에 대한 인간 우위의 비판이다.

연효숙 교수는 이런 니체의 사상이 현대철학에 지적 영감을 불어 넣었던 작가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1907~2003)와 피에르 클로소프스키(Pierre Klossowski, 1905~2001), 그리고 현대 철학자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와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위시한 중심가치의 전복과 전도를 시도했던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한다.

니체는 또한 탈근대(post-modern)사상으로의 전환에 있어 맹아를 지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근대까지 서구의 철학이 보편성에 기초하여 전체를 아우르려는 ‘동일성(identity:정체성)’의 철학이었다면 니체는 개체의 ‘차이(difference)’를 중시하는 철학을 전개하면서 개체성을 확보한다. 수직적인 사고에서 수평적인 사고로의 전환이다. 이 모든 것은 전통의 ‘해체’이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 니체 ⓒ위키피디아

 

『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비극은 ‘음악의 정신’으로부터 기원한다”고 말했다. 플라톤이 평가 절하하던 예술가와 예술을 오히려 높게 보고 예술 중에서도 ‘음악’에 대해 강조한다. ‘그리스 비극’은 소크라테스가 탄생하기 이전 시대를 풍미했던 영역이었다. 그리고 그리스 비극을 연원으로 하는 ‘그리스 정신’은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던 이성 중심의 주지주의(主知主義)와 상관없다. 삶의 원초적인 힘과 본능이 오롯이 살아있는 것이 그리스 정신이며 ‘충동(힘)과 본능과 격정(pathos)의 홍수 속에서 예술 창조의 원동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리스 비극의 의미이다. 니체는 그리스 비극을 미학의 전형으로 보았고 이 ‘고전 비극의 예술’을 독일에서 재창조 하려 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처럼 ‘음악예술’은 삶의 부속물이 아닌 “상이한 매체를 이용해 삶을 총체적으로 새롭게 재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니체는 원래 인간은 비극의 정신 속, 인간의 충동 속에서 세계와 하나가 되는 것 같은 체험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이성이 등장하여 인간의 자각을 통해 자아와 세계가 하나라는 통일성에 균열을 만들었다고 보았다. 이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소크라테스이고 그리스 정신이 쇠퇴하는 지점이다.

니체는 그리스 비극이 세계의 원리 혹은 인간의 원리로서 두 가지 상반되는 원리가 잘 조화되어 있다고 평했다. 그 원리가 ‘아폴론적 원리’와 ‘디오니소스적 원리’이다. 아폴론은 질서 정연한 형식의 신, 꿈의 신으로 조형적인 미, 질서, 형식의 예술을 통해 미를 창조하는 힘을 가지며 개별적인 것의 원리가 된다. 조각, 회화 등 조형 예술에 관련한다. 반면 디오스소스는 카오스(chaos)와 황홀경의 신, 술의 신이다. 도취적이고 형식을 파괴하며 통제되지 않는다. 비조형적인 음악 예술의 영역과 관계한다. 디오니소스적이라는 것은 개인을 중시하지 않고, 개인을 말소시켜 신화적인 일체감 속에서 개인을 해체시킨다. 이 원리는 그리스 비극을 살아 있게 하는 주요 원리로 자리매김한다.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원리를 아폴론적 원리보다 더 강조한다. 이 대목에서 연효숙 교수는 “그러나 니체가 디오니소스적 원리를 강조했지 거기에 치우친 것은 아니었다”고 부연한다.

그러나 니체는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아이스퀼로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를 들면서 후자로 갈수록 점점 아폴론적인 색채가 강해졌다고 평가한다. 그렇게 비극적 감정이 희미해지는 사이 비극은 쇠퇴하고 퇴장하게 되고 만다. 감성이 퇴장하고 이성이 등장하면서 디오니소스적 원리는 퇴조하고 아폴론적 원리가 지배적이 된다. 그리스 비극은 쇠퇴되고 이성의 등장 이전에 있었던 인간과 세계가 합일되는 황홀경의 경지는 억압받고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니체가 바라본 그리스 비극과 소크라테스 등장 사이의 관계이다.

 

도덕의 계보학

 

니체는 절대적인 선과 악이 있다는 기준에 의문을 제기한다. 연효숙 교수는 강의 내내 니체가 고전 문헌 학자였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니체는 자신이 그리스 비극과 그리스 정신을 규명하기 위해 고대로 거슬러 올라갔듯이 도덕이라고 하는 기준을 설정하고 선과 악을 규정하는 것의 계보는 결국 거슬러 올라가 보면 도덕 기준을 정하는 자에 의해 설정된다고 결론 내렸다. 그 결정자는 니체에 의하면 역사의 승리자이며 권력자라고 말할 수 있고 도덕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선악의 절대적인 기준은 어디에도 없으며 당사자가 어떤 계층에 속해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가변적이다. 니체는 기본적으로 근대의 보편적 인간, 보편적인 도덕 법칙을 거부한다. 연효숙 교수는 “니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할 삶의 규범’들과 칸트나 헤겔 철학에서 얘기하는 이른바 ‘인간의 보편적인 선(善)’에 대해 비판하면서 자기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도덕의 실체를 두 가지로 나누어 봤다”고 설명한다. 그 하나가 ‘주인의 도덕(master morality)’이고 다른 하나는 ‘노예의 도덕(slave morality)’이다.

‘주인의 도덕’은 귀족계층과 같은 고매한 정신을 소유한 자들의 진취적이며 창조적인 정신을 담고 있다. 주인의 도덕이란 가치의 창조자, 가치의 결정자가 된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에 있어 주인의 도덕을 소유한 자들은 타인의 불행에 대해 연민과 동정이 아닌 자기 스스로의 풍요로운 ‘힘’에서 나오는 배려의 차원에서 관심을 가진다. 반면 ‘노예의 도덕’은 사회의 최하 계층들의 도덕을 대변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기독교의 도덕’이다. 노예를 만드는 도덕이다. 그들의 선은 단지 고통 받는 자들의 고통을 ‘줄여주기만’하는 행위이다. 동정, 자비, 인내, 박애, 친절이라는 덕목을 가진 자들은 선한 자들이고 악인은 고통을 주고 공포를 조장하며 억압하는 자들이 된다. 선한 자들은 악한 가해자들을 물리치고 이겨내야 한다는 스토리를 제공하는 것이 노예의 도덕이다.

니체가 보기에 서구의 도덕은 이 노예의 도덕이 주인의 도덕에 대해 도전하면서 노예들의 평범한 가치를 추켜 올린 것이다. 니체 당시는 물론 지금 현대에 있어서도 동정과 연민을 받는 대상자들이 선한 가치를 점유하고 ‘당신은 핍박받고 있고 보호받아야 하는 약한 존재’라는 주문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노예의 도덕은 인간을 더욱 ‘약한 자’로 만들어 버리고 그 가치만이 우리 삶의 선함에 대한 기준으로 적합하다고 착각 하게 만든다. 이것이야 말로 노예의 도덕이 지배하고 있는 양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연효숙 교수는 ‘주인과 노예의 도덕’, 이 대목에서 니체가 오해를 많이 받는다고 하면서 특히 “니체가 ‘금발의 야수’라는 표현을 써서 창조적이고 진취적이며 능동적인 인간상을 설정했는데 이 표현이 마치백인 우월주의를 강조하는 듯이 보이고 히틀러, 나치에 영향을 주었다는 오해를 받는다. 일면 이 말 자체가 애매모호하고 그런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헤겔이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통해 노예가 주인을 딛고 진짜 주인이 되는 얘기를 하지만 이것은 헤겔의 이야기”이다. “니체는 동정과 연민을 통해 선한 가치를 획득한 노예의 도덕이 일어선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기독교의 잣대에 맞추어 그런 식의 도덕을 강요하는 사회가 정말 억압받는 자들을 구원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래서 니체는 기독교적 사회가 몰락하는 새로운 사회에서는 주인의 도덕만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고 모든 도덕적 가치들은 인간의 참된 본성과 환경 위에서 재평가되고 재정립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주인의 도덕에 대한 이해에 있어 우리가 조선 당시의 사회적 현실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반문화의 정신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역사적 사실로 바라보는 사대부의 실상과 문화적 측면에서 문화적 표본으로써 바라보는 사대부의 문화는 다르다는 점을 상기할 만하다.

 

‘힘에의 의지’와 ‘위버멘쉬(?bermensch)’

 

니체는 그리스 문화와 기독교 문화를 비판하면서 이 둘을 형용하기를 ‘이성만 남아서 살과 근육은 다 발라지고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형태’라고 표현한다. 이 두 문화는 동정과 연민을 유발하면서 인간을 ‘약함’을 계속 강조한다.

그래서 니체는 ‘삶(Leben)’에의 의지 강조한다. 그 삶은 창조적인 삶이고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비극과 정신이 삶의 원초적인 힘과 본능이 살아있고 충동(힘)과 본능과 격정(pathos)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원동력이 됨을 볼 때 삶의 의지가 사라져 버린 근대의 신은 죽어야 마땅한 것이 된다.

근대적 주체에 오르고 이성적 사유만을 통해 뼈만 남아버린 인간을 니체는 극복하기를 바랐고 그것을 극복하는 인간을 ‘위버멘쉬(?bermensch)’라고 했다. 흔히 ‘초인(超人)’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위버멘쉬는 삶의 원초적인 본능과 의지가 살아서 끊임없이 자기를 창조해나가는 능동적인 인간의 모습이라고 하겠다. 독일어 ‘?bermensch’의 동의어가 ‘Supermann’이고 영어로는 ‘Superman’이 된다. 이를 보면 니체가 당시 서구 현실에 대해 느꼈던 위기감의 경중(輕重)과 한계를 극복하려 했던 의지가 어떠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니체 사상의 의의

 

연효숙 교수는 근대는 이성이 너무 과하게 강조된 것이 문제였다고 한다. 특히 헤겔과 쇼펜하우어가 서로 같은 장소와 시간에 강의를 하면서 헤겔의 수업에는 사람들이 넘쳐 났지만 쇼펜하우어의 강의실에는 파리만 날렸다는 설명을 통해 당시 이성주의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니체는 이러한 이성의 과잉포장을 파토스, 감성, 미, 예술, 직관이 승리해서 깨부숴야 함을 역설했다. 연효숙 교수는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건다는 말도 있듯이 플라톤이 제시한 철학에서의 모범답안과 플라톤주의가 주는 서양철학의 ‘진리 강박증’은 사람들을 서열화 하고 줄 세워 한 가지 방식과 가치만을 기필하게 만든다. 이러한 척박한 시대에 인간의 숨통을 틔운 것이 바로 니체의 사상”이라고 한다. 플라톤주의를 전복하는 데서 니체의 철학이 출발한다.

니체의 철학 속에는 ‘분열(균열)된 주체’가 등정한다. 통일된 주체가 허구라는 것이다. ‘나’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규정하기는 너무 어려운 사안이다. 그러나 근대는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고 스스로 한계를 만들어 냈다. 도대체 통일된 주체로서의 ‘나’가 어디 있는지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 니체이고 이런 문제는 이미 현대 철학에서 증명하고 있다.

연효숙 교수는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 1813~1855)가 헤겔의 철학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헤겔은 세계의 체계를 거머쥐는 큰 철학을 세웠는데 비유하자면 큰 집을 지어 놓고 헤겔 자신은 그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조그만 문 앞 수위실에 망만 보는 형국이다. 왜 그는 그 큰 집에 안 들어가고 있나? 왜냐하면 그 집은 실속이 없는 집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떤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니체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고 보는 입장이며 해석의 다양성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니체주의자들은 ‘관점주의(Perspektivismus)’라는 말을 써서 설명한다. 상대주의와 비슷한 말이다. 플라톤적 철학이 제시한 관점과 해석이 전부가 아니라 각자 자기의 눈에 맞게 도출된 의견과 해석은 존중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면이 니체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주목받는 철학자가 되는 이유이다.

 

인공의 눈을 벗어버린 진짜 ‘눈’ [청춘의 고전 시즌2]- ⑫

[청춘의 고전 시즌2 /그림으로 읽는 철학]- ⑫

일시: 2012. 9. 8.(홍대입구 상상마당 강의실)

인공의 눈을 벗어버린 진짜 ‘눈’

– 세잔의 <대수욕도>, 그 감각적 리듬의 철학적 정체 –

강연: 조광제 (사)철학아카데미 운영위원

▲ 로브에서 본 생 빅토와르 산, 1904~1906 ⓒ폴 세잔(Paul C?zanne)

이 그림은 프랑스의 화가 폴 세잔(Paul C?zanne, 1839~1906)이 찬미해 마지않았던 자기 고향의 ‘생 빅토와르 산’을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보이는 산의 모습은 우리가 실제로 보는 자연 풍경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 사진으로 촬영한 실제 ‘생 빅토와르 산’의 모습

실제 사진과 비교해 봤을 때 색면들을 잘게 썰어서 표현한 것처럼 보이고 색이 서로 뒤섞여 있는 듯이 보인다. 세잔은 이 그림에서 빛에 의해 반짝이는 사물의 겉모습을 표현하지 않았다. 세잔은 사물들이 지니고 있는 색채들이 서로 연관하면서 뒤섞이고 있는 움직임을 극단화하여 표현한 것이다.

세잔이 만년에 그린 이 작품은 세잔이 어느 정도로 감각적인 리듬에 크게 심취하게 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세잔의 감각적인 색채의 표현에 감동하여 자신의 철학을 전개한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 1908~1961)가 있다. 메를로 퐁티에 의하면 세잔이 어느 날 생 빅토와르 산의 풍경을 보고 있다가 빠져들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풍경이 내 속에서 자신을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
(Le paysage se pense en moi, et je suis sa conscience.)

동양식으로 말하자면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경지랄까. 주체와 대상이 전혀 구분이 안 되는 상태이다. 이 경지는 ‘나’라는 존재가 풍경의 색을 보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나를 통해서 자기의 색을 보는 것이다. 마치 지독한 섹스의 경지랄까. 지독한 감각의 세계에서 사유는 불필요하다. 메를로 퐁티는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면서 사유와 대결을 벌인다. 사유중심의 철학에서 감각중심의 철학을 구축한 학자가 바로 메를로 퐁티이다.

메를로 퐁티의 철학

메를로 퐁티의 철학은 ‘몸철학’ 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몸현상학’이다. ‘현상학’은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로부터 시작되는데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실존철학’과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의 ‘실존주의(현존주의)’는 모두 후설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다. 메를로 퐁티의 ‘몸철학’-‘몸현상학’도 후설의 현상학에서 출발한다. 현상학에서는 일단 눈에 보이는 것을 가장 근원적인 것으로 보자는 것이다. 이것을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만약 사유의 출발을 형이상학적인 ‘신(神)’으로부터 시작하려 한다면 그 태도는 비현상학적인 것이다. 현상학의 세계에서는 눈에 구체적으로 보이고 주어지는 것들을 바탕으로 삶이 이루어진다.

‘몸’을 바탕으로 해서 삶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정신’, ‘의식’ 같은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추상적인 것을 가지고 바라볼 것인가? 메를로 퐁티는 정신을 ‘체화된 의식(conscience incarn?e)’이라고 했다. 몸을 현상학적으로 파악하면서 몸과 정신은 서로 얽혀있고 정신이라는 것은 몸의 일부가 된다. 또 메를로 퐁티가 맑스주의자라는 점에서도 그의 철학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흔히 맑스(Marx)의 유물론을 유물론적 관점이라 한다. 맑스는 “개인적 의식은 사회적 존재의 산물이다. 사회적 존재는 물질관계와 육체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맑스는 유물론적 관점으로 세계를 보았고 메를로 퐁티는 몸이라는 것은 통해 맑스적 유물론을 입증해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메를로 퐁티의 철학은 직접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에 관심이 크다.

몸의 핵심 : 감각과 운동

감각과 운동은 상호간에 반드시 서로 수반되는 관계에 있다. 예를 들어 어느 한 방향에서 소리가 울린다고 할 때 우리는 귀라는 감각기관으로 소리를 느끼는 동시에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나 눈이 돌아가게 된다. 이렇게 감각과 운동은 같이 일어난다. 운동을 통해 새로운 감각이 주어지게 되고 다시 감각이 주어지니 신체의 운동이 발생한다.

감각과 운동은 우리의 삶과도 관계한다. 인간의 삶에 있어 평생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노동’과 ‘여가’이다. 노동은 ‘운동’이 중심이 되고 여가는 ‘감각’이 중심이 된다. 조광제 교수는 맑스의 말을 빌려 노동은 인간을 소외시키는 본질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이고 여가시간을 최대한 늘려야 하며 감각적인 삶을 향유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기초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삶을 향유한다는 것이 운동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춤을 추는 즐거움이 몸의 운동에 있지 않고 노래하는 것이 입의 운동에 있지 않다. 즐거움의 본질은 춤추고 노래하는 동안 운동을 통해 감각적인 것이 나에게 들어오면서 만들어지는 감각적 즐거움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운동을 통한 행위인 노동 자체는 우리 삶의 기초적 목표될 수 없다.

그래서 노동보다는 여가에 대해 생각하면서 우리는 최대한 감각적인 것을 추구해봐야 한다. 인간 삶의 기본적인 목표가 여가적인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맑스는 “자본주의가 끝나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계는 공산주의 사회이다. 이 사회가 도래하면 그 사회는 ‘전면적이고 심오한 감각을 갖춘 인간들을 사회적 형식으로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맑스의 『경제학 철학 수고』를 참고하길 바란다. 맑스의 감각론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맑스가 말하는 공산주의는 이념을 중심으로 완성된 사회가 아니고 심오한 ‘감각적 인간’들이 많이 양산되는 사회를 추구하는 과정으로서의 사회를 말한다. 그런 사회를 구성하려면 이성적 사유와 분절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 감각적 세계에 대해 눈을 떠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잔은 분명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감각의 영역을 개발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최대한 회화적으로 표현했다.

폴 세잔의 그림은 운동의 부분보다는 감각적인 부분이 훨씬 강하다. 영어로 ‘에스테틱(aesthetic)’이라는 말이 있다. ‘미학’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은 독일어로 ‘?sthetik’이고 이 말은 그리스어 ‘Aisthesis’에서 왔다. ‘Aisthesis’은 ‘감각’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미학이라는 말보다 ‘감각하기’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조광제 교수는 미술도 아름다울 미(美)자를 써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감각을 추구하는 것이다.(미술보다는 ‘감각술’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미술에서는 감각문제에 집중을 한다. 어떻게 감각을 재구성해서 표현하는가의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우리는 세잔의 그림에서 세잔이 감각을 어떻게 소화해서 처리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존재의 우연성과 현존주의

세잔은 색의 존재성에 대해 언급했고 메를로 퐁티는 세잔의 그림에 감동받아 여기서 모티브를 얻어 ‘살존재론’의 철학을 만들어 냈다. 참고로 메를로 퐁티 철학을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보면 전기는 ‘몸현상학’이고 후기는 ‘살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 ‘살존재’란 무엇인가? 조광제 교수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일단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천체물리학에서 말하는 빅뱅 이후 최초 무한에너지에 대해 종교에서는 ‘신’이라고 말한다. 무한적인 존재를 신으로 설정하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신의 섭리에 의해 만들어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가 없으면 이 우주는 중요한 존재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고 말 그대로 야단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이른바 ‘필연성 중심의 사유’를 하게 된다. 그러나 철학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도대체 신이 어디 있나?’ 나는 우연히 태어났고 내 삶을 유지하는 것은 우연성이다. 만약 나라는 존재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 우주에는 아무 상관도 없다. 바로 이것이 사르트르의 ‘존재의 우연성’이다.

필연성을 바탕으로 살게 되면 인간은 삶에 있어 본질적인 무엇인가를 상정하게 되고 우연성을 바탕으로 살아간다면 ‘현존’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우연성의 삶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 이 순간 아무 이유 없이 움직이고 꿈틀거리며 폭발하는 그 상태가 존재하는 것이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엄밀히 말해 현존주의라 할 수 있고 본질주의와 대비된다. 이 현존주의는 절대적인 자유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색체주의자 세잔과 색의 존재성

본질주의는 인간의 감각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조광제 교수는 묻는다. 우리가 물리학 공부할 때 질량, 가속도, 운동량, 에너지에 대해서는 언급했지만 ‘색’에 대해 거론한 적이 있는가? 물리학에서 설명하는 색이란 빛이 있어 사물에 빛이 반응하면서 우리 인간과 관계를 맺으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색은 원리가 아니다. 물리학에서 빛 자체가 색이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색은 인간에 의존해서 성립한다는 말이 된다. 이것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것이 세잔이다.

“온 우주는 색으로 되어 있다. 심지어 나 자신도 색으로 되어 있다”, “마치 내가 끝없이 무한한 색채로 덮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바로 이 순간이네. 내가 그림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지개 색으로 빛나는 카오스 상태라고나 할까. 나는 내 그림의 배경 앞에 서서 몰아의 경지에 빠지고 마는 거야” – 세잔이 친구 조아생 가스케과 나눈 대화 中 –

세잔은 색이 인간과 무관하게 본래 우주에 있고 온 우주를 뒤덮고 있다고 했다. 하나하나 관통하고 속속들이 존재한다는 것. 예를 들어서 방 안에 사람이 있을 때는 사물들이 색을 가지고 있다가 사람이 방을 나가면 그 공간 안의 모든 물체의 색이 소멸하고 촉각적 질감마저 사라지는가? 그리고 사람이 문을 살짝 열고 방을 훔쳐보면 물질은 다시 색과 물체의 질감을 만들어내는가? 그렇지 않다. 물리학에 의하면 색은 주관적으로 존재하지만 세잔에 의하면 색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색이 원래 그 자체로 있다는 것을 주장한 세잔은 매우 강력한 색체주의자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자신의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메를로 퐁티는 무엇인가에게 색이 주어져있고 사물이 우리에게 감각된다는 사실을 매우 신비하게 느꼈다. 그런데 조광제 교수는 사물이 감각된다는 사실을 무시했던 것이 서양철학의 역사라고 한다. 플라톤(Plato)의 이데아(Idea)는 감각되지 않고 사유되는 것이다. 생각되기만 할뿐 이데아는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플라톤에게 감각되는 것은 모두 가짜이다. 플라톤은 사물을 비감각적으로 본다. 감각은 그저 생각을 돕기 위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 현대 물리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어떤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과 결합되어 있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눈으로 보이고 만져지는 것은 속성이다. 실체[장미꽃]+속성[붉다, 둥근 잎의 형태]의 경우에서 실체라는 것은 우연히 속성이 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실체는 결국 ‘감각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진짜 존재라는 것은 색으로 되어있지 않다는 것. 실체라고 하는 것은 속성이 뒷받침할 수 없고 속성 자체는 실체가 될 수 없기에 실체에 우연히 속성이 들러붙어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유가 데카르트(Descartes)에 오게 되면서 감각적인 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진리에 들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서양철학 전반을 관통하게 된다.

색의 존재성과 살존재론

감각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던 서양철학의 역사와 달리 동양에서는 ‘사물’=’색’으로 본다. 혹은 색을 성적인 것과 결부시켜 얘기하기도 한다. 색기(色氣)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색(色)’과 ‘성(性)’은 서로 떼려야 땔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 둘은 서로 가장 감각적인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조광제 교수는 이 대목에서 ‘보는 자’와 ‘보이는 것’, 즉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한다. “만약 내가 여러분을 지금 보고 있는데 내가 본다는 것이 여러분의 입장에서는 내가 여러분을 보는 것이 보이는 것이죠, 내가 여러분을 본다는 것이 보입니까? 그렇죠, 보입니다. 그렇다면 보는 내가 주체가 아니라 내가 봄이 여러분에게 보이는 대상이 됩니다. 주체와 대상이 전도되는 것이죠” 사람과 사람이 악수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만짐’을 만진다는 말이 성립한다. 악수도 일종의 감각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좀 더 수위를 높여보자. 남녀의 키스와 섹스도 마찬가지다. 주체적인 활동에 대한 감각은 주체와 대상의 활동이 뚜렷이 구별될 수 없다. 생각해서 구분하기 전에는 하나로 ‘혼융’되어 있는 상태이다. 섹스가 그렇지 않은가? 내가 저이를 만지는지 저이가 나를 만지는지… 섹스에서 논리적인 사유는 필요하지 않다. 논리적 사유가 없어야 관계가 가능해진다.

이 혼융된 상태가 되었을 때를 사르트르는 ‘살’이 되었다고 한다. 사르트르는 “애무는 몸을 살로 바꾼다”고 하였다. 프랑스말로 ‘몸’은 ‘corps(남성명사)’이고 ‘살’은 ‘chair(여성명사)’이다. 몸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고 살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도구를 쓰다듬으면서 사용할 수 있는가? 없다. 쓰다듬는 행위자체는 문명을 벗어난 행위이다. 도구는 과학기술이라고 할 수 있고 도구는 기능성, 이용성, 유용성을 가진다. 이 도구적 성격 안에 있을 때는 감각자체를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문명생활에 있어 감각은 부수적인 것이 된다. 현대 산업디자인만 보더라도 모든 디자인은 기능성을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디자인된다. 현대 자본주의적 시장가치가 지배하는 문명의 세계에서는 기능과 감각의 자리가 본말이 전도된다. 세잔의 그림은 본말이 전도된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 감각의 세계에 온전히 들어가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순수 감각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은 ‘몸’에서 ‘살’로 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유를 통해 주체와 객체의 주고받는 관계를 구분하거나 분리하지 않고 사물과 감각이 완전 혼연일체가 되는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 경지는 마치 남녀가 서로를 쓰다듬으며 키스에 몰입해있는 순간이며, 이 순간은 이른바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경지와 같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이렇다는 것이 세잔과 메를로 퐁티의 생각이다.

모든 존재는 감각덩어리

조광제 교수는 언어연구에서 인간이 내뱉는 최초의 말의 근본적 형태는 ‘외침(비명)’이라고 한다.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상태는 도저히 비명을 지르면 안 될 상태일 것이다. 이 상태는 가장 감정적이고 감각적인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가장 감정적이고 감각적인 상태에서 인간은 말을 잘 잇지 못하고 더듬거리기도 한다. 세잔이 풍경을 보고 느끼는 방법은 아마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세잔은 인간의 이해관계와 도구적 시각 등을 모두 배제한 순전(純全)한 광경을 원했다. 그리고 “세계가 우리를 어떻게 만지는가(쓰다듬는지)를 볼 수 있도록 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서로 만지고 만져지는 것은 사람끼리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인간과 사물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서로 만지고 쓰다듬을 수 있는가?

조광제 교수는 자신의 저서 『미술 속 발기하는 사물들』의 내용을 들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떤 인간이건 또는 어떤 사물이건 등속도로 살살 쓰다듬으면 발기한다. 사물이 나(사람)를 쓰다듬는 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온 우주는 아주 감각적인 것으로 뭉쳐져 있는 성기(性器)라고 할 수 있다. 메를로 퐁티는 온 우주가 ‘살’로 되어있다고 했는데 ‘살’이라는 것은 모든 사물이 온통 ‘감각덩어리’라는 것이다” 조광제 교수는 메를로 퐁티의 존재론을 ‘살일원론’이라고 이름 붙인다. “우주와 감각한다는 것은 온 도시를, 온 산 속을 걸어 다니면서, 그것이 곧 성기 속을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고 느끼는 것이고 그걸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세잔이 말한 경지”라고 한다.

조광제 교수는 이 경지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방법을 넌지시 알려줬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 앞의 광경을 본다. 그렇게 자신을 감각에 맡기고 있다 보면 음악이 광경으로 나타나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 이런 순간이 이른바 공감각(Synesthesia, 共感覺)이다.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처럼 소리를 들을 때 색을 보고,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처럼 색을 볼 때 소리를 듣는 사람이 공감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기의(記意)’를 빼고 순수 ‘기표(記標)’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 이 상태는 비유하자면 마치 성기 속을 돌아다니는 것과 같다.

‘살’은 프랑스어로 ‘chair’이고 형용사는 ‘charenl’이다. ‘육체적인’, ‘관능적인’ 이란 뜻이다. 온 우주가 살로 되어있다는 말은 온 우주는 ‘관능적’이라는 것. 다시 말해 온 우주는 성기다. 그리고 발기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그렇다. 세잔은 “세상이 ‘색’으로 되어있다”고 했고 메를로 퐁티는 “세상은 ‘살’로 되어있다”고 했다. ‘색’을 느끼고 ‘살’ 자체를 느끼는 것이 이 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세잔의 그림들

▲ 농부, 1891 ⓒ폴 세잔(Paul C?zanne)

이 그림에서 눈은 덕지덕지 여러 색깔로 표현되어 있다. 인상주의적 기법인데 그림 속 대상이 다양한 관계 속에서 주변의 사물들과 동일한 근원을 지닌 하나의 사물임을 드러낸다. 세잔의 인물화는 대부분 눈에 초점이 없다. 세잔은 사람의 주체성과 인격을 그리려 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존재하는 사물을 그리려했기 때문에 이런 표현방법을 썼다. 이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농부가 입고 있는 옷의 중량감이다. 이 부분에서 세잔이 인상주의를 극복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세잔은 인상주의에 대해 사물의 ‘옹골찬 사물성’을 다 사라지게 만든다고 평한다. 인상주의는 빛이 사물의 표면에 번뜩일 때 그 표면 자체를 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잔은 육중한 ‘사물성’을 그림 안에서 다시 회복시키려 한다.

▲ 과일접시가 있는 정물, 1879~1880 ⓒ폴 세잔(Paul C?zanne)

세잔을 대표하는 그림 중 하나이다. 이 그림은 행태를 왜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자세히 보면 과일 그림의 받침대가 오른쪽으로 치우친 느낌이 든다. 뭔가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오른쪽 반대편에 식탁보가 어지럽게 놓여 있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이에 대한 메를로 퐁티의 해석은 ‘보이지 않는 시선의 운동을 보이는 모습으로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과일그릇의 어색한 묘사와 널브러진 식탁보는 그림의 균형을 잡아준다. 색채의 표현도 독특하다. 흰색에는 녹색의 느낌이 남아있고 벽을 보면 녹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이런 표현은 벽 속에 갇혀있는 녹색을 해방시켜서 주변의 색이 주변의 다른 여러 대상물의 색에 와서 붙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색이 마치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색이 흘러넘친다고 할까. 이제 사과를 보자. 어둡게 채색된 부분이 있어서 무게와 깊이가 있어 보인다. 인상주의자들은 짙은 색을 쓰지 않았지만 세잔은 짙은 채색을 통해 사물의 무게와 깊이를 표현한다. 또 접시 위의 사과는 초록색과 붉은 빛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사물이 색들을 서로 주고받음을 표현한 것이다. 색깔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 실생활에서도 빛의 대비와 같은 효과로 인해 색이 서로 주고받는 것을 경험한다. 색깔은 따로 놀지 않는다. 하나의 색깔은 주변의 여러 색깔이 연동해서 하나의 색깔을 드러낸다. 이것이 실제로는 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세잔의 그림은 실제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끔 그렸다. 실제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지각할 때 이런 내적인 구조가 없이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내적인 구조를 눈에 보이게끔 반영하는 방식으로 그림에서 드러낸 것이다. 대단히 깊이 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에네시 호수, 1896 ⓒ폴 세잔(Paul C?zanne)

세잔은 색이 서로 연동하는 것을 표현하면서 그림 속 대상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왼쪽에 보이는 나무 색깔은 매우 짙다. 나뭇잎의 무성함을 검게 처리해서 깊이를 나타낸다. 그리고 원래 잎의 초록색은 바위에 맺혀 있다. 바위의 초록색과 무성한 잎을 표현한 검정색을 동시에 보게 된다. 재밌는 것은 나뭇가지가 뻗쳐서 산의 능선을 구성하고 있는 모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나무와 아주 멀리 있는 산을 결합시켜서 아주 묘한 이중성을 나타낸다. 이 그림의 느낌은 아주 고요해 보이지만 산의 모습과 바위 위에 있는 집의 모습이 호수 면에 수직으로 비추어져 있고 그 사이로 여러 색채들이 흐르고 있다. 고요하고 정적인 호수의 풍경이지만 그 속에서 색 감각의 리듬에 의한 운동성을 표현해 내고 있다.

▲ 앉아있는 소케, 1877 ⓒ폴 세잔(Paul C?zanne)

이 그림은 세잔의 회화에서 보이는 작가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그림이다.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색방울은 가구에 그려진 문양의 색과 같다. 이를 통해 색이라는 것의 속성은 한 사물의 색이 다른 사물에도 떨어진다는 색 감각의 반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 대수욕도, 1900~1905 ⓒ폴 세잔(Paul C?zanne)

‘대수욕도’는 처음 볼 때 약간 황당할 수 있는 그림이다. 왼쪽의 여자는 얼굴도 없는 듯하고 대체적으로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여자들의 얼굴색은 푸른빛이 감돌기도 하는데 이 푸른색은 위에 있는 나무에서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나무는 다시 검게 표현했다. 여체들에는 곳곳에 초록색이 보이는데. 이것은 숲 전체가 초록색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여체만 보아도 숲 속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세잔은 이 그림을 그리면서 이 주변의 것들을 다 그려 넣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림의 바깥은 전문용어로 ‘외화면’이라고 하는데 회화는 외화면이 작고 사진은 외화면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회화는 사진에 비해 독자성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세잔은 외화면을 상당히 이상한 방식으로 그렸다. 여체의 붉은 색은 무엇일까? 황토가 앞에 펼쳐져 있다는 표현일 것이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나무도 그렇고 색이 서로 ‘왔다갔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세잔의 ‘감각의 리듬’이라고 한다. 다시 그림을 보자. 맨 왼쪽의 여자가 가지고 있는 것은 수건이다. 수건과 연결되는 뒤의 희푸른 배경은 뒤의 것이 앞으로까지 나오는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보면 오른쪽의 비스듬한 나무와 대칭되는 왼쪽의 작은 나뭇가지는 그림의 균형을 이루어준다. 세잔의 그림은 구도는 정적으로 가지만 색의 리듬을 통해 동적인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 로브에서 본 생 빅토와르 산, 1904~1906 ⓒ폴 세잔(Paul C?zanne)

생 빅토와르 산을 그린 또 다른 그림을 보자. 이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풍경의 색이 여러 겹 붙어 있는 것이 보이는데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선의 구분이 보인다. 선을 일부러 그린 것이 아니라 배치하다보니까 선이 형성된 것처럼 보이게 그렸다. 마치 모자이크처럼 색깔들을 다 쪼갠다. 이것이 심해지면 피카소의 분석적 큐비즘(cubism)이 된다. 세잔은 세상에는 선이 없다고 했다. 입체물은 단면으로 보면 선이 분명 있다고 느껴지지만 몸을 틀어 보이면 시각적으로 선이라고 인지되던 것은 모두 면으로 흡수된다.

▲ 발리에르의 초상, 1906 ⓒ폴 세잔(Paul C?zanne)

이 그림에서는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의 선을 서로 겹치도록 겹겹이 그렸다. 세잔에게 있어 윤곽을 뚜렷하게 그린다는 것은 실제 윤곽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고 색을 선속에 잡아 가두는 것이다. 세잔 그림의 핵심은 사물이 서로 색깔을 주고받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고 어떤 형태 속에 있느냐에 따라 형태도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문명은 예술의 적

세잔은 이런 말을 했다. “문명은 예술의 적이다”

친구인 가스케가 세잔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묻는다. “당신은 모든 것을 잊어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풍경 앞에서 그토록 오래 준비하고 명상하는 까닭은 뭔가요?” 세잔이 답한다. “오, 그건 내가 더 이상 순수하지 않기 때문이야. 우리는 문명화되어 있어. 원하든 원치 안든 우린 고전적인 고민들에 직면해 있는 거지. 나는 그림을 통해 명철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학교라는 제도보다 더 가증스런 일은 무식을 사칭하는 이른바 야만인들이야. 오늘날엔 더 이상 무지해질 수가 없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문명의 이기에 적응하게 되어 있네. 그것을 부수어야 하네. 문명의 이기는 곧 예술의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지. (…) 이럴 때 나는 이제 막 그림을 시작한 사람처럼 되는 거야.”

문명은 도구적인 것이다. 도구적인 것은 개념적인 것이고 개념적인 것은 또 유용한 것이 된다. 이런 것들을 다 제거하고 사물을 바라보게 되면 사물이 순수한 감각적인 상태로 다가오게 되는데 세잔 자신도 문명의 때를 벗겨내기 힘들기 때문에 한참 바라보면서 그런 것이 없어지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인간과 사물의 일체 구분이 사라지게 되면서 색이 주고받는 색 자체의 세계가 느껴지면 그 때 막 그림을 시작한 사람처럼 된다는 것이다.

세잔은 우리에게 문명에 찌들어 시선자체가 얼마나 곪아 있는가를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세잔을 통해 예술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문명화된 눈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인간관계나 성생활도 훨씬도 감각적으로 순수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 삶도 순화 또는 거룩하게 ‘성화(聖化)’ 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조광제 교수는 이런 도식을 제시한다.감각적인 존재자체가 신성덩어리이라는 것이다. ‘신성(神聖)’은 도저히 출처를 알 수 없을 때 생긴다. 이유를 알 수 있으면 신성하지 않다. 메를로 퐁티가 세잔의 그림을 보면서 느낀 신비로움은 필연적 법칙성에 속박된 사물을 봤기 때문이 아니다. 거기에 현존하고 있는 사물의 참 존재를 본 것이다. 철저히 우연적인 존재는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이고 그 때의 존재는 근본적으로 ‘살’, ‘감각자체’, 감각과 사물이 전혀 구분되지 않는 ‘감각덩어리 자체’로서의 삶의 세계이다. 이것이 넘쳐나는 것에는 신성이 깔려있다. 이것을 엄폐하고 함몰시켜 깔고 앉아 있는 것이 문명이며 도시인의 생활이다. 자본주의의 상품화, 상품화폐경제가 우리를 더욱 찌들게 한다. 조광제 교수는 강의를 마치면서 이런 것들을 세잔을 통해서 벗겨냈으면 좋겠고 감각적 향유가 넘쳐나는 삶을 누구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아마도 세잔이 치열하게 그림을 그린 것과 메를로 퐁티가 ‘살존재론’의 철학을 전개한 이유도 조광제 교수가 남긴 말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후기: 진보성 (한철연 회원)

남근 이성 중심주의의 해체/윤지영 [9월 월례발표회]

?[2012년 9월 월례발표회]

 

논문 제목:??남근 이성 중심주의의 해체(d?construction du phallogocentrisme)
발표자:?윤지영(서울시립대) 회원

 

놀리면 상처받는다

후기: 한길석( 한철연 교육부장)

 

 

지난 9월 21일 (금) 5시 30분 한철연 제1세미나실에서는 윤지영 (서울 시립대) 선생의 “남근 이성 중심주의의 해체(d?construction du phallogocentrisme)”라는 논문을 가지고 월례발표회를 진행했다. 참석자는 7명이었는데 행사 관계자와 비관계자의 비율은 대략 50대 50이었다. 남녀 성비로 따지면 2대 5로 여성이 절대적으로 우세했다. 따라서 머릿수를 기준으로 볼 때 논전은 이미 남성팀의 필패. 갑자기 가족오락관의 공정한 성비가 부러워지는 상황이다.

윤지영 선생은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온지 얼마 안 된 분으로 고국에서 자신의 박사논문에 담은 생각을 학문 동지들과 나눌 수 없는 답답증에 시달려왔다고 한다. 그래서 찾은 자리가 한철연 월례 발표회인데, 월례 발표회는 원래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낀 지 오래라 더 답답해지지나 않았으려나? 이번 자리는 참석율을 높이려고 발표문을 미리 공개했으나 회원들은 여전히 공사다망한 관계로다가 대표 선수들만 입장하게 됐다. 순전히 주관적인 분석이지만 아무래도 제목이 너무 ‘쎄서’ 남성들의 기운이 승한 한철연에서는 초큼 거북살스러웠으려나? 무섭기두 하구. 평자 또한 제목에서부터 야코 죽고 들어갔다.

ⓒ박영미

이 발표문은 기존 철학자들의 생각을 충실히 읽어내고 해석하는 ‘독후감’류의 논문 형식에서 벗어나있었다. 자신의 생각과 언어로 서양 철학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전개한다는 점에서 한국 학계의 경직된 도제식 학문 태도에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발표문의 내용을 대략 살펴보자. 윤지영 선생의 글은 서구 전통 철학의 사유 방식에 대한 비판과 개조를 촉구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서 “춤추는 사유”를 제안한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서구의 주류 전통 철학은 동일성 사유 방식을 바탕으로 하여 모든 것을 이분법적 위계 관계로 분류함으로써 전개되었다. 이 글은 주류 철학의 이분법적 위계 관계가 “새로운 개념화” 전략에 의해 비판적으로 구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을 발표자는 “인식론적 백색화 작업(blanchitude ?pist?mique), 발기성 로고스(logos erectile), 전 방위적 시점의 무와 빈칸으로서의 팔루스 ( phallus comme vide en surplomb), 전율하는 공허와 무로서의 언어 양식(langage comme vide vibrant), 사건성으로서의 의미화 작업(sens-?v?nement), 유희하는 몸(corps-joueur),얼굴 형상의 탈구(d?visag?isation),주체의 유동화 (fluctuation subjectivante), 이멘Hymen 경제학의 해체 (d?shym?nisation), 하이브리드성(hybridit?)이란 개념 창출 작업” 등으로 나열하면서 글을 전개하고 있다. 이 모든 용어들은 거의 윤지영 선생 본인이 만들어 낸 것들이다.

발표자는 서구 철학적 인식 주체가 자랑하는 특유의 객관성 및 보편성이 사실은 “몸으로 상징되는 정념, 충동, 리비도, 정동 에너지들을 지우고 은폐하는 행위”로서의 백색화 작업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백색의 이면에는 다양한 색깔의 질적 속성들이 내재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면적 현실을 폭로함으로써 서구 중심적 인식틀을 깨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발표자는 전망한다.

또한 발표자는 전통 철학에서 강조하는 로고스가 유동적 사유를 제한한다고 비판한다. 유연성이 결여된 사유는 자신의 관점을 폭력적으로 관철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로고스의 폭력성을 “발기성 로고스”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고 있다. 발표자는 발기성 로고스의 기운이 여성적인 것과의 비판적 대면을 통해 상징적으로 살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 여성적인 것은 “여성의 본질성과 실체성을 상정하는 토대주의적 관점에서 발로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아마도 그것은 발기성 로고스와의 비판적 대결을 통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일 듯하다.

서구 철학은 자기의 질적 특색을 지우는 백색화 작업을 통해 시점의 내용성을 비움으로써 모든 시점을 아우르는 전방위적인, 내용 없는 보편적 형식으로서의 시점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방위적 시점의 무(vide en surplomb)”의 시점은 “타자를 일방적으로 포섭, 축소, 환원하고자” 한다. 발표자는 이 폭력성으로부터의 구제가 “전율하는 무로서의 언어”를 창출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말한다. “남근 중심적 언어가 질서를 부여하고 판별, 분류하는 판관으로서의 언어였다면, 새로운 언어 형식은 의미의 실험성을 재시도하는 놀이의 장이다.” 구제는 끊임없이 전개되는 비판적 언어 놀이 과정에서 그때그때마다 경험되는 순간이다.

ⓒ박영미

논평자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이 글은 동일성 논리에 기초하고 있는 위계적 사유의 폭력이 서구 철학의 전통을 지배하고 있음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고 있다. 아쉬운 점은 서구 철학 전통에 대한 비판적 독해의 얼개만을 간략하게 나열했다는 데에 있다. 차라리 발표자가 제시한 여러 가지 구제적 개념 중 어느 하나에 집중해서 논의를 전개했다면 좀 더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지 않았는가 싶다. 예를 들어 인식론적 백색화의 맨얼굴을 계보학적 작업을 통해 폭로한다든가, 남근적 사유가 생활세계의 근저에 어떻게 정착되고 내밀하게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등의 논의 말이다. 물론 이 글이 완성된 단편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장편 저술을 위해 아이디어를 정리한 것이라면 평자의 이러한 염려는 괜한 잔소리일 뿐이겠다.

또 하나 해묵은 의문을 들어보겠다. ‘인식이 과연 실천을 담보해주는가’라는 것이다. 분명히 아는 것은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지만, 문득 큰 깨달음을 얻는 경지에 이른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실천적 개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구의 전통적 사유에 대항해 비판적 인식의 유희를 펼치는 것은 사유의 타성을 교정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과 해체의 유희는 유희로 끝나버릴 수 있다. 해체놀이의 현장에서는 법열에 전율할 수는 있지만, 놀이터에서 집으로 돌아와 이 깨달음의 기쁨을 지속시키기란 쉽지 않다. 해체적 사유의 유희라는 인식론적 전략은 개인에게는 상당한 혁명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개인적 앎의 혁명을 이웃과 함께하고 사회로 외화시키는 것은 유희적 사유로서의 인식 전략만으로는 힘에 부쳐 보인다. “주류적 인식 틀이 가진 한계를 날카로이 드러내며 이에 저항하는 정치적 인식론”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인식의 정치’를 전개하는 우리는 언제나 ‘인식의 정치’ 너머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발표자는 이 글이 박사논문을 축약한 것이어서 발표문 자체에는 정밀한 논의 보다는 문제 의식과 기본 입장을 전개하는 데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적 상황에서의 ‘인식론적 백색화 작업’에 대한 계보학적 연구가 진행된다면 좋겠다는 제안에 대해 발표자는 긍정적으로 반응해줬다. 말놀이적 해체작업은 인식론적 작업에 기운 것은 아닌가라는 논평자의 비판에 대해 발표자는 말놀이적 해체작업 자체가 이미 실천적 행위이기 때문에 인식론적 작업에 머무르지 않을 수 있다는 입장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논평자는 여전히 이런 입장의 실효성을 미심쩍어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합리적 담론 형식이 지니고 있는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과도한 신뢰에 말놀이적 해체작업으로 대항하는 것은 토론합리주의에 대한 메타비판으로서 상당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체 놀이가 기대하는 정치적 효과는 말놀이적 해체 작업을 통해서는 직접적으로 산출될 수는 없을 듯하다.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뭥미’라든가 ‘잘났네, 그래서 어쩌라고?’ 식의 어리둥절 반 비아냥 반의 반응을 야기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앞보다는 뒤의 반응이 정치적으로는 상당한 해악을 가져올 수 있다. 말놀이의 골계가 내적 성찰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비웃음으로 경험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는 것이다. 말놀이라는 해체적 작업이 인식적 차원에서의 남근은 해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의지적 차원의 남근은 비합리적이게도 더욱 곤두서게 만들 수도 있다. 너무 지나친 비관주의가 아니냐고? 하지만 남근중심주의는 단지 생각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결코 비관주의라고만 볼 수는 없다. 남근성은 인간의 정신 속에 오래도록 자리하여 사회 제도, 개인의 습벽으로 굳어졌다. 나쁜 습관은 안다고 해서 고쳐지지 않는다. 새로운 인식과 그에 걸맞는 대안적 행위의 지속적 실천이 뒤따라야 고쳐질까 말까하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사회와 개인의 무의식 속에 속속들이 깃든 저 남근성의 업장이 의식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말놀이로 과연 씻어질까? 정리하자면, 말놀이적 해체 작업이 신선하기는 해도 그것을 전가의 보도로 삼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이 논평자의 바램이다. 오늘의 교훈, 놀리면 상처받는다.

 

 

안산의 헤겔; 이방인과 소통, 이해, 그리고 연대[한철연 교육강좌]-③

[한철연 교육강좌]-③

3강 안산의 헤겔; 이방인과 소통, 이해, 그리고 연대

강사: 이정은 (연세대 외래교수)
후기: 한길석(한철연 교육분과장)

 

한철연 교육부 강좌가 어느덧 세 번째에 접어들었다. 이번 강좌는 ‘안산의 헤겔; 이방인과 소통, 이해, 그리고 연대’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졌다. 강의에는 열 여섯 명 남짓의 수강생들이 참여하였다.

이정은 (연세대 외래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강좌를 맡은 이정은 교수는 한국 사회가 문화적 소수자와 다수자 간의 문화 충돌이 일어나는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남북 분단에서 비롯된 새터민 문제도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대부분의 새터민은 이념에 대한 반발보다는 생계를 이유로 이주를 감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지녀왔던 정체성(이념, 가치관, 생활양식 등)이 폄훼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서구에서 다문화주의는 근대 국민(민족)국가가 등장한 이후 발생한다. 새로 재편된 근대국가의 틀 속에서 새로운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단일 언어에 의한 국민 교육이 요구됐다. 획일적 국민 교육은 사회통합에는 기여했지만, 소수 집단의 문화가 훼손되는 현상을 낳았다. 결국 다문화주의는 소수 문화의 존중이라는 문제 의식에서 형성된 것이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논의는 미국, 호주, 캐나다 등의 이민국가들에서 활발하다. 이들 국가에서는 다양한 문화 집단의 정체성을 권리 보호의 문제로 변환시켰다. 자유주의적 정치철학에 기초하고 있는 이러한 입장은 각 집단에 고유한 문화적 선택권을 보호해주는 제도적 여건을 제공한다는 이점을 지닌다. 하지만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는 문화적 지배권을 쥐고 있는 다수 집단이 소수자 문화를 관용적으로 포용함으로써 마침내 동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또한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는 의도하지 않게 소수자들의 처지를 불리하게 만들기도 한다. 소수 문화자가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자유롭게 선택하게 되면, 중심을 이루고 있는 다수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 때문에 최근 서유럽에서는 상호문화주의적 입장이 등장하고 있다.

상호문화주의는 1990년대 초 독일 및 오스트리아 등의 서유럽 선진국에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견해이다. 이들 국가는 이민국가가 아니라 단일 민족국가적 특성을 강조하면서 이민자 정착에 대한 제도적 조치를 회피해왔던 다문화주의 정책의 후진국이었다. 그렇지만 이민자 2세, 3세 문제가 심각해지자 이들 국가에서도 다문화주의적 정책이 모색되고 있다. 그러나 독일 등의 연구자들은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보다는 상호문화주의적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상호문화주의는 각 집단이 보유한 문화의 동등한 위치를 강조한다. 이 입장에는 주도 문화 및 중심 문화라는 관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주도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동화를 고려하지 않는다. 물론 상호문화주의도 문화 집단 간의 통일을 지향한다. 하지만 이 통일은 각 문화 집단의 고유성을 인정하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문화적 통일은 문화 집단 간의 긴장과 갈등을 함축하는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상호문화주의가 지향하는 문화적 통일은 헤겔의 변증법적 통일의 형식을 활용하고 있다. 물론 헤겔 철학 내부에는, 특히 그의 역사철학에는 오리엔탈리즘의 흔적이 강하다. 하지만 헤겔 철학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변증법적 사고 형식이 문화적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강렬한 영감을 제공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헤겔은 자기 이해는 타자 이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이러한 발상은 상호문화적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각 문화 집단은 이방인을 통해 자신의 문화를 이해하게 되고, 이방의 문화와 자기 문화 간의 갈등적 상호작용 속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게 된다. 이상과 같은 면에서 볼 때 헤겔의 철학은 오늘날 제기되는 문화적 다원주의 문제의 해결에 일정한 의미를 부여해준다고 할 수 있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3강 후기

안산에 헤겔이 없었습니다. 헤겔에 대한 좀 더 깊은 철학적 강의였으면 좋았겠다 싶습니다. 헤겔 이론과 외국인 노동자 간의 관계가 조금 끼워맞춘 듯해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설명해 주시려다 보니 몇 부분 빠진 내용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열정적인 강의 무척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상호문화 교육이라는 언뜻 보면 이상적이어 보이는 이론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일의 선례를 통해 이 이론을 실제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문화적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 고민들로 연결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덧 우리 곁에 다가온 다른 피부색, 다른 언어의 이방인들이 단순한 ‘타인’이 아닌, 우리 외부의 또 다른 ‘우리’일 수 있다는 생각의 단초를 얻었습니다.

다문화국가(이민국가)의 현 사회상을 잘 짚어줘서 좋았으나 문제 의식을 가질 수 있는 현실 측면이 이야기가 안 돼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헤겔의 ‘변증법’이 이렇게까지 현실 문제의 해결 방안의 이론적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다문화주의의 한계를 지적한 점이 큰 수확이다. 상호문화주의라는 개념이 반갑다.

매 강의가 1시간 30분으로 소화되기에는 다소 부족한 듯 합니다. 2시간 강의에 중간 10분 휴식하는 걸로 하는 것이 좋을 듯.

한국의 다문화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강의였음.

내실있는 강연 잘 들었습니다. 이주민 노동자 자녀가 빈곤의 악순환 당하는 일이 가슴 아픕니다.

1, 2강에 비해 이론적인 측면의 접근을 하셨던 것 같은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이러한 방향의 강의가 도움되는 것 같습니다.

착취의 공범: 돈벌이가 시원치 않은 마르크스 [한철연 교육강좌]-②

[한철연 교육강좌]-②

착취의 공범: 돈벌이가 시원치 않은 마르크스

강사: 이재유(건국대 외래교수)
후기: 한길석(한철연 교육부장)

 

 

지난 4월 1일 한철연 교육부의 두 번째 강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첫 번째 강좌보다 적었지만 첫 날보다는 열띤 분위기로 강의 및 토론이 진행되었다. 두 번째 강좌는 이재유 회원(건국대 외래교수)의 “착취의 공범: 돈벌이가 시원치 않은 마르크스”였다. 강의 초반에는 비교적 가라앉은 분위기로 시작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강의의 열의가 살아나고 있었다.

이재유 교수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그의 강의는 ‘communism’의 해석 문제에서 시작했다. 흔히 이 용어를 ‘공산주의’로 번역하는데, 이 번역 용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 본다면 공공을 위해 공동으로 생산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에도 공산주의적 방식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동기는 다르지만 겉으로만 본다면- 모두를 위해 공동으로 생산하는 과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communism’을 번역하지 않고 ‘코뮤니즘’으로 표기하자는 제안도 있다.

마르크스의 의도에서 보자면 공산주의 사회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연합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생계가 자본의 논리에 구속돼 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구속에서 해방된 사회를 공산주의 사회라고 규정했다. 그에게 공산주의 사회란 모든 개인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여건을 공동으로 생산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자유가 핵심 문제로 부각된다. 마르크스에게 자유란 누구도 착취당하지 않으며 착취하지도 않는 사회를 의미한다. 이런 자유 상태에서 맺어지는 인간 관계는 수평적인 평등 관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마르크스에게 자유와 평등은 대립적 관계로 제시되는 게 아니라 동근원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는 노동을 통해 자유와 평등을 구현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노동이란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누리기 위해 하는 모든 활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공산주의는 억압된 노동의 해방을 지향하면서 여러 활동과 제도를 제안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착취와 억압의 요소가 뿌리 박혀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공산주의적 체제와 제도가 완비된다 하더라도, 착취와 억압의 생활 양식을 바꾸지 않는 한 공산주의적 이상은 실현되지 않는다.

이재유 회원은 이러한 현실의 예로 가정 내에 뿌리 박혀있는 여성 착취의 문제를 제시했다. 가정 내에 남성이 여성의 노동을 착취하는 형태가 지속되는 한 우리의 내면에 뿌리박힌 착취 의식은 사라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착취와 억압의 삶은 가정 영역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 곳곳에 박혀 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우리는 일상 생활 영역에서의 착취를 제거하는 활동에 나서야 한다. 가정 내의 여성 착취 문제를 해결하고, 누군가의 희생을 간접적으로 강요하게 되는 생활 구조를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고 기본 소득을 지급한다고 해서 착취의 생활 문화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높은 임금과 기본 소득의 취득은 이웃에 대한 연대감 대신 사적 삶의 풍요를 지향하는 욕망을 키운다. 이런 사회 운동은 공적 연대감 대신 오히려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의식을 조장한다.

강의 이후 30분 간 토론을 한 후 질의 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수강생들은 다양한 질문을 제기하면서 고민의 수준을 높이고 있었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수강생 후기

자본주의 모순에만 집중하지 말고 현실적인 공산주의 이행 방안, 공산주의의 문제점 등에 대한 언급이 이루어졌으면 좋았을 것 같다.

특정 철학자의 사상과 이념을 소개하는 강의를 기대했는데 그것보다는 강연자의 해석에 충실한 강의였던 것 같다. 이론서를 읽고 싶은 충동을 만들어 준다.

쉽게 풀어 설명해준 강의였다.

늦어서 제대로 못들었지만 집중도는 최고였던 것 같습니다.

자유로운 각 개인들이 연합하는 사회를 만들려면 민주노총이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마르크스에 대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이루어지는 착취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착취를 같이 생각해봐야 한다는 교훈적인 강의였다.

일요일 마다 대형 교회에서 하듯이 오늘과 같은 강의로 전국에서 철학 강의가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램!

일반론 위주의 강의로 진행되어 치열한 고민과 토론 거리를 주는데에는 미흡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대에 관한 자각은 어려운 문제라 여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듯 하여 희망을 갖는다.

계급 모순이 풀리면, 성적 모순도 풀릴 것이라고 하는 주장들을 이제까지 들어왔는데 이번 강의는 그것을 뒤집은 내용이어서 매우 흥미로웠고 공감도 많이 했다.

가사노동의 생산 노동 비용이 임금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이 페미니즘 운동의 단초가 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생활 속에서 코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노력과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맑스에 대한 또다른 관점을 보여준 강의였다. 강의와 토론, 질의 응답 모두 즐거웠다.

사회 개혁에 대한 필요성은 절감하지만 그것이 공산주의를 통해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긴 하다. 실패한 공산주의 국가들의 사례들이 있는 만큼 더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철학의 현실적 접근이었던 것 같습니다.

 

들뢰즈의 행복론: 행복한 인생의 조건[한철연 교육강좌]-①

[한철연 교육강좌]-①

들뢰즈의 행복론: 행복한 인생의 조건

강사: 이성백(서울시립대학 교수)
후기: 한 길 석(한철연 교육분과장)

 

 

새 봄과 더불어 한철연 교육부 강좌가 시작되었다. 2012년 3월 25일 “들뢰즈의 행복론: 행복한 인생의 조건”이라는 주제로 시작된 한철연 교육부 강좌는 총 25명의 수강생과 더불어 힘차게 출발했다. 강의 전 김성민 회장의 인사말과 이순웅 연구협력위원장의 소개말 등으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었다. 25명의 수강생들은 제비뽑기를 통해 6개의 조로 나뉘었다.

수강생들의 구성은 다양했다. 연령은 20대에서 60대까지, 직업은 무직자, 대학생, 대학원생, 사서, 시민 활동가, 직장인, 프로그래머 등의 분포를 보였다. 이전 교육부 강좌를 이수한 이들도 몇몇 있었다.

강의는 예정 시간보다 30분 늦은 2시 30분에 시작되었다. 첫 번째 강의는 이성백 서울 시립대 교수의 행복론이었다. 이성백 교수는 서양 철학 전통에서 전개한 행복 개념에 대한 비판으로 논의를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서양 철학의 전통에서 행복은 이성적 삶을 추구하면서 성취되는 것으로 가르쳐 왔다고 한다. 이는 행복의 성취 과정에서 감성적 욕망을 배제하는 경향을 초래했다. 스토아 학파의 ‘아파테이아’나 에피쿠로스 학파의 ‘아타락시아’ 개념도 따지고 보면 모두 욕망을 절제하고 이성적 삶을 추구함으로써 행복에 이를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경향은 철학적 행복론에서 합리주의적 행복론이 지배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성백 서울시립대 교수 ⓒ조배준 한철연 회원

그러나 들뢰즈의 행복론은 감성과 욕망의 경험에 주목한다. 행복은 감성과 욕망을 경험하는 강도에 달려있으며, 행복은 소망하던 욕망이 충족되는 강렬한 순간의 체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체험을 풍부히 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능력과 기술의 함양이 필요하다고 한다. 푸코식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다양한 욕구들이 아름답게 피어오를 수 있게 하는 미학적 존재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욕구를 삶 속에서 아름답게 조형하는 미학적 존재의 기술이 아무리 탁월하게 갖춰진다고 해서 우리 모두의 삶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불안정은 개인의 행복한 삶을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의 행복은 사회적 행복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사회적 행복을 구현시키는 방법 중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혁명이라는 사건은 가장 극적이다. 혁명은 개인의 감성적 요구를 가장 강렬하게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혁명은 기존의 답답하고 억압적인 틀을 깨고 새로운 사회적 활력이 용솟음치도록 만든다. 이 순간 각 개인은 자신의 욕망이 충족되고 있음을 강렬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강의가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후, 각 조는 강의에 관련한 조별 토론을 30여 분 간 진행했다. 염려와는 달리 수강생들은 열심히 토론했으며, 토론 이후 이어진 질의 및 응답 시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6시 무렵, 예정된 프로그램을 마치고 첫 날을 기념한 뒷풀이 자리로 이동했으며, 몇몇은 두 번째 뒷풀이까지 자리를 함께 했다.

 

ⓒ조배준 한철연 회원

이것은 누구의 구두입니까? [청춘의 고전 시즌2]-⑪

[청춘의 고전 시즌2 /그림으로 읽는 철학] – ⑪

?? 일시: 2012. 8. 25.?(홍대입구 상상마당 강의실)

이것은 누구의 구두입니까?

– 반 고흐의 <구두>와 하이데거의 『예술작품의 근원』-
?
강연: 서영화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철학’과 ‘예술’ 이 두 영역은 인간이 역사 행위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가장 ‘문화화’된 창조성의 산물이다. 이 두 영역의 활동을 통해 세상은 드러나고 해석되며 지속된다. 그렇다면 철학과 예술은 서로 어떤 관계이고 철학은 예술을 어떻게 보는가? 보이고 감각하는 이 세계의 것들을 예술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예술적 감성과 세계를 자신의 눈으로 해석해내고 설명하려는 이성적 사유는 언뜻 보면 닮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아주 달라 보인다. 이 차이가 이 둘 사이의 얘깃거리가 된다.

열한 번째 시간에는 ‘철학자가 이해하고 생각한 예술’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철학자들이 이해했던 예술에 대한 여러 개념을 기반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선대 철학에 대한 물음과 극복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양 철학사에서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극복 양상과 하이데거의 예술론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강의를 맡은 서영화 교수는 하이데거를 소개하면서 하이데거가 실존주의자, 나치 부역자, 신비주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는데, 전적으로 맞거나 부분적으로 맞는 말일 수 있음을 주지하게 하면서 하이데거의 철학은 서양철학사가 서구 형이상학과의 대결의 역사였다는 단서를 전제해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하이데거는 철학사 전체의 핵심 근거에 대해 문제시하고, 그러한 근거 자체를 ‘근거 없는(grundlos) 것’으로 만드는 사상가”라고 하면서 이제까지 자명한 것을 수수께끼로 만들어 버리는 이러한 문제의식의 핵심에는 ‘철학의 종말’을 선언했고 대안으로서 예술의 역할에 대해 얘기한 하이데거의 사상이 자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철학과 예술의 대결 : ’철학의 종말’과 대안으로서의 예술

하이데거가 말한 ‘철학의 종말’은 철학 일반의 종말이 아니다. ‘형이상학의 종말’을 말한다. 서영화 교수는 하이데거의 특징에 대해 “서구 형이상학의 사유 전통을 해체했다는 것이 다른 철학자와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이데거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니체와 헤겔까지의 철학을 한 주름으로 꿰어버리고 이것이 서양의 전통적 틀이라고 규정하면서 하이데거 자신은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고 한다.

고대부터 철학자들은 ‘철학’과 ‘예술’이라는 두 영역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제시했는데 서영화 교수는 기본적으로 플라톤-니체-헤겔-하이데거의 순으로 큰 축을 설정한다. 단적으로 설명하면 플라톤은으로 보았고, 니체는을 역설했다. 그러나 헤겔에 가서는 다시으로 규정된다. 이후 하이데거는 다시 철학의 종말을 주장하고 철학의 자리에 예술을 등장시킨다.

플라톤에게 있어 예술은 하나의 가상을 만드는 것이고, 철학은 이론적 지식을 통해 참된 것에 대한 앎에 도달하게 만들어 준다. 철학은 참된 ‘이데아(idea)’를 이끌어주는 것으로 수학-기하학은 이데아의 앎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플라톤의 경우 이데아는 생성-소멸의 과정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고 감각적 경험세계의 생성-소멸에는 참된 것이 없다. 플라톤에게 예술이란 이데아에 대한 2차적인 모방이며 ‘오디세이아(odysseia)’와 ‘일리아드(Iliad)’처럼 광폭하고 음란한 신들에 대한 묘사와 현실 속의 인간을 운명에 대해 비탄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특히 플라톤은 교육에 있어 ‘철학과 예술 간의 대결’을 선언하면서 기존 공동체 내에서 교육을 담당했던 예술을 대신해 철학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반해 니체는 플라톤적 진리관은 인간 생의 보전을 위한 가치로써 삶의 지지대나 의지처로 파악한다. 니체는 생동하는 현실세계를 중심으로 1차적 관계를 맺는 것이 진리이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예술이라고 본다. 니체의 예술론은 세계를 지배해 오던 형이상학적 가치가 전적으로 무가치한 것으로 인식될 때(심연 속으로 몰락;니힐리즘의 도래) 비로소 인간에게 새로운 의지가 발현되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니체에게 있어 존재자를 존재자이도록 하는 것은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will to power)’이고 예술은 이것을 가장 투명하게 드러내어 변화무쌍한 현실을 왜곡하지 않고 수용할 수 있는 최고의 인식형태이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니체 또한 형이상학자로 이해한다. 니체의 진리관은 분명 플라톤의 개념을 전도한 것이지만 니체에게는 ‘힘에의 의지’의 강화가 모든 생명체들의 본질이 된다. 이것을 하이데거가 볼 때는 플라톤의 이데아 성격과 같다는 것. 서영화 교수는 “니체의 ‘힘에의 의지’가 생성하고 소멸하는 것 바깥의 무시간적이고 불변적인 것을 이해해야만 인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이데거는 니체도 형이상학자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부연한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예술작품도 ‘영원히 정지한 시간성’과 ‘불변성’의 방식을 가지고 만들어졌다면 이것은 형이상학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의 종말을 선언하면서 전통적으로 존재자를 ‘형상+질료’의 조합으로 규정하는 것은 개별사물을 이분법으로 설명하는 태도라고 비판한다. 이 때 전통적 규정에서 중세까지 형상의 자리를 차지하던 것은 신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철학의 근본 물음인 ‘존재자로서의 존재자’라는 존재자의 원인과 본질의 탐구 끝에는 결국 신을 설정할 수밖에 없던 사실이 존재하고 이를 참으로써 보증하는 것이 논리학의 역할이었다. 이 역할을 논리학적 방식 보다 예술의 방식을 통해 더 잘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하이데거의 입장이다. 하이데거에게 예술의 필요성은 형이상학적 틀과 논리학의 만남으로서 서구 형이상학 전체를 지배해온 철학이 종말을 고해야할 필요충분조건이었다.

예술의 본질에 대한 물음

1) 사물과 도구, 그리고 예술작품

▲ 샘(Fountain), 1917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위 그림은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변기라고 불리는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이라는 작품이다. 1917년 뉴욕의 전시회에서 전시되었지만 전시회장 밖에서 전시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프랑스 퐁피두센터 현대미술관에 소장 전시되어 있으며, 37억 달러를 호가하는 예술작품이 되었다. 여기서 생기는 질문: 기성품을 예술가가 일상적 환경이나 장소에서 빼내와 예술작품이라 선언하면, 예술작품이 되는가? 무엇이 예술작품을 예술작품이라 규정할 수 있도록 하는가? 과연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는 어디인가? 이런 의문들을 정리해보면 아마 ‘예술작품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본질은 예술가에게 있고 예술가의 본질은 작품에 있으며 작품의 본질은 다시 예술에 있다’라는 문구처럼 예술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 순환에 빠진다는 것을 하이데거는 문제 삼는다.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작품은 예술가 자신이 활동한 결과이다. 그러나 예술가가 예술가일 수 있는 것은 예술작품을 통해서다. 형이상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물이 사물이도록 하는 본질에 대한 물음과 규정에 있다. 하이데거의 경우 ‘사물’을 다른 말로 하면 ‘존재자’라고 할 수 있는데 존재자의 본질을 형이상학적 사유 전통에서 찾기 거부하는 하이데거는 예술의 본질과 근원에 대한 물음을 실제 예술작품으로부터 묻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물인가? 단적으로 말하면 무(無)가 아닌 존재자 일반이 사물이다. 그러나 형이상학의 사유 전통 내에서 사물에 대한 해석은 다르다. 서영화 교수는 하이데거가 이해한 사물에 대한 조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형이상학 전체를 지배하는 ‘형상+질료’의 결합 틀이 예술이론과 미학의 개념 도식이 되고 이 개념 도식이 근대 이후 형상의 자리에 인간이 들어오면서 형성된 형이상학적 ‘주체-개체’의 도식과 만나 서구 사회에서 사물을 설명하는 절대적인 ‘개념역학’이 된다”는 것. 이에 의해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존재하는 것을 도구로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형상+질료’ 결합 틀의 근원은 사물의 본질이 ‘도구적 용도성’에 있다는 견해이다. 이 지배하에 있는, 예를 들면 항아리ㆍ망치ㆍ신발과 같은 존재자는 어떤 것을 위해 제작된 산물로서 사물과 작품 간의 고유한 중간 위치에 있다.

문제는 서구 사회가 이 도구 존재자에 대한 이해 틀을 모든 존재자를 이해하기 위한 근본 틀로 간주하고 있다는데 있다. 하이데거는 존재하는 것 자체(사물)를 도구로 이해하는 것을 ‘사물에 대한 습격’이라 명명했고 이 ‘도구적 용도성’을 벗겨낸 것을 ‘사물’이라고 한다. 도구는 유용한 것으로 친숙하고 사물은 낯선 것이 되면서 ‘폐쇄성’을 가지고 ‘은폐’된다.

2) 고흐의 신발 도구와 용도성의 본질

하이데거가 『예술작품의 근원』에서 분석하는 “고흐의 신발(ein Paar Bauernschuhe von Gogh)”은 사물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도구에 대한 분석이다. 하이데거의 전략은 형이상학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 형이상학의 파괴를 도모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물=도구’라는 인식 틀에 대해 사물이 진정 무엇인지 알려주겠다는 의도이다.

▲ 신발(A Pair of Shoes), 1886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하이데거에 의하면 이 작품에서 도구 존재가 참으로 무엇인지가 드러난다고 한다. 작품 ‘신발’에 대한 하이데거의 감상은 축약하면 이렇다.

“신어서 틀어지고 헤어진 신발 안쪽의 어둡게 열려진 틈 속에서 노동의 고단함이 보이고 신발 도구 속에서 거친 바람이 부는 들녘의 밭고랑을 천천히 걷는 완고함이 보인다”ㆍ”신발을 통해 생계를 해결해야하는 농부의 근심과 들녘에 나가 편하게 일할 수 있다는 안도감, 혹은 출산과 죽음 앞에서 나타나는 초조와 전율이 보인다”

신발 도구 속에서 대지와 농부의 세계가 함께 보인다는 것인데, 하이데거는 이 때 재현의 대상인 신발은 어느 특정한 누구의 신발이 아니고 도구 연관 전체로서 ‘농부의 세계’를 드러내준다고 한다. 세계를 보는 농부의 시선과 삶의 지향성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이것은 농부가 신발을 신는 일상 행위에서도 나타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이 때 도구가 갖는 용도성의 본질은 ‘신뢰성’에 있다. 누군가 신발을 신었는데 그야말로 아주 편해서 신발이 신발 역할을 잘 할 때가 가장 신발다운 때이고 이렇게 되면 신발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다른 일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신발을 신었다는 걸 의식하지 못하고 신발이 사라져버리는 그 지점에서 ‘신뢰성’을 발견할 수 있다.

서영화 교수는 “망치도 더 이상 망치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가 망치가 가장 망치다울 때이다. 회화작품을 그리는 도구도 마찬가지인데 하이데거는 도구를 하나의 관찰대상으로 삼게 되면 도구답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 때는 ①도구가 고장 났을 때, ②도구를 과학적 관찰대상으로 삼을 때”이다. 하이데거의 말로 이어나가보면 “도구가 갖는 용도성의 본질은 1차적으로 신뢰성에 있고 신뢰성의 특징은 평소에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 신뢰성이 드러나는 순간은 찰나의 순간이다. 플라톤적 진리처럼 신발의 본질은 신발의 이데아계에 있어서, 시공을 초월하여 절대 불변하는 객관적인 ‘참’인 진리가 아니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참이 아닐 수도 있다. 예술작품은 ‘존재자가 참으로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열어 보여준다. 고흐의 그림에서 신발은 일상적으로 보았던 곳과는 다른 곳에 위치한다. 즉 작품 안에서 작품 존재로 있게 되는데 이 때 우리가 평소에는 인식할 수 없던 용도성의 본질인 신뢰성을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도구 존재가 참으로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예술작품이라고 한 것이다. 본질을 은폐하려는 사물의 성향을 풀어헤쳐서 보여주는 것이 예술의 기능이고 예술작품 속에서 진리가 생성된다고 본다.

작품과 진리

하이데거에 의하면 예술작품은 “세계와 대지의 투쟁을 일으키는 것(선동, 사주)”이고 예술가는 작품 안에서 세계와 대지가 투쟁하는 것을 격돌시키는 역할을 하며 그 자리에 촉매처럼 위치해 있다. ‘투쟁’이란 세계와 대지를 긴밀하게 공속(共屬)시키는 친밀한 통일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영화 교수는 하이데거가 말한 ‘세계’와 ‘대지’의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계’란 고흐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농부의 세계처럼 삶이 결정되는 순간 그 자리가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곳이 된다. ‘대지’는 말하자면 인간이 체류하는 고향과 같은 거처로서 하이데거는 대지를 질료와 같은 개념으로 쓴다. 이른바 ‘스스로 그러한(自然)’ 질료적 성격을 보유하고 있는 사물 고유의 성향이다. 이것은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태도에서는 사라진다. 그러나 예술작품은 대지의 성격, 질료를 사라지게 하지 않고 비로소 그것을 최초로 솟아나게 한다. 고흐의 회화작품에서 ‘농부의 세계’와 ‘대지’는 ‘개방’되면서 하나의 세계를 열어 보이고, 세계가 대지 위에 근거하는 것임을 드러내 보인다.

작품 안에서 농부의 세계와 농부가 딛고 살아가는 땅-대지가 신발 안에서 투쟁하게 만드는 것이 고흐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진리는 무시간적이고 불변하는 것이 아니며 진리를 생겨나게 하는 것은 예술가의 몫이 아니다. 예술가는 작품 안에서 세계와 대지를 서로 격돌하게 만들뿐이고 그것의 결과가 진리의 생성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작품 안에서 세계와 대지의 내밀한 통일과 투쟁의 격돌 속에서 진리가 생겨난다”고 말할 수 있다.

서영화 교수는 세계와 대지의 투쟁의 격돌로서 이해할 수 있는 예술작품의 사례로 통일신라시대의 ‘석굴암’을 든다. “일제강점기 석굴암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 이후 지금까지 최초에 조성되었던 당시의 본 모습을 잃어버렸다. 현재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결로(結露)현상인데 애초에는 본존불이 앉은 바위 밑으로 감로수라는 샘물이 흘러 자연적으로 결로현상을 막을 수가 있었다. 과거에는 석굴암이 감로수를 차단하지 않고, 화강암이라는 질료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예술작품이었던 것이다. 인간과 절대자가 만나는 장인 석굴암은 통일신라시대 당시 신(神)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드러나는 세계에 대한 이해와 석굴이라는 대지가 투쟁의 격돌로서 드러나는 예술작품이었다”

진리와 예술

하이데거는 보이는 대상 A자체가 참으로 드러나야지만 보는 주체 B도 A를 참으로 알 수 있다고 했다. 개념화해서 말하면, 참된 인식은 이성적인 표상 능력의 결과가 아니라 사물 자체가 스스로 발산하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사물의 ‘개방력’이다. 사물이 그 자체로 드러나 있어야 예술작품에서도 드러난다는 것. 사물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은 작품 안에서 ‘사물의 세계’와 ‘사물이 속하는 대지’가 충돌한 결과가 ‘참으로 그렇게 있다’는 사실로 귀결된다. 사물 자체가 ‘개방력’을 가지고 있고 이 개방성이 열릴 때 우리는 존재자를 그 존재자 자체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세계와 대지의 투쟁이 내적인 통일 속에서 석굴암의 본존불상처럼 형태로 확립되어 있을 때 감상자는 “그것이 없지 않고 있다”는 사실 앞에 선다. 즉 존재자의 개방성이라는 적막한 충격 앞에 세워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서 이제까지 습관적으로 익숙해 있던 것으로 부터 벗어나게 된다.

고흐의 신발 그림을 봤을 때 감상자는 여기에 ‘신발이 없지 않고 있다’라는 그 사실을 느끼게 되고 하이데거는 이것이 매우 적막한 충격으로 감상자에게 다가온다고 한다. 서영화 교수는 ‘없지 않고 있다’고 느끼는 태도는 하이데거적 언어로 말하면 존재자가 참으로 개방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이제까지 습관적으로 익숙해 있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감상자가 예술작품을 볼 때 사물을 도구적인 것으로 보는 익숙함에서 벗어나 비은폐화되어 드러난 존재자의 본질을 자각하게 되면 작품 감상자는 작품의 보존자가 되어 작품을 비로소 현실적이고 예술작품답게 만드는 전환을 이루어낸다. 마르셀 뒤샹의 변기가 일상의 기성품에서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의 예술작품으로 변환된 사실이 이 사례이다. 그렇다면 작품 안의 작품존재 속에서 진리가 생성된다는 존재자의 ‘개시성(開示性)’이야 말로 예술작품을 예술작품이도록 하는 최종 근거가 된다.

서영화 교수는 마지막으로 앞의 얘기들을 정리하면서 하이데거의 예술론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얘기를 덧붙였다.

“현재 우리는 인간을 인적자원, 자연을 자연자원으로 이해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유익하고 유용한 것은 ‘있는 것’으로 치부하고 자신에게 유용하지 않은 것은 ‘있지 않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태도인 것 같다. 이런 태도는 평소에는 매우 친숙하다. 하지만 일상적인 대상 사물이 작품 안으로 옮겨가게 되면 친숙하지 않고 익숙하지 않게 된다. 하이데거의 경우 ‘없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내 앞에 있는 그 무엇을 나에게 유용한 대상으로 보지 않게 된다. 대상에 대한 자각 이전과 이후의 태도가 전혀 다르게 된다. 확대해보면 내가 자연을 대하는 방식자체가 전혀 달라진다. 결로현상 때문에 석굴암에 에어컨디셔너를 달았다는 사실이 일상의 감상자에게는 처음에 매우 신선하게 느껴지지만 과거에는 이런 장치가 필요 없어도 석굴암이 유지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자연물을 우리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의 태도도 전혀 달라지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곧 통상적인 행위와 평가에 대해 조심스러워지고, 자신의 지식과 시야를 함부로 적용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형이상학의 철학과 대결한 이유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에 예술이 필요한 이유이다”

후기: 진보성 (한철연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