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의무급식이야기[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이수진(학부모)

 

같은 동네에 사는 젊은 새댁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언니! 올해는 우리 아이가 무상급식이 안된다는 데요, 얘기 들으셨어요?”

“아니, 왜? 작년엔 받았잖아. 학교에서 별소리 못 들었는데”

“유치원하고 중등은 지원이 없구, 초등만 준다는데요. 지역신문에 났어요.”

 
ⓒ오마이뉴스학교에서 학부모 운영위원을 하고 있고 지역에서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일을 하다 보니 종종 학교 문제에 관한 문의 전화를 받곤 한다. 느닷없는 전화를 끊고 이래저래 알아보니 참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작년에 3개월간(9월-12월) 유치원 만5세가 경기도교육청 예산 지원으로 의무급식(무상급식)의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경기도 교육청에서 급식비를 100% 지원해주었으나 올해는 예산 부족으로 지자체에서 40%(약 1억 8천만 원)을 부담하고 경기도 교육청이 60%(약 2억7천만 원)을 분담하여 의무(무상)급식을 실시하자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시에서는 예산부족이라는 이유로 대응자금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고 한다(예산편성안함). 해당 교육청에 알아보니 교육청 담당 장학사가 여러 차례 시장을 찾아 갔으나 거절하였다고 한다.

우리시가 예산부족으로 내세운 대응투자금 40%는 정확히 1억 8천 6십 8만 8천 원으로 우리시 전체예산의 0.04%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그 돈이 없어서 2억 7천 만원을 날려버리고 급식비를 내고 밥을 먹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중학교에도 똑같이 적용 돼서 중학교에도 우리시만 급식비 지원이 되지 않고 있다.

더더욱 말이 안 되는 것은 이런 사실을 주민의 의사를 묻는 공청회나 의견수렴의 절차 없이 시가 일방적으로 진행했다는 점이다.

지역신문 귀퉁이에 난 기사를 보지 못했다면 영문도 모르고 당할 일이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아줌마들 사이에서 오가고 난 후 유치원 학부모들이 주축이 돼서 시청에 문의 전화를 하고 민원을 내기로 했다. 다른 시에서는 경기도교육청의 보조를 받아 무상급식을 실시한다는 데 왜 우리시만 못한다고 하는지 민원을 내니 돌아 온 답변 은 더욱 가관이다. “예산이 부족하다”, “일방적인 도교육청의 밀어붙이기 행정이었다”며 수요예측이 가능했던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지도 않은 채, 학부모들에게는 변명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3월말에 추경예산을 잡는 시의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학부모들이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유치원은 공립과 병설 유치원 학부모들이 연락을 해서 까페를 만들고 시청 앞에서 무상급식을 요구하는 집회를 갖고 기자회견을 열기로 하고, 중학교 학부모들은 학부모회 회장들이나 학부모운영위원이 긴급하게 연락을 해서 회의를 열고 ‘의무(무상)급식을 바라는 학부모임’을 만들어 서명 작업과 일인시위를 하기로 했다.

이렇게 신속하게 모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지역이 워낙 좁은 까닭도 있지만 그동안 학부모들 사이에 네트워크가 어느 정도는 마련되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인구 20만이 되지 않는 경기도의 작은 중소도시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농촌지역이였다가 일명 신도시가 들어오면서부터 도농복합지역으로 바뀐 곳이다. 그렇다보니 신도시로 이주한 입주민과 기존 지역민과의 의식차도 있고 생활차이도 있다. 수도권이라고 하지만 농촌지역에 가까워 시청에 들어가면 지역 토박이 성씨(姓氏)를 쓰는 공무원들이 대부분일 정도였고 공무원들이 어찌나 권위적이던지 민원을 넣으러온 시민들에게 불친절은 기본이고 고압적 자세로 업무를 봐주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서울에서 이주해 온 이주민들은 수시로 민원을 내고 전화를 걸어 공무원과 싸우는 일이 잦았고 시를 상대로 소송을 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시민의 목소리를 내는 시민단체들이 생겨나게 됐고 많지는 않지만 지역공동체 일을 하시는 분들이 생겨났다.

지역에서 일을 하다보면 답이 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워낙 보수성이 강한 지역이라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이 거의 대부분 보수당 당원들이고 이들은 자기의 생각 없이 무조건 당의 입장으로 말한다. 무상급식만 하더라도 인터넷에서나 올라오는 말들이 서슴없이 시의원입에서 튀어 나온다.

예를 들면 ‘무상급식 하느라 예산이 전부 애들 밥먹는데 들어가서 시에 돈이 없다. 그래서 아직 도로를 못 만든다’라고 아파트 대표자들을 불러 모아놓은 자리에서 이야기 한다. 참고로 그 도로는 10년째 공사 중인 곳이다. 무상급식은 작년부터 이루어 졌는데 그전에는 왜 그 도로를 완성하지 못했느냐고 물으면 ‘너무 예민하신 것 아니냐, 뭐 그렇다는 얘기지 어떻게 그걸 일일이 말할 수 있겠느냐?“고 한다. 또 어떤 시의원은 ”무상급식하면서 급식질이 떨어져서 아이들이 맛이 없어 밥을 못 먹는다고 하더라“란 이야기도 한다. 학부모회 일을 하기 때문에 급식실 영양교사들을 만날 일이 있어 그 분들에게 물어보면 ”의무(무상)급식을 하고 나서는 예산이 안정화 돼서 오히려 급식질이 좋아졌다’고 한다. 무상급식을 하기 전에는 급식비를 못내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예산이 불안정하고 급식비를 못낸 아이들까지 먹여야 하므로 예산이 늘 부족했었다고 했다.

의무(무상)급식을 놓고 헛된 곳에 돈을 쓴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현장의 이야기를 한 번도 제대로 듣지 않은 사람이 분명하다.

각자 자기가 사는 곳에서 서명 작업을 받기로 하고 헤어진 중학교 학부모회 회장님들은 그 후 다시 모이질 않았다. 학교 측에서 정치적 문제가 개입된 것 같으니 학부모들에게 그 모임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였단다. 아이들을 생각하는 순수한 행동이 아니라 무상복지, 무상급식이라는 정치적 문제라나 뭐라나.

그렇다고 의무(무상)급식을 바라는 학부모 모임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위축되지는 않았다. 뜻있는 학부모들이 계속 활동하기로 해서 일인릴레이시위도 계획대로 진행됐고 서명 작업도 받아서 제출했다.

우리시에서 의무(무상)급식은 아직도 예산편성을 기다리는 중이나 유치원생은 곧 편성이 돼서 의무급식을 먹게 될 것 같고, 중학생은 좀 더 시위가 필요할 듯하다.

3월이라 해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지하철역 앞에서 일인시위에 참여하게 된 나는 지나가시면서 ‘수고하십니다’ 한마디 해주시는 아저씨들이 있어 가슴이 따뜻했고, 일인시위 한다고 아침부터 일부러 지하철역까지 나와 준 아줌마들이 있어 어깨가 으쓱했다.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참고로 12년 2월 현재 경기도교육청 소속 30개 시군교육청 가운데 14개시(대부분 경기외곽지역)에서 대응투자을 하지 않아 의무급식을 하고 있지 않으며 4월까지 몇 개의 시가 대응투자 예산을 세워 이후 집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나)꼼수’에 속지 말고 닥치고 페미니즘[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황 주 영(서울시립대학교)

논점 일탈한 나꼼수의 변명

나꼼수 ‘비키니 응원’과 ‘코피 발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현상을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하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일이 벌어지니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 시점은 ‘나꼼수 봉주 5회’가 업데이트 되었고, 거기에서 김어준씨는 저간의 상황을 요약하면서 김용민씨와 주진우씨 각각의 발언에 대해서 해명을 했다. 해명의 내용은 1) 원래 그런 사람들 아니다, 2) 김용민의 성욕감퇴제 관련 발언은 비키니 응원사진이 올라오기 전에 녹음한 방송분이므로 잘못 엮인 것이다, 3) 성희롱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우리의 발언은 모두 ‘가카’를 겨냥한 것이다, 4) 성희롱은 권력관계에서 나오는 것인데 비키니 응원 여성과 자신들 사이에는 아무 권력관계가 없으므로 사건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1)과 3)은 나꼼수 콘서트에서 김어준씨 스스로 말했듯이, 변명이 되지 않는다. 성폭력과 가정폭력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의 가해자들 중 많은 이들이 고학력에 가정이나 직장에서는 한없이 자상하고 점잖은 분들이다. 의도가 없었다? 그렇겠지. 지하철에서 의도치 않게 남의 발을 밟아도 우리는 자연스레 사과를 한다. 그게 뭐 어렵다고. 왜 남성들에게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성폭력에 대한 사과가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어쩌다 한 한 번의 실수가 아니기 때문인가?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뿌리깊이 박혀있고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언행과 관련되어 있어서, 그에 대해 사과를 하면 자기 존재와 일상 전체를 걸고 사과하는 셈이라서 그런 걸까? 게다가 자신들의 발언은 모두 가카를 향한 것이라는 변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의를 위해서라면 여성비하적인 발언 정도는 괜찮다는 뜻일까? 2)는 사실 관계가 그러하다면 인정하겠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발언이 비키니 응원 여성과 관련되지 않았을 뿐, 방송을 청취하는 (김어준씨 말에 따르면 ‘동지’일 수도 있을) 여성들이 김용민씨의 발언 속에서 한낱 성적 대상으로 취급되었다는 점에서는 달라지는 게 없다. 게다가 많은 여성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비키니 응원 여성’에 대한 나꼼수 멤버들의 성희롱이 아니라, 여성 일반에 대한 나꼼수 멤버들의 남성중심적 관점이었다.

따라서 4)의 해명도 기각된다. 김어준씨가 말하는 권력관계에는 성폭력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과 남성 사이의 성적 불평등은 빠져있다. 비키니 응원 여성과 나머지 다른 남성들 사이에는 불평등한 관계가 있다. 이 여성이 아무리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을 드러내도 그 자발성은 성적 불평등이라는 이 조건 속에서 완전한 자발성이 되기 어렵다. 마돈나가 여성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획기적이었어도, 그 몸을 훑는 카메라의 시점은 가부장적인 남성의 시선이라는 것은 이미 수없이 언급되지 않았던가. 남성은 그러지 않는데 여성이 비키니를 입고 김어준씨가 말하는 그 ‘생물학적 완성도’를 드러내는 것을 응원의 방식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여성과 남성이 권력에 있어서 서로 다른 위치에 배치되어 있다는 걸 말해준다. 나아가 재차 강조하면, 여러 여성들이 문제 삼는 것은 ‘비키니 응원 여성에 대한 성희롱’이 아니다. 여성을 “남성의 정치적 활동의 사기 진작을 위한 대상 정도로 전락시킨 것”을 문제삼는 것이다.(<삼국카페 공동 성명서> 중 인용.)

 

페미니즘 비판으로 물 타는 마초들의 꼼수

 

김어준씨는 ‘나꼼수 봉주 5회’에서 현재 이 사안에 대한 논의 수준이 낮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발언을 거의 그대로 옮겼으며, 주술호응이 되도록 하는 정도만 수정함.)

“<저 세 놈의 남자새끼들이 마초라서 그랬다>에서 한 발짝도 더 안 나갔다. 마초라는 혹은 쇼비니스트에, 성적 감수성이 졸라 둔한 새끼들, 남자새끼들이라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한계 내에 있는 거다. 그 틀에 맞춰서 욕을 한다. 실제로는 우리를 쇼비니스트로 만드는 것 외에는 우리가 하고 있는 짓을 해석할 틀, 언어가 없다.”

안타깝게도 나꼼수 멤버들은 성적 감수성과 성인지적 사고가 부족한 마초 맞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마초 아닌 인간이 몇이나 된다고, 마초라고 지적받았다고 해서 너무 그렇게 기겁할 거 없다. 쫄지 마~) 뭘 좀 안다고 마초가 아닌 게 되는 건 아니다. 페미니스트도 제대로 페미니스트가 되려면 마초가 아니기 위해서 매순간 노력해야 한다.

김용민씨가 방송에서 ‘정봉주의 좆이 되겠다’는 발언을 했을 때는 아슬아슬했다. 더군다나 ‘생물학적 완성도’라니. ‘생물학적’이라는 표현이 여성의 몸에서 동물성을 강조하고, ‘완성도’라는 말이 남성중심적인 판단 기준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필자의 뇌구조가 이상한 건가? 이런 표현을 떠올릴 수 있는 김어준씨가 마초적이지 않다면 대체 누가 마초적인지 되묻고 싶다. 만약 비키니 응원 사진을 올린 것이 나이든 여성이거나 장애 여성이거나 비만인 여성이었다면, 다시 말해 ‘생물학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소위 ‘정상성’에서 벗어난 여성이었다면 나꼼수 멤버들은 무슨 농지거리를 했을까? 이런 질문을 해보면, 이들의 농담이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농담이 아님을 금새 알 수 있다. 김어준씨는 이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했다. ‘대상화’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에 대해 김어준씨와 페미니스트들 간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김어준씨는 남녀 쌍방 간에 대칭적인 대상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반면,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중심적 시각에 따라 여성이 주체가 아닌 한갓 대상으로 취급되는 것을 대상화라 일컫는다. 후자는 남성과 여성이 가부장제적 상징질서 내에서 이미 비대칭적 권력관계에 놓여있음을 전제한다. 성적 대상화는 결코 중성적이거나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누가 누구를 어떤 성별 권력관계 하에서 어떻게 대상화하느냐 하는 것을 자문해보지 않는 김어준씨의 수준 또한 그리 대단하지가 않다.

결국 ‘나꼼수’는 언급과 변명만 했을 뿐 사과는 하지 않았다. 혹자들은 페미니스트들이 열폭(열등감 폭발의 준말로 인터넷 신조어)해서 싫고 나꼼수는 쿨해서 좋다는데, 필자 눈에는 나꼼수는 쿨한 척 하면서 열폭 중이다. 어느 블로거 말대로 ‘미안하다, 씨바, 다신 안 그럴게!’라고 나꼼수답게 사과하면 그만인 것을, 이미 닳고 닳은 논리를 끌어다 대면서 제3자를 자처하고 있다. 김어준씨는 ‘전지적 가카시점’에서 사태를 관망하면서, 모든 것이 다 논의되어야 사회적 비용을 치른 만큼 사회적 이득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 사회의 수준이 완전히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맞다고 ‘유체이탈화법’을 구사한다. 자신은 당사자가 아니라는 듯 태도를 취할 뿐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으나 아직은 때가 무르익지 않아 날개를 접고 있는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김어준 씨에게 빙의했다.

나꼼수 멤버들은 비키니 응원 여성을 ‘골빈 년’으로 만드는 폭력적인 상황을 비판하면서 그 여성 뒤로 몸을 숨기고, 당사자가 아닌 체 한다. 한 개인 여성을 보호하는 제스쳐를 취함으로써 집단으로서의 여성과 여성운동을 물 먹인다. 기가 막힌 전략이다. 거기에 더하여 몇몇 미묘한 발언들은 이번 건이 나꼼수 멤버들을 겨냥한 보수언론과 정치인들의 꼼수임을 암시한다. 그러니까 그들이 하고 있는 짓을 해석할 언어와 틀은 기껏해야 ‘음모론’이 전부다. 가카와 이하 보수세력을 겨냥한 언행이란 거다. 김어준씨는 자신이 더 큰 적, 더 큰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항하는 그놈의 ‘대의’ 뒤로 또 슬며시 숨어들어간다. 이렇게 해서 비키니 입은 여성은 쿨하고 발랄하고 섹시한, ‘남성들의’ 정치적 동지가 됐고, 광우병 촛불집회 때부터 지금껏 정치활동을 하며 그 의식을 노동, 환경, 여성문제에까지 확장해온 삼국카페 회원들은 보수언론에 속아 넘어간 물정모르는 여자들이 됐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음모론이 향한 칼끝이 여기라니!

 

페미니즘으로 쟁점화 되기를 바라며

 

다행히도(?!) 나꼼수 멤버들은 (이번에 배운 건지 정말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어지간한 진보적 남성 지식인에 비해서는 약간 더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은 방송에서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의 판단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 가해자의 의도의 유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 여성이 이런 이슈에 민감할 권리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고, 자기들은 배운 남자라고 항변했다. (이 정도 기본 지식을 가지고 칭찬받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미안하지만 배운 여자들은 배운 남자들만큼 못 믿을 사람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특히 ‘진보적인’ 혹은 ‘비판적인’ 배운 남자들은 더 그렇다. 대학에서, 진보적 운동 단체들에서, 운동권 학생회에서 중심적인 활동을 했던 수많은 남성들과 교수들이 자신의 여성 ‘동지들’을 성폭력 피해자로 만들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는 걸 김어준씨가 모르진 않겠지.

삼국카페는 공동성명서에서 여성을 치어리더로 삼는 남성중심의 ‘반쪽 진보’인 ‘나꼼수’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믿음, 동지의식을 내려놓는다’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런 심정으로 오래 몸담았던 진보적 집단에 등을 돌렸고, 페미니즘을 공부하거나 여성운동을 시작했던가! 나꼼수 멤버들이 다른 남성들에 비해 1그램 정도 낫다거나,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변한 게 없다거나 하는 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사실 이번 일에 대한 (나꼼수 멤버를 포함한) 남성들의 반응은 너무 빤하기 때문에 새삼 놀랄 것도 없다. 페미니스트들이 봐야 할 것은 저 삼국카페 회원들이 낸 공동성명서이며, 그들과 페미니스트 이론 사이의 격차, 그들과 비키니 응원 여성 및 그녀를 모방하며 나꼼수를 지지하는 여성들 사이의 격차, 그리고 이 후자의 여성들과 페미니스트 사이의 격차다.

김어준씨의 말대로 피해자 프레임의 페미니즘은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와 반성은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 내부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으며, 여러 방식으로 수정보완하려는 노력들도 있어왔다. (이런 걸 언급하지 않은 걸 보니, 아마 김어준씨는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에 관심을 끊었나보다.) 문제는 그 파급력이다. 현재 페미니즘이 20대 여성들에게 매력이 없는 건 이전 세대들과 지금 20대의 삶이 크게 다른 데 비해 페미니즘에는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페미니즘은 더 이상 20대 여성들의 삶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큰 변화나 도약이 없는 것은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 여성들의 삶이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아를 실현하는 데 있어 그 누구보다 많은 독려를 받으며 자란 젊은 여성들은 소위 알파걸이라고 불리고 엄친딸을 지향하며 산다. 이들은 제2의 수퍼우먼이지만 선배들이나 엄마처럼 지독하게 혹은 청승맞게 애쓰지 않는다. 여성성을 한껏 뽐내면서도 학업이나 일에서 좋은 성과를 내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다. 싸워야 할 상대는 남성이 아니다. 이들은 싸우지 않는다. 애교로 의존하는 척 하면서 구워삶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다른 세대에 속하는 여성들은 물론이고 현재 20대의 많은 여성들도 여전히 고군분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저런 특별법이 마련되었어도 여성들은 여전히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여성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아직도 임노동과 가사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이중부담을 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과 관련된 현장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들이라면 피해자 프레임의 페미니즘이 아직도 절실할 것이다. 이건 김어준씨가 스포츠 중계하듯이 ‘피해자 프레임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와 줘야 되는데 안 나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김어준씨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정치적 표현의 수단으로 도구화하기로 결정한 그 여성을 골빈 년으로 만드는 폭력”을 경계한다. 그리고 이 폭력이 피해자 프레임 페미니즘의 콜래트롤 데미지(부수적 피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김어준씨가 간과한 또 하나의 부수적 결과가 있다. 그게 바로 비키니 응원 여성이나 코미디언 곽현화, MBC 이보경 기자와 같은 여성들이다. 이들은 피해자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걸 원하는 여성이야 없겠지만, 이들이 원하는 것은 피해의식도 없는 아주 당당한 여성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거칠고 민감한 페미니스트와도 거리를 두고 싶고, 고통스러워하고 청승맞은 피해자와도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자신의 몸을 ‘도구화’하고 어떤 여성들의 ‘피해의식’을 비꼬는 패러디물을 만들고, 나꼼수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비키니 응원에 참여한다. 이들은 개인이다. 이들은 여성 집단에 대해서 아무 고려도 하지 않는다. 이 여성들은 한편으로는 이른바 ‘대의’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적 존재로 자신을 등장시키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이라는 집단에 대해서는 대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성적 존재로 노출시키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으로서 자기가 처해있는 성적 입장에 대해서는 의식하지 않는다. 이는 기존의 페미니즘이 피해자 프레임과 더불어 속박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자아를 실현하면서 살라는 일종의 강령이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에 포섭되고, 남성중심적 권력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과이다. 게다가 이는 부수적인 게 아니라 결정적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어떤 여성들은 자신의 몸이 ‘도구화’ 되는 것도 스스로 ‘도구화’ 하는 것도 모두 거부하고,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피해의식’에서 출발해 그것을 정치적 활동의 역량으로 확대하면서, 하이힐 신고 아스팔트를 걸으며 가카 퇴진을 외치고, 시위대에 먹거리를 제공하거나 플래시 몹을 선보이는 등 ‘발랄한’ 시위 방식을 보여주었다. ‘대의’를 위해서 어떤 취약 계층을 배제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타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여성들이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사유해야 하는 것은 피해자 프레임을 넘어선 이야기들을 제시하는 페미니즘 이론과 여전히 피해자 프레임을 필요로 하는 여성운동 및 여성의 현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느 쪽과도 관계되고 싶어 하지 않는 여성들과 그와 동시대를 살면서도 페미니스트 의식을 지니고 있는 여성들 사이에 어떤 공통성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차피 나꼼수를 이길 순 없다. 우리에겐 그만한 명성도 권력도 미디어도 없다. 게다가 그런 ‘팬덤’도 없다. 나꼼수의 지지자들은 이미 동지도 지지자도 아니다. 그들은 마치 아이돌의 팬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오빠들 믿고 배신하지 말자’며 팬심을 다지듯이, 다 필요 없고 김총수가 알아서 잘 판단할 것이고 그 판단에 맡기고 우리는 한 길만 가자고 서로를 도닥이는 분위기다. 이렇든 천군만마를 가진 나꼼수는 꼴페라고 만날 욕만 들어먹는 여성들에게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사과한다면 잘해야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정도겠지만, 이런 소릴 할 캐릭터들이 아니다. 앞으로도 이런 문제에 대해 여성들이 민감할 권리는 있어도 자신들의 입을 틀어막을 권리는 없다며, 조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논점을 ‘표현의 자유’ 문제로 돌리면서 회피해 가는 이런 담론에 또 휘둘릴 필요 없다. 그러는 대신 담론의 판을 새로 짜야 한다. 사과를 받아내는 일이나 대의가 뭐냐, 여성문제는 사소한 일이냐 하는 케케묵은 논쟁은 그만두자. 이런 쟁점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어떤 쟁점을 다루든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위해서는 여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선에서, 여성들이 서로를 마주보게 하고 대화하게 하고 협상하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계절”(another year): 우리가 가족일 수 있을까?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현남숙 (가톨릭대학교 초빙교수)

another year, 가족의 미래?

이번 겨울 아주 추운 어느날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영화 한 편을 보게 되었다. 스크린에 올라오는 제목은 “세상의 모든 계절”(another year)이었다. “another year”? 제목만 보아서는 신년에 잘 아울리는 영화 같았지만 아니었다. 첫 장면부터 불면증 환자가 등장한다. 불면증 치료를 받으러 온 중년 여성은 약만 원할 뿐 의사나 상담사와 대화를 거부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엇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다른 삶”이라고 답하면서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음으로는 다른 삶을 원하지만 머리로는 삶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another year”는 변화를 바라지만 변화가 쉽지 않음을 아는, 인생을 좀 살아본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변화에는 소통, 환대, 행복 등 여러 항이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 난 가족이란 코드가 자꾸 들어왔다. 어떤 단위로,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 것인가에 관한 인간의 가장 원초적 인식은 어제와 같을 수도 있고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another year”는 어쩌면 아직 기록되지 않은 가족의 시간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족인 자와 아닌 자가 함께 보낸 사계절

제도적으로 혈연 중심의 가족은 가족 구성원 이외의 자들에게 문턱이 높은 폐쇄적 관계이다. 하지만 심리적 존재들인 우리에게 꼭 그렇지 많은 않다. 멀리 사는 가족, 마음이 상한 가족, 서로를 통제하는 가족보다 가까운 친구나 이웃과 더 가깝게 지내기도 한다. 이 영화는 한 혈연 가족과 그들의 친구들이 보내는 사계절로 유비되는 인생의 이야기다.

#봄. 톰과 제리 부부 그리고 제리의 직장동료이자 친구인 메리의 삶이 대화 속에 교차되어 그려진다. 제리는 심리치료사이고 남편 톰은 지질학자로 둘 다 타인을 잘 배려하는 인물이다. 부부는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친절하며 성공보다는 행복을 가꾸며 산다. 한편 이들의 주변을 맴도는 메리는 겉으로는 쾌활하지만 내면은 우울한 여성이다. 젊은 날 유부남과의 사랑에 상처받았고 지금도 자신이 아름답다고 믿지만 좁은 집에 월세를 내며 사는 가난한 중년의 독신 여성이다. 메리는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가족과 집과 대화가 있는 이들 부부에게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여름. 톰과 제리의 아들 변호사인 조가 등장하지만 이 집의 문턱은 아직 친구들에게 열려있다. 한편 톰의 오랜 친구 켄도 등장한다. 켄 역시 메리처럼 독신이다. 젊어서는 직장 동료들간의 유대와 클럽에서의 여가로 고독할 새도 없었지만 이제는 동료들도 하나둘 떠나고 클럽에서도 반기지 않아 어디에도 갈 곳 없는 외로운 신세다. 고독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켄은 메리에게 수작을 걸어 보지만 메리는 늙고 뚱뚱한 켄에게 관심이 없다. 대신 톰과 제리의 아들인 조에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표현한다. 메리는 이들의 진짜 가족이 되기를 꿈꾼다.

#가을. 톰과 제리 부부의 ‘정상’ 가족은 견고해지고 메리는 결국 그 문턱을 넘지 못한다. 인생의 수확기인 가을, 조가 아주 오랜만에 새로운 여자친구를 데려온다. ‘정상’ 가족의 결실을 맺으려는 수순을 밟는 것이다. 하필 이날 메리가 방문한다. 메리는 조의 여자 친구에게 질투를 느낀다. 이러한 상황을 들켜버리자 메리는 더 이상 넒은 의미에서의 가족도 될 수 없게 된다. ‘정상’ 가족을 방해한다는 의미에서 ‘가족의 타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제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실망스러웠다”고 언급하고 톰은 메리를 다시 초대할 수 없으리라는 암시를 한다.

#겨울. 톰과 제리의 집에 출입을 암묵적으로 금지당했던 메리가 다시 찾아온다. 가을까지만 해도 생기가 있었던 메리는 아끼던 차도 견인당하고 불면증으로 잠을 자지 못한 최악의 날, 늙고 초췌하고 무엇보다 절박한 모습으로 이 집의 문을 두드린다. 부부는 부재중이고 최근 부인을 잃은 톰의 형이 메리를 맞는다. 메리는 안타깝게도 톰의 형에게조차 자신이 그를 보살펴주겠다고 말한다. 메리는 다시 이들의 진짜 가족이 되고 싶은 것이다. 메리에겐 사랑의 감정보다 정서, 대화 공동체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가 더 크다. 농장에서 돌아온 부부는 메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직장에서 왜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느냐는 메리의 질문에 “여긴 내 가정이야”라고 말로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였음을 표현한다. 제리는 메리에게 전문적 상담을 받을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메리는 “단지 너와 이야기 나누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메리는 식탁에 앉았지만 더 이상 그들의 시선을 받지도,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한다. 행복한 톰과 제리 가족의 대화를 배경으로 카메라는 환대받지 못한 메리의 불안한 시선을 쫒는다.

가족의 역사를 갖지 못한 자들

톰과 제리 부부는 대체로 타인을 환대하는 좋은 이웃이다. 하지만 그들이 메리를 맞는 방식의 근저에는 혈연중심, 성별분업 중심의 전통적 가족 가치가 놓여있다. 톰과 제리처럼 가족을 가진 자와 메리와 켄처럼 가족을 갖지 못한 자의 관계에서 관계의 주도권은 대개 톰과 제리처럼 가족을 가진 자가 잡는다. 감독은 이러한 관계를 카메라의 중심 공간을 톰과 제리의 집에 맞추고 초인종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선별하는 것으로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의 대화 방식이나 감정으로도 드러낸다.

메리의 말은 늘 초점없고 삶에 필요한 정보에 취약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한계나 상처를 노출시킨다. 이에 반해 부부의 말은 어딘가 정리되어 있으며 관습적이며 교훈적이다. 제리는 메리에게 “성인은 자신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말의 스타일만이 아니라 대화의 방향도 일방적이다. 메리는 제리에게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어, 나도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제리는 “나는 괜찮아”라며 메리의 대화 상대가 되기를 거부한다. 늘 메리만 자신의 결핍을 말한다.

톰과 제리의 ‘정상’ 가족의 규범은 메리에 대한 감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리는 처음에는 메리에 대해 자신만 행복한 것 같아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메리가 아들 조에게 사심을 품은 것을 안 이후로는 급격히 변한다. 실망감으로 바뀌다 급기야는 심리치료를 요하는 비정상적인 것에 대한 염려로 바뀐다. 죄책감, 실망감, 병리적 염려는 대등한 관계에서의 배려나 공감이 아니다. 뭔가 도덕적으로 더 규범에 가까운 자가 갖는 우월한 감정인 것이다.

무엇이 톰과 제리 부부와 메리의 관계를 비대칭적으로 만들었는가? 영화의 한 대사가 자꾸 떠오른다. 제리가 메리의 상태를 걱정하던 어느 날, 톰은 난데없이 역사 이야기를 꺼낸다. “나이가 들수록 역사가 더 의미있어 지는 것 같아“라고. 이에 제리는 “우리도 역사의 일부가 될테지”라고 응수한다. 이 대목은 가족에 관한 오래된 서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들린다. 톰과 제리의 시간은 표준적 가족 서사에서 생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아들 조를 낳았고 삶의 중심적 서사에 부합하는 이야기들에 맞게 인생의 사계절을 보냈다.

하지만 결혼하지 못한/않은 메리와 켄의 삶의 서사는 근대 이후의 전통적 가족 서사에 엮여들지 못한다. 독신들의 삶은 결혼과 출산으로 노동과 세대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표준적 가족의 공식적인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다. 메리와 켄도 그들 나름대로 의미있고 행복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행복했던 시간을 드러내지 않는다. 메리와 켄의 시간은 이 사회에서 역사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족에 관한 프로파간다의 이면

톰과 제리의 가족은 비교적 개방적이지만 이들 역시 전통적 가족, 기능적 가족, 혈연중심의 제도화된 가족 중심의 가치에 따라 산다. ‘이모’처럼 간주되던 메리가 조에게 관심을 갖는 ‘해프닝’을 겪자 이들은 일시에 가족의 문턱을 높인다. 톰과 제리의 가족은 타자에게 열려있고 환대하지만 그 개방성과 환대는 어디까지나 조건부이다. 결정적인 순간 ‘정상’ 가족의 가치로 돌아간다. 내 가족의 역사성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너에게 가족의 문턱을 낮춰줄게, 너를 넓은 의미의 가족으로 환대할게!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러한 ‘정상’ 가족의 견고함은 페미니즘이 상상하듯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메리칸 뷰티>, <바람난 가족>, <후라이드 그린 포테이토>, <안토니아스 라인>, <퀼트>, <메종드 히미코> 그리고 <가족의 재탄생>까지. 영화로만 보자면 가족은 이미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정상’ 가족과 그 타자들의 출입의 문턱도 낮아졌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혼, 재혼, 노년 등의 이유로 다른 방식으로 가족을 꾸리거나, 평생 독신으로 정상 가족의 주변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의 방식은 가족 중심의 통합 서사에 작은 자리나마 엮여들지 못한다.

이러한 점에서 “세상의 모든 계절”은 매우 솔직하다. 감독은 보수적인 정상가족의 가치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고 페미니즘의 다양한 가족(families)의 가치를 설득하지도 않는다. 어느 것이든 어떤 면에서는 현실의 갈등이나 상처를 봉합하는 프로파간다인 것이다. 대신 현재의 가족, 결혼, 삶의 양태의 상황에서 통합되지 못하고 서로 충돌하는 불편한 지점들을 노출시킨다. 가치나 이념으로 봉합되지 않은 실존하는 존재들의 삶의 모서리에서 드러나는 진실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인간은 앞으로도 대체로 ‘정상’ 가족의 형태로 살아갈 것이다. ‘정상’이 갖는 미덕이나 편안함 등 이점도 많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정상 가족으로 살아가지 못하는/않는 ‘정상’ 가족의 타자들의 삶의 방식도 그들이 ‘타자의 타자들’의 삶을 위협하지 않는 한 인정되어야 한다. 가족의 타자에 대한 형식적 인정은 쉬울 수 있다. 하지만 각자 섬을 쌓고 사는 분리주의적 인정은 인정이 아니다. 상호 문턱을 넘나들며 가족에 관한 큰 서사와 작은 서사가 엮여 함께 삶의 역사를 만들어갈 때 서로의 가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명성은 소유가 아니라 나눔에 있다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강남 아줌마들도 열광시킨 안철수의 매력

– 명성은 소유가 아니라 나눔에 있다-

이현재(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서울시장니 대권주자니, 요즘 누구나 한 번쯤은 안철수라는 이름을 입에 올렸을 것이다. 대안 정치를 고민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정치에 혐오감을 느낀 사람들까지도 그의 이름을 들먹였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였다. 오죽하면 원희룡은 근심 가득한 어조로 “강남 아줌마들조차” 안철수를 선호한다고 했을까.

사람들은 처음에 안철수가 좌파인지 우파인지를 궁금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안철수의 정치적 행보는 이러한 이원적인 도식에 맞추어 설명되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안철수를 기존 정치에 신물이 난 사람들의 욕망을 잠깐 자극하다 지나가는 바람으로, 체계적 정치조직을 갖지 않기에 언젠가는 식어버릴 허상으로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평가는 왜 강남 아줌마들“조차” 안철수에 열광하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즉 이런 식의 평가는 그가 보여주는 정치인으로서의 매력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어떻게 그의 매력이 강남 아줌마들에게도 먹혀들어갔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강남 아줌마들은 그가 좌파이기 때문에 혹은 우파이기 때문에 열광하는 것 같지 않다. 그는 아직 체계적인 정치 비전을 제시하지도 않았고 ‘여성 정책’에 대해 이렇다할만한 입장을 표명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강남 아줌마들이 -다소 과장해서 말하자면- 인간 안철수의 매력에 빠져있다. 이 글에서 내가 묻고 싶은 그가 이들에게 불러일으킨 새로운 종류의 정치적 미감이 무엇인가이다. 안철수라는 인간이 보여주는 어떤 미감이 강남 아줌마들까지도 열광시켰던 것인가?

우선 “강남 아줌마”라는 호명방식이 우리에게 어떤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들이 헉 소리 나게 값비싼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막대한 수입을 올리거나 그런 수입을 보장하는 남편을 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부를 둘러싼 생존의 경쟁에서 이겨 승리를 쟁취한 사람들이다. 이를 대물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교육이기에 이들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결국 이들은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면 맹모삼천지교 이상의 것도 감수하며 값비싼 과외비도 마다하지 않는 소위 신자유주의 시대의 전형적 어머니상(?)으로 표상된다. 그런데 무한 경쟁에서의 승리만이 그들의 목표라면 이들은 왜 안철수를 자녀교육의 본보기라고 말하는가? 안철수는 자신의 이윤을 증폭시키거나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 관심을 가지기보다 자신이 일구어 온 기업 경영권을 사원들에게 넘기고 이제 자기 재산의 절반마저도 사회에 기부하려 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맘만 먹으면 정말 많은 것을 독점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가진 것을 내어 놓는다. 그는 기술뿐 아니라 재산을 무상 분배했다. 그런데 왜 적지 않은 강남 아줌마들은 안철수에 열광하는가?

그의 매력은 외모에서 나오는가? 물론 청년들은 그를 “귀요미”로 부르기도 하지만 통상 그의 외모는 그저 평범하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화려한 학력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학자와 기업가로서의 성공 때문인가? 물론 그것은 경쟁의 승리와 더불어 얻게 될 부와 명예의 조건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자 그의 강한 생존력을 보여줄 수 있는 의미심장한 지표이다. 돈을 많이 가진 기업가들이 정치에 입문하여 대중의 지지를 받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곧 그들의 부가 곧 그 인간의 강인함으로 읽혀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안철수에게 집중되었던 열광의 현상을 설명하는 결정적 지표일 수는 없다. 학벌 좋고 돈 많은 정치가들은 수두룩하지만 이들이 모두 열광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미감이 이들을 자극하였는가?

아이러니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들을 자극한 미감이 바로 그의 이타적 정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보여준 나눔의 정신은 인간 존재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최상의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안철수는 독점할 수도 있는 기술을 대중에게 무료로 공개하였으며 이윤창출을 위해 쓸 수도 있었을 귀한 시간을 청년들과의 만남을 위해 기꺼이 썼다. 그는 대부분의 부자들이 그렇게 하듯 벌어놓은 돈을 과시적으로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위용을 널리 알릴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부를 기꺼이 사회적으로 환원하였다. 이러한 이타적 행동 자체가 결국은 이기적인 속성에서 발생한 것 아니냐, 혹은 그러한 전략 자체가 더 많은 부나 명예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여기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어쨌든 그는 소유나 과시적 소비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그가 얼마나 강인한 사람인가를 어필했다는 것이다. 그의 이타적 행위는 아무나 따라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이타적 행위가 곧 강인함의 표식이라는 점은 진화생물학자 토르 뇌레트라네르스에 의해 잘 설명된 바가 있다. 『왜 사랑에 빠지면 착해지는가』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된 그의 저서에 나오는 수컷 공작의 아름다운 깃털의 예부터 생각해 보자. 뇌레트라네르스에 따르면 다윈은 수컷 공작의 아름다운 깃털을 보면서 생존의 문제와 관련된 자연선택론만으로는 이러한 진화의 문제를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자연선택론의 관점에서 수컷 공작의 아름다운 깃털은 생존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생존을 방해하는 핸디캡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윈은 성선택이라는 또 하나의 진화기제를 도입하게 된다. 수컷 공작은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생존에 방해가 될 만큼 아름다운 깃털을 발전시키고 이러한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강인함을 어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선택을 받고자 하는 인간들이 혹은 남성들이 강인함을 보여주기 위해 감행하게 되는 어려운 일이란 무엇인가? 뇌레트라네르스는 흔히 이러한 강인함의 표출이 부의 과시적 소비, 문화적 지적 활동, 이타적인 행위 등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강인함을 보여주기 위한 부족장의 포틀래치나 사치스런 선물, 부자들이 즐겨하는 과시적 소비는 성적 선택을 받기위해 자신의 강인함을 드러내 보여주려는 남성들의 짝짓기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전략에만 머물지 않는다. 뇌레트라네르스에 따르면 훌륭한 문화나 학식을 보여주는 행위, 타인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 등은 생존을 위해서는 아무런 쓸모도 없지만 그 어떤 것보다 어려운 일이며 이러한 점에서 가장 강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이타적 행위는 그 어떤 것보다 어려운, 그러나 성적 파트너에게 자신의 강인함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전략이다.

뇌레트라네르스는 성선택의 과정에서 진화한 이타적 인간을 호모 제네로수스(the generous man)라고 명명한다. 그에 따르면 호모 제네로수스는 생존의 문제 따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존재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가장 진화된 성선택의 결과이다. 물론 바야흐로 우리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 역시 이러한 강인함을 보여주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이론에 따르면 성적 파트너에게 강인함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진화된 전략은 이타적 행위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강남 아줌마들의 안철수 사랑을 설명해 주는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한다. 소위 강남 아줌마들은 이기적인 이해에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타성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살아남는 강력한 존재를 선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뿐 아니라 호모 제네로수스에도 열광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안철수의 명성은 그가 무한 경쟁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타적 행위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강력한 호모 제네로수스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뇌리트라테르스의 말을 빌리자면 그의 “명성은 소유가 아니라 나눔에 있다.”

그렇다면 이쯤해서 그간 우리 사회의 정치인들이 어떤 미감을 불러일으켰는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성선택의 기제를 여성과 남성의 짝짓기에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정치인과 추종자 혹은 대중의 관계에도 적용해보자. 어떤 방식으로 정치인들은 강인함을 증명하고자 했는가? 한 때 소위 돈 많은 정치인들, 높은 학력과 가문을 자랑하는 정치인들은 돈과 명예의 과시적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강함을 어필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온갖 부패상은 갖고 있던 성적 미감마저도 없애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의 강함은 대중을 번식시키기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만 비추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호모 에코노미쿠스다. 물론 이들과 달리 자신의 이익보다는 타인을 위한 이타적 행위를 중시하는 정치인도 있다. 노동자를 위해 인생을 바친 노동 활동가들이나 소위 좌파를 자칭하는 정치인들은 전형적으로 이타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강인함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역부족이다. 이들은 민중을 구하려했을지는 몰라도 가족은 거의 방치한 경우가 많았으며, 생존을 감수하는 강인함을 보여주기보다 생존 자체를 위한 투쟁에 전념하였다. 적어도 강남 아줌마들의 시각에서 이들이 보여준 이타심은 ?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쥐뿔도 없는 것들이 타인을 위하는 만용을 부린다는 의심을 받기 십상이었다.

나는 안철수가 보여준 나눔의 행위는 이들의 이타적 행위와는 또 다르다고 생각한다. 안철수는 성공한 기업가이자 학자로서 나눔의 행위를 수행했다. 이것은 없는 사람의 나눔이 아니라 있는 사람의 나눔이다. 그는 이미 맘만 먹으로 얼마든지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 가진 것을 나누는 행위는 없는 사람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이타적 행위를 하는 것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인다. 전자가 증명된 강인함이라면 후자는 증명되지 않은 강인함이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번식을 위해 가장 강한 수컷을 선택하고자 하는 강남 아줌마들에게 안철수의 나눔 행위는 그 어떤 것보다 매력적이지 않았겠는가?

이 글에서 나는 없는 사람의 나눔이 있는 사람의 나눔에 비해 덜 아름답다거나 덜 강인하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적어도 강남 아줌마들의 시각에서 안철수의 나눔 행위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번식을 보장해 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으로 전달되었다는 점에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가장 이기적인 시각에서조차 안철수의 이타심은 강력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이것은 우리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정치적 미감이다.

진실을 말하고, 자유를 얻다-영화 ‘헬프’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조주영(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박사 수료)

그런 때가 있다. 잠은 벌써 깼는데 일어나기가 너무 싫어서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다 해가 중천일 즈음, ‘그래도 하루를 이렇게 보내면 안 되지!’ 하는 생각에 슬금슬금 일어나면서 속으로 걱정한다. 반나절 밖에 남지 않은 시간동안 뭐부터 해야 하나, 할 일은 많은데 왜 이렇게 아무 것도 하기 싫은 걸까. 오늘 하루도 그냥 이렇게 흘려보내면 안 되는데. 공부는 해서 뭐하나. 남 줄 것도 아닌데. 아, 아니다. 남 주려고 공부하는 거였지. 그래도 하면 뭐하나. 글 좀 끄적거린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결국 나는 왜 이러고 사나 하는 생각에 다달아 나오는 건 한숨뿐인, 그런. 요즘이 딱 그런 시기인 것 같다. 공부는 안 되고, 안 되니까 하기 싫고, 하기 싫으니까 잡생각만 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연애를 하기를 하나, 모아둔 돈이 있기를 하나, 아~ 인생 참 꿀꿀하다, 정말.

– <헬프>, 누구도 묻지 않던 질문을 제기하다-

때는 1960년대. 노예제도는 철폐되었지만 인종차별이 여전히 심했던 미국 미시시피 주 잭슨 마을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스키터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신문사에 들어간다. 장차 작가나 저널리스트가 되는 것이 꿈인 그녀에게 주어진 첫 번째 일은 바로 일간지에 실릴 칼럼을 쓰는 것! 칼럼의 주제는 양파 다듬을 때 눈물이 안 나는 방법이랄지, 와이셔츠 깃을 하얗고 빳빳하게 다릴 수 있는 방법 등 온갖 집안일의 팁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집안일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이 백인 아가씨가 그 방법을 알 리 없고, 해서 스키터는 친구네 집에서 일하는 흑인 가정부 에이블린에게 도움을 받기로 한다.

힐리(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역)는 가정부와 스스럼없이 지내는 스키터가 못마땅하다. 가정부는 꼭 필요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힐리는 가정부와 같은 화장실을 쓰거나 같은 식기를 쓰거나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수는 없다. “그들과 같은 화장실을 쓸 수는 없어. 흑인들한테는 병균이 있대. 내 아이에게 병균이 옮으면 안 되잖아? 내 아이의 건강은 내가 지키겠어!”

가정부한테 자신의 아이를 돌보게 하고, 가정부가 해 주는 음식을 먹고, 가정부가 청소해주는 집에 살면서 화장실은 같이 쓸 수 없다니!

“그렇게 하는 게 그들에게도 좋을 거야. 개인 화장실을 갖게 되니 좋지요, 에이블린?”

스키터 역시 흑인 가정부의 손에 자랐다. 그런데 고향에 돌아왔을 때, 자신을 키워 준 가정부는 이미 해고된 후였다. 자신에게 가장 친밀한 존재였는데, 한 마디 말도 없이 해고해버리다니! “화장실을 따로 쓰게 하는 법안” 제출에 여념이 없는 힐리도, 긴 세월 함께 해 온 가정부를 단번에 해고해버린 어머니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자신의 글을 쓰고 싶어했던 스키터는 흑인 가정부의 이야기를 써보기로 한다. 바로 그들의 입장에서!

스키터는 어느 누구도, 당사자들조차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삶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다.

“에이블린,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의 삶은 어땠나요? 처음부터 가정부가 되리란 걸 알고 있었나요? 다른 삶을 꿈꾸었던 적은 없나요? 당신의 아이 대신 백인의 아이를 키우는 심정은 어떤가요?”

처음부터 가정부로 살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도 가정부였고, 할머니는 노예였다. 다른 삶은 생각해보기 힘들었다. 아들이 하나 있었다.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어느 날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 그 위를 트럭이 밟고 지나갔다고 했다. 백인들은 다친 아들을 가축처럼 트럭에 실어 흑인들만 다니는 병원 문 앞에 던져놓고 경적만 한 번 울리고 돌아갔다고 한다. 병원에서도 손 쓸 방도가 없어 집으로 돌려보냈고 아들은 내 눈 앞에서 죽었다.

책을 쓰는 일이 스키터에게는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에 시작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에이블린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그 일은 꼭 해야만 하는 어떤 일이 되어버렸다. 에이블린에게도 스키터의 제안이 처음에는 탐탁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느 때처럼 길을 가다가 백인이 쏜 총에 맞아 죽게 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던 시절이었다. 백인과 어울렸다는 이유만으로도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면서 책을 쓰는 일은 자신과 아들의 삶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노라고, 여기 이렇게 살다 죽은 생명도 있노라고.

잭슨 마을의 가정부들 사이에 스키터와 에이블린이 하는 일이 은밀히 알려지고, 그들의 작업에 참여하고자 하는 흑인 가정부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그렇게 책은 출판되었지만 마을의 문제는 여전하다. 흑인 여성들은 여전히 백인 가정의 가정부로 일하고, 그들에 대한 차별도 여전하다. 스키터의 남자친구는 괜한 문제를 건드렸다며 화를 낸다.

“아무도 그들의 일에 관심 갖지 않아! 지금 이대로 좋은데 왜 문제를 만들려고 해?!”

하지만 스키터는 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다. 그들 역시 지금의 삶에 만족 할 것이라는 건 우리 생각일 뿐이다.

-공감의 힘-

스키터가 책을 쓸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삶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깊은 공감으로부터 우러나온 진심이 흑인 가정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줄 용기를 갖게 만든 것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하나는 백인 고용주 셀리아(제시카 차스테인 역)와 흑인 가정부 미니(옥타비아 스펜서)의 관계가 점차 변화해 나간 것, 다른 하나는 스키터의 어머니가 스키터에게 가정부를 해고하던 날 있었던 일을 들려주는 장면이었다.

미니는 힐리의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였지만, 집안에 있는 화장실을 썼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힐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미니가 도둑질을 해서 해고한 것이라고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미니는 한동안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일을 하지 못하는 동안 미니는 집에서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러던 중 에이블린의 소개로 마을 외곽에 있는 세일라의 집에서 일하게 된다. 세일라는 마을 여자들에게 따돌림을 받아 미니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한 것이다. 힐리에게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는 미니는 백인 여자들과 거리를 두기로 결심하고 세일라에게 거리를 두려 하지만, 그녀가 임신한 아이를 유산하고 괴로워 할 때 그 곁을 지켜주며 마음을 열게 된다. 세일라 역시 미니에게 위로를 받으며 그녀에게 의지하게 되고, 미니가 남편에게 맞아 눈에 상처가 난 걸 보고는 “당신은 맞서 싸울 힘이 있는 사람인데 왜 맞고만 있나요? 나라면 후라이팬으로 뒤통수를 날려버리겠어요.”라며 위로해준다. 용기를 얻은 미니는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온다.

스키터의 어머니도 가정부와 사이가 좋았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 손님들이 있을 때 가정부의 딸이 어머니를 보기 위해 찾아왔다. 손님들은 흑인 가정부의 딸이 백인 주인집의 거실에 들어오는 게 못마땅했는지, 스키터의 어머니에게 여자를 당장 내쫓고 가정부도 해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눈치를 보던 스키터의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가정부를 해고한다.

진실에 눈뜨게 하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진실에 눈멀게 하는 관계가 있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미니는 셀리아와의 관계에서 용기를 얻어 남편을 떠날 수 있었고, 아이를 잃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셀리아는 미니와의 관계를 통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떤 관계는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킨다. 반면에 스키터의 어머니는 집에 왔던 손님들보다도 가정부와, 그리고 그녀의 딸과 더 친밀한 관계였음에도 손님들의 눈 밖에 나는 것이 두려워 자신과 가정부와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밝히는 대신 가정부를 해고하는 쪽을 택한다. 어떤 관계는 한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은 어떤 관계일까? 삶을 변화시킬 힘을 주는 관계일까 상처를 주는 관계일까?

영화의 마지막에 에이블린은 이렇게 말했다. “누가 내 삶에 대해 묻기 전에는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 삶을 뒤돌아보면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됐고, 내가 누구인지 알고 난 후 이웃들을 더 잘 보살필 수 있게 되었다. 진실을 말한 뒤 자유를 얻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으며,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공부는 해서 뭐하나. 이까짓 글 좀 끄적거린다고 세상이 달라지나.’ 하는 한탄은 이제 그만 해야겠다. 이 여성들이 보여 준 연대는 정말 소소한 일상적인 것―화장실 쓰는 문제―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지 않은가? 내가 감지하고 있지 못할 뿐이지,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탄은 이제 접고, 진실에 눈멀게 하는 관계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나로 인해 관계들이 잘못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봐야겠다. 그리고 나의 글쓰기가 세상을 바꾸는 작은 첫걸음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련다.

세상을 짊어진 어머니 이소선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강 지 은(건국대학교 강사)

 

“엄마 배고파”

열 두 살 우리 딸이 학교에 다녀와서 제일 먼저 나에게 하는 말이다. 일 때문에 나가야 할 땐, 아이가 하교하는 시간이 되면 듣지 않아도 들리는 듯 귓가에 맴도는 소리이기도 하다. 가끔 바쁘거나 온 몸이 귀차니즘으로 가득한 마흔 한 살의 엄마는 천 원 짜리 한 두 장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런데 왜 맨날 나보고 배고프다고 하지? 그건 말하나 마나 내가 엄마이기 때문이다.
영화 ‘어머니’ 포스터“엄마 배고프다 …” 이소선은 아들의 마지막 말을 듣고 기도 차지 않았다고 한다. 그 말이 얼마나 가슴을 쥐어뜯던지 이소선은 정신을 잃었다.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 재단사로 일하던 아들 전태일이 열악한 노동현실을 바꿔야한다 외치며 불꽃으로 산화한 그 날, 병원에서 이소선은 배고픈 아들을 그렇게 보냈다. 마흔 한 살에 아들을 보내고, 마흔 한 해를 아들의 부탁과 함께 살아온 이소선은 2011년 9월 3일 영면하였다. “캄캄한 암흑 속에서 연약한 시다들이 배고픈데, 이 암흑 속에서 일을 시키는데, 이 사람들은 좀 더 가면 전부 결핵 환자가 되고, 눈도 병신 되고 육신도 제대로 살아남지 못하게 되요. 이걸 보다가 나는 못 견뎌서, 해보려고 해도 안 되어서 내가 죽는 거예요. 내가 죽으면 좁쌀만한 구멍이라도 캄캄한데 뜷리면, 그걸 보고 학생하고 노동자하고 같이 끝까지 싸워서 구멍을 조금씩 넓혀서 그 연약한 노동자들이 자기 할 일을,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엄마가 만들어야 해요.”(『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오도엽 씀, 후마니타스, 83-84) 그토록 자상한 아들, 그토록 어여쁜 아들이 불타 익어 숨이 넘어가면서 한 부탁을 이루어내려고 어머니는 평생 뒤도 안 돌아보고 살았다.

열 서너 살 시다들이 종일 굶고 일하는 것이 안타까워 버스비로 풀빵을 사먹이던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은 아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마흔 한 해 동안 세상의 어머니이기를 자처했다. 중앙정보부와 평화시장 사업주들이 돈다발을 들이밀었어도 거절한 건 아들 때문이었다. 내 식구 배부르게 할 수는 있지만 그건 아들이 바라는 세상은 아니었다. 모든 회유책에서 끈질기게 벗어난 이소선은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를 16인 이상 고용업체까지 확대할 것이며, 근로기준법을 위반할 때 내리는 벌칙도 강화하겠다는 약속과 전태일이 항거하며 요구한 사항을 들어주겠다는 합의서를 받고 아들의 장례식을 치렀다.

 

배고픈 노동자들의 어머니

배고픈 노동자들의 어머니가 되기를 자처한 이소선은 시내에 빌딩을 살 수 있는 돈 대신 노동조합을 선택한다. 전태일이 분신 항거한 지 2주일 만에 청계피복노동조합은 만들어졌지만 얼마 못가 사업주와 정부의 탄압에 온몸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형사들과 몸싸움도 해야했고 수없이 유치장 신세를 졌으며 징역을 살았다. 독재정권과 경찰들에겐 ‘빨갱이 년’이었다. 도대체 이 땅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길을 어머니는 걸었다. 이소선은 헌옷 장사를 했다. 전태일이 죽기 전에는 전태일을 위해서, 아들이 죽고 나서는 새로 생긴 아들들을 위해서 헌옷을 모아 팔았다. 다른 이들은 재수 없다며 거들떠보지도 않는 죽은 사람 옷도 영안실에서 구해왔다. 이렇게 돈이 생기면 이소선은 조합으로 달려가 끼니 거른 조합 간부들에게 줄 라면을 끓였다. 평화시장 옥상에다 큰 들통을 걸어 놓고 나무를 지폈다. 새벽 두시부터 국숫집에 가 줄을 서서 싸게 사온 ‘파지 국수’로 만든 우거지 죽으로 조합원들의 끼니를 챙겼다.

철거반이 부술 때마다 전태일이 다시 짓곤 했던 블록집 쌍문동 208번지에서 어머니와 함께 전태일을 닮은 청년들이 전태일의 꿈을 꾸었다. 그런데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땅에 민주주의가 뿌리 내려야 했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는 결코 노동조합을 성장하게 두지 않았다. 박정희가 79년 10월 26일 죽고 새날이 올 줄 알았던 사람들은 얼굴만 바뀐 군사 독재에 또 다시 부딪혀야 했다. 전두환 정권 역시 노동조합을 수없이 탄압했다. 독재자들에 대한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던 시절을 이소선은 온몸으로 부딪혀 싸웠다. 때로는 수배자들을 보호했으며, 때로는 자신이 수배자가 되었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 폐쇄되었던 청계노동조합은 1984년 3월에 청계피복노동조합복구위원회의 이름을 다시 걸었다. 이는 다시금 노동조합과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 후로도 숫한 파업의 현장과 집회를 누비며 노동자들의 단결을 외쳤던 이소선은 전두환 독재정권의 폭압에 분신항거하는 또 다른 전태일들을 가슴으로 묻었다. 1986년 3월 17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한 신흥정밀 박영진의 마지막 유언을 받으며, 1987년 8월 22일 경찰이 쏜 최루탄에 심장을 맞아 죽은 이석규의 시신을 지키며 이 땅에서 힘없고 배고픈 사람들의 피와 눈물을 받아냈다.

 

억울한 죽음은 다시 없게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숱한 이들이 죽음으로 항거했지만 이들의 죽음이 제대로 밝혀지지는 못했다. 유족들은 자식들이 왜 죽었는지도 모른 채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평범한 시민이 권력에 홀로 맞서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유가족들은 이소선을 찾아왔다. 노동조합의 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이소선은 전태일과 같은 죽음을 막기 위해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를 출범시키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배운 것 없어 회장같은 일은 나서서 하지 않은 이소선이지만 전두환 정권에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거친 길을 떠안았다. 이소선은 쇠사슬에 묶인 노동자의 어머니이자 민주주의의 어머니가 되었다. “독재의 똥개들아! 나도 잡아서 죽여라. 나도 방패로 찍어 죽여라!”(『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245) 서슬퍼런 군사 정권에 목숨걸고 이렇게 외칠 수 있는 이는 자식을 지키고자 하는 어머니 뿐이다. 어머니의 외침에 유가협 부모들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이 글의 자료는 전적으로 오도엽이 꼬박 5백일 동안 이소선과 나눈 이야기를 담은 책『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2008년 12월에 출판된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오도엽은 이소선에게 마지막으로 이리저리 하고 싶은 말을 묻는다. 『전태일 평전』의 인세를 고스란히 이소선의 활동에 쓰라고 준 조영래 변호사, 군홧발 무섭던 1980년 남산에 잡혀갔을 때 동상 걸린 발에 약을 사다 발라주던 젊은이, 수배당해 도망다니며 얻은 결핵을 제대로 치료도 못할 때 자기 집에 숨겨주고 주사 놔주었던 간호사, 자기보다 나이 어린 이소선에게 어머니라 부르며 존경하고 도왔던 문익환 목사님, 전쟁 끝나고 오갈 데 없는 이소선의 식구들에게 처마밑을 내 주었던 집주인, 청계 조합원들… 그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했다. 그리고 아들의 원을 풀어야 했기 때문에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자식들, 독재 때보다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미안함을 전했다.

 

어머니는 가셨지만…

척박한 이 땅에 전태일이 노동조합의 씨를 뿌렸다면 이소선 어머니는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았다. 노동자들이 전태일의 꿈을 따라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민주노총이 건설되었다. 어머니는 민주노총이 만들어질 때 제일 기뻤고 다음으로 기쁜 게 민주노동당이 국회의원 만든 것이라 했다. “잘난 척하지 말고 소외받은 사람 곁으로 내려가서, 고통받는 노동자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차별 없는 세상 만드는 데 힘써야지. 욕심부리지 말고 차근차근 국민 지지받아 국회도 많이 가고, 그래서 나중에는 대통령도 하면 좋지 않겠냐”『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283). 이론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마흔 한 해 아들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가면서 터득한 진리이다. 이런 어머니를 위한 훈장 추서가 기각되었다. 민주인사들에게 수여하는 이 훈장이 기각된 이유는 다른 민주인사들과 비교 검토할 수가 없어서란다. 지금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예처럼 사는 현실을 두고 어머니는 국가가 주는 훈장을 가슴에 달지 않을 것 같다. 어머니가 바라는 것은 명예도 아니고 돈도 아니지 않았던가.

 

속. 상. 해. 하. 지. 마.

고령과 지병으로 더 이상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를 어머니를 담으려고 했던 영화가 올해 말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의 개봉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실 줄은 아마 제작진도 몰랐을 것이다. 이제 어머니는 없다. 한국의 아픈 근대사와 싸우고 보듬었던 시대의 어머니는 마흔 한 살에 아들을 보내고 마흔 한 해를 살다가 지난 달 잠들었다. 어머니의 영화도 참 힘든 길을 가고 있다. 상업영화가 아니니 후원도 필요하다(http://sosun.tistory.com/). 어머니의 길을 오롯이 남기진 못하겠지만 최소한 그를 기리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속.상.해.하.지.마.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에게 말한 것처럼 돌아가시면서 우리에게 남기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 같다. 속상해 하지 않으련다. 대신 꿈꿀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머니를 기리며 어머니의 꿈을 함께 그리는 것이 아닐까.

 

사족 한 마디

이제 곧 대한민국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총선, 대선을 치러야 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도 여성 후보들이 등장했지만 앞으로 다가올 선거들에서도 여성 정치인의 약진이 펼쳐질 것이다. 정말 한 마디만 하자. 함부로 어머니의 마음가짐으로 정치에 나왔다는 말을 하지 말자. 채 한 줌도 안 되는 일부 고위층을 위하여 출마하는 여성정치인은 정말 어머니, 엄마를 입에 담지 말자. 우리에게 필요한 어머니, 엄마는 이 땅의 아픈 손가락들을 보듬을 수 있어야 한다. 앞에서 하는 말과 뒤로 챙기는 욕심이 따로 있어서는 안 된다. 정말 한 마디만 더 하자. 이소선 어머니의 마음으로 정치할 수 있는 여성 정치인이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우리가 손을 보태자.

소금꽃나무, 상처 그리고 치유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연 효 숙(연세대)

 

1. 소금꽃나무들

 

유난히도 비가 많이 와서 그다지 덥지 않았던 2011년 여름. 요즘 9월 들어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도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제법 가을 냄새가 난다. 그러나 부산 한진중공업의 85호 크레인에서 250여일을 지내며 아직도 내려오지 못하는 여자가 있다. 좁은 크레인에서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얼마 전에는 위를 다쳐 죽으로 연명한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 왔다.

김진숙,52세 비혼(非婚).2011년 들어서 더 유명해진 그녀! 그녀가 남자였다면 뒷바라지하는 아내나 가족들이 있었을 터인데, 그녀는 혼자이다. 물론 85호 크레인 바로 아래에는 그녀를 지키는 한진중공업 해직 동료 노동자들이 있고, 많은 이들이 그녀의 길고 끈질긴 투쟁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솔직히 내가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1차 희망버스에 오를 희망자들을 구한다는 메일을 열어 보고서 그제서야 김진숙이 눈에 들어 왔다. 물론 그 전에도 그녀 이름은 들었지만 나는 모른 채 했었던 것 같다. 나를 위시한 우리 이웃들이 그녀에게 한 번의 눈길도 주지 않았을 때조차, 그녀는 칼바람의 겨울부터 봄을 지낸 후, 뜨거운 여름을 지내고 가을바람이 서늘하게 부는 요즘까지 85호 크레인에서 요지부동 내려오지 않고 있다.

희망버스가 4차까지 떠났다. 그래도 나는 이 희망버스에 한 번도 오르지 못하고, 그저 뒷켠에서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아무런 응원도 격려도 희망의 메시지도 보내지 못하고, 그냥 살기 바빠서…. 라는 핑계만 만들고 있을 뿐이다. 무기력과 자괴감이 슬며시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지인에게서 들은 그녀가 쓴 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녀가 쓴 책, 『소금꽃나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응? 소금꽃나무라고? 세상에 그런 꽃나무가 있나? 뭐지? 궁금했다. 책을 봤다. 아! 소금꽃나무는 노동자들이 흘린 땀이 소금이 되어 등짝에 달라붙어 마치 허옇게 핀 소금꽃나무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소금꽃을 피워내는 노동자들이 바로 소금꽃나무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달밤에 하얀 소금을 뿌린 듯 피어 있는 메밀꽃의 서정보다 더 진한 꽃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처럼 소금꽃을 피워내는 많은 소금꽃나무들이 있다. 이들이 땀흘려 배출한 소금 결정체인 소금꽃나무들이 여기저기에서 많은 피눈물을 쏟아내고 있다. 2009년 봄 77일간의 기나긴 쌍용자동차 파업은 경찰의 잔인한 진압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동안에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들은 극한의 투쟁을 벌였고, 진압 과정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치유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상처들이 이 후에 남겨진 것이다.

 

2. 상처받은 자들의 절규

 

김진숙, 그녀는 매우 강한 여성이다. 통일문제연구소장인 백기완 선생은 그녀를 80평생 만난 여자 중 최고의 여자라고 했다. 그만큼 속이 단단하고 인내심이 강한 여성이다. 고공 크레인에서 250여일을 넘겨가며 버티는 일은 세계적으로도 아마 유래가 없을 것이다. 김진숙은 강한 여성이니 그정도 시련은 견뎌낼 것이다, 라고 그녀를 믿고 방치하는 것은 정말 괜찮은 일일까?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까 싶다.

왜 그녀라고 상처를 받지 않겠는가. 철의 여인이라 잘 버텨 낼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모질고 독한 년(?)이라고 이를 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녀가 입었을 상처를 인간적으로 깊이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그녀가 입은 상처와 상흔은 한진중공업 사태가 해결되고, 그녀가 크레인에서 내려 올 때 비로소 헤아려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꿋꿋하게 버티고 있지만, 그녀도 꽃을 보면 감동하고 마음이 설레는 평범한 여성이 아니겠는가. 부디 상처를 덜 입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금꽃나무』에 보면 그녀의 가족사를 언급한 ‘상처’의 부분이 있다. 나도 읽다가 고통이 와 닿아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슬그머니 책을 덮어 버리게 된다. 노숙자로 전전하다가 10여년 만에 경찰서로부터 변사체로 발견되었다고 소식이 날라 온 남동생의 비참한 죽음! 그 딸인 채 스무살이 안된 조카가 가출 2년 만에 몸이고 마음이고 간에 만신창이가 되어 미쳐 버린 채 돌아오고…… 그래도 애써 태연한 척 그녀는 그 상처들을 담담하게 적고 있다.

어디 그녀의 피붙이 가족들만이 그녀에게 상처가 되었으랴! 한진중공업에서 파업 철회 투쟁을 하다, 불의의 객이 되어버린 적지 않은 가장들, 그 소금꽃나무들의 죽음이 새긴 상처. 그 상처가 분노가 되어 한여름엔 지글지글 끓는 크레인의 철골 위에서, 한겨울엔 살을 에이는 듯한 찬바람의 서슬 속에서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하면서 지금껏 250여일 가까이 김진숙은 내려오지 않고 있다. 85호 거대한 크레인보다도 더 강한 그녀이지만, 예쁜 꽃과 같은 감성을 지닌 그녀 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을 상처는 누가 언제 어떻게 보듬어 줄 것인가.

얼마 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상처를 보여준, KBS스페셜, “심리치유, 8주의 기록, 함께 살자!”를 시청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와 마인드프리즘 팀에서 이들의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짧은 8주 동안 치료하면서 살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죽음에 대한 긴장감이 사라진다. 베란다에 서면 자살 충동이 일어난다. 늘 가까이 있는 죽음의 유혹, 끝없는 무력감과 고통스러운 기억들의 반복, 시시때때로 솟구치는 분노와 사람들에 대한 깊은 불신. 그들의 삶과 마음은 바로 불지옥이었다.

정혜신 박사는 이들이 77일간 쌍용자동차 파업 기간에 겪은 고통, 폭압적인 진압, 경찰에 의한 체포 등에서 입은 상흔을 원자폭탄에 피폭된 상태에 비견했다. 그만큼 엄청난 영혼의 손상을 입은 것이다. 이 영혼의 손상은 한 개인의 영혼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후, 삶은 철저히 무너졌다. 자살과 심근경색 등으로 인한 사망률이 평균 3배 이상이 되었다.

한 정리해고자의 “내가 무슨 지독한 죄를 지었기에 이런 끔찍한 대우를 받는지…..”라는 가슴을 후펴파는 절망스러운 목소리가 귀전에 남아 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쌍용자동차에 취업했고, 또 정리해고 후에도 여전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생존의 투쟁을 했을 뿐인데, 그들에게 돌아왔던 건 무자비한 폭력과 상처 뿐이었다.

이러한 상처들에 겹쳐지는 얼굴들, 청년 실업의 문제!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얼굴들이 대체로 어둡다. 기운이 없고 패기가 없다. 무슨 죄를 지은 양, 어깨가 축 처져 있고 눈동자에 슬픔과 암울함이 비친다. 기운이 하늘을 찌른다 해도 모자랄 20대 청춘들의 얼굴에 그늘이 지고, 언제 폭발할지 모를 상처들이 가슴 속 깊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왜 우리 세대만 이런가? 우리는 왜 이렇게 저주받고 있는가? 청춘들의 좌절과 분노와 절망에 대해 우리 사회는 냉담으로 초지일관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언제까지 이러한 상처 내기를 되풀이할 것인가? 국민을 위한 국가는 진정 없는 것인가? 이 국가는 도대체 어떤 국가라는 말인가? 그래, 이 국가는 특권층을 위한, 강한 자를 위한 국가가 아니었던가? 힘과 권력으로 상징화된 강한 남성의, 강한 아버지의 국가였던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상징화된, 폭력과 압제의 코드가 교묘하게 숨겨진 아버지의 국가, 상징계의 국가였던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 그 위력에 우리는 왜 이렇게 무기력한가? 약한 아버지, 약한 남성, 약한 여성, 약한 청소년들은 극한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 상처받은 영혼들을 언제까지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3. 트라우마는 치유 가능할까?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너무도 깊은 상처를 입고 있다.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왜 그 생채기가 났는가를 아는 것인데,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저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바꿔볼 도리가 없는 것 아니냐 하는 패배의식이 우리를 더 병들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상처를 응급처치하고 대증적인 요법만으로 땜질해서는 곤란하다. 상처의 원인을 찾아 그 병원균을 없애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병원균이 무엇인지는 암묵적으로 다 알고 있다. 병원균이 천하무적이어서 어쩔 도리가 없고, 그저 그 속에서 꼼짝없이 죽은 듯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도 모르게 체득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처는 계속 나고 곪아 터져 우리의 삶을 파괴시킨다. 그래서 상처를 직시하고 그 병원균을 처치할 새로운 치료제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아버지의 이름에 맞서는 여성주의가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그 중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보살핌의 윤리’다. 보살핌의 윤리를 우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변형시켜야 하지 않을까? 이 윤리를 그저 여성들의 자애롭고 따뜻한, 자칫 한가한 덕목으로만 쓸 것이 아니라, 진짜 상처 치유를 위한 적극적인 방식으로 활용할 때가 왔다. 우리 사회와 같이 온통 상처투성이인 사람들에게는 ‘보살핌의 윤리’가 ‘치유의 윤리’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여성주의적 보살핌의 윤리가 치유의 윤리로 버전업되어 우리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닌가.

그런데 치유의 방법과 길은 그다지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치유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정신과 전문의나 상담 치료소 등이 그 몫을 해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방향을, 어떤 대안을, 어떤 희망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여성주의자들이 이 치유에 동참하고 연대할 수 있는 부분적인 몫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우리 사회와는 상당히 다른 환경이지만,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테바가 『시적 언어의 혁명』에서 말한 기호계가 떠오른다. 기호계란 무엇인가? 폭력적인 아버지의 이름인 상징계를 거부하고 맞서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적 질서이다. 이 기호계가 상징계의 폭력으로부터 입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탈출구가 될 수도 있다.

상징계가 유일하다고 믿는 그 맹신을 던져 버려야 할 것이다. 세상은 다양한 질서로 짜여 있으며, 우리도 새로운 질서를 다양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 상처투성이의 삶으로부터 탈출하여 자유롭게 횡단하고 질주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주체가 되려면, 먼저 트라우마를 치유해야 할 것이다. 그 치유의 길은 생각보다 구체적으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 하드한 혁명보다 마음 속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소프트한 혁명이 우리에게 더 절실하다. 여성주의자들도 이들의 치유에 발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2) [무세이온의 올빼미]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2) [무세이온의 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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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미(동국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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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간순간을 아파하며 민감하게 느끼고 고민하고 있는 힙합 정신에서 미래를 본다. 모든 사람들이 물질을 추구하고 물질에 안주하고 물질을 위해서 오늘을 달리고 있을 때, 지하철 어느 모퉁이를 연습장 삼아 춤추었던 사람들, 비 새는 공동 작업실에서 물을 퍼내가면서 음악 작업을 하는 사람들, 이들의 젊음과 열정이 ‘돈 벌어 먹고 살기의 쇠 창살’에 갇힌 인간에게 희망이라는 진실을 느낄 수 있게 하리라고 생각한다. 여기, 키비라는 한 힙합 음악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 시대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함께하기 바란다.

– 젊은 예술가의 초상-키비(kebee)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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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비( 2007년 앨범)힙합 인디 레이블의 아이콘인 ‘소울 컴퍼니’의 사장이자 힙합 뮤지션인 키비를 만난 건 2011년 2월 25일 저녁 6시 10분이었다.

‘소울 컴퍼니’ 위치를 설명하기 곤란했는지, ‘상상마당’ 앞에서 보기로 했다. ‘상상마당’은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너는 홍대 앞에서 클럽 가지? 나는 홍대 앞에서 철학한다!’라는 모토로 철학 강좌를 연 홍대 앞 문화 공간이다. 키비는 상상마당에 미리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면이지만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키비의 단정하고 반듯한 미소가 반짝였다. 처음엔 뭐라 말해야 할지 많이 걱정하고 갔는데, 환대받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무엇이든 물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마당에서 소울 컴퍼니로 가는 200여 미터의 짧은 거리 동안, 그 잠시도 놓치지 않고 몇 가지를 물었다. 대뜸 ‘어찌 그리 단정하냐?’고 물었다. 웃으며, ‘그래서 자신들의 힙합 공연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께서 힙합 공연에 아이들만 보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시더라’ 한다. 은희경 작가의 작품 『소년을 위로해 줘』를 쓰기 전에 키비를 벌써 만났던 거냐와 주인공 소년이 키비를 모델로 했던 거냐를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은희경씨가 소설을 쓰면서 고민을 하는 글을 읽고 키비가 먼저 연락을 했다고 한다.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그리고 지금은 정신적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얘기를 나누며 잠시 가고 있었는데, 뒤에서 어떤 여학생 둘이 내게 묻는다. 혹시 저분 키비 아니냐고. 맞다고 했더니 “꺄~” 소리를 지르며 키비에게 자기들을 소개해 달라고 한다. 불과 이들보다 1분 앞서 만난 내가 키비에 대한 기득권이 있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었고,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지금 만나고 있는 키비의 유명함에 내 어깨가 으쓱해졌다.

뮤직 비디오 화면만으로 보던 키비의 사무실, ‘소울 컴퍼니’는 가운데 넓은 공간의 사무실과, 내부의 작업실들로 구성된 공간이었다. 네모난 사무실인데 난 그 공간이 둥글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누는 이야기가 둥글었던 것 같다.

가장 먼저 꺼낸 질문은 ‘힙합을 청년 문화라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힙합을 많은 청소년이 듣지는 않더라’는 것이었다. 키비는 이를 인정했다. ‘오버 그라운드든 언더 그라운드든 클럽에 찾아와 듣고,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언더 그라운드 음악을 찾아 듣는 건 소수’라는 것이다. 찾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취미 시간이 허락되지 않은 청소년들의 얼굴이 머리를 스쳤다.

단도직입적으로 키비에게 ‘오버에 못 올라갔나, 안 올라갔나’를 물었다. 키비는 이렇게 답했다.

키비: ‘그걸 정해놓고 하는 건 아니다. 음악하는 사람의 목표 지점은 각자 다르다. 유명해지는 것이 좋은 사람도 있고, 자기 음악을 제시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등이다. 나는 음악을 하는 것 자체가 동기였다. 자기가 음악 생산에 다 관여할 때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악을 하려는 사람에게 열린 길 중에는 기획사에 들어가는 식의 오버 그라운드 방식도 있지만, 이 중에서 기회를 스스로 만드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것이 곧 언더 그라운드이고, 그게 인디 음악이다. 시장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청중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시장이라는 표현을 쓴다’라고 물었다. ‘그리고 현실의 무엇이 키비에게 시장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언더를 하게 했나?’라고도 물었다. 키비는 답했다.

키비: ‘22세에 창업했다. 형동생 하는 친구들이 회사를 만들어 7년 왔다. 기획사에 들어가 오디션을 보거나 데모 시디 갖고 다니던 친구들도 있었고, 스스로 만들어봤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중 자기 길 가는 사람도 있고 음악을 안 하는 사람도 생겼다. 음악의 유일한 길이 기획사 가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들이 입증하는 거다. 기획사 가면 자기 음악보다 기호에 맞는 음악만 억지로 하게 된다. 같이 음악 시작했던 사람 중에 자기 색 잃고, 그렇다고 상업적 성공을 하지도 못한 친구를 보았다. 나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자 동시에 생활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음악을 구입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내 삶이 유지되니까. 나는 취미로 음악을 하는 게 아니고 그게 내 삶이니까 그걸 통해 살기도 하고, 그러면서 내가 존립하는 거다.’

‘음악을 하게 된 시점’을 물었을 때 키비는 중학생 시절을 기점으로 꼽았다.

키비: ‘중학교 방송반 하며 힙합을 점심시간마다 틀었다. 미국 본류 힙합. 궁금해 하다, 따라 듣다, 졸업하고 나서 고교 가기 직전, 클럽 가서 너무 충격적이고 즐거웠다. 프리스타일 랩. 비트에 맞춰 하는 즉흥랩을 보며 멋있고 놀라웠다. 지금 성격도 까불지 않는데 그 때는 더 조용했다. 말하고 싶고 억눌린 것이 있었는데 그 장이 모두에게 주어져 있었다. 뮤지션과 관객 모두에게. 나를 데리고 간 친구가 랩을 하더라. 나는 처음이어서 안 올라갔지만, 이 때 랩이라는 음악이 가슴에 들어왔다.’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키비: ‘가사 쓴 건 고2때부터인데, 첫 작품은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당시 노트는 있다. 힙합은 가사량이 많고, 많을 수 있다. 메시지가 많을 수 있다.’

‘비트나 비보잉 등을 중시하는 힙합퍼도 있을 텐데. 키비는 가사에 집중하나?’를 물었다.

키비: ‘나는 처음에 힙합 문화는 몰랐고 랩이 좋았다. 랩하고 가사 쓰고 프리스타일하면서 힙합 문화를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반대 경우도 있다. 힙합 문화에서 출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랩에서 라임이 중요하다, 아니다에 대해 논쟁하며, 네 라임은 1차원적이라는 둥 서로를 극단적으로 비방하며 하는 논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었다.

키비: ‘나는 논쟁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뭐가 옳든 그르든 한 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할 만큼의 에너지가 오간다는 게 중요하다. 사실 정답이 없다. 음악에서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하다보면 정답이라는 게 무의미하다. 누군가 정답을 만드는 순간, 그것에 대한 대안이 만들어지니 정의내리는 게 시간낭비이다. 하지만 누구든 답을 만들고 싶어 하고, 그 과정에 동참하는 사람이 힙합씬을 활발하게 만들고 있으니 답을 모색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지 않은가?’

‘미국 힙합씬에서 배틀하다 죽이기, 디스하기, 분쟁 등의 사례가 있다. 한국 힙합씬에서는 이런 게 어떻게 드러나나?’

키비: ‘한국에서는 뮤지션, 매니아, 힙합 범주 밖에서 보는 사람들 모두 조금 오해하는 게 있다. 여기는 미국이 아니며 우리 힙합은 우리 문화 속에서 하는 거다. 흑인 문화가 그대로 우리 삶 속에 들어올 수는 없는 거다. 우리 문화와 사회적 흐름 안에 어울리는 형태로 힙합이 발전하는 거고 나라마다 다르게 발전한다. 미국 문화를 보면서 가사에 그런 분쟁 써야 해 라는 생각을 하는 친구도 있는데 그건 그들의 철학이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 문화와 다른 문화 토양 속에 있는데, 그런 걸 그대로 가져오는 건 이율배반 아닌가 싶다. 우리 풍토와 상황에 어울리는, 내 스스로가 편한 마음으로 음악을 하고 싶다. 나는 서정적인 랩으로 표현하는 것을 추구한다. 우리 문화 안에서, 우리의 흐름 안에서 형성된 내 성격에 따라 나는 음악을 해가고 있다.’

‘요즘 들어서 키비의 음악 스타일 달라졌다는 평도 있더라.’

키비: ‘그건 신경 안 쓴다. 그때그때 하려는 게 있고 앨범에서 성취하려는 것 있다. 10년 여 음악을 해왔다. 그동안 어떤 굴곡을 가졌다고 내 음악에 결론을 낸 게 아니다. 앞으로 성취해야 할 음악이 훨씬 많기 때문에 변했다는 평은 나를 흔들지 못한다.’

‘그렇게 붙들려고 하는 힙합, 힙합의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코어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키비: ‘삶이다. 무슨 얘기냐면, 힙합은 다른 장르에 비해 훨씬 더 말에 가깝다. 더 날것이다. 정제되지 않은, 익히지 않은 날고기 같은 것. 힙합 음악에 내 삶을 그대로 투영할 수 있고, 삶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다. 그래서 더 자유로운 것 같다. 물론 록도 자유다. 음악의 정신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힙합 음악 속에 담긴 자유는 겪은 삶이 있고, 겪은 삶을 삶 그대로 풀어낼 수 있는 음악이라는 의미에서 자유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서 자유를 만끽하는 거다. 힙합은 다른 음악 장르보다 훨씬 더 말에 가깝다. 그래서 정제해서 만들지 않아도 분출해낼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이런 생각 형성에서 가장 영향을 받은 것은 무엇인가, 혹은 사람은 누구인가?’

키비: ‘가리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한국 사회, 한국의 말에 가장 맞는 힙합 음악을 추구하는 정신을 배웠다. 가리온의 메타 형은 불혹으로 나와 띠동갑이다. 2011년 2월 23일에 있었던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가리온이 ‘올해의 음반’, ‘최우수 힙합 앨범’, ‘최우수 힙합 노래’ 등 3관왕의 쾌거를 이뤘다. 굉장한 사건이 아닌가?’

‘키비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키비: ‘지금 가르치는 사람은 있지만 내 음악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영향을 받았다는 사람 생기지 않겠나?’

‘음악을 만들어내고 창조하는 사람. 이전에 없었던 걸 창조하는 사람을 보면 경외의 마음을 느낀다. 글을 몇 자 쓰는 사람으로서, 글 쓰는 건 재배열의 성격도 있는 것 같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거니까. 그러나 음악을 창작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창작자로서 느끼는 창작의 고뇌는 무엇인가?’

키비: ‘나도 무에서 나오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살지 않고는 무엇이 안 나온다. 경험했기에 음악이 나온다. 창조하는 사람은 관찰하는 능력이 뛰어난 듯하다. 모두가 많은 걸 겪으며 사는데, 그것을 관찰해내고 기록해내고 남기는 사람이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자기와 맞닿아 있는 걸 접하고 느끼면 좋아하는 사람이 예술가인 것 같다. 삶이 없는 예술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 삶의 궤적이 더 다양해져야 한다고 느낀다. 대학을 다닐 때에는 친구들과 내가 공감하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점차 나는 음악하고, 다른 친구들은 직장 혹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 보니, 서로 나눌 얘기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요즘은 예술 범주 아닌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적어지니, 서로 공감할 것이 결국 사랑밖에 안 남지 않았나 싶다. 옛날에는 사랑 얘기 질색했는데, 이제 건드릴 주제가 사랑일 수도 있겠다 싶다. 얼마나 삶을 살고, 겪어서 음악을 풀어낼까 하는 게 과제인데, 연애하다 상실하고, 일 안 풀려 술 먹으며, 그래 이것이 가사 소재가 되네 하며 그런 식으로라도 위안한다. 현재 창작의 고뇌라면 바로 이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과 조우할 지평을 넓혀야 하겠다는 것.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유네스코 예술가 정의가 자기를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경제는 먹고 살기, 정치는 공존의 문제 등 삶과 절박한 연관을 갖고 끊임없는 분쟁과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경제와 정치는 잘 못되면 누군가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에게 고통이나 피해 유발하지 않는 무해한 방식으로, 인간이 바라는 것,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면서도 예술은 고통 속에서 태어난다. 키비는 어떤 의미에서 예술가인가?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키비의 고통은?’

키비: ‘사실 나는 음악을 택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음악이 내게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을 통해 경제 생활도 하고 이걸 통해 세상에 내 존재 증명을 하게 되었다는 생각이다. 나는 아무리 봐도 내가 음악을 선택했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선택을 했다면 이것저것 중에 고민해서 이 길로 결정하는 것이었을 텐데, 나는 음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항상 나는 음반을 내고 있으면서도 내가 과연 음악을 할 수 있나 물었었다. 예술가라는 자의식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힘겹게 형성되었다. 나는 가수라는 직업을 가졌고 노래를 하니까 가수야가 아니라, 항상 음악에 대해 고민하고 삶을 살다보니 어느새 받아들여진 것이다. 지금까지 낸 음반이 네 장이 된다. 앞으로 더 하겠지만. 근원적으로는 소외감이 있다. 나 이외의 모든 것들이 내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고립되어 있다는 감정들. 그건 어릴 때부터 느꼈고, 그건 모든 사람이 그렇다. 고독. 모든 사람이 다 그럴 것 같다. 다 가지고 있는 고독. 예술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살기 때문에. 예술처럼 무해한 영역이 또 없고, 예술은 인간의 정신을 풍요롭게 만든다. 음악을 통해 무엇이 전달된다. 나 혼자에게서 끝나지 않고 누군가에게 가치가 전달되었다. 그런 의식을 하면서 예술가로서 자아를 찾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쓰고 있는 것, 만드는 음악이 누군가에게 들려지니까 어떤 대상을 두고서 쓰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기 만족을 위해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업이니까 어쩔 수 없이 쓰는 가사가 아니라 나를 통과했기에 흘러나오는 것이 나의 가사이다. 이렇듯 자기에게 온전하고 충실하고 자기를 다 벗겨 놓을 수 있는 작품이어야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통해 내가 위로를 받아야 그 감동이 남에게 갈 수 있다. 누가 들으면 안 된다거나, 누구에겐 불편할 수 있다고 하는 검열 장치를 만들기 시작하고, 그런 장치 때문에 내게 감동을 주지 못하면 그건 다른 누구에게도 감동을 못 준다.’

‘정말 잘 위로 받은 느낌이 드는 가장 좋았던 곡은?’

키비: ‘‘소년을 위로해줘’이다. 20대로 넘어오며 강요된 남성성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내 고민을 그대로 드러냈고, 비슷하게 고민한 사람에게 전달되었고, 대표곡이 되었고 인기를 누렸다. 인기를 위해 장치를 만든 게 아니라 고민을 그대로 얹어놓았다.’

‘또 있나?’

키비: ‘2집의 ‘백설공주’를 들 수 있겠다. 동화 ?백설공주?로 스토리텔링했다. 음반이 나온 해는 2007년인데, 아이디어는 2003년에 떠오른 걸 묵혀놨다 발표했다. 나이 드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자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가 궁금했다. 이 곡은 왕비가 주인공이다. 왕의 사랑을 받다가 백설공주가 나타나 사랑을 빼앗긴 그녀도 과거엔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을 텐데. 어린 소녀로 인한 그녀의 상실감에 대해 풀었다. ‘거울아, 거울아, 누가 가장 예쁘니?’를 물은 게 왜 거울이었을까? 거울이 ‘백설공주’라고 대답하는데, 사실 거울은 자기다.’

대화를 하는 내내 키비의 사색의 깊이가 느껴졌다. 사색하는 뮤지션의 초상을 보았다. 끝으로 『한국 힙합-열정의 발자취』라는 책에서 ‘소울 컴퍼니’의 ‘소울’이 ‘疏鬱’, 즉 ‘답답함을 풀어헤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본 적이 있어서 ‘키비’의 뜻을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의외였고 유쾌했다. ‘나중에 막 의미를 붙였는데, 그러다보니 내가 없더라. 사실은 스타크래프트 아이디를 만들다 옆에 있는 공룡 그림 보고 친 건데 그렇게 말하긴 뭐해 의미를 막 붙였었다. 그런데 그건 내가 아니니까 그냥 솔직히 말한다. 우발성의 계획(contingency plan).’

키비와 소울 컴퍼니와 힙합인에게 존경의 마음을 품게 한 잔잔한 대화였다.

– 끝으로, 지은에게

『어린왕자』에는 어른들은 새로 사귄 친구 얘기를 하면 ‘무슨 놀이를 좋아하나’와 같이 중요한 건 묻지 않고 ‘그 애의 나이는? 몸무게는? 그 애 아버지는 돈을 얼마나 버나?’ 등 숫자에 얽힌 질문만 한다고 투덜거리는 대목이 나온다.

어느덧 과거의 내가 이상하게 여긴 어른의 모습대로 나의 아들들에게 질문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훨씬 심하다. 때론 아이들이 예술가가 된다고 할까봐,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할까봐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예술을 좋아하는 공학도나, 철학에 조예가 깊은 회사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그 고통이 없길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적으며 생각한다. 고통이 없는 삶이 어디 있단 말인가. 고통이 있고, 고통에 대한 표현이 있고, 고통에 대한 위로가 있는 것이다.

키비의 고통과 그 고통에 대한 위로가 ‘소년을 위로해 줘’로 승화되었다. 지은의 고통과 그 고통에 대한 위로가 그녀의 글로 승화되었다. 그리고 우리 곁에 무수한 비명과 위로가 맴돈다. 예술과 철학을 하는 사람이 내지르는 비명이 저렇게 노래로, 작품으로 승화되어 교호하고 있다. 아들의 MP3에 담긴 곡들은 그의 비명이자, 그의 존재의 외침이다. 내 마음에도 울려 퍼지는 공감의 박동은 기성세대가 되지 않으려는 나의 몸부림이다.

자, 지은. 래퍼로서 따라해.

 

눈이 부시게 온 눈을 보고

화가 나는 우리~

눈과 같던 하얀 마음

지금은 녹슨 구리~

지친 마음 위로하며

상처를 나눠 둘이~

아픈 비명 달래어 주는

노래 불러 주리~ (작사 박민미, 작곡 누구나, 노래 우리들)

딸바보, 그 가부장성에 대하여 [배운년, 미친년, 나쁜년]

김세서리아(성신여대 연구교수)

‘딸바보’라는 신조어가 있다.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아버지를 일컫는 말이란다. 어떤 연예인은 ‘딸바보의 원조’라 하고 또 다른 연예인은 ‘딸바보의 종결자’라 불리운단다. 주변의 남자 선후배들 역시 딸바보 임을 자처하는 이가 많아졌다. 핸드폰 단축번호 1번을 딸아이의 핸드폰 번호로 저장하기도 하고 컴퓨터, 핸드폰의 바탕화면을 딸아이의 사진으로 장식하기도 한다. 게다가 딸 아이 사진을 서슴없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며 자랑까지 한다. 이처럼 아버지와 딸 관계가 남달라지고 ‘딸바보’라는 용어가 새로운 남성상을 대변하게 된 세태를 두고 가부장제가 그만큼 약화된 것을 증명하는 것일까? 이제는 어머니-자녀의 관계, 모성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자녀의 관계, 부성이 강조되는 시대가 이르게 된 것이라 말해도 좋을까?

-모성과 가부장제의 변주곡

가부장제와 모성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 모성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것이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이라는 것은 거의 일반화된 논의다. 모성을 여성의 본질적 특성으로 규정하고 여성 일반에게 강요하는 것은 확실히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과 부합하며 이러한 생각에서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모성을 여성억압의 원천으로 간주한다. 지나온 역사 속에서 모성과 가부장제가 상호 긴밀하게 연관되고 모성이데올로기가 가부장제에 봉사하였던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바처럼 가부장제가 모성 강조에 언제나 협조적인 것은 아니다. 그 둘의 관계 양상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모성과 가부장제는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지만 종종 갈등하고 모순 관계에 놓인다. 그래서 가부장제 질서를 위하여 모성이 포기되거나 모성의 강조가 가부장제 질서를 무너뜨리는 상황을 산출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 유교 사회에서 모성은 출산-태교-자녀교육의 과정으로 이어지면서 여성들의 중요한 규범적 책무로 되었으며 현대 사회에서는 그런 모성이 사라진 것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적으로 다 맞는 것은 아니다. 전통 유교 사회에서 모성이 강조되는 궁극적인 목적은 가부장 질서를 유지하고 공고화 하는 데 있었고 따라서 어머니-자녀의 직접적이고 친밀한 관계 보다는 어머니-자녀 관계에서 나오는 정서(모성)를 다른 사람들에게로 얼마나 잘 확장하였는가가 더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자녀에 대한 사랑과 보살핌보다 부모 봉양이나 조상의 제사가 더 우선시되는 전통 유교의 정서는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통 유교 사회에서 출산과 자녀 교육의 의미는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통하여 부모와 조상에 대한 효,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가부장제 질서를 공고히 하는 것에 있다. 때문에 자녀와의 친밀한 정서보다는 자녀를 기르는데 부지런히 애쓰고 그 성공을 바라는 것의 목적이 가문을 이어가며 죽은 사람을 잘 보내고 살아있는 사람을 잘 봉양하려는 것에 두어져 있다.

열녀 이 씨의 이름은 아무개로 선비 김 아무개의 아내이다. 나이 스물 하나에 그 남편이 병들어 죽자 바로 머리를 풀고 짚자리를 깔고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입관한 뒤에 관에 기대 곡을 하고 말했다. “장례가 끝나면 따라 가겠습니다.” 달을 넘기면서 임신한 것을 알게 되자 졸곡(삼우제 뒤에 지내는 제사) 때 곡을 하며 말했다. “홀몸이 아니니 감히 당신의 자식을 버릴 수 없습니다. 일 년 뒤에 따라 가겠습니다.” 해산을 해서 아들을 낳았으나 아들로 여기지 않고 여종을 골라 그에게 젖을 먹이게 하였다….“제가 복이 없어서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아내로서 마땅히 따라가야 합니다. 이제 저 어린 아이로 핑계를 대고 남편이 제게 말한 것을 어찌 감히 지키지 않겠습니까?” 아이를 불러 이마를 세 번 어루만지고 방으로 들어가려 하니 유모와 종들이 그를 엄하게 지켰다. ··· 여종이 자리를 정돈하고 베개를 편히 하자 손을 바로 해서 배에 얹고 눈을 감고 죽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정려를 내렸다. (이옥李鈺, 「열녀이씨전烈女李氏傳」)

“당신은 이 미망인을 염려하지 마시고 편안히 지하로 돌아가십시오. 저는 당신이 죽으면서 남긴 부탁 때문에 차마 바로 죽지 못합니다. 당신의 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아이의 나이가 5살이 되고 그때는 아이가 혼자서도 보전할 수 있겠지요. 그날이 되면 당신을 따르겠습니다.”·····탈상이 다가왔는데 딸이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다.······시부모는 그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눈치 채고 여종에게 지켜보라고 주의를 주었다. 하루는 여종을 시켜 딸의 약을 구해오게 하고는 지니고 있던 남편의 작은 띠로 들보에 목을 매고 죽었다. (황용한黃龍漢, 「열부함양박씨전烈婦咸陽朴氏傳」)

이와 같이 가부장제 이념이 우선하는 사회에서 모성이데올로기는 가부장제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이기는 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모성 강조는 가부장제에 도전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모성은 무시되어야 했다. 따라서 가부장제를 강조하는 만큼 모성이 강조되는 구도를 지니지만, 또한 가부장제 강화와 부계혈통을 잇는 목적의식이 강한 그만큼 어머니-자녀 관계에서 나타나는 친밀한 정서는 은폐되거나 축소되었다. 모든 여성에게 부과되는 모성이라는 본질적 의미로서의 정체성과 가족 구조의 재생산을 위해 부과되는 규범적 의미로서의 정체성은 가부장제 안에서 통합되는 상보적이고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지만, 이 둘은 종종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된다. 또 가부장제 이념과 정서적 모성이 상충했을 때에는 가부장제 이념이 더 우선한다.

-어머니/딸, 아버지-딸, 그리고 가부장제

전통 사회는 현대 사회보다 훨씬 더 가부장제적이라고 여겨지고, 그래서 모성도 더 강하게 부추겨졌다고 간주된다. 분명 이념과 질서, 가문의 영화와 존속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이해되었던 전통 사회에서 어머니-자녀의 관계는 강조된다. 하지만 그 관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대 가족에서만큼 어머니-자녀의 친밀감과 정서적 유대가 강조되지는 않는다. 즉 현대 가족이 모성에 근거한 자녀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하고 그만큼 어머니의 직접적인 보살핌을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에 비하면, 전통 가족에서의 어머니 역할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전통 사회에서 모성의 핵심은 어머니-자녀 관계가 남성 혹은 가부장제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달려 있었고, “가부장적인 친족체계 하에서 여성은 남성의 자녀를 갖는 자이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씨(seed)라는 개념”이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모성을 강조하는 목적 자체가 가부장제 옹호와 부계혈통 강화에 있었으므로, 아이를 남성의 소유로 계승시키기 위해서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의 존재는 가능한 은폐되거나 축소되어야 한다. 따라서 가부장제 사회에서 어머니-자녀의 관계는 한편으로는 강조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강력하게 무시되어야 한다. 출산이라는 여성의 일을 본성으로 규정하면서 그에 수반하는 여러 가지 보살핌의 실천과 심리들을 통해 거대한 모성 이데올로기를 산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출산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면서 철저하게 모성을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통 유교 사회의 씨받이 같은 제도는 가부장제를 유지하고 공고화하기 위하여 출산과 연관한 모성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모성을 무시하는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는 딸들이 어머니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자신에게 남근을 주지 않아서라고 본다. 또 어머니-아들의 관계는 어머니 자신의 낮은 지위와 충족되지 않는 욕망이 아들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는 기대로 설명된다. 때문에 어머니-딸의 관계와는 다른 위치에 놓인다. 아들을 위해 딸을 희생시키는 어머니는 딸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위치에 있다. 이에 반해 어머니를 대신하는 자상한 아버지는 남성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다.

때때로 “나는 여성보다는 남성과 친하고 남성에게서 동료애를 더 느끼며 남성에게서 더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말하는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하였다고 일컬어지는 여성들을 만난다.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다. 그 어느 누구라도 자신을 도와주고 힘을 북돋는 사람에 대해서는 감사와 호의의 마음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도 자체가 여성들의 지위를 상승시키거나 혹은 가부장제를 약화시키거나 남성과 여성의 화해 무드로 나아가게 하지는 않는다. 딸이 아버지와 친하게 되는 상황에는 여전히 아버지의 힘이 자리하고 있으며, 딸은 아버지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 이 때문에 많은 남성들은 자기 아내에게는 주지 않을 도움, 사랑을 딸들에게는 아낌없이 준다. 이렇게 보면 아빠들의 딸바보 행진은 가부장을 넘어서는 길목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