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하는 노장; 폼 나는 생태적 삶을 넘어서[한철연 교육강좌]-⑤

[한철연 교육강좌]-⑤

요가하는 노장; 폼 나는 생태적 삶을 넘어서

 

강사 : 송종서 (전 민족의학연구원 상임연구원)
후기 : 한길석(한철연 교육분과장)

 

 

 

4월 22일 태복빌딩 2층에서 송종서 회원의 강의가 있었다. 이번 강의는 동양 철학적 관점에서 생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강의는 부드럽고도 진중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한국에서 생태 문제가 적극적으로 제기된 시기는 1990년대 부터이다. 환경 위기가 우리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죽음의 문제’로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생태적 각성이 시작됐다. 북반구 선진국 주민들은 오늘날의 풍요를 지속하면서 동시에 생태적 부담을 증가시키지 않으려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그러한 삶에 대한 욕구가 퍼져 나가고 있다. 그러나 저 ‘지속 가능한’ 생태적 삶이라는 꿈은 오늘날의 생태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대안이 되지 못한다. ‘죽음의 시간’을 잠시 늦출 뿐이다. 진정한 생태학은 죽음에 직면한 자들의 처절한 성찰을 요구한다. 처절한 성찰의 와중에 목격하게 되는 진실은 우리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면 되리라는 희망적 전망을 선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절망적 현실에 대한 직시를 명령한다. 그래서 진정한 생태학은 희망의 학문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노자의 철학을 자연과 합일하여 소요유를 즐기는 반문명적 우주론에 기초하고 있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다. 오히려 노자 철학은 철저히 실용적인 관점에서 입각해서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고자 하는 ‘고도의 철학적 처세술’에 가깝다. 이러한 사고가 전개된 이유는 춘추전국시대의 사회적 변화에 대한 배경적 이해가 필요하다.

송종서 전 민족의학연구원 상임연구원/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춘추시대의 제후국들이 패업의 야망을 품을 수 있게 된 계기에는 생산성의 발전이라는 경제적 배경이 작동하고 있었다. 이는 춘추시대가 이미 기술을 가지고 자연을 이용하는 시대에 돌입했으며, 당대인들에게는 그것이 놀라운 성취로 간주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전국시대에는 자연 지배에 대한 의식이 강화되어 만물 현상의 원인을 추구하는(求其故) 작업이 활발했다. 이 작업을 주도한 학파는 묵가였다. 묵가는 전국시대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학파였는데, 그 구성원들은 장인과 기술 노동자 집단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기구를 만들기 위한 연구 작업을 진행하면서 자연에 대한 이론과 그러한 이론의 방법론으로서의 논리학을 발전시켰다. 묵가에서는 인간이 자연에게서 해방되고, 노동자 등이 지배자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기술임을 강조했다. 장자의 도가와 맹자의 유가 등은 이러한 묵가의 견해에 대한 안티 테제로서 자신의 이론을 성립시켰다.

학파들 간의 논쟁을 통해 이론을 성숙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제나라에 설치된 ‘직하학궁(稷下學宮)’의 역할이 컸다. 이것은 국가가 세운 일종의 학술원이었다. 이곳에서 당대의 학파들이 모여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파악하고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게 된다. 순자는 좨주(祭酒)를 세 번 역임하면서 이 기관을 대표한 당대 최고의 학자 중 하나였다. 순자의 학문은 당대의 학문적 성과를 종합하면서 자신의 이론적 체계를 세웠다는 점에서 잡가적 특성을 지닌다. 그래서 그의 이론에는 도가의 영향이 보인다. 이런 이유로 그는 인간을 윤리적 관점에서만 이해하지 않는다. ‘인간만이 선하다’든가 ‘인간이 만물의 중심’이라는 관점을 거부한다. 당대의 윤리학은 ‘자연은 신비로운 존재이며 이 신비로운 자연에 대해 인간 스스로가 행실을 삼가야 하고 그 속에서 윤리가 등장한다’는 이해 방식 속에서 전개되었다. 그러나 순자는 이러한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인간을 자연 지배의 군주로 보지도 않고, 자연을 지존의 위치로 격상시키지도 않는다. 다만 그는 인간과 자연에 일정한 거리두기를 취하면서 이해하려 했다. 한 편으로는 도가적이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묵가적이기도 한, 그러면서 인간의 윤리적 삶을 고찰했다는 면에서 유가적이기도 한 이같은 면모가 그를 당대 학문의 종합자로 파악하게 만든다.

최근의 학설에 의하면 『노자』는 진(秦)나라 말기에 서술된 책이라 한다. 이 시대의 정신은 생존이었다. 서민(소인)에게는 자기 보존이 문제였으며, 주류 계급(군자)에게는 세력 유지가 관심사였다. 『노자』는 이 실용적 시대정신에 호응해 안정적 생존을 가능케 하는 방도를 제시해 준 철학적 체세술이었다. 『노자』 철학에서 생존이란 자연의 전개 법칙을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을 인식하고 활용하려는 모든 의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노자 철학의 생태주의는 우주론적 각성에서라기보다는 생존의 요구에 충실하려는 인간적 욕구에서 발생한 것이 된다. 왕필에 의해 해석된 『노자』는 우주론적 관점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백서본(帛書本) 『노자』는 벌어진 상황에 가장 적절하게 처신함으로써 자기 보존을 연장하는 처세술로 해석된다. 이러한 이유로 『노자』가 제왕학, 즉 정치술의 경전으로 활용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황로학은 이렇게 설명된다. 정리해보면 노자류의 도가는 고급 처세술에서 시작해서 왕필에 이르러 생태학적 우주론으로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천하를 일통하고 그것을 안정적으로 소유하기 위해서 처신해야 할 방략을 제시하는 가운데 가장 통 큰 처세의 이론으로서 도가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런 연구 성과를 수용하게 되면 장자가 노자를 시대적으로 앞서게 된다. 내용상으로 파악해 봐도 노자의 정신과 장자의 정신은 다르다. 장자는 무정부주의적 정신을 강조하면서 개념화와 문명화에 대한 부정을 제시한다. 노자는 제왕학적 경향성을 지니면서 세상의 변화와 흐름에 적응해 갈 것을 권유한다. 이렇게 볼 때 노장사상을 하나로 합친다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장자와 노자 사이의 질적 상이성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기술 지배 시대에 대한 장자의 근본주의적 비판은 『장자』 「천지」, 「대종사」 등에서 살펴 볼 수 있다. 맹자도 기술 지배적 풍조에 비판적이었지만 장자만큼 급진적이지는 않았다. 그는 묵자와 장자를 변증적으로 지양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그는 『맹자』의 「고자」 상편에서 이 길을 우 임금의 치수에서 찾아내 ‘行其所無事’로 정식화했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생장하는 싹의 힘을 믿고 그 힘에 기대는 동시에 천지의 도움이 잘 이루어지도록 인간의 노동력을 투여하지 않는 계기, 즉 無事의 계기가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종자를 심고, 잡초를 뽑으며, 물을 대고, 퇴비를 주며, 보리를 거둬들이는 인위적 行의 계기가 필요하다. 이 무사와 행의 두 계기가 적절히 통일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맹자는 이 생태적 농사의 원칙을 인성 수양의 원칙으로 삼았다. 『맹자』의 「공손추」 상편의 어리석은 송나라 농부의 이야기는 이런 관점에서 해석된다.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강의 후기

문명의 편리함에 익숙해져서 환경 파괴적 삶을 살아오던 차에 동양의 도가사상을 통해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생태적 삶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기존에 알고 있던 도가를 바라보던 시선과는 다른 시선을 접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 그런데 장자의 철학은 회의주의적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었나?

멋진 강의였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선생님께 불교 철학 강의를 한 번 추가로 부탁 드리고 싶네요.

여러 사상의 연관성 이야기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맹자 사상 중에 농업철학이 있었다는 것을 새롭게 배워서 좋았습니다. 이준모 선생님을 알게 된 것도 큰 기쁨입니다.

생태적 삶을 넘기는커녕 생태적으로 살기도 어렵지 않을까?

삶에 대한 정의를 ‘생태적’이라 한다는 논제 자체가 비생태적일 수 있다는 것을 오늘 강의를 통해 느끼게 되었습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동양의 고전들에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