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안내] 『단기 20세기-중국 혁명과 정치의 논리』(왕후이 지음, 송인재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7월 12일 발간)

진관타오(金觀濤), 왕단(王丹), 쉬지린(许纪霖), 자오팅양(赵汀阳) 등 중국 현대 사상가들의 책을 활발히 번역해왔고 한철연 한국현대철학분과에서 활동 중인 송인재 회원이 얼마 전 왕후이(汪暉)의 책 『단기 20세기』를 옮겨 썼습니다. ‘중국 혁명과 정치의 논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아시아는 세계다』(2011), 『절망에 반항하라(왕후이의 루쉰 읽기)』(2014) 이후 송인재 회원의 세 번째 왕후이 저서 번역서가 되겠네요. 역자는 중국 ‘신좌파’의 이론적 리더 왕후이의 사상을 10가지 키워드로 잘 알 수 있게 정리한 『왕후이』(2018)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이번에 번역한 왕후이의 책은 중국의 20세기를 근원적으로 재사유한 그의 사상적 역작으로 그 내용이 기대됩니다. 이 책의 출간 이후 역자의 중국, 또는 동아시아 현대 사상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역자의 후기(옮긴이 말) 중 일부를 통해 이 책을 미리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후기를 보내주신 역자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역자 후기

 

    이 책은 왕후이가 2000년부터 2018년까지 ‘20세기 중국’을 주제로 집필한 논문, 강연 및 발표원고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대다수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쓴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2010년 『아시아는 세계다』(원제 亞洲視野)에서 ‘트랜스시스템사회’ 개념을 제안한 이후 형성된 왕후이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6장)과 2004년(5장)에 발표한 원고도 수록되었음은 왕후이의 문제의식이 오랜 기간 이어져왔음을 보여준다. 한국어판에는 저자의 요청으로 홍콩 옥스퍼드판이 출판된 이후 2017년과 2018년에 집필한 원고를 서문과 1장으로 삽입해서 책 전체를 아우르는 문제의식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취지는 제목인 ‘단기 20세기: 중국 혁명과 정치의 논리’에 압축되어 있다. 일단 논의 대상이 되는 시기는 20세기다. 여기에 단기를 붙임으로써 사전적 의미에 따라 기계적으로 100년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세기’의 시대 구분을 거부한다. 단기로 규정한 중국의 20세기는 1911년 무렵부터 1976년까지다. 이 두 해에는 각각 신해혁명이 발발했고 문화대혁명이 끝났다. ‘혁명’은 이 시기의 시세를 규정하는 개념이다. ‘정치’는 단기 세기를 혁명의 시대로 만드는 역사적 행위다. 더 나아가 ‘정치’는 저자가 단기로 규정한 20세기 중국을 조망하는 작업에 의미와 생명력을 부여할 규범적 행위로도 자리 잡는다. 중국은 혁명의 시세가 발생한 장소이면서 국경 내에만 한정된 장소가 아니라 세계체제의 지정학이 전개되는 장소이자 20세기의 시세와 행위를 사유하는 장소다. 따라서 이 책은 시간과 장소를 미리 설정하고 해당 시기의 사전을 서술한 편년사가 아니다. 세기, 중국, 혁명, 정치의 의미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성찰하고 재정의하며 새로운 논리를 제시하는 사상서다. 대표적으로 저자는 세기 자체가 20세기 중국에도 이물이고 그 자체가 그 이전 시대부터 적용된 개념이 아니라 20세기의 발명품이라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세기는 정확히 그 의미가 20세기만 적용된다. 이러한 세기/20세기는 그 자신을 이전 시대와 구분하고 새로움으로 스스로를 정의한 한 ‘근대’와 성격이 같다.

    제목에는 없지만 저자의 문제의식을 대변하는 핵심 개념은 ‘문화’다. 책에서 저자는 문화와 정치의 연관을 수차례 강조한다. 여기서 ‘문화’는 20세기 중국의 정치 행위의 성격을 규정하는 속성이자 정치적 실천의 목표이고 앞으로 정치의 생동감을 유지·강화하는 동력이다. 역사적으로 단기 20세기의 초반과 후반에 ‘신문화운동’과 ‘문화대혁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기표만 같을 뿐이다. 둘에서의 문화는 성격도 다르고 저자의 취지도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 대신 20세기 중국에서 문화는 20세기의 새로운 중국을 만들려는 행위 전체를 대변한다. 따라서 문화는 20세기 중국 혁명의 논리가 혁명을 구성하는 좁은 의미의 정치, 국가, 정부, 계급의 권력 행위를 뛰어넘는다. 왕후이는 그러한 사유의 근거와 자원을 1910년대 문화논전과 1960년대의 대중노선 등에서 광범위하게 찾는다. 이렇게 문화가 개입한 정치에서는 청년 문제, 여성 해방, 노동과 노동자, 언어와 문자, 도시와 농촌 등의 문제가 ‘문화’의 범주로 들어와서 정치를 창조의 영역으로 만드는 정치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정치화를 이루고 발전시키는 현실의 동력은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실천의 경험이 남긴 대중노선과 대중운동이다. 왕후이는 2012년에 『문화종횡』의 ‘문화 자각’ 특집에 발표한 글에서 문화적 자각을 ‘현재의 발전모델과 이데올로기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세계의 서막을 여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문화 자각의 대상은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발전모델, 신자유주의다. 따라서 왕후이는 일관되게 ‘문화’를 현실에 개입하고 현실을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사유한다. 이런 논리에서 ‘문화’는 정치, 경제로의 종속에서 해방되고 오히려 이들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하고 긍정적 진로를 구축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문화를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는 영역으로 사유하는 동안 기존 관념에서 정치의 주된 행위와 계기, 행위자로 여겨진 요소들은 비판받는다. 그것은 바로 정당, 국가 그리고 본질주의적으로 경직된 계급이다. 이들 기존의 정치적 요소가 범한 잘못을 왕후이는 탈정치화라고 지목한다. 탈정치화란 “정치활동을 구성하는 전제와 토대인 주체의 자유와 능동성에 대한 부정”이고 “특정한 역사적 조건 아래서 정치 주체의 가치, 조직구조, 지도권의 해체, 특정한 정치를 구성하는 대결 관계를 전면적으로 없애거나 이 대결 관계를 비정치적인 허구적 관계 속에 놓는 현상”이다. 탈정치화도 정치 형식의 일종이지만 문화와 상호작용하며 활력을 띠는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20세기 중국에서 탈정치화의 사례는 광범위하게 지적된다. 문화대혁명에서 파벌투쟁으로 변질된 대중운동, 개인숭배, 문혁 종결 이후 중국의 1960년대에 대한 부정과 외면, 개혁개방기 중국 사회 구조의 줄기를 이룬 현대화, 시장화, 세계화, 발전, 성장, 소강小康, 민주 등 개념들, 혁명과의 고별,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노동자·농민계급 주체의 소멸, 국가와 그 주권 형태의 전변, 정당정치의 쇠락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흔히 정치행위의 핵심으로 간주되는 파벌투쟁과 이것에 잠식된 문화대혁명을 탈정치화의 사례로 지목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정치에 대한 왕후이의 독특한 해석에서 비롯한다.

  앞서 말했듯 탈정치화를 초래한 주범은 기존 정치 영역의 핵심 요소들이다. 그중에서 왕후이는 정당과 국가를 지목한다. 그 이유는 정당운동이 사회적 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국가, 정부와 거의 동일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 형식과 정치 형식의 탈구는 ‘대표성의 균열’로 개념화한다. 이는 선거를 기반으로 한 서구의 정당과 노동자 정치를 표방한 중국 모두에 해당한다. 대표성 구현 대신 국가 권력 획득에만 관심을 두고 국가와 정부의 메커니즘이 정당정치를 점차 잠식하는 현상을 ‘정당의 국가화’라 정의한다. 그리고 중국의 정치적 특징으로 지목되는 ‘당-국 체제’가 실질적으로는 ‘국-당 체제’라고 비판한다.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는 재정치화와 포스트 정당정치를 제안한다. 재정치화는 문화와 정치가 결합하면서 그 싹을 틔우고 정치 공간과 정치 생활을 활성화함으로써 구현된다. 그 과정에서는 현대 자본주의 내부의 모순과 불균형에 관한 재분석이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이처럼 재정치화 논의는 정치 개념과 중국 현대사에 대한 재해석을 수반한다.

    왕후이는 평등 개념을 재정치화 논의의 논제로 추가한다. 여기서는 기존의 평등 개념을 기회, 분배, 기본능력의 평등으로 구분하고, 이 개념들이 모두 자본 논리의 ‘물화’ 경향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뒤이어 평등 개념을 재구성할 수 있는 사상 자원으로 장타이옌의 ‘제물평등’을 제안한다. 제물평등은 불교 유식학과 장자 제물론을 활용해서 형성된 평등관이다. 제물평등의 핵심 가치는 사물의 기계적 균일화를 지양하고 차이를 기계적으로 없애는 것이 아닌 사물 각자의 차이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사물의 독특성과 독립성을 전제로 하고 이를 그대로 보전할 것을 지향한다. 또한 제물평등의 범위는 인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을 자연사의 내부에서 관찰해서 인간과 사물의 일방적 통제 관계를 해소한다. 이러한 제물평등을 실현한 현실적 계기로는 인류와 사물의 동등한 관계를 지향하고 발전주의에 대항하는 생태주의, 차이평등을 실현하는 민족·지역 자치가 거론된다. 제물평등의 차이평등을 실현할 사회체제로는 왕후이가 예전에 제안한 트랜스시스템사회가 제시된다. (본문 969~974쪽)

 

    왕후이는 위와 같이 20세기를 사상 대상으로 삼아 혁명시대의 역사적·사상적 유산을 점검하고 능동성과 주체성을 갖춘 정치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지향을 드러낸다. 정치성의 복원을 위한 사상적 상상력은 19세기에 서구에서 들여온 서구사상을 참조하면서도 그 범위를 뛰어넘은 근현대 사상의 유산에서 가져온다. 이는 1980년대부터 왕후이가 그 사유의 싹을 틔운 근대에 맞서는 근대의 이념과 연관된다. 신자유주의 체제 비판은 1990년대부터 이어진 정치적 문제의식의 연장이다. 현대 중국의 역사적 기억 위에서 제국주의, 냉전, 신자유주의 세계체제를 성찰하는 작업은 아시아 역사를 통해 세계 역사의 문제를 포착하고 그 역사상을 재구성하고 21세기 신제국 질서와 논리를 극복하고자 한 『아시아는 세계다』의 문제의식을 잇는다. 이 책에서는 세계사 속에서 중국 역사가 갖는 독특한 성격과 의미를 좀더 부각시킨다. 20세기 중국의 정치와 혁명의 경험은 신자유주의, 서구의 19세기식 사상과 체제를 초월하는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사유를 거쳐 왕후이는 중국의 단기 20세기가 홉스봄의 단기 20세기와 다르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홉스봄의 단기 20세기는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일련의 실패로 구축된다. 반면 중국의 단기 20세기는 자신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분투한 시기로 능동적 정치성의 유산을 남긴 시기다. 굳이 유럽과 비교하자면 19세기에 비견되는 ‘독립되어 있고 명명하기 어려운 시대’다. 이런 맥락에서 왕후이는 “20세기의 문화적·정치적 유산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단순히 이미 철 지난 실천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품은 보편성이나 미래의 잠재력을 발굴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사상작업의 의미를 밝힌다. (본문 975~976쪽)

 

 

    한중수교 이후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 정서는 현재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최근 몇몇 기관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반중정서가 막연한 비호감을 넘어서 극단적인 혐중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냉전의 잔재를 악용한 정파적 선전, 황사·미세먼지, 불법조업, 한한령, 혐한, 코로나19, 역사·문화 분쟁(일명 동북·김치·한복 공정) 등 일상적인 경험들의 축적이 비호감 정서를 키웠다. 그리고 이런 정보들을 의도적으로 과장되고 편향된 논조로 유통한 SNS와 정파적 행위가 크게 한몫했다.

그런데 일그러진 중국 인식은 일상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학술적 논의의 장소에서도 유통되는 중국 인식도 현실의 중국과 동떨어진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민족주의적 논조를 차치하고라도 중국에 관련된 토론에서는 연구 주제가 무엇이든 간에 공통적으로 중화주의, 국가주의, 전체주의 등의 혐의를 담은 질의들이 곧잘 등장한다. 그런데 이런 질의에서 언급되는 중국은 현실의 중국이 아니다. 이 질의들에서 말하는 중국은 냉전시대의 중공, 조공체제 시대의 중국, 사회주의 시기와 개혁개방 초기의 빈곤한 중국, 그리고 멀게는 공자와 주희의 중국이다. 이때의 중국은 공산당, 독재, 황제, 노예 상태의 백성이 버무려진 관념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방향에서는 이른바 ‘성현의 말씀’이 신성화되고 그 ‘말씀’의 고향에서 분리되어 수시로 잡다한 유행들과 무매개적 접속을 시도한다. 문제는 이런 질의들이 제기되면 토론을 통해 빈약한 토대가 해소되고 인식이 수정되기보다는 ‘답정너’ 식으로 제기되어 기존의 편견을 확인하고 굳히는 방향으로 논의가 흘러가는 데 있다. 이런 식의 논의는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 확신과 만족, 위안만 확인할 뿐이다. 물론 현재 우리는 많은 중국 전문기관과 연구자의 노력을 활용하거나 네트워크 인프라를 활용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중국의 동향, 중국 내 인사의 견해를 접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인문학과 일상, 정파적 정략의 영역에는 여전히 현실의 중국과 관념 속의 중국의 괴리가 상존하고 재생산되고 있다. (본문 977~978쪽)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하고 건국 100주년 중국몽 실현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지금 사상계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어떤 역할을 할지는 계속 주목할 사안이다. 사실 중국 정부에서 내세우는 100이라는 숫자는 현실의 발전단계와 실질적 연관이 있지는 않다. 사전적으로는 100이라는 숫자는 세기와 더 연관이 깊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세기를 장기 혹은 단기로 부르며 세기와 100의 연관을 실질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따라서 숫자에 불과한 몇 주년을 내세워 흐름을 주도하려 할수록 기념의 껍데기를 벗겨버리고 역사적 흐름의 내막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시대를 20세기 이후의 새로운 시대로 규정할지 20세기를 단기로 끝내지 않고 그 속성을 이어갈지는 아직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그것은 현재의 사유와 실천이 결정할 것이다. 이런 시대의 역사성을 인지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에 대한 냉정한 성찰과 현재의 시공간에 대한 심층적 통찰, 그리고 서로 다른 장소에서 차이와 공통점을 공유하는 이들과의 생산적이고 개방적인 소통이다. 향후 각국 지식인의 힘 있고 생생한 목소리를 매개로 이러한 사유와 대화가 지속되기를 고대하며 이번 번역 작업을 갈무리한다. (본문 980~981쪽)

 

2021년 6월

송인재


 

한겨례 신문 서평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058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