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강해 ㊻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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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 강해 ㊻

 

1-3 통치자가 갖추어야할 조건들(412b-427c)

    1-3-2 수호자들의 생활방식, 사유재산의 금지(415d-417b)

 

[415d-416b]

* 소크라테스는 건국 신화에 대한 언급을 마무리한 후 그곳에서 거론된 수호자들이 통치자들의 지도하에ἡγουμένων 어떤 곳에 진을 치고στρατοπεδεύσασθα 어떤 방식으로 생활해야 하는지를 간략히 언급한다. 우선 수호자들이 진을 쳐야 할 곳은 법에 복종하려 하지 않는 내부자들을 최대한 통제하고κατέχω 외부 적들의 침입을 가장 잘 막아낼 수 있는ἀπαμύνω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곳은 돈벌이 하는χρηματιστικός 사람들이 아닌 군인στρατιωτικός들에게 적합한 숙소οἴκησις로서 혹한과 혹서에 충분히 버틸만해야 한다.(415d-e)

* 돈벌이하는 사람들과 군인들은 다르다. 양치기ποιμήν들에게는 양 떼의 보조자인 개κύων들이 제멋대로이거나ἀκολασία 배고픔 또는 다른 나쁜 습성으로 인해 개들이 가축πρόβατον들에게 못된 짓을 하려 드는 것은 늑대λύκος를 닮은 개를 키우는 것으로 무엇보다도 끔찍하고δεινός 부끄러운αἰσχρός 일이다. 보조자들ἐπίκουρος이 시민πολίτης들보다 강하다고 해서 우호적인 동맹군σύμμαχος들을 닮기는커녕 사나운 주인δεσπότης을 닮아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도록 모든 방법을 다해 감시해야 하고φυλακτέον 정말로 훌륭하게 교육을 받아 스스로도 최대의 경계심εὐλάβει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416a-b)

* 이에 글라우콘은 ‘수호자들이 그렇게 교육을 받은 것 아닌가’라고 묻는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교육을 받은 수호자들이 꼭 그렇다는 것은 단언할 수διισχυρίζεσθαι 없지만, 수호자들이 자신들끼리는 물론 자신들이 수호하는 사람들에게 온순해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을 갖추려면 그게 무엇이 되었든 올바른 교육ὀρθῆ παιδεία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단언할 수 있다고 말한다.(416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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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심으로 번역된 εὐλάβεια(416b)는 ‘분별 있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 천병희 역본은 ‘그들이 훌륭하게 교육을 받았다면 최대의 경계심을 갖추고 있지 않겠는가’를 ‘예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이 적절한 교육을 받는 게 아닐까’로 의역했으나 구문 분석은 물론 내적인 태도로서 εὐλάβεια의 의미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오역에 가깝다. 천병희 역본은 가독성을 크게 고려하여 중요한 구문들과 개념적 표현들까지 풀어서 의역한 사례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내용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학술적 텍스트로서 문장과 개념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구하는 데에는 다소 부적합하다. 이 점에서 박종현 역본과 곧 출간될 정암학당 역본을 함께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 올바른 교육ὀρθῆ παιδεία(416c)은 단순한 앎을 넘어서 실천을 수반하는 능력의 함양까지 포함하는 교육이다. 플라톤에게 앎은 우리말 ‘운전을 할 줄 안다’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고 있다. 그냥 머릿속에서만 간직하는 그런 수준의 앎을 위한 교육은 아직 제대로 된 올바른 교육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올바른 교육의 구체적 내용은 나중 7권에서 다루어진다. 그 점에서도 글라우콘이 말하는 교육은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의 교육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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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 기술되고 있는 생활 방식은 통치자의 지도하에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통치자 자신들을 포함한 수호자들 전체의 생활방식이다. 여기서 기술되고 있는 여러 가지 생활방식 역시 나라의 수립단계에서 대략의 내용을 기술한 것으로서 5권 이후에 가서 보다 자세하게 언급된다. 우선 수호자들은 모두 공동생활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 상태에서 그들이 공동생활하게 될 거처의 요건부터 언급된다. 진을 쳐야 한다는 말이 시사하고 있듯이 그들의 거처는 말 그대로 병영이자 군사 요새이다. 안으로는 내부자들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밖으로는 외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들의 거처가 이러한 까닭은 이들이 돈벌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힘을 가진 군인들이기 때문이다. 군인들의 본분은 양치기를 보조하는 개의 역할과 같다. 여기서 통치자들은 양치기들로, 수호자들 즉 군인들은 개로 비유되고 양떼와 가축들은 시민들로 늑대는 참주로 비유된다. 무엇보다도 개들은 무절제나 굶주림 또는 기타 나쁜 습성으로 양 떼들 즉 시민들을 해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시민들보다 강하다고 해서 우호적인 동맹군들 즉 통치자들을 닮기는커녕 사나운 주인 즉 참주 같은 자를 닮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통치자들은 수호자들이 참주 같은 자들을 닮지 않도록 모든 방법을 다해 감시해야 하고 스스로도 경계심을 갖도록 정말로 훌륭한 교육을 해야 한다.

* 그런데 이 부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 우선 수호자들이 머물 거처의 요건 으로서 법에 복종하지 않으려는 내부자들에 대한 통제가 언급되고 있고 둘째로 나쁜 습성들로 시민들을 해치지 않도록 수호자들에 대한 다각적인 감시가 언급되어 있으며 셋째로 수호자들끼리는 물론 시민들에게 온순하게 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교육이 필수 조건임은 단언할 수 있지만, 그것이 필요충분조건까지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언급들은 수호자들이 천성적으로 훌륭하게 태어났고 그 후 아무리 훌륭한 교육을 받고 스스로에 대한 경계심을 보전하더라도 언제든지 다른 길로 비껴나 나쁜 습성을 가질 수 있고 극단적으로는 내란을 일으켜 참주 같은 사람까지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내부자들이 법에 복종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언급은 그러한 내란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게다가 일부 수호자들은 무절제나 굶주림, 나쁜 습성이 생겨 공동생활에서 이탈할 수도 있으므로 처음부터 공동생활의 거처 또한 외부의 적에 대한 고려는 물론 그러한 내부자들에 대한 통제의 적합성까지도 함께 고려되었던 것이다.

* 이 점은 플라톤 역시 인간의 본성을 신뢰하지 않았거나 처음부터 이기적으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증거들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정확히 표현하면 이곳에서 소크라테스의 언급은 수호자들이 아예 처음부터 자신의 이기적 본성을 드러냈다는 데에 방점이 있지 않고 인간이 나쁜 영향을 받으면 본래의 이타적 본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데에 강조점이 놓여 있다. 플라톤에게 인간의 본성은 건국신화에도 보이듯이 여전히 태어날 때부터 각기 다르며 그에 따라 소질과 욕망 또한 서로 달라 천성적으로 지식을 좋아하는 사람,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 돈을 좋아하거나 뭔가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크게 나뉜다. 다만 건국신화가 동시에 보여주고 있듯이 이러한 나뉨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어서 선대와 다른 천성을 갖고 태어날 수도 있고 후천적인 교육에 따라 다른 소질과 욕망으로 변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특히 이기적인 사람들의 소질과 욕망들은 매우 공격적이어서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은 물론 이미 교육을 받은 어른들까지도 스스로의 천성 자체가 위협받을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플라톤은 천성이 훌륭한 사람들조차 어느 순간 자신의 고유한 욕망이 변질될 수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인간의 영혼이 아무리 순수해도 신체를 갖고 태어나는 한, 본성이 훼손되는 위기에 늘 둘러싸여 있다. 이에 따라 극단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후천적인 영향에 휩쓸려 영혼의 가장 저급한 물질적 욕구 부분의 지배를 받게 될 경우, 본래의 본성을 상실한 채 결과적으로 모두가 물질적 욕망을 가진 이기적인 인간으로 획일화될 수도 있다. 굳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본성을 사회관계의 외화로서 규정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적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실제로 플라톤은 제8권에서 다양한 소질과 본성들이 공존하고 있는 이상국가가 타락하여 인간 모두가 물질적 욕망으로 획일화되면 그때는 다다익선이 최선이 되어 정치체제 또한 다수결에 따른 민주정이 도래하게 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플라톤에게 민주정은 생존의 위기에 몰리면 분별력을 상실한 채 선동정치가들에 이용되면서 결국에는 참주정을 초래하는 근본 바탕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분별 있는 인간이라면 모두 끊임없이 치열하게 올바른 배움을 통해 개인과 국가에서 이성적 영혼의 지배력을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이성의 지배가 확립될수록 그에 비례하여 인간은 거꾸로 본래의 이타적 본성을 회복하면서 궁극에는 모두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본래의 이상적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다. 이곳에서 플라톤의 국가 수립 자체가 그러한 거대한 프로젝트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므로 플라톤에게는 내적으로 본래의 이타적 본성을 잃지 않도록 이성적 영혼의 힘을 더욱 강화 발전시키는 수단이 반드시 필요하되 외적으로도 인간의 본래의 천성과 자연적 소질의 다양성을 변질시키는 위협들에 대한 대처 수단도 필요했던 것이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거처의 요건들은 그러한 외적인 위협으로부터 적절한 방어책으로 제시된 것이고 올바른 교육은 자신의 천성적인 소질과 고유한 욕망을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본성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성장 발전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편으로 제시된 것이다.

* 물론 글라우콘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단언διισχυρίζεσθαι이 시사하고 있듯이 교육이 이러한 성장과 발전을 반드시 보장하지는 않는다. 인간 삶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내외 가릴 것 없이 끊임없이 상존하고 인간의 본성에도 그것의 영향을 받는 측면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수호자의 부정적 양태들을 인간의 이기적 본성의 발로라고 보는 관점들은 그러한 부차적인 측면을 마치 인간 본성의 본질적 측면인 양 오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플라톤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부차적인 측면에 대한 분별력 있는 이해도 포함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고유한 천성과 욕망을 어떻게든 해체되지 않도록 최대한 버텨내려는 인간 영혼의 본질적 측면, 즉 인간 영혼의 이성적 부분이라 할 것이다. 플라톤에게 수호자들은 비록 부정적인 영향을 겪을 수는 있을 지라도 여전히 근본적으로 지성과 명예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로서 자신의 천성과 욕망을 배움을 통해 끊임없이 배양하고 보전하려는 본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수호자들은 통치를 통해 여타의 욕망을 가진 다른 계층 사람들과 조화를 도모하면서 이상적인 국가를 이끌어가기를 욕망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시민들을 온순하게 대할 수 있도록 배움을 통해 늘 지적인 긴장 상태에서 최대한 경계심을 유지함과 동시에 올바른 교육과 실천을 통해 영혼의 이성 부분을 지속해서 배양하고 보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 이와 같은 플라톤의 생각은 플라톤의 존재론과도 연결된다. 존재론의 기저에는 절대적 모순으로서 존재와 무가 자리한다. 존재는 자체적 존재로서 무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그에 따라 타자성을 갖고 있지 않다. 플라톤의 존재 세계는 자체적 존재로서 각기 일자의 속성을 갖는 이데아들의 세계이다. 이데아들은 무에 둘러싸여 있어 각기 일자이자 자체 존재로서 변화를 겪지도 운동도 하지 않는 영원불변 부동의 존재 세계이다. 우주는 그러한 이데아들이 우주 영혼의 상태로 관여되어 있어 영혼의 운동으로서 끊임없이 원운동을 하면서 여럿의 조화와 공존이 완벽하게 구현하는 생명체이자 결코 소멸하지 않는 영원한 세계이다. 이에 비해 인간은 우주의 일부로서 우주와 같이 영혼과 물질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순수성이 우주 영혼과 달라 영혼에 있어 일정 부분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되 타자성도 함께 갖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늘 타자와 관계 맺음을 겪으며 변화의 위기에 직면하면서 결국 신체는 사멸을 면치 못한다. 그리고 현실 세계의 존재자들 또한 인간의 사고가 갖는 모순율에 의해 인간의 개념적 사고 속에서만 형식적 자기 동일성을 가질 뿐 실제로는 물질적 무규정성(apeiron)에 따라 끊임없이 관계 맺음을 겪으며 생성 소멸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물질적 무규정성에 연원하는 해체와 소멸의 위기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이데아에 관여된 영혼의 힘으로 그 해체와 소멸을 거슬러 우주와 같은 조화와 공존의 삶을 갈망한다. 플라톤에게 우주는 서로 다른 인간들의 조화와 공존을 위한 원초적 모델이자 현실 구제론의 이론적 토대이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우주 영혼과 달리 물질적 무규정성을 완벽히 지배할 수 없기에 각기 영혼의 자기 고양 능력에 따라 일정 정도 우주적 삶에 다가갈 수도 있고 반대로 내적 조화를 상실하여 짐승 같은 이기적인 삶에서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플라톤에게 인간의 삶은 가능성의 영역에 놓여 있을 뿐 신체의 죽음 이외에 운명적이거나 필연적으로 결정된 것이 없다. 목적론이나 운명론 내지 결정론은 플라톤과 거리가 멀다. 다만 인간은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우주적 삶을 향한 적극적인 가능성으로서 영혼의 자기 고양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 삶의 훌륭함을 가르는 기준은 각 개인에 있어 특히 수호자들에 있어 영혼의 자기 고양의 능력(dynamis)이 어떠하냐에 달려 있다. 이런 점에서 플라톤은 능력을 중시하는 능력주의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능력주의가 말하는 능력은 서로 다른 여럿 들 간의 조화와 공존을 파괴하고 경쟁에서 이겨 자기만이 우뚝 서는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능력이고, 반대로 플라톤이 강조하는 능력은 자기다움을 최대한 발휘하되 자기와 다른 타자들과 조화와 공존을 능히 관철하는 공동체적 삶의 능력으로서 포용적이고 이타적인 능력이다.

[416C-417B]

*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지각 있는 사람τις νοῦν이라면 이 교육에 더해 가능한 한 가장 뛰어난 수호자들이 되는 데 지장도 주지도 않고 다른 시민들에게 못된 짓도 유발하지 않을 여건으로서 숙소 및 다른 재산οὐσία들도 갖추어져야 한다고 말할 것이라고 언급한다. 이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곧바로 수호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거주하며 생활해야 할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416c-d)

* 1) 수호자들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닌 한, ‘사적인 재산’ἴδιος οὐσία을 소유해서는κτάομαι 안 된다. 2) 누구나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는 어떠한 숙소나 곳간ταμιεῖον도 있어서는 안 된다. 3) 전사들한테 필요한 만큼의 적합한 것ἐπιτήδειος들은 수호에 대한 보수μισθός로서 일 년간 쓰기에 남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정도를 다른 시민들한테서 받는다. 4) 수호자들은 숙영하는 사람들처럼 공동식사συσσιτία를 일상으로 하며 공동으로 살아야 한다.(416d-e)

* 이런 연후에 소크라테스는 특히 수호자들은 금화나 은화를 소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들을 손에 쥐거나 손대는 것, 한 지붕 아래에 두는 것, 그것들로 된 것을 몸에 두르거나 그것들로 된 것으로 마시는 것까지 모두 금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수호자들은 이미 영혼 안에 신들로부터 받은 금화χρυσός를 언제나 갖고 있어서 별도로 인간적인ἀνθρώπειος 금화와 은화가 전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순수한 신적인θεῖος 금화의 소유κτῆσις를 사멸하는 불경한 금화의 소유와 섞어서 오염시키는 것은 전혀 경건하지 못하다ἀνόσιο.(416e-417a)

* 그럼에도 만약 수호자들이 땅과 집과 화폐를 소유한다면 그들은 수호자가 아니라 가정관리자와 농부가 될 것이고, 다른 시민들에 대해 동맹군이 아니라 적대적인 주인이 되어 미워하기도 하고 미움받기도 하며, 계략을 꾸미기도 하고 계략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평생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외부의ἔξωθεν 적들보다도 내부의ἔνδον 적을 오히려 두려워할 것이며, 그때는 이미 그들 자신도 나라도 파멸ὄλεθρος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 (417a-b)

* 소크라테스는 수호자들의 숙소와 생활 방식에 대한 이러한 언급을 마무리하면서 그러한 사항들이 법으로 정해져야 한다고 말한다.(41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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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식사συσσιτία(416e)는 스파르타의 상위 계급 스파르티아타이(spartiatai)의 생활방식에서 따온 것이다. 이 제도는 스파르타인들의 내적 결속과 공동체 정신을 위해 기원전 8세기 뤼쿠르고스 체제에서 확립된 이래 기원전 5세기 멸망기까지 지속했다. 스파르티아타이에 속하는 남성들은 만 7세 이후 우리가 소위 스파르타식 교육이라 부르는 일종의 집단적 군사 교육으로서 아고게(agōgē)를 받아야 했다.

* 수호자들은 시민들로부터 생활필수품 정도만 보급을 받았다. 그것을 수호에 대한 ‘보수’μισθός라고 일컫는 것은 이상 국가에서 수호자의 활동이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고 나름의 역할에 합당한 대우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상 국가에서 각 계층의 욕구 대상은 서로 다르지만 나름의 소질에 기초한 인정 욕구는 동일하며 그러한 소질을 잘 성취하여 얻게 되는 행복감 또한 동일하다. 수호자들은 비록 재산에서는 생활필수품 정도만 소유하지만, 그들은 다른 계층과 달리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까지 명예라는 특전을 부여받는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공평하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수호자들의 공동생활과 사유 재산의 금지는 매우 과격해 보이지만 실제 동서양 역사 전체를 보면 오늘날까지도 가톨릭과 불교 수도자 전통에서 그와 비슷한 생활방식이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방식으로 지속해서 이어지고 있고, 하물며 중동 이슬람 사회에서는 정교일치 차원에까지 급진화 되어 종교 수도자들이 정치 지도자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른바 정치 수도자 집단을 구성하려는 플라톤의 구상이 정치 권력의 편중과 관련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그 내용 그대로 논의되기는 매우 힘들겠지만, 그 구상의 대원칙만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단순 매도할 수도 없어 보인다. 실제로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정치 권력자들과 재력의 결탁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려는 플라톤의 구상은 시대 현실에 부합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채택되면서 여전히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 여기서는 수호자들의 계층이동에 있어 하향 이동만 언급되어 있어나 상향 이동도 함께 열려 있다.(415c)

* 권력자들인 수호자들의 거처와 생활 방식에 대한 내용이 모두 법률로 정해져야 한다는 언급 또한 플라톤의 이상 국가가 단지 인치에만 의존하는 정치체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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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은 수호자들을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거처의 요건을 언급한 후에 곧바로 수호자들의 생활 방식으로서 가히 과격하다고 할 정도로 사유 재산의 금지를 선언한다. 수호자들에게는 땅과 집, 화폐의 소유는 물론 사적 공간도 금지되며 금화나 은화들을 손에 쥐거나 손대는 것, 한 지붕 아래에 두는 것, 그것들로 된 것을 몸에 두르거나 그것들로 된 것으로 마시는 것까지 모두 금지된다. 이에 글라우콘도 크게 놀라 그러한 정도의 사적 소유의 금지가 과연 수호자들을 행복하게 할 것인지 의심을 표한다. 그리고 이어서 그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답변도 시민 모두의 행복을 지향하는 원칙의 차원에서 제시된다. 그러나 나중에 5권에 가서 이러한 의심에 더해 처자 공유와 가족 해체에 대한 추가적인 의심들이 더해지면서 소크라테스는 더 힘들고 복잡한 난관에 봉착하게 되고 그에 따라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해명과 논쟁이 펼쳐진다. 이런 점에서도 이 부분 역시 그 구체적 난관들에 대한 예비적 서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사유 재산의 금지와 관련한 자세한 논의는 일단 뒤로 미루고 여기서는 사유 재산의 금지 선언에 대한 오늘날 정치철학자들의 몇 가지 평가들에 대해서만 간략히 다뤄보고자 한다.

* 우선 오늘날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수호자들에 대한 사유 재산의 금지 는 앞서 수호자들에 대한 감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역설적으로 인간의 근원적 이기성을 인정하는 근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나쁜 영향으로부터 수호자들의 타고난 이타적 본성을 방어하는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다. 재산의 사적 소유는 외부의 나쁜 영향들 가운데에서 가장 심대하고 심각한 위험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플라톤은 나라가 맞이하는 가장 큰 위해로서 외적의 침입 이상으로 내부의 분열을 꼽고 있다. 특히 나라의 권력층과 부유층들의 사적 소유에 대한 욕망이 그 분열과 내란을 초래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사적 소유가 인정되면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을 더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는 언급도 그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417b) 그리고 내부의 분열은 나라는 물론 개인의 파멸도 포함하고 있다.(417b) 그래서 나라의 수호자들은 ‘이 사람은 이것을, 저 사람은 저것을 내 것이라고 부르면서 나라를 분열시키는 일이 없는’(464c) 사람들이어야 하고 ‘자신의 몸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사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다른 모든 것을 공유’(464d) 해야만 한다.

* 사유재산권의 금지에 관한 플라톤의 주장은 20세기 공산주의의 등장과 함께 그의 이상 국가를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공산주의의 선구적 모델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특히 사유재산을 보편적이고 침해할 수 없는 자연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근대 자유주의자들에게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가장 경계해야 할 정치체제 중 하나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공산주의 체제로 규정하는 데는 최소한 정치·경제학적인 측면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결정적으로는 사유재산의 금지가 이상 국가를 구성하는 계층 가운데 수호자 계층에만 한정되어 있을 뿐 정작 생산자 계층에게는 사유 재산이 인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수호자 계층은 계층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수가 가장 작은 최소 집단에 불과하지만(428e), 이상 국가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집단은 나머지 대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인구수가 가장 많은 생산자 계층이다. 덧붙여 플라톤의 이상 국가에서도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생산 및 제작, 유통과 관련한 경제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고 사적인 계약은 물론 과세의 규칙과 항만의 조례 등 시장 상거래의 세칙 또한 존재한다.(425c-d) 나아가 토지와 생산 시설 및 수익, 경영의 권리를 포함한 생산 수단 역시 사적 소유가 가능하고 노예조차 부분적으로 사유 재산을 축적할 수도 있다. 물론 경제 정책은 일종의 통치와 관련한 업무로서 수호자 계층에 의해 결정되지만, 플라톤이 명시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경제 정책은 나라의 분열을 막기 위해 빈부의 격차를 조정하는 것이 거의 유일하다. 수호자들의 주요 임무는 말 그대로 나라의 수호를 위한 활동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이 빈부 격차의 조정은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정부의 주요 업무로 인식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적인 경제 민주화 정책의 일환으로 헌법(제 119조 2항)에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플라톤은 아테네의 제국주의적 팽창이 가져다 준 적도(適度) 이상의 국부의 창출 및 영토의 확장은 반대하고 있지만 <국가>에서 강대한 나라가 되기 위한 국부의 창출 자체를 제한하는 조치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423a-c 참고) 플라톤 역시 페르시아의 침공을 막아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대규모의 함선 제작이 은광의 발견과 그것의 수출을 통한 국부의 증대에 있었음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플라톤의 이상 국가에서 수호자들에 대한 사적 소유의 금지가 미치는 경제적 영향은 생각만큼 큰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사적 소유의 금지 대상이 이상 국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수호자라는 최소 집단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수호자 집단이 이상 국가 전체 인구 비중에서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을 차지하는지는 정확히 추정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상 국가에서는 ‘비록 나라의 방위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수가 천 명뿐일지라도 가장 강대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소크라테스의 언급(423a)과 플라톤이 살았던 아테네 당대의 인구가 최소 21만 명에서 30만 명(V. Ehrenberg)이었음을 고려하면 수호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0.5%에서 1% 정도에 불과하다.(참고로 아테네 전체 인구 중 30-35%가 노예였고 아테네 경제가 기본적으로 노예 노동에 의지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상 국가에도 노예가 있다. 플라톤 역시 노예 노동이 일상화된 시대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진 못했다. 그러나 이상 국가에서는 아테네와 달리 노예를 최대한 이방인 전쟁 포로들에 한정하려 했다.(469c)) 그리고 아테네에서 귀족이나 부유층으로 구성된 중갑 보병(hoplites)의 수가 3만 명의 전체 병사들(이 가운데는 경보병 및 함대 노수병들은 노예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 3000명 정도이고(A. Andrews) 그들만이 공적 목록에 전사로 등재되었다는 사실을 근거 삼아 그들을 수호자 계층의 수로 추정한다 해도 그 비중 또한 1.5%에서 3%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이 수치들은 순전히 추정에 불과하지만, 최소한 수호자 계층의 사적 소유의 금지가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공산주의 체제로 규정하는 근거로 사용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20세기 소련 공산주의를 비롯한 전체주의 및 독재 국가들 대부분이 결국에는 권력층의 사리사욕 때문에 멸망했음을 고려하면 권력층의 사적 소유를 법적으로 아예 봉쇄하고 있는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그러한 나라들과 연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임을 알 수 있다. 물론 플라톤의 이상 국가에서는 권력이 수호자들에게 독점되어 있다는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수호자들의 권력의 합목적성이 시민이 이익에 한정되어 있고 복수의 철학자들이 돌아가며 통치하는 데다[<법률>에서는 권력을 견제하는 사정관들이 최상위 권력자들의 하나로 위치하고 최고 통치기구인 야간위원회에 위원으로 포함되어 있다.(945e947c. 961a)] 수호자들에게는 명예 이외에 어떠한 사적 소유나 이익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절대 권력을 철저히 사적 소유의 수단으로 삼은 현대의 전체주의 독재자들과도 원천적으로 구별된다고 하겠다. 이런 점에서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굳이 말한다면 계급 차이 자체를 배격하는 공산주의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역할 간의 조화와 공존을 통해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꿈꾸는 공동체주의의 선구로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

* 그런데 사적 소유가 분열의 원인이 된다면 이상 국가에서 사적 소유가 가능한 생산자 계층은 내적으로 분열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고대 아테네의 내란 대부분은 생산자 계층 내부의 분열에 기인하기보다는 권력자들이 부유층과 결탁하여 시민의 부를 착취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해 권력과 부를 함께 가지려는 권력자들의 욕구 때문에 내분이 생겼음을 고려하면 플라톤에게 이러한 내란의 여지는 평생 올바른 교육으로 단련된 철인 통치자들의 이성적 조화 능력을 통해 사전에 해소될 수 있다고 여겨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경험적 사실을 아는 현대인에게 플라톤의 구상은 여전히 현실성 없는 시대착오적 공상에 불과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주목해야 할 것은 플라톤 역시 현대를 사는 우리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절대 권력의 피폐상을 경험했으며 대화편 곳곳에서 그 절망감을 토로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켈리아에서 참주정의 적나라한 실체를 몸소 경험한 것을 비롯해 아테네에서도 오죽하면 30인 참주정을 겪으며 차라리 민주정이 황금 같은 정치체제로까지 보인다고 고백했을까.(<편지들> 324d) 이점에서도 권력과 재력의 분리는 이상 국가의 정치체제를 기초 지우는 대원칙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의 실현 가능성이 오로지 정치와 지성의 결합에서만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플라톤은 어떠한 이론적 실천적 난관에도 불구하고 철인 통치자들을 주축으로 하는 정치체제를 지고의 목표이자 이상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멸망해 가는 아테네를 바라보며 현실 정치 참여 대신 골방에 처박혀 거의 집착이라 할 정도의 이상을 향한 그의 집요함은 아마도 그 자신이 겪은 정치적 참혹상에 대한 세계사적 절망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마치 그가 미래를 내다보기나 한 것처럼 그의 원대한 이상은 서구 정치철학사를 관통하여 2,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참혹한 정치적 절망을 겪은 사람들에게 결코 꺼질 수 없는 횃불로 되살아나 결코 꺾일 수 없는 희망의 푯대로 우리들의 열망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그 실천을 추동하고 있다. 정치적 이상주의는 이미 그 자체로 변혁을 이끄는 힘이 될 수 있다.

[제3권 끝, 이어서 제4권 1-3-3 수호자들의 임무(419a-427c)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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