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강해 ㊼ [이정호 교수와 함께하는 플라톤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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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 강해 ㊼

 

1-3 통치자가 갖추어야할 조건들(412b-427c)

     1-3-3 수호자들의 임무(419a- 427c)

 

4권 [419b-421c]

* 소크라테스가 사유재산 금지를 비롯한 수호자들의 생활 방식과 관련한 언급을 마치자 아데이만토스가 끼어들어 누군가가 그런 생활 방식이 수호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뭐라고 변론할ἀπολογήσῃ 것인가를 묻는다. 그들은 나라가 자신의 것인데 이 나라 덕택에 누리는 것도 없고 다른 사람들처럼 땅과 집, 살림살이, 금화 은화도 소유하지 못하고 신들에게 제물도 못 드리고 손님 대접도 못해 마치 용병으로 고용된 보조자들ἐπίκουροι μισθωτοὶ같다는 것이다.(419a)

*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한술 더 떠 수호자들은 끼니 정도만 제공되고 여행도 못하며 애첩ἑταίραa들에게 선물도 못 주며 돈도 제대로 못 쓴다고 말하면서 그런 고발 거리로 말하자면 그밖에도 허다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지금까지 살펴온 ‘같은 노선을 걸으면’τὸν αὐτὸν οἶμον πορευόμενοι 위의 의구심들과 달리 수호자들이 가장 행복하다εὐδαιμονέστατοι해도 전혀 놀랄θαυμαστός 일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라 말하면서 우리가 나라를 세우는 취지가 우리 안의 어떤 한 집단ἔθνος이 특별히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나라 전체 ὅλη ἡ πόλις가 최대한 행복해지는 데 있음을 환기 시킨다.(420a-b) 그리고 그런 나라에서 정의가 가장 잘 발견될 수 있고 가장 나쁘게 세워진 나라에서는 부정의가 가장 잘 발견될 수 있으므로 그러한 고찰을 통해 우리가 오랫동안 탐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판정을 내릴 수 있음이 재확인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지금은 소수가 아니라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빚어내는 중이고 그 반대되는 나라도 이어서 살펴볼 것이라 말한다.(420c)

*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앞에서와 같은 고발 거리는 마치 생명체ζῷον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인 눈ὀφθαλμός을 검정으로 칠했다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하면서 각 부분에 적합한 것들τὰ προσήκοντα을 배당해서 전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운다. 요컨대 그런 비난들은 수호자에게 부적합한 행복εὐδαιμονία을 수호자들에게 부여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420c-d) 우리도 농부γεωργός들에게 금장식을 두르고 즐거움 삼아 땅을 갈게 하거나 도공κεραμεύς들로 하여금 술을 마시며 진수성찬을 즐기면서 만들고 싶은 만큼만 도자기를 만들 줄 알지만(420d) 그러한 경우 농부는 농부가 아니고 도공은 도공이 아니듯 나라 구성원들 그 누구도 제 역할σχῆμα을 못한다.(420e)

* 다른 사람들 이를테면 구두 수선공이 아니면서 그런 체하는 건 그리 큰 문제는 아니지만, 수호자들인 체하는 사람들의 경우라면 그들은 나라 전체를 철저히 파괴한다. 나라를 잘 경영οἰκεῖν하고 행복하게 할 기회 역시 수호자들만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421a)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지금 나라에 해를 가장 안 끼치는 진정한 수호자들φύλακας ὡς ἀληθῶς을 만들고 있음에도 저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나라가 아닌 다른 걸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므로 수호자들을 임명할 때는 수호자들 사이가 아니라 나라 전체에 행복이 생길지를 바라보아야 하고 그들로 하여 자신들의 일에 대해 가능한 한 최고의 장인δημιουργός들일 수 있도록 강제하고ἀναγκαστέον 설득해야πειστέον 한다.(421b) 다른 모든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우리는 나라가 모두 다 함께 성장하고 훌륭하게 기반이 잡히면 그때 가서 각 집단이 자연적 성향 ἡ φύσις에 맞는 행복에 참여하도록 우리가 놔두어도 될지 살펴봐야 한다.(42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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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테파누스 쪽수가 419a에서 420a로 건너뛴 것은 스테파누스 플라톤 전집 원본 체제로 419쪽 b-e부분은 4권과 관련한 주석 등 다른 내용으로 채워져 있고 본문은 다음 쪽에서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쪽수의 건너뜀은 권이 달라질 때마다 나타난다.

* 애첩ἑταίραa(420a) : 뷔데판 불어 역본에서는 ἑταίρα를 여행 동반자로 번역하고 주석에다 부유한 아테네인들이 여행 중에 애첩을 동반했다고 기술해 놓았다.

* 419a에서 ‘다른 사람들’οἱ ἄλλοι이 가리키는 대상을 이상 국가 내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권력자들로 해석하는 주석가들이 있다.(J. Adam 등) 물론 이상국가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아테이만토스가 그냥 당대 아테네 부유층을 염두에 두고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다. 제1권에서 아테네 거류 외인이자 부유층 노인 케팔로스는 손님도 대접하고 집안에 제단도 갖추고 제물도 바칠 정도로 풍족하다.

* 지금까지 살펴온 ‘같은 노선을 걸으면’τὸν αὐτὸν οἶμον πορευόμενοι(420a)에서 같은 노선이란 정의로운 사람이 부정의한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노선 또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정의로운 나라를 세우는 노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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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권은 사유재산 금지를 비롯한 수호자들의 생활 방식과 관련한 소크라테스의 언급에 대한 의구심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제5권에서도 4권 말미에 제기된 소크라테스의 과격한 제안들에 대한 의구심으로 시작된다. 제4권 말미에 제기된 제안들이 남녀평등 및 처자 공유 등 훨씬 과격한 제안들임을 고려하면 제4권의 서두 역시 제5권 서두에서 본격적으로 제시될 의구심과 반론들에 대한 예비적 서론의 성격을 갖는다.

* 아데이만토스의 의구심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지금까지 살펴온 같은 노선을 걸으면 의구심들과 달리 수호자들이 가장 행복하다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며 나라를 세우는 취지는 어떤 한 집단이 아닌 나라 전체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의구심에 대한 변론 대신 그와 정반대의 결론부터 내놓는다. 다만 변론의 단서가 하나 있다. ‘지금까지 살펴온 같은 노선을 걸으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그 노선이 다름 아니라 애초 논의의 출발점이 그랬듯이 정의로운 나라와 개인은 부정의한 나라와 개인과 달리 모두가 행복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노선임을 환기시킨다. 그에 따라 부정의한 나라에 대한 고찰도 이어질 것이라고 예고한다.(420c) 실제로 플라톤은 제8권에 가서 가장 부정의하고 불행한 나라와 개인들의 경우를 끌어들여 실제 현실에서 우리들이 부딪치는 현실적 정의와 행복의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분석 검토하고 그것을 토대로 최종적인 판정을 내린다.

* 수호자들이 남들 보기에 가혹한 생활 여건 속에서도 왜 행복한 사람들인지 그리고 수호자들은 왜 나라를 지키는 힘든 임무들을 기꺼이 감당해야 하고 또 감당하는지는 <국가>의 중요한 주제를 형성하면서 앞으로 보다 자세하게 논의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예비적 서론의 성격을 갖는 이 부분에서도 비유를 통해서나마 그 기본 원칙이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즉 인간은 생명체로서 여러 신체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존재이다. 그리고 그 신체 기관들은 각기 고유하고도 다른 기능들을 가진다. 각기 고유하고도 다른 기능들이 있다 함은 각기 자신들에게 가장 적합하고 걸맞은 고유한 특색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그 고유성과 무관한 어떤 것을 그저 남들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그것들에 획일적으로 적용할 경우 오히려 그 고유성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 나라라는 유기체를 구성하는 개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개인들은 태어날 때 각기 서로 다른 천성과 소질을 갖고 태어나므로 사람들 모두 각기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정의롭고 좋은 나라가 되려면 구성원들 모두가 행복해야 하므로 각기 자신의 천성과 소질에 맞는 역할이 부여되어야 하고 그 역할을 보다 잘 해낼 수 있도록 나라는 그들에게 그에 걸맞은 교육과 양육을 끊임없이 베풀어야 하고 그러한 역할의 부여와 교육과 양육의 과정들이 과연 적합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천성 또한 가능성이지 필연성은 아니기 때문이다.

* 요컨대 이상 국가의 구성원들은 태생적인 요인과 그에 기초하여 이루어지는 교육의 영향으로 기본적으로 욕망의 구조가 서로 상이하다. 어떤 이들은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어떤 이들은 몸과 마음을 단련하여 나라 지키는 일을 좋아하고 어떤 이들은 농사를 짓거나 뭔가를 만들기를 좋아하며 어떤 이들은 장사를 좋아한다. 사실 이러한 플라톤의 본성론은 사실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 그리 낯선 것도 아니다. 오히려 태생적인 측면만 고려하면 오늘날 획일적인 인간관이 훨씬 낯설고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린이들은 성장하면서 자신의 적성과 소질보다는 부와 출세 욕망에 기울도록 순치되면서 오늘날 인간의 욕망은 이기적인 물질적 욕망으로 획일화되어 마치 그것이 인간의 자연적 본성인 양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플라톤은 한 시대의 사회적 변화가 초래한 획일화된 욕망을 마치 태생적인 본성인 양 고착시킨 근대인들과 다르게 아테네의 물질적 이기주의를 다만 당대의 사회적 격변이 초래한 자연적 본성의 왜곡과 타락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전복하는 사회적 변혁과 일관된 교육을 통해 인간 본래의 자연적 본성이 다시 회복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에 따라 플라톤은 획일적인 물질적 욕망에 시달리며 서로 대립하고 경쟁하고 갈등하는 사회적 현실에 저항하며 그와 전혀 다른 우주적 자연에 걸맞은 정치 사회적 변혁 즉 태생적으로 서로 다른 욕망들의 조화와 공존이 관철되는 사회적 변혁을 꿈꾸었고 그에 따른 기본 원칙과 실천적 전략으로서 자신의 정치철학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 그러나 어쨌거나 정의와 행복이 일치하는 나라를 보다 완전하게 뒷받침하려는 소크라테스의 논의 노선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런데 미리 유념해두어야 할 것은 종국에 가서 정의와 행복이 일치하는 나라와 개인이 확립되고 논증되었다고 하더라고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다만 본(本, paradeigma)으로서 확립된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472c-d) 즉 그러한 정의로운 나라의 구현이 수호자들의 목표로 설정되어도 본이 반드시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가능성의 영역으로서 구현 능력으로서 영혼의 수준이 늘 변수로 개입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여기에서도 완벽한 수준의 교육이 담보되지 않는 한, 수호자들이 실제 현실에서 자기들의 책무를 지속적이고도 일관되게 수행하기를 힘들어하고 언제든지 그것을 거부하고 나쁜 방향으로 갈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플라톤이 수호자들이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단언하면서도 동시에 ‘그들로 하여 자신들의 일에 대해 가능한 한 최고의 장인(dēmiourgos)들일 수 있도록 강제하고 설득해야 한다.’(421c)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강제와 설득은 자발성의 한계에서 성립하는 것이되 그 자체로는 대립적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두 가지가 함께 섞여 있다. 교육과 훈련이 최상의 단계로 이루어져 최고의 장인이 되면 거의 자발적인 수준으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늘 교육과 훈련의 방향과 반대로 될 가능성이 늘 함께 있다. 강제는 나쁘게 될 가능성에 대한 대처 방안이고 설득은 더 좋게 될 가능성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는 함께 공존한다. 이렇듯 플라톤에게 나라와 개인에 있어 지적 훈련은 존재론적으로 늘 가변적인 가능성의 영역으로서 그 자체로 긴장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나라가 모두 다 함께 성장하고 훌륭하게 기반이 잡혀도 각 집단이 과연 자연적 성향에 맞는 행복에 참여하는지 늘 지켜보아야 한다.(421c) 이점에서도 플라톤의 정치철학과 존재론 그리고 교육론은 하나로 만난다.

 

[421c-423d]

* 소크라테스는 아데이만토스의 문제 제기에 답한 후 그 문제와 형제가 되는 문제를 이야기하겠다고 말한 후 다른 장인들을 망치고 나쁘게 만드는 것들로서 부πλοῦτος와 가난πενία을 제시한다.(421d) 왜냐하면 부는 장인들로 하여 기술에 관심을 덜 기울이게 하여 게으르고 나태하게 만들고, 가난은 기술에 필요한 장비나 다른 어떤 것을 갖출 수가 없게 하여 일도 더 형편없게πονηρός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아들들이나 그가 가르치는 다른 사람들을 더 나쁜 장인으로 만들기 때문이다.(421e) 즉 가난과 부는 기술의 결과물τά ἔργα은 물론 그 자신도 더 나빠지게χείρων 만든다. 결국 수호자들 몰래 나라로 기어서 들어가지 않도록 어떻게든 지켜야 할 것들 즉 부와 가난이 찾아진 셈이다. 부는 사치τρυφή와 게으름ἀργία과 변혁νεωτερισμός을 불러일으키고 가난은 변혁은 물론 옹졸함ἀνελευθερία과 기량저하κακουργία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422a)

* 그러자 아데이만토스가 나라가 재물χρήματα을 갖지 않고 크고 부유한 나라를 상대로 어떻게 전쟁을 치를 수 있는지를 묻는다.(422b) 이에 소크라테스는 그런 나라 하나를 상대로는 더 어렵지만, 두 나라를 상대로는 더 쉬울 것이라고 말하고 아데이만토스는 다시 그 말의 의미를 묻는다. 소크라테스는 수호자들은 전쟁의 선수ἀθλητής로서 가장 훌륭하게 훈련된 한 명의 권투선수πύκτης가 권투를 모르는 부유하고 살찐 두 명을 이길 수 있듯이 아무리 수가 더 많다고 하더라고 그들을 제압할 수 있다고 말한다.(422c) 게다가 설사 부자들이 권투기술에 대한 앎ἐπιστήμῃ과 경험ἐμπειρία에서 수호자들보다 더 많이 갖고 있다고 해도 그들은 전투 기술은 갖고 있지 못하므로 수호자들은 자신들보다 두세 배 많은 사람과도 쉽게 싸울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422c-d)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두 나라 가운데 한 나라에 사절단을 보내 이 나라에서는 소유가 금지되어 소용이 없는 금화와 은화를 주는 조건으로 연합 전쟁을 제안할 경우 그 나라는 다부지고 날렵한 개들과 싸우기보다 개들과 한편이 되어 허약한 양떼와 싸우기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한다.(422d)

* 그러자 아데이만토스는 그렇게 해서 만약 다른 나라들의 재물이 한 나라에 집결된다면 그로 인해 부유하지 않은 나라가 위험에 처하게 되진 않을까 재차 의문을 표한다.(422d) 이에 소크라테스는 그런 나라도 나라라고 부를 만하다 여기니 속 편한 사람이라고 힐난하고 그런 나라들은 놀이를 하는 사람들 말처럼 각기 ‘수많은 나라들’πάμπολλαι이지 ‘나라’πόλις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 나라들은 어떤 경우이든 서로 적대적인 두 개의 나라 즉 가난한 자들의 나라와 부유한 자들의 나라를 가지고 있고(423e) 이 두 나라 각각 안에도 아주 많은 나라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 나라들을 하나μία로 보지 말고 여럿으로 보고 대응하여 한쪽 편에 다른 편의 재물과 권력을 주거나 그 사람들 자체까지 주면 언제나 동맹군은 많이, 적은 적게 갖게 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식으로 절제 있게 나라가 운영될 경우 나라를 위해 싸우는 자들οἱ προπολεμοῦντες이 천χίλιο명만 있더라도 그 나라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가장 큰 나라이자 하나인 나라이며(423a) 이런 나라는 그리스 사람Ἕλλην들 사이에서도 이민족βάρβαρος들 사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 그런 연후 소크라테스는 나라의 규모와 크기 그리고 영토와 관련한 가장 훌륭한 기준ὅρος을 제시한다. 즉 나라를 키우더라도 하나일 수 있는 선까지만 키워야 하며 이에 따라 수호자들에게도(423b) 어떻게 해서든 나라가 작은 나라 또는 큰 나라로 여겨지지도 않고 다만 하나이면서도 충분한 나라게 되게끔 수호하라고 임무πρόσταγμα를 부여해야 한다. 그러자 아데이만토스는 그 임무는 그들에게 쉬운 임무라고 말하고 소크라테스는 쉽기로 말하면 앞서 말한 임무 즉 수호자들의 태생과 계층 이동과 관련한 임무(415b)가 그보다 훨씬 쉬운φαῦλος ἴσως 임무라고 말한 후 그 말의 취지가 다른 시민들도 ‘각자가 저마다 자신이 타고난 본성에 맞게 한 가지 일을 맡아야 한다.’πρὸς ὅ τις πέφυκεν, πρὸς τοῦτο ἕνα πρὸς ἓν ἕκαστον ἔργον δεῖ κομίζειν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임을 다시 또 환기한다. 즉 시민들이 자기의 일 하나에 전념함으로써ἐπιτηδεύων 각자가 여럿이 아니라 한 사람이 되도록, 그리고 바로 그렇게 해서 온 나라가 여럿이 아니라 한 나라ἡ πόλις μία로 자라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423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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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혁νεωτερισμός(422a)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한 급진적 변혁의 시도(to attempt anything new, make a violent change) 즉 혁명에 준하는 일종의 정치·사회적 변혁을 의미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부와 가난은 나라와 기술의 결과물은 물론 자기 자신도 나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 말은 부와 가난은 개인 차원에서도 영혼의 변화 그것도 변혁에 가까운 급격한 변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적도(適度) 이상의 부와 가난은 사람을 돌게 만든다.

* 옹졸함ἀνελευθερία(422a)은 자유ελευθερία라는 말에 부정어 ἀν이 붙은 것으로 말 그대로 자유민답지 못함, 노예근성, 옹색함 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 권투의 비유(422c)는 이중적이다. 선수의 비유는 전문성과 비전문성을 대립시킨 것이고 기술의 비유는 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기술과 여러 사람의 통솔과 관련된 기술을 대립시킨 것이다.

* ‘나라를 위해 싸우는 자들οἱ προπολεμοῦντες이 천χίλιο명만 있더라도’(423a) 이 구절은 수사적 표현일 수도 있으나 이상국가에서 수호자 집단의 머릿수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이상 국가를 구성하는 적정 규모의 인구를 <법률>의 신생 국가 마그네시아의 인구( 총5040세대 즉 가족이나 노예를 포함해서 약 최소 3-4만명 정도)로 추산해도 수호자들의 수는 전체 인구에서 4%를 넘지 않는다. 참고로 당대 아테네의 인구는 25-3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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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부분은 <국가>에서 수호자들의 임무를 단적으로 가장 잘 드러내어 주고 있는 부분이다. 수호자의 임무는 말 그대로 나라를 수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라의 수호는 외적으로부터 침입을 막는 것과 내부에서 생기는 내분이나 내란을 막는 것으로 나뉜다. 그런데 플라톤에게 이 두 가지 임무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이 임무들을 수행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은 단 하나 즉 나라의 분열을 막는 것이다. 그러니까 후자의 임무 즉 내분을 막으면 자연스럽게 외부로부터의 침입도 막을 수 있다. 분열은 나라를 수호하는 데 가장 나쁜 요인이다. 이것은 적군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적군을 분열시키고 동맹군을 만드는 것이 나라 수호의 최선의 전략이 된다. 요컨대 나라를 분열되지 않은 하나의 나라로 만드는 것이 수호자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그런데 나라를 하나로 만드는 것에 가장 방해가 되는 요소가 다름 아닌 부와 가난이다. 그러므로 실질적으로 평화 시에 수호자들이 해야 할 가장 큰 임무는 전술과 전략의 개발과 전투력의 증강 이전에 나라 안에서 부의 편중과 그로 인하여 생기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적대적 대립을 막는 것 즉 부와 가난의 양극화를 막는 것이다.

* 수호자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분열을 막는 것이고 그 분열의 근본 원인이 부와 가난이라 함은 뒤집어 말해 플라톤 역시 그의 경험과 인식 속에서 나라의 존망을 해치는 가장 큰 위험 요인이 다름 아닌 경제적 모순이라는 사실을 이미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통찰을 통해 생산 관계의 모순을 사회 변동의 근본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는 마르크스의 생각과 일정 부분 닿아 있다. 다만 플라톤은 그 모순을 미리 해소하려는 입장이고 마르크스는 그 모순을 역사 과정의 필연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변혁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다는 게 다를 뿐이다. 그러나 정치체제 변동과 관련하여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서 경제적 모순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두 사람 간에 차이가 없다. 그만큼 플라톤에게도 경제적 문제는 정치의 지상과제였다.

* 다른 나라의 재물이 한 나라에 집결하였을 경우 그 부유한 나라를 적국으로 두었을 때 대처 방안도 결국 부와 가난의 문제가 답변의 관건을 구성한다. 한 마디로 플라톤은 다른 나라의 재물을 가져다 부유해진 나라는 ‘한 나라’(mia polis)가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나라와 부유한 자들의 나라 또는 그 이상의 나라들로 분열된 ‘수많은 나라들’(panpollai)이므로 그 나라 역시 분열책에 의해 제압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오히려 절제 있게 운영되는 나라야 말로 비록 나라를 위해 싸우는 자들이 천명만 있을지라도 진정한 의미에서 가장 큰 나라이자 하나인 나라이다.(423a)

* 여기서 다른 나라의 재물을 갖다가 부유해진 나라는 다름 아닌 당대 제국주의 아테네를 가리킬 것이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단합하여 부유한 나라 페르시아를 물리쳤지만, 그 후 아테네 동맹이란 이름으로 다른 폴리스들의 재물을 모아 강대한 제국으로서 부를 누렸다. 그러나 아테네는 같은 그리스 민족인 스파르타와 분열하여 오랜 기간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빈부의 양극화가 초래한 내분에 시달리면서 결국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 다른 나라를 상대로 싸울 때 소크라테스가 제시한 대비책은 일종의 두 나라 사이를 분열시키는 대책으로 한 나라를 금과 은으로 유인하는 방식이다. 오늘날 복잡한 국제 관계의 관점에서 보면 한 나라의 안보 관련 전략치고는 너무 단순하고 순진하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나라의 안보를 담보하는 가장 큰 방책의 하나가 다른 나라들과 동맹을 맺는 것이고 그 동맹 여부를 결정하는 큰 요소가 경제적 이익임을 고려하면 최소한 전략의 대원칙에서는 크게 다를 것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상 국가에서 동맹을 위한 경제적 유인책으로서 금과 은이 거론되고 있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금과 은이 이상 국가에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수호라는 가장 중요한 목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만큼 중요한 소용 가치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상 국가에서 통치자나 개인 모두 금과 은의 소유가 금지될지언정 이상 국가 또한 국유재산으로서 금과 은의 축적을 중시하는 나라 즉 국부까지 소홀히 하지는 않는 나라라 할 것이다.

* 그러함에도 강대하고 부유한 나라들에 대한 플라톤의 시선은 매우 비판적이다. 그는 일단 강대하고 부유한 나라들은 기본적으로 한 나라가 아니라 부자의 나라와 가난한 나라로 나뉘어 있고 그 두 개의 나라는 또 더 많은 나라로 분열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부유하면서도 분열되지 않은 나라는 없다는 것이 플라톤의 기본 관점이다. 그러나 과연 그의 생각은 오늘날 우리들의 경험 속에서도 타당성을 가질 수 있을까? 이를테면 오늘날 북구 유럽 등 복지 국가들은 부유하면서도 나름 안정적인 통합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것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 우리는 플라톤이 왜 그런 견해를 갖게 되었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한 플라톤 견해의 배경에는 인간 본성과 욕망구조의 변화와 관련한 플라톤 고유의 철학적 입장이 자리하고 있다. 플라톤의 인간 본성론은 수차 언급했지만, 태생적으로 다르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소질과 욕망 또한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이상 국가의 목표는 구성원들로 하여 그 다양한 소질과 욕망에 따라 역할을 수행케 하고 그에 따른 자신만의 고유한 성취와 행복감을 지니게 하는 것이다. 물론 플라톤은 제8권에서 그러한 본래의 자연적 욕망구조가 현실 국가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타락되는지도 함께 보여준다. 그 타락의 과정을 쉽게 요약하자면 교육과 양육이 잘못되어 이기적 물질적 욕망에 물 들은 권력자들이 권력을 부의 축적의 수단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부의 부당한 착취와 편중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애초 다양한 소질과 욕망을 갖고 서로 공존하던 사람들마저 각자도생하게 되고 결국 모든 사람의 욕망이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 왜곡되고 획일화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다른 욕망으로 서로 다른 가치를 성취하며 각기 고유한 행복감을 누리던 사람들이 이기적 욕망으로 변질하면서 권력자들에 대한 의심은 물론 이웃들까지 부의 획득을 위한 경쟁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고 그에 따라 결국 서로 다른 것들끼리의 조화와 공존 대신 구성원들 모두에 대한 구성원들 모두의 경쟁적 싸움과 배타적 의심의 체제로서 민주정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민주정 하에서 이기적 경쟁과 불신 그로 인한 누명과 소송이 일상화되면서 결국 유전무죄, 무전유죄, 부익부 빈익빈이 초래되고, 그에 따른 민중들의 변혁 욕구와 선동정치가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자 참혹한 참주정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 물론 플라톤의 이러한 분석의 배경에는 그가 겪은 당대 아테네 제국주의의 폐해가 자리 잡고 있지만 프롬(E. Fromm)도 시사하고 있듯이 오늘날 현대 파시즘의 등장 배경과 관련해서도 탁월한 통찰을 포함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의 세계사적 현실 또한 신자유주의와 형식 민주주의가 찰떡같이 결탁하여 견고하게 똬리를 튼 이래 나라와 개인들 모두 부의 축적을 지상의 가치인 양 목매고 있고 그 결과 나라들 사이는 물론, 한 나라 안에서도 극단적인 수준의 빈부 양극화가 이미 고착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북구의 복지국가마저 강대국들의 위협에 둘러싸여 분배보다는 총량적 성장을 위한 정책으로 돌아서고 있고 효율 지상주의와 거대 자본이 결합한 정보 산업의 급속한 발달은 그에 비례하여 기존의 국가 간 개인 간 양극화의 골을 가히 불가해의 수준으로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부유한 나라는 있어도 분열되지 않은 나라는 없다는 플라톤의 견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성을 갖는 것이 아닐 수 없다.

* 그러면 정의롭고 행복한 나라를 수호하는 데 결정적인 관건이 되는 빈부 양극화 문제를 플라톤은 어떻게 해결하려 했을까? 다시 말해 이상 국가의 수호자들은 자신들의 핵심 임무인 부와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 어떤 구체적인 임무들을 수행해야 할까? 우선 소크라테스는 분열되지 않은 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나라의 규모와 크기 그리고 영토와 관련하여 매우 절제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나라를 키우더라도 하나일 수 있는 선까지만 키워야 하고 이에 따라 수호자들에게도 어떻게 해서든 나라가 작은 나라 또는 큰 나라로 여겨지지도 않고 다만 하나이면서도 충분한 나라가 되도록 수호하라고 임무를 부여해야 한다.(423b) 요컨대 아테네 제국이 수행했던 패권주의적 침략 전쟁을 중지하고 부국강병의 책무는 나라의 방어와 시민의 안정적 삶에 충분할 정도만 목표로 삼아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이런 나라를 어찌 나치 제국과 연관시킬 수 있을까?) 아무려나 플라톤의 이러한 제안 역시 오늘날 패권주의가 판치는 현실에서 보면 순진할 수밖에 없으나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이 그렇듯이 그것이 갖는 정치철학적 함의는 꺼지지 않는 불길이 되어 앞으로 정치적 변혁을 열망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추동하는 정치적 대의로 시대의 어둠을 밝히게 될 것이다.

* 참고로 빈부 격차의 해결 방안과 관련하여 <국가>가 이러한 대원칙을 표방했다면 <법률>은 빈부의 격차를 막기 위한 이보다 훨씬 더 세부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크레테 원주민과 이주민으로 세워지는 새 나라는 기존에 소유하고 있었던 재산 때문에 재산들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 시민들은 재산에 따라 4개 등급으로 구분되지만 최초 집과 토지는 공평하게 분배되며 재산의 경우 또한 비록 최하위 등급일지라도 최소한 가난함의 한계로 설정된 기준 이상의 기본 재산이 할당된다. 물론 이 등급은 재산의 변화에 따라 바뀌지만 아무리 부를 늘리거나 이미 최상위 등급으로 있다 해도 최하위 등급에게 부여된 기본 할당 재산의 4배를 넘게 소유해서는 안 된다. 만약 어떤 행운에 의해 그 이상의 초과분을 획득했을 경우 초과분의 절반은 세금으로 나라에 바쳐야 하고 기타 세금은 모두 공적 장부에 등록된 소유 재산의 기준에 따라 다르게 부과된다.(<법률> 744c-745a)

* 이렇듯 오늘날 우연적 행운에 의해 발생한 이익 중 일부를 중과세 제도를 통해 우연적 불운에 의해 초래된 손실에 벌충해 주는 복지 제도 또한 플라톤에서 기원한 것이다. 오늘날 정례 수익이나 연봉에서 최하 등급과 최고 등급의 차이가 10배 정도도 아니고 100배를 넘는 경우도 허다하고 상류층 5%의 재산 총액이 나머지 계층 95% 사람들의 재산 총액과 맞먹는다는 것을 만약 플라톤이 안다면 크게 충격을 받을 것이고 게다가 그러함에도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까지 알게 되면 기절까지도 했을 것이다. 사람의 능력과 가치를 재산으로 환산하는 반인권적 작태가 이미 일상화된 오늘날이기는 하지만 특수한 경우의 상여도 아니고 평균적인 급여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100배가 넘는다는 것은 한 인간이 평균적인 능력에서 100배 이상 우월하거나 열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그 또한 인권 침해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이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만큼 기득권적 권력과 자본의 억압구조 또한 무서울 정도로 견고하다.

* 나라의 규모와 영토 관련 임무보다는 비교적 쉬운 임무이지만 그래도 수호자들이 수행할 가장 중대한 임무는 앞서 말한 대로 구성원들 각자에게 자신의 고유한 소질과 적성에 맞게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맡아 일하게 하여 구성원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플라톤의 사상은 공리주의와도 크게 다르다. 공리주의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토대로 다다익선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소수자의 희생과 불행을 불가피한 것으로 전제한다. 그러나 플라톤은 누구도 예외 없이 자기 욕망을 구현하고 구현한 만큼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 이곳 플라톤의 말 그대로 ‘시민들이 자기 일 하나에 전념함으로써 각자가 여럿이 아니라 한 사람이 되도록, 그리고 바로 그렇게 해서 온 나라가 여럿이 아니라 한 나라로 자라도록 만들어야 한다.’(423c-d) 지장보살이 지옥에 한 사람도 남지 않을 때까지 극락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면 플라톤은 정의로운 나라에서는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이 결코 한 사람이라도 있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1261a17~1261b15에서 소크라테스가 여기에서 언급한 내용 즉 ‘나라의 하나 됨’에 주목하여 플라톤이 나라가 갖는 개별적 다수성(plēthos) 내지 다양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총화단결을 외치는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으로는 타당하지만, 내부적으로 서로 다른 다양한 욕망과 소질을 가진 구성원들의 조화와 공존을 바탕으로 하나의 나라를 구축하려는 플라톤에 대한 비판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경험적으로 드러난 개별적 사회 현상들과 제도 및 체제에 크게 주목한다. 그러한 까닭에 그의 해석들은 개인 영혼에 대한 형이상학적 분석을 토대로 나라 구성원 전체의 조화를 해명하려는 플라톤의 영혼의 정치학을 이해하는 데 일정 부분 한계가 있다.  -끝- (1-3-3 수호자들의 임무(423e- 427c)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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