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철연에서 현재 운영되는 연구분과의 분과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분과 소개나 분과 세미나 결과물, 또는 분과 개인들의 글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반짝이는 것 이면의 일그러진 것(자본론 에세이2 – 1장: 상품) [내가 읽는 『자본론』]

 

반짝이는 것 이면의 일그러진 것

 

김보경(경희대 사회학과)

 

내가 즐겨 입던 바지가 있다. 신축성이 아주 뛰어나고 춥지 않을 만큼 두꺼우며 덥지 않을 만큼 얇아서 4계절 내내 입을 수 있었던 바지였다. 바지의 큰 주머니 안에는 작은 주머니가 하나 더 있어서 동전이나 열쇠 같은 것을 보관하기에 편리했다. 그 바지에 유일한 단점이 있었다면, 그건 그 바지가 아주 잘 찢어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바지가 찢어지면, 같은 가게에 가 같은 바지를 샀다. 비싼 가격이 아니어서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바지는 3개월 정도 입고 다니면 어김없이 같은 부위가 찢어졌다. 사이즈가 나한테 작은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같은 바지를 새로 사고 버리기를 4번쯤 반복한 뒤, 나는 다시는 그 바지를 사지 않았다. 내 애정과 신뢰에 매번 실망만 안겨주는 바지에 이제는 질려버린 것이다.

나는 그 바지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 바지는 대체 왜 이렇게 잘 찢어지는 걸까? 이 바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리고 대체 어떤 기업이 이렇게 잘 찢어지는 바지를 만들고 싶어 할까? 어렸을 때 엄마는 종종 직접 내가 입을 바지를 만들어주시곤 했는데, 그럴 때면 엄마는 늘 가장 질긴 천을 사서 절대 찢어질 일이 없도록 박음질을 촘촘하게 했다. 하지만 이 바지는 왜 이렇게 나약한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패스트패션(Fast Fashion)에 관해 알게 되었다. 패스트 패션이란, 주문하자마자 음식이 나와 바로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처럼 최신유행의 의류를 세계적인 수준에서 짧은 주기로 만들어내고 저가로 대량생산·판매하는 상표와 업종을 말한다. 주로 젊은 층이 소비하는 H&M, ZARA, GAP 그라고 Benetton과 같은 기업들이다. 이들은 빨리 입고 버릴 수 있도록 낮은 질과 가격의 옷을 생산해낸다. 그래야 사람들이 옷을 빨리 버리고 곧 또 새 옷을 산다. 그게 이들 산업이 돈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이러한 패스트 패션 산업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환경에 미치는 예부터 몇 가지 들어보자. 말하자면 사실 끝도 없다. 패스트 패션 산업에서 하나의 면(綿)티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3,000ℓ의 물이 필요하고, 레이온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간 865억 그루의 나무가 희생된다. 버려진 면이 환경에서 분해되기 시작하기까지는 80년이, 폴리에스터는 수백 년이 걸린다. 평균적으로 우리는 패스트 패션 의류를 5번 내외로 입고, 35일 이내에 버린다.1 북미에서만 1년에 120억 톤의 의류 폐기물이 발생한다고 한다.2

이제 노동의 문제로 넘어가 보자. 세계적으로 6명의 노동자 중 1명이 의류산업에서 일한다. 그중 80%가 여성이고, 이들 중 2%만이 생계를 꾸릴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패스트 패션 산업은 개발도상국의 가장 값싼 노동만을 사용한다. 개중에 아동노동도 포함된다. 노동자 대부분은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 실제 사례로는 2013년 4월에 발생한 방글라데시의 의류공장 붕괴사건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은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Dakha)의 의류공장이었던 ‘Rana Plaza’가 붕괴되어 그곳에서 일하고 있던 노동자 1,100여 명이 사망하고 2,500명가량이 부상을 당한 참사였다. 대부분의 희생자는 어린 여성이었다. 방글라데시는 봉제 의류산업의 신흥 강국으로, 높아진 중국의 인건비를 대체할 인력시장을 찾던 서구 의류업체들의 진출지였다. 방글라데시의 시간당 임금은 24센트로 중국의 1달러 26센트3 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2013년의 사고가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한 첫 사고는 아니었다. 2006년부터 2010년 사이에 230여 개의 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해 500여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꼭 건물 붕괴의 위험이 아니더라도, 노동자들은 의류를 제조할 때 들어가는 각종 화학물로 인해 건강에 위협을 느끼며 노동해야 한다. 많은 노동자들은 피부질병, 호흡곤란 등의 문제에 시달리는데4, 이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썼던 당시의 노동환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옷을 사러 매장 안으로 들어가 가장 좋아하는 그 바지 앞에 섰을 때, 지금 내가 알아차린 것과 다르게 패스트 패션에 관련한 사실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또 그때는 앞으로 내가 자본론 에세이를 쓰면서 패스트 패션 산업에 대해 이토록 긴 설명을 늘어놓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도 못했다. 나의 이런 경험은 바로 마르크스가 1장에서 이야기하는 ‘물신’ 개념과 직접 관계한다.

마르크스는 1장에 걸쳐 여러 상이한 생산물이 어떻게 화폐라는 공통된 옷을 입게 되고, 그로 인해 자기들이 놓인 사회적 관계가 표백되는지를 다룬다. 그리고 그렇게 표백된 생산물들은 마치 복잡한 연애사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백마 탄 왕자님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선다. 오직 나만을 위해 나타난 왕자. 우리는 이 왕자가 우릴 비참한 현실로부터 구원해줄 거라고 굳게 믿는다.

마르크스는 우리의 환상을 깨고 왕자의 연애사를 낱낱이 밝혀냈다. 알고 보니, 왕자는 성에서 바로 말을 타고 달려온 것이 아니라 여러 장소와 여러 사람을 거쳐 많은 짓(?)을 저지른 후 나에게로 왔다. 그리고 왕자의 종착지는 내가 아니다. 그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 우린 감쪽같이 속았다. 왕자의 비유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다시 설명하자면, ‘왕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상품이고 왕자의 ‘복잡한 연애사’는 상품을 생산한 노동자, 그리고 모든 생산과정을 일컫는다. 왕자에게 아직 남은 ‘가야 할 길’은 상품이 내 손을 거쳐 간 후 다른 곳,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이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상품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는 것(물신)이 아니라, 그 배후에는 여러 사회적 관계가 얽혀있다는 의미이다. 마르크스는 물신을 환상, 또는 허상이라고 한다. 우리는 물건의 값을 지불하기만 하면 그 전과 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선 알 필요가 없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나는 세컨핸드(중고) 옷을 꽤 즐겨 입는 편이다. 1년에 몇 번 동묘나 광장시장, 명동의 중고 옷가게들을 돌면서 내가 좋아하는 밝고 강렬한 색감과 독특한 무늬를 가진 옷들을 건진다. 대개 거기서 판매되는 옷들은 거의 누가 입은 게 티가 나지 않는 중고 옷들이지만, 그중 몇은 헤진 데가 있거나, 희미한 얼룩이 져 있거나, 작은 구멍이 나 있다. 나는 그게 세컨핸드 나름의 매력이라 생각하고 개의치 않는다. 내가 교환학생을 다녀온 헝가리의 경우, 중고의류산업이 꽤 크다. 중고의류를 전문으로 다루는 ‘Humana’, ‘Creme’과 같은 체인들이 부다페스트 도심에만 수십 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세일하는 날이면 매장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하지만 내가 아는 많은 사람 중 중고 옷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의 손을 거쳐 갔던 것이라 찝찝하다는 이유에서다. 그 사람들은 깔끔한 새 옷을 사는 걸 선호한다. 물론, ‘손을 거쳐 갔다’는 것이 중고 옷과 새 옷에서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새 옷도 누군가의 손을 전혀 거쳐 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옷을 비롯한 모든 ‘새’ 상품은 상품사슬(Commodity Chain)을 거친다. 세계화 시대에서 그 사슬의 길이는 어마어마하다. 청바지 브랜드 ‘Calvin Klein’은 “나와 캘빈 사이엔 아무것도 없어요(Know what comes between me and my Calvins? Nothing!”5라고 광고하지만, ‘나와 캘빈 사이’에는 사실 아주 많은 것들이 있다. 예컨대, 미국에서 디자인된 데님은 베냉에서 자란 목화로 만들어져 독일에서 만든 염료를 사용해 이탈리아에서 직조되고 염색된다. 이 데님은 청바지로 가공되기 위해 바다 건너 튀니지에 보내지고 나중에 프랑스 소재 일본 기업에서 만든 지퍼를 달게 된다. 청바지의 주머니 안감으로 사용된 면은 파키스탄에서 재배된 목화가 사용되었고, 버튼은 독일에서 만든 황동으로 만들어졌다. 황동을 위한 구리는 나미비아에서, 아연은 호주에서 왔다. 청바지를 만드는 실은 영국, 터키, 헝가리에서 만들어졌고, 스페인에서 염색되었으며, 이 실을 위한 폴리에스테르 섬유는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완성된 청바지는 영국 리버풀의 한 의류 매장에 입고되어 소비자에게 판매된다.6 이 어마어마한 상품사슬은 인간사슬이기도 하다. 청바지의 모든 생산과정에는 노동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하나의 청바지 생산에 기여한다. 우리 중 누구는 세컨핸드 의류가 누군가의 손을 한 번 거쳤다는 이유로 찝찝해하지만, 이처럼 새 옷도 타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건 아니다. 우리에게 안 보일 뿐이다. 그래서 우린 찝찝하지 않지만, 그래서 또 우리는 어떤 상품이 생산되기 전과 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2만 원 내고 청바지를 사서 3개월 입고 버리면 끝이다. 더 이상 내가 지고 있는 빚은 없다.

물신을 인스타그램으로 이해하면 쉽다. 상품의 가격은 핸드폰의 좁은 화면을 통해 인스타그램이 선별하여 보여주는 아름다운 이미지에 불과하다. 화려한 이미지 뒤에, 그 이미지가 만들어진 과정이나 그 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가려져 있다. 다음 이미지들은 한때 온라인에서 화재가 되었던 이미지들이다.

이미지 출처: https://www.wrenkitchens.com/blog/kitchen-lived-perception-vs-reality/

인스타그램 속에서 보여 지는 것과 현실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를 풍자한 것이다. 우리의 삶은 아주 복잡한 사회적 관계들과 상황들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우리가 사진을 올릴 때는 그러한 것들을 곧잘 드러내지는 않는다. 우리의 가장 좋은 순간, 가장 아름다운 모습만을 내보이고 싶어 한다. 내가 팔로우 하고, 나를 팔로우하는 사람들과 대면하는 대신 삶의 파편으로서의 이미지들만 올리고 또 보면서 우리 모두의 삶은 퍽 괜찮은 삶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사는데 나만 현실이 시궁창’이라고 불평한다.

자본론을 읽으면, 마르크스가 특정 현상의 역사성을 살피는 걸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착취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화폐가 생겨나기도 전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착취가 발생하게 된 긴 역사든, 청바지가 나에게로 오기까지의 짧은 역사든 그 과정을 무시할 때 물신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착취를 눈감아주며 개인을 단절시켜 서로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느끼게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백마 탄 왕자는 연애사가 복잡하다. 이상한 놈한테 당하지 않으려면 캐물어야 하듯이 우리는 반짝이는 것 뒤의 일그러진 것, 인스타그램 사진 너머의 현실, 상품 이면의 노동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1. 허핑턴 포스트, 「The Problem With fast Fashion」, https://www.huffpost.com/entry/problem-fast-fashion_n_57ebfeafe4b0c2407cdb22c0

  2. https://www.bwss.org/fastfashion/

  3. 배윤정,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붕괴 사례로 알아본 기업의 사회적 책임」, CGS Report, 2013-11

  4. Shwowp, 「The Dark Side of the Fast Fashion Industry」, http://www.shwowp.com/the-dark-side-of-the-fast-fashion-industry/

  5. 광고의 맥락상 의역하면 섹슈얼한 의미다.

  6. 조철기, 「일곱 가지 상품으로 읽는 종횡무진 세계지리」, 서해문집, 2017-06-21

나의 무기 『자본론』 [내가 읽는 『자본론』]

나의 무기 『자본론』

 

최재식(경희대 철학과)

 

“이것은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마르크스가 『자본론』 제1독어판 서문에서 순진한 독일 독자들에게 일갈하는 대목이다. 『자본론』이 나온 지 벌써 150여 년이 지났지만, 또 내가 지금 살아가는 곳은 『자본론』의 배경인 유럽이 아니라 대한민국 땅이지만, 이 일갈은 2020년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도  ̄물론 전 세계 사람들 모두에게도 ̄ 유효한 언명이다. 『자본론』의 문제의식은 아직까지 해소되지 않았다. 각자가 살아가는 조건이 다른 만큼, 『자본론』도 다르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질 것이다. 나는 나의 조건에서, 2020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학생의 입장에서 『자본론』을 읽고, 그에 관한 글을 쓸 것이다. 본격적으로 그러기에 앞서, 나와 내가 살아가는 시공간과 『자본론』에 관해,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는 현재 전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반대한다. 또한 『자본론』이 가진 문제의식의 근원인 자본주의 체제의 내적 모순은 지금까지 결코 해소된 적 없으며, 앞으로도 자본주의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딱히 『자본론』을 읽어서 이런 ‘빨갱이’가 된 건 아니다. 『자본론』은 나의 그러한 사상적 입장을 날카롭게 벼릴 수 있게 해주는 숫돌이지, 결코 경전이 아니다. 내가 그런 생각을 가졌기에 굳이 그 두껍고 문체도 건조한 『자본론』을 꾸역꾸역 읽은 것일 게다.

그럼에도 『자본론』은 내 인생의 책 중 한 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담고 있지는 못하지만, 내가 짧은 삶을 살아오면서 가졌던 여러 문제의식에 공명해주는 가장 강력한 책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 사회에 의문을 가지고 살았다. 처음에는 그냥 가진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었고,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철이 들어가면서 ‘그냥 그런가봐’ 하면서 복권당첨을 꿈꾸며 자기 앞에 닥친 일에만 신경 쓰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남들보다 덜 철이 들었나보다. 부러움과 동정은 세상에 대한 분노로, 세상에 대한 분노는 인생에 대한 의문으로, 인생에 대한 의문은 체제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다.

여기에는 내 주변 환경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내 주위에는 항상 집안 형편이 여유롭지 못한 친구들이 있었다. 사회는 항상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도 노력하면 돈을 벌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친구들을 보았을 때, 나는 그런 사회의 선전이 곧 거짓임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명문대 출신들에게 고액과외를 받을 때 그들은 동네 허름한 보습학원을 전전했고, 다른 친구들이 방학마다 해외여행을 다닐 동안 동네PC방에서 시간을 때울 뿐이었다. 나름 여유로운 형편의 친구들은 집에서 용돈도 받으면서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할 때, 그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제대로 된 자기 시간을 보내지도 못했다. 그러니 그들은 대학은 꿈도 못 꾸었으며, 중·고등학교도 어영부영 다니고 바로 사회로 나가야 했다. 그런데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나는 이 말이 정말 싫다.

대학에 와서 더 적나라하게 느꼈다. 지갑이 두꺼운 사람과 지갑이 얇은 사람은 생각하는 게 다르다. 요즘 시대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디에 있냐고들 한다. 그런데 진짜 밥을 굶다시피 하는 사람들을 나는 많이 봤다. 단 몇 천원이 아쉬워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비싼 서울 방값을 마련할 방도가 없어서 고시원을 전전하고 친구 하숙집에 몰래 얹혀살다시피 하는 대학생이 2020년 대한민국에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에게 미래는 밝은 꿈이 아니라 어두운 현실이다. 20대의 꿈도 지갑이 두꺼워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다. 노력이 부족해서 그러하다고들 한다. 그런데 노력만으로 이러한 삶을 벗어나려면 인간으로 살기를 포기해야 한다. 학교 수업 외 모든 시간 노동을 해야 하고, 그러면서 공부도 해야 한다. 점점 가진 자에 대한 부러움은 시기로 변했고,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은 내가 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절망적인 고민으로 변해갔다.

더 가진 자에 대한 시기와 덜 가진 자에 대한 동정은 돈 못 별면 사람대접 못 받는 세상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결국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그랬다. ‘내 고민의 근원에는 자본주의가 있구나.’ 그렇게 살아왔다. 어쩌다 『자본론』을 읽게 되었다. 그냥 열심히 읽었다. 무언가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읽었다. 1권을 다 읽었다. 별 답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었다. 일상의 당연했던 문법들이 낯설어졌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실을 설명할 하나의 실마리를 잡은 느낌이었다. 200년 전 태어난 털북숭이 독일인 아저씨에 공명하는 순간, 그 순간 나는 『자본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자본론』을 철 지난 헛소리로 취급한다. 그러나 이미 나는 보았다. 여전히 일만 해서는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어디선가는 4차산업혁명을 대비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현상에 불과하다. 세상이 어찌되든 간에 노동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와 같은 대학생들 역시 정교하게 따져본 적도 없고 투철한 계급의식도 없지만 본능적으로 자신들이 미래에 임노동자가 될 것을 알고 있다. 그러기에 기업체가 요구하는 ‘스펙’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겠는가? 결국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른 빈부격차는 전혀 해소되지 않았고 해소될 여지도 없어 보인다. 아직까지 『자본론』은 현재 그리고 어느 정도의 미래까지 우리가 처했고 처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다.

이러한 나의 생각에는 동의하는 사람보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들을 앞에 두었을 때의 나의 심정을 이 글의 맨 앞에 인용한 문구가 대변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 『자본론』을 펼쳐들고 읽으라 강제하고 싶었다. 당신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게 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고, 당신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비극이 필요한지 알고 있냐고, 왜 남들 살라는 데로 살아야 하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물론 처음의 분노처럼 계속해서 감정이 끓어 넘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읽으면 읽을수록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론』은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담은 책도 아니고, 진리가 담긴 경전은 더 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자 고민하기보다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는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는 기회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다. 내가 살아가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치열하고 엄밀하게 고민하고 사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계속해서 느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쓴다. 나와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배우면서 나 자신을 성장시키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바람이 크다.

맨손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순 없다. 나 혼자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도 없다.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끊임없는 실천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도구가, 무기가 필요하다. 나는 『자본론』이 그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자본론』은 무려 시대의 삶을 바꾸었다. 그런 책은 드물다. 자본주의가 살아있는 한,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가 계속되는 한, 『자본론』은 그 대안을 모색하는 길잡이로서 가장 유의미한 논의로 남을 것이다. 지난 150년간 그래왔으며,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자본론』이 제기한 문제의식의 원인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수억 달러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와중에, 수천만의 사람들이 하루 1달러로 연명하는 세계가 지속되는 한 『자본론』의 생명력은 결코 다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세계 전체를 망라하는 경우가 아닌 우리 삶의 작은 조각에서도 『자본론』은 우리의 무기가 되어준다. 대학 못 가면 인간 대접 못 받는 사회가 절망적이라면, 그래서 꾸역꾸역 대학 갔더니 졸업하고 취직도 안 되는 현실이 지긋지긋하다면, 인간을 돈으로만 보는 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겠다면, 겨우겨우 취직하니 일만 하다 죽을 것 같다면, 이 이상한 삶을 끝장낼 무기로 『자본론』을 사용해보자. 답을 얻지는 못해도 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찾을 수는 있을지 모른다.

이 글은 나 자신에게 하는 약속이자, 내 친구들을 위한 약속이기도 하다. 나는 집도 없이 한 끼 한 끼 겨우겨우 먹고 살아가는 내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자본론』을 나의 무기로 삼아 나아가겠다. 언젠가 세상은 나아지겠지만, 또 나아져야만하겠지만, 그 과정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갈려나가는 순간의 연속일 터이다. 그 희생과 헌신에 나의 보잘것없는 노력도 함께할 것을 다짐해본다.

2000년생 김필진이 읽는 『자본론』 [내가 읽는 『자본론』]

2000년생 김필진이 읽는 『자본론』

 

김필진(경희대 철학과)

 

마르크스의 『자본』, 이른바 『자본론』이라 불리는 책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가? 당신의 머릿속을 불현 듯 스치는 불온서적이 있다면 유추하는 그것이 맞다. 실제로 주위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면 “얼핏 들어본 거 같은데… 마르크스 어쩌고 하는 고전책 아냐?” 정도의 배경 지식이 담긴 답변도 거의 듣기 힘들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올해로 만 20세가 되는 대한민국의 2000년생 남자다. 물론 제목의 ‘김필진’도 동일 인물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내 나이 또래의 대한민국 사람에게 2020년 1월 현시점에서 『자본론』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면 더욱 저조한 반응이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은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그래도 개중에는 소싯적 신문의 정치면 사설 좀 읽어왔다며 그 불온서적에 대해 아는 체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이들에게 특별히 한마디 해주고 싶다. “나 요즘에 바로 그 『자본론』 읽어요.” 그들의 대답은 비교적 비슷할 것이고 예측 가능하다. 빨갱이냐고 묻거나 아직도 그걸 읽는 사람이 있냐고 답할 것이 확실하다. 21세기 현재, 스스로 좌파임을 자부하는 이들에게까지도 외면 받는 책이 바로 『자본론』이다. 그걸 읽고 있다. 아직 새파랗게 어린 대학생이 말이다. 왜? 나는 왜 『자본론』을 읽고 공부하는 것일까?

‘금기’ 나는 금기라는 벽과 그 너머의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활달하고 동네에서 알아주는 말썽꾸러기에 싸움쟁이였다. 학교 끝나면 가방 던져놓고 아파트 주차장에서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공을 찼고, 학급 내 주먹질 다툼은 월례행사였다.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다 주차된 차의 백미러를 깨먹는 일 정도는 큰 사건도 아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모범적이고 올바른 삶과는 거리가 있는 인생을 살아왔고, 꽤나 반항적인 편이었다. 부모님은 이런 나의 모습에 속을 태우셨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런 나의 삶에 변화를 주기 위해, 학생으로서의 쇄신을 위해, 목동 7학군으로 이사를 결정하셨다. 나는 강하게 반발했지만 이미 내려진 결정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이 일은 내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평생을 살던 곳을 떠나 첫 교복을 입게 된 동네는 내가 살아왔던 곳이 아니었고,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과거의 나를 인정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결정적으로 목동의 치열한 학구열은 나의 평범한 하루하루들을 옥죄어왔다. 버티기 버거웠다. 학교를 안 가다시피 한 적도 있었다. 신경성 복통에 하루를 멀다하고 입원했음은 물론이요, 우울증에 불안-강박증, 심리 상담까지, 몸도 마음도 상했고 그야말로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 시기도 있었다. 내 학창시절은 산산조각이 났고, 중학교 시절에 사귄 친구는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많이 다퉜다. 아버지의 이사 결정이 내 삶 자체를 망가뜨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가 조금씩 커가며, 대학 입시라는 거대한 사회적 괴물이 아버지의 그러한 판단을 이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생김과 동시에 ‘자본주의’라는 엄청난 놈의 존재를 피부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자본론』은 이 무렵에 내가 접한 여러 종류의 불온서적 중 하나였다.

『자본론』과 나의 첫 만남은 내가 살아온 맥락 위에서 어쩌면 필연적으로 예정되어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이 당시에는 『자본론』을 깊이 있게 이해하거나 공부하지는 못하였으며,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김수행 선생님께서 지으신 『자본론 공부』 등의 가벼운 책들로 흥미를 키워갔다. 결정적으로 『자본』의 저자 마르크스/엥겔스의 다른 저술, 이를 테면 『공산당 선언』이나 『독일 이데올로기』, 『경제학-철학 수고』의 요약문 등 인간적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상처받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나의 고통과 불만, 피해의식을 보듬어 내 잘못이 아님을 다독여준 것은 다른 누구도, 그 무엇도 아닌 털보 할아버지와 ‘소외론’이었다. 나는 그들의 휴머니즘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의 눈에 그러한 책들은 그야말로 파격이었고, 내 안에 꿈틀대던 금기에 대한 호기심을 완전히 충족시켜주었다. 금기의 벽은 사회에 대한 나의 반항심만으로는 꿈적도 않더니, 내 손에 낫과 망치가 쥐어진 순간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내 『자본론』이 내 머리 속에 들어오자, 금기의 벽은 마침내 허물어지고 부서져 사라져버렸다. 공차는 것을 좋아하던 반항아는 수많은 고통의 시간들 끝에 결국 벽을 넘어서고야 만 것이다.

누구보다 시끄러운 사춘기를 보내고 어느 새 나는 대학생, 새내기의 문턱에 있었다. 그렇게 앙망했던 경희대학교에 입학해 보니, ‘이까짓 대학이 뭐라고 나는 그렇게 망가졌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뿐이었다. 학교를 쉬거나 그만두기도 했고 가족들과 갈등을 겪기도, 사랑하는 것들을 잃기도 했고,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던 이유는 결국 대학 입시에서 시작되었었기에 더욱 허망했다. 그토록 강요받던 ‘인서울 4년제’, ‘국내 TOP10 대학’은 그 무엇도 보상해주지 못했다. 허망함으로 방황하던 첫 학기, 나는 교양 수업으로 수강하게 된 ‘고전 읽기 : 『자본』’ 수업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여전히 내 몸과 마음에는 완전히 아물지 못한 상흔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고, 내가 이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 또 공부하고 싶은 것들, 내가 나아가야할 길, 그리고 내가 싸워내야 할 것들이 보다 명료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계속 나를 우울의 늪으로 빠뜨리기엔 내 인생이 너무 불쌍했다. 그간 꾸준히 놓지 않았던 『자본론』 등 여러 불온서적을 또 다시 꺼내든 나는, 우울한 이 세상의 무자비함에 당하고만 있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의 대학 신입 생활은 『자본』과 함께하게 되었다.

『자본론』은 개인적인 내 정서의 흐름과 밀접히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 뿐만은 아니었다. 대학생, 성인, 사회인으로서 내가 만난 세상은 내 경험과는 무관하게 『자본론』의 필요성을 꾸준히 증명해주었다. 알바생으로서, 대학생으로서, 국민으로서, 철학전공자로서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자본론』으로 명쾌히 답변이 가능한 미스터리들이 많았다.

우선 대한민국의 20대가 가장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문제는, 알바와 같은 실제적 임노동 상황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대학교 1학년이었던 2019년 한 해 동안 꾸준히 알바를 해왔다. 2020년에도 알바를 계획 중인데, 최저시급이 오른다고 한다. 뭔가 이상했다. 2020년의 최저시급 인상은 진작부터 결정되어 있었을 터인데, 나는 2019년 한해 8,350원의 최저 시급에 내 노동력을 판매했다. 그렇다면 내 노동력과 교환되어야할 값어치만큼의 최저임금이 8,590원으로 사전에 판단/책정되었던 것은 2019년이나 혹은 그 이전일 것이고, 이를 토대로 2020년의 최저임금인상을 예정해둔 2019년 당시에도 나는 (그 보다 적은 값인)8,350원에 내 노동력을 판매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그 차익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는가? 아니 그보다, 내 노동력의 값은 분명히 고정되어 있을 텐데 왜 엉뚱한 이들이 이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일까? 도대체 무슨 권리로? 내 노동력의 값어치는 8,350원이 맞는가? 8,590원이라고 단언할 수는 있는가? 나는 매달 매해 항상 똑같이 노동력을 생산해 판매하는데, 해가 바뀐다고 그 교환의 등가 값어치가 바뀌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수많은 궁금증과 의문들이 내 머릿속을 메웠다. 알바 하는 또래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누구 하나 명쾌히 답을 주지 못했다. 내 질문으로 인해 비슷한 의문을 함께 품게 된 친구도 있었다. 『자본론』은 이에 대해 간단하고도 무서운 대답을 슬그머니 제시하고 있었다. “가격은 가치와 다른 것이고, 내 노동력의 가치는 불변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 ‘가치’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자본론』은 설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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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자본론』의 예리한 통찰은 나아가 대학생으로서 김필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김필진에게도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다. 우선 『자본론』 제Ⅰ권 제1편 제1장 4절에서 마르크스는 ‘물신숭배’에 대한 언급을 제법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물신숭배’란 단적으로는 사회적 관계가 투영되어 있는 물건에 인격을 부여해, 물건이나 상품 그 자체를 숭배하거나 인격화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같은 맥락의 의미를 지니며 그 대상이 상품(물건)에서 일종의 상품인 ‘화폐’로 바뀐 ‘화폐 물신성’ 또한 함께 설명되고 있다. 사실 이렇게 어렵고 와 닿지 않는 용어들을 사용하면 그 참된 의미와 현실성을 체감하기 힘들다. 다만 위의 서술처럼 간단하게나마 그 핵심 의미를 인지하고 우리 주위의 현실 세상을 둘러본다면, 상당히 많은 것들이 『자본론』 속의 ‘물신성’과 닮아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극도로 고도화 되어가는 이 시점에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더욱 더 그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결국엔 돈이 이 세상을 지배한다.” “돈이 최고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 “XX브랜드의 상품은 정말 우아하고, 그것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 “YY 회사의 제품은 그 스스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우수하다.” 등등. 사실 이러한 문제는 깊게 고민해보지 않아도, 위와 같은 주위의 사례들을 충분히 생각해낼 수 있다. 돈과 상품이 그 자체로 처음부터 어떤 가치를 내재하고 있다고 믿으며, 돈과 상품의 신비성을, 그것들을 인격화하여 숭배함으로서 해명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적 맥락 속에서 돈과 상품이 불러오는 이로움을 돈과 상품 자체에 내재된 속성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물신성’의 환상은 일반 대중들의 무의식 속에서 자연스러운 것으로 내면화 되어왔다. 특히 돈과 상품에 예민한 20대 대학생들을 둘러보면 그 양상을 더욱 뚜렷하게 파악할 수 있다. 『자본론』은 우리가 무의식에 내포하고 있던 그릇된 환상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저술과 자본주의적 ‘물신성’에 대한 고찰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지구 반대편 여기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로 자본주의적 모순의 맥을 꿰뚫고 있다.

그렇지만 『자본론』의 내용이 이러한 일반론적 원리와 세계를 구성하는 포괄적 메커니즘에만 포커스를 두는 것은 아니다. 『자본론』의 여러 파트에서는 당대 유럽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자본주의적 착취의 실태를 낱낱이 서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내가 인상 깊게 기억하는 부분은, (간단히 말해서) 영국 북부의 공장주들이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값싸게 하기 위해, 아일랜드나 영국의 각종 농업지의 갈 곳 없는 이들과 농민들을 마음대로 잡아다 날라서 노동력의 공급을 증폭시켰다는 내용이다. 사안의 비인간성과 잔혹함뿐만 아니라 내가 해당 내용을 인상 깊게 여기는 까닭은 그 현재성에 있다.

얼마 전 선배를 통해 알게 된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는 여러 가지 부분에서 「자본」에 등장하는 위의 영국의 사례와 닮아있다. 2020년 현재 고용노동부에 의해 대한민국에서 실행되고 있는 제도인 ‘고용허가제’는 해외에서 우리나라로 이주해 일을 하고자 하는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제도이다. 이 제도는 공장주나 사업주들이 고용노동부에 노동력 공급을 요청하면 고용노동부에서 지원 받은 이주노동자들을 선별해 뽑은 뒤 양측을 연결해 사업주에게 노동력을 제공해주는 형식을 취한다. 이때 해외에서 한국까지 날아온 노동자들은 자기가 일하게 될 곳이 어떠한 곳인지, 어떤 사람이 자기의 고용주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근로하게 되며, 자신이 일할 직장을 선택할 권리도 없다. 또 이직은 3번으로 제한되며, 이를 어길 시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된다.

한마디로 강제노동에 가까운 이러한 제도는, 스스로 선진국임을 자부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의 나는, 내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 아직도 『자본론』에 등장할법한 말도 안 되는 노동법이 살아 있음에 매우 분개한다. 착취와 억압으로 얼룩진 위와 같은 제도를 떠받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나는 계속해서 『자본론』을 읽고 ‘고용허가제’와 같은 비인간적 착취 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이어가야할 책임감을 느낀다.

내가 계속 강조하는 것처럼 『자본론』은 2020년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도 보편적인 현재성을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앞서 제시한 ‘최저시급’과 ‘고용허가제’의 두 가지 사례는 그 현재성의 단편적이고 구체적인 양태라고 생각한다. 그 두 가지 사례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의미에서 내가 『자본론』을 계속 공부하는 동기를 부여했다.

약간은 다른 맥락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현실적 동기도 존재하는데, 내가 철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철학을 전공한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비판 서적인 『자본론』에서 철학도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자본론』의 전체를 관통하는 ‘노동가치설’은 논의의 시작부터 ‘가치’라는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철학적 사유를 동반한다. 물론 ‘노동가치설’이 철학적 이론이거나, 철학적 사유가 뒷받침이 되어야만 학설을 전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실제적인 ‘가치’의 형성과정이 그 근본 맥락의 시발이다. 다만 경제학의 주류가 ‘효용가치설’이고 ‘가치’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보편적 관념이 지배하는 현 시대에 ‘가치’의 참된 의미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노동가치설’에 다가가기 위한 첫 단추로서 필요할 것이다. 그냥 아무 일이나 한다고 해서 전부 다 가치를 만드는 노동인 것은 아니며, 가격이 높고 수요가 증가한다고 해서 그 상품의 ‘가치’가 높은 것은 아니라는 주장은 깊은 사색과 고찰 속에서만 일반적인 경제상식의 문을 깨부수고 나올 것이다.

철학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상품의 가치는 (사회적으로 유용성을 띠는) ‘노동’에 의해서 형성되며, 따라서 ‘가치’를 생산해내는 유일한 원천은 인간의 노동력”이라는 식의 인간애의 사유는 충분히 공부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어린 시절 한창 교복 입던 때의 나를 따뜻하게 달랬던 마르크스의 휴머니즘은 『자본론』의 커다란 맥락과 흐름에도 녹아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자본론』을 읽는 또 다른 이유이다.

지금까지 『자본론』에 관한 이야기는 내 개인의 삶과 그 외부에 실재하는 자본주의 세계 간의 관계망에서 서술을 해봤다. 나는 나의 개인적인 일들을 구체적 사례로 삼아, 이 세상에 넘쳐나는 불의를 설명하고자 노력했고, 또 같은 맥락에서 『자본론』을 공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내가 『자본론』을 계속해서 읽고 공부하는 이유는 내가 살아왔던 삶에서 기인한 자연스러운 필연성의 이유와, 현실적/현재적 유효성의 이유, 이렇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20대로서 내가 살아왔던 삶은 마르크스주의 인식에서 사회의 불의와 맞닿아있었으며, 『자본론』은 그러한 문제의 본질과 그 현실적 해결법의 실마리를 담고 있는 생동감 넘치는, 그리고 현재성이 충분한 책이었다. 그것이 내가 계속 『자본론』을 읽게 하는 원동력이며,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하는 동기이기도 했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에 주목하는 영향력 있는 큰 정치세력도 존재하지 않으며, 노동가치설은 전 세계의 경제학도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이제는 커다란 계급적 혁명도 일어나지 않으며, 화폐물신화는 이미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사고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자본론』을 읽는다. 뉴스와 신문, 정치인과 이웃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은 듯 주입하는 사고방식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면, 전혀 다른 세상이 보이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가장 최선의 상태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맞을까? 정녕 대안을 찾을 수 없는 최고의 시스템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가? 착취와 억압은 정말로 이 세상에서 사라진 걸까? 다양한 관점을 견지해보고, 열정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져본다면, 이 세상은 다르게 보일지 모른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느껴지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인간의 살아 숨 쉬는 가능성을 정치와 철학 속에서 찾고 싶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자본론』을 권할 것이다. 틀에 박힌 관념에서 벗어난 뒤에야 맛볼 수 있는 떨림, 세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뜨거운 열정과 버무려진 그 떨림에, 2000년생 김필진은 오늘도 『자본론』을 펼친다.

내가 자본론을 공부하는 이유(자본론 에세이1) [내가 읽는 『자본론』]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하는 세 명의 대학생이 『자본론』을 읽기 위해 모였다. 지금까지 살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자본론』을 읽으며 더 선명해지고 확실해졌다. 앞으로 『자본론』을 읽으며 읽은 내용이나 이들에게 남은 살아있는 얘기들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남기려한다.

 

 

내가 자본론을 공부하는 이유

 

김보경(경희대 사회학과)

 

  모든 일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을 독일에서 보낸 나는 2008년에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담임선생님께서는 교실 앞에 앉아 우리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셨고, 우리의 시험은 우리만의 동화를 써서 내는 거였다. 이렇듯, 맨날 숲에서 뛰어놀고, 흙 놀이를 하며 나무를 타다가 한국의 초등학교에 적응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첫 중간고사 광경은 나한테 신기한 경험이었다. 시험을 볼 때 우리는 가림판을 책상 가운데에 세워놔야 했고, 옆 반 담임선생님이 우리 반 시험감독으로 들어오셨다. 시험은 아주 엄격한 일종의 경건함 속에서 이루어졌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복도에서 쉬고 있는데, 그 당시에 제일 친하게 지냈던 지희가 내게로 왔다. 지희는 배실배실 웃으면서 “보경아, 우리 같이 63빌딩에서 뛰어내릴래?”하고 물어봤다. 깜짝 놀라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중간고사를 망해서 그렇다고 한다. 농담처럼 웃으면서 했던 그 친구의 말과 표정은 아직도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는 겨우 12살이었다. 우리 사회에 뭔가가 대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쉬는 시간에도 수학의 정석을 푸는 애들을 보면서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같이 어엿한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는 독일의 친구들은 수영을 배우고, 숲으로 현장학습을 나가며 시 쓰는 법을 배우면서 한층 더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한국의 나는 의자에 꼭 붙어서 떨어질 수가 없었다. 떨어지는 순간 엄청난 공포와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사춘기의 불안함과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맞물리면서 친구들은 서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노트필기 하나 보여주지 않는 치사함, 등수와 내신 등급에 대한 사소한 거짓말들, 그리고 질투가 다분했다. 제일 친했던 친구는 나한테 “너 그렇게 살다가 좋은 대학 못가.”라는 말을 밥 먹듯 했다. 나는 공부를 못해서 돈을 내고 방과 후 수업을 들어야했는데, 어떤 아이들은 ‘특별반’에서 심화 수업을 들었다. 창문 너머로 본 아이들은 지쳐있었지만, 다른 아이들과 섞이면 왠지 당당하고 반짝였다. 저렇게 똑똑해져만 가는 친구들을 언제 따라잡나 싶었다. 정말 내 인생은 망하게 될까? 전교 135등이라는 내 등수는 지지리도 나를 괴롭히고 우울 속으로 몰아넣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정신병원에 다녀야 했고,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도 불안증에 시달려야 했다. 어른들은 일하느라, 친구들은 공부하느라 바빴다. 모두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듯했다. 외로웠다.

 

  고등학교는 혁신학교에 다녔는데, 사실 학교가 나한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혁신학교가 내가 원했던 고등학교가 아니어서(나는 독일어를 배우기 위해 외국어 고등학교나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다) 중학교 졸업식 날 배정표를 받을 때 친구들과 함께 엉엉 울고 난리를 쳤다. 거짓말 안 하고 그 학교에 배정받은 모든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졸업식 때는 슬퍼서 울어야 하는데, 우리는 중학교 3년이 끝나는 걸 아쉬워할 겨를도 없이 걱정만 했다. 그 당시 설립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던 혁신학교는 날라리들이 많고 공부 못하는 애들만 가는 학교라서 거길 가면 인생이 망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입학생들이 1년 내로 전학을 갔다. 하지만 첫 수업시간, 사회과목 선생님께서 박하사탕 한 봉지를 들고 오셨다. 사탕을 하나하나 까서 학생들 입에 넣어주셨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보자.’라고 하셨던 것 같다. 그것은 좋은 징조였다.

 

  나는 혁신학교에 다니면서, 세상에는 종이 위에 찍히는 성적표 말고도 중요한 가치가 많다는 것을 차차 알게 되었다. NGO 동아리에 들어가서 공정무역과 시민단체에 대해 배우며 따뜻한 가슴을 배우지 못하면 학교에서 배우는 다른 모든 것들은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별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대학이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예쁘다는 것도 배웠다. 학교에서 ‘날라리’라고 낙인찍어 소외시키는 애들은 그 누구보다 생각과 고민이 깊은 아이들이었다. 한 친구는 종이를 별모양으로 오리더니 “너는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적어서 나에게 줬다. 그 별은 아직도 내 일기장에 붙어있다. 공부를 잘하든, 잘하지 못하든 선생님들께서는 우리를 사랑해주셨고, 한 학생이라도 뒤처지는 일이 없도록 정말 많이 노력해 주셨다. 그 덕에 학생들도 나뉘지 않고, 함께 어울려 생활하고 놀았다. 옆 학교가 소위 ‘좋은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의 이름만 현수막에 내걸 때, 우리 학교는 전교생의 이름이 적힌 거대한 무지개색깔 현수막을 달고 졸업식을 진행했다. 졸업식 때 하는 수상도, 전교생이 각자 하나의 상을 받을 수 있게끔 기획했다. 나는 ‘미스코리아상’을 받았다. 예뻐서가 아니라 세계를 평화롭게 하라고.

팽목항 세월호 리본, 출처: pixabay

  나의 학창시절이 이대로만 마무리되었다면 아마 『자본론』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다. 2014년 4월 16일, 일과를 마치고 집에 와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세월호가 침몰했으나 전원 구조됐다고 했다. 안심했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사실이 아니었다. 주로 희생된 사람들은 동갑내기 또래들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증거가 제시하듯 그 어떤 구조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통신내용 조작도 이루어졌으며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부재했다. 이마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세월호 사건에 관심을 두고 분노하는 사람들을 좌파라고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슬펐을 뿐이고, 구조되지 못했던 게 아니라 구조되지 않았던 것이기에 분노했을 뿐이다. 가슴이 아픈 사람들이 좌파라면, 나는 기꺼이 한 명의 좌파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 사건은 내 삶과 모든 가치관을 540° 뒤집어 놓았다. 그 이후로 나는 삐딱해져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 사건은 내 마음에 일종의 공포심과 조급함을 심었다. 이것 때문에 때로는 숨을 제대로 쉬는 것도 힘들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에 정부가 보인 모습들, 그리고 사회의 일부가 취한 행동들(일베의 어묵 먹기나, 폭식 투쟁, 어버이 연합의 시위와 같은)은 17살 머리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루는 광화문 광장을 지나가다 한 무리가 작은 집회를 열고 있기에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나보다’하고는 가까이 가서 봤는데 어버이 연합이었다. 그 사람들은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유가족들에 대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일절 팔을 45도 위로 쭈욱 뻗더니(나치가 연상되었다), 함께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눈에 보이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몸이 떨리고 가슴이 미어졌다. 자식이 있어 본 적 없는 나도 이렇게 아픈데 저 사람들은 도대체 왜 아프지 않은 걸까.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그 자리에 서 있었던 나는 순진했다. 지금이야 그런 장면들을 마주칠 때 그러려니 하고 말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애니메이션 같은 데서 보면 푸르른 하늘과 녹음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성이 마녀의 저주에 의해 회색으로 변하고 식물들이 죽어 나가는 장면들이 있다. 나에게 세월호 사건은 그런 사건이었다. 삶이 사건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그리고 다시는 그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건을 겪으니까 그전에는 몰랐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쌍용 자동차 부당해고 사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월세를 못 내, 그것도 자기 피붙이들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고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도 눈에 들어왔다. 전쟁 난민과 아파도 치료비가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수치화되는 중요한 모든 무형의 것들, 교육을 둘러싼 허무한 정치적 싸움들, 사회가 손을 잡아주지 못한 사람들을 봤다. 그리고 그런 사회를 정당화시키는 정치를 봤다. 자연스럽게 모든 것에 대해 ‘왜?’라는 질문이 내 머릿속을 후비고 다니기 시작했다. 왜 우리의 삶은 이 모양인가?

 

  어처구니없는 이 사회를 만들어낸 원인들은 여럿이 있겠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목격해 온 불행의 파편들에 대해 고민하면서 내가 어렴풋이 내린 커다란 결론은 ‘자본주의사회’였다. 그것 말고는 우리가 이토록 고독해지고 치열한 삶을 사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교육의 문제, 노동의 문제, 불평등의 문제, 복지와 권리의 문제, 심지어 인간의 외로움마저 모든 것은 결국 자본과 연결되었다. 화폐로 인해 우리 삶은 풍요롭고 간단해졌지만, 그것은 점점 거대해지면서 건드려서는 안 될 영역들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의 결과가 지금 우리의 세상이다.

 

  나는 어린 마음에 장밋빛 혁명을 꿈꾸기도 했다. 혁명은 쉬워보였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나오는 것처럼 수천 명의 학생을 모으고 서울 시내에 바리케이드를 세우자. 대학에 들어가면 운동권에 들어가서 자본주의와 불평등 교육의 뿌리를 뽑고 사람이 아프지 않은 사회를 만들자! 이렇게 다짐했다. 정말 쉬울 줄 알았다. 물론 그때 내가 마르크스에 대해 아는 거라곤 사실 ‘자본’ 그리고 ‘혁명’과 같은 키워드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벌써 마르크스를 사랑했고, 마르크스가 알고 보니 아주 추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마르크스는 스스로 자신은 ‘맑시스트’가 아니라고 했고, 대학에 다니면서 맑시스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허세 가득한 얼간이라는 걸 알고 실망하긴 했지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그 문제를 잘 파악하는 게 1순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생이 되고 『자본론』을 정말 읽기 시작했다. 『자본론』을 손에 잡은 것은 가슴이 더는 아프지 않기 위한 발악이자, 이걸 읽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작은 믿음이었다.

 

  지금은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삶에 찌든 대학생일 뿐이다. 세상을 바꾼다고 대학에 왔지만 오히려 그 세상과 점점 괴리되는 아이러니도 겪는 중이다. 머리에 든 건 많아졌지만, 무기력도 그만큼 일상이 되었다. 배운 대로 살기란 쉽지 않다. 공부는 심지어 이가 알 낳듯, 마음에다가 얄궂은 오만을 낳는다. 게다가 무뎌진 탓에 ‘세상이 정말 그렇게 잘못됐나?’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들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나와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슴의 통증이 이젠 식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가 진짜 사랑은 강렬했던 첫사랑 이후의 잔잔한 바다와 같은 사랑이라고 했다. 마르크스도 그렇다. 마르크스가 병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치밀하게 분석했던 자본, 그런 그의 사투에서 나는 여전히 작은 희망을 본다. 고민조차 하지 않으면 정말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와 우리의 시대 사이에는 물론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자본이 증식하는 속도나 방법들은 변했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을 비집고 들어와 일상을 미묘하게 지배하고 있는 방식은 비슷하다. 그 연결고리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자본론』을 읽기 시작했고, 이것들을 알아가면서 비록 내가 혁명은 일으키지 못할지언정 나의 삶과 내 주변은 바꿔나갈 수 있길 희망한다. 뭉뚝하되 꾸준한 가슴으로.

게일 루빈(下)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24. <일탈>, 게일 루빈 (下)

성을 사유하기: 급진적 섹슈얼리티 정치 이론을 위한 노트

 

정유진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S/M 레즈비언 권리 집단 ‘사모아’의 후원 파티, 게일 루빈이 DJ로 참여함)

 

  • 성전쟁

 

1980년대는 미국 여성주의 운동사에 있어서도 게일 루빈의 개인사에 있어서도 여러 모로 시련의 시기였다. 이 시기를 백래시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편으로, 로널드 레이건 정부에 의해 여성과 돌봄에 관한 예산이 전폭적으로 삭감되었으며, 평등권 수정 운동이 실패하고, 낙태권 반대 운동이 확산되어 갔고, 우익 기독교 집단이 반페미니즘, 반동성애를 기치로 삼아, 전통적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며 집결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페미니스트들은 ‘자매애’를 더 이상 외칠 수 함께 없었다. 왜냐하면 여성주의 내부에서도 인종적‧계급적‧지리적 차이들이 강조되면서 여성들이 손쉽게 ‘우리’라고 묶일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기는 반포르노그래피 운동이 미국 전역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 운동은 광고와 음반, 영화산업 등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섹슈얼리티와 연결하는 데 반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였지만, 점차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표현하는 것 전반을 문제시하였다. 무엇보다도 포르노그래피에서의 S/M 코드의 사용이 가장 문제시되었다. 여성을 속박하고 때리고 물건처럼 취급하는 이미지가 여러 매체들에서 사용되는 데 대한 여성주의자들의 분노는, 곧 S/M 섹슈얼리티에 대한 전반적인 비난으로 이어졌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WAVPM(Women Against Violence in Pornography and Media, 포르노 및 대중매체의 폭력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모임)은 포르노그래피에 등장하는 상업적 S/M뿐만 아니라 동의에 기반한 S/M이라는 개념까지 부정하며, S/M은 불평등한 권력 관계와 육체적‧정신적 공격을 가하는 것으로 페미니즘의 원칙과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S/M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을 한 게일 루빈은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오명이 씌워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게일 루빈은 팻 캘리피아(Pat Califia)와 함께 S/M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권리 집단인 사모아(Samois)를 창립하여 레즈비언의 S/M도 페미니즘적 행위이며, S/M의 참여자들은 사회적 자본을 결여한 여성들로 그들은 놀이를 통해 권력 개념을 탐험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포르노그래피 규제를 둘러싼 페미니스트 사이의 갈등은 1982년 4월 24일 바너드 대학에서 개최된 컨퍼런스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제9차 바너드 컨퍼런스는 ‘성 정치를 향하여’라는 주제로 개최될 예정이었다. 주최 측은 의도적으로 반포르노 활동가들을 초청하지 않았는데, 이미 그들이 너무 많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에 반포르노 활동가들을 격분하였고, 컨퍼런스 당일에 항의 시위가 벌였다. 바너드 대학 행정실은 컨퍼런스에서 배포될 예정이었던 섹슈얼리티 회의 일지 책자를 몰수하였다. 이 문제의 바너드 컨퍼런스에서 게일 루빈은 「성을 사유하기」를 발표하였다.

 

  • 반복되는 성 공포

 

「성을 사유하기」는 성 공포(sex panic)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성 공포는 반복되는 사회적 현상으로, 그것이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정부와 경찰은 시민들을 속박할 수 있는 법적‧규제적 무기를 획득한다는 것이다. 평소대로라면 반인권적이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비판을 받았을 논쟁적인 법안들이 성 공포의 수사학 앞에서는 비교적 수월하게 통과되며, 이에 따라 국가의 감시 체계와 경찰 권력은 강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세기 후반 영국과 미국에서의 아동과 청소년의 자위에 대한 공포는 1873년 미연방 반외설법이 통과되도록 만들어 음란하다고 판단되는 그림이나 서적을 제작, 공고, 판매, 소지, 송부, 수입하는 행위 일체를 범죄화하는 데 기여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과 1910년대의 미국에서는 소위 ‘백인 노예’ 공포가 사회를 휩쓸었다. 이 공포에 의해 영국에서는 1885년 형법조항이 개정되고, 미국에서는 모든 주에서 반매춘법이 제정되었다. 이로 인해 가난한 노동계급 여성과 아동에 대한 강력한 즉결 심판이 가능해졌고, 성인 남성들이 합의하에 행한 외설적 행위도 범죄로 간주되었다. 1950년대 미국에서는 성범죄 및 동성애 공포가 있었고, 이는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와 결합하여 정부기관에 종사하는 동성애자를 소탕과 동성애자에 대한 조직적 사찰이 일어났다.

게일 루빈에 의하면 미국의 1980년대에는 아동-포르노그래피에 대한 공포가 존재하였다. 동성애자가 되지 않도록 ‘우리 아이들을 구하자’라는 캠페인과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에 힘입어 ‘아동 포르노그래피’ 근절을 위한 법안이 속전속결로 제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법은 아동과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아이들을 기소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아동 안전과 복지 증진이라는 명목 하에 금욕이 홍보되었다. 또한 아동-포르노그래피 공포라는 또 다른 형태의 성 공포로 인해 오히려 아이들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논의가 신중하게 검토되지도 못했으며, 아이들이 자기 나이에 맞는 알맞은 성적 정보와 서비스가 제공될 기회가 차단되었다. 이는 무엇보다도 느슨해졌던 성 관련 규제를 원상 복구시키는 계기가 되어 시민의 중요한 성적 자유를 폐기하는 데 일조하였다.

페미니즘 역시 성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반포르노그래피 페미니즘 이데올로기는 S/M 이미지를 선동적으로 활용하여, 포르노는 S/M 포르노로 연결되고, S/M 포르노는 결국 강간에 이르고야 만다”는 논리로 성적 규제와 억압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였다. 이처럼 성 공포는 만연해 있으며, 성 공포에 휩싸여 시민들은 투쟁을 통해 쟁취한 권리들을 자기도 모르게 다시 내주고 만다. 따라서 이제 성에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성을 사유할 때가 왔다고 루빈은 말한다.

 

  • 성에 관한 사유의 발전을 저해하는 이데올로기

 

성 공포뿐만 아니라 성에 대한 고정된 이데올로기 역시 성에 대한 사유를 가로막는다. 이 이데올로기들은 거의 의심받지 않으며, 새로운 수사적 표현과 함께 반복해서 출현한다. 문제가 되는 이데올로기들 중 하나는 성 본질주의이다. 이는 성을 개인의 고유한 특성으로 분류하여 섹슈얼리티에는 역사도 사회적 맥락도 없는 것처럼 사고하게 만든다. 그러나 섹슈얼리티는 사회적‧제도적‧역사적 맥락에 결합되어 있다. 구두가 없었던 시대에는 구두에 대한 페티시즘이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현대처럼 기계와 인간이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시대에 인간은 기계를 통한 섹슈얼리티를 꿈꾸기도 하듯, 섹슈얼리티는 유동적이며 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 본질주의는 섹슈얼리티를 개인적 문제로 환원하여 성에 대한 사유를 어렵게 만든다.

또 다른 이데올로기는 성을 위험하고 파괴적인 힘으로 간주하는 성 부정성의 경향이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며, 서구 사회는 이 전통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때 출산만을 목적으로 맺는 혼인관계만을 성스럽다고 간주하며, 성해방과 관련된 논의를 차단하고 불경한 것이 된다. 이는 여성의 낙태권을 부정하고, 청소년들이 피임법과 성교육에 관해 접근하지 못하게 하며, 이질적 성에 대해 저주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 섹슈얼리티 위계

 

「성을 사유하기」에서 가장 독창적인 부분은 성 이데올로기와 관련하여 섹슈얼리티 위계에 대한 지도를 그려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섹슈얼리티 위계에서 ‘좋은 성’은 “이성애여야 하고, 결혼 제도 내부에 있어야 하고, 일대일 관계여야 하며, 출산해야 하고, 비상업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같은 세대에 속한 두 사람이 관계를 가지되 집에서 해야” 하고, “포르노그래피, 페티시 대상, 그 어떤 성인 용품, 남녀 역할이 아닌 다른 배역” 등이 결부되어서는 안 된다. ‘나쁜 성’이란 반대로 “동성애, 혼인 관계가 아닌, 문란한, 출산하지 않는, 상업적인 성교”이며, “자위 혹은 난교 파티에서 일어나는, 세대 경계를 넘는, 공공장소, 적어도 덤불숲이나 목욕탕에서 하는 성교”이고, 여기에는 “포르노그래피, 페티시 대상, 성인 용품, 특수한 배역” 등이 결부된 것으로 상정된다.

이 ‘좋은 성’과 ‘나쁜 성’ 사이에 일종의 회색 지대가 존재한다. 여기에는 혼인관계가 아닌 이성애 커플, 문란한 이성애자, 장기간 안정된 레즈비언과 게이 커플 등이 속한다. ‘최악의 성’에는 복장전환자, 트랜스섹슈얼, 페티시스트, 사도마조히스트, 상업적 성, 그리고 세대 간 성애가 속한다. 이처럼 ‘좋은 성’과 ‘나쁜 성’ 사이에는 경계선들이 존재하는데, 경계선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섹슈얼리티는 날뛰게 되면서 최악의 성으로까지 치닫게 될 것이라는 공포가 작용한다.

이 성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잘못된 관념으로 인해 성에 대한 해방적 사유를 저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들에 대한 시민권 차별 경제적‧사회적 차별의 근거가 된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성소수자들을 성 공포의 희생양으로 만드는 무기가 된다.

 

  • 섹슈얼리티 문제에 대한 페미니즘의 한계와 퀴어 이론의 시작

 

페미니즘은 늘 성에 대해 관심을 가져 왔다. 왜냐하면 “섹슈얼리티는 젠더들 간의 관계의 접점이며, 여성 억압의 상당 부분이 섹슈얼리티로 인해 발생했고, 그것을 통해 매개되었으며, 그 내부에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성에 대한 페미니즘의 사유의 경향은 성 해방론적인 것과 성 보수주의적 흐름으로 나눌 수 있다. 반포르노그래피 담론은 후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기존의 이성애적 섹슈얼리티 위계 구조를 그대로 반복한다. 다만 섹슈얼리티 위계에서 이성애 지위를 강등시키고, 일대일 레즈비언의 섹슈얼리티를 상향시켰을 뿐이다. 이 지점에서 페미니즘은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한계를 드러냈다고 게일 루빈은 평가한다. 더 나아가 페미니즘은 젠더 억압에 관한 이론이기 때문에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나는 섹슈얼리티 이론에서 페미니즘이 특권적인 위치에 있다거나, 그러한 위치를 점해야 한다는 전제에 도전하고자 한다. 페미니즘은 젠더 억압에 관한 이론이다. 이러한 사실이 자동으로 페미니즘을 성 억압의 이론이 되게 한다고 추정해버리면, 한편의 젠더와 다른 한편의 성애 욕망을 분간하지 못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여성 거래」「성을 사유하기」 두 텍스트 간의 차이가 명확해진다. 루빈은 「여성 거래」에서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와 젠더 정체성 형성을 인과적으로 연결시키는 섹스/젠더 체계라는 개념을 구상했다면, 「성을 사유하기」에서는 섹슈얼리티 체계와 젠더 체계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페미니즘은 젠더 체계를 중심으로 보는 사유이기 때문에 “섹슈얼리티의 사회적 조직을 온전히 망라할 만한 관점이 없다”고 평가하며, 이후 퀴어 이론의 전개를 암시한다. 마치 맑스주의적 분석으로 젠더의 사회적 구조라는 쟁점을 다룰 수 없듯이 젠더 억압을 중심으로 놓는 페미니즘의 분석으로는 섹슈얼리티 위계까지 포괄하여 억압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 거래」에서 주요하게 사용했던 개념을 「성을 사유하기」에서 철회하는 중대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텍스트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여성 거래」에서 섹슈얼리티의 해방이 곧 여성 해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성을 사유하기」에서의 주요 목표 역시 섹슈얼리티의 궁극적인 자유와 해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여성 거래」에서는 섹슈얼리티의 해방이 젠더 정체성의 구속으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면, 「성을 사유하기」에서의 섹슈얼리티 해방은 궁극적으로 성적 쾌락을 자유롭게 추구하고, 자신의 섹슈얼리티로 인해 숨어 다니지 않으며, 상대방을 찾지 못해 오랫동안 외로워해야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즉 섹슈얼리티 그 자체의 해방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게일 루빈의 사유는 섹슈얼리티를 남성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이자 여성에게는 위험한 것으로 상정했던 그 당시 페미니즘의 일방적인 흐름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성 전쟁에 참여하면서 페미니즘의 성에 대한 사유의 한계를 지적하여, 성에 대한 페미니즘의 사유를 급진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퀴어이론의 출현을 암시하였다. 성 전쟁 이후 등장한 제3물결 페미니즘은 기존의 제2물결 페미니즘의 한계를 넘어 섹슈얼리티를 다양한 차원에서 이해하고자 하였으며, 성 해방을 주요한 의제 중 하나로 포함시켰다. 이때 게일 루빈의 사유는 큰 참조점이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루빈의 「성을 사유하기」는 페미니즘 운동사의 한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여철분과의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연재는 여기까지입니다.  🙂

게일 루빈(上)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23. <일탈>, 게일 루빈 (上)

여성 거래: 성의 ‘정치경제’에 관한 노트

 

정유진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 두 번의 커밍아웃

 

게일 루빈(1949 ~ )은 두 번의 커밍아웃을 통해 삶의 커다란 전환을 이뤘다. 첫 번째는 루빈이 미시건 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시작할 즈음인 1971년에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1978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고 나서 사도마조히스트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한 것이었다. 첫 번째 커밍아웃보다 두 번째 커밍아웃이 루빈에게는 훨씬 더 힘든 일이었다. 첫 번째 커밍아웃 때는 동성애자들을 향한 혐오 담론들이 깨져나가던 시기였기에 루빈은 새내기 레즈비언으로서 도덕적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커밍아웃 때에는 S/M에 대한 악마화 작업이 구체화되던 중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사랑의 이미지가 하루하루 추해지는 걸 지켜보고, 체포를 두려워하고, 앞으로 얼마나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인지 불안해” 했다. 특히 자신이 한때 모든 것을 바쳐 헌신했던 페미니즘 운동이 S/M을 가부장제의 사악한 산물로 여기는 바람에, 루빈은 자신의 섹슈얼리티로 인해 페미니즘 운동 내에서도 배제되는 경험을 했던 것이다.

게일 루빈이 1971년에 발표한 「여성 거래: 성의 ‘정치경제’에 관한 노트」를 첫 번째 커밍아웃이라는 맥락에서, 1982년에 발표한 「성을 사유하기: 급진적 섹슈얼리티 정치 이론을 위한 노트」를 두 번째 커밍아웃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두 텍스트 사이의 차이와 변화가 보다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다. 두 텍스트 사이에는 게일 루빈이 놓여 있었던 정치적 상황 및 루빈 자신의 섹슈얼리티, 그리고 공간적 이동과 연구 주제 및 연구 방법론에서의 변화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두 텍스트는 섹슈얼리티의 해방이라는 관점을 공통적으로 견지하지만, 「여성 거래」에서 주요 개념으로 제시한 ‘섹스/젠더 체계’를 「성을 사유하기」에서는 철회하는 식으로 게일 루빈 이론의 내용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이 글에서는 게일 루빈의 주요 저작인 「여성 거래」와 「성을 사유하기」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각 텍스트가 갖는 의의와 함께 어떻게 게일 루빈이 자신이 처한 시대적 상황에 조응하면서, 여성주의의 주요 논제에 응답하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 여성억압의 기원으로서 여성 거래

 

여성억압의 기원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는 앞으로 여성 해방을 위해 어떤 전략과 계획을 취할 것인지와 연결되는 문제였다. 게일 루빈은 「여성 거래」에서 ‘여성 억압의 기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레비스트로스(1908.11.28 ~ 2009.10.31)의 구조주의와 프로이트(1856.5.6 ~ 1939.9.23)의 정신분석학을 배경으로 응답한다. 루빈 역시 그 당시 래디컬 페미니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와는 별도로 기능하는 여성 억압의 기제를 상정한다. “생물학적인 여자를 억압받는 여성이 되도록 만드는” 억압 기제를 고전 마르크스주의가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왜 “도무지 자본주의라고 말할 수 없는 사회에서조차 여성들은 억압받고 있”으며, 왜 “가사노동을 하는 사람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인지”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분석을 이 글에서 시도한다.

게일 루빈은 「여성 거래」에서 여성 억압의 시작을 친족의 기원에서부터 탐색한다. 이때 친족은 “생물학적 생식이라는 사실 위에 문화적 조직을 부여한 것”으로 근친상간 금기라는 최초의 섹슈얼리티 통제가 발생한 장소이다. 이 통제는 “섹스와 출산이라는 생물학적 사건에 족외혼 및 혼인이라는 사회적 목표를 부과”하여 “허용된 성적 파트너와 금지된 성적 파트너라는 범주들로 성적 선택의 세계를 분할”하는 기능을 한다.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근친상간 금기의 비밀은 어머니, 여자 형제, 딸들을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낼 수 있도록, 즉 여성을 선물로 교환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메커니즘이다. 이처럼 최초의 섹슈얼리티 통제는 여성 교환을 기반으로 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친족의 기원으로 여성이 거래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함의한다. 첫째, 여성은 물건처럼 교환의 대상인 반면, 남성은 거래의 주체로서 존재하는 사회적 관계가 상정된다. 둘째, 남성들 간의 여성 거래는 결국 남성들 간의 연대와 호혜성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남성중심적 사회는 여성 거래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애초에 생물학적으로는 위계가 없던 성에 구별을 두기 위해서는 여성이 여성으로 길러지게 되고, 남성이 남성으로 길러지게 되는 특수한 가족 내 관계가 이미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성 거래가 일어나도록 하는 특수한 조건들의 체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게일 루빈은 ‘섹스/젠더 체계’라는 개념을 고안한다.

 

  • 섹스/젠더 체계

 

‘섹스/젠더 체계’는 “인간의 섹스와 출산이라는 생물학적인 원자재가 인간의 사회적 개입으로 빚어지고, 아무리 기괴한 관습일지라도 그런 관습적인 방식으로 충족되는 일련의 제도들”로 규정된다. 즉 인간의 몸과 성적 욕망이라는 자연적 재료를 ‘젠더’라는 특정한 사회적 관계 및 관습으로 바꾸는 시스템이 섹스/젠더 체계이다.

섹스/젠더 체계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가 젠더 정체성의 형성 및 생산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상정하는데, 특히 여성의 몸에 이 섹슈얼리티 통제는 강력하게 작용한다. 거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섹슈얼리티가 본래 가지고 있는 능동성과 역동성을 수동적인 형태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해 게일 루빈은 정신분석학에서의 가족 서사를 ‘여성 거래’와 여성의 섹슈얼리티 억압이라는 관점으로 재해석하고자 한다.

 

  • 오이디푸스 서사에 대한 재해석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 갖는 강력한 이점은 인간의 정신 형성 과정을 가족 서사, 즉 오이디푸스 서사를 통해 설명한다는 데에 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엄마, 아빠, 아이의 관계를 들어다보면, 거기에는 서로에 대한 욕망과 질투와 좌절로 가득 차 있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미성숙한 아이는 이 과정을 충분히, 그리고 완전하게 견디고 겪어내야 성숙한 정신을 가진 ‘정상적’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의 ‘정상적’ 인간이란 자신의 성적 욕망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수행해야 할 성 역할이 무엇인지를 완벽히 체현한 존재임을 의미한다. ‘정상적’ 인간이 되기까지 아이가 겪는 고된 역경의 과정을 신화적인 표현을 빌려 ‘오이디푸스’ 서사라 하는 것이다.

게일 루빈은 라캉을 따라 ‘남근 선망’이 아닌 ‘팔루스 교환’을 오이디푸스 서사의 중심에 놓으면서 팔루스를 잠재적 여성 교환을 위한 징표로 해석하여 레비스트로스의 ‘여성 거래’ 개념과의 접점을 찾는다. 이에 의하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모두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각기 다른 과정을 통해 어머니는 아버지의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남자아이는 아버지가 자신을 거세할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어머니를 포기한다. 이때 남자아이가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권리를 긍정하는 대가로 아버지는 아들에게 팔루스를 확증해주며, 이 팔루스는 남자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어머니를 대신할 수 있는 여자를 교환할 수 있게끔 하는 상징적 증표가 된다.

반면에 여자아이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거부당하면서 근친상간 금기뿐만 아니라 동성애 금기까지 경험한다. 그리고 팔루스를 주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철회하고 팔루스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아버지에게로 사랑을 향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남자아이게 주었던 팔루스를 여자아이에게는 주지 않는다. 여자아이는 결국 남성에게서 받는 선물(성교와 어린아이)을 통해서만 팔루스를 가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수용하게 된다. 이처럼 오이디푸스 단계가 여자아이에게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여자아이의 에고는 수동적이고 마조히즘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 정체성이 형성되는 오이디푸스 서사를 급진적으로 해석한다면 여성 해방을 위해서는 여자아이에게 억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오이디푸스 서사와 이 서사를 지탱하고 있는 모든 요소들을 깨버려야 정신적인 해방까지 가능할 것이다. 첫 번째로 팔루스와 팔루스가 함의하는 여성 교환을 깨버려야 한다. 두 번째로, 애초에 아이의 욕망이 어머니에게로만 향하는 양육방식을 깨버려야 한다. 세 번째로, 가정에서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권을 독점하고 있는 아버지의 권위를 깨버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엄마, 아빠, 아이로 구성되는 전형적인 가족관계의 구성을 깨버려야 오이디푸스 서사가 완전히 파괴될 수 있을 것이다.

 

  • 젠더가 없는 사회

 

여성억압의 기원이 ‘여성거래’라면 여성해방의 기획은 자연스럽게 여성거래를 없애는 것이 될 것이다. 게일 루빈에 의하면 “만약 성적 소유 체계가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최우선적인 권리를 가지지 않은 방식으로 재조직된다면(만약 여성교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젠더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이디푸스 드라마 전체는 유물이 될 것”이다. 따라서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표는 친족 체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친족의 통제력을 약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스스로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게 되면,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섹슈얼리티를 경험하고, 레즈비언 아빠나 게이 엄마처럼 여러 형태로 가족이 구성된다면, 고통스러웠던 젠더 정체성의 형성 과정도 약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미 친족의 구속력은 약화되어 “가장 최소한의 뼈대인 섹스/젠더 체계로 축소되었”기 때문에 이는 가능한 해방 전략이 될 수 있다.

게일 루빈은 섹슈얼리티의 해방을 통해 젠더 젠더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진정한 여성해방으로 보았다. 비록 해부학적‧생물학적 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누구를 사랑하고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모든 인간이 양성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회의 상을 전망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 억압의 철폐 그 이상을 꿈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또한 강제적 섹슈얼리티와 성 역할들의 제거를 꿈꾸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설득력 있는 꿈은 양성적이며 (섹스가 없진 않겠지만) 젠더가 없는 사회에 대한 꿈이다. 그런 꿈속에서 한 사람의 해부학적 성은 그 사람이 누구이고, 무엇을 행하며, 누구와 사랑을 나누는가 하는 문제와는 무관할 것이다.

 

  •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마리아 미즈, 반다나 시바(下)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22. <에코 페미니즘>, 마리아 미즈, 반다나 시바 (下)

 

이지영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에코페미니즘이 자연의 훼손과 생태계 위기의 맥락이 여성에 대한 그것과 같다는 통찰 아래에서 시작되었음은 이미 설명하였다. 에코페미니즘은 서구 근대 주류 사상이 근대 과학과 자본주의를 뒷받침한다고 파악한다. 페미니스트는 여성의 남성-되기 열망을 되돌아보아야만 한다. 과학은 서구인들이 믿는 것처럼 만인을 위한 보편 이익에 봉사하지도, 인류 전체를 해방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과학에 대한 맹신에 가까운 서방세계의 믿음은 이전 초월적 신에게 부여했던 신성의 자리를 대체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주류 믿음들은 자연과 여성을 파편화하여 물질/신체로 다루기 때문에 이들의 창조적 재생 및 갱신의 능력을 훼손한다. 이러한 환원의 기계론적 은유와 이에 대한 통제/지배는 자연과 여성을 소외시켜 통치하는 것을 객관과 보편이라는 거짓 이름으로 합리화한다.

부분과 원자로 자연을 분해할 수 있다는 서구 남성 중심주의적 믿음, 환원주의는 우연이 아니라 서구 근대화 개발 과정과 호응하며 서로를 증폭시킨다. 근대화 개발론은 효율과 이윤의 극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므로 상업적 이윤과 맺는 관계가 작은 부분은 무시하고 소멸시킨다. 상업적인 자본주의는 획일화된 상품 생산이 목적이기에 자연 자원의 획일성이 거기에서 따라 나온다. 숲은 상업적 목재로, 목재는 펄프와 종이 생산을 위한 섬유소로 환원된다. 그것은 숲을 이루는 생명체의 다양성과 유기적 연결성에는 무관심하다. 파괴하든 돈이 되는 종만 키워 생태계를 단순화시키든 이윤을 극대화시킬 수 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여성 또한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근대화와 맞물려 자본주의가 침투해올수록 기존의 여성 노동 또한 상품 생산과 무관한 것이기에 비노동, 수동적 노동으로 평가 절하되고 무시된다. 그것이 경작이든 가사 노동이든 간에 동일한 경로를 밟는다. 자연은 공짜로 이용 가능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생산력이 무시되듯 여성의 숙련된 노동의 가치 또한 무시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여성 노동은 남성 중심적 노동 사회를 발전, 존속시키기 위한 희생물로 유령화된다.

 

  • 따라잡기식 개발 신화 뒤집어 보기

 

전세계로 서구식 사고와 자본주의가 퍼져나갈수록 미국 유럽 일본과 같은 국가의 윤택한 생활이 하나의 이상적 모델로 자리잡는다. 비서방 국가들과 여성들 또한 이들 서방 세계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따라잡아야 하며 이들 서방 세계가 걸어온 산업화, 과학 기술화, 자본 축적의 노선을 되풀이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의식이 팽배해진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다는 생각 혹은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거짓 신화에 불과함은 쉽게 밝혀진다.

첫째, 서방 세계가 풍요롭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풍요가 비서방 주변부 국가인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 등의 지배와 억압, 착취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란 역사적 사실은 쉽게 망각된다. 이 풍요는 서구 남성들의 폭력(무력을 앞세운 식민 지배 등)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고 풍요의 유지 존속 또한 주변부 국가들을 계속해서 착취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주변부 국가가 개발을 통해 서방화된 경우는 매우 드믈 뿐이라는 것을 망각한다. 수다한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국가들이 여전히 서방 국가의 풍요를 위한 각종 물적, 인적 자원을 저렴하게 제공하면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저렴한 자원과 값싼 노동력의 공급지 역할을 하며 정작 이들 국가의 경제 시스템은 외국 자본의 힘과 내부 남성 지배 집단 사이의 결탁에 의해 더 뒤틀리고 여성들의 천착해온 생활 근거지는 이들에 의해 파괴된다. 이런 비서방 국가에 대한 착취와 빈곤의 최대 피해자가 여성과 그 아이들인 것이다.

둘째, 서방 세계 따라잡기 신화에 사로잡힌 이들은 높은 물질적 생활수준을 삶의 진정한 윤택함으로 착각한다. 에너지를 과잉 사용하고 더 많은 사치재를 소비하며 즉석 식품과 가공 식품을 먹으면서도 건강을 유지하고 각종 다양한 산업 폐기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맑은 공기, 맑은 물, 오염되지 않은 식재료는 서방 국가 사람들의 일상에선 이루어지지 않는 꿈일 뿐이다. 만일 서방 세계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추동질하는 것처럼, 비서방 세계 다수가 서방 세계 만큼 풍요로워진다면 서방 세계의 오늘날의 풍요로움은 불가능해지고 지구 자원은 믿기 힘든 빠른 속도로 고갈될 것이고 지구 생태계는 완전히 붕괴할 것이다. 또 비서방 세계의 자연과 노동력을 착취하고 각종 폐기물을 이곳에 버림으로써 자신들의 풍요가 유지되고 있다는 진실 또한 모르거나 회피한다. 주요 서방국가 중 미국 한 국가의 예를 보자. 전세계 인구의 6프로를 차지하는 미국인들이 화석 연료 총생산량의 30프로를 소비한다. 그런데 가난한 국가의 인구가 전 세계 인구의 80프로를 넘는다. 이는 나머지 국가의 사람들이 미국인들과 같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기란 결단코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셋째, 서방 세계 사람들의 삶은 더 행복한가하는 점이다. 여성과 아이의 삶은 어떠한가. 서방 세계 다수의 국가에서 빈부 격차는 나날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나 빈곤 여성과 어린이의 가난은 더 극심해지고 있으며, 이들이 주타겟인 남성 범죄의 증가 또한 무시 못 할 수준으로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근대화 이전 지역 공동체는 붕괴하여 개인들은 점점 더 원자화되고 고립된다. 서방 세계의 물질적 풍요 또한 중산층 이상 계급에게 한정되는 일이라는 사실, 이 사회의 물질 분배의 양극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눈을 감는다.

요약하자면, 성장과 이윤 창출은 사실상의 식민지인 자연, 여성, 이민족을 착취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백인 여성들, 페미니스트들 또한 이러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들이 누리는 풍요가 기반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직시해야한다는 뜻이다. 자신들 또한 자연과 이민족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존엄을 훼손함으로 현재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또한 서방 세계의 사실상 식민지 일부가 서구화되면 자원은 더 급속히 부족해질 것이고 이는 곧 자원을 둘러싼 국제 전쟁으로 비화될 것임도 분명하다. 우리는 걸프전이 석유 자원 지배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전쟁임을 안다.

 

  • 제3세계 여성, 인도 여성의 시선으로

 

『에코페미니즘』의 공저자인 반다나 시바는 서방의 주류 페미니스트들이 인도 여성들 또한 자신들처럼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표명한다. 앞서 말했듯이 그것은 자연과 신체를 타자와/대상화하여 정신적 존재되기를 꿈꾸는 남성 되기와 다름없는 것이며, 불가능하고 더 나아가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이다. 과학 기술을 앞세운 개발은 자연, 여성, 이민족에 대한 거대한 착취 없이 가능한 것이 아니기에 불의하고, 주변부 국가가 서방 국가를 따라잡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저급한 노동 착취가 개발 과정에서 일상화되며, 노동 집약적 산업과 생태계 오염 산업이 주변부 국가로 이전되고 이러한 발전 과정이 설사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해도 그 동안 서방 세계는 또 다른 발전 단계로 접어 들어간다.

서구인들, 나아가 서방 세계 여성들이 저개발 국가의 여성의 처지를 동정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잣대로 주변부 국가 여성들을 재단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반다나 시바는 인도의 자발적 여성 에코 운동인 ‘칩코 캠프 운동’을 예로 든다. 많은 인도인들은 서구인들과는 달리 자연과 훨씬 많이 가깝고 친숙하다. 자연은 이들에게 서구식 개발, 조작,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서구인들은 그 사실을 망각했지만 자연은 인도인들에게 살아 숨 쉬는 삶의 터전이다. 맑은 물, 깨끗한 공기, 일용할 양식을 나눠주는 진정한 어머니-자연인 것이다. 이곳에서 인도의 여성은 소외되지 않은 노동을 한다. 이러한 인도 여성은 농사에 필요한 종자들을 관리하며 숲 속의 다양한 생명체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생명 다양성의 관리자이자 수호자들이다. 남성 노동은 쟁기질과 같은 힘쓰는 노동에 한정돼 있을 뿐, 자연에 대한 풍부한 지식은 여성들의 것이다. 여성들은 인정받는 노동의 중요 축을 담당하고 그 노동에 의해 가족과 자신이 먹고 사는 자급자족의 생활을 한다. 서구 여성들의 망각해버린 역사가 아직 이들에게선 살아 숨 쉰다. 서구 17세기 말, 18세기에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던 마녀 사냥의 이유가 자연의 다양한 생명체들에 대한 여성 지식과 독립적 지위의 삭제에 있었다는 사실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겐 상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녀 사냥으로 죽어간 여성들은 대개 자연의 생명체들을 적합하게 사용할 줄 알았기 때문에 주변의 존경을 받았고, 배품의 대가로 받은 돈으로 독립적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여성들이었다. 서구의 광기 어린 마녀 사냥은 여성의 자급자족 능력을 제거하여 무임금 유령 노동인 가사 노동으로 여성들을 가두고 더욱 남성 의존적 삶을 살게 만든 서구 근대화의 역사와 그 흐름을 같이 한다.

칩코 여성 캠프 운동으로 널리 알려진 인도 여성들의 자연 생태계 보호 운동은 외부의 누군가가 들어와 운동을 조직하고 선동하여 이루어진 운동이 아니다. 1980년대 중반 인도 둔 계곡의 나히낄라 마을의 여성 차문데이 등이 주도하여 석회석 광산개발을 빌미로 자행된 숲 파괴를 저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화되었다. 무려 20여 년간 지속된 개발 저지 운동은 생활 터전인 숲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맑은 물과 공기, 약초, 열매 등 숲의 배품이 지속되길 희망했다. 숲이 사라짐은 자신과 아이들이 가꾸며 먹고살아온 자급자족의 터전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는 자유의 박탈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들은 정부가 제안하는 임노동 일자리를 자유로운 삶을 앗아가는 것이기에 거부한다. 개발이 이들이 오래 유지해온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고 뿔뿔이 흩어지게 할 것임을 안다. 이들은 개발로 인해 자유를 잃고 자연적 공동체성을 상실하길 진심으로 원하지 않았다. 하여 트럭을 몰고 밀어붙이는 남성들의 무력을 죽음을 불사하며 막아섰던 것이다. 자급자족은 팔 수 있는 상품 생산 노동이 아니므로 자본주의의 입장에서는 생산 노동이 아니지만 그것은 다만 서구인들의 기준일 뿐이다. 이들에겐 숲에서의 자급자족이야말로 예속이 아닌 자유의 원천이며 생명의 자연스러운 생존 방식인 것이다.

 

  • 자기 결정 – 생식 능력에서의 해방에 얽힌 문제들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스의 『에코페미니즘』은 한국 여성들에게도 중요 이슈로 떠오른 자기 결정, 자기 신체와 삶에 대한 권리문제에 대해서 또한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낙태권에 대한 시각은 결정적이다. 자기 재산과 신체에 대한 소유권은 서구 근대 부르주아 시민 혁명의 근본 과제였다. 당시 교회와 봉건 왕권의 절대적 권력의 압제에서 자유롭게 벗어나기 위한 시도로 개인의 불가침의 권리가 주장되었다. 이렇게 생명권, 자유권, 소유권은 자유 시민의 권리가 되었으며 이 중에서도 근대 자유민주주의를 견인한 부르주아지들은 특히 소유권의 획득과 행사를 위해 투쟁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여성이 이 시민권을 부여받기까지는 수백 년에 걸친 기다림이 필요했다. 서구 근대 사회에서 여성은 한 국가 공동체의 시민임에도 공적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해온 시민권을 인정받기 위해 투쟁했으며 여권 운동이 ‘참정권’ 획득 운동에서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참정권을 얻은 여성들은 교육권, 재산권, 사회권 등의 폭넓은 시민권을 보장 받기 위해 투쟁해왔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페미니즘 운동의 주요한 한 분파로 자리 잡고 있다. 낙태권 또한 시민권의 인정 및 행사라는 동일 맥락에서 주장되는 것이다. 여성의 생식기관과 출산 능력은 가부장적 남성 중심 사회에 의해 통제되어왔으며 여성 억압의 근본 원인이기도 했다. 남성과 가부장제의 식민지였던 여성의 자기 신체에 대한 권리를 되찾는 문제는 따라서 이러한 식민 상태의 종결과 해방을 의미하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스는 낙태의 권리를 둘러싼 자기 결정, 자율적 결정권의 문제를 두 가지 각도에서 재고할 것을 제안한다. 하나는 서방 세계에서 주장되는 여성 생식 능력, 여성성에서의 해방이고 두 번째는 제 3세계 여성들의 다른 입장이다. 두 가지 재고는 모두 남성중심의 근대 데카르트적 사유, 자연 과학 기술의 확대, 자본의 제국주의적 지배 등과 관련되어 있다.

여성은 시민권 획득 운동을 통해 남성의 여성 지배에 대해, 가부장적 여성 지배에 대해 싸워왔으며 이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제 여성은 생식 능력, 여성성이라고 불려왔던 것들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도 싸우고 있는 것이다. 낙태의 권리는 대표적 안건이다. 이 싸움이 가능해진 것은 과학 기술 진보에 빚진 바 크다. 파이어스톤의 급진 여성주의의 주장 즉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출산과 양육에서 여성을 해방시키는 것이 여성과 인간 해방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주장은 매우 상징적 사건이다. 근대 서구 남성들이 정신의 자유를 신체/자연을 식민화하고 통치하면 된다는 사유와 믿음에 근거하여 구체화시켜온 것처럼, 여성의 자기 신체에 대한 권리와 통제 역시 그러하다. 여성이 자기 신체를 타자화/대상화하고 식민화시키는 과정, 그것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통해서만 여성의 자기 신체에서의 해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는 임신 기간 동안 여성의 신체와 한 몸으로 연결된 태아 또한 자기 신체의 일부로 여기고 자기 신체를 타자화/대상화하는 방식으로 태아 역시 타자화/대상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타자화된 여성의 신체와 태아는 기계론적 세계관에 의해 분해하고 조작할 수 있는 물질로 환원된다. 그리고 현대 의학이 마련해 놓은 기술적 처방의 제한적 선택지들 중에 한두 가지를 선택해 신체와 태아를 과학 기술이 처리하도록 내맡기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근대 남성 중심주의 사상의 주요 전제들과 적용(신체에 대한 정신 우위 및 신체/자연의 기계화)을 그대로 답습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면서 또 다른 현실적인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남성은 성적 접촉의 결과인 여성의 임신에 대한 책임에서 더욱 더 자유로워지고 여성들은 자신의 신체를 기술에 맡기는 타율성에 종속되는 것이 그것이다.

낙태와 그 권리를 둘러싼 문제와 접근은 단언하여 해답을 제안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적어도 소유권과 자유권을 내세운 자유주의적 해법이 내재하고 있는 문제는 제기되어야만 한다. 여성의 신체가 기계가 아니듯 태아는 소유물이 아니다. 모체와 태아는 서로 다른 존재들의 맺는 공생 관계이며 이는 생태적 관계의 표현이기도 하다. 낙태권에 대한 국가 기구의 공격은 여성의 폭력에서 태아를 보호해야한다는 전제로 펼쳐진다. 여성이 자신의 일부인 동시에 다른 생명체인 태아의 적으로 설정되는 것이다. 가부장적 가족 관계, 어린이에게 적대적인 환경, 육아와 고용의 양립 불가능성, 현대 사회의 극심한 실용주의와 물질주의, 물질적 풍요에 대한 병적 집착 등 여성이 아이를 낳아 키우기 힘들게 만드는 조건들은 모두 면죄부를 받거나 제외된다.

제3세계 여성들에게 낙태권이 가부장제와 결탁한 국가주의의 또 다른 직접적 폭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도 서방세계 여성들은 인지해야만 한다. 남미, 아프리카, 인도 지역 등에서 펼쳐지는 국가에 의한 강제 불임 수술과 낙태는 이 지역 여성들이 한 줌의 식량, 옷가지 등과 맞바꾸는 강제된 선택의 결과물로 시행된다. 이 지역 여성들에게 자율적 선택과 지역 공동체에서의 독립은 자유의 획득이 아니라 삶의 나락으로 떨어져 생존 자체를 바로 위협받는 길로 이어진다. 서방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적 환경 위에 그들이 서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 여성들은 가족 안에서 살고 가족들에 둘러싸여 사망하길 원한다. 서방 세계 여성들의 독립된 혼자만의 집과 요양원에서 홀로 맞이하는 죽음은 이들에게 씁쓸한 귀결로 여겨진다. 또 서방 세계 여성들의 임신할 자유, 권리를 위한 대리모 찾기가 제 3세계 여성들의 신체를 빌려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해야 한다. 모체와 태아 사이의 관계를 기계적 연결 관계로 보고 과학 기술로 조작하는 이 행위가 가진 생태적인 폭력, 과학 기술의 오남용 여부는 서방 세계 여성들이 자신의 신체와 태아를 기술에 내 맡기는 원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이다.

 

  • 자연, 신체, 여성적인 것의 재고

 

에코페미니즘은 자연/신체/여성의 상징적이며 언어적 연결성에 주목하고 여성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의 친화성을 긍정한다. 이들은 자연의 재생산력과 창조적 변화 능력이 여성의 생식 능력과 맞닿아 있음을 말하며 남성중심주의에서의 자연 해방, 보호가 곧 여성을 해방시키고 보호하는 것이라고 파악한다. 살펴보았듯 근대 남성 중심주의적 사유 방식과 이에 기초한 과학 기술, 자본주의는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하였으며 동일 맥락에서 여성 또한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여성과 여성이 돌보는 아동은 이 억압과 착취, 피해의 일차적 피해자이며 당사자이므로 자연을 지키는 방식으로 자신을 돌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에코페미니즘의 입장은 여성주의 1차 웨이브를 이끌었던 자유주의 페미니즘 및 이 노선과 상응하는 권리 중심 페미니즘에 반해 등장한 다양한 입장들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6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70년대를 풍미한 서구 제2물결 페미니즘의 일부 분파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무시하며 벗어나고자 했던 여성성과 신체의 가치를 재평가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여성을 자연 본질론에 묶어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다나 시바, 마리아 미스 또한 에코페미니즘의 근본 가정에 대한 이러한 비판을 알고 있으며 『에코페미니즘』에서 이러한 비판에 대해 응답한다.

에코페미니즘은 여성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을 연결시키며 이 중심에 자연의 생산 능력과 여성의 출산 능력의 상징적, 유비적 유사성이 있다. 핵심어는 ‘모성’이 될 것이다.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스는 이 ‘모성’이 우파에 의해 낭만화되고, 좌파에 의해 탈자연화된 것을 지적하며 양자를 모두 경계해야함을 말한다. 마리아 미스는 미국 등의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여성의 자연 본질화로 비판받는 모성과 자연의 연결이 좌파의 입장과 유사성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이들 여성주의자들은 모성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적인 것임을 주장하며 모성과 자연 연결성을 이야기하는 이들을 비난한다. 좌파는 맑스의 견해를 견지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맑스는 반자본주의자의 입장에 서 있으나 자연을 인간 이성에 의해 개발하고 자연의 힘에서 벗어나게 하는 생산력의 발전에 의해 인류가 진보하고 결국 그릇된 생산 관계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쟁취한다고 봤다는 점에서 반자연적이다. 포스트모던한 사회 구성주의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이나 좌파는 모두 자연적인 것을 부정한다. 이들은 자연적인 것의 실재함, 자연/신체/모성의 가치 재평가를 주장하는 입장, 모성과 자연의 연결 등을 다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거부한다.

이 반대에 있는 것이 우파의 입장이다. 독일의 경우 모성의 강조, 모성과 자연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것은 흔히 독일 파시즘의 흔적으로 치부되며 공격의 대상이 된다. 우파와 극단적 우파인 파시즘이 모성과 자연의 보호를 말하며 어머니-땅-민족을 찬양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연/신체/여성/모성을 온실 속의 화초처럼 낭만화하며 이상화한다는 공통점을 보여주며 아버지-국가-남성의 보호를 받아야할 존재로 대상화시킨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런데 좌파나 우파 나아가 포스트모던한 입장은 사실상 자연/문명, 자연/합리, 여성/남성 등의 이분법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음을 망각하고 있다. 자연은 실재하며 여성이 아이를 낳는다는 것도 실제하는 현실이다. 이분법의 망령에서 벗어나 자연/여성/신체/모성이 국가나 자본의 조작,지배, 통제 대상이 아님을 이들은 인지해야하며 그것이 인류 전체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근대 남성일지라도 여성에게서 태어나며, 땅에서 난 음식을 먹고, 장차 죽어 땅으로 돌아가리라는 사실을, 나아가 자연의 공생관계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만 살아있을 수 있고, 건강할 수 있으며 성취 또한 가능함을 인정해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이분법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이성 능력 또한 자연의 산물임을 인정하며 자연을 떠난 생존은 불가능함을 깨닫는 것,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는 유기적 존재라는 사실을 남성들 또한 깨닫는 것이야말로 남성 중심주의와 그 변주들을 벗어나는 길일 것이다.

좌파나 우파의 생각과 달리 실제 자연 안에서의 여성은 ‘자연 안에서 여성은 강인하게 노동하고 자립하여 생활하고 동시에 주변을 돌본다.’

 

  • 『에코페미니즘』의 현재성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스의 『에코페미니즘』이 고전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의 역사 이래 지속되어왔던 자연과 여성, 자연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사이의 언어적, 실재적 친연성에 근거하여 생태의 위기는 곧 여성의 위기임을 주장한다. 남성중심주의적 사고 방식과 그에 기초한 근대 자연 과학 기술 및 자본주의가 자연/여성적인 것들을 어떻게 억압, 통제, 착취해 왔는가를 보여주면서 자연/여성을 해방시켜야함을 말한다. 여성은 자연 생태계가 그러하듯 남성 중심적 세계의 피해자이며 당사자임이므로 자연 생태계를 지켜내는 것은 여성 자신을 지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엇보다 이 책이 빛나는 것은 서로 다른 역사, 문화, 환경에 놓인 두 여성의 공저이며 아직 주변부 국가에 속하는 인도 여성의 입장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기 때문 아닐까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차이와 다양성’은 대립과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 서로 차이나는 것들의 공존과 상호 유기적 연결성이야말로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생태계의 속성이라는 사실이 에코페미니즘의 기본 전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 여성 특히 도시 생활에 익숙한 여성은 사실 서구 세계 따라잡기에 성공한 드믄 국가의 일원, 서방 세계의 일원이나 다름없기에 이들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을 불편해한다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낙태의 권리에 대한 이들의 비판이 그러하고 제3세계 여성들의 바람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다. 제1세계에 속하는 한국 여성이 이 책을 주장을 수긍하기 위해서는 많은 선입견을 버리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페미니즘의 역사가 여성성, 신체의 속박에서의 자유를 여성의 자유와 등치시키는 경향이 강하게 존속해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상 백인 남성중심적 시각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반다나 시바 등의 지적은 틀리지 않다. 우리가 서구, 중산층이 아닌 계급의 여성 및 서방이 아닌 지역의 여성들을 이해해야할 필요성이 나날이 급박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다른 상황과 입장에 공감하는 상상력의 극대화가 절실하다. 칩코 여성들의 운동과 바람이 보여주듯 그들은 그들의 입장과 환경에 맞춘 여권 신장 운동과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며 움직이고 있다. 세계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것만큼 서방 세계 여성들이 걸어왔던 것과 다른 방식의 여성주의,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무엇이 그들 안에서 태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스의 『에코페미니즘』은 근대 서구 주류 사상이 뒷받침하는 근대 과학과 자본주의 비판에 많은 장을 할애한다. 세계의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이 모두 자연 안에서 벌어지는 것임을 주장하는 것의 옳음을 증명하듯 서방 세계 여성들의 권리 신장과 풍요로움은 자연, 제3세계 여성과 아동, 그 지역 거주민들을 착취하고 그들의 삶의 체계를 뒤흔드는 방식을 숨기고 있음을 직시해야할 필요 또한 더 이상 외면하기 힘든 현실일 것이다. 1세계 소비의 80프로가 생필품이 아닌 사치재에 치중되어 있으며 그 가공되지 않은 원자원과 노동력이 대부분 3세계 착취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지국 온난화, 미세 먼지의 습격, 플라스틱 등 생활 폐기물 처리의 곤란함, 오염되는 물, 자원의 고갈 위협, 핵의 위협 등 헤아리기도 힘든 생태계 파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자연에 대한 앎과 개발이 자연, 지구, 인류를 포함한 현 생태계 생명체의 궤멸 위기로 치닫고 있음에도 우리는 이것을 모르는 척 한다. 우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 이 무지의 무지를 깨우쳐야 하고 그것이 바로 여성의 문제이자 여성이 해야 할 일임을 에코 페미니즘은 힘주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들이 주장하듯 자연/문명, 여성/남성, 신체/정신 등의 이분법을 깨고 존재하는 모든 것, 근대의 남성들이 그토록 높이 평가했던 이성마저도 오로지 유일하게 실재하는 자연에서 나온 것임을 분명히 인지하는 것에서 재출발해야할 필요성을 깊이 성찰해 봐야할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끝)

 

– 마리아 미즈, 반다나 시바의 『에코페미니즘』은 여기까지 입니다.

– 다음주부터는 게일 루빈의 『일탈』이 연재됩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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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미즈, 반다나 시바(上)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21. <에코 페미니즘>, 마리아 미즈, 반다나 시바 (上)

 

이지영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의 등장과 그 맥락

 

에코 페미니즘(ecofeminism)은 세계에 존재하는 주요 억압들이 언어적, 상징적 의미들과 깊은 상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성찰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의식과 무의식을 결정하는 ‘기본 사고틀’에 의해 세계와 인간에 대해 사유하고, 사유는 실천으로 이어진다. 에코 페미니즘은 인간 중심의 단순한 자연 보호 개념이나, 가장 큰 근본 모순을 보지 못하는 남성 중심적 생태주의(ecology)에서 벗어나야 함에 주목한다. 여성의 관점에서 생태계가 처한 문제를 바라보고 논의할 때 생태계가 처한 위기의 본질적 위기를 고찰하고 근본 문제 해결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태주의는 단순한 자연 보호의 호소에서 시작했다. 근대 산업 사회가 초래한 자연 파괴와 이로부터 예견되는 미래의 황폐함에 대한 경고는 서구의 경우 이미 194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핵 위험, 각종 오염 물질, 산업 폐기물, 무분별한 개발 등 유해하고 치명적인 물질들 및 기술들이 공기, 토양, 강, 바다를 오염시키며 파괴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연 파괴는 결국 ‘우리 인간’의 생존과 지속적 발전에 큰 가시적 위협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 인간, 자손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런 오염, 파괴 물질을 정화시키거나 안전하게 처리할 기술을 개발하고 환경 파괴를 저지해야한다는 호소는 근대 산업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 보호의 입장이 근대적 ‘인간 중심’의 표피적인 사고에 불과함을 지적하며 ‘생태 중심적’ 혹은 ‘생물 중심적’ 사고로 자연을 바라봐야함을 말하는 심층 생태주의가 등장한다. 이 생태주의는 자연이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한다는 기본 가정, 망상을 버릴 것을 촉구한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며 자기 자신을 재생산하는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다. 인간은 이 커다란 생명체 위에 존재하며 군림하는 존재일 수 없다. 인간은 다른 여타 비인간 생명들과 동일하게 이 지구라는 거대 생명체를 구성하는 부분들의 작은 하나일 뿐이며 모든 부분들은 모두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1970년대, 자연이 총제적인 하나의 유기체이듯이 인간 세계의 억압들이 상호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하나의 해방이 또 다른 종류의 해방들과 무관하게 얻어질 수 없다는 의식 아래 자연 해방과 여성 해방을 동일 맥락에서 바라봐야만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생태학이 간과한 지점이 이 연관성이며 심층 생태학자들이 말하는 ‘인간 중심주의’는 ‘인간 중심’이 아니라 ‘남성 중심주의’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인간에 의한 자연 착취, 지배 전략이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 정당화 맥락과 본질적 유사성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자연과 여성에 대한 평가 절하가 한층 더 강화되긴 하지만, 이성/신체, 정신/정서, 문명/자연,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와 전자의 후자에 대한 가치 우월성은 플라톤 이후 서구 지성사의 기본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출산하는 재생산 능력과 자연의 재생산 역량을 동일한 것으로 보고 남성보다 여성을 자연에 보다 가까운 존재로 바라봐온 것에 주목해왔다. 여성은 자연화되고 자연은 여성화되어 사유되고 상상되어 왔다. ‘어머니 자연’, ‘여자는 땅, 남자는 하늘’ 등의 표현이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은 우연의 산물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이분법의 계열화 목록이 상호 포괄적인 것이거나 동등한 권리를 가진 것으로 개념화되기보다, 나아가 사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연에서 기원한 것임을 인식하는 방향이 아니라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 수용되어왔고 문명, 남성…계열의 목록이 자연, 여성…계열의 목록에 속하는 것들을 지배할 자격을 가지는 것으로 정당화되어 왔다는 것에 있다.

앞으로 살펴볼 마리아 미스(1931 ~), 반다나 시바(1952. 11. 5 ~)『에코 페미니즘』 또한 이와 같은 자연과 여성의 본성 연관성 및 동일한 착취, 지배, 억압의 맥락을 수용한다. 생태주의는 여성의 문제와 함께 논의되어야만 하고 여성은 자연의 일부이자 자연과 함께 남성중심주의에 의해 고통당하는 당자자로서 생태계 보호의 주체가 되고 있으며 또 되어야만 한다.

 

  • 3 세계 여성과 1 세계 여성의 만남 – 반다나 시바 & 마리아 미스

 

여성주의 생태학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에코페미니즘』은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제 3세계인 인도 여성인 반다나 시바와 대표적 제 1 세계인 독일 여성인 마리아 미스의 공저로 탄생했다(1993). 이 책의 가치는 바로 이 지점에 놓여 있을 것이다. 반다나 시바는 핵물리학자 출신으로 환경 문제 연구와 운동에 투신하여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마리아 미스는 사회학자로 자본주의의와 더불어 여성, 환경, 제 3세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제 3 세계와 제 1세계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 놓여 있다. 기반하고 있는 입장과 지역성의 간극 즉 독일 여성과 인도 여성으로서, 서로 다른 맥락 속에 놓인 구체적인 여성이라는 커다란 ‘정체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이 차이를 경쟁과 투쟁, 착취, 억압, 지배의 원인으로 놓고 대적하기보다 공동의 기반을 찾아 생태계의 위기를 ‘함께’ 논의하기로 한다. ‘차이와 다양성’은 대립과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 서로 차이나는 것들의 공존과 상호 연결성이야말로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생태계의 기반임에 이 두 사람이 공감하고 의견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이 둘은 우선 생태 문제가 여성 및 아동 문제와 달리 논의될 수 없는 것임에 동의한다. 그리고 자연과 여성이 동일한 맥락 아래에서 특히 서양 근대 남성 가부장제, 남성 중심주의에 의해 착취되고 평가 절하되어 왔음에 동의한다. 현재 생태계가 처한 위기의 근본 원인이 바로 서양 근대 남성 가부장제인 것이다. 서양 근대 남성 중심주의가 기반하고 있는 근대성의 성격이 남성으로 하여금 자연 위에 군림하며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하고 조작하는 것을 정당한 것으로 수용하게 이끌었다. 파괴되는 생태 속에서 같이 신음하고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극심하게 고통 받는 것은 여성과 그 여성이 돌보는 아이들이다.

 

  • 서구 근대성과 남성 중심주의

 

앞서 언급했던 문명/자연, 남성/여성, 이성/감성, 정신/신체, 백인/유색인종의 상호 배타적, 전자의 후자에 대한 우월적 이분법은 비단 서구 근대만의 특성은 아니다. 이는 서구 플라톤의 사고 체계가 이후 사상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유지되어 왔다. 그런데 데카르트가 『성찰』을 통해 ‘생각하는 나의 존재’를 만학의 토대로 선언한 이래 이러한 이분법은 더욱 강화된다. 인간은 개인으로 원자화되고 이런 원자적 개인의 합리성, 의지, 자율성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이에 얽힌 커다란 문제는 우선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서구 근대가 자연을 기계로 파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생명체를 포함하여 자연을 구성하는 것들은, 물리적 인과 법칙들 안에서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운동한다. 이 운동에는 목적도 의미도 없다. 자연이라는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는 것은 분해 가능한 무의미한 부분들이며 이와 반대로 이 부분들을 결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한 조작 대상들이다. 이러한 기계적 자연관은 자연을 하나의 조작 대상, 물리적 기계와 유사한 것으로 파악하게 만들었다. 인간 앞에 놓인 미래는 자연의 법칙을 알아내는 인간 이성을 잘 사용하고 발전시키는 것에 있다. 또 다른 커다란 문제는 이 서구 근대가 찬양하는 ‘인간 이성’에서 여성, 비백인은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루쏘에 이르는 서구 주요 사상가들의 저서에 의해 분명히 드러나듯 이 ‘생각할 줄 아는 존재’는 백인 성인 남성에 한정된다. 여성, 아동, 비백인은 자연적 존재로서 취급하며 지도 편달과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근대적 인간관과 자연관이 자본주의와 결합하면서 개발 명목의 ‘자연 즉 여성적인 것’에 대한 착취, 억압, 통제가 정당화되면서 만연하게 된 것은 지당한 일일 것이다.

 

  • 기존 주류 페미니즘 비판 여성적인 것, 자연, 신체의 재개념화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스는 서구 1세계 페미니즘의 큰 줄기들을 비판적 맥락에서 고찰한다. 그중 하나인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페미니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시몬느 드 보브와르(1908. 1. 9 ~1986. 4. 14)에 대한 비판은 사실 이젠 페미니즘을 아는 이들에겐 상식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이 비판의 맥락은 다양한 여성주의 운동과 파이어스톤의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확장시켜 고찰해 볼 수 있게 만든다. 페미니즘에 관심을 둔 이들에겐 많이 알려진 것을 다루는 이 절에서의 논의보다 훨씬 큰 쟁점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이 비판은 이어지는 다른 절에서 다루겠다.

보브와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선언으로 페미니즘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보브와르는 남성이 여성을 타자화(의식의 대상화)하는 방식을 통해 스스로를 의식적 주체로 설정하였음을 지적한다. 이때 남성은 자유로운 정신으로, 여성은 재생산하는 신체로 개념화된다. 신체로서의 여성은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그들에 의해 강제된 것이다. 보브와르는 이 여성이 이 신체의 주박에서 벗어나 남성과 같은 정신의 존재가 될 때 자유를 획득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반다나 시바와 마리아 미스는 이러한 주장이 여성 내부에서 진행된 신체, 자연의 타자화가 남성 중심의 정신/신체, 문명/자연의 배타적 이분법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를 강화하고 확대 재생산시키는 사유임을 지적한다. 자연, 신체, 여성의 타자화, 평가 절하는 페미니즘 안에서도 행사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됩니다 – 

주디스 버틀러(下) [페미니즘 고전을 찾아서]

 

20. <젠더 트러블>, 주디스 버틀러 (下)

 

이승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 반근본주의적 연합의 정치

 

이리가레는 남근로고스 중심적 언어에서 여성들은 재현불가능성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뜻이 명료한 일의적 의미화의 언어 안에서는 여성의 성적 차이는 지칭되거나 규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들은 ‘하나’가 아닌 다수의 성이다. 나아가 이리가레는 여성을 ‘타자’로 지칭하는 보부아르에 반대하면서 ‘남성=주체 대 여성=타자’라는 변증법적 인식에는 인간 안에 어떤 본질적 속성이 있을 거라고 미리 단정짓는 ‘본질(실체)의 형이상학’이 전제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버틀러는 이리가레의 성적 차이의 이론이 인간에 대한 본질주의나 결정론에서 벗어나게 해 주며 나아가 남성적 의미화 경제의 획일성을 비판할 근거를 줌으로써 페미니즘적 비평의 다양한 가능성을 열게 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버틀러는 뒤이어서 이리가레가 ‘타자의 문화’를 남근로고스 중심주의의 확대사례로 포함하는 방식을 언급하면서 그것이 ‘인식론적 제국주의’의 일종임을 밝히고자 했다. 즉 사회적 관계 안에서 전개되는 여러 권력작용들을 ‘남근로고스 중심주의’라는 단일한 기호로 비판하는 것은 ‘적을 단일한 형태로 동일시하는’ 전략이며, 이것은 ‘페미니즘 자체의 전체화’를 방관한 것이라는 것이다. 버틀러가 보기에 권력의 식민화는 항상 남근중심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며, 그 안에는 인종적․계급적․이성애중심적 권력생산 작용이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은 남근로고스 중심주의와의 관계 안에서만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다양성” 속에서 배치되는 가운데 생산되며, 그래서 이는 여성운동 안에서조차 무수한 형태의 권력관계의 효과로 생산된 ‘여성’들이 있음을 수용하는, 즉 통일성을 전제하지 않는 ‘연합의 정치학’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방향을 취하게 만든다.

“페미니스트의 행동은 안정되고 통일되고 합의된 정체성으로부터 설정되어야 한다는 강압적 기대만 없다면, 이 행동은 더 빨리 출발할 것이고, 이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훨씬 더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 여성 범주는 영원히 미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연합의 정치학에 대한 이런 반근본주의적 접근방식은 ‘정체성’이 하나의 전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이 형성되기 이전의 연합집단의 형태나 의미를 알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 열린 연합은 당면한 목적에 따라 번갈아 제정되고 또 폐기되는 정체성을 주장할 것이다.(113)”

 

  • 복종위반의 양가성과 삶의 욕망

 

보부아르가 젠더가 구성적이라는 점을 이해하면서도 더 나아가지 못했던 것은 몸(그리고 ‘성’)이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기인할 것이다. 버틀러가 보기에 푸코는 여기서 벗어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데, 푸코에게 몸은 오로지 권력관계의 맥락에서만 담론으로서 의미를 획득하며, 따라서 ‘성’은 일관된 정체성을 부여하는 규제적 관행, 즉 섹슈얼리티를 이성애로 안정화시키는 법적․규범적 장치를 통해 생산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푸코의 계보학적 탐구는 욕망이 단순히 금지나 억압되는 것이 아니라 ‘억압되었다고’ 간주하게 만드는 담론적 생산과정을 통해 특정한 형태로 반복적으로 생산된다는 점을 제시한다. 근친상간 금기로 대표되는 금지의 이면에서 인간들은 자신들이 억압되었다고 간주한 이성애 욕망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함으로써 문화적으로 인정받는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버틀러가 보기에 푸코에게는 스스로의 관점과도 모순되는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양성인간 ‘에르퀼린 바르뱅’의 욕망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거의 보이지 않는 작은 페니스(혹은 확대된 클리토리스)를 갖고 태어난 그래서 ‘여자’의 성을 부여받은 에르퀼린은 수녀원에서 만난 소녀들과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한’ 수녀들에게 연애감정을 느끼는 죄의식으로 괴로워했다. 에르퀼린은 자신이 작은 성기를 갖고 있음을 고백하고 당국으로부터 합법적인 남자의 권리를 부여받지만 이후 의사와 판사의 신체규정에 따라 법적 격리조치된 이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푸코는 바르뱅이 여자에서 남자로의 변신 전에는 사법적․규제적 성 범주의 압력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쾌락’을 향유했다고 보는데, 버틀러는 이렇게 “비정체성의 행복한 중간지대”를 설정하는 푸코의 논의는 섹스와 정체성의 범주를 초월하는 유토피아적인 쾌락의 세계가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며, 따라서 섹슈얼리티를 형이상학적으로 물화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에르퀼린의 양성구유의 몸과 그/녀의 성적 쾌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버틀러는 에르퀼린의 몸과 쾌락은 일의적인 의미를 부과하는 법담론 내에서 생산된 것이면서도 동시에 법담론의 언어로는 규명될 수 없는 모호한 양가성으로 이해할 것을 제안한다. 에르퀼린의 욕망은 한편으로 자매와의 섹슈얼리티를 금지시키는 수녀원의 제도적 명령(‘동성애 금지’)에의 위반으로 구성(‘동성애 감정’)되면서 다른 한편 자매들의 몸이 자신과는 ‘다르다’는 것(따라서 ‘비동성애적 욕망’)을 느낀다. 사라라는 이름의 ‘자매’와의 하룻밤 뒤 에르퀼린은 ‘이성애가 내포된’ 소유와 승리의 언어(“바로 그 순간부터, 사라는 내 것이었다!!”)를 말하는데, 이것은 그/녀가 이성애 규범 내에서 작동하는 남성적 특권을 ‘찬탈’하고 그 특권을 모방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녀의 욕망은 푸코가 생각한 ‘비정체성의 지대’가 아니라, 이성애 규범체제에 복종한(즉 이성애적 정체성을 형성한) 결과이면서도 동시에 아직 권리상 여자인 상황에서 그 규범을 위반한 결과이기도 한 것이다. 그녀는 이러한 복종․위반․굴절․혼란이 교차하는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려 했는데, 이러한 정체성 형성은 그/녀가 규범체제 한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삶의 자리를 확보하려는 것, 즉 “살기 위한 욕망, 삶이 가능해지도록 만들려는 욕망, 그 가능성을 다시 생각해보려는 욕망에서 행해진 것”(63)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버틀러는 바로 이렇게 정체성이 생산되는 그 자리에서 대안이 전개될 존재론적 지위를 확인한다, 즉 ‘삶을 욕망하는 한, 그들은 모두 자신에게 강제된 권력체제 한가운데에서도 늘 전복의 가능성을 남겨둔다.’

“젠더의 ‘통일성’은 강제적 이성애의 실천효과이다. 이 실천의 힘은 배타적 생산장치를 통해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의 상대적 의미를 제한하기도 하고 그 의미들의 융합과 재의미화가 일어나는 전복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성애주의와 남근로고스 중심주의의 권력체제가 그들의 논리, 형이상학, 당연시된 존재론의 지속적 반복을 통해 스스로를 증식하고자 한다고 해서, 반복 자체가 멈춰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반복이 정체성의 문화적 생산이라는 기제로서 지속된다면 다음과 같은 핵심적 질문이 등장할 것이다. 어떤 종류의 전복적 반복이 정체성 자체의 규제적 관행을 문제삼을 것인가?(145-146)”

 

  • 구성적 외부로서의 우울증

 

그렇다면 이러한 강제적 이성애 체제 안에서 그것을 벗어나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버틀러는 그것을 정신분석학의 ‘우울증’ 논의를 통해 해명하고자 했는데, 그녀와 유사한 입지점을 가진 줄리아 크리스테바를 분석․비평함으로써 ‘우울증’의 확장된 개념틀을 확보하고자 했다. 크리스테바의 이론은 모체에 대한 기원적 관계의 억압을 필요로 한다는 라캉의 서사에 도전하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라캉과는 반대로 그녀는 ‘기호계’가 기원적 모성의 몸 때문에 생겨난 언어 차원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를 통해 기호계는 상징계 안에서 영원히 전복의 원천으로 작동한다. 이 점에서 크리스테바의 전략은 라캉의 상징계에 맞서 ‘기호계’를, 아버지 법에 맞서 ‘시적언어’를 대치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버틀러가 보기에 이러한 크리스테바의 전략은 몇 가지 문제를 지니고 있다. 첫째, 크리스테바가 시적언어로 아버지 법을 대체하려고 노력하는 그만큼 불가피하게 그 법의 안정성을 전제하고 그 체계를 확정짓는다는 점, 둘째, 크리스테바는 모성적 몸이 문화보다 앞서 있는 의미와 본질성을 지닌다고 말하는데, 그에 따라 모성은 물화되고 모성의 변이가능성을 사전에 배제할 수밖에 없다는 점, 셋째, 크리스테바는 상징계가 억압하는 일차적 충동(모성적 충동)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 충동의 현실화로 ‘아이의 옹알이’나 ‘정신병자의 방언’처럼 상징계 바깥에 놓여있는 영역을 설정하는데, 문제는 그녀가 동성애를 모성으로의 귀환으로 보는 만큼 ‘동성애=정신병’이라는 전제를 아무 문제의식없이 수용하게 된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버틀러는 이렇게 크리스테바의 한계와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그녀가 ‘근친상간 금기’와 ‘동성애 금기’가 아이의 젠더를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을 인식하는 문을 개방한다는 점을 긍정한다. 프로이드는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했을 때 주체가 보이는 심리적 반응을 애도와 우울증으로 구분해 설명한 바 있다. 상실된 대상을 분명히 이해하고, 대상에 대한 사랑에 머무는 ‘애도’와 달리, 상실된 대상이 분명하지 않으며, 상실을 통해 자아의 형성으로 나아가며 또한 대상에 대한 사랑이 증오로 변모하기도 하는 ‘우울증’은, 크리스테바에게서는 엄마에 대한 딸의 사랑이 근친상간과 이성애 금기를 통해 형성된 상실감을 내면화시키는 기제로 설명된다. 여자아이의 정체성은 모성적 몸에 대한 일종의 상실․결여가 되며, 아이의 에고는 모체와의 분리에 우울증적으로 반응한 결과 ‘특정한 정체성’을 형성한다. 버틀러는 이러한 크리스테바의 관점이 그녀가 모성성을 우울증과 동일시함으로써 ‘젠더 정체성의 형성’을 설명할 근거는 제공하면서도, 그것이 왜 이성애적 틀 안에서의 젠더 생산과정에 동성애의 거부/보존이 지속적으로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는 방향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했음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크리스테바는 아버지 법을 금지 개념에만 독점적으로 한정시키기 때문에 아버지 법이 특정 욕망을 자연스러운 충동의 형태로 생성하는 방식을 설명할 수 없다. 그녀가 표현하고자 하는 여성의 몸은 그 자체 법에 의해 생산되는 구성물이고, 그것은 법의 토대를 약화시키게 되어 있다.”(261) 버틀러는 이성애 규범을 통해 배제되는 동성애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정신병으로 귀착하는 것만도 아닌 ‘주체의 내부로 진입해’ 매 순간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모든 이들의 내면에서 그들의 정체성(및 규범)을 흔들리게 만든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따라서 버틀러에게 우울증을 앓는 젠더 주체의 몸은 이성애 중심주의가 배제했던 동성애를 불완전하게 합체한 사람들이며, 따라서 ‘젠더’는 이성애 규범을 신체로 통합하지만 항상 그 규범이 실패하고 거부됨으로써 형성된 내 안의 타자(즉 ‘구성적 외부’)인 것이다.

“젠더 정체성은 자신을 몸에 암호화하고 사실상 살아있는 몸과 죽은 몸을 결정하는, 상실의 거부를 통해 설정될 것이다. 반은유적 활동으로서의 합체는 몸 위에 혹은 몸 안에 상실을 문자그대로 새겨넣어서 몸의 사실성으로, 즉 몸이 문자적 진리로서 ‘성’을 갖게 되는 수단으로 나타난다. 주어진 ‘성감’대에서의 쾌락과 욕망을 금지하거나 그 위치를 설정하는 행위야말로 몸의 표면을 가득 채운 일종의 젠더 특정적 우울증이다.”

 

  • 수행적, 전복적 패러디와 페미니즘의 영원성

 

수많은 페미니스트 이론과 문헌에서는 행위 뒤에 행위자(‘여성 주체’)가 있다고 가정하곤 한다. 행위주체 없이는 어떤 행위도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사회의 지배관계를 변화시킬 저항의 추동력도 주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모니크 위티그 역시 행위작용의 장소로 주체와 개인을 상정하는 입장 안에 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이론이 이전보다 진일보한 것은 그녀가 젠더의 수행적 구성은 문화의 물질적 실천 속에서 가능하다고 본다는 점이다. 위티그가 보기에 성의 이분법적 규제는 강제적 이성애 제도의 재생산이라는 목적을 수행하는데, 그 속에서는 오로지 여성 젠더만이 언어적으로 존재한다. 예를 들어 강제적 이성애 안에서 남성이 보편적 주체의 자리를 차지하는 그만큼 젠더에는 오로지 여성만이 남게 되는데, 예컨대 각종 직업들의 표시에서 ‘여의사’, ‘여교수’, ‘여기자’가 말해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겠다. 위티그는 이러한 표식이 제도에 효과적으로 저항하는 실천들에 의해 삭제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한 생각의 전제에는 ‘섹스’가 언어적 허구이며, 이 허구를 유지하기 위해 이성애제도는 강제적 규범으로 작동한다는 점이 담겨 있다. 따라서 위티그에게 섹스와 젠더는 차이가 없으며 섹스 범주는 그 자체 권력관계 속에서 젠더화된 범주로 이해된다. 위티그의 이러한 발상은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형태의 주체성을 확립할 동등한 기회가 언어 안에서 주어질 수 있으며, 그래서 여성들로 하여금 발화를 통해 자신에게 부과된 물화된 ‘성’을 벗어날 가능성을 열어두게 한다. 그 결과 위티그는 ‘문학작품도 전쟁기계처럼’ 작동할 수 있으며, 이 전쟁의 주된 전략은 여성, 레즈비언, 게이들이 ‘말하는 주체의 위치’를 선점하는 데 있다고 본다. 버틀러는 이러한 위티그의 관점은 오직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관점을 취해야만 또 전세계를 레즈비언화해야만 강제적 이성애 질서가 파괴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귀결된다고 보는데, 문제는 이러한 ‘도전적 제국주의 전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이성애에 참여하고 있으며, 또한 그 안에서 억압을 반복하고 강화한다는 것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이성애가 완전한 위치변경을 필요로 하는 체계라는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이성애주의를 재의미화할 가능성 자체는 거부되며, 따라서 위티그의 이론에서는 이성애에 대한 근본적 순응인가 총체적 거부인가라는 양자택일만 남게 된다. 또한 버틀러는 이러한 위티그의 저항전략에는 강제적 이성애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동성애’가 상정될 수밖에 없으며, 그만큼 이성애와 퀴어 사이에는 어떠한 연결도 보장되지 않는 근본적 단절만이 남게 된다고 점을 지적한다. 버틀러는 이러한 위티그의 생각에 맞서 “이성애 자체는 강제적인 법이기도 하지만 또한 필연적인 코미디이기도 하다. … 나는 이성애가 강제적인 체계이자 내재적 희극, 즉 그 자체에 대한 지속적 패러디로 보는 동시에 어떤 대안적인 게이/레즈비언 관점으로 보려는 통찰을 이성애 쪽에 제시하고 싶다”(315)고 말하는데, 바로 여기에서 버틀러만의 고유한 저항전략 개념(즉 ‘전복적 패러디’)이 도출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권력은 거부될 수도, 철회될 수도 없다. 다만 재배치될 뿐이다. 사실 나의 견해는, 게이와 레즈비언의 실천에 대한 규범적 핵심은 권력의 완전한 초월이라는 불가능한 환영보다는, 권력의 전복적이고 패러디적인 재배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따라서] 효과적인 전략은 정체성의 범주 자체를 전유하고 재배치하는 가운데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단지 ‘성’에 대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체성’의 자리에 다양한 성적 담론이 집중된다는 것을 표명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어떤 형식이 되건 간에, 성의 범주를 영원히 문제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다.”(318-319, 326)

이런 점에서 버틀러의 ‘패러디’ 개념은 강제적 이성애 체제 안에서 그것이 부과하는 규범에 대한 재이용․재의미화를 염두하는 것이며, 그만큼 그러한 저항전략은 담론 이전의 형이상학적 실체를 상정하지도, 나아가 저항 이후의 유토피아적 낭만화로도 귀결되지 않는 진정한 ‘내재주의’의 성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내재주의’는 권력작용이 있는 곳에서는 그 어떤 장소나 시간, 어떠한 위치에서도 저항과 전복이 가능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영구혁명’ 모델로 귀결되며, 그래서 페미니즘 정치의 새로운 대안을 확립하게 해준다. 이러한 대안적인 페미니즘 정치에 대해 버틀러는 마지막으로 젠더 트러블의 결론에서 다음과 같이 최종 정리한다.

“페미니즘의 ‘우리’는 언제나 그리고 오로지 환영적 구성물에 불과하다. 이 환영적 구성물은 자신의 목적이 있지만, 그 용어의 내적 복잡성과 불확정성을 부정하고, 또 그것이 동시에 재현하고자 하는 구성물의 일부를 배제해야만 자신을 구성한다. 그러나 이처럼 빈약하고 환영적인 ‘우리’라는 위상이 절망의 원인은 아니며, 최소한 절망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이 범주의 근본적인 불안전성은 페미니즘의 정치적 이론화에 대한 근본적 제약을 문제시하며, 젠더와 몸뿐 아니라 정치학 자체를 다르게 배치할 길을 연다.”

 

  • 2회에 걸쳐 연재된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은 여기까지 입니다.
  • 다음부터는 마리아 미즈와 반다나 시바의 <에코 페미니즘>이 연재됩니다. 🙂 많은 기대 바랍니다.

주디스 버틀러(上)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19. <젠더 트러블>, 주디스 버틀러 (上)

 

이승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젠더의 의미를 둘러싼 현대 페미니즘 논쟁은 이 시대를 이끌다가 다시 특정한 의미의 트러블에 도달했다. 마치 젠더의 불확정성이 결국 페미니즘의 실패를 보여주는 정점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트러블이 있다고 해서 이처럼 부정적인 가치를 수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나는 트러블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어떻게 최고의 트러블을 일으킬 것인지, 또 그렇게 하는 최고의 방법은 무엇인지가 중요한 과제라고 결론짓게 되었다.” –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서문(73-74쪽[한글판])

 

1956년 헝가리와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주디스 버틀러(1956. 2. 24 ~)는 1990년 <젠더 트러블>의 출판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후 페미니즘에서 정치철학, 윤리학, 퀴어이론, 문학이론에 걸쳐 자신의 작업을 이어간 버틀러는 정체성과 주체성 형성의 문제를 뼈대로 삼아 젠더․섹스․폭력․언어 등에 대한 여러 새로운 논쟁적 입장을 제출함으로써 오늘날 미국 내에서 가장 주목받는(버틀러를 패러디하면 ‘트러블을 일으키는’) 철학자 중 한 명이 되었다. 문제는 그녀가 일으킨 트러블이 단지 기존의 관성처럼 받아들이던 법적․언어적 개념들이나 사고형태들만을 뒤흔든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 내부에도 불편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젠더 트러블>에서 버틀러는 현존하는 권력구조 안에서 우리가 정체성을 통해 주체가 되는 과정을 추적하는데, 그 속에서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가 모두 법과 제도의 이차적 결과물이며 나아가 그것들을 구분짓는 경계 역시 문화적역사적 구성물임을 폭로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녀는 자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자연적․필연적 토대란 없으며 그러한 토대를 상정하는 이론을 ‘실체(혹은 본질)의 형이상학’으로 비판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말처럼 ‘여성’ 정체성이 이처럼 언제나 유동적․불확정적이며, 그래서 심지어 페미니스트들 안에서도 ‘여성’의 의미를 동일하게 고정시킬 수 없다면, 여성을 억압하는 체제는 무엇이며, 또 그에 맞서 저항하는 토대는 무엇인지를 규정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남게 될 것이다. 즉 페미니즘의 안정적 기반을 동일하게 규정할 수 없다면(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운동의 측면에서나 이론의 측면에서 어떤 가능성을 갖게 되는가?

 

  • 섹스/젠더/욕망으로 분할된 인식틀에 대한 비판

 

‘젠더’라는 용어가 현재와 같이 통용되게 된 것은 시몬 드 보부아르(1908. 1. 9 ~ 1986. 4. 14)<제2의 성>에서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선언한 이후부터일 것이다. 즉 ‘여성적인 것’이 생물학적 성과는 달리 문화적․사회적 과정에 의해, 다시 말해 젠더화된 규범을 강제로 부과하는 과정에서 ‘형성’되고 ‘만들어 진’ 것이라는 비판적 문제의식이 발전된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보면 섹스는 생물학적 몸의 차이, 젠더는 문화적․사회적 동일시 양식, 섹슈얼리티는 성적 행위가 유래하는 근원적 욕망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섹스/젠더/섹슈얼리티를 구별짓고 분리시킨 인식론적 틀은 이후 여성운동이 성장할 수 있는 추동력을 제공했고 페미니즘의 여러 형태의 이론적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기도 했다. 섹스와 젠더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몸의 차이에 기초해 여성에게 부과했던 기존의 여러 속성들(예컨대 모성성, 수동성, 감정적임, 연약함 등)이 사회적인 제도나 규범이 낳은 이데올로기적 산물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그 결과 여성으로 하여금 성역할이나 직업선택에서의 고정성을 탈피할 계기를 주며, 나아가 또한 섹스와 섹슈얼리티가 분리될 수 있다면, 이성애에 기초한 정상가족체제의 필연성 역시 허구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버틀러의 작업의 독특함은 바로 이러한 분리의 인식(보부아르로부터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여러 페미니스트들을 지배하는 인식) ‘안에서’ ‘그에 맞서는’ 근본적이면서도 내재적인 비판을 전개한다는 점에 있다. 첫째, 보부아르의 생각, 즉 사람은 몸과 그 몸에서 비롯된 ‘성’을 갖고 태어나지만 성이 젠더의 필연적․인과적 원인은 아니며 젠더는 신체적 외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면, 설혹 성이 생물학적으로 둘(남자와 여자)로 분류된다 할지라도, 젠더가 둘이어야 할 필연성은 나오지 않으며 섹슈얼리티의 형태 역시 특정한 형태로 한정될 이유는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부아르는 젠더를 논할 때 늘 두 형태(남성성과 여성성)를 상정하곤 하는데 이는 그녀 역시 젠더를 이분법적 틀로 이해하고 있으며, 따라서 젠더가 섹스를 반영하거나 모방하는 관계에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95) 둘째, 보부아르는 담론 이전의 해부학적 사실”(99)로서 즉 어쩔 수 없는 ‘자연적 소여’로 받아들이곤 하는데, 만일 그렇다면 염색체와 호르몬의 상태를 통해 우리에게 몸의 차이가 두 가지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확인시키려 하는 무수한 담론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 그 이전에 임산부의 뱃속 아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인하고자 하는 그 무수한 담론들은 무엇이며 심지어 이런 성별감별의 담론들은 왜 종종 그 감별조차 실패하곤 하는가?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보부아르의 주장과 달리 ‘몸’은 늘 담론 안에 감싸여져 있으며, 그 담론들을 통해서야 비로소 어떤 특정한 형태로 생산된다는 점에서 ‘자연적 소여’일 수가 없다. 셋째, 보부아르는 ‘주체’가 언제나 이미 남성적인 것이고 나아가 보편적인 것과 결합되어 있음을 폭로하면서 이를 여성적 ‘타자’와 구분하는데, 이를 통해 그녀(그리고 여러 페미니스트들)는 추상적인 인간이나 주체의 담론에 늘 도사려 있는 남성중심적 인간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할 계기를 주었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보부아르가 ‘인간’이라고 하는 담론의 장에서 여성의 몸을 “부인되고 멸시당한 체현(embodiment)”(105)으로, 나아가 보편적 규범 바깥에 있는 것으로 전제되는 만큼 의미화 가능성이 차단되는 것으로 보고, 그 결과 해방의 가능성은 의미화되지 않은(남성적 규범에 물들지 않은) 여성의 몸을 자유의 도구로 이해할 때 발생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주장에서 보부아르는 은연중에 ‘남성 의미화 對 여성 비의미화’, ‘남성=주체=문화=정신 對 여성=타자=자연=몸’이라고 하는 플라톤과 데카르트 등이 전개한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무비판적으로 재생산하며, 그래서 남성중심적 인간주의를 비판하는 뒷문으로 역설적이게도 이리가레가 말한 ‘남근로고스 중심주의’를 끌어들일 여지를 남기게 된다. 이러한 인식 하에서는 결국 ‘여성성’을 규범적으로 배제된 영역에 영원히 묶이게 만듦으로써 암묵적으로 젠더 위계의 체계를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페미니즘의 정치의 일체의 해방적 가능성을 스스로 유폐시키는 것일 수 있을 것이다.

 

  • 열린 복합물로서의 젠더와 삶의 박탈

 

버틀러는 이처럼 ‘섹스/젠더/섹슈얼리티를 분리시키는 인식’이 한편으로는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을 성장시킨 효과를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젠더에 대한 이분법적 규범(남성성/여성성)의 고착화’, ‘담론 이전의 영역으로의 몸의 실체화․물신화’, ‘여성성의 항구적 타자화 및 배제’ 등의 결론에 도달한다는 점을 비판함으로써 젠더와 몸뿐 아니라 페미니즘 정치학 자체를 다르게 배치할 길을 열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버틀러는 섹스가 (1차적․본질적인) 자연과 관계되고 젠더가 (2차적․인위적인) 문화와 관계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섹스는 이미 젠더이며 그런 점에서 섹스와 젠더(나아가 섹슈얼리티)는 모두 문화적 구성물임을 강조하는데 그 결과, 그녀의 관점에서 젠더는 “그 총체성이 영원히 보류되어서, 주어진 시간대에 완전한 모습을 갖출 수도 없는 어떤 복합물[로서] … 다양한 집중과 분산을 허용”(114)할 가능성의 영역으로 열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버틀러가 이처럼 ‘섹스가 이미 젠더이고 젠더를 열린 복합물’로 이해하게 될 때, 문제는 그럼 섹스/젠더/섹슈얼리티라는 견고한 개념을 통해 확보되는 ‘정체성’(특히 ‘젠더 정체성’)의 의미는 어떻게 되는가의 문제가 남게 될 것이다.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은 만일 버틀러의 논의대로 젠더 정체성이 비일관적인 것이라면 그것을 통해 일정한 자리를 배치받는 ‘인간’으로서의 터전, 아니 인간 그 자체의 존재론적 지위 및 문화적 인식 가능성이 위협받게 될 것이며, 그 결과 ‘인간’으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문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는 생물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미리 주어진 규범적 이분법, 즉 여성이나 남성으로 고착되지 않는다’로 대변되는 급진적 (탈)젠더정치는 ‘그럼 넌 사회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인간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으니 그 안정적 자격을 박탈당할 것이다’라는 공포스러운 박탈정치를 예고하게 만든다. 버틀러는 바로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인간으로서 ‘인식된다는 것’의 의미와 그것에 내포된 권력관계를 분석할 필요를 제기하면서 프랑스 페미니즘과 후기구조주의 이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했다.

 

  • 이리가레푸코위티그크리스테바의 수용 및 대결

 

버틀러는 정체성을 규정하는 이론으로서 크게 4가지 입장, 즉 타자를 재생산하며 그 안에서 자신을 발전시키는 ‘하나의 남성성만이 정체성으로서 존재한다’는 뤼스 이리가레(1930. 5. 3 ~)의 입장, 남성성이든 여성성이든 ‘정체성 범주는 널리 확산된 섹슈얼리티의 규제적 경제체제의 산물’이라는 미셸 푸코(1926. 10. 15 ~ 1984. 6. 25)의 입장, 강제적 이성애 상황에서 ‘정체성은 언제나 여성적’이라는 모니크 위티그(1935. 7. 13 ~ 2003. 1. 3)의 주장, 마지막으로 ‘상징계(아버지 법)에 자리한 남성 정체성의 위치를 기호계(모체에서 비롯된 시적 언어)로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고자 했던 쥘리아 크리스테바(1941. 6. 24 ~)의 비판적 정신분석학의 입장 등이 있는데, 버틀러는 이 4가지 입장의 정체성 규정과 이론적 의의 및 한계를 제시하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결론을 통해 페미니즘 이론 및 정치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자 했다.

첫째, 앞서 언급했던 보부아르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전도시키는 이리가레의 성차이론은 한편으로 서구문화의 관습적 재현체계 안에서 여성은 주체모델로 이해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 점에서 여성들은 보부아르가 생각했던 것처럼 ‘항상 이미 남성적인 주체의 단순한 부정(타자)’으로는 이해될 수 없으며, 따라서 여성은 주체도 타자도 아닌, 이분법적 대립으로는 재현 및 환원될 수 없는 차이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성=몸 對 남성=이성’을 은연중에 전제하는 보부아르 역시 지배적인 남성성, 남근로고스 중심주의 담론을 효과적으로 은폐하는 데 일조하는 것으로 비판된다. 둘째, 푸코가 보기에 본질적인 섹스의 문법은 이분법의 각 용어에 인위적인 내적 일관성을 부여할 뿐 아니라 양성 간의 인위적인 이분법 관계 또한 강요한다. 이처럼 섹슈얼리티를 이분법적 성범주로 규제하는 것은 이성애적․재생산적․법의학적 헤게모니를 파열시키는 섹슈얼리티의 전복적 다양성을 억압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셋째, 보부아르의 연속선상에 있는 위티그가 보기에 성에 대한 이분법적 규제는 강제적 이성애 제도의 재생산이라는 목적을 수행한다. 그래서 그녀는 강제적 이성애주의의 전복이 자유로운 인간의 산출이라는 진정한 휴머니즘을 열며, 에로스 경제의 확대가 섹스/젠더 그리고 정체성의 허상을 깨뜨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위티그는 여성들에게 보편적 주체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섹스’의 허상을 파괴할 것을 요구하면서 그 자리에 새로운 제3의 젠더를 세우자고 말하는데, 이는 결국 레즈비어니즘을 긍정하는 전략으로 소급된다. 넷째, 크리스테바는 라캉의 ‘아버지 법’이 모든 언어적 의미화 구조(즉 ‘상징계’)를 구성하는 보편원리로 기능하면서 모체에 대한 아동의 근본적 의존과 기원적 리비도 욕망을 억압하는 기제가 된다고 보았다. 결국 상징계는 모체와의 기원적 관계를 거부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지는데, 이러한 억압의 결과로 나타나는 ‘주체’는 억압적 법을 전달하는 메신저나 옹호자가 되는 것이다. 크리스테바는 이러한 라캉의 서사에 도전하면서 기원적인 모성의 몸으로 생겨난 언어차원인 기호계가 상징계 안에서 영원히 전복의 원천으로 기능하며, 따라서 다원적 의미와 기호의 비종결성이 지배적인 시적언어를 통해 ‘상징계’ 질서를 대체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입장들에 대한 버틀러의 분석 및 비판은 (지면의 한계상) 거칠지만 다음과 같은 간단한 도식의 형태로 정리될 수 있다.

 

이리가레 푸코 위티그 크리스테바
규범과 정체성 규정 ․ 남성로고스 중심주의

․ 남성적 성만이 존재하며 여성은 남성적 성과의 차이로서만 기능

․ 이성애 중심주의

․ (남자든 여자든) 성범주는 섹슈얼리티의(이성애)의 규제적 효과

․ 강제적 이성애

․ 남성은 보편적 인간으로 등록되며 따라서 여성만이 성범주로 표시(ex.여의사)

․ 언어적 의미화 구조(상징계)

․ 아버지 법으로서의 상징계와 다원적 의미가 억압되는 母體(및 시적언어)

의의 ․ 여성의 오인 혹은 재현불가 능성으로 인한 ‘하나이지 않은 성‘의 가능성

․ 남근로고스 중심주의와주체와 타자의 변증법 비판

․ 주체 개념에 전제된 실체 형이상학 및 인간주의 비판

․ 정체성의 기원을 제도․담론․ 실천의 효과로 봄으로써 성범주(섹스)가 역사적으로 특정한 섹슈얼리티 양식을 통해 구성된다는 계보학적 접근의 가능성

․ 금기가 담론을 통한 효과로 작용하며 금기를 권력관계 속에서 읽어내면서도 금기의 생산성을 설정한다는 점

․ 성의 자연성이 허구적임을 폭로하며 섹스가 상상적

구성물이며, 젠더화된 범주로 산출된다는 점을 폭로

․ 섹스의 허구성을 근원적인 언어적 존재론(모두에게 동등한 기회가 부여된다는 것)을 통해 극복할 가능성

․ 라캉과 정신분석학의 근본적 전제로서의 상징계를 전복할 가능성 제공

․ 모성적 몸에 가해지는 아버지 법의 단성적 의미화 기제를 다원적 의미로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

․ 강제적 이성애 체제가 우울증과 비체화를 요청하는 인식적 가능성의 개방

한계 ․ 남근로고스 중심주의 비판을 통해 적을 단일화하는 인식론적 제국주의 설정.

․ 하지만 ‘식민화’는 남성성으로부터만 비롯되지 않으며, 인종, 계급, 이성애중심주의와 교차하면서 작동.

․ 양성인간 에르퀼린 바르뱅의 일기에 대한 해석에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동성애적 인식을 주어진 것으로 전제

․ 바르뱅의 쾌락을 ‘비정체성의 행복한 중간지대‘로 이해할 때 드러나는 이상적 해방관 및 그에 따른 섹스와 정체성의 낭만화

․ 모든 발화에서 흠없는 매끈한 정체성을 요구

․ 대안으로 설정되는 ‘전세계적 레즈비언화’가 지닌 도전적 제국주의의 위험성

․ 레즈비어니즘이 가진 이성애 질서와의 근본적 단절 따라서 이성애내에서의 재의미화 가능성이 차단됨.

․ 의미 이전과 이후의 설정

․ 기호계의 시적언어를 통해 전복하고자 하는 아버지 법의 상징적 의미화에 의존

․ 문화에 앞서는 모성을 설정함으로 인한 모체의 자연주의화

․ 모성본능의 목적론 설정

 

  • 주디스 버틀러 (上)편은 여기까지 입니다 –
  • (下)편도 기대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