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신자유주의 대 신좌파[생각vs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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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서 1990년대, 추상에서 구체로

1980년대의 개혁개방, 이와 더불어 분출된 사회와 사상운동의 활력 속에서의 중국 지식인을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대다수는 ‘피안’(마오쩌둥의 실험)이 이미 치유 불가능한 위기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문제는 대다수가 그 피안의 상태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강을 건너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지식계는 거의 옆을 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나아갔을 뿐, 잠시 멈추어 자신의 다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대오 중 물살에 휩쓸린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지 못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국 지식계는 1989년의 갑작스러운 사건(천안문 사태)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1990년대의 거대한 사회 경제적 변화를 직면한다. 열정과 추상이 휩쓸고 간 직후 그들에게는 좌절된 현실, 새롭게 직면하게 되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구체적인 전망이 요구됐다.

1990년대 초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에 다시금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중앙정부는 정치적으로 더욱 강하고 집중된 권력을 행사했고, 경제적으로는 전에 없는 고도성장을 이루게 된다. 이에 따라 대내적으로 시장화가, 대외적으로는 세계화가 심화되었으며 사회적 모순은 점점 첨예해졌다. 그러나 이를 정치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학술계는 정부와 발맞춰 1980년대의 ‘급진주의’에 대한 비판과 국학 부흥을 주도했고, 대중문화와 상업문화의 확산이라는 현상을 두고 진행된 ‘인문정신’에 관한 토론 이후 경제와 정치 현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특히 공공정책, 정치개혁에 관한 이론적 토론들을 통해 점차 선명하게 두 진영으로 분화되어갔다.

현대화에 대한 두 가지 시각

자본주의를 수용하는 사회주의로서의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중국 공산당의 기본 방침으로 공인된 1992년 이후 시장의 자유화를 지향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중심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담론이 중국에서 널리 주목받기 시작한다.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세계 경제체제에 편입해가려는 노력 속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회적 모순을 어떤 이들은 건전한 시장경제로 나가는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과도기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어떤 이들은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중국판에 불과하며 그 성과는 소수에게 집중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배제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를 제출한다. 이는 사회가 새롭게 재편해가는 과정에 대한 매우 상반된 인식으로 전자의 견해는 ‘신자유주의(또는 자유주의)’로, 후자의 견해는 ‘신좌파’로 불린다.

중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은 서구의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동의하며 중국의 현대화는 서구의 (신자유주의적) 현대화와 그 궤를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중국의 문제는 개혁과 시장화가 자발적으로 아래로부터 형성된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아래로 추동된 것이어서 시장이 권력체제의 통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성숙하고 규범화되지 못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해결은 시장경제를 더욱 발전시키고 완전하게 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고 시장에게 많은 역할을 맡긴다면 시장 자신의 발전 요구와 규율, 그리고 사람들의 이성적 노력에 의해서 현재의 문제를 극복하고 경제적 민주와 정치적 민주를 이룰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시장이 민주의 충분조건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필요조건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근대이후 민주와 시장경제가 분리됐던 사례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공정(公正)에 대한 이들의 입장은 분명하다. 불공정문제의 해결방법은 첫째 진정한 시장, 진정한 자유경쟁을 실현하고 규칙을 공정하게 하여 모든 사람이 준수하며 권력을 시장에서 축출하는 것이고, 둘째 법제를 완비하는 것, 즉 합법적인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고 입법을 통해 빈부격차를 축소하고 법률에 의해 부패를 처벌하고 국유재산의 유지를 방지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를 통하여 한편으로는 시장경제 개혁의 미명 아래 권력이 사회적 재부를 약탈하는 것을 반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의 메커니즘을 벗어나는 개혁과 공정에 대한 요구를 반대한다. 전자는 중국 정부를 겨냥한 것이고, 후자는 신자유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신좌파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들에게서 시장과 이에 기반 한 공정에 대한 비판적 검토나 성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바로 이 지점에서 1990년대 후반의 신자유주의와 신좌파의 논쟁이 본격화된다. 이를 촉발시킨 것이 신좌파로 분류되는 왕후이(汪暉)의 논문 「당대 중국 사상계의 현황과 현대성 문제」이다. 논쟁의 배경에는 중국 사회 모순의 첨예화 뿐 아니라 아시아 금융위기가 있었다.

신좌파는 세계화는 중국 사회 밖에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라 중국 사회에 이미 내재된 문제로, 정치권력과 시장계획의 관계, 새로운 사회에서의 빈곤과 불공정의 출현, 구권력의 네트워크와 새로운 시장 확대의 내적 연계들이 근대와 현대의 역사를 다시 사고하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한다.

왕휘는 이로부터 만들어진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현대화를 서구의 현대화와 동일하게 이해해서는 안 되며, 서구 자본주의의 현대성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반현대적인 현대성’ 즉 서구의 현대화 과정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토대로 현대성을 토론하고 기획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화 또는 현대성에 대한 해석과 이해에서 신자유주의와는 뚜렷한 시각차를 보인다.

그러므로 중국의 ‘개혁’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와 부가 집중되는 과도기적 자본주의가 아닌 정치와 경제적 민주를 확대하여 분배의 공정과 평등을 보장하고 빈부의 차가 무한히 확대되는 것을 막는 방식으로, ‘개방’은 자본의 논리를 무조건 받아들여 국제 자본주의 체계로 편입되는 것이 아닌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다.

신좌파는 신자유주의가 추상적인 ‘시장’ 개념으로 중국 사회와 세계의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과 그 사회의 경제가 정치와 맺고 있는 내적 관계를 은폐하면서, 맹목적적인 시장주의로 평등의 가치를 거세하고 있고, 궁극적으로 정치변혁의 필요성과 사회적 공정성에 대한 기본적인 호소를 희석시킨다고 비판한다.

신자유주의와 신좌파 모두 시장 경제를 긍정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사회의 공정을 자유로운 시장의 ‘경쟁과 효율’에 맡길 것을, 신좌파는 ‘공정과 평등’을 구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비판과 견제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과거와 함께 가기: 전통의 재인식 대 역사의 재인식

중국의 신자유주의와 신좌파 논쟁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그들이 각각 자신들의 과거, 신자유주의는 전통을 신좌파는 모택동 사회주의를 긍정적으로 재인식하려 한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일부는 현대화의 길은 반드시 중국의 전통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현대화를 위해 전통을 파괴하는 것이 오히려 가치체계의 해체와 문화 동일성의 상실을 이끌어 현대화 과정을 손상시킬 수 있으므로 유교를 포함하여 합리성을 가진 문화전통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들의 견해는 아시아 공업문명의 눈부신 발전의 원인이 유교문화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교부흥론자’, 전통 가치의 비판적 계승을 주장한다는 점에서는 ‘비판계승론자’, 전통의 개방성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전통의 창조를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서체중용론자’와 유사하다.

전통에 대한 이와 같은 태도는 1910년대 신문화운동과 1980년대 문화열 시기의 전통에 대해 부정적이면서 적극적으로 서구화를 지향했던 자유주의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전통을 폐쇄적이고 정형화된 유물이 아닌 개방적이고 연속적인 유기적 생명체로 이해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전통에 주목하도록 하였을까? 첫째는 자유주의자들에게 늘 따라다니는 ‘전면적인 서구화론자’, ‘부르주와 자유화의 주범’이라는 꼬리표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꼬리표로 인하여 위축되고 탄압받기보다는 전통과의 화해를 도모하기로 한다. 둘째는 서구의 자유주의를 중국에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전통 개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전통 속에서 이에 부합하는 자원을 발굴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중국 자유주의 속에 있었던 전통과 서구화의 오랜 불화는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서 일단락된다.

신좌파는 1980년대 이후 대다수가 부정했던 마오쩌둥 사회주의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이는 그들이 중국이 추구해야 할 현대성을 ‘반현대적인 현대성’으로 설정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반식민지적 지배 아래에서 현대화를 모색했던 중국은 현대화운동에 있어서 서구의 현대성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요구받았으며, 마오쩌둥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적 현대화에 대한 비판을 수렴하며 현대화를 추구했다. 그것이 곧 ‘반자본주의적인 현대성’이었다.

왕후이는 마오쩌둥은 공사제(公司制)와 집단경제방식으로 중국 경제의 발전을 추진하는 한편 분배제도에서 자본주의 현대화가 초래한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을 피하려 했으며, 공유제(公有制) 방식으로 전체 사회를 국가의 현대화라는 목표를 위해 조직하여 개인의 정치적 자주권을 박탈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기구가 인민주권을 억압하는 것에 깊은 반감을 가졌다고 평가한다.

마오쩌둥 사회주의가 심각한 역사적 모순을 드러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부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특히 그 안에 담겨있는 ‘반현대적’인 내용은 반드시 새롭게 성찰되어야 한다는 것이 신좌파의 입장이다. 마오쩌둥 사회주의의 ‘공정과 평등’이라는 반자본주의적 현대성의 내용이 지금의 중국에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개혁 이후의 사회주의는 개혁 이전의 사회주의가 지니고 있었던 ‘반현대적’ 특징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으며 사회적 불평등은 날로 심화되어가고 있다. 세계화되고 독점적인 시장경제에 빠르게 편입되어가고 있는 중국에 아직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이와 같은 긍정적인 사회주의적 요소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계몽과 현대성을 모색하다

중국의 신자유주의와 신좌파 논쟁, 그 가운데서도 신좌파의 주장은 적어도 자신들의 모색을 위한 치열한 비판과 성찰의 노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계몽’과 ‘현대성’의 문제는 중국의 지식인에게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지식인에게, 그리고 과거에서만 아니라 현재에도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주제다.

19세기 서구의 물리적 힘에 의해서 근대를 시작하게 된 공통의 역사적 경험은 필연적으로 동일한 계몽과 현대성을 목표로 갖게 했다.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성립, 국민국가의 건설, 봉건질서와의 단절 등은 강조되었지만 모든 인간의 법적 평등, 개인의 해방과 자유, 언론의 자유 등은 억압되었다.

서구의 계몽과 현대성은 적어도 스스로 변화하고 충돌하는 긴장 속에 있었지만, 우리에게 계몽과 현대성은 불변하며 반드시 도달해야만 하는, 그러나 아직 도달하지 못한 절대적인 목표였다. 항상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것을 질책했을 뿐 계몽과 현대성이 우리에게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 우리 앞에는 지금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와 자본의 지배가 심화되어가는 현실이 놓여 있다. 어떤 이들은 이에 뒤쳐지지 않게 편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어떤 이들은 이 현실을 뛰어넘으려 모색한다. 중국의 신좌파는 후자에 해당한다. 이를 위해 지나치게 그 일면만 관찰되고 있는 계몽과 현대성을 재검토하고, 마오쩌둥 사회주의를 재평가하고, 개혁개방 이후의 사회주의를 비판한다.

이는 오랫동안 중국에서의 계몽이 보여준 무비판적인 서구화를 반성하고, 현대성에 내재된 모순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이 중국의 현실적 역사 속에 존재함을 성찰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계몽은 이미 그 속에 스스로를 계몽시켜야 함을 함의하고 있으며, 현대성은 이미 그 속에 새로운 시대의식으로서의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계몽과 현대성은 스스로, 그리고 시대와 끊임없이 긴장하고 각성하며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박영미(한양대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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