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 분갈이 [유운의 전개도 접기]

화분 / 분갈이

 

이유운

 

화분

 

 

    아이를 낳아본 적은 없었고 살아 있는 것을 가지고 싶었다 마음껏 미워할 수 있도록, 되도록 끊임없이 자라는 것으로 이런 마음은 숨기고 제안을 한다 화분 좀 사러 갈까 꽃이 피는 걸로, 알잖아, 집에 녹색이 없어서

 

    잎과 뿌리를 매만지고 구운 화분이 정말로 숨을 쉬는지 손바닥으로 그것을 쥐어보고 나의 방을 위해 골몰하는 너의 옆얼굴 만약 내가 작은 식물을 데려와 네 이름을 붙이고 너를 기르는 것처럼 그것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래도 우리는 부서지는 것을 사랑할 수 있을까

 

    둥글고 앞으로 휜 꽃받침

    이 꽃 너랑 닮았다

    네가 기울여 열중하는 모습 같아,

    너는 아무렇지 않게 나의 비밀을 말하고

 

    이런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왜 모든 일은 다 이렇게 노력해야만 하는 결말이 될까 책상에 엎드려서 어린 잎맥을 매만진다

 

    여기

    던져져 있는 나

    그 앞의 어린 식물

 

    장마에는 물을 주지 않아도 된대, 공기가 습해서. 간편한 생활 방식에 나는 경악하고 나는 얼마나 복잡한 방법으로 비슷하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늠한다

 

    창문을 연다

    베란다 주변에 빗물이 고여서 썩기를 바라고

 

    곧 무언가가 사라질 것이다

 

 

 

분갈이

 

 

    분갈이를 했다. 위 사진은 ‘하트호야’ 고 물론 개별적이고 사적인 이름 또한 가지고 있는 나의 식물친구다. 이 식물은 아주 느리게 자란다고 했는데, 그래도 두 마디나 자라서 분갈이를 할 때를 맞이했다. 화분을 퍽 오랫동안 세심하게 골라서 분갈이를 해줬다. 얇은 플라스틱 화분에서 하트호야를 위로 쭉 뽑아낼 때, 뿌리에서 흙이 후두둑 떨어졌다. 뭔갈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고 마치 피를 처음 본 의사처럼 긴장했다.

    화분에 흙을 꾹꾹 눌러 채우며 어떤 생명을 책임지는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슬프고 무섭고 무거운 일이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가 계속 강아지며 고양이를 키웠기 때문에 생명이 내 주변에 있는 게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좋아한다. 그 보드라운 털과 나만 바라보는 이성 이전의 사랑을 사랑하지 않고서 나는 배길 수 없다. 그 순박하고 순진한 눈동자에 내가 비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좋다. 평온하다.

    그 생명들이 십 년 전후로 죽을 때, 나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슬프고 마음이 아렸지만 그게 전부였다. 주 보호자가 아니라서 나는 슬픔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들이 나의 뺨을 핥을 때 내가 이들의 죽음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어서, 그래서 나는 간편하게 그들을 사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늙어서 병원에 다니고 치매에 걸려 가리지 못하는 배설물을 치우는 것은 주 보호자인 할머니의 몫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과 산책을 하고 예쁘다고 끌어 안아 주는 피상적인 사랑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사랑은 즐거운 취미에 가깝다.

    서울로 올라오고 혼자 살면서 나는 나의 주 보호자가 되었다. 아직 아무것도 키워보지 못했던 내가 정말 까다롭고 거슬리는 생명인 나를 키워야 했다. 제때 밥을 먹이고 적당한 때에 운동을 시켜주고 좋아하는 책과 음악을 제공해주고 적절히 사랑해주고 세심하게 살펴야 했다. 나와 너무 가까이 있는 나는 너무 괴롭다. 이 생명은 나에게 너무 컸다. 무거웠다. 귀찮았다. 전부 내던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뒷산 수녀원에 올라가서 오디를 따고 가르쳐주는 식물들의 이름만으로 살고 싶었다. ‘싶었다’ 라고 말하는 이유는 결국 단 한 번도 그러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 거라는 증거다.

    그래서 다른 생명을 책임질 생각은 절대 하지 않으려 했다. 세심함은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에 대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면에서 두 번 실패했다. 나는 자주 다른 생명과 내가 함께 살기를 바라고, 그러면서도 그것에 대한 깊고 끈질긴 책임감에 대해서는 쉽사리 잊어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화분을 들일 때는 조금 달랐다. 나를 위해 골라준 식물친구를 받아들면서 나는, 이런 어린 식물을 나에게 골라주는 마음을 상상할 수 있었다. 나는 새 화분을 들이며 점을 치지는 않았지만1 이 식물이 죽지 않고 오래 자라는 동안 나는 어디까지 자랄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사랑이 나에게 주는 넓은 시야를 상상한다.

    그러므로 아직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아직 멀었고

    모두 닿지 않았다.

 

    비가 온다.

    잠시 후 만날 나의 연인에게

 

    나는 너의 이름을 붙인 화분의 흙 밑둥을 눌러주며 네 이마 사이를 입술로 누르는 상상을 했다 아주 많이

 


필자 이유운은 시인이자 동양철학도. 2020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서 <당신의 뼈를 생각하며>로 등단했다. ‘유운(油雲)’은 『맹자』에서 가져온 이름. 별일 없으면 2주에 한 번씩 자작시와 짧은 노트 내용을 올리려 한다. 유운의 글은 언젠가는 ‘沛然下雨’로 상쾌히 변화될 세상을 늠연히 꿈꾸는 자들을 위해 있다.


  1. 권나무, 화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