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의 항구: 에피쿠로스의 『쾌락』 – ① [내게는 이름이 없다]

즐거움의 항구: 에피쿠로스의 쾌락

 

글: 행길이

 

편견과 오해

 

시아파와 수니파가 구분되지 않고 이황과 이이가 헛갈리듯이,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은 늘 퀴레네 학파의 쾌락주의로 오인된다. 그래서 에피쿠로스는 ‘돼지들의 학교’를 만들어 경건한 삶을 조롱하고, 쾌락의 교리를 유포해 인간을 타락시킨다는 루머에 시달리곤 했다. 그의 쾌락주의를 말할라치면, 어떤 사람들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도덕적 결계’를 치는가 하면, 다른 이들은 금새 얼굴이 불그레지면서 ‘철학적 야설’을 기대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지만 -벌써부터 재미적어지는데- 에피쿠로스는 야하지 않다. 그는 난봉꾼의 성자라기보다는 정결한 수도자에 가깝다. 물론 그가 인생의 목표를 쾌락에 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쾌락이란 말초적인 게 아니라 기품있는 안락이다. 그는 말초적 쾌락의 어둠에 탐닉하기보다는 빛나는 정신의 안락 속에서 생을 완상하는 것을 권고하였다. 그런 까닭에 루크레티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는 인간의 실존을 수많은 [고통의] 폭풍과 암흑에서 끌어내어,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온 속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빛의 세계 속에 정착시켰다.”

 

 

고통과 가난

 

에피쿠로스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했다. 그는 일생 동안 극심한 위장 장애를 앓았으며(하루에 음식을 두 번씩 토하곤 하였다), 오랫동안 방광염에 시달리다가 결국 심한 결석 질환으로 인해 절명했다. 너무나 병약한 나머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지내야만 한 적도 많았다. 육체적 고통에서 자유로운 적이 거의 없었던 그였기에 쾌락에 대한 의지는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고통에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의 시간 속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단서로 진정한 쾌락을 추구하였다. 세속의 관점에서 보자면 질병과 가난의 고통을 면치 못하다가 끝내 죽음을 맞이하는 삶에서 행복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죽음에 직면하는 인간의 심정이란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삶과 작별’해야 하는 진한 아픔으로 어지럽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사멸의 순간에서도 평상심을 잃지 않고 행복의 기쁨을 발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늘이 내 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 나의 마지막 날이라네. 방광염과 위장병의 고통은 여느 때와 같이 격심하기 이를 데 없지만, 자네와 나누었던 대화의 순간을 떠올리면 어느새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는 게 아닌가(이도메네우스에게 보낸 편지).”

 

그를 괴롭히던 신체적 고통은 치료가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피할래야 회피할 수도 없고, 수단을 통해 제거할 수도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격심한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그것에 집착하여 마음이 흔들리도록 놔두지 않고 그것이 지나가도록 의연히 기다린다면, 어느덧 다른 육체적 쾌감에 의해 그 고통에서 놓여나게 된다. 에피쿠로스가 병마의 고통에 시달릴 때 불현 듯 경험하는 싱그러운 바람과 향긋한 공기, 그리고 갈증과 허기를 채워주는 한모금의 물과 한조각의 빵은 그 어떤 약과 성찬이 주는 쾌감보다도 컸을 것이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고통에서 해방되는 데에는 그러한 소박한 쾌감으로도 충분했다. 그래서 그는 신체의 단순한 필요, 기초적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얻게 되는 쾌감 이상의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 누구나 한번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우리가 겪는 고통이 그 정도의 것이라면, 우리는 충분히 그것을 견뎌낼 역량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고통의 순간에만 집착하지 말고 다가올 쾌락을 기다리는 의연함과 용기일 것이다.

 

“고통은 육체에 지속적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가장 심한 고통은 아주 잠시 머물며, 쾌락을 능가하는 육체적 고통도 여러 날 지속되지 않는다.”

 

고통이 잠시 잦아들 때 우리는 얼마간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순간은 고통에 의해 어지럽혀졌던 우리의 몸과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 에피쿠로스는 고통을 경유하면서 맛보게 된 이 쾌락의 순간을 고요히 되새겨본다.

 

“성숙한 사유는 내게 주어진 육체의 한계와 궁극적 목적을 곰곰이 생각하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완전한 즐거움의 삶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고통에 대해 사유한 그는 고통을 단지 고통스럽다 여기지 않고 오히려 쾌락의 전조로 전환시킨다.

 

“우리는 많은 고통들이 쾌락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고통을 참으면 더 큰 쾌락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인내의 미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에피쿠로스의 이 말은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식의 무조건적 인내를 강조하는 교리로만 해석되어서는 곤란하다. 그가 강조한 것은 고통의 순간을 쾌락을 맞이하는 과정으로 전환시키는 능동적 사유태도이다. 쾌락은 고통이 있을 때 더욱 크게 느껴진다. 엄청난 목마름과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을 때 먹게 되는 한 모금의 물과 한 조각의 떡은 진수성찬을 능가하는 쾌감을 선사한다. 기아와 갈증의 고통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소찬의 지극한 쾌락이란 존재할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고통은 쾌락을 가능케 해주는 조건이다. 그러므로 고통이란 고통스럽지만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능동적 전환을 통해 우리는 회피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쾌락을 발견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가난에 대해서도 우리는 같은 논리를 전개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는 가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가난은 큰 부이다. 반면 무제한적인 부는 큰 가난이다.”

 

가난이 커다란 재산으로 여겨질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소소한 기쁨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허안화 감독은 『황금시대』에서 국공내전기 요절한 중국의 작가 샤오홍과 그의 연인 샤오쥔이 살아가던 하얼빈 시절을 묘사하였다. 이들은 한겨울에 난방도 되지 않는 셋집에서 이불도 없이 밤을 지새우고, 빵 한 덩이로 끼니를 때우는 곤궁한 삶을 살아갔다. 그런 그들에게 얼마간의 저녁 외식을 할 수 있는 돈이 생겼다. 장터 허름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참으로 풍요로워 보였다. 가난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 가난을 단순히 고통으로만 여기고 살아갔다면 소액의 돈이 선사한 커다란 부는 결코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반면에 재신이 너무나 많게 되면 일상의 소소한 물질적 행운에서 지극한 쾌락을 얻기란 쉽지가 않다. 오히려 재부를 지키는 데에 전전긍긍하고 손해에 동요하는 일이 많다. 결과적으로 가난한 자가 부자보다 부에서 오는 쾌락을 느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에피쿠로스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남긴다.

 

“가장 큰 부를 소유함에 의해서도, 사람들에게 명예와 존경을 받음에서도, 그리고 한없는 욕망으로부터 생기는 다른 어떤 것들에 의해서도, 마음의 동요가 끝나지 않으며 진정한 기쁨이 생기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