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현실적인 미묘함에 관하여, <기생충> [톡,톡,시네톡]

 

가난의 현실적인 미묘함에 관하여, <기생충>

 

양윤영(한국방송통신대학교 재학)

 

우리 집은 가난했다. 내가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조금 나아졌지만, 학창 시절 내내 나에겐 차상위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그게 부끄러웠냐면 꼭 그렇진 않았다. 차상위여서 지원받는 것도 있었고, 공부에는 관심이 없던 내가 집이 가난해 학원을 못 가는 것을 핑계로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특성화로 간 이유도 빨리 취업을 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대학을 갈 필요가 없어서 수능을 준비하지도 않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온종일 텔레비전을 봤다. 나는 가난한 가운데에 제법 즐겁게 살았다. 마치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기택네 집이랑 비슷했다.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라는 기택의 말처럼 나는 특별히 계획을 세우거나 뭘 바라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어차피 그래봤자 이룰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다 내게 꿈이 생겼다. 웹툰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보내는 동안 한국만화계는 웹툰으로 넘어가면서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전까지 만화가를 꿈꾸는 것이 내게는 사치라고 생각했는데, 점차 커지는 웹툰 시장을 보니 이곳이라면 충분히 뛰어들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배울 돈이 없었다. 입시학원만 해도 한 달에 50만 원은 드는데, 우리 집은 그 돈을 낼 형편이 안 되었다. 혼자서 연습하기엔 재능이 없었다. 선을 어떻게 그어야 하는지, 색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도서관에서 빌린 만화 작법서를 아무리 읽어봐도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다른 쪽으로는 재능이 있었는데, 이야기를 쓰는 능력이었다. 내가 만든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면, 다들 재밌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문제가 내 발목을 잡았다. 만화를 공부하거나 그릴 시간이 부족해진 것이다. 스무 살이 되면서 나는 회사에 다녀야만 했다. 내가 일을 그만둔다고 집안이 힘들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벌어야 더 나아지는 것은 분명했다. 만화에 신경 쓸 시간은 당연히 줄어들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했지만, 내가 봐도 내 만화의 작품 수준은 너무 낮았다. 나는 계속 투고했고, 계속 떨어졌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내게 시간과 돈이 충분했다면 어땠을까 계속 가정해보았다. 그건 좀, 비참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건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니었다. 주변에 재능이 아주 뛰어난 사람들을 제외하고, 그림이라는 기술을 익히기 위해 돈을 지불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점점 더 뒤처진 것이다. 그 차이는 처음엔 별거 아닌 것 같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가속되었다. 그리고 결국 깨달았다. 가난한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건, 그냥 내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는 것을.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의 가족들이 박 사장의 집에 하나하나 들어갈 때, 처음에는 그 상황이 코믹하고 재밌게 그려진다. 기택네는 박 사장네를 놀리기도 하고, 착하고 멍청하다며 비웃기도 한다. 그러나 박 사장네는 부자다. 비가와도 공기가 맑아질 테니 좋다고 생각해도 되는, 멍청해도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지위에 있다. 그에 비해 기택네는 생각해야 하고, 남을 속여야 한다. 그것이 가난의 속성이다. 비가 와 집이 침수되었을 때, 기정의 표정은 씁쓸하다. 그전까지 기정은 남을 비웃을 여유가 있었지만, 비가 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온통 난리가 난 집, 구정물이 역류하는 변기에 앉았을 때야 자신에게 솔직해진 것이다. 자신이 사는 곳, 그곳의 사라지지 않는 냄새, 올라오는 변기 물. 기정은 박 사장네 식구들을 속인 동시에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을지 모른다. 자신이 정말 제시카라고 말이다. 행복한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현실은 늘 더 끔찍하다.

 

<기생충>이 가난을 다룬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더욱 주목받은 이유는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진짜 가난한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현실적인 미묘함을 잘 잡아내는 것은 무척 어렵지 않은가. 영화의 마지막을 보며, 나는 기우가 기택에게 보내는 편지가 이루어질 법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는 그게 어떤 것보다도 비참한 소망이라는 생각에 조금 슬퍼졌다. 가난은 그 무엇보다도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물론 나는 그 감정에서 벗어나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지만, 뒤를 돌아보면 20대 초 돈과 시간을 만화에 투자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해 속상해하는 지망생이 있다. 거기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사실, 우리 집의 재정이 그 이후 나아졌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고 가세가 더욱 기울어졌다면 아마 나는 만화를 완전히 포기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면 씁쓸해질 수밖엔 없다. <기생충>의 그 결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