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이데올로기』1·2(2019), 『정신의 오디세이: 자유 의지의 역사』(2021) 등을 저술한 전 동아대 철학과 교수 이병창 회원이 영화와 소설, 철학 등 광범위한 문화 비평을 담아내는 코너이다.

헤겔 미학산책6-기호로서 예술[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미학산책6-기호로서 예술

 

1)

예술론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획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축은 모방이냐, 창조이냐 하는 축이다. 리얼리즘은 예술은 현실을 모방하는 것을 통해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모더니즘은 예술은 환상을 창조한다고 본다.

이와 교차하는 또 하나의 축은 객관적 미학과 주관적 미학이다. 객관적 미학은 미적인 것이 자연적 성질이나 관계처럼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주관적 미학은 미적인 것은 욕망의 만족에서 얻어지는 쾌감과 구분되는 일종의 쾌감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축을 긋는다면, 그것은 인식이냐 표현이냐 하는 구분이 될 것이다. 예술은 진리를 감각적으로 발견하는 것을 통해 성립한다고 보는 인지론자가 있다면, 미는 정신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한 표현 수단이라고 보는 표현주의자가 있을 것이다.

예술론을 세 가지 축으로 구획할 때, 예를 들어 칸트의 미학은 미적인 것을 주관적 감정에서 끌어내려 했다.[1] 반면 고전주의자 쉴러는 실재하는 조화와 균형이 미적인 것이라고 보는 객관적 미학자이다. 19세기 리얼리즘은 예술이 현실을 모방하는 것으로 보지만, 20세기 초 표현주의는 미란 진리를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으로 볼 것이다. 하이데거의 경우 미는 존재의 진리를 직관을 통해 발견하는 것이니, 전형적인 인지론자가 된다.

 

2)

헤겔의 미학은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되는 평면의 어디에 속할까? 많은 해석자는 헤겔이 실재론자나 인지론자에 속한다고 본다. 즉 이념은 감각적 작품에 실재하면서 미적 이념이 되며 우리는 직관을 통해 미적 이념에 다가간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미적인 직관능력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 직관능력은 이념을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 되어야 하는데, 헤겔의 철학 어디에서도 감각적 경험과 다른 어떤 본질적 직관 능력을 가정하는 것을 볼 수 없다.

더구나 작품 속에 미적 이념이 실재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작품의 질료는 물질의 법칙에 지배 받는 것이니, 미적 이념이 실재한다면, 작품의 형식 속에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념의 실재, 즉 그 속에 이념이 내재하는 형식이란 어떤 것인가? 결국 쉴러와 같이 조화와 같은 고전적 형식을 들 수밖에 없는데, 고전주의 시대 특히 조각 작품을 제외하고 다른 시대, 다른 예술작품은 전혀 그런 형식을 가지지 않으니, 그 모두를 예술작품에서 배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헤겔은 그 모두를 포괄하는 예술론을 전개하려 하니 이념이 실재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3)

이상 보듯이 헤겔을 실재론이나 인지론의 미학 평면에 집어넣기는 어렵다. 헤겔은 예술작품은 이념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예술은 이념을 표현함에 있어 사유와 순수한 정신성 일반의 형식으로가 아니라 직접 볼 수 있도록 감각적 형상으로 표현해야 하는 과제를 가진다.”[2]

위의 구절에서 헤겔이 표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주목하라. 또한 그 표현의 방식은 구체적으로 상징이나 현상, 가상 등 기호학적인 방식이다. 예술작품 속에 이념을 파악하는 방식 역시 기호에 대한 독해적 방식이니, 이점과 관련해 헤겔은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오히려 그것은 본질적으로 물음이며 반향하는 가슴에 건네는 말이며, 심정과 정신에 던지는 외침이다.”[3]

여기서 ‘물음’이나 ‘말’, 또는 ‘외침’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보자. 말이라는 단어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이런 단어들은 모두 기호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술작품은 문학뿐만 아니라 건축이나 조각, 음악, 미술조차도 하나의 기호이다. 예술작품은 그 속에 심정을 그 의미로 담지 하고 있는 기호이며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정신은 예술작품이라는 기호를 언어적으로 독해하면서 그 속에 담긴 의미로서 심정을 파악한다. 그러므로 예술작품은 심정에서 심정으로 전달된다.

이 점은 예술이 가상이라고 할 때 그 의미에서도 충분하게 드러난다. 가상[Schein]이란 자신을 통해 다른 것이 빛남으로써 그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말하는데, 이 말은 곧 그것이 이 다른 것의 기호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름다움은 개별적 형태가 고요 속에서나 운동 속에서 전개하는 빛남[가상성: Scheinen]을 다룬다. 반면 아름다움은 욕구의 만족을 위해 합목적적이라는 사실이나, 자발적으로 운동하는 것[Sichbewegen]에서 등장하는 전적으로 개별적인 우연성과는 무관하다.”[4]

 

4)

헤겔을 이처럼 표현주의자의 미학적 평면 속에 위치시킬 때 헤겔이 왜 자연미에 대립하여 예술미를 옹호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새의 다채로운 깃털은 보지 않아도 빛나며, 그 노래는 듣지 않아도 울려 퍼진다. 또한 단 하룻밤 꽃을 피우는 선인장은 그 누구의 찬미도 듣지 못하고 남쪽 지방 숲의 야생에서 시들며, 이 수풀 매우 달콤하고 황홀한 향기를 지닌 극히 아름답고도 울창한 식물군으로 이루어진 정글 자체도 역시 즐기는 사람 하나 없이 썩고 시들어 간다.”[5]

사실 자연(심지어 여기에는 인간의 현실까지 포함된다) 속에서 자주 규칙적인 것, 균형적인 것, 조화로운 것, 생동적인 것, 합목적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고전주의 미학자는 이런 것들을 미적인 것의 실재로 간주한다.

헤겔이 이를 자연미라고 하는 것으로 보면, 이것이 미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헤겔은 이런 자연미가 예술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이제 그 이유를 들어보자.

우선, 자연 속에 내재하는 미적인 것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 즉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 한 그것은 어떤 다른 것의 기호가 아니며, 예술을 이념의 기호로 간주하는 헤겔에게서는 예술이 되지 못한다. 물론 예를 들어 시인이 자연 속에 들어가 그 생동적인 아름다움을 신의 상징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예술적인 것이 된다. 하지만 이 경우 자연 자체가 예술이 아니라 시인의 눈에 그런 자연이 예술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6]

또한 헤겔에서 예술은 무한하고 자유로운 것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자연 속에는 조화로운 것, 생동적인 것을 넘어 심지어 합목적적인 것조차 출현하지만, 자연에서는 동물적 삶에서 보듯이 아직 무한하고 자유로운 것이 출현하지 않는다. 무한하고 자유로운 것은 즉 자기 관계하는 것[대자적인 것: fuer sich] 다시 말해 자기를 타자화하고 이 타자 속에서 자기 내로 복귀하는 것은 인간 정신에 이르러 비로소 출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신만이 자기를 자립적인 대상으로 실현하기 때문이다.[7]

인간의 정신이 이처럼 무한하고 자유로운 것을 산출할 수 있으므로 오직 인간에게서만 예술이 출현할 수 있게 된다. 어떤 것이 다른 것의 기호가 된다는 것 즉 다른 것의 가상이라는 관계는 이와 같은 무한하고 자유로운 정신의 활동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5)

예술에 관한 헤겔의 기호적 독해는 유명한 비유를 낳았다. 헤겔은 플라톤의 아래와 같은 시구를 인용한다.

“그대가 별을 볼 때, 오 나의 별이여, 나는 하늘이 되어 수천 개의 눈으로 그대를 내려다 볼 수 있었으면”[8]

여기서 플라톤은 자신의 애인을 수천 개의 눈이 되어 바라보고 싶다고 하는데, 헤겔은 예술을 이런 수천 개의 눈에 비유했다. 왜냐하면 눈이 곧 영혼이 드러나는 기관이고 눈을 통해 그의 영혼이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은 거기서 이념이 드러나며 그것을 통해 이념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미적인 것이 실재한다는 입장에서는 인간이 만든 예술작품보다는 자연 자체 속에 진정한 의미에서 미적인 실재가 출현한다고 보며, 따라서 예술가는 가능한 한 자연 속에 들어가 자연에 내재하는 미적 실재를 포착해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실재론적 입장은 대체로 예술은 자연의 모방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헤겔은 예술은 모방이 아니라고 단언한다.[9] 왜냐하면 예술은 이념의 가상 즉 기호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호는 정신의 내부에서 산출되는 것 즉 창조된 것이다. 예술이 하나의 기호이라면, 미적인 것이 굳이 자연을 모방할 필요가 없으며, 모방과는 무관한 예술 형식도 존재한다. 예술 가운데 특히 건축과 음악이 그렇다. 건축은 재료를 축조하며 음악은 음을 구성할 뿐이다.


 

[1] 칸트는 이런 미적인 감정은 욕구의 충족을 통해 얻어지는 만족과 구분한다. 후자는 대상의 감각적 질료로부터 얻어지는 것이지만 미적인 감정은 대상의 형식 자체로부터 얻어진다. 그는 대상의 일정한 형식 자체가 미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형식으로부터 반성적 판단 과정을 통해 미적 감정이 발생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반성적 판단은 일정한 대상의 형식으로부터 자유롭게 어떤 종별적인 통일성 즉 조화와 균형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헤겔, 미학강의 1, 107쪽

[3] 헤겔, 미학강의 1, 106쪽

[4] 헤겔, 미학강의 1, 174-175쪽

[5] 헤겔, 미학강의 1, 107쪽

[6] “하지만 이러한 다만 감각적일 뿐인 직접성으로 인해 생동적인 자연미는 그 자체를 위해 혹은 그 자신으로부터 아름다운 것으로 생산된 것도 또한 미적 현상을 위해 생산된 것도 아니다. 자연미는 오로지 타자에 대해 즉 우리에 대해 미를 이해하는 의식에 대해 아름다운 것이다.”(헤겔, 미학강의 1, 173쪽)

[7] “동물적 삶은 삶으로서는 비록 이념이지만 그것은 무한성과 자유를 자체에서 표현하지 않으니, 이것이 나타나려면 개념은 자신에 합당한 실재를 완전히 관류하여 그 속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대상화하고 또한 거기서 자신 이외의 어떤 것도 등장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서 개념은 진정 자유롭고 무한한 개별성으로서 존재한다.”(헤겔, 미학강의 1, 208쪽)

[8] 헤겔, 미학강의 1, 212쪽

[9] “예술의 진리는 소위 자연의 모방이라는 것이 제한적으로 지향하는 단순한 정확성이 아니며, 외면은 내면과 조화해야 하니, 이 내면은 내면 그 자체로서 조화를 이룰 수 있고 또한 바로 이를 통해 외면 속에 자신을 자신으로서 현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헤겔, 미학강의 1, 214쪽)

호퍼와 정신분석 9-숲[흐린 창가에서- 이병창의 문화비평]

호퍼와 정신분석 9- 숲

 

30년대 호퍼는 여행 중 갈 길을 잃은 채 멈추어서 자기 속에 파묻힌 여성을 그린다. 또한 이 시기 그가 그린 많은 그림에서 숲이 등장한다. 이 숲은 집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마치 집을 뒤덮을 듯 무시무시하다. 집의 안 밖에 사람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자기들 뒤에 숲이 덮쳐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언뜻 보면 평화롭게 보인다.

이 그림은 1939년 그려진 ‘케이프 코드 저녁’이라는 그림이다. 케이프 코드는 호퍼가 자주 여행 갔던 바닷가인데, 이 그림에서 호퍼가 청교도적 집이라고 했던 집을 배경으로 두 남녀가 있다. 두 남녀는 호퍼와 조를 연상시킨다. 여성은 살 집이 있는 두툼한 중년 여성의 모습이다. 남자는 다음에 소개할 것이지만 고독한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들은 가운데 개와 더불어 마치 성상에서처럼 안정된 삼각형의 구도를 이루고 있다.

남자는 개에게 무엇인가를 던지면서 개와 놀고 있다. 하지만 한 가운데 개는 마치 무언가 다가오는 것이 있는 것처럼 귀를 쫑긋거리며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다. 여자는 남편이나 개를 바라보지 않고, 팔짱을 낀 채 상념에 사로잡혀 있다. 평화롭고 고요한 가운데 어둡고 푸른 숲이 군사처럼 집으로 다가오고 있다. 머지 않아 이 숲이 고요한 그들을 집어삼키지 않을까 두렵다.

 

2)

이 시기 호퍼가 그린 여러 그림에 공통적으로 저 으스스한 숲이 등장한다. 위의 그림보다는 좀 이른 1935년 그려진 그림 ‘황혼의 집’도 마찬가지이다.

이 그림에서는 앞의 그림에서 집과는 다른, 마치 공공건물로 보이는 집이 등장한다. 양식상 제국주의 시대 건물로 보이는 이 건물은 석조로 이루어져 위엄을 자랑한다. 여러 창문이 열려 있고 어떤 창문에서는 여인이 창문 아래 왼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앞의 그림에서 귀를 쫑긋거리며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는 개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눈치 채고 있으나, 아직 그 정체는 알려지지 않아 오히려 평화롭게 보인다.

어떤 창문은 열려 있지만 불이 꺼져 있다. 그림의 정면에 나오는 창문은 아마 거리 풍경을 반사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전체적으로 안정된 모습인데, 이제 저녁 노을의 바랜 노란 색 빛이 비치고 있다. 그 빛은 약간 감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집 너머에 어둡고 푸른 숲이 다가오고 있다. 그 으스스한 그림자는 오른쪽 계단을 내려 걸어 올 것 같다.

 

3)

이 시기 그려진 호퍼의 그림에서 집을 덮쳐오는 숲은 여러 해석을 낳는다. Renner는 호퍼를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하면서 호퍼의 그림은 문명과 자연의 대립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상의 두 그림에서 집이 문명을 의미한다면 숲은 자연을 의미한다. 이런 해석은 호퍼를 루소적인 자연을 동경하는 낭만적 화가로 그려낸다.

역사적 해석도 가능하다. Schmit는 이 그림이 1930년대 미국을 덮친 공황의 우울함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호퍼가 미국의 자화상을 그려낸 사실주의적 작가로 설명한다.

하지만 렌너의 경우 숲이 지닌 으스스함을 설명하지 못한다. 슈미트의 경우, 공황이 덮친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로운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결국 집을 덮쳐오는 숲은 호퍼 자신의 욕망 구조를 가지고 설명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런 그림들은 같은 시기 그려진 고독한 여인의 모습과 함께 해석되어야 마땅할 것 같다.

그렇게 본다면 이 시기 호퍼의 욕망 구조에서 또 한 번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20년대 호퍼의 욕망 구조는 신경증적인 상태에서 상상적 동일화의 상태로 변형되었다. 다시 이 시기 호퍼의 욕망 구조는 라캉이 실재계라고 말한 심적 구조로 변화한다고 볼 수 있다. 덮쳐 오는 숲, 긿을 잃은 여성의 고독은 이런 실재계적 증상의 표현으로 보인다.

 

4)

이 으스스한 숲은 호퍼의 그림에 긴 여운을 남긴다. 1940년 그려진 ‘주유소’라는 작품을 보자.

이 그림에서 인적이 드문 길 가에 작은 주유소가 있다. 주유기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인물은 넥타이까지 맨 단정한 모습인데 집의 크기에 비추어 보면, 이게 정상적 인간의 크기이다. 그는 머리가 벗겨 있고 약간 피곤하고 늙은 듯한 꾸부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도로는 주유소 앞을 바싹 다가가 지나치고 있고, 하늘은 아직 밝지만 이미 저녁의 황혼 빛이 거리를 덮치고 그 거리를 다시 벌써 어둠에 잠긴 으스스한 숲이 거리 자체를 뒤덮고 다가오고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주유기다. 거의 집의 높이 만한데, 정말로 저렇게 크지는 않을 것이다. 호퍼가 분명 과장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주유기의 붉은 색깔은 거의 도발적일 정도니, 언뜻 보아도 팔루스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주유기의 모습과 대응하는 것은 집 속에서 비추어지는 아주 밝은 빛이다.

이 그림에서 덮쳐 오는 으스스한 숲에 대해 마치 저항이라도 하듯이 붉은 주유기기 밝은 빛에 싸여 있다. 1920-30년대 그림에서는 이런 저항적인 분위기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1910년대 초 우람한 다리에서 보았던 과잉적인 분위기가 되살아 나는 것 같은데, 그때처럼 신경질적인 모습은 아니다. 이미 무언가 내적 힘이  호퍼에게 찾아온 듯한 분위기이다.  이런 변화는 40년대 들어 호퍼의 그림 속에 뚜렷하게 등장한다. 그런데도 불구하여 여전히 30년대 초에 그려진 으스스한 숲이 덮여 오는 듯한 모습의 흔적은 남아있다.

헤겔 미학산책5-예술과 종교, 철학의 등근원성[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미학산책5-예술과 종교, 철학의 등근원성

 

1)

앞에서 절대정신을 공동체 정신 즉 공동체의 단결된 의지로 규정했다. 그런데 이런 절대정신이 예술, 종교, 철학으로 전개되는 것은 어떤 까닭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헤겔의 정신 개념으로 돌아가보자. 헤겔에서 정신은 세 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차원이 곧 이론적 인식의 차원이다. 정신현상학에서 의식 장과 이성 장은 이론적 인식을 다룬다. 전자는 개인적 인식을, 후자는 상호주관적인(일반적인) 인식을 다룬다. 두 번째 차원은 실천적 의지의 차원이다. 정신현상학에서 자기의식 장과 정신 장은 실천적 의지를 다룬다. 자기의식 장은 개인적 의지를 다루며, 정신 장은 사회의 일반 의지를 다룬다. 여기서는 개인적 의지의 일반적 의지로의 형성, 도야가 문제된다.

정신은 또 하나의 차원을 가지니, 그것은 곧 자기를 표현하는 차원이다. 인식이나 의지가 출현한다는 것과 그것이 표현된다는 것은 상이한 차원이다. 예를 들어 진리를 인식하더라도 그 인식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다. 이런 구분은 명제와 문장의 차이를 규정하는 데 중요한 것으로 언급된다. 명제는 의미와 관련된다면 문장은 표현과 연관된다. 동일한 의미를 지닌 명제가 다양한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실천적 의지에서도 의지의 형성과 그것의 표현은 구분된다. 내가 어떤 욕망을 지닐 경우 나는 그것을 위해 행동한다. 행동은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이다. 나는 욕망을 충족하는 것과 무관하게 내 마음 속의 욕망을 표현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욕망을 얼굴의 표정 예를 들어 선망의 눈초리나 또는 다리의 비틀린 자세를 통해 표현할 수 있다. 이런 표정과 자세도 하나의 행동으로 볼 수 있지만 이런 행동은 욕망을 충족하는 행동과는 구별된 행동이다.

헤겔은 인식의 차원과 의지의 차원과 구분되는 또 하나의 차원 즉 표현의 차원을 가정하면서 절대정신에 이르러 마침내 이런 표현의 차원 자체를 문제 삼는다. 정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기 자신이 세계를 인식하고, 의지를 발휘하면 되지 그것을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대부분 고립적으로 살아가는 동물의 경우 제약된 의미에서 인식하고 의지(본능)를 발휘하지만, 자신의 인식과 의지를 표현하는 경우는 드물다. 반면 인간의 경우 동물과 달리 매우 복잡한 공동 행동을 취한다. 그런 만큼 자신의 인식과 의지를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은 필연적인 요구일 것이며 그 때문에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표현방식을 발달시킨 것으로 보인다.

타인에게 자기를 알리는 표현이 공동 행동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공동체의 정신인 절대정신이 자기를 표현하는 것은 필연적일 것이다. 그 때문에 헤겔은 절대정신에 이르러 표현의 방식을 문제 삼게 된 것으로 보인다.

 

2)

절대정신은 실천적 의지의 발전 끝에 나온 공동체 정신이며, 국가의 제도적 형식 즉 삼권분립의 체제 속에서 외적으로 실현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예술과 종교, 철학이다.

정신현상학에서는 종교와 철학이라는 두 가지 방식만 제시된다. 종교를 다룰 때 예술종교라는 개념이 나오기는 하지만, 예술을 독자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1818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미학강의가 이루어진 다음부터, 예술이 절대정신의 한 방식으로 포함되는데, 그것을 반영하여 철학전서에 이르러서는 절대정신은 예술, 종교, 철학으로 체계화된다.

이런 표현의 차원은 그 이전 이론적 인식에서나 실천적 의지를 다루는 곳에서는 제기되지 않았다. 헤겔은 마지막 절대정신에 이르러 비로소 정신의 표현이라는 차원을 다루면서 예술과 종교 철학에 대해 논의한다.

예술, 철학, 종교가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하면, 마치 절대정신이 출현하는 이상국가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예술, 종교, 철학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때의 절대정신은 최종적인 실현 결과, 즉 주관적 자유가 인정된 위에서 공동체의 단결된 의지가 출현하는 것이다.

헤겔은 자신의 저서를 항상 목적론적으로 서술하니, 최종적 절대정신은 이미 그 이전의 국가적 형태에서도 부분적으로는 실현된다. 그 이전 정신의 단계서 일정한 사회적 실체를 바탕으로 일정한 실천적 의지가 전개되니, 그런 실천적 의지는 이미 절대정신의 실현이다. 즉 절대정신은 즉자적인 상태에서 즉자 대자적인 상태로 발전한다. 따라서 이미 그 이전 정신의 단계에서도 예술, 철학, 종교가 출현한다고 볼 수 있다.

헤겔이 절대정신의 세 가지 표현방식을 다루는 것은 정신현상학이나 철학전서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이다. 여기서 절대정신은 즉자 대자적인 절대정신을 의미하는데 이는 정신의 발전 끝에 이르러 출현하기 때문이다. 반면 미학강의나 종교철학 강의에서는 예술이나 종교가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다룬다. 여기서는 절대정신을 즉자적인 상태에서 출발하여 발전과정 속에서 서술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헤겔이 체계적으로 서술하는가 아니면 역사적으로 서술하는가 하는 서술 방식 때문에 나타나는 차이라고 할 수 있다.

 

3)

그렇다면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세 가지 방식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예술의 방식은 아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은 절대정신을 감각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여기서는 자신의 정신을 전달하기 위한 외적인 형상화가 필요하다. 절대정신을 감각적 방식으로 형상화한 것이 바로 예술작품이다.

철학은 절대정신을 개념을 통해 표현한다. 이런 개념은 추상적 관념을 토대로 하는 것이지만, 단순히 추상적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자체 내에서 체계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헤겔은 개념이 자기를 전개하는 운동 과정을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개념이 자기를 타자화하며 이 타자로부터 다시 자기 내로 복귀하는 과정으로 본다. 헤겔은 개념의 자기 운동으로 규정하였다.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방식 가운데 가장 문제되는 것은 곧 종교이다. 종교는 기도에서 주어지는 것과 같은 순수한 심정의 상태이다. 예술이 차안의 감각적 실재를 통해 절대정신을 표현한다면, 순수한 심정 속에서 절대정신은 심정에 대하여 마치 외부 초월 세계에서 주어지는 것처럼 출현한다. 헤겔은 종교는 절대정신을 표상[Vorstellung][1]을 통해 표현한다고 말한다.[2]

중요한 것은 마치 신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실재하며 그것이 내적인 심정을 통해 인식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적인 절대정신이 순수한 심정의 상태에 있기에 초월적인 실재로 전도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전도는 이미 포이어바흐가 소외 개념을 통해 잘 설명했지만,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 편집증 환자를 괴롭히는 외부의 박해자가 사실은 자기 내부에서 무의식적으로 출현하는 욕망의 대타자가 전도되어 나타나는 것과 유사하다.

헤겔은 구체적인 역사적[historisch] 사건을 예로 들고 있다. 그 사건은 곧 예수의 탄생과 죽음이다. 이 단순한 역사적 실재는 기독교적 순수한 심정 속에서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감각적 표상으로 된다. 그 결과 이 사건은 종교적으로 신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즉 대속의 역사[Geschichte: 伇事]를 의미하게 된다.

 

4)

정신의 발전과정에서 절대 정신 이전 정신의 다양한 형식 사이에는 발전적 연관이 성립했다. 즉 하나의 정신의 형태는 그 이전 정신의 형태에서 출현한다. 이전 형태는 자기 모순에 부딪히며, 이로부터 자기 내로 반성하여 더 높은 형태의 정신이 출현한다. 이 정신은 이전의 모순을 해결하는 가운데 더 포괄적이며 사태 자체에 더 다가간 객관적 정신으로 된다. 예를 들어 인식에서 지각보다 지성이 더 높은 형태이며, 실천에서 인륜적 정신보다 법적 정신이 더 높은 형태가 된다.

반면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세 가지 방식 즉 예술, 종교, 철학에서도 발전적 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이 세 가지 방식은 동일한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니, 그 중 어느 것도 다른 표현 방식에서 모순이 출현하여 그로부터 반성하면서 출현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방식은 표현 방식에서 차이는 있더라도 거기에 높고 낮다거나, 좁고 넓다는 식의 우열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술, 종교, 철학은 절대정신과 관계하여 등근원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세 가지 방식이 동일한 내용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니, 어떻게 보면 이 세 가지는 서로 뒤엉켜 있다. 예를 들어 신상은 한편으로 예술작품으로 볼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제의나 기도의 대상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근대 세속적 유물론(프랑스 유물론)이라는 철학의 배후에 근대의 개신교적 신앙, 소외된 신이 존재한다.

예술과 종교, 철학은 동일한 절대정신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면서 발전하는 가운데 동일한 기본 형식 즉 구조를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그 시대 예술을 보면서 종교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고, 거꾸로 그 시대 철학을 통해 그 시대 예술을 이해할 수 있다. 헤겔의 이런 생각은 푸코가 동일한 시대의 다양한 학문 속에서 동일한 에피스테메를 찾았던 것과 같다.

각 시대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예술, 종교, 철학은 서로 등근원적인 것이지만, 또한 헤겔은 각 시대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하며 따라서 가장 지배적인 방식이 존재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이집트 시대 절대정신은 종교를 중심으로 한다.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 지배적인 절대정신은 감각적인 예술이다. 근대 국가를 극복해서 이상 국가에 이르게 되면 개념적인 철학이 마침내 최고의 절대정신에 등극하게 된다.

물론 어느 시대나 예술과 종교, 철학이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각 시대에 적합한 지배적인 절대정신이 있다. 그 때문에 다른 절대정신은 이런 지배적인 절대정신에 종속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시대 절대정신의 지배적 형식은 예술이며, 종교나 철학은 이런 예술적 표현 속에 함께 녹아 들어 있다. 그 결과 예술적인 조각상은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며 그리스 신화 속에서 그 시대의 철학이 함축되어 있다.

한편으로 절대정신의 표현방식이 등근원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적 표현방식이 존재한다는 두 주장은 서로 모순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헤겔에서 절대정신의 세 가지 표현방식은 마치 삼위일체와 같은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어서 각자는 전체이며 동시에 전체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보면 절대정신의 표현방식에 대한 헤겔의 두 주장은 서로 모순된 것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1] 이때 헤겔이 사용하는 표상이란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일단은 관념적인 것[심상]과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 그 가운데 추상적인 것은 자주 개념으로 표현되고, 구체적인 관념 즉 감각적 관념을 헤겔은 주로 표상으로 지칭한다. 그런데 표상이라는 말에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환상을 의미하는데 헤겔의 종교론에서만 유독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헤겔도 다른 경우에는 일반적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한다.

[2] 종교와 관련된 다음 구절에서 사용된 표상의 개념을 살펴보자.

“이렇듯 정신은 종교의 단계에서는 그 자신을 자기 앞에 표상으로 나타내니[sich ihm selbst vorstellt] 이 단계에서 정신은 사실 하나의 의식의 수준에 머무르다. 따라서 그러한 종교의 틀 안에 포함된 현실이란 그 자신에 대한 표상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며 일종의 옷에 불과하다.”(정신현상학, S. 365)

“절대정신은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형태나 지식을 지양하면서 내용상 자연이나 정신에 있어서 즉자 대자적으로 존재하는 정신이다. 형식상으로 보면 절대정신은 일단 표상이라는 주관적 인식에 대해 나타난다. 표상은 그 내용이라는 계기에 한편으로는 자립성을 부여하며, 서로 대립하는 있는 내용적 계기를 전제로 삼아 서로 계기하는 방식으로 현상하게 만들며 유한한 반성적 규정에 따라서 볼 때 역사적 사건이 지닌 연관으로 만든다. 다른 한편 그런 유한한 표상방식이라는 형식을 일정한 정신에 대한 신앙이나 제의에서의 기도 속에서 지양한다.”(철학전서 §565)

“종교가 그 의식의 형식으로서 갖는 것은 표상이니 절대자가 예술의 대상성에서 벗어나 주관의 내면성으로 전이하고 그리하여 가슴과 심정 요컨대 내면적 주관성이 주된 계기가 되게끔 절대자가 주관적 방식으로 표상에 대해 주어져 있는 까닭이다.”

“종교는 절대적 대상과 관계하는 내면의 경건함을 추가한다. “(미학강의 1, 146쪽)

 

호퍼와 정신분석 8 -고독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 비평]

호퍼와 정신분석 8-고독

 

1)

20년대 중반 호퍼의 욕망구조는 상상적 동일화 또는 나르시시즘적인 상태로 발전했다. 이어서 20년대 말 그리고 본격적으로는 30년대 걸쳐 호퍼의 욕망 구조는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30년대 후반 호퍼는 정신증적인 자기 폐쇄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이제 그런 발전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물론 호퍼의 욕망 구조의 각 시기를 칼로 두부 자르듯이 정확하게 규정할 수는 없다. 각 시기는 전후 시기와 중첩되면서 발전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20년대 말 호퍼의 그림 ‘호텔방(1931년)’에는 고독한 여성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이제 자신의 자리에 머무르지 못한다. 그들은 창가에 돌아앉아 있기도 하며, 길 거리의 카페에 혼자 있기도 한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 또는 앞의 그림에서 보았듯이 여행 중의 호텔 방에 있기도 한다.

대체로 그들의 모습은 이동 중에 있지만 자기 내면 속에 침잠되어 있어서, 마치 방향을 잃거나 길을 잃은 모습처럼 보인다. 그림 속에 자주 팔루스를 상징하는 것들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주인공 여성이 상실한 것, 정신적 고향, 동경의 대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의 그림 ‘호텔방’보다 먼저 그려진 1927년 그려진 ‘자동기계’라는 작품을 보자.

여성은 상당히 화려하게 차려 입었다. 녹색의 외투 속에 붉은 원피스가 보인다. 파티에 나갈 복장이다. 그런데도 자동 판매대 앞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다.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초초한 빛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갈 곳을 잃어버린 듯, 어디로 가야 하나 하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호퍼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화병, 여기서는 붉은 꽃이 꽂혀 있다. 여인의 소망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화병에 등을 돌리고 있다. 그녀는 커피를 앞에 두고 마시기보다는 들고 그 향을 음미하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싶은 상념에 잠겨 있다. 아득한 먼 시절, 화려했던 그날을 상기하는 것이 아닐까?

충격적인 것은 자동판매대에 아마도 들어있어야 할 여러 물건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퍼는 자동판매대 전체를 검은 색으로 칠해 버렸다. 그 표면에는 방안의 전등이 반사되어 희게 빛난다. 그 전등은 이제 닫혀 버린, 다만 기억 속의 어떤 것 속에 잠겨 있는 여인을 비추어 준다.

 

2)

이 그림은 앞의 ‘호텔방’과 거의 같은 시기에 그려진 그림 ‘부루클린의 방’(1932년)이다. 부루클린이라면 호퍼의 부부가 살았던 곳이다.

여성은 부루클린에 있는 자기 방에 있으나, 창가에 앉아 있다. 아마도 그녀는 실패하고 만 여행에서 돌아왔을 것이다. 집안이 답답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실패하고 말 여행을 또 떠날 수도 없다.

그녀는 창가의 흔들의자에 앉아 20년대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밖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 속에 잠겨 있다. 아마도 책을 읽는 듯한데,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의자 등받이를 통해 보이는 검은 드레스일 뿐이다.

정작 그림의 한 가운데 바깥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온통 받고 있는 것은 화병이다. 화병은 그녀의 검은 옷과 대조되는 흰 꽃이 꽂혀 있다. 화병은 상당히 과장되어 있다. 그 크기가 앉아 있는 그녀의 크기와 거의 같을 정도이다.  호퍼의 그림에서 꽃이 꽂힌 화병은 늘 그렇듯이 팔루스를 상징한다. 하지만 붉은 꽃이 아닌 흰 꽃이니, 기억 속에서 빛나는 꽃이 아닐까?

그녀는 화병에도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그녀 앞에는 붉은 건물이 있다. 그 건물 너머 뉴욕의 빌딩 가의 모습이 마치 굴뚝처럼 아련히 떠오른다. 뉴욕의 마천루, 화려한 선망의 대상이지만 그녀는 이제 아무 기대도 없다.

 

 

3)

1938년 제작된 작품 293열차 c칸에서 여성은 다시 여행을 떠났다. 어디로 가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푸른색 드레스와 푸른색 모자 속에 온몸이 팽팽히 긴장되어 있다. 황혼이 지는 듯 어둑한 가운데 열차는 다리 옆을 지나가고 있다.

이 다리는 앞에서 언급했던 그 다리가 아닌가? 그것은 건너가는 힘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작은 것이어서 마치 그림 속에 그려진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그렇게 다가오는 다리에 대해 무관심하다. 기차는 빠르게 그 다리 곁을 지나갈 것이다.

그녀는 책을 보는 것 같지는 않다. 얇은 종이로 보이니, 역시 안내문이나 광고문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의자, 그리고 열차 칸의 색조는 녹색인데, 이 녹색은 호퍼에게서 항상 우울, 멜랑콜리의 색갈이다. 그리고 마치 팔루스를 닮은 전등이 그녀의 등 뒤에 있다. 전등은 스스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기차의 다른 전등 빛을 반사할 뿐이다.

헤겔 미학 산책4- 절대정신[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미학 산책4- 절대정신

 

1)

헤겔의 철학 어디에도 절대정신의 개념에 부딪히지 않는 곳이 없다. 헤겔 미학에서 이 개념은 자주 이념이라는 논리적 범주로 표현되거나, 간단하게 정신이라는 말로 언급되기도 한다. 절대정신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헤겔의 철학에 한발자국도 다가가지 못하니, 헤겔의 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부득이 절대정신이라는 개념 벽에 도전하지 않을 수 없다.  

헤겔 해석자 대부분은 절대정신을 신을 지칭하는 말로 간주한다. 이런 해석에서 신의 개념은 이미 전제되고 있다. 그 개념이란 흔히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세계의 창조주이며 전능한 유일자라는 개념일 것이다.

하지만 헤겔 철학전서에서 보듯이 신 개념은 절대 정신의 종교적 형태에 속하는데, 절대정신을 유일자라는 신 개념으로 해석한다면, 절대정신의 최종적 형태가 왜 종교가 아니라, 절대지 즉 철학 또는 학문인지가 밝혀지지 않는다. 아무리 헤겔이라도 유일자 신을 인간의 학문으로 알 수 있다고 주장하지는 못하지 않을까?[1]

절대정신이 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절대정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헤겔에서 하나의 정신은 자기 모순에 부딪히면서 자기 내로 반성하는 것을 통해 새로운 정신으로 이행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정신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면, 이행의 계기 즉 그것이 어떤 모순으로부터 출현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절대정신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헤겔 정신현상학에서는 절대 정신은 양심의 모순에서 나온다[2]. 이 양심 개념은 5장 정신 장의 마지막 C절 자기를 확신하는 정신(도덕성)에 속하는 마지막의 형태이다. 여기서 최초로 등장하는 절대정신은 종교이다.

 

2)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헤겔의 철학적 전개 과정을 전반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설명을 간단하게 만들기 위해 하나의 도해를 만들어 보았다.

 

이 도해는 왼쪽에서 만나는 두 가지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위의 선은 국가의 외적인 측면 즉 객관정신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래 선은 국가의 내적인 측면 즉 주관적 정신의 발전과정이다.

두 개의 선이 결합하여 국가의 세계사적인 발전과정이 전개된다. 구체적으로 동방(인도 및 이집트) 부족국가, 그리스 로마의 민족 국가,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는 오성적 국가, 마지막으로 헤겔이 이상으로 삼는 이성적 국가이다.

(이집트, 동방의 국가는 본래적an sich 정신이며, 이성국가는 곧 실현된 an und fuer sich 정신이다. 논리적 범주로는 전자가 개념이며 후자가 개념의 실현으로서 이념이다.)

 

객관적 정신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 과정에서 발전하는 것은 소유관계인데, 이 소유관계는 근대에 교환을 통한 소유로 발전한다. 이게 오성 국가의 기초가 되는 근대의 사회적 실체이다. 주관적 정신의 측면에서 본다면, 근대에 이르러 개인의 법적인 인격이 출현한다. 교환을 통한 소유와 법적 인격이 결합하여 국가가 출현한다. 이것이 곧 오성 국가 즉 근대 자본주의 국가이다.

여기서 개인의 주관성의 발전이 이루어진다. 이 발전과정은 정신현상학에서 서술되는데, 마침내 양심을 넘어서 절대정신이 출현하며, 사회적으로는 시장 교환을 통해 생겨나는 불평등이 국가의 개입으로 해소되면서 오성 국가는 이성 국가로 발전한다.

 

3)

절대정신은 정신현상학에서 보듯이 양심을 넘어서 출현하게 된다. 절대정신의 구체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이 과정을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자.

우선 양심의 개념을 생각해 보자. 칸트에서 순수의지는 추상적 도덕법칙을 추구하면서, 자연적 욕망과 대립한다. 양심은 칸트 순수의지에서 모순을 극복하면서 나온다. 양심은 그 개념에 따르면 구체적 법칙을 직각적으로 인식하는 동시에, 어떤 주저도 없이 단호하게 행동한다.

그러나 양심의 실제 모습에서 분열이 일어난다. 행동하는 의지는 행동을 우선하는 가운데, 도덕법칙보다 개인적 야심을 따른다. 반면 순수한 양심은 도덕법칙의 순수성을 고민하는 가운데 행동을 유보하게 된다. 행동하는 의지와 순수한 양심은 대립하는 가운데 마침내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고 서로 화해에 이르게 된다. 즉 서로가 자기와 다른 사람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된다. [3]

순수의지나 양심에서 정신은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렀다. 서로 대립하는 두 정신, 행동하는 의지와 순수한 양심이 서로를 인정하면서 마치 성령과 같이 “불의 혀처럼 갈라져.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는” 정신이 출현한다. 이것이 바로 절대정신이다. 이 정신은 “같은 한 성령이…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다른 역할로 나타난다.[4] 성령의 본질이 곧 사랑이듯이, 절대정신은 공동체적인 정신이다. 

헤겔에게서 절대정신은 마치 성령이 교회공동체의 바탕이 되듯이 새로운 공동체의 바탕이 되는 정신을 말한다. 여러 자아가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도 서로 필요로 하면서 구성하는 공동체가 곧 국가이니, 이 국가의 바탕이 되는 정신이 곧 절대정신이다. 이 점을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에서 성령 개념은 곧 삼위 일체라는 제도적 형태로 발전한다. 마찬가지로 헤겔의 절대정신은 이상적 국가의 삼위일체적인 제도로 발전한다. 이상적 국가는 보편성(성신)과 개별성(성자), 특수성(성령)으로 구성된다. 그것이 각각 의회, 군주, 관료를 의미한다. 마치 삼위일체에서 각각이 전체이며 동시에 전체의 한 부분이듯, 헤겔은 이상국가에서 의회와 군주, 관료는 각각이 전체이며 또 전체의 한 부분이니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 보완하여 공동체를 구성한다고 말한다.

 

4)

절대정신을 공동체적 정신이라 할 때, 여기서 공동체적 정신이라는 것은 결코 공동적인 목적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 공동적 목적으로 공동체의 단결된 힘을 통해 실행하려 할 때 출현하는 것이 절대정신이니, 이 절대정신은 공동체의 단결된 의지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민족적 영웅은 그 민족의 의지를 대변한다고 할 때 그런 영웅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응집하는 정신이 곧 절대정신이다.

공동체가 단결된 의지라고 해서 개인의 주관적 자유의지가 제거된 기계적인 통합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주관적 정신의 발전과정에서 근대에 이르러 개인의 자유의지가 자각되고 그런 자각 위에서 양심이 출현했다. 따라서 절대정신에서 공동체의 단결된 의지는 개인의 자유의지 위에서 성립하며, 그렇기에 이런 단결된 의지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의지가 된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것은 서로의 고유한 역할을 인정하고, 각자의 역할이 지니는 과잉은 비판하고 결핍은 보완하는 것이니, 이미 그 속에 서로 대립하는 것을 포함하니, 여기서 하나가 곧 전체이며 전체가 곧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공동체적 정신 즉 절대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정신은 사랑의 정신이라 하겠다. 사랑은 하나 즉 전체(hen kai pan)라는 공동체의 정신의 표현이다.

헤겔은 이런 점에서 예수의 복음에 주목한다. 예수는 새로운 복음 즉 신약인 사랑을 선포했다[5]. 그러면서도 그는 구약인 심판 즉 정의를 부정하지 않았으니, 절대정신의 두 측면 통일과 대립의 두 측면을 잘 보여준다. 이런 사랑의 정신은 한평생 교회 공동체(Gemeinde)의 수립에 전력을 기울였던 바울의 설교에서도 잘 드러난다.

헤겔은 예수의 복음이 우연히 나온 것은 아니라 본다. 절대정신 자체가 곧 공동체의 정신이고 이 공동체 정신을 잘 드러내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즉 정신의 개념 자체가 본래 사랑이므로 예수는 이를 복음의 내용으로 삼았다는 것이다.[6]

사랑의 절대정신의 종교적 표현이다. 종교적 사랑은 구체적으로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을 의미한다. 헤겔의 절대정신은 교회 공동체를 벗어나 사회적 상호 관계 즉 정신적 실체 속에서 실현되는 시민적 사랑을 의미한다. 전자는 제도적으로 삼위일체라는 제도으로 실현되며 후자는 헤겔이 법철학에서 구상한 이상 국가에서 삼권분립의 제도로 실현된다.

포이어바흐는 신을 인간 본성의 소외라 보았다. 인간의 본성은 사랑인데 신이란 내면적 사랑이 초월적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된 것에 불과하다. 헤겔에서 신 역시 절대 정신의 환상적 표현이고, ‘환상적 표현’이라는 말과 ‘소외’라는 개념이 서로 유사하며, ‘공동체 정신’과 ‘사랑’의 본성이 유사하니, 포이어바흐의 신 개념은 사실 헤겔의 신 개념에서 이미 내재하고 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1] 이점과 관련하여 헤겔은 철학 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신의] 진정한 구체적 소재는 존재(우주론적 신학에서처럼)도 아니고, 합목적 활동(자연신학적 증명에서처럼)도 아니고 정신이다. 이 정신의 절대적 규정은 실효적인 이성 즉 자기를 규정하고 실현하는 개념 자체 즉 자유이다.”(§ 552 주석) 헤겔은 이런 점에서 칸트가 실천이성으로부터 신을 도출하려 했던 시도를 찬성한다. 

[2] 정신현상학에서 종교 장과 절대지 장을 묶어서 절대정신으로 해석한다. 정신현상학에서는 절대정신에 속하는 예술을 다루는 부분이 없다.

[3] 정신현상학 양심의 마지막 부분에서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두 개의 나[Ich]는 화해하면서 상대방을 긍정하는 가운데, 서로 대립하는 현존이기를 그친다. 이런 화해하는 긍정은 이원화된 두 개의 나[Ich]가 그런 가운데서도 서로 동일하게 머무르는 현존이며 또한 이런 현존 속에서 두 개의 나[Ich]는 완전히 소외되고 대립하는 가운데에서도 오직 자기자신을 확신한다. – 상호 화해하는 긍정을 통해 신은 자신이 곧 순수한 인식임을 깨우치고 있는 두 개의 나 한복판에 그 모습을 나타낸다.

[4]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2-4]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2:8-13]

[5] 요한복음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로마서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6] 이런 점에서 독일어 Geist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한편으로 정신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성령을 의미한다. 헤겔이 절대정신이라는 말은 곧 성령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형이상학 산책1-독특성과 우연성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형이상학 산책1-독특성과 우연성

 

1)

특유한 존재가 있을까? 누구나 그가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화를 내지는 못하지만, 씁쓸한 기분이 들 것이다. 그가 누구도 아니며, 세상에 유일하며 대체 불가능한 존재이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의 소망일 텐데, 갑자기 사람에게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궁금해졌다.

우선 특유한 존재가 있을까 생각해보자.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론에서 모든 개체는 특유한 존재라 했다. 만일 어떤 것이 되풀이된다면, 그것은 우연성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나왔으니, 일회적 존재일 뿐이다.

라이프니츠의 주장대로 개체가 특유한 존재 즉 모나드라면, 곧바로 함정에 빠지고 만다. 어떤 존재가 특유한 존재라면, 그것은 그것 외의 다른 모든 존재와 구별되는 성질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특유한 존재일 수 없다는 사실은 동어반복적이다.

모든 특유한 존재가 모든 성질을 갖는다면, 이들은 서로 무차별한 존재가 되니, 모나드론은 자기모순에 빠지고 만다. 서로 무차별하다는 점에서 동일한 모든 존재에서 차이가 있다면, 잠재성과 현재성의 차이에 불과하다. 즉 모든 존재는 잠재적으로는 무차별한 동일성이지만 현재적으로는 즉 각기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것과 구별된 성질을 나타내게 된다.

 

2)

현실적으로 우리는 다수의 동일한 존재를 발견한다. 물방울이나 나뭇잎이 다수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런 다수성을 인정하려면 우연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동일한 개념이 현실화될 때 현실적 조건에 속하는 우연성 때문에 다수의 존재가 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어떤 개념이 우연히 실현되었다면 다음에도 우연히 또 하나의 존재가 출현할 수 있고, 아직 이 우연이 출현하지 않아, 지금은 유일하게 존재하더라도 언젠가 이 가능성을 실현되기 마련이니, 당연히 복수적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복수적 존재를 인정하는 입장에서는 우연성의 개념이 문제가 된다. 우연이 원인이 없다는 뜻이라면 우연한 존재 즉 원인 없이 출현한다는 존재란 신의 개입이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 그렇다면 우연한 존재라는 가정도 부정될 수밖에 없을까?

 

3)

우연이라는 개념을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개념은 현실의 특정한 조건에서 실현된다. 특정한 조건에서 실현된 사건 자체는 우연적이다. 그 조건 자체가 일회적으로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개념은 다른 조건에서도 실현되니, 사건은 법칙의 측면에서는 반복되지만, 매번 일어난 사건 자체는 일회적이며, 우연적이다. .

예를 들어 주사위는 엄밀하게 역학법칙에 따른다. 하지만 그것이 던져질 때 작용하는 힘이 매번 달라지고 한번도 동일한 경우가 없으니, 매번 던져져 얻어진 숫자는 일회적 사건이 된다.

하지만 개념이 실현되는 조건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개념이 실현되는 조건은 일정한 정도 안에서는 그 차이가 무시되고 따라서 이런 경우 동일한 동일한 개념은 동일한 결과를 낳는다. 흔히 우리가 자연법칙이라고 할 때는 이런 경우일 것이다. 주사위 던지기도 이런 경우일 것이다.

반면 어떤 경우에는 그런 범위가 너무나도 미세하여서 동일한 조건이 출현하지 않거나 또는 그 조건이 너무나 복잡해서 그 총합이 동일한 경우가 없는 경우 현실적으로 반복되지 않을 일회적 사건 즉 우연이 발생한다. 로또의 경우나, 역사적 사건과 같은 경우이다.

 

4)

현존의 복수성을 인정하는 칸트의 사유를 생각해보자. 칸트는 사유의 개념이 경험의 시공간적 현실에 적용되면 복수의 존재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데 칸트에서 시공간이란 균질적이고 텅 비어 있으며 무한하다. 그 때문에 칸트는 시공간을 실재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감성적 주관의 형식으로 보았다. 하지만 시공간이란 사물들이 서로 관계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의 공간은 물체의 공간과 다르며, 나의 시간은 그대의 시간과 다르다. 시공간이 이처럼 유한하고 비균질적이며 나름대로 어떤 성질 즉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바탕을 갖는다면, 칸트의 논리를 뒤집어 주관의 형식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공간이 감성의 형식이든, 실재하는 관계이든, 개념이 실현되는 시공간은 시공간이 개념에 대해 필연적이라면, 라이프니츠의 모나드가 출현한다. 그러므로 시공간은 개념에 대해 우연적인 것이다.즉 어떤 것이 어떤 시공간에 위치할 것인가는 전적인 우연이다. 내가 이곳에 지금 있을 이유는 없다. 우연히 여기에 지금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우연성 때문에 개념은 다른 시공간에서도 출현할 수 있으며, 현존의 복수성이 성립한다. 칸트가 현존의 복수성을 인정한 논리 역시 우연성을 깔고 있다.

 

5)

사건의 우연성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복수적 사건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인간의 경우도 사실 복잡하기는 하지만 이런 우연적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서로 일회적이지만 사실 복수성이 가능한 존재이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유일한 대체 불가능한 독특한 존재이기를 바란다. 그 이유는 모나드론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즉 내가 존재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내가 존재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가? 나는 아직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자연은 왜 나를 만든 것일까?

더는 그런 물음은 던지지 않기로 했다.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우연한 존재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허무를 견디듯 우연을 견딜 수밖에 없다.

헤겔 미학 산책 3-고대예술과 근대예술 논쟁[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미학산책 3-고대예술과 근대예술 논쟁

 

1)

헤겔의 미학은 빙켈만 이래로 내려오는 고전주의 미학과 낭만주의 미학의 대결을 마무리하는 결정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헤겔의 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겔 이전에 이루어진 격렬한 논쟁의 전말을 살펴보아야 한다.

논쟁의 출발점에 빙켈만이 있었다. 그는 1755년 로마에서 고대예술작품을 직접 관찰하면서 연구한 끝에 1764년 <고대 예술의 역사>라는 저서를 완성했다. 여기서 그는 고대예술의 근본특징을 ‘고귀한 단순성과 고요한 위대함’을 갖는다고 평가했다. 

빙켈만 이후 서구에서는 고대의 아름다움을 되살리려는 (신)고전주의가 출현했다. 고전주의의 중심에 괴테가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고전주의를 옹호하는 예술사가, 미학자가 모여들었다. 대표적으로 쉴러, 히르트, 마이어 등이다.

고대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면서도 근대 예술의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등장하면서, 논쟁이 벌어졌다. 중세 낭만주의 예술의 전통을 잇는 근대예술이 고대 예술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고대의 예술을 부활하려 했던 르네상스 예술을 제쳐 놓는다면, 14세기 고딕 예술이나 낭만주의 문학, 17세기 바로크 예술은 고대의 미학적 기준으로 보면 예술로 인정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여기서 근대 예술작품의 미학적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등장하면서, 논쟁이 벌어졌다.

이런 논쟁에서 고대예술에 관한 한 빙켈만의 규정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논쟁의 초점은 고대에 있기보다는 오히려 근대에 있었다.

 

2)

이런 논쟁에서 효시가 된 것이 바로 쉴러다. 쉴러는 괴테와 함께 발간하던 잡지 호렌에 1795년 11월에서 1796년 사이 세 논문[1]을 연재한다. 그는 여기서 고대 문학과 근대 문학을 구별하면서 전자를 소박 문학이라 규정하고 후자를 감상(또는 성찰) 문학이라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소박문학이란 현실적 대상 속에 이미 아름다움이 내재하고 있어서 단순한 경험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 반면 근대에 이르러 문명의 진보에 따라 현실은 분열에 처했으며, 아름다움은 사라졌다. 이런 아름다움을 이상의 세계 속에 창조하려는 시도가 성찰 문학을 낳는다.

쉴러의 주장에서 고대 문학이나 근대 문학의 목표는 같다. 그것은 자유롭고 조화로운 질서이다. 이 속에서 감성과 이성, 우연과 필연이 통일되어 있다. 다만 이런 질서에 다가가는 방식만 다를 뿐이다. 고대 문학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서술할 뿐이며 근대 문학은 이미 사라진 것을 환상 속에서 만들어내려 한다.

쉴러에 따르면 사라진 아름다움을 다시 찾으려는 시도는 루소 등에서 보듯이 문명을 버리고 원초적인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택할 수 없다. 감상 문학은 문명의 진보를 인정한 위에서 사라진 아름다움을 다시 창조해야 한다. 감상 문학의 시도는 여러 가지 형식으로 나타나는데, 그는 특히 세 가지를 거론한다.

첫 번째가 곧 풍자적인 문학이다. 풍자 문학은 현실을 비판하고 부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풍자 문학은 단순한 부정에 머무른다는 한계가 있다. 두 번째가 곧 비가적[elegiac]인 문학이다. 비가적 문학은 상실한 아름다움을 한탄하지만 그것을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 속으로 밀어 넣는 한계를 지닌다. 세 번째가 목가적인 문학인데 이는 이상의 세계가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근대 성찰 문학이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가 여기서 출현한다.

그러나 쉴러의 이런 시도는 고대 문학의 아름다움으로 근대 문학을 재단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런 기준으로 재단되지 않는 다양한 근대 문학을 설명할 가능성을 결여한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고대 미학의 품 안에 머무르는 쉴러에 반발하면서 근대 문학의 미학적 기준을 고대 미학의 기준으로부터 독립시키려는 시도를 전개했다.

 

3)

슐레겔은 고대 문학과 비교되는 근대 문학을 정립하기 위해, <그리스 문학 연구>[2]라는 책을 서술했다. 슐레겔이 이 책 초판을 작성할 당시 쉴러의 논문 <소박 문학과 성찰 문학>이라는 논문을 읽지 못했다. 그는 발간하기 전 쉴러의 논문을 읽고 책의 서문에서 쉴러의 논문을 평가한다. 그는 그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유사한 부분을 발견하면서도 쉴러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이 다르다는 점을 부각하였다.

슐레겔의 사유는 순환론적인 관점을 취한다. 그에게서 역사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교차되어 있어서, 고대의 끝에 근대가 시작하며, 근대의 끝에 다시 고대의 출발점에 이른다. 마찬가지로 인식론적으로는 서로 대립하는 감성과 이성은 서로 교차한다. 감성은 이성을 향하고 이성은 다시 감성을 향해 간다. 미학적으로도 고대 문학과 근대 문학, 발견(모방)의 본능과 구성의 충동이 대립하면서 서로를 향해 나간다.

고대 문학은 무질서하고 자연의 맹목적인 운명에서부터 출발한다. 여기서 현실 속에서 조화의 질서를 발견하려는 노력이 시도되었다. 이를 통해 아름다운 그리스 고전예술작품이 출현했다. 그 정점에 있는 아테네 비극이 있다.

이 과정은 자연 스스로의 자발적인 운동을 통해 전개되므로 슐레겔은 이를 자연문학이라 한다. 그리스 문학은 비극을 넘어서 나갔으며 그 결과 고전시대 말기 즉 헬레니즘 시대에는 개인적 행복을 추구하는 문학 즉 희극이 출현했다.

슐레겔에 따르면 근대 문학은 인위적인 문학이다. 이 문학은 세계를 구성하려는 충동에서 나온다. 근대의 구성적 충동은 처음 감각적 만족을 추구하는 흥미로운 문학으로 출현했다. 흥미로운 문학은 고대 문학의 말기에 등장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문학과 외형적으로는 유사하지만 미학적으로는 새로운 전환이 일어났다. 흥미를 추구하는 문학은 중세 말기 셰익스피어의 특징성(성격)의 문학에서 정점에 이른다.

구성의 충동은 흥미로운 것을 넘어 나간다. 구성 충동은 사회적인 자유가 현실적으로 실현되는 이상을 향해 나가며, 이를 통해 괴테의 작품에서 보는 것과 같은 객관적(도덕적) 미학이 성립한다.

슐레겔 자신은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객관적 미학은 다시 해체되면서 그 끝에 맹목적 운명을 인정하는 문학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는 다시 고대 문학의 출발점이 된다.

슐레겔은 고대 문학과 근대 문학을 대립하면서도 교차 시킴으로써 고전주의 미학의 탁월성을 인정하면서도 근대 낭만주의 문학의 가능성을 살리려 하였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고대 문학의 도달점에 개인의 자유를 설정하면서, 고대 문학을 근대적 관점에서 파악한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럽다. 고대적 개인은 어디까지나 민족적 실체를 대변하는 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4)

쉴러가 근대 문학작품을 고대 미학의 기준으로 파악한다면, 슐레겔은 근대 미학을 가지고 고대 문학작품을 해석한다. 이런 착잡한 논쟁 가운데 괴테는 독특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한편으로 쉴러와 교제하면서, 고전주의를 옹호하였지만 다른 한편 마이어와 교제하면서 역사적 관점을 미학의 영역에 끌어들인다.

헤겔 <미학강의> 서문에서 헤겔은 예술사가인 마이어[Johann Heinrich Meyer]를 거론하는 가운데, 히르트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는 듯이 히르트를 소개한 후, 마이어의 주장을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히르트[Aloy Hirt][3]는 헤겔이 존경을 바치는 베를린 대학 동료 교수이다.

헤겔에 따르면 히르트는 이렇게 주장한다. “[예술작품에서] 표현양식 상의 모든 특수자는 내용의 특정한 묘사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그러므로 “[극시에서] 본격적 내용으로서 특정한 행위와 직접적으로 관계 맺지 않는 것은 배제되어야 한다.”

헤겔은 이렇게 히르트를 소개한 다음, 다시 마이어[4]의 주장을 소개한다. 헤겔은 괴테가 마이어와 같은 주장을 한다고 하면서 그 주장의 핵심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예술작품의 경우 우리는 우리에게 직접 현시된 것에서 출발하며 그런 다음 비로소 그 의미나 내용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전자의 외면성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가치를 가지지 못하며, 오히려 우리는 외적 현상에 영혼을 부여하는 하나의 내면성, 하나의 의미를 여전히 그 배후에 상정한다.”

여기서 마이어의 주장은 헤겔에 의해서 예술은 상징의 예에서나 우화의 예에서 보듯이 예술작품은 현상으로서 “그것과는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한다는 주장으로 파악된다.

 

5)

히르트의 특징성을 지닌다는 주장과 마이어의 의미성을 지닌다는 주장은 헤겔에 따르면 서로 다르지 않은 주장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사실 상당히 다르게 보인다.

원래 히르트의 주장은 원래 미의 범위를 이상적인 것에 제한하려는 의도에서 제시된 것이다. 이상화에 철저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이고 우연적 요소를 배제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빙켈만 이래로 고대 예술의 가장 기본적 원칙으로서, 빙켈만이 히르트에게 준 영향을 보여준다.

그런데 특징적이란 곧 ‘가장 적합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이 주장은 ‘의미한다’는 주장으로 전환된다. 왜냐하면 어떤 것에 적합한 것은 자기를 넘어서 다른 것을 지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제 예술작품은 매우 포괄적이 된다. 즉 예술작품은 그리스 예술처럼 이상화된 것 즉 아름다운 것만 것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추한 것도 포함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런 추한 것 역시 하나의 의미를 가장 적합하게 지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그 밖에도 희화적 요소는 나아가 왜곡된 것으로서 추한 것의 특징으로서 나타난다. 추한 것은 나름대로는 내용에 비교적 밀접하게 관계하므로 특징성의 원리에서 추한 것과 추한 것의 표현도 역시 근본 규정으로서 수용된다고 이야기될 수 있다.”

특징적인 것이 이처럼 하나의 기호로서 파악된다면, 여기서 고전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진다. 이제 각 시대에 고유한 특징적인 것이 출현할 수 있으며, 그리스 시대 아름다운 것이 특징적인 것이었듯이 근대에 이르게 되면 추한 것이 특징적인 것으로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이어는 히르트의 고전주의를 이어받으면서도 미학의 역사화를 가능하게 하였다.

마이어는 이런 역사적 관점에서 그의 선구자인 빙켈만이 그리스 예술작품을 시대적으로 잘못 분류했던 점을 지적한다. 그는 빙켈만 전집을 발간하는데, 주석을 통해 빙켈만의 오류를 수정한다.[5] 헤겔의 미학은 한마디로 말해 역사적 미학이니, 헤겔 미학의 출발점은 마이어의 미학적 사유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1] 그 제목은 다음과 같다. <소박한 것에 관하여>(1795. 11), <감상 시인에 관하여>(1795. 12), <소박 및 감상 시인에 관한 논문의 결론>(1796)

[2] 슐레겔은 이 책을 1795년 작성했으나 출판은 1797년 이루어졌다. 이 책은 본래 계획된 것의 서론에 해당하며, 그 본론은 작성되지 못했다. 1822년 슐레겔은 자신의 전집을 발간하려는 가운데 위의 책을 수정하여 재판으로 발간하였다. 재판은 표현의 변경과 부연 설명에 주력했다.

[3] 히르트는 원래 수도원 교육을 받았고 비엔나 대학에서 고전을 연구하다, 1782년 로마로 갔다. 거기서 그는 빙켈만의 저서를 읽은 후 고전 예술로 방향을 돌려 고전 예술을 연구했다. 그는 1796년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침략 이후 로마를 떠나 베를린으로 가서 프리드리히 2세의 예술 고문이 되었다. 그는 1809년 고대의 원리에 따른 건축술이라는 저설르 발표하여, 신고전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는 1810년 베를린대학 창립에 관여했으며 그 후 베를린 대학 예술사 및 고고학 교수로 있으면서 또 건축 아카데미를 창립했으며, 이를 통해 쉰켈 등과 같은 신고전주의 건축가를 길러냈다. 헤겔은 그를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하고도 진정한 예술감정가 중 하나이다”라고 평가한다.

[4] 마이어 취리히에서 예술가 도제수업을 받던 중, 화가였던 퓌슬리로부터 빙켈만의 저서를 소개받는다. 그는 미술사를 연구하기 위해 1784년 로마로 가며, 1786년 괴테가 로마에 도착하자 만나서 평생에 걸친 친구가 된다. 1791년 괴테의 초청으로 바이마르로 가서, 장식 연구가로서 활동한다. 그는 1798년 괴테와 더불어 잡지 <프로필레엔[prophylaen: 열주]>을 발간하면서, <조형 예술의 대상에 관해서>라는 글을 발표한다. 그는 여기서 예술사적인 관점 즉 예술작품이 만들어지던 당대의 취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1816년 새로운 잡지 <예술과 고대>라는 잡지에 그는 18세기 예술의 역사를 서술했다. 그는 1809-1811년 사이 바이마르 궁정에서 했던 강의를 토대로 1824년 <예술사> 1,2권을 발표했으며 그의 사후 1836년 3권이 발간되었다.

[5] 헤겔은 그리스 조각 작품을 논하면서 라오쿤을 설명한다. 라오쿤은 빙켈만이 그리스 예술의 전성기에 속하는 전형으로 파악했던 작품인데, 헤겔은 이는 명백히 후대 매너리즘 시대에 등장한 작품이라 본다. 왜냐하면 지나치게 정교하고 우아하기 때문이다. (이창환 역, 미학강의 2권, 470쪽) 반면 헤겔은 그리스 조각의 전형은 빙켈만의 표현대로 고요함과 단순함을 지닌 것으로 본다. 헤겔의 이런 평가는 분명 마이어의 주장으로부터 배운 것으로 보인다.   

헤겔 미학 산책2-예술의 과거성 테제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미학 산책2-예술의 과거성 테제

 

1)

헤겔 미학과 관련해 가장 뜨거운 논제는 예술의 과거성 테제일 것이다. 헤겔은 미학강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 예술의 아름다운 시절과 중세 후기의 황금시대는 사라졌다[sind voruber].” (미학강의1, 30쪽)[1]

“최상의 규정이라는 면에서의 예술은 우리에게 과거의 것[Vergangenes]으로 존재하며 또 그렇게 남아 있다. 이로써 예술은 우리에 대해 진정한 진리와 생명성도 역시 상실했으며[verloren], 예전의 필연성을 현실 속에서 주장하여 한층 높은 지위를 점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표상 속으로 그 자리를 옮겼다.”(미학강의1, 30쪽)

 

이런 구절에서 헤겔은 ‘사라졌다’ ‘과거의 것’ ‘상실했다’는 표현을 반복함으로써 소위 예술의 과거성[vergangen] 테제가 출현하게 되었다. 예술의 과거성 테제는 고전주의 시대인 그리스 예술작품에서 미가 완성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고전주의의 미적 작품은 예를 들어 그리스 조각 작품에서 보듯이 예술의 내용인 이념을 이상화 된 감각적 현존을 통해 표현한다. 이렇게 이상화 하는 가운데 고전적인 아름다움 즉 조화와 비례가 갖추어진다. 이 조화나 비례는 아름다움의 정점이었다.

그 이후 등장한 낭만주의 예술작품은 예술의 퇴락이다. 낭만주의 예술작품 가운데 인정할 만한 게 있다면 고전주의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자면 르네상스 시절의 종교화나 괴테의 고전주의적 작품이 그렇다. 그 외에는 뭐 볼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성 테제는 예술의 시대는 그리스 고전주의 이후 지나갔다고 주장한다. 

 

2)

이 과거성 테제는 헤겔 미학 강의 텍스트 자체에 대한 논쟁으로 발전했다.[2] 이 논쟁에서 핵심은 위에서 언급한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 과거성 테제를 찬성하는 사람은 곧 헤겔이 그리스 예술을 이상화하는 고전주의자라고 보고 위의 말을 과거성 테제로 해석한다.[3] 이에 반대하는 사람은 헤겔의 위의 말은 헤겔 미학을 편집한 편집자 호토의 왜곡이라고 주장한다.

과거성 테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힘들다. 굳이 낭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중세 이후 등장한 낭만주의 예술의 탁월함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헤겔 역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나 네델란트 풍속화를 칭찬하는 데 결코 인색하지 않으며, 더구나 회화나 음악, 시문학은 낭만주의적 예술 장르라고까지 주장한다. 중세 이후 낭만주의 예술을 부정한다면, 지금 남아있는 대부분의 고전과 핵심적 예술 장르를 버려야 할 지경이다.

 

3)

호토가 헤겔을 왜곡했는지는 제쳐두고 위에서 언급된 ‘지나갔다’는 헤겔의 발언조차도 엄밀하게 살펴보면, 과거성 테제로 해석하기 어렵지 않을까? 위의 구절에서 ‘최상의 규정이라는 의미에서의 예술’이 사라졌다고 할 때, ‘최상의 규정’이라는 말의 의미가 문제가 된다. ‘최상의 규정으로서 예술’은 고전주의 미학자들이 믿듯이 그리스 예술이 인류의 최고 예술이라는 의미로 본다면 과거성 테제가 출현하게 된다.

그러나 이 말은 절대정신을 대변하던 예술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헤겔은 그리스 시대는 예술이 종교나 철학을 제치고 절대정신을 대변했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판단의 구체적 근거로 그리스 신화조차도 호머의 서사시를 통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렇게 본다면 과거성 테제는 예술이 절대정신을 대변하던 그리스 시대가 지나갔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이후 그리스 시대보다 더 탁월한 예술이 나오기도 했지만 절대정신을 대변하는 자격에서 예술은 이제 철학에 자리를 양보하게 되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리스 시대, 예술이 절대정신을 대변하는 이유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헤겔은 이 시대 예술의 내용이 되는 신은 곧 민족신이라고 규정한다. 민족신은 그 이전 자연신의 단계를 벗어나기는 했지만 아직 각 민족에게 고유한 개별적 신이다. 개별적이라는 것은 곧 감각적인 것과 같은 말이니 헤겔은 그리스 신이 개별 신이기에 외적인 감각적 현상으로 출현할 수 있다고 본다.

신 자신이 민족신으로서 감각적으로 현상하므로 감각성에 머무르는 예술이 이 시대에 종교를 제치고 지배적인 절대정신이 된다. 하지만 이런 민족신을 이해하는 데 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므로 철학이 아니라 예술이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한다는 주장이다. 비유하자면 산수 정도는 초등학생이 가장 잘한다는 뜻이다.

 

4)

그런데 문제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낭만주의 시대에도 예술이 여전히 ‘진리와 생명성’을 주장하려면 이 시대 예술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이 문제가 헤겔의 미학을 이해하는데 가장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어떻게 보면 이 시대 예술은 근본적인 난관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헤겔의 역사관에서 중세 이후 근대까지 이어지는 주관성의 시대이다. 이 시대 예술이 곧 낭만주의 예술인데 낭만주의 예술의 내용이 되는 것은 유일하며 보편적인 기독교 신이다. 그 신은 감각적 현실을 초월하는 신이다. 이 신은 우상숭배금지의 원칙에서 보듯 자신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을 거부하는 신이다.

초월적 유일 보편 신을 어떻게 감각적 예술을 통해 표현할 수 있을까? 헤겔이 낭만주의 예술의 특징을 특징성에 두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특징성란 곧 셰익스피어의 희극의 주인공이 지닌 것과 같은 권력욕(맥베스) 질투(오델로) 등 주관적 성격을 말하는데, 이런 특징성 자체가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특징성이 예술의 원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서 추가 예술의 원리가 된다는 주장으로 나가기도 하지만 추가 예술의 한 요소는 몰라도 기본 원리로 인정되기는 어렵다.[4]

설혹 괴테나 실러의 고전주의적인 작품에서 보듯이 그리스적 예술작품의 흉내를 내더라도, 우선 우수꽝스럽다. 미켈란제로가 예수의 모습을 그리스 영웅 헤라클레스의 모습으로 표현했을 때 생각해 보라. 그리고 낭만주의적 인물이 기독교적 신을 표현하는 한에서는 여전히 우상숭배 금지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니, 아마도 후일 성상 파괴 운동에서 보듯이 교도의 도끼 아래 파괴되고 말지 않을까?

그렇다고 예술이 감각을 떠나 개념을 사용하거나 불립문자와 같은 방식으로 수수께끼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 않을까?

 

5)

헤겔은 낭만주의가 표현하는 신이 초월적 신일뿐만 아니라 인격신이라는 데서 모든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인격신이라는 말은 곧 신이 우리 눈앞에 자신을 직접 계시한다는 말인데, 계시된 신의 존재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신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무상의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사람들은 그가 곧 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의 탄생과 죽음은 신의 인격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여기서 감각적 예술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즉 낭만주의 시대 예술은 신의 인격성과 마찬가지로 감각적 현상이되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헤겔은 이를 곧 가상이라 규정한다.[5] 낭만주의 예술의 근본적 원리는 바로 감각적 가상이다.

헤겔은 예술은 이념의 가상이라고 규정하는데, 이 가상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낭만주의 예술에 와서이다. 이집트 예술은 신을 수수께끼와 같은 상징으로 표현한다. 그리스 신은 이상화 된 현상으로 출현한다. 낭만주의 시대 신은 자기 부정이라는 가상을 통해 출현한다. 예술의 개념 즉 이념의 가상이라는 개념은 상징과 현상을 거쳐 가상에 이르러 자기를 실현한다. 그러니 헤겔에서 예술은 고전주의가 아니라 낭만주의에서 완성된다고 하겠다.

 

5)

예술이 낭만주의에 와서 완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예술이 낭만주의 시대 절대정신에 대한 유일한 표현이거나 최고의 표현은 아니다.

인격신은 가상을 통해 표현되더라도, 감각적으로 표현되는 한 한계를 지니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예수의 탄생과 죽음은 사실 신이 현현하는 모습인데, 인간의 눈에 그저 자연적인 탄생과 죽음으로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면서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경우이다. 헤겔이 예술이 ‘진리와 생명성을 상실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감각성이 지닌 이런 한계를 뜻한다. 

그러므로 낭만주의 시대에 헤겔은 인격 신을 표현하는 절대정신의 대변자로서 자격을 철학에 넘겨준다. 철학은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자기반성적인 사변적인 개념을 통해 인격 신을 표현할 수 있다. 이제 심지어 예술은 진리를 알고 있는 철학의 반성 대상이 되어 그 자리를 앞에서 인용 귀절에서 말했듯이 ‘표상 속으로 옮기니’ 여기서 ‘예술에 대한 학문’으로서 미학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이 죽은 왕의 후궁처럼 구중 궁궐에 숨어 지내야 한다 말은 아닐 것이다. 우선 철학이 인격신을 사변적으로 표현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사변적 개념에 기초한 철학은 헤겔 철학에 와서야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 추상적 사유에 기초한 철학 즉 근대철학보다는 차라리 예술이 낫다. 왜냐하면 예술은 비록 한계는 가지지만 가상을 통해 인격신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변철학이 등장하여 인격신을 표현하더라도, 이런 사변철학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들다. 헤겔이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말했듯이 사변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중들에게 사변철학보다는 예술이 훨씬 쉽게 인격신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그렇다면 낭만주의 시대 끝에 이르러 사변철학이 등장하고 마침내 인격신의 비밀이 대중적으로 폭로된다면 예술은 어떻게 되는가? 헤겔은 낭만주의 예술형식의 발전 끝에 예술 자체의 종언을 제시한다. 이것은 흔히 과거성 테제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다른 논제이니 추후 살펴보기로 하자.


[1] 헤겔, 미학 강의 1, 이창환 역, 세창, 2020

[2] 헤겔은 1818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미학을 처음 강의한 이후, 베를린 대학에서 1821 겨울, 1823년 1826년 1828년 겨울 네 번에 걸쳐 강의했으나 자신의 강의를 출판하지 못하였다.

1831년 헤겔 사후, 헤겔 강의록 출판의 흐름 속에서 헤겔의 미학강의도 출판되었다. 미학강의는호토[H. G. Hotho]가 처음으로 1835년 편집하여 불멸자의 친우판 전집으로 발간했고 1842년 개정했다. 호토는 헤겔 자신의 베를린 시대 23년 강의 수고와 자신의 필기록을 대조하여 편집했다.

20세기 초 헤겔 부흥운동 중 1911년 이후 라슨 판 전집이 발간되는 가운데 라슨이 1931년 미학강의를 재편집하였다. 라슨은 1826년 강의의 필기록을 참조로 하여 호토의 판을 살펴본 결과, 호토가 생략하거나 표현을 왜곡한 부분이 다수 발견되어 재편집하였으나, 서문과 1부의 발간에 그쳤다.

그 이후 이어지는 헤겔 전집에서는 즉 70년대 수어캄프 판이나 펠릭스 마이너판까지 모두 호토판에 기초하였다. 1971년 부브너[R. Bubner]는 호토판을 불신하면서 라슨이 편집한 것을 재편집하여 미학강의를 단행본으로 출판했다. 안네마리 게트만 지페르트는 호토 판을 불신하면 강의 필기록에 기초하기를 주장했다. 니콜라스 헤빙[Nicholas Hebing]이 편집하여 2015년 발간된 헤겔 서고 판(펠릭스 마이너 출판사)은 제목조차 미학 강의가 아니라 예술철학 강의[Vorlesungen ueber die philosphie der Kunst]로 바꾸었고, 호토의 편집을 불신하고 강의 필기에 기초하여 편집조차 21년(미학), 23년(예술철학), 26년(예술철학). 28년(미학) 강의록이라는 방식으로 전개했다. 

현재 한국에서 번역된 두행숙 번역판(나남, 1996)이나 이창환 번역판(세창, 2022)은 모두 1970년 발간된 수어캄프 판 미학강의를 번역한 것이다. 헤겔의 강의 필기록은 개별적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서정혁은 미학강의-베를린 1820/21(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한동원은 헤겔 예술철학(미술문화, 2008), 권정임은 헤겔 예술철학 1826년 강의(세창, 2023)을 출판했다.

[3] 이 논쟁에서 최근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을 들라면 G. S 안네마리를 들 수 있겠다. 그의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호토판 미학강의는 헤겔을 왜곡했다. ②여기서는 헤겔을 고전주의자로 간주하면서, 고전주의 예술작품에서 미의 이상은 완성되었다고 본다. ③중세 이후 고전적 이상의 잔재가 남아 있으니 르네상스 종교화와 고전 음악 정도이다. ④중세 이후 등장한 낭만주의 예술작품은 특징적인 것에 몰두하는데 이는 미적 이상으로부터의 후퇴이다.

안네마리는 호토판 헤겔미학을 혹독하게 평가하면서, 헤겔의 미학강의에 관해서는 학생들이 남긴 필기록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1826년 강의 필기록에 주목하는데, 이에 따르면 헤겔의 미학적 관점은 앞에서 제시된 것과 전혀 다르다.

①고전주의 시대 예술이 표현하려는 절대정신은 민족신이었으나, 낭만주의 시대 절대정신은 기독교적 신 즉 내재하는 신이다. ②헤겔 미학에서 상징주의, 고전주의, 낭만주의는 이념이 현존하는 방식의 차이를 주장한다. 각각에 고유한 미적 이상이 존재한다. ③고전주의는 미적 이념이 아름답게 현존하는 방식을 말한다. 낭만주의에서 미적 이념은 이념과 감각적 현존이 불합치하는 추의 방식으로 출현한다. ④구체적으로는 예를 들어 쉴러의 드라마에서 등장하는데, 주인공은 윤리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좌절되면서 범죄자로 전락한다.

[4] 그러나 헤겔에서 낭만주의 예술 형식을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호토의 헤겔 미학강의가 왜곡되었다고 비판하는 안네마리조차도 이 점에서 분명하지는 않다. 그는 고전주의가 아름다운 감각적 현존을 제시했다면 낭만주의 예술형식은 추의 형식을 제시했다고 말한다.

무엇이 예술에서 추일까? 안네마리는 미가 이념과 감각적 형식의 조화, 합치라고 한다면, 추는 이념과 감각적 형식 사이의 부조화라고 한다. 하지만 이념이 어떤 형식이라도 갖는다면, 미와 추를 논할 수 있겠지만, 기독교 신은 이념은 아예 감각적 형상화가 거부되니, 무엇이 미이고 추인지를 알 수 없다. 

중세 고딕 신상을 보면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은 왜곡되고 과장되어 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절 신의 모습은 그리스 조각상처럼 이상화되어 있다. 전자가 낭만주의 예술이라면 후자는 낭만주의 예술이 아니란 말인가?

[5] 가상[Schein]이나 현상[Erschein]이나 똑 같이 빛난다[scheinen]는 말에서 나온다. 하지만 현상은 직접적인 것에 머무르며, 가상은 자기부정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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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미학 산책 1-미에 관한 철학이 가능한 것일까?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헤겔 미학 산책 1-미에 관한 철학이 가능한 것일까?

 

1)

헤겔은 미학강의 서문에서 들어가자 마자, 미학이라는 학1이 가능한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지금 대학에 미학과가 있으니 굳이 그 가능성을 문제 삼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매우 흥미로운 문제가 아닐까 한다.

예를 들어 미와 유사한 멋이나 맛의 학문이 가능할까? 물론 맛의 기술과 멋의 디자인이 전공[discipline]으로서 가르쳐지고 있으니, 학문이 아니라 할 수는 없지만, 헤겔에게 물어보았다면 아마 맛과 멋의 학문은 없다고 했을 것이다. 왜 헤겔은 멋이나 맛에는 학문이 성립하지 않지만 미에는 학문이 성립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2)

헤겔은 미학이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으로 두 가지를 거론한다. 우선 예술은 생존이 걸린 문제가 아니라 맛과 멋처럼 일종의 잉여라는 주장이다. 예술은 진지함이 결여된 유희, 오락에 가까우니, 이를 위해 학문적 연구의 노고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우선 예술이 쓴 약에 감초를 넣듯이 예술이 감성과 경향성을 통해 이성과 의무의 부담을 덜어주니 그런 봉사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대표적으로 쉴러 같은 철학자는 예술은 진리를 감성적인 것을 통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했다. 헤겔은 그런 주장이 못마땅하다. 헤겔이 보기에 이는 이성과 의무가 지닌 순수성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헤겔은 예술이 유희나 오락이라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예술의 신성함을 옹호한다. 즉 종교나 철학과 마찬가지로 절대정신에 속하는 등근원적인 것이라 한다. 예술은 절대정신의 감각적 현존으로서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방식에서만 종교와 철학과 차이를 가질 뿐이다.

절대정신의 표현 방식에서 시대에 따라 예술, 종교, 철학 가운데 어느 하나가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 그리스 시대 절대정신은 주로 예술을 통해 표현되었으니, 그리스 신화는 헤시오도스와 호머의 예술작품을 통해 창조됐으며 철학은 아직 예술의 생동성과 풍요로움을 따라갈 수 없었다.

현대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게 되면 예술은 기꺼이 장식이 되고, 오락과 유희가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헤겔은 예술에 너무 과도한 가치를 부여했을지 모르겠다. 반면 모더니즘 예술가들은 예술이 그 자체로 사회의 혁명이며 인류의 구원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술을 신성시했다. 반 고흐의 예에서 보듯이 그들은 예술을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내던지기도 했으니 헤겔의 주장에 눈물지을지 모르겠다.

헤겔은 왜 예술에 절대정신이라는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을까? 절대정신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 점은 문제로만 제기하고, 미학이 불가능하다는 두 번째 주장을 살펴보자.

 

4)

두 번째 주장은 미학이 필요하더라도 다루어지는 대상의 성격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미적 작품은 공통적으로 감각적 질료적 성격을 가진다는 데서 나온다.

예술작품에는 이런 성격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건축이나 조각 회화 음악은 물질적 수단을 이용하니 말할 것도 없다. 비물질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문학도 추상적인 것을 지칭하는 개념적 언어보다는 구체적인 것을 지칭하는 감각적 언어가 사용된다.

예술작품의 질료가 되는 감각적 자연은 개별적이며 우연적으로 움직이다. 더구나 예술 작품은 자연적 산물에 머무르지 않고 자유롭게 산출되는 판타지로 가득 차 있다. 판타지는 자의적이니, 어떤 법칙적 규제도 이성적 목적에서도 벗어난다. 이런 예술작품에서 학문의 기초가 되는 규칙적인 것이나 합목적적인 것을 찾으려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닐까? 그러니 예술작품은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서 자격 자체를 갖지 못하지 않을까?

사실 예술에 관한 많은 담론은 그저 주변적인 사실에 대한 소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언제 누가 어떤 동기로 이 작품을 만들었고, 누구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고, 뒤에 어떤 영향을 남겼다고 얼마에 팔린다는 둥, 자질구레한 사실을 많이 알수록 훌륭한 비평가로 행세하는 것이 현실이다. 거기에 약간의 주관적 감상이 덧붙여지는데, 좋았다는 감탄을 얼마나 다양하게 표현하는가가 훌륭한 비평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헤겔은 예술작품이 감각적 질료를 가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미학의 가능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예술 작품의 감각적 질료는 예술의 내용인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형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경험적 실재인 자연산물과 같이 직접적으로 존재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우연과 혼돈의 지배 아래 있겠다. 하지만 예술작품은 자기 스스로를 통해서 자기를 부정하면서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가상2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물론 예술작품의 가상성은 하나의 암시에 지나지 않으며 표면적으로 작품의 감각적 질료적 성격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예술작품은 항상 수수께끼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그럼에도 예술작품은 어떤 경우라도 이런 암시가 감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가상이다.

역설적이지만 헤겔은 예술작품의 가상성 때문에 미학의 가능성이 펼쳐진다고 본다. 예술작품의 자기 부정성을 통해 진리인 절대정신이 드러나니, 이를 통해 예술작품은 우연성을 벗어나 필연성으로, 경험적 실재를 넘어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예술작품이 단순한 감각적 자연이나 판타지가 아니라 자기 부정적인 가상이므로 오히려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될 충분한 자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5)

이런 점에서 헤겔은 예술작품을 역사와 비교한다.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 속에는 역사의 의미 즉 시대정신이 드러나 있다. 마찬가지로 감각적 예술작품에는 작품의 의미 즉 절대정신이 드러난다.

동시에 헤겔은 두 가지를 엄밀하게 구별한다. 역사의 경우 예를 들어 나폴레옹에게서 보듯이 구체적 사건을 일으키는 행위자는 자기 행위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는 권력욕에 사로잡혀 행위 했을 뿐이다. 그 행위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역사적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나 예술작품에서 작가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자각적으로 노력한다. 그는 자기 작품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의 의미를 새겨놓는다. 그 때문에 작품은 가상성을 띠게 되는데, 관객이나 독자는 작품의 감각적인 측면을 따라가더라도 그 작품 속에 놓여 있는 작가의 암시에 따라서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작가가 작품 속에 어떻게 그런 암시를 새겨놓는가 하는 방식이 곧 장차 미학이 다루어야 할 대상이다. 이런 방식이 곧 예술작품의 역사적 형식과 장르의 개념을 이룬다. 헤겔의 미학 강의는 곧 이런 역사적 형식과 장르의 개념을 전개하는 데 있다.

 

6)

절대정신과 가상성이라는 두 개념은 헤겔 미학의 핵심 개념인데, 미학의 가능성을 설명하다 어느덧, 헤겔 미학의 기본 개념을 언급하게 되었다. 그 의미는 앞으로 상세하게 다루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오늘날 미학의 불가능성이라는 테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간략하게 언급하기로 하자.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은 미학의 불가능성이라는 문제를 헤겔 당시보다 더 심각하게 제시한다. 헤겔 당시에는 진리나 가치의 인식 자체가 부정된 적은 없다. 하지만 오늘날 후기구조주의의 등장 이후 진리나 가치의 인식 자체가 회의되고 있다. 미의 영역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진리나 가치가 사라졌으며, 예술은 기꺼이 오락이 되고 여흥이 되었다. 예술은 삶의 풍요한 잉여가 되기를 지향한다. 예술은 상품화되었다. 이런 사태 앞에서 미의 가치를 논하고 미와 진리의 관계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불필요해진 것이 아닐까?

1980년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 전성기를 누린 포스트모더니즘은 오늘날 후퇴하는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자체가 위기에 부딪히면서 다시 진리와 가치에 대한 열망이 되살아나고 예술을 신성시했던 모더니즘이 부활한다. 이런 흐름에서 본다면 헤겔의 미학을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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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와 정신분석 7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 비평]

호퍼와 정신분석 7

 

1)

앞에서 언급한 서로 대조되는 두 그림은 당시 호퍼의 관음증과 노출증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의 나르시시즘과 더불어 상상적 동일화의 증상이다. 호퍼에게서 등장하는 관음증과 노출증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지만 항상 그림의 모델은 조로 보인다. 

 

물론 조와 다른 인상을 주는 여성도 있지만, 사실 그런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조라고 해도, 그 의미는 다르다. 여성은 실제 조가 아니라 호퍼의 어머니이거나, 호퍼 자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선 아래 그림을 보자.

 

결혼하기 전 1921년 그려진 또 하나의 그림을 보자. 역시 방안에 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창가에 있기는 하지만 창 밖을 바라보지는 않는다. 그녀는 재봉틀에 몰두하고 있다. 그녀는 붉은 벽을 배경으로 옆모습으로 관찰되고 있다. 붉은 색 바탕에 흰색과 노란색이 섞여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이 든다. 그녀는 긴 머리와 눈부신 흰 속옷을 입고 있다. 왼쪽에 화장대가 보이는데, 화장대의 크기가 압도적으로 크다.

 

일에 몰두하거나 책을 읽거나 아니면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은 자기 내에 되돌아가 완결된 안정적인 모습이다. 그녀가 란제리 차림으로 있다는 것은 지금 호퍼가 숨어서 그녀를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장대의 거대한 크기를 생각해 보면 역시 팔루스적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림 안에 반쯤 들어와 있다. 그림의 시선은 관음증적이지만 노골적이거나 자각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니 마치 아이가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아이는 일에 몰두한 어머니가 자신을 보아주기를 갈망한다.

1921년 뉴욕 실내라는 작품이다.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검은 방문을 배경으로 등을 돌리고 있다. 손 동작을 보건대 아마도 드레스를 꿰메는 것으로 보이는데, 누군가 뒤에서 그녀를 훔쳐보고 있다. 아직 결혼 전이니 아내 조의 모습은 아니다. 힌트는 앞에 걸려 있는 반쯤 만 보이는 희미한 사진에 있을 것 같다. 그 사진 속의 인물을 정확하게는 알아볼 수는 없지만 남자의 얼굴이다. 사진 속의 남자는 드레스를 입은 여성을 바라본다. 호퍼의 관음증적 시선을 잘 보여주는 그림으로 보인다.

2)

이어서 같은 해 그려진 에칭화를 보자.

 

제목이 ‘저녁의 바람’이다. 여성의 신체 모습이나 머리칼의 모습은 결혼 전인데도 조와 닮았다. 결혼 전이니 조를 모델로 하기보다, 호퍼가 늘 마음 속에 품은 여성의 모습이다. 긴 머리칼과 약간 작은 키, 약간 마른 살집, 이 특징은 결국 호퍼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저녁이니 햇빛은 없다. 창문 밖은 이미 약간 어두울 텐데, 호퍼는 이 부분을 생략하여 마치 환한 그러나 달빛처럼 은근한 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 왼편에 탁자가 보이고 그 위에 팔루스적 형상을 지닌 주전자가 어둠 속에 흐릿하게 놓여 있다.

 

여성은 옷을 벗고 침대에 들어가는 순간인데, 밖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커튼이 상당히 심하게 흔들리고 있으니 바람이 상당히 세게 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생각할 때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여성의 마음이 내면에서 느끼는 욕망을 의미할 것이다.

 

욕망에 흔들리는 여성의 모습, 그것은 ‘아침 11시’에 등장한 여성의 모습과 같이 노츨증적인 증상을 드러낸다. 두 여성은 모두 벌거벗고 있으며, 창 밖을 바라본다. 거기에 있는 것은 자신의 시선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거기에 있어야 할 것 즉 자기를 바라보기를 바라 마지 않는 어떤 시선이다. 여성은 안타까이 그 시선을 기다리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 시선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여성은 호퍼 자신을 의미할 것이다.

 

3)

호퍼의 상상적 동일화의 증상은 점차 절망에 빠지면서 자폐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더 이상 그는 이제 자기 밖을 보지 않는다. 자기 속의 내면에 갇히게 된다. 20년대보다 30년대 호퍼의 그림은 더 절망적이고 주인공은 거의 자폐적이다. 이는 30년대 미국의 대공황에서 받은 심적인 타격을 그린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호퍼 자신의 욕망 구조에서의 절망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은 1931년에 그려진 그림이다. 호퍼는 여행을 좋아해 여행을 암시하는 소재를 많이 그렸다. 이 그림의 제목이 ‘호텔 방’이니, 이 여성도 여행을 떠나왔을 것이다.

 

벽 기둥을 가운데 두고 그림은 둘로 나뉘어진다. 반쯤 열린 창문을 통해 보면 캄캄한 밤이다.

그림 오른편에 소파는 녹색인데, 호퍼의 그림에서 자폐적인 모습은 자주 이런 녹색으로 표현된다. 여름의 밝고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가 소파에 걸쳐있지만, 가방은 풀지도 않은 채 닫혀 있다.

 

왼편에는 침대가 있고 여성이 걸터앉아 있다. 그녀는 호퍼가 좋아하는 긴 머리와 달리 파마머리다. 여성은 내의 차림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 내의가 붉은 색인데 상당히 에로틱하다. 아마침대로 올라가 잠들기 전일 것 같다.

 

그녀는 어떤 접힌 종이, 아마 브로셔를 펼쳐 읽고 있다. 여행 안내서나 기차 시간표일까, 아니면 호텔의 안내문일까? 그녀의 얼굴빛으로 보면, 그녀는 이 브로셔를 읽는 것 같지 않다. 그저 손에 들고 있을 뿐 어떤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하다.

 

그녀의 얼굴은 어둡게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한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누구를 만나러 왔으나, 만나지 못한 것일까? 더욱 놀라운 것은 실내등의 빛으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밝은 빛이 그녀를 비추고 있다. 마치 성스러운 듯한 빛이 그녀를 감싸지만, 그녀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것 같다. 이 밝은 빛과 참담한 그녀의 얼굴 사이의 대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4)

여행이란 어딘가에 있을 그 무언가를 찾으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창 밖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모습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자신을 바라보아야 할 실재를 찾는 것이다. 그녀는 그저 창 밖에서 찾는 것에 멈추지 않고 행동에 나서 여행을 떠난다. 어딘가에 그것은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낯선 도시에 이르러 그녀는 절망에 빠진다. 지금껏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대체 어디로 가야 하나, 마음 속으로 생각하지만 알 수가 없다. 그녀가 찾으려는 그것 즉 실재는 실제로는 없다는 말인가? 절망에 빠진 그녀는 자신의 기억 속의 대상으로 되돌아 가려 한다.

 

그녀를 에워싼 그 환한 빛은 밖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내부 기억에서 나오는 빛일 것이다. 이 그림에서 그녀의 생각에 잠긴 모습은 이제 한 걸음 더 나가면, 기억에 사로잡힌 자폐적인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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