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의 항구: 에피쿠로스의 『쾌락』 – ⑤ [내게는 이름이 없다]

즐거움의 항구: 에피쿠로스의 쾌락

 

행길이(한철연 회원)

 

우정, 최고의 기쁨

 

“전 생애에 걸친 축복을 만들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을 갖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혹은 공적 삶을 살지 말 것을 충고하였다. 폴리스적 삶의 양식이 무너진 시대에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쾌락보다는 고통을 가중시킨다. 정치 영역은 이미 권력을 독점한 군주의 손아귀에 장악되었다. 군주는 권력을 분점하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자칫하면 군주의 지배권을 분할받으려는 시도로 인지되어 파멸의 고통을 면치 못할 수도 있게 된다. 권력을 추구하면서도 군주권을 침해하지 않으려는 줄타기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에피쿠로스는 공적 행위인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쾌락의 지속에 손해를 끼치는 것이 되니 적이 생기지 않도록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살아갈 것을 권고하였다.

그렇지만 에피쿠로스가 사회생활 자체를 금한 것은 아니다. 그에 따르면 정치적 활동 이외의 사회생활을 통해 얻는 우정은 인생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 우정이 주는 쾌감은 사회생활을 통해 얻는 즐거움 가운데 가장 안전하다는 것이다. 키케로에 따르면, 에피쿠로스는 ‘우정이란 쾌락과 떼어놓을 수 없고, 우정이 없이는 안정된 삶을 살지 못하고 두려움 없이 살지도 못하며 심지어 유쾌하게 살 수도 없기에 우정도 갈고 닦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자기 철학의 기본 입장에서 벗어나는 말을 할 정도로-“모든 우정은 그 자체로 바람직하다”- 우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에피쿠로스에게 우정은 인생에 있어서 즐거움의 커다란 원천이었다. 에피쿠로스와 제자들은 그가 근근이 마련한 작은 안뜰에 모여 우정을 나누었다. 그의 정원에서는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사회에서는 감히 볼 수 없었던 풍경이 그의 정원에서는 자연스럽게 벌어지기도 했다. 즉 고대 그리스의 고급 창녀들인 헤타이라들이 드나들며 남성 구성원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담론을 나누었던 것이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에서 여성은 더 이상 남성의 노예로 취급되지 않았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그의 적대자들은 에피쿠로스를 창녀와 수작이나 부리는 자로 비방하곤 했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노예와 어린이들(학단 구성원들의 자녀들)도 친구로 대우하면서 상냥한 편지를 남기기도 하였다.

“대지 전체가 고통 속에서 산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가장 많은 선물을 선사받았다.” 그것이 바로 우정이다. 모름지기 인간은 누구나 고통의 삶을 경험하다가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우정은 홀로 맞는 죽음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원천이다. 죽음은 함께 할 수 없다는 고적함의 고통은 누구에게든 보편적이다. 홀로 죽음의 고통이 보편적이라는 각성은 모든 인간을 외로운 존재로 남겨두지 않고 친구로 삼게 하는 동기가 된다.

자유시민들의 우정 어린 공동체라 할 수 있는 폴리스가 소멸한 이후에 우정의 기쁨을 전파할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에피쿠로스의 안뜰은 폴리스의 몰락으로 인해 고립되어 버린 인간들에게 새로운 우정의 공동체를 사적으로 선사하였다. 흔히 우리는 친구들이 반드시 우리를 실제로 도와주기 때문에 우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정이 지속되는 이유는 실제의 도움보다는 “친구들이 우리를 도와주리라는 믿음”에 있다. 이 믿음이 깨지면 세상은 분열과 고립의 고통으로 넘쳐난다.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며 늘 적대자들에게 둘러싸여 불안 속에 살게 된다. 하지만 우정의 삶은 이러한 고립의 환난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준다. 폴리스의 연대적 삶이 소멸된 불안한 상황에서 안전과 평화를 제공해줄 수 있었던 공간은 에피쿠로스가 제안한 우정의 정원이었다. 비록 이 공간은 사적 관계를 기초로 하여 형성된 것이기는 했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은 각자도생의 비정함이 초래하는 삶의 고통에 꺾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정원 속에 모인 이들은 우정의 기쁨을 아래와 같이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정이 춤추면서 세상의 주위를 돈다. 그리고 소리친다. 모두 일어나라! 그리고 노래하자!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우리 시대와 에피쿠로스

 

러셀에 의하면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모험 가득한 행복을 좀처럼 얻을 수 없는 세계에나 어울릴 법한 병약자의 철학이었다. 소화불량에 걸리고 싶지 않으면 적게 먹어라. 다음 날 아침이 걱정된다면 과음하지 말라, 정치와 사랑과 격렬한 열정을 동반하는 모든 활동을 삼가라.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운명의 인질이 되지 말라.” 고통에 침잠하지 말고 그 속에 잠재된 쾌락을 능동적으로 관조하는 법을 배우라. “육체의 고통은 분명히 커다란 악이지만, 격심한 고통이라는 것은 짧은 법이고, 길고 긴 고통이라는 것은 정신훈련을 하거나 고통 속에서도 행복한 일들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을 들임으로써 참아낼 수 있다.”

어찌보면 소심하기 그지없는 철학이다. 그런 까닭에 얄팍한 위로와 단발적 힐링에 열광하는 부박한 시대에 에피쿠로스는 자칫 힐링의 멘토로 부각될 수 있다. 더구나 시민적 연대의 전통과 사회적 보호의 수단이 점차 훼손되고 있는 와중에 현대인의 고통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에피쿠로스가 살던 시대도 극심한 고통으로 마음을 종잡을 수 없는 고난의 시대였다. 지금과 유사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종교의 미망은 올바른 해답이 될 수는 없었다. 사회적 고통을 해결해줄 구조적 대응은 요원한 형국이다. ‘위로의 구루’가 재림하여 힐링의 향유를 피워대면 사람들은 언제든 ‘좋아요’를 누르며 힐링을 소비할 태세다. 하지만 에피쿠로스가 제안하는 위로의 즐거움은 ‘좋아요’와 같은 손쉬운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에피쿠로스의 처방은 정신의 자기성숙을 통한 고통의 극복이다. 정신훈련을 통해 굳건한 정신을 가진 주체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고통도 극복되는 것이다.

우리의 시대에도 같은 방법이 적용될 수 있을까? 시대적 조건이 유사하다는 점에서는 에피쿠로스의 철학이 과거에 수행했던 역할은 오늘날에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이 얼핏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성향은 다르다. 더구나 사람들은 욕망의 무제한적 표출을 동력으로 작동하는 체제에 너무나 익숙해져버렸다. 욕망의 무분별한 추구로부터 초연해지는 평정한 영혼의 상태(ataraxia)를 권고하는 에피쿠로스가 과연 현대인의 삶을 인도하여 즐거움의 항구에 안착하게 만들 수 있을까? 아무래도 모를 일이다.


<에세이 철학>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에세이 철학>

 

‘에세이 철학’은 “일상을 철학화하고, 철학을 일상화할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철학을 하는 데 있어 굳이 다른 사상가의 철학을 빌려올 필요가 없다. 내가 네이버 <지식 저술가> 프로젝트에 제출한 ‘에세이 철학’의 목표이다.

이러한 목표를 고려한다면 ‘에세이 철학’은 불교의 선(禪)과 맥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당나라의 선불교는 잘 알다시피 스님들이 염불하는 법당이 아니라 모두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죽은 경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언어에서 불법을 찾는 중국 불교의 새로운 정신이다. 일자무식인 6조 혜능은 홍인 선사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主 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낸다)’란 금강경 강론을 듣고 홀연히 깨달음을 얻는다. 이러한 깨달음에는 번거로운 절차도 없고, 온갖 언어 수식도 필요 없다. 오로지 행주좌와 일심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에 홀연히 얻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부닥치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자 하는 창조적 정신만이 중요하다. 임제 선사가 말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의 정신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자는 칼을 든 사무라이와 그 정신이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에세이 철학’은 일상을 철학화하고 철학을 일상화할 때 그 어떤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 전통적인 철학의 주제들, 동과 서, 옛날과 지금의 수많은 철학자에 올라타거나 그들의 사상을 빌려오지 않는다. ‘에세이 철학’은 ‘지금 이 순간'(hic et nunc)을 철학의 대상으로 삼는다. 일상에서 부닥치는 모든 대상과 경험들을 철학적 텍스트로 삼아 그것을 비판하고 성찰하면서 철학적 통찰의 깊이를 드러내어 준다. 그러므로 ‘에세이 철학’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선의 정신처럼 모든 권위와 우상의 파괴를 시도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한 4대 우상, 즉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언어의 우상’ 외에도 ‘권력과 국가의 우상’ 등 일체의 권위와 우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에세이 철학은 모든 가치를 부정한 니체의 ‘망치의 철학’을 구현하고자 할 뿐 실체화되고 화석화된 이론에 집착하지 않는다. ‘에세이 철학’은 저 너머의 형이상학을 부정하고,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추상개념들의 몰 주체성도 비판한다.

하지만 ‘에세이 철학’과 ‘선불교’는 근본적으로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도 있다. 불립문자를 추구하는 선은 언어의 끝, 문자의 종언을 주장하는 데 반해, ‘에세이 철학’은 모든 것을 언어로 표현하고자 한다. ‘에세이 철학’을 굳이 선으로 표현한다면 ‘문자선’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21세기에 부활한 선불교의 변형된 형태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문자는 어떤 경우든지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문자를 버린다면 문자가 부재하는 그 세계는 이 세계가 아니고 이 세계와 무관한 세계이다. 이 세계를 초월한 깨달음이 소수에게 가능할지 몰라도, 그것은 이 세계의 다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깨달음의 궁극 목적[상구보리(上求菩提)]은 이 세상과 나누기 위함이고[하화중생(下化衆生)],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함(마르크스)이다. 이러한 정신은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깨달은 이, 모든 인텔리겐차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밖으로 나가 빛을 본 계몽된 인텔리겐차는 동굴 속에 갇혀 있는 자신의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동굴 속으로 귀환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세이 철학’은 선의 문자화, 선의 일상화를 통해 지금 여기에서 깨달음을 구하고 진리의 왕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가장 현실적인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에세이 철학은 그동안 이 땅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추구해 마지아니했으나 누구도 시도치 못한 ‘우리 철학’의 방법론이자 그 철학 자체이다. 지금까지 ‘우리 철학’을 모색한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우리 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내 걸었으나 문전에서 머뭇거렸을 뿐 누구도 그것을 시도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칸트식의 물음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를 못했다. 하지만 내가 수영을 할 수 있는가나 내가 말을 탈 수 있는가는 ‘어떻게’라는 질문을 백날 던져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물속에 뛰어들어 허우적거리면서 배우는 것이고, 말 등에 올라탔을 때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자명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다 보니 그간 ‘우리 철학’을 그렇게 탐구했으면서도 누구도 그런 작업을 구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에세이 철학은 우리의 시대, 우리의 삶을 대상으로 우리의 언어와 우리의 사유를 가지고 표현하고자 한 우리의 철학이다. 더 이상 그것 바깥을 추구하지 않고, 그것 자체를 사유하고 통찰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에세이 철학은 ‘타자의 철학’이 아니라 그 말의 정확한 의미에서 ‘우리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필자: 이종철 철학박사

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를 읽고…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를 읽고…

 

1.

오구라 기조의 『조선사상사』를 지금 막 다 읽었다. 출간되자마자 화제에 올랐고, 일전에 오구라 기조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리와 기로 해석한 한국사회』라는 책을 읽고 강한 인상을 받은 터라 한 번은 꼭 읽어보고 싶었다. 마침 이 책을 번역한 이신철 선생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동료이고, 그가 책까지 한 권 보내 주어서 그 기회를 앞당길 수 있었다. 아무튼 이 책을 펼쳐 들고 중반까지는 꼼꼼하게 읽었으나 뒤로 갈수록 간략하게 넘기다 보니까 대 여섯 시간 만에 다 읽기는 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장을 덮은 다음 곰곰히 생각을 했다. 한국인도 아닌 외국인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사상가들뿐 아니라 어쩌면 한국인들이 쓴다 해도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을 인물들까지 들춰내서 세밀하게 쓴 것이 대단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엄청난 연구와 독서의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그 수준이나 성과 여부와 상관없이 조선의 사상사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과 그것을 학문적으로 표현해준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이다. 다음으로 일본 학자가 이런 책을 쓰는 동안에 한국의 학자들은 무엇을 했냐는 자괴심마저 들기도 한다. 사실 이 책이 나왔을 때도 주로 호기심 많은 저널리스트만이 크고 작은 관심으로 책을 소개하기도 하고 깊이 있는 서평을 써주었다. 정작 학문적으로 연관이 있는 학자 중에는 누구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 기이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마도 학자적 양심이나 부끄러움 때문이거나 혹은 그마저도 없이 한국의 학자들이 이제 공부도 안 하고 문제의식도 없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의심이 어느 정도 합리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 도대체 한국의 학자들 -특히 인문학자들-은 두더지처럼 자기 구멍만 팔 줄 알지 다른 학자들과 소통이나 논쟁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오구라 기조 교수의 책에 대해서도 똑같이 침묵하는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마저 든다. 지난 30여 년 동안 연구자들의 수가 매우 늘어났고 그 수준도 높아졌지만, 그저 논문 기계들처럼 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 사냥하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다른 학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도통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이 인문학자들의 현실이다. 만일 한국의 인문학계가 이런 학문적 무관심과 불통을 계속한다면 가뜩이나 인문학의 소외 현상을 넘어서 미래가 더욱 암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서평을 쓰면서 이런 푸념식의 비판부터 하는 나 자신의 마음도 편치는 못하다. 내가 한국학이나 한국철학을 전공하는 학자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런 서평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렇다. 어쨋든 이런 마음을 염두에 두면서 『조선사상사』를 살펴보자.

 

2.

조선의 사상사 전체를 통람한다는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의 분량을 많다고는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단군신화에서 시작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부터 고려와 조선 그리고 조선 말기 동학과 개화사상, 식민지 시대의 사상과 북조선의 주체사상과 현대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정치가들과 사상가들의 사상까지 기술하고 문학가들의 작품까지 빠짐없이 빼곡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런 작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앞서도 이야기를 했듯 저자의 엄청난 독서 외에도 수많은 사상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파악해서 간단하고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필체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본다면 오구라 기조 교수는 전작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리와 기로 해석한 한국사회』에서 보여주었듯 복잡한 현실과 사상을 단순화하는데 특별한 재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필자와 같은 문외한도 신라의 원효와 의상, 고려의 지눌의 돈오점수의 불교, 조선의 태극논쟁, 사단칠정 논쟁, 인심도심논쟁, 인물성동이논쟁 등 수많은 사상의 갈래들을 어렴풋하나마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저자의 명쾌한 설명과 간결한 문체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비록 상세한 내용을 담지 않았더라도 조선 사상사 전체에 대한 소묘를 잘 해냈다는 점에서 빼어난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나 자신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다른 이들에게 충분히 권할 만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3.

필자는 이 책 전체를 작은 지면에서 다 다룰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으면서 특별히 저자가 강조한 입장이나 시각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언급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오구라 기조 교수는 이 책 모두에서 조선사상사의 특징이 무엇인가에 대해 일본과 비교해서 기술하고 있다. “일본 문화가 외부로부터 도래하는 문화에 대해 브리콜라주(수선)적인 포섭 방법을 취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조선은 “외부로부터 도래한 사상이 기존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변을 추진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고려 시대에 불교가 사회 변혁을 시도했고, 조선에서는 주자학이 국가의 통치 이념이 되면서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꿨다. 이런 전통은 현대에 들어서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 공산주의라는 사상(주체사상)이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일본과 다르게 조선에서 ‘사상의 혁명적인 정치적 역할’의 크기가 막대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오구라 교수는 이 책을 쓰면서 “순수성, 하이브리드성, 정보, 생명, 영성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에 특별히 주목한다고 했다. 조선(이때의 조선은 이성계가 개국한 특수한 의미의 조선이 아니라 단군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을 일컫는 보편적 의미를 띠고 있다) 사상사를 개관한다보면 일본이나 중국의 사상사와 달리 ‘순수성을 둘러싼 격렬한 투쟁’이 강하게 드러나고, 이런 현상은 현대에 와서도 남조선과 북조선 간의 이데올로기 대립, 그리고 저자가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오늘날 한국에서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진영논리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사상의 순수성을 둘러싼 이러한 투쟁은 대개는 중화주의의 틀 안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조선 사상의 독창성 결여와 중국에 대한 종속성과 같은 비판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와는 달리 순수성에 대한 반대의 축에는 불순성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조선의 주자학이 지배하던 당시에도 양명학과 서학이 다른 사상으로 존재했고, 유불도 3교 내지 샤머니즘을 포함한 4교와 같은 혼연일체형의 ‘하이브리드 사상’이 조선사상을 특징지운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 보듯 외래 사상의 유입을 차단하는 ‘정보의 컨트롤’이 지배적이었다. 16세기 말에 서양의 사상과 문물이 대거 동아시아로 밀려 들어 왔을 때 일본에서는 가톨릭 다이묘가 나오거나 남만 사상이 유행했으나 조선의 지배층은 철저하게 이런 정보를 통제했다. 사상의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이런 조치는 19세기 말 외래 사상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보여주는 ‘위정척사’ 운동이나 대원군의 쇄국정책, 더 나아가서는 북조선이 주체사상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외부로부터의 사상의 유입을 철저히 통제하는 데서도 잘 보인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전면적인 순수성의 추구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하이브리드성이 하나의 조선 속에 공존한다고 보는 것은 일종의 억지이거나 무리한 해석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아포리아(aporia)에 직면해서 오구라 교수의 해석의 장점이자 조선사상의 특별한 장점이 드러난다. 오구라 교수는 일견 상호 대립하는 순수성과 하이브리드성, 정보의 통제와 개방 간의 대립을 아우르고 넘어서는 정신의 현상이 조선에는 분명하게 있다고 한다. 그는 이것을 ‘영성’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이 신라의 원효의 화쟁사상부터 퇴계의 이기호발설, 그리고 19세기 조선말 경주 지방에서 등장한 최제우의 불여기연과 동학 사상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오구라 교수는 이것을 ‘영성의 네트워크’로 부르고, 이것이 “조선사상사 전체를 움직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동력이 되고 있다”고 까지 확신한다. 그는 자신의 이런 주장을 특별히 뒷받침하기 위해 퇴계와 최제우의 사상적 연결을 경상도라는 특수한 유대까지 거론하면서 강조하고 있다. 오구라 교수는 이런 영성이 순수성을 둘러싼 유별난 투쟁사와 외래 사상 간의 다양성과 공존을 하나로 엮어줄 수 있는 특별한 지지대라고 보는 것이다.

 

4.

그러면 마지막으로 오구라 교수의 이런 입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나의 생각을 피력해보고자 한다. 먼저 하나의 사상이 한 시대, 한 사회를 완전히 지배하고 개벽한다는 입장부터 보자.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는 특별히 종교적 심성이 강하다는 주장이 있다. 이런 종교적 의식 때문에 신라와 고려에서는 불교가 하나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사회를 이끌었고, 조선에서는 성리학의 통치 이념을 제시했다. 근대에 들어와서 새로 유입된 기독교가 유교를 대신하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믿는 대표적인 종교가 되기도 했다. 사실 기독교가 한국에서 이토록 대표적인 종교가 된 현상은 중국과 일본의 경우와 비교한다면 한국인들의 유별난 종교의식 말고는 달리 설명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러한 의식의 지반 속에서 그것이 불교이든 유교이든 아니면 기독교이든 시대가 변화하면서 지배적인 이념(이데올로기) 역할을 해왔다고 할 것이다. 만약 이처럼 종교에 대한 귀속 의식이 없다고 하면 어떤 하나의 절대적인 사상이나 종교에 의해 그 사회 전체를 이끌어가는 통치 이데올로기가 나올 수는 없지 않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 점에서 오구라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조선은 외래 사상에 대해 일본이 자신들의 틀 속에서 수선하고 개량하는 태도 보다는 전면적으로 수용해서 지배 사상으로 만들고, 그것의 동력이 다한다면 새로운 피를 수혈하듯 새로운 사상으로 전면적으로 대체하는 태도를 반복한다고 할 것이다. 때문에 오구라 교수의 일반화에 대해 한국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특별히 반박하기가 어렵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한 시대나 사회 안에서 대립적인 사상이나 종교 혹은 경향이 모순적으로 대립하면서도 그 사회를 파멸로 이끌지 않는 특별한 이유를 조선사상의 ‘영성’에서 찾는 오구라 교수의 주장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사실 ‘영성’이란 표현은 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말도 아니고 계산적인 이성의 합리성 틀 내에서 파악할 수 있는 개념도 아니다. 이러한 영성은 다분히 종교적 측면이 담겨 있고, 좀 더 철학적으로 표현한다면 감성과 이성을 넘어선 ‘정신'(Geist/sprit)의 측면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것은 경험적이고 가시적인 영역을 넘어서려는 인간 정신의 초월성, 상호 대립하고 모순된 것들을 아우르고 넘어설 수 있는 신비와 형이상학적 사유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런 영성은 사상사적으로 볼 때 장점도 있는 반면에 단점도 적지 않다. 굳이 서양철학의 칸트를 끌어들여 설명한다면 그것은 경험적 직관이나 과학적인 범주를 넘어선 형이상학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이성 비판을 통해 이성의 필연적 지식이 가능한 영역과 그것을 넘어선 영역을 구분하고, 과학으로 종교를 재단하려 한다든지 아니면 종교를 가지고 과학을 지배하려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런 의미에서 영성은 인간 정신의 초월이자 종교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영성을 과학의 세계 안에서 필연적으로 설명을 할 수는 없어도, 그것은 끊임없이 이성과 감성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 그 세계 안에서 설명이 불가능한 것을 설명하고 그 세계 안으로 강력한 에네르기를 불어 넣을 수도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이나 종교적 부흥을 이끌기 위한 영성 운동 같은 경우들이 그렇다. 어느 정도 신비주의의 영역에 맞닿아 있는 이런 영성이 조선사상사를 꿰뚫는 대립물의 화해와 통합의 정신에서 나타나서 끊임없이 사상의 활력을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구라 교수가 영성을 강조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입장으로 볼 때 그것을 ‘영성’이라고 표현한 것 자체가 익숙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앞서 기술한 것처럼 ‘영성’이란 말을 통해 오구라 교수의 취지에 충분히 공감은 하지만 그것을 좀 더 한국인들의 의식 세계를 설명하는 보편적인 언어로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불교나 유교 그리고 현대의 기독교는 한국인들에게는 외래 사상이라고 볼 수가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한국인들의 무의식 세계 저변에는 동아시아의 오랜 샤먼의 전통이 깔려 있다. 한국인들의 무의식 속에서 이런 샤머니즘은 외래 사상을 끌어들여 그 속에서 용해하는 거대한 용광로의 불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와 기독교의 경우는 샤머니즘과의 친화성이 두드러져 나타나고, 엄격한 성리학적 세계관이 지배하던 조선에서도 왕실 깊숙한 세계나 기층민중의 세계에서 샤머니즘의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오구라 기조 교수는 그것을 특별히 원효의 화쟁사상과 퇴계의 이발호발설, 그리고 최제우의 불연기연 사상에서 보듯 사상적인 대립을 넘어서는 초월적 정신의 수준과 연결한다는 점에서 특색이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 흐르는 면면한 정신은 동아시아의 샤먼적 전통 (최치원이 말한 풍월도)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영성’이란 표현보다 ‘샤먼’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상과 철학사 안으로 샤먼의 무의식을 끌어들이려고 한다면 진저리를 칠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다.

 

오구라 기조 교수의 『조선사상사』를 주마간산 격으로 읽기는 했지만 느끼는 바는 컸다. 이렇게 생각거리를 많이 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의미가 크다. 이 책을 기점으로 한국의 학자들도 사상사와 철학사의 기술에 적극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그동안 서양 사상을 수입하고 중국 사상을 반복하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제 나라의 사상사를 일본 학자의 저술을 통해 배운다는 것은 학문적 자존심도 걸려 있고, 학자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영화 ‘너의 새를 노래할 수 있어’를 보고[흐린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타인의 고통받는 얼굴에 관해

1)

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이하 ‘너의 새는’)는 청년의 절망감을 주제로 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제목이 좀 특이한 데, 원래 비틀즈의 노래다. 노래 가사는 ‘너는 너의 새가 노래할 수 있다고 자랑하지만 너는 나를 갖질 생각은 없는 것 같아. 너의 새가 죽더라도 나는 늘 너의 곁에 있는데’라는 뜻으로 보인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 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는 영화의 주제와 직결된다.

이 작품은 일본 작가 사토 야스시의 작품을 영화화한 것이다. 사토 야스시는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다. 40세 자살했으니, 남긴 작품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작품으로 내가 접한 것은 딱 한 권 ‘황금옷’이라는 단편집이다. 그 작품집에는 세 단편, ‘황금옷’ 외에 ‘오버 더 펜스’, ‘여름을 쏘다’가 들어 있다.

그의 작품은 많이 영화화되었다. ‘오버 더 펜스’라는 작품도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그 밖에도 ‘그곳에서만 빛난다’라는 영화도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고 한다. 그가 나이 서른 무렵 1980년 경 쓴 작품인 ‘너의 새는’은 2018년 미야케 쇼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영화 ‘너의 새는’은  연애 이야기이다. 여기서 세 명의 주인공이 즉 화자인 나와 사치코, 나의 룸메이트인 시즈오가 등장한다. 배경은 일본의 바닷가 작은 도시이다. 나와 사치코는 작은 서점의 알바생이다. 시즈오는 직장을 구하는 중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세 사람의 연애 이야기이다. 핵심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 ‘나’는 길거리에서 서점의 점장과 함께 가는 사치코를 만난다. 사치코와 ‘나’는 서로 가까워지고 ‘나’는 사치코를 자취방으로 데려온다. 나에게 무언가 기대했던 사치코는 점차 시즈오에게 기대게 된다. 시즈오가 캠핑을 가자 하자 사치코는 따라나서지만, ‘나’는 포기한다. 이미 사치코의 감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치코는 돌아와 ‘나’에게 시즈오와 연인 관계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영화 마지막에 ‘나’는 떠나는 사치코를 쫓아가서 고백한다. 너를 사랑한다고, 그리고 나의 삶은 모두 거짓이었다고.

2)

얼핏 삼각관계 이야기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 남녀 주인공의 성격이 매우 독특하기 때문이다.

우선 남자 주인공을 보자. 화자인 ‘나’는 대학은 졸업했지만, 서점에서 알바를 한다. 그는 달리 취직할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다. 아마도 평생 알바를 할 것 같다. ‘나’는 자신이 사회로부터 밀려난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기꺼이 이를 받아들인다.

‘나’는 성실한 것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다. 직장에 제시간에 나가는 법도 없다. ‘나’는 일도 건성으로 하며 책 도둑을 쫓아가지 않았다는 사장의 책망을 듣고도 “자르고 싶으면 자르시라”고 말한다. 그의 말은 우리에게 반발이라기보다 오히려 자조 같이 들린다.

‘나’는 세상과 고립적으로 살아간다. ‘나’에겐 다른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 시즈오와는 가깝지만, 필요에 따라서 함께 살 뿐이다. 다만 서로 간섭하지 않는 한에서만 가까이할 뿐이다.

‘나’에게 여자도 마찬가지다. ‘나’는 사치코를 그저 함께 술을 마시거나 당구를 하거나 가벼운 육체적 관계를 맺는 정도로만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나’는 절망감에 사로잡힌 듯 보이지만 그것을 벗어날 생각도 없으며 이미 그것이 절망이라는 느낌조차도 사라져 그저 일상이 되었다. 남들이 그런 ‘나’를 비참하게 본다면 ‘나’는 오히려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게 어때서?”

주인공의 이런 처지는 외적은 풍경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영화가 전개되는 계절은 끈적끈적하고 무더운 여름이다. ‘너의 새’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9월이 되어도 10월이 되어도 다음 계절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 풍경은 사토 야스시의 다른 소설 ‘여름을 쏘다’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표현된다.

“1층 지붕에 가늘고 길게 펼쳐진 그림자 속에서 다리를 접고 쭈그려 앉아 한여름의 햇살이 기세를 누그러뜨릴 때까지 날갯죽지에 얼굴을 묻은 채 꼼짝 않고 버텨 내는 것이다. 그 좁은 그림자 속에 일렬로 늘어서서”

3)

‘너의 새는’이라는 영화는 주인공의 절망감을 표현할 뿐 절망감에 사로잡힌 이유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단서를 찾자면 우선 작가 자신의 생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토 야스시는 49년 출생이니 아마도 60년대 초 대학을 다녔을 것이다. 이때 일본에서 전후 체제를 비판하는 학생들의 저항운동이 가장 격렬했을 때다. 그의 소설을 보면 그도 이런 운동에 약간은 가담한 걸로 보인다. 70년대 초 적군파 파문 이후 일본 학생운동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일본 주식회사였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그의 절망의 단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토 야스시의 작품 속에서도 그런 배경을 찾아볼 수 있다. ‘오버 더 펜스’에서 주인공은 도쿄에서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바닷가 고향으로 돌아와 직업훈련을 받고 있다. 그는 무언가 작은 것이더라도 성취하려는 야망을 지닌 교관을 보면서, 도쿄에서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상사를 연상한다.

처음엔 주인공도 일본 주식회사가 감추고 있는 억압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그저 일개미처럼 살아갈 뿐이다. 그 억압은 오히려 그의 아내에게 나타난다. 아내는 아이를 낳은 후 우울증을 겪으면서 심지어 아이의 얼굴을 방석으로 눌러 죽이려 한다. 그 때문에 그는 아내와 아이를 친정으로 데려다 준다. 얼마 뒤 아내는 장인을 통해 재출발하겠다면서 편지를 보낸다.

비로소 절망이 그를 사로잡았고 그도 사표를 내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모든 것을 잊으려 한다.

“도쿄 생활이 점점 의식에서 사라져 갔다. 겐이치와 다이시마가 물어오면 도시에서 쫓기며 살아가는 게 넌더리가 났다고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러다 보면 그들도 점점 흥미를 잃어버릴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도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깡그리 잊고 말 것이다.”

4)

여자 주인공 사치코도 역시 어떤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치코를 사로잡은 절망감은 사치코가 서점 주인과 맺은 관계에서 볼 수 있다. 사치코는 서점 주인장과 육체적 관계를 맺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관계가 어떤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사치코는 이를 잘 안다.

사치코는 헤어지고 싶지만 헤어지는 일조차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것은 서점 주인이 매달리기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전체 맥락은 만일 헤어졌을 때 사치코 자신이 견딜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사치코는 주인공 ‘나’와의 관계를 통해서 서점 주인과의 관계를 벗어나 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나’란 인물과의 관계 역시 어떤 가능성을 보이지 않는다.

사치코는 ‘나’의 그런 반응에 대해 실망하면서 다시 그런 절망적 상황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사치코는 서점에 나가지 않고 시즈오를 불러내 시즈오에게 다가간다. 시즈오는 적어도 사치코와 닮은 점이 있다. 시즈오는 아직 하늘의 별과 숲에서의 고독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사치코는 시즈오를 따라 캠핑에 가고 시즈오와 연인 관계에 이른다. 하지만 이 역시 사치코가 진심으로 기대하는 것을 충족시키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치코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이고 그 점에서는 ‘나’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나’의 경우는 자신의 절망을 절망으로 느끼지 않는다. 그저 그런 삶일 뿐이다. 그러나 사치코는 다르다. 아직 자신의 절망적 상황을 벗어나려고는 기대를 그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사치코는 고통스럽다. 사치코가 지닌 내적 고통은 사치코가 시즈오와 함께 노래방에서 부르던 노래에서 조금은 드러난다.

사토 야스시의 다른 소설에서 여자 주인공은 좀 더 분명하게 자신의 고통을 드러낸다. ‘황금옷’의 여자 주인공 아키는 이혼했다. 남자는 결혼 후에도 다른 여자와 자고 다녔고 그것에 반발하듯 아키 역시 남편의 친구와 더불어 잠을 잤다. 서로 무관심한 상태에서 1년 후 헤어졌다.

그런데 아키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 고통스러워 한다. 아키는 이 고통을 억누르고 있어서 평소에는 밝은 모습이다. 하지만 때로 이 고통이 그녀의 빈틈을 비집고 솟구쳐 오른다. 그런 고통은 때로는 정신적인 병이 되어 나타난다. 아키는 자신이 더럽다고 생각하면서 집에 오면 온몸을 거의 강박적으로 깨끗하게 씻는다.

“이렇게 씻잖아. 그러고 나서 바깥으로 나가는 거야. 다시 방으로 돌아오면 도로아미타불이야. 몸이 완전히 더럽혀진 느낌이 들어. 할 수 없이 다시 샤워를 하거나 이렇게 수건으로 닦는 거지.”

‘너의 새는’에서 사치코에게 이런 강박증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아마도 사치코에게도 이런 모습이 감추어져 있지 않을까 충분히 짐작된다.

5)

‘너의 새는’이라는 영화가 간단치 않은 것은 바로 남녀 주인공이 가진 이런 내적인 풍경 때문이다. 풍경은 공허한 풍경이다. 이런 공허한 풍경 가운데서도 이들 주인공이 오직 하나의 삶의 감각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육체적인 것에서 발견된다.

‘너의 새는’에서 ‘나’와 사치코, 시즈오는 힙합 클럽에 가서 오랫동안 춤을 춘다. 그들의 춤 속에 내적인 갈망이 리듬으로 표현된다. 영화는 그들의 춤추는 모습을 상당히 길게 잡아준다.

사토 야스시의 다른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육체적인 것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황금옷’의 주인공은 수영을 즐기며, 작가는 이 모습을 이렇게 그려낸다.

“손발을 한껏 뻗어서 물의 감촉을 즐겼다. 이런 감촉만으로 아키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에게 이 세계는 수영장을 가득 채운 물 같은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

“즐겁게 헤엄쳤다. 아키를 생각했다. 그녀도 이렇게 헤엄치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바다에 떠 있다 보면 수영장에서 헤엄치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 나를 데려와 줘서 고마워.’ 물론 미치오의 말이 옳았다. 아키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적었지만 25미터 거리의 수영장에서 헤엄치 노라면 좁아 터진 수조에서 사육 당하는 물개가 된 기분이었다.”

이들이 육체적 감각에 빠지는 것은 그들이 무언가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절망이 일본 주식회사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그런 일본 주식회사를 넘어선 어떤 사회, 그 속에서의 삶일 것이다. 그들이 오직 기쁨을 발견하는 섹스 역시 그런 삶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새로운 사회와 삶은 실현될 수 없다. 그들이 그런 삶을 꿈꾸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이 춤과 수영을 통해 얻는 감각적 즐거움이란 하나의 잔재이다. 이런 잔재는 말라비틀어진 삶의 잔재, 마치 목마를 때 콜라를 마신 듯한 느낌일 뿐이다. 막연하게 또는 무의식적으로 찾아오는 느낌이 그런 것으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주인공은 카뮈 이방인의 뫼르소를 닮았다. 그들 주인공은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고립된 채 뜨거운 여름 지중해 해변에서 수영을 즐기는 뫼르소를 연상시킨다.

6)

이제 ‘너의 새는’이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이해해 볼 때다. 사치코가 시즈오와 연인 관계를 맺기로 했다고 말했을 때 ‘나’는 처음에 담담하다가 사치코가 떠나자 갑자기 미친 듯이 달려가 나의 삶은 거짓이었다고 말한다. 이는 ‘나’의 전환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전환이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영화만으로는 그 전환의 계기가 불투명하다. 아마 원작인 소설을 보았다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 지금까지 참조한 사토 야스시의 다른 소설을 통해 그런 전환의 계기가 약간은 드러난다.

‘황금옷’에서 주인공은 아키가 강박적으로 몸을 씻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아키가 약을 먹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이 어떤 효과를 가진 것인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주인공에 타인에 대한 관심이 깨어난 것이다. 이 소설은 남자 주인공의 냉담함은 여자 주인공의 고통을 통해 깨어지는 구조를 가진다.

‘너의 새’의 경우에도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영화에서 사치코가 자신의 내면적 고통을 보여주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사치코가 시즈오와 함께 노래방에서 노래할 때다. 사치코가 부르는 노래는 그 자신의 내면적 고통을 고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주인공인 ‘나’는 없었고 오히려 시즈오가 옆에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내면적 고통은 무의식적으로 주인공 ‘나’에게 각인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나’가 화장실에서 동료가 사치코를 비난할 때 갑자기 흥분하여 동료의 머리를 벽에 처박는 장면을 보면 그런 각인의 흔적이 엿보인다.

타인의 고통을 통해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는 사토 야스시의 소설 구조는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의 철학을 생각나게 한다. 레비나스는 고통받는 타인의 얼굴을 통해서 신을 보게 되며 신의 명령을 듣는다.

획득형질도 유전되는 괴이한 사회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획득형질도 유전되는 괴이한 사회

 

이종철(연세대)

 

한국인들이 첫 만남에서 빠지지 않고 묻는 말이 있다. 고향이 어디고, 나이가 몇이며(혹은 학번이 어떻게 되고), 학교는 어디를 나왔냐는 거다. 연줄이 중요한 사회다 보니 이런 식으로 고향과 나이 그리고 출신 학교로 상대가 나와 연줄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연줄만 확인하면 좋은데, 문제는 이런 세 가지 연줄에 기초해서 바로 위계(hierachy)를 설정하는 것이다. ‘아, 같은 고향 사람이네’라고 확인이 되면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어제까지 생면부지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웃사촌들보다 더 가까워진다. 아울러 출신 학교를 물으면서 동문 여부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가방끈의 길이와 레벨까지 평가한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70~80년대는 지방의 명문 국립대들이 있어서 어느 정도 다양성이 있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이른바 인서울 대학과 지잡대로 훨씬 단순화시켜 버린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첫 대면은 단 몇 분이면 이런 견적서를 교환하면서 상대를 내편 네편으로 편 가르고 평가하는 과정이 되어 버린다.

이런 행태는 나이를 많이 먹었건 젊었건, 한국 안에서이건 아니면 유학을 가거나 해외에서 사람들을 만나건 간에 거의 변함이 없다. 한 번은 내가 해외에서 동문 모임에 참석했을 때 그 자리에 주재국 대사의 부인이 동문의 일원으로 참석한 적이 있었다. 외국에서 대사의 지위는 본국의 대통령에 버금갈 정도라 할 수 있고, 그 부인은 이른바 영부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동문회 모임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녀는 위로 20~30년도 더 된 선배들 틈에 끼여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고, 비슷한 또래들과 모임 뒤치다꺼리하다가 나중에 전체 사진을 촬영할 때는 뒷자리 옆으로 비켜서 찍었다. 대사 부인으로서 존재감을 전혀 과시하지 못한 것은 안에서나 밖에서나 동문 간 학번에 따른 서열을 무시하지 못한 탓이다.

내가 아는 모 선배 교수는 독일의 대학에서 70~80년대 유학 생활을 할 때 같은 한국 유학생들 모임에서 진저리가 났던 경험을 나에게 토로한 적이 있었다. 공부하러 외국에 나왔으면서도 여전히 한국의 출신 대학을 따지고 학번을 따지면서 끼리끼리 놀더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가 있었던 지역에는 한국에서 광부로 일하러 온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 경우는 가방끈 길이와 직업마저 문제가 됐었다고 한다. 70~80년대는 한국의 유신 독재와 광주의 경험에 대해 비판하고 저항하는 운동이 해외에서도 적지 않았는데, 그런 진보적인 그룹 안에서도 여전히 학벌과 대학 그리고 학번 등이 보이지 않는 장벽과 차별의 원인이 되곤 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내부에서 출신 학교와 학번을 절대 밝히지 말자는 다짐까지 했다고 한다.

한국인들의 이런 패거리 의식과 서열 의식은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을 불문율처럼 생각하면서 제대하고 나서도 자기들 집단을 과시하는 모자와 군복을 입고 지역마다 치안을 맡는다는 일부 해병대 출신들의 행태처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청소년기의 특정 시점에 그저 암기식의 공부를 해서 얻은 점수를 가지고 대학을 들어간 것까지는 그나마 인정해주겠지만, 그것이 평생의 삶을 평가하는 절대 기준처럼 작동하는 사회도 정말 괴기하게 보일 정도로 문제다.

 

한국에서는 특정 대학 출신 여부가 나중에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 임용에도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른바 선진국 대학에서는 전공 학과와 학적을 옮길 때마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한국에서는 절대 금물이며 오히려 부정적 평가로 작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를테면 비서울대 출신이 대학원을 서울대로 진학해서 그곳에서 학위를 받거나 아니면 외국 유학을 가서 받은 경우에도 중요한 평가 기준은 학부를 어디 나왔느냐에 있다. 이런 이야기가 전혀 농담이 아닌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몇 년 전 서울대 학부에서 순혈주의 운운하면서 석박사 과정을 다니는 비서울대 출신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식으로 학내 게시판에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그래도 명색이 한국에서 최고 명문 대학이라고 하는 곳에서 이렇게 유치 찬란한 출신 논쟁을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학벌 의식이 저급한 의식 수준 이상으로 무의식적 수준에서까지 작동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철학자 한 분은 자신이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학문적 업적과 활동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자리를 못 잡은 이유를 ‘학부를 서울대 나오지 못한 탓’으로 돌려서 말한 적이 있다. 본래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이 생물학 불변의 법칙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의 정신세계에서는 절대적으로, 그리고 대를 이어 유전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괴이한 의식이 포스트 모던 논쟁도 더는 힘을 잃고, 21세기 4차 산업 혁명의 문턱에 들어서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운운하는 시대에 세대를 불문하고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이상의 얘기들은 절대 꾸며냈거나 과장한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정치권에서 이슈화되고 있다.

 

한림대 출신의 젊은 여성 정치인으로 지난 대선에서 20대 여성의 돌풍을 일으킨 박지현이 민주당의 비대위 공동 위원장을 맡자 그이에게 당장 시비를 거는 말이 20대 여성이라는 말보다 한림대 출신이라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지잡대 출신이 어떻게 SKY가 즐비한 정계에 명함을 내밀 수 있느냐가 그들의 절대 관심사다. 그들에게는 정치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가방끈이 어떤 색깔이고 얼마나 긴지가 더 중요하다. 천안함 몇 주기를 잘못 말했다고 해서 정치인 자격이 없다는 명분을 제시하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지잡대에 대한 경멸이 깔려 있다. 그러나 그런 암기식의 지식은 구글과 빅데이터가 지배하는 시대에 조금의 의미도 없는 것이다. 오직 암기식 교육으로 엘리트 코스를 거친 헛똑똑이들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지난 수십 년의 한국 정치사를 돌이켜 보면, 이런 가방끈을 가지고 그동안 유신과 군사정권이 끝난 이래 거의 30여 년 이상을 서울 법대 출신들이 한국 정계를 장악하고 지배해왔다. 하지만 그들은 회전문과 전관예우를 이용해 한국 정치의 보수 기득권 세력을 형성하는 데 앞장섰을 뿐이다. 오히려 이 한국 정치를 개혁하고 선도한 것은 김대중이나 노무현처럼 고졸 상고 출신이 더 큰 역할을 해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라는 것은 그저 학교에서 암기식으로 배운 지식이나 육법전서를 달달 외어서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정치는 오래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필연적 지식을 다루는 계산적 이성의 수준을 넘어서 인간, 그것도 사회적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정서, 쓰고 단 경험, 대중과의 교감과 리더십, 그리고 고통과 인내심 등 수많은 복합적 변수를 담고 있다. 오죽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는 인생의 쓰고 단 경험을 어느 정도 겪은 50대에 들어서야 알 수가 있다고 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지혜는 필연적 지식을 말하는 에피스테메(episteme)가 아니라 개연적 지식인 독사(doxa)도 포괄하는 프로네시스(pronesis)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나 역시 같은 맥락에서 철학자로서 솔직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정치는 암기식 교육에 일찍부터 길들어진 SKY 출신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일단 이들은 성장 교육의 과정에서 ‘No!’라고 말한다든지 일탈을 경험하지 못한 모범생(범생이)에 가깝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일수록 부모나 선생의 말을 잘 따르는 순둥이일 경우가 많다. 머리가 아주 비상해서 일반적 잣대로 평가하기 어려운 경우를 제외한다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타자의 명령에 잘 순응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므로 이들은 부모나 선생이 시키는 일을 수동적으로 잘할지 몰라도 자기 스스로 생각한다든지 변화와 개혁을 시도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수동형의 순응적 인간보다는 능동적이며 주체적, 창의적이 도전적인 인간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이런 요구는 특히 정치권에 필요한데 도대체 순둥이들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가 있겠는가?

둘째로, SKY 출신들은 학교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나설 때까지 우수한 학교 성적을 쟁취하기 위한 무수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오로지 자기만 알고 남을 배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존의 기술이자 법칙으로 귀에 따갑도록 들어왔다. ‘아생살타’(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한다)는 그들의 삶을 지탱해온 제1원칙이다. 성장 과정에서 이런 식의 생존경쟁에 익숙한 이른바 엘리트들에게는 자기 독선적인 이기심이 일반 대중들보다 훨씬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들은 가정과 학교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서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면 이해를 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그런 현상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기가 십상이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과정에서 늘 일등만 꿈꿨던 이들이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반면 정치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타협과 연대 그리고 공생을 요구하는 분야인데, 독선적이고 오만한 인간들이 어떻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와 국가를 만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런 인간들로 채워진 한국의 정계가 타협과 협력보다는 유아독존식의 일방통행과 투쟁으로 점철된 현상을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정치사가 웅변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런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들이 끊임없이 현대 세계에서 요구되는 변화와 개혁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SKY 출신의 법조인들이 정계에 들어오는 관문은 대개가 보수고, 들어와서도 대부분은 보수 정당에 터를 잡는 경우가 그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일본의 엘리트 가문이나 학벌 중심의 정치가 대표적으로 그런 경우인데, 오늘날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보면 그 폐해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들 엘리트 가문과 학벌 출신의 정치인들이 대를 이어 자민당의 핵심 기득권 세력을 유지하면서 일본의 개혁과 개방을 철저히 외면하고 극우 보수주의로 이끌어 온 결과 이제 일본은 사회 전반의 탄력을 상실하고 이류 국가로 전락하고 있다. 지금 한국 정치가 엘리트 중심을 벗어나 나 가방끈이나 지역을 불문하고 역량 있는 새로운 피를 수혈하지 못한다면 한국 정치도 머지않아 일본의 나쁜 길을 답습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정치는 엘리트주의로 길들어진 SKY 출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일등만 꿈꿨고, 자기중심의 독선에 빠진 하버드 출신의 이준석보다는 한림대 출신의 참신한 여성 정치인 박지현에게 더 큰 기대와 희망을 건다. 형식적인 학벌을 껍데기로 둘러쓰고 온갖 불평등과 차별을 은폐시키고 있는 능력주의를 그 의미도 제대로 모른 채 떠드는 이준석보다는 지역과 대학과 나이와 성의 차별을 온몸으로 깨달으면서 이 사회의 근본문제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무엇을 바꾸고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위해 분투하는 박지현이 한국 사회의 미래 정치의 상징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에서 대학의 비중은 지금보다 훨씬 더 줄어들 것이다. 학교 안이 아니라 학교 밖이 더 중요해지는 세상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적인 기후 변화 운동을 이끄는 어리지만 아주 당찬 여성 스웨덴의 툰베리(Greta Thunberg, 2003년생)가 그런 모습을 앞장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사진: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출처: https://www.greenqueen.com.hk/7-things-you-didnt-know-about-swedish-teenage-climate-activist-greta-thunberg-gretathegreat/

다석 사상과 정신과 육체의 문제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다석 사상과 정신과 육체의 문제

 

이종철(연세대)

 

일전에 다석 류영모 선생의 사상을 발표할 때 받은 질문 중의 하나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나도 정신과 육체를 대립적으로 생각하는 다석의 사상이 문제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날 나온 질문은 훨씬 더 심각했다. 과연 인간의 몸과 마음은 별개인가, 몸은 플라톤이 생각하듯 마음의 감옥이고 이 몸을 벗어날 때 비로소 해방될 수 있고 참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까? 다석도 플라톤처럼 몸나인 제나와 정신을 가리키는 얼나를 구분하고, 식과 색에 사로잡힌 제나를 버릴 때 얼나를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다석은 일일 일식으로 식을 최소화하고, 부인에게 해혼식을 선언하면서 색도 끊었다. 그의 이런 행위는 자기 생각을 직접 실천에 옮긴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곰곰히 생각해본다면, 과연 몸이 식과 색의 기능만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것에 대해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도 있듯, 육체의 건강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몸이 불편하면 짜증이 나고 힘이 들고 생각도 귀찮아지기도 할만큼, 정신은 육체의 구속을 절대적으로 받고 있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를 두 개의 서로 다른 실체인 res cogitans(정신)과 res extensa(물질)로 간주했지만, 그 역시 육체와 정신의 상관성 문제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해낸 것이 인간의 머리 뒤편에 송과선이 있어서 이곳을 통해 정신과 육체가 상호 작용한다는 억지 이야기까지 꾸며대기도 했다. 그 이후 서양 근현대 철학에서 mind-body 문제는 양자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의 차이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반면 동양의 오랜 전통 사상에서는 몸과 마음은 일종의 대대 관계를 유지하면서 상관성과 상호관계를 이루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희노애락과 같은 인간의 감정도 육체의 영역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의 성리학에서 수백 년 동안 전개되었던 이기 논쟁도 따지고 보면 정신으로서의 리와 감정으로서의 기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는가의 문제였다.

역사를 통해서 보면 정신과 육체를 별개로 생각하고, 육체를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종교나 철학의 전통이 꾸준히 이어져 왔다. 기독교와 그에서 파생된 영지주의, 플라톤과 데카르트 그리고 칸트로 이어지는 형식주의 철학이 그렇고, 동양의 불교 사상을 위시한 대부분 종교도 같은 계열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인간의 육체가 죄의 근원이고 모든 고통의 원인으로 간주 되므로 가능한 한 몸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구원이고 해탈로 간주한다. 정신의 자유와 해방은 육체의 영향을 극복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정신주의의 전통은 각 문화권에서 크고 작은 형태로 늘 반복되고 있다. 오늘날에도 요가나 명상 그리고 참선을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원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되고 있다. 다석 류영모의 제나와 얼나 사상도 이런 계열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식과 색은 인간의 육체를 유지하는 필수적 기능이다. 외부의 영양소를 섭취하고 소화와 배설이 반복적 순환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우리 몸의 건강이 유지된다. 마찬가지로 색은 인간종의 재생산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인간에게 유희와 쾌락을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식과 색을 떠난 인간을 생각하기는 힘들다. 일일 일식과 해혼과 같은 금욕도 사실은 식과 색의 영향을 최소한도로 만드는 것일 뿐 완전히 단절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운동과 수행을 통한 육체의 단련은 정신에 생기와 활력을 주고, 이것이 사고 활동을 크게 진작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활력이 없다고 한다면 사유의 기능도 유지하기가 힘들다. 우리가 극한의 운동이나 노동, 혹은 수행을 하는 상황에 있다 보면 무엇이 육체이고 무엇이 정신인지, 나누기가 어려운 묘한 경계나 정신과 육체의 합일 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이런 단계에 이르는 데도 육체의 절대적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육체는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의미 이상으로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의미도 많이 가지고 있다. 만일 육체와 정신의 관계를 대립적으로만 간주한다면, 앞서 말한 육체와 정신의 상호성과 합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탈세계적인 이데아론을 비판한 것처럼 극단적인 정신주의에 반발해서 정신과 육체의 합으로서만 인간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이 훨씬 더 건전한 이성에 맞고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육체를 떠난 정신이 어디에 있을 수 있고, 정신이 없는 육체란 그저 비곗덩어리에 불과한 물질일 뿐이다. 사후의 영을 이야기하는 종교나 철학의 설명은 그저 설명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한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영혼과 죽음에 관해 가장 빼어난 문헌 중의 하나로 간주 되는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육체가 영혼의 감옥이고, 철학은 육체의 구속을 벗어나기 위한 ‘죽음의 연습’이고, 사후에 인간의 영혼은 참다운 이데아의 세계에서 진리와 자유를 갖는다고 이야기를 한다. 스승을 감옥에서 빼내러 왔던 제자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이런 확신에 찬 말을 듣고 감히 도망가자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소크라테스가 한 말에 더 주목할 일이다. “나도 직접 그 세계에 가본 것은 아니고 들은 이야기야.”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이야기가 경험적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고 다만 전언일 뿐임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경험적으로 절대 검증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가설이고 종교적인 믿음에 속할 뿐이고, 과학의 세계와는 도저히 양립 불가능한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제나와 얼나를 절대적으로 대립시키고, 제나를 버리고 얼나를 취할 때 비로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한 다석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그것은 다석의 취지를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지나친 ‘정신주의’의 한 표현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의 사상의 긍정성을 받아들인다 해도 이런 형태의 정신주의를 무조건으로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정신주의가 지나치는 경우 깨달은 소수의 엘리트주의(선민사상)에 빠질 위험도 있다. 이런 형태의 엘리트주의는 근대가 이룩한 민주주의 체제에 역행할 수도 있다. 많은 문제가 있더 하더라도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사회체제이다. 소수의 깨달은 자가 요구된다 하더라도 그들을 중심으로 사회를 운영할 수는 없다. 만약 무리하게 그것을 실행하려 할 때 그것은 불가피하게 파시즘이나 인종주의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초인사상을 주장한 니체가 왜 반민주주의자인가를 알 수가 있다. 과거 하이데거의 철학이 나치의 파시즘에 부역한 현실도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다석의 사상을 신학적 세계관의 한계를 넘어서 보편화시키려 할 때 이러한 인간관의 한계도 동시에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청와대와 제왕적 대통령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청와대와 제왕적 대통령

 

이종철(연세대)

 

새 대통령에 취임할 윤석열 당선자의 사고에서 ‘공간’이 갖는 의미는 다소 특별한 것 같다. 그는 공간에 대해 지금까지 두 번인가 새로운 말을 했다. 하나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 결단하지 않으면 제왕적 대통령 못 벗어나”이고, 다른 하나는 “일단 청와대 경내에 들어가면 제왕적 권력의 틀을 벗어나기 힘들다”이다. 이 말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기 전에 그가 이렇게 공간 문제에 집착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을 정도이다. 그는 왜 그렇게 공간의 문제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혹시 풍수와 연관 지어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인가. 그리고 공간, 좀 더 구체적으로는 청와대 공간이 제왕적 대통령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절대 청와대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억지를 부릴까? 이런 반응은 다소 분석이 필요할 만큼 특이하다.

 

첫째, 공간과 의식의 상관성을 부정하기는 어렵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과거의 풍수지리설은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가령 섬나라나 반도 기질을 이야기하거나 혹은 대륙의 기질을 이야기하는 것도 섬이나 반도 혹은 대륙이라는 공간이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성격이나 행동에 일정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섬은 독립적인 공간이다 보니 외부에 대해 극도로 배타적이거나 개방적일 수 있고, 외부(대륙)로 진출하려는 경우 공격성을 띠는 경우가 있다. 일제가 조선 침략을 정당화할 때 반도론을 사용한 것은 한반도가 대륙과 해양 세력 간의 변도에 따라 타율적으로 변화해 왔으며, 중화 모화사상도 반도론의 연장 속에서 해석했었다. 대륙은 워낙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인구 밀도도 낮아서 서로 간에 직접적으로 부딪힐 필요가 없고, 설령 부딪힌다 해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넓다. 그런 의미에서 대륙의 기질은 타자에 대한 관용의 여지가 넓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런 것들은 공간이 인간의 의식과 행동 그리고 삶에 일정한 영향을 준다는 좋은 예이다. 하지만 양자의 상관성은 일정한 경향이나 상대적 영향이지 결코 절대적 의미를 띠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그런 공간 구속성에 절대적으로 갇히기보다는 그것을 넘어서려는 초월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둘째, 공간과 의식의 상관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청와대라는 공간이 제왕적 권력과 직접적 혹은 절대적 상관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지난 수십 년의 정치사를 돌이켜 보면 한때 청와대의 주인이었던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누린 사실을 인정한다 해도 그것은 대통령이라는 인간이 그렇게 한 것이지 청와대라는 공간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제왕적 권력의 책임을 청와대라는 공간에 묻는 것은 근거가 약할뿐더러, 이런 주장에는 합리적 근거가 뒷받침되어야만 할 것이다. 양자 간의 필연적 관계를 입증하거나 설득하지 않고 무조건 청와대는 제왕적 권력의 산실이고, 그 안에 들어가면 절대로 제왕적 권력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에 가깝다. 만에 하나 이런 형태의 상관성을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기 위한 구실로 사용하기 위해 주장한다면, 그것은 억지이자 불통이고, 그 이면에 무슨 다른 의도가 있지 않나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의도와 관련해 세간에는 수많은 썰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을 신임 대통령은 알아야만 한다. 이런 썰들이 증폭될수록 갈등과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윤 신임 대통령 스스로 소통과 협치를 강조하면서 청와대라는 공간이 제왕적 권력의 원인이라고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편다면 어느 누가 쉽게 동의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식의 태도는 오히려 의식이 공간을 결정한다는 주관주의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조건 공간이 의식을 결정하고, 청와대가 제왕적 권력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기보다는 그 근거부터 합리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셋째, 사실 앞서 제시한 명제처럼 청와대라는 공간과 제왕적 권력의 절대적 관계를 주장하기보다는 이런 권력이 어디서 비롯된 것이고, 왜 지금까지 그것을 제한하거나 비판하지 못했는가라는 제도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대통령의 권력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고, 그 하위 법률과 시행령 등에 제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막연하게 공간을 죄인 취급하지 말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이 어떻게 비정상적으로 탄생했는지를 검토하면서 헌법의 무엇이 문제이고, 그것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 지가 더 해결해야 할 선결문제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문제를 정확히 할 필요가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나타났듯 민주주의 국가(헌법 제1조 ①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규정하고 있다)에서 단 0.7% 우위를 갖고 절대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따라서 이러한 승자 독식의 제도부터 풀어나갈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의 국방부로 옮기는 문제 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승자 독식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오직 승자 1인만을 뽑는 소선거구제도 문제이고, 아주 소수의 표 차로 진 후보를 지원한 모든 표는 그냥 사표가 되는 시스템도 문제이다. 이런 일등주의가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하고 정치 공간을 밀림의 왕국보다 더 살벌한 투쟁의 공간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제왕적 권력의 원인을 엉뚱하게 공간이나 청와대에 미루기보다는 법 제도의 개혁을 모색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정치적인 해법이라 할 수 있다.

 

아직 신임 대통령의 임기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청와대를 국방부로 옮기는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청와대 이전의 책임을 신권력에 대한 구권력의 저항으로 몰고 가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내가 몇 차례 포스팅한 적이 있으므로 더는 언급하지 않겠다. 그리고 이런 식의 주장 이면에 만에 하나라도 ‘천공’ 운운하는 도사의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풍수설이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면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그러므로 윤석열 신임 대통령은 집무실 이전과 관련해서 애매하게 청와대라는 공간 때문에 제왕적 권력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고만 하지 말고 먼저 그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가 극구 제왕적 대통령을 벗겠다고 주장한다면, 이런 설명과 설득의 과정이 새로운 대통령의 모델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런 설명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 절대로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는 일은 없다는 식으로 몽니를 부린다고 한다면, 그를 지지한 많은 국민에게 크나큰 실망을 안겨 줄 뿐만 아니라 산적한 국정과제는 완전히 뒷전으로 몰린 채 정치적 갈등과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 그리고 신임 대통령 주변의 참모나 인수위에 참여한 사람들도 무조건 대통령의 생각이 옳다고 하면서 이런 억지 주장에 앞장서서 나팔을 불어댄다면, 그것이 제왕적 대통령을 만드는 지름길이고, 아울러 그런 제왕적 대통령의 말로가 비참하게 끝났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젤렌스키의 애국심과 서방 세계의 어설픈 인도주의적 개입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사지로 몰고 있다. [이종철 선생의 에세이 철학]

젤렌스키의 애국심과 서방 세계의 어설픈 인도주의적 개입이 우크라이나 국민을 사지로 몰고 있다.

 

이종철(연세대)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침공을 한 지 벌써 3주가 넘었다. 21세기 광명 천지에 이런 형태의 전면전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처음에는 단기전으로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이제는 장기화 조짐을 보인다. 물밑에서 종전을 위한 협상이 전개되고 있기는 하지만 서로 간의 협상 조건의 차이가 커서 쉽사리 매듭을 지을 것 같지는 않다. 이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와 인근 도시가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서 초토화되고 있고, 마리우폴 같은 경우는 항복 유도와 결사 항전이 팽팽히 맞서면서 도시 기능을 완전히 상실할 정도로 파괴되고 있다. 이제 러시아는 흑해 연변의 아름다운 항구 도시 오데사에 대해 미사일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양측의 군인들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상자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난민은 이미 천만에 육박하고 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77년이 되는 시점에서 인류는 다시금 우크라이나 발 세계 대전의 가능성을 우려할 시점에까지 이르렀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대개의 전쟁이 그렇듯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에도 일방적이고 단편적인 해석은 위험천만하다. 이번 전쟁이 히틀러 같은 푸틴의 노욕 때문에 일어났고, 그런 의미에서 푸틴을 악마화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푸틴은 오래전부터 NATO의 동진에 대해 우려와 경고를 보내왔고,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에 대해 극력 반대를 해왔다. 소비에트가 무너지면서 동유럽의 많은 위성 국가들이 서방 세계로 기울어 NATO에 가입을 했다. 이런 상태에서 러시아의 앞마당이나 다름이 없고, 오랜 역사를 통해 영토와 민족 구성원을 공유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는 현실은 러시아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일 수도 있다. 이 점에 관한 국제 정치학적 시각을 외면한다면 이 전쟁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끊임없이 NATO의 문을 두드려왔다. 정치적 경험이 일천한 그가 대통령을 맡은 상태에서 소영웅주의를 표방한 것이 우크라이나의 미래에 먹구름을 끌고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실책을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지적해 볼 수 있다.

 

첫째로 그는 NATO 가입을 최우선 외교정책으로 삼고 친서방 주의를 노골적으로 표방했다. 불확실한 서방 세계의 지원을 현실적인 것으로 확신을 하고, 현실적인 러시아의 위협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외면한 것은 초보 정치인의 미숙한 정치적 판단이다. 국제 정치의 냉엄한 적자생존의 논리를 그릇 판단한 대가는 너무나 크다. 일국의 책임자라고 한다면 지나치게 인기에 영합 하고 비현실적인 이상으로 국민들의 생각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포퓰리즘이 달리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둘째로, 그는 러시아의 침공을 받자마자 피아간의 전력 차를 무시하고 오로지 열정적인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결사 항전을 시도했다. 물론 지도자로서 그가 가진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위험천만해 보인다. 서방 세계는 이러한 그의 용기가 풍전등화 상태의 우크라이나를 구할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진정한 용기는 실력과 역량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생기는데 반해, 그런 것들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열정적인 용기를 내는 것은 만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만용으로 인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뛰어들어 희생을 당했고, 그 이상으로 민간인 희생자와 난민이 발생했다. 지혜로운 지도자라고 한다면 이런 상황에서 고개를 숙일 줄도 알아야 하고 절치부심해서 다음을 위해 역량을 키우려 노력할 것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행동한 희생의 대가는 이제 회복 불가능할 정도이다. 셋째, 그가 이런 만용을 부린 데는 순진하게도 서방 세계의 개입과 지원을 너무 낙관한 점이다. 미국을 위시한 나토의 회원국들은 그 누구도 러시아와 직접적으로 대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간접적으로 무기와 식량과 구호품들, 그리고 강력한 금융제재로 지원을 하고는 있지만 확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결코 러-우 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UN이 종이호랑이가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이런 상태에서 우크라이나가 결사 항전을 시도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젊은 군인들과 국민을 희생양으로 모는 어리석은 행위일 뿐이다. 현재 러시아도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전쟁을 더는 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무언가 출구 전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조건을 내걸고 있는데, 초보 운전자나 다름없는 젤렌스키는 영토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식으로 버티는 것 같다. 앞으로 시간을 끌면 끌수록 우크라이나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을 왜 외면하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다 들어주고 제발 전쟁을 그만하자고 애원을 해도 시원찮을 젤렌스키가 국민의 고통과 희생을 볼모로 밀어부친다면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더욱더 불투명해질 것이다.

다음으로 이 전쟁은 서방 세계가 부추긴 면도 없지 않다. 그들은 젤렌스키의 결사 항전의 의지에 손뼉을 치면서 앞으로 얼마간만 더 버티면 이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식으로 낙관적인 정보를 흘렸다. 그들은 약자를 돕는다는 어설픈 인도주의(Humanism)를 명분으로 우크라이나에 전쟁 무기 등 여러 가지 지원을 하면서 이 전쟁을 계속 끌어가도록 부추겼다. 만일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자신들도 오래지 않아 러시아의 침략의 희생물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어떤 형태든 우크라이나가 버텨야 한다는 논리를 공유하고 확산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우크라이나가 완전히 초토화되고 망할 지경에 이른다 해도 결코 이 전쟁에 직접적으로 참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도 러시아의 군사력을 두려워할 뿐 아니라 전쟁에 대한 푸틴의 확고한 의지를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가급적 자신들에게 불똥이 튀지 않기만 바라고 있을 뿐이다. 만일 서방 세계가 좀 더 지혜롭고 현명하게 나가려 했다면,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신청 단계부터 단호하게 막고, 전쟁 이후에도 이 전쟁이 물리력의 격차로 인해 더 진행돼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보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서방 세계들은 어설픈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인도주의적 개입을 시도함으로써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만 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고통을 겪고 있는 이 전쟁의 배후에서 웃고 있는 세력들은 미국의 군산복합체일 뿐이다. 그들은 단순히 러-우 전쟁을 지원하는 무기만 팔아먹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신무기들을 이 전쟁을 통해 실험도 하고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NATO 회원국들은 러시아의 직접적인 위협을 빌미로 군비 증강에 나서고 있고, 독일 같은 구 전범 국가는 70여 년 만에 금기로 간주했던 재무장까지 선언하고 있다.

이처럼 미래의 잠재적인 고객들이 폭증하는 현실을 보면서 군산 복합체들은 샴페인을 터트리고 브라보를 외쳐도 시원찮을 전쟁 특수를 맞은 것이 아닌가? 이보다 더 좋은 게임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약자를 돕는다는 명분도 있고, 현실적인 두려움도 대비한다고 하면서 마구마구 무기 생산을 독려하지 않겠는가? 앞에서는 값싼 눈물을 흘리면서 뒤에서는 연신 밀어닥치는 달러를 세느라고 그들은 잠잘 시간도 없을지 모른다. 도대체 이 얼마나 코미디 같은 현실인가? 코미디언 출신의 선무당이나 다름없는 정치인이 세상 돌아가는 판세도 모르고 칼춤을 추어대는 마당에서 군산 복합체들은 구경꾼들에게 치명적 독성을 품고 있는 약을 연신 팔아대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나는 결코 푸틴의 전쟁을 미화하거나 그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인도적 관점에서 볼 때 누구도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목적을 관철하려는 자가 있다고 하면 그가 바로 악마이다. 하지만 악마들이 더욱 득세하고 기승을 부리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행위에도 우리는 경계의 눈을 크게 뜨고 살펴야 한다. 러-우 전쟁은 정치를 모르고 열정적 의지만 가진 초보 정치인이 애국심을 볼모로 무리하게 결사 항전을 하는 것과 아울러 어설프게 인도주의적 개입을 명분으로 불난 집에 부채질만 한,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세계의 책임도 크다. 그리고 보다 노골적으로는 전쟁에 대한 공포심을 빌미로 최신 무기를 팔아먹는 미국의 군산 복합체 세력의 책임이 크다. 결과적으로 이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이들 군산 복합체 세력이고, 그 이면에서 가장 크게 희생을 당하고 고통을 겪고 있는 자들은 이 전쟁에 끌려 들어간 수많은 젊은이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국민뿐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이 전쟁이 더 큰 희생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전쟁을 중단하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가 무조건 항복 선언을 해야 한다. 다른 답이 없다. 그것이 약소국의 비애이자 운명이고, 약소국이 생존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다. 우크라이나가 이번의 경험을 와신상담하고자 한다면 절치부심하면서 자신들의 역량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애국심은 전쟁터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국가를 키우는 데도 무엇보다 애국심이 필요하다. 지금은 그 애국심을 유보할 때이다. 그리고 푸틴도 그가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려 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전쟁으로 인한 희생을 중단시키고, 왜 과거 소비에트 위성 국가들이었던 수많은 나라들이 ‘러시아의 길’을 외면하려 하는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러시아를 살릴 수 있고, 동구권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독재와 전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쟁은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악마만이 선택하는 최악의 길이다!

[강좌안내] 한철연 회원 출연 강의 시청 안내 [근현대 한국의 풍경 – 한국의 생명사상을 찾아서]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단에서 진행하는
지역인문학센터 온라인 강의 [근현대 한국의 풍경 – 한국의 생명사상을 찾아서]에
한철연 회원(이종철, 조배준, 최종덕) 선생님들이 출연하여 강의를 진행합니다.

한국현대철학의 중요한 인물 유영모, 함석헌, 장일순에 대해 알기 쉽고 친절한 내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주제에 관심있는 회원 및 여러분들께 한번 시청하시길 권합니다.

아래 링크로 들어가시면 강의를 볼 수 있습니다.
https://cmks.yonsei.ac.kr/system/xbd/board.php?bo_table=onlinelecture&sca=3

 

경로는 아래 캡쳐화면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시대와 인간상 [흐린 창가에서-이병창의 문화비평]

시대와 인간상

 

이병창(한철연 회원)

 

1)

시대가 바뀌면 사람들이 바라는 인간상도 바뀌게 마련인가 보다. 자주 정치인이 그런 인간상의 변화를 암시하는데, 미국에서 클린턴과 트럼프, 한국에서 문재인과 윤석렬을 비교해 보면 그런 변화가 느껴진다.

클린턴과 트럼프, 문재인과 윤석렬, 이렇게 대조해 놓고 보면 이들의 차이는 단순히 정책적 차이만은 아니고 그런 차이는 심지어 무의미하게 보이기도 한다. 오히려 더 뚜렷한 것은 인간상의 차이다. 인간상으로 볼 때 클린턴과 문재인이 닮았고 트럼프나 윤석렬도 서로 닮았다.

클린턴과 문재인에 익숙한 사람들이 보면 트럼프나 윤석렬과 같은 사람이 대중의 인기를 끄는 것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거꾸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도 클린턴 다음에 트럼프가 나오고 문재인 다음에 윤석렬이 나온 것은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밖에는 달리 설명하기 힘들다.

이참에 시대와 인간상의 상관성을 한번 고민해 보기로 했다. 헤겔이 시대와 정신의 상관 관계를 파헤쳐 ‘정신현상학’이라는 불멸의 저서를 남겼으니, 나도 좀 흉내를 내 보아야 하겠다 싶다. 거슬러 올라가 보자. 60년대 이전에는 내가 체험한 시대가 아니므로 생략하고, 내가 함께 살아온 60년대 이후만 보자.

2)

한때 히피족이 세상을 지배했다. 히피족은 세상에 초연하면서 낭만적 몽상에 젖어 살았다. 고독과 자유를 즐겼으며, 명상을 즐겼다. 히피족이 음악과 섹스 그리고 대마초에 빠진 것은 세상을 초탈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이런 히피족이 출현한 이유로 그 시대 배경이 자주 논의된다. 50년대 말까지 서구 사회는 전후 복구를 거쳐 복지 국가를 이루었으나 그 대가는 거대한 관료 체제였다. 이런 관료 체제의 보이지 않는 억압 속에 자라난 세대가 히피 세대이니 이들이 세상을 초탈하려 했던 것도 이해된다. 권력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몸에 새겨져 있으니 이를 벗어나려면 자기를 버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60년대 서구에서 히피족이 지배할 무렵 우리는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독재 아래 있었다. 이들의 권력은 노골적이었다. 유신 체제, 중앙정보부, 물고문, 최루탄 등. 온갖 폭력적 수단이 사용되었다.

이런 시대 사람들은 자기를 지키기 위해 폭력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은 이 저항을 위해 존재했고 효율적인 저항이 필요했다. 목적을 정하고 수단을 선택했으며 가장 합리적인 수단을 위해 과학이 늘 행동의 지침이 되었다. 운동도 삶도 과학으로, 술도 연애도 과학으로! 이 시대는 낭만적이라는 것처럼 경멸적 단어는 없었다. 대신 과학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등장했다. 이런 유형을 흔히 운동권이라 부른다.

3)

90년대 후반,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지고 소위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다. 이 시대,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자유화가 발전했다. 민족의 울타리를 넘어 지구화 시대가 열렸다. 금융 자본이 등장했고 컴퓨터와 온라인이 새로운 생존 무기가 되었다. 자유로운 섹스, 불금의 광란이 벌어졌고 자동차와 영화와 바캉스가 맥주 거품과 함께 넘쳐흘렀다. 그리고 누구나 쉽게 세계 여행을 떠났다.

이런 시대 장발을 한 히피족이나 운동화를 신은 운동권은 촌스럽게 보였다.  이 시대를 지배하는 인간 유형은 흔히 ‘여피족’으로 규정된다. 어떤 학자(대비드 부륵스)는 이런 여피족을 ‘보보스족’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름이야 어떻게 붙이든 무슨 상관이랴.

이 여피족을 어떻게 규정할까? 여피족 하면 연상되는 인물이 있다. 드라마 ‘겨울 연가’의 주인공 배우 배용준이다. 그는 내게는 단정한 차림에 안경을 쓴 곱상한 얼굴로 기억된다. 사회보다는 개인을, 정신적인 것보다는 물질적인 행복을, 거대한 것보다는 소소한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다.

그는 감각적으로 세련된 기호를 갖고 있다(커피와 음악 와인 등). 그는 타인에 대해 특히 여성에 대해 부드럽고 온화하며, 민주적으로 합리적으로 결정한다. 그는 새로운 첨단 기술을 장식물처럼 온몸에 걸치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종교적이거나 금욕적이거나 탈세속적인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영악하기 짝이 없다. 그는 주가를 꿰고 있으며 부동산 시세에 환하다. 무엇을 팔면 돈이 되고 어떻게 하면 인기를 얻는지 잘 안다. 그가 늘 끼고 다니는 책은 경영학의 책이며 그가 통독하는 책은 심리학의 책이다. 그는 한마디로 이익에 침을 흘리는 스마트한 인간이다.

그런 여피족이 신자유주의 시대 30여 년을 군림해왔다. 이런 인물은 신자유주의 시대와 잘 어울렸기 때문일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풍미한 전문 기술 노동자, 대표적으로 은행인, 증권맨이 여기에 속한다. 정치적으로 이런 여피족으로 대표하는 인물은 미국에서는 클린턴일 것이고 한국에서는 아마 문재인일 것이다.

노무현과 문재인은 정책적으로는 유사하지만, 인물 유형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노무현은 아무래도 운동권에 가까운 인물이다. 반면 문재인은 운동권보다는 차라리  여피족에 가까운 스마트한 정치인이다. 문재인의 별명이 곧 신사 아닌가? 이재명 하면 여피족에 더 가까워진다.

4)

그런데 신자유주의 시대가 지금 비틀거린다. 2008년 미국에서 금융 위기가 그 대표적인 증상일 것이다. 금융 위기 이후 잠시 소강상태이지만  신자유주의는 이미 곳곳에서 붕괴의 조짐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시대 미국에서 트럼프가 등장했다. 그는 우선 생김새조차 여피족과는 거리가 멀다. 거의 돼먹지 못하게 생겼다. 언어와 행동거지도 난폭하기 짝이 없으니, 거의 조폭 수준이다. 생각과 사고도 너무 단순하다.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하며 적은 삼킬 듯이 증오하고 자기편은 무엇이라도 좋다. 어쩌면 여피족을 반전 선택하면 이런 인물이 나오지 않을까?

이런 인물을 억지로 좋게 보자면 의리의 사나이 돌쇠형이 아닐까? 아니, 단순 무식하고 저돌적인 저팔계 유형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더 좋을까?  장점이 있다. 사소한 것은 제치고 크게 문제를 파악하고 집요하면서도 대담하게 이를 해결해 나간다. 트럼프가 북미 회담을 했던 것을 생각해 보라.  또 상당한 친화력이 있다. 이리저리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재주는 비상하다.

이런 인물이 그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마 이 시대처럼 사랑 받는 때는 없었지 않을까? 결국, 트럼프는 클린턴의 후광 아래 있던 힐러리를 제치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왜 이런 인물이 이 시대 사랑받는 것일까?

시대의 증상이 아닐까? 이 시대에 다들 신자유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새로운 시대가 어떤 시대가 될지 짐작하지 못한다. 신자유주의는 한편으로 무너지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 복원되기도 하니, 새로운 시대가 오는지도 모르겠고 도대체 갈피를 알 수 없다. 니체가 줄을 타는 곡예사를 보면서 앞으로 가도 위험하고 뒤로 가도 위험하고 가만히 서 있어도 위험하다 했는데 꼭 그런 모습이다.

사람들은 그 때문에 불안을 느끼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런 시대, 불안한 혼돈의 시대, 사람들은 트럼프와 같은 인물과 자기를 동일시하면서 위안을 받는 것이 아닐까?

5)

최근 대선에서 윤석렬이 이겼다. 윤석렬의 언행을 보면 트럼프를 연상시킨다. 거칠고 난폭하기에 늘 구설에 시달라자만 재수 9년이라는 것이 상징적으로 의미하듯 두둑하기 짝이 없는 배짱을 가지고 있다. 그는 적을 물고 늘어지고(조국 사태에서 처럼) 같은 편을 챙기는 것은 트럼프와 상당히 닮았다.  적어도 우파 통합을 이루어낸 것은 그의 친화력을 말해준다. 정책적으로도 핵심 문제를 잡아내는 능력도 엿보인다. 트럼프가 클린턴의 반전 선택이듯 윤석렬은 문재인의 반전 선택이다.

초짜 정치인이 거대 야당을 접수한 데 이 기질이 작용했다. 사람들이 소확행을 주장하는 이재명보다 재수 9년의 윤석렬을 선택한 것도 이 인간상 외에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아마도 우리 시대가 거대한 전환기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전환기에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무언가 거대한 힘에 의존해 보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윤석렬의 인간적 결함을 지적한다고 그를 극복할 수 없다. 그런 결함을 가진 인간이기에 오히려 선택 받았다 할 수 있다. 사람들의 불안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그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신자유주의 시대는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신냉전시대다. 이 시대가 어디로 갈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 전환기를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