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미학산책31-예술 장르와 예술의 형식의 관계[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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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미학산책31-예술 장르와 예술의 형식의 관계

 

1) 예술 장르와 예술 형식

예술의 각 장르가 이처럼 정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감각적 질료(질료의 속성, 예술가의 솜씨, 현실 재창조의 기법)와 연관해서 구분되므로, 헤겔 미학강의 3부에서 다루어지는 장르를 규정하는 원리는 앞의 2부에서 다루어진 예술 형식을 규정하는 감각적 형상과 상관 관계를 지닌다.

형상과 질료, 즉 예술 형식과 예술 장르 사이의 관계에 관해, 우선 헤겔은 각 예술 형식은 자기에게 적합한 예술 장르를 지닌다고 말한다. 상징주의 예술은 건축을 통해 주로 자기를 표현한다. 고전주의 예술은 조각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출현하며, 낭만주의 예술 형식은 시문학과 같이 관념적 질료를 사용하는 예술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이런 상관 관계에도 불구하고, 형식과 장르는 독자성인 총체성을 지닌다. 각 시대의 예술 형식은 다른 모든 장르를 통해서도 표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전주의 시대에도 고전적 건축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고전적인 음악과 미술, 시문학이 등장한다. 그것은 낭만주의 시대에 독자적인 건축과 미술, 음악, 시문학이 등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각 장르 역시 다양한 예술 형식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건축은 상징적 예술 형식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더라도 고전적 건축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런 고전적 건축은 고전적 예술 형식에 가장 적합한 형식인 조각에 비해서 본다면, 아무래도 뒤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건축이 고전적 예술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측면은 낭만적 건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다. 예술 장르 역시 예술 형식과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총체성을 지닌다.   

 

2)

예술 형식과 예술 장르의 관계는 헤겔이 설명하는 형태와 계기의 관계와 유사하다. 헤겔은 <정신현상학>이나 <법철학> 등 곳곳에서 형태와 계기의 관계에 대해 서술했는데, 형태는 계기의 체계적인 관계로 이루어진다. 계기는 전체적 형태를 이루는 논리적 계기에 해당하며, 총체적인 형태 가운데 역사적으로 어떤 한 계기가 전체를 지배하면서, 그 시대 형태를 고유하게 만든다.

형태와 계기의 관계를 법철학에서 설명하는 대로 소개하자면, 가족과 사회, 국가는 형태의 발전과정을 이룬다. 국가를 이루는 계기는 법과 도덕이고 국가는 양자의 결합체로서 구성된다. 가족과 사회도 마찬가지로 두 계기의 결합체이지만 가족[국가] 즉 그리스적 인륜적 국가에서는 도덕의 계기가 지배하고, 사회[국가] 즉 법적 상태[로마 황제 시대]에서는 법의 계기가 지배한다.

헤겔의 형태와 계기의 관계는 예술에서 예술 형식과 장르 사이의 관계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예술 형식은 형태에 해당하고 장르는 계기에 해당한다. 양자의 관계를 이해하기 쉽게 도식화하자면 다음과 같은 도식이 만들어질 것이다.

(위의 도식에서 예술 형식은 역사적으로 발전하며, 장르는 예술을 이루는 계기가 된다. 수평선은 각 장르의 역사적 발전을 다루고 수직선은 각 예술 형식의 구성 계기를 다룬다. 단순화를 위해 각 예술 형식의 구성 계기와 각 장르의 발전 계기는 일부만 표현했다)

 

3)

헤겔은 예술의 주요 장르를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그것은 곧 건축과 조각, 음악과 미술, 마지막으로 시문학이다. 시문학은 다시 서사시, 서정시, 극시로 구분된다. 이 다섯 가지는 정신이 출현하는 계기에 따라 필연적으로 출현한 것이지만, 헤겔은 이런 다섯 가지 예술 장르 사이에 일종의 종간 예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런 종간 예술은 일정한 장르가 해체되는 시기에 주로 출현한다. 예를 들어 건축이 해체되면서 등장하는 정원술이나, 조각이 해체되면서 등장하는 채색조각, 회화와 시문학이 어우러진 서화와 같은 것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또 음악이 문학과 결합하면서 전개된 오페라도 여기에 속한다.

이런 종간 장르에 대해 일부의 예술이론가는 천재적 작품으로 찬양하지만 헤겔은 이를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예술적 정신의 개념에 기초한 차이를 혼란스럽게 함으로써 오히려 예술의 본질적 표현능력을 저하시키는 경향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중간 계술의 문제는 자연에서 등장하는 종간 잡종 예를 들어 양서류라든가 오리너구리와 같은 예에서와 마찬가지다. 종간 잡종은  ‟자연의 탁월성과 자유를 공표하기는커녕 사태 자체에 정초된 본질적 차별성을 견지하지 못하며 이런 본질적 차별성을 외적 조건이나 영향에 의해 위축하게 만드는 자연의 무기력만을 공표한다”[1]고 본다.

헤겔이 종간 예술을 무시하는 것과 무관하게 우리로서는 헤겔이 제시한 종간 예술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것을 통해 현대에 등장하는 다양한 예술 장르에 대한 장르론적 분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흔히 종합 예술로 간주되는 영화와 같은 예술 장르를 그런 종간 예술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낭만주의 예술이 지닌 경향으로서 리얼리즘적 경향이 영화에 이르러 완전하게 출현했다고 할 수 있을까? 고민스러운 문제다.   


[1] 미학강의 2,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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