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는 ‘아래에서부터 위로’다.[썩은 뿌리 자르기]

진보성(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대진대 강사)

“옛사람들은 백성과 더불어 여러 사람이 함께 즐겼습니다. 이 때문에 능히 즐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 백성이 그와 더불어 함께 망하고자 한다면 비록 화려한 관저와 아름다운 연못과 관상용 동물들이 넘쳐난들 어찌 홀로 즐거워할 수 있겠습니까?”(『맹자(孟子)』「양혜왕장구 상(梁惠王章句 上)」)

지금으로부터 약 2300년 전 맹자가 군주인 양혜왕을 찾아가 한 얘기다. 맹자는 양혜왕이 자신의 화려한 동산을 둘러보며 자랑스러워하자 고대 주나라 문왕(文王)의 예를 들어서 임금의 권위는 화려하고 웅장한 부차적인 것들에 의해 확립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과 소통하고 백성과 함께 하는 바탕이 있어야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위정자들의 정치행위와 권위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기를 경계한 것이 요점이다.

이 대화의 내용이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알려 전해지고는 있지만 과거나 현재의 인간이 사고하는 틀은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인식의 방법과 대상은 무한히 변화하지만 그 인식하는 개체의 사고형태는 지극히 구태의연하다. 특히 역대 정치인들에 있어서는 더욱 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은 권위적 인간을 거부하면서도 또 그러한 권위주의를 일상화하는 지도 모른다. 일종의 자포자기의 심정이랄까?

권위와 권력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부딪히면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개념어는 아마 ‘권위(權威, authority)’일 것이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부류의 권위들을 만난다. 정치경제를 비롯한 일상의 사회생활이라는 하위분류에서부터 상위분류로서 문화적 심리구조 같은 관념화된 영역에까지 말이다. 따라서 권위라는 개념을 오로지 한 방향으로 해석하기는 불가하다. 왜냐하면 상황에 따라 여러 다른 뉘앙스로 쓰이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학문?학술의 영역이나 미시적인 사회의 기능적이고 세세한 부분에 관여하는 전문영역에 있어서 권위는 순작용을 한다. 권위가 한 사안을 관통하는 일련의 과정에 개입하여 긍정적 결과를 도출하는데 일조하는 대표모델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사회구성원들의 승인을 받아 정당성을 확보한다. 그러나 반대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대부분 정치, 행정 같은 국가와 관련한 권력의 형태에 있어서다.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권위=권력(power)으로 인식한다.

사회학자 배링턴 무어(Barrington Moore)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서의 권위와 불평등』에서 권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권위라는 말은, 명령이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신념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자발적 복종이 있음을 뜻한다. 만약 이 도덕적 요소가 없다면, 권위는 강제와 기만이 되고 말 것이다.” 고금(古今)을 통틀어 어떤 조직이나 사회를 막론하고 그 구조적형태는 반드시 계급과 계층을 구분하게 되는데, 상층계급의 존립근거는 국가를 유지할 만한 도덕성이 충분하다는 피지배 하층계급의 승인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 때 발생하는 권위는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발생하여 위로 부여된 권위이다. 권력의 발생은 아래, 즉 민중으로부터 시작한다. 과거 중국 사회주의의 대중노선도 이와 같은 맥락이고 이런 슬로건은 『서경(書經)』에 “하늘이 보는 것은 우리 백성들을 통해서 보고, 하늘이 듣는 것은 우리 백성들을 통해서 듣는다.”(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는 문구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지금 위정자들이 하고 있는 정치적 권위에 대한 기본 인식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집권 말기에 들어선 이명박 정부의 권위주의적 태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현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능력을 떠나 도덕성의 문제이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의 전과사실은 각설하더라도 각 정부 요처의 기관장들이 청문회에서 보여준 위장전입, 투기, 탈세, 병역기피는 이제 기본이 됐다. 강남의 부자교회 장로출신 최고 지도자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신이 용인하고 도와준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그 이후 속속 드러나는 전시행정과 심지어 충청권 과학벨트와 관련하여 라디오 방송에서 “그 공약은 내가 지난 대선 때 충청권의 표를 얻기 위해 했던 공약으로, 지금 공약대로 이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라고 발언했다. 자신의 대선 공약이 단순히 선거승리를 위한 옵션이라고 인정한 것인데 여기까지 오면 정말 할 말이 없다. 한마디로 권위를 완전히 상실한 상태이다.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도 문다. 권위를 상실했지만 오히려 남북한 위기상황을 통해 껍데기만 남은 권위를 더욱 공고히 하려고 한다. 경제위기를 들먹이고 전쟁위협을 등장시키는 것은 대중의 공포심리를 이용한 공포정치의 한 단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권이 정권 초반부터 항상 강조했던 법과 규범의 준수를 통한 사회질서 확립은 상실한 권위를 스스로 강제하고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권위주의적 발상이며 특히 국민에 대한 강요는 대중에 대한 국가 폭력과 마찬가지다.

‘아래에서부터 위로(自下而上)’

2011년 현재 대한민국 정권의 정치적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졌고 권위 아닌 권위가 계속 강요되는 뻔뻔한 현실에서 민중이 위정자의 권위에 대한 동의를 바탕으로 권력을 보장해주었다는 논설은 다시금 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런 논설을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이 「원목(原牧)」에서 밝힌 바 있다. “목민자(牧民者)가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인가, 백성이 목민자를 위해서 있는 것인가?” 이것은 다산의 문제제기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백성이 과연 목민자를 위하여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건 아니다. 목민자가 백성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옛날에야 백성이 있었을 뿐 무슨 목민자가 있었던가. 백성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한 사람이 이웃과 다투다가 해결을 보지 못한 것을 공언(公言)을 잘하는 장자(長者)가 있었으므로 그에게 가서야 해결을 보고 사린(四隣)이 모두 감복한 나머지 그를 추대하여 높이 모시고는 이름을 이정(里正)이라 하였고, 또 여러 마을 백성들이 자기 마을에서 해결 못한 다툼거리를 가지고 준수하고 식견이 많은 장자를 찾아가 그에게서 해결을 보고는 여러 마을이 모두 감복한 나머지 그를 추대하여 높이 모시고서 이름을 당정(黨正)이라 하였으며, 또 여러 고을 백성들이 자기 고을에서 해결 못한 다툼거리를 가지고 어질고 덕이 있는 장자를 찾아가 그에게서 해결을 보고는 여러 고을이 모두 감복하여 그를 이름하여 주장(州長)이라 하였고, 또 여러 주(州)의 장(長)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어른으로 모시고는 그를 이름하여 국군(國君)이라 하였으며, 또 여러 나라의 군(君)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어른으로 모시고는 그 이름을 방백(方伯)이라 하였고, 또 사방(四方)의 백(伯)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그를 우두머리로 삼고는 이름하여 황왕(皇王)이라 하였으니, 따지자면 황왕의 근본은 이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백성을 위하여 목민자가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 지금의 수령(守令)이 옛날로 치면 제후들인데 …… 거만하게 제 스스로 높은 체하고 태연히 제 혼자 좋아서 자신이 목민자임을 잊어버리고 있다 …… 그리하여 ‘백성이 목민자를 위하여 존재하고 있다.’란 말이 나오게 되었지만 그것이 어디 이치에 닿기나 하는가? 목민자가 백성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또 「탕론(湯論)」에서는 『맹자』를 인용하여 문제제기하고 자답한다. “탕왕(湯王)이 걸(桀)을 추방한 것이 옳은 일인가. 신하가 임금을 친 것이 옳은 일인가. 이것은 옛 도(道)를 답습한 것이요 탕 임금이 처음으로 열어놓은 일은 아니다.” “그를 끌어내린 것도 대중(大衆)이고 올려놓고 존대한 것도 대중이다.” “한(漢) 나라 이후로는 천자가 제후를 세웠고 제후가 현장을 세웠고 현장이 이장을 세웠고 이장이 인장을 세웠기 때문에 감히 공손하지 않은 짓을 하면 ‘역(逆)’이라고 명명하였다. 이른바 역이란 무엇인가. 옛날에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추대하였으니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추대한 것은 순(順)이고, 지금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세웠으니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세운 것은 역이다.”

「원목」과 「탕론」은 아래에서 위로의 ‘자하이상(自下而上)’의 정치학 원론이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다. 다산이 비판한 것은 민중이 통제받고 제약받는 모순적인 현실은 고증하자면 잘못된 것이며 ‘자하이상(自下而上)’의 체제는 회복해야할 대상이다. 다시 말해서 군주와 같은 통치자의 존재는 아래에서 위로 추대된 존재로서 민중을 위한 필요성의 가치에 한정되어 있던 것이지, 결코 그 위치나 지위가 자신을 위한 전권(全權)행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내용이 다산이 제시한 주권재민적(主權在民的) 정치이념의 근거이다.

쓰르라미는 봄?가을을 모른다.

다산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잘못 규정되고 강요된 ‘가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가짜 세상에서 사실상 국민의 동의를 상실하여 빈껍데기 권위를 가지고 강제적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가짜가 국가권력의 정점에 있으니 암울하기 이를 데 없다. 따지고 보면 이명박 정부에서 권위를 내세우는 진짜 이유는 집권 세력의 이익에 있다. 신문기사에서는 2011년에 무역수지 20억불 흑자가 예상된다고 떠들어대지만 지금 국가부채와 가계부채는 뚜렷하게 상승하고 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은 가계저축률이 높은 일본에 비해 엄청나게 떨어진다. 5월 9일자 뉴스에서는 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2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신용대출 금리는 인상되고 대출금리 감면 혜택도 없어져 이명박 정권이 확실히 규정한 이른바 ‘서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은 물론이고 중산층의 도미노몰락도 예견되며 결국 대기업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뻔하다.

「탕론」의 마지막에서 다산은 『장자(莊子)』의 구문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莊子曰 ??不知春秋) 여름만 살고 가는 쓰르라미가 봄과 가을이 있다는 것은 알 턱이 없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풍경이 온 세상 전부인 줄 착각한다. 지금 가짜 권위를 차고 있는 자들이 그렇다. 변화는 없고 권력은 끝나지 않을 줄 안다. 그러면서 세상을 망치고 있다. 그런데 다산이 이 말을 마지막에 둔 것은 단지 위정자만 염두에 둔 비판이 아니다. 당시 전제군주제의 속류 지식인들이 식견이 고루하여 고금의 변화를 알지 못함을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대목에서 지금을 살고 있는 지식인들은 과연 나 자신이 가짜가 아닌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특히 대학교수의 경우 대학사회에서 알량한 보직교수의 유혹이나 개인의 대외적 명예, 금전적 이익 때문에 학문연구나 학생지도를 태만히 하면서 학문의 상아탑이라는 대학문화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언제나 대학의 문화는 한 나라의 문화를 규정해 왔고 기반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그 대학의 문화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바로 교수들이다. 평생직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대한민국의 교수사회는 투명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며 가깝게는 대학재단 이사회, 넓게는 문화 보수세력의 첨병이기도 하다. 지식계층이라는 사회적 권위를 누리면서 사회에 대해 외면하거나 무책임한 낙관론만 내뱉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이 여름 한철을 온 세상으로 아는 쓰르라미는 아닌지 자문해야한다.

권위주의의 개념의 현재성 비판을 위해[썩은 뿌리 자르기]

강성국(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는 한국사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권위주의라는 개념이 수사적 표현으로 한국처럼 폭넓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곳도 없을 것 같다. 권위주의라는 묵직한 개념을 학계뿐만 아니라 언론과 대중들도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한국의 특수한 역사에 기인한다. 한국은 독립과 함께 현대적 정치체제(보다 정확하게는 대통령제)를 구성 하게 되었는데, 그 시기는 2차 대전 직후 전지구적 격변기였으며 한국은 체제간 대립의 최전방에 위치한 국가였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부터 시작해서 정적들을 숙청하는 폭력적인 정권 찬탈이 이루어 졌으며 박정희와 전두환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획득했다. 한국사회구성원들은 이러한 정치과정들을 통해 약 30년간 독재의 실재를 경험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재의 종식. 민주화. 이와 같은 일련의 역사를 거친 후 권위주의라는 개념은 한국사회에서 널리 쓰이는 개념이 되었다. 물론 그 쓰임의 목적은 비판적이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권위주의라는 표현의 대상이다. 우리는 독재정권에서 경험했던 이미지들, 또는 효율성 위주의 정치과정을 경험할 때 정권을 향해 권위주의적이라고 말한다. 독재의 어렴풋한 기시감(旣視感)에 대한 일종의 강박증적 반응으로 말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지난 두 정권의 시기에 권위주의라는 말은 정부나 대통령을 향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헌데 2008년 이후 우리는 이명박 정부를 권위주의적 정부라고 한다. 이명박은 유권자들의 투표를 통한 정당한 절차를 거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독재로 규정할 수 있는 어떠한 정치적 행위도 보인 적이 없는데 말이다. 그럼 도대체 이명박이 권위주의적이란 말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수백만 국민이 참여한 촛불정국을 거스른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때문에? 집회 및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 때문에? 밀실적인 협상과정을 거친 FTA(free trade agreement)들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의 물고를 튼 것은 한미 FTA의 추진과정이었고, 한미 FTA가 체결된 것은 노무현 정권 시기였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에는 집회와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이 없었던가? 2001년 대우자동차 사태는 경찰의 폭력이 심각했고 따라서 수많은 중상자가 나왔다. 2005년 농민대회에서 역시 폭력적인 진압으로 농민 2명이 사망했다. 그런데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탈권위주의적 정권으로 평가 받으며, 이명박 정권은 권위주의적으로 평가 받는다. 하나의 비극적 아이러니.

오늘 날 민주주의 제도들은 선출된 대표자와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에게 일종의 제한된 독재적 지위를 부여한다. 이 독재적 지위는 다른 말로 민주적 정당성(legitimacy)에 기반 하는 권력, 즉 권위(authority)라고 할 수 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모든 정권은 이런 권위를 부여받는다. 노무현도 마찬가지였고 이명박도 그렇다. 그리고 위에서 간략하게 예를 든 것과 같이 정책을 추진하며 반대자들에 대한 관리수단으로서 동일하게 폭력을 동원하거나 관료주의적으로 정보를 통제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이 권위주의적이라고 평가 받는 것은 모순이다.

그렇다면 이런 모순의 근원은 무엇인가? 권위주의란 개념의 비판적 사용을 80년대 후반 한국의 민주화를 경험한 특정 세대와 그 세대에 기반 하는 정치집단들이 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권위주의적 정권은 단순히 정적(政敵)을 가리킨다. 그들은 정적들을 너무 쉽게 그렇게 호명하는데, 그럼으로써 그 정적에게는 너무 쉽게 권위주의의 온갖 폭력적, 또는 비민주주의적 이미지들이 덧 씌워진다. 또한 그럼으로써 자신들에게는 너무도 쉽게 반권위주의(anti-authoritarianism)의 투사적 이미지를 부여한다. 하지만 그들이 “권위주의적인” 그들의 적을 “권위주의적”이라고 비판하기에는, 위에서 드러나다시피 그들의 적과 자신들의 공통점이 너무 많다.

권위주의는 정치적 권위의 소유주체를 평이하게 비판하는 단일한 개념이 아니다. 권위주의는 권위의 발생과 그 권위를 몰이성적으로 그리고 무비판적으로 인식하는 태도, 그리고 그에 기반 하는 사회적 행위에 대한 비판적 개념이다. 즉 비판적 개념으로서 권위주의의 대상은 권력 주체뿐만 아니라 사회 현상, 대중 현상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오히려 무게 중심이 쏠리는 것은 권력 주체가 아닌 사회 현상으로서 권위주의 일 것이다.

과거 호르크하이머(M. Horkheimer)와 아도르노(T. W. Adorno)가 분석한 권위주의의 전형은 파시즘(fascism)으로 귀결되는 권위와 카리스마에 대한 대중들이 보였던 사회심리적 일체화 경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판을 따른다면 한국에서 권위주의 개념을 전용하는 소위 민주화 세대라는 특정 세대와 정치집단은 오히려 권위주의적 경향을 지니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들은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민주화의 상징에게 상식 이상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개념이 그들에게 전유되는 이상 권위주의 개념의 그 비판적 본질은 빛이 바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비판적 개념으로서 권위주의 개념을 부활시키는 것은 권위주의의 현재성을 재설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권위주의는 과거의 전형을 보이지 않는다. 또한 권위주의 현상을 경험한 사회에서는 그것이 또 다시 재현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만무하다. 그렇다면 권위주의는 경험으로서 극복되는, 통과 의례적 성격을 지닌 어떤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이제 권위주의는 보다 은폐된 현상으로 존재하며 개인 내면에 내재된다. 부르주아 국가와 법체계는 항상 역사 속에서 경험된 가시적 폐해를 은폐시키고 내재화하는 방식으로 기만적인 자기정화(self purification)과정을 반복해 왔다. 역사적으로 권위주의는 항상 자본주의 사회, 또한 각각의 해당 사회의 특수한 욕망에 기생했다. 권위주의의 현재성을 재설정 하는 것의 시작은 이 사회의 욕망, 즉 우리의 욕망을 보다 깊게 관찰하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누구나 불안한 시대의 단상 [썩은 뿌리 자르기]

김정철(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그야말로 불안의 시대이다. 현대의 자본주의는 모두 열심히 일만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꿈을 삼키며 덩치를 키워왔다. 신자유주의는 그 결정판이라 할 만 하다. 서점에 널린 자기개발서에는 저마다의 방식대로 살아가면 장밋빛 미래가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런데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그들이 말하는 승리의 방정식 뒤에는 ‘경쟁’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다른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만 하는 현실은 어쩔 수 없다는 변명 속에, 패배자들을 돌아볼 여유 따위는 없다. 목표를 이루더라도 당장 승리한 현실을 지키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당연히 승리자도 불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한 편에는 패배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성공을 위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드는 만큼 실패자의 수는 점점 늘어만 간다. 경쟁률 증가를 멈출 줄 모르는 공무원 입시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불안’의 시대에 ‘안정’은 점점 소수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꿈을 좇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완전히 빠져서 당장의 생활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아무리 좋아하는 음악을 열심히 만들고 좋아하는 글을 써도 힘겨운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은 왜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들은 분명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꿈’ 역시 ‘돈’에 따라 줄을 세운다. 사람들은 꿈을 좇는 그들이 얼마나 행복할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돈 안 되는 일에 미쳐 있는 철없는 사람들로 취급할 뿐이다.

이는 TV의 드라마만 봐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상위 몇%에 해당하는 재벌과 그들의 가족은 이미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된지 오래이다. 행복의 열쇠를 ‘돈’이 쥐고 있는 한, 드라마 속의 재벌가 주인공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생활수준의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눈앞의 불안을 단숨에 제거할 사람은 재벌가의 사람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보통사람들이 재벌을 만날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다.

– 불안의 원인

불안은 불확실한 요인에서 비롯된다. 알랭 드 보통은 이 불확실한 요인들을 변덕스런 재능과 운, 고용주와 그들의 이익, 세계경제 등으로 나누어 말한다. 재능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운도 마찬가지다. 운은 찾아올 수도 있고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개인의 생계는 고용주가 지급하는 소득에 달려 있다. 그러나 고용주는 이익을 추구하려 하고, 이익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개인의 생계는 불안해진다. 고용주도 불안하기는 똑같다. 세계 경제의 불안이 주요 원인이다. 그러니 불안의 공포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중산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조차 자신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불안의 해결은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시장 기능에 의존하여 복지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무모한 발상이다. 이미 사회는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으며, 가정은 구성원을 보살피는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무조건적인 경제 성장의 추구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줄 거라는 믿음은 이미 깨진지 오래다. 현 정권의 대선 홍보문구였던 747 공약은 이미 이룰 수 없는 목표가 되어버렸다. 상당수 사람들의 희생으로 일군 가파른 성장이 영원할 수는 없다. 이제는 무엇이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인지 고민할 때가 온 것이다. 세계 경제 위기는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최근의 복지국가 담론의 열풍은 이렇게 불안이 팽배한 사회에서 보편적인 안정을 원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담겨있다.

– 사회복지의 개념과 고대 동아시아 세계

복지란 무엇일까? 글자만 살펴보면 그냥 ‘행복’이고, 사전에서도 ‘행복한 삶’이라고 정의한다. 복지제도의 대상은 누구일까? 당연히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다. 행복이란 주관적인 가치이지만,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누려야할 기본적인 권리들이 있다. 이것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바로 ‘사회복지’이다. 위켄덴(E.Wickenden)의 정의를 보면 더 명확하다. “사회복지는 주민들의 안녕에 기본적이라고 생각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사회질서가 더 잘 기능하도록 하기 위하여, 보조 조치들을 확실하게 해주거나 강화시켜주는 법들, 제도들, 혜택들과 서비스를 포괄한다.”

정치의 근본이 백성의 기본적인 삶의 충족이라는 견해는 고대 동아시아 세계에도 존재했다. 제나라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창고가 가득차면 예절을 알게 되고, 입고 먹는 것이 족하면 영욕을 알게 된다. 백성들이란 근심과 고생을 싫어하니, 나는(군주는) 그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 백성들이란 가난과 비천함을 싫어하니, 나는 그들을 부유하고 귀하게 해주어야 한다. 백성들이란 위험에 떨어지는 것을 싫어하니, 나는 그들을 안전하게 보존해야 한다. 백성들이란 자신이 죽고 후대가 끊기는 것을 싫어하니, 나는 그들이 수명을 누리고 후대를 잇도록 화육해야 한다.”(“倉?實則知禮節, 衣食足則知榮辱… 民惡憂勞, 我佚樂之. 民惡貧賤, 我富貴之. 民惡危墜, 我存安之. 民惡滅絶, 我生育之.” 『管子』 「牧民」) 정치의 주체가 군주로 한정되어 있던 춘추 시대 인물의 말이지만 현대의 복지국가론에 비하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예절이나 명예도 우선 기본적인 삶을 충족되고 나서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주관적이고 추상적이지만,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최소 조건은 먹고 사는 문제의 충족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예기』에서 공자는 유학의 이상향을 이렇게 표현했다. “큰 도(道)가 행해지는 세상에서는 천하를 공(公)으로 여긴다. 현인을 뽑고 능력자에게 일을 주어, 믿음을 키우고 화목을 닦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만을 부모로 섬기지 않고,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노인은 말년을 잘 마칠 수 있게 하고 젊은이는 잘 쓰일 수 있게 하며, 어린이는 잘 자랄 수 있게 하고, 홀아비 과부 고아 무자식 노인과 장애인은 모두 부양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남자는 일정한 직분이 있고, 여자는 시집갈 곳이 있게 한다… 이것을 대동이라고 한다.” (“大道之行也, 與三代之英, 丘未之逮也, 而有志焉. 大道之行也, 天下爲公. 選賢與能, 講信修睦, 故人不獨親其親, 不獨子其子, 使老有所終, 壯有所用, 幼有所長, 矜寡孤獨廢疾者, 皆有所養. 男有分, 女有歸… 是謂大同.” 『禮記』「禮運」) 큰 도가 행해지는 세상이란 다름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떠한 차별이나 소외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학의 이상향은 종교에서 말하는 내세관이나 또 다른 세계를 상정하지 않는다. 행복도 이 세상에 있고, 불행도 이 세상에 있다. 대동의 세계는 바로 우리가 서 있는 땅 위에서 이루어진다.

맹자의 말은 한결 더 구체적이다. 그는 백성들에 대해 “일정한 수입(恒産)이 없으면 평상심(恒心)도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곧 관중의 말과도 유사하다. 선비는 학문과 수양을 통해 일정한 수입이 없어도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지만, 평범한 백성들은 그렇지 않다. 기본적인 삶이 충족되지 않으면 평상시의 마음을 잃게 된다는 말이다. 맹자는 누구나 같은 넓이의 농지를 분배받아 경작을 하고 세금을 내는 형식의 정전론(井田論)를 내세워 기본적인 삶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균등 분배와 조세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군주의 마음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보았다. 물론 맹자가 제시한 이상향은 모든 법도가 잘 이행되었던 주(周)나라를 내세워 한 말이다. 그러나 정치를 담당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임무는 오늘날 복지국가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의 담당자가 군주에서 의회 정치로 바뀌었을 뿐이다.

최근 복지의 선별과 보편 논쟁은 가치보다는 재원 확보의 측면에 더 중심이 쏠려 있다. 선별과 보편은 다른 말로 풀어보면 차별과 평등 문제이다. ‘선별’이라는 말은 결국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잘 만든 제도라도 사각지대는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일정한 기준에 의한 ‘자격미달’은 상황에 따라 커다란 박탈감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복지의 뜻이 행복이라면 행복을 누려야할 권리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 서구의 복지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서구에서 ‘복지국가’라는 용어는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이 나치 독일의 ‘전쟁국가’ 또는 ‘권력국가’와 대비하여 연합국 측의 전후 재건 목표로 ‘복지국가’를 내세우면서 등장했다. 그러나 시장 경제에서 발생하는 빈곤문제 해결에 관한 논의는 그 이전부터 있었다. 16세기 영국에서는 구빈법을 제정했고, 19세기 말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 세력의 성장을 막고 중상층 노동자들의 충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했다. 결국 복지제도의 시작은 기존 자본주의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측면이 강했다. 보수언론들은 이 사실을 들어 복지의 원조가 보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복지제도가 시작되는 시점만을 살폈을 뿐, 현대적인 의미의 복지국가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현대 복지국가는 정치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이하 사민주의)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사민주의는 독일사회민주당에서 베른슈타인이 제기한 수정주의 제안이 받아들여진 뒤 그 틀을 갖추었고, 1951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결성과 독일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이념적 좌표를 세웠다. 선거와 민주 등 기존 장치들을 사회주의 실현의 도구로 삼는다는 점에서 혁명을 앞세우는 사회주의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사민주의는 노동운동의 확대?발전과 더불어 발전했으며, 현재까지도 그 영향력이 적지 않다.

– 한국의 복지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한국의 복지 상황은 어떠한 특징을 갖는가? 앞서 말한 서구의 사례와는 전혀 다르다. 한국의 복지정책은 1960년대와 1970년대까지는 경제성장을 우선하는 가운데 이루어졌으며,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노동정치의 영향을 받았다. 그 뒤 IMF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분배와 관련된 복지정책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OECD 가입국 가운데 GDP 대비 복지예산 비율은 여전히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복지는 장기적으로 보편복지 시스템을 지향할 필요가 있지만, 방법에 있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노동운동의 기반이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크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복지 논쟁에서 어떤 정책이 옳은가에 대한 판단은 그들 각각의 지향과 방법을 살펴야 가능하다. 첫째 재정 확보 방법을 명확하게 살펴야 한다. 물론 현재 국가재정 구조를 개혁하는 것만으로도 복지 수준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일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장기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보편 복지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증세에 대한 부분이 반드시 설명되어야 한다. 똑같은 공약인데, 재정확보에 대한 설명이 명확하지 않다면, 현재 보편 복지론을 공격하는 주요 근거인 일본과 남미의 복지병 사례를 극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우리는 겉으로는 ‘친서민’을 외치면서 실상은 전혀 다른 정권을 경험하고 있다. 진정한 포퓰리즘은 허울뿐인 복지다.

둘째 기존 경제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개혁에 대한 의지를 살펴야 한다. 현행 복지제도만 바꾼다고 해서 바로 복지 전체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반드시 조세 개혁과 다른 구조적인 문제의 개선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증세도 기존 경제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한 채 강행하게 되면 당장의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의 반발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비정규직 일자리가 넘쳐나고 당장의 처지가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늘어난 세금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제도의 개혁은 기존 시스템이 가진 맹점을 보완하는 일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맹자는 노인을 위해 나뭇가지를 꺾는 일과 태산을 옆구리에 끼고 북해를 넘는 일에 빗대어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경우(不爲者)와 하고 싶어도 도저히 할 수 없는 경우(不能者)를 구분했다. 한국 정치는 해방 이후 줄곧 일부 편중된 정치세력의 주도 아래 역사를 거듭해왔고, 그래서 다른 형태의 정치 경험은 매우 부족하다. 게다가 당장 먹고살기 급급하기에, 정치판을 연예계 가십거리만도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무시하는 일도 적지 않다. 필자가 보기에 맹자의 말은 당시 통치권자인 군주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지금 그의 말은 변화를 갈망하면서도 허망하게 앉아만 있는 한국 국민들에게도 해당된다. 우리는 할 수 있는데 그동안의 경험만으로 변화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현실에 체념하면서 오히려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봐야 한다. 결국 정치 주도 세력의 변화도 우리에게 달려 있고, 연대로 힘을 실어주는 일 역시 우리에게 달려 있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단정할 이유가 없다. 북유럽 복지국가 건설의 원동력이 노동 운동의 결집과 세력화였다는 점을 우리는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문화복지 실현이 가능한가? [썩은 뿌리 자르기]

박선정(한신대학교 대학원 노동정책 및 사회정책(협) )

2011년 상반기 우리나라는 예술계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로 술렁였다. 첫 번째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석 달 사이에 일어난 인디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럼’의 이진원씨와 시나리오작가 최고은씨, 이 두명의 젊은 예술 작가에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이 두명의 예술가는 21세기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는 믿지 못 할 생활고로 인해 세상을 마감했다. 이러한 사건은 ‘예술은 배고프다’, ‘배고파야 예술한다’, ‘예술이 노동이냐?’ 등 아직 예술을 직업이나 노동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회적 인식과 문화산업은 고도로 발전하여 사회적으로 많은 부를 창출하지만, 그것의 기회나 분배가 결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두 번째 사건은 유명한 성악가이자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김인혜교수의 제자 폭행사건이다. 처음에는 수업과정에서의 과도한 폭력행사로 시작하였지만,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들이 인터넷을 통해 드어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예술계 내의 만연한 비리와 권력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이 두가지 사건으로 만 봐도 우리사회에서 문화?예술의 현실이 얼마나 상업적이며 비민주적인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문제와 달리, 문화의 향유를 권리로 보는 시각이 보편화 되면서 문화복지라는 큰 틀에서의 지원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1년 업무보고를 통해 ‘희망대한민국’ 프로젝트(157개사업)로 1,600만명에게 공연관람 등 문화예술 프로그램 지원, 국립박물관 무료관람, 문화?관광?체육바우처로 3년간 소외계층 78만여명에게 혜택 (문화바우처 74만명, 여행바우처 2만여명, 체육바우처 2만3천여명), 문화취약계층 대상 공연관람 지원, 5,436개 초?중?고교에 예술강사 4,156명, 1,200개 사회복지시설에 예술강사 850명 지원으로 393만명 교육 혜택 등의 문화복지 정책들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정책들이 실제로 문화소외계층에게 문화권을 얼마나 실현 시킬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실질적인 효과성을 제외하고도, 우리 사회 안에서 예술가들이 경제적 이유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권력적 구조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현실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한 문화권의 실현이 과연 어떠한 의미인지 좀 더 고민해 봐야한다.

2009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발표한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문화예술인의 창작활동 관련 월평균 수입이 ‘없음’(37.4%), ‘201만원이상’(20.2%), ‘101~200만원’(13.8), ‘51~100만원’(10.8%), ‘21~50만원’(6.9%), ‘10만원이하’(5.1%), ‘11~20만원’(2.6%)의 순서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다른 직업군과 비교하지 않고 사회일반적인 시각으로만 보더라도 평균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는 예술과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의 노동권이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것과 그로인해 여러 가지 사회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문화상품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08년 발표된 국민여가활동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최종소비지출에서 오락문화에 지출하는 비용은 2000년 약23조에서 2007년 33조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상품과 그에 따른 소비는 늘고 있는데, 문화예술을 만들어내는 주체인 예술관련 노동자는 기본적인 소득조차 보장 받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매우 비상식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 향유의 질은 누가 얼마나 좋은 문화상품을 어떠한 비용으로 소비했는가와 등가 한다. 이는 상품으로 환원되지 않는 문화?예술은 살아남기 어려우며, 비용을 치룰 수 없는 사람은 문화를 일상적으로 향유 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상품으로 환원되지 않는 문화를 생산하는 예술가는 당연히 생활고에 시달리고 문화를 상품으로만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은, 상품으로 개발되지 않는 문화는 접근조차 어렵다.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상품을 재화로 생산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통시키기 위해 권력구조에 굴복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문화?예술을 둘러싼 사회의 문제들은 문화상품의 생산과 유통, 소비라는 사회시스템과 모두 연결되어있다. 이것은 문화?예술 분야의 시장화가 예술가들의 사회보장과 사회구성원들의 문화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사회문제를 매우 단순한 정책논리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문화를 자체적을 생산하지 못하거나 구매를 통해서도 향유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러한 상품을 지원해 주면 되는 것이고, 시장에서 낙오된 예술가들은 그 대상자가 시장안에서 경쟁력을 갖추도록 단기적으로 지원하면 되는 것이다(하지만 지원을 거치고도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여쩔 수 없는 일이다.). 문화예술의 시장화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나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우리사회가 진정한 문화권을 실현하게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문화는 근본적으로 다양해야한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다른 취향을 갖고,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니는 것과 같다. 어떤 것이 좋은것이라고 강요되어서도 안되며, 일방적으로 선택된 것이 주어주는 것도 옳지 않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사회에서 다양한 문화가 건강하게 생성되고 유통되어야 한다. 이는 예술노동자들에 노동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우리 사회안에 예술 노동자들이 기본권을 보장받고, 즐겁게 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양한 문화가 만들어 질 수 있다. 다양한 문화가 생성되었다면 그것을 우리사회의 구성원이 균등하게 접근할 수 있게 유통시켜야 한다. 이는 시장을 문화?예술의 시장화의 문제에서 오는 불평등과 양극화를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정책을 통해 진정으로 우리사회의 문화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와같은 문제를 반드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것 이다.

문화는 인간이 진화하여 공동체를 이룸과 동시에 필연적으로 탄생했고 발전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삶에서 단지 본능적으로 요구되는 욕구이외에 의미를 찾는 존재이며 문화는 이러한 의미추구를 하도록 하는 핵심적 기능을 갖고 있는 만큼 삶에서 불가분의 존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문화를 통해서 정체성과 사회적 귀속감을 갖게 되고, 삶의 가치나 윤리적 규범을 익히며, 창조적 자기 표현의 기회를 갖는다. 따라서 문화는 반드시 사회적 성격을 가지며, 사람들이 공유하고 함께 누리는 삶의 터전으로 역할을 한다. 다양한 형태의 문화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독점하기 보다는 공유하고 향유 할 때 문화는 더욱 풍요로워 질 것이다.

슈퍼우먼(Super Women)을 바라는 그대들에게 [썩은 뿌리 자르기]

나래(한신대학교 대학원 노동정책및사회정책(협) 대학원생)

올해도 어김없이 참아온 ‘그 날’

개나리가 먼저 꽃을 피우기 전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날이 찾아왔다. 그 날은 바로 올 해 3월 8일에 103주년을 맞이하는 ‘3.8 세계여성의 날’이다. “임금을 인상하라!”, “10시간만 일하자!”,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 등의 요구로 시작된 세계여성의 날은 지금으로부터 103년 전 1908년 3월 8일, 미국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1만 5천 여명의 여성노동자들이 무장한 군대와 경찰에 맞서 싸운 투쟁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여성들의 봉기는 비단 미국뿐만이 아니라 유럽대륙까지 번졌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 물가가 오르자 ’주부들의 봉기‘는 점점 빈번해졌고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로 퍼져나갔다. 여성노동자들은 시장의 상품 진열대를 부수거나 사악한 상인들을 위협하는 것으로 생계비용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정부의 정책을 변화시키는 정치적 행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여성의 참정권이 필수적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와 같이 여성노동자들의 저항을 기억하고, 나아가 전 세계 여성들의 연대를 강화하고자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는 ’세계 여성노동자의 날‘을 정하기로 하였다.

이처럼 세계여성의 날은 여성들의 집단적인 저항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되었으며 이 날 이후 더 많은 여성들이 사회주의당과 노동조합에 가입을 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날은 노동자들의 국제연대를 강화하는데 기여했다. 즉 여성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싸움에 있어서 여성의 날은 필수적인 날로 자리매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여성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1908년에 시작된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여성 선거권 부여 등의 요구는 현재 전부 보장되고 있는가? 103번째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현실을 둘러봐야 한다. 목숨을 건 여성 노동자들의 싸움이 진정한 여성해방을 맞이하였는지, 아니면 더 어두운 오늘을 맞이하였는지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슈퍼우먼일 수밖에 없다?

2009년에 방영된 모 기업의 주유소 광고는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여성 정책의 목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광고의 내용은 간단하다. ‘이 세상의 모든 엄마는 가정 일도 잘하고, 아이들 교육도 잘 시키고, 나이가 들수록 늘어지는 살과 늘어나는 주름을 열심히 가꾸고, 남편 내조도 잘하고, 직장에서 일도 열심히 하는 슈퍼 우먼(Super Women)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한 명의 여성이 책임져야하는 역할이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 그리고 문제는 그냥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잘’ 해야 한다. 그래야 슈퍼 우먼(Super Women)의 칭호를 받을 수 있다. 또한 드라마나 영화, 소설과 같은 매체에서도 남편과 자식들밖에 모르는 어머니의 모습이 구태의연해보이고 한물 간 등장인물 캐릭터 같지만 여전히 많은 시청자들과 독자를 감동하게 하는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이런 여성의 상은 비단 이 광고에만 국한 되는 내용일까? 그렇지 않다. 얼마 전 모 방송국의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에 페미니즘 여성작가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공지영 작가가 출연을 했다. 어떻게 작가가 되었고 그동안 숱하게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보다 세 번의 이혼경력과 성이 다른 세 명의 아이를 키운다는 사실이 한국 사회에 밝혀지며 본인이 원하던, 원치 않던 여성들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여성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대미를 장식하는 부분에서 공지영 작가는 이야기한다. 자신이 긴 공백 기간을 접고 다시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하는 세 명의 아이를 둔 어머니였기 때문이었다고 말이다. 경제적인 문제에서 그녀 역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작품보다 이혼경력으로 더 유명해졌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다시 펜을 잡아야했던 그녀 역시도 이 시대에서 슈퍼 우먼(Super Women)임을 스스로 자처해야했던 여성인 것이다.

이처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교묘하게 결합한 한국 사회는 한없이 희생적인 어머니의 상과 노동자로서도 충실하게 기능하는 유능한 노동자의 상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결국 국가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교육 문제와 보육의 문제, 여성의 노동권 등에 대한 부분을 가족에게, 특히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자본주의 사회와 이명박 정부는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스스로 슈퍼우먼(Super Women)임을 자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여성 노동자의 투쟁은 10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현장에서의 여성들은 어떤 상황일까? 한국에서 노동시간이 10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되었고, 민주노조가 창설되었고,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부여된 오늘날이지만 노동현장에서의 여성들은 저임금, 불안정한 노동조건, 성희롱 등에 무방비로 노출된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2009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금양물류에서 벌어진 성희롱 사건은 1908년 여성 노동자들이 외쳤던 요구가 정책적인 변화만을 가져왔을 뿐 여전히 노동현장에서는 그 형식적인 정책들 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이다. 회사명만 수차례 바뀐 회사에서 14년동안 일을 했던 여성피해자는 금양물류의 남성 조장과 소장에게 수차례에 이르는 문자, 전화통화 성희롱부터 피해자의 엉덩이를 무릎으로 치고, 어깨와 팔을 주물럭거리는 등의 육체적 성희롱을 당해왔다. 결국 성희롱 사실을 알린 피해자는 사측으로부터 징계해고를 당하고 말았다. 이혼 후 세 명의 아이를 양육해야했던 피해자는 그동안 회사에서 당했던 성희롱 사실을 사내하청지회에 가입하여 제보하였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내는 등 자신이 당한 부당한 처사를 알리고 징계해고를 철회하기 위해 싸움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원청회사인 현대자동차에서는 이 사건을 외면하고 있다.

이 외에도 2007년부터 시작해 투쟁 1,000일을 훌쩍 넘긴 재능투쟁부터 진보교육감인 김상곤 교육감이 당선되었다고 숱한 화제를 뿌렸지만 실제론 임시강사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는 경기도임시강사투쟁, 하루 10시간 동안 열심히 일해도 한 달 75만원이라는 저임금과 임시직 또는 간접고용 형태로 불안정한 조건에 시달리며 일을 해야 했던 홍대청소용역노동자들의 투쟁은 103주년을 맞이한 3.8 세계여성의 날에도 여전히 계속 되고 있다.

성장과 고용, 복지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2020 국가고용전략

작년 10월 이명박 정부는 ‘성장·고용·복지의 선순환을 위한 2020 국가고용전략’을 내놓았다. 경제위기와 함께 저출산, 고령화 등에 따른 인구구조 위기에서 벗어나 성장과 고용이 동행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추진배경 아래 일자리 희망 5대 과제에 따른 고용 정책이 제시되었다. 그 가운데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 정책은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일자리를 확대한다는 목표로 다양한 추진방안이 계획되어 있다. 주된 내용은 공공부문 영역을 시작으로 민간부문까지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과 육아휴직과 연계한 시간제 일자리 창출 확대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이러한 정책은 여성들의 해방을 앞당겨 주는 정책들인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국가고용전략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동안 수없이 문제가 되었던 저임금, 비정규직, 간접고용 형태 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 없이 여성들의 가정에 대한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져야하는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그리고 국가고용전략에서 핵심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저임금과 단시간, 불안정한 노동정책은 여성 노동자들 뿐만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또 다른 피해자인 남성노동자들에게까지 확대되어 모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물가와 자녀들에게 들어가는 막대한 교육비 등을 부담하기 위해 집안 일만 잘하면 된다라는 과거의 여성과 어머니들에 대한 상은 이제 구태의연한 이미지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가정에 도움이 된다면 저임금과 불안정한 노동은 물론이고 성희롱을 참아가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에게 지금의 이명박 정부는 진정한 대안이 아닌 자본의 배를 더욱 불려줄 자본의 대안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노동과 삶의 권리를 위해 여성, 이제는 행동이다!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요구, 여성 참정권 요구 등을 내세우며 시작된 여성 노동자들의 싸움은 소름끼치도록 한국 사회에서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 그것은 비단 한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돈과 권력이 중심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1914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여성노동자의 날에는 여성노동자들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짜르의 독재 권력을 몰아내자는 요구로 확대되었다. 이처럼 103주년 3.8 세계의 날을 맞이하는 우리들 역시 이명박 정부의 반여성적 노동 정책에 대한 저항을 넘어서 자본주의 사회에 전면적으로 투쟁을 벌일 수 있는 가치와 철학을 담은 요구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3.8 세계여성의 날을 150년째 맞이하더라도, 200년째 맞이하더라도 여전히 여성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 폭력에 노출 될 것이다.

103주년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외친다! “노동과 삶의 권리를 위해 여성, 이제는 행동이다!”

오키나와(沖繩) 평화여행[시대와 철학]

오키나와(沖繩) 평화여행[시대와 철학]

김재현(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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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1월 중순 내가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인 ‘마산 YMCA 시민사업위원회’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3박4일의 짧은 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왔다. 평화답사 여행이라는 테마로 오키나와의 역사와 현실을 동아시아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체험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일본 도쿄외국어대학에서 연구년을 보내던 2004년 8월에 오키나나와의 국제(國際)대학 교내에 미군 헬리콥터가 추락한 사건이 일어나고 마을 안에 기지가 있어 위험하니 기지를 옮겨야 한다는 논의가 한참일 즈음에, 한중일 국제세미나가 있어 오키나와에 갔던 적이 있었다. 이 때 세미나에서 오키나와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들었고 당시 참가한 일행들과 함께 기지 이전 계획 장소인 오키나와의 헤노코(?野古)에 가서 잠시 미군기지 이전 반대농성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번의 여행은 오키나와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첫날 오후 나하(那覇)에 도착하여 수리성을 관람하면서 류큐왕국의 문화와 역사를 살펴보았고 이튿날 오전에는 츄라미 수족관을 구경한 후 오후에는 사키마(佐喜眞) 미술관 방문이 있었다. 사키마 미술관은 오키나와 전쟁의 참혹함과 비참함을 그림을 통해 전달하는 역사와 평화교육의 현장이다. 서경식 교수는 “역사와 평화를 성찰하는 이런 연수여행에도 반드시 예술감상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오키나와에 갈 기회가 있다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사키마 미술관을 찾아가 마루키(丸木) 부부의 대작 <오키나와 전도(戰圖)>를 관람하기”(2010. 10월 29일 한겨레신문)를 권한다.사키마 미술관에서 루오의 여러 그림들을 보았고, 마루키 부부의 대작 <오키나와 전도>(1984)를 미술관 직원의 전문적인 해설을 들으면서 관람했다. 이 작품은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에 따른 일본 주민의 집단자결(자살) 사건을 묘사한 기록화인데, 여러 곳에서 일어난 전쟁의 비극과 집단자결의 과정에서 처참하게 죽이고 또 죽어가는 인물들의 모습, 눈을 부릅뜬 사체들의 모습이 처절하고 참혹하게 표현되어 있다. 마루키 부부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오키나와전쟁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생존자들과 같이 통한(痛恨)의 현장에서 증언을 들었으므로 “저 그림은 오키나와전을 체험한 오키나와 사람들과 우리의 공동제작”이라고 말한다. 미술관 직원은 “전쟁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쟁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후세들의 교육을 위해 자신들이 맡아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확신에 찬 모습으로 설명해 주었는데 ‘불의에 순응하지 않는 미술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미술관 옥상에서 후텐마 기지를 직접 보고, 미술관의 배려로 수장고에 있던 케테 콜비츠(독일, 1867-1945)의 판화도 볼 수 있었다.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오키나와의 일본 기지를 폭격하는 미국 전투기. ⓒwikipedia.org

2. 이어서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녹색평론사, 2000), [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녹색평론사, 2010)의 저자이자 환경운동, 평화운동가로 알려진 더글라스 러미스의 강의가 같은 장소에서 있었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강의하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최근일본지도]라는 책에 있는 한 장의 지도를 보여주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의 강의내용을 간단히 요약한다.

‘이것은 소화3년(1928년)의 지도인데 류쿠(琉球, 오키나와), 대만, 조선은 이미 일본제국의 영토이고, 만주도 앞으로 일본 영토화하려는 의도가 나타나 있는 지도이다. 그리고 일본 제국의 식민지 정복은 대만, 조선, 만주에서는 결국 실패하고 오키나와에서는 성공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계속해서 오키나와는 일본에 의해 지배된 식민지라는 사실과 일본국가의 동등한 한 지역이라는 생각이 혼재하면서, 오늘날 오키나와 사람들이 일본인인지 아닌지에 대해 의견이 갈리고 있다.

오키나와인이 본토인과 다른 중요한 점은 본토에서는 ‘아사히(朝日)’, ‘마이니치(每日)’, ‘요미우리(讀賣)’신문 중 최소한 하나를 보는데 오키나와 사람들은 본토의 중앙지를 읽지 않고 ‘오키나와 타임즈’나 ‘류큐소보’를 본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오키나와인들이 일본 본토의 사람들(야마토인, 大和人)과는 분명히 다름을 보여준다.

명치유신을 통해 근대국가의 틀을 잡아가던 일본은 1879년에 류큐왕국의 국왕과 왕세자를 도쿄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류큐를 오키나와현으로 편입키는 소위 ‘류큐처분’을 단행한다. 이는 근대국가 일본의 최초의 식민지화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기점으로 일본제국의 확대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류큐사람들은 오키나와현으로 편입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이곳에 군대기지는 만들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왜냐하면 군대기지가 있으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본 본토의 매스컴에서는 중국, 북한의 미사일 때문에 미군기지가 오키나와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키나와는 일본 전 영토의 0.6%에 지나지 않는데 미군기지의 75%가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군사력 집중은 군사전략 상으로도 이해하기 어렵다. 미군기지가 전 세계적으로 700여 군데 있지만 이렇게 군사력이 집중되어 있는 곳은 오키나와가 유일하다고 한다. 미군기지는 곧 미합중국의 일부이며 미제국주의의 기지이기도 하다. 이 미군기지에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다. 노숙자(Homeless)가 없고 노인들이 없으며, 생산노동이 없다. 군대는 전쟁을 위해 존재하므로 어떤 바람직한 것도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특별한 점은 미군 안에서의 오키나와인에 대한 인식 특히 미 해병대의 1/3이 오키나와에 있는데 이들이 생각하는 또 이들의 언어 속에 있는 오키나와이다. 2차 세계대전 중 미 해병은 오키나와를 점령하였으므로 이들은 오키나와를 전리품으로 생각하여 오키나와 지배는 매우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1972년에 오키나와의 본토 반환이 이루어졌지만 미군기지는 그대로 있었으므로 미군기지에 있는 해병의 입장에서 보면 오키나와에서 나가고 싶지도 않고 바뀐 것도 없다.

일본 국민의 입장에서도 평화헌법 9조를 지키면서도 미군이 오키나와에 주둔하여 안보를 보장해 주는 것이 일본 본토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 생각은 모순적이지만 일본 국민은 이 모순을 별로 자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오키나와 사람들처럼 미군기지의 폐해와 이로 인한 전쟁의 위협을 늘 느끼며 살지는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전 총리였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는 후텐마(普天間)기지를 현외(오키나와현 바깥)로 옮긴다는 선거 공약을 하여 당선되었지만 미국과의 협상에서 결국 이를 실현시키지 못해 총리를 사임하게 된다. 일본에서 주민운동이 총리를 그만 두게 한 것은 두 번이었는데, 첫 번째는 1960년 미일안보조약 때 기시노부스케(岸信介)의 사임이고 두 번째는 2010년 하토야마의 사임이다. 두 번 다 오키나와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하토야마 총리가 그만 둘 당시 ‘일미안보조약이 동아시아 안전에 공헌하는가?’라는 여론조사에서 본토에서는60% 이상이 그렇다고 답한데 반해 오키나와 사람들은 7% 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또한 지난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 후텐마기지의 헤노코 이전에 반대하는 지사 후보들이 합쳐서 97%의 지지를 받았다. 일본 정부와 도쿄에서는 헤노코에로의 이전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고 중앙 일간지나 뉴스에서도 그렇게 보도하지만 오키나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현장인 헤노코를 중심으로 끊임없는 반대투쟁을 2000일 이상 계속하고 있다. 오키나와인들은 일본 정부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차별’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쓰고 있다. 오키나와 기지 이전 문제는 일본 국내에서 매우 민감한 문제이자 오키나와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이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오키나와 주민들을 위해서 미군기지는 철수되어야 한다.’

3. 셋째 날, 우리는 카데나(嘉手納) 기지를 방문하여 그 규모를 눈으로 확인하면서 3층 학습실에 전시되어있는 내용들을 통해서 이 미군기지가 갖는 일본 본토에서의 위상과 오키나와에서의 위상이 매우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으로 오키나와 요미탄(讀谷)촌에 있는 ‘치비치리’라는 동굴을 방문했다. 산호섬인 오키나와에는 수많은 자연동굴(일본말로 ‘가마’라고 한다)이 있는데 입구가 좁고 안쪽이 넓은 가마는 전쟁 때 주민들이 피난하였다가 ‘영미귀축(英美鬼畜)’으로 불리던 미군에게 굴욕적으로 살해당하기 전에 충성스러운 황민으로서 천황폐하를 위해 가족, 이웃, 전우끼리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한 집단자결의 장소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집단자결이 이루어졌던 이 현장에서 지역가이드연구회의 멤버인 히가료우코(比嘉?子)씨의 실감나는 설명을 들으면서 전쟁의 참혹함과 비인간성에 대해서 온 몸으로 느끼며 전율하는 체험을 했다. 특히 마지막에 “평화라는 것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우리에게도 한국에 돌아가 이러한 평화운동에 앞서달라는 부탁을 진지하게 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1945년 3월 26일에 미군이 오키나와 본도(本島) 남서쪽에 있는 게라마(慶良間) 제도에 상륙할 때 자마미(佐間味) 섬에서 ‘집단자결’이 발생했고 곧 이어 4월 1일에는 미군이 오키나와 중부 요미탄촌, 차탄(北谷) 촌을 점령한다. 이 때 요미탄 촌 치비치리 가마에서 집단자결이 일어나 140여명 중 82명이 죽었는데 그 가운데 47명이 12세 이하의 어린이였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군들은 주민들을 지키지 않았으며, 오키나와 주민들은 일본군의 황민화교육을 통해 미군에게 처참한 꼴을 당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택하였다. 부모가 아이를, 남편이 아내를, 젊은이가 노인을 낫이나 면도칼로 죽이고, 또 수류탄으로 함께 죽는 아비규환이 벌어진 것이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일본군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고 집단자살을 하였지만 사실은 이것은 일본군에 의한 강제학살이라는 측면이 있다. 동굴견학을 한 후 우리는 오키나와 남단에 있는 히메유리 탑과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에 들렀다. 평화기념공원 전시관 앞에는 오키나와에서 죽은 식민지 조선의 군인, 종군위안부, 노역자를 포함한 약 만 명의 한국인 위령탑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다같이 어둡고 슬픈 마음으로 묵념을 올렸다. 오키나와 전쟁에서 일본인 약 19만명, 미국 군인 1만 2천여명, 조선인 약 1만명이 죽었다. 일본인 중에는 일본 본토에서 온 6만5천명의 군인들, 오키나와 출신의 군인 약 3만 명과 민간인 약 9만 5천명이 희생되었다. 당시 오키나와의 인구는 50만이 안 되었다고 한다.

4. 오키나와(현청지는 나하)의 위치는 동아시아의 군사거점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필리핀의 마닐라, 대만의 타이페이, 대한민국의 서울과 일본의 도쿄를 연결하면 삼각형이 생기는데 오키나와는 그 밑변의 중점에 해당한다. 이것은 곧 오키나와가 세 개의 삼각형(도쿄-서울 -오키나와, 오키나와-서울- 타이페이, 오키나와 – 타이페이-마닐라)을 결합하거나 분단하는 위치에 있음을 의미한다. 도미노이론에서는 오키나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공산주의 침투를 막는 가장 중요한 거점이었다. 오키나와 전투가 끝난 후부터 미군의 점령 하에 있었던 오키나와는 ‘기지의 섬’으로서 대일 감시기지, 미·소가 대립하는 냉전 중에는 ‘태평양의 가장 중요한 거점’이었고 일본에 복귀된 현재에도 변함없이 미일안보의 거점 역할을 한다. 오키나와는 특히 미국의 세계전략, 특히 동아시아 전략을 반영하여 정치적, 군사적으로 이용되어 왔으므로 동아시아의 국제정치 질서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키나와에서는 동시에 이러한 국제정치적 군사적 지배, 일본 국가의 전략적 지배에 의한 ‘구조적 차별’에 저항하는 다양한 운동이 계속되어 왔다. 군대의 폭력으로부터의 해방, 여성의 인권, 환경보호, 동아시아의 역사경험, 선주민(先住民)의 권리 같은 우회로를 통해 이 운동은 국경을 넘어 넓어지고 있다. 오키나와와 한국의 관계에서는 미군기지를 둘러싼 경험이 접점이 되어 최근에 비판적 지식인 사이에 서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교류도 확대되고 있다.

5. 2009년 8월 총선에서 집권한 일본 민주당의 ‘동아시아 공동체구상’이 최근에는 일본 외교정책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강조하면서 ‘미-일 동맹’의 심화를 외교정책의 핵심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작년 6월에 취임한 칸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취임 직후 국회연설에서 “아시아를 중심으로 이웃 국가와 다양한 분야에서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장래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지만 2011년 1월 20일 도쿄에서 열린 연설회에서 “정권이 바뀌었어도 미-일 동맹은 유지 ·강화되어야 할 일본 외교의 기축”이라며 이의 ‘재발견’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경제, 인재 교류를 심화시켜 올 봄 방미 때 오바마 대통령과 21세기 미-일 동맹의 비전을 내보이겠다”고 말했다.

칸 총리의 외교정책 기조 변화는 우선 오키나와의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다 낙마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지난 해 9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우다오)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해양순시선의 충돌사건 이후 일본에서 커진 ‘중국위협론’도 칸 총리의 미국 중시 노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하지만 ‘탈아입구(脫亞入歐)’가 아닌 ‘친미입아(親美入亞)’를 내세웠던 하토야마 전 총리 중심의 민주당 외교노선에서 크게 이탈하는 칸 총리의 일방적 외교정책 노선은 당내 갈등의 또 다른 불씨가 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이명박정부의 대북한정책과 일방적 대일, 대미 외교노선으로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공동체’의 이상은 더욱 멀어져 가고 있으며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동아시아의 반전, 평화운동을 생각할 때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문제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러미스씨는 칸 총리도 오키나와 문제로 낙마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견한다. 과연 그럴까? 중국의 부상을 고려함과 동시에 미-일 사이에서의 오키나와 문제를 주목하면서 동아시아의 국제정치 질서를 이해하고, 이와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동아시아의 평화, 우호, 연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덧붙임) 이 글의 사진자료로는 사키마 미술관의 <오키나와 전도>, 치비치리 동굴, 후텐마 미군기지 활주로 등 여러 사진들이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여행을 같이 갔다온 마산YMCA의 이윤기 부장의 블로그와 허은미선생의 블로그를 찾으시면 이번 여행과 관련된 글과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속한 이야기가 싫다![시대와 철학]

내가 속한 이야기가 싫다![시대와 철학]

김범춘(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잘못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하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자기정당화(self-justification)를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자기정당화 과정에서 나와 남, 나의 편과 남의 편을 만들어내고, 서로의 이야기에서 누군가를 배제하게 된다. 이 자기정당화와 배제를 통해서 우리는 삶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 삶의 의미를 붙들고 다시 자기를 정당화하고 편을 갈라 남을 배제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고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속한 이런 이야기가 싫다.

잃어버린 10년!”도덕적 개인주의자는 자유란 내가 자발적으로 초래한 의무만을 떠맡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내가 다른 사람에게 빚이 있거나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것은 동의, 말하자면 나의 선택이나 약속의 결과이다. 따라서 나의 책임은 내가 떠맡은 일, 내가 선택하고 동의한 일에 한정된다. 이런 생각의 논리적 귀결은 참으로 단순하고 명쾌하다. “나는 김대중, 노무현을 찍지 않았다. 나는 그 정부에 동의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 정부는 나와 무관하고, 그래서 그 정부가 집권한 기간은 나에게 잃어버린 시간이다.”집권당인 한나라당 대표는 문자 그대로 집권당의 대표답다. 그는 “좌파정권 10년 동안에 나라의 여러 가지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온갖 대못을 박고 또 망쳐놓았다. 이명박 정권 2주년은 좌파정권 10년 동안의 비정상적인 국정을 정상적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한 2년”이라고 자평했다. 여기서 나는 어느 편에 있는가?

# 장면 1 : 2008년 4월22일
“저는 오늘 삼성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할 일도 많아 아쉬움이 크지만 지난날의 허물은 모두 제가 떠안고 가겠습니다. 그동안 저로부터 비롯된 특검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많은 걱정을 끼쳐 드렸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면서 이에 따른 법적 도의적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이런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2년 반 전에 차명계좌 불법자금과 삼성그룹 불법적 지배권 승계 특검 문제로 사퇴했던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2010년 3월24일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된다.”는 말과 함께 삼성 회장직에 복귀했다. 사실 여기서 ‘복귀’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복귀(復歸)는 본래 자리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는데, 이건희 회장의 복귀가 본래 자기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그건 그가 잠시 사라졌던 2년 반 동안에도 그 자리는 그의 것이었고 언제나 그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건희 회장은 “내가 스스로 떠났으니, 돌아오는 것도 내가 결정한다.”는 도덕적 개인주의를 정당화의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다. 더 인간적으로 보자면, “진심으로 사과했고, 법적 도덕적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도덕적 개인주의자 이건희 회장의 재취임, 왕의 귀환에 일제히 복귀환영이라는 깃발을 내거는 주류는 자연스레 다른 편을 만들어내었다. 그저 잠시 걱정을 끼쳐드렸던 국민 여러분이라는 다른 편을. 그는 이전처럼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기 자리에 다시 앉았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우리는 그가 갈라낸 저편으로 분리되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는 그의 짧은 재취임의 말과 함께.

# 장면 2 : 2010년 12월1일
기자 : “재벌그룹 총수신데 유독 자주 수사기관 조사를 받으신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김승연 : “내가 팔자가 센 거 아닙니까?”

부당거래를 통한 비자금 조성, 부실계열사 지원, 차명계좌 운용, 주식 차명보유, 조세포탈 혐의를 받고 있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검찰 조사에 앞서 기자와 주고받은 말이다. 한 인간의 삶의 흐름이 자신의 의지나 선택이 아니라 생년월일시의 팔자(八字)로 정해지는 것이라면 김승연 회장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 그의 말은 마치 봉건적 군왕이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를 두고서 ‘과인의 부덕의 소치’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김승연 회장 역시 이건희 회장과 다르지 않은 도덕적 개인주의자이다.

“내가 자주 수사를 받는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내가 선택하거나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수사를 받게 된 것은 팔자 때문이다.”김승연 회장은 이른바 인지부조화가 싫다. 왜냐하면 자기 판단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김승연은 도덕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마치 나를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건 부당하고 옳지 않다. 그렇다면 이건 팔자야!”이제 고통은 사라지고 고난 받는 순결한 인간이 남게 된다. 그리고 그 한 편에 운명처럼 달라붙어 그를 괴롭히는 무리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도 그냥 이렇게 저편으로 분리되고 만다.

# 장면 3 : 2010년 12월2일
“이천만원 주셨으면 때려도 된다고 생각하셨어요?”
“아니 그것보다도요, 저 때문에 이렇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져서 사회적으로 시끄럽게 돼서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렇다! 질문한 기자는 논점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그것보다 중요한 게 뭔지도 모르는 기자를 폭력행위 처벌법(집단, 흉기 등 상해)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으러 온 최철원 M&M 전 대표가 가르친다. 그는 “어이, 기자 양반. 문제는 때린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시끄럽게 됐다는 것이지.”라고 진심을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철원 전 대표 주변에서는 이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다! 이전에도 있었던 일인데, 왜 하필 지금 문제가 될까? 그는 이런 부조리, 부조화를 견딜 수 없다. 그래서 그걸 바로잡아야 한다. “결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이게 사회적으로 시끄러워졌기 때문이야. 이건 나의 폭력적이고 반인간적인 성향이 만들어내는 악순환이 아니야.”

물론 우리도 이 같은 아주 긍정적인 자기 개념을 가지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일관적이지도 뻔뻔하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최철원 전 대표는 계속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남보다 더 똑똑하고 유능하고 도덕적이며 인간적이다. 이런 나를 흔들어 놓는 무엇이 있다면, 그래서 내가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더 나아가 인간적으로 흔들려서 몹쓸 짓을 했다면, 그건 정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사업을 방해했다. 나는 잘 해결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와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았다. 나는 차마 사람을 그냥 팰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돈을 주기로 했다. 한 대 맞아주고 돈을 버는 아르바이트도 있지 않은가? 그것도 큰돈을 주었다. 나는 자존감을 지켰고, 그는 돈을 벌었다.”이런 그의 상상 속에서 우리는 또 어느 편으로 나눠지는가?

# 장면 4 : 까마득한 옛날이자 가까운 어제
예수께서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고 말씀하셨다.
자공(子貢)이 물었다. “한 마디 말로 평생토록 실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서(恕)로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己所不欲勿施於人).”

예수가 긍정의 형식으로, 공자가 부정의 형식으로 말하고 있는 이 내용은 모두 나와 남을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는 평등한 관계를 전제하고 있다. 마이클 샌델(M. J. Sandel)이라면 아마도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들의 호혜(互惠 reciprocity)나 공동선(共同善 common good)이라는 말을 더 좋아할 것이다. 그는 개인적 자유의 원심력이 사회적 공동체의 구심력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꿈꾸는 공동체주의자이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이러한 공동선이 갖는 가치를 서로 다른 삶의 태도를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날 법한 가상적 이야기로 비아냥거린다. “내가 원하는 것이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말하자면 “연쇄살인자와 마주친 극단적인 상황에서 당신은 그가 원하는 것을 하도록 허락하겠는가?”그런데 이런 물음은 예수나 공자가 말하는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이므로 논증은커녕 서툰 주장에도 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예수나 공자 그리고 샌델의 말은 일상의 작은 선택에서 비롯되는 사건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관통할 수 있는 삶의 원칙에 관한 진지한 고민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나의 선택을 통해서 내가 되기로 한 개인적 존재다. 하지만 그 개인은 동시에 선택하지 않은 사회적 조건의 영향을 받는 구속된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문제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수동적 조건과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자 하는 능동적 나 사이의 관계 형성, 정체성의 확인이다. 나의 자부심과 수치심은 이런 관계 속에서 자라고 드러나는 사회적 속성이다.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소속된 나와, 내 인생을 나의 선택으로 꾸려나가고자 하는 나. 사회구성원이라는 구속된 나와, 내 삶을 나의 가치로 살아가고자 하는 나.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자유로운 나라는 현실조건이 만들어내는 고민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가 바로 우리의 실존적 딜레마이다. 이런 딜레마를 예수나 공자, 샌델은 ‘기꺼이 부담을 감수하는 자아’를 통해 해소하고자 한다.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A. MacIntyre)는 이런 실존적 딜레마에 ‘이야기하는 자아(narrative self)’를 가지고서 설득력 있게 접근한다. 그는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은 이렇다고 말한다.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누군가는 자신을 이야기하면서 할아버지를 끌어들이는가 하면, 누군가는 부모마저 싹둑 잘라내고 시작한다. 어떤 부모는 별다른 생각 없이 자식 하나를 빼고서 자신을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에서는 잘려나가거나 빠져나가는 사람의 아픔은 자기정당화의 그늘에 가려 사라지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이전 세대, 이전 사회의 다양한 빚과 의무를 물려받는다. 운 좋은 몇몇 사람일지라도 유산과 기대만을 물려받는 것은 아니다. 2010년 한국 사회라는 내가 속한 이야기가 더불어 사는 사회구성원이라는 큰 이름과 함께 나의 이야기 속에 당연히 자리 잡아야 한다. 그 속에서 시대의 아픔을 같이 겪으면서 시대의 지혜를 함께 배워야 한다. 아버지의 이름, 어머니의 이름은 자식이 자랑스럽게 입에 올리든 부끄럽게 올리든 간에 자식의 이야기에 등장해야 한다. 자식의 이야기에서 빠져나가는 부모의 이름은 사실 나의 이름을 부정하여 나만의 나를 정당화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장면 1, 2, 3에서 느끼는 수치심과 분노는 한국 사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그리고 우리가 장면 4에서 느끼는 자부심과 공감은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수치심과 분노, 자부심과 공감은 가족과 시민처럼 ‘묶여 있는’존재가 느끼는 집단적 책임감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자신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선택과는 상관없이 도덕적으로 어떤 집단에 한데 묶여 있으며, 또 우리는 수치심과 자부심을 가진 도덕적 행위자로 만드는 거대한 서사(敍事)에 연관된 사람들이다. 그래서 내 삶의 이야기는 나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굳건해지는 공동체의 이야기에서 분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은 단지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만 책임을 지는 자유로운 존재를 넘어 기꺼이 ‘부담을 감수하는’존재여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존재이고, 우리 정체성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온 장면들은 이런 이야기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큰 이야기와 분리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그래서 각자의 이야기는 다양해지고 개인의 원심력은 커졌지만, 그 다양성과 원심력은 편을 가르면서 다른 편을 겨냥하는 칼끝에 모아지고 있을 뿐이다.

내 삶의 이야기는 남의 삶의 이야기와 맞물려 있다. 우리는 과거의 빚과 유산과 기대와 의무를 안고 태어나고, 그걸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이야기하는 자아’이다. 그 이야기에는 당연히 남의 이야기를 위한 몫과 자리가 있고, 그 몫과 자리는 내가 남의 이야기에서 가지고 싶은 것이고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이다. 도덕적 개인주의자처럼 나를 과거의 잘못과 분리하고, 또 나를 현재의 잘못과 분리하려고 하는 것은 결국 내가 얽혀 있는 과거와 현재를 부정하는 것이자 미래의 관계까지 내 입맛에 맞게 미리 짜놓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재취임에는 그의 이야기, 삼성의 위기 이야기는 있지만, 다른 한 편에 서 있는 남, 즉 국민의 이야기가 빠져 있다. 김승연 회장의 팔자(八字) 이야기에는 그의 모든 잘못이 빠져 있고, 그의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이야기가 무시되고 있다. 최철원 전 대표의 변명에는 피해 당사자의 이야기며 그 사건을 이야기하는 우리의 이야기가 빠져 있다. 자신의 이야기 속에 누군가를 넣고 빼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이다. 그런데 만약 이 말이 정당하다면, 언젠가 우리의 이야기에서 그들이 빠지게 되더라도, 솔직히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에서 그들을 빼버리더라도, 그건 우리의 선택일 뿐이다. 물론 예수와 공자, 샌델은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우리는 그 사람들이 아니다.

마이클 샌델(M. J. Sandel)은 삶에서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을 걱정하는 중요한 이유가 공동체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공감과 연대의식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불평등이 깊어질수록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삶은 점점 더 분리된다. 불공정한 사회일수록 부자와 가난한 자의 이야기가 따로 놀게 된다. 서로의 이야기에서 서로가 사라지고, 그 사라진 자리가 증오와 분노의 이야기로 채워지는 날은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날이겠지만, 아마도 그리 행복한 날은 아닐 것이다.

단군의 자손이라는 까마득한 이야기까지 나의 이야기가 될 수는 없을지라도, 십년 동안 있었던 일을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그래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는 자기정당화의 이야기는 없어져야 한다. 식민지 지배나 억압의 당사자가 아니고 한국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닐지라도, 할아버지와 아버지, 할머니와 어머니의 아픈 기억을 나의 이야기에 담아야 한다. 우리의 이야기에는 해방의 기쁨, 분단의 아픔, 새마을 운동, 폭압정권, 경제성장, 민주화운동, “잃어버린 10년”에도 나눠주는 몫과 자리가 있어야 한다.

부자가 된 가난했던 사람의 이야기며, 가난해진 부자의 이야기와 가난하게 태어나 더 가난하게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 우리의 이야기여야 한다. 그리고 자기정당화를 향하는 도덕적 개인주의자의 뻔뻔한 변명과 배제의 이야기를, 남의 불편하고 비참하고 서러운 이야기를 기꺼이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풀어내고자 하는 공동체의 이야기로 넘어서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빠져도 그만인 ‘나머지’가 아니라, 누구나 “기업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무엇이 도덕적 잘못인지, 사람은 어떻게 존중받아야 하는지” 잘 아는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정의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시대와 철학]

정의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시대와 철학]

이정은(연세대 외래교수)

 

 

유행이 되어 버린 정의(justice)

 

세상에는 지겨운 것들이 많다. 지겹다고 해서 반드시 나쁘거나 버리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듣고, 듣고 또 들으면 나중에는 지겨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현대사를 생각하면 지겹게 느껴지지만, 실상은 좋은 것이면서 실현해야 할 것이 많이 있다. 민주화, 자유, 평등, 평화, 인권, 통일, 정의 등등.

요즘 전국을 강타하면서 다시 회자되는 지겨운 것 중의 하나가 ‘정의’(justice)이다. 그렇게나 실현하고 싶었던 것이 정의인데, 왜 지겹게 느껴지는가? 지겨운 것이 다시 전국을 강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의가 전국을 강타하게 된 계기는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번역 출판 때문이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휴가를 갈 때 이 책을 들고 갔다고 한다. 그러나 더 결정적 이유가 있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그렇게나 정의를 부르짖고, 그렇게나 정의를 위해 헌신하면서 무수히 희생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부정의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나마 이루어 놓은 사회 정의마저 후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부정의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재발하고 있다. 마치 부동산 투기를 잡으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오히려 투기를 조장하는 것처럼, 때로는 부정의가 정의로 둔갑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정의가 지겹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휴가 때 샌델의 책을 들고 간 행동에 걸맞게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 국정 지표를 ‘공정한 사회’로 결정했다고 한다. 국민이 정색을 하면서 반겨야 할 결정인데, 왜 이리도 지겹게 느껴진단 말인가?

부정의한 대통령이, 부정의를 은폐하는 대통령이 오히려 정의를 기치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BBK사건에서부터 병역 문제까지 해명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 사정을 받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사정의 칼을 뽑은 셈이다.

4대강 사업 때문에 농토를 갈아엎어 생긴 배추파동을 해결한답시고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김치를 먹으라고 하니, 그가 어떻게 정의를 내세우는 사람이라 하겠는가? 자신이 마치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라고 말한 마리 앙트와네트라고 착각하는가 보다.

정의의 의미가 묘연하다

 

부정의를 정의로 둔갑시키는 논리는 일찍이 소피스트 시절에도 있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정의’라는 주제로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전개하고 이를 통해 정의관과 가치관의 차이를 보여준다. 소크라테스가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묻자,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를 ‘강한 자의 이익’, ‘강한 자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부정의(불의)는 ‘약한 자의 이익’, ‘약한 자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다. 트라시마코스의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소크라테스는 트라시마코스가 범하는 모순을 찾아내고 유도해 간다.

어처구니없는 소피스트 정의관이 대통령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뒤늦게나마 정의를 세우겠다고 마음먹었다니, 박수치면서 환영할 일이기도 한데, 왜 박수는 치지 않고 지겨움만 얘기하는가? 그의 발언 자체가 순수하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한 사회를 내세우는 그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불순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정의관의 내용이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의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강하고 가진 자가 약하고 못가진 자를 괴롭히고 그들의 것을 빼앗는 것을 막는 데 활용된다. 정치 권력이든, 경제력이든, 문화 권력이든,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부당하게 다룰 때 작동시켜야 하는 올바름이 정의이다.

그에 비해 한나라당 김희정 대변인은 공정한 사회의 구체적 내용을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회’,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 ‘사회적 책임을 지는 사회’로 규정한다. 이 속에서 모아지는 핵심 쟁점은 무엇인가? 창의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용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동안 끊임없이 강조해온 무한 경쟁의 논리가 함축되어 있다. 어떻게든 열심히 해서 성공하라고 한다. 성공하려면 창의적이어야 하고, 창의적이라는 것은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정의롭게 사는 것은 경쟁력이 있어서 성공하고 그로 인해 부를 거머쥐는 것으로 변질된다.

정의의 꽃은 사전, 사후 분배 정의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정의와 관련하여 논쟁점이 되었던 것은 성공이나 무한 경쟁보다는 ‘분배 정의’였다. 그러나 분배는 경제 활동 이후에 행하는 ‘재분배’처럼 ‘사후 분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재분배만을 분배 정의로 오해하는 것도 오랜 관행이다.

이와 달리 활동 이전에 주어지는 ‘기회의 분배’도 분배 정의에 해당된다. 사전 분배나 사후 분배 모두 분배의 공정성을 내포한다. 그런데 사후 분배만을 분배 정의로 강조하다 보니, 가진 자의 것을 뺏어서 없는 자에게 나눠준다는 식의 재분배만 부각되고, 그래서 마치 재분배는 경쟁력이 없는 자가 경쟁력을 기르기보다는 경쟁력이 있는 자의 정당한 대가를 부당하게 취득하는 폭력이라는 식으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자들을 양산하게 되었다.

개천에서 용이 나게 하려면 사전 분배에서부터 공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강한 자가 약한 자의 기회를 가로챌 때도, 가진 자가 없는 자의 결과물을 빼앗아 갈 때도 모두 사전 분배의 불공정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사전 분배가 잘못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하고 용이 된다는 말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불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개천이라면 그 뒤로 이어지는 공정성은 이미 불공정에 물들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우리는 재벌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이제 사전 분배의 불공정은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에 부장검사가 청탁 대가로 고급승용차를 받았지만 법조계에서는 무혐의로 처리되었다. 경제뿐만 아니라 법조계에도 분배 부정의가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외교부 고위 공직자 자녀들을 특채한 사례들 때문에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사후 분배를 논하기 이전에 사전 분배에서부터 불공정이 작용하고 있다.

분배 정의를 실현하고 싶은데, 출발부터 정의롭지 못한 개천이라면, 그런 개천에서는 아무리 뒹굴어도 높은 경쟁력을 가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무한 경쟁을 한들, 창의력을 아무리 발휘한들, 출발점에서 지니는 낮은 신분 – 재벌이 아니라는, 법조계 인사가 아니라는, 고위 공직자가 아니라는 태초의 원죄 – 이 작동하여 나머지 과정에도 불공정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권리 분배도, 의무 분배도, 기회 분배도, 소득 분배도, 재산 분배도, 공직 분배도, 명예 분배도, 권력 분배도 모두 문제를 야기한다.

기회의 분배 정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서, 무슨 무한 경쟁을, 무슨 경쟁력을, 무슨 성공 시대를 요구하고, 무슨 재분배 부당성을 지적하는가? 이 속에서 낮은 신분이 성공하고 싶다면 누구처럼 ‘강한 자’에게 들러붙어서 강한 자의 이익에 봉사하는 방식을 취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 앞에서 무슨 공정 사회가 가능하겠는가?

공생을 망각하는 정의관은 버려라

 

정의는 본래 혼자 실현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혼자서만 잘 살겠다고 난리를 펴서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다. 정의가 언급되는 순간, 우리는 이미 타인과 관계하는 공동체 속에 있으며, 끊임없이 타인과 부딪치고 소통하면서 나아간다.

개천에서 배출되는 용은 혼자서 용이 되지 않는다. 타인과, 공동체 구성원과 상호 작용하면서 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을 때 가능하다. 자기 혼자 잘나서가 아니라 공존, 공생 구조를 잘 실현해서 용이 되며, 정의 또한 공존, 공생의 정신을 지닐 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 사전 분배이든 사후 분배이든 공존 가능성을 배면에 쥐고 있는 것이 정의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무한 경쟁의 개천에서 성공한 자만을 공정성을 실현하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결국 경쟁을 통해 성공하라는 것이고, 성공함으로써 얻게 되는 부를 누리라는 것이다. 분명 여기에는 물질만능주의가 깔려 있고, 물질 만능을 실현하기 위해 실용주의를 견지하라는 강요가 숨어 있다.

현 정부는 약한 자의 이익은 안중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출발부터 약한 자의 이익과 기회를 가로채는 부정의, ‘분배 부정의’가 만연한 사회를 지향한다. 그런데도 오히려 왜 기회를 주는데도 성공하지 못하는가를 질책한다. 현 정권의 정의관을 바라보면 다음과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세상에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못 살 수가 있지! 열심히만 살면 다 부자가 되는데!”

“나를 봐! 열심히 사니까 이렇게 부자가 됐잖아. 이 게으름뱅이들아!”

“열심히 사니까 권력까지 얻었는데, 그 사이에 너희들은 쓸데없는 일에 소일하다가 시간만 낭비했구나!”

그래서인지 청와대 대변인의 정의에는 사회적 약자에 관한 언급은 없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라는 소리가 높아지면, 마치 부지런한 자의 당연한 권리와 정당한 소득을 게으름뱅이들이 빼앗아가는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들은 분배 정의를 주장하는 자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치부한다.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온 한국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사전 분배조차 정립되지 않은 한국 사회, 정의관조차 왜곡하는 현 정부를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아마르티아 센 교수가 규정하는 빈곤의 의미를 인용하고 싶다.

“내가 원하는 가치있는 삶을 선택하고 추구할 능력이 현실적으로 없다면 그것이 바로 빈곤이며 자유와 평등이 구현되지 못하는 상태”이다.

이러한 의미의 빈곤은 사회 불의, 사회 부정의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정의가 유행이 되어 버린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여전히 빈곤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상지대 사태가 보여주는 우리의 퇴행사회[시대와 철학]

상지대 사태가 보여주는 우리의 퇴행사회[시대와 철학]

최종덕(상지대교수, 철학)

 

요즘 국내 정치적 현안 가운데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것을 들라치면 뭐니 뭐니 해도 막무가내로 강행하는 4대강 개발사업과 억지와 의혹 가득한 천안함 사태 및 부동산 문제이다.

그 다음으로 친다면 매스컴에 부각되고 있지는 않지만 상지대 사태를 들 수 있다. 왜냐하면 상지대 사태는 어느 한 사립 학교의 내부 문제가 아닌 현 정권의 비상식적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퇴행사회의 시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지대학교 정이사 선임과정에서 드러난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온갖 불법 행위는 사학재단의 현주소와, 나아가 대한민국 위정자들의 교육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1. 상지대 사태의 전모

김문기는 상지대학교 설립자가 아니다

상지대학교 사태를 간단히 요약해보자. 1962년 원홍묵 선생은 청암학원의 이름으로 상지대학교 전신을 설립하였다. 그 후 1974년 설립자로부터 학교재단을 인수한 김문기 씨는 학생들의 등록금을 기반으로 온갖 비리를 저지르면서 상지학원을 전횡했다. 김문기 씨와 그 주변세력은 등록금 유용, 교수채용 비리와 부정입학은 물론이거니와 당시 총학생회 학생들을 불온삐라 제작살포자로 모는 용공조작까지 했을 정도로 교육비리의 백화점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문기는 상지학원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대학을 자신의 권력 횡포지로 삼았다. 이 사실은 그가 20여 년 가까이 정식 이사회를 개최한 적이 없었다는 점으로 잘 드러났다. 이런 다수의 불법적 행위로 인해 결국 김문기는 1993년 교육부에 의해 이사 자격 원인 무효 판정을 받았다. 대법원은 같은 해 그를 복합적 교육 비리로 무려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 이후 그는 과거 역사를 조작하여 자신이 상지대학교의 설립자라고 우겨왔다. 그나마도 2004년 대법원은 김문기를 상지대학교 설립자가 아닌 것으로 최종 선고했다. 결국 대한민국의 법은 김문기가 상지대학교에 대하여 그 어떤 권리 주장을 할 수 있는 자가 아님을 공표한 것이다.

사분위는 초법적 기구이다

그 후 2007년 사학이 개인의 사적 재산권 영역이 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사학법이 개악되었다. 쉽게 말해서 김문기 씨와 같은 교육비리 전과자들도 사학을 점유할 수 있게 약간의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는 뜻이다. 그 준비단계로 종전 국회는 법적 기구인 사학분쟁조정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줄여서 사분위라고 하는데, 사분위 초기에는 요즘 흔히 말하는 공정한 인사로 위원회를 구성하려고 한 흔적도 보였다.

그런데 현 정권들어 제 2기 사분위가 재구성되면서, 사분위는 그나마 있었던 소수의 공정한 인사들을 내몰고 사학의 사적 재산권을 주장하는 편향적 인사들로 채워졌다.

2기 사분위는 2010년 들어 많은 결정을 했다. 소위 분쟁 중인 사학을 정상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사학의 재산권자를 만들어 주기 위해 초법적 권력을 행사했다. 사분위는 원래 사학의 구재단 인사에게 학교를 돌려주어야 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김문기 같은 경우에는 재단 설립자 자격이 없다는 헌재의 판정이 나오자, 사분위는 웬 뚱딴지 같은 ‘종전 이사’라는 용어를 도입하여 끊임없이 과거 비리 교육집단을 옹호하고 나선다. 이런 방식으로 사분위는 상지대를 비롯하여 조선대, 영남대 등을 비리로 점철되었던 과거로 회귀시켰다. 대구대, 광운대, 덕성여대 등도 진행 중이다.

상지대의 경우 정이사 구성을 최악의 상태로 만들어갔다. 김문기 측 종전이사 추천 4인, 교과부 추천 2인, 정식으로 추천도 하지 않은 상지대 측 추천으로 2인, 그리고 임시이사 1인으로 상지대학교 정이사를 그들 마음대로 결정해 놓았다. 이사회 반수 이상을 종전 이사 측에게 줌으로써 사학 학원법인의 의사결정권을 그들에게 쥐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김문기 씨 아들을 이사로 선임하는 등 북한의 김정일 세습정권과 같은 전형적 악습구조를 공공교육 기관에 뿌려놓았다.

정상화된 상지학원을 김문기에게 고스란히 바치고자 사분위는 초법적 결정을 하였다. 그래서 사분위는 17년 동안 평화롭고 안정적이었던 많은 대학을 다시 구렁텅이로 빠트려 놓은 분쟁 조장의 원흉이 되었다.

상지대와 시민사회는 끝까지 저항한다

학생, 직원, 교수, 동문 등 모든 상지대학교 구성원은 일치단결하여 김문기 사학비리세력의 학원 복귀를 반대하며 일 년여에 걸쳐 농성을 해왔다. 원주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도 비상대책위를 구성하여 지역사회의 자존심과 명예를 잃지 않기 위하여 공동투쟁하고 있다. 특정 대학교,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는 시민의식이 고취되면서 전국적으로 ‘비리재단 복귀반대 대학 대책위원회’, ‘비리재단 복귀반대 학생 공동대책위원회’, 및 ‘비리재단 복귀저지와 상지대지키기 긴급행동’ 등의 사회단체가 구성되어, 비리세력 복귀반대 운동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불행히도 그런 목소리를 철저하게 외면하는 것이 사분위이며, 사분위의 그런 분위기를 선도하는 것이 교과부 및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여당 국회위원들의 참모습이다.

속기록까지 폐기하는 불법이 횡행한다

이러한 어마어마한 폭거를 진행하면서도 2기 사분위는 그동안 한 차례도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기자들을 위한 요약문만 공지했을 뿐 기록 자체를 공개거부한 사분위는 정말 총리실이나 청와대 회의실에서도 생각하기 어려운 무소불위의 최고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이다. 공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할 수 없기 때문에 숨긴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불법이 자행되고 있었다. 상지대 정이사 선임 관련 최근 속기록 자체를 폐기했다는 교과부의 답변이 있었던 것이다. 최악의 불법적 행위가 백주 대낮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위법 행위가 공공성의 심대한 파괴라는 상식조차 아예 무시하고 있다. 아무리 불법이라도 억지를 쓰면 다 넘어가는 요즘의 정치 현실에 막연한 기대를 하고 그런 위법행위를 행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교과부는 잘못된 상지대 정이사 선임 처분을 즉각 취소하라는 시민사회의 주장을 회피하고 있다. 교과부는 오히려 사분위의 잘못된 결정을 조장하고 있다. 교과부 사분위 담당부서는 9월 8일 민주당 등 야당 교과위원들의 자료 제공 요구에 대해 공문을 보내 “51∼52차 전체회의 속기록은 사분위 결정에 따라 폐기되었다”고 밝혔다.

사분위가 폐기한 것으로 알려진 해당 속기록은 지난 4월 29일 열린 51차 회의와 6월 29일 열린 52차 회의다. 51차 회의에서는 정이사 선임 관련 추천 비율에 대한 결정을 내렸고, 52차 회의에서는 이 결정에 따라 정이사를 추천하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9월8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가 열렸다. 그러나 사분위와 교과부는 야당 위원들의 당연한 요구를 완전히 무시해 버렸다. 회의록 공개는 커녕 속기록을 폐기했다는 뻔뻔한 답변이 왔을 뿐이다. 책임자인 사분위 위원장이나 전 교과부 장관 역시 증인출석을 거부했다. 말 그대로 그들은 안하무인이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중이다.

사분위 결정은 무효일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으로서 법에 정한 기록물 보존기간을 준수해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임의로 회의록을 폐기하는 것은 초법적 권력의 대표적인 위법이다. 속기록 폐기는 국가기록물관리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으로 형사 처벌감이며 해당 교과부 장관과 담당 간부, 사분위원장, 사분위원 등이 고발대상이지만 그들은 정권의 무한권력에 취한 채 무작정 밀어붙이고 있다.

그들의 막무가내 행정의 결과는 대한민국 교육의 역사적 파행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불행한 사태의 핵심이다. 상지대 회의록 비공개 그리고 속기록 폐기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사분위의 의결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자 대상 요약본이 실제의 회의 내용 결과인지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과위 소속 여당 위원들은 “교육 현안이 무척 많은데, 민주당이 사사건건 상지대 사태를 걸고 넘어져서 회의를 방해받고 있다”고 말하면서 사학비리의 온상을 더 키우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상지대와 같은 반발의 요소 자체를 싹부터 싹둑 자르거나 혹은 아예 조금도 반발할 수 없을 정도로 현행 사학법마저도 바꾸려 한다. 2007년 개악된 사학법을 더 개악하여 그들이 원하는 공공성이 부재한 사학의 사유화를 안정적으로 보장하려는 속셈이다.

 

2. 퇴행사회의 특징

 

상지대 사태는 교육계 기득권자들의 몰상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불행한 사건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교육 마피아들이 학교 운영권을 초법적으로 탈취한 상지대 사태는 상지대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학의 퇴보와 대한민국 민주화의 퇴행이라는 병증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사회적 병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상식을 회복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사회적 상식, 정치적 상식이나, 나아가 윤리적 상식이 모두 무너지고 있는 현장이 상지대이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 정치적 민주화를 정착시키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주변에 횡행하는 불법과 비상식을 눈감고 넘어가는 무임승차 의식을 버려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악화가 양화를 축출하는 그런 퇴행사회가 자리잡게 된다.

실은 이미 한국사회는 그런 퇴행적 관행이 자리잡은 불행한 병증을 보이고 있다. 퇴행사회는 다음과 같은 몇몇 전염병적인 공통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퇴행사회는 사회의 민주적 기반을 강제적으로 붕괴하려 한다.

과거 비리집단이 사학을 다시 장악하면서 학생이나 교직원 할 것 없이 종래의 민주적 학교 구성원들을 보복하기 위한 근거없는 고소 사태들이 무수히 벌어지게 될 것이다. 나아가 퇴행에 공조하는 해당기관은 기존 학교에 대해 각종 억지 감사를 무자비하게 실시할 것이다. 어떤 방식이든지 과거 민주적 조직에 대해 해코지를 하려 할 것이다. 그래야만 그들의 설 자리를 확보한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민주 집단을 붕괴하기 위한 비리집단의 자기 합리화를 위해 강행할 수순이 될 것이다. 작년 문화체육부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등 관련 부서 인물들을 강제로 교체시킨 일이 그 사례이다. 비상식적 집단에 의해 자행되는 이러한 초법적 사태는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 일종의 정치적 타살에 해당하는 일이 백주대낮에 벌어졌으며 앞으로는 그 이상의 비상식적 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것이 그들의 공통된 전염병적 병증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양화의 가치를 떨어트리기 위해 악화의 분포를 최대화하려 한다. 결국 그들은 양화가 정말 양화가 아닌 양의 껍질을 쓴 최고의 악화라고 가짜선전에 광분하게 된다. 전교조를 빨갱이로 몰고 가고 싶은 그들의 속셈은 전형적인 악화의 광분에 해당한다.

둘째, 퇴행사회는 비상식을 상식화한다.

왕조의 왕권 승계하듯, 김정일의 정권 승계하듯, 기업의 소유권 승계하듯, 사학 역시 자손이 사학재단의 소유권을 승계해야 한다고 버젓이 천명하는 것이 바로 우리 한국사회의 퇴행적 자화상이다. 악화의 주범인 그대들이 좋아하는 미국사회에서 이런 발언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학이 많은 미국사회에서도 사학의 공공성은 제일의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자본주의의 천국인 미국사회는 자본의 권력이 자본증식의 범주 안에서 최대화하려는 자본의 내적 가치에 충실한다. 쉽게 말해서 돈을 벌고 싶다면 기업을 통해서 돈을 벌어야지 학교를 세워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자본주의의 천국인 미국에서조차 상식화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에서는 학교를 세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너무 많다. 퇴행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정운찬 전 총리가 서울대학교 총장으로 있을 때 그는 학생들을 솎아 내는 일이 바로 입시교육이라는 무시무시한 발언을 했었다. 문제는 정 전 총리만이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생각이 많은 기득권자들의 생각과 일치된 결과일 뿐이며, 예를 들어 강남 특구지역 땅부자들의 교육관과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비상식이 상식으로 전도되는 퇴행사회의 단면이다.

셋째, 퇴행사회는 이념을 도구화한다.

퇴행사회는 보수와 진보, 좌우의 이념대립과 무관하게 기득권자의 사적 이익의 최대화만을 목표로 한다. 그들은 그러한 목표 외에 모든 공적 가치들을 무시하려 한다. 물론 겉으로는 그럴듯한 공공적 표어를 내세우기는 한다. 그러한 수순의 전략적 절차로서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대립관계를 극한적으로 약용한다.

그들은 신자유주의를 목청 높여 외치지만 주변상황이 그들의 이해관계와 상충될 경우, 기존의 자유 시장질서조차 드러내놓고 비난하면서, 자신의 이익에 맞춰 시장이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지대학교를 비롯한 많은 과거(의) 비리 사학재단들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사례이다.

비리 사학재단들은 개인의 이익을 탐하는, 그냥 비리의 집단일 뿐이다. 비리와 부정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비판하는 건강한 사람들에 대하여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거나 심하게는 빨갱이라고 몰거나 혹은 전교조 악마라는 등의 온갖 현혹적 수식어를 갖다 붙인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비리를 마치 이념적 대립, 정쟁적 충돌의 부작용으로 비춰지도록 주변 전략을 실행에 옮긴다.

요약한다면 퇴행사회의 중요한 특징은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그냥 자기집단적 이익에 눈먼 자들이 권력을 장악한다는 데 있다.

상지대학교는 이런 단면들을 모조리 안고 가는 불행한 운명에 처해있다. 그러나 그것은 운명이 아니라 만들어진 조작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교육은 억지의 조작이 진실을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배우는 데 있다. 우리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념의 허상, 비상식의 전염이 득세해가는 퇴행사회에서 여전히 마취상태로 살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깨어 일어나 건강하게 살 것인지를 굳이 묻지 않고서도 우리와 후손의 행복을 찾아 당당한 행보를 할 것이다.

 

천박한 시대, 보수에 대항하는 진보의 정치[시대와 철학]

은폐된 진실, 선이 아니라 욕망이라는 문제

1990년대 초?중반 정태춘은 그의 노래 ‘건너간다’에서 우리 시대를 “천박한 시대”라고 규정했다. 한국의 90년대 초?중반은 80년대의 민주화와 컬러 TV의 보급으로 10대가 소비의 핵심적인 주체로 부상하는 등 대중소비사회의 형성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차이와 개성, 쿨함 등 자신의 욕망에 대한 솔직함이 미덕이 된 것도 바로 이 시대였다. 이 도도한 물결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96년 경제위기도, IMF 구제금융 신청도 이것을 막지는 못했다. 바야흐로 소비 욕망은 80년대 대처와 레이건으로 표상되었던 신자유주의적 광풍을 자신의 몸에 내면화했다.

지난 2007년 대선에서 한국의 보수들이 주창했던 ‘잃어버린 10년’은 흔히 도덕과 법으로 상징화되는 보수의 부활을 가져온 것이 아니다. 정확히 그것은 근대의 사적 소유에 기반하고 있는 이기주의와 개인적 성공이라는 사적 욕망의 부활을 의미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신화’로 변주된다. 마치 이번에 진행된 개각에서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태호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그는 농민의 아들, 소장사의 아들로 태어나 1998년 경남도의원에 당선되었고 2004년 6?5재보선에서 최연소 경남도지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명박정권은 이번에 다시 그를 김종필 이후 최연소 총리로 지명함으로써 대선의 신화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성공신화에는 항상 감추어진 이면이 있다. 이명박대통령 본인의 BBK에서부터 고소영 내각까지, 그리고 심지어 ‘떡검’, ‘떡찰’에서 시작하여 ‘색검’과 ‘색찰’로까지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그러하다. 강남의 화려한 네온사인에 취해 흥청거리는 사람들의 시선 깊숙이 은폐된 밀실의 공간에서 진행되는 다른 한편의 욕망은 언제나 진실의 다른 한 면일 뿐이다.

그래서 그것은 성공한 자들이 누리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결코 드러나지 않는 진실일 뿐이다. 총리로 지명된 김태호 또한 그러하다. 그 또한 이명박대통령처럼 ‘박연차 게이트’의 관련자로서 구설수에 오르내리며 이번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출마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다. 이미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공식은 여기에서도 여전히 작동한다. 한편의 성공신화에 이 정도의 구설수가 없겠는가?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능력의 징표라고 말한다. 그래서 드러나지 않은 위반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위반은 필연적이고 항상적이며 중요한 것은 그 위반을 감추는 능력,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래서 자신을 ‘선’으로 가장(假裝)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사는 삶에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차악을 감추는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삶에서 ‘절대선’은 없다. 문제는 삶을 선으로 치장하는 우리의 능력이다. 따라서 문제는 ‘선’이 아니라 ‘욕망’이다. 그것도 우리의 ‘소비욕망’이다.

현대적 보수주의, 외설적인 아버지의 선

오늘날 한국의 보수만이 아니라 미국의 보수도 정확히 이것을 알고 있다. 오늘날 보수주의자들은 현실의 변화에 진보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며 계산적이다. 그들은 어차피 도덕과 법이라는 것이 현실에서 무능하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그들은 기존의 도덕이나 법을 지키고자 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오늘날 변화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욕망을 치장하는 법과 도덕의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보수주의자들에게 관념적으로 지켜야 할 전통적인 가치나 법 따위는 없다.

반면 오늘날 무수한 지식인들, 특히 윤리학자를 포함한 철학자들, 흔히 맑스주의자는 아니지만 양심적인 진보적 지식인들은 바로 이 지점을 공격하면서 ‘전체주의’의 공포와 사물화의 즉자성을 환기시키면서 사유와 태도 양식의 변환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변화하고 있는 세계상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이 지점에서 ‘보수’는 진보보다 더 진보적이며 현실적이다. 왜 그런가? 오늘날 세계상은 이전과 전혀 다른 차원에서 현대사회를 지탱해왔던 모든 삶의 양식들을 해체 또는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변화의 차원은 정치-경제-문화-윤리적 양식들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방식들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근대사회의 정치-경제-문화-윤리적 양식들은 ‘소유권’에 기반하고 있다. 여기서의 소유권은 이미 로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자기 자신의 인신적 소유에 근거하고 있는 자기 노동에 따른 것이다. 사적 소유권은 자신의 인신이 투여된 노동에 근거한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상은 이런 소유권을 해체하고 있다. 한편으로 과학기술혁명에 따른 생산의 자동화와 정보화가 죽은 노동에 의한 산 노동의 지배를 전면화하며, 다른 한편으로 물리적인 시?공간의 제약을 넘는 다양한 네트워크들의 전면적인 접속망의 창출은 국경과 지역을 넘으면서 공장이라는 경계를 넘는 생산의 사회화를 전면화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윤리적 가치와 전통적인 삶의 양식들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불확실성과 가변성이 전면화하고 사람들은 ‘불안’을 넘어서 적이 명확하지 않는 ‘공포’, 바우먼이 이야기하는 실체가 모호한 기괴한 대상에 의한 공포 속에서 시달리고 있다. 여기서는 불안을 야기하는 대상 자체가 모호하다. 국가도, 지방정부도, 기업들도 모두가 현재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점에서 보수주의자들은 더 이상 과거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자들이 아니다. 단지 이 상황에서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이미 해체되어 버린 근대적 소유권이다. 그들이 근대적 소유권을 지키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특정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그들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와 지배력은 그것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그들은 지키고자 한다. 그것은 변화된 현실 속에서 만들어진 죽은 노동에 의한 산 노동의 전면적 지배력을 가지고 생산의 사회화를 사적으로 전유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법적으로 그것을 확립하고자 한다.

경제적 강제력이 아닌 소유권의 경제외적 강제력의 부활! 이것이 바로 오늘날 보수주의자들의 법 속으로 돌아온 외설적인 아버지라는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무한 복제가 가능한 카피본에 대한 지적 소유권이 그러하며 공적 자금 지원으로 이루어진 연구결과에 대한 사적 소유권 보장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것은 1960년대에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예를 들어 1962년 펜실베이니아대학 연구소는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WI-38이라는 세포주를 유도하고 특허를 출원했다. 그러나 이것을 주도했던 헤이플릭은 연방정부의 재산을 훔친 혐의로 기소되었다.

반면 1980년대 이후 미연방정부는 연방자금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발명과 발견들에 대해 특허출원을 허용하는 각종 법안, ‘베이돌법’, ‘스티븐슨 와일더법’, ‘연방기술이전법’ 등을 통과시켰다. 따라서 오늘날의 보수주의자들은 명백한 당파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 오늘날 진보주의자들의 위기는 그들이 철저하게 당파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전히 과거의 가치와 양식들을 고수한다. 관념적인 것은 보수주의자들이 아니라 진보주의자들이며 소위 관념과 가치-문화를 강조하는 관념론자들이 아니라 물질-현실-육체를 강조하는 유물론자들이다.

오늘날의 진보주의자들은 소심한 전통주의자들이며 급진주의자들은 히스테릭한 관념론자들일 뿐이다. 그들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못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회의하며 기껏해야 ‘소통’, ‘협치’, ‘공정성’ 등등의 추상적인 가치들을 고수하고자 할 뿐이다. 따라서 그들은 결코 보수주의자들을 이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정치가 아니라 정치를 가장한 낡은 가치들만이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욕망, 진보주의자의 길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진정한 문제는 오늘날 진보주의자들이 더 이상 진보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진보적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진보가 이미 낡은 패러다임 위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본주의와 세계상은 변화했다. 그것은 더 이상 자유주의로는 가능하지 않은 새로운 정치지형을 창출했다.

그러나 오늘날 진보주의자들은 여전히 월러스틴이 이야기하는 자유주의 헤게모니에 의해 포획되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오늘날 대부분의 진보주의적인 정치는 여전히 로크적이거나 루소적인 사회계약론의 모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응하는 좌파의 정치적 양식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으로 정치적인 것은 아니다.

한편에서는 제도적인 것들 속에서의 투쟁이, 다른 한편에서는 제도를 벗어난 반제도적인 투쟁이 전개된다. 하지만 그것들 중 어느 것도 현재의 세계상이 보여주는 한계와 틈새들을 적극적으로 확장하면서 이를 넘어서고자 하지 않는다. 사유는 초월적인 외재성의 영역 속에서 이루어지거나 아니면 내재성 그 자체의 표현력과 자생성에 주목하는 차원에서 멈추고 있을 뿐이다.

진보주의자들은 ‘현행적인 것(the actual)’ 속에서 재현의 정치를 반복하거나 아니면 ‘잠재적인 것(the virtual)’ 속에서 삶의 정치를 반복할 뿐이다. 민주노동당은 의회-제도 내에서의 좌파적 기득권을 이용하여 ‘통일’을 가장한 ‘패권’을 행사할 뿐이며 ‘자유주의자들’과의 야합을 생산할 뿐이다. 반면 민주노동당에 대응하는 좌파들은 각기 가족적 집단성과 이데올로기적 선명성 경쟁을 할 뿐이다. 그들 중에서 진정으로 짐을 지는 자는 없다.

오히려 오늘날 이 짐을 적극적으로 짊어지고 가는 자들은 보수주의자들뿐이다. 보수주의자들은 대중의 욕망을 자본의 욕망으로 전환시키는 ‘소비욕망’의 코드 속에서 그들의 욕망과 공포, 불안을 포획하는 정치를 창출하는 데 거침이 없다. 여기에 진실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정치는 ‘진실’을 생산한다.

진보주의자들은 이것에 대응하여 기껏해야 그것은 ‘거짓이야! 당신은 속고 있는 거야!’라고 소리칠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 대중의 욕망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삶을 사는 대중들에게 욕망은 사회 속에서 자기 가치를 실현하면서 자기 존재의 긍정성과 역동성을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그 어떤 비전도, 힘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짐을 지지 않는다. 그 짐은 추호의 흔들림도 죄악이 될 수 있는 결단과 선택을 요구한다. 마키아벨리가 이야기했듯이 정치란 권력의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도덕과 윤리가 이것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현실적이어야 하며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의 변화된 세계상과 자본주의적 시스템이 드러내는 한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본의 한계는 자본이 생존하기 위해서 기댈 수밖에 없으면서도 결코 그 안으로 온전히 포섭할 수 없는 것, 즉 노동과 자연에 있다. 노동력의 재생산은 언제나 노동의 형태로 재생산되며 자본의 에너지원은 자연이다. 이런 점에서 진보주의자들이 새롭게 기획해야 할 정치는 이 양자의 틈새, 간격, 모순을 드러나는 바로 이 지점이다.

오늘날 대중들은 소비욕망에 포획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풍요는 빈곤과 결핍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욕망이 소비욕망으로 전치되는 것은 그들의 욕망이 불순하기 때문이 아니다.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없는 사회, 그래서 소비욕망이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고 사회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방식이란 다른 무엇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학구연한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사유의 방식과 마음, 가치에 대한 태도를 바꾼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회가 이기적이 된다고, 그리고 노조가 실리화된다고 비판함으로써 이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 다른 사회의 가능성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요구되는 정치이다.

희망의 정치, 레닌을 반복하기

권력의지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이명박대통령을 비롯한 지배세력들의 정치와 진보주의적 정치는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은 형식이다. 진보주의적 정치가 대중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공동체적 자치권력을 생산한다면 보수주의적 정치는 대표-재현의 정치를 생산한다. 이 점에서 오늘날 민주노동당이 생산하는 정치는 대표-재현의 정치를 반복할 뿐이다. 반면 반제도적인 대중의 역능에 주목하는 정치는 생활을 정치로 변환시키지만 역으로 권력의지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제도적 정치와 전혀 다른 형식을 가지지만 정작 그 힘을 생산하지 못한다.

이명박의 불통과 아집, 독단은 짐을 짊어짐으로써 대중이 요구하는 불안과 공포를 자신의 권력으로 총화시킨다. 반면 진보주의적 정치는 그런 선택을 거부함으로써 그 스스로 대중들과 멀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지구화는 전통적인 공공적 아버지로서의 국가의 역할을 해체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네그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탈국민국가, 탈주권화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역이 힘이 작동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중들은 더 강력한 권력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생존경쟁의 아비규환 속에서 자신의 구차한 삶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거대한 타자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전치시키고 있다. 박정희 신드롬이 그러하며 이명박대통령의 ‘불도저’가 그러하다.

따라서 오늘날 4대강 사업뿐만 아니라 지속적이고 일관적으로 진행되는 이명박정권의 불통과 아집, 그리고 독단은 그것을 지속적으로 폭로하고 비판한다고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실제적인 희망과 힘을 통해서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희망의 정치는 더 이상 자본적일 수도 없으며 대표-재현의 정치일 수도 없다. 그것은 그 경계를 넘어서 질적으로 다른 사회-세계를 창출하는 정치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기존의 가치나 사유, 행동 양식과의 적절한 타협이 아니라 오히려 레닌처럼 극한적으로 사유하고 극한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세계상은 이미 내재적인 자기 전개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레닌은 당시 맑스주의자들 대부분이 ‘제국주의 전쟁 반대, 평화’를 외칠 때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것은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는 성공했고 새로운 정치를 창출했다. 그렇다면 이제, 진보주의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레닌처럼 결단을 하고 짐을 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레닌은 반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레닌이 반복되는 것은 구태의연한 과거의 방식이 아니다. 반복되는 레닌은 과거의 레닌이 아니다. 오늘날 반복되어야 하는 레닌은 새로운 레닌이어야 한다. 그것은 새로운 정세 속에서 새롭게 사유되어야 하는 레닌이다.

오늘날 진보주의자들 사이에는 논쟁이 사라졌다. 그것은 누구도 이 시대를 책임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도권 좌파나 비제도권 좌파 모두 가릴 것이 없다. 논쟁 대신에 힘이 지배하고 책임 대신에 적절한 야합과 타협, 실리가 지배한다. 그래서 정치는 끊임없이 현행적인 것의 포로가 되며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그람시식의 정치는 생산되지 않는다.

오늘날 사람들은 상상력을 이야기한다. 물론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스스로 그 결단과 책임, 짐을 지지 않는 상상력은 정치가 아니라 관념적인 공상, 또는 행위 없는 개념에 머물 뿐이다. 오늘날 진보주의자가 되려 한다면 우리는 바로 이 선택과 결단, 책임을 스스로 걸머지려는 자가 되어야 한다.

박영균(건국대 HK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