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고조선 역사가 없으면 한국사도 없다: 윤내현이 쓴 『고조선연구』

‘고조선 역사가 없으면 한국사도 없다.’ – 신채호 선생

:윤내현이 쓴 『고조선연구』

 

나태영(한철연 회원)

 

이 책은 900쪽이 넘는 책이다. 그런데도 현재 고등학교 『한국사』 고조선 부분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 『한국사』 고조선 부분은 4쪽에 불과하다. 고조선 관련 참고도서는 통사 몇 권에 불과하다. 왜 이리 되었을까? 바로 지금 주류 강단사학자들이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내현은 원래 중국 상고사 공부를 했다. 공부하다가 고조선 관련 사료를 자주 보게 되었다. 현재 주류 사학자들이 받아 들이는 내용이 크게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류 사학계에 자극을 주려고 『한국고대사 신론』이란 책을 출판했다. 하지만 주류 사학계는 그가 제기한 문제를 귀담아 듣지 않고 그를 미친 놈 취급했다. 이런 까닭으로 중국상고사 전문가 윤내현은 한국상고사 곧 고조선 전문가가 되었다.
 

지금 남아 있는 우리나라 역사 책 중에서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서 고조선이라는 이름이 맨 처음 사용되었다. 일연은 단군조선만을 고조선이라고 부르고 있다. 따라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 고조선은 단군조선에 대한 이름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옳다.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을 고조선과 똑같이 보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기자조선은 고조선의 서쪽 변경지대인 난하 하류 동부유역만을 차지했다. 위만조선은 고조선의 서쪽 변경지대인 난하에서 대릉하에 이르는 지역만을 차지했다.
 

고조선 나라 수명이 서기전 2333년〜서기전 108년까지라고 말한다. 위만조선이 서기전 108년에 망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옳지 않다. 위만조선이 망할 때도 고조선은 훨씬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며 나라를 유지하고 있었다. 위만조선의 영토는 난하에서 대릉하까지였다. 고조선은 서기전 108년이 아니라 서기전 100년 전후까지 유지된 나라이다. 고조선은 위만조선이 망한 서기전 108년부터 고조선 제후국이었던 부여가 독립국이 된 시기 사이에 망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동부여가 독립국이 되었던 해는 서기전 59년이다. 따라서 고조선이 망한 시기는 서기전 108년〜서기전 59년으로 봐야 할 것이다.
 

1. 여섯 가지 조선 윤내현 선생님은 중국 역사 기록물에 나오는 조선을 여섯 가지로 나눌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1) 고(단군)조선
(2) 고조선 안에 있는 고조선 직할국(진국: 단군왕검께서 직접 다스린 땅, 지금의 요하부터 청천강 까지, 대조영이 발해 세울 때 진국이라 나라 이름 지은 것은 고조선 직할국 진국을 이었다고 볼 수 있다.)
(3) 기자조선(난하 동부유역)
(4) 위만조선(난하〜대릉하)
(5) 한사군의 낙랑군 조선현(난하 동부유역: 『한서漢書』 「지리지」 <낙랑군> ‘조선현’조를 보면 조선현에 대해서 동한의 학자 응소가 이리 주석을 달았다. ‘무왕은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 낙랑군의 조선현에 주 무왕이 기자를 봉했다는 것이다. 기자가 조선으로 망명한 시기는 서주 초인 서기전 12세기 말 즈음이었고 한사군이 설치된 것은 서기전 108년이었다. 따라서 한사군의 낙랑군 조선현은 기자가 망명했던 곳이라는 뜻이다. 기자조선 영토는 난하 동부유역이었다. 따라서 한사군 낙랑군 조선현은 난하 동부유역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당나라 역사 책『진서 晉書』 「지리지」 <낙랑군> ‘조선’조에 ‘(조선현)은 서주가 기자를 봉했던 땅이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6) 고조선이 무너진 뒤 단군 일부 후손들이 살았던 지역(『후한서』「동이열전」 <고구려전>에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1천 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남쪽은 조선, 예맥, 동쪽은 옥저, 북쪽은 부여와 맞닿아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기록은 동한시대에 고구려 남쪽에 조선이 있었음을 알려 준다. 이 조선은 고구려와 국경이 맞닿아 있고 그 남쪽에 있었다. 때문에 그 위치나 영토 넓이로 봐서 고조선과 다른 조선임이 확실하다.) 중국 역사 기록물을 읽을 때 조선이 몇 번째 조선인지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고조선 관련 유물/ 출처: www.koreaikultura.hu

고조선 관련 유물/ 출처: www.koreaikultura.hu


 
세 가지 요동(遼東)
 
고대 요동의 위치를 올바르게 알아야 고조선 서쪽 국경선을 올바르게 알 수 있다. 고대인들에게 요동이 어느 곳이었는지 그 이후 요동이 어찌 옮겨졌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중국 기록물에 나오는 조선을 여섯 가지로 구분해 봐야 하듯이 요동에 대해서도 한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로 구분해 봐야 한다. 앞으로 한국 상고사 책 읽을 때 요동이라는 땅 이름이 나오면 주의 깊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1) 난하로부터 동쪽 지역
(2) 요하로부터 동쪽지역
(3) 중국 행정구역 요동군

 
(1) 난하로부터 동쪽 지역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난하로부터 동쪽 지역이었다. 지금의 북경에서 동북쪽으로 위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고대에 요수(지금의 난하)라는 강 이름이 먼저 생기고 그 강 이름을 기준으로 하여 요동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고대 중국인들은 그들 영토의 동쪽 끝을 극동(極東: 동쪽 맨 끝 땅)이라는 뜻으로 요동이라 불렀다. 요(遼)라는 한자를 한자사전에서 찾아보면 첫 번째 뜻이 ‘멀다’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그들 영토에서 멀리 떨어진 동쪽 땅을 요동(遼東)이라 불렀다. 요동은 그 대부분이 중국 영토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이었다.
 
(2) 요하로부터 동쪽지역
 
오늘날의 요동은 지금의 요하(遼河)로부터 동쪽지역을 말한다. 이것은 요동이라는 땅 이름이 동쪽으로 옮겨갔음을 뜻한다. 요수(遼水)도 두 가지가 있다. 전국(전쟁나라)시대, 진제국시대와 서한 초기까지는 요수가 지금의 난하였다. 동한시대(23년)부터 요수는 지금의 요하(遼河)이다. 따라서 동한시대 이전에 요동은 난하로부터 동쪽지역이었다. 동한시대부터 요동은 지금의 요하로부터 동쪽 지역이다.
 
(3) 중국 행정구역 요동군
 
『후한서』「동이열전」과 진수가 쓴 『삼국지』「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吏傳)」의 <고구려전>에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남쪽은 조선과 예맥, 동쪽은 옥저, 북쪽은 부여와 맞닿아 있었다.’
동한시대 이후 고구려는 지금의 요동지역에 있었는데 고구려가 요동으로부터 천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는 이 기록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기록에서 요동은 중국 행정구역인 요동군을 말하는 것이다. 서한 무제 때에 서한 영토가 넓어짐에 따라 요수라는 강 이름과 난하로부터 동쪽 지역이었던 요동이 동쪽으로 옮겨갔다. 지금의 요하로부터 오른쪽 지역으로 옮겨간 것이다. 하지만 행정구역인 요동군은 지금의 난하 유역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는 지금의 요하로부터 동쪽 지역이었던 요동에 있었지만 중국의 행정구역인 요동군으로부터는 동쪽으로 천리 떨어진 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조선은 고조선 무너진 뒤 고조선 왕족 포함 일부 세력이 살던 나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진(秦)나라와 한(漢)나라의 행정구역이었던 요동군은 난하 하류유역 일부에 불과했다. 『한서(漢書)』 「장진왕주전(傳)」에는 번쾌가 노관의 반란을 평정했다는 기록이 있다. 상곡군, 우북평군, 요동군, 어양군을 평정하고 장성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은 요동군이 장성 안의 중국 영토였음을 말해 준다. 이 장성은 진시황제 때 쌓은 장성이다. 이 장성은 서쪽으로부터 지금의 난하를 가로질러 갈석산에 이르렀다. 따라서 요동군은 장성 안 쪽, 즉 갈석산 서쪽의 난하 유역에 있었다. 위만조선과 국경이 맞닿아 있었다.
 
여섯 가지 조선과 세 가지 요동을 구별할 수 있으면 21세기 한국상고사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섦[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7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나를 매끄러운 지렁이의 틈사이라 불러도 좋고

나를 볼록해진 손가락이라 불러도 좋고

나를 한켠에 저릿하게 비어있는 이불이라 불러도 좋고

나를 가슴에 비어있는 노래라 불러도 좋다

그래서 텅 빈 나는 다시 채우는 빈 나이다.

 

김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

크기변환_이시대와철학2015-8 빈

 

 

사카구치 교헤가 쓴 『나만의 독립국가 만들기』[보고듣고생각하기]

노숙자분들이 우리들 스승이다:

사카구치 교헤가 쓴 『나만의 독립국가 만들기』

 

나태영(한철연 회원)

2015년 5월 5일부터 대략 세 달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처음 한 달은 컷팅 일을 했다. 건물 지하층과 옥상 콘크리트 바닥이 쪼개지는 걸 방지하기 위하여 1.5-2미터 간격 바둑판 모양으로 미리 콘크리트 바닥을 원형기계톱으로 쪼개는 작업이다. 약 90프로 지방에서 일했다. 하루 이동시간이 4시간에서 7시간이다. 어쩌다 한 번 오후 5시 퇴근했지만 보통 밤 9시 늦으면 밤 11시에 퇴근했다. 새벽 5시 반에 출근했다. 집에 와 씻고 맥주 한 잔 하면서 인터넷의 바다에서 놀다가 대략 새벽 1시에 잤다. 대략 4시간 잤다.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면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다. 건설현장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자고 나면 멍한 상태에서 조금 벗어난다.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하루는 1년 3개월 경력 반장, 나, 당일 처음 온 사람 세 사람이 마포구 공덕역 근처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일머리가 둔한 두 사람이 있었으니 일이 더뎠다. 당일 기준 사장이 건설주로부터 43만원 받았다면 비용 빼고 사장한테 떨어진 돈이 5만원 정도였다. 사장 입장에서는 서운했나보다.

 

사장: (여러 직원 있는 자리에서) “나태영씨가 공구를 못 챙겨서 공구 다시 가지러 오는 바람(20분 지체)에 오늘 일 느려진거야. 그런거 보면 나태영씨 일 파악하는데 1년은 걸릴 것 같아. 내가 공구 뭐 챙겨야할 지 하나 하나 적어서 줄 수는 없잖아. 퇴근한 뒤에 집에서 내일 일하는데 필요한 공구 미리 생각해봐.”

 

나는 이 말 듣고 열 받았다. 1. 여러 직원 앞에서 내가 무능력자라는 투로 말한 사실. 2. 공구 못 챙긴 책임이 나보다 1년 3개월 경력자에게 더 책임이 있는데 이제 겨우 한 달 되가는 내게 책임을 물었다는 사실. 3. 유치원생에게 말하듯이 비꼬아 말한 사실. 대략 세 가지 사실에 열 받았다. 퇴근 후 30분간 고민했다. 이곳을 그만둘지 아니면 이곳에서 계속 일할지 결론냈다. 이곳을 그만두기로. 다시 사장 찾아가서 당신이 나를 비꼬듯이 무능력자 취급해서 그만 두겠다. 일 파악하는데 1년 걸릴 사람 취급해서 그만 두겠다 그러니,

 

사장: “그 말은 1년 이상 함께 갈 사람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한 말이지.”

 

그 뒤 다른 건설 현장 일 하다가 일을 찾지 못해 쉬는 날이 많았다. 죽을 지경이었다. 자존심 죽이고 컷팅회사 사장한테 다시 일하게 해 달라고 말했다. 세 번 그리했다.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월급은 적지만 길게 일할 수 있고 덜 힘든 일자리를 잡았다. 화요일부터 일했다. 금요일 컷팅회사 사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다시 일하러 오란다. 좋은 말 해가면서 말이다. 과거에 서로 안 좋았던 일을 잊자고 말하면서 말이다. 고민했다. 안해 및 동료와 의논했다. 결론 내렸다. 컷팅회사로 다시 가서 일하기로. 일은 힘들어도 돈은 돼기 때문에 그리 결정했다. 금요일 저녁에 다니던 곳에 일 그만 둔다고 말하고 컷팅회사 사장한테 다시 가겠다고 말했다.

 

사장이 그런다.

“나태영씨 애처럼 행동해서는 안돼.

월요일 얘기 좀 하자구”

니미 거시기할놈 다니던 일자리 그만두고 전화했더니 튕긴다.

토요일 밤 컷팅회사 사장한테 알렸다.

“제가 애처럼 행동할 것 같아서 가지 않겠습니다.”

안해는 내가 컷팅회사 다시 다닐 줄로 안다.

 

나는 내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내 생각이 틀렸음을 나는 인정한다. 겉으로 봐서는 내 성격이 바뀐 것 같지만 결국 내 성격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한 번 사는 삶 꼴리는대로 살고’ 있다. 가족한테는 미안! 위 글 내용은 내가 이 책에 주목하게 된 까닭이다. 나는 고1 쌍둥이 딸 아빠이다. 7천 5백만원 보증금에 한 달에 30만원씩 내는 반 전세로 산다. 나는 우리 딸들이 학자금 대출 받으면서 대학 다니길 거부한다. 빚으로 사회생활 시작하길 거부한다. 그럼 우리 딸들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다녀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 대학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 학비 싸고 교수진 훌륭한 이 대학이 이 나라에서 너무 쉽게 무시당한다. 노숙자들은 맨 밑바닥에서 삶을 살아가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분들은 버려진 폐기물로 당신들 집을 짓는다. 이 책 글쓴이는 몇 만원 – 몇십만 원으로 멋진 집을 짖고 산다. 정치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 이 땅에서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책을 읽고 생각하는 길을 배워야 한다.

 

 

섦[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6

어른을 위한 동화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눈으로도 볼 수 없고

냄새로도 맡을 수 없고

맛으로도 알수 없고

귀로도 들을 수 없다.

그것은 착시를 일으키고

감정의 착각을 하고

분수를 넘은 오해를 하고

오류를 범하는 어른아이가 되는

마법의 성을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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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대와철학2015-7 동화

섦[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3

– 선 –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우리 내부의 무수히 많은 혈관은

외부로 연결되어 있는 선과 연결된다.

소통과 단절은 인체의 복잡한 선을 지나

선을 넘거나 지킬 때 외부와 내부는 끊어지기도 이어지기도 한다.

사회의 선이 막힐 때 삶의 소통은 끊어지고

안전선도 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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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2015-4월-1

 

섦[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2

고통과 절망에 대하여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삶의 고통과 좌절은 늘 우리의 욕구 안에 숨을 쉰다.

고통으로 좌절할 때 희망이라는 행복을 보고

행복할 때 또 다른 고통이 찾아와 좌절을 본다.

한 가지의 고통과 한 가지의 행복은

같은 나무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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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1

섦[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 1

– 섦, 그 현상에 대해서 –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익숙함이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새로움을 재인식하는 과정이고

있는 것은 언제나 변화하는 하나의 흐르는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받아들이는

본질적인 존재의 현상이다.  갇혀 있는 영역, 가두어둔 사고의 공간을 환기시키고

가상의 벽과 허상의 껍질을 벗기고 본질의 익숙함에 이르고자 한다.

그것을 섦으로 이름하고자 한다.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

 

크기변환_이시대와철학2015-2 copy

다수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위선[가동(可洞)선생의 삶의 철학]

영화 [거래(Arbitrage)]

?이 종철(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1. 영화는 종종 철학 수업이나 사유의 좋은 텍스트가 되기도 한다. 강의 시간에 좋은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름 깊은 메시지가 있는 영화는 생각하기를 자극한다. 요즘은 대학 강의실에서 영화를 이용해서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나도 강의를 할 때 1-2번 정도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고 학생들도 좋아한다. 좋은 영화는 웬만한 텍스트 이상으로 우리의 시야를 확장시켜 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며칠 전에 우연히 본 리차드 기어 주연의 <Arbitrage>라는 영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영화는 감독의 연출 의도 이상으로 곳곳에 해석의 여지가 많은 텍스트다. 문제의 정답을 이야기하려는 것보다는 그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http://evelin-hvezdy.blog.c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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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헤지 펀드(Hedge Fund)를 운영하는 로버트 밀러는 화목한 가정의 가장 역할도 충실하게 하고 있다. 그의 60회 생일 축하 자리에는 자식들과 손주들까지 두루 모여 즐거움을 함께 한다. 성공한 가장이 이룩한 화목한 가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의 부인도 그를 사랑한다고 한다니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에 있을까? 오래 살을 맞대고 살아온 부인의 인정과 사랑만큼 한 남자의 성취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것이 있겠는가?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열심히 일을 한 것은 모두가 가정을 위한 것이고 가정의 행복에서 가장 커다란 의미를 느낀다고 말을 한다. 사회적 성취를 이룬 데는 무엇보다 가정의 행복이 밑바탕이 되었고, 가정의 행복이야말로 성취의 궁극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와 개인이 분열된 근대 자본주의 사회 이래로 핵가족 사회에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이상일지 모른다. 공동체의 인정보다 가족의 인정이 더 일차적인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취했다 하더라도 가정적으로 불행하다면 부르주아 사회의 행복의 기준에서 그는 결코 행복했거나 성공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밀러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행복한 가장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그의 핸드폰에는 정부 (情夫) 줄리의 문자가 들어 있고, 그의 욕망은 업무 핑계를 대고 줄리를 만나러 간다. 완벽한 가정 속에 감추어진 커다란 구멍. 젊은 여성 줄리는 그가 투자한 갤러리의 대표이자 밀러의 숨겨둔 정부이다. 자신의 생일 축하를 받아주지 못하는 밀러에 대해 투정하는 장면이 보인다. 하지만 잠시 그들은 불같은 사랑을 나눈다.

 

3. 이어서 장면은 밀러가 처한 회사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그는 회사를 매각하려 하지만 상대방은 계속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밀러의 불안감을 더해 준다. 그는 이미 러시아의 동광에 투자한 많은 돈을 날린 상태다. 어려워진 자기 회사의 재정 상태를 감추기 위해 친구에게 4천억을 빌려 잠시 예치해 놓은 상태로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약속 기간이 길어지자 불안해진 친구가 그 돈을 돌려놓을 것을 재촉한다. 친구와의 채무 관계, 회사 매각의 지연 등으로 진퇴양난에 빠진 격이다. 사업상 통상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겠지만 이번의 경우는 지금까지 쌓아 올린 공든 탑을 하루 아침에 날릴 수 있다. 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무엇인가? 안정과 불안정의 차이에 있을까, 혹은 그것 너머 다른 차이가 있는 것인가? 모든 투자는 투기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복잡한 상황이 연출되자 그는 집에서 잠을 자다가 새벽에 줄리에게 간다. 줄리는 사람들과 파티를 하다가 밀러의 강압으로 친구들을 돌려보낸다. 채워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줄리의 안타까운 갈망은 밀러에게 투정과 비난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밀러는 자신의 가정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양립이 불가능한 유부남의 불륜이자 일탈적 사랑의 전형이다. 하지만 이런 사랑이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안정적 가정이 투자라면, 일탈적이며 위험이 크지만 매혹적인 불륜은 투기인가?

 

4. 그 때 밀러는 줄리에게 어디 먼 곳으로 도망가자는 제안을 한다. 그날 밤 둘은 차를 몰고 떠난다. 떠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잠시 머리를 식히려는 것인가, 아니면 총체적 난국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으로 완전히 증발하려는 것일까? 물론 사업가의 스마트한 두뇌가 후자를 선택할 가망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졸음운전을 하던 밀러에게 차량 전복 사고가 일어난다. 이런 상황은 물론 예외적 상황이리라. 하지만 모든 정상은 이런 예외와 비정상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차에서 간신히 깬 밀러가 옆 자리의 줄리를 보니 이미 죽은 상태다. 만약 그 사고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면 밀러는 불륜의 당사자로 그가 쌓아 놓은 모든 이미지에 먹칠을 하게 되고, 회사 매각과 관련된 비즈니스도 중단되고 마침내는 사기 횡령죄로 감옥에 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런 계산을 한 밀러는 줄리를 남겨두고 차에서 나오는데, 그 순간 차량은 화염에 휩싸인다. 이 때 밀러는 일전에 죽은 자신의 운전기사의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구한다. 물론 핸드폰이 아니라 흔적이 남지 않도록 용의주도하게 공중전화를 이용한다. 미심쩍어 하는 지미에게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톨게이트를 통과하지 말도록 당부한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투자와 관련된 합리적 판단으로 단련된 머리가 치밀하게 돌아가고 있다. 투기꾼의 합리적 사고는 어떤 상황에서도 계산을 멈추지 않고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을 지향하는 것이다. 지미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몰래 귀가한 밀러는 상처의 흔적을 지우고 조용히 아내의 침대로 기어들어간다. 밀러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서적으로 반응하기 보다는 차가운 이성을 통해 합리적 계산을 하는 냉정한 두뇌의 소유자이다. 고대의 윤리학의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분명 밀러는 탁월함(Virtue)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이런 탁월함조차 그 밑바탕에 선의지(Good Will)가 전제되어 있지 않다면 얼마든지 더 큰 악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탁월함이 큰 악덕(Bad Virtue)으로 전도될 수 있다는 의미다.

 

5. 이 사건을 담당한 형사 로스는 사고 당사자, 현장 주변과 통화 기록 등의 조사를 통해 부자 밀러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직감한다. 해서 밀러를 기소하기 위해 압박해 들어가는데 밀러는 여러 가지 증거 인멸과 알리바이를 통해 로스의 수사망을 빠져 나가려고 한다. 그는 자신이 현재 구속될 경우 회사 매각이 결렬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다칠 수 있다는, 일견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이유를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 한다. 그는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회계 부정까지 일삼는다. 목적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수단을 정당화하는 이런 태도를 우리는 도처에서 본다. 하지만 그가 처한 난처한 재정 상황은 이미 딸에게도 드러나 충분히 사기 횡령이 될 수 있다는 비난을 받는다. 이 문제를 가지고 딸과 언쟁을 벌인다. 회사의 회계 담당 이사인 딸의 입장이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비리를 묵인할 경우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고, 앞날이 막혀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부정의 당사자가 누구인가? 바로 친아버지가 아닌가? 법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육친의 정과 도리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딜레마이다. 밀러는 딸을 설득하려하기 보다는 딸에게 판단을 맡긴다. 자신의 태도를 정당화하고 강제하려는 우리의 정서보다는 그나마 낫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내가 보기에 유일하게 거래를 넘어서는 부분일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거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일까?

 

6. 그가 구속되느냐 아니면 빠져나가느냐의 열쇠는 이제 지미에게 달려 있다. 밀러는 지미에게 20억의 신탁 자산을 가지고 입을 막으려 한다. 반면 형사 로스는 지미의 차량 기록을 가지고 전과가 있는 지미의 협조를 압박한다. 상대는 돈과 권력을 갖고 있는 부자이고, 최고로 실력있는 변호사를 동원할 수 있다. 일개 수사관이 상대하기에는 벅찰 수도 있다. 무리수는 종종 이런 지점에서 유혹한다. 유죄에 대한 심증이 앞선 수사관은 증거 조작이라는 위법적 절차를 밟게 된다. 이런 증거로 인해 검사 역시 로스를 지원한다. 이제 지미가 진실을 털어 놓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인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반전의 묘미가 재밌다. 동일한 증거자료가 똑같이 반증자료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텍스트는 해석에 있는 것이 아닌가? 지미가 톨게이트를 통과한 적이 없다고 한 말에 주목한 밀러는 변호사를 동원해 차량 기록이 조작되었음을 밝힌다. 결국 영화는 위법적 절차이기는 하지만 진실을 찾으려는 형사 대신 다수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양심을 속이고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밀러의 손을 들어준다. 이 대목에서도 많은 생각을 일으킨다. 불법을 밝히기 위해 똑같이 불법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혹은 합법의 형태로 수사망을 빠져나가는 피의자를 멀뚱히 쳐다만 볼 것인가? 이런 형사 사건의 경우에서도 재벌을 상대로 하는 소송이 힘든데 일 개인이나 집단이 거대 로펌을 앞세운 재벌이나 행정당국과 어떻게 법적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까? 삼성반도체 공장의 노동자들, 태안의 기름 유출 피해자들, 쌍용의 해고 노동자들, 혹은 노동 현장의 파업으로 인해 손해배상소송에 걸린 노동자와 노조들 등, 법적 쌍방 간의 불평등과 불균형을 생각하다보니 끝이 없다.

 

7. 밀러의 부인은 밀러의 부도덕한 현실을 빌미로 재단을 딸에게 넘기도록 강요하지만 밀러는 그것도 거부한다. 마지막 부부간의 대화는 그동안 화목하고 행복했던 부부로 믿었던 것이 얼마나 위선이었고 다른 방식의 거래일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부르주아의 행복이란 것의 허구! 결혼은 성기의 배타적 점유를 위한 계약이라는 칸트의 말을 연상하게 한다. 그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계약이 깨졌을 때 부부관계는 새로운 형태의 거래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한편 밀러는 회계장부까지 조작한 회사도 강하게 배팅해서 성공적으로 매각한다. 결국 모든 상황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바꾸어 놓은 성공적인 비즈니스 맨의 모습이다. 거래(Arbitrage)는 쌍방 간의 가격 차이를 이용해 최상의 결과를 얻고자 하는 장사꾼들의 합리적 행동을 지향한다. 이 점에서 본다면 밀러의 행동은 성공적인 거래의 전형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가정에서도 그렇고, 불륜 상대인 줄리와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자신을 추적하는 형사와 위증을 통해 자신을 지지하는 지미와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성공적으로 회사를 매각하는 배팅에서도 그렇다. 위험천만하지만 그러나 성공적인 이런 거래의 이면에는 끊임없이 도덕적 정당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합법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부도덕한 현실, 그리고 왜곡된 진실의 모습…과연 진실이 무슨 의미이고, 돈과 권력의 역할을 무엇인가? 영화의 마지막은 그가 이런 모습의 전형임을 만천하에 보여주는 수상 장면이다. 수상을 발표하는 자리는 자신의 딸이 사회를 맡고, 딸은 밀러에게 더 할 수 없는 찬사를 바친다. 밀러는 부인에게 행복한 키스를 보내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수상을 축하하는 박수를 친다. 하지만 마이크를 건네주는 딸의 모습은 냉랭할 뿐이다. 겉으로 드러난 사람의 모습과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의 허구를 극명하게 대비시켜 준다. 성공한 이미지 정치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양면을 한 인격 속에서 무리 없이 잘 표현해준 배우 리처드 기어의 뛰어난 연기가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