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의 항구: 에피쿠로스의 『쾌락』 – ② [내게는 이름이 없다]

즐거움의 항구: 에피쿠로스의 쾌락

 

글: 행길이(한철연 회원)

 

고대의 양극화

 

에피쿠로스가 쾌락주의자가 된 까닭은 그의 시대와 삶이 고통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307년~261년까지 아테네는 46년 간 전쟁과 폭동으로 점철되었다. 아테네는 알렉산더 왕의 지배를 받는 속국으로 전락하였다. 이후 폴리스 체제에서 유지되었던 민주적 연대의 정신은 점차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칼과 강간의 시대였으며, 살육과 방화, 살해와 약탈이 일상화되던 폭력의 시대였다.

아테네의 위기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마케도니아의 그리스 점령이었다. 그리스 세계에 존재하던 폴리스적 삶의 문화를 붕괴시킨 마케도니아는 노예제 폐지 금지 정책을 관철시켰다. 이는 그리스 민족이 처한 재앙적 위기를 타개할 마지막 탈출구마저 봉쇄해버린 조치였다. 알렉산더의 원정에서의 승리는 노예를 대량으로 공급해주었다. 기득권층은 늘어난 노예를 가지고 거대농장을 운영했으며 경쟁력을 잃은 소규모 토지 소유자들은 몰락을 거듭했다. 전쟁은 중산층의 삶을 무너뜨렸고 양극화는 극심해졌다. 수많은 노예를 거느린 이들의 거대한 생산력에 경쟁할 수 있는 중산 시민이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유시민이 중산층에서 날품팔이 노동을 하는 계층으로 전락하는 경우는 늘어나기만 했다. 이들의 삶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무료 노동을 하는 노예가 흔한데 굳이 노임을 지급하면서 자유시민에게 노동을 시킬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고 아무 일도 얻지 못한 채 떠도는 빈민이 늘어나기만 했다. 한때 폴리스는 빈곤한 자유시민들의 생계를 위해 식량과 임금을 보전해주었다. 그러나 국가의 재정은 곧 고갈되었다. 아테네는 인구 압박을 해결하기 위해 늘어나는 빈민들을 강제로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는 기민정책을 취하기도 했다. 이민을 강요받은 이들 중 일부는 할 수 없이 무장 조직을 만들어 노략질을 일삼는 해적이 되기도 했다.

폴리스의 붕괴와 함께 그들의 인생을 지탱해주던 모든 가치와 삶의 문화들이 무너지자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전쟁과 폭력, 기아와 기근을 막아주던 폴리스라는 보호처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공적 시민으로서의 연대적 삶을 지속할 수 없었다. 이제는 각자가 알아서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고 안정적 삶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공적 시민으로서의 연대 의식은 사적 개인의 각자도생 의식으로 대체되었다.

 

양극화 시대의 미몽

 

폴리스 체제의 멸망과 경제 위기로 인해 발생한 모든 불행 앞에 인간의 삶은 너무나도 불확실한 것으로 여겨졌다. 모든 것은 인간의 판단과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넘어선 우연의 손에 좌우되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신에 대한 맹목적 숭배와 두려움이 기승을 부렸으며, 우연의 여신인 튀케(tyche)를 숭앙하는 풍조가 일반화되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대체로 자연과 사회를 움직이는 법칙을 인간의 이성을 통해 이해하고자 했는데, 이제 인간들은 그러한 태도를 버리고 세계와 인간의 삶을 신적 힘과 우연에 기대 해명하고자 했다. 삶의 안전판이 결여되자 불안의 고통에 휩싸인 사람들은 종교적 미망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게 되었고 어리석음은 세상을 뒤덮게 된 것이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고통의 시대를 건너기 위한 처방으로 사회 개혁 보다는 개인적 구원을 제시했다. 이것은 그의 시대에 대한 냉정한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미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너무도 참혹한 처지에 있어 사회적 진보나 정의의 회복이라는 구조적 접근으로는 좀처럼 만족되기 어려운 급박한 지경에 빠져 있었다. 사회적 개혁과 정의를 외쳐도 힘써 호응해줄 여유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없었고, 제도적 투쟁을 전개하게끔 자극하는 공동체적 가치도 소멸한 지 오래였다. 사회적 변동의 압력에 직면한 사람들은 불안에 휩싸여 있어 나 아닌 타인의 삶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고, 공동체적 삶의 연관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인식할 수도 없는 상태에 빠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저 저마다의 극심한 고통과 비참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너 죽고 나 살자’의 사회에서 꿈꿀 수 있는 해방이란 고통을 멀리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