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보씨 크기를 생각하다[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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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 크기를 생각하다[철학자 구보씨의 세상생각]

 

문성원(부산대교수)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Y에게서 소식이 왔다. 벌써 오래 전에 구보씨가 보냈던 이-메일에 대한 답이다. 여행 중이어서 확인이 늦었다고 했다. 여긴 중국인데 말이야, 바쁘게 이동하다 보니 도무지 경황이 없지 뭐니. 게다가 인터넷 사정도 안 좋고… 중국은 아직 대도시와 시골이 천지 차이야. 그러나저러나 중국이 넓긴 넓더구나. 재밌고 신기한 일도 많고… 이제 여름이니 구보 너도 어디 여행이나 떠나 보면 어때? 더운 날씨에 괜히 인상 쓰고 있지 말고… 그럼, 이만… 짜이젠.

 

구보씨는 입맛이 썼다. Y가 누구와 같이 있을지 짐작이 가는 까닭이다. Y가 몸담고 있는 시민단체에 알아보니 말로는 취재 여행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휴가 비슷한 형태지 싶었다. 그녀 자신이 계획을 입안하여 형식적인 허락을 받았고, 경비는 비행기삯 정도로 최소한만 지급했다 한다. 그렇담, 먼저 베이징으로 갔을 거다. 아니, 어디에 기착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상하이면 어떻고 충칭이면 어떤가. 어차피 조만간 M을 만났을 것 아닌가.

 

M은 중국에 자주 머문다. 업무상 그렇다고 했다. 벌써 몇 년째다. 그래선지 얼굴도 몸도 더 둥글둥글해지는 게 제법 중국인을 닮아가는 것 같다. 이제 우리한테 중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야. 미국하고 일본에 대한 교역량을 다 합쳐도 중국에 한참 못 미친다구. 실질적으론 남한 정부가 중국의 비위를 거스르기 어렵게 되었다는 말이지. 지난봄에 만났을 때, M은 큼지막하고 퉁퉁한 손아귀에 작은 빼갈 잔을 쥐었다 놨다 하며 열변을 토했다.

 

체…언제는 우리가 중국 눈치 안 본 적이 있었나. 유사 이래 중국의 영향력은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압도적이었다. 이제 다시 우리에게 중국이 부각된다고 해서 새로울 것은 뭐고 반가울 것은 뭔가. 오히려 경계의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게 아닌가. 벌써부터 미국과 중국이 사사건건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이니, 가뜩이나 허리까지 묶인 우리네 신세가 자칫 등 터지고 배 터지는 새우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인 판이다.

 

“하하…근데, 그게 옛날과는 달라. 너 중국이 쥐고 있는 외환이 얼만지 아니? 자그마치 3조 달러가 넘어. 미국 국채만 1조 달라가 넘고. 작년에 미국은 중국 물건을 3000억 달라 가까이 사들였다구. 불황인데도 말이야. 이렇게 얽혀 있으니, 서로 충돌하긴 어려워. 물론 세(勢) 싸움이야 하겠지. 하지만 자칫하면 둘 다 구렁텅이로 빠진다구. 이제 세계는 누가 지고 이기고가 분명하게 갈릴 수 있는 상태가 아냐. 특히나 중국처럼 대국은 누구도 함부로 할 수가 없다구.”

 

“대국(大國)? 대국이라…그래, 그렇더라도 흥하고 망하는 데 크고 작은 게 결정적인 건 아닐 거야. 알잖아, 역사상 대국이니 제국(帝國)이니 하는 것들의 운명을… 중국도 다를 바 없지. 망하고 흥하고 한 게 그 동안 몇 번이야.”

 

“나라나 왕조야 그렇지. 하지만 문명은 다르잖아. 중국 문명권이 망한 적이 있냐? 서양의 침략을 받았지만, 그래서 아편전쟁 후에 일시적인 굴욕을 당했다고는 하지만, 백년 만에 다시 결집해서 백 오십년 만에 당당하게 다시 섰잖아. 이제 이백년이 되는 2040년경에는 아마 전세계의 패권을 쥐게 될 거야. 다시 명실상부한 중국(中國)이 되는 거지.”

 

“M 너, 완전히 중국파가 다 됐구나. 말하는 품새도 아연 중국인 같은데… 일단 단위부터가 말이야.”

 

“하하, 그래? 하긴 나 같이 이제 장사꾼 뒷바라지 하는 놈보다는 구보 너 같은 철학자가 스케일 크게 놀아야 하는 거잖아. 중국이라고 뭐 별 거 있겠어? 철학적으로 보면 사람 사는 덴 다 비슷하지. 근데, 스케일은 좀 달라. 얘들은 인구가 워낙 많으니까, 경제적으로 부유층이 기껏 10%가 안 되는데도 그 숫자가 1억이 넘는다구. 그러니 걔들만 해도 시장이 엄청난 거지. 중국의 소득 분포는 말하자면 호리병 형상이야. 못사는 애들은 또 엄청 많은데, 걔네들이 값싼 노동력의 원천이지. 그래서 얼마 전만 해도 중국에선 사업하기가 엄청 쉬웠어. 싼 노동력으로 생산해서 돈 있는 애들에게 팔면 되거든. 요즘은 좀 달라졌어. 중국도 이제 임금도 오르고 수지타산 맞추기가 쉽지만은 않아.”

 

“임금이 오른다는 건 좋은 거 아냐?”

 

“하하, 좋은 일이지. 하지만 일방적으로 좋은 게 어딨냐. 좋은 면이 있으면 나쁜 면도 있고, 세상이 그런 거지. 걔들 편에서도 형편이 나아지는 건 좋지만 그게 또 요구도 많아지고, 그러면 갈등도 더 생기고 시끄러워지고, 그 와중에 얌체도 생기고 희생도 생기고, 언제나 그렇듯 못된 놈들이 더 해 처먹고, 그런 게 조직화되고… 암튼 일 풀어나가는 건 자꾸 어려워진다구. 어떻든 너 중국 오면 연락해라. 베이징엔 와 봤지?”

 

“한 10년 전쯤? 그때하고 많이 달라졌겠네?”

 

“그럼. 그새 올림픽도 치르고 그랬잖아. 꼭 베이징이 아니더라도 연락해. 나두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이 많으니까. 장사꾼 딱까리 노릇도 힘들어. 하하…”
▲ 중국의 항공모함사실, M은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인상에, 화통한 면이 있는 친구다. 학생 시절에 Y와는 한때 잘 지내던 사이였는데, 서로 엇갈리게 감방에 들락거리는 바람에 멀어졌지 싶다. 하긴 서로 무슨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니, 특별히 헤어지고 말고 할 게 없었을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그저 학생운동 시절의 친구 사이다.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M 이야기를 했더니, Y는 걔, 요즘 엄청 쪘던데 하며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그런데, Y가 중국에 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구보씨는 반사적으로 M을 떠올렸다. 그 둥글둥글한 얼굴과 웃음을. 뿐만 아니다. 신문에서건 인터넷에서건 중국 이야기만 나오면 Y와 M이 겹쳐서 떠오른다. 뭐, 중국 이야기에 중국에 있을 두 친구가 연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그러나 문제는, 왜, 하필이면, 두 친구가 한꺼번에, 겹쳐서 떠오르냐는 거다. 겹쳐서 말이다.

 

아무튼 이를 계기로 구보씨는 중국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전이면 무심코 지나쳤을 사안들도 관심을 갖고 들춰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정말 중국에 한번 가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크기의 문제가 구보씨를 사로잡았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크기, 한반도의 크기, M의 몸집의 크기, Y가 구보씨에게서 차지하는 비중의 크기, 또 구보씨 자신의 마음의 크기…

 

사실, 중국은 가깝고 큰 나라다. 면적은 남한 땅의 100배나 되고 한반도 전체로 쳐도 40배가량 된다. 인구도 말이 14억이지, 정확한 수는 누구도 모른다. 산아제한 정책 탓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인구가 많은 탓이다. GDP는 일본을 추월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수치상으로 그 규모는 전 세계 GDP의 10%고 미국의 절반 정도지만, 경제적 영향력은 이제 미국에 못지않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 첨단기술이나 군사력 면에서는 아직 미국의 상대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글쎄 그런 상태가 얼마나 갈까.

 

미국이 중국 항공모함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기회만 되면 일본 기지의 항모를 우리 서해안까지 끌고 와 해상훈련을 빙자한 무력시위를 하는 것을 보면, 중국의 진출에 대해 여간 경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제주도 강정에 기를 쓰고 기지를 건설하려는 것도 미국의 대중국 견제책의 일환임은 분명하다. 북한이 중국에 더욱 의존적이 되고 북한의 미사일이 평택이나 오산의 미군 기지를 위협할 수 있게 된 마당에, 미국으로서야 중국 본토를 사정권에 넣을 수 있는 보다 안전한 기지가 절실하지 않겠는가.

 

이런 사정이니 중국을, 또 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고려에 넣지 않고 한반도에서 맘 편하게 지내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얼마나 잘 균형을 잡고 얼마나 잘 대처해야 허리 졸린 채 등 터지는 새우 꼴을 면할 수 있을까. 미국은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묵과했거나 사실상 도와주었다고 비난하면서 남한에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겠다고 나섰다. 그럼에도 남이나 북이나 이런 판국을 조정할 능력이나 여유는 거의 없어 보인다. 북한은 고립된 처지에서 중국 외에는 기댈 곳이 없다. 대중 무역이 전체 무역의 90%를 상회한다. 출구가 극도로 제한된 이런 봉쇄 상태에서 북한은 핵무기를 절대 포기할 수 없을 것이고, 중국으로서야 핵을 가진 북한을 이제 자신의 24번째 성(省)쯤으로 이용하려 할 것이다. 미국은 북한을 트집삼아 대중국 견제선을 분명하게 그으려 하고 있다. 그런데 남한은 미국과 중국의 전략에 놀아나는 것 이외에 어떤 노력을 해 왔는가?

 

“통일? 너무 걱정하지 마. 그거 가능할 거야.”

 

지난봄의 술자리에서 M은 망설이거나 근심하는 빛 없이 이렇게 단언했다.

 

“허, 어떻게?”

 

“당장은 안 되지. 무엇보다 중국이 놓아주지 않을 거니까. 북한을 붕괴시켜 통일한다는 건 중국이 먼저 혼란에 빠질 때나 있을 법한 일이라구. 그런 통일론이야 남한 내부용이지, 이제 그걸 진지하게 믿는 또라이가 어디 있겠냐. 북한 정권이 바뀐들 중국에 대신 줄 게 없거든. 남한은 물론이고 미국도 말이지. 이쪽에서야 북한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테고…그러니 당분간 그대로 가는 거야. 뭐, 이 상태로 서로 긴장을 풀면서 장사나 하는 거지.”

 

“또 장사야? M, 너 정말 짱깨(掌?)가 다 됐구나.”

 

“하하, 구보야, 서로 안 싸울 수 있는 길은 싸우면 같이 손해 보는 관계를 만드는 게 최고야. 장사란 게 별거냐, 나만 이익을 보자는 게 아니라 서로 이득이 되게 얽는 거라구.”

 

“장사로 얽으면 통일이 돼?”

 

“그럼. 언젠가는 된다구. 초조하게 굴다가 바보짓만 안 하면 말이지. 유럽을 봐. 허구한 날 서로 치고받고 싸우던 애들이 이제 같이 놀려구 하잖아.”

 

“얼씨구, EU가 깨지느니 마느니 하는 판인데…”

 

“하하, 그것두 단견이야. 조금 길게 보면 이런 게 다 과정의 일부라구. 지금이야 국지적으루 이해가 엇갈리니까 그런 거지만, 이제 쪼개지면 결국 서로 손해거든. 다 잘 될 거야. 적어도 2, 30년은 봐야 한다구.”

 

“하, 2, 30년? 통일도?”

 

“당근이지. 내 생각엔 2040년쯤이면 우리도 통일이 되지 싶어.”

 

“어디랑? 중국이랑?”

 

“하하, 그건 아니지.”

 

M이 통이 큰 건지, 구보씨가 속이 좁은 건지, 구보씨는 중국을 생각하면 대개 마음이 편치 않다. Y와 M이 서로 알고 지낸 것도 2, 30년의 세월이 아닌가. 통 큰 M과 Y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얽혀 있을까. 알량한 속의 구보씨는 자기도 모르게 상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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