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프롤레타리아트[노동이야기]-⑨

가을 프롤레타리아트[노동이야기]-⑨

이 재 원(한철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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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하러 오가는 길

H인력으로 가는 새벽길은 이 도시의 번화가를 거쳐 간다. 우선 밤을 새워 일하는 커피 전문점 종업원들을 본다. 몇 걸음 더 걸으면 젊은이들이 모이는 나이트클럽이 있다. 토, 일요일은 새벽까지 클럽 앞에서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한 눈에 보아도 알 수 있는, 남녀들이 만들어내는 각양의 그림들을 목격한다. 큰 길을 건너면 뒷길 형을 한 번화가이다. 여기에서도 술 취한 젊은이들의 각양의 행태를 본다. 편의점 데크마다 남녀들이 엉켜 쓰러져 잠들어있다. 시청의 젊은 청소원의 작업과 폐지 줍는 정신지체 부부의 작업이 겹치기도 한다.

퇴근길에도 이들 부부를 만난다. 각양의 폐지더미와 함께 길목 한켠에 앉아, 스피커와 같은 고물들에서 쇠붙이와 나무를 분리하는 작업도 한다.

나는 이들의 작업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은 충동을 참는다. 차마 핸ㅡ폰을 들이댈 수 없다.

십 수 년 전, 광부를 그리는 떠돌이 화가, 나중에는 천주교 공소의 주임이 되어 그림을 그리던 화가의 말을 들은 적 있다.

“갱도를 올라온 광부들이 한숨을 푹 쉰다. 차마 그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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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데마찌-J의 절망

평택 항 현장은 며칠째 최소 인원만 일하러 간다. 어느덧 구조물 마무리 공사 시기라서 H인력 일감이 뚝 떨어졌다. 비도 자주 오가는 통에 더욱 일 할 날들이 드물어졌다. 반장들은 평소 일하던 이들 중 성실한 사람 몇 명만 데리고 갔다. 나는 나대로, J는 J대로 일을 한 참 안했다. 전화로 ‘오늘은 일 나가자’고 합의했으나, 우리는 오늘도 일거리를 찾지 못했다.

평택 항에 일 나가던 이들 중 간택되지 못한 윤씨, 정씨, J와 나는 둘러서서 잡담을 나누었다. 정씨와 J는 경마장에서 만나 밥도 먹고 마권을 사기도 했단다. 그 둘은 지금 수중에 한 푼도 없다. 기적 같은 이는 윤 씨이다. 그는 여름에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현장에서 보는 윤 씨는 시체와도 같았다. 햇빛에 그을은 얼굴은 핏기 하나 없고 눈은 초점 없는 생선의 그것 같았다. 금방 쓰러질 것 같이 보였다. 왜 그리 열심히 일하느냐고 묻자 “손자 키우려고”, 또는 “무조건 일 나오는 거야”라고 했다.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 관절은 어떠냐고 물으면, “아픈 데는 없어, 아직까지는”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체력을 타고 태어났다. 오래 된 3층짜리 작은 상가가 그의 소유이다-노동하여 건물주가 되다니, 대단하다.

뒤늦게 윤 씨만 팔려나가고, 나머지는 돌아가야 한다. J가 “소주 한 잔 사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한 참을 걸어 은행 근처 편의점 파라솔에 자리 잡았다. 나는 컵 라면을, J는 ‘휴식시간’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셨다. J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번에는 들어주기 곤란할 정도의 이야기를 했다.

?이재원

“형님이 양주 사주던 날까지 경마에서 꼴아 박은 돈 생각하면 참 후회막급이네. 방세라도 줄 걸…”

보름 전 일이다. 그는 모아둔 돈을 가지고 경마장에 갔다. 돈이 바닥났다. ‘성질났다’. 집에까지 걸어와서는 신용카드 빛을 내어 다시 경마장으로 갔다. 그리고는 다 쏟아 부었다. 그날 저녁, J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 술을 사주며 나는, “인간이 귀신을 어찌 이기겠나. 할 수 없지”라고 했다. 내가 귀신을 믿어서가 아니다. <정념>인 즉 ‘한 대상에 대한 정신활동의 집중화’, 고착화(Katexis)라는 것이 신적인 힘들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처럼 여겨진다는 뜻이었다.

그토록 허망하게 돈을 낭비한 후에 일하기 싫은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경마에 집착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그의 비극적인 가정사가 있고, 학력과 관계없는 무학에 가까운 난독증도 있다. 즉, 그는 지식과 경제, 양자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인 셈이다. 그에게 듣는 가장 행복한 날들은 할머니가 생선을 구워, 그것을 뜯어 그의 밥 수저 위에 올려주던 어린 시절이었다.

최소한의 윤리도 걷어치우고 도박을 조장하는 경제정책의 뒤켠에 사람들의 희망 없음이 있다. 정선 카지노 동네 호텔에 묵는 사람들은 한밤중에 천정에서 커다란 손이 나와 휘젓는 통에 기절초풍한다는 이야기부터 중고 좋은 차를 샀는데 사고 났다는 <카더라>까지, 도박의 결과 목숨까지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보도가 흔하지 않은가. 십 수 년 전 사설 경마장 설립에 50억 들어야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는 도박 자체가 (범상하지 않은) 자본의 산물이라는 증거요, 또 몇 천 만원 배팅한다는 강남 애마부인 이야기들과는 다른, 사행성 폭력 자본에 절망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위협을 무릅쓰고 돈 안되는 투자를 하는 자본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J는 오늘 방세를 내야 한다. 그러나 돈이 없다. 그가 말했다.

“아무래도, 일해서 (품삯을 받으면) 찜질방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지난번 방세 밀렸을 때 주인이 심하게 뭐라 하더라구.”

당연히 방 얻어 사는 것이 찜질방에 있는 것보다 좋다. 우선 마음대로 식사를 해 먹을 수 있다. 잠도 편히 잘 수 있다. 그는 겨울을 대비해 난방용 유류도 한 드럼 사 놓았다. 찜질방에 들어간다면 겨울나기를 준비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도 유류나 식량을 산다는 등의 계획을 세워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나는 간신히 한마디 했다.

“H인력에 나오는 그 잡부, 찜질방에서 90일 살았대. 내가 90일 동안 며칠 일했느냐 물었더니 15일 일을 했대. 찜질방에서 잠을 잘 못자기 때문에, 일하기 힘들어. 일하면 방세부터 줘. 일부분이라도…”

J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얼마나 더 고생을 해야 하나? 이렇게 살다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냥 살아야지 뭐, 혹시라도 반장이 된다면 형편이 나아지겠지. 반장이 되면 여자도 생기겠지, 생활이 안정될 테니까.”

K팀장은 자기 쓰고 저축하는 돈을 제외하고, 한 달에 5백 만원을 부인에게 준다. 하루도 일을 빠지지 않는, 18년간 군 생활을 한 김 노인은 한 달에 연금 3백만 원 받는다. 당연히 그는 개인주택을 지닌 부자이다.

J가 팀장이 될 수 있을른지는 의문스럽다. 술과 경마가 그를 방해하며, 난독증이 건축도면 읽는 것을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일용 노동자로 산다는 것 자체가 계획을 세워 사는 일이 어렵다. 나 역시 어떤 사람의 삶을 서사화하려는 작업을 시작했으나, 들쑥날쑥한 경제 형편으로 작업을 완성하지 못한 채로 있다. 자료들 프린트 자체가 않좋기도 하지만, 독서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소주 한 병을 다 마신 J가 말했다.

“소주 한 병 더 사주고 형님은 가세요. 나는 더 앉아 있다가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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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따

평택 항 현장은 3층 사무동과 2층 지휘 동을 짓고 있다. 공사는 더디다. 날씨는 35도를 향한다. 망치질 몇 번 하면 숨이 헐떡거린다.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어느 순간 쓰러질지 모른다. 쓰러지면 심장이 멈추고 뇌사한다.

?이재원

천정을 슬래브로 가리지 않는 오픈구를 되나우시, 부적합 시공 고치는 작업했다. 유독 내가 이 일을 주도하는 L에게 간택되었다. 힘도 좋고 일도 잘 하는 L은 <그 사람이 현장 일 다 한다>는 칭찬을 듣는다. L이 BT 아시바 위에서, 나는 밑에서 필요한 재료들을 올려주었다.

우선 기존 하리(보) 폼을 뜯어내어 아래로 내렸다. 그 다음 새롭게 치수를 맞추기 위해 작은 폼들을 올려 주면 L이 가와바리, 속고 위에 품을 붙였다. 그리고는 시다 오비끼(직사각형의 9센티미터 목재)를 하리통 위에 각목으로 임시로 이어붙인 다음, 시다 오비끼 아래에 삿보도를 세워 받쳤다. 다시 삿보도 위에 네다로 각재와 철봉을 깐 다음, 그 위에 합판을 깔아 슬래브 판을 완성하였다.

성격이 급한 것인지, 일을 빨리 하려는 욕심 때문인지, 내가 조금만 더디면 L은, “형님 이거이거…”라고 소리쳤다. 일반인들은 거리를 걷기에도 힘든 날씨이다. 한 숨 돌리면서 일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작업 중간에 땜빵작업을 한다. 하리통 빈 곳을 각재와 합판을 이용하여 이어 짜기 해야 한다. 나는 정신이 나가, 땜빵으로 짠 패널을 하리 통에 이어붙이며, 연결 불가능한 빈 곳에 헛못질까지 했다.

사람들은 모두 짜증스러워 했다. 인간이 천사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어떤 일이든 곤란하거나 잘 안 되는 일은 다른 사람의 핑계를 댄다. 재미있게 일해야만 일이 쉽고 능률이 오른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감정을 주체 못한다. 날씨 탓이 크다. 함께 일하면서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방에게 화를 낸다. 손 맞춰 일하는 이들의 감정 까지도 받아야주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현장에서 따를 당했다.

IMF 당시 어느 은행 지점장이 강제 해직 당했다. 가족들이 그를 노숙자들 속에서 찾아냈다. 그는 집 주소는 물론 자기 이름도 잊고 있었다. 모든 것이 노동과 연관된 우리의 삶에서 직업인 즉 자기의 아이덴티티이다. 해직당한 이는 종교적 파문과 같은 정신상태가 되는 것이었고, 자기 자신인 즉 이름을 잊어야만 살 수 있었던 셈이다.

따돌림을 당한다는 것은 이와 비슷하다. 따 인 즉 노동세계에서 밀려날 위기를 겪는 순간이요, 당하는 이는 현장에 계속 일하러 나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따는 예전에는 어느 현장에나 있었던 일이다. 그래서 목수들은 외톨이로 현장에 나가지 않았다.

J와 손 맞춰 일 할 때는 별 일 없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J가 잽싸게 말로, 또는 행동으로 보완해 주었다. 그러나 J가 일 안하는 동안, 갈수록 나와 다른 목수들의 실력 차이가 났다. 목수 현장을 몇 십 년 떠났던 내가 평생 목수만 해 온 사람들과 문제해결 능력이 같다면 그들 목수들을 무시하는 것이리라.

돼지띠 노인은 내게, ‘이 씨는 반생이 틀게 하지 마’라고 말했다. 또, ‘이 씨는 도리반생이 못 박지 마’라고 하기도 했다. 또 다른 사람은 나와 함께 일하다가, ‘당신 목수 얼마나 했어?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라고 말하기도 했다. 매일 하는 일들을 하지 말라니, 이는 왕따인 셈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도리반생이 못 박는 것, 반생이 트는 것을 재산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이 재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나에게 이런 저런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은 왕따 시키는 것이다. 정히 내가 작업하는 것이 불안하다면 정확히 알려주고 확인하면 될 일 아닌가?”라고 받아쳤다.

따를 시키는 사람, 갑은 따를 당하는 사람, 을에게 항상 은근한 경쟁심을 가지고 있다. 갑질 함으로써 현장에서 자신은 스스로 안심하는 심리가 있다. 내가 당하기 이전의 따 대상은 외국인 K였다.

별 생각이 다 났다. 나는 왜 이토록 힘들게 노동하는가? 좋은 노동세상을 꿈꾸기 위해서인가? 다시 학자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그러나 내가 다시 몇 년간 책 읽을 형편이 되는가?

견뎌야 했다. 따를 무시하고 내 할 일을 묵묵히 했다. 내가 일 안 나올 수도 없었다. 공기는 한정되어 있으나 날이 너무 더워서 사람들이 일을 하러 오지 않았다. 현장은 항상 사람들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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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희망의 사제들

가을이 다가오자 현장에는 활기가 넘쳤다. 여름에 한 달 걸릴 일을 온도가 낮아지자 15일 정도면 해치웠다. 현장들마다 마무리 공사로 들어갔다. 덩달아,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일거리가 줄어들었다. 정씨나 J, 그리고 나 같이 자주 일나오지 않던 이들이 가장 어려운 시기이다.

?이재원

그 와중에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일 할 생각 않나고 술 마시게 되는 사회적 사건들이 터졌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증거들은 왕따를 당하거나 고독보다 더 절망스러웠다. 4대강 비리를 볼 때와는 또 다른 절망감이었다. 소련 KGB와 자신들의 업무를 비교하는 국정원 직원의 대답(뉴스타파)을 들으며, 민주주의는 불가능할 것 같은 절망을 느끼기도 하였다. KGB가 고르바쵸프 당시 국가안전위원회를 꾸려 사실상의 쿠테타를 일으켰듯이, 관료들이 안전이라는 신념을 조직의 이득인 즉 사적 욕망 충족 수단으로 이용한다면 내란 구성과 똑같이 위험하다. 안전을 개인 욕망으로 만드는 순간 제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민족과 국가를 제1원리로 하는 파시즘의 안쪽에는 정치 경제 파시스트들의 자기보호 계기가 작동한다.

사람들에게 술도 사주고 통닭도 사주며 대화했다. 그러나 정치관련 대화는 안 하늬만도 못했다. 권력 언론들이 파쇼 자본주의를 고착화하기 위하여, ‘기차 바퀴는 박달나무로 만든다’고 떠들어 대면, 진상을 알아볼 생각도 안하거나 그저 맹목적으로 현 체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라 수용하고 재확대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희망>이 가장 위대한 것이라 했다. 간신히 해석하자면 ‘하느님의 나라는 정의로울 것이다’라는 희망만이 ‘하느님은 전능하다’라는 믿음보다 위대하다고 했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나이가 젊다고 청년이 아니요 백발이라서 노인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가진 사람만이 청년’이라고 했다.

경제도 민주화되는 세계에서만 사람들은 계획을 세워 삶을 살 정도가 될 것이다. 지금처럼 건설 방식이 도급과 하도급 형식이라면 업자들은 배부를 것이지만 일반 노동자의 풍요는 기대할 수 없다. 임금이 생존비에도 못 미친다는 증거가 배우자 없는 노동자들이다. 임금이 생존비 이상 올라간다면 노동자도 자식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경제정책과 임금 정책에서 노동자의 삶의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자본>에 따라서, 노동자의 노동력에 임금을 준다면, 실제 생산한 노동의 그 가치에 따라서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틀림없이 노동자가 살 만 한 세상이 될 것이다. 이런 정책은 오직 <정의로운 자본주의>에서만 가능하다. 구성원의 진정한 행복을 기획하는 사회가 욕망에 기초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