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34-고딕 건축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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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미학산책34-고딕 건축

 

1)

낭만주의 예술 형식 시대에 건축 역시 낭만적 건축으로 변화된다. 낭만적 건축 가운데 특히 헤겔이 주목하고 그가 다룬 주요 내용은 고딕 성당에 관한 것이다.

이 시대 아라비아 건축은 제쳐놓는다고 하더라도 중세 말에는 고딕을 대체하여 르네상스식, 바로크 식, 로코코 식 건축이 출현했으며, 헤겔 당시에는 신고전주의가 대두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헤겔은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함이 없이 건축 장의 마지막 3절인 낭만 건축 절을 마치고 만다. 그만큼 고딕 건축에 대한 헤겔의 관심이 압도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한다.

고딕 건축에 대한 헤겔은 지극한 관심은 괴테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미학강의에서 고딕건축이 괴테의 연구 때문에 다시 인정받게 되었다고 말한다[1]. 괴테는 균형과 조화를 강조하는 신고전주의를 비판적으로 보면서 일견 추악한 외면적 형태 때문에 비난 받던 고딕 건축을 찬미했다. 괴테는 1772년 <독일 건축술에 관해>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딕 건축은] “영원한 자연의 작품처럼 … 형태를 이루고 모든 것이 전체를 지향하면서 수많은 작은 부분들로 살아나는 거대하고 조화로운 덩어리”이다.[2]

 

괴테의 평가는 언뜻 생각하면 조화와 균형이라는 고전적 아름다움을 고딕 건축에서 다시 발견했다는 말로 들리는데, 이 평가는 고전적 조화와 균형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여기서 괴테가 강조한 것은 “전체를 지향하면서 수많은 부분들로 살아나는 것”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 그것은 지극한 다양성과 동시에 지극한 통일성 즉 수많은 작은 부분과 전체, 다시 말하자면 서로 모순적인 것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헤겔이 말하는 낭만주의 예술 형식의 원리 또한 동일하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낭만주의 예술 형식은 정신이 개별성이라는 가상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고전적 이상화와 구별되는 개별적인 다양성이 강조된다. 그럼에도 이 개별적 다양성은 가상에 불과하니 스스로 자기를 부정하면서 정신적 통일성으로 복귀한다. 여기서 개별적 다양성과 정신적 통일성 사이에 대립의 통일이 출현하니, 이런 관계를 헤겔은 고딕 건축에서 괴테 덕분에 다시 발견하였던 것이다. 아래 헤겔 자신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비로소 최고의 특수화, 분화 그리고 다양성이 고도의 유희 공간을 얻는데, 그렇다고 총체성이 단순한 특수성이나 우연적 개별성으로 분열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예술의 위대성은 여기서 이러한 갈라짐과 분열됨을 철저히 예의 단순성으로 다시 돌려 놓는다.”[3]

 

괴테와 함께 헤겔은 고딕 건축의 어떤 측면을 돌아보면서 이와 같은 평가를 내렸는지 이제 살펴보기로 하자.

 

2)

고딕 성당은 단순한 신전이 아니다. 그것은 곧 교회이다. 신전이 신이 현전하는 공간이라면 성당은 성령이 현전하는 공간이다.

성령은 추상적 신과 개별화된 그리스도의 합일을 통해 나온다. 성령은 개인과 개인의 사이에서 불의 혀처럼[4] 펼쳐지는 것이다. 이 성령에 기초하여 교회[Gemeinde]가 이루어진다. 교회는 하나의 공동체이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교회 공동체이며, 그들을 통일하는 정신[Geist]이 곧 성령[Geist]이다[5]. 성당이란 교회란 현전하는 터전이다.

그러므로 성당은 단순히 신을 경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삶의 모든 측면을 포괄하는 건물이다. 실제로 성당 속에서는 다양한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한쪽에서는 기도를 드리며 다른 쪽에서는 장례를 치르며 또 다른 쪽에서는 제의가 행해진다. 그런 다양한 일들은 다시 신에 대한 경배라는 하나의 목적을 통해 통일된다.

헤겔은 성당에 두 측면이 있다고 한다. 한편으로 “다양성이 고도의 유희 공간을 얻는다”. 다른 한편으로 성당 내부 공간의 “장엄함과 숭고한 고요” 속에서 개인은 “무한한 내면 자체로 고양된다.” 성당은 “이러한 갈라짐과 분열됨을 철저히 예의 단순성으로 다시 돌려 놓는다.”

헤겔은 이런 점에서 성당은 개신교의 교회와 다르다고 한다. 개신교 교회는 오직 기도만이 일어날 뿐인 단순한 공간이다. 그러므로 개신교 교회는 “신도석만 제외하면 마구간처럼 아무것도 없는 상장 같은 형태”라고 말한다.

반면 성당 속에서 그 어떤 개별적 활동도 ‟전체를 채우지 못하며” ‟점들처럼 분산되며 일순간의 활동은 그 스침 속에서만 보일 뿐이니”, 따라서 성당은 ‟거대하고 무한한 공간들의 견고하고 한결같은 형식과 구조를 지니며” “일체의 특정 목적을 초월하여” “자립적으로 현존한다.” 여기에서는 “합목적성이 아무리 현존하더라도 그럼에도 그것은 다시 사라지고 전체에는 자립적 실존의 모습이 남는다.”[6]

형식적으로 본다면 성당의 목적인 교회 공동체는 성당이란 내적 공간에 대해 외적으로 관계하며, 성당은 이런 목적에 대해 가장 합목적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당의 그 무한한 공간 속에는 이미 그 모든 교회 공동체적 활동이 잠재적으로 열려 있으니 이미 교회라는 목적이 성당에 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성당은 외적인 목적을 갖는 건축으로서 의미를 벗어나서, 스스로 독자적으로 실존하는 조각으로 발전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헤겔은 성당의 자립적 실존을 강조한 것이다.

 

3)

고딕 성당에서 내적 공간은 자신의 봉사하는 목적을 자기 내에 가지는데, 내부 공간이 다양한 활동을 통일하는 가능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외적 형태 역시 이에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 때문에 외부 형태는 고유한 독자적 형태를 가지게 된다.

헤겔은 고딕 성당의 외적 형태를 서술하면서 그 대표적 특징이 곧 첨두 아치[리브 볼트]에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첨두 아치는 한편으로 기둥이면서 그 수많은 갈래는 서로 만나 궁륭을 이룬다. 이 궁륭은 마침내 중앙의 궁륭에서 첨탑으로 올라간다. 다른 한편으로 첨두 아치는 기둥이면서 동시에 벽이 되니, 아치가 천장까지 이어지면서 하나의 완전한 원구를 이룬다. .

 

[고딕 성당은] “궁륭을 이루는 숲, 즉 늘어선 나무 가지들이 서로에게 기울어 하나로 모이는 숲”[7]과 같다.

헤겔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스트라스부르크 대성당

그 결과 고딕 성당은 한편으로는 벽으로 에워쌈을 원리로 하는 고대 건축과 다른 한편으로 기둥으로 되어 지탱을 원리로 삼으며 고전 건축의 종합이라고 말한다. 고딕 성당은 양자의 종합을 통해 새로운 형태를 보여준다. 우선 고딕 성당은 고전 건축에서 출현한 지탱의 원리를 더 발전시켜, 천상으로 자유롭게 상승하는 치솟음으로 나아간다. 다른 한편 그것은 고대 건축에서 출현한 에워쌈을 더 발전시킨다. 고딕 성당에서 만들어지는 폐쇄적 공간은 원환을 이루어 무한한 내면성의 공간이 된다.

 

“그리스 사원의 명랑한 개방성과 달리 한편으로는 외적 자연과 세속적 일반으로부터 떨어져 내면으로 집중하는 고유한 심정의 인상을 다른 한편으로는 오성적으로 제한된 것을 넘어가려 치솟는 엄숙한 숭고함의 인상을 산출해야 한다.”[8]

 

그것은 한편으로 ‟세속 일반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내면으로 집중하면서 심정의 고요함이라는 인상을 산출하며 다른 한편으로 지성적으로 제한된 것을 넘어가려 치솟는 엄숙한 숭고함의 인상을 산출한다.”[9]

 

닫혀있으면서 안으로 열려 있고 지탱하면서도 초월하는 첨두 아치의 기본 형식은 곧 낭만주의의 대립하는 것의 상호 통일이라는 원리를 가장 전형적으로 표현한다.

 

4)

고딕 성당은 외적인 형태를 통해 다양한 낭만적 원리를 보여준다. 낭만적 원리는 곧 무한한 주관성의 원리, 정신의 자기 내 복귀의 원리인데 “내적인 것은 외적인 것 속에 반영하고 또한 그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자기 자신으로 되돌려야 한다”[10].

대표적인 원리는 평면의 분할이다. 성당 내부의 공간은 다양하게 분할되어 있다. 남북과 좌우가 구분되며, 측랑 가운데 신랑이 있으며, 앱스와 네이브, 격실, 지하 교회, 합창석 등 다양한 공간이 분할되어 있다. 그런 가운데 각 개별 공간은 좌우와 남북이 만나는 중앙의 거대한 공간에서 만나게 된다.

 

“종교적 예배가 각인의 심정과 삶의 관계들이 갖는 형형색색의 독특함을 관류하여 가슴 속에서 보편적이며 확고한 표상들을 흔들림이 없이 심어주듯이, 단순한 건축학적 기본 전형들 역시 극히 다양한 격실, 격벽, 치장들을 언제나 앞의 주 윤곽선들 속으로 다시 흡수하여, 이 선들과 대비할 때 가뭇없도록 만들어야 한다.”[11]

 

서로 대립적인 다양성과 통일의 상호관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첨두 아치의 각 기둥을 이루는 것도 수많은 작은 돌로 나누어져 있으면서 하나로 합일하고,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기둥 자체가 서로 교차하면서 다시 통일된다.

 

“[낭만] 건축은 …지극한 내면성 자체를 가능한 한 가시화한다. 그러한 질료의 경우에는 덩어리 자재의 질료성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것을 전면적으로 깨고 조각내어 거기에서 그 직접적 응집력과 독립성의 가상을 빼앗아야만 비로소 표현이 가능해 진다. ..이토록 거대하고 무거운 돌덩어리를 견고하게 맞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쾌하고 장식적인 전형을 이토록 완전하게 보존한 건축은 없었다.”[12]

 

다양성의 통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형상이 곧 현관 바로 위에 있는 장미창이라 하겠다. 이 장미창은 원들로 이루어진 원이며 다름 아닌 낭만주의의 원리인 내적 무한성을 상징한다.

 

5)

이처럼 고딕 성당의 모습은 내적 공간뿐만 아니라 외적 형태에서 이미 낭만성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고딕 성당은 그 의미조차 다양성의 통일이니, 고딕성당은 전면적으로 낭만적 원리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물론 내적 공간은 잠재적으로만 의미를 내포할 뿐 여전히 그 의미에 대해 외적 합목적적으로 관계하니, 상징적 건축은 틀림없다. 하지만 외적 형태와 내적 공간, 그리고 그 의미는 모두 낭만성의 원리를 따르고 있으니 서로 공명하는 듯하다.


[1] 이 부분은 미학강의 2, 353쪽인데, 낭만 건축에 대해 서술에 들어가는 도입부이다.

[2] 괴테, 독일 건축술에 관해, Goethes Werke Bd. 12, C. H Beck, 1982, S. 7 서정혁. 헤겔의 미학과 예술론, 소명출판, 2023, 35 쪽에서 재인용.

[3] 미학강의 2, 354쪽

[4] 사도행전 22장 3절: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5] 독일어 Geist는 정신을 의미하는 동시에 성령을 의미한다. 헤겔은 그러므로 성령을 거꾸로 정신으로 즉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정신으로 규정한다. 복음이 사랑을 선포하는 이유는 성령의 정신이 공동체 정신이고 그런 공동체 정신의 출발점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6] 이상 인용문은 모두 미학 강의 2, 354쪽을 참조하라.

[7] 미학강의 2, 359쪽

[8] 미학강의 2, 355쪽

[9] 미학강의 2, 365쪽

[10] 미학강의 2, 369쪽

[11] 미학강의 2, 368쪽

[12] 미학강의 2, 3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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