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죽이는 것과 정치로 죽이는 것이 과연 다른가? [맹자와의 대화 1]

전호근 / 김시천 대담

 

혁명과 성선의 사상가, <맹자>와 만나다!

김시천: 요즘 전통 고전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앞으로 다양한 동아시아 고전과 관련하여, 여러 선생님들을 모시고 대화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특히 처음으로 모신 선생님은 <맹자> 강의로 유명한 전호근 선생님입니다. 안녕하세요? 2012년을 맞이하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전호근: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또 <e시대와 철학>의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김시천: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왜 <맹자>인가요? 저는 선진(先秦)의 제자백가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상가 가운데 하나이지만, 그렇게 잘 읽혀지는 고전은 아닌 듯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누구보다도 <맹자>를 강조하고 중시합니다. 왜 그런가요?

전호근: 제가 만난 사람들은 아마도 <맹자>에 대한 관심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996년부터 전통문화연구회에서 <맹자>강의를 시작했는데, 그 이후로 <맹자>강의를 열면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예를 들어 텍스트의 재미로 본다면 사마천의 <사기> 그 중에서도 <사기열전> 강의가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한 편, 한 편이 굉장히 드라마틱하고 소설적인 요소를 다 갖추고 있어서 그런 강의를 하면 많은 분들이 오실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런데 <사기열전> 강의할 때보다 <맹자>강의를 할 때 훨씬 더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특별히 <맹자>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분들이 고전을 직접 읽어보려고 왔다고 볼 수 있죠.

김시천: 그건 일반화할 수 없는 현상이라 생각됩니다. <맹자>는 우리에게 ‘혁명’(革命)이나 ‘성선’(性善)과 같이 가장 무시무시하면서도 가장 아름다움 사상을 펼친 사상가였지만, 그 유명세만큼이나 그가 현실에서 인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요? 오랫동안 <맹자>강의를 해오셨는데, 선생님의 강의에 모인 일반 시민들의 <맹자>에 대한 관심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전호근: 제가 강의하던 <맹자>는 주희가 정리한 <맹자집주>본으로 하는 강의였습니다. 그 <맹자집주> 맨 앞에 ‘서설’이 나옵니다. 서설을 강의할 때에는 사마천의 <사기열전> 중 ‘맹가열전’부터 시작하는데, 그 맹가열전을 통해 맹자가 어떤 사람인가 밝혀지면 강의 들으러 온 분들이 놀랍니다. 실제 그 분들이 생각했던 맹자와 사기열전에 소개된 맹자와 다르기 때문이죠.

 

동아시아 최고(最古)의 좌파(?) 사상가, 맹자

전호근: ‘사기열전’에 소개된 ‘맹가열전’은 137자밖에 안되지만 명문입니다. 참고로 ‘공자세가’에 소개된 공자의 전기는 8천 자 가까이 됩니다. 노자는 1천 50여 자 정도 됩니다. 장자도 235자입니다. 그런 것과 비교해볼 때 맹자는 130여 자밖에 되지 않으니 제대로 기록하였다고 보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죠. 그런데 그 137 자가 명문이어서 맹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바로 드러납니다.

김시천: 글자 수를 세어 본적이 없었는데…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군요. 그럼 ‘맹가열전’을 들은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전호근: 실제로 강의가 진행되면 이른바 맹자의 ‘혁명론’도 나오고 토지 균분론과 같은 ‘정전제’(井田制)도 등장하고 합니다. 한 마디로 정전제는 토지 재분배론입니다. 토지를 생산수단으로 하는 농경 사회에서 공정한 분배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므로, 이런 것을 현실에 맞추어서 강의하면, 강의를 듣는 분들이 상당히 당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2000년까지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우리 나라에서 좌파에 대한 공세가 강하게 드러났던 2002년, 노무현 정권 시절에 제가 <맹자> 강의를 하다가 ‘좌파’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보고 좌파라고 하길래 저는 맹자로 도망갔죠. 제가 좌파가 아니라 아마도 맹자가 좌파인 것 같다고 하면서 말이죠.

김시천: 저도 언젠가 어떤 선생님의 맹자 발표에 관한 논평을 하면서, 맹자가 말하는 주장을 오늘의 정치와 관련해서 보면 ‘좌파’에 가깝지 않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동아시아 역사 내내 맹자만큼 좌파였던 사람도 없었던 듯한데… <맹자> 강의를 하면서 ‘좌파’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선생님의 심정은 어땠나요?

전호근: 그런 경험을 하면서 ‘선생님’의 권위가 일시에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념 공세 앞에서는 선생님이고 뭐고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좌파라는 공격을 받고나서 이런 경험에 대해 동료나 선배 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더 재미난 경험도 했었죠. 어떤 분께서 “나는 사회철학 전공자인데 나는 강의하면서 좌파라는 공격을 받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수치로 여긴다”고 말씀하는 분이 있었어요.

그런데 맹자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들이 그런 강의를 통해 바뀌는 지점이 되었고, 제가 가감 없이 맹자를 있는 그대로 강의한 것이 그분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갖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분들의 맹자에 대한 관심이 반갑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시천: 저 역시 그런 점을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곤 합니다. 오히려 한국보다 이념적 성격에 대한 검증이 더 치열했던 중국의 경우도 우리와 크게 다를 바는 없었던 듯 싶네요. 대륙 중국에서 1949년부터 1960년대 중후반까지 ‘전통 계승 논쟁’을 하면서 선진 시대 제자백가에 대해 수없이 평가가 변화했습니다. 1920년대에 ‘사람 잡아먹는’(食人) 교주로까지 몰렸던 공자조차 ‘좌파’까지는 아니어도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순자(荀子), 한비자(韓非子), 묵자(墨子)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사회주의 중국에서 그런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한 인물이 ‘맹자’였습니다. 그 시기의 중국학계의 <맹자> 연구를 다룬 한 외국의 학자는, 당시 <맹자>를 다룬 논문이 단 3편 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보면 사회주의 중국에서조차 ‘좌파’로 끌어 들이지 못한 <맹자>를 강의하면서 ‘좌파’라는 말을 들으셨다니, 참 흔치 않은 일입니다.

 

맹자의 ‘성선설’이 곧 정치 담론이다

김시천: 우리 나라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는 쉽게 이해가 됩니다. 20세기 후반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맹자>에 관한 연구는 기본적으로 ‘도덕형이상학’에 입각한 ‘심성론’과 통치론으로서의 ‘왕도정치’(王道政治), 동아시아의 독특한 역사관으로 이해되는 ‘치란’(治亂) 사관에 집중되어 있었던 듯 합니다.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구분이긴 한데, 왠지 <맹자>의 정신이 잘 드러난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전호근 선생님의 <맹자>는 매우 독특합니다. 그러니까 많은 시민 청중들이 선생님 강의를 들으며 ‘좌파’라고 말한 것 아닐까요? 선생님이 <맹자>에 가장 주목하는 점은 어떤 것인지요?

전호근: 저는 기존의 <맹자>에 관한 연구가 모두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도덕형이상학이나 성선론, 왕도정치론 모두 유의미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다만 맹자의 그런 사상들이 왕도론, 혁명론, 성선론으로 다 각각 따로 분리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전체가 서로 아귀가 척척맞듯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공자가 ‘성선’을 주장했느냐 아니면 ‘성악’을 주장했느냐에 관해 논란이 있지만, 저는 당연히 성선설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공자도 ‘덕치’(德治)를 주장했기 때문에 ‘성선설’이 아니면 덕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인간이 선한가, 아닌가가 핵심이 아니라 ‘덕치’를 정치 이념으로 제시하려면 ‘성선’이라는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김시천: 그렇습니다. 흔히 <노자>나 <장자>에 대해서 학자들이 평가할 때에도 노자나 장자는 아마도 성선설을 지지할 것이라고 해석하곤 하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노자나 장자는 인간 본성의 선함에 대한 신뢰가 없었지요.

전호근: 반면 순자나 한비자, 그리고 진시황을 도왔던 이사와 같은 사람들에게서는 아예 ‘덕치’의 싹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성선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덕치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맹자의 ‘성선론’도 기본적으로 정치 담론으로 봅니다. 그리고 ‘왕도론’과 같이 이어지는 것이기도 하구요. 그것이 바로 ‘왕도론’이자 ‘덕치’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맹자를 사회 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고 변혁의 철학자로 바라볼 때 맹자에 대한 온전한 시각을 갖출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사회에서도 수많은 전제 군주들이 바로 그런 점을 맹자에게서 빼려고 노력했거든요.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위험했고, 그것이 맹자가 노렸던 점이었습니다.

김시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시면 어떨까요?

전호근: 물론 맹자의 사상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볼 수 있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것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맹자>에서 양혜왕(梁惠王)을 만나 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임금의 푸줏간에는 살찐 고기가 가득하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들이 가득한데,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역력하고 들판에는 굶어죽은 시체들이 널려 있다!” 이 말은 맹자가 당시 전제 군주들에 대해 가졌던 기본 태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짐승을 몰아다가 사람을 잡아먹게 한 것”이라고요. 성을 빼앗기 위해 전쟁을 하고, 토지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하므로 사람의 시체가 성과 들판에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토지를 차지하기 위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라고 맹자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시천: 그 부분은 저도 기억납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대화 장면이기도 하지요! 양혜왕이 맹자에게 가르침을 청하자, 맹자가 이렇게 묻지요. “사람을 몽둥이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것을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왕은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맹자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갑니다. “칼날로 죽이는 것과 정치로 죽이는 것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당시의 뛰어난 실력자 양혜왕의 앞에서 말하는 맹자의 태도는 오늘날과 같은 현대의 삶에서 보아도 대담하고 대범합니다.

전호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극명한 대비입니다. 살진 고기와 백성의 굶주린 기색, 살진 말과 굶어죽은 백성들의 시체! 이런 식의 극명한 대비는 우리가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맹자> 뿐만 아니라 존 스타인 벡의 <분노의 포도>같은 작품도 그런 예 가운데 하나이죠. 오렌지 농사가 유례없는 풍년을 기록했는데도 아이들은 비타민이 부족해서 각기병에 걸려 죽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그런 극명한 대비를 통해 세상을 변혁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당위성과 뜨거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맹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맹자를 그런 변혁의 철학자로 바라볼 때 <맹자>가 온전하게 이해되고, 그런 입장에서 바라볼 때 ‘성선설’도 ‘왕도론’도 이해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과연 인류의 훌륭한 유물일까?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임명옥 (책익는 마을 주민)

 

런던의 대영박물관

4년 전에 나는 런던에 한 달 동안 머문 적이 있었다. 엄마와 아이와 나까지 세 여자가 짐을 꾸려 남동생 가족이 사는 런던에 갔던 것이다. 엄마는 아들이 어떻게 사는 지 궁금해 하셨고, 나는 당시 5학년이었던 아이에게 이국적인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고, 나 자신에게는 내가 여태까지 배우고 누려 왔던 서구 문물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다.

런던에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은 거의 다 돌아봤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대영박물관이었다. 박물관은 건물 자체가 문화유산이었고, 그 곳에 전시된 유물은 너무나 많고도 흥미진진했다. 이집트 관에는 로제타석을 비롯한 미이라와 석상, 오천 년 전에 만들어진 그림 문자 히에로클리프가 전시되어 있었고, 앗시리아 관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만들어낸 쐐기문자와 돌로 조각한 벽화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그리스 관에는 네레이드 신전을 그대로 옮겨 놓은 아름다운 이오니아식 기둥과 살아 움직이는 듯한 대리석 조각들이 이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와 장엄함과 생동감을 뿜어 내고 있었다.

그 밖에도 그리스 로마, 이슬람, 중세 유럽, 동남아시아와 한국, 일본, 중국, 아프리카에 걸쳐 옛 시대의 유물들이 석상과 도자기, 타일과 모자이크, 벽화와 그림 등의 형태로 남아서 박물관을 견학하는 많은 이들에게 인류가 어떤 길을 걸어 왔는지 배우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었다. 나는 이 박물관을 네 번 찾아 갔는데, 갈 때마다 이전에는 보지 못 했던 새로운 유물들이 눈에 띄어 보고 또 봐도 재미가 있고 흥미로웠다.

 

런던의 내셔널갤러리

두 번째로 좋았던 곳이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였다. 이 미술관 역시 건물 자체가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웅장함과 장엄함을 띠고 있었는데, 그림의 규모는 자그마치 2,300여 점이고, 그것도 13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인류의 문화를 빛낸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는 곳이다. 나는 이 미술관을 런던에 있는 동안 세 번 방문했는데,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을 몇 번이고 몇 시간이고 구경하다 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흐 그림은 7점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나는 고흐의 ‘해바라기’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노란색 유화 물감이 한 잎 한 잎 해바라기 잎이 되어 액자 속에서 꿈틀거리는 붓터치가 마치 고흐의 그림에 대한 열정과 비극적인 삶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렘브란트 그림 중에서는 그의 자화상 두 점이 인상적이었다. 젊었을 때의 자신만만하고 부유했던 모습과 나이 들어서 가난해지고 인생살이에 지친 모습이 그려진 대조적인 두 그림이 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 자꾸만 찾게 되는 그림이었다. 루벤스의 그림은 그리스 신화나 고대 로마 시대의 역사적인 사건, 성경에 나오는 내용들을 그린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들이 나를 매혹시켰다. 거대한 그림의 크기가 주는 웅장함과 그림의 내용에서 상상되는 이야기가 생동감과 화려함에 더해져 나는 루벤스 방에서 편안한 소파에 앉아 시대를 거슬러 올라 살아 숨쉬고 있는 듯한 그의 그림을 넋을 잃고 감상하곤 했었다.

 

웨스터민스터 사원

그리고 웨스터민스터 사원을 비롯한 솔즈베리 성당과 성 폴 성당이 있다. 우리 나라의 문화 유산이 불교의 영향으로 절집이 많은 것에 비해 서양 건축 문화의 원동력은 단연코 성당이라 할 것이다.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은 웨스터민스터다. 천 년 정도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영국 왕실의 결혼식과 장례식을 치루는 장엄함과 화려함을 함께 갖춘 곳이며 뉴턴이나 세익스피어, 엘리자베스 1세와 같은 역사적인 인물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건물의 외양을 볼 것 같으면 하늘을 찌를 듯한 고딕 양식의 첨탑이 건물 꼭대기를 균형 있게 장식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과 함께 숙연함이 느껴지게 만들고, 사원 정문에는 성인들을 돌로 새긴 부조가 가득 해서 섬세함과 미려함이 조화를 이루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내부 역시 신의 영광을 찬미하고 숭배하기 위한 아름다운 장식과 석조물들로 가득하다. 가운데는 예배를 보는 장소이고, 양 옆으로는 옛 시대 영국의 위엄과 발전을 이룬 유명인들의 관이 전시되어 있다. 전체적인 건물 분위기는 몇 백 년 전 돌의 느낌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전통이 살아 숨쉬는 듯한 고풍스러움이 느껴졌다.

나는 사실 영국인들이 만들어 놓은 빅벤이나 성당들, 박물관과 미술관을 보고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그들이 부를 적나라하게 과시하는 것 같아 시샘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고, 고대 이집트나 앗시리아, 그리스 로마의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것을 보고 침략자의 자기 과시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런던에서 산다면 인류가 남긴 문화유산을 마음껏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부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것 때문에라도 나는 런던이 마음에 들었고, 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는 도시였다.

 

훌륭한 문화유산은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나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을 읽었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널리 소개하고 대중화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한 인물이다. 저자를 통해 나 역시 우리 문화에 대해 새롭게 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전 국토를 박물관이라 생각하고 우리 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삶과 서양 문물에 익숙하고 서양식 교육에 전염되어 우리 것을 무시하고 얕잡아 보는 태도 속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어려서 나는 공교육을 통해 민요나 아악보다 성악이나 기악곡을 더 많이 배웠고, 단원이나 혜원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를 더 많이 접했다. 이황이나 이이의 철학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더 자세하게 배웠으며, 홍대용이나 정약용보다 뉴턴이나 다윈과 같은 과학자에 대해 더 상세하게 배웠다. 또한 초가집과 기와집은 불편해 하고 양옥이나 아파트의 편리성에 더 일찍 눈을 떴다. 서양식 합리주의와 효율성에 힘입어 우리 문화는 불편하고 고루한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어 관심은 그저 서양의 역사와 문화, 서양 것에 대한 호기심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내가 배워온 서양 문화의 원류를 찾아보고 싶어 런던에 갔었고, 나의 지식과 생각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근원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의 문화유산이 한없이 부러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많이 불편했다. 서양의 박물관이라는 것이 대부분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를 식민지 삼아 부를 축적하고, 그를 기반으로 남의 나라 유물을 약탈해 오거나 도둑질 해 온 결과물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 나는 그들의 문화적 유산에 주눅들 필요가 없다. 크고 화려하고 장엄하고 사치스러운 게 도적질의 결과라면,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소박하고 검박하며 질박한 문화유산이 훨씬 낫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장엄하고 웅장하며, 보는 사람을 압도하고 주눅 들게 만드는 서양의 건축물보다 단아하고 고상하며 자연친화적인 우리의 건축물이 훨씬 더 인간적일런지도 모르겠다.

훌륭하다고 평가 받는 인류의 문화유산이 일반 백성들의 고혈 속에서 혹은 식민지 백성들의 힘겨운 시름 속에서 탄생했다면 그게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건지 나는 생각해 본다. 무조건 크고 높고 거대하게 짓는 건축물들이 후세 사람들의 눈요기 거리가 되기 위해 혹은 그 당시 지배 계층의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고통으로 물들인다면 그건 과연 인류의 훌륭한 유물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잃어버린 보물찾기

저자가 140여 쪽을 할애해 설명한 경복궁에 대해서도 장엄함이나 웅장함보다는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의 건축물은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저자는 이 책 속에서 경복궁뿐만 아니라 순천 선암사에 대해서, 거창의 서원과 정자들에 대해서, 부여의 유물과 유적지에 대해서 산뜻한 비유적 표현과 깔끔한 문장으로 읽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과 식당 아주머니들,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소박한 이야기까지 담아내고 있다. 문화유산은 유형적인 것도 있겠지만, 무형적인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땀내와 유머와 노동과 놀이에서도 찾을 수 있겠다 싶은 저자의 의도가 행간에서 읽히는 것 같아 나는 사람들과 저자의 만남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경복궁을 여러 번 가 보았지만 여태껏 나는 근정전 어좌 뒤의 병풍에 일월오악도가 그려진 지도 몰랐고, 월대에 석견이 조각되어 있는 줄도 몰랐다. 영재교에 천록이 있어 메롱,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줄은 더더구나 몰랐다. 저자의 말대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으니 다음 번 경복궁에 갈 때는 좀 더 자세히 궁을 보고 보인 만큼 많이 느꼈으면 싶다.

더구나 내가 사는 고장 보령의 유적지 성주사터와 가까이에 있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절집 무량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나에게 기쁨이었다. 전통 문화에 대한 어떤 분위기도 느끼지 못 하고 사는 나에게 성주사터와 무량사의 5층 석탑과 극락전은 보물찾기처럼 내가 잃어버리고 사는 나의 정체성이 생각날 때마다 들춰 보며 찾아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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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유홍준 지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작과 비평 펴냄>에 관한 임명옥 책익는 마을 회원의 글입니다.

화씨 451을 읽고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장윤성 (책익는 마을 주민)

 

1. 읽혀서는 절대 안 되는 책

몇 차례 쏟아지는 폭우에 결코 고개 숙이지 아니하고

제 마음 굽히지 않았더니 외꽃이 더욱 노랗다.

절대로 무릎 끓지 아니하고

제 뜻을 꺾지 아니 하였더니 능소화가 더욱 붉다.

저 꽃의 이유를 찬찬히 읽는데 가슴이 불시에 뛴다.

피가 갑작스럽게 끓는다.

단 며칠 세상에 목숨 내밀더라도

활짝 피는 것들이 生은 무기보다 더 위험하다고 한 줄도 읽지 못하게

자물쇠 단단하게 채워 놓거나

불을 지르면 지를수록 오히려 더 불온해지고 싶은 법이라네.

저 금지된 서적 같은 꽃에 물 들은 나도

짙은 빛을 내뱉으며 누군가에게 한달음에 읽혀지고 싶은 것이다.

–불온서적 (김종제님의 시)–

20 여 년 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선배 손에 이끌려 ‘금서’라는 책들을 읽으며 토론했다. 그 때 심장을 철커덕 거리며 읽었던 책은 해방 전후사의 인식, 철학에세이, 맑시즘, 고리끼의 어머니라는 책들이었다. 1980년 광주항쟁도 광주사태로 배워왔던 내가 그 책들을 읽으며 큰 충격에 빠졌다. 그 책들은 군부 독재의 반공 교육에 길들여진 무지한 나를 변화시켰다. 군부독재가 끝나면서 금서와 금지가요들이 해금되었고 우리의 사상은 더 이상 정부에 의해 통제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몇 년 전 국방부가 군인들에게 유해하다며 불온서적을 정했다는 기사를 보면 그렇지 못하다. 얼마 전에도 온 국민을 분노로 연대하게 만든 ‘도가니’의 원작 소설가를 경찰이 조사해야 한다는 한나라당 인권위의 얼빠진 소리도 들려왔다. 그들의 사상은 어떠하기에 국민의 사상을 검열하고 통제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내가 그들의 사상을 검열하고 싶다. 이 사회도 나도 아직까지 1980년대 이 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 위정자들은 책을 두려워한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비판적 사고를 지니게 된다. 책은 사람의 생각을 바꿔 행동을 바꾸게 하며 현재를 바꿔 나가면서 미래까지 바꾼다. 그 사실을 위정자들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는 ‘화씨 451’ 속의 위정자들도 책을 두려워한다. 책이 주는 거대한 힘을 알기 때문이다. 그 위정자들은 통치에 위험한 책을 없애기 위해 독서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책들을 불태운다. ‘유색인들은 <꼬마 검둥이 삼보>를 싫어하지. 태워버려. 백인들은 <톰아저씨의 오두막>을 싫어하고. 그것도 태워버려. 누군가가 담배와 폐암과의 관련에 대한 책을 썼다면? 담배 장사꾼들 분통이 터지겠지. 그럼 태워버려.’

지금 우리 위정자들은 어떤 책들을 불태우고 싶어 할까? 그 위험한 책들이 타기 시작하는 온도가 바로 화씨 451도 이다. 책을 태우는 일을 하는 사람이 Fireman 이다. 그러나 소방수가 아니라 방화수이다. 주인공 가이 몬테그도 방화수이다. 그는 클라리셰라는 소녀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이 하는 일에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방화수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법의 수호자라며 자부심을 가졌다. 클라리세는 비정상인 소녀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녀는 텔레비전 수업, 멋대로 정리한 교과서를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는 역사 수업, 운동 시간 등을 수업하는 학교에 대해 비판 한다. 그런 수업을 하는 교실을 감옥이라고 말한다. 클라리세의 말에 따르면 지금 우리 아들은 감옥에서 공부하고 있다. 딱한 내 아들이다. 클라리셰는 사람들이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아니에요.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자동차며 옷들이며 수영장 얘기 밖에 안 해요…..그저 농담이나 주고받으며 깔깔거리기 일쑤죠. 멋있고 즐겁지만 그것뿐이죠.”

클라리셰의 말처럼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말초적일뿐 더 이상의 지성은 없다. 몬테그의 아내 밀드레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녀는 하루 종일 벽면 TV 앞에 앉아 일방적인 TV 방송만을 탐닉한다. 그녀가 이웃집의 부인들과 나누는 대화는 오로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드라마 얘기뿐이다. 그녀가 소망하는 것이라곤 그저 네 벽 전체를 헐어 내고 텔레비전으로 바꾸는 것이다. 어디선가 많이 보아 온 풍경이다. 텔레비전이 거실 한 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우리 집, 커피를 마시며 어제 시청한 드라마로 열띠게 이야기하는 내 모습들이 겹쳐진다. 그래서 밀드레드나 이웃집 부인들을 차마 비웃지 못하겠다.

 

3. 책들을 읽으면……

클라리셰를 만나면서 몬테그는 책들을 태우는 일에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자신이 그토록 보람 있다고 생각해 온 일에 회의를 느낀다. 책 속에 어떤 것들이 있기에 모든 것을 버려가며 책을 지키고 책을 읽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다. 그 소녀가 사라진 후 몬테그는 자신들이 풍요로움을 누리면서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데도 무관심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는 그 진실은 책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 하루에 두 시간 씩만 이 책들을 읽으면, 어쩌면 …….”

이라고 절규한다. 몬테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변화 시켜 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떠나 자신이 숨겨둔 책들을 보호하려고 한다. 그 곳은 책을 필사적으로 지키며 살아가는 반사회적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책을 읽고 책을 지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반사회적 범죄인들이다. 픽션이라는 소설 속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80년대 금서를 읽었던 나도 반사회적 범죄인이었다. 몬테그가 사는 사회의 위정자들이 정말 두려워 한 것은 독서를 통해 국민들이 비판적 사고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국민들이 그런 사고를 지니게 되면 국민들을 멋대로 통치하기 어렵고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다. 몬테규의 절규처럼 책들을 읽으면 ‘앎’을 갖게 되고 ‘깨달음’을 얻게 되어 불의에 저항하게 만든다. 그래서 방화서장 비티의 말대로 책을 소유하는 게 범죄가 아니라 읽는 게 문제인 것이다. 나는 책을 소유하고 있는지 아니면 읽고 있는 지 되돌아본다.

 

4. 책이 사라지고 있다?

출판사 시장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단다. 우리 아들만 보아도 그럴 것 같다. 고등학교에 입학 후 아들내미가 읽는 책이라곤 교과서와 문제집, 참고서가 전부이다. 책갈피를 넘겨가며 읽는 아들의 모습이 낯설어서 걱정이다. 이렇게 독서를 하는 경우는 국어 수행평가로 독서 감상문을 쓸 때를 제외하곤 거의 없다. 독서를 하라고 말하면 시간이 없다는 변명만 돌아온다. 토요일에도 밤에 귀가하는 아들을 보면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건지 책 읽을 마음이 없는 건지 헷갈린다. 그러나 TV 앞에 앉아 낄낄거리는 걸 보면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책 읽기는 괴로우나 TV 시청은 즐겁다는 아들놈을 보며 고민한다. 아들과 비슷한 아이들이 많다면 ‘책이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라는 기우이다. 부디 우리 아들들이 TV가 주는 감각적 유희에서 빠져나와 책 읽기가 주는 이성적 사고에 빠져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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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래이 브래드버리 지음, <화씨 451>(박상준 옮김, 황금가지 펴냄>에 관한 장윤성 책익는 마을 주민의 글입니다.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6

김남우 (정암학당)

 

애초 연재를 시작하며 출판사 <열린책들>과 맺은 약정에 따라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우신예찬의 연재를 마친다. 연재를 진행하며 우신예찬의 번역을 마무리하였으며, 출간을 며칠 앞두고 있다. 성원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출간될 책에 대하여 따끔한 지적과 비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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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년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에 화답하는 1516년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지혜에 대한 칭송이라 하겠다. 매우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에라스무스와 토머스 모어는 인문주의 운동에 앞장 선 인물들로서, 이들은 <우신예찬>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고, <유토피아>를 통해 대안을 제시하였다.]

오늘날 교황들은 수고가 가는 것들은 베드로와 바오로에게 맡겨 두고 자신들은 넘쳐 나는 여가를 즐기며, 빛나고 즐거운 일은 자신들이 맡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나 우신 덕분에 인간 종족들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 여유롭게 살아가며 근심이라고는 전혀 없으며, 다만 신비적인 흡사 무대 의상을 걸치고 예배를 거행하며 복된 자, 존경스러운 자, 신성한 자라는 칭호를 휘두르며 축복과 저주로 파수꾼의 일을 수행하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충족시킬 것이라 믿습니다. 기적을 행하는 것은 낡고 진부하며 오늘날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며, 대중을 교화시키는 것은 힘든 일이며, 성서를 해석하는 일은 학교에서나 할 일이며, 기도를 올리는 일은 한가한 일이며, 눈물을 흘리는 일은 미욱한 여인들의 일이며, 가난을 실천하는 것은 역겨운 일이며, 남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은 위대한 왕들에게조차 지복의 발바닥에 입 맞추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자신들로서는 치욕스럽고 가당치 않은 일이며, 죽는 것도 끔찍한 일인데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만부당한 치욕이라 교황들은 생각합니다.

이들의 유일한 무기는 바오로가 경계하였던바 달콤하고 비위에 맞는 말이며 또한 이들이 후하기 이를 데 없이 베푸는 성무 면직, 성무 집행 정지, 제 1차 제명 및 제 2차 제명, 파문, 사람들의 영혼을 고갯짓 한번으로 지옥에 보내 버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벼락같은 파문자들의 초상 전시 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성스러운 사제들과 대리자들이 할 본분은 악마에게 충동받아 베드로의 유산을 들어먹고 탕진하는 자들을 무엇보다 매섭게 나무라는 일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복음에 따르면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하였거늘, 교황들은 이와 달리 토지와 도시와 세금과 통행료와 권력을 베드로의 유산이라 부릅니다. 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불태우며 교황들은 칼과 불로써 기독교인들의 엄청난 유혈사태를 불사하면서까지, 이렇게 하는 것이 사도들이 하였던 것처럼 용감하게 소위 타락한 적들을 척결하여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된 교회를 지키는 것이라 믿으며, 이것들을 지켜 냅니다. 하지만 사실 교회의 가장 무섭고 지독한 적은, 침묵으로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잊히도록 방치하며, 장사치의 법률로 그리스도를 결박하며, 억지 해석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왜곡하며, 역병 같은 삶으로 그리스도를 살해하는 불경한 교황들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졌으며, 그 피로 굳건해졌으며, 그 피로 성장하였으나, 이렇게 자신의 방법으로 그의 백성들을 지키고자 하였던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가셨으니, 이제는 마치 칼을 들어야 할 것처럼 교황들은 전쟁을 불사합니다. 전쟁은 끔찍하기가 짐승이 아닌 인간에게는 어울리지 않으며, 시인들이 말하는바 복수의 여신들이 보낸 것이라 할 만큼 미친 짓이며, 세상을 한꺼번에 휩쓸어 가는 역병처럼 치명적이며, 흉악무도한 날강도들이 제일 잘 수행하곤 하는 무법한 일이며, 그리스도와는 무관하여 다만 불경한 일인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들은 다른 것들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다만 오로지 전쟁을 수행합니다. 이 가운데 여러분은 백발이 성성한 교황들조차 청춘의 열정과 힘을 과시하는 것을, 엄청난 비용에 괘념치 않는 것을, 역경과 고난에 지치지 않는 것을, 국법과 종교와 평화와 인간 만사가 모조리 뒤죽박죽 엉망이 되는 것에도 굴하지 않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들 옆에서 학식을 갖춘 아첨꾼들은 명백한 광기를 열정과 경건과 용기라고 부르며, 어떤 사람이 치명적인 칼을 뽑아 형제의 복부를 찌르면서도 그리스도의 크나큰 사랑과 기독교인이 따라야 할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부터 조금도 벗어나지 않을 수 있는 놀라운 방법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에 있어 게르마니아의 주교들이 선례를 제공한 것인지, 아니면 그보다는 차라리 그들도 선례를 따른 것인지 아직까지 나는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게르마니아의 주교들은 공공연히, 관복을 벗어 놓고 심지어 축도는 물론이고 그런 모든 종류의 예배 의식까지 생략한 채, 페르시아의 태수 노릇을 하는바, 이들은 전쟁터의 최전방 이외의 장소에서 자신의 영혼을 하느님에게 바치는 것은 비겁함이며 주교의 직분에 어울리지 않는 태도라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사제들의 무리도 자신들이 주교들의 성덕에 뒤처지는 것을 불경한 일이라 여겨, 십일조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병사처럼 칼을 들고, 창을 잡고, 돌을 던지며 온갖 무기들로 참전합니다. 또한 게 중 눈 밝은 자들은 옛 문서를 뒤져 백성들을 위협하여 십일조 이상을 쟁취하기 위한 문구를 찾아냅니다. 반면 그 외에 여기저기서 발견되는바 그들이 백성들에게 제시해야만 하는 많은 다른 의무들은 그들의 안중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깔끔하게 밀어 낸 머리카락도 이들에게, 모름지기 사제란 이 세상의 모든 욕망을 버려야 하며 오로지 천국의 일만을 명상해야 할 존재임을 알려 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마냥 즐거운 이 인간들은 박약한 기도를 중얼거리기는 것으로 스스로 해야 할 의무를 정당하게 다했노라 믿습니다. 그들의 귀에 대고 크게 소리쳐도 스스로도 알아듣거나 이해하지 못할 그런 기도를, 나 우신조차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바 어느 신도 듣거나 혹은 알아들을 수 없을 그런 기도를 말입니다.

사제들과 세속인들과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가 수익을 올리는 데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와 관련된 법률에 정통하다는 것입니다. 또 커다란 부담을 져야 할 경우 이를, 마치 공을 다른 사람에게 받아서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때처럼 영리하게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세속 군주들은 흔히 국가를 다스릴 과업을 비서들에게 떠맡기고, 다시 비서들은 비서의 비서들에게 하청을 주는 것처럼, 긍휼의 과업을 사양지심(辭讓之心)을 발휘하여 모두 백성들에게 양보합니다. 그럼 백성들은 이를 다시, 자신들이 교회와 무관하고 세례 서언을 행하지 않은 듯 자신들과 구별하여 ‘교회 식구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맡깁니다. 교회 식구들 가운데, 그리스도가 아니라 세속에 헌신하기로 맹세나 한 듯 자신들을 ‘재속 사제’라고 부르는 자들은 다시 이를 ‘수도회 사제’들에게 굴려 보냅니다. 수도회 사제들은 이를 다시 수도승들에게, 다시 유연 수도승은 강직 수도승에게, 다시 모두는 탁발 수도승에게, 다시 탁발 수도승은 이를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은수자들에게 맡깁니다. 하여 오로지 카르투시오 수도회 은수자들에게서 긍휼은 은밀히 간직되어 있는바, 어찌나 잘 감추어져 있는지 여간해서는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황들은 예배를 통해 금전을 부지런히 모으는 데 바빠 사도의 막중한 과업은 주교들에게 이양하며, 주교들은 사제들에게 이양하고, 사제들은 부사제들에게, 부사제들은 탁발하는 형제들에게 이양합니다. 그럼 탁발 수도승들은 이를 다시 양털을 깎는 목자들에게 전가합니다.

이상 내 연설의 목적은 칭송이라면 모를까, 교황들과 사제들의 삶을 들추어내어 풍자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내가 훌륭한 군주들을 욕보이거나 악한 군주들을 칭송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나 우신을 받아들이고 나 우신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인간들 가운데 누구도 행복하게 살 수 없을 밝혀내기 위해 이를 약간 살펴보았을 따름입니다.

“제2차 인문학 페스티벌”(8. 20-21), 대천 해수욕장에서 책읽기 잔치 열려

작년 2010년에 처음으로 열린 <인문학 페스티벌>에 이어 올 해에도 보령(대천)에서 보령 책익는 마을(촌장 박종택)의 주최 주관으로 <제2차 인문학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2010년에는, 박인희(안양대 강의교수)의 김명진(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 이진남(숙명여대 교수), 류호철(안양대 강의교수), 이정모(과학저술가), 김시천(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이종필(고등과학연구원), 편상범(고려대 강사), 전중환(경희대 교수), 이재현(동덕여대 교수), 이명현(천문연구원 연구원), 강양구(프레시안 기자) 등 인문학의 여러 분야는 물론 과학, 종교, 역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강의가 한창 휴가철인 8월 13-14일 이틀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당시 인문학 페스티벌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시민과 학생이 세미나룸을 가득 채웠고, 아침부터 하루종일 계속되는 강의에도 불구하고 강의실의 열기는 내내 뜨거웠다.

처음에는 몇 명의 독서모임으로 출발한 조촐한 모임이었지만, 지금은 여러 팀으로 이루어져 매월 저자를 초청하여 모두가 읽고 강의와 토론을 하는 <저자초청토론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며, 2010년부터는 집중적으로 인문학에 대한 강의와 토론의 축제로서 <인문학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올 해에는 2010년에 강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페스티벌의 성격을 약간 변화시켜, 저자토론회와 접목시켜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참여하기로 정해진 강사진은, 김주일(정암학당 연구원)의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를 비롯, 최시현(소설가), 장시복(경제학자), 이종수(문학저술가), 김태권(만화가) 등이 자신의 저술을 중심으로 강의하고 토론하는 축제가 마련하고, 8월 20-21일 이틀에 걸쳐 대천 한화콘도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아래의 글은 ‘보령 책익는 마을’의 황선만(보령 책익는 마을 전 촌장)이 <제1차 인문학 페스티벌>을 마친 후에 <보령신문>에 기고한 글 “2010보령 인문학페스티벌을 마치고”을 옮겨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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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전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아저씨뻘 되는 친척분은 내게 이것 저것 꼬치꼬치 물었다. 직장은 잘 다니고 있는지, 사는 집은 어떤 곳인지,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하는지, 돈 벌이는 괜찮은지 등등 친척 어른으로서 궁금한 점이 많았는가 보다. 그런데 헤어지면서 하시는 말씀이 날 잠시 머뭇거리게 하였다.

“주변 사람들이 잘 살아야 되네,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해서 성공해야 돼! 알뜰하게 돈 잘 벌게.”

우리네 생활 속에서 의례적이고 일상적으로 듣는 말이고 가장 많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성공과 돈이 등치관계라는 주장은 교과서에만 등장하지 않을 뿐 우리네 삶의 공간에는 도그마와 같은 명제로 또아리를 틀고 있다. 문화행사도 돈벌이가 되어야 하고, 국회의원도 돈을 벌 줄 알아야만 한다. 청소년들의 공부의 목적은 명문대를 가는 것이고, 그것도 고액 연봉의 직장으로 취업 잘되는 학과를 가는 것이다.

인문학 페스티벌이 만들어진 의도 속에는 그런 고민이 들어있다. 우리네 장롱 속에 숨어버린 것 같은 ‘가치’라는 단어를 꺼내서 펼쳐들고 다양한 무늬의 ‘성공’의 길을 생각해보고 싶었다. 몇몇 학자와 저자를 모시고 책익는마을의 조촐한 토론회를 생각했는데 횡재수가 온 것이다. 참여하겠다는 분이 12명이나 기별이 온 것 아닌가. 그동안 저자초청 토론회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을 초대하는 행사를 10여 차례 진행해온 우리들은 별 이의없이 ‘보령시민들과 함께하는 만남의 장’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뿔사! 시간을 아무리 쪼개도 12명의 강의를 넉넉하게 배치할 수가 없었다. 몇 분은 오시지 말라고 하는 것도 참으로 어렵고 기간을 하루 이틀 더 늘릴 수도 없는 처지이다 보니 1시간 강의 10분 휴식에 12시간 연강이라는 수험생 시간표가 나오고 말았다.

게다가 제목을 붙이는 것 또한 고민거리였다. 도대체가 한 단어로 표현할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약간은 겸연쩍은 일이지만 12강 중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주제를 포괄하는 단어를 생각했고 그 결과물이 인문학 페스티벌이었다. 책익는 마을의 저자초청토론회가 ‘인문학’ 중심이었고 우리들의 월별 선정도서 또한 그러하기에 인문학이라는 단어는 구미를 확, 땡겨왔다. 그리고 인문학페스티벌이라는 제목만 읽어보고 찾아올 위인이 어디있겠는가. 이야기 주제와 강사프로필이 있으니 사전에 생각해볼 여유는 충분할 것이었다.

그래서 참가자들에게 사전에 자세히 안내하는 차원에서 강사의 소속, 저서, 강의주제, 자세한 시간 안내까지 포스터, 전단지 등에 담아두었던 것이다. 듣고 싶은 강의만 들어도 상관없으니 주제와 강의시간을 살펴서 원하는 강의시간별로 참석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넣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시간을 맞춰서 원하는 강의에 참여했는데, 12강을 계속해서 참여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어떤 강의시간에는 넓은 세미나실에 보조의자까지 채워지는 경우도 있었다. 세상에 일없는 사람은 없다고 했는데, 귀한 시간들을 아낌없이 배려하는 것을 볼 때 시민들의 지적 욕구가 얼마나 큰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참여자는 보령시민들 뿐만이 아니었다. 서울, 인천, 수원, 부여에서도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고, 익산과 천안에서도 다녀갔다. 또 어떤 사람은 보령시 홈페이지에 난 홍보를 보고 대구에서 올라와 1박2일 동안 꼬박 강의실을 지켰다.

강사들도 행사의 의도에 공감해서인지 자신의 강의시간만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청중으로 앉아있었고 쉬는 시간에는 참가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했다. 약간은 우려했던 과학 관련된 강사들의 강의내용도 행사의 제목을 의식해서인지 순수자연과학에 치우치지는 않았다. 솔직히 이날의 인문학페스티벌이 전공학자들의 세미나도 아니고 이른바 대중강연 아닌가. 아무리 수준을 맞춘다하여도 주제에 따라서 어떤 이에게는 부족할 터이고, 어떤 청중에게는 넘칠 것 아닌가. 배정된 시간이라도 넉넉했다면 좀 나았겠지만 강의시간표를 받아든 누구라도 예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강사들이 자신의 강의 앞뒤에도 자리를 지켜주어서 관심있는 사람들과의 개별적 소통이 이루어진 것은 흐믓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책익는마을의 저자초청 토론회처럼 선정도서를 읽은 사람에 한해 참가하고 30분 저자의 강의에 90분 질의응답으로 이어지는 토론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러나 그런식으로 그렇게 많은 강사들을 만날려면 우리들 일상을 참으로 많이 할애해야 했을 것이다.

1박2일 동안 이어진 릴레이 강의를 듣고 다소 피곤해진 몸으로 정리를 하고 있는데 연세 지긋한 한 선배에게서 문자가 왔다.

“유익한 시간들이었어. 우리가 젊어지는 느낌이었고 행복했어.”

도대체 내가 왜 이틀 동안 아니, 준비해온 한 달 동안 생업도 소홀히 하면서 왜 그렇게 달뜬 나날을 보냈을까. 책익는 마을 회원들은 또 무슨 이득을 보자고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나누고 후원금까지 내면서 달려왔을까. 직장에서 휴가를 내면서까지 참여했다는 낯선 청중들은 또 어떤 열정이 있기에 그런 용기를 내었을까. 그 자리는 흔히 만나는 ‘금융자산관리법’ 강의도, 돈 많이 번 유명인사의 ‘인생 성공법’ 강의도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진중하고 고리타분해서 우리가 학창시절에 얼핏 스쳐갔을 뿐 대체로 거들떠보지 않는 어려운 주제들이 아니었던가.

나는 그 열정을 지적인 욕구,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고미숙은 『호모쿵푸스』에서 ‘아무런 실용적 목적이 없이도 공부할 수 있을 때, 그때 공부는 비로소 최고의 지식이자 사회를 변혁하는 무기이면서 동시에 운명을 통찰하는 지혜의 수행이 된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에게 ‘책읽지 말고 공부하라’고 말해야하는 시대이기에, ‘대학을 졸업하면 공부 끝!’이라고 하는 세상이기에 나는 행복해지는 조건으로 인문학적 독서를 소망한다.

우리는 학교 다닐 때의 성적을 다 늙어서까지 외고 다니면서 자신의 두뇌가 뛰어나다고 믿는 사람들을 흔히 만난다. 또 학교 때 성적이 안 좋았던 사람들은 자신이 평생 책과는 인연이 없다고 치부해버리는 경우도 만나곤 한다. 모두가 잘못된 성장기가 만들어준 허상이다. 한 번 책을 함께 읽고 터놓고 만나보라. 나이도 학력도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능력도 전제하지 말고 책을 놓고 함께 토론해보라. 권위와 잘난체를 소거하고 함께하는 공부가 얼마나 따스한 인간애를 샘솟게 하고 행복한 기운이 넘쳐나게 하는지를 경험해보시라. 우리나라 근대적 사유의 물꼬를 튼 연암 박지원은 13살 연하인 박제가와 평생 벗으로 함께했다. 책을 읽는 공부는 누구나가 할 수 있고, 그 속에서 다양한 무늬를 한 역동적 행복의 길을 만날 수 있다.

2010보령 인문학 페스티벌은 보령 시민들의 그런 공부를 향한 열정을 확인하는 계기에 다름 아니었다. 평생교육이라해서 실용적 기능을 배우는 것 만이 어찌 평생교육이겠는가. 아니, 우리는 대학에서까지 기업에서 요구하는 기능 중심의 스펙 쌓기 공부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성인사회에 독서가 필요하다. 사회인으로 시작하는 그 시점이야말로 비로소 진짜 공부를 해야하는 출발점이다. 마지막 강의를 듣고 일어서는 그 순간에 내 마음속에는 읽고 싶은 책이 여러 권 떠올랐다. 또 이틀 동안 특별한 기능을 익히지도 않았고 대단한 지식을 배운 것도 아니지만 뿌듯한 기운이 충만해지고 있었다.

<보령신문 2010년 8월 24일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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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e시대와 철학>에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를 연재하는 보령 책익는 마을의 인문학 축전이 인문학과 삶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시민 축전으로 자리매김되기를 바라며, 이에 소식을 알립니다.

일시 및 장소 : 2011년 8월 20-21일 대천 한화콘도 세미나실

참고 문의 및 연락처 : 017-432-9558

카페주소 : http://cafe.daum.net/thinders

주술은 나의 일상에 숨어있다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박종택 (보령 책익는 마을 촌장)

 

방사능비가 내리는 아침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

그건 희곡의 제목이고 나는 날씨에 따라 변하는 존재로 아침에 눈을 뜨기 전에 비가 오는지의 여부 정도는 몸으로 느낀다. 그것은 때로는 슈퍼컴퓨터와 인공위성에 의지한 일기예보 보다 정확하다. 늙어서 그렇다고?

개구리가 많았던 시절, 개구리가 유난히 시끄럽게 울고, 제비가 낮게 날면 농부들은 논의 물고를 터놓았고, 어머니는 아침에 종달새가 높이 나는 것을 보고는 2km 거리에 있는 학교로 향하는 나의 등하교 길을 걱정하지 않으셨다. 기상과학을 공부하지 못한 나의 어머니와 농부들의 예측이 미신이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개구리의 피부가 습도에 민감하고 대기의 기압에 따라 새와 헬리콥터의 비상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그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비를 느끼며 일어나서 일본 원전사고와 오늘 강우의 연관성에 관하여 인터넷을 검색한다. 결론은 ‘인체에 해롭지 않으니 비 맞지 마십시오.’라는 전문가의 유능한 견해다. 어느 신문사를 막론하고 본질 보다는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기사화 할 뿐이다. 넝마를 시간과 돈을 주고 구매하는 현실이다. 물론 나는 넝마를 돈 주고 사지는 않지만 가끔은 필요로 할 때가 있다.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아이가 응아가 급하다고 할 때마다, 그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며 신문을 활짝 편다. 물론 이쯤에서 오감을 넘어 예지 능력과 예감이 발달한 분이라면 식사직전에는 이런 ‘응아’ 이야기가 나오는 글은 절대 읽지 않으리라 믿는다. 각설하고 화장실에 앉아 배설의 쾌락을 만끽하며 시원한 결정을 내린다. 강우에 의한 방사능 피폭의 유무에 관계없이 하루 종일 불안해할 수도 있는 아이 엄마의 정신적 고통을 줄이기 위하여 아이의 유치원 등원을 거부한다. 오늘 하루 더불어 놀아줄 아이들과 집단놀이가 사라지게 됨을 예감한 아이가 아빠에 집착하며 출근을 저지한다. 나는 자본주의와 느림의 미학 사이에서 잠시 갈등하다가 아이의 미래를 위하여 전쟁놀이를 선택한다. 점보블럭으로 성을 쌓고 나는 도깨비 가면을 쓰고 아이는 파워레인저 가면을 쓴 뒤 매복과 기습을 반복하던 두 시간 동안의 전쟁에서 아이를 두 번 울리고 밥상 앞에서 평화협정을 제안한다. 경제 논리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나의 행동은 혀를 찰 일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오늘 아침의 두 시간은 훗날에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며 회고할 때 감미로운 행복으로 기억되는 좋은 시간이리라 믿는다.

 

점심시간에 본 미술작품에 대한 소고

친구와 함께 방사능 낙진이 우려되는 빗속을 뚫고 점심을 먹으러 간다.

살림집을 개조한 식당의 방을 보니 사방에 집주인이 취미로 그렸다는 그림이 가득하다.

함께 한 친구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교단에 섰다가 미술입시학원을 운영했던 관계로 이야기 소재가 궁색하지 않다.

“이 분은 대범한 사람은 아닐걸. 여백을 두려하는 것을 보니 소심하고 꼼꼼하되 사람은 좋을 것 같아.” 라고 말을 건넨다.

“학식이 많지는 않으나 시골 선비 같은 사람일걸. 정통 미술을 가르치려면 힘 좀 들어야 할 걸.” 하고 말을 받는다.

잠시 후 음식을 내어 온 주인장의 얼굴을 살펴보니 아까 둘이서 나누었던 대화와 다를 바 없이 ‘굽히지 않되 불친절 하지는 않은 소박한 분’이시다. 점심을 맛있게 들고 나서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수료증과 명분 없는 봉황무늬 새겨진 감사패 무리를 살펴보고 밖으로 나온다.

친구가 끽연을 즐기는 사이 어제 마신 주님의 은총으로 발길이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을 살펴보니 생각해서 꾸민 물건들이 치워 버려야 시원 할 상황이다. 이 식당에 걸린 여백 없는 그림들과 주인에게서 느낀 인상, 오직 한 기관에서 발행한 수많은 수료증, 화장실의 불필요한 물건들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는 점심시간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사물을 보면서 생물학적 시각으로 보이는 그 자체만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있는 그대로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차를 몰고 식당을 벗어나면서 오만방자하게 오늘날의 미술을 들었다 놓는다. 기능은 있지만 예능은 없고, 학력은 있으되 학식은 없고, 수업은 있으되 교육은 없는 자들이 미술교육의 전방에 서서 유해한 방사능을 살포하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현실의 출처는 미대 입시제도에서 그 근본을 찾고 싶다. 홍익대 미대가 수년전부터 입시 제도를 변경하기는 했지만 미대 입시의 실기고사는 석고 데생이 중심이다.

오늘날 석고 데생으로 미대 입시를 치르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밖에 없다. 미대 지망생들은 고등하교 내내 석고상만 바라보다 대입 실기고사를 치르게 되고 대학은 석고 데생의 숙련공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양성된 기능공이 강단에 서게 되면 ‘美術’의 개념부터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예술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뛰어난 상상력과 발상의 참신함이지 기능이 아니다. 기능은 수단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나는 전시장에 서서 <무제>라는 제목 앞에서면 경멸과 분노를 느낀다. 그 작품을 제작한 본인도 무슨 의미인지, 무슨 의도를 품고 진행되었는지를 모른다면 핵물리학자가 방사능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며, 정신병자가 변기를 묶어 끌고 다니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만든 사람도 무엇인지 모르는 <무제>에서 관람자가 뭔가를 찾아내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그런 노력은 정신적 피폐를 불러오는 악성 방사능이다. 그림 자체에 제작 의도와 의미, 그리고 상징이 결여 되어 있다면 미술작품이 벽면의 벽지만도, 화장실 벽의 타일만한 의미도 없다는 말인가? 왜 대개의 사람이 미술에 관해서라면 모르겠다고 고개를 내 젓게 만드는가?

실제로 미술이 우리의 일상적 삶의 가까이에서 호흡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미술만큼 눈에 보이도록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예술이 없는 데도 미술은 뜻 모를 개념들과 추상적 관념만이 난무할 뿐이다. 각종 전시회도 그들만의 잔치로서 유파를 같이하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그들의 축하를 받고 그들의 찬사를 듣는 행사일 뿐이다. 일반인들에게 곤혹스런 그림을 걸어 놓고 그 본질을 꿰뚫어 보라는 것은 잔칫집에 오기 전에 먹을 것을 싸서 오든가 굶으라는 논리다.

 

내 주변 그림과의 주술적 소통

점심식사로 목구멍에 풀칠을 한 후, 나의 직업인 풀칠을 위하여 작업장으로 돌아온다. 나는 현재 표구(일본말이다. 우리말로는 장황, 장배, 표장, 배첩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어(死語)에 가깝다.)와 액자(이것도 일본말이다.) 제작으로 인해 진정한 풀칠을 하며 산다. 고객이 그림 선택의 조언을 구하면(어차피 듣지 않을 것이면서), 자신의 눈을 믿고 마음이 끌리는 작품을 선택하기를 권한다. 라이벌인 부자 친구의 집에 걸려 있는 그림은 잊으라고 권한다. 그 친구가 돈이 많은 것이지 안목이 높은 것은 아니니까.

 

그럼 전시장에서 그림을 감상 할 때 어떻게 보아야 잘 보는 것인가?

아내를 고를 때 옆집 남자의 눈으로 고르고, 남편을 고를 때 위층 여자의 시선으로 골랐는가? 마음으로 보라, 자기중심으로 보라, 내 영혼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라. 좋은 것은 좋고, 좋지 않은 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 모든 작품에 동일한 시간을 배려하지 말라. 모든 친구와 똑같이 친한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시간을 할애하며 살고 있는가? 마음이 이끄는 작품에게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자. 이성이 마음에 들 때 혼자서 끙끙 앓으며 바라만 보았는가? 친구나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던가? 전시장에는 큐레이터와 작가라는 친구가 그대를 돕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다.

 

그림 구매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가 옷을 구매할 때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선택하게 된다. 그 옷을 입으면 단아해 보이기 때문에, 또는 듬직해 보이기 때문에, 섹시해 보이기 때문에, 경쾌해 보이기 때문에, 세련되어 보이기 때문에 등 여러 가지 선택의 까닭을 가지고 있다. ‘나는 옷이란 편하고 따뜻하기만 하면 돼’라고 말하는 사람조차도 ‘이 옷 색상은 더워 보여, 이 옷 스타일은 추워 보여’ 정도는 따져보기 마련이다.

그림 구매도 말 그대로 구매다.

우리는 과시용으로 더운 나라에 살면서 밍크코트를 구매하고 3,000켤레의 구두를 사서 모았던 필리핀의 이멜다 마르코스가 아니기 때문에 즐기고 느끼기 위하여 그림을 구매하는 것이다. 자신의 눈이 가장 현명한 감식안이다.

 

야심한 밤, 칼을 빼어든다

방사능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밤이다. 한 손에 망치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집어 든다. 수일 전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끈기 있게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음)을 사훈으로 정했는데, 서예작품 보다는 독특하게 서각작품으로 걸고 싶다는 주문이 있었다. 그 주문에 따라 표피적인 감각과 알량한 수준의 손재주로 나무를 판다. 내 얄팍한 생각으로는 나무속에 숨어 있는 글을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서각작품인데, 나의 재주는 글씨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파내는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나의 감각과 감성이 부족하니 마부작침의 자세로라도 각을 해야 할 텐데 시장논리가 작용하여 도끼를 가는 것이 아니라 도끼날만 갈고 만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작품의 상업성, 작품의 환금성이라는 단어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몇몇 친구들은 나를 보고 작가가 아닌 잡가(雜家)라 부른다. 고객에게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고 가액(價額)과 임금을 받는 상업성이 뚜렷한 잡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합리화 하는 배려를 잊지 않는다.

“어차피 요즘 세상은 작품의 질과는 별 상관없이 풍부하고 번뜩이는 상상력과 감각적 문장을 구사하고, 세련되고 현란한 말재주를 소유한 사람이 작가여.”

“예술은 하나의 형식이나 내용으로 정의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야. 예술의 불확실성이 또 다른 예술적 행위를 이끄는 원동력이야.” 하며 내 귀도 못 알아들을 소리를 내 입으로 중얼거린다.

각이 끝나고 아크릴 물감을 짜기 시작한다. 원래 의도는 금분을 사용할 예정이었는데, 시계를 보니 시장성이 창의력과 상상력을 몰아낼 시간이다. 간단히 날려 칠하고 인테리어 수준으로 마무리 한다. 이 때 쯤 목소리를 높여 중얼거려야 한다.

“의뢰하신 분께서 원청회사가 부도나는 통에 여러 번 사업에 실패하시고 ‘이번이 마지막 재기의 기회일 것 같다’고 했으니 기를 돋우는 주술적 의미에서 강렬한 빨강색을 써 봤어.” 라며 스스로를 합리화 한다. 그런데 왜 이 순간 ‘예술은 사기다.’ 라는 백남준씨의 말이 떠오르는 거지? 그건 그렇고 어제 술 마신 것이 24시간도 넘었는데 왜 서각 하는 내내 방귀가 계속 나오는 거야? 일본 원자력 발전소 방사능의 영향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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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김융희 지음, <예술, 주술적 세계와의 소통>(책세상 펴냄>에 관한 박종택 책익는 마을 촌장의 글입니다.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5

김남우(정암학당)

[에라스무스는 군주들과 귀족들과, 이어 교황들과 추기경들과 주교들을 비판한다. 그들은 주어진 본연의 과업을 남들에게 맡겨두고 자신들은 어리석은 행동만을 일삼는다.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연재에서는 교황들과 추기경들과 주교들에 대한 비판을 이어갈 예정이다.]
우신 Stultitia이렇게 여러분은 내 생각에 어느 정도 나 우신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수사들의 부류들에 관하여, 이들이 예배에 있어서 웃지 못 할 여러 가지 것들과 고함소리를 가지고 일종의 독재 권력을 사람들 사이에서 행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바오로와 안토니오라고 믿습니다. 이제 나는 이렇게 내가 베푼 은공을 모른 체하는 배은망덕한 배우 나부랭이, 경건함을 가장하는 불경한 위선자들에 관해서는 그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제는 군주들과 궁정 귀족들에 관해 몇 가지 언급하겠습니다. 이들은 타고난 혈통에 어울린다 싶게 탁 터놓고 솔직 담백하게 나 우신을 숭배합니다. 콩알 반쪽만큼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의 삶을 무엇보다 시답지 못한 것으로 기피할 것입니다. 군주의 자리에 앉는 것으로 인해 어깨에 엄청나게 커다란 짐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모두가, 배신과 부친 살해를 저지르면서까지 권력을 얻으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군주의 자리란 곧 사적인 것이 아닌 공적인 업무를 수행함이며, 국가의 공익 이외에는 어느 것도 생각하지 않음이며, 법률의 제정자이며 승인자로서 법률에서 손톱만치도 벗어나지 않음이며, 모든 공직자들과 행정관들이 청렴결백하게끔 이끌어 감이며, 행운별처럼 도덕적 탁월함으로 인민에게 커다란 안녕을 가져다줄 수도 있고 불운의 행성처럼 심각한 불행을 가져다줄 수 있는 자로서 만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자리이며, 필부의 과오처럼 그의 잘못을 장차 아무도 모르게 깊이 숨길 수 없는 자리이며, 아주 조금이나마 정직함을 잃으면 그 결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회복 불가능한 역병을 초래하는 자리이며, 군주의 운명에 동반하는 많은 것이 그를 정의로부터 끌어내릴 것이기 때문에 설령 속임수에 의해서라도 쾌락과 방종과 아첨과 사치 등에 빠지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고 더욱 염려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마지막으로 반역과 원한과 전쟁과 폭력은 말고라도 제 아무리 사소한 잘못일지라도 죗값을 치르게 하시며 행사한 권력만큼 이를 더욱 엄중히 따져 물으실 왕 중 왕에게 두려움을 가져야 할 자리가 군주의 자리입니다. 내 말하노니, 이런 것들과 이런 종류의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면, 물론 이를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하다면 말이지만, 결코 군주 된 자는 잠과 식사를 즐겁고 유쾌하게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군주들은 나 우신의 도움을 받아 모든 근심걱정을 신들에게 맡겨 두고 염려와 고민을 치워 둔 채, 영혼에 불쾌감이 들지 않도록 듣기 좋은 말만을 하는 자들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이들은 열심히 사냥하고, 명마를 사육하고, 행정과 군인 요직을 판매하고, 백성들의 주머니를 털어 자신의 금고를 채울 새로운 방법을 매일매일 고안하고, 제 아무리 불공정한 일이지라도 명목을 바꾸어 공정하게 포장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군주의 본분을 충실하게 수행하였다고 믿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백성들의 마음을 제 편으로 얻기 위해 백성들에게 아첨하는데도 힘을 기울입니다. 여러분은 그려 보기 바랍니다. 법률적 지식은 전무하고,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흡사 적대자이고, 개인적인 유익만을 추구하고, 쾌락에 흠뻑 젖어 학문과 자유와 진리를 혐오하고, 국가의 안녕은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오로지 모든 것을 자신의 욕망과 편리에 따라 측량하는 인간들을 말입니다. 더불어 이들이, 관련된 모든 덕목을 하나로 묶어 상징하는 황금 목걸이를 걸고 있으며, 모든 영웅적 용기에 있어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음을 뜻하는 진귀한 보석 왕관을 쓰고 있으며, 정의와 어느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공정을 상징하는 왕홀을 쥐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국가에 대한 어떤 극진한 헌신을 뜻하는 자줏빛 용포를 입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오늘날 군주들이 이런 장식물들에 비추어 자신들의 삶을 돌아본다면, 내 생각에 이들은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행여 익살스러운 해설자가 나타나 이런 모든 비극적 의복을 조롱하지 않을까 염려할 것입니다.

그럼 궁정 귀족들은 어떻습니까? 이들 대부분은 더할 수 없을 만큼 알랑거리며 비굴하고 어리석고 천박합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자신들이 모든 일에 있어 제일 앞서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만 한 가지 겸손을 보이며 양보하는 것이 있는바, 금붙이며 보석들이며 자줏빛 관복 등 덕과 지혜를 상징하는 장신구들로 몸을 휘감은 반면 정작 덕과 지혜의 연마 자체는 남들에게 양보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군주를 ‘주인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위가 주었음에, 군주에게 몇 마디 인사를 건넬 수 있음에, 군주를 부르며 ‘근엄하시고 존엄하시고 위대하신’ 등의 굉장한 호칭을 줄줄이 엮어 넣을 줄 앎에, 이런 낯간지러운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함에, 이런 아부를 멋들어지게 해냄에 즐거워합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궁정 귀족 된 자들이 갖추어야 할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에서 자세히 살펴본다면, 여러분은 이들이 진정한 파이아케스 사람들 혹은 페넬로페의 청혼자들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나보다 메아리의 여신이 더 잘 전달해 줄 것입니다. 이들은 벌건 대낮까지 잠을 자는데, 사제들을 고용하여 침대 옆에 대기시켜 놓았다가 침대에 누운 채로 재빠르게 예배를 마치고 나서 곧 조반을 먹는데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곧 점심 식사가 이어집니다. 그리고는 주사위 놀이, 장기 놀이, 점치기, 어릿광대, 익살꾼, 매춘부, 색정 희롱, 음담패설 등이 이어집니다. 그 사이 한두 번의 간식이 있습니다. 다시 이어 저녁 식사, 그리고 술잔치가 유피테르에게 맹세코 한 판 이상 벌어집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들은 이런 삶에 물리지도 않는지 몇 시간, 며칠, 몇 달, 몇 년, 몇 백 년이고 이렇게 살아갑니다. 나 우신조차도 때로 이들이 허풍 허세를 칠 때면 역겨움을 느낄 정도인바, 귀족 여인들은 하나같이 모두 치맛자락을 남들보다 길게 늘어뜨릴수록 더욱 신적으로 보인다고 믿는가 하면, 귀족 사내들은 그들의 유피테르와 남들보다 가까운 사이로 보일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을 팔꿈치로 밀쳐 내며,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가 남들보다 무거울수록 더욱 스스로 대견해합니다. 그래 봐야 결국 돈 자랑에 힘자랑하는 것밖에 안 되는데도 말입니다.

왕정 귀족들의 모습에 열심으로 도전하는 혹은 거의 능가하는 자들로 교황들과 추기경들과 주교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외관을 가까이 자세히 살펴볼 것 같으면 이렇습니다. 줄무늬 장식이 있고 눈처럼 흰 것이 인상적인 복장은 한 점의 과오가 없는 삶을 의미하며, 쌍으로 모자뿔을 세우고 그 꼭지에 매듭 하나를 매어 둔 주교관은 이를 테면 구약과 신약에 대한 공히 절대적인 지식을 상징하며, 손을 두루 감싸고 있는 주교 장갑은 인간 세속 어떤 일에도 손대지 않으며 오로지 성사만을 주관하는 정결함을 나타내며, 지팡이는 그들에게 맡겨진 양 떼를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며 깨어 있음을 가리키며, 앞에 내세운 십자가는 분명코 모든 인간적 욕망을 이겨 냈음을 웅변합니다. 만약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자신의 복장과 기구가 갖는 이런 의미들을 음미해 보았다면, 내 말하노니, 그의 삶은 온통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들은 스스로의 만족에만 매달려 매사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머지 모든 과업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혹은 거느린 수사들에게나 혹은 소위 보좌 사제들에게 맡겨 둔 상태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호칭 가운데 ‘주교’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의식하지 못하며, 주교란 수고하고 돌보고 간수하는 자임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돈을 긁어모으는 일에 관하여 그들은 ‘주교직’을 아주 정확히 수행하는바, ‘눈먼 파수를 보지’ 않습니다.

위키리크스! 너는 누구냐?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원진호 (책 익는 마을 회원 / 원진호내과원장)

같지만 다른 책

나는 우연한 기회에 다루는 대상이 같은 두 가지 책을 읽게 되었다. 그것은 최근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비밀정보자료 공개사이트인 위키리크스이다. 한 책은 지식갤러리에서 나온 『위키리크스,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이라는 제목이고, 다른 한 권은 21세기북스에서 나온 『위키리크스,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앞 책의 저자는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이다. 그는 위키리크스 창시자인 줄리언 어산지와 함께 초창기부터 활동했고 다니엘 슈미트라는 가명을 쓰면서 주로 독일지역을 담당하고 대변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이 책은 그가 어산지와 불화를 겪고 조직을 탈퇴하며 쓴 것이다. 그래서 책 제목에서 풍기는 바와 같이 그 간 비밀에 쌓인 위키리크스 사람들과 그들의 활동을 자세히 밝히는 한편 어산지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편 또 다른 책의 저자는 마르셀 로젠바흐와 홀거 슈타르크인데 이들은 독일의 슈피겔 기자들이다. 그들은 위키리크스의 활동을 지켜보고 혹은 작업에 참여하면서 폭로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결과와 반응까지 저널리스트답게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니엘의 책은 조직의 내면을, 슈피겔기자들의 책은 조직의 외연을 보여준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두 책을 동시에 읽어 가면서 저자들의 주장을 쉽게 자기화하는 오류를 피해 갈 수 있었고, 위키리크스가 갖는 정치, 사회적 의미를 풍부하게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다.

 

핵티비스트들의 존재

먼저, 위키리크스를 통해 나는 핵티비스트(hactivist = hacker + activist)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보통 해커는 남의 컴퓨터에 무단으로 들어가 정보를 빼앗는 범죄적인 사람들로 인식되어 있다. 액티비스트는 ‘정치운동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권력에 대항하여 민주와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해커가 자신의 기술을 진보적인 정치활동에 쓰면 핵티비스트가 되는 것이다. 우리말로 ‘디지털 정치 활동가’쯤 되는 이들은 ‘의사 표현의 자유와 투명성은 민주사회의 기본’이라 주장한다. 그래서 ‘정보의 공유와 투명성을 통한 견제와 균형을 위해 기밀문서의 대량유출을 통한 열린 통치의 실현’을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말한다. 줄리언 어산지도 처음에는 해커로 활동하다가 호주 법원에서 재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십대 때에 ‘국제전복자들’이라는 해커집단을 만들어 유인 우주선에 핵물질을 탑재하는 프로젝트에 반대하여 NASA의 전산망을 공격하는 디지털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들의 정신적 지주인 원조 해커 스티븐 레비의 『해커 그 광기와 비밀의 기록』이라는 책에는 ‘해커선언문’이라는 것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첫째, 컴퓨터를 위시하여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모든 것에 대한 접근은 무제한적이고 완전해야 한다. 둘째, 모든 정보는 자유로워야 한다. 셋째, 해커는 권위를 불신하고 권력분산을 촉구해야 한다. 넷째, 다른 해커에 대한 평가는 전적으로 그 활동에 의거해야 하며 외모, 연령, 인종, 성, 사회적 지위에 따라 평가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컴퓨터를 이용하여 예술과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유명한 해커인 홀란드는 타인의 데이터를 어지럽히지 말라는 것과 공적인 데이터는 최대한 활용하되 개인 데이터는 보호하라는 것을 덧 붙였다고 한다.

어산지나 다니엘도 핵티비스트로 성장하면서 이 선언문을 강령처럼 받아들였을 거라 추측된다. 그렇다면 왜 그들이 핵티비스트가 되려고 했을까? 그들 정도의 능력이라면 편하고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어산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누구나 단 한 번밖에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간을 무언가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일에 써야 해요. 위키리크스는 제게 바로 그런 일입니다.”라 했다. 다니엘 슈미트도 책에서 위키리크스를 만나기 전에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한마디로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삶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화려하고 넉넉했지만 뭔가 빠진 것처럼 허전한 삶이었다. 삶의 의미, 모든 걸 다 버려도 좋을 만큼 내가 열정을 갖고 풀어갈 과제가 없었다.”

또한 그들은 책을 많이 읽었다. 특히 무정부주의적인 사상서들을 좋아했던 거 같다. 핵티비스트들의 정신세계가 어떠한지를 이해할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위키리크스와 유엔 인권헌장 제 19조

위키리크스의 활동이 민주주의의 새로운 요구에 부합한다는 면에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절차와 과정으로서의 형식 민주주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언제든지 이용 당하고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또 다른 민주주의의 가치인 견제와 균형을 실현하기 위해 분권과 감시가 일상화되어야 한다. 최근에 나온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은 가장 훌륭한 사람을 권력자로 선출하여 많은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사악하거나 거짓말을 잘 하거나 권력을 남용하거나 지극히 무능하거나 또는 그 모든 결점을 지닌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이며 강점이다.”

2001년 9.11테러이후 서방 국가 특히 미국은 국민에 대한 감시와 정치, 외교, 안보정책 분야에서의 비밀화를 조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견제를 해야 할 메이저 언론들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하에 효과적으로 정부와 권력자들을 견제하지 못하고 있고, 이런 시점에 위키리크스의 출현과 행동은 민주주의 추를 균형 있게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되었다. 주류 언론과 의회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한국의 정치에서도 한국판 위키리크스는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위키리크스의 공개정책이 반미적 성격을 띠는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가 비밀외교로 그들의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자료를 공개하는 것뿐이다. 모든 국가의 비밀, 억압적 정권에 대한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이 그들의 기본 입장이다. 책에서는 “이것은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의 활동이 정치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 고객들의 명단을 공개하거나 제약회사의 리베이트를 폭로하기도 한다. 독일정부가 기업체에 수백만 유로를 지원한다는 내용의 비밀 문건을, 그리고 사이비종교집단에 대한 자료를 폭로하기도 한다.

그들의 활동이 위대한 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유엔인권헌장 제19조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모든 인간은 의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갖는다. 이 권리는 간섭받지 않고 의견을 가질 자유와 모든 매체를 통해서 국경과 무관하게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받고 전달할 자유를 포함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정보는 공개해야 된다. 위키리크스가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시스템이냐? 사람이냐?

어산지는 06년 10월 위키리크스 도메인을 등록하고 네 명의 친구들과 활동에 들어갔다. 그들은 ‘내부의 기밀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원들을 통해 권력의 비밀을 까발리는 전 세계적 활동’을 꿈꾸었다. 위키리크스는 천재적인 프로그래밍 기술로 정보원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그들은 서로 한 장소에 모이지 않고 컴퓨터를 사용한 메일 교환과 채팅을 통해서 작업을 한다. 그들은 집단지성을 통해 자료를 분석하고 인터넷에 올리고 언론에 유포한다. 어산지는 무서운 집중력과 헌신성으로 그 활동의 중심이 되어 간다. 초창기 활동에는 사람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책임도 일의 진행도 그래야 뭐가 되어도 된다.

다니엘은 07년 09월에 합류하고 어산지가 손 못 대는 조직내부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그는 08년, 09년에 걸쳐 서버를 관리하고 조직과 재정을 정비한다. 언론을 상대하고 후원금을 받아낸다. 언론자유무역항 아이디어를 아이슬란드 정치권에 제안하기도 한다. 다니엘은 조직적인 사고로 위키리크스의 시스템을 세워 나간다. 그래야 커가는 조직을 지탱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언제까지 사람으로 갈 수 없다는 말은 진리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 불화가 싹트기 시작한다. 불화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사소한 일상의 태도와 말투다. 다니엘은 회의 때마다 늦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 어산지가 싫었다. 항상 진지하고 깔끔한 다니엘에게는 개인위생이 불량한 어산지가 신경 쓰였을 것이다. 어산지도 항상 툴툴거리고 자기가 위키리크스의 주인인양 -물론 본인은 그랬다고 하지는 않지만- 행세하는 다니엘이 미웠을 것이다. 사람이 미워지면 사소한 것 까지도 미운 법이다.

불화의 두 번째 이유는 조직운영에 대한 입장차이었다. 어산지는 적어도 위키리크스는 자신의 것이며 모든 결정은 자신이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후원자, 지원자. 부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니엘은 모든 정책은 조직내부에서 끝장토론을 통해 결정을 해야 하고 그것이 안 될 때는 가위바위보라도 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어산지의 대표성은 부정 안하지만 자신은 옆에 서 있는 2인자이지 뒤에 서 있는 2인자가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이 둘은 어산지의 성폭행사건이후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된다. 다니엘은 위키리크스에서 10년 09월에 탈퇴하고 오픈리크스를 만든다. 결국 시스템과 사람의 문제가 둘을 갈라놓았다고 나는 본다. 다니엘은 시스템으로, 어산지는 사람으로 가려 했다.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조직생활을 하고 있다. 사람과 시스템의 문제는 항상 우리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위키리크스라고 해서 벗어날 수는 없는 모양이다.

 

갈등의 불씨

사실 위키리크스는 시작부터 갈등의 불씨가 내재되어 있었다. 조직이 커지고 외압이 강해지고 책임성을 요구하는 시점이 되면 드러나는 모순들이 있다. 그들의 공개 활동 원칙은 모든 자료를 검열 없이 올라오는 순서대로 공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올라온 자료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문제가 있다. 위키리크스가 유명해지면 역정보를 흘려 교란을 시키거나 개인적인 원한을 갚기 위해 이용당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료를 분석하기 위해 손을 대게 되고 어떤 자료를 취합할건지에 대해서 선택이라는 권력이 작동할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되면 고발자의 요구를 충분히 고려하여 자료에 대한 오염을 배제한다는 위키리크스의 입장에 위배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또한 자료 공개 시 발생할 수 있는 사생활 보호문제가 있다. 실제로 케냐 경찰의 청부살인을 폭로한 인권활동가들이 살해당하는 일도 있었고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일지의 폭로에는 정보원들이 노출되어 생명에 위협을 받을 수 있기도 했다.

또한 처음에는 자료의 검토와 공개를 전 세계 자원봉사자들의 집단지성으로 해결할 생각이었는데 그게 사실 양질의 결과가 나오지 않음을 알고 언론들과 제휴를 맺게 되었다. 그런데 어떤 언론과 제휴를 맺을 것인가로 도마 위에 오르게 되고 어산지의 독단으로 다른 조직원들과의 불화의 씨앗이 되었다. 독단으로 하다 보니 뒷거래에 대한 의심도 동반하게 되었다.

 

“ 가장 진실을 잘 알고 있는 국민이 가장 국가를 위할 줄 안다.”

지금까지 위키리크스의 정체성은 아직 명확하다고 볼 수 없다. 단순한 문서보관소 일수도 있고 또 하나의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곳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위키리크스가 이전의 다른 폭로단체보다 우월한 지위를 갖는 것은 ‘민주적 공공성과 최선의 제보자 보호를 위한 인터넷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향후 진화하는 위키리크스의 모습과 오픈리크스처럼 비슷한 형태의 폭로단체들과의 관계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명심해야할 말이 있다. 그 말대로만 된다면야 위키리크스는 있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리 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에 나오는 글귀다.

‘가장 진실을 잘 알고 있는 국민이 가장 국가를 위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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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의 『위키리크스,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지식갤러리)와 마르셀 로젠바흐, 홀거 슈타르크의 『위키리크스,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21세기북스)를 함께 다룬 글입니다.

셰익스피어, 비극에서 희망을 줍는 진정한 광대 [기획서평]

이현숙 (자유기고가)

어두운 무대 한 귀퉁이, 비탄에 잠긴 여배우가 핀 조명을 받으며 주저앉아 있다. 삶의 전부라 여겼던 연인과 이별한 뒤 반쯤 정신을 놓은 듯 보인다. 힘없이 혼잣말을 내뱉던 여배우는 점차 분노와 허탈감, 애증과 모멸감에 몸을 떨며 격앙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온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애써 부정하며 격한 대사를 토해내다 끝내 실신하는 장면이 이 연극의 절정이다.

나는 여배우로 분장한 딸의 눈에서 순간 ‘번쩍!’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배우가 먼저 울음을 터뜨리면 안 돼. 관객의 눈물을 끌어내야지, 조바심으로 입이 마른다. 절규하며 쓰러진 여배우, 그리고 암전. 관객들의 박수와 함성이 이어지고 내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끝내 눈물 흘리지 않은 채 슬픔과 고통의 연기를 해낸 딸이 자랑스러웠다.

 

청년 햄릿을 만나 평생 ‘셰익스피어’를 끼고 살다

<셰익스피어 읽어주는 남자>의 저자의 말처럼 “연극은 지독한 중독”이다. 무대 중독에 빠져 지내던 딸과 가슴 졸이며 함께 울고 웃었던 어미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직 어린 십대의 딸이 혹독한 연습을 견뎌내며 수없이 오르내리던 무대, 그것은 땀과 눈물과 고행을 거쳐 새롭게 탄생하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기적 같은 체험이었다.

한바탕 꿈을 꾸듯이 나를 잊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펼치고 나면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져 내리는 무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그곳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날개 없이도 날아다닐 수 있는 꿈과 상상의 세계이다. 그 무대에 서 본 이, 그 무대를 만들고 꾸민 이, 무대에서 함께 호흡해 본 모든 이들은 기꺼이 이 중독에 함께 빠져든다. 셰익스피어를 읽어주며 조용한 발걸음을 이끈 저자는 어느 새 훌쩍 무대 위로 뛰어올라 광대로 변신해 있었다.

이 책 프롤로그의 제목처럼 ‘독한 인연은 운명’인가 보다. 저자는 ‘햄릿’을 통해 셰익스피어를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대학시절 야학활동을 하며 만난 ‘햄릿’은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손에 금방 잡히지도 않았고, 연하기도 강하기도 달기도 쓰기도 떫기도 맵기도 했다”고 추억한다. 그날 이후 30년 동안 껴안고 산 셰익스피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독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햄릿>을 만나 처음 맛 본 인생의 온갖 맛과 냄새와 감촉은 청년이었던 저자에게 첫사랑이자 영원한 사랑으로 각인되었을지 모른다. 유한하고 변덕스런 인간과의 첫사랑이 아닌 자기 생애의 첫 궤적을 뚫고 들어온 강렬한 체험이기 때문에. 나무 주걱으로 엉덩이를 맞아가며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땀과 눈물로 익히고 올라선 소녀의 첫 무대, 나의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을 헌납해 버린 문고판 명작선 50권과의 만남, ‘햄릿’을 만난 저자의 떨림이 나의 추억 속에서도 파문을 일으킨다.

 

‘희망’의 다른 이름, 셰익스피어 비극

저자는 셰익스피어에게 고리타분한 학술적 접근으로 다가서지 않고 400년이란 시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연출가이자, 배우, 작가, 관객의 입장에서 친근하게 소개한다. 특히 ‘성격 비극’이라 명명한 셰익스피어의 비극 세계로 이끌면서 황홀하고 거친, 그렇지만 발을 빼고 싶지 않을 만큼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숲으로 과감히 이끈다.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셰익스피어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지 못한 독자에게 저자의 이 같은 시도는 매우 참신하고 친근하다. 마치 무대 전체가 회전하는 원형 극장에 앉아 무대의 뒷면까지도 흥미진진하게 감상하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관객의 속마음을 꿰뚫는 노련한 솜씨 덕분에 지루한 줄 모르고 중세 연극에 빠져들 것 같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또 다른 이름의 희망이다’라는 프롤로그의 소제목에서 저자가 왜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몰입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총 37편의 희곡, 4편의 장시, 154편의 소네트를 남긴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의 작품 중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4편의 비극을 추려낸 저자는 꿈을 빌어 셰익스피어의 말을 옮긴다.

“우주를 움직이는 궁극적인 힘은 완전한 선이지만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언제나 선이 이길 수는 없다.”

지뢰처럼 널린 악에 의해 선도 함께 폭발하고 폐허가 된 우주는 새로운 선의 질서로 다시 세워진다는 셰익스피어의 법칙을 전하면서 저자는 선이 제물로 바쳐지는 현실이 고통스럽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그토록 강렬한 비극의 세계가 슬프지만 우울하지 않고 그 자체로 희망이 될 수 있어서 비극에 사로잡힌다고 덧붙인다.

나는 이 말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비극이 그 자체로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셰익스피어는 도대체 인간을 선한 존재로 본 것인가, 악한 존재로 본 것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이끌고 저자는 다시 작품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직접 답을 찾아보라고.

 

<햄릿>, 중세를 걷어내고 고통스런 인간의 삶 투영하다

<햄릿>은 표면적으로는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아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저자는 ‘당신은 누구인가?’를 묻는 존재론의 철학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세상과 역사에 대한 엄숙한 소명을 스스로 짊어진, 참을 수 없이 무거운 존재”(114쪽)였던 햄릿은 부조리한 세상에서 무엇이 진리이고, 진실인가를 묻는 자였다.

햄릿은 마치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온실 속의 화초와 같아서 세상의 악에 맞서 복수를 꿈꾸다 허망하게 쓰러지는 유약한 청춘으로 그려진다. 그는 세상도, 여자도 모두 역겨울 뿐만 아니라 복수를 꿈꾸더라도 마음을 더럽히지 말아야 하는 완벽주의자이며,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고뇌하기만 하는 우유부단한 인간이다.

그는 그대로 중세시대의 인간이며, 셰익스피어 자신이기도 하다. 16세기 중세의 화두는 ‘신’에 맞서는 ‘인간’의 성찰이 아니었던가. “마음속을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말고 엉뚱한 생각일랑 섣불리 행동으로 옮기지 마라. 남의 의견은 들어주되, 시비판단은 삼가야 한다”(83쪽)는 플로니어스의 대사가 운명 앞에서 촛불처럼 흔들리는 햄릿을 조롱한다.

햄릿은 인간의 비극이 ‘신’과 ‘인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에 공존하는 ‘선’과 ‘악’의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셰익스피어 비극의 원형이다. 저자는 햄릿을 통해 셰익스피어가 중세의 어둠을 걷어내고 고통스런 삶을 생생하게 목도하게 한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 반복되는 고통의 삶이 ‘시지프스’를 떠올리게 하는 우리의 삶 자체라고 덧붙인다.

 

천성만 남은 ‘왕’은 ‘광대’와 다를 바 없다

“앞으로는 슬픔이 사랑에 따르리라

사랑은 의심에 사로잡혀

시초는 달콤해도 끝내는 쓴맛으로 변하리라.” (<비너스와 아도니스> 1136-1138행)

비너스의 구애를 뿌리치고 죽음을 맞은 아도니스가 자줏빛 아네모네로 핀 것을 보고 비너스가 한 예언이다. 불멸의 사랑을 꿈꾸는 모든 인간에게 이토록 잔인한 저주는 없을 것이다. ‘죽이고 사랑하리라’는 <오셀로>의 소제목은 비너스의 저주보다 더 짙고 비릿한 피 냄새를 풍긴다. 사랑 자체가 인간을 짧은 행복과 긴 슬픔, 그리고 때때로 피할 수 없는 비극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믿으니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걷어치운 사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이 맞는 말일까? 질투와 의심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목 졸라 죽인 오셀로, 한순간의 광기에 휩싸여 평생토록 사랑한 아내를 목 졸라 죽인 철학자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98~1990)가 문득 겹쳐진다.

흑인 장군이었던 오셀로의 불같은 성격이 지고지순한 백인 아내 데스데모나와의 역설적인 사랑을 비극으로 몰아갔지만, 오히려 이들의 파격적인 사랑을 등불 삼아 현대인의 얕고, 약은 사랑을 들추어보게 된다. 나이도, 신분도, 조건도 뛰어넘은 이들의 사랑은 끝내 간교한 이아고에 의해 파멸의 쓴맛을 보았지만 21세기의 사랑은 시작부터 달콤하지도, 조건을 뛰어넘지도 않기에 방해받지 않고 안전하게 이어진다. 쓴맛을 보지 않는 사랑의 씁쓸함이 더 오래 남는다.

자식에게 버림받고 파탄에 빠지는 가장 불우한 왕 ‘리어 왕’이 등장한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 사랑하는 부모에 비해 효도하는 자식이 턱없이 희소하긴 마찬가지였나 보다. 오죽 충성스런 신하, 효도하는 자식이 없었으면 충효(忠孝)라는 덕목을 유교의 첫째가는 가치로 내세웠을까하는 삐딱한 시선이 생기기도 한다.

백두난발을 하고 광풍 속을 미쳐 날뛰는 리어 왕을 보면서 죽을 때까지 오래 오래 행복하고 안락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나약한 희망을 보는 듯해 서글퍼졌다. ‘늙음’은 약한 인간을 더욱 비굴하고 나약하게 만드는데, 그것조차 인정하지 못한 ‘리어 왕’은 마음의 눈을 갖지 못하고 나이 먹은 댓가를 가혹하게 받은 셈이다.

“모든 것을 다 주고 타고난 천성만 남았으니, 왕이나 광대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195쪽)라고 조롱하는 광대의 목소리, “노인이 쓰러지면 젊은이가 일어서는 법이지”(206쪽)라고 내뱉는 에드먼드의 대사가 인생의 비정함을 예리하게 드러낸다. 숨도 멎지 않은 부모의 곁에서 물려받은 재산 다툼으로 혈안이 된 자식들을 보는 일은 이제 놀랍지도 않은 세상이 되어 버렸다.

 

무사는 시대를 바꾸고 광대는 역사를 바꾼다.

어느 새 <맥베스>를 공연하는 극장으로 우리를 인도한 저자는 셰익스피어와의 대화로 압도해나간다.

셰익스피어에게 묻는다.

“악을 제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셰익스피어가 답한다.

“이 땅에 인간이 존재하는 한 어쩔 수가 없답니다.”

또 묻는다.

“희망은 없습니까?”

셰익스피어가 답한다.

“양심이 있습니다.”

악마 맥베스가 웃는다. (269쪽)

저자는 또 맥베스에게 묻는다.

“인간은 그렇게 나약한 것인가요?”

“양심은 양처럼 온순하고 욕망은 이리처럼 사납소” (276쪽)

왕의 살해에 동참하여 함께 손에 피를 묻혔던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맥베스. “인생이란 단지 걸어가는 그림자, 무대 위에 있는 동안은 뽐내고 떠들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가련한 배우에 불과한 것”이라고 읊조린다. 인간의 생에 대한 통찰이 저절로 묻어나는 셰익스피어의 명대사가 아닌가!

셰익스피어는 무대 위에서 뽐내며 떠드는 인간의 유형을 ‘무사’와 ‘광대’ 두 유형으로 나누었다고 한다. ‘무사는 세상을 움직이나 광대는 무사를 움직인다. 무사는 시대를 바꾸지만 광대는 역사를 바꾼다’는 말로 에필로그를 장식한 저자, 그는 진정한 ‘광대’를 꿈꾸는 자이며, 위대한 ‘광대’였던 셰익스피어를 영원히 잊지 못하는 사람이다.

 

비극 속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는 ‘광대’

인간을 꿈의 세계로 이끄는 무대, 그 무대를 제멋대로 활보하며 주인공을 빛나게도 하고, 날카로운 유머와 조롱을 날리며 관객을 손안에서 쥐락펴락하는 ‘광대’. 세상을 무대로 삼고, 인간을 배우이자 관객으로 삼아 4백년을 죽지 않고 살아가는 광대 셰익스피어를 만나게 한 또 한 사람의 광대, 그는 저자이다. 무겁고 암울하고 참담한 비극을 소재로 한 무대를 순회하면서도 끝내 ‘희망’을 보게 한 저자의 수고로움이 광대에 버금간다.

주인공인 남자를 파멸로 몰아가는 악한 여자들을 등장시켜 페미니스트들을 열 받게 했을 법한 중세인 셰익스피어의 한계는 동시대 조선에서 횡행하던 ‘여인잔혹사’를 떠올리면 상대적으로 강도가 약하다는 생각이 들어 깊이 파고들고 싶지 않다. 오히려 중세도, 근대도, 현대도 한참 지난 21세기 한국에서, 강요된 술 접대와 성 접대로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배우의 속절없고 어이없는 이야기는 과연 몇 등급의 비극에 속하는지 셰익스피어에게 묻고 싶은 심정이다. 그 여배우의 복수는 햄릿의 복수보다 더 실현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를 보면 아직도 세상은 ‘무사’의 차지인 것만 같고, 일본이 당한 참혹한 비극 앞에서는 ‘희망’을 말하는 것이 오히려 ‘희망고문’을 하는 것이 아닐까 망설여진다. 이 악물고, 두 눈 질끈 감고 버텨도 더욱 모질고 독해지기만 하는 세상에서 우리를 장악하는 비극의 정체를 낱낱이 드러내어 기어이 ‘희망’을 끄집어내라고 말해 주는 셰익스피어가 그립다.

 

노비의 역사, 현재형이 되다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황선만 (책익는 마을 전촌장)

 

내가 노비가 되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 우리사회에 노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왕이 노비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그 후 10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자유의 세상, 정치적 민주화의 시대가 자리를 잡았다. 며칠 전 보수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박종철 열사와 6월 민주화 운동>이라는 책을 출판하고 기념회를 열기도 하였으니 민주화 시대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당시 담당검사였던 안 대표는 박종철 열사의 죽음 은폐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자기 홍보를 위해 박종철 열사와의 인연을 강조하고 있으니 이 시대는 개인의 존엄이 확고히 자리잡지 않았겠는가.

따라서 지금 노비를 말한다는 것은 우리 전통사회 역사의 한 구석을 호랑이 담배피우는 옛 이야기 듣듯이 넘겨다보는 일에 불과하다. 잔잔한 남한강 어디쯤에서 조각배를 저으며 풍광을 구경하듯이 말이다. 내가 임상혁이 쓴 『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 나는 노비로소이다』를 펼쳤을 때 그런 마음이었다. 이참에 못다한 역사공부나 하자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웬걸, 한가한 내 생각은 머리말에서 부터 흔들리고 말았다.

“예전에 글쓴이가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조상이 노비였던 분은 손들어 보세요. 하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모두 까르르 웃을 뿐, 물론 손 올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대체로 연구자들은 노비의 수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일 넘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3분의 2까지 보는 학자도 있다고 말해줄때면 놀라는 기색이 완연합니다. 노비는 매우 중요한 재산이었습니다. 일생동안 상전에게 재화와 노동을 바치는 알짜배기이지요. 이 시기 부의 척도는 거느린 노복들의 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명문대가라 불렸던 집안에는 수백 명의 노비를 자손에게 분배하는 상속 문서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옵니다.”

순간 나는 ‘혹시 내 조상도 노비였을지 몰라. 그렇다면 노비해방이 안 되었다고 할 때 나는 지금 노비로 살아갈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몸서리 쳐지는 것이었다. 인신과 정신이 상전에게 구속받아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으며 온종일 상전이 시키는대로 복종해야만하는 노비의 삶, 내 귀여운 자식들도 똑같이 그런 굴레에 갖혀 일평생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노비를 거부하는 노비들

인간이란 누구나 자유롭기를 원하고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법, 전통사회 노비라 하여 어찌 자유를 갈망하지 않았으랴. 이 책의 송사에 등장하는 두 당사자는 노비인 자와 노비 아닌 자였고, 노비는 항상 그 굴레를 벗어나고자 온갖 노력을 다하게 된다. 특히 시종 이야기를 끌고가는 두 주인공 이지도와 다물사리의 궤적은 우리 전통사회의 노비제에 관한 다양한 배경지식을 알려주고, 시대를 흘러도 변치 않는 인간의 욕구와 갈망을 보여준다.

원래 양인인 다물사리가 노비인 윤필과 결혼하였고 인이라는 딸을 두었는데, 인이가 이유겸의 사노비인 구지와 결혼하여 6남매를 둔다. 따라서 다물사리의 딸과 자손들은 모두 이유겸 집안의 사노가 되어 상속되게 된다. 자신의 귀여운 손자 손녀들이 모두 사노비의 생을 살게되는 것이 미치도록 싫었던 다물사리는 관가의 노비담당자의 묵인하에 스스로 관노가 되어 가솔을 모두 관노로 등록시킨다. 왜냐하면 사노비 보다는 관노비의 생이 훨씬 덜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이유겸 집안에서 소를 제기하게 되고 결국 다물사리의 가족은 쓸쓸히 사노비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이야기는 안동시에 사당을 두고 있는 학봉 김성일이 나주 목사로 재직하던 시절(1583년8월~1586년12월)에 처리한 판결문에 실려 있다. 저자는 숭실대 법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법학자로 조선의 노비재판과 관련한 사료를 찾아내 김성일의 명 판결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조선의 형사소송과 민사소송, 심급제도, 소송절차를 비롯해 최고의 법전이라 할 수 있는 <경국대전>의 소개에 이르기까지 법학자답게 전통사회의 법과 그의 적용에 대해 밝히고 있다. 그러나 법학도 비슷한 인연도 없었던 필자로서는 저자가 소개하는 노비재판의 실화들에 더욱 눈길이 가고 그들의 삶이 궁금해지곤 하였다.

 

불공정한 판결

양인으로 잘 살아가던 한 가족이 노비로 급락하는 일도 있었다. 1568년 해남의 하급 아전이었던 허관손은 자신의 처와 세 자녀를 모두 노비로 빼앗긴다. 상대는 과거에 급제하고 이조참판까지 지냈던 유희춘이었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고위 관료였던 유희춘과의 소송을 소개하며 저자는 판결결과를 이렇게 말한다.

“마침내 유희춘의 누나는 다음해 7월 허관손의 아내와 그의 세 자녀를 잡아다 부릴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소나 말을 ‘부리듯’ 말이다. 멀쩡하던 처자식이 노비로 전락했으니 허관손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하급 관료지만 그 시대에 최소한의 인간적인 자유는 허락받고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불현 듯 다가온 가족의 쇄락을 허관손은 어찌 감당했을까. 그러나 법학자인 저자는 이 판결에 의구심을 버리지 않는다. 다음 인용을 보자.

“양반 상민, 노비 할 것 없이 소송능력은 법적으로 제한 없이 인정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고위관리에 맞서는 소송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으로 치면, 고액을 들여 전관예우 변호사를 고용한 상대방에 맞서 나홀로 본인소송을 하는 당사자가 고단하기 짝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헌부, 장예원의 관리들은 수시로 미암에게 와서 심리의 진행상황을 보고하였으며, 그의 동료 관리들은 행정조직을 동원하여 24년 전의 판결을 찾아내는 등 유리한 증거를 모았다.”

자신의 조상이 사실상 노비였기에 다시 노비로 돌아간다 하여도 극도로 싫었을 터인데, 만약 양인이었다가 권력자의 소송으로 억울하게 노비가 된다면 그 울분을 어찌한단 말인가. 그러나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는 상상을 하니 허리가 곳추세워지고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었다. 법이라는 것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약자보다는 강자에게 가까운 것이 아닌가 말이다.

 

해방된 노비들, 어디로 갔을까

노비신분을 벗어나고자 하는 대표적인 노력은 고려 중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만적이라는 노비가 중심이된 만적의 난이 있었고 조선 전기에는 노비 소송이 넘쳐났다. 그래서 소송처리에 지친 태종이 “사전을 혁파하였듯이 사천제도를 없애버리면 이런 폐단은 없어질 것”이라며 노비제의 혁파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노비해방이 공식화된 갑오개혁 이전인 1801년 순조1년에 관에서 부리던 공노비를 해방시켰으니 우리 전통사회는 노비의 노동력에 의존해왔고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고자했던 몸부림의 역사이기도 하였다.

그 비슷한 시기에 서양에서는 노예제와 농노제가 있었다면서 우리의 노비제와 비교하기도 한다. 그리고 개명천지 21세기가 되었고, 세계화와 인간존중이라는 근엄한 사유가 지배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의 독재에 저항하는 북아프리카와 아랍민중들의 항거소식이 연일 전파를 타고 있으니 이 시대 사람들은 진전된 인간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가.

노비해방이 되었다는 것은 이 땅에 신분상 천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력이 확보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들은 유력한 집안의 머슴살이를 하여야 했다. 또 주인집에 얹혀살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담살이, 주인집을 드나들면서 일을 도와주는 드난살이도 있었는데 산업화 이후 사라졌다. 그럼,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영세한 농민들의 수 많은 가족들이 도시의 공장노동자로 전업한 것이다. 이것은 노비의 역사이면서 노비의 현재가 된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나 투표권을 갖고 나라의 대표, 마을의 대표를 뽑는다. 자유로운 세상이다. 해방된 세상이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 담살이나 드난살이를 하는 사람들의 노동과 피땀이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그 에너지는 생산의 기초이자 우리 사회의 주춧돌이다. 그런데 세상은 왜 이렇게 잔잔할 줄 모르는가. 아직 노비해방은 끝나지 않았단 말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신분상승으로 가는 최고의 길인 일류대 합격률은 강남 학군에서 대부분 점령한지 오래다. 아버지가 기업을 갖고 있으면 약간의 불법을 감행하더라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용인되곤 하는 당당한 상속사회이다. 아버지가 대형교회 목사이면 자식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일반화 되어가고 있는 뻔뻔한 대물림 신분사회이다. 그 사이에 서 있는 노비의 후예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학벌사회의 들러리, 부당한 권력과 떳떳하지 못한 재산의 사적인 세습을 도와주는 입닫은 노비들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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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여덟번째 일로서 임상혁의 <나는 노비로소이다>(너머북스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