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의 항구: 에피쿠로스의 『쾌락』 – ① [내게는 이름이 없다]

즐거움의 항구: 에피쿠로스의 쾌락

 

글: 행길이

 

편견과 오해

 

시아파와 수니파가 구분되지 않고 이황과 이이가 헛갈리듯이,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은 늘 퀴레네 학파의 쾌락주의로 오인된다. 그래서 에피쿠로스는 ‘돼지들의 학교’를 만들어 경건한 삶을 조롱하고, 쾌락의 교리를 유포해 인간을 타락시킨다는 루머에 시달리곤 했다. 그의 쾌락주의를 말할라치면, 어떤 사람들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도덕적 결계’를 치는가 하면, 다른 이들은 금새 얼굴이 불그레지면서 ‘철학적 야설’을 기대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지만 -벌써부터 재미적어지는데- 에피쿠로스는 야하지 않다. 그는 난봉꾼의 성자라기보다는 정결한 수도자에 가깝다. 물론 그가 인생의 목표를 쾌락에 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쾌락이란 말초적인 게 아니라 기품있는 안락이다. 그는 말초적 쾌락의 어둠에 탐닉하기보다는 빛나는 정신의 안락 속에서 생을 완상하는 것을 권고하였다. 그런 까닭에 루크레티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는 인간의 실존을 수많은 [고통의] 폭풍과 암흑에서 끌어내어,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온 속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빛의 세계 속에 정착시켰다.”

 

 

고통과 가난

 

에피쿠로스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했다. 그는 일생 동안 극심한 위장 장애를 앓았으며(하루에 음식을 두 번씩 토하곤 하였다), 오랫동안 방광염에 시달리다가 결국 심한 결석 질환으로 인해 절명했다. 너무나 병약한 나머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지내야만 한 적도 많았다. 육체적 고통에서 자유로운 적이 거의 없었던 그였기에 쾌락에 대한 의지는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고통에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의 시간 속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단서로 진정한 쾌락을 추구하였다. 세속의 관점에서 보자면 질병과 가난의 고통을 면치 못하다가 끝내 죽음을 맞이하는 삶에서 행복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죽음에 직면하는 인간의 심정이란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삶과 작별’해야 하는 진한 아픔으로 어지럽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사멸의 순간에서도 평상심을 잃지 않고 행복의 기쁨을 발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늘이 내 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 나의 마지막 날이라네. 방광염과 위장병의 고통은 여느 때와 같이 격심하기 이를 데 없지만, 자네와 나누었던 대화의 순간을 떠올리면 어느새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는 게 아닌가(이도메네우스에게 보낸 편지).”

 

그를 괴롭히던 신체적 고통은 치료가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피할래야 회피할 수도 없고, 수단을 통해 제거할 수도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격심한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그것에 집착하여 마음이 흔들리도록 놔두지 않고 그것이 지나가도록 의연히 기다린다면, 어느덧 다른 육체적 쾌감에 의해 그 고통에서 놓여나게 된다. 에피쿠로스가 병마의 고통에 시달릴 때 불현 듯 경험하는 싱그러운 바람과 향긋한 공기, 그리고 갈증과 허기를 채워주는 한모금의 물과 한조각의 빵은 그 어떤 약과 성찬이 주는 쾌감보다도 컸을 것이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고통에서 해방되는 데에는 그러한 소박한 쾌감으로도 충분했다. 그래서 그는 신체의 단순한 필요, 기초적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얻게 되는 쾌감 이상의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 누구나 한번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우리가 겪는 고통이 그 정도의 것이라면, 우리는 충분히 그것을 견뎌낼 역량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고통의 순간에만 집착하지 말고 다가올 쾌락을 기다리는 의연함과 용기일 것이다.

 

“고통은 육체에 지속적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가장 심한 고통은 아주 잠시 머물며, 쾌락을 능가하는 육체적 고통도 여러 날 지속되지 않는다.”

 

고통이 잠시 잦아들 때 우리는 얼마간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순간은 고통에 의해 어지럽혀졌던 우리의 몸과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 에피쿠로스는 고통을 경유하면서 맛보게 된 이 쾌락의 순간을 고요히 되새겨본다.

 

“성숙한 사유는 내게 주어진 육체의 한계와 궁극적 목적을 곰곰이 생각하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완전한 즐거움의 삶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고통에 대해 사유한 그는 고통을 단지 고통스럽다 여기지 않고 오히려 쾌락의 전조로 전환시킨다.

 

“우리는 많은 고통들이 쾌락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고통을 참으면 더 큰 쾌락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인내의 미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에피쿠로스의 이 말은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식의 무조건적 인내를 강조하는 교리로만 해석되어서는 곤란하다. 그가 강조한 것은 고통의 순간을 쾌락을 맞이하는 과정으로 전환시키는 능동적 사유태도이다. 쾌락은 고통이 있을 때 더욱 크게 느껴진다. 엄청난 목마름과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을 때 먹게 되는 한 모금의 물과 한 조각의 떡은 진수성찬을 능가하는 쾌감을 선사한다. 기아와 갈증의 고통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소찬의 지극한 쾌락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고통은 쾌락을 가능케 해주는 조건이다. 그러므로 고통이란 고통스럽지만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능동적 전환을 통해 우리는 회피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쾌락을 발견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가난에 대해서도 우리는 같은 논리를 전개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는 가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가난은 큰 부이다. 반면 무제한적인 부는 큰 가난이다.”

 

가난이 커다란 재산으로 여겨질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소소한 기쁨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허안화 감독은 『황금시대』에서 국공내전기 요절한 중국의 작가 샤오홍과 그의 연인 샤오쥔이 살아가던 하얼빈 시절을 묘사하였다. 이들은 한겨울에 난방도 되지 않는 셋집에서 이불도 없이 밤을 지새우고, 빵 한 덩이로 끼니를 때우는 곤궁한 삶을 살아갔다. 그런 그들에게 얼마간의 저녁 외식을 할 수 있는 돈이 생겼다. 장터 허름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참으로 풍요로워 보였다. 가난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 가난을 단순히 고통으로만 여기고 살아갔다면 소액의 돈이 선사한 커다란 부는 결코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재신이 너무나 많게 되면 일상의 소소한 물질적 행운에서 지극한 쾌락을 얻기란 쉽지가 않다. 오히려 재부를 지키는 데에 전전긍긍하고 손해에 동요하는 일이 많다. 결과적으로 가난한 자가 부자보다 부에서 오는 쾌락을 느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에피쿠로스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남긴다.

 

“가장 큰 부를 소유함에 의해서도, 사람들에게 명예와 존경을 받음에서도, 그리고 한없는 욕망으로부터 생기는 다른 어떤 것들에 의해서도, 마음의 동요가 끝나지 않으며 진정한 기쁨이 생기지도 않는다.”


2편에서 계속… 아래 ⇓

[신간 안내] 『단기 20세기-중국 혁명과 정치의 논리』(왕후이 지음, 송인재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7월 12일 발간)

진관타오(金觀濤), 왕단(王丹), 쉬지린(许纪霖), 자오팅양(赵汀阳) 등 중국 현대 사상가들의 책을 활발히 번역해왔고 한철연 한국현대철학분과에서 활동 중인 송인재 회원이 얼마 전 왕후이(汪暉)의 책 『단기 20세기』를 옮겨 썼습니다. ‘중국 혁명과 정치의 논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아시아는 세계다』(2011), 『절망에 반항하라(왕후이의 루쉰 읽기)』(2014) 이후 송인재 회원의 세 번째 왕후이 저서 번역서가 되겠네요. 역자는 중국 ‘신좌파’의 이론적 리더 왕후이의 사상을 10가지 키워드로 잘 알 수 있게 정리한 『왕후이』(2018)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이번에 번역한 왕후이의 책은 중국의 20세기를 근원적으로 재사유한 그의 사상적 역작으로 그 내용이 기대됩니다. 이 책의 출간 이후 역자의 중국, 또는 동아시아 현대 사상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역자의 후기(옮긴이 말) 중 일부를 통해 이 책을 미리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후기를 보내주신 역자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역자 후기

 

    이 책은 왕후이가 2000년부터 2018년까지 ‘20세기 중국’을 주제로 집필한 논문, 강연 및 발표원고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대다수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쓴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2010년 『아시아는 세계다』(원제 亞洲視野)에서 ‘트랜스시스템사회’ 개념을 제안한 이후 형성된 왕후이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6장)과 2004년(5장)에 발표한 원고도 수록되었음은 왕후이의 문제의식이 오랜 기간 이어져왔음을 보여준다. 한국어판에는 저자의 요청으로 홍콩 옥스퍼드판이 출판된 이후 2017년과 2018년에 집필한 원고를 서문과 1장으로 삽입해서 책 전체를 아우르는 문제의식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취지는 제목인 ‘단기 20세기: 중국 혁명과 정치의 논리’에 압축되어 있다. 일단 논의 대상이 되는 시기는 20세기다. 여기에 단기를 붙임으로써 사전적 의미에 따라 기계적으로 100년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세기’의 시대 구분을 거부한다. 단기로 규정한 중국의 20세기는 1911년 무렵부터 1976년까지다. 이 두 해에는 각각 신해혁명이 발발했고 문화대혁명이 끝났다. ‘혁명’은 이 시기의 시세를 규정하는 개념이다. ‘정치’는 단기 세기를 혁명의 시대로 만드는 역사적 행위다. 더 나아가 ‘정치’는 저자가 단기로 규정한 20세기 중국을 조망하는 작업에 의미와 생명력을 부여할 규범적 행위로도 자리 잡는다. 중국은 혁명의 시세가 발생한 장소이면서 국경 내에만 한정된 장소가 아니라 세계체제의 지정학이 전개되는 장소이자 20세기의 시세와 행위를 사유하는 장소다. 따라서 이 책은 시간과 장소를 미리 설정하고 해당 시기의 사전을 서술한 편년사가 아니다. 세기, 중국, 혁명, 정치의 의미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성찰하고 재정의하며 새로운 논리를 제시하는 사상서다. 대표적으로 저자는 세기 자체가 20세기 중국에도 이물이고 그 자체가 그 이전 시대부터 적용된 개념이 아니라 20세기의 발명품이라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세기는 정확히 그 의미가 20세기만 적용된다. 이러한 세기/20세기는 그 자신을 이전 시대와 구분하고 새로움으로 스스로를 정의한 한 ‘근대’와 성격이 같다.

    제목에는 없지만 저자의 문제의식을 대변하는 핵심 개념은 ‘문화’다. 책에서 저자는 문화와 정치의 연관을 수차례 강조한다. 여기서 ‘문화’는 20세기 중국의 정치 행위의 성격을 규정하는 속성이자 정치적 실천의 목표이고 앞으로 정치의 생동감을 유지·강화하는 동력이다. 역사적으로 단기 20세기의 초반과 후반에 ‘신문화운동’과 ‘문화대혁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기표만 같을 뿐이다. 둘에서의 문화는 성격도 다르고 저자의 취지도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 대신 20세기 중국에서 문화는 20세기의 새로운 중국을 만들려는 행위 전체를 대변한다. 따라서 문화는 20세기 중국 혁명의 논리가 혁명을 구성하는 좁은 의미의 정치, 국가, 정부, 계급의 권력 행위를 뛰어넘는다. 왕후이는 그러한 사유의 근거와 자원을 1910년대 문화논전과 1960년대의 대중노선 등에서 광범위하게 찾는다. 이렇게 문화가 개입한 정치에서는 청년 문제, 여성 해방, 노동과 노동자, 언어와 문자, 도시와 농촌 등의 문제가 ‘문화’의 범주로 들어와서 정치를 창조의 영역으로 만드는 정치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정치화를 이루고 발전시키는 현실의 동력은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실천의 경험이 남긴 대중노선과 대중운동이다. 왕후이는 2012년에 『문화종횡』의 ‘문화 자각’ 특집에 발표한 글에서 문화적 자각을 ‘현재의 발전모델과 이데올로기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세계의 서막을 여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문화 자각의 대상은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발전모델, 신자유주의다. 따라서 왕후이는 일관되게 ‘문화’를 현실에 개입하고 현실을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사유한다. 이런 논리에서 ‘문화’는 정치, 경제로의 종속에서 해방되고 오히려 이들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하고 긍정적 진로를 구축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문화를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는 영역으로 사유하는 동안 기존 관념에서 정치의 주된 행위와 계기, 행위자로 여겨진 요소들은 비판받는다. 그것은 바로 정당, 국가 그리고 본질주의적으로 경직된 계급이다. 이들 기존의 정치적 요소가 범한 잘못을 왕후이는 탈정치화라고 지목한다. 탈정치화란 “정치활동을 구성하는 전제와 토대인 주체의 자유와 능동성에 대한 부정”이고 “특정한 역사적 조건 아래서 정치 주체의 가치, 조직구조, 지도권의 해체, 특정한 정치를 구성하는 대결 관계를 전면적으로 없애거나 이 대결 관계를 비정치적인 허구적 관계 속에 놓는 현상”이다. 탈정치화도 정치 형식의 일종이지만 문화와 상호작용하며 활력을 띠는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20세기 중국에서 탈정치화의 사례는 광범위하게 지적된다. 문화대혁명에서 파벌투쟁으로 변질된 대중운동, 개인숭배, 문혁 종결 이후 중국의 1960년대에 대한 부정과 외면, 개혁개방기 중국 사회 구조의 줄기를 이룬 현대화, 시장화, 세계화, 발전, 성장, 소강小康, 민주 등 개념들, 혁명과의 고별,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노동자·농민계급 주체의 소멸, 국가와 그 주권 형태의 전변, 정당정치의 쇠락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흔히 정치행위의 핵심으로 간주되는 파벌투쟁과 이것에 잠식된 문화대혁명을 탈정치화의 사례로 지목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정치에 대한 왕후이의 독특한 해석에서 비롯한다.

  앞서 말했듯 탈정치화를 초래한 주범은 기존 정치 영역의 핵심 요소들이다. 그중에서 왕후이는 정당과 국가를 지목한다. 그 이유는 정당운동이 사회적 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국가, 정부와 거의 동일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 형식과 정치 형식의 탈구는 ‘대표성의 균열’로 개념화한다. 이는 선거를 기반으로 한 서구의 정당과 노동자 정치를 표방한 중국 모두에 해당한다. 대표성 구현 대신 국가 권력 획득에만 관심을 두고 국가와 정부의 메커니즘이 정당정치를 점차 잠식하는 현상을 ‘정당의 국가화’라 정의한다. 그리고 중국의 정치적 특징으로 지목되는 ‘당-국 체제’가 실질적으로는 ‘국-당 체제’라고 비판한다.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는 재정치화와 포스트 정당정치를 제안한다. 재정치화는 문화와 정치가 결합하면서 그 싹을 틔우고 정치 공간과 정치 생활을 활성화함으로써 구현된다. 그 과정에서는 현대 자본주의 내부의 모순과 불균형에 관한 재분석이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이처럼 재정치화 논의는 정치 개념과 중국 현대사에 대한 재해석을 수반한다.

    왕후이는 평등 개념을 재정치화 논의의 논제로 추가한다. 여기서는 기존의 평등 개념을 기회, 분배, 기본능력의 평등으로 구분하고, 이 개념들이 모두 자본 논리의 ‘물화’ 경향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뒤이어 평등 개념을 재구성할 수 있는 사상 자원으로 장타이옌의 ‘제물평등’을 제안한다. 제물평등은 불교 유식학과 장자 제물론을 활용해서 형성된 평등관이다. 제물평등의 핵심 가치는 사물의 기계적 균일화를 지양하고 차이를 기계적으로 없애는 것이 아닌 사물 각자의 차이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사물의 독특성과 독립성을 전제로 하고 이를 그대로 보전할 것을 지향한다. 또한 제물평등의 범위는 인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을 자연사의 내부에서 관찰해서 인간과 사물의 일방적 통제 관계를 해소한다. 이러한 제물평등을 실현한 현실적 계기로는 인류와 사물의 동등한 관계를 지향하고 발전주의에 대항하는 생태주의, 차이평등을 실현하는 민족·지역 자치가 거론된다. 제물평등의 차이평등을 실현할 사회체제로는 왕후이가 예전에 제안한 트랜스시스템사회가 제시된다. (본문 969~974쪽)

 

    왕후이는 위와 같이 20세기를 사상 대상으로 삼아 혁명시대의 역사적·사상적 유산을 점검하고 능동성과 주체성을 갖춘 정치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지향을 드러낸다. 정치성의 복원을 위한 사상적 상상력은 19세기에 서구에서 들여온 서구사상을 참조하면서도 그 범위를 뛰어넘은 근현대 사상의 유산에서 가져온다. 이는 1980년대부터 왕후이가 그 사유의 싹을 틔운 근대에 맞서는 근대의 이념과 연관된다. 신자유주의 체제 비판은 1990년대부터 이어진 정치적 문제의식의 연장이다. 현대 중국의 역사적 기억 위에서 제국주의, 냉전, 신자유주의 세계체제를 성찰하는 작업은 아시아 역사를 통해 세계 역사의 문제를 포착하고 그 역사상을 재구성하고 21세기 신제국 질서와 논리를 극복하고자 한 『아시아는 세계다』의 문제의식을 잇는다. 이 책에서는 세계사 속에서 중국 역사가 갖는 독특한 성격과 의미를 좀더 부각시킨다. 20세기 중국의 정치와 혁명의 경험은 신자유주의, 서구의 19세기식 사상과 체제를 초월하는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사유를 거쳐 왕후이는 중국의 단기 20세기가 홉스봄의 단기 20세기와 다르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홉스봄의 단기 20세기는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일련의 실패로 구축된다. 반면 중국의 단기 20세기는 자신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분투한 시기로 능동적 정치성의 유산을 남긴 시기다. 굳이 유럽과 비교하자면 19세기에 비견되는 ‘독립되어 있고 명명하기 어려운 시대’다. 이런 맥락에서 왕후이는 “20세기의 문화적·정치적 유산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단순히 이미 철 지난 실천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품은 보편성이나 미래의 잠재력을 발굴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사상작업의 의미를 밝힌다. (본문 975~976쪽)

 

 

    한중수교 이후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 정서는 현재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최근 몇몇 기관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반중정서가 막연한 비호감을 넘어서 극단적인 혐중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냉전의 잔재를 악용한 정파적 선전, 황사·미세먼지, 불법조업, 한한령, 혐한, 코로나19, 역사·문화 분쟁(일명 동북·김치·한복 공정) 등 일상적인 경험들의 축적이 비호감 정서를 키웠다. 그리고 이런 정보들을 의도적으로 과장되고 편향된 논조로 유통한 SNS와 정파적 행위가 크게 한몫했다.

그런데 일그러진 중국 인식은 일상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학술적 논의의 장소에서도 유통되는 중국 인식도 현실의 중국과 동떨어진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민족주의적 논조를 차치하고라도 중국에 관련된 토론에서는 연구 주제가 무엇이든 간에 공통적으로 중화주의, 국가주의, 전체주의 등의 혐의를 담은 질의들이 곧잘 등장한다. 그런데 이런 질의에서 언급되는 중국은 현실의 중국이 아니다. 이 질의들에서 말하는 중국은 냉전시대의 중공, 조공체제 시대의 중국, 사회주의 시기와 개혁개방 초기의 빈곤한 중국, 그리고 멀게는 공자와 주희의 중국이다. 이때의 중국은 공산당, 독재, 황제, 노예 상태의 백성이 버무려진 관념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방향에서는 이른바 ‘성현의 말씀’이 신성화되고 그 ‘말씀’의 고향에서 분리되어 수시로 잡다한 유행들과 무매개적 접속을 시도한다. 문제는 이런 질의들이 제기되면 토론을 통해 빈약한 토대가 해소되고 인식이 수정되기보다는 ‘답정너’ 식으로 제기되어 기존의 편견을 확인하고 굳히는 방향으로 논의가 흘러가는 데 있다. 이런 식의 논의는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 확신과 만족, 위안만 확인할 뿐이다. 물론 현재 우리는 많은 중국 전문기관과 연구자의 노력을 활용하거나 네트워크 인프라를 활용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중국의 동향, 중국 내 인사의 견해를 접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인문학과 일상, 정파적 정략의 영역에는 여전히 현실의 중국과 관념 속의 중국의 괴리가 상존하고 재생산되고 있다. (본문 977~978쪽)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하고 건국 100주년 중국몽 실현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지금 사상계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어떤 역할을 할지는 계속 주목할 사안이다. 사실 중국 정부에서 내세우는 100이라는 숫자는 현실의 발전단계와 실질적 연관이 있지는 않다. 사전적으로는 100이라는 숫자는 세기와 더 연관이 깊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세기를 장기 혹은 단기로 부르며 세기와 100의 연관을 실질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따라서 숫자에 불과한 몇 주년을 내세워 흐름을 주도하려 할수록 기념의 껍데기를 벗겨버리고 역사적 흐름의 내막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시대를 20세기 이후의 새로운 시대로 규정할지 20세기를 단기로 끝내지 않고 그 속성을 이어갈지는 아직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그것은 현재의 사유와 실천이 결정할 것이다. 이런 시대의 역사성을 인지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에 대한 냉정한 성찰과 현재의 시공간에 대한 심층적 통찰, 그리고 서로 다른 장소에서 차이와 공통점을 공유하는 이들과의 생산적이고 개방적인 소통이다. 향후 각국 지식인의 힘 있고 생생한 목소리를 매개로 이러한 사유와 대화가 지속되기를 고대하며 이번 번역 작업을 갈무리한다. (본문 980~981쪽)

 

2021년 6월

송인재


 

한겨례 신문 서평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05808.html

[신간 안내] 『역사와 자유의식: 헤겔과 맑스의 자유의 변증법』(안드레아스 아른트 지음, 한상원 옮김 | 에디투스 | 2021년 6월 30일 발간)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 아우구스티누스, 맑스, 벤야민. 역사철학과 세속화에 관한 성찰』(2018)과 번역서 『아도르노, 사유의 모티브들』(2020), 그리고 『현대 정치철학의 네 가지 흐름』(2019) 등 여러 공저를 펴내면서 활발한 학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철연 한상원 회원의 신간 번역서를 소개합니다. 이 책은 한상원 회원의 박사 학위 논문 어드바이저로, 독일 68혁명 세대의 대표적 지성이며 헤겔 연구의 권위자인 안드레아스 아른트(Andreas Arndt) 교수의 책을 번역한 것입니다. ‘자유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헤겔과 맑스의 사상을 전면 재구성하는 작업을 담은 이 책은 헤겔-맑스주의 연구의 새로운 지평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역자의 노력으로 한국 지성계에 이 책이 소개되어 매우 반가운 마음입니다. 아래 옮긴이의 말로 책 소개를 대신합니다.


 

옮긴이의 말

 

이 책은 안드레아스 아른트의 책 Geschichte und Freiheitsbewusstsein. Zur Dialektik der Freiheit bei Hegel und Marx (2015)을 우리 말로 번역한 것이다. 서문에도 나와 있듯이, 『역사와 자유의식』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루카치의 기념비적인 저작 『역사와 계급의식』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루카치는 그의 책에서 정통 맑스주의의 기초를 맑스의 변증법적 ‘방법’에서 찾으며, 이를 통해 헤겔과 맑스의 변증법을 결합하는 ‘헤겔 맑스주의’의 노선을 정립하였다. 이러한 루카치의 헤겔 맑스주의는 이후 서구 맑스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1950년대 이래로 ‘인간주의적’ 맑스 해석이 등장하는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루카치의 헤겔 수용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것은 의식의 변증법이었다. 즉 루카치의 물음은 프롤레타리아 의식이 어떻게 부르주아적 주객 이분법과 사물화를 뚫고 변증법적으로 새로운 총체성에 도달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루카치의 헤겔 맑스주의는 이후 알튀세르 학파에 의해 강력한 도전을 받기도 했다. 알튀세르는 루카치와 인간주의 경향의 맑스 해석을 비판하면서 탈주체, 구조, 이데올로기, 무의식, 인식론적 절단과 같은 범주들을 도입하였으며, 특히 헤겔 변증법의 표현적 총체성과는 다른 맑스의 독자적 변증법을 강조했다. 그 이래로 이 두 학파 사이의 논쟁이 헤겔과 맑스의 관계를 둘러싸고 수십 년간 지속되었다.

이 책의 저자 안드레아스 아른트 역시 헤겔 맑스주의자다. 그러나 그의 헤겔 맑스주의는 루카치의 그것과 상이한 관점을 취하고 있다. 루카치 이래 전통적으로 헤겔 맑스주의는 변증법적 방법을 툴러싸고 헤겔과 맑스를 비교하는 관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아른트는 헤겔과 맑스를 결합하는 심급을 이동시킨다. 그에 따르면, 헤겔과 맑스는 ‘개인적 자유’의 실현이라는 관점 속에 새롭게 결합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 자유를 보장할 법/권리의 차원에서 대안적 포스트 자본주의 사회가 논의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맑스의 『자본론』과 비교해야 할 헤겔의 저작은 변증법적 방법을 다루는 『논리학』이 아니라, 자유의 현존재로서 법과 국가 공동체에서의 인륜성을 다룬 『법철학』이 될 것이다.

저자 아른트의 이러한 독특한 헤겔 맑스주의 사유는 새로운 논쟁의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맑스 텍스트에서 청년기 저작과 성숙기 저작의 관계, 헤겔과의 관계를 둘러싼 루카치 학파와 알튀세르 학파의 대립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연구해왔는데, 반면 이를 넘어 ‘자유’의 관점에서 어떻게 헤겔과 맑스가 비교 연구대상이 되는가에 관해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이 책은 기존의 관점을 넘어선 새로운 시각의 헤겔 맑스주의의 가능성을 논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헤겔과 맑스 모두가 역사적으로 받아왔던 비난, 즉 개인이 아닌 전체의 관점에서 사고하며 이로 인해 전체주의나 관료독재를 정당화했다는 시선에서 벗어나, 개인적 자유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두 사상가를 결합시키려는 과감한 시도를 감행하고 있다.

저자 안드레아스 아른트는 베를린 자유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를 거쳐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신학부의 철학 담당 교수를 역임했으며, 나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이기도 했다. 나는 아도르노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아른트 교수의 도움으로 헤겔과 맑스의 변증법에 관한 심도깊은 논의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부족한 나의 논문을 성심껏 지도해주신 안드레아스 아른트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이 부족한 번역에도 불구하고 독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논쟁들을 촉발하길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출판해주신 에디투스 출판사의 연주희 대표님께도 감사 인사를 드린다.

 

사진출처: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733124&start=pnaver_02

한겨례 신문 서평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06678.html

 

 

무너지는 패턴과 수신인 미상 / 나의 다이애나에게 [유운의 전개도 접기]

    무너지는 패턴과 수신인 미상

 

이유운

 

들립니까? 말하겠습니다

지금은 계속해서 무너지는 중입니다

괴기하고 아름다운 모양으로 무너지는 저를 구경하러 사람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아주 많이요

다들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나에게는 좀 우습기도 해요

무너지고 나면 나는 더 이상 금이 갈 수가 없으니 내가 여기서 가장 단단한 존재일 텐데

나를 타고 넘어가는 연인들이 있습니다

내 핏줄을 우두둑 뜯어내며 철골로 된 반지를 만들어주겠다고 속삭여요 “이건 끊어지지도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을거야”

다 거짓말이죠 제가 바로 그 증거니까

이상하게 나와 당신을 닮았어요 그 연인들

서로를 부르는 이름을 듣고 싶은데 이름 없이 입만 맞추고 있어요 그 축축하고 슬픈 소리…….

무너질 때 우는 건 부끄럽고 못된 일이라서 입술 안 쪽을 꼭 깨물고 있어요 비린내가 나요 뭔가를 잡아 먹은 사람처럼

당신은 나에게 왜 이렇게 자주 무너지고 있느냐고 물었었지요 부스러기와 먼지가 너무 많이 날린다고 코를 풀면서 무너지는 나 때문에 비염이 도무지 낫지를 않는다고

그냥 그런 거 있잖아요, 나도 낫지 않는 병이 있을 수도 있고

내가 그런 병일수도 있고

있고

없고

방금 무너지고 있는 나의 가장 내밀한 곳으로 연인들이 들어와 앉았어요

서로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는 그래, 이런 곳이 필요하지

나는 귀를 기울이는데 내가 무너지는 소리가 너무 커서 잘 들리지가 않아요

마지막 연인 같아, 부럽다 우리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우리도 무너지는 누군가 안에 들어 앉아서 서로 이름을 최초로 부르고 좋아하는 색깔을 물었어요 그거 엄청난 비밀이잖아요, 당신은 파란색을 좋아한다고 했고

눈을 감았다 떠요 그때 눈동자가 파란색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깨지기 쉬운 유리 거품처럼

거품 바깥으로 연인을 봐요

우리가 함께 모욕하고 돌 던질 수 있는 유일한 과거

그런데 그 때 우리가 앉아 있던, 무너지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이제야 이런 게 궁금하다니 나도 참 못됐어요 물론 당신도 마찬가지

우리는 닮았으니까

입술을 뒤집고 네모난 이를 모두 드러내 보여줘요

나는 그렇게 웃을 줄 몰라서 일부러 입술을 누르는 그 장난이 좋았어요

이렇게 웃을 때 뭔가가 한꺼번에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납니다

푸른 소리

들려요?

이 소리가 부럽고 궁금했지요?

내가 무너져야 이런 소리가 납니다

이제

다 무너졌습니다

도망쳐도 좋아요

또 편지할게요

 

 

 

  

나의 다이애나에게

 

 

    잠깐 인천에 살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동네 근처에는 해체 작업 중인 건물들이 많았다. 삼사층 짜리의 작은 빌라들을 부수고 아파트들을 짓는 작업이 한창이었기 때문이었는데, 어린 내가 다 알 수 없는 이유들 때문에 공사는 빨리 진행되지 않았다. 나는 그 황폐한 풍경이 좋았다. 도시 한복판에 시간이 멈춘 것처럼 황량하게 뼈를 드러내고 있는 건물들. 나는 반쯤 무너진 건물들이 아무것도 입지 않은 사람 같았다.

    그런 건물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아지트가 되었다. 어느 건물에 들어가도 바닥에는 본드와 봉투, 그리고 브랜드가 다른 몽당만한 담배 꽁초들이 어지럽게 버려져 있었다. 손톱보다 짧아진 담배 꽁초를 보면서 나는 신기해했다. 이렇게까지 짧게 태운 담배는 처음 본다. 나는 아빠나 삼촌이 버리는 담배보다 훨씬 짧은 담배 꽁초들을 보면서 그 꽁초에 입술을 댄 사람을 상상하기도 했다.

    나는 보통 햇빛이 사선으로 들어오는 오전 즈음에 그런 건물 안에 들어가 앉아 있는 걸 좋아했다. 조용했다. 내가 이 세계의 마지막 생존자 같았다. 그 때 읽은 책이 참 이상하게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 예를 들면 최승자의 ‘내 청춘의 영원한.’ 나는 이 시를 모두 외울 수 있다.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아무도 없는 무너진 건물의 뱃속에서 연극배우처럼 서서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 위로 햇빛이 내려앉았다. 간지럽고 따뜻했다. 세상이 멸망해도 햇빛은 여전히 따뜻할 거라고 생각하면 멸망이나 죽음 같은 것들이 두렵지 않았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나는 이 세 가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담배가 입술을 델 정도로 짧게 피우는 자들이 이런 세 가지 움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상상했다. 나는 어린 자가 그렇듯 그 세 가지 움을 가지고 있을 나를 상상했고 그 상상 속의 나는 언제나 사랑을 하고 있어서 좋았다. 그러니까 나는 비참한 어른이 되기를 꿈꿨던 것이다.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트라이앵글. 나는 그 발음을 좋아했다. 입이 쫙 벌어지는 그 발음. 나는 이 시를 외우고 무너지는 건물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부서지는 계단에 누워서 바나나 우유를 마시고 옥상 문 앞에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점심 즈음이 지나면 그 곳에서 나왔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살인마처럼 깊은 비밀을 간직한 것 같은 쾌감에 빠졌다.

    나는 그걸 ‘건물’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건물보다는 어떤 다른 이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이건 정말 처음 말하는 내 비밀인데,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 무너지는 건물에 ‘다이애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인천 부평구의 황폐한 건물에 멋들어진 아가씨 같은 ‘다이애나’라는 이름을 붙여준 이유는 그때 내가『빨간 머리 앤』을 열심히 읽었기 때문이다. 나는 끝에 e가 붙은 앤처럼 발랄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재주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꿈치 끝이 포동포동한’ 귀엽고 예쁜 친구인 다이애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갈까마귀 같은 검은 철골을 드러내고 있는 건물에 다이애나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가 나의 가장 친한 벗이라고 여겼다. 조금 부끄럽고 웃긴 일이다. 하지만 그건 멋진 일이었다. 나는 다이애나의 품 안에서 처음 시를 읽었다. 내가 막역하다고 생각하는 존재의 안에서 처음으로 시를 읽는다는 건, 아무튼 멋진 일 중에 하나니까 말이다.

    그리고 어른이 된 나는 이 때를 떠올린다. 어린 내가 함부로 꿈꿨던 비참한 어른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드러운 목에 대고 숨을 오래 그리고 느리게 쉰다. 어른이 된 나는 비참한 어른보다 이런 방식으로 숨을 쉬는 고대 생물이 되는 것을 꿈꾸기로 한다. 이것도 처음 말하는 비밀이다. 나는 최근에도 종종 다이애나의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자주 상상했다. 다이애나와 나는 함께 폐건물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곳에 숨어드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그들은 대부분 추방자들이다. 이방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같은 얼굴과 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사랑이나 젊음을 이유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려고 뛰어내린 자들이다. 나와 다이애나에게로. 나는 내가 쓴 것이 분명한 편지들을 그들의 어깨 너머로 훔쳐본다. 나를 이렇게나 멀리서 바라본다. 이런 것들이 보통 어른이 하는 일인지는 잘 모르지만 이런 것을 편지에 모두 적어 넣는 일은 어른의 일일 수 있다.

 


필자 이유운은 시인이자 동양철학도. 2020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서 <당신의 뼈를 생각하며>로 등단했다. ‘유운(油雲)’은 『맹자』에서 가져온 이름. 별일 없으면 2주에 한 번씩 자작시와 짧은 노트 내용을 올리려 한다. 유운의 글은 언젠가는 ‘沛然下雨’로 상쾌히 변화될 세상을 늠연히 꿈꾸는 자들을 위해 있다.

연효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장의 ‘철학과 비판(이종철 저서)’ 서평에 답함 “새로운 철학을 하는 계기가 되고 동력이 될 수 있기를…” [철학자의 서재]

연효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장의 ‘철학과 비판(이종철 저서)’ 서평에 답함
“새로운 철학을 하는 계기가 되고 동력이 될 수 있기를…”

 

이종철(연세대)

 

♦ 2021년 6월 12일 브레이크 뉴스(Break News)에 실린 이종철 박사의 기고 글(https://www.breaknews.com/813273)을 필자의 허락을 얻어 웹진 〈ⓔ 시대와 철학〉에 게재함을 알립니다. 게재를 허락한 이종철 선생님과 브레이크 뉴스에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연효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장(이하 필자)이 쓴 서평 “이종철 저서 ‘철학과 비판’-새로운 철학적 글쓰기를 향한 거침없는 도전?”은 저자가 주창한 에세이 철학을 반기는 목소리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이런 글쓰기가 오늘 날 전문화된 학계에서 생존이 가능할까라는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나는 전문적인 연구자의 입장에서 보이는 이런 반응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본다. 취지는 동의하지만 과연 그런 글쓰기가 현실적으로 -이른바 학계에서- 생존 가능할 수 있을까? 전문 연구자들이 이런 형태의 철학적 글쓰기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까? 이런 글쓰기의 의미가 무엇이고, 그것의 현실적 위상을 어떻게 자리 매김할 수 있을까? 이런 반응은 충분히 가능할 뿐더러 당연하기도 하다.

필자는 내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철학과 현실의 관계, 현실로부터 유리된 철학의 위상, 오늘 날 학자들이 행하는 일상적인 철학 활동이 오퍼상이나 고물상과 다르지 않느냐는 나의 비판에 대해 일정 부분 동의하고 있다. 이런 나의 문제 제기는 기존 철학자들에 대해 일종의 정체성을 요구하는 작업이고, 이런 물음을 통해 자신들의 철학 활동에 대해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정체성의 위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제기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서양 철학을 연구한다는 것의 의미, 현대의 한국에서 고대 중국과 한국의 철학을 연구하는 의미, 현실을 포괄하면서도 현실과 유리된 철학의 의미, 나아가서는 지금 이 땅에서 철학한다는 것의 의미 등등 오늘 날 우리에게 도대체 철학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유도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전문화된 논문 속에서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 그런 맥락에서 에세이 철학의 형식을 통한 문제 제기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철학은 늘 회의와 반성 그리고 비판을 통해 이루어지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나의 문제 제기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에세이 철학은 기존의 철학적 글쓰기에 대한 대안적 작업은 아니다. 다만 철학적 글쓰기가 한 방향으로 치우치다 보니 놓치고 있는 자유로운 철학의 정신을 되살리고자 하는 것이다. 내용이 그것을 드러내가 위해 적합한 형식을 요구하듯, 형식은 내용은 일정하게 규정하고 제한할 수 있다. 전문적인 논문은 논문대로 그 나름의 역할과 의미를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에세이 철학의 형식은 아카데믹한 글쓰기를 넘어서 다양한 주제들을 상대로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단 에세이 철학은 전문적인 철학의 테두리를 넘어 일상 속에서 얼마든지 철학의 문제들을 끄집어 낼 수 있으며, 주석에 대한 부담을 덜고서 얼마든지 자유롭고 현실 비판적으로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된다. 그 점에서 에세이 철학은 형식의 개방성을 열어 줄 수 있다. 이런 형식의 개방은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진행되어 왔던 철학적 글쓰기에 대한 보완적 형태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전문적인 철학 논문들과 달리 이런 글들이 실릴 수 있는 지면을 확보하기가 아직은 요원하다는 점에도 있다.

필자는 에세이 철학을 ‘도전과 모험’으로 규정한다. 이런 철학은 분명히 전문가 집단의 관행을 넘어서 있다. 이런 예외적 활동에 대해 기존의 전문가 집단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침묵과 무시, 혹은 무관심으로 일관할 것인가, 아니면 미미하지만 새로운 불씨가 되고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 필자는 에세이 철학을 ‘대중적인 글과 전문적인 글쓰기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로도 생각하고, ‘업계와 비업계 사이의 경계인의 위치’에서 쓰는 글쓰기로도 생각한다. 저자의 이런 시도에 대해 ‘무모한 시도로 그칠지 아니면 새로운 글쓰기의 한 문화로 자리 잡을지’에 대해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전문가 집단에서 볼 때 한편으로는 우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대하는 양면적 감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나의 시도가 ‘철학의 현실에 커다란 파문을 던진 것’을 인정하고, 이것이 ‘철학의 비판적 기능을 회복하고, 새로운 철학적 글쓰기를 위한 논쟁’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한 것 자체에 위안을 삼고 싶다. 필자가 그 파문이 찻잔 속의 미동에 그칠지, 거대한 파도가 될지는 그 누구도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한 점에 대해서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모든 새로운 시도가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철학과 비판-에세이 철학의 부활을 향해>에 대해 산발적이지만 적지 않은 서평을 여러 동료 철학자들이 해주었다. 좋은 책이 나와도 1년 내내 서평 하나 없는 학계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관심만으로도 그 반향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서평이 앞으로도 얼마만큼 이어질지, 그리고 그것들을 매개로 새로운 논쟁이 발생할 수 있을지는 지금 예단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동료 학자의 연구 결과에 대해 이렇게 반응을 하면서 철학의 문제들을 우리 내부로 끌어안으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철학을 하는 계기가 되고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일전에 아직은 밝힐 수 없지만 모 신문에서 9개의 질문을 받고 A4 용지 7장 분량의 답변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내 책의 내용을 가지고 꼼꼼하게 분석하고 질문지를 작성한 것 자체가 나의 생각을 다듬는데 한 결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의 답변서가 조만간에 그 신문에 실리게 되면 내 책을 이해하는데 한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장문의 서평을 통해 <철학과 비판>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잘 드러내준 연효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장께 감사를 드린다. jogel4u@outlook.com

 

*필자/이종철

철학박사.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근간 “철학과 비판”의 저자. 칼럼니스트.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으로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이다. * Below is the [full text] of an English article translated from the above article as’Google Translate’.

 

In response to the review of ‘Philosophy and Criticism (Book of Lee Jong-cheol)’ by Yeon Hyo-sook, president of the Korean Philosophical and Thought Research Association

“I hope that it will become an opportunity and a driving force for a new philosophy…”

-Dr. Jongcheol Lee

 

The book review “Lee Jong-cheol’s book ‘Philosophy and Criticism’ – a relentless challenge for a new philosophical writing?” written by Yeon Hyo-suk, president of the Korean Philosophical and Thought Research Association (hereafter, the author) It raises the question of whether such writing can survive in today’s specialized academia. I think this kind of reaction from a professional researcher’s point of view is very natural. I agree with the purpose, but can such writing realistically – in the so-called academia – survive? Can professional researchers pay attention to this form of philosophical writing? What is the meaning of such writing, and how can we establish its realistic status? Such a reaction is not only possible, but also natural.

I agree to some extent with my criticisms of whether the relationship between philosophy and reality, which I consistently insist on, the status of philosophy separated from reality, and whether the daily philosophical activities of today’s scholars are different from those of Opus and antique dealers. My questioning like this is a task that demands a kind of identity from the existing philosophers, and it can be an opportunity to look back on their philosophical activities through these questions. An identity crisis can be posed from several perspectives. The meaning of studying Western philosophy in East Asia, the meaning of studying ancient Chinese and Korean philosophies in modern Korea, the meaning of a philosophy that encompasses reality and separates it from reality, and furthermore, the meaning of philosophizing in this land. It can induce a fundamental reflection on what it means to do philosophy for us. However, it is difficult to raise such a comprehensive and fundamental question in a specialized paper. In that context, raising a problem through the form of an essay philosophy is meaningful enough. Since philosophy has always been a work of skepticism, reflection, and criticism, my questioning can be meaningful in itself.

Essay philosophy is not an alternative work to the existing philosophical writing. However, it is intended to revive the spirit of free philosophy that has been lost because philosophical writing is biased in one direction. Just as content requires an appropriate form to reveal it, form can define and limit content in a certain way. A professional thesis has its own role and meaning, just like the thesis. Similarly, the format of the essay philosophy can go beyond academic writing to help you write freely and creatively on a variety of topics. First of all, essay philosophy can bring out philosophical problems in daily life beyond the boundaries of professional philosophy, and it helps to relieve the burden of commentary and write freely and critically in reality. In that respect, the essay philosophy can open up the openness of the form. This type of openness can be a complementary form to the philosophical writing that has been unilaterally carried out so far. The problem is that, unlike professional philosophical papers, it is still far from secure a space for these articles to be published.

I define my essay philosophy as’challenge and adventure’. This philosophy clearly goes beyond the practice of the professional community. How can the existing expert group accept this exceptional activity? Will it be consistent with silence, ignorance, or indifference, or will it be a small but new spark and spark? I think of the essay philosophy as ‘a tight line between popular writing and professional writing’, and I think of it as writing written in ‘the position of the borderline between industry and non-industry’. Regarding the author’s attempts, he does not withdraw his uneasy gaze about whether it will be a reckless attempt or whether it will be established as a new writing culture. From the perspective of the expert group, the two-sided feeling of concern on the one hand and expectation on the other is understandable. However, acknowledging that my attempt ‘had a great ripple on the reality of philosophy’, and hoping that this could ‘restore the critical function of philosophy and ignite a debate for a new philosophical writing’, is comforting in itself. want to take It remains to be seen whether the ripple will be just a small movement in a teacup or a huge wave, as no one knows at this time. Not all new attempts will be satisfied with the first drink.

So far, several fellow philosophers have written sporadic, but not a few, book reviews on <Philosophy and Criticism – Essay Towards the Resurrection of Philosophy>. Considering the reality of academia where there are no book reviews throughout the year even if a good book is published, this interest alone can have a huge impact. It is difficult to predict how long these book reviews will continue in the future, and whether new debates may arise through them. However, I believe that trying to embrace the problems of philosophy within us while reacting to the research results of fellow scholars in this way can itself be an opportunity and a driving force for a new philosophy. I can’t reveal it yet the other day, but I was asked 9 questions from a certain newspaper and submitted 7 A4 paper-sized answers. The meticulous analysis of the contents of my book and the preparation of the questionnaire itself can be very helpful in refining my thoughts. If my answer will be published in the newspaper sooner or later, it will be of much help in understanding my book. Finally, I would like to thank Yeon Hyo-sook, president of the Korean Philosophy and Thought Research Association, for revealing the various problems of <Philosophy and Criticism> through a long review. jogel4u@outlook.com

 

*Writer/Lee Jong-cheol

Doctor of Philosophy. Yonsei University Humanities Research Institute. Author of the foundational “Philosophy and Criticism”. columnist.


▼ 연효숙 한국철학사상연구회장의 지난 글 바로가기

화분 / 분갈이 [유운의 전개도 접기]

화분 / 분갈이

 

이유운

 

화분

 

 

    아이를 낳아본 적은 없었고 살아 있는 것을 가지고 싶었다 마음껏 미워할 수 있도록, 되도록 끊임없이 자라는 것으로 이런 마음은 숨기고 제안을 한다 화분 좀 사러 갈까 꽃이 피는 걸로, 알잖아, 집에 녹색이 없어서

 

    잎과 뿌리를 매만지고 구운 화분이 정말로 숨을 쉬는지 손바닥으로 그것을 쥐어보고 나의 방을 위해 골몰하는 너의 옆얼굴 만약 내가 작은 식물을 데려와 네 이름을 붙이고 너를 기르는 것처럼 그것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래도 우리는 부서지는 것을 사랑할 수 있을까

 

    둥글고 앞으로 휜 꽃받침

    이 꽃 너랑 닮았다

    네가 기울여 열중하는 모습 같아,

    너는 아무렇지 않게 나의 비밀을 말하고

 

    이런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왜 모든 일은 다 이렇게 노력해야만 하는 결말이 될까 책상에 엎드려서 어린 잎맥을 매만진다

 

    여기

    던져져 있는 나

    그 앞의 어린 식물

 

    장마에는 물을 주지 않아도 된대, 공기가 습해서. 간편한 생활 방식에 나는 경악하고 나는 얼마나 복잡한 방법으로 비슷하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늠한다

 

    창문을 연다

    베란다 주변에 빗물이 고여서 썩기를 바라고

 

    곧 무언가가 사라질 것이다

 

 

 

분갈이

 

 

    분갈이를 했다. 위 사진은 ‘하트호야’ 고 물론 개별적이고 사적인 이름 또한 가지고 있는 나의 식물친구다. 이 식물은 아주 느리게 자란다고 했는데, 그래도 두 마디나 자라서 분갈이를 할 때를 맞이했다. 화분을 퍽 오랫동안 세심하게 골라서 분갈이를 해줬다. 얇은 플라스틱 화분에서 하트호야를 위로 쭉 뽑아낼 때, 뿌리에서 흙이 후두둑 떨어졌다. 뭔갈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고 마치 피를 처음 본 의사처럼 긴장했다.

    화분에 흙을 꾹꾹 눌러 채우며 어떤 생명을 책임지는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슬프고 무섭고 무거운 일이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가 계속 강아지며 고양이를 키웠기 때문에 생명이 내 주변에 있는 게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좋아한다. 그 보드라운 털과 나만 바라보는 이성 이전의 사랑을 사랑하지 않고서 나는 배길 수 없다. 그 순박하고 순진한 눈동자에 내가 비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좋다. 평온하다.

    그 생명들이 십 년 전후로 죽을 때, 나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슬프고 마음이 아렸지만 그게 전부였다. 주 보호자가 아니라서 나는 슬픔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들이 나의 뺨을 핥을 때 내가 이들의 죽음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어서, 그래서 나는 간편하게 그들을 사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늙어서 병원에 다니고 치매에 걸려 가리지 못하는 배설물을 치우는 것은 주 보호자인 할머니의 몫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과 산책을 하고 예쁘다고 끌어 안아 주는 피상적인 사랑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사랑은 즐거운 취미에 가깝다.

    서울로 올라오고 혼자 살면서 나는 나의 주 보호자가 되었다. 아직 아무것도 키워보지 못했던 내가 정말 까다롭고 거슬리는 생명인 나를 키워야 했다. 제때 밥을 먹이고 적당한 때에 운동을 시켜주고 좋아하는 책과 음악을 제공해주고 적절히 사랑해주고 세심하게 살펴야 했다. 나와 너무 가까이 있는 나는 너무 괴롭다. 이 생명은 나에게 너무 컸다. 무거웠다. 귀찮았다. 전부 내던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뒷산 수녀원에 올라가서 오디를 따고 가르쳐주는 식물들의 이름만으로 살고 싶었다. ‘싶었다’ 라고 말하는 이유는 결국 단 한 번도 그러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 거라는 증거다.

    그래서 다른 생명을 책임질 생각은 절대 하지 않으려 했다. 세심함은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에 대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면에서 두 번 실패했다. 나는 자주 다른 생명과 내가 함께 살기를 바라고, 그러면서도 그것에 대한 깊고 끈질긴 책임감에 대해서는 쉽사리 잊어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화분을 들일 때는 조금 달랐다. 나를 위해 골라준 식물친구를 받아들면서 나는, 이런 어린 식물을 나에게 골라주는 마음을 상상할 수 있었다. 나는 새 화분을 들이며 점을 치지는 않았지만1 이 식물이 죽지 않고 오래 자라는 동안 나는 어디까지 자랄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사랑이 나에게 주는 넓은 시야를 상상한다.

    그러므로 아직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아직 멀었고

    모두 닿지 않았다.

 

    비가 온다.

    잠시 후 만날 나의 연인에게

 

    나는 너의 이름을 붙인 화분의 흙 밑둥을 눌러주며 네 이마 사이를 입술로 누르는 상상을 했다 아주 많이

 


필자 이유운은 시인이자 동양철학도. 2020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서 <당신의 뼈를 생각하며>로 등단했다. ‘유운(油雲)’은 『맹자』에서 가져온 이름. 별일 없으면 2주에 한 번씩 자작시와 짧은 노트 내용을 올리려 한다. 유운의 글은 언젠가는 ‘沛然下雨’로 상쾌히 변화될 세상을 늠연히 꿈꾸는 자들을 위해 있다.


  1. 권나무, 화분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1년 봄 제60회 정기학술대회 영상(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과 공동학술대회) [월례발표회·세미나]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1년 봄 제60회 정기학술대회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과 공동주최

주제: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그 해석의 정치철학적 스펙트럼》
일시: 2021년 6월 5일 토요일 오후 12시 50분 시작
장소: 온라인(Zoom)방식으로 진행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그 해석의 정치철학적 스펙트럼》이라는 시의성 있는 주제 아래 2부에 걸쳐서 총 6개의 발표와 논평으로 진행

– 학술대회 순서 –

개회사: 연세대 인문학연구원장 김장환(연세대)
개회사: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이사장 김교빈(성균관대)

1부 민주주의와 포퓰리즘 / 사회: 김은주(서울시립대)
포퓰리즘과 포스트 트루스 – 한길석(중부대) / 논평: 조배준(건국대)
포퓰리즘의 이중성과 민주주의의 민주화 – 한상원(충북대) / 논평: 김성우(상지대)
신체적 수행성과 정치적 대중 주체의 형성 – 조주영(충북대) / 논평: 이지영(이화여대)

2부 헤겔과 아렌트 / 사회: 이관형(정치경제연구소 대안)
혁명적 반혁명 – 헤겔의 프랑스 혁명 진단 – 남기호(연세대) / 논평: 이정은(상명대)
악의 평범성과 민주주의 – 이승준(동국대) / 논평: 조은평(상지대)
아렌트를 통해 본 페미니즘과 민주주의 – 정유진(서강대) / 논평: 주현(건국대)

3부 종합토론 / 사회: 서영화(한신대)

폐회사: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장 연효숙(연세대)

 

  • 학술대회 자료집 다운로드 : http://www.hanphil.or.kr/board04/view.asp?key=7
  •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8b4–wR4m4c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1년 5월 월례발표회 영상 “현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권력구성과 포스트 민주주의” [월례발표회·세미나]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21년 5월 월례발표회 영상 “현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권력구성과 포스트 민주주의”

 

학술1부에서 기획한 2021년 2월부터 5월까지의 월례발표회는 [민주주의와 민주주의‘들’ 1]이라는 기획 아래 총 네 번의 발표가 예정되었고 이번 5월이 마지막 차례 발표입니다.

주 제 : 현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권력구성과 포스트 민주주의

발표자 : 이원혁(서울시 인재개발원)

토론자 : 김성우(상지대학교)

일 시 : 2021년 5월 31일(월) 오후 4시 ~ 6시

장 소 : 온라인 줌 회의실

 

동영상 링크: https://youtu.be/xf9yOTi5IpM

예스터데이 / 어제에서 언제나 어제가 되는 오늘 [유운의 전개도 접기]

예스터데이 / 어제에서 언제나 어제가 되는 오늘

 

이유운

 

예스터데이

 

전화가 오랫동안 울리지 않으면

차라리 전보를 치던 때가 사랑하기 편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예스터데이에 갔다

아득한 창가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러

 

내가 전화를 기다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내가 이 곳으로 올 것을 알고 있었고

내가 자신의 바지 밑단이 말린 모양 때문에 고장나기를 원한다는 것도 알고 있는 사람

 

그는 머리를 풀고 셔츠를 벗으면서

나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내 이름도 모르고 얼굴을 보고 있었다

 

나는 앉기 전에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해야겠다고 말한다

휴대폰 따위는 만지지 않아야 사랑하는 사이니까

 

반들거리는 창가에서

금방 튀긴 팝콘을 먹고 맥주를 따고 오프너를 만지면서

생각

했다

 

일기장을 너무 함부로 펼쳐놨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던 뒷목의 문신도 너무 헐렁한 옷을 입고 있다

 

이런 고통을 이야기하려면 알콜중독자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상담을 위해 그리고 다시 술을 마실 수 있기 위해 구걸을 하기 위해

철 지난 스키복을 덮고 길거리에 누워야 하는 결말이 정해져 있을지도

 

그래도 위인들의 일기장은 언제나 출간되니까

 

위인이 되려면 뭐든 해야 하잖아

레몬을 먹고 인상을 찌푸리지 않거나

동시에 스물여덟 명과 연애를 하거나

혀로 체리꼭지를 묶거나

 

예스터데이가 흘러나온다

 

그는 휴대폰을 충전하는 나의 등 뒤에 있고

나는 발뒤꿈치로 그의 앞까지 걸어가고

불 좀 빌립시다 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은 사랑 좀 빌립시다, 목숨 좀 빌립시다 구걸하고 싶었지만

 

녹내장에 걸린 늙은 고양이와

슬개골이 다친 강아지 사이에서

나는 언제나 가장이었으므로

한 번도 나를 가여워해보지도 못했고

나를 가여워해달라고 구걸해보지도 못했다

 

뒤에서 그가 부른다 아직 멀었어요?

 

아직 멀었어요 내겐 사랑도 구걸 같아요

어떻게 걸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자기소개를 할 때는 여전히 지옥 같아요

그러니까 아직 멀었어요

 

하지만 아직도 먼 사람은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기 때문에

등을 돌리면서 고고하게 웃는다

기다렸어요? 하고서

 

 

 

 

어제에서 언제나 어제가 되는 오늘

 

 

오래된 공간을 좋아한다. 그 공간에 얽힌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은 오래된 엽서처럼 나에게 오래 있다. 오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서대문구에서 내게 가장 친숙하고 오래된 장소는 ‘예스터데이’다. 카카오맵에 따르면‘예스터데이’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성산로 531, 2층에 위치한 호프, 요리주점이다. 원래는 경양식집이었고, 카페로 바뀌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 그 곳에 갔을 땐, 지금처럼 호가든 여섯 병과 나초를 한 세트로 엮어 파는 곳이었다. 깊이 안 쪽으로 몸을 둥글게 말고 앉아야 하는 커다란 소파 같은 의자, 언제 와도 비슷한 플레이리스트, 베티가 찍혀 있는 냅킨들. 나에게 가장 오래된 예스터데이의 장면들이다.

나는 이 곳에서 처음으로 나의 언니들과 선생님을 만났다. 축하할 일이나 함께 만날 일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이 곳에서 만났다. 나는 이 곳에서 환풍구 아래에서 담배를 피우며 많은 것들을 싫어하는 법을 배웠다. 병을 빙글빙글 흔들어 적당하게 호가든을 따르는 법을 배웠다. 어떤 혁명은 누군가를 지독하게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이렇게나 슬프고 험난한 세상에서도 명랑하게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웠다. 그것은 언니들과 선생님이 나 대신 슬픔을 먼저 맞아주기 때문에 그랬다.

대학원에 와서 가장 신기한 것은 ‘세미나’였다. 세미나에서 더듬더듬 낯선 말들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읽는 법을 배우는 것도 신기했지만 제일 신기한 것은 다들 나를 먹인다는 것이었다. 커피를 사주고, 밥을 사주고, 술을 사주고, 책을 사주고, 연필을 깎아줬다. 보답은 공부를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 물론 나는 가끔 세미나에서 도망을 쳤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말이 마음 어딘가에 뻑적지근하게 걸려서 불편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무튼 나는 성실한 학생은 절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언니들이 나보다 엄청나게 넉넉했을 리도 없는데, 그들은 나를 먹이는 데에 절대로 인색하지 않았다. 밝고 너른 눈으로 나를 봐주는 언니들의 둥근 눈동자를 생각하면 힘이 난다. 내게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고집과 태도를 만들어준, 성실하고 그래서 생각하면 조금 슬퍼지는 언니들에게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보낸다. 그들이 많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을 슬프게 만드는 것이 예스터데이에서 마감 시간에 나오는 ‘예스터데이’ 노래 외에는 없었으면 좋겠다.

엽서처럼 오래 된 사람들을 떠올릴 때 그들과 자주 있었던 장소는 아주 중요하다. 눈치 챘는 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글에서 일부러 ‘공간’과 ‘장소’라는 말을 번갈아 혼용해서 썼다. 적확하게 단어를 골라 쓰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철학 연구자가 최대한 빨리 타파해야 할 아주 나쁜 버릇이다. 하지만 나는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는 단어들을 여러 개 늘어놓은 다음 그 단어를 상상하기 좋은 다른 나라의 언어나 옛날 사람들의 목소리를 떠올리는 고약한 취미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나는 ‘공간’이라는 단어의 한자 표기를 좋아한다. 空間. 빈 것 사이. 숲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바람 소리가 사실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나무 사이의 빈 공간이 흔들리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무서울 정도로 짙은 초록색 나무들이 가득한 숲을 상상한다. ‘장소’ 라는 단어에는 유난히 일본어가 어울린다. 장소(場所). ばしょ. 조금 웃긴 말이지만 그 발음을 할 때마다 모아지는 입술의 모양이 귀여워서 그렇다.

 

장소란 말은 슬프다. 가변적이니까.

버스를 타고 서대문구를 지날 때마다 꼭 예스터데이의 간판을 확인한다. 야자수가 반짝거리는 촌스러운 간판에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을 확인해야 마음이 놓인다. 예스터데이가 몇 번 변했다는 사실은 나에게 약간의 불안을 야기한다. 저 곳에서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너는 말이다, 좀 우울하지 않느냐. 희망을 가진 존재는 명랑해야 한다. 명랑함에서 희망이 나온다! 혁명이라는 것도, 영원이라는 것도. 생의영원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어디서 온 것 같으냐. 명랑한 눈! 명랑한 태도에서 온 것이다.” 라고 말했던 선생님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그리고 선생님의 손에 자꾸 땅콩이며 안주를 쥐어주고 “네가 벌써 스물아홉이야? 나는 아직두 네가 스물다섯 같애.”하고 웃는 언니의 얼굴. 내 손등을 손가락으로 긁으며 고개를 숙이고 몰래 웃던 연인의 얼굴. 내 사랑의 형태들을 모두 이해했던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예스터데이가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라게 된다.

 

장소란 말은 즐겁다. 가변적이니까.

「예스터데이」는 정말로 예스터데이에서 썼다. 사랑의 앞에 있을 때 어쩔 줄 모르던 마음을 담아 썼다. 술을 마시면 솔직해진다고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더 거짓말을 하고 싶어진다. 아무렇지 않은 척, 내게 사랑이 별 것 아닌 척, 그에게 내가 목매지 않은 척. 다 거짓말이다. 사랑이 별 것 아닐 리가 없다. 나는 그런 것들도 누가 가르쳐 주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이런 것은 내가 스스로 나아가 먼저 맞아야 할 슬픔이나 두려움이었다.

나는 사랑을 시작할 때 못된 버릇이 있다. 자꾸 그와 함께 할 영원을 상상한다. 오래 참는 사랑이 온유할 거라는 오랜 가르침 때문이다. 하지만 영원을 생각하다 보면 순간을 놓친다. 소홀해진 순간들이 결국 깨지는 것은 나 때문인데 나는 그것을 견디질 못한다. 사랑이 나에게 이와 같은 무서운 얼굴로 다가올 때 이 시를 썼다. 내게 가장 사랑스러운 공간에서 이토록 나에게 무서운 시를 썼다는 것이 모순적이다.

하지만 예스터데이는 내게 언제나 무언갈 배울 수 있는 공간이므로 나는 이 무서운 시에 기꺼이 예스터데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지금의 나는 연인에게서 성실하게 순간을 잡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 배움의 과정에서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탁월한 학생이 되기를 원한다.

「예스터데이」가 너무 슬픈 시라는 벗의 말에 나는 정성껏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 구절을, 베티가 인쇄된 예스터데이의 냅킨 뒤에 써서 주었다.

 

“너는 슬픈 시를 쓰는구나.

슬픔이 시가 되었으니 안 슬퍼야 할 텐데.

시가 된 슬픔은 어느 다른 나라로

잠시 여행을 간 거야.

어느 날 건강히 다시 돌아올 거란다.”

 

                                                                                  ― 박시하, 「일요일」

 

 

너무 슬픈 시라는 것은 없다. 영원한 슬픔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믿는다. 어떤 것들은 영원할 거라고 쉽게 믿었다. 믿는다는 건 어떤 태도니까. 그런 태도를 오래 취하고 있으면 그런 행동을 하게 되고 시간이 오래 지나면 정말로 그런 사람이 된다. 그래서 나는 신실하게 무언가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믿음이 깨진다는 말은 너무 무책임하다. 믿음은 잠깐 멈출 수 있다. 같은 자세도 오래 취하면 온 몸이 저리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이 산산조각난다고 하면, 그건 너무 쉽고 게으른 설명이다. 조금씩 자세와 태도를 바꾸어 가면서 믿음을 지속한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처음의 태도와 퍽 달라져 있지만 그것도 믿음이다. 오디세우스의 배 모순 논리 같지만 사실이다. 믿음은 사실이니까.

 

명랑한 태도.

어떤 것들은 영원할 거라고 믿는 태도로.

어떤 것들은 영원하고

영원하다고 믿는 태도는 신실하다.

나는 너무 염려하지 않는 삶을 믿는다.

 

 

작가의 말

twt @writecloudpen

6월 13일을 기억하며.

 


필자 이유운은 시인이자 동양철학도. 2020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서 <당신의 뼈를 생각하며>로 등단했다. ‘유운(油雲)’은 『맹자』에서 가져온 이름. 별일 없으면 2주에 한 번씩 자작시와 짧은 노트 내용을 올리려 한다. 유운의 글은 언젠가는 ‘沛然下雨’로 상쾌히 변화될 세상을 늠연히 꿈꾸는 자들을 위해 있다.

가난의 현실적인 미묘함에 관하여, <기생충> [톡,톡,시네톡]

 

가난의 현실적인 미묘함에 관하여, <기생충>

 

양윤영(한국방송통신대학교 재학)

 

우리 집은 가난했다. 내가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조금 나아졌지만, 학창 시절 내내 나에겐 차상위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그게 부끄러웠냐면 꼭 그렇진 않았다. 차상위여서 지원받는 것도 있었고, 공부에는 관심이 없던 내가 집이 가난해 학원을 못 가는 것을 핑계로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특성화로 간 이유도 빨리 취업을 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대학을 갈 필요가 없어서 수능을 준비하지도 않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온종일 텔레비전을 봤다. 나는 가난한 가운데에 제법 즐겁게 살았다. 마치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기택네 집이랑 비슷했다.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라는 기택의 말처럼 나는 특별히 계획을 세우거나 뭘 바라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어차피 그래봤자 이룰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다 내게 꿈이 생겼다. 웹툰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보내는 동안 한국만화계는 웹툰으로 넘어가면서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전까지 만화가를 꿈꾸는 것이 내게는 사치라고 생각했는데, 점차 커지는 웹툰 시장을 보니 이곳이라면 충분히 뛰어들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배울 돈이 없었다. 입시학원만 해도 한 달에 50만 원은 드는데, 우리 집은 그 돈을 낼 형편이 안 되었다. 혼자서 연습하기엔 재능이 없었다. 선을 어떻게 그어야 하는지, 색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도서관에서 빌린 만화 작법서를 아무리 읽어봐도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다른 쪽으로는 재능이 있었는데, 이야기를 쓰는 능력이었다. 내가 만든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면, 다들 재밌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문제가 내 발목을 잡았다. 만화를 공부하거나 그릴 시간이 부족해진 것이다. 스무 살이 되면서 나는 회사에 다녀야만 했다. 내가 일을 그만둔다고 집안이 힘들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벌어야 더 나아지는 것은 분명했다. 만화에 신경 쓸 시간은 당연히 줄어들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했지만, 내가 봐도 내 만화의 작품 수준은 너무 낮았다. 나는 계속 투고했고, 계속 떨어졌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내게 시간과 돈이 충분했다면 어땠을까 계속 가정해보았다. 그건 좀, 비참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건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니었다. 주변에 재능이 아주 뛰어난 사람들을 제외하고, 그림이라는 기술을 익히기 위해 돈을 지불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점점 더 뒤처진 것이다. 그 차이는 처음엔 별거 아닌 것 같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가속되었다. 그리고 결국 깨달았다. 가난한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건, 그냥 내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는 것을.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의 가족들이 박 사장의 집에 하나하나 들어갈 때, 처음에는 그 상황이 코믹하고 재밌게 그려진다. 기택네는 박 사장네를 놀리기도 하고, 착하고 멍청하다며 비웃기도 한다. 그러나 박 사장네는 부자다. 비가와도 공기가 맑아질 테니 좋다고 생각해도 되는, 멍청해도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지위에 있다. 그에 비해 기택네는 생각해야 하고, 남을 속여야 한다. 그것이 가난의 속성이다. 비가 와 집이 침수되었을 때, 기정의 표정은 씁쓸하다. 그전까지 기정은 남을 비웃을 여유가 있었지만, 비가 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온통 난리가 난 집, 구정물이 역류하는 변기에 앉았을 때야 자신에게 솔직해진 것이다. 자신이 사는 곳, 그곳의 사라지지 않는 냄새, 올라오는 변기 물. 기정은 박 사장네 식구들을 속인 동시에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을지 모른다. 자신이 정말 제시카라고 말이다. 행복한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현실은 늘 더 끔찍하다.

 

<기생충>이 가난을 다룬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더욱 주목받은 이유는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진짜 가난한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현실적인 미묘함을 잘 잡아내는 것은 무척 어렵지 않은가. 영화의 마지막을 보며, 나는 기우가 기택에게 보내는 편지가 이루어질 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는 그게 어떤 것보다도 비참한 소망이라는 생각에 조금 슬퍼졌다. 가난은 그 무엇보다도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물론 나는 그 감정에서 벗어나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지만, 뒤를 돌아보면 20대 초 돈과 시간을 만화에 투자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해 속상해하는 지망생이 있다. 거기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사실, 우리 집의 재정이 그 이후 나아졌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고 가세가 더욱 기울어졌다면 아마 나는 만화를 완전히 포기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면 씁쓸해질 수밖엔 없다. <기생충>의 그 결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