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의 공맹; 친친(親親)의 역설을 통한 이방인과의 소통, 이해, 그리고 연대[한철연 교육강좌]-④

[한철연 교육강좌]-④

안산의 공맹; 친친(親親)의 역설을 통한 이방인과의 소통, 이해, 그리고 연대

 

강사 : 김세서리아(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
후기 :한길석(한철연 교육분과장)

 

 

지난 4월 15일 한철연의 네 번째 교육부 강좌가 김세서리아 회원의 강의와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강의는 제 3강과 동일한 주제를 다루었다. 기획자의 의도는 상호문화적 상황에 대해 서양과 동양의 윤리학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 한국에는 다문화 가정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문화 간 혼인에서 태어난 아이는 매년 4천명에 달하고, 2010년에는 내국인과 외국인 결혼이 10.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이한 점은 1991년에서 2005년 사이에 한국 여성과 외국 남성 간의 결혼이 3배 증가한데 비해, 한국 남성과 외국 여성의 결혼 건수는 50배 증가했다는 데에 있다. 후자의 경우 한국 남성의 결혼 이유는 순종적이고 부모를 잘 모실 것 같은 여성이어서였다고 한다. 이는 문화 간 결혼이 상호문화적 이해와 인정에 의거하기 보다는 종족 보존과 가부장적 가정의 유지라는 유교적 윤리 의식에서 기인함을 반영한다. 전통 유교적 가족 관계에서 혼인은 생물학적 번식과 남녀 분업을 통한 생활 자료의 생산이라는 세속적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풀이된다. 또한 유가에서는 자손 생산을 통해 개별 생명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무한한 삶을 추구했다. 영혼 불멸이라는 초월적 관념 장치가 결여되었던 유가 철학에서 이러한 사고는 세속적 형태의 초월성 추구라고 해석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개체의 존재는 개인에게 온전히 속하는 것이 될 수 없다. 나의 실존적 의미는 조상 및 후손과의 연관 관계 속에서만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친족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윤리적 태도로 이어진다.

김세서리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 사진: 조배준 한철연 회원

 

유교적 윤리 의식은 친친(親親)의 원리에 의거하고 있다. 자신과 친한 이들에게 보다 친밀한 대우를 권고하는 이 의식은 육친을 우선시하는 윤리적 행위를 낳았다. 이는 사회적 정의와 가족적 우애가 갈등을 빚을 때 후자를 우선하게 만드는 일을 초래한다. 양을 훔친 아비를 고발한 아들을 윤리적이지 않다고 책망했던 예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정직’이라는 의미에 대한 해석차를 고려해야 한다. 공자와 섭공의 논박을 살펴보자. 섭공에게 정직이란 ‘사실을 객관적으로 고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공자에게는 ‘제 마음에 진실하게 임하는 것’을 뜻한다. 객관적 참을 추구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지 않는 한 정직의 의미가 온전히 발휘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친친(親親)의 원리가 사회 윤리보다는 가족 윤리에 기울어 사회적 정의의 확산을 가로막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친친(親親)의 원리는 혈연에 의해 친밀하게 이어진 관계에 대해서는 동화를, 그렇지 않은 관계에 대해서는 배척과 분리로 이어지게 하는 경향성을 갖는다. 친족 내의 이질성을 제거하고 남성 가장의 문화를 중심으로 혈연적 동화를 추구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친(親親)의 원리가 반드시 가족 이기주의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이 강조하는 바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윤리적 행위가 진실하다는 점에 있다. 유가 윤리는 ‘인(仁)’의 구현을 강조한다. ‘인(仁)’이란 ‘충서(忠恕)’, 즉 온 마음을 가운데에 모아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같게 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이는 추기급인(推己及人)과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의미한다. 『논어』 「옹야」 편에서는 인(仁)을 ’내가 서고자 하는 곳에 남을 세우고,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에 남을 도달케 한다‘는 것으로 풀이해준다. 타인과의 낯선 관계에서 이런 마음이 자주 나타날 리는 없다. 충서(忠恕)의 마음이 가장 잘 우러나오는 관계는 가족 관계에서일 것이다. 가족 관계 속에서 이런 마음을 익숙하게 체화하여 온 공동체로 넓히게 하는 것이 유가적 윤리관의 본래 의도라고 짐작된다.

현대 사회의 가족은 이미 유교적 사회의 그것과는 상이하고도 다양한 형태로 조형되고 있다. 혈연을 중심 고리로 묶이지 않은 가족도 등장하고 있으며, 이질적 문화와 종교 및 가치관을 그대로 지키고자 하는 가족 구성원들도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친친(親親)의 원리도 이에 걸맞게 해석되어야 한다. 과거에 그것은 육친과 혈연적 관계에 방점을 두고 적용되었다면, 현재에 그것은 ‘인(仁)’의 본래 정신을 구현하는 형태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타인의 마음을 섣불리 평가하지 않고 내 마음과 같이 생각해보려고 노력함으로써 이해와 화해를 도모하는 ‘인(仁’)의 정신은 문화 간 갈등 상황에 봉착하고 있는 현대사회에 일정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4강 후기

한국 사회의 다문화 현상을 친친의 확장 개념을 통해 재해석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상호문화주의에 대한 강의를 연속으로 듣게 되었다. 주제가 최근 한국 현실에 부합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직접 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깊게 생각해 보지 못한 주제였다. 앞으로 상황이 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비단 이주자 문제 뿐 아니라 현재 동료들과도 상호 이해, 차이의 공감 등에 대한 이론적 기반이 될 수 있도록 개념을 좀 더 확장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번 주의 강의와 이번 주 강의를 들으며 상호문화주의, 차이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 같다. 일방적인 동화 또는 이해로 포용하는 것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고 또다른 것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은 주제였지만, 앞으로 내 생활에 차지하는 면이 클 수 있는 주제에 대해 한번씩 생각해 볼 수 있는 듯 하다.

이번 강의의 주제가 일상에서 부딪치는 구체적 문제를 다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두 번의 다문화 관련 강의에서는 직접 경험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고 대부분 피상적 문제만 인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 혹시 앞으로의 강의에서도 이런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가능하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미리 일주일 전에 문제 제기를 해주시면 더욱 고맙겠다.

다문화주의를 고민하게 된 그 배경에 대해 궁금합니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고민은 전세계적 이슈로 봐야 하지만 먼저 이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금융 제국주의의 문제를 먼저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전제 하에 논의되는 이 모든 문제들이 실제로는 경제 제국주의와 아주 밀접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상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경제의 획일화가 문화 획일화를 가져오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한다.

친친의 유의미성에 대한 부분이 이민자, 외국인, 다문화를 수용하는 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지 않아 아쉽다. 유교의 친친의 확장은 결국 나로부터 혈연, 지연, 학연 순으로 나아가는데 그 한계와 부정적 측면이 더 많을 듯 하다.

친친의 편파성과 그것의 도덕적 유의미성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부자 증세가 확실히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친친의 원리에 입각한 나라가 있을까?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미 다문화적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의 인식은 이방인과의 소통과 연대 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 친친의 원리를 극복하기 위한 열린 마음을 가지자.

‘우리’의 범위를 확장하자. ‘다름’은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같음’을 공감하고 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