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권력의 시선에서 자유로울까? [책익는 마을 책읽는 소리]

장윤성 (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매일 두 번 이상 엘리베이터를 타며 오르내린다. 엘리베이터를 낯선 이와 함께 타면 시선을 어디로 둬야 할지 곤란하다. 아마 상대방도 나와 마찬가지인가 보다. 나와 상대방은 각각 다른 곳을 응시하며 한 평 남짓한 엘리베이터 안을 어색한 침묵에 잠기게 한다. 상대방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린 후 비로서 내 시선은 자유로워진다.

거울을 보면서 옷매무새를 고치거나 얼굴을 살핀다.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없기 때문에 내 시선도 행동도 자유롭다. 내가 아닌 남이 나를 쳐다보는 것은 어색하다. 심지어 불쾌하기도 하다. 작가는 그 이유를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에 당혹감과 모욕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남의 눈을 바라보는 것은 의사가 환자의 눈을 바라보는 것처럼 생물학적 양태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타인의 눈을 바라보는 것은 시선과 시선의 마주침이다.

이런 시선의 관계에는 지배 관계가 따른다. 바라보는 자는 시선이고 바라보여 지는 자는 눈이다. 바라보는 자의 시선은 바라보여지는 자의 눈을 지배한다. 그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타인은 내게 지옥이 된다. 그래서 뒷모습을 보일 때 더 안절부절 해진다.

면접을 보게 되는 상황도 한가지이다. 면접관의 객관적인 냉혹한 시선 안에서 나는 하나 둘 옷이 벗겨지는 듯하다. 면접관은 나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았지만 나는 두려움에 긴장한다. 면접관이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보다 면접관의 눈을 응시하며 말해야 되는 상황에 식은땀을 흘린다. 면접관의 바라보는 시선과 나의 바라보는 눈 사이에 지배와 종속관계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시선에도 권력은 존재한다.

17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잔인한 처형은 공개된 처형이었다. 17세기말 아비뇽의 판례를 보면 사람들이 모인 광장에서 죄수를 처형했다. 형리는 처형된 죄수의 몸을 내장부터 하나하나 꺼내 분해한다. 시체에 가혹행위를 하는 까닭은 군주가 가진 힘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지배자인 군주의 절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처벌은 잔혹했으며 이 처벌을 고스란히 민중들에게 보여줬다. 공개처형은 이 장면을 바라보는 민중들에게 두려움을 갖게 하여 군주의 권력을 굳건하게 만드는 통치수단이었다.

 
근대에 이르러 공개처형은 사라지고 은밀하게 진행된다. 18세기부터 19세기 개혁론자들은 공개처형이 민중을 위협하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은 표면적 이유이다. 공개처형을 보면서 민중은 처벌받는 사람과 동질감을 느꼈다. 민중은 죄수가 당하는 잔인한 처형을 보면서 불안감을 느낀다. 이 불안감에서 저항의지가 시작되었다.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한 후 로마는 크리스트교를 핍박했다.

크리스트교 신자들을 원형 경기장에 넣어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게 했다. 끔찍하고 처연한 크리스트교 신자들의 죽음에 로마시민 중 일부는 크리스트교인이 되기도 했다. 구경거리가 된 죽음 앞에 크리스트교인들의 종교적 신념은 더욱 강해졌다. 결국 로마는 크리스트교를 공인했다. 공개처형은 그 역할을 해내지 못해 폐지된 것이다. 푸코는 공개처형제도의 폐지가 죄수에 대한 인권신장이 아니라 한계에 부딪친 권력 기술의 전환이라고 했다.

국가는 권력유지를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낸다. 바로 ‘감시’이다. 공개된 처형 대신 폐쇄된 공간 속에서 죄수들을 몰아넣고 엄격한 감시와 꼼꼼한 일과표로 통제한다. 1797년부터 죄수들은 네 부류로 나뉘었다. 네가지 부류로 나눈 기준은 죄수들이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 감시되는 개인의 잠재적인 위험이 근거였다. 죄수들은 일과표에 따라 식사, 노동, 운동, 학습 등을 철저히 수행한다. 이 규범의 수행여부는 감시를 통해 확인한다.

죄수들의 행동을 강제하는 것이 규율적 권력이다. 규율적 권력은 공개처형에서 보여준 과시적 권력보다 훨씬 더 무서운 권력이다. 과시적 권력은 민중들에게 저항의지를 심어주기도 한다. 규율적 권력은 저항 의지 자체를 갖지 못하게 만든다. 규율적 권력은 민중이 스스로 권력에 복종하도록 한다. 죄수가 아니더라도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권력에 순종하는 인간이 된다.

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우리는 많은 규율에 시달린다. 내가 경험한 규율중 가장 심각했던 규율은 중, 고등학교 시절 두발 단속이었다. 용모단정이라는 미명하에 머리카락 길이는 귀밑 5cm로 정해졌다. 선생님들은 자를 들고 다니시며 5cm가 넘는 머리카락을 가위로 무자비하게 자르셨다. 싹둑 잘려나가는 내 머리카락 속에서 나는 내 의지도 함께 잘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군대에 다녀와야 남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군대에서 받는 훈련들로 ‘극기’를 하여 강한 남자로 개선된다고 한다. 이는 심각한 착각이다.

우리는 군에서 받는 반복되는 훈련들로 ‘순종’하는 인간으로 개량되어 간다. 정치력을 가진 정치인, 경제력을 가진 재벌들은 본인뿐만 아니라 그의 자식들도 종종 군대에 가지 않는다. 그들은 복종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권력으로 복종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힘든 훈련을 통해 순종하는 인간으로 개량할 필요가 없다. 순종하는 인간으로 만드는 규율적 권력은 감시를 통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감시는 바로 시선에서 나온다.

나는 감시당하고 있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은 완벽한 감시 장치, ‘판옵티콘’을 구상한다.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한 ‘판옵티콘’은 하나의 시선만으로도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감옥건물이다. 건축가도 아닌 정치 사상가였던 벤담이 감옥 건축을 구상한 까닭은 감옥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이상적인 실험공간이기 때문이다. 판옵티콘의 원리는 시선의 불균형, 시선의 비대칭성이다. 반지모양의 원형건물 안 중앙의 탑에는 감시인을 둔다. 중앙 탑은 빛이 차단되어 수감자는 감시인을 확인하지 못한다. 반면 수감자의 독방에는 항상 빛이 통과되게 한다. 이 빛은 감시자의 시선이 죄수들을 더 잘 파악하게 만들어준다.

벤담이 구상한 판옵티콘의 원리인 시선의 불균형, 비대칭성은 오늘날 경찰서 심문실에서 이용되고 있다. 용의자가 있는 심문실은 거울처럼 보이는 창이 있다. 용의자는 그 창을 통해 다른 방에 있는 검사와 경관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검사와 경관은 그 창을 통해 용의자를 관찰한다. 판옵티콘의 죄수들이나 경찰서 심문실의 용의자는 감시인을 확인하지 못한다. 확인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인식하고 있다. 이 시선 때문에 그들의 행동은 제약이 따른다.

벤담의 판옵티콘은 구상으로만 끝나버린 채 건축되지 못했다. 판옵티콘 이라는 건물은 존재하지 않으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변형된 판옵티콘들이 존재한다. 그 변형된 판옵티콘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감시하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학생들은 시험으로 학습능력을 감시당하고 교사들은 교원평가제로 교수능력을 감시당한다. 소비자들은 신용카드로 물건을 구입하면서 기업에게 소비행태를 감시받는다. 보유율 90%가 넘는 휴대폰도 훌륭한 감시도구이다. 휴대전화 통화기록으로 감시당하고 GPS와 결합하여 위치도 추적당한다. 나의 언행이 나도 모르게 휴대전화로 찍히기도 한다.

인터넷 상에서 회원가입을 하면서도 감시받는다. 내가 기록한 구체적 신상정보가 유출되어 불이익도 받는다. 건강보험제도로 내 질병의 사항들이 보험회사 등에 의해 감시받는다. 나는 기억조차 못하는 내 질병을 보험회사는 아주 자세히 알고 있다. 곳곳의 폐쇄회로 TV는 우리를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는 구실로 유용하게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 때 감시하는 시선에서 자유로울지 알 수 없다. 행정안전부는 2013년부터 주민등록증에 IC칩을 내장한 전자주민증으로 변경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전자주민증이 필요하다고 내세우는 이유 중 하나는 응급치료 상황시 필요한 혈액형 정보를 넣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와 같은 이유는 어불성설이다. 아무리 응급상황시라도 수혈을 하기 전 혈액형검사는 하기 때문이다. 환자가 알려준 혈액형이나 주민증에 기재된 혈액형으로 수혈하는 의사는 없다. 그대로 수혈하기에는 위험성이 크다는 것은 의사라면 숙지하고 있는 기본 의학상식이다. 정부가 근거없는 이유를 내세워 국민을 기만하면서까지 전자주민증으로 변경하려는 목적은 감시이다. 좀 더 효율적으로 국민을 감시하려는 것이다.

나는 트루먼이다

십여 년 전에 섬뜩한 영화를 관람했다. <트루먼 쇼>라는 영화이다. 트루먼 쇼는 트루먼이라는 남자의 일상을 24시간 숨겨진 카메라로 촬영하면서 전 세계에 내 보내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은 이 트루먼 쇼에 열광한다. 평범한 남자의 일상생활에 푹 빠진 이유는 엿보기의 심리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트루먼의 사생활을 엿보며 쾌감을 느낀다. 실제로 트루먼 쇼 같은 인간의 엿보기 심리를 이용한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란 장르로 방영되고 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 중 이혼위기에 처한 여러 쌍의 부부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의 전개되는 내용을 시청자들도 대충 짐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하는 이유는 가상이 아닌 실제 부부생활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트루먼 쇼를 관람한 후 다른 사람을 내가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은 누군가가 나도 엿볼 수 있다는 확연한 진실을 깨닫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현금인출기 앞에서, 주차장에서 나는 트루먼이다. 어디를 가든지 카메라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 나는 트루먼처럼 나를 촬영하는 폐쇄회로 TV를 의식하지 못한다. 물론 폐쇄회로 TV가 나를 촬영하고 있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의식의 세계는 그 사실을 감지하지 못한다. 내 의식은 나를 감시하는 시선에 길들여져 있어서 편안하게 익숙해졌다. 자연스러운 그 익숙함은 감시받는 시선에서 탈출하려는 의지를 지니지 못하게 한다. 설령 그 의지를 갖게 되더라도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다.

섬을 탈출한 트루먼은 과연 시선에서 탈출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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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e시대와철학>과 <책익는 마을>의 공동기획 연재물입니다. 책과 더불어 건전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가는 보령 책익는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세상살이, 세상보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오늘은 그 둘째 글로서 <시선은 권력이다>(박정자 지음, 기파랑 펴냄)을 다룬 글입니다.

5천년 최고의 문장, 박지원, 『연암집』[연암읽기]

전호근(경희대)

『연암집』은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문집으로,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일상적인 글쓰기 주제인 서(序)·발(跋)과 시(詩)·서(書)는 물론이고, 임금에게 올린 장계(狀啓)나 대책(對策), 소(疏)뿐만 아니라 「방경각외전(放?閣外傳)」 같은 소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장편 기행문으로 평가받는 「열하일기(熱河日記)」와 농사를 짓는 데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과농소초(課農小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일찍이 구한말의 창강 김택영을 비롯하여 많은 문인·학자들은 연암이 우리 고전문학의 최고봉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만큼 연암의 문장은 짝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연암집』을 읽는다는 것은 고전 애호가들은 물론이고 연구자들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도전이다. 지극히 아름답지만 또 지극히 난해하다. 또 하나, 당대 조선인들의 삶을 구구절절하면서도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연암집은 참으로 귀한 책이다. 예를 들어 「열녀함양박씨전 병서」에서 연암은 과부의 심정을 이렇게 읊는다.

“가물거리는 등잔불 제 그림자 위로할 제 홀로 지키는 밤은 지새기가 어렵더라. 게다가 처마 끝에서 빗물이 방울져 떨어지거나 창가에 달빛이 하얗게 흐르며, 낙엽이 뜰에 뒹굴고 외기러기 하늘에서 울며, 멀리 닭 울음도 끊어지고 어린 종년은 세상모르고 코를 골면 가물가물 잠 못 이루노니 이 괴로움을 누구에게 하소연하랴.” 가만히 읽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때문에 그의 글은 당시 사대부뿐만 아니라 여인과 중인들에게까지 필사되어 읽혔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군왕이던 정조(正祖)조차도 연암을 글을 읽지 못하도록 금지하기까지 했다. 그만큼 파급력이 컸다는 뜻이다. 사실 연암은 혈연이나 정치적 계보로 치면 당시 신분사회의 최상층부에 있었던 주류였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 조금도 얽매이지 않았다.

오히려 연암은 당시 양반지배층의 고루하고 위선적인 관념을 선뜻 뛰어넘었던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백동수 등 서얼 출신들과 마음을 터놓고 진실하게 교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인들의 이야기를 즐겨 들었고 참외 파는 사람, 돼지 치는 사람도 서슴없이 자기 친구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떠돌이 거지나 이름 없는 농부, 땔나무 하는 사람, 시정의 왈패 등 하층민이 자주 등장한다. 상하의 위계가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감히 시도하기 어려운 글을 쓴 셈이다. 그런 점에서 연암은 진정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연암의 빛나는 문장은 바로 그런 자유로운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연암의 글은 호탕함에서는 『맹자』와 견줄 만하고 신랄한 풍자와 날렵한 비유에서는 『장자』를 넘나든다. 예컨대 맹자의 논리로 성리학적 사고에 갇혀 있는 당시의 지식인들을 매섭게 비판하고, 장자의 다채로운 표현을 빌어 시골 사람의 코고는 소리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중국의 고문을 모방하는 글쓰기에 얽매어 있었던 당시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연암의 글을 잡글이라고 비난했지만 그는 시대를 꿰뚫어 보는 예리한 감각으로 양반지배층의 위선과 가식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게다가 읽는 이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는 해박한 지식, 불한당도 여지없이 설복시키는 명쾌한 논리, 마치 눈앞에서 대상을 보는 듯 착각하게 하는 사실적인 표현, 읽고 있으면 절로 무릎을 치게 하는 절묘한 비유 등으로 많은 독자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그의 글은 읽는 사람을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하며 머리털이 쭈뼛 서게 하거나 목이 메이게 하는가 하면 무릎 치며 탄복하다가 종내 가슴이 아려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는 마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우쳐주기까지 한다. 오늘날 우리가 연암의 글을 읽어야 할 이유다.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

번역자 : 김남우 (정암학당)

[연재를 시작하며 :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이 출간된 지 500년이 되었다. 이를 새롭게 번역하여, 일부를 여기에 소개한다. 현재 권위 있는 라틴어 원문은 1979년 암스테르담에서 편찬된 <에라스무스 전집 opera omnia Desiderii Erasmi Roterodami> 제 4편 제 3책이다. 지금 널리 읽히고 있는 <우신예찬>의 우리말 번역들은 우리 인문학의 서양고전 이해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세계문학전집으로 시장을 장악하려는 거대 출판사들의 경쟁 때문에, 편집자들의 침묵 때문에 이런 안타까운 번역들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우신예찬>은 칭송 연설문이다. 연설자는 우신 (愚神)이며 따라서 어리석음의 신 스스로가 자신을 칭송하고 있다. 자화자찬은 어리석은 행동이지만 그래서 더욱 우신에게 어울린다. <우신예찬>을 이해하는 주요개념어는 ‘어리석은 현명함’이다. 현명하다는 명성을 허울 쓴 어리석음은 허다하다. 이런 것들을 우신은 자신의 업적으로 나열하며 스스로를 칭송한다. 따라서 <우신예찬>은 풍자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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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단에 우신이 등장하여 이제부터 자신이 연설을 하겠다고 말한다. 일인칭 ‘나’는 우신을 가리키며 우신은 여성 신이다.)

이제 본론으로 말머리를 돌리겠습니다. 아무튼 여러분은 내 이름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어떤 별칭을 덧붙여야 하겠습니까? ‘어리석은 자들’ 말고 달리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신이 신자들을 호명하는데 이보다 더 나은 별명이 있겠습니까? 각설하고 내가 어떤 핏줄에서 생겨났는지가 여러분에게나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이에 나는 무사이 여신들의 도움을 받아 이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나의 아비는 카오스도 아니요, 오르쿠스도 아니요1), 사투르누스도 아니요, 이아페토스도 아니요2), 그런 쉬어빠지고 늙수그레한 신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아닙니다. 내 아비는 풍요인데, 물론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가 반대하고, 더 나아가 유피테르도 분노하겠지만, 이분이야말로 바로 인간들과 신들의 아버지입니다. 내 아비가 고개를 끄떡이기만 하면, 예나 지금이나 신성한 것이나 세속적인 것이나 뒤죽박죽 모든 것들이 뒤엉키고 맙니다. 내 아비는 자신의 뜻에 따라 전쟁, 평화, 국가, 의회, 재판, 민회, 결혼, 계약, 동맹, 법률, 예술, 축제, 엄숙, 벌써 숨이 턱까지 차올라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만사 공적인 일이나 사적인 일이나 모든 일을 주재합니다. 내 아비의 재물이 없었다면 시인들이 신성을 가졌다고 노래한 수많은 신국 (神國)의 백성들은 고사하고, 좀 더 과감하게 말하자면, 선택받은 위대한 신들마저3) 전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며, 혹은 존재한다손 결단코 찬밥이나 다름없는 형편없는 대접을 받아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누군가 내 아비를 성나게 만든다면, 설령 팔라스일지라도 그에게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반대로 내 아비에게 재가를 받은 사람이라면 번개를 던지는 위대한 유피테르의 목에 밧줄을 걸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가문과 혈통에서 태어났음을 자랑으로 여긴다.’4) 그런데 유피테르가 성깔 있고 험상궂은 팔라스를 낳을 때처럼 그렇게 내 아비는 나를 제 머리에서 끄집어내지는 않았는바, 실은 매력적인 만큼 모두들 가운데 제일 명랑한 요정인 ‘청춘’으로부터 나를 얻었습니다. 내 아비는 저 유명한 절름발이 대장장이가 태어날 때처럼 슬픔5) 가운데 그녀와 결합한 것이 아니며, 이보다는 훨씬 더 매력적인 일이었는바, 우리 호메로스의 말마따나 ‘사랑의 동침’ 가운데 결합하였습니다. 풍요가 나를 낳았으되, 여러분은 내 아비를 아리스토파네스의 풍요와 혼동하지 말기 바랍니다. 내 아비는 당시6) 아리스토파네스의 풍요처럼7) 이미 곧 관에 들어갈 만큼 기력은 쇠잔하고 앞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시력마저 미약해진 분이 아니었으며, 아직 여전히 흠잡을 데 없이 건장한 청년으로 열정에 달아올랐답니다. 이는 내 어미 ‘청춘’ 때문이었으나, 물론 신들의 잔치에 참석하여 누구보다 많이 마셨고 어느 것보다 독하게 마신 신주 (神酒) 탓이기도 했습니다.8)

<중간생략 : 우신은 자신의 탄생장소에 관해 언급한다.>

나는 크로노스의 아드님이 염소를 유모로 두었던 것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두 명의 아리따운 요정들이 젖 먹여 나를 키웠으니 말입니다. 그들은 바쿠스의 딸 ‘만취’와 판의 딸 ‘무지’였습니다. 이 둘을 여러분은 나를 수행하는 일행들과 하인들 가운데서 볼 수 있습니다. 아랫것들의 이름을 여러분이 알고자 하신다면, 하늘에 맹세코 여러분은 오로지 희랍어만을 듣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쉽게 구분할 수 있는바, 눈썹을 치켜뜨고 있는 아이는 ‘자아도취’입니다. 여기 눈웃음을 지으며 연신 손뼉을 치고 있는 아이를 여러분은 보실 터인데, 이 아이의 이름은 ‘아부’입니다. 여기 꾸벅거리며 반쯤 졸고 있는 아이는 ‘망각’이라고 불립니다. 여기 깍지를 끼고 양쪽 팔꿈치를 괴고 있는 아이는 ‘태만’입니다. 여기 장미꽃으로 다발을 엮어 두르고 온몸 여기저기에 향수를 바른 아이가 ‘환락’입니다. 여기 불안하게 눈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 아이는 ‘경솔’이라고 부릅니다. 여기 피부에 윤기가 흐르고 혈색 좋은 몸뚱이를 가진 아이는 ‘음란호색’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듯 여러 계집몸종들과 더불어 여러분은 두 명의 머슴들을 보실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광란축제’라고 부르며, 다른 하나를 ‘인사불성’이라고 부릅니다.9) 나는 말하거니와, 이와 같은 하인들의 충실한 도움을 받아 나는 세상만사가 내 명령에 따르도록 만들고 있으며, 심지어 군주들 또한 내게 복종하도록 만듭니다.

여러분들은 방금 나를 낳은 부모, 나를 키운 양육자들 그리고 나를 따르는 일행들에 관해 들었습니다. 이제 감히 여신이라는 이름을 도용하는 것이 아니며 그럴만한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분 귀를 기울여 들어주시기 바라오니, 내가 얼마나 커다란 이익을 신들뿐만 아니라 인간들에게도 가져다주는지를, 그리고 얼마나 널리 내 신적 역량이 미치고 있는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혹자가 분명히 적어놓은 바, 죽을 운명의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야말로 신이라는 증거일진대, 포도주 혹은 식량 또는 유사한 어떤 유용한 것들을 인간들에게 가져다 준 이들을 신들의 의회에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정당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만백성들에게 온갖 것들을 넉넉히 나누어주는 내가, 그런 내가 어찌 모든 신들 가운데 최고신이라는 이름을 얻고 또 그렇게 여김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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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계의 신이다.

2)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의 아버지다.

3)올륌포스 신들을 의미한다.

4)호메로스, <일리아스> 제 6권 211행.

5)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는 제우스와 헤라의 정당한 결혼관계로부터 태어난 자식이다. 이에 비해 ‘사랑의 동침’이라는 말은 흔히 정당한 결혼관계 이외의 관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슬픔’은 정실부인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해석해야 한다.

6)우신의 어미인 ‘청춘 Iuventa’(희랍어로는 Neotes)은 키케로에 따르면 신들의 잔치에서 잔에 술을 따르는 신이다 (키케로, <투스쿨룸의 대화> 제 1권 26, 65). 하여 ‘풍요’와 ‘청춘’은 신들의 잔치에서 서로 만났으며, 여신은 ‘풍요’를 위해 넘치도록 술을 따라 주었을 것이다.

7)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작품 가운데 <부 (富)의 신 Plutos>이 있는데, 희랍어에 비추어 우신의 아비인 ‘풍요’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

8)이 이야기는 플라톤 <향연>에서 소개된 ‘에로스’의 출생 신화와 닮아 있다. 에로스의 아버지는 ‘풍요의 신’이며, 어머니는 ‘빈곤의 여신’이다. ‘빈곤의 여신’은 신들의 잔치에 구걸하러 왔던 차, 신주 (神酒)에 취해 잠이 든 ‘풍요의 신’과 결합하여 에로스를 낳는다.

9)하인들의 이름에 붙어 있는 희랍어 이름들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자아도취 philautia’, ‘아부 kolakia’, ‘망각 lethe’, ‘태만 misoponia’, ‘환락 hedone’, ‘경솔 anoia’, ‘음란호색 tryphe’, ‘광란축제 komos’, ‘인사불성 negretos hypnos’.

내 마음 속의 ‘아Q’를 보내며 [책 익는 마을 책 읽는 소리]

<보령 책익는 마을> ‘책 읽는 소리’ 연재를 시작하며

박종택 (보령 책익는 마을 촌장)

아큐(阿Q)형!

오늘 날짜로 형에게 이별을 고하고자 편지를 씁니다.

형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던가는 기억이 또렷하지 않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중국 루쉰(魯迅) 선생님의 소개로 정식 인사를 나누었던 기억은 명확합니다. 그 후로 형과의 우정 어린 만남은 친밀성을 넘어 동반자적 관계를 가지며 살아온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다 형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게 된 것은 ‘책익는 마을’에 이주하게 된 때부터였습니다.

아Q형,

오랜 동반자적 우정을 나누던 내가 갑자기 이별을 고하니, 분하고 괴이함을 넘어서 나의 속내와 ‘보령 책익는 마을’이 어떤 곳인지 궁금할 것입니다. 저도 우리 지역에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발적인 독서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들이 모여서 책을 읽다니 별일이다’ 놀랍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책익는 마을’에 가입하기 전부터 매달 ‘독서토론회’에서 선정된 책을 한 권 더 사서 내미는 보령소방서 강윤규 계장의 권유가 부담스러울 즈음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의 저자 이권우님을 모시고 열린 ‘저자초청토론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회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원진호 내과원장이 시민 누구나 참석가능하다기에 저도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독서량이 많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올바른 책읽기가 아니었음을 알고 깜짝 놀랐으며 독서토론이 편견을 타파할 수 있는 시선형성에 좋다는 말씀을 듣고서, 가끔씩 욱하는 성격과 보수적 성향, 술에 취하면 극우로 돌변하는 특이 체질을 개선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저자초청토론회’를 참관 했었지만 ‘책익는마을’에 가입을 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대학 시절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수업을 빼먹는 장기를 갖고, 단 한 번도 세미나에 참석한 사례가 없었던 역사적 사유로 토론에 대하여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영업을 하다 보니 사업설명회나 브리핑, 워크숍, 심포지엄, 포럼 등은 나와는 아무런 연관성을 찾지 못하며 살아온 관계로 독서토론에 대하여 막연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저자초청토론회’로 잘못 인지하고 참석했던 ‘독서토론회’에서 큰 재미를 찾았습니다. 현실적으로 성인들의 책읽기는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만 집중하게 되고 기존에 형성된 자신의 생각을 기준으로 책 내용을 재단하는 경향이 강하지 않습니까? 형님의 ‘정신승리법’도 그렇지 않습니까?

‘책익는 마을’에서는 특정 분야에 치우친 개별적 독서를 넘어 서기 위하여 각 모둠 별로 정회원의 순서를 정하고 다음 달 발제자가 자신이 선정한 책을 정회원 모두에게 선물하고 한 달 후에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이 설정한 의제로 독서토론회를 진행하는 방식이 무척이나 신선했습니다.

즈음하여 제 심신상에도 변화가 왔습니다. 신문구독을 끊고 TV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 어언 15년에, 책을 구매 해 본 것이 10년을 넘어선 나에게 동화책을 읽어 달라는 아이가 생긴 것입니다. 혼자 사는 阿Q형님 생각에 결혼을 미루었는지 나의 처지나 능력을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이었는지 마흔세 살의 늦은 나이로 2006년 초에 결혼하여 그해 12월에 얻은 아들입니다.

아들에게 나도 하기 싫었던 것을 시키는 아버지가 되지 말고, 독서를 통하여 나 스스로 자아존중감을 갖고 아들을 존중하며 아들과 함께 걷는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궁벽한 지방 소도시에 살면서 대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공부를 계속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고도 자기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을 볼 때 덮어 둘 수 없는 위기감과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내가 지향해야 할 진실한 삶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하여, 또 내가 칠팔십의 나이에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책익는마을’에 전입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익는마을’에 전입해서도 3개월간의 준회원 기간은 물론 정회원이 되고나서도 ‘책익는마을’ 카페에 글 한 번 못 올렸던 것이 나의 타고난 성격이었겠지만 阿Q형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형님과 저는 피할 수 없는 갈등을 겪게 되었고 저에게 첫 발제의 기회가 주어진 달,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으로 형님과의 전투에 나서기 위하여 10년 만에 책을 주문하였습니다. 토론의 그 날을 기다리며 저는 제가 지니고 있던 무기를 갈고 다듬고 신식 무기 구입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날의 전장에서 멀리 서구에서 저를 도우러 달려온 마키아벨리의 도움으로 소규모의 승전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 전투 이후 저는 희망에 들뜬 마음으로 미숙하기 그지없지만 카페에 글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두 번째 발제의 기회가 주어진 달, 최후 결전을 위하여 형님의 일대기를 다룬 『아Q정전』과 『삼성을 생각한다』 두 권의 책을 연관 지어 각자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저마다의 아Q와 맹렬한 전투를 벌였습니다만 형님을 내 마음의 영지 밖으로 몰아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날 이후 형님 측의 세력이 확연히 약화 된 것은 형님도 인정할 것입니다. 지난 8월 대천한화콘도에서 펼쳐진 ‘보령인문학페스티벌’에서 강사로 모신 12분의 교수님과 방명록에 성함 남겨 주신 180명의 우군 덕택에 1박 2일의 전투에서 아Q형님의 힘은 더욱 약화되었습니다. 물론 형님의 힘이 많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 힘이 강성하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힘에 강력히 저항하고 형님을 극복하기 위하여 작년 12월 ‘보령 책익는 마을’ 촌장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카페에 글을 남기기 시작한지 불과 1년 밖에 되지 않았고 운영위원도 아닌 저에게 촌장의 자리를 마련해준 속사정이야 지금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내 마음속에 웅크린 악마들과 비루한 노예들, 패배감에 물든 전사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취임을 하였습니다. 지난 7년 동안 ‘보령 책익는 마을’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열성을 다해 온 황선만 전 촌장, 운영위원을 비롯한 마을 선배님들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열심히 마을 일을 살필까 합니다.

무능한 저의 능력을 향상시켜 주기 위하여 각 모둠별로 도움장이 신설되었습니다. 토론문화를 성숙시키기 위하여 운영위원회에서 계획한 사업을 실무적으로 진행할 분들이 모인 것입니다. 식상해 질 수도 있는 독서토론회에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하여 다양한 방식을 도입하고, 초청 저자분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여 내일을 함께 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제부터 마을 분들은 <e시대와 철학>이라는 웹진에, 선별된 한 편의 글을 송고해야 하고, 출판사로부터 책을 전해 받은 후 서평을 쓰는 기회도 갖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유월이 오면 2박3일의 일정으로 대천해수욕장에서 이진남 교수님이 이끄는 ‘철학온’과의 연합MT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연합MT는 ‘철학온’ 회원들과 ‘보령 책익는 마을’ 회원들이 섞여서 저자초청토론회와 독서토론회를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철학온’에 철학을 전공하신분이 많다는 이야기에 긴장하는 회원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논리의 철학은 부족할지라도 부딪히며 살아온 삶의 철학이 있다”, “좋은 문학작품은 변화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의 고통을 극복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결국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믿음을 준다.”고 하셨던 이권우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작년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올해도 변함없이 8월이 오면 1박2일간 대천해수욕장에서 한여름의 ‘인문학페스티벌’을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도움장들의 행사진행과 운영위원들의 후원과 열기가 넘치는 마을 분들의 열정으로 보령시의 열린 시민들과 함께 또 멀리서 찾아주시는 분들을 모시고 책, 정, 술을 함께 하겠지요.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서평/특별기고]

강신익(인제대 의대 교수/인문의학연구소장)

이 책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는, 현대 정신의학이 다양한 문화의 자생적 문제해결능력을 무시하고 미국문화의 잣대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재단함으로써 발생하는 사태들에 대한 보고서이다. 저자는 거식증, 외상후장애증후군(PTSD), 정신분열병, 우울증 등 서구에서 발견되고 분류되고 관리되어 온 대표적 정신질환이 홍콩, 스리랑카, 아프리카의 잔지바르, 일본에서 퍼져나가는 양상을 세심히 관찰해 보여준다. 그리고 서양의학은 토착문화의 자생력을 파괴하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중 홍콩과 일본은 우리와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지역이어서 특히 관심이 간다.

아마 현대의학이 인류를 참혹한 질병의 고통에서 구해준 은인이라고 믿는 독자라면 무척 당혹스러울 것이다. <질병 판매학>, <더러운 손의 의사들>, <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의 주머니를 털었나> 등 현대의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많은 책들이 출판되기는 했어도 의학이 인류구원의 보루라는 믿음은 우리 사회에 아직 굳건하다. 이 책들은 제약회사가 처방권을 가진 의사를 합법적으로 또는 탈법적으로 매수해 불요불급한 처방을 남발하도록 조장한다고 폭로한다. 실제로 약을 처방하는 대가로 제약회사가 의사나 의료기관에 지불하는 리베이트의 문제가 여러 차례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00년에 있었던 의사들의 파업은 의약분업을 통해 약품의 유통마진을 줄이려는 정부와 의사집단의 이해가 충돌한 사건이었다. 문제를 이렇게만 보면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조정과 합의가 해결책이다. 실제로 의사파업은 힘에 따라 이해관계를 재분배하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문제를 좀 더 근원적인 곳에서 찾아낸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축적해 가는 삶의 지혜, 즉 공동체마다의 문화다. 그런데 미국의 의사들이 중심이 돼서 만들어낸 정신질환분류(DSM)에는 서양과 다른 세계관과 삶을 담을 공간이 없다. 따라서 서양의 정신의학은 서양인의 삶에서 형성된 정서와 문제를 기준으로 다른 문화권의 삶을 재단할 수밖에 없다. 홍콩의 거식증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날씬한 외모에 대한 무의식적 동경이 이 병의 원인이라는 서양식 설명은 실제 사례와 거의 들어맞지 않는데도 말이다. DSM은 특정 문화권에서만 발견되는 증상을 포함하기도 한다. 한국인에게만 있는 ‘화병’이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서양의 교향악에 국악 가락 한 소절을 집어넣는다고 그 음악이 국악이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은 그런 문화적 불협화음에 관한 것이다.

문제를 이해관계보다 더 큰 문화의 틀 속에서 찾아낸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이로써 우리는 의료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다. 이것은 20세기 중반 이후 현대의학을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대두된 여러 학문 중 하나인 의료인류학의 접근법이기도 하다.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하버드 대학의 아서 클라인만은 대만에서의 정신병 연구를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문화적 연구의 길을 열었다.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서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문화적 폭력일 뿐 아니라 현지민을 새로운 의료상품의 소비자로 만들어 사회경제적으로 수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거식증과 정신분열병의 사례가 주로 문화적 폭력에 대한 것이라면 외상후증후군과 우울증의 사례는 주로 문화적 폭력이 경제적 수탈의 수단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외상후증후군과 우울증은 각각 서구식 훈련을 받은 심리상담사와 거대 다국적 제약기업의 큰 시장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현지인들을 서양인처럼 앓게(미쳐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세계가 미국처럼 미쳐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현지 문화에 대한 무지와 무시라면 다른 하나는 미국인들의 몸과 마음이 되어버린 그들 자신의 문화에 대한 반성의 부재다. 이 책의 초점은 전자에 있지만 후자에 대해서도 마땅히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이것은 의료인류학이 갔던 경로이기도 하다. 최초의 의료인류학자들은 과학에 바탕을 둔 서양의학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식민지와 후진국에서는 건강에 관한 각종 미신과 토착신앙 때문에 서양의학이 잘 수용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위해서는 그들의 신앙과 문화를 연구해야만 했다. 그런데 후진국의 신앙과 거기에 바탕을 둔 토착의학을 연구하다보니 비교분석을 위해 같은 방법으로 서양의학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문화적 장막에 가려 보이지 않던 서양의학의 전제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서양의학의 보급을 위해 시작된 연구가 이제는 오히려 서양의학의 문제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된 것이다. “다른 문화의 믿음들을 깊이 탐구하면 우리 자신의 문화적 편향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다.”

이 책은 서양의 정신의학이 다른 문화권에서 만들어내는 문제들에 관한 것이지만, 거꾸로 다른 문화의 시선으로 서양의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일상에 대한 과도한 의료화가 다양한 맥락 속에서 자동적으로 습득된 문제해결 능력을 무력화하여 오히려 병을 만든다고 주장하는 이반 일리히의 <병원이 병을 만든다>, 그리고 프랑스의 정신의학이 식민지 알제리인의 정신을 파괴하고 지배하는 양상을 비판한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에서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진단명을 쓰지 않지만 50대 이상 세대라면 히스테리와 신경쇠약이라는 서양에서 발명되고 수입된 증세에 익숙할 것이다. 실제로 그런 증상을 앓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유명 연예인들의 잇단 자살은 우울증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고 아마 그 발병을 더 촉진시켰을지도 모른다. 천안함 사건에서 생존한 승조원에 대해 실시했다는 외상후장애증후군 치료는 과연 어떤 문화적 전제에서 출발한 것인지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혹시 치료를 빌미로 틀에 박힌 가치를 주입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책은 이러한 현실적 반성 외에 우리들 자신의 본성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생물학적 존재인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문화에 길들여진 존재라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이 책은 이 점을 상기시켜 준다. 대중은 문화적 권위의 지지를 받는 틀 속에서 질병을 이해하고 경험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그 문화적 권위가 교회였지만 근대 이후 급속히 과학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20세기 이후에는 자본과 소비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19세기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던 히스테리 환자들은 이 분야의 문화적 권위였던 의사 샤르코가 진단하고 분류하고 기술한 그대로의 증상을 겪었다. 오늘날의 소년소녀들은 TV에 등장하는 연예인의 외모와 행동과 소비패턴을 규범으로 삼고 닮으려 한다. 그래서 성형과 미용과 다이어트의 열풍이 분다. 이것은 “무의식이 감정의 고통을 당대에 이해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시도”의 결과다. 이렇게 문화적 기대와 개인적 경험이 상호 작용하고 우리의 생물학적 몸은 문화적 경험과 기대를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한다. 몸과 문화는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생물-문화적(Bio-Cultural) 현실이다.

21세기의 문화적 권위인 자본은 바로 그 생물-문화적 현실을 파고들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새로운 생물-문화적 현실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자율적 문제해결 노력이 아닌 약품의 소비가 규범인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 확대되면 모든 사람이 그 새로운 생물-문화적 현실의 구성요소가 된다. 책 속에 인용된 애플바움의 말처럼 “완벽한 건강이라는 유토피아적 가능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부지중에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에게 우리가 가진 자유의 도구들을 마음대로 통제할 고삐를 넘겨주고 말았다. 과학의 객관성, 의료의 윤리와 공정성, 환자의 이익을 위해 일하겠다는 맹세를 스스로 지키는 한에서 의학에 자율성을 부여할 특권은 이제 그들 손에 있다.”

의료인의 전문가로서의 자율성과 대중의 의료인에 대한 신뢰를 되찾고 환자가 의약품의 소비자가 아닌 자기 건강의 주체로 바로 설 수 있을지의 여부는 바로 이와 같은 사회문화적 메커니즘을 바꿀 수 있을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이 책이 의료와 관련된 모든 논쟁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불행을 선택하는 바보는 없다[생각vs생각]

행복전도와 자살의 역설-

행복전도사 최윤희 씨의 자살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심지어 혼란을 넘어 “행복하라는 말은 모두 거짓이었나”, “당신의 책을 모두 버렸다”, “행복전도사 자격이 없다”는 등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의 자살이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고 심지어 배신감이나 분노를 느끼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살라”고 말한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일치를 느끼는 이유는 남에게는 행복한 삶을 살라고 말하고서는 정작 자신은 불행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불행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을까? 스스로 불행을 선택한다는 생각은 외부관찰자의 판단일 뿐이다. 당혹스러움은 당사자의 관점과 외부관찰자의 관점을 혼동한 데서 비롯되었다.

고통으로부터 즐거움을 느끼는 메저키스트의 행동을 스스로 불행을 선택하는 행위로 보는 것은 외부관찰자의 관점일 뿐이며 당사자의 관점으로부터 보면 그것 또한 스스로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도 스스로 행복을 얻고자 하는 행위다. 행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행위와 불행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행복을 얻는 소극적 행위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바보의 행복 또한 마찬가지다. 작은 다이아몬드보다 커다란 빵을 선택하고 행복해하는 바보를 외부관찰자는 불쌍하다고 동정한다. 당사자는 마냥 행복한데 말이다. 작은 다이아몬드보다 커다란 고기 덩어리를 선택한 강아지는 어떨까? 외부관찰자로서 우리는 그 강아지도 불쌍하다고 동정할까? 노무현이 야합적인 3당 합당을 비판하고 꼬마민주당을 고집했을 때, 낙선이 불 보듯 뻔한 출마를 스스로 선택했을 때, 살아서 당당하게 결백을 밝히는 대신 부엉이 바위를 선택했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 불행을 선택하는 바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스로 불행을 선택하는 바보는 없다. 행복의 기준이 다를 뿐이다.

인지생물학자인 움베르또 마뚜라나(H. Maturana)에 따르면, 외부관찰자는 관찰자 스스로 설정한 특정한 맥락 속에서 효과적인 행동으로 관찰되는 행동을 인지적이거나 지능적인 행동으로 간주한다. 행동의 긍정적 효과를 행복이라고 본다면, 바보는 관찰자가 스스로 설정한 교환가치라는 맥락에서 볼 때 효과적이지 못한 행동을 했으므로 그 행동은 불행을 스스로 선택한 어리석은 것이다. 반면에 강아지는 관찰자가 스스로 설정한 사용가치라는 맥락에서 볼 때 효과적인 행동을 했으므로 이는 행복을 스스로 선택한 똑똑한 행동이다.

노무현은 관찰자가 스스로 설정한 권력의 가치라는 맥락에서 볼 때 효과적이지 못한 행동을 했으므로 그의 행동은 어리석은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의 관점에서 보면, 강아지뿐만 아니라 바보도 스스로 설정한 사용가치라는 맥락 속에서 효과적인 행동을 했고, 노무현도 스스로 설정한 정의의 가치라는 맥락 속에서 효과적인 행동을 했다. 모두들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스스로 선택했다.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더라도 여전히 당혹감을 느끼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그녀가 “불행으로부터 도망가지 말고 초연하게 맞서라”고 말한 데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해놓고 스스로는 불행으로부터 도망갔으니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게다. 그런데 그녀는 불행으로부터 단지 벗어나고자 한 것일까, 아니면 불행으로부터 도망가고자 한 것일까? 이 두 가지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앞의 것은 불행을 단지 불편해하는 경우이며, 뒤의 것은 불행을 무서워하는 경우다. 그녀는 어떤 경우였을까? “불행으로부터 도망가지 말고 초연하게 맞서라”라는 그녀의 말이 진실이었다면 그녀는 불행을 무서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몹시 불편했을 뿐이다. 그녀가 유서에서 “죄송하다”고 말한 이유는 불행으로부터 도망가서가 아니라 불편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벗어나려 한 데 있을 것이다.

마틴 하이데거(M. Heidegger)는 죽음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맞서는 것을 실존적 결단이라고 한다. 물론 하이데거의 이 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죽음으로부터 도망가고자 하면 공포를 느끼지만 죽음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맞서면 불안을 느낀다.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삶에 집착하여 종교인이나 의사를 찾아가 살려달라고 애걸하지만, 불안을 느끼는 사람은 삶의 무반성적인 태도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삶의 실존적 의미를 찾게 된다. 삶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죽음에도 집착하지 않는 초연한 실존적 삶을 살게 된다. 그러한 삶이야말로 모든 불행으로부터 벗어난 행복한 삶이 아닐까?

이것이 바로 최윤희씨가 전도한 행복의 비밀이 아닐까? 바보가 마냥 행복한 이유는 삶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우리가 바보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그가 권력에, 아니 삶과 죽음에조차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최윤희씨의 자살은 그녀가 전도하며 다닌 “모든 불행은 집착으로부터 온다.”는 깨달음을 몸소 실천한 것일 뿐이다. 우리가 당혹감이나 배신감 또는 분노를 느끼는 것은 그 행복의 비밀을 아직 몸소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최윤희씨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속삭인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어요?”

김광식(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

중국의 신자유주의 대 신좌파[생각vs생각]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추상에서 구체로

1980년대의 개혁개방, 이와 더불어 분출된 사회와 사상운동의 활력 속에서의 중국 지식인을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대다수는 ‘피안’(마오쩌둥의 실험)이 이미 치유 불가능한 위기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문제는 대다수가 그 피안의 상태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강을 건너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지식계는 거의 옆을 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나아갔을 뿐, 잠시 멈추어 자신의 다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대오 중 물살에 휩쓸린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지 못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국 지식계는 1989년의 갑작스러운 사건(천안문 사태)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1990년대의 거대한 사회 경제적 변화를 직면한다. 열정과 추상이 휩쓸고 간 직후 그들에게는 좌절된 현실, 새롭게 직면하게 되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구체적인 전망이 요구됐다.

1990년대 초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에 다시금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중앙정부는 정치적으로 더욱 강하고 집중된 권력을 행사했고, 경제적으로는 전에 없는 고도성장을 이루게 된다. 이에 따라 대내적으로 시장화가, 대외적으로는 세계화가 심화되었으며 사회적 모순은 점점 첨예해졌다. 그러나 이를 정치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학술계는 정부와 발맞춰 1980년대의 ‘급진주의’에 대한 비판과 국학 부흥을 주도했고, 대중문화와 상업문화의 확산이라는 현상을 두고 진행된 ‘인문정신’에 관한 토론 이후 경제와 정치 현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특히 공공정책, 정치개혁에 관한 이론적 토론들을 통해 점차 선명하게 두 진영으로 분화되어갔다.

현대화에 대한 두 가지 시각

자본주의를 수용하는 사회주의로서의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중국 공산당의 기본 방침으로 공인된 1992년 이후 시장의 자유화를 지향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중심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담론이 중국에서 널리 주목받기 시작한다.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세계 경제체제에 편입해가려는 노력 속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회적 모순을 어떤 이들은 건전한 시장경제로 나가는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과도기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어떤 이들은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중국판에 불과하며 그 성과는 소수에게 집중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배제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를 제출한다. 이는 사회가 새롭게 재편해가는 과정에 대한 매우 상반된 인식으로 전자의 견해는 ‘신자유주의(또는 자유주의)’로, 후자의 견해는 ‘신좌파’로 불린다.

중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서구의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동의하며 중국의 현대화는 서구의 (신자유주의적) 현대화와 그 궤를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중국의 문제는 개혁과 시장화가 자발적으로 아래로부터 형성된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아래로 추동된 것이어서 시장이 권력체제의 통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성숙하고 규범화되지 못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해결은 시장경제를 더욱 발전시키고 완전하게 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고 시장에게 많은 역할을 맡긴다면 시장 자신의 발전 요구와 규율, 그리고 사람들의 이성적 노력에 의해서 현재의 문제를 극복하고 경제적 민주와 정치적 민주를 이룰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시장이 민주의 충분조건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필요조건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근대이후 민주와 시장경제가 분리됐던 사례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공정(公正)에 대한 이들의 입장은 분명하다. 불공정문제의 해결방법은 첫째 진정한 시장, 진정한 자유경쟁을 실현하고 규칙을 공정하게 하여 모든 사람이 준수하며 권력을 시장에서 축출하는 것이고, 둘째 법제를 완비하는 것, 즉 합법적인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고 입법을 통해 빈부격차를 축소하고 법률에 의해 부패를 처벌하고 국유재산의 유지를 방지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를 통하여 한편으로는 시장경제 개혁의 미명 아래 권력이 사회적 재부를 약탈하는 것을 반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의 메커니즘을 벗어나는 개혁과 공정에 대한 요구를 반대한다. 전자는 중국 정부를 겨냥한 것이고, 후자는 신자유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신좌파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들에게서 시장과 이에 기반 한 공정에 대한 비판적 검토나 성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바로 이 지점에서 1990년대 후반의 신자유주의와 신좌파의 논쟁이 본격화된다. 이를 촉발시킨 것이 신좌파로 분류되는 왕후이(汪暉)의 논문 「당대 중국 사상계의 현황과 현대성 문제」이다. 논쟁의 배경에는 중국 사회 모순의 첨예화 뿐 아니라 아시아 금융위기가 있었다.

신좌파는 세계화는 중국 사회 밖에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라 중국 사회에 이미 내재된 문제로, 정치권력과 시장계획의 관계, 새로운 사회에서의 빈곤과 불공정의 출현, 구권력의 네트워크와 새로운 시장 확대의 내적 연계들이 근대와 현대의 역사를 다시 사고하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한다.

왕휘는 이로부터 만들어진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현대화를 서구의 현대화와 동일하게 이해해서는 안 되며, 서구 자본주의의 현대성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반현대적인 현대성’ 즉 서구의 현대화 과정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토대로 현대성을 토론하고 기획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화 또는 현대성에 대한 해석과 이해에서 신자유주의와는 뚜렷한 시각차를 보인다.

그러므로 중국의 ‘개혁’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와 부가 집중되는 과도기적 자본주의가 아닌 정치와 경제적 민주를 확대하여 분배의 공정과 평등을 보장하고 빈부의 차가 무한히 확대되는 것을 막는 방식으로, ‘개방’은 자본의 논리를 무조건 받아들여 국제 자본주의 체계로 편입되는 것이 아닌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다.

신좌파는 신자유주의가 추상적인 ‘시장’ 개념으로 중국 사회와 세계의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과 그 사회의 경제가 정치와 맺고 있는 내적 관계를 은폐하면서, 맹목적적인 시장주의로 평등의 가치를 거세하고 있고, 궁극적으로 정치변혁의 필요성과 사회적 공정성에 대한 기본적인 호소를 희석시킨다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와 신좌파 모두 시장 경제를 긍정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사회의 공정을 자유로운 시장의 ‘경쟁과 효율’에 맡길 것을, 신좌파는 ‘공정과 평등’을 구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비판과 견제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과거와 함께 가기: 전통의 재인식 대 역사의 재인식

중국의 신자유주의와 신좌파 논쟁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그들이 각각 자신들의 과거, 신자유주의는 전통을 신좌파는 모택동 사회주의를 긍정적으로 재인식하려 한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일부는 현대화의 길은 반드시 중국의 전통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대화를 위해 전통을 파괴하는 것이 오히려 가치체계의 해체와 문화 동일성의 상실을 이끌어 현대화 과정을 손상시킬 수 있으므로 유교를 포함하여 합리성을 가진 문화전통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들의 견해는 아시아 공업문명의 눈부신 발전의 원인이 유교문화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교부흥론자’, 전통 가치의 비판적 계승을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비판계승론자’, 전통의 개방성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전통의 창조를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서체중용론자’와 유사하다.

전통에 대한 이와 같은 태도는 1910년대 신문화운동과 1980년대 문화열 시기의 전통에 대해 부정적이면서 적극적으로 서구화를 지향했던 자유주의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전통을 폐쇄적이고 정형화된 유물이 아닌 개방적이고 연속적인 유기적 생명체로 이해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전통에 주목하도록 하였을까? 첫째는 자유주의자들에게 늘 따라다니는 ‘전면적인 서구화론자’, ‘부르주와 자유화의 주범’이라는 꼬리표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꼬리표로 인하여 위축되고 탄압받기보다는 전통과의 화해를 도모하기로 한다. 둘째는 서구의 자유주의를 중국에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전통 개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전통 속에서 이에 부합하는 자원을 발굴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중국 자유주의 속에 있었던 전통과 서구화의 오랜 불화는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일단락된다.

신좌파는 1980년대 이후 대다수가 부정했던 마오쩌둥 사회주의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이는 그들이 중국이 추구해야 할 현대성을 ‘반현대적인 현대성’으로 설정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반식민지적 지배 아래에서 현대화를 모색했던 중국은 현대화운동에 있어서 서구의 현대성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요구받았으며, 마오쩌둥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적 현대화에 대한 비판을 수렴하며 현대화를 추구했다. 그것이 곧 ‘반자본주의적인 현대성’이었다.

왕후이는 마오쩌둥은 공사제(公司制)와 집단경제방식으로 중국 경제의 발전을 추진하는 한편 분배제도에서 자본주의 현대화가 초래한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을 피하려 했으며, 공유제(公有制) 방식으로 전체 사회를 국가의 현대화라는 목표를 위해 조직하여 개인의 정치적 자주권을 박탈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기구가 인민주권을 억압하는 것에 깊은 반감을 가졌다고 평가한다.

마오쩌둥 사회주의가 심각한 역사적 모순을 드러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부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특히 그 안에 담겨있는 ‘반현대적’인 내용은 반드시 새롭게 성찰되어야 한다는 것이 신좌파의 입장이다. 마오쩌둥 사회주의의 ‘공정과 평등’이라는 반자본주의적 현대성의 내용이 지금의 중국에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개혁 이후의 사회주의는 개혁 이전의 사회주의가 지니고 있었던 ‘반현대적’ 특징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으며 사회적 불평등은 날로 심화되어가고 있다. 세계화되고 독점적인 시장경제에 빠르게 편입되어가고 있는 중국에 아직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이와 같은 긍정적인 사회주의적 요소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계몽과 현대성을 모색하다

중국의 신자유주의와 신좌파 논쟁, 그 가운데서도 신좌파의 주장은 적어도 자신들의 모색을 위한 치열한 비판과 성찰의 노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계몽’과 ‘현대성’의 문제는 중국의 지식인에게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지식인에게, 그리고 과거에서만 아니라 현재에도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주제다.

19세기 서구의 물리적 힘에 의해서 근대를 시작하게 된 공통의 역사적 경험은 필연적으로 동일한 계몽과 현대성을 목표로 갖게 했다.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성립, 국민국가의 건설, 봉건질서와의 단절 등은 강조되었지만 모든 인간의 법적 평등, 개인의 해방과 자유, 언론의 자유 등은 억압되었다.

서구의 계몽과 현대성은 적어도 스스로 변화하고 충돌하는 긴장 속에 있었지만, 우리에게 계몽과 현대성은 불변하며 반드시 도달해야만 하는, 그러나 아직 도달하지 못한 절대적인 목표였다. 항상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질책했을 뿐 계몽과 현대성이 우리에게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 우리 앞에는 지금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와 자본의 지배가 심화되어가는 현실이 놓여 있다. 어떤 이들은 이에 뒤쳐지지 않게 편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어떤 이들은 이 현실을 뛰어넘으려 모색한다. 중국의 신좌파는 후자에 해당한다. 이를 위해 지나치게 그 일면만 관찰되고 있는 계몽과 현대성을 재검토하고, 마오쩌둥 사회주의를 재평가하고, 개혁개방 이후의 사회주의를 비판한다.

이는 오랫동안 중국에서의 계몽이 보여준 무비판적인 서구화를 반성하고, 현대성에 내재된 모순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이 중국의 현실적 역사 속에 존재함을 성찰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계몽은 이미 그 속에 스스로를 계몽시켜야 함을 함의하고 있으며, 현대성은 이미 그 속에 새로운 시대의식으로서의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계몽과 현대성은 스스로, 그리고 시대와 끊임없이 긴장하고 각성하며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박영미(한양대 강사) /

무모함과 소심함을 넘어선 솔직함[생각vs생각]

전통, 찬양할까? 내칠까?

최근에 출판된 나의 저서 『공자, 페미니즘을 상상하다』에 대해서, 한 기자는 나를 어떤 다른 저자의 “무모함”에 비교하여 “소심함?”으로 평가하였다. “저자는 소심하였다”가 아니라 ‘?’를 동원하여 “소심한 걸까?” 라는 의문 제기의 방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좀 더 원색적인 발언이나 내용을 기대하였던 듯하다.

예컨대 “공자가 죽어야…” 혹은 “공자가 살아야…” 류가 아니어서, 재미난 구경거리가 한 판 벌어졌을 법도 할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아쉬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또한 『공자, 페미니즘을 말하였다』라고 왜 좀 더 강력히 발언하지 않았는가, 아니면 왜 좀 더 화끈하게 공자를 내다 팔지 않았는가 하는 은근한 질책이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같은 저서를 두고 아주 다른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상하다”를 “말하였다”로 자체 이해하면서, 공자가 언제 페미니즘을 논한 적이 있는가에 초점을 두어 격분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논조는 공자와 유교는 가부장제의 산물이고 여성 억압적이며 계급적 한계를 지니는 것인데, 이것이 페미니즘 논의와 어떻게 한 자리에서 거론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즉 공자와 페미니즘, 유교와 페미니즘을 함께 거론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유교 안에서 현대적인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것은 또 다시 공자를 살리려는 보수논리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전통 사상을 거론하는 데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방식은 이처럼 찬양할까? 내쳐 버릴까?의 둘 중 하나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래서 둘 중 어느 하나를 완전히 폐기시켜 버리거나 다른 한 편에 완벽한 승리를 안겨 주는 방식을 취하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 안에서는 가치폄하 하는 논쟁 방식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의도만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한쪽이‘전통은 과거일 뿐이고, 전통은 아무 것도 아니며 그래서 폐기되어야 할 뿐이고’라고 말하면, 다른 한 쪽은‘현대는 문제투성이일 뿐이고 그래서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에 비하면 현대는 타락의 소치일 뿐이고’로 응수한다.

이 둘에게서 서로 만날 방법을 찾기란 어렵다. 그들은 소통, 화해, 융화를 생각하기 보다는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전제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것 아니면 저것의 논리만이 통하며, 전통의 만능을 찬양하거나 혹은 전통의 무능을 한탄하는 둘 중 하나의 방식만을 논의하고자 한다.

상호성과 ‘한국적’ 상호성

최근 차이의 철학, 다문화주의 등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이 서구를 보편으로 간주하는 것, 그래서 다른 문화권에 속한 전통을 무시하는 태도에 대해 맹렬히 비판한다. 또 서구라는 잣대로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다른 문화권에 속한 전통에서 발전된 목소리를 배제하게 된다고 고발하기도 한다.

상호문화성을 통해서 서로 다르고 때로는 이질적인 철학들 사이의 만남과 매개 – 타자성, 차이, 낯선 자의 해석학, 다문화성, 상호문화성, 초문화성 – 에 대하여 관심 가져야 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같은 작업,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만나는 현실을 겪으면서 중심성을 배제하고 문화의 상호성을 논의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매우 유의미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상호문화성을 말하는 사람들 역시도 ‘어떻게’ 상호성을 개발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히 답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서구’에 기반해서 ‘우리’의 문제를 말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도 그 안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촌화되어 있는 현재 상황에서 별도의 ‘우리’를 설정할 필요는 없으며, 그렇기에 상호성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한국적’ 상호성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그저 중심성을 비판하고 상호문화성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상호성을 마련하는 데 과연 효과적인 전략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 상호성을 개발하는 것은 단일한 하나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자 발 딛고 있는 현실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며, 그렇기에 자신이 현재 어디에 어떻게 발 딛고 있는가를 직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통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화두가 되는 것이며, 전통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전통에 대한 거론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전통과 현대, 이들을 한 자리에 놓고 거론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나 그 때에도 그 둘의 관계는 여전히 불편한 채로 남아 있기 쉽다. 전통 사상의 개념과 용어들을 현대 사회에서 사용하는 데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개념과 용어들을 재활용하는 작업은 비록 어렵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상호성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단일한 단어를 찾는 것보다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우리가 성취하고자 하는 주된 과제에 충실할 수 있는 또 다른 의사소통의 길을 찾아보는 것이 때로는 더 유용한 방식일 수도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현실과 그것에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는 전통을 완벽하게 분리해내기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그래서 서로 다른 시대의 두 영역의 일을 함께 논의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 질문은 그 자체로서 우문일 수 있다.

전통을 비판하는 사람에게도 전통은 있고 그 전통은 어떻게든 해석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현대를 비판하는 사람에게도 현실은 있고 현실의 부정성은 어떻게든 해소되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우리 자신에게, 즉 우리 내부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에 달려 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남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남을 도울 수도 없다. 전통과 현대에 대한 어렵고도 지난한 논의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관심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남의 말과 생각을 빌어서 사회 변혁을 이루어보겠다는 무모한 모험을 시도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자신의 전통과 현실을 한꺼번에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모함과 소심함을 넘어서서 솔직하게 전통을 바라보기

제주도 한라산의 정상에 오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코스의 길이 있다. 서북쪽 코스인 어리목 등반, 서남쪽 코스인 영실산 길, 동쪽 코스인 성판악 길, 북쪽 코스인 관음사 길 등이다. 영실산 길은 영실 기암의 경관이 좋으나 등산길이 짧아서 등산꾼들에게는 그다지 선호의 대상이 아니란다. 성판악 산길은 활엽수가 우거져 삼림욕 하기는 좋으나 그 때문에 주변경관을 온전히 감상하기는 어렵다. 한편 관음사 길은 계곡이 깊고 산세가 웅장하여 오르기가 수월치 않으나 한라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각자 자기에게 익숙한 길을 따라, 혹은 자기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정상에 오르면 된다. 동쪽에 사는 사람이 북쪽 코스를 선택하거나 북쪽 사는 사람이 동쪽 코스를 선택할 수도 있지만 어쩌다 특별히 하는 등산이 아니라면, 일상 속에서 늘 등산을 할라치면 각자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가기 쉬운 코스를 택하는 것이 편리하고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전통과 현대를 논의하는 데 거기에 전통을 거론할 필요가 있는 이유 혹은 상호문화성을 논의하는 데 ‘한국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필요가 있는 맥락을 나는 한라산 정상에 오르는 것을 통해 이해하고자 한다. 그것은 내가 발 딛고 있는 현실로부터 나에게 익숙한 개념을 가지고 낯선 방식으로 차이, 만남, 관계, 상생, 융화를 말할 수 있는 철학을 만들어보려는 것이다. 허나 이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 해석의 방식이 반드시 ‘낯선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인, 익숙한 방식으로는 새로운 논의를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즈음에서 『공자, 페미니즘을 상상하다』에 대한 서평을 다시 떠올려 보고, 그것을 바로잡아 보자. 공자가 비록 페미니즘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사상에서 여성주의 사상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상상하고 유희하는 것은 소심함? 이 아니라 솔직함! 이라는 것이다. 공자 사상의 이러저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새로운 패러다임 구성, 새 판 짜기의 맥락에 재활용하는 전략은 소심함 혹은 무모함의 맥락에서가 아니라 긍정성과 부정성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 사상과 그것의 현대적 해석의 노력에는 전통과 현대라는 시공간적 간극을 이해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며, 이는 그들 간의 차별화된 개념과 그 범주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 개념이 어떤 방향의 철학을 제시할 것인지에 대한 충실한 해명이 요구된다. 또한 이러한 해명의 작업은 단순히 전통을 답습, 찬양하거나 혹은 비판, 거부하는 방식으로써가 아니라 과거의 문제들을 현실적 안목에서 성찰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세서리아 (성신여대) /

변증법적 총체성:자유로 가는 길[생각vs생각]

“‘포괄적으로 보는 사람’(ho synoptikos)은 ‘변증술에 능한 자’(dialektikos)이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이가 아니기 때문이네.”(플라톤, 『국가』)

전체는 비진리인가

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진리는 곧 전체”라고 제시하며 변증법적인 총체성의 개념을 존재론적 원자론에 기초를 두고 있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실체존재론과 근대의 경험주의, 그리고 선험적 형식주의(경험주의의 변형태 중 하나)를 비판하는 토대로 삼고 있다.

그러나 히틀러의 아우슈비츠 대학살과 스탈린의 강제수용소를 경험한 이후 보수적인 학자 진영이나 진보적인 학자 진영이 이 개념을 집중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고, 이 개념과 아울러 변증법 자체의 학문성과 실천성까지 모두 의심하고 심지어 폐기하는 데로 나아갔다. 이로써 변증법적 총체성이라는 개념은 정치적 전체주의라는 현실적 정치체제와 필연적 연관성을 지닌 것처럼 이해되어 왔다. 이러한 경향을 아도르노는 “전체는 진리가 아니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여 표현한다.

변증법적 총체성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며 개인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는 실증주의나 분석철학과 같은 경험-형식적 합리성의 철학(대표자로는 포퍼, 그의 반증주의는 전형적인 과학주의임), 그리고 소비에트 공식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며 정치적으로 새로운 진보를 제시하기를 열망하는 네오맑스주의(대표자로는 아도르노)나 포스트모던주의(대표자로는 리요타르) 양쪽에서 공격을 받는다.

새로운 좌파적 실험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 주자인 리요타르는 변증법의 ‘총체성’ 개념과 거대 담론을 비판하며 차이의 활성화를 통한 작은 담론을 대안으로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변: 포스트모던이란 무엇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는 전체와 하나에 대한 동경(변증법적인 총체성-인용자 주), 개념과 감성의 화해에 대한 동경, 명료하고 의사소통가능한 경험에 대한 동경을 실현하기 위해 지나친 대가를 치렀다. …… 그리하여 서술할 수 없는 것을 증언하고, 충돌하는 차이를 활성화하고 그 이름의 명예를 구원하라.” 이 글에서 변증법적인 총체성은 다양성을 배제하고 차이를 억압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받는다.

한편 정치적 보수주의자인 포퍼는 자유주의의 기초가 되는 개인주의라는 정치철학적 관점과 자신의 과학적 탐구의 방법인 “시행착오”의 방법을 기초로 해서 변증법적 총체성을, 그 총체성의 역사적 발전적 과정의 필연성을 일종의 예언자의 망령으로 규정한다. 포퍼는 변증법적 총체성을, 역사적으로 전개된 과정 전체를 필연적으로 규정하는 일종의 ‘역사법칙주의’라고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역사법칙주의는 과거, 현재, 미래 모두를 하나의 역사발전법칙으로 설명하고, 특히 미래를 이 법칙에 따라서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포퍼는 변증법적 역사진행과정의 총체를 점성술의 예언 차원으로 격하시키면서 동시에 변증법 자체도 ‘전(前)과학적이자 전(前)논리적인 사유방식’으로 규정한다. 그는 변증법을 “어떤 발전 또는 어떤 역사적 과정이 어떤 전형적인 방식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변증법적 3박자 이론으로 정의한다. 이 전형성이 바로 역사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결정론을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결정론의 형태가 헤겔에서는 개념적 필연성으로, 마르크스에서는 경제적 필연성으로 나타난다.

포퍼는 필연성에 기반을 둔 변증법이 철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정치이론의 발전에서도 불행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역사에는 그 진행 과정을 필연적으로 지배하는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역사에는 의미나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포퍼에 의하면 “미래는 우리들에게 달려 있으며 우리들은 어떤 역사적 필연성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필연성에 기초한 전체 과정으로서의 변증법적 총체성은 예언적 환상에 불과하고 이로부터 인류의 자유를 구속하는 정치적 전체주의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개인화는 전체화를 동반한다

그런데 포퍼와 리요타르가 공격하는 내용과 방식은 달라도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즉, 현대 정치에 출현한 전체주의적 요소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정치공동체와 이성국가를 강조하는 변증법에서 기원한다고 본다는 점이다.

그러나 변증법은 전체주의의 기원이 아니다. 도리어 자유주의가 전체주의의 출현에 책임이 있다. 현상적으로 보기에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자유주의는 전체주의와 전혀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의 치료제로 추천되기도 한다.

이러한 혼동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근대 정치를 ‘개별화’와 ‘전체화’가 맞물려 진행되어 온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푸코). 일례로 ‘개인의 권리’와 ‘인격의 자유’에서 쓰이는 ‘권리’와 ‘인격’ 모두가 개인적인 차원에 속하는 개념들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차원에서 법적인 토대를 지니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 개념들은 이미 자신들 속에 사회적, 더 나아가서 정치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개인’이라는 개념도 추상화된 단위, 즉 국가나 사회로부터 추상화된 결과이지 이것들의 선행 원인이 아니다. 이렇게 본다면 ‘개인’, ‘권리’, ‘인격’ 모두 사회적, 정치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개별화와 국가화(전체화)가 별개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근대 국가가 성립(전체화)하면서 개별화가 함께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개별화는 추상적 직접성의 단계로서 이미 전체화를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자유주의적 개념들 속에 이미 전체화의 요소가 전제되어 있음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유주의는 절대로 어떤 정치적 지배도 부정하는 무정부주의가 아니다. 이는 자유주의의 정치적 담론 형식인 홉스와 로크의 사회계약론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홉스의 절대주의적 정치철학에서 자유주의가 기원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홉스의 정치철학이 근대성을 잘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그의 철학에는 자유주의의 핵심인 도구적 합리성(욕망을 계산하는 이기적 인간의 합리성)과 이 합리성의 주체인 이기적 개인(이는 갈릴레이의 분해와 결합의 방법에 의해서 시계가 분해되어 부품으로 쪼개지듯이 개인도 사회가 그 요소로 분해되어 나타난 단위이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그의 철학이 욕망하고 투쟁하는 시민사회의 철학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 시민사회의 갈등과 싸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시민들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 홉스는 국가라는 괴물(홉스가 국가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리바이어던은 성경에 나오는 괴물 이름이다)을 고안한다. 그는 시민사회가 국가라는 절대 권력체 없이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통찰한 것이다.

이를 로크는 국가의 목표가 ‘재산의 보호’에 있다고 함으로써 분명히 한다. 재산 이론을 통해서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 자신이 전제한 평등한 권리를 불평등한 권리로 변형시킨다. “시민사회(=정치 사회)는 이미 자연 상태에서 불평등한 권리를 생기게 한 불평등한 소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건설된 것이다.”(맥퍼슨) 이는 자연 상태인 시민사회의 재산은 국가의 법률적 보호 없이는 안전할 수 없음을 극명히 보여준다. 이런 식으로 로크의 소유 개인주의(자유주의)는 국가와 법률의 강제를 필요로 한다.

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과 성격뿐만 아니라 근대 정치철학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푸코가 지적한 대로 근대 정치적 합리성이 ‘개별화’와 ‘전체화’를 동시에 진행시킨 점을 통찰해야 한다. 또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주장한 것처럼 계몽주의는 전체주의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요소는 자유주의 이념의 학문적 형식인 경험-형식적 합리성(논리실증주의에서 잘 구현된 합리성)에서 잘 드러난다.

이 합리성은 처음부터 배제의 논리를 구사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로부터 역사와 실천이성이 배제된다. 그리고 형이상학을 신화로 해체한 경험-형식적 합리성(계몽주의)은 자신이 다시 신화가 된다. 이러한 역설적인 합리성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는 처음부터 개인주의 외에 전체주의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계몽주의의 합리성이 신화와 탈마법화의 변증법으로 나타났듯이 자유주의는 자유와 지배(자유로부터 생겨난 지배)의 변증법으로 나타났다.

이 테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자유주의는 최소 국가론을 주장하므로 국가를 목적으로 두는 전체주의(국가 권위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유주의는 나치즘과 파시즘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치즘과 파시즘은 자유주의의 핵심적 주장인 ‘시장의 자기조절능력’의 무능에 대한 우파적 입장의 해결책으로 역사에 등장한다(Polanyi, The Great Transformation). 이것들은 시장 사회의 공격적 요소에서 기원한 시장주의의 실패작이다. 또한 이러한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케인즈의 복지국가와 자유주의의 최소국가가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것처럼 적대적인 두 집안의 극단적인 대립이 아니라 자유주의라는 한 지붕 아래에서 두 가족이 대립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효율성을 신뢰하는 것이고 복지국가론은 시장이 낳은 문제를 시장주의로 보완한다는 수세적 입장에서 해결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복지국가의 위기와 현실 공산주의 몰락 이후 등장한 공세적 (신)자유주의는 ‘세계화’라는 구호 아래 자본을 근대적 국민국가의 틀로부터 자유롭게 하고자 시도한다. 이처럼 초국적화된 자본의 본질적 운동은 수세에 있을 때는 국가라는 기구를 이용하고 공세에 있을 때는 국가의 틀을 벗어나고자 한다.

이처럼 자유주의는 권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자유주의는 자신의 개념 안에 권력 욕구를 가지고 있다. 자유주의의 특징은 권력을 실체화하지 않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권력의 그물망(예컨대 통치계약)으로 엮는 동시에 (예컨대 수용소 또는 파놉티콘 안에서) 권력의 개별화를 행한다. 로크의 ‘권리’, ‘인격’ 개념과 벤덤의 ‘원형감옥(파놉티콘)’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식으로 실제로 자유주의는 원자적 개인주의 더 나가 소유 개인주의로, 그래서 소유한 자의 자유와 소유하지 못한 자의 종속으로 귀결되며, 이 종속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억압적 권위주의로 귀결된다. 이러한 소수만이 자유로운 자유주의적 국가의 권위주의로부터 해방되고 만인이 자유로운 이성국가나 코뮌주의를 건설하려는 철학적 입장들이 등장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비억압적 총체성을 기획하는 정치적 오르가논으로서 헤겔과 맑스의 변증법이 역사적으로 출현하게 된다.

변증법이 정치적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오해받는 역사적 이유

이처럼 정치적 전체주의의 기원이 자유주의임에도 불구하고 변증법적 총체성이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오해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스탈린 소련의 수용소(굴락)와 중국의 인권 탄압이라는 역사적인 불행한 경험 때문이다. 하지만 스탈린 소련은 동구 몰락에서 보듯이 근본적으로 변증법과 사회주의의 원래 이념에서 변질된 근대 (도구)이성과 계몽 기획의 어두운 얼굴에서 기인한 것이다.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동구의 몰락은 서구 복지국가의 위기와 동시에 진행된 것이다. 이는 자유주의에 타협적인 태도를 취하는 복지국가와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구소련 모두 근대성과 자유주의의 핵심인 도구적 합리성(경험-형식적 합리성의 형태 중의 하나)을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구의 몰락은 근대성의 위기의 표현이며 그 근대성의 헤게모니적 지배권을 지닌 자유주의의 몰락(월러스틴의 테제)이다. 자유주의가 이러한 몰락에 직면하여 공세를 편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자유주의의 과학적 논리인 실증주의는 이러한 근대성의 어두운 얼굴을 무시하고 근대성을 일방적으로 찬양하지만, 변증법은 근대성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본다. 변증법이 이 중에서 하나만을 주장한다면 이는 계몽을 찬성 아니면 반대하라는 ‘계몽의 협박’에 말려드는 것이다.

소련과 중국의 지배적 변증법은 근대의 성과만을 지나치게 미화한 비변증법적인 사유의 결과물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스탈린주의는 비변증법적 요소, 더구나 자유주의적 요소(형식적이고 도구적인 합리성), 즉 계몽의 변증법으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대성 일반(유럽의 근대성과 그의 대표적 형태인 자유주의 철학)이 변증법보다 훨씬 더 이 이데올로기적 괴물의 탄생에 책임이 있다. 따라서 동구의 몰락은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역사 진행의 한 계기일 뿐이다.

근대성 일반(그 핵심으로서의 자유주의)이 위기에 봉착한 지금, 변증법적 사고의 폐기가 아닌 복권이 필요하다. 이러한 복권으로 인해 역사성에 기반을 둔 개념적 ‘노동’과 공시적인 것과 통시적인 것의 전체를 포착하려는 ‘총체성’을 향한 사유의 노동이 작동하게 된다. 이를 통해 근대성의 성과와 한계가 잘 드러날 것이다.

변증법적 총체성은 다양한 목소리를 억압하고 표현된 것에 순종하고 분쟁들을 일방적으로 종식시키는 논리적 전체주의도 아니며 더 나가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당이나 지도자에게 권위주의적으로 복종시키고 억압하는 정치적 전체주의는 더욱 아니다. 변증법적 총체성은 파편화되고 복잡한 현대 사회의 전체의 모습을 그려보려는 진리에 대한 용기 있는 자의 학문적 시도이다.

반대로 총체성이라는 내적 연관성을 지니지 못한 채 자유주의자들처럼 고립되고 분열된 단위들의 상호소통을 외치는 것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 아니다.

이와는 다르게 변증법은 서로 내적으로 연관된 전체라는 관점에서 서로 분열되고 갈등하는 전체 인류 공동체의 다양한 목소리를 그 생생한 대립적인 총체로 표현하고자 한다. 이로써 변증법은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소외된 목소리를 활성화하며 다양한 목소리를 갈등 속에서 조화하는 자유와 해방의 논리이자 정치의 오르가논이 된다. 다시 말해서 변증법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오르가논이 된다.

변증법은 초역사적 추상적 공간이 아닌 현재의 역사적 조건을 원자화된 그림이 아니라 내적 연관성이라는 총체성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변증법은 미래를 예언하는 사이비 과학이 아니라 현재의 역사적 조건을 성찰하고 그 현실에서 무르익은 이념적 차원을 드러내는, ‘서술’과 ‘비판’의 기능을 하는 ‘황혼 무렵에 날아오르는 올빼미’이다.

김성우(상지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

소피스트는 정말로 나쁜 놈인가?[생각vs생각]

분신술을 사용하는 철학자가 있다면?

홍길동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듯이 우리에게도 ‘두 장소’에 동시에 나타나는 재주가 있다면 어떨까? 두 장소가 아니라 ‘한 장소’에 동시에 나타나는 분신술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하게 될까? 만약 한 장소에 동시에 나타나는 재주를 지닌 사람이 ‘철학자’라면, 철학자는 그 재주를 어디에 사용할까?

아마도 철학자 분신들은 동일한 주제에 대해 자신들과 반대 입장을 지닌 사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힘을 합쳐서 상대방을 한 목소리로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 천하무적의 분신들.

그러나 만약 그 자리에 반대 입장을 지닌 사람은 없고 ‘단지 분신들만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분신들끼리 서로 반대 입장을 취하여 끝나지 않는 논쟁을 벌일지도 모른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지독하게 물고 늘어지는 분신들.

동일한 분신들이 환상 세계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 실제로 나타나서 반대 주장을 펼친다면, 우리는 그들을 양보 없는 논쟁을 벌이는 집요한 철학자로 간주하기보다는 반성 능력이 부족하여 논리적 모순을 범한다는 둥, 오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둥, 철학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둥, 심지어는 자아 분열, 다중 인격 운운하면서 비판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철학사를 들쳐보면, 청년기 때의 생각이 바뀌어서 말년에 자신의 생각을 번복하거나, 간혹 모순되는 주장을 펼치는 철학자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바뀌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후대 사람들이 동일한 주장에 대해 ‘해석’ 내지 ‘가치 평가’를 달리 하여 대립각을 이루기도 한다. 그 중에는 너무도 당연해서 도저히 ‘그 해석’과 ‘그 가치 평가’를 바꿀 수 없는 것까지도 전적으로 뒤집어서 세인들에게 충격을 주는 경우도 있다.

현대에 들어 충격파를 만들어내는 한 예로 고대 철학자를 들여다보자. 억울한 누명을 쓰고서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와 그 적들인 소피스트들을.

상투적 대립 – 소크라테스는 좋은 놈, 소피스트는 나쁜 놈

반드시 철학계가 아니더라도 일상 세계에 타산지석의 모델 내지 반면교사로 평가되던 소피스트들, 그들은 상투적 관점에서 보면 인류 역사상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소피스트는 잘못된 의견과 궤변이 난무하는 폴리스 안에서 두려움 없이 쓴 소리를 한 강직한 소크라테스를 미워하여 – 허위를 유포하고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 억울한 누명을 씌워 독배를 마시게 했으니, 소피스트가 나쁜 놈의 대명사가 된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단지 ‘한 인간’을 죽인 것이 아니라, 사상적 유산을 어느 정도 만들어낼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위대한 천재 철학자’를 죽인 것이며, 그것은 곧 그가 부르짖는 ‘보편 규범과 보편 도덕’을 죽인 것이며, 궁극적으로 ‘진리’, ‘보편 진리’ 자체를 살해한 것이 된다.

진리 살해, 진리 매장은 소피스트가 주장하는 의견(잘못된 주장, 억견:doxa)을 진리(episteme)로 부각시키는 것을 동반하기 때문에, ‘진리 대 억견의 대립 구도’뿐만 아니라 ‘진리’와 ‘진리 인식 가능성’까지도 거부하는 것이 된다. 소피스트에게 보편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진리 인식은 불가능하며, 그래서 진리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이고, 결과적으로 진리는 의견이라서, 절대 진리를 주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죽음에 처해져야 한다.

소피스트에게 진리는 논쟁에서 이기는 자의 주장이며, 논쟁을 펼치는 정치의 장에서 이기기만 하면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 그에 반해 진리 다양성을 비판하면서 보편 진리와 보편 규범을 들고 나온 소크라테스와 진리 일원성은 소피스트에게는 가장 껄끄러운 적이다. 소크라테스는 집단행동을 통해 제거되어야 할 걸림돌이기 때문에, 소피스트는 나쁜 놈이 되더라도 소크라테스를 죽여서 그의 보편 진리까지 살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순을 드러내는 분신 – 소크라테스의 이중성

나쁜 놈들의 수작에 맞서서,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주장하는 행태를 비판하고 동시에 진리 일원성과 보편 진리를 관철시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과업이다. 그러므로 좋은 놈의 면모를 철저히 발휘하여 소피스트가 나쁜 놈임을 증명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소크라테스는 청소년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소피스트에게 고발당한다.

마지막 재판에서 소크라테스는 재판관과 방청객이 그의 무죄를 수긍할 수 있도록 자신들을 설득시켜 보라는 주문을 재판관으로부터 받는다. 사형 언도 권한을 지니는 재판관 앞에서 만약 소크라테스가 수사술을 통해 이들을 ‘감동’시킨다면 그는 무죄를 ‘설득’시키는 셈이 되고, 소크라테스에 대한 사형 판결은 철회될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설득적 연설을 해야 하는 곳에서 수사술이 아니라 변증술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논박한다. 결국 논쟁에서 이기기는 하지만, 상대방을 감동시키거나 설득시키지는 못 한다. 감동받지 못한, 설득당하지 못한 재판관은 소크라테스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다.

희랍 당대에는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는 방법으로 변증술과 수사술을 사용했다. 변증술은 철학적 논증을 하는 기술로서 철저한 논쟁술이며, 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이다. 그에 반해 수사술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정치적 연설의 기술이며, 다수를 향하여 이루어지는 웅변술이다.

철학적 진리를 논증하기 위해 변증술을 견지하는 소크라테스에 반해, 소피스트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을 설득시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수사술을 악용하여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의견을 진리처럼 오독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소크라테스가 재판정에서 요구받은 것은 다수를 감동시키고 설득시키는 수사술임에도 불구하고 – 그가 변증술과 수사술의 차이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실수인지 모르지만 – 변증술을 사용한다. 그래서 대화 상대자와의 논쟁에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그리고 다수를 감동시키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소피스트만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결정적 실수도 한몫하고 있는 셈이 아닐까? 수사술을 사용해야 할 곳에서 변증술을 사용했다면, 그가 변증술과 수사술을 구별하지 못한 것이며, 그러한 미구별은 ‘진리를 다루는 변증술’과 ‘의견을 다루는 수사술’의 미구별로 이어진다. 달리 말하면 진리와 의견을 구분하지 않거나, 구분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한 셈이 된다.

변증술과 설득술을 구분하지 않은 것은 진리(episteme)와 의견(doxa)을 구분하지 않은 것이 되고, 그로 인해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는 진리도 ‘하나의 의견’으로 전락한다. ‘소크라테스 대 소피스트의 대립’은 ‘진리 대 의견’의 대립이 아니라 – 진리가 의견이 됨으로 해서 – ‘의견 대 의견’의 대립이 된다.

소크라테스가 범한 실수는 그의 죽음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간 데에서 그치지 않고 소크라테스 자신을 소피스트로 전락시킨 것이 된다. 소크라테스, 그는 또 하나의 소피스트인가?

소크라테스는 각자의 정신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진리를 도출할 수 있다고 하면서 진리의 일원성과 보편성을 강조한다. 소크라테스의 대표 방법인 산파술을 보자. 산파는 산모가 아이를 낳는 것을 도와줄 수는 있지만, 산모에게 아이를 만들어줄 수는 없다. 인간 누구나 보편 진리라는 아이를 임신하고 있으며, 산파는 단지 임신한 아이를 낳도록 도와주는 것일 뿐이며, 그러한 산파가 바로 소크라테스이다. 산파술은 변증술로 전환되며, 변증술은 진리의 일원성에 기초하는 보편 진리를 찾는 방법이 된다.

소크라테스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가 있으며, 진리 인식은 변증술에 의해 누구나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재판정에서는 변증술과 수사술을 혼동하는 실수를 범함으로 해서 진리와 의견의 차이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아렌트는 『정치의 약속』에서 소크라테스의 실수를 언급하면서 소크라테스가 보편 진리와 진리 인식을 그 자체로가 아니라 ‘의견’ 가운데서 드러내는 방식으로 전개한다고 주장한다. 아렌트가 보기에 소크라테스에게 의견은 파괴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진리가 오히려 의견의 작동 가운데서 산출되며, 의견은 언제나 진리와 유착(48쪽)해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진리는 의견을 통해 드러난다는 발상이 암묵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폴리스 공동체에서 ‘의견들의 대립’, ‘소피스트들의 대립’,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대립’은 ‘진리를 드러나게 하는 대립’이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위해 정신에 몰두하기보다는 ‘타인의 의견’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야 하며, 달리 말하면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가 되어야 한다. 소피스트화된 소크라테스라면, ‘소크라테스 대 소피스트의 대립’은 ‘소피스트 대 소피스트의 대립’이 된다.

의견들의 대립 속에서 진리를 드러내려면 자신보다는 다른 의견을 지니는 타인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며, 타인의 의견을 통해야 하므로, 진리 발견과 진리 주장은 외로운 철학자의 작업이 아니라 다수 속으로 침투해 들어간 소피스트의 작업이 된다.

또 하나의 모순적인 분신 – 진정한 민주주의자로서 소피스트?

분신술을 사용하여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로 만들고, 진리를 의견 가운데 드러내도록 함으로써 진리가 의견이 되고, 의견이 진리가 되는 상황을 펼쳐 보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지지자인 플라톤은 아렌트와 달리 의견을 수용할 수 없다. 그래서 설득을 사용하여 대중을 다루는 것은 ‘폭력’과 폭력에 의한 ‘지배’라고 본다. 차후에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변론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기는 하지만, 설득에 의한 방법을 거부한 결과는 독배를 마시는 죽음일 뿐이었다.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소피스트는 주관주의, 진리 상대주의에 기초하여 진리 다양성을 주장하며, 이로 인해 이기주의와 유아독존을 심화시키는 부정적 태도를 낳는다. 게다가 그들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치졸한 방법, 속임수까지 사용하여 의견을 진리로 둔갑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소피스트가 이렇게까지 타락하여 억울한 죽음을 만들어낼 때 그들이 속한 폴리스 공동체가 실제로 추구한 것은 자유와 평등이다. 자유민의 자유는 논쟁 과정에도 그대로 투영되는데, 자유의 근간이 되는 희랍의 이소노미(isonomy)라는 단어는 후대 사람들이 소피스트의 정신적 기반을 상당히 오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폴리스 공동체는 민주 질서를 갖췄지만, 민주정보다는 ‘비지배’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아렌트의 『혁명론』에 따르면, 아테네의 민주정은 “지배받지 않는 조건 아래서 시민들이 함께 생활하는 정치조직,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구분하지 않는 정치조직”(97쪽)이다. 그래서 자유는 비지배를 의미하는 이소노미로 간주된다. 만약 어떤 사람이 권력을 강화하여 타인을 지배하게 된다면, 그는 이소노미에 의거하여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된다. 자유민의 자유는 노예와 대비시키면 타고난 것일 수 있지만, 구체적 내용을 실현하는 정치적 행위 공간에서는 비지배를 관철시키는 것이라서 – 타고난 것이 아니라 – 폴리스적 삶을 통해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이 인간적 노력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자유민은 각자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서 정치적 행위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이때 자신의 의견이 없는 사람은 논쟁의 한 축을 이룰 수 없다.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서 논쟁의 장으로 뛰어들 때, 그들은 정치적 입장뿐만 아니라 진리에 대한 입장도 동시에 지니게 된다. 소피스트에게 철학적 진리는 의견이지만, 의견의 대립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자유로서 비지배’가 견지되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게 ‘진리가 하나이다.’라는 전제는 무의미하다.

오랫동안 권모술사라는 철학사적 지탄을 받았던 소피스트가 정치적 행위와 논쟁의 장에 들어서려면, 반드시 의견을 지녀야 하고, 다양한 의견만큼 다양한 충돌 가운데서 진리를 구체화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자신의 의견을 진리로 격상시키는 과정에서 반드시 상대방을 만나야 하고, 상대방과 대화를 해야 하고,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과정에서 비지배가 견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격다짐으로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는 폭력, 그로 인한 억압과 지배는 배제되어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보편 진리조차도 의견 가운데서, 다양한 의견 가운데서 드러난다면, 보편 진리를 위해 타인과 만나야 하고, 타인과 대화를 해야 하고, 타인과 만나는 공적 토론의 장에서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민주적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소피스트가 보여준 것은 자유분방한 토론의 장에서 각자의 의견을 거쳐서 진리를 드러내려면 언제나 ‘타인’이 필요하고, ‘타인의 의견’이 필요하고, ‘타인과의 대화’가 필요하고, 그러다 보니 보편 질서 내지 보편 규범과 보편 진리를 내세워 의견을 일방적으로 억압하는 태도를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 가운데서 진리를 드러나게 하는 비지배적인 태도에 비추어 보면, 하나의 진리를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은 폭력이고 억압이며 비민주적인 철학적 독소가 된다.

분신술로 인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소크라테스는 독재적이고, 소피스트는 민주적이며, 소피스트는 반성 능력을 발휘하는 비지배적 대화를 하는 자이고, 소크라테스는 우격다짐으로 소피스트를 억압하는 또 다른 소피스트가 아닌가? 소피스트가 자유, 비지배, 그로 인한 다양한 의견, 의견 대립 속에서도 타인과의 대화를 지속하는 민주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태도와 정신은 망각되고 억울한 죽음을 야기한 집단행동만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지배적인 자유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타인과 대화의 장을 만드는 모습, 즉 ‘망각된’ 소피스트의 모습을 소통이 단절된 우리 사회에서 다시 부각시켜야 한다. 공적 토론과 소통의 장을 실현하기 위해 비지배적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은 일방적이고 억압적인 현 정부가 낯선 타인으로 간주하는 서민들이 필요하고, 서민의 의견과 행동이 필요하며, 궁극적으로 의견 난립 속에서 상호 공존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이다.

이정은(연세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