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베를린에서 바쳐진 애도의 물결. [베를린에서 온 편지]-2
Memento mori. 베를린에서 바쳐진 애도의 물결. [베를린에서 온 편지]-2
한상원(한철연회원/베를린 통신원)
*베를린에서 유학 중인 한상원 회원이 인문학 동향이나 정치 소식을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활짝 핀 나무조차 사람들이 그 만개 밑에 가려진 공포의 그늘을 인지하지 않는 순간 거짓말을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순진무구한 표현도 아름답지 못한 존재자를 치욕스럽게 하는 구실이 된다. 아름다움이나 위로란 더 이상 없으며, 있다면 그것은 오직 다음의 시선, 즉 공포를 직시하고 감내하며 ‘부정성’에 대한 단호한 의식 속에서도 더 나은 상태에 대한 가능성은 놓치지 않으려는 시선이다.” (아도르노, <미니마 모랄리아>)
5월 3일. 화창한 날씨였다.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베를린 최대 관광지인 브란덴부르크문(Brandenburger Tor)에서 따스한 햇살을 쐬며 맥주에 쿠리부어스트(베를린의 명물 간식)을 즐기던,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온하고 행복한 토요일 오후였다. 이곳 한복판에 느닷없이 검은 상복을 입은 한국인 약 2백여 명이 나타났다. 슬픔을 머금은 표정을 하고, 다시는 이 푸르른 하늘을 두 눈으로 볼 수 없을 가여운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수백 명의 생명, 그것도 대다수가 고등학생들인 이들이 차디찬 바닷물 속에서 숨을 거두도록 방치한 이 무능하고 부패한 사회에 침묵으로 항거하기 위해.
이날 거행된 베를린 시민분향소에 참여한 참석자들의 표정은 침통했다. 이 맑은 날씨를 원망이라도 하듯.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2백여 명의 조문객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어린 생명의 죽음에 부채감을 느끼는 어른들은 이제 자신들의 삶마저 원망스러워할 지경이다. 누가 이런 끔찍한 비극을 초래했는가? 부패한 정부, 조작과 기만이 일상이 된 사회는 인명구조에 무능하다. 지독히도 슬프고 비극적인 결론이다. 참석자들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우선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최소화하고, 희생된 이들의 영혼에 깊은 위로를 전달하고자 했다.
사전행사로 기획된 단체 묵념, 바이올린 협주와 성악 공연, 독어로 번역된 유가족 어머니의 편지 낭독을 마친 뒤, 2백여 명의 조문객들이 각자 마련해온 흰 꽃을 헌화하면서 분향예절을 거행했다. 모두의 가슴엔 노란 리본이 달려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독일인들을 비롯한 외국인들 상당수도 함께 헌화를 하고 망자의 영혼을 위로했다. 이들 역시 언론을 통해 한국 정부의 무능함이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낳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한국의 현실에 대해 언론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 나라는 어찌 보면 한국이 유일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공영방송과 대형일간지들이 정부의 공식발표만을 옮겨적는 동안,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 일간지들은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한국정부의 무능함에 대해 신랄하게 꾸짖고 있었다. 비록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를지언정, 우리를 지켜보던 수많은 외국인들의 연대의 정서는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에서 온 루크라는 젊은이가 전통 파이프연주를 통해 “Amazing grace”를 연주했을 때, 우리는 국경을 초월해 이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헌화를 하고 분향을 한 뒤, 망자에 대한 예의로 절을 하고 나서 한참을 몸을 일으키지 못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고개를 바닥으로 숙이고 절을 하던 사람들은 어째서 몸을 일으킬 힘을 잃어버린 것인가. 어째서 우리는 어린 생명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의식에 통탄할 만큼 비참함을 느껴야 하는가.
침몰하는 배는 벤야민이 말한 바 있는 “변증법적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즉 그것은 단지 하나의 우발적인 사건으로서 우리에게 지각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처한 절망과 위기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와 분노가 “집단 무의식”의 형태로 투영된 하나의 이미지였다. 사건 초기, 180도 뒤집혀 파란 선수만을 수위에 남겨놓은 채 침몰해버린 배의 이미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서 있는 공간이 땅 속으로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은 현기증을 일으켰다. 그것은 세월호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침몰해간다는 위기의식이었다. 조타수를 쥔 사람들은 승객들에게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한 뒤 그들 자신이 가장 먼저 구조되었다. 선장에게 버림받은 채 차디찬 바다 속에 가라앉아 희생되어야 했던 생명들은, 마치 경제위기 시 사측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가장 먼저 잘려나가야 하는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에 대한 알레고리였다. 버림받은 어린 생명들이 희생되어야 했듯이, 이 사회는 언제나 강자의 생명을 보장해주기 위해 약자가 희생되어야 하는 구조와 논리를 지니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일체의 희망도 없는 지금의 ‘버림받은 세대’는, 죽어야 했던 어린 생명들과 자신들을 일체화했다. 그들은 슬퍼했고, 절망했으며, 이 절망이 분노로 바뀌는 순간에, 그들은 ‘침묵행진’이라는 방식으로 이 모든 것을 낳은 한국 사회에 항거했다. 아무런 말 없이, 그러나 깊은 울림을 안고.
?정부에 항의하는, 안산 단원고 학부모들인 유가족들을 보수층이 증오하는 것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사회 질서를 그 자체로 절대적인 것으로 떠받드는 자신들의 논리상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식을 잃고 절규하며 “내 아이를 살려내라”고 외치는 부모들이 “종북”이라며, 그들에게 “시체장사”라는 표현을 붙인다. 그들이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 한국의 사회 시스템에 자신들의 불만을 제기하는 모든 세력은 ‘종북’이다. 심지어 그것이 살 수 있었던 생명이 이 정권의 무능함으로 인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왔을 때, 차디찬 주검을 마지막으로 안아본 뒤 장례를 치러야 하는 부모들이라 할지라도. 한국 보수세력과 현정권은 인간의 존엄을 짓밟아버렸다.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자들의 처절한 외침마저 그들에겐 “종북”의 논리가 된다. 그런데 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가만히 있으라”는 메세지에 더 이상 순응하지 않는, 그들의 말대로 가만히 있으면 우리 모두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우친, 각성한 새로운 세대의 “버림받은” 청년들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침묵행진을 벌이려던 청년들과 시민들을 경찰병력을 동원해 감금해버렸다. 마치 “청와대로 가자”고 외치던 실종자 가족들을 경찰력으로 저지했듯이.
만약 칼 슈미트적 의미에서의, 주권자에 의해 선포된 예외상태가 아니라 아감벤적인, “벌거벗은 생명(호모사케르)”에 의해 개시된 예외상태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지금일 것이다. 죽어간 생명의 넋은 지금, 연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누가, 이 억울한 죽음에 항거할 것인가? 바다 속에 수장된 ‘벌거벗은 생명’을 위해 눈물짓는 자들은,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고문받는 자가 비명지를 권리를 갖듯이, 영원한 고통은 표현될 권리를 갖는다.” (아도르노, <부정변증법>)
고통의 표현욕구가 실천적 충동을 낳고, 이는 총체적 지배 하에서도 윤리와 정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는 것이 아도르노 철학의 한 축이다. 고통(Leiden)은 실천적 열정(Leidenschaft)의 근거가 된다. 세월호 이후 윤리와 정치, 즉 ‘실천’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미메시스적 충동이 분노의 파토스로 이어질 때일 것이다. 이 분노의 파토스(부정성)를 변화의 긍정적 힘으로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정치’의 과제다.
침몰한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한국사회가 침몰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조타수를 잡은 세력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겨도 좋은 것인가?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한 뒤에, 그들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먼저 배를 빠져나갈 사람들에게 우리의 생명을 맡겨도 좋은 것인가? 푸른 하늘과 만개한 푸르른 나뭇잎의 싱그러움마저도 삶의 약동이 아니라 집단적인 죽음에 대한 죄의식으로서 우리를 짓누르는 이 순간에, 베를린의 야속한 푸른 하늘은 우리에게 준엄하게 묻고 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무덤이 우리에게 말하듯, “죽은 자는 우리를 깨우친다.” 이 벌거벗은 생명이 불러일으킨 “예외상태” 속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 주권권력의 공백상태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