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36-조각의 형상화[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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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미학산책36-조각의 형상화

 

1)

앞에서 조각의 질료는 구체적 물질성이며, 그것의 형상화는 현상 즉 닮은 꼴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조각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앞에서 말한 건축의 발전 과정과 상이하다.

건축의 경우 그 의미가 내적 공간에 상징적으로 주어질 뿐이었다. 이때 내적 공간은 그 의미에 대해 수단적인 적합성을 지닌다. 내적 공간이 축조되면서 만들어지는 외면적 형태가 그 시대 정신에 의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데 건축은 이를 통해 상징적 건축, 고전적 건축, 낭만적 건축으로 구분된다.

반면 조각의 경우 그 질료인 물질성 자체가 정신을 직접 현상한다. 따라서 조각의 발전은 이런 현상 즉 닮은 꼴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는가에 따라서 구분된다. 헤겔은 이때 고전적인 표현방식 즉 이상화된 표현방식을 기준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로 구분할 뿐이다. 그러므로 먼저 조각에서 고전적 형상화의 방식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2)

조각에서 고전적 형상화는 그리스 로마 조각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기준으로 한다. 고전적 형상화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은 아름다움 즉 조화와 균형에 있다.

고전적 형상화는 그리스 조각에서 잘 보이듯이, 부분적으로는 실제 대상을 구체적으로 모사한다. 그 구체적 모습은 창을 던지거나 뱀에 물린 것과 같은 운동하는 모습이며 그런 운동이 정점에 이른 한 순간을 표현한다. 이런 점에서 고전적 형상화는 매우 구체적인 생동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런 구체적 모습 때문에 고전적 조각은 자주 리얼리즘적 예술의 모범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고전적 형상화는 리얼리즘적 경향성을 지닌 것은 아니다. 오히려 리얼리즘은 있는 그대로의 실제 대상을 보여주려는 낭만적 예술 형식이 지닌 특징이다. 반면 고전적 형상화는 부분적으로 구체적인 사실적 모습 사이의 이상적인 관계를 표현한다. 이런 이상적 관계는 조화와 균형에 따른 이성적인 비율이니 대표적인 것이 황금분할의 비율이다. 이런 비율 때문에 고전적 형상화는 미의 이상에 도달했으며, 그 형상화된 모습은 인간의 모습 가운데 가장 탁월한 모습을 보여준다.[1]

하지만 이런 탁월한 모습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이성을 통해 이상화하여 구현한 모습일 뿐이다. 그것은 아름답지만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플라톤적 이데아이다.

 

‟생명의 향기, 전체 부분들의 부드러움과 이상성, 합일의 정신은 영혼을 부여하는 정신적 숨결로서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2]

 

여기서 실체적 정신과 감각적 형상 사이에는 완전한 합일이 출현한다. 외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어느 것이나 내면이 스며들어 있으므로, 외적인 것은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연적이거나 일시적인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헤겔은 이렇게 개체 내에서 유기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는 형상을 본격적인 조각이라고 규정한다.

 

“지엽 말단의 것도 합목적적으로 존재하며 일체의 것은 자신의 차별성, 고유성 그리고 탁월성을 소유한다. 그러하되 그것은 끊임없이 유동하면서 전체 속에서만 타당하게 살 뿐이니 편린들에서도 전체가 인식되며, 또 그렇듯 고립적인 부분이 온전한 총체성의 관조와 향유를 보장한다.”[3]

 

고전적 형상화가 그 부분의 관계를 이상화하는 까닭은 바로 이것이 고전 문화를 이끈 민족을 대표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개인이 아닌 통일된 민족의 정신, 실천적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적 표상을 통해서는 그리스 민족신으로 등장하며 예술적으로는 아름다운 이상화된 모습으로 현상한다.

 

3)

그러므로 고전적 형상화는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이상화된 모습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구체적 모습이다. 고전적 형상화는 두 가지 측면을 통해 한편으로 실체적 정신을 다른 한편으로 생동적인 모습 가운데서 표현한다.

실체적 정신이 어떤 구체적 모습으로 출현하는가? 그 생동적 모습은 예술가 자신의 개성을 통해 포착된 것이므로 여기서 예술가 자신의 탁월성이 드러나지만, 이 현상 자신은 정신이 자신의 내면성을 가장 완전하게 표현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그 내용은 본래 대체로 신화나 전설 속에서 객관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완전하게 표현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예술가의 개별적 독창성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동일한 내용이라도 예술가마다 독특한 표현이 출현하게 된다. 마땅히 예술가는 이런 극적인 순간을 형상화하기 위해 신체의 운동하는 모습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추고 이를 형상화하는 솜씨를 지녀야 할 것이다.

이런 생동적 구체적 모습은 예술가 자신의 독특한 관점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 속에 표현된 일반적 정신은 어느 경우에나 동일하니, 이런 점에서 일반적 정신은 구체적 모습에 대해 냉담하며 무차별하게 보이며 그 스스로 고요하고 단순하게 머무르는 것과 같다. 헤겔은 이런 특징 때문에 그리스 조각 작품은 대체로 명료하고, 명랑하고, 자족적인(자유로운] 느낌을 주게 된다고 말한다.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

“조각은 … 객관적 정신성 속에서, 독립적 고요 속에서, 타자에 대한 관계로부터 벗어나서 포착하고 형상화한다.” “언제나 실체적인 것이 본질적 기초를 이루며,…신들과 인간성들의 영원성이 자의와 우연적 이기심을 벗은 채 그 맑은 명료성에 따라 표상되어야 한다.”[4]

 

생동성과 자족성은 어쩌면 서로 대립적인 것처럼 보인다. 실체성이 강조되면 자족적인 느낌이 강화되며 반면 구체성이 강조되면 생동성이 강화된다. 같은 그리스 고전 조각이라도 초기에 실체성이 강조된 경우 자족적인 것을 넘어 엄숙하게 느껴지며, 그리스 말기에 이르면 조각 작품은 구체성이 더 강화되면서 심지어 매력적인 것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4)

그리스의 조각이 인간을 나체로 표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스 조각이 모두 나체는 아니다. 때로는 의복을 통해 단순히 외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부분을 가리면서 오히려 정신적인 것을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체는 “정신이 스민 인간의 신체성을 그 자체로 발전시키고”, “단순 감각적 욕구에 대한 냉담함으로 인해”, 명료하며 명랑하고 자족적인 느낌을 살리는 데 적합하다.

나체인 조각은 다루어진 소재에 그 순수한 이상적 모습을 표현하니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린아이 경우에는 나체는 솔직함과 천진난만함을 표현하며, 영웅의 경우에는 용기와 강함, 인내를 표현하며 마지막으로 운동선수의 경우에는 유연성과 자유 자재한 신체의 놀림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조각이 색채를 거부하는 것도 이런 실체적 일반성과 관련된다. 회화에서 색채는 색채의 마법을 통해 주관적으로 특수한 정신의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다. 색채는 슬픔과 기쁨, 고통과 열정 등을 외부적 자극에 의해 변동하는 정신의 움직임을 표현한다.

조각의 경우 표현되는 일반적 정신은 고요하며 명랑하며 자족하다. 조각에서 만일 색채를 가미하게 된다면 일반적 정신의 고요와 자족을 해치면서 특수한 주관적 정신이 개입하게 된다. 그러므로 조각은 색채를 지운 순수한 색 즉 흰색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1] 미학강의에서 헤겔은 그리스 조각상의 얼굴 모습을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코와 귀를 잇는 선과 이마와 코를 잇는 선이 직각으로 교차해야 하며, 이마에서 턱밑으로 이어지는 선은 두개골 천정과 직각으로 교차해야 한다. 등등.

[2] 미학강의 2, 411쪽

[3] 미학강의 2, 411쪽

[4] 미학강의 2, 3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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