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받는 자들의 전통과 미국대선 [나인당케의 단상들]

미국에서 트럼프 정권의 탄생은 분노와 좌절을 느끼게 한다.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분노할 자격이 있다. 또 서로 위로해주어야 할 과제 역시 안고 있다.

그러나 현재 힐러리와 자신을 과도하게 동일시하는 몇몇 분들의 과도한 주장들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례로 지금 SNS나 인터넷에서는 힐러리를 비판하는 모든 종류의 주장들을 ‘여성혐오’로 몰아붙이며 극단적인 욕설과 원색적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여기서 여성혐오의 사례로 지적된 발언들은 ‘버니 샌더스가 나왔으면 이겼을지도 모른다’거나, ‘힐러리가 약자를 대변하지 못했다’는 등 근본적으로 ‘여성’혐오라기보다는 힐러리의 무능함을 질책하는 것들이었고, 이러한 발언은 정치인에 대한 비판의 자유로서 보장받되어야 한다. 단지 힐러리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고 해서 힐러리 비판이 여성혐오로 이어진다고 보는 견해는 굉장히 위험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러한 주장들은 미국은 물론 다른 나라의 모든 차별받는 사람들의 정치적 투쟁과 해방을 향한 과정들을 거대한 사기저하와 무기력함으로 고통받게 만든다. 나는 트럼프가 집권했다고 해서 미국의 시민사회가 곧바로 붕괴할 것이라고 비관하지 않는다. 작년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을 때 미국내의 열기, 그리고 그것이 전 세계에 준 신선한 충격을 기억하라. 단지 1년만에 트럼프가 집권했다고 해서 그들이 이 흐름을 하루아침에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만약 사람들이 힐러리의 패배를 자신의 패배와 동일시한다면, 그들이 트럼프의 공격으로부터 이러한 지난 사회운동의 성과들을 방어하는 투쟁에 곧바로 진지하게 대처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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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진보운동 전체가 힐러리와 자신을 동일시해야 하며, 그녀를 비판하는 모든 주장들은 여성혐오라는 식의 주장은 매우 폭력적이다. 무엇보다도 힐러리는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는 무능한 기성 정치인일 뿐이다. 물론 최초의 여성대통령 도전이 위대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유리천장의 존재가 그녀에게 불이익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사실도 숨기기 어렵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미국 민주당의 보수적 고위관료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버니 샌더스가 일으킨 political revolution의 새로운 흐름을 차단해버리고, 샌더스 효과의 모든 모멘텀들을 대선으로부터 추방해버린 인물이다. 또 그녀는 국무장관 재직시절 미국이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저지른 모든 형태의 전쟁범죄들에 가담한 인물이다. 수억대의 강연료를 받고 월스트리트를 옹호한 수십 년 경력의 ‘기성’ ‘주류’ 정치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녀는 이번 대선에서 그 어떤 새로운 정치적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한 무능한 후보였다.

그녀에게 대선때 어떤 전략이 있었던가? 분명 그녀 역시 샌더스의 정치혁명이 일으킨 흐름을 이어받을 수 있는 선택지들이 있었다. 샌더스를 부통령으로 지명한다든가, 무상교육 같은 샌더스의 대대적 복지정책을 수용한다든가, 젊은이들의 좌절스런 삶을 개선할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던가 하는 전략 등. 그러나 그녀는 아무것도 펴지 않았다. 그저 트럼프의 역겨운 혐오발언에 반사이익을 누릴 생각 뿐이지 않았는가?

따라서 트럼프와 백인남성들의 혐오공세에 맞서 사회적 약자들, 소수자들의 반격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흐름을 창조해내지 못한 것은 그녀의 무능함 때문이다. 그리고 대선에서 그녀의 패배를 직면한 진보적 유권자들이 그녀의 그러한 무능한 대응들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정치적 권리다. 이러한 비판들을 ‘여성후보’에 대한 공격으로 묵살해선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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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트럼프의 집권은 분명 하나의 예외상태다. 그것은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추구해왔던 ‘자유주의적 제국주의 전략'(국내에선 개인의 자유를 강조, 국제적으로는 자유를 빌미로 한 군사개입)이 사실상 끝났음을 선언하는 사건이자, 미국 주류 사회가 국제적으로 ‘어메리칸 리버럴리즘’의 위대함을 선언하던 시절이 끝났음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트럼프는 분명 적(라티노, 무슬림, 성적 소수자)을 설정함으로써 백인남성 중심의 ‘우리’를 통합하려는 정치적 술수를 쓸 것이며, 장벽건설, 이민자 추방, 타국과의 외교단절 등의 예외적 조처들을 사용해 초월적 차르와 같은 주권자의 입지를 굳히며 지지기반을 다지려 할 것이다. 이러한 유사 전체주의적 트럼프의 지배에 맞서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에 서서 이러한 예외가 실은 ‘상례’라고 지적함으로써 ‘진정한 예외상태'(벤야민)를 전개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시대의 새로운 과제인지도 모른다.

힐러리와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을 일치시키는 모든 시도들은 이러한 정치적 과정에 역행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최초의 여성대통령 탄생이 무마되고 극우 혐오주의자 정권이 탄생한 것에 다른 모든 분들과 함께 분노하지만, 동시에 이 패배의 원인을 인식하고, 어째서 힐러리가 트럼프를 넘지 못했는지를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울지도 웃지도 말고 다만 이해하라. 이것이 우리가 현 순간 취해야 할 자세일 것이다.

 

동서고금의 경계에서 [자연과 문화 사이에서] -3

최종덕(상지대, 과학철학)의 종횡무진 책읽기 : 서평연재 -3

오늘의 서평: 김영식 저,  유가 전통과 과학(예문서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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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계와 확장

“단어 그대로 번역하지 말라”verbum pro verbo는 키케로의 유명한 말이 있다. 사상사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동양에는 왜 플라톤이나 뉴턴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쉽게 한곤 한다. 반면에 “서양에는 왜 공자나 주희 같은 인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을 생소하게 생각한다. 과학과 기술이 지배하는 현실에 너무 쉽게 적응되어 자연과학이 형성된 서구의 문화와 사회적 요소들이 판단의 중심기준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과학이나 철학 혹은 자연이나 종교와 같은 큰 개념조차도 서구문화의 소산물이거늘, 과학과 철학 그리고 자연과 종교를 주제로 놓고서 서양과 동양을 비교할 경우 과연 비교 자체가 될 것인지를 의심해보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비교란 결국 한 쪽의 기준을 통해서 다른 쪽을 견주어 보는 일이니만큼 비교 자체를 의심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고민은 번역가능성 테제 혹은 과학철학사에서 유명한 토마스 쿤의 ‘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 이라는 주제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사상적 고민에도 불구하고 현대는 번역과 통약을 피해갈 수 없다. 현대는 문화적 번역의 시대다. 이미 두 문화는 만났고, 그것이 충돌이 되었건 조화가 되었건 우리는 두 문화의 섞임을 피해갈 수 없다. 12세기 유럽의 르네상스는 희랍어와 아랍어 그리고 라틴어 사이에서 이뤄진 상호 번역의 역사적 소산물이다. 르네상스 번역의 역사는 단순히 텍스트 사이의 비교가 아니라 문명적 콘텍스트의 교환이 이루어진 시간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상으로 오늘 우리의 문화사는 번역과 통약 그리고 비교와 확장 그 자체이다. 마테오 리치나 정약용에서부터 오늘날 동양의 많은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내적 갈등의 원천은 두 경계에 사이에 놓여져 있다. “말 그대로 번역하지 말라” 그리고 ‘현대는 번역의 시대다’라는 두 경계 말이다. 이런 생각에 머뭇거리다가 요즘 새로운 책을 한 권 읽었다. 두 경계 사이에서 텍스트의 비교가 콘텍스트의 확장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 질문하는 책이었다. 김영식의 <유가전통과 과학>(2013)이라는 책이다.

2. 다중적이지만 객관적 해석

김영식의 <유가전통과 과학>이라는 책은 동서의 경계만이 아니라 고금의 경계까지 다루었다. 이 책의 저자 김영식은 자신의 다른 책 <주희의 자연철학>(2005)에서 이미 독특한 비교 시선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이 책은 더 나아가 과학이라는 기준으로 동양의 지식을 재단하는 일에 대하여 냉정한 비판을 던져주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문명비판의 기운을 앞장세워 나온 신과학운동은 동양고전과 첨단의 서양 과학을 직접 비교하는 과단성을 보였다. 서구 과학과 동양 고전 사이의 비유를 통해서 오히려 동양의 고전을 신비주의로 전락시킨 꼴이었다. 이 책은 그런 신비주의 운동과 거리가 멀다. 그러면 저자는 어떻게 유학과 과학을 서로 소통시키려는 것일까? 그의 방법론은 유교 원전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는 독서를 중시하는 데 있다. 책에 등장하는 중국의 주자학, 조선의 성리학과 실학의 원전을 객관적으로 독해함으로써 서양과학의 사상사적 토대와 연결고리를 찾으려 한다. 또한 텍스트를 접근하는 태도에서 독단적 견해를 버리고, 새롭고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중시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격물치지 이론이 서구의 과학적 추론방식을 흡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러면서 그는 직접적이고 단언적인 결론을 제시하기보다는 자연주의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 다중적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른 사례로서 조선 실학자들의 지전설(지구회전설)이 자칫 그들만의 고유한 이론으로 평가되기 쉬운 점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다. 실학자들의 지전설이 서양으로부터 들어온 신지식을 수용한 것인지, 아니면 독자적인 창안물인지를 밝히기 위하여 조선유학의 뿌리를 다시 읽는다.

3. 절차적 사유

저자는 우선 주희의 주자학적 방법론에서 과학추론의 하나인 ‘유추’ 방법론을 찾을 수 있는지를 살피고 있다. 유추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아직 알지 못한 것을 알게 해주는 추론이다. 저자는 유추 방법론에서 유가전통의 사고방식인 상관적 사고correlative thought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80쪽) 알고 있는 사물이나 현상 그룹이 알지 못하는 사물이나 현상의 그룹과 같은 종류의 그룹이라는 점을 알게끔 해주는 사고력이 바로 유추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연현상이나 사물이 음과 양이라는 두 가지의 상관적 범주로 나눠지거나 오행이라는 다섯 범주로 나눠지기도 하는 것을 상관적 사고라고 한다. 상관적 사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법이나 서양과학에서 말하는 차이법과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법에서 한번 분류된 것은 영원히 그 분류에 종속된다. 반면 중국전통의 핵심범주이기도 한 유가의 상관적 분류는 고정된 소속을 강요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사물이나 현상은 한때 음이었다가 양이 되기도 한다. 상관성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분류의 고정성은 문제가 아니다. 주자학의 유추 방법을 통해 서구의 과학추론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지만 유추된 실현물은 과학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이다.

물론 유추를 통해 사물과 현상을 끝까지 파악하려는 노력은 동서고금에 통하는 공부의 기본 자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주희의 공부하는 자세를 잘 설명하고 있다. 주희가 말하는 공부는 마음의 지각능력을 바탕으로 한 지식이다. 인간의 마음이 사물에 닿아서(卽物) 그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窮理) 각성되는 것이라고 했다. 지식을 아는 것은 우선 (i)누구나 인정하는 단서로부터 출발해야 하며 (ii)알 때까지 추론하며 (iii)그 사물이나 현상을 관통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점이다.(90쪽) 다시 말해서 저자가 지적한 주희의 공부법은 바로 과학적 지식을 획득하는 공부법과 같은 것이다. 논리적으로 순서를 밟아가야 하며 사고의 도약은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점은 중국의 주자학이나 서구의 과학에서 동일하다. 나는 저자의 이런 지적이 매우 신선하며 중요하다고 여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존의 동서철학 비교는 주로 인식의 결과물에 맞춰져 있었다. 예를 들어 서양의 천문학과 동양의 천문학의 비교에서 천문학이라는 학문의 내용이 서로 같다거나 다르다거나 하면서 비교를 했다. 어떤 비교철학자는 동양의 기와 서양의 에너지 개념을 직접 비교함으로써, 동양고전에 이미 현대과학의 맹아가 존재했었다는 식으로 만용의 종합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비교방식은 (i)자칫 우연을 필연으로 가장하거나 곡해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으며 (ii)비유나 은유를 직적접인 논리적 대비법으로 착각하기 쉽다. 이 책의 저자 김영식은 그런 외형적 비교에서 탈피하여 사유의 절차 자체를 중시했다. 어떤 역사는 과학을 낳고 어떤 역사는 이슬람을 낳았듯이, 중국역사는 유가전통을 낳은 것이다. 그 낳은 소산물은 다 다르지만 낳게 한 사유구조 사이에는 서로 비교되고 사로 통합될 것이 있다는 이해가 바로 저자의 고유한 생각이라고 본다.

4. 상관적 사유와 격물

주희는 많은 자연학적 지식을 주자어류에 담아 놓았다. 그러나 주희에게 서구식의 과학이라는 별개의 독자적 범주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저자는 강조한다.(98쪽) 당연한 말이지만 주자의 자연철학을 너무 쉽게 과학기술에 비교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저자의 이런 강조는 의미있다. 이 책에 의하면 주희의 자연학적 관심은 (i)내단의 경전에 해당하는 참동계(參同契) (ii)예(禮)에 해당하는 음악 (iii)역학의 상수학과 양생론에 몰려 있다. 주희는 이 밖에 농사법, 의학, 점술 등에도 관심을 두었지만 상대적으로 약했다고 한다. 그러한 주희의 자연학적 관심을 현대의 과학기술에 대비시키는 것은 무리다. 주희의 자연학은 자연의 운동성을 통하여 결국 도덕이론을 강화하려는 데 있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말로 하면 일종의 사회생물학이다. 굳이 억지표현을 하자면 ‘사회자연학’인 셈이다. 화석에 관한 주희의 설명도 역시 변화의 음양론을 강화하는 유비법에 지나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105쪽)

이러한 유비법은 결국 상관적 사고를 조직하는 데 쓰였다. 저자에 의하면 주희에게 자연계와 도덕계는 상관적 사고 안으로 흡수되어 같은 차원에서 범주화되었다. 사물이나 현상도 그렇지만 주희가 관심을 가졌던 음악의 소리도 오성(五聲)이나 12율(律)처럼 상관적 사고 안에 흡수되었다. 자연의 사물이나 자연현상이 오행이나 음양같은 상관적 사고로 범주화되듯이, 주희에게 인간의 성정을 오행으로 범주화시키거나 혹은 덕성을 사덕(四德: 元, 亨, 利, 貞)으로 범주화시키는 것이 중요했다고 한다. 자연계와 도덕계를 동일한 수준에서 본 것은 주희의 중심적인 관점이면서 동시에 주역 이래 한자문화권 전반에 걸친 사유구조의 특징이다. 상수학이 가능한 이유는 역경에서 말하는 자연의 운동원리가 인간의 운동원리와 동형적이라는 점에서 찾아진다. 주희의 理一分殊를 도덕계와 자연계를 묶어내는 핵심이론으로 본 저자의 시선은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주희는 하나의 리를 天理와 동일시했다고 한다. 인간 본연의 性에 仁이나 義같은 윤리적 덕목의 형태로 天理가 구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악한 속성이란 人慾이 天理의 발현을 방해하고 차단하기 때문이라고 본 주희의 생각은 인욕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의 상태에 도달하려는 수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있다. 그런 수양의 방법론이 바로 격물格物이라고 저자는 쓰고 있다. 격물을 통해 天理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면 道와 理를 똑똑히 볼 수 있다고 한다.(73쪽) 그래서 마음의 리와 사물의 리를 동일시한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이 격물에 마음을 다하면 理에 대한 지식 자체가 아니라 理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이넓고 깊어진다는 데 있음을 주희가 강조한 것으로 저자는 지적한다.

서구과학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객관과 주관을 분리하는데서 출발한다. 과학은 두 가지 사유의 절차를 필요로 한다. 하나는 가설연역적 추론이다, 사고의 조직적 구조에 따라 연역적 가설을 형성하는 추론이다. 또 하나는 관찰을 통한 귀납적 추론이다. 흔히들 말하듯이 플라톤의 실재론적 사유가 왜 자연과학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질문하는 것은 첫 번째 가설연역 추론과 연관한다. 관찰된 자료들을 ‘무엇인가를 지향하여 혹은 어디로 초점을 맞추어 묶어내는’ 귀납의 마음이라고 한다면 그 ‘무엇인가를 지향하여 혹은 어디로 초점을 맞추는’ 사전의 사유기능은 연역의 마음에 해당한다. 플라톤의 실재가 과학에 영향을 미쳤다는 과학사적 의미는 연역사유의 중요성에 있다. 물론 플라톤 식의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은 과학의 경험적 추론과 무관하다. 뭐니뭐니해도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귀납적 추론이다. 앞서 말했듯이 관찰을 통해 얻어진 경험자료를 종합하는 귀납추론 말이다. 관찰자료들을 일반화하는 추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찰하는 주관을 관찰되는 객관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경험적 관찰을 과학적이라고 부를 수 없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자연과학의 핵심은 주관과 객관을 분리하는 작업에서 시작한다. 주희의 언어로 말하자면 도덕계와 자연계가 분리되어야만 혹은 분리되어 있어야만 과학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결국 자연계와 도덕계를 하나로 묶어서 보는 주희의 자연관은 서구과학의 자연관과 이념적으로 충돌된다.

서구과학의 자연관은 통찰력보다 관찰된 결과를 중시한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주희에게서는 통찰력이 더 중시된다. 이점에서 격물의 개념이 찾아질 것이다. 格物이라는 글자에 얽매어서 격물을 마치 서구과학의 관찰이라는 방식으로 이해하려했던 서구의 비교학자들이 더러 있었다. 현대의 동아시아 독자들도 사물의 ‘물’ 자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서구 문명이 들어온 이후 物은 생명계를 제외한 고정되고 운동없어 죽어있는 대상적 사물이라는 개념으로 변모되었다. 격물의 물은 그런 물이 아니라 생명계를 포함한 모든 자연계를 말한다. 이런 개념의 혼돈으로부터 동아시아 자연학이 오해되곤 한다. 저자 역시 이런 단순한 오해를 하지 말 것을 이 책에서 당부하고 있다.

5. 이성적 사유의 발현

저자는 주희를 조금 벗어난 이황의 기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理氣互發論으로서 이황의 이기론은 主理論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황의 기는 생성과 소멸을 하며 선과 더불어 악도 발현될 수 있는 반면, 주희의 생각은 氣가 별개가 아니라 理 안에 들어와 있어서 마음 밖으로 리를 둘 수 없다고 했다. 저자의 책 1장에서 주희의 기 개념에 대한 현대 주석가들의 해석들이 다뤄지고 있다. 저자가 정리한 기를 서평자가 다시 요약한다면, 기는 (i)연속성(心田慶兒) (ii)에너지(Manfred Porkert) (iii) 취산 (iv)자연발생성(J. Needham) (v)생명성 (vi)만물발육력 (vii)비초월성/자연성으로 요약 가능하다.

이 앞의 한 문단만 언뜻 보기에도 이황의 생각은 플라톤과 닮았으며 주희의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황과 주희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직접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과학과 관련하여 굳이 말한다면 이황의 주리론은 가설연역적 사고에 연관지을 수 있으며, 주희의 기론은 경험관찰적 귀납추론에 연관지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런 추론은 순전히 저자의 책을 읽고 나서 생긴 자연적 느낌이라서, 나의 이런 추론에 대한 책임을 나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저자에게도 조금 분담시키고 싶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황이나 주희에게 공통된 생각들이 있는데, 그것은 이성적 사유를 중시했다는 점이다. 이 책 2부 3장에서 다루었듯이, 미신을 거부하는 정약용의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주희가 다룬 많은 자연학에는 과학기술의 측면과 나아가 초자연적 요소까지 포함한다. 자연학을 다룬 주희의 태도는 이성적 기준을 잃지 않고 있었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주희나 이황이나 서구과학을 접했던 정약용에서조차 모두 점술이나 내단 그리고 귀신같은 범주를 언급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들의 입장을 오늘날의 과학적 태도와 직접 비교해서는 안 된다. 만유인력법칙을 통해 땅의 작용력과 천체의 작용력을 하나로 종합한 뉴턴은 세계문명사 통 털어서 가장 과학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그런 뉴턴도 소위 비과학적이고 초자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연금술에 매달려 말년을 다 보냈다. 오늘의 편견 그리고 서양의 선입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선으로 주희, 이황과 정약용을 볼 수 있다면, 유가의 이성적 사유구조가 과학적 사유구조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김영식의 책 <유가 전통과 과학>, 그 행간에서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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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수호자 [나인당케의 단상들]

지난 주말 광화문에 모인 20만명의 사람들에게 어떤 동기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은 왜 그곳에 모인 것일까?

분명 그들에게도 개인적인 욕구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그들은 자신의 개인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사용할 것이다. 예컨대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 그 시간에 취준생은 취직준비를 더 할 수 있었을 것이고, TV를 좋아하는 사람은 무한도전을 보면서 맥주 한 잔을 들이킬 수 있었을 것이고, 연인이 있는 사람은 놀이공원이나 극장에 가서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 모인 20만 명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황금같은 주말 오후를 공동체를 위해 사용했다.

그들의 동기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고전 맑스주의에서 말하는 계급적 이해관계? 아니 그들은 동일한 집단과 계급도 아니었다. 정치권의 부패를 본 후의 즉자적인 분노?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정서를 분노라고 단정짓긴 힘들다. 시위 참여자들의 밝은 표정, SNS 곳곳에 그들이 남긴 후기들을 읽어보면 그들의 정서는 분노라는 감정의 표출보다는 새로운 종류의 자신감이었다.

나는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의 동기를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그것은 ‘국가’에 대한 맹목적 충성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 자신이 속한 ‘정치적 공동체’에 대한 사랑, 그리고 위기에 처한 그 공동체를 구제하기 위하여 자신을 헌신할 수 있는 자세를 의미하는 것 같다. 어쩌면 이것이 마키아벨리가 말한 ‘공화주의적 인민의 덕성’, 스피노자가 말한 ‘정념(정동?)’, 혹은 헤겔이 말한 ‘정치적 신념'(물론 헤겔은 이것을 애국심과 동일한 것으로 불렀다만, 만약 우리가 그의 철학에서 국가주의적 요소를 빼고 재해석을 해본다면), 혹은 발리바르가 말한 ‘시빌리테’가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주말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해 시위현장에 모여 촛불을 드는 시민들은 정치적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자들로서, (아마도 ‘애국자’라는 단어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 ‘공동체의 수호자’라고 불려도 좋을 것이다. 마치 페르시아의 황제 다리우스 1세가 이끄는 수십만 병력에 맞서 스스로 갑옷으로 무장하고 마라톤 평원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공동체를 수호한 아테네의 시민들처럼, 그들은 공동체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들은 진정한 주권은 국가원수가 아닌 광장(아고라)의 힘에서 나온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람들, 권력을 실현하는 demos인 것이다. 주류 정치권과 재벌, 언론이 그토록 부패해 있음에도, 이토록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수많은 demos를 보유한 것은 우리에겐 하나의 축복이자, 어둠 속의 빛과 같은 희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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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5일 광화문

냉소 [퍼농유]

우쑵니다.

어제 광화문에 홀로 나가 나에게도 이런 감정이 있었던가를 느끼며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싸돌아 다녔습니다. 그곳에서 한철연 식구들을 만나 술한잔 했습니다. 아! 이런 인연이! 빈속에 마구 쐬주를 들이켰던지라 마니 취했습니다. 노래방까지 가는 호기를 부렸지만 체력적 한계를 느껴서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않고 도망가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우철이형 미안해 ㅠㅠ) 고3때에도 밤샘을 하며 공부하지 않았던 체력인지라 급격한 노화로 제대로 버티지 못했습니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또다시 욕 들어 먹을 짓을 하려고 합니다. 홍보질입니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짓인 줄 왜 모르겠습니까. 박최순실의 짓거리에 비한다면 새 발의 피라고 혜량해 주시기 바랍니다. 책을 한 권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낸다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 책에는 뭔가 남다른 사연과 감회가 있습니다. 하나의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출발선상에서 다시 마음 다잡고 신발끈 매고 몸을 푸는 마라톤 선수의 심정이라고 할까요. 제목은 ‘마흔의 단어들’입니다. 살만큼 살았음에도 아직 살아야할 날들이 많이 남은 마흔들이 가진 애환들을 묶어보았습니다. 마음은 아직 젊은데 사회에서는 밀려나기 시작하기에 더 이상 젊지 않은 사정들이 절박한 마흔의 감정들을 모아보았습니다. 다음 주에 책이 나올 예정입니다. 부끄럽고 염치없지만 널리 홍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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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 꼭지 올려봅니다.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냉소적 이성비판]이라는 책을 중심으로 구성해보았습니다. 니체의 이런 말을 좋아합니다. “너희는 사자가 먹이를 갈구하듯이 그렇게 지식을 갈구하는가?” 과연 우리는 철학을 통해 진리 그 자체를 그렇게도 목말라 갈구했었던 것일까요? 회의적입니다.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이 점에 대해서 냉소적입니다. 그는 철학이 임종의 순간을 맞이했다고 선언하고 있더군요. 그러나 아직 그 임무를 다하지도 못해서 죽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임종을 맞은 철학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거창한 주제들은 모두 핑계였고 신이나 우주, 주체나 객체, 의미나 무 등의 추상적 주제들은 모두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슬로터다이크는 칸트의 사유, 아니 철학적 사유 자체와 접촉할 때 안게 되는 위험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더군요. 우숩지만 멋진 표현입니다. “격렬하고 급작스러운 노화 현상.” 철학을 한다는 것은 급격하게 늙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곤 이렇게 묻더군요. “과연 지식에 대한 혈기왕성한 젊은 의지는 지금 철학에 어느 정도 남아 있는가?”
그는 이성과 비판의 힘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계몽의 신화는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하더군요. 전통적 이데올로기 비판은 냉소주의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냉소주의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냉소주의를 계몽된 허위의식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계몽주의는 종교적 환상을 비판했고 형이상학적 허구를 비판했고 도덕적 허구를 비판했고 관념론적인 상부 구조 등을 비판했습니다. 이제 계몽된 의식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러나 계몽되었지만 무감각해졌을 뿐 아니라 냉소적이 되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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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슬로터다이크는 현대인들의 냉소주의에 맞서 유머, 욕설, 아이러니, 반항적 몸짓 등 고대적 냉소주의의 선구자인 디오게네스의 미덕들을 제시하더군요. 슬로터다이크는 철학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이해를 바탕으로 한 몸(physis)과 정신(logos)의 상호작용이 철학이지, 그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철학은 아니다.” 슬로터다이크는 비판정신과 저항정신을 잃은 근대인들은 실제로 저항도 못하면서 그저 머리로만 사회적 부정의를 냉소하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요? 근성도 오기도 없이 너무도 허약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저하는 허약한 사유가 아닙니다. 개 같은 곤조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정치적 상황 속에서는 개 같은 곤조와 함께 더욱더 냉정한 사유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더욱더 교활한 정치적 상상력, 더욱더 냉정한 법적인 태도, 더욱더 강직한 도덕적 힘들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부끄럽고 염치없습니다.

냉소

1.
이방인의 뫼르소가 정오의 태양빛이 너무 강렬하여 방아쇠를 당긴 일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모든 것이 태양 빛 아래 노골적으로 드러나서, 명명백백해지는 순간 그는 권태를 느꼈던 것은 아닐까? 이 따분한 권태가 그로 하여금 방아쇠를 당기게 했던 것은 아닐지. 아! 이 너무나도 뻔한 세상의 가증스런 노골(露骨)이란! 세상이란 고작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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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정오를 맞이한 40대는 그 정오의 태양 아래에서 뻔하게 그 몰골을 드러내는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며 무엇을 느낄까? 뫼르소가 느낀 따분한 권태가 아닐까? 이 한낮의 뙤약볕 무기력에는 어떤 섬뜩함이 있다. 무관심, 냉담, 냉소, 불안, 분노, 탐욕, 외로움이 자리한다. 그리고 이 섬뜩한 무기력의 정체는 바로 권태이다. 내가 살아온 삶이 고작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
그러나 이 섬뜩한 권태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스벤젠(Svendsen)은 지루함의 철학이란 책에서 “존재 차원의 지루함, 다시 말해 삶 자체와 결부된 지루함은 근대에 들어서 생겨난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근대 이전에 귀족만이 누렸던 여가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근대인 모두가 가진 특권이 되었다. 그러나 왜 근대와 함께 존재 차원의 권태가 시작되었을까?
근대는 종교의 시대에서 과학의 시대로, 신비의 세계에서 합리의 세계로 이행했던 시대이다. 그래서 신의 세계에서 이성의 시대로 전환된 것이다. 이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서 세상은 정확하게 계산되고 명증하게 드러난다. 이해하지 못할 신비의 영역은 사라지고 이해 가능한 합리적인 영역이 펼쳐진다.
그런데 왜 이러한 명증하고 합리적인 세계인 근대로부터 권태가 시작할까? 어쩌면 권태란 세계의 무의미에서 오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권태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의미의 명백함에서 온다. 모든 것의 의미가 뻔하게 이해될 때 오히려 의미가 없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의미의 결여에서 권태가 오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과잉에서 권태가 온다.
이제 세상은 명백해졌고, 미지의 세계는 사라져 버린다. 이제 낯선 두려움도, 흥미도, 설렘도 없게 된다. 모든 것을 드러낸 세상은 뻔해진다. 뻔해진 세상은 뻔하기 때문에 알 필요가 없어진다. 권태가 시작되는 것이다. 근대의 권태와 함께 과시적인 스펙타클한 소비의 시대가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년에 찾아오는 권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삶을 살아볼 만큼 살아본 나이이기에 이제 세상은 뻔해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뻔해진 세상의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중년들은 뻔뻔해진다. 뻔뻔함은 중년들의 특권이다. 뻔한 세상에 중년에게 찾아온 뻔뻔함, 이것은 이 시대에서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 되었다.
그래서 바야흐로 뻔뻔스러운 시대이다. 모진 사람이 이기고 뻔뻔한 사람이 성공한다. 어진 사람은 바보취급 당하고 어수룩한 사람은 언제나 실패한다. 뻔뻔함은 강한 자기 확신이며 배짱이다. 일을 성취하려는 현실주의자의 추진력이다.
자신의 이익과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도 그것에 대해 비난을 하는 사람에게 “왜 이래 아마추어처럼”하며 오히려 역정이다. 1억을 거절하는 청렴에 대해서는 “10억이면 되겠어?”라며 떠본다. 성적 유혹을 부끄러워하는 순진함에 대해서는 “왠 내숭이야, 내숭떠니 더 섹시한데?”라며 수치심을 조롱한다.
뻔뻔함은 인간의 탐욕과 욕망과 쾌락에 대한 신념으로 무장하고 있다. 너도 별 수 있겠어라는 의심에 기초한다. 이것은 인간의 도덕성과 선함에 대한 무의식적 불신에 근거한다. 이러한 냉소적 의심은 뻔뻔함의 철학적 토대다.

2.
서양의 근대적 이성이 낳은 결과는 무엇일까? 중세적 세계관을 비판하면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의외의 답안을 내놓은 사람은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이다. 그는 근대 문화가 가진 새로운 특질을 냉소주의(Zynismus)로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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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계몽주의자들이 중세적 세계관에 현혹되었던 대중들을 대하는 이데올로기적 태도는 무엇인가? “그들은 그들이 행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행한다.”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대중은 계몽되어야 했다. 자신이 속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다. 계몽적 태도는 권위적이다.
계몽을 통해 무지몽매한 대중들은 자신이 속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정체를 깨닫고 계몽된 삶을 살았을까? 아니다. 슬로터다이크에 따르면 그들의 논리는 이러하다. 그들은 계몽되었다. 자신들이 모르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그대로 행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상황 논리나 자기 보존의 욕망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근대의 계몽된 인간들은 근대 사회의 자본들이 현혹하는 이데올로기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속이는 것을 알지만 그 이데올로기에 따라서 그대로 행한다. 근대적 인간들은 그들이 가진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비판하더라도 꿈적하지 않는다. 냉소적이 된 것이다.
자본가들의 뻔뻔한 탐욕과 염치없는 비도덕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비판하더라도 그들은 냉소할 뿐이다. “그래서 어쩔 건데. 억울하면 돈 벌던지.” 이 냉소주의적 태도는 단지 자본가들만의 태도는 아니다. 현대 대중이 가진 일반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쩌라고? 어쩔 수 없잖아.”
슬로터다이크에 따르면 이런 태도는 비도덕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바보로만 살지 않겠다는 계몽된 인간들의 행동 방식이다. 냉소주의자는 바보가 아니다. 여러 가지 피치 못할 사정과 이유를 대면서, 그래 그렇지만 그렇게 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슬로터다이크는 이러한 냉소주의를 ‘계몽된 허위의식’이라고 규정했다. 중세시대의 거짓과 억압의 환상에서 스스로 계몽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근대적 먹고사니즘의 실존적 한계에 무릎을 꿇는다.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중세의 신학적 세계관에서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으로 변했다. 신이 죽은 음울한 회색빛 공간에 과시적인 스펙타클한 소비의 문화가 들어섰다. 돈이 신이 된 시대다. 그리고 돈이 신이라는 것이 환상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돈을 섬긴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교활한 어른이 되어야 했다. 뻔뻔함은 이 계몽된 허위의식이 낳은 어른들의 불행한 의식이다. 삶이 너무 각박해지고 있다. 각박한 세상에서 ‘계몽된 허위의식’은 냉소할 뿐이다. 그래봐야 어쩔 수 없다고 냉소한다.
문제는 계몽된 허위의식의 뻔뻔함은 스스로 고결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스스로 고상한 도덕적 탈을 쓰면서 유체이탈 현상이 일어난다. 뻔뻔한 사람들은 자신의 뻔뻔함이 자기 확신적 도덕에 근거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무거운 표정으로 진지한 자신의 도덕을 늘어놓곤 한다.
뻔뻔한 철면피들을 대중들은 증오한다는 뻔한 사실을 뻔뻔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뻔뻔한 사람들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도덕적이고 근엄하다. 어느 대기업 그룹 회장은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돼야한다.”고 심각하게 말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믿는 척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이 믿는 척하는 태도에 담긴 이데올로기는 무엇일까? 믿는 척하는 자기기만적 태도를 유지해야 안락한 삶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결하고 깨끗하며 우아하다고 생각한다. 계몽된 허위의식의 이러한 태도를 키치(kitsch)적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키치적 삶이란 무엇인가?

3.
키치(kitsch)란 단순하게 말하자면 고급예술과는 다른 통속예술이다. 천박하고 저속한 모조품 또는 대량 생산된 싸구려 예술 상품을 이르는 말이다. 모나리자 그림이 있는 시골이발소 풍경이 키치의 전형이다.
주목해야할 것은 통속 예술 작품과 관련한 키치보다는 하나의 삶의 태도와 관련된 키치이다. 키치는 바로 근대적 존재 양식이다. 신의 죽음이 선언된 근대에서 그 죽음이라는 빈 공간속에 색칠해 놓은 환상과 소비의 과시적 세계이다.
우리는 대량으로 생산되고 모방되는 다양한 상품들을 소비하고 향유한다. 귀족들이 가진 고급 예술과 삶의 양식을 근대 이후 경제적인 성공을 이룬 신흥 계급이 키치로서 즐긴다. 마찬가지로 경제적 성공을 이룬 중년들도 귀족적 삶의 양식을 키치적으로서 즐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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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 아니라 아저씨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후줄근하고 촌티 나는 행색이다. 요즘 이런 아저씨들은 어디를 가도 환영받지 못한다. 꽃중년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외모, 패션, 건강, 운동, 자기계발 등 치장이나 옷차림에 금전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피부 관리, 두발, 성형도 불사한다. 몸짱은 기본이다.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다. 꽃중년의 삶은 이제 외모에서 태도에 이르기까지 엘레강스하고 클래식하거나, 스마트하고 모던하다. 최신형 자동차를 사고, 유행에 따라 옷을 입으며, 맛집을 찾아 식도락을 즐기고, 고급 상품을 소유하고, 독특한 취미생활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것도 예술적으로. 물론 키치적이다.
계몽된 허위의식을 가진 중년들은 바로 키치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의미가 없는 뻔한 세상의 권태와 부조리를 키치가 메꾸고 있다. 이 키치적 삶을 살고 있는 중년의 삶의 태도가 냉소주의다. 다 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행한다.
밀란 쿤데라의 키치에 대한 정의는 이렇다. “키치는 어떤 세계관에 의해 뒷받침된 미학, 거의 철학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건 인식이 제외된 아름다움이고 사물을 아름답게 만들어 남에게 환심을 사려는 의지이며 총체적인 순응주의입니다.”
“인식이 제외되”었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 의심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총체적인 순응주의이다.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굴복하지만 거기에는 다른 욕망이 숨어 있다. “너희들만 즐기냐? 나도 좀 즐기자”거나 “너희들만 고상하냐? 나도 좀 고상하게 살아보자”는 욕망이다.
고상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부패와 부조리와 부정의는 은폐되어야 한다. 은폐되어야할 것은 우리들의 삶의 추악함이다. 세상이 부패했고 부조리하고 부정의하다는 것 쯤 나도 다 알어. 하지만 나도 좀 즐기자.
밀란 쿤데라는 그래서 키치를 이렇게 정의한다. “똥이 부정되고, 각자가 마치 똥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처신하는 세계를 미학적 이상으로 삼는 것이다. 바로 이런 미학적 이상을 키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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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한다면 똥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부패와 부조리와 부정의는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은폐되는 것이다. 은폐란 세상의 청렴과 합리와 정의를 냉소하는 것이고, 다 알지만 모르는 척 무관심하게 지루해하는 것이다. 권태로운 것이다.
계몽된 허위의식은 실존적 한계를 잘 알고 있지만, 키치적 삶을 욕망하고 있다. 똥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아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세상에서 총체적 순응주의자들인 중년은 진심으로 고상한 신사의 품격을 지니고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것은 키치적이다.

4.
계몽된 허위의식은 계몽을 통해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들은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척하면서 행하기 때문이다. 대안은 있을까? 슬로터다이크가 제안하는 바는 이렇다. 이 계몽된 허위의식의 ‘냉소주의’(Zynismus)의 대안으로 고대 희랍시대의 ‘견유주의’(犬儒主義, Kynismus)를 제안한다. 왜 그럴까?
냉소를 뜻하는 영어의 ‘시니컬’(cynical)은 원래 고대 그리스어의 ‘퀴니코스’(kynikos)에서 나온 말이다. 슬로터다이크는 현대의 시니컬한 냉소주의를 그리스어인 ‘퀴니코스’로 대응하고자 했던 것이다. ‘퀴니코스’란 ‘개 같다’는 뜻이다. 그래서 ‘견유주의’(犬儒主義)라고 번역되었다.
왜 개 같다고 했을까? 디오게네스의 삶 자체가 개 같은 삶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사람들은 디오게네스를 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우리도 ‘개 같다’라는 말을 욕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개는 개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원리에 따라 사는 도덕적 동물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디오게네스를 개 같다고 욕을 했을 때 디오게네스는 그래 나는 개라고 말한다. 그러나 너희들은 개만도 못한 위선적인 놈들이라고 폭로했던 것이 아닐까? 개가 자연적으로 살 때 인간은 유체이탈의 위선을 범하면서도 개를 욕하며 자신의 위선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Alexander and Diogenes exhibited 1848 Sir Edwin Henry Landseer 1802-1873 Bequeathed by Jacob Bell 1859 http://www.tate.org.uk/art/work/N00608

Alexander and Diogenes exhibited 1848 Sir Edwin Henry Landseer 1802-1873 Bequeathed by Jacob Bell 1859 http://www.tate.org.uk/art/work/N00608

똥이 없는 듯이 세상을 고결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이상화하는 뻔뻔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비도덕적이거나 사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뻔뻔한 냉소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바보는 아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뚜렷한 명분이나 냉철한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모르고 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하기 때문이다.
슬로터다이크는 이런 계몽된 허위의식의 뻔뻔한 냉소에 대해서는 더더욱 개 같은 냉소로 맞서기를 권한다. 머리로 싸움하려고 하지 말고 직접 몸으로 보여준다. 똥을 무시하는 그들의 고상함에 대해서 똥과 오줌과 정액으로 조롱한다. 무관심한 냉소가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는 냉소를 권유하고 있다.
알면서도 모른 척 고상한 태도로 뻔뻔한 냉소를 취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고상함에 감춰진 똥들을 폭로하면서 맞서라는 얘기다. 그들의 계몽된 이성에 맞서 육체적인 분노와 조롱으로 그들의 계몽된 허위의식을 일깨우라는 말이기도 하다.
슬로터다이크의 계몽된 허위의식에 대항하는 방법은 뻔해진 세상의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뻔뻔해진 중년들의 냉소와 권태와 무관심에 대항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뻔뻔한 키치에 저항하라. 그것이 디오니게스적 저항이다.
뻔해진 세상에 뻔뻔해진 중년들은 그래서 알고도 행하는 허위의식에 빠진 뻔뻔스러움보다는 디오니소스적 냉소를 실천해 볼만하다. 그래 나는 개다. 하지만 개만도 못한 너희들보다는 적어도 자연스럽다. 그러니 웃자. 이것이 슬로터다이크가 뻔뻔해진 중년에게 권하는 디오게네스적인 냉소와 유머다.

우리는 또 다른 최순실을 원하는가? [피켓2030]

건국대학교 철학과 사회철학반 일동: 이동구, 이윤하, 서동기

2016년 11월 4일

 

2016년 11월 4일의 이른 새벽, 저희 사회철학반은 철학과 학술제를 위한 논문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작성을 중지하기로 했습니다. 학문과 진리를 사랑하는 철학도로서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이 현실을 그저 바라보기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최순실-박근혜로 이어지는 국정농단 사태는 단순히 그들 개인의 도덕성과 판단력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사회가 이제까지 추구해왔던 가치에 대한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희 사회철학반은 우리 사회를 향해 철학만이 할 수 있는 말을 하고자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무엇이 무겁단 말인가? 짐 깨나 지는 정신은 그렇게 묻고는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짐이 가득 실리기를 바란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역, 책세상 출판, 1부 <세 변화에 대하여>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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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저희는 질문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당연해서 의심조차 들지 않는 것에 ‘그것이 정말 그러한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 철학의 목적이라고 말입니다. 최근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사건에 국민들의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스스로는 아무 결정도 할 수 없었던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모든 핵심적 권한들을 최순실씨에게 위임하였습니다. 지금 모든 분노는 최순실씨를,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분노의 화살은 올바르게 향하고 있을까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가 직접 만든 대통령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겠다고, 잘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들이 정의하는 잘 사는 삶은 곧 부자가 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선택하였고, 이는 곧 ‘부자가 되는 것=잘 사는 삶’에 동의한 것입니다. 그들을 지지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당신 또한 ‘부자가 되는 것, 풍요로운 삶=잘 사는 삶’에 동의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고, 성공하는 것이 정말로 잘 사는 삶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꿈꾸고 있습니까? 어떻게 살고 싶습니까? 우리의 그 대단한 꿈, 청춘, 행복한 삶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성공을 목표로 살아갑니다. 공무원이 되기를, 안정적 직장을 갖기를 꿈꾸고 우리의 자식들과 친구들에게 성공신화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시대의 성공한 자들을 보십시오. 무당의 말을 받아 적고 있던 고시 출신의 청와대 엘리트 행정 관료들을 보십시오. 새파란 아이들 300명이 죽었는데도, 뉴스에 나오는 게 지겹고 노란리본이 지겹다고 생각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십시오. 혹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용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합니다.

누군가는 이 혼란한 시국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 결단으로 거국중립내각을, 또 어떤 이는 다음 대선 주자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어쩌면 이 혼란을 수습할 인물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았으며,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 나타난 인물들이 만약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한다면? 오늘의 절망적 현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좌절과 분노를 되풀이하고, 또 다른 구세주를 기다릴 것인가요? 이렇듯 우리는 언제나 구원자를 기다려왔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구원자가 선택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하기보다, 구세주를 선택하는 것을 ‘자유’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보다,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훌륭한’ 인물들에게 삶을 맡겨왔습니다. 하지만 묻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남아있는 ‘자유’는 무엇입니까? 여전히 우리는 대단한 자유를 갖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남은 자유란, 어떤 기업에 들어가든지 정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희망퇴직을 당해 치킨집을 차릴지 고민할 자유거나, 비정규직으로 내일의 불안을 견뎌내며 어떤 컵라면을 먹을지 선택할 자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지 어떤 스펙을 쌓을지 고민할 자유들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일단 먹고 살아야지”라는 명분하에, 금전적 성공과 안정적 삶만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로 남아있는 건 아닐까요? 정작 지금 우리에게는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하며 탐욕과 욕망으로 자신을 몰아가는, 스스로 노예가 될 수 있는 자유밖에는 남아 있는 게 없을지도 모릅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정념에 이끌리고, 정념에 예속되는 삶을 노예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물질적 욕망으로부터 기인한 ‘우리가 가진 자유’라는 것도 실상 자유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욕망을 통한 자유가 아닌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욕망을 통해서만 자유를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의 욕망을 방해하는 사소한 것들에 분노합니다. 카드를 거절하고 현금지불을 요청하는 업주, 퉁명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편의점 알바생, 노약자석에 앉아있는 젊은이, 자꾸만 비싸지는 물가,  성심껏 써낸 자소서가 휴지조각이 되는 일들처럼. 우리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것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분노는 기껏해야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업주와 알바생, 젊은이, 물가, 면접관들을 향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다르게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의 조그마한 분노가 과연 무엇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를 말입니다. 우리의 초라한 분노가 생겨난 까닭은 작은 몫이라도 얻어내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는 현실 때문입니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내 눈앞에 있는 알바생과 업주, 젊은이 같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선택한 바로 그 구세주들이 만들어 온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작은 일들에 다투고 있을 때, 정작 우리의 마땅한 몫은 탐욕스러운 구세주들이 차지해왔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부당한 처우를 당했던 것은 단순히 우리가 나약한 ‘개, 돼지’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러한 탐욕스러운 구조를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수만 명의 관중들이 모인 스포츠 경기장을 상상해보십시오. 멋진 경기와 훌륭한 기예를 펼치는 선수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경기는 그런 스타플레이어들을 통해서만 구성되는 것일까요? 경기장을 진정으로 완성 시킬 수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응원하고 바라보는 관중들입니다. 관중들이 없다면, 경기는 남들보다 조금 특출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의 몸짓일 뿐입니다. 관중들의 시선이 있을 때 비로소 선수들은 인정받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은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지닌 힘을 통해 구성된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제시한 좋은 삶에 대한 정의와 성장과 성공에 동의했고 그들을 지탱해왔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의 이 사태를 만들어낸 동조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지극히 평범한 우리는 이러한 시대를 바로잡을 수 있는 힘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토록 힘겹게 얻어낸 87년의 승리는 우리 스스로가 주인임을 제도적으로 확인해낸 업적입니다. 그리고 이 승리를 통해서 만들어진 헌법은 우리가 국가의 주권자이며, 그 권력의 근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은 절망적입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시위를 한다고 해도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허무와 회의 역시 존재합니다. 하지만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시국을 구원할 구세주를 기다리는 우리는, 또 다른 최순실을 기다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고분고분한 우리는 그들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될 것입니다.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께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우리가 더 이상 이렇게 짐이 실리기를 바라지만은 않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우리의 자유는 어떤 자유여야 하는지, 우리는 과연 어떤 세상에 살고 싶은지, 우리가 추구하고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우리가 꾸는 꿈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상상합시다. 그리고 현실이 우리의 상상들과 반대로 나아가고 있다면 단호하게 저항해야 합시다. 다시, ‘상상력에게 권력을!’ (L’imagination au pouvoi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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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 마이트너, 여자가 과학을 한다구? [자연과 문화 사이에서]-2

최종덕(상지대, 과학철학)의 종횡무진 책읽기 : 서평연재 -2

오늘의 서평 책
: 샤를로테 케르너 지음 (이필렬 옮김), 리제 마이트너, 한 번도 인간적 면모를 잃은 적이 없는 여성 물리학자, 양문출판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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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리제 마이트너인가

여성 최초의 핵물리학자인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1878-1968의 삶을 새롭게 조명한 국내 번역서를 보았다. 애당초 나는 몇 년 전부터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리제 마이트너라는 여성 과학자를 한국에 처음 소개하려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그의(주1) 자서전 등을 읽고 메모해 두곤 했다. 그런데 마이트너의 자서전을 읽던 중 유럽에서조차 마이트너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 나는 놀랐다. 그에 관한 몇 권의 자서전과 인터넷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놀란 것이 있는데, 마이트너의 저서전 중 한 책이 과학사가이신 이필렬 교수에 의해 <한번도 인간적 면모를 잃은 적이 없는 여성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라는 제목으로 이미 6년 전에 번역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책을 다시 꼼꼼히 읽을 수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주1)  ‘그’라는 3인칭 지시어를 남녀 구분 없이 사용합니다. 원래 우리말에서 ‘그녀’라는 3인칭 지시어가 없기 때문입니다.

리제 마이트너

리제 마이트너

2. 여성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 볼츠만을 만나다.

마이트너는 1878년 오스트리아 비인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모 양쪽 혈통으로 내려온 전형적인 유대인이다. 그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유대 전통의 삶의 방식을 요구하지 않고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로 자식들을 키웠다. 8남매 중 셋째인 리제는 언니들의 말을 잘 들으면서도 동생들을 잘 돌보는 깊은 우애심을 갖고 있었다. 당시 오지리 비인은 다른 유럽국가와 마찬가지로 여자에게는 초등학교만 허락되고, 김나지움 등의 고등교육 입학은 불가능하였다. 그 이후 프랑스어 교사학교에서 공부도 하였지만 결국 그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수학에 큰 자질을 보인 리제에게 개인교육을 시켜가면서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응시하도록 하였다. 다행히도 그 와중에 비인 황제대학 입학이 여성에게도 최초로 허락된 큰 변화가 있었다.(1899년, 독일의 경우 1900년) 대학에 합격한(1901년) 마이트너는 볼츠만에게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여성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다.(1906년) 마이트너는 볼츠만 교수로부터 물리학이라는 학문에 대한자신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여정의 방향을 얻기도 했다.

“모든 문화와 기술의 진보로 인간이 더 행복해졌을까요? 이것은 사실 까다로운 질문입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행복은 각자 자신의 가슴 속에서 찾고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28쪽)

라이프치히 대학 초빙교수를 마치고 다시 비인으로 돌아와서 행한 인사말 중에서 행복에 대한 볼츠만의 언명은 마이트너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이때부터 이미 마이트너는 과학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잃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 진다. 볼츠만 교수는 힘들게 대학에 입학한 두 명의 여학생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어떤 성적 편견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볼츠만 교수는 마이트너의 수학적 재질을 인정하면서 물리적 세계의 근원에 대해 호기심을 갖도록 마이트너를 독려하였다. 볼츠만은 통계역학을 정립하였다. 독립적인 기본 입자들 간의 운동 역학은 원리적으로 설명가능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통계적으로 해명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볼츠만의 통계역학은 물리학 발전의 급진적 계기였다. 통계역학은 물질의 기본입자가 독립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기본입자란 물질의 원자를 말한다. 원자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단위를 뜻했다. 원자의 세계까지 파고들어가는 이유는 물질의 특성을 밝히기 위한 환원주의적 방법을 찾으려 함이다. 물질의 특성은 그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의 특성을 밝힘으로써 설명이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자론은 철저히 환원주의를 논증하고 검증하기 위한 근거가 된다. 여기서 환원은 대상의 특성을 ‘남김없이 설명하려는’ 방법론적 태도이다. 즉 원자들의 합은 대상 물질 전체가 되고 대상 물질의 특성을 인식하기 위하여 물질을 분해하면 원자들의 존재로 다시 분해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Weizaecker, S.43-47) 그런데 통계의 기본 설명방식인 확률은 환원과 반대로 부분과 전제의 환원론적 설명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어떻게 환원주의와 확률론이 만나는지를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열역학은 통계역학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볼츠만의 가장 큰 과학적 성과 중의 하나는 열역학적 평형을 향해서 모든 물질에너지가 이동한다는 사실에 착안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아시다시피 근대 열역학의 전환은 열 개념을 물질 입자들이 충돌에너지의 통계적 합으로 정의하는데 있었다. 통계적 합이란 개별의 입자 즉 분가 덩어리가 분자끼리 혹은 벽에 충돌할 때 동일한 에너지를 발산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볼츠만의 탁월한 재능이 드러나는데, 이는 곧 물질의 원자론적 사유방식에 의해 보장될 수 있다. 여기서 원자론적 환원주의와 1023개 수 이상의 무한에 가까운 물질입자들의 충돌에 의한 통계역학적 에너지 총합이 만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물리세계의 원자론적 형식은 철학적 선험존재의 사유구조와 밀접 되어 있음을 암시하며, 동시에 확률에 대한 사유는 경험과학적 실험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마이트너는 볼츠만 교수에게 4년 이상 수업을 듣는 과정에서 이러한 양 날개의 사유구조를 심도있게 배우게 되었다. 이후 마이트너는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자신의 장래를 구체적으로 모색해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스승 볼츠만 교수가 죽었다. 마이트너도 잘 몰랐던 오랜 우울증으로 자살한 것이다. 마이트너는 갑자기 방황하게 되었다. 놀라기도 했지만 인생과 지식이 삶의 바다에서 서로 만나지 못하는 현장을 경험하게 되었다. 마이트너는 좀 더 강해지기로 했다. 속으로는 학문적 냉정함과 인생의 주관성이 뒤섞여지는 일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리고 이제 비인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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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차별의 강함을 이긴 성실함의 부드러움

지금까지 오스트리아에서의 마이트너는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큰 지장없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독일로 이전하면서 마이트너는 스스로 마음에 드는 지적 탐구는 수행했지만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눈에 띄게 느꼈다. 먼저 마이트너가 존경했던 퀴리 박사에게도 연구 수행 신청을 위한 편지를 썼으나 거절되었다. 여자로서는 너무 힘든 실험실 일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화학과 물리학이라는 학문의 경계에서 퀴리 박사가 마이트너의 전문분야를 보기에 자신과 같은 화학 분야가 아닌 물리학 분야라고 여겼기 때문일 수 있다. 마이트너는 독일의 베를린으로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막스 프랑크 연구소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당시 이름인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의 전신이었던 대학 실험실로 연구원 자리를 찾아갔다. 그는 막스 플랑크 교수를 직접 찾아가서 그의 수업을 참가하고 싶다고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내가 아는 막스 플랑크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질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분명히 막스 플랑크는 마이트너를 여자라는 이유하나로 거절했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로서 진보적 성향의 플랑크 같은 사람도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졌을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이트너는 물러서지 않았다. 마이트너는 자신의 강한 학문적 열정과 전문분야에 대한 경력을 막스 플랑크에게 전달했다. 플랑크는 마이트너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후 마이트너는 30년 가까운 베를린의 학문적 역사를 갖게 되었다. 마이트너가 보기에 플랑크는 비인의 스승 볼츠만과 다른 성격을 지녔다. 무미건조하게 보이는 그의 품성은 오히려 지적 신념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의지로 여겨졌다. 플랑크는 상대적으로 마이트너에게 큰 장벽이 아니었다. 베를린 대학 실험물리 연구실로 소개받으면서 성적 차별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마이트너와 운명적인 만남이었던 오토 한 박사와의 공동 실험실이 지하목공소에 겨우 임시로 차려졌다.(1907년) 본 실험실에 여자 연구원을 절대로 들여놔서는 안 된다는 피셔Emil H. Fischer 연구소장의 엄명 때문이었다. 일년 반 만에 피셔 소장은 그 임시 실험실에 여자 화장실을 짓게 해주었을 정도다. 그제서야 남학생 전용 실험실에 마이트너의 출입을 허가해 주었으니 말이다. 왜 그렇게 피셔 소장이 변했을까? 여성에 대한 편견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 초라한 지하 공간에도 불구하고 마이트너의 조잡한 지하 실험실에서 더 많은 연구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이 당시 이미 마이트너는 원자 붕괴 시의 원자핵 분열을 예언한 방사선 붕괴물질을 찾아내었을 정도로 마이트너의 연구진척은 상당했다. 빈약한 실험실 여건이었지만 이러한 마이트너 연구논문의 질적 수준 역시 탁월했다. 피셔 소장은 갑자기 그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자 화장실을 짓게 되었다는 말이다.

1912년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를 개소하면서 좀 더 안정적인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오스트리아는 전쟁을 치루게 되었다. 소위 1차세계 대전이었다. 마이트너는 연구실에만 있는 냉동 지식인이 아니었다. 그는 오스트리아를 위해서 방사선 담당 간호사로 자원했다. 뢴트겐 검사원으로 일했다. 2년 가까이 전쟁터에서 일하면서 그는 독일의 독가스 사용의 현장을 목격했다. 독일은 이미 1차 대전 때부터 프랑스와의 접전에서 독가스를 사용했다. 마이트너는 독가스 사용에 대하여 비판적 의사를 표현했다. 그러나 위정자들은 그의 비판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문제는 마이트너가 일했던 빌헬름 화학 연구소가 독가스 연구를 주도했다는 점이다. 마이트너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과학자의 연구성과가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무기로 변할 수 있다는 점에 몸서리를 쳤다.

다시 연구소로 돌아와 그는 원자번호 91번이며 방사선 원소인 프로탁티늄protactinium 원소를 발견하였다.(1918년) 이제 마이트너는 과학자로서의 위상을 굳건히 인정받았으며 교수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1922년) 여자가 교수Dozent로 될 수 있었던 일은 독일 프로이센 사회의 혁명을 일으킨 것 이상이었다.(Rife, p.87) 오토 한을 비롯하여 그의 남자 동료들은 이미 10여년 전 이상부터 교수였었다.(1907년) 마이트너의 교수취임 강연(1922년)을 취재한 어느 기자의 표현은 더 웃기는 일이었다. “여성이 우주를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우주적kosmisch 과정’이라는 단어를 ‘화장술kosmetisch 과정’ 으로 간단히 바꾸어 버렸다.”(78쪽) 알고 보니 마이트너의 교수직도 요즘 말로 하면 비정규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1926년) 이때부터 조교수 자격과 소위 교수자격시험에서 “venia legendi ”를 취득하여 10년 교수 계약을 하게 된다. 마이트너는 베를린 대학의 실질적인 교수가 된다.(주2)  마이트너는 학과장 막스 플랑크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다. 그 내용은 자신을 신뢰하여 패컬티로 되게 한 데 대하여 책임감있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내용이었다.(Rife, p.87; letter thanking Planck) 그의 뛰어난 학문적 능력은 이미 다 알려진 상태여서 어느 누구도 외형적으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은 여전했다.

프로탁티늄의 발견을 통해 마이트너는 노벨상 후보로 추천되면서 그 이후 1920-30년대 마이트너의 과학적 성과가 빛을 발하게 된다. 방사선 붕괴 시 베타선이 감마선보다 먼저 나온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은 아인슈타인으로 하여금 깊은 인상을 주었다. 아인슈타인은 그를 ‘독일의 퀴리부인’이라고 부르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닐즈보어와 마이트너는 유럽 최고의 과학자 그룹에서 진지하고 열띤 토론을 지속했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마이트너는 여성으로서 느끼는 불평등함에 대하여 마음 속으로 불편해 했다. 여전히 많은 남성 과학자들은 마이트너의 논문을 제대로 읽지 않거나 책장 속에 파묻어 두었다. “나의 남성 동료가 이 보고서를 제출했다면 벌써 인정했을 것입니다. 단지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채드웍은 나를 멸시하는 것이죠. 이런 일이 나를 정말 우울하게 만듭니다.(84쪽; 오토한에게 보낸 편지, 1922년5월17일) 그 다음해 1923년 마이트너는 채드웍의 명성에 휘말리지 않고 냉정한 시각으로 채드웍의 베타선 붕괴에 관한 실험결과에 대하여 비판을 한다.(Simm, p.89) 마이트너에게 있어서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문제에서 오류를 지적할 뿐이었다.

그러나 마이트너는 1928년 캠브리지 학술대회에서 채드웍을 만나면서 매우 호의적인 관계를 표현한다.(Simm, p.105) 마이트너는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데 매우 서툴렀다. 아니면 남자들의 본질적 속성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수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줍음을 잘 타는 마이트너의 천성 때문일 수도 있다. 오히려 그런 갈등을 스트레스로 갖느니 실험실에 몰두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듯하다. 이런 자신의 성격이 여성의 평등 권리를 찾는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마이트너가 여자인줄 모르고 독일 브로크하우스Brockhaus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편집장은 마이트너의 논문을 적극 게재하려고 시도하다가 그가 여자인 것을 알게 되자마자 게재 거부를 했다. 그러나 마이트너가 그렇게 유명한 줄 알고서는 다시 마이트너의 논문을 게재하려고 편지를 냈다. 이런 일들은 마이트너에게 흔했다. 이제 상할 마음도 없었다.

이런 일이 지나치면서 그는 결혼할 생각을 접었다. 실제로는 왜 그가 결혼을 하지 않았는가라는 주변 사람들의 추리가 많았지만 마이트너는 결혼을 안 하겠다는 철저한 원칙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실험실 연구를 하느라 결혼에 신경 쓸 틈이 없었던 것이다. 실험실 연구 과정에서 그는 남성 동료 연구원들이 밤을 새가며 실험하는 현장을 일상적으로 보아왔다. 그러면서 그 반대급부로 그의 부인이 얼마나 힘든 결혼생활을 하겠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마이트너도 결혼해서 그의 남편이 실험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일이 잦아 질 경우 분명 자신도 그런 일상을 싫어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는 남성에 대한 반감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데 힘을 쓴 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성의 평등한 지위를 찾는 일이 개인적인 차원보다는 사회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는 당시 여성운동 그룹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욱 현장에서 어렵게 활동하는 실천적 여성운동가들에게 짐을 지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당시로는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인종적, 성적, 계급적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과학적 시도가 꽤 있었다. 아리안 인종의 유전적 우수성을 과학으로 정당화하는 독일 계열의 사이비 과학자들이 있었다. 지식을 배우거나 습득한 여자는 일반 여자와 달리 일종의 유전적 변종에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 선풍적으로 팔려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이런 극단의 우생학적 주장은 여자를 남성과 아이의 중간 수준의 특별 인종으로 간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나아가서는 귀족과 노예 사이의 차이도 단순한 사회적 차이가 아니라 유전적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우생학이 널리 번져 있었다.(Max Planck Gesellschaft, S.116-118) 이렇게 사회에 만연한 성적 편견에 대하여 마이트너는 크게 마음을 두지 않았다. 마이트너도 이제 50대의 중년이며 인정받는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1933년 솔베이 학술대회에 참석한 마이트너는 국제적으로 실력있는 핵물리학자 대열에 있었다. 그런데 그때에 맞추기라도 하듯 나치가 권력을 장악했다.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극복하는 듯싶었는데, 이제 유대인으로서의 차별의 시절이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했다.

나치 집권 이후에도 마이트너는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가졌다. 유대인이기는 하지만 오스트리아 시민권자이면서 국제적으로 알려진 과학자라는 점 때문에 나치는 마이트너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런데 1938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면서 하루 밤 사이에 마이트너는 오스트리아 시민에서 독일 시민으로 바뀌어졌다. 이에 나치는 외국 지역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본격적으로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유대인인 마이트너는 이제 독일을 떠나야 한다는 결심을 한다.

주2) 한국사회에서 통용하는 “교수”라는 표현이다. 당시 독일 학과에서 교수는 한 사람뿐이다. 독일 개념으로는 막스 플랑크만이 교수라는 뜻이다.

4. 노벨상과 여성

1938년 덴마아크를 거쳐 스웨덴 망명길에 오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의 학문적 능력을 가장 많이 인정해주는 닐즈 보어는 마이트너의 탈출이 성공하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여권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비자를 발급받는 일 등, 여객선 등의 교통편을 주선하는 일에까지 거의 영화 <미션임퍼서블>에 맞먹는 비밀조직의 도움으로 덴마아크에 도착했다. 비밀조직에는 네덜란드 그로닝겐 대학 물리학과 교수인 코스테르Dirk Coster가 있었다. 코스테르는 독일의 지식인 망명자의 탈출을 돕는 결사대 비슷한 조직의 행동대원이기도 했다. 코스테르는 마이트너와 동행하기 위하여 일부러 베를린까지 왔다. 네덜란드 영사 등을 통해 오스트리아 여권으로 네덜란드까지 검문을 받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다. 이후 7월초 덴마아크에 도착하여 닐즈 보어를 만나고 곧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연구소로 이동했다. 단지 15마르크가 들은 손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서, 그의 인생은 새로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은 거의 영화 스토리가 되어도 충분할 정도다.

그해 11월 스톡홀름에 있던 마이트너는 오토 한과 서신왕래를 계속 했다. 그리고 덴마아크에서 그들의 비밀스런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 조카 프리쉬도 있었는데 이들에게 의미있는 토론 자리였다. 이 때 오토 한은 마이트너에게 핵 붕괴 이후의 과정에 대하여 질문을 했다. 마이트너는 새로운 입자 생성이 실험적으로도 가능하다는 점을 제시했다. 화학적인 시야에서 도저히 볼 수 없었던 실험 예상치를 물리적인 시야로 볼 것을 마이트너는 오토 한에게 독려했고, 이에 오토 한은 무릎을 쳤다. 오토 한은 마이트너와의 토론에 결정적인 힌트를 얻어 독일로 돌아 간 후 슈트라스만과 함께 역사적인 실험결과를 얻어냈다. 우라늄 핵에 중성자를 쏘아서 분열을 시키고 소위 바륨이라는 원소가 탄생하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마이트너가 오래 전에 밝혀낸 것이다. 1938년에서 1939년 사이에 오토 한과 슈트라스만 그리고 마이트너 공동의 작품으로 붕괴 이후의 새로운 원소를 발견한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에너지는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법칙에 딱 맞아떨어진 물리학의 역사적 전환점이었다.(Schirra, S.204) 마이트너는 조카 프리쉬의 제언대로 단순한 ‘쪼개짐’Zerplatzen 이라는 용어 대신에 영어로 ‘분열’fission 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새로운 용어만이 새로운 원소의 탄생을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발견은 망명 이전 3년 전부터 오토 한, 슈트라스만 그리고 마이트너 세 사람이 공동으로 연구해 오던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그 실험 성과 역시 세 사람 공동에게 돌아갔어야 했다. 그러나 오토 한은 마이트너가 스톡홀름으로 가고 없었던 사이에 발견한 우라늄 붕괴 결과를 자기만의 성과로 했다. 이 점은 나중 마이트너가 섭섭해 했던 점이며 추후 이 발견으로 노벨상을 단독으로 받게 된 오토 한에게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이 있었다. 물론 슈트라스만의 이름도 빠졌기 때문에 슈트라스만도 섭섭해 했다.(박병소, 154-156쪽)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오토 한에게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1945년 전쟁이 끝나자마자 노벨상 위원회는 그 공로로 오토 한의 단독 노벨화학상 수상을 발표했다.

이에 대한 상황분석은 다층적이다. 나는 그런 상황을 성적 편견과 연관하여 몇 가지로 나누어 다음처럼 파악한다.
(1) 첫째 한 평생 실험실 동지였던 오토 한에게 묘한 배신감 비슷한 것을 느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오토 한의 노벨상 수상 이후 마이트너가 친구 에파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 판단이 타당하다. 이필렬 교수가 번역한 것을 그대로 따서 읽어본다.

“오토 한이 노벨화학상을 수상할 자격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그러나 이와 관련된 부수적인 일에서 오토 로버트 프리쉬(조카)와 나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어. 스웨덴 신문 D.N.에서의 한 기사는 거의 모욕적이었단다. 내가 정말로 오토 한의 보조연구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 물리학자였고, 물리학 분야에서 몇 개의 제대로 된 연구를 했다고?”(139쪽)

이 문제에 대하여 오토 한의 해명은 없었기 때문에 한의 입장을 결정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당시 여성 학자의 사회적 편견이 상존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2) 둘째 스톡홀름 노벨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마이트너는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60살이 된 국제적인 물리학자였지만 노벨연구소에서는 조교 이하의 대접을 받았다. 당시 노벨연구소 소장이었던 시그반 교수는 마이트너에게 아주 간단한 실험기기조차 제공하지 않았다. 급여를 받았지만 조교 수당만도 못했다. 독일에서 건너올 때 가지고 온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이불보 하나라도 새로 사야만 했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이런 푸대접은 실상 아무 것도 아니었다. 노벨상 심사위원회의 편견에 비하면 말이다. 시그반 소장은 노벨상 심사위원회에도 속했는데 당시 최고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해마다 추천이 올라 온 마이트너를 전적으로 배제하는 데 앞장서 있었다. 시그반 소장이 보기에 여성이 노벨상을 받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이트너가 노벨상 수상에서 빠진 이유는 이처럼 앞의 두 이유를 주로 들고 있다. 물론 이 두 사항 모두 추정일 뿐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그들 어느 누구도 마이트너를 배제한 이유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수긍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편견은 역사적 풍토에 기인한다. 오늘날 양성평등 제도에 대한 사회적 실천이 가장 잘 되고 있다는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에서도 불과 70년전인 1934년도에 장애자나 정신박약자에 적용하는 극단의 우생학적 단종법이 가결되어 시행되었었다. 특히 스웨덴 정부는 1941년도 나치의 위협이 커지면서 오히려 특정 목적성 단종법을 추가로 가결시켰다. 선천성 장애자 혹은 불구자 정신박약자 등에게 출산을 제한했던 인종 악법이 겨우 없어진 것은 1960년대 들어서였다.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여성 차별의 역사적 문제는 성적 우생학적 풍토와 깊이 연관한다는 입장이 나의 결론이다. 성적 우생학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조선시대 과거 역사도 아니고 30년대 스웨덴의 문제만도 아니다. 바로 텔레비전을 틀기만 하면 나타나는 우리 안의 루저와 위너의 위계가 문제다. 성적 쇼비니즘이 아직도 우리 안에 내재해 있음을 파악해야만 비로소 나눠 살만한 평등사회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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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트너 생애>

1878 오스트리아 비엔나 탄생, 필립 마이트너와 헤드빅 사이 8남매 중 3녀. Phillip and Hedwig Meitner
1892 비엔나 시민학교 수료; 이미 어렸을 때부터 카톨릭 교육을 받았으나 정식으로 개종.
1896 프랑스어 교사학교 공부를 하고 대학입학 자격시험을 위해 개인교습을 받음.
1901 비엔나 대학 물리학과 입학, 미적분학 수업을 들으면서 어릴 때부터 재능을 보여왔던 수학보다는 물리학을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함.
1902 볼츠만Ludwig Boltzmann 교수 수업 대부분을 들으면서 깊은 영향을 받음.
1906 최초의 여성 박사학위 수여 PhD in Physics from University of Vienna
1907 독일 베를린 대학 실험실 연구 시작, 화학자 오토 한과 만남
1909 막스플랑크, 폰라우에, 아인슈타인 등과 함께 콜로키움 참석; 이후 베를린에 완전히 정착하기로 결심.
1912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 입소
1915-16 전쟁에 참여
1915 오토 한 “Gas Pioneer” 참가를 적극 반대
1918 91번 원소 protactinium 발견(오토 한 공동)
1919 막스 플랑크 노벨물리학상 수상
1919 빌헬름 연구소와 장기계약 및 급여 상승
1920 닐즈보어 만남
1922 프러시아 여성 최초 조교수 Assistant Professor
1926-1933 베를린 대학 교수
1923 오토 한 단독으로 노벨 화학상 후보 추천
1924 오토한과 마이트너 노벨 화학상 공동 후보 추천 (이후 10차례 가까이 후보 추천됨)
1928 그의 조카이며 평생 조력자이고 한 오토 프리쉬Otto R. Frisch도 베를린으로 연구지를 옮김.
1933 나치, 연구소에서 유대인 마이트너 박사를 사임하도록 압력 시작, 델브릭과 원자핵 구조에 대한 새로운 연구성과 제시
1936 오토 한은 독일화학회에 마이트너와 다른 상급의 대우를 요구.
1937 막스 플랑크 사임
1938 독일 오스트리아 침공, 따라서 마이트너 연구소를 탈출하여 코스터 박사의 도움으로 닐즈보어가 있는 덴마아크로 피신, 그리고 곧 스웨덴으로 망명.
1939 조카 프리쉬와 원자핵 분열Nuclear fission 논문 게재.
1958 요양 차 조카가 있는 캠브리지로 이사함.
1968 (27 October) Lise Meitner died a few days short of her 90th birthday
<참고문헌>

박병소, 노벨상 이야기. 범한서적, 1998
Bankston, John, Lise Meitner and the Atomic Age.
Hamilton, Janet, Lise Meitner: Pioneer of Nuclear Fission.

Kerner(이필렬 옮김), 한번도 인간적 면모를 잃은 적이 없는 여성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 양문출판사, 2009

Kerner, Charlotte, Lise Meitner, Atomphysikerin. Weinheim,1986
Krafft, F., Lise Meitner und ihre Zeit, in: Angew. Chem. 90(1978)
Max Planck Gesellschaft (Herg.), Verantwortung und Ethik in der Wissenschaft, Wissenschaftliche Verlag, 1985
Rife, Patricia, Lise Meitner and the Dawn of the Nuclear Age. Birkhaeuser, 1999
Schirra, Norbert, Die Entwicklung des Energiebegriffs und seines Erhaltungs- konzepts. Harri Verlag. 1991
Sime, Ruth Lewin, Lise Meitner: A Life in Physics. Univ. of California Press, 1996
Stolz, W.: Otto Hahn – Lise Meitner. 2. Aufl. Leipzig, 1989
Weizaecker, Carl Friedrich, Zum Weltbild der Physik, Hirzel, 1990
마이트너 소개 동영상 http://eyeofphilosophy.net/board/view.php?forum=vod&num=206

불의의 시대 [시대와 철학]

전호근(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연구협력위원장)

 

불의의 시대라 계절도 더딘가 싶더니 어느덧 겨울이 문턱이다. 예전 이맘때면 나뭇잎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가난한 이들의 창에는 서리가 하얗게 서려왔다. 그러나 추운 계절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겨울이 깊으면 봄을 기약하는 낭만이 있었고 가난한 삶에도 따뜻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 어느 구석에도 겨울의 낭만은커녕 봄이 올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가난 때문이 아니다. 바로 푸른 기와집에서 귀신과 작당하는 너희 때문이다.

 

너희는 지금이 옛날보다 낫다하나 나는 믿지 않는다.

옛날의 간신은 군주를 속였는데 지금의 간신은 백성을 속인다.

옛날의 탐관오리는 백성을 마소로 여겼는데, 지금의 탐관오리는 백성을 개돼지로 여긴다.

옛날의 무당은 뒷문으로 드나들며 주문을 외웠는데 지금의 무당은 정문으로 드나들며 연설문을 고친다.

옛날의 어두운 군주는 충신을 죽였는데 지금의 어두운 군주는 아이들과 농민을 죽인다.

 

이러니 지금의 간신이 옛날의 간신만 못하고 지금의 탐관오리가 옛날의 탐관오리만 못하고 지금의 무당이 옛날의 무당만 못하고 지금의 어두운 군주가 옛날의 어두운 군주만 못한 것이 아니냐. 그러니 지금이 옛날보다 낫다는 너희의 말은 거짓이 아니더냐. 내말이 틀렸느냐?

 

자고로 나라가 망하려면 귀신의 말을 듣는다했다. 그래, 너희의 귀에 귀신이 소곤거리는 말은 들리고, 자식과 부모를 잃고 찢겨진 가슴, 피눈물로 울부짖는 민초의 모습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단 말이냐?

 

두말 할 것 없다. 당장 너희 모두 그 자리에서 내려와라. 그 자리는 백성의 아픔을 돌보기 위해 있는 자리다. 그러니 너희 같이 무능하고 거짓을 일삼으며 귀신에게 아첨하는 자들이 있을 곳이 아니다.

 

이제 이 땅의 백성은 드러내놓고 너희를 죽이려 할 것이고 너희가 믿는 귀신조차 어둠 속에서 너희를 죽이고자 모의할 것이다. 신라 때만 최치원이 있는 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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섦 [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 -21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늑대와 소녀

 

진실을 찾아 헤매는 것은 나의 도륙하는 눈이다.
두 눈은 잔인한 늪에 빠진 존재의 거짓을 삼키고
안팎으로 빛깔 좋은 까마귀를 닮아 간다.

대지 위에 서 있는 소녀는
대지 아래 늑대가 있는 것을 모를 뿐이다.
나는 모르는 척 허황된 들판에 유행하는
우주선을 따라 좇아간다.
그 곳에는 황량한 사막도, 근심도 없고
먹잇감을 찾는 늑대와 소녀도 없다.

2016.10.31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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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노트 
세상의 삶의 많은 부분이 보이는 것이 진실이 되고
보이는 것에 진실이 가려지기도 합니다.
늑대는 소녀를 기다리며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만들어 가기 위한
영생을 준비하고 있고 소녀는 자신이 밟고 있는 땅이 늑대의 존재임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진실을 볼 수 없거나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동물은 배가 고프면 필요한 만큼만 배를 채웁니다.
동물적 본성과 습성을 가진 인간은
필요 이상으로 넘치는 배들이 즐비합니다.
각각의 배에 신들린 사이비 욕망은 채워도 모자라고 부족합니다.
끊임없이 욕망하고 갈구하고
타인을 통해 먹잇감을 찾는 자신을 규정하고
칼의 제도적 습관에로, 악의적 규율의 법칙에로
길들여진 행위는 정신보다 동물적인 감각만을 우위에 두고
끝없이 몰두하는 욕심에로,광란의 타락에로 몰락해 갑니다.
온 우주는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으며
온 우주를 자기 것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한 칼날을 만들고
자신의 것을 보호하기 위한 집단을 만들고
타인의 것을 빼앗는 것은 자연의 섭리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실낱같이 아주 여린 많은 생을 짓밟아
배고픈 동물은 힘이 강한 동물에게
그저 먹잇감이 되고 맙니다.
배가 불러도 더 배를 불리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인간 동물은
자신의 배를 두둑히 채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광활한 우주의 무한한 표류를 버리고
자신만의 배에 정박하여 낮고도 험한 정신을
멈추지 않으며 미친개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 자연의 하늘 아래 돌아갈 대지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습니다.

상실의 절망을 환상의 횡단으로 [시대와철학]

김성우(한국철학사상연구회 ⓔ 시대와 철학 편집위원장)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의 10년간을 상실의 시대로 규정하고 집권한 뉴라이트 계열의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10년간이야말로 진정한 상실의 시대가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뉴라이트는 기존의 보수주의보다 신자유주의적인 시장 만능주의를 지향하며 대기업과 금융자본에 유리한 정책을 추구하는 새로운 보수주의이다. 뉴라이트의 이러한 면모는 MB의 “기업 하기 좋은 나라”, 박근혜 대통령의 신탁적 표현인 “규제는 암 덩어리”라는 말로 대변된다.

 

MB 정부는 뉴타운 열풍으로 대표되는 부동산 투기 붐이 만든 환상적 매트릭스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매트릭스는 초거대 인공지능이 광대한 컴퓨터 네트워크로 만든 가상 세계에 대한 명칭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매트릭스는 인간의 생체 에너지를 전원으로 이용하기 위해 인간을 배터리로 만들었다. 결국, 이러한 설정은 매트릭스가 인간의 욕망에 의해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온 국민의 부동산 욕망이 MB 정부를 지탱하는 에너지였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환상을 연장하고 싶은 노장년층과 보수층의 욕망으로 지탱되고 있는 매트릭스였던 것이다. 물론 인간 박근혜는 생물학적인 존재자로서도 아니며 검증된 사회적인 인물로서도 아닌, 영화 <향수>에 나오는 절대 향수와 같은 숭고한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 영화에서 절대 향수는 욕망의 원인이 되는 대상이다. 다시 말해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그것이다. 즉, 스타 철학자 지젝이 정신분석학자인 라캉의 말을 빌려 표현한 ‘오브제 프티 아’(작은 대상 a)인 것이다. 지젝 식으로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통령 후보로서의 박근혜는 도올 선생이 그렇게나 외친 스펙을 통한 지도자로서의 능력 검증을 거칠 필요가 없으며 생물학적인 여성이라는 한계와도 무관한 환상적인 매트릭스가 된다. 물론 이러한 매트릭스를 만들고 확장하는 데에 새누리당과 아울러 보수 언론과 보수 인사들이 지대하게 기여했다. 다시 말해 이들이 공모하여 자신들의 권력 연장을 위해 MB 정부의 실정에 실망한 국민에게 새로운 환상의 매트릭스를 제공한 것이다.

 

이러한 환상의 매트릭스는 처음부터 대단히 깨지기 쉬운 연약한 것이어서 이를 방어할 방패막이 필요했다. 그래서 종북과 안보는 현 정권의 마법적인 부적이 되었다. 이 부적을 내세워 국가의 공익과 국민의 안전은 뒤로 한 채, 권력의 사유화가 극도로 진행되어 국가 시스템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로 인해 국가 시스템이 심각하게 마비되고 현 정부가 극도로 무능한지가 드러났다. 이로 인해 국민은 국가의 부재를 느끼며 ‘각자도생’이라는 웃기도록 서글픈 신조어가 탄생했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서 옥시 같은 회사의 가습기 살균제로 소중한 아이들이 죽어가도, 폭스바겐 같은 회사의 연비조작으로 환경이 오염되더라도, 대기업의 이윤을 위해 차별과 착취의 비정규직이 늘어가더라도 정부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구나 세월호 사건 때나 농민 백남기 님의 죽음 앞에서 실제로 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한, 궁극적인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이나 실무 책임자들도 유가족과 국민에게 슬픔과 책임감을 표하기는커녕, 책임 회피를 위해 비정한 태도로 사건을 조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알아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드디어 최순실과 관련된 박근혜 대통령 게이트가 터지면서 온 국민이 설마설마하면서도 마주하고 싶지 않던 현 대통령의 트라우마적인 리얼한 민낯에 직면하고 말았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이 매트릭스에서 분리되어 인간이 배터리가 되어 매트릭스에 봉사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것처럼 말이다.

 

지젝은 이를 ‘리얼(실재)이라는 사막’이라고 부른다. 그 뜻은 환상에서 깨어날 때 만나게 되는 진실이 트라우마를 일으킬 정도로 무의미한 폭력적인 야만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정신분석학에서 치유란 환상에서 벗어나 불편한 진실인 자신의 무의식적 욕망을 용기 있게  대면하는 것이다. 지젝은 여기서 더 나아가 환상의 횡단과 아울러 프레임의 재구성이나 변형을 추구한다. 환상은 주체의 욕망을 유지하는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지젝에 의하면 현실이란 리얼한 것이 아니다. 현실이란 환상의 프레임을 바탕으로 인간에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이 그동안 숭고한 대상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바라본 것은 우리 자신의 욕망이 투영된 현실인 것이다. 그런데 환상을 제거해버리면 현실까지 상실되고 만다. 아마도 지금 우리 국민이 느끼는 ‘상실의 시대’는 이러한 상태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환상은 제거가 되지 않는다. 횡단이 요구된다. 환상을 횡단하는 것은 헤겔 식으로 표현하면 부정적인 것을 감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환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려면 욕망의 원인대상을 먼저 상실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는 ‘오브제 프티 아’(objet petit a)라는 숭고한 대상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포기가 부정의 과정이다.

 

본래 상실이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을 의미하므로 슬픈 사건이다. 상실의 시대란 국가 시스템이 마비되어 국가가 더는 국민의 안전망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통치 권력의 무능이 드러나고 통치자의 권위가 사라짐과 아울러 국민이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한숨짓고 절망하는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상실이 부정적인 것이라고 해서 절망한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의 배신과 몰락을 경험한 구 유고슬라비아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토대로 상실을 순전히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이러한 상실의 부정성을 견디며 박정희 시대라는 환상을 횡단하고 환상의 기존 프레임을 다시 변혁하고 재구성해야 함을 지적한다.

 

숭고한 대상으로서의 박근혜 대통령과 그 리얼한 사막인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과 관련된 기존 제도와 국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누가 권력을 잡을 것인가라는 프레임에 지배받지 않고 앞으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통치의 방향과 이념을 정립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박근혜 대통령과 박정희 시대라는 숭고한 대상에 대한 포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마침 그 숭고한 대상의 민낯이 드러난 이상, 이에 공모한 공모자들에 대한 준엄한 사법적 처벌과 역사적 심판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인 과제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기존의 숭고한 매트릭스의 배터리인 우리의 욕망을 포기해야 한다. 서구화의 욕망, 상업화의 욕망, 부동산 투기의 욕망, 승자독식의 욕망, 차별적 구별 짓기의 욕망 등을 포기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상실의 시대가 꼭 나쁘지는 않다. 박근혜 정부는 우리의 뉴라이트적인 욕망이 공모한 환상의 매트릭스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상실된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이랴! 이제 문제는 뉴라이트라는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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