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39-괴테의 색채론과 헤겔의 색채론[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Spread the love

헤겔미학산책39-괴테의 색채론과 헤겔의 색채론

 

1)

회화의 질료란 무엇인가? 공간적 평면인가 아니면 색채인가? 헤겔은 회화의 질료가 일단 공간의 평면화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본다. 이런 평면화로부터 예술은 조각에 이르기까지 지배적이었던 구체적 물체에 대한 종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헤겔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한 걸음 더 나가 색채로 넘어가면서 색채를 본질적 질료로 삼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회화가 사용하는 물리적 요소가 어떤 종류인지 묻는다면 대상성 일반을 보편적으로 가시화하는 빛이 그것이다.”

“더욱 추상관념적인 이러한 측면의 성질로 인해 빛은 회화의 물리적 원칙이 된다.“[1]

 

역사적으로 볼 때-예를 들어 알타미라 동굴 벽화 등에서 보듯이- 회화는 처음에 아마도 사물의 외적 형태 즉 평면적 형상을 따오는 방식으로 출발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평면 형상은 조각과 달리 실재 물질을 통해 표현되지 않았다. 그것은 벽면이라는 공간에 다만 외적인 형태만 닮은 선으로 표현되었다. 물론 이때에도 색채가 그 외적 형태를 채우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지만 색채는 아무래도 종속적이었다.

사물의 형태는 선이 아니라 색채로 만들어진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화가 세잔느는 평면적 외적 형태가 확고하게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심하면서, 사물의 형태를 새롭게 창조하려 했다. 그는 수없이 다양한 색채의 중첩을 통해 하나의 외적 형태를 창조해 냈다. 세잔느의 이런 시도를 통해 회화의 본질이 평면적 형태가 아니라 색채에 있다는 사실이 확립되었었다. 그 후 모더니즘은 아예 형태 자체를 제거한 추상화로 나가면서 색채를 회화의 본질적 질료로 삼았다.

색채가 본질이라는 생각이 세잔느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색채가 회화의 본질적 질료라는 헤겔의 생각은 얼마나 시대를 앞선 통찰이었는가? 놀랍기 짝이 없는 생각이다.

 

2)

헤겔은 왜 색채가 평면적 형태보다 더 본질적이라고 보았는가? 색채(즉 빛)가 회화의 본질적 질료더라도 회화가 공간적 평면 없이 가능할까? 헤겔 역시 회화의 출발점으로서 공간적 평면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므로, 그에게서 회화에서 색채와 공간적 평면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먼저 색채라는 개념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헤겔은 색채라는 개념에 괴테의 색채론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괴테의 색채에 대한 개념과 헤겔의 색채에 대한 개념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색채에 대해 괴테는 <색채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선 빛으로부터 노랑색이라는 색이 생겨나며, 또 다른 색은 암흑으로부터 생겨나는데, 그것은 파란색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된다.”[2]

 

우선 괴테가 빛뿐만 아니라 어둠도 나름대로 빛을 내는 광원이라고 본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물론 어둠이 내는 빛은 밝은 빛이 아닌 어둠이라는 빛이지만 그것도 역시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빛에서 색채가 나온다. 빛에서는 노랑색이 나오며, 어둠에서는 파란색이 나온다.

그러면 빛(빛과 어둠)으로부터 색채(노랑색과 파란색)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은 색채론 4장, 색채의 속성에 대한 일반적 견해에서 찾을 수 있다. 괴테는 프리즘 현상을 알았지만, 빛이 분화되면서 색채가 된다는 생각은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괴테는 빛이 색채로 변화하는 조건으로 굴절이나 반사라는 과정을 들고 있으며, 이런 과정이 흐린 매체를 통해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들고 있다. 즉 물체의 어떤 성질 즉 ‘흐림’이 빛이 색채로 나타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3].

여기서 매체의 ‘흐림’이란 어떤 의미일까? 괴테도 물체가 지닌 어떤 성질이 빛에 일정한 영향을 주면서 빛이 색채로 나타난다고 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괴테는 자신의 짐작을 확대하여 물체의 압력, 회전, 열기, 입김 그리고 물체의 움직임과 변화, 물체의 구성성분조차 색채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4]

괴테는 일단 빛이 색채로 변화하면, 색채는 서로 대립된 것의 상호 작용을 통해 다양한 색채가 출현하는 것으로 본다. 빛에서 두 대립된 색채인 노란색과 파란색이 출현하면, 나머지 색채는 이 두 색채의 조합에 의해 출현한다. 이 두 색채의 작용이 중화되면 즉 “서로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면”, 녹색이 출현하며, 두 색채가 조화로우면 즉 “두 색채의 순도를 높이거나 짙게 하면” 빨강색이 나온다[5].

 

“만일 그것들이 아주 순수한 상태에서 혼합되어 서로 완벽하게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면, 제3의 색을 낳게 되는데, 우리는 그것을 녹색이라 이름 붙인다. 그러나 앞의 두 색은 순도를 높이거나 짙게 하면 그 각각의 색으로부터 새로운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말하자면 그것은 붉은 색을 띠게 된다.”

 

괴테는 색채 현상의 기본 원리로 세 가지 원리를 들었다. 양극성의 원리와, 상승의 원리, 총체성의 원리이다[6]. 이 세 가지 원리는 서로 대립하는 것 사이의 대립과 조화라는 관계라는 개념을 낳았다. 그의 색채론은 오늘날 보기에는 상당한 오류가 존재하지만, 철학적으로는 자연을 대립물의 통일을 통해서 설명하면서 뉴톤적인 기계론적 세계관에 대립하는 새로운 세계관을 발전시켰다. 헤겔의 변증법도 괴테의 색채론의 영향권 아래 놓여질 수 있을 것이다.

 

4)

이제 헤겔의 색채론으로 넘어가 보자. 헤겔에 따르면 빛은 “가볍고”, “저항이 없으며”, “자기와 순수하게 통일되어 있어서” “최초의 관념적 존재”이며 “최초의 자아” [7]이다. 헤겔은 그 특성을 탈자성[脫自;Aussersichsein]에 두었다.

 

“물질의 추상적 자아로서 빛은 절대적으로 가벼운 것이며 물질로서는 무한한 탈자적 존재이다. 그러나 순수한 현현이고 물질적 관념성인 한에서 불가분적인 단순한 탈자적 존재이다.”[8]

 

상당히 관념적 언어로 서술되어 있지만 이런 표현은 빛이 질량[무게]을 지닌 물체와 대립하는 것 오늘날로 말하자면 일종의 에너지라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빛은 물체적인 것을 넘어선 관념적인 것이다. 빛은 여전히 물질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므로 최초로 관념화된 것 즉 물질의 자아가 된다. 즉 관념화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아직 개인의 정신적 주관에 내재하는 관념은 아니라는 뜻이다.

 

“자연은 빛에서 처음 주관적으로 되기 시작하며 … 아직은 특칭성으로 나아간 것 개체성 및 점과 같은 내적 완결성으로 수렴된 것이 아니다.[9]

 

괴테와 비교해 볼 때 우선 헤겔은 괴테가 말한 어둠이라는 독자적 광원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명시작용을 하는 것은 오직 빛뿐이다.

그렇다면 색채는 어디서 나오는가? 색채는 빛의 명시작용 즉 가시화 작용으로부터 나온다.

 

“빛은 명시작용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명시작용은 여기 자연에서는 가시화됨 일반으로서만 나타날 뿐이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것의 특수한 내용을 자신의 외부에서 대상성으로 가진다. 이 대상성은 빛이 아닌 빛의 타자이며 이로써 어두움 속에 존재한다.”[10]

 

“어두운 것은 빛과 상이하면서 독자적으로 존립하는 한, 빛은 다만 이 일단 불가침투적인 것의 표면에 관계한다. 그와 같은 표면은 빛이 관계하면서 현현하며, 마찬가지로 불가분적으로 자기를 현현하면서 즉 타자에서 빛나게 된다.”[11]

 

빛은 자신의 타자 어둠과 만나서 색채를 만들어낸다. 언뜻 보면, 여기서 괴테도 헤겔도 어둠을 빛에 대립하는 독자적 광원으로 제시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헤겔이 말한 어둠이라는 광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한 어둠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빛을 어둡게 하는 것 즉 물체이다.

헤겔은 사물의 표면이 빛을 흡수한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는 몰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물의 표면이 빛에 대해 어떤 작용을 한다고 보았고, 그것을 어둡게 하는 작용이라 보았던 것이다. 빛이 이렇게 물체에 의해 어둡게 되면서, 색채가 나온다. 그러므로 빛의 명시작용은 “빛에 의해 드러나는 것의 특수한 내용[즉 색채]을 대상성으로서 갖는다.”[12]

헤겔은 색채를 빛과 물체의 관계를 통해 설명하려 했으므로, 괴테가 색채 사이에 설정한 양극성의 원리나 상승의 원리, 전체성의 원리를 거론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빛은 색채로 변화하면서 다양한 색채로 분화된다고 본다. 이처럼 색채가 분화되면서, 색채는 서로 결합될 수 있다.

 

5)

헤겔은 빛이라는 광원만 인정했으니 어둠이라는 광원을 독자적 설정한 괴테에 비하면 현대 물리학에 좀 더 가깝다. 그가 역시 빛을 물질적인 것이지만 물체적인 것은 넘어선 것이라고 본 점도 장차 등장하는 빛 에너지 개념을 연상시킨다. 그럼에도 그는 빛 자체가 여러 파장의 빛으로 구성된다는 빛의 분화라는 사실을 이해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회화와 연관하여 중요한 것은 우선 헤겔에서 빛이 불투명한 물체의 표면에 관계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회화의 질료가 색채라고 하더라도 이 색채가 표면적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잘 설명해 준다. 마치 조각의 질료는 물질적, 형상이지만 그 형상은 그것과 대립하는 물질의 덩어리를 떠날 수 없듯이 회화 역시 색채가 그 질료이지만 이 질료는 평면이라는 공간을 떠날 수 없다. 그러나 마치 조각에서 공간이 형상의 이면일 뿐 그 자체가 질료가 아닌 것처럼, 회화에서 색채가 본질적 질료이며 공간적 평면은 이런 색채가 현존할 수 있는 조건에 불과하다.

또 하나 회화의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색채가 분화된다는 사실이다. 색채가 분화되면서, 그 자체가 가상화된다. 색채는 그 자체로서 어떤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직 상호 관계를 통해 어떤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런 상호 관계 속에서 어떤 색채는 다른 색채에 대해서 자기를 규정하면서 자기 부정적인 존재 즉 가상적 존재일 뿐이다. 색채가 지닌 이런 가상성은 회화가 색채의 마법, 색채의 음악을 통해 특칭적 주관성을 그려낼 수 있는 토대가 된다.


[1] 미학강의 3권, 35, 36쪽

[2] 괴테, 색채론, 장희창 역, 민음사, 2003, 43쪽

[3] 괴테는 구체적으로 밝은 빛이 불투명한 대기 속에서는 노랑색으로 보이며, 어둠은 불투명한 대기 속에서 파란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색채론, 앞의 책, 88쪽 §150 참조

[4] 이 부분에 관해서는 색채론, 앞의 책, 226쪽 §691 참조. 괴테는 오늘날 누구나 알고 있듯이 매체가 빛의 일부를 흡수하거나(반사) 속도에 영향을 주면서(굴절) 색을 나타나게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면서도 매체가 지닌 물체의 성격이 빛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고 빛의 색으로의 변화는 일종의 변용으로 보았다.

[5] 그렇다면 청색에서 황색에 이르기까지 중간 색은 두 색의 혼합 비율에 따라 서로 달라지며, 노랑색에서 파란색에 이르는 다른 색은 순도를 조절하면 나오게 될 것이다. 괴테는 색채의 현상을 생리색(지각적인 색)이나 물리색(반사나 굴절에 의한 색), 화학색(물체 자체의 가열에서 생기는 색) 등으로 구분했다. 빛에서 색이 나오는 과정은 주로 물리색에서 다루어진다.

[6] 양극성의 원리란 색채에 노랑색과 파란색이라는 두 가지 대립된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상승의 원리는 노랑색과 파란색이 더욱 짙어지면서 둘 다 빨강색을 향해 상승한다는 뜻이다. 총체성의 원리는 어떤 색의 지각은 그것과 대립되는 색의 지각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빨강색의 지각은 그에 대립하는 녹색을 동시에 지각하게 만든다.

[7] 미학강의 3권, 36쪽

[8] 헤겔, 철학강요, §276

[9] 미학강의 3권, 36쪽

[10] 미학강의 3권, 36쪽

[11] 헤겔, 철학강요, §277

[12] 미학강의 3권, 36쪽

0 replies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