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인간?[노동이야기]- ⑦

Spread the love

일회용 인간?[노동이야기]- ⑦

이 재 원(한철연 회원)

?

?

1. 동정당하다

며칠째 이곳 J읍 인력에서 일을 얻고 있다. 몇 일 비가 온 후 날이 개었다. 오늘은 컨테이너 짐 하차, 일명 까대기 작업을 했다. 인력사무실에서 운동선수와 나, 둘이서 이 고추장 공장에 배치 받았다. 그는, “부지런히 까대고 일찍 집에 가자”고 했다. 공장에서는 오전에 일을 마치기를 요구한단다. 컨테이너 기사도 바삐 짐을 내려줘야만 다시 일하러 갈 수 있단다. 중국에서 제조해 컨테이너로 운송해 온 고추장, 20킬로 박스 한 컨테이너당 천 개씩 도합 2천개를 하차해야 한다.

박스를 파레트에 60개 씩 쌓아 올리면 지게차가 운반해 갔다. 운동선수는 숨도 안 쉬고 작업을 계속했다. 나도 보조를 맞춰나갔다. 그는, 자기는 지구력이 없어서 일찍 일을 못 마치면 지쳐 나가 떨어진다고 했다. 첫 번째 컨테이너를 비울 때까지 딱 한 번 쉬었다. 그것도 공장 직원(아줌마)이 커피를 갖다 주었을 때이다.

두 번째 컨테이너 작업을 할 때, 그가 갑자기 주저앉았다. 근육에 경련이 왔단다. 무심코 작업하는데, 나도 온 몸에 경련이 일었다. 나는 주저앉지는 않았다. 심장만 뛰면 계속 움직이리라, 생각하고 끝까지 달렸다.

오전 열 시 반, 마지막 박스를 파레트에 올리자, 지게차 기사가 창고 정리 좀 하고 가라 했다. 나는 단번에, 못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운동선수의 차에 앉아있었다. 지게차 기사가 와서, “이라와요, 잠깐만 (정리) 하면 돼”, 하고 나를 불렀다. 나는 지게차 기사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어른이 초등학생을 이용해 먹냐?”

창고에서 25킬로짜리 고추 마대를 운동선수와 둘이서 여덟 파레트 쌓아주었다. 이 정도 일 도와주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지게차 기사는 자기 할 일을 용역 노동자에게 떠 넘기는 것이니 이용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짜증을 낸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까대기하며 운동선수로부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는 성미가 무척 급해서, 박스를 반듯하게 쌓아 올리되, 딱 한 번에 파레트 위에 놓아야만 한다. 내가 박스를 바로잡기 위해 조금이라도 꼼지락 거리면 작업시간이 늦어질 뿐만 아니라, 자기까지도 보면 힘이 빠진다고 야단이었다.

동정질까지 당했다. 작업 도중 나이를 묻길래 솔직히 대답했더니, “와, 대단하시네요. 나는 그 나이에 아저씨처럼 힘 쓸 거 같지 않아요”하고는 태도를 바꿔 “천천히 하세요”라고 했다. 동정과 모욕은 백지 한 장 차이 아닌가.

이튿날도 까대기 작업에 배치 받았다. 이번에는 파트너가 바뀌었다. 회사원인 그는 야간작업이어서 일하러 왔다 한다. 내 나이를 듣고는 아예 나의 작업 속도에 보조를 맞추었다. 도리 없이 다시 동정당했다. 어제보다는 작업하기 덜 힘들었다.

?

?

2. 누가 이들의 편이 되어줄 것인가?

비 오기 4일 전, 그러니까 J 용역에 처음 온 날, 자동차 도색 공장에 일하러 갔다. 액티비티 카본, 활성탄을 교체하는 작업이다. 도색 과정에서 페인트 냄새를 잡아주는 것이 활성탄이다. 실내 작업장의 공기를 활성탄 박스를 거치도록 강제 송풍하면 페인트 냄새가 없어진다. 정수 과정에서 쓰이는 등, ‘활성탄’ 쓰임새로 보자면 친환경 느낌을 준다. 그러나 작업자들에게는 이것이 노역이다. 쓰리 엠 마스크를 쓰지만 소용없다. 방진복을 입지만, 미세 가루는 방진복을 뚫고 들어온다. 또한 건조한 활성탄 가루가 습기를 찾아, 눈의 진액과 만나면 눈 주위에 달라붙는다.

일곱 명이 한 조가 되어서, 24칸, 사용한 약 천개의 활성탄 자루를 꺼낸 후 높이 1.5미터, 길이 3미터, 폭 2 미터의 박스에 다시 담는다.

꺼낼 때, 두 조가 되어, 한 사람이 3층에 설치된 박스 안으로 들어가 활성탄 자루를 꺼내 주면 다른 사람이 이것을 받아 옮겨 지상 1층으로 던진다. 아래 사람들이 이것을 항공마대에 담아 지게차로 폐기장으로 옮긴다.

네 개의 큰 박스에 칸막이가 24개이다. 폐기할 활성탄 자루를 다 꺼낸 후에는 다시 칸막이에 새로운 것으로 다시 담는다.

크레인으로 활성탄이 담긴 항공마대를 들어올려 3층 난간에 살포시 내려놓는다. 그러나 크레인은 항공마대를 완전히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 3층 난간이 낡아서 중량에 못 이겨 무너져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장까지 달려들어 두 칸을 한꺼번에 작업한다. 한 칸에 각기 한 사람씩 두 칸에 들어가면 나머지 사람들은 항공마대로부터 탄 자루를 꺼내 손에 손으로 전달해 칸에 넣어준다. 항공마대에서 탄 자루를 꺼내 전달하는 반장은 빛의 속도이다. 크레인을 빨리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작업하는 곳은 그나마 수월했다. 그러나 크레인이 닿지 않는 칸이 있다. 엘리베이터로 2층까지 올린 다음 2층에서 3층까지는 계단을 통해 받아치기한다. 2층에 두 명이 계단으로 올리면 계단에 늘어선 세 명 사람들이 위로 전달 전달해서 맨 위 3층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한다. 우즈베키스탄 사람 A는 4-5킬로의 활성탄 자루를 공놀이하듯 한 손으로 빙글 돌려 올렸다. 나는 한 손으로는 들어 올려 전달하기 어려웠다. 두 손으로 받아, 머리 위로 치켜 올려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었다. 가슴은 터질 듯 뛰고, 숨은 턱 끝까지 닿았다. 이렇게 1000개를 올리고 나니, 새삼 체력 좋은 유전자를 남겨주신 조상에게 감사할 것 밖에는 없었다.

중국동포 형제 중 동생이 활성탄 박스로 들어가 새 것을 담는 중이었다. 형이 버럭했다. 빨리빨리 하라는 뜻이다. 덥고 먼지 많이 나는데 작업을 서둘러 끝내야 한다는 거다. 둘이 싸울 듯 했지만 그들은 형제이다. 열받은 동생이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작업했다. 더운 박스 속에서 답답했던 것이다. 나는 아찔했달까, 그가 걱정스러웠다. 활성탄이 호흡기를 통해 폐로 들어가면 인간의 장기는 그것을 해소해 내지 못한다. 그냥 폐에 붙어있게 된다.

그가 진폐증 진단을 받았다 하자.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회사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들, 이를테면 작업자를 채용하고 월급과 보험을 책임지느니, 외주를 줘서 이런 일들을 해치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작업자들이 임시직이었다지 않는가. 도장회사는 도급 주는 것으로 그들의 할 일을 다 한다. 그 와중에 용역 노동자들은 보호받을 길 없는 신세가 된다.

진폐 진단이 날지라도 동생 이 씨는 하소연할 곳이 어디에도 없다. 도장회사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그는 이 회사 직원이 아니요, 가끔(작년에도 한 번 왔었다) 와서 일했을 뿐이다.

회사는 D반장에게 도급을 주었다. 다시 말해서, 문제가 생기면 D반장이 책임지라는 뜻이다.

안전장구도 문제이다. 활성탄 같은 고농도 분진 작업시 특수 방진 마스크는 필수이다. 또한 김서리지 않는 고글을 작업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도급 맞은 반장이 한 번 쓰라고 비싼 장비를 사 줄 리 없다. 아주 형식적인 마스크, 청소할 때나 쓰는 M3를 제공했다.

회사는 큰 돈을 벌면서도 귀찮은 공사에 있어서는 어느 것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직영노동자를 고용한다면 4대 보험,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작업 시간은 지금 용역 노동자들이 하는 것 보다 두-세 배 늘어날 것이다.

물어야 한다. 자본주의적 방식이 오직 이윤 극대화만 중시해야 하는지, 법인 회사가 하도급 주고 그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 한 것인지. 용역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을 방치하는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인지.

이튿날은 비가 왔다. 나는 활성탄 다시 작업을 하러 가면 쓰려고 보안경을 샀다. 가서, 쓰고 버리는 인간들이 당하는 고통을 지켜보리라.

활성탄 작업이 끝났다. 다들 화장실로 들어가 얼굴을 씻었다. A가 세수한 나를 보고, “예뻐요, 예뻐요”라고 했다. 거울을 보았다. A가 빈 말을 한 것은 아닌 듯하다. 얼굴은 그런대로 탄가루가 씻어졌으나 속눈썹 부위는 탄가루가 붙어있었다. 쌍꺼풀인 늙은 내 눈 주위는 눈 화장한 할머니급 여인의 그것처럼 (예뻐) 보였다.

형제 중 동생이 내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형님, 어려우시죠?” 나는 그의 행동이 순수한 호의임을 알아차렸다. 이해상관 없는 호의는 정신병도 치료하지 않는가. 나는 편히 그에게 어깨를 맡겼다.

?

?

3. 배 농장 노동

까대기 이틀하고 무릎과 허리가 몹시 아파, 사흘 쉬었다. 다시 배 농장에 배치받아, 몇 일 간 지베레린 처리 작업을 했다. 배는 구슬만 했다. 배나무와 배를 연결하는 가느다란 꼭지에 지베레린을 발라 주면 배를 추석 때쯤 출하할 수 있다. 지베레린은 성장 촉진제이다. 이것을 칠하고 나서 적과 후 배에 봉지를 씌워주면 배가 크고 껍질은 얇되, 빛깔이 예쁘고 당도도 뛰어나다.

하여튼 좋아 보이는 것은 먹지 않는 것이 좋다. 가난한 밥상이 최고다.

지베레린은 차약과 비슷하게, 튜브에 담겨있다. 이것의 뚜껑을 열고, 그 위에 차솔 두 개를 겹친 것 같은 꼭지를 설치한다. 꼭지에 지베레린을 새어나오도록 한 후, 배 꼭지에 밀어넣으면 목적하는 위치에 약품이 발라진다.

작업은 쉬웠으나 조심할 것이 많았다. 지베레린이 배에 닿으면 배가 썩는다. 닿지 않도록 조심하되, 칠하지 않은 채 지나쳐서도 안 된다. 특히 배 잎사귀에 가려져 있는 것들을 빼 놓기 쉽다. 이것을 조심해야 한다.

여덟 사람이 일하러 갔다. 두 사람은 특별했다. 한 사람은 중국동포 여성으로, 제빵사이다. 다른 한 사람은 함께 까대기 한 회사원이다. 두 사람은 오늘 휴일이라서 일하러 왔다고 했다.

배 농장 부부는 사람들이 좋았다. 이 농장 4천 평, 도합 6개의 배 농장이 있다고 했다.

사진 ?이재원

이튿날에는 배밭 전문 여성 노동자들 11명과 함께 작업했다. 여성노동자 팀장이 우리 용역 노동자들까지 작업 지휘를 했다. 그들은 하루 일당 5만원을 받는다 했다.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을 관찰할 수 없었던 나는 그들의 작업과 정서를 열심히 훔쳐보았다. 웃고 떠드는 와중에 싸움도 잦았다. 특히 ‘억측’을 하는 여성들이 어려웠다. 한 쪽이 길고 반대 쪽이 짧은 배나무 밭 두둑이 있다 하자. 긴 쪽을 맡게 된, 억측을 즐기는 여성 작업자들이, ‘꼭 나에게만 어려운 곳을 주는 군’이라는 식으로 불평했다.

억측하는 사람 자신을 할퀴고 주변 사람까지 해치는 것이라서, 억측을 자주 하는 사람은 친구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포함해서 그 누구도 억측하는 여성 노동자와 맞대기(일찍 자기 두둑을 끝낸 이들이 아직 끝내지 않은 배 두둑의 맞은편으로 가서 작업해오는 것)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고개를 쳐들고 배 씨알을 찾으려니 눈이 무척 아팠다. 일을 끝날 때 쯤 되어서는 고개를 쳐들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배나무 그늘과 그 녹색의 푸르름 때문에 일 년 내내 일하라 해도 일 할 수 있을 듯 기분이 좋았다.

여성 노동자들은 몇 일 후 배 봉지를 씌우는 작업을 시작한다. 아침 5시부터 저녁 8시까지 약 한 달 간 일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3천개를 싸면 하루 15만 원 정도 번다. 진위를 가릴 수 없으되, 여성 작업자들은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끼려, 그냥 나무 위에서 소변을 본다고 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그렇게 돈 벌다가 몸을 망가트린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장마 전까지만 일하고, 7-8월 달에는 어디 틀어 박혀 내 계획에 따라 시간을 쓸 생각이다. 일이 없을 때까지 열심히 일을 따라 다녔다. 술을 안마시니 돈이 그대로 모여 있어 틀어박힐 경비는 충분할 듯하다.

?

?

4. 옘병(화염병) 맞을 놈들

k씨가 얼마 전 교회 장로가 되었다. k씨는 양 어금니가 없다. 식사하는 모양이 자연스럽지 않고 무척 어려워 보인다. 단무지도 씹어 삼키지 못하고 우물거리다가 뱉아 낸다. 그는 집이 근처인데도 중국 동포 형제들과 함께 용역사무실 숙소를 쓴다.

k는 장로되면서 천만 원을 교회에 냈다.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서인가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옘병 받아야 할 목사이군”이라고 중얼거렸다. 용역노동자, 한 푼 안 쓰고 모아야 일 년에 천만 원 저축할까 말까 하다. 점심 식사하는 중에 한 말이었는데,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뜩치 않았다.

k씨에게 은근히,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

당신 소속 교회 장로는 몇 명인가?

-61명이다.

장로들 직업은 대개 무엇인가?

사장들이다.

장로되려면 교회에 내는 돈이 있는가?

-장로 장립식 행사비는 낸다. 그러나 그 외에 돈을 내는 것은 자유이다.

목사가 당신 직업을 아는가?

-다 안다.

당신이 노가다 하는 것도 아는가?

-물론 안다.

당신 어금니 다구앙도 못 씹는데, 교회 돈 내지 말고 이빨 치료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은가?

-남의 사생활에 대해 왜 그렇게 알려 하는고?

노동자들의 삶에 관심이 많은 푼수라서.

들은 이야기이다. 기지촌 여성들이 미국에 많이 갔다. 그들이 과거를 세탁할 길은 한인 교회 집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녀들은 먹을 것 안 먹고 집사 되기 위해 헌금했다더라. 헌금 많이 하고 장로인 k는 구원받는 앞자리에 위치할까? 내 눈에는 하느님과 일대 일의 통로를 가진다는 특징을 가진 교회의 목사가 장로 장사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예수는 “건강한 자가 아니라 병자와, 죄 없는 자가 아니라 죄 있는 자와 함께 있”었다(공지영).

0 replies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