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가난했다. 내가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조금 나아졌지만, 학창 시절 내내 나에겐 차상위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그게 부끄러웠냐면 꼭 그렇진 않았다. 차상위여서 지원받는 것도 있었고, 공부에는 관심이 없던 내가 집이 가난해 학원을 못 가는 것을 핑계로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특성화로 간 이유도 빨리 취업을 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대학을 갈 필요가 없어서 수능을 준비하지도 않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온종일 텔레비전을 봤다. 나는 가난한 가운데에 제법 즐겁게 살았다. 마치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기택네 집이랑 비슷했다.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라는 기택의 말처럼 나는 특별히 계획을 세우거나 뭘 바라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어차피 그래봤자 이룰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다 내게 꿈이 생겼다. 웹툰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보내는 동안 한국만화계는 웹툰으로 넘어가면서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전까지 만화가를 꿈꾸는 것이 내게는 사치라고 생각했는데, 점차 커지는 웹툰 시장을 보니 이곳이라면 충분히 뛰어들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배울 돈이 없었다. 입시학원만 해도 한 달에 50만 원은 드는데, 우리 집은 그 돈을 낼 형편이 안 되었다. 혼자서 연습하기엔 재능이 없었다. 선을 어떻게 그어야 하는지, 색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도서관에서 빌린 만화 작법서를 아무리 읽어봐도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다른 쪽으로는 재능이 있었는데, 이야기를 쓰는 능력이었다. 내가 만든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면, 다들 재밌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문제가 내 발목을 잡았다. 만화를 공부하거나 그릴 시간이 부족해진 것이다. 스무 살이 되면서 나는 회사에 다녀야만 했다. 내가 일을 그만둔다고 집안이 힘들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벌어야 더 나아지는 것은 분명했다. 만화에 신경 쓸 시간은 당연히 줄어들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했지만, 내가 봐도 내 만화의 작품 수준은 너무 낮았다. 나는 계속 투고했고, 계속 떨어졌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내게 시간과 돈이 충분했다면 어땠을까 계속 가정해보았다. 그건 좀, 비참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건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니었다. 주변에 재능이 아주 뛰어난 사람들을 제외하고, 그림이라는 기술을 익히기 위해 돈을 지불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점점 더 뒤처진 것이다. 그 차이는 처음엔 별거 아닌 것 같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가속되었다. 그리고 결국 깨달았다. 가난한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건, 그냥 내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는 것을.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의 가족들이 박 사장의 집에 하나하나 들어갈 때, 처음에는 그 상황이 코믹하고 재밌게 그려진다. 기택네는 박 사장네를 놀리기도 하고, 착하고 멍청하다며 비웃기도 한다. 그러나 박 사장네는 부자다. 비가와도 공기가 맑아질 테니 좋다고 생각해도 되는, 멍청해도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지위에 있다. 그에 비해 기택네는 생각해야 하고, 남을 속여야 한다. 그것이 가난의 속성이다. 비가 와 집이 침수되었을 때, 기정의 표정은 씁쓸하다. 그전까지 기정은 남을 비웃을 여유가 있었지만, 비가 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온통 난리가 난 집, 구정물이 역류하는 변기에 앉았을 때야 자신에게 솔직해진 것이다. 자신이 사는 곳, 그곳의 사라지지 않는 냄새, 올라오는 변기 물. 기정은 박 사장네 식구들을 속인 동시에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을지 모른다. 자신이 정말 제시카라고 말이다. 행복한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현실은 늘 더 끔찍하다.
<기생충>이 가난을 다룬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더욱 주목받은 이유는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진짜 가난한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현실적인 미묘함을 잘 잡아내는 것은 무척 어렵지 않은가. 영화의 마지막을 보며, 나는 기우가 기택에게 보내는 편지가 이루어질 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는 그게 어떤 것보다도 비참한 소망이라는 생각에 조금 슬퍼졌다. 가난은 그 무엇보다도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물론 나는 그 감정에서 벗어나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지만, 뒤를 돌아보면 20대 초 돈과 시간을 만화에 투자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해 속상해하는 지망생이 있다. 거기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사실, 우리 집의 재정이 그 이후 나아졌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고 가세가 더욱 기울어졌다면 아마 나는 만화를 완전히 포기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면 씁쓸해질 수밖엔 없다. <기생충>의 그 결말처럼.
필자 이유운은 시인이자 동양철학도. 2020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서 <당신의 뼈를 생각하며>로 등단했다. ‘油雲’은 『맹자』에서 가져왔다. 별일 없으면 2주에 한 번씩 자작시와 짧은 노트 내용을 올리려 한다. 유운의 글은 언젠가는 ‘沛然下雨’로 상쾌히 변화될 세상을 늠연히 꿈꾸는 자들을 위해 있다.
투명하고 무거운 / 사랑의 모양은 네모
이유운
투명하고 무거운
그러면 우리는 도래하자
이해할 수 없는 시제와 선언
“나는 나의 기원” 이런 말들은 자주 소리내어 말할 필요가 있었다 사랑하는 입술을 매만져본다 아직 멸망이 오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아서 멍든 복숭아와 풋내가 나는 무화과의 껍질을 벗기는 네 손을 본다 춤추는 나무나 빛무리 같아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아무것도 미워하지 않아
네가 만진 나의 부분들은 아주 단단해졌어 나는 이걸 사랑이라고 자랑하고 다닌단다 이제 네가 만지지 않은 부분은 눈동자 뿐 연약하고 언제나 젖어 있는 이 검은 동그라미
돌아가는 테이프
오토리버스
또 돌아가는 테이프
멈추는 장면마다
어디선가 자라온 사랑으로 불거진 네 손가락 마디
손이 데일 것 같이 차갑기도 한
너무 가깝게 있어서 만지기가 어려워
둥근 어깨. 깨무는 둥근 이. 남는 둥근 자국. 모두 만지며 사랑이 둥글다고 배우는. 둥글고 슬픈 학습
무릎을 꼭 붙이고 함께 앉아 있다
기울어진 모양으로
내기 하자. 더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일어나기로.
사랑의 모양은 네모
어렸을 적 가장 좋아하던 영화 세 편을 나열하면 지금의 인생과 취향을 알 수 있다는 말이 한창 트위터에 돌았었다. 나는 그 말이 조금 꺼림직하고 소름이 끼쳤다. 뭐, 당연하게도 그 명제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그런 거다.
그 말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영화 세 편을 꼽아 보자면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 허진호 감독)》, 《클래식(2003년, 곽재용 감독)》,《해피투게더(1997년, 왕가위 감독)》다. 너그럽게 다섯 편까지 허락해준다면 《퐁네프의 연인들(1991년, 레오스 카락스 감독)》과《쉬리(1999년, 강제규 감독)》도. 이 영화들로만 보면, 지금의 나는 내가 농담처럼(사실 아니지만) 자주 하는 말인, 나를 ‘사랑의 헐값에 팔아넘기는’ 어른처럼 자란 것 같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지원이 정원에게 ‘왜 결혼 안 했어?’ 라고 물었을 때, 정원이 웃으면서 ‘너 기다리느라고.’하고 대답하는 장면이다. 미소를 지으며 이 말이 꼭 사랑 고백이 아니라는 것처럼 가볍게 대답하는 정원의 얼굴. 나는 정원의 그 얼굴과 목소리에서 진한 사랑과 그리움을, 그토록 짙고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투명하게 말할 수 있는 표정을 보았다. 그때부터 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오래도록 투명하고 무거운 사랑의 모양을 가질 수 있는 어른. 하트 모양이 아니라 네모난 사랑의 모양을 가지고 있는 어른.
나는 나에게 처음으로 사랑의 모양을 알려 준 어른과 그가 나를 사랑한 풍경을 떠올린다.
정성스레 닦고 말린 오래된 선풍기가 돌아가는 사아악, 사아악 소리. 꼭 숲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다. 비가 오고 있다. 축축한 여름. 바람과 나를 찾는 숨이 함께 분다. 손톱을 깎고 버린다. 저것을 주워 먹고 내가 될 다른 존재들에 대해서 아직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어린 내가 있다. 마루에 볼을 대고 눕는다. 차가운 바람. 햇빛이 따갑지 않아서 눈을 가늘게 뜨면 그 사이로 나뭇잎과 창문 살의 모양과 색으로 빛이 들어온다. 나보다 먼저 태어난 손이 내 눈꺼풀 위로 손차양을 만들어준다.
내 눈가에 얼룩처럼 남은 기미와 주근깨를 만져본다. 그렇게 그 손이 나를 자주 가려주었는데도 햇빛과 시간의 자국은 생겼다. 아무리 내가 어딘가 숨는다 하더라도 사랑이 나를 찾아내듯.
나는 이렇게 사랑받고 컸다. 이 때는 아직 사랑의 모양이 없었다. 빛무리처럼 춤을 추고 있을 뿐이었다.
어렸을 때 살던 오래된 동네의 그보다 더 오래된 건물에는 유호철물이 있었다. 일층에는 유호철물, 이층에 진실다방과 당구장이 있었고 삼층에는 전당포와 창문에 검은 종이를 바른 알 수 없는 방이 있었다. 그 위로는 철문이 항상 굳게 닫혀 있어서 한 번도 올라가 보지 못했다. 가끔 그 위로 올라가려고 하면 이층의 진실다방 이모가 고개를 내밀고 나를 불렀다.
거기 가면 안 돼.
뭐 있는데?
진실다방 이모는 대답 대신 모나카를 줬다. 어른들은 진실을 감추는 댓가로 나에게 단 것들을 줬다. 진실다방 이모만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나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진실다방 이모의 멋쩍은 웃음과 그가 주었던 모나카의 단 맛이 떠오른다. 혀가 떫다. 진실다방 이모의 기울어진 아몬드 모양의 눈. 움켜쥐면 타원 모양으로 우그러질 것 같은 그 모양이 사랑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유호철물은 주인 아저씨 아들의 이름이 유호라서 유호철물이었다. 유호는 나보다 아홉 살이 많았고 차이나 칼라 교복을 입었다. 유호는 종종 나를 자전거 뒷좌석에 태워줬다. 유호의 자전거는 쌀집 자전거여서 뒷좌석이 판판하고 바른 모양이었다. 그 뒷좌석에 앉아 유호의 등에 얼굴을 대면 햇빛 냄새가 났다. 나는 유호가 햇빛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유호는 내가 종종, ‘난 커서 너랑 살 거야.’라고 말하면 곤란한 것처럼 웃었다. 어린 내 앞에서 거짓말은 하기 싫고 솔직해질 필요도 없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를 볼 때 보통 유호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8월의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유호와 정원이 닮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둘 다 살구비누를 쓸 것 같다. 비누로 머리를 감아 뻣뻣해진 머리카락 끝에서 여름 냄새가 날 것만 같다.
유호의 등에서 나던 햇빛 냄새가 이상할 정도로 나이가 들면서 점점 뚜렷해진다. 나는 시력이 나빠서 안경을 쓰지 않으면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둥근 알사탕 모양처럼 보인다. 그런 모양으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사랑이 처음 만들어졌다.
나는 언제나 누군가를 사랑했고 무언가를 사랑했다. 쉽게 사랑하고 자주 사랑했지만 어떤 사랑의 형태에도 능숙해본 적은 없다. 그래서 내가 받아온 사랑의 연원을 떠올릴 때마다, 이토록 희고 단단한 사랑을 받아왔는데 왜 지금의 나는 그런 사랑의 모양을 가지지 못했는지 나를 탓하고는 한다. 어린 눈 위로 손차양을 만들어주는, 거짓말 대신 모나카를 주는, 등에서 햇빛 냄새가 나는 그런 사랑과 내 마음의 모양이 달라서 가끔 놀란다.
아직까지는 둥근 모양이 되는 사랑을 배우고 있다. 학습의 과정은 자주 슬프고 오래 사랑스럽다. 점차 네모낳게 단단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나의 마음은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지 않고 바닷가에 한참 서 있던 사람의 어깨처럼 엉망으로 껍질이 벗겨진 모양이다. 하지만 이렇게 훼손된 마음도 섬세하게 마련할 수 있다. 나는 이 훼손된 마음을, 섬세하게 마련한 모양을, 시라고 부른다.
오늘은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꽃’에 관한 시를 함께 읽어볼까 합니다. 국내에 발표된 꽃에 관한 시는 정말 많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이 가장 먼저 생각나고, 나태주 시인의 동명의 시 <꽃>도 있죠. 복효근 시인의 <안개꽃>이라는 시도 생각납니다. 좋은 시들이 참 많이 있는데 다 소개해드리지 못해서 아쉽네요.
오늘 소개해 드릴 시는 <사람의 꽃이 되고 싶다>라는 제목의 시로, ‘이채’라는 필명을 쓰는 시인의 작품입니다. 저는 이 시를 통해 처음 만나는 시인인데요, ‘꽃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해 준 시라서 가져와 봤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인간관계,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서 한번쯤 되돌아보게 하는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 듣고 올까요?
사람의 꽃이 되고 싶다
이채
그대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로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다 해도 서로의 꽃이 될 수 있을까
꽃집으로 들어설 때의 설레임과
한아름 꽃을 안고 집으로 오는 동안
한 잎 한 잎 고운 향기 맡으며
상큼한 웃음 감추지 못하던 그 표정으로
나는 그대에게 어떤 꽃으로 기억되고 싶은 걸까
발을 밟은 그대라면
어깨를 부딪친 그대라면
길을 묻는 그대라면
서로의 이름은 몰라도 은은한 들꽃 같은 향기로
미소가 예쁜 친절한 꽃으로
사슴의 눈망울을 닮은 착한 꽃으로 기억되고 싶은 걸까
저마다 뜰은 있어도 가꾸지 않고
꽃병은 있어도 꽃이 없는 창가에서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본다 한들
시끄러운 귀로는 물소리를 들을 수 없고
불만의 목소리로 백조의 노래를 부를 수 없으며
비우지 못한 욕심으로 어떻게 새들의 자유를 이해할 수 있을까
부족함 속에서도 늘 감사하는 행복의 꽃
작은 것에서도 소중함을 느끼는 기쁨의 꽃
보이지 않는 숨결에도 귀 기울이는 관심의 꽃
누구에게나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꽃
사막에서도 물을 길어 올리는 지혜의 꽃
사람의 뜰에는 만 가지 마음의 꽃이 있어도
어느 꽃도 피우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네…
우연히 길에서 이름모를 들꽃들을 마주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꽃의 이름이 뭔지도 모르지만, 꽃들은 우리가 누구든 간에 만나는 모두에게 자신의 빛깔과 향기로 친절히 미소를 지어줍니다. 그에 비해서 우리 인간은 어떤 가요? 서로 잘 아는 사이거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너그럽죠. 특히 나와 어떤 이해관계가 있다거나,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굉장히 친밀합니다. ‘학연’, ‘지연’이라는 말이 괜히 만들어지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반대로 나와 그다지 상관이 없는 사람이거나 잘 모르는 사람, 시인이 시에서 말하듯 버스에서 실수로 부딪히거나 발을 밟은 사람, 길에서 방향을 묻는 사람을 마주칠 때, 괜스레 무관심하게 되고, 그 관계에서 ‘나’와 ‘내 기분’이 우선 되어 가끔 무례하게 행동할 때도 있습니다.
시인은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하기 위해 꽃집에 가서 한아름 꽃을 포장해 나설 때의 그 기분과 행복한 표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가 반문합니다. 꽃은 우연히 마주친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아름다운 향기와 빛깔로 행복감을 나누는데, 우리는 우연히 만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하고 말이죠.
‘전혀 모르는 사람, 우연히 만난 사람을 어떻게 ‘행복한’ 표정으로 대할 수 있다는 말이지?’라고 고개를 갸우뚱 하고 계신가요?
저는 호주에서 2년간 거주했던 경험이 있는데요, 이 시를 읽으면서 호주에서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외국에서 거주하면서 많이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서로 전혀 모르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길에서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 서로 웃으면서 인사한다는 것이었어요. 버스에서 부딪히거나 우연히 스치는 경우,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움직이다가 눈이 마주친 경우에도, 한국에서라면 눈을 피해버리거나 무표정으로 넘어가기 일쑤인데, 호주 사람들은 서로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얼굴에 미소를 지어 줍니다.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라고 한마디 건네기도 하고 말이죠.
일부러 억지로 하지 않아도 누구 하나 예외 없이 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하고 있다는 여유와 따뜻함을 느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저마다 뜰은 있어도 가꾸지 않고
꽃병은 있어도 꽃이 없는 창가에서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본다 한들
시끄러운 귀로는 물소리를 들을 수 없고
불만의 목소리로는 백조의 노래를 부를 수 없으며
비우지 못한 욕심으로는 새들의 자유를 이해할 수 없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2021년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은 향상되었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기술적으로도 많은 나라를 앞지르는 그야말로 ‘선진국’을 향하고 있죠. 이 시의 표현을 빌리면, 이제 “저마다 뜰”, “꽃병”, “아름다운 호수”가 갖추어진 셈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말합니다. 서로를 위하는 여유와 따뜻함이 없는 삶이라면, 저마다 뜰이 있더라도 그것을 가꾸지 않는 삶이며, 꽃병은 있지만 꽃이 없는 쓸쓸한 창가라고 말이죠.
당장 ‘뜰’도 없고 ‘꽃병’도 없는 사람에게는 이런 이야기와 요구가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들에게는 뜰을 갖추고 꽃병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더 중요할 테니까요. 하지만 이제 저마다의 뜰과 예쁜 화병까지 가지게 된 우리라면, 시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길 권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뜰을 가꾸고, 꽃병에 꽃을 꽂으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꽃을 가꿔야 할까요?
부족함 속에서도 감사하는 행복의 꽃
작은 것에서도 소중함을 느끼는 기쁨의 꽃
보이지 않는 숨결에도 귀 기울이는 관심의 꽃
누구에게나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꽃
사막에서도 물을 길어 올리는 지혜의 꽃
이것이 바로 우리가 꽃에게서 배워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꽃들은 비바람이 불더라도 햇빛이 쨍쨍하더라도, 어떤 부족한 것이 있어도 늘 그 자리에 피어나요. 찌는 듯한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잠깐 내리는 소나기에 감사하며 아름다운 빛깔을 만들어 내죠. 물이 한 방울도 없을 것만 같은 절벽에서도 지혜롭게 물을 찾아서 자기 자신을 피워내는 꽃을 보면, 내게 부족한 것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겸손히 자기의 역할을 다 해내는 꽃의 덕목을 발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꽃송이라도 저마다 아름다운 빛깔과 지워지지 않는 향기를 가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쁜 일이 있을 때 꽃으로 축하하고, 사랑의 마음, 감사의 마음도 꽃으로 표현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에 꽃으로 위로할 수 있는 것이겠죠.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존재가 ‘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어느 꽃도 피우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고 겸손하게 고백하면서 시를 마치고 있습니다. 행복의 꽃, 기쁨의 꽃, 관심의 꽃을 피워 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사소한 것부터 목표를 정해 하나씩 고치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오늘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로 나태주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 노랫말을 붙여서 만든 노래 가져왔습니다. 가수 정밀아가 부른 <꽃> 들으시면서, 이번 한 주간 내 마음에 어떤 꽃을 피울지 다짐해보시면 어떨지요.
지난 시간에 우리는 도종환 시인의 시 <깊은 물>을 함께 읽었습니다. <깊은 물>을 통해 내면의 강물을 깊이 채워야 한다는 ‘채움’의 메시지를 읽었는데요, 오늘은 ‘채움과 비움’ 두 번째 시간으로 ‘비움’에 관한 메시지를 읽어보려고 합니다.
‘비움’은 ‘채움’과 정 반대의 행위를 말하는 것 같지만, 오늘 함께 읽을 시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 채움과 비움의 두 행위가 만나는 지점이 분명히 있음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도 도종환 시인의 시를 만나 보실 텐데요, 바로 <여백>입니다.
여백
도종환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 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 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네, 도종환 시인의 시 <여백> 듣고 왔습니다. 차를 타고 숲길 높은 곳을 달릴 때, 산 능선을 따라 뻗어 있는 나뭇가지들의 실루엣을 보신 적 있을 겁니다. 참 아름답죠. 특히 해 질 녘에 해가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곧게 뻗은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뾰족뾰족한 그림자는 노을을 더 운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그런 자연의 풍경들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시를 읽으면 더 좋겠습니다.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시인의 시각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시인은 높이 솟은 나뭇가지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뒤의 여백, 허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 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세세한 나무의 가지들을 보기가 쉽지 않지만, 하늘의 빈 여백이 있는 공간에서는 나무의 잔가지들이 다 보이죠. 시인은 그 모습을 가리켜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쓰다듬어 주고 있는 빈 하늘’이라고 표현합니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 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가지를 뻗어 곧은 나무로 자라나기까지 나무는 무수한 세월을 견뎠을 것이고, 수 백 번의 겨울을 보냈을 겁니다. 그 살아온 길이 잔가지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것이죠.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마구잡이로 자라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 있는 나무끼리 서로 겹치지 않게 균형을 잡고 멋들어지게 가지를 뻗어 내고 있는 것을 봅니다. 시인의 말처럼 나무의 가지는 나무의 생명의 손가락인 것이죠.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 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하지만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배경 속에서는 잔가지들의 모양이나 그 균형, 흔들림을 볼 수 없죠.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은 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풍경이 그렇지 않나요? 고층 건물에, 건물마다의 요란하고 휘황찬란한 간판들.. 정말 눈이 쉴 곳이 없지요. 그런 꽉 찬 배경은 나무의 생명의 손가락을 쓰다듬어 줄 수 없습니다.
무언가로 지나치게 꽉 차 있어 여백이 하나도 없는 풍경이 그 어느 것도 품지 못하듯, 우리의 내면에도 여유롭게 비워 놓은 여백이 있어야 누군가를 품어줄 수 있겠죠. 그렇기에 시인은 때로는 텅 빈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채움’과 ‘비움’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자세를 말해줍니다. 나 스스로는 중심에 깊은 물을 채우듯 무게를 잡고 작은 것에 흔들리지 않는 깊은 자세를 가져야 하며,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는, 작고 연약한 나뭇가지부터 큰 산까지 넉넉하게 품을 수 있는 넓은 비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가볍게 인생을 살지 말되, 너무 꽉 채운 삶을 살지 말 것. 쉽지 않은 삶의 태도이지만, 그럼에도 채움과 비움의 메세지를 통해 다시 한 번 다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와 함께 들을 노래는 ‘여백’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가수, 곽진언의 노래 <자랑>이라는 곡을 가져왔습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구요, 저는 다음 시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아이폰 팟케스트 <마리횬의 시와 음악공간(2012)>에서 러시아의 시와 노래를 직접 번역하여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하였고, 호주 퀸즐랜드주 유일의 한인라디오방송국에서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가 필요한 시간(2016-2018)>을 진행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세대학교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동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무언가를 비워내는 행위와 채우는 행위는 정 반대의 것처럼 보입니다. 보통 무언가가 비어 있다는 것은 채워진 게 하나도 없다는 뜻이고, 반대로 뭔가를 채우려면 그 채울 만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가득 차 있는 것을 비워 내야만 하니 의미적으로만 보면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소개해드릴 두 편의 시를 읽어 보면서 전혀 달라 보였던 두 가지 행위가 한 지점에서 만나고 있음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먼저 ‘채움’에 대한 시를 읽어보겠는데요, 도종환 시인의 <깊은 물>입니다.
깊은 물 도종환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얕은 물에는 술잔 하나 뜨지 못한다. 이 저녁 가슴엔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 돌아오는 길에도 시간의 물살에 쫓기는 그대는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 그대 오늘은 또 얼마나 소리치며 흘러갔던가 굽이 많은 이 세상의 시냇가 여울을
우리 가슴 속에는 저마다의 강물이 흐르고 있는데요, 도종환 시인은 이 시에서 우리 모두에게 마음 속 강물에 물을 깊이 채우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큰 배가 뜨려면 바다나 강물이 충분히 깊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인데, 시인은 그 사실에 덧붙여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가슴엔, 그대의 가슴에는 큰 배커녕 종이배 하나라도 뜰 만큼의 깊은 물이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시간의 물살의 쫓기는 그대’라는 대목은 바쁘게 살아가는 분주한 우리들의 모습을 가리키고 있죠. 이 시가 발표된 1994년에도 사람들은 바쁘게 살았겠지만, 그때보다 과학이 더 발전하고 편리한 기술들이 개발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더 바쁘게 사는 것 같아요. 마음의 강물이 잔잔할 틈이 없죠.
특별히 시인은 ‘돌아오는 길에도 시간의 물살에 쫓기는 그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 모든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침에는 모두가 바쁠 수밖에 없어요. 출근을 하고 학교 수업을 준비해야 하죠. 모두가 시간의 물결에 쫓기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오는 저녁에는 어떤 가요? 잔잔하게 머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나 자신을 비춰보고 되돌아 볼 시간조차 없이 여전히 분주하고 시간의 물살에 쫓기고 있지는 않은 가요? 시인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내 마음 속 강물은 충분히 깊은지, 그 물살은 잔잔한지 말입니다.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
우리 주변에는 ‘잔돌’들이 참 많습니다. 작아서 위험하지는 않지만 유독 거슬리고 나를 건드리는 사소한 문제들이 있죠. 잔소리 많은 직장 상사, 항상 말에 뼈를 넣어서 말하는 후배, 하기 싫은 잡다한 업무, 해도 티 안 나는 집안일 등.. 인생에서 정말 자잘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런 ‘잔돌’과 같은 문제와 상황을 만났을 때 내 자신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스스로 돌아본다면, 내 마음 속의 강물이 얕은 물인지 깊은 물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하나하나 다 스치고 건드리며 소란스럽게 지나가는 얕은 물인지, 아니면 묵직하게 그 돌들을 품어 내며 묵묵히 소리 없이 지나가는 깊은 물인지 말입니다.
그대 오늘은 또 얼마나 소리치며 흘러갔던가
굽이 많은 이 세상의 시냇가 여울을
시인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굽이 많은 시냇가 여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죠? 내가 있고 싶은 곳에만 있을 수 없고, 늘 마음에 꼭 맞는 사람들과 생활할 수도 없고, 언제나 나에게 편안한 상황들만 생기지는 않아요. 굽이굽이 굴곡이 있고 잔돌들이 놓여 있죠. 그런 것들에 일일이 반응하며 사사건건 내 목소리를 내려고 했던 ‘소리치며 흐르는’ 모습이 나에게도 있지는 않은지.. 이 시를 읽으며 반성하게 됩니다. 작은 것 하나에 일희일비 하는 가벼운 삶이 아니라, 때로는 깊이 품어낼 줄도 아는 무게감을 가지기를, ‘채움’으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지기를 충고하는 시인의 메시지를 <깊은 물>에서 읽어냅니다.
이 시와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로 짧은 가곡을 한 곡 준비했습니다. 며칠 전에 우연히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나라 가곡에 대한 강연을 보게 되었는데요, 여러 곡들이 소개되는 가운데 2014년 화천비목콩쿨에서 창작가곡 부문 1위를 한 <마중>이라는 곡이 너무 아름답더라구요. 그래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가져왔습니다. 묵직한 울림을 주는 이 곡의 가사와 멜로디를 듣고 있노라면 왠지 마음 속에 깊은 물이 채워지는 것만 같습니다. 여러분도 같은 감동을 느끼실 수 있기를 바라며, 저는 다음 시간에 ‘비움’에 관한 시 들고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아이폰 팟케스트 <마리횬의 시와 음악공간(2012)>에서 러시아의 시와 노래를 직접 번역하여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하였고, 호주 퀸즐랜드주 유일의 한인라디오방송국에서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가 필요한 시간(2016-2018)>을 진행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세대학교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동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시가 필요한 시간의 마리횬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 뵙네요. 2020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신세계를 경험해야 했고, 지금도 여전히 겪어내고 있는데요, 한 해를 보내면서 여러분은 어떤 기억들을 간직하셨는지, 또 2021년을 맞이하면서 어떤 계획들을 세우셨는지 궁금합니다.
연말과 신년은 여러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모여서 시끌벅적하게 보내기 마련인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서로 떨어져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 거리두기의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사람들이 고독해지고 우울해지는 것 같아요. 2021년도 어김없이 코로나와 함께 살게 될 텐데요, 한 번 살아봤으니 2년차에는 조금 나아질 수 있을까요? 걱정이 많이 앞섭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시는 용혜원 시인의 <나를 불러주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용혜원 시인은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1992년에 계간지 <문학과 의식>을 통해 문단에 데뷔한 시인입니다. 용혜원 시인의 시는 순수하고 어렵지 않아서, 누가 읽어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요. 특별히 오늘 제가 가져온 <나를 불러주는 사람>은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시로, 요즘 같은 때에 읽으면 더 큰 감동이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마리횬의 목소리로 듣고 오시죠.
나를 불러주는 사람
용혜원
까닭도 없이 이유도 없이 외로운 날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
보고 싶은 사람이
나를 불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숨이 막힐 듯 답답하던 생각지 않은 날에
곱게 피어나는 사랑을
나눌 시간이 있다면
행운이라도 잡은 듯 기쁠 것이다
목마른 그리움 탓에
엄청난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데
한 순간 가까워질 수 있다면
마음의 짐을 풀어 놓아도 좋다
내 눈동자에 내 마음에
사랑을 꽃피워 줄 사람이 나를 불러준다면
아무도 몰래 내 마음 꺼내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
서로 토닥이고 다독여준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추억을 한 아름 만들 수 있기에
후회는 전혀 없다
네, 용혜원 시인의 시 <나를 불러주는 사람> 듣고 왔습니다. 이 시의 첫 줄처럼 “까닭도 없이 이유도 없이 외로운 날..” 이런 날이 한 번씩 찾아옵니다. 특별한 일도 없고 누가 스트레스 주는 상황이 아님에도 갑자기 훅 우울한 기분이 드는 날이 있죠. 요즘처럼 거리두기가 계속되어 주변 사람들과 만날 수 없는 날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까닭도 없이 이유도 없이 외로운 날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
보고 싶은 사람이
나를 불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숨이 막힐 듯 답답하던 생각지 않은 날에
곱게 피어나는 사랑을
나눌 시간이 있다면
행운이라도 잡은 듯 기쁠 것이다
그런데 그럴 때! 마침 보고 싶은 누군가가 다정스레 내 이름을 불러 준다면 어떨까요?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생각지 못한 날에 보고 싶었던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거나 짧은 메시지 한 통 받는다면 어떨까요? 반가움에 얼굴 가득 미소가 지어지면서, 한 순간에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을까요?
목마른 그리움 탓에
엄청난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데
한 순간 가까워 질 수 있다면
마음의 짐을 풀어 놓아도 좋다
[…]
서로 토닥이고 다독여준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추억을 한 아름 만들 수 있기에
후회는 전혀 없다
며칠 전에 미국에 사는 친구로부터 보이스톡을 받았어요. 신년을 앞두고 문득 오랜만에 생각이 났다며 안부를 전해주었는데요, 예전에 함께 학교 다니던 생각이 나면서 너무 반갑고 좋았습니다. 생각해보면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사이에서 아무 특별한 일없이 먼저 연락을 취하기란 사실 쉽지 않아요. 보통은 무언가 용건이 있어야만 연락을 하게 되죠. ‘너무 갑작스럽게 연락해서 상대방이 놀라면 어쩌지?’ ‘내 연락을 불편해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머뭇거리기 일쑤이고, 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별탈없이 잘 지내고 있겠지’ 싶어 선뜻 연락하지 못했던 적이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것을 잘 알기에, 먼저 연락을 준 친구에게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친구와 전화를 끊고, 저도 메시지 창을 열어 그간 연락하지 못했던 다른 지인의 이름을 찾았습니다. 내 친구가 그러했듯 나도 먼저 용기를 내자! 이 따뜻한 마음을 다른 사람들도 느끼게 해 주자! 하고 말이죠.
비록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자주 만날 수 없는 환경에 있더라도, 문득 생각이 나는 날에 잠시나마 안부를 전할 수 있다면, 멀게만 보였던 서로의 간격은 한 순간에 허물어질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는 우리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죠. 오랜 기간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로 내 마음을 살포시 담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1월 1일을 놓치셨다구요?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겐 또 한번의 새해인 ‘설날’이 곧 찾아오니까요^^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 친구들에게 “잘 지내?” “내가 좋은 시 한 편을 읽었는데 네 생각이 났어”라며 먼저 연락해보세요. 그 사람 역시 여러분의 연락을 받고 ‘아 나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위로와 격려를 한아름 누리게 될 겁니다.
이 시와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로, 이적의 <당연한 것들>을 가져왔습니다. 이 노래는 가수 이적씨가 SNS에 개인적으로 만들어 올렸던 곡이었는데요, 2020년 제56회 백상예술대상 특별공연에서 아역배우들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곡입니다. 코로나 여파가 계속되면서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만 여겼던 모든 사소한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것을 깨닫고 하루하루를 보낸다면,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우울함 속에서도 밝은 미소를 지어낼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노랫말이 용혜원 시인의 시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아이폰 팟케스트 <마리횬의 시와 음악공간(2012)>에서 러시아의 시와 노래를 직접 번역하여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하였고, 호주 퀸즐랜드주 유일의 한인라디오방송국에서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가 필요한 시간(2016-2018)>을 진행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세대학교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동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어제 오랜 친구를 만났어요. 처음 알게 된 때부터로 계산하면 13년, 마지막으로 만난 때부터로 계산하면 약 9년 만에 연락이 되어 만나는 셈이었는데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어렴풋이 상상을 해보기도 했죠. 하지만 친구는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전공을 다시 공부했고, 제가 생각지도 못한 분야의 전문인이 되어 있더라구요. 그렇게 되기까지의 친구의 방황과 고민의 시간, 쉽지 않았을 선택의 과정 등을 들으며 한편으로 너무나 신기하기도 했고, 한편으로 이 단계에 오기까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그 많은 어려움을 견뎌낸 친구가 참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친구를 만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생각난 시 한 편이 있었습니다. 그 시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가져왔습니다. 송경동 시인의 시 <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입니다.
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
송경동
몇 번이나 세월에게 속아보니
요령이 생긴다 내가 너무
오래 산 계절이라 생각될 때
그때가 가장 여린 초록
바늘귀만 한 출구도 안 보인다고
포기하고 싶을 때, 매번 등 뒤에
다른 광야의 세계가 다가와 있었다
두 번 다시는 속지 말자
그만 생을 꺾어버리고 싶을 때
그때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보라는
여름의 시간 기회의 시간
사랑은 한 번도 늙은 채 오지 않고
단 하루가 남았더라도
우린 다시 진실해질 수 있다
♦ 귀로 읽는 시간-둘(재생버튼을 눌러주세요~)
이 시의 화자는 아마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중년의 한 사람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시를 읽으면 이 화자는 살면서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적잖이 굴곡진 인생을 산 사람으로 보입니다. 바늘귀만 한 출구도 안보여서 포기하고 싶었을 때, 그만 생을 꺾어버리고 싶었을 때가 있었다고 표현하고 있죠.
우리도 이런 순간들이 있지 않나요? 어쩌면 지금 이 시간에도,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도 그런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야만 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말합니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고 생각 될 때”, “생을 꺾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 때가 가장 여린 초록”, 그 때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보라는 여름의 시간, 기회의 시간”이라고 말입니다.
소나무를 한 그루 생각해볼까요? 모든 나무들 중에 특히 소나무는 무수한 세월을 살아가죠. 어느 날, 소나무가 “너무 오래” 살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찾아왔다고 생각해 봅시다. 몇 백 년을 살고 있으니, 이제 왠지 이파리도 좀 시든 것 같고, 볼 품 없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때가 그 나무에게는 가장 여린 초록의 시간이겠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비하면 말이죠.
시인은 그것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오년 후, 십년 후의 너의 모습에 비하면 지금이 “가장 여린 초록빛”이라고 말입니다.
바늘귀만 한 출구도 안 보인다고
포기하고 싶을 때, 매번 등 뒤에
다른 광야의 세계가 다가와 있었다
이 시인의 시처럼, 앞이 꽉 막힌 상황에서 나에게는 도대체 출구가 없다고 불평할 때, 사실은 등 뒤에 그저 작은 ‘출입문’과는 비교할 수 없는 광활한 길이 열려 있는데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쉽고 편하고 안전한 길을 ‘출구’라고 정의해 놓고, 진정한 출구인 ‘광야의 세계’를 너무 쉽게 놓쳐버렸던 것은 아닐까요?
두 번 다시는 속지 말자
그만 생을 꺾어버리고 싶을 때
그때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보라는
여름의 시간 기회의 시간
사랑은 한 번도 늙은 채 오지 않고
단 하루가 남았더라도
우린 다시 진실해질 수 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예전에 버스에서 들었던 한 라디오 사연이 기억났습니다. 어느 95세 할머니의 사연이었는데, 듣다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95세 할머니가 자신의 인생 목표로 지금 제2외국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사연이었거든요. ‘아니 그 늦은 나이에 무슨 외국어를 공부하시려고 하지?’ 싶었는데, 이 분의 사연을 끝까지 듣고는 더 놀랐습니다. 30년 전, 당신이 65세 생일을 맞이했을 때, 그 때는 자신이 이렇게 30년이나 더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고, 이젠 늙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냈다는 겁니다. 그 때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자신은 지금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95세 생일을 맞이했을 거라고.. 그러면서, 이제 10년 후, 자신의 105세 생일이 왔을 때 또 지금처럼 10년 전을 아쉬워하며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 새로운 인생을 시작 하련다는 내용의 사연이었습니다. 대단하죠?
이 시의 표현처럼, 세상은 우리를 자주 속이려고 합니다. “넌 안 돼,” “이젠 너무 늦었어,” “네 나이를 생각해라,” “네 나이또래 친구들은 벌써…,” “이제 와서 무슨!” “네가 그럴 능력이 되니” 등등 힘 빠지게 만드는 직접적인 말, 암묵적인 사회적 분위기에 어깨가 짓눌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번 다시는 속지 말자”는 이 시인의 다짐처럼, 그만 생을 꺾어버리고 싶을 때, 그 때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보라는 기회의 시간이라는 것,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진짜 내가 가야할 ‘출구’가 있다는 것.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와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 소개해 드릴게요. <팬텀싱어>라는 프로그램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성악가, 뮤지컬 배우, 일반인들이 모여 노래경연을 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곡 중에 한 곡 가져 왔습니다. 이탈리아의 국민가수라고 불리는 Renato Zero 원곡의 “L’impossibile Vivere” 라는 제목의 곡인데요, 번역하면 ‘불가능한 삶’이라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노래는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살아내야지”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힘 있는 가사가 가슴을 울리는 곡입니다. 어제 만났던 친구에게도 들려주고 싶네요. “살아있음을 느끼는 삶을 살자. 너보다 더 잘해내는 사람은 없을 거야”
아이폰 팟케스트 <마리횬의 시와 음악공간(2012)>에서 러시아의 시와 노래를 직접 번역하여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하였고, 호주 퀸즐랜드주 유일의 한인라디오방송국에서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가 필요한 시간(2016-2018)>을 진행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세대학교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동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시가 필요한 시간입니다. 어느덧 9월 중순이 되었고, 하늘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요즘이죠. 가을이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시를 통해 듣는 충고의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읽고 부러진 나뭇가지를 통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었는데요, 오늘은 길가에 떨어진 도토리를 주워 들고 있는 박노해 시인을 만나봅니다.
도토리 두 알
박노해
산길에서 주워든 도토리 두 알
한 알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도토리
한 알은 크고 윤나는 도토리
나는 손바닥의 도토리 두 알을 바라본다
너희도 필사적으로 경쟁했는가
내가 더 크고 더 빛나는 존재라고
땅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싸웠는가
진정 무엇이 더 중요한가
크고 윤나는 도토리가 되는 것은
청설모나 멧돼지에게나 중요한 일
삶에서 훨씬 더 중요한 건 참나무가 되는 것
나는 작고 보잘것없는 도토리를
멀리 빈숲으로 힘껏 던져주었다
울지 마라, 너는 묻혀서 참나무가 되리니.
박노해 시인의 시 <도토리 두 알> 들어보았습니다. 뭔가 뒤에 더 할 말이 있는데 여운을 남기며 시가 끝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처럼 내가 겪었던 작은 사건을 가지고 그 사건 자체에서 끝나지 않고 그것을 통해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들이 참 좋습니다. 땅에 떨어진 도토리를 보고 이런 시를 쓸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하면서도 부럽죠. 오늘 주제를 ‘충고’라 하고 이 시를 들려 드렸는데, 여러분은 이 시에서 어떤 충고를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궁금하네요.
시 텍스트를 보면, 시의 시행들이 이어지다가 중간에 한 줄이 툭 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손바닥의 도토리 두 알을 바라본다’라는 시행이 툭 놓이죠. 그러면 그 순간, 시를 읽는 템포가 살짝 늦춰집니다. 그리고 “도토리 두 알을 바라본다”라는 시행 후에 또 다시 시행이 구분되면서, 다시 한 번 약간의 공백이 생기게 되고 그 틈에 독자로 하여금 도토리의 모양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줍니다. 혹은 도토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약간 벌어주는 효과가 있죠.
요즘 공원이나 산길을 (마스크를 쓰고) 산책하면서 보니, 도토리가 적지 않게 떨어지기 시작하더라구요. 그 모양을 보면 각기 다양합니다. 시인이 손바닥에 올려놓고 있는 도토리 두 알처럼 말입니다. 시인은 작고 보잘것없는 도토리 한 알, 그리고 크고 윤나는 도토리 한 알을 주워 들면서 이렇게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도필사적으로경쟁했는가
내가더크고더빛나는존재라고
땅바닥에떨어질때까지싸웠는가
진정무엇이더중요한가
‘도토리 키 재기’ 라는 속담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누가 더 크고 더 빛이 나는지를 아무리 따지고 아무리 경쟁을 해도 사실 모두 작은 도토리일 뿐이죠. 누가 더 잘났는지 경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시인이 던지는 질문이 의미심장합니다. “‘너희도’ 필사적으로 경쟁했는가?”라는 물음에는 ‘우리’도 그러한 존재라는 것, ‘우리인간이야말로’ 사실은 필사적으로 경쟁하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라고 하는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까요?
“땅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싸웠느냐”라고 물어보면서, “진정 무엇이 더 중요한가” 라는 질문이 이어집니다.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도토리는 다람쥐와 같은 동물들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또 사람들이 먹는 맛있는 도토리묵의 재료로도 사용되지만, 그런 것들은 동물이나 인간에게나 중요한 것입니다. 사실 정작 ‘도토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라나서 거대한 도토리나무가 되는 것, 이 시의 표현을 빌리면 ‘참나무’가 되는 걸 겁니다. 그것이 도토리의 사명이겠죠. (‘사명’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요?)
참나무가 되려면 도토리는 땅에 묻혀서 썩어져야 합니다. 썩어야 뿌리가 나고, 뿌리를 내리고 자라야 떡잎을 낼 수 있어요. 그런데 땅에 묻혀서 썩어질 도토리에게 ‘크기’가 중요할까요? 땅에 묻혀서 썩어져서 뿌리를 내리는데 도토리의 ‘윤기’가 중요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참나무가 되는 과정에서 크기나 윤기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보기에 크기가 작고 윤기가 없더라도, 결국은 도토리보다 몇 백 배는 더 큰 나무가 될 테니, 지금 당장의 도토리의 크기나 윤기는 전혀 중요하지 않죠. 시인은 도토리에게 던진 물음을 우리에게도 던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정무엇이중요한가?”
이 물음이 우리에게도 동일하다면, ‘너는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가’라고 묻는 물음에 답을 해야 할 차례입니다. 지금 당장의 겉모습이나 내가 가진 조건을 내세우기보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내 삶에서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사명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그것에 합당한 ‘훨씬 더 중요한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는 시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차례입니다.
시인은 작고 보잘것없는 도토리를 멀리 빈숲으로 던져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도토리의 심정을 표현하면서 ‘울지 마라’라고 하죠. 어쩌면 ‘먼 곳으로’ ‘빈숲으로’ ‘홀로’ 던져지는 도토리의 심정은 참담하고 속상하고 슬플지도 모릅니다.
비옥한 땅에서 참나무가 되라고 멀리 던져준 것인데, 지금 당장은 홀로 빈숲에 떨어진 상황이니, 게다가 내 의지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던져졌다고 생각하면 어쩌면 정말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도토리는 멀리 빈숲으로 던져졌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 다니는 청설모나 다른 짐승들에게 먹히지 않고 결국 참나무로 자라게 될 겁니다. 지금 당장은 깨닫지 못하지만, 외로움과 힘듦의 시기를 견디면 뿌리가 내려오고 싹이 나고, 점점 나무로 자라게 될 겁니다. 시인은 그걸 보고 있죠.
혹시 여러분 중에, ‘아… 나는 너무 작고 보잘것없는 것 아닐까..’ 라고 스스로를 작게 여기면서 참나무가 될 자기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혹은 다른 사람들이 내놓은 기준과 다수가 말하는 가치관에 자신을 비교하며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가 주는 충고를 마음에 새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정 무엇이 중요한가… 도토리에게 중요한 것이 결국 ‘얼마나 큰가’ 하는 ‘크기’나 ‘얼마나 반짝이느냐’ 하는 ‘윤기’가 아니라, 결국 ‘참나무가 되는 것’이라면, 지금 나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나는 그 중요한 것을 따라 살고 있는가 한 번 짚어 보고 돌이켜 봐야 하겠죠.
이 시와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로, 샘 옥(Sam Ock)의 <Meet me>라는 곡을 가져왔습니다. 노래 가사 중에 이런 내용이 나와요. “나는 한 명의 어린 아이에 불과하지, 몇 백만 명의 어린 아이 중 그저 한 명일 뿐. 내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무리 노래를 부른다고 해도 그 노래가 높은 곳의 당신에게 들릴 수나 있을까?”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멀리 던져진 작은 도토리와 같은 마음의 가사이죠. 하지만 이 노래는 ‘네가 굳이 높은 곳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괜찮아. 비록 여전히 어둡고 낮은 곳에 있다고 하더라도 분명 너의 노래를 듣는 이가 있어. 그리고 너에게 손을 내밀고 함께 할거야’라고 이어집니다. 숲 속에 던져진 작은 도토리 같은 시기를 겪고 계신 분들, 참나무가 될 인내의 시기를 겪고 계신 분들께 이 노래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져와 보았습니다.
오늘 시가 필요한 시간은 여기까지입니다. 가을의 청명한 하늘을 마음껏 즐기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시가 필요한 시간 이만 마칩니다.
아이폰 팟케스트 <마리횬의 시와 음악공간(2012)>에서 러시아의 시와 노래를 직접 번역하여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하였고, 호주 퀸즐랜드주 유일의 한인라디오방송국에서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가 필요한 시간(2016-2018)>을 진행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세대학교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동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차례 긴 장마가 끝나고 막바지 여름의 무더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낮의 더위도 더위지만, 잠잠해질 것이라 기대했던 코로나19가 다시 악화되고 있는 상황은… 정말 참기 어렵고, 관련된 뉴스를 들을 때마다 기운이 쭉 빠집니다. 이제 학생들은 개학을 해야 하는데, 이 시점에서 또다시 대유행이라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네요. 어떤 크고 강력한 조치도 필요하겠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작은 영역에서의 방역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시가 필요한 시간, 여러분과 함께 나눌 주제는 ‘나를 돌아보다’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어떻게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십니까? 잠들기 전 그 날 하루를 되짚어보면서 내가 했던 말과 행동들을 떠올려 볼 수도 있고, 오늘 했어야 했는데 미처 하지 못한 어떤 계획들을 점검하면서 내일을 다짐하는 시간을 가지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또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실수나 다른 사람이 저지른 어떤 행동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하는 타산지석의 교훈을 얻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가끔은 나와 진짜 똑 같은 사람을 만날 때도 있죠. 말투와 행동, 욱 하는 성격, 화를 참지 못하는 마지노선마저 너무 똑같은 누군가를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아 다른 사람이 보는 내 모습이 저렇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될 수 있죠.
그렇다면 시인들은 어떻게 자신을 돌아볼까요? 오늘 소개해드릴 시에서 시인은 부러진 나뭇가지, 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나뭇가지를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읽을 시는 정호승 시인의 <부러짐에 대하여>입니다.
부러짐에 대하여
정호승
나뭇가지가 바람에 뚝뚝 부러지는 것은 나뭇가지를 물고 가 집을 짓는 새들을 위해서다 만일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 나뭇가지로 살아남는다면 새들은 무엇으로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거리에 유난히 작고 가는 나뭇가지가 부러져 나뒹구는 것은 새들로 하여금 그 나뭇가지를 물고 가 집을 짓게 하기 위해서다 만일 나뭇가지가 작고 가늘게 부러지지 않고 마냥 크고 굵게만 부러진다면 어찌 어린 새들이 부리로 그 나뭇가지를 물고 가 하늘 높이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인간의 집을 짓는 데 쓸 수 있겠는가
네, 정호승 시인의 시 ‘부러짐에 대하여’ 들어 봤습니다. 요즘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인지 길을 걷다 보면 바닥에 나뭇잎과 나뭇가지들이 많이 떨어져 있죠. 이 시를 읽으면 바람 따라 이리저리 굴러가는 그 나뭇가지들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시인은 얇고 작고 가벼운 나뭇가지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금새 툭 꺾여져서 땅에 떨어지고 마는 나뭇가지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고, 지저분해서 얼른 빗자루로 깨끗이 쓸어버려야만 하는 쓰레기에 불과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 나뭇가지들이 새가 둥지를 짓는데 필요한 귀중한 재료가 된다는 사실. 그 사실을 시인은 발견해냅니다.
만일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 나뭇가지로 살아남는다면 새들은 무엇으로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저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남에게 약한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남들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죠. 누가 나를 조금이라도 얕잡아볼 까봐 과한 자존심과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어요. 늘 ‘갑’의 위치에 있어야만 하고, 조금만 낮고 작은 자리에 내려오면 마치 ‘을’이 된 양, 굉장히 패배자가 된 것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를 읽고 나면, ‘때로는 부러질 필요도 있다’. ‘때로는 조금 꺾일 필요도 있다’ 라는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시인은 바닥에 나뒹구는 작고 가늘게 부숴진 나뭇가지들을 보면서, 저렇게 ‘작고 가늘게 부숴져’ ‘바닥에 떨어져야’만 어린 새들이 물고 높이 올라가 집을 지을 수 있지 않겠냐는 사소한 진리를 깨닫습니다. 굵고 큰 가지는 어린 새들이 물 수도, 가지고 올라갈 수도, 집을 지을 수도 없으니까요.
우리도 마찬가지. 시인은 사람이 누군가의 곁에서 인간의 집을 지을 만한 도움이 되려면 작고 가늘게 그리고 때로는 낮은 자리로 내려올 줄도 알아야 한다고 우리에게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너무 강하기만 한 상대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마음을 열 수가 없죠. 아무도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고,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 없습니다.
크고 굵은 가지를 뻗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어야 할 때가 있고, 작고 가늘게 부러져 나뒹굴며 어린 새들에게 집이 되어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나요? 나는 오늘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는지,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알맞게 있는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와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로, 샘 옥(Sam Ock)의 <Small>이라는 노래 가져왔습니다. 혹여 현재의 내 모습이 이 시의 나뭇가지처럼 너무 밑바닥에 놓여있는 것 같고, 작고 가늘어 보인다고 좌절하고 있는 분이 계신가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 누군가에게 정말 필요한 도움이 되어 주고 있는 것이구요, 보다 더 중요한 건 나의 본래 모습이 그 작은 가지가 아니라, 크고 굵게 뻗은 큰 나무라는 사실이니까요. 샘 옥은 자신의 노래에 이러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의 시가 필요한 시간은 여기까지 입니다. 오늘 하루도 힘내시고, 시와 노래로 나 자신을 돌아보는 하루를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파이팅! 건강 유의하세요!
아이폰 팟케스트 <마리횬의 시와 음악공간(2012)>에서 러시아의 시와 노래를 직접 번역하여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하였고, 호주 퀸즐랜드주 유일의 한인라디오방송국에서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가 필요한 시간(2016-2018)>을 진행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세대학교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동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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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가 필요한 시간의 마리횬입니다. 여러분, 요즘 손 잘 씻고 계신가요? 2월말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이 발발한 이후로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그 추세가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데요, 한국의 상황은 그나마 안정권에 접어들고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조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때문에 이번(2020년 초) 겨울에는 독감과 감기 환자의 수가 확연히 줄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코로나를 예방하려고 손을 자주 씻고 마스크를 모두 착용하고 지내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감기 바이러스가 활발히 옮겨지지 않았다는 것이죠. 손 씻기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 느꼈습니다.
오늘 왜 갑자기 손에 대한 이야기를 하냐구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읽을 시가 바로 ‘손’에 관한 시이기 때문이죠. 오늘 제가 가져온 시는 정호승 시인의 <손에 대한 예의>입니다. 제목부터 심상치가 않죠? 여러분은 평소에 ‘손’하면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악수하는 이미지나 하이파이브 하는 이미지도 생각이 나고,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와 같은 말도 생각이 납니다.
생각해보면 ‘손’이 의미하는 것이 꽤 많아요. 누군가의 손을 보면 때론 그 사람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죠. ‘인생’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사람의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어느 정도 손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손톱을 예쁘게 길러서 아주 화려한 네일 아트로 손을 꾸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 꾸밈없이 손톱을 바짝 깎는 사람도 있죠. 손만 보아도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약간은 비약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 손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면, ‘손에 대한 예의’라는 것은 어쩌면 곧 내가 지켜야 할 ‘나 자신에 대한 예의’와 같은 말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손’에 대해서 어떤 예의가 있을까, 우리는 손에게 어떤 예의를 지키면서 살아가야 할까.. 시인의 시를 통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손에 대한 예의
정호승
가장 먼저 어머니의 손등에 입을 맞출 것
하늘 나는 새를 향해 손을 흔들 것
일 년에 한번쯤은 흰 눈송이를 두 손에 고이 받을 것
들녘에 어리는 봄의 햇살은 손안에 살며시 쥐어볼 것
손바닥으로 풀잎의 뺨은 절대 때리지 말 것
장미의 목을 꺾지 말고 때로는 장미가시에 손가락을 찔릴 것
남을 향하거나 나를 향해서도 더 이상 손바닥을 비비지 말 것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지폐를 헤아리지 말고
눈물은 손등으로 훔치지 말 것
손이 멀리 여행 가방을 끌고 갈 때는 깊이 감사할 것
더 이상 손바닥에 못 박히지 말고 손에 피 묻히지 말고
손에 쥔 칼은 항상 바다에 버릴 것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한 손은 늘 비워둘 것
내 손이 먼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자주 잡을 것
하루에 한번 씩은 꼭 책을 쓰다듬고
어둠 속에서도 노동의 굳은살이 박인 두 손을 모아
홀로 기도할 것
♦ 귀로 읽는 시간-둘(재생버튼을 눌러주세요~)
네, 정호승 시인의 <손에 대한 예의> 들어보았습니다. 이 시에서 말하는 손에 대한 예의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우리의 ‘삶에 대한 충고’와 다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시가 조금 길지만, 주요 내용을 정리해보면 몇 가지로 묶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1) 부모님의 사랑을 늘 기억할 것
2)여유를 가지고 살며 자연을 사랑할 것
3)비굴하지 않은 선한 삶을 살 것
4)때론 나를 위해 고독할 것
시인이 가장 첫 번째로 꼽은 손에 대한 예의는 바로 어머니의 손등에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놓치기 쉬운 존재가 우리의 부모님이죠. 여러분은 언제 마지막으로 부모님의 손을 잡아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부모님과 따로 떨어져서 살다 보면, 전화나 메시지는 자주 할지 몰라도, 부모님을 찾아뵙는 시간을 자주 가지기는 참 쉽지 않은 요즘 젊은이들이죠.
부모님을 찾아뵙는다면 한번 부모님의 손을 꼭 잡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손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도 이만큼 자랄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시인이 ‘가장 먼저’ 지켜야 하는 손에 대한 예의로 어머니의 손등에 입을 맞추라는 항목을 거론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합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그 근원, 원천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니까요.
두 번째로 시인은 자연으로 눈을 돌립니다.
하늘 나는 새를 향해 손을 흔들 것
일 년에 한번쯤은 흰 눈송이를 두 손에 고이 받을 것
들녘에 어리는 봄의 햇살은 손안에 살며시 쥐어볼 것
손바닥으로 풀잎의 뺨은 절대 때리지 말 것
장미의 목을 꺾지 말고 때로는 장미가시에 손가락을 찔릴 것
위에서 말하는 자연을 어루만지는 손의 행위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데요, 바로 ‘여유’입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는데 하늘을 올려다보고 하늘에 나는 새를 향해 손을 흔들 수 있을까요? 여유가 없이 분주하게 살아간다면 겨울에 내리는 눈송이도, 봄에 내리쬐는 햇살도, 여름에 길 한편에 자라난 풀잎, 가을에 핀 장미도 그저 스쳐 지나칠 뿐 눈 여겨 볼 수 없을 것이고, 계절의 순간순간의 아름다움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삶이 될 겁니다. 그래서 시인은 분주한 삶의 한 자락에서 여유를 가지는 마음의 태도를 소유할 것을 충고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시인이 말하는 ‘손에 대한 예의’는 무엇이 있을까요?
남을 향하거나 나를 향해서도 더 이상 손바닥을 비비지 말 것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지폐를 헤아리지 말고
눈물은 손등으로 훔치지 말 것
손이 멀리 여행 가방을 끌고 갈 때는 깊이 감사할 것
더 이상 손바닥에 못 박히지 말고 손에 피 묻히지 말고
손에 쥔 칼은 항상 바다에 버릴 것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한 손은 늘 비워둘 것
내 손이 먼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자주 잡을 것
이 시를 읽다 보면, 말을 하지 않는 손이 때로는 어떤 언어보다도 더 많은 것을 전달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의 호의를 얻으려고 손바닥을 비빈 적은 없는지,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지폐를 헤아릴 만큼 돈에 현혹된 적은 없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의 손이 칼을 쥐는 손이 될 수도 있지만, 상처 입은 사람의 등을 가만가만 쓸어주는 손, 놀란 아이의 가슴을 토닥토닥 두드려주고 쓸쓸한 사람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시인은 비굴하지 않은 선한 삶을 살기를 충고하고 있죠. 이 시의 표현에서처럼 나를 위한 많은 것들을 쥐고 있더라도 한 손은 비워두고, 다른 사람의 손을 자주 잡아주길 바라봅니다. 그럴 때 우리 손은 어떤 언어보다도 더 마음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겠죠. 우리는 우리의 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요?
마지막으로는 ‘때로는 나를 위해 고독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읽어봅니다. 저는 마지막에 어둠 속에서도 … 홀로 기도할 것이라는 부분이 좋았습니다. ‘기도’라는 것은 여럿이 나누는 왁자지껄한 대화가 아니라, 나 홀로 절대자인 신과 나누는 고독한 대화죠. 그 시간을 통해서만이 얻어지는 통찰과 반성, 위로의 경험이 있기 마련입니다. 시인은 그 시간을 가지기를 충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둠 속에서도 노동의 굳은살이 박인 두 손을 모아 홀로 기도할 것이라는 시행은, ‘기도’의 시간이 노동자이건 회사원이건, 배운 사람이건 못 배운 사람이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내가 비록 어둠에 있더라도, 또 손에 박혀있는 굳은살처럼 내 삶이 녹록하지 않더라도, 인생에 어떤 얼룩이나 굳은살이 있다 하더라도 기도의 문은 늘 열려 있다는 거죠. 누구든 두 손을 모아 홀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것. 그것이 손에 대한 예의다. 이것을 끝으로 시는 끝이 납니다.
우리가 이 시에서 말하는 손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살아가면, 그건 곧 나 자신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사는 삶이 되겠죠.
이 시와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로 연주곡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우리나라 가곡 중에 <연(緣)>이라는 제목의 가곡이 있는데요, 그 멜로디를 첼리스트 정우리의 연주로 담은 곡입니다. 오늘 ‘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손으로 연주하는 악기들이 참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 첼로의 선율이 주는 묵직한 감동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가져왔습니다. 이 곡 들으시면서, 오늘 시를 통해 들었던 충고들 마음에 잘 담으시고 기억하면서 하루를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아이폰 팟케스트 <마리횬의 시와 음악공간(2012)>에서 러시아의 시와 노래를 직접 번역하여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하였고, 호주 퀸즐랜드주 유일의 한인라디오방송국에서 시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시가 필요한 시간(2016-2018)>을 진행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세대학교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동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