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와 민주주의의 역할 – 철학자의 착상은?[지금,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①

경제 위기와 민주주의의 역할

?철학자의 착상은?-12강

 

이정은(연세대 외래교수)

 

1. 세계 경제의 위기와 민주주의의 위기

 

 

21세기 우리네 한국인들의 삶을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 어떤 단어가 금새 생각날까? 언론에서도 일상적 대화에서도 빈번하게 등장하는 경제 위기, 지하경제 활성화와 같은 말일 게다. 비록 현 정부가 지금은 크게 부각시키지는 않지만, 대선 기간에는 복지 정책을 강조하고 통합진보당이 이슈화한 ‘서민들을 위한 복지정책과 경제 활성화’를 부각시켰었다. 여야 모두가 그때는 복지 이슈를 선점하려고 했었음을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우리의 화두는 경제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 볼 수 있다. 도대체 경제가 얼마나 중요하기에? 경제가 우리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인가? 경제만 잘 되면 모든 일이 잘 된다고 할 수 있는가? 경제 문제 이외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없는가? 다른 문제가 해결되면, 경제 문제도 해결되고, 우리 모두가 잘 사는 사회가 될 수도 있는가?

질문을 던지는 바로 이 순간에도, 이번 강좌의 전체 제목이 떠오른다. 역시 경제이다! 공존 경제를 위하여! 물론 여기에서 강조점은 경제가 아니라 ‘공존 경제’이다. 그러므로 ‘공존’을 화두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회는 경제가 모든 것의 척도가 되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경제 문제에 집착해 왔다. IMF 때문이기도 하고, WTO 여파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철저한 경제 개방인 FTA를 단행하는 가운데서 세계화를, 신자유주의를, FTA를, 중도 실용주의를 순차적으로 진행시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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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와중에 전 세계를 뒤흔드는 금융 사건을 겪게 되었으니, 바로 모기지론이다. 미국인도 어엿한 자기 소유의 집을 마련한다는 꿈을 실현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세일즈 맨의 죽음’이라는 소설 내지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자기 집을 마련하려고 은행 융자를 평생 동안 갚아 나간다. 그러나 마지막 빚을 갚기가 어려워지자, 자살을 하고 그 보험금으로 빚을 완전히 갚으면서 집은 그의 소유가 된다. 그 부인은 주인공의 무덤가에서 혼자 넋두리를 한다. ‘이제 빚을 다 갚아서 우리 집이 되었는데, 그 집에 살 사람이 없네!’

소설의 결말은 슬프지만, 현대인 모두가 일생을 그렇게 죽음으로 마감하지는 않는다. 집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 융자를 받고, 몇 십 년에 걸쳐서 갚아나가는 방법으로 손쉽게 집을 마련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이것을 악용하여, 한 사람이 여러 채의 집을 구입하고, 집값이 오르면 다시 되팔아서 순식간에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은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금융권에 문제가 생기면서 융자 금리가 오르고, 집 한 채도 건지지 못하고 길거리로 나앉는 소박한 소비자들도 있다. 소위 한국에서 유행하는 깡통 전세라는 말도 이와 연관이 있다. 은행 융자를 악용하여 여러 채의 집을 장만하는 사람들도 모기지론 사태에서 파장을 일으켰다.

여기에서 여러 채의 집을 융자로 장만하는 사람들의 욕심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모기지론을 언급한 것은 비난보다는 금융 상품의 허구성, 소위 버블(bubble), 거품이 어떻게 인간을 망치는가를 지적하고 싶어서이다.

모기지론과 관련하여, 융자를 받은 시민들이 이자를 끊임없이 갚아나가면 금융권에 돈이 쌓이게 된다. 그러면 금융권은 쌓인 돈을 활용하여 금융 상품을 만든다. 금융 상품을 파는 과정에서 은행들 간에, 국가와 국가들 간에 파생 상품이 생겨난다. 금융 상품이 금융 파생 상품을 낳는 기반이 된다. 그러므로 모기지론은 집장만을 위한 융자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금융 상품 내지 금융 파생 상품의 역학 고리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은행과 은행의 관계로, 은행과 타국가의 관계로, 국가와 국가의 관계로 전개되면서 전 세계 금융권에 영향을 미치고, 전 세계 경제 활동에 파급 효과를 낳는 시스템이다.

모기지론 때문에, 미국 금융권이 흔들렸고, 그래서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주었는데, 이것이 역학 구조로 작용하면서 한국에도 그 여파가 있었다. 오마바 집권 초기, 이명박 정권 초기에 그 후유증으로 몸살을 알았다. 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우리 네 삶은 자꾸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했다.

이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미국 경제 이론가들은 서로 상반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미국에 만연해 있는 자유주의, 자유지상주의가 이런 문제를 야기했다고 하면서, 자유 규제, 금융 규제를 강화하라는 목소리가 한동안은 높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미국의 기존 정조를 깨는 것이라서, 시장 구조뿐만 아니라 경제 구조를 포함하여 삶의 구조 모두가 궤도 전환을 해야 한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규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여러 얘기들을 할 수 있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금융 파생 상품 문제이다. 우리가 자본, 즉 돈을 가지고 공장을 건설하면, 거기에서 ‘유형의 상품’이 만들어진다. 이 상품이 어떤 유통 경로를 통해 팔리는지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벌어들이는 돈을 금융권에 투자하여 신용 상품이 만들어지면, 금융 파생 상품을 낳는데, 파생 상품은 또 다른 파생 상품을 낳는 과정으로 이어지며, 공장을 짓는 돈과 동일한 흐름이라 해도 이 과정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금융 상품으로 전환된 돈의 흐름은 완벽하게 파악하기가 힘들다. 돈이 돈을 낳는 일들이 일어나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통제를 하여 원활한 순환 구조를 만들어내야 할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냥 앉아서도 돈이 돈을 벌어서, 그냥 앉아서 수천 억 부자가 되기도 했다가, 그냥 앉아서 수천 억 돈을 날리기도 한다. 공장을 지어서 물건을 만들면, 부도가 나도 그 물건은 남는다. 그러나 금융 상품은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이러한 경제 흐름, 자본 흐름, 금융 상품 흐름은 경제인들 스스로도 완벽하게 파악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국가가 그 흐름을 규제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국가의 통제 아래 경제가 움직인다기보다는 경제가 국가로부터 독립하여 자체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신자유주의, FTA, 등은 국가 간의 장벽을 약화시키다 못해, 국가 간의 경계를 해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국가를 넘나드는 경제 활동을 가능케 한다. 비록 그 사업체의 출발점은 뉴욕 내지 미국이라고 해도,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 때문에, 그 사업체의 소속이 어디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 전 세계에 문어발식으로 확장되는 경제는 정부가 통제하기에는 힘들 만큼 연결망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에 걸친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특정 국가가 그 사업체를 완벽하게 통제하거나, 완벽하게 규제하거나, 완벽하게 미국 내 사업체로 흡수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오늘날 경제가 모든 것을 주도하고, 경제 권력이 국가 권력이 되고, 경제가 국가 권력을 능가한다고들 한다. 경제가 곧 국가라는 착각까지 일으킨다. 자본은 팽창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산업 혁명을 통해 한 나라 안에서 팽창을 시도하였다. 한 나라 안에서 할 수 있는 팽창이 한계에 도달하게 되자, 다른 나라로 팽창을 시도했고, 이것이 제국주의 행태를 낳았다. 그 팽창이 유형의 물건을 만들어내는 데 국한된다면 팽창은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금융 상품이다. 무형의 상품으로서 금융 상품은 유형의 상품과 달리 파생 상품을 연속해서 만들어낼 가능성을 지닌다.

경제 팽창은 결과적으로 여러 문제를 야기했는데, 처음에는 ‘빈부 격차’로서 ‘빈익빈 부익부’가 대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80 대 20 사회’가 한 시대를 풍미하는 말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정규직이 점차 줄어들고, 비정규직이 활성화되더니, 이제 파트 타임, 단순 아르바이트가 일상 유행어가 되었다. 예전에는 ‘투잡’, ‘쓰리잡’이 익숙했는데, 이제 ‘알바천국’이라는 광고가 익숙하다.

우리네 경제적 삶의 구조는 계속 악화된다고 느끼는데, 각 국가들은, 각 국가의 정부들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가? 손을 놓고 있는가? 경제 문제를 회복하기 위해 어떤 정책들을 펼치고 있는가? 어떤 국가이든, 노력하지 않는 국가 내지 정부는 없다. 그럼에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이들은 이제 경제가 중심이며, 국가는 자립성이 없는 상황, 즉 국가가 경제에 예속되는 구조라고 말한다. 팽창하는 속성을 지니는 자본의 흐름에 종속되고, 자본을 도와주는 국가로서 역할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도 한다.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여기에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보자. 경제 팽창 속에서 국가 역할이 약화되고 경제에 종속되는 행보를 계속할 것인가? 동등한 기회와 자유 경쟁을 인정하는 자유시장주의 구조에서 평등 또는 민주주의는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가?

국가는 경제와 별개로 독립된 영역을 구축하고, 경제를 통제하고 재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가? 오늘날에는 모든 것이 경제에 의해 재편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국가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 가라타니 고진이 ‘자본=네이션=국가’라는 삼박자 도식(가라타니 고진의 [정치를 말한다], [세계공화국으로]와 같은 책들을 보라.)을 통해 국가는 자본보다 더 오래된 기원을 지니며,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고유 기능이 있어 왔다고 강조했다. 한 나라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단지 경제 문제나 자본주의 팽창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간 이해관계가 우선적으로 작용하며, 국가의 이해관계가 경제 상황을 재편하는 모습도 지닌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국가와 경제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와 경제는 서로 독립된 항이면서 동시에 상호 작용하면서 변수들을 만들어낸다.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 펼쳐지는 경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정치 문제와 경제 문제를 같이 아우르는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 고민은 다음 질문과도 연결된다. 즉 자유시장주의에서 기회 균등, 평등, 민주주의는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가?

‘빈익빈 부익부’나 ‘80 대 20 사회’ 같은 말이 풍미하는 상황에서 부를 획득한 사람들 모두가 기회가 불균등하게 주어진 상황에서 특혜를 받거나 불공정 거래를 주도했기 때문에, 거부가 된 것은 아니다. 자유시장주의가 주장하는 것 또한 기회는 균등하게 주어지고, 그 속에서 자유롭게 경쟁하는 가운데서 경쟁력을 갖춘 사람이 부를 획득한 것이라서, 현 경제적 상황이 기회 균등이나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단지 경쟁에서 이기거나 진 것이며, ‘무한경쟁’ 구조로 진행되면서 발생한 일들이라는 것이다. 무한경쟁 자체가, 아니면 팽창하는 자본의 속성 자체가 평등과 민주주의를 침해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설령 이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해도, 문제는 그런 구조에서는 ‘공존’이 힘들다는 것이다. 자본이 팽창하는 속성을 지닌다고 할 때, 자본이 만들어낸 상품은 – 유형의 상품이든, 무형의 금융 상품이든 – 그 상품을 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현재 구조로 진행된다면 판매자는 있는데, 구매자는 없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지속적으로 강조하듯이, 정당한 경쟁을 통해 부를 획득했어도, 자신이 속한 사회에 사회적 부담 내지 책임을 지려는 가치관이 필요하다. 자유지상주의 내지 자유시장주의를 택하는 미국 안에서도 분배정의를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을 당연하게, 낯설지 않게 강조하는 내용이다.

세계경제의 위기 상황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경제와 국가는 서로 독립된 항이며, 국가가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국가가 그런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면, 정치 차원에서 펼쳐지는 대안이 필요하다. 정치와 경제를 아우르는 대안 개념으로, 고진은 어소시에이션 공동체를 주장한다.

마이클 샌들은 그런 것을 야기하는 도덕적 차원과 종교적 가치에 대한 주목을 요구한다.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적 사회에서도 공동체를 돌아볼 수 있는 가치의 중요성을 천명하고, 공동체를 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이론, 미덕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자유 경쟁, 무한 경쟁이 철저히 기회 균등, 개인의 능력 계발에 따른 공정 경쟁으로 나아간다고 해도, 악화일로에 있는 빈부 문제를 방치한다면, 인간다운 삶과 권리를 누릴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고,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침해하게 될 것이다. 위기의식을 독려하면서 그들 나름대로 ‘공존’을 위한 대안들을 ‘공동체’ 안에서 마련하려고 한다.

-다음에 계속-

<존재의 충만, 간극의 현존>?[8월 월례발표회 후기]

?[2013년 8월 월례발표회]

 

<존재의 충만, 간극의 현존>

후기: 박은미 (건국대)

 

 

 

어렵다. 책 제목 너무 멋있는데 멋있는 만큼 내용이 어렵다. 토론 사회를 맡은 죄(?)로 6만원이 넘는 거금을 책값에 투여하고 두꺼운 책을 마주 했다. ‘으와 좋겠다, 광제형은…이렇게 멋있는 강해서를 내시다니! 나는 흉내도 못 내겠는 걸!’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막상 강연회에서 나는 사회를 보느라 내 질문을 삼켜야 했다. 열띤 질문을 비집고 사회자가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글은 후기라기보다 사회자의 못 다한 질문을 하는 글이 될 것이다. 사실 질문이라기보다는 나의 이해가 맞는가 하는 확인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후설 연구서로 『의식의 85가지 얼굴』(그린비), 퐁티 연구서로『몸의 세계, 세계의 몸』(이학사)등을 써오신 내공으로 이제 퐁티의 원류라고도 할 수 있는 사르트르 강해까지 쓰셨으니 현상학을 거의 다 훑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책으로는 쓰지 않으셨지만 하이데거와 푸코에 대한 연구를 거쳐 사르트르에까지 이르셨으니 이렇게 말해도 될 것이다.

철학의 제 1의 물음이 ‘도대체 이 모든 것은 왜 존재하는가?’임은 철학에 관심 가진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다. 그리고 이 문제가 궁금하지 않은 인간이 있을까? 사실은 이 질문 때문에 우리 모두는 그리도 외로운 것이다. 자신이 그렇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든 모르든 말이다. 자기 안의 어두움이나 막막함을 외면하고 회피하기만 하는 사람은 자신이 이 질문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이 질문에 시달리고 있다. 도대체 왜 존재해서 이렇게 고통스럽냐는 말이닷!

모든 철학자들의 철학은 이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는 특히나 이 질문을 상당히 성실히 물고 늘어진 역작이라 생각된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즉자 존재의 우연성’을 열심히 입증하고 있다. 존재는 단적이다. 존재가 왜 존재하느냐 하는 질문은 인식에서 나온다. 이 놈의 존재는 인식과 상관없이 ‘그저 있다’.

ⓒ 박영미

“존재는 그 자신으로 꽉 차 있고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존재는 그 자신에게 불투명하다”고 사르트르는 말한다. 존재는 존재 자체를 의문시하지 않는다. 존재가 스스로를 의문시한다면 이미 그 존재는 그저 단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광제 선생님은 강해에서 “사르트르는 즉자를 무한한 밀도를 지닌 존재의 충만으로 보고, 그 존재의 감압에 의해 의식 즉 대자가 생겨난다고 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쉽게 표현할까?

생각해보자. 우리 아이를 기를 때 나는 아이를 기르는 과정이 ‘행복하다’고 의식하지 못했다. 지나놓고 보니 행복했다. 아이가 걷고 말을 하고 재주를 하나씩 늘려 갈 때마다 순수하게 기뻐했다. 그 성장에 순수하게 기뻐하면서도 나 스스로 기뻐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 때도 생활비 걱정, 어르신들 걱정이 있었으니 다른 걱정거리에 마음을 뺏겨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 순간만큼은 기뻤던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그게 아니라 인식은 늘 미네르바의 올빼미처럼 늦게 찾아오기 때문인 것 같다. 행복은 사라진 후에야 빛을 낸다는 영국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정말 행복하면 자신이 행복한지 어쩐지 판단할 새 없이 그 순간 충분히 행복해서 행복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행복하기에 바빠 행복하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참으로 인식에로 저주 받았다. 행복할 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행복이 달아날까봐 무서워요” 이렇게 말하는 순간, 이미 그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 행복한 순간에도 행복하지 않을 순간에 대한 걱정을 미리 당겨 함으로써 행복을 상실한다. 행복할 때 그저 행복하면 좋을 것이다. 슬플 때 그저 슬프면 될 것이다. 왜 나는 슬퍼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편할 것이다. 그러니까 쇼펜하우어 말이 맞다. 인간은 고통 때문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표상 때문에 괴롭다! 존재는 그저 존재하면 되고 존재는 누군가에게 인식되기를 기대하지 않는데 인간은 특이하게도 중뿔나게도 그 놈의 인식을 해댄다.

그러니까… 존재의 충만, 간극의 현존이라는 책 제목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나에게는 이렇게 이해된다. 존재는 그 자체로 충만하다, 그런데 인간 인식이 존재를 존재로 인식하는 순간 즉, 존재로만 충만하지 않게 되는 순간, 간극이 현상적으로 존재해버린다. 그래서 이 간극으로 인해 인식이 가능해진다. “즉자라는 존재 속에는 최소한의 공백(le moindre vide)도 없다. 즉 무가 끼어들 수 있는 최소한의 틈(la moindre fissure)도 없다.” 존재에 이 놈의 무를 집어넣는 것이 인간들이 하는 짓거리다. 이 놈의 무를 집어넣지 않고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게 두면 될 것을! 그래서 니체가 말하는 어린아이로 살면 될 것을! 그게 바로 해탈일 것인데 말이다….

무를 집어넣지 않으면 현존과 존재가 분리되지 않을 것이고 그리하여 우리는 괴롭지 않을 것이다. 즉 그 순간이 바로 사르트르가 말하는 ‘즉자대자적인 신적인 경지에의 욕망’이 실현되는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간은 그러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존의 삶을 이끄는 우리로서는 끝없이 존재와의 완연한 일치를 알게 모르게 추구한다.”는 조광제 선생님의 설명은 해탈 열반의 경지에 오르고자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터이다. 나도 잊고 너도 잊고 나와 너의 관계도 잊는 순간을 인간은 영원히 추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존재하는 한, 우리는 이런 순간을 단지 순간으로서만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저주받은 인간의 존재양식이므로!

제가 제대로 이해했나요?

P.S. 조광제 선생님께서는 박은미 선생님의 질의에 대해 ‘잘 이해했다’는 답변을 주셨습니다.(학술1부장)

못다 한 이야기들[치유시학]

못다 한 이야기들

 

 

?김성리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연구교수)

다시 찾은 할머니의 집

 

시간은 간다는 말도 없이 흘러갔다. 흐르는 시간 동안 할머니는 언제나 내 마음 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차를 타고 가거나 길을 걷다가도 문득 떠오르면, 나는 괜히 눈을 부벼댔다. 어쩌다 한적한 곳으로 가게 되면 꼭 할머니 집으로 가던 그 길 같아서 주위를 돌아보며, ‘우리나라는 도심지만 벗어나면 풍경이 똑 같다’고 혼자 중얼거리곤 했다.

나는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임종 소식도 듣지 못했다. 혹시 일이 생기면 연락해달라고 내 연락처를 적어 놓았지만 소용없었다. 한 동안 전화연락이 두절되었지만, 박사학위 논문 심사 중이라서 한 동안 할머니를 잊고 있었다. 그렇게 봄과 여름이 지나고 가을도 지나 겨울 문턱에서 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 집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다시 찾은 마을은 여전히 고요했고, 할머니 집 뒤 공터에 매여 있던 누런 개만 컹컹 짖었다. 마을 입구의 교회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비탈길을 계속 내려오면 할머니의 집이 나온다. 할머니의 집은 동네 끝, 가장 아래쪽에 있기 때문에 비탈길 끝에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야 한다. 대문이 없는 집의 마당으로 들어서야 비로소 집이 보인다.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 집은 적막했고 잡풀의 흔적마저 보이지 않았다. 담이 없기 때문에 겨울 바람은 마치 예전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빈 마당을 돌아나가고 있었다.

집은 기역자로 되어 있다. 원래는 일자형 집이었는데, 간단히 몸을 씻을 수 있고 보일러를 들여놓을 수 있는 공간을 이어서 기역자가 되었다. 현관문을 열면 작은 쪽마루에 방문이 연결되어 있다. 미닫이문을 열고 방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는 화장대와 그 옆에 작은 창문이 있었다. 화장대와 창문 사이 벽에는 작은 텔레비전이 낡은 받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방문과 마주 보이는 벽에는 옷장과 이불장이 연결되어 있는 오래된 가구가 있다. 그 옆 벽면에 작은 미닫이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창고 겸 작은 방이 나온다. 방으로 통하는 미닫이문 옆에 있는 또 다른 미닫이문을 열면 부엌으로 들어갈 수 있다. 밖으로 나오는 문이 있는 욕실 겸 보일러실은 안에서 부엌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곳이 할머니가 거주하는 공간의 전부였다. 그 공간 뒤로 돌아가면 작은 방과 간단하게 식사준비를 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는데, 그 곳에는 외지의 직장에 다니는 젊은이가 세를 들어 살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그 젊은이를 만나지 못했지만, 할머니를 통해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라는 기억을 지니게 되었다. 그 젊은이는 할머니의 집 여기저기를 고쳐주기도 하고, 가끔씩 할머니의 손발이 되어 준다고 했다.

마당에는 초록색 간이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문은 오래되어 완전하게 닫히지 않고 색도 바래져 있고, 할머니가 전동 휠체어를 타고 가서 이용하기에는 너무나 불편한 곳이었다. 그 화장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비가 오면 어쩌나, 바람이 세게 불면 어쩌나, 여름에는 너무 덥고 겨울에는 너무 추울텐데 얼마나 불편하실까. 마음과 달리 헤어질 때까지 나는 할머니께 화장실을 지어 드리지 못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할머니만 안 계셨다. 예전보다 더 많이 어긋나 있는 화장실문을 보자 슬픔이 밀려왔다. 그 문에 덧대어 있는 얇은 판자가 강한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며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가시기 전 오랜 시간을 스스로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고 했다. 국가에서 보내주는 도우미의 도움으로 식사를 해결했지만, 그 도우미가 오지 못하는 날에는 이웃 분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때에도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 “괜찮다. 니는 공부 잘하고 있제? 너거 아는?” 하며 나를 염려했다. 괜찮다는 말을 나는 그대로 믿었다. 단 한 번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계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학위를 받으면 만나러 가야지, 학위를 받고 나면 소설을 써서 할머니께 감수를 받아야지 하는 부질없는 생각만 했었다. 골목을 돌아 나오며 스스로 “괜찮다. 괜찮다. 너는 몰랐을 뿐이야”라고 되뇌이면 되뇌일수록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지 않아. 넌 어쩌면 일부러 할머니의 말을 그대로 믿었던 것 아니야? 학위? 그런 건 변명이고 핑계야. 왔어야 했어. 절대로 괜찮지 않아.”

당신은 천상 여자였습니다.

 

할머니는 그 나이 대의 여느 사람에 비해 키가 컸다. 앉은 키가 나보다 훨씬 컸다. 결코 여리거나 가냘픈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만은 10대 소녀의 감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초저녁에 울려오는 플루트의 음률 같은 감성은 할머니의 평생을 고통 속에 살게 한 원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을 시로 읊을 수 있게 해 준 힘이기도 했다.

한 여름에도 한 겨울에도 나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간에도 수시로 옷매무시를 가다듬거나 머리카락을 곱게 쓸어내리곤 했다. 치마는 언제나 펼쳐져 있었다. 비록 나이 들고 병들어 있어도 단아한 모습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은 형언키 어려운 감동과 함께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할머니는 이야기 도중이나 시를 읊을 때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자주 했다. 특히 밤에 혼자 누워 “지난날을 생각하며 시를 지으면 머리가 아프고 기운이 없어서 다음에는 안 한다 해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또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단순하게 기억력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할머니는 기를 소진하여 두통이 올 정도로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칡넝쿨처럼 헝클어진 자신의 생을 정리하여 반듯하게 뉘어 놓고 가시고자 했던 건 아니었을까.

할머니는 자신이 다니던 울산 병영의 초등학교를 시에서 세심하게 표현했다. 부산고녀, 항도고녀(현재의 경남여고) 등에 대해서도 교복과 머리 모양까지 기억했다. 이야기책(소설)을 좋아해서 일제 강점기 때 장날에 가서 책을 사거나 어른들로부터 이야기 듣기를 좋아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야기책을 좋아했고, 한글과 일본어로 된 책을 읽을 수 있었지만 병에 걸린 이후로는 책을 볼 수 없었노라고 했다. 이제는 좋아하는 책을 맘대로 볼 수 있는데 백내장으로 책을 읽을 수 없다며 허탈해 했다.

특히 아들에 대한 기억은 너무나 생생하게 재현하여 그 고통의 크기와 깊이를 짐작하게 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결코 마르지 않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그리고 안타까움은 거대한 강물이 되어 할머니의 80년 삶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그 그리움이 크면 클수록 병든 자신에 대한 원망도 깊어갔으리라.

이웃 아주머니는 할머니가 생전에 안 좋은 일은 절대로 말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웃이 알고 있는 사실마저도 할머니가 스스로 말하거나 인정한 적이 없었노라고 했다. 또 먼저 부탁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심지어 조석으로 끼니가 힘들어도 신세지는 것을 꺼려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웃 아주머니의 말을 들으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은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자 자신을 향한 애정이었음을 안다. 19세에 꺾여버린 꿈, 이루지 못한 사랑, 어쩔 수 없었던 이별, 그 이후로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이리저리 쫓겨 다녀야 했던 삶, 60년 가까운 세월을 옆에서 지켜주고 사랑을 주었던 할아버지에게 차마 과거를 밝힐 수 없었던 죄스러움 등은 할머니를 옭아매고 있었지만, 그래도 놓을 수 없었던 것이 자기애였음을 나는 알고 있다.

몸은 내 것이면서도 내가 어찌할 수 없었지만, 자존심만은 끝까지 지키고 싶어 했던 할머니의 그 마음을 고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기애가 아집이 되고 고집이 되었다 하더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그 마음을 나는 안다. 그 마음으로 80 평생을 모질게 버텨왔음을 알기에 오늘도 할머니 생각에 젖어든다.

그리고 나에게 남은 것은

 

온 몸의 기를 소진하여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시를 구상하고, 나를 만나 그 시를 들려주는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아마 시를 생각하는 그 과정 자체가 스스로 자기 삶의 매듭을 푸는 과정이었기에 두통을 앓으면서도 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것이었지 싶다. 나에게 시를 읊어주고 그 시를 다시 나의 목소리로 들으면서 할머니는 과거를 정리하고,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부정했던 그 과거의 시간들을 서서히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할머니와의 만남은 나의 실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 할머니와의 만남은 ‘시가 과연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지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할머니도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 대담을 신청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할머니와의 만남은 나 자신과 소통하는 길이자 우주로 통하는 길이 되어 있다.

예전에는 무심코 보았던 달이 이제는 나를 깨우는 북과 같다. 가득 차서 흠 하나 보이지 않는 보름달에서 초승달로, 다시 보름달이 되는 것을 보며 우리들의 삶이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다. 가득 차면 내보내야 하고, 부족하면 다시 메우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라는 걸 안다. 또 우리들 모두는 몸과 마음이 미병(未病) 상태라는 것, 그래서 언제든지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병에 걸렸든 미병 상태이든 인간은 귀한 존재이다.

할머니와 함께 한 시간들은 평생이라는 시간 개념에서 본다면 극히 짧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은 할머니와의 만남 이후의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처음 알고자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게 얻었다. ‘시는 마음을 치유한다.’ 그러나 실제로 치유는 시가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는 것이라는 걸 나는 덤으로 얻었다. 시는 치유로 가는 문이라는 걸 알았다.

세상에 온전한 것은 없다. 우리는 온전함에 가까워지기 위해 삶이라는 여행을 한다. 세상에는 쓸모없는 것도 없고 쓸모없는 일도 없다. ([불혹의 문장들], 알렙) 그렇다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쓸모없는 생명도 없다. 할머니는 초기 구술시에서 자신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손톱만한 벌레만도 못한’ 사람으로 비하했다. 나에게 할머니의 삶은 바람 같고 푸른 잡초 같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바람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나뭇가지를 흔들거나 풀잎을 흔들어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때로는 우리들의 몸을 빌려 자신이 우리 옆에 와 있음을 알린다. 그러나 바람이 없는 곳은 없으며 갈 수 없는 곳도 없다. 잡초는 언제나 푸르다. 뿌리째 뽑히기도 하고 밟히기도 한다. 정원에 옮겨 심기는커녕 가까이 올까봐 온갖 약을 다 뿌린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자란다. 할머니의 삶은 바람처럼 잡초처럼 그렇게 나의 삶 안으로 들어왔다.

다소 불온한 의도로 시작된 만남이었지만, 할머니를 통하여 내가 다시 깨달은 것은 고인 물은 썩지만 흐르는 물은 결코 썩지 않으며, 바다로 가면 바다가 되고 돌틈으로 흘러 들어가면 맑은 샘물이 된다는 사실이다. 또 얻은 게 있다면, 나는 누군가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자각을 얻게 된 것이다. 나에게 있는 능력은 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고통을 덜어주고자 시를 읊어주거나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로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할머니가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고 스스로 치유해갔던 그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은 그와 같은 힘을 찾아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게 아닐까 한다.

 

*** 이말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끝을 맺고자 합니다. 그 동안 읽어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누군가가 기억해 준다면 그 사람은 영원한 삶을 산다고 들었습니다. 육신은 가고 없어도 단 한 사람만이라도 기억해 준다면 그 분은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릴레이 시국선언② – 이 땅의 민주주의를 말아먹은 자 누구냐

이 땅의 민주주의를 말아먹은 자 누구냐

강지은(한철연 회원, 웹진편집주간)

드디어 1954명의 언론, 출판계 인사들이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한국언론은 죽었다”고 비웃는 해외 언론들의 비난을 이제 면할 수 있을까. 아직 멀었다. 권력과 유착한 메이저 언론들은 ‘국정원 대선 개입’에 분노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왜곡, 유린하고 있다. 이들이 권력에서 독립해 국민을 위한 목소리를 내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이명박 정권부터 작금의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지는 권언유착은 흡사 5공화국을 떠올리게 할 만큼 친정권적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은 누가 뭐라해도 권력에 의한 부정선거임을 피할 길이 없다. 부정선거로 권력을 쟁취한 자들이 앞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못할 짓이 무엇이겠는가. 권력과 유착한 국가정보기관의 선거개입이 명확한 이 마당에 대한민국의 국민은 어떠한 미래도 꿈꿀 수 없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죽은 꽃에서 어떤 결실을 기대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선배 열사들이 핏자죽이 아직도 선명하건만 이 시대의 민주주의는 죽은 꽃이 되어버렸다.

국정원의 선거개입만 문제가 아니다. 권력기관의 부패가 드러난 이 시점에 대선개표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시행되었어야 할 수개표가 진행되지 못했다. 한 장 한 장 꼼꼼하게 확인되어야 할 투표용지가 오류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기계에 맡겨졌다. 민심은 천심이다. 천심을 기계에 맡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언론과 야당은 국정원대선 개입문제 뿐만 아니라 수개표까지 관철시켜야 한다.

언론을 타지 못하면 없는 일이 될 만큼 강력한 것이 언론이다. 언론은 오감을 곧추세워 헌정질서를 교란시킨 범죄자를 발본색원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역사에 늦은 시기란 없다. 언론은 권력의 하수 노릇을 집어치우고 국민과 민주주의 수호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것이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릴레이 시국선언① – 은밀하게 위대하게

은밀하게 위대하게

 

한길석(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교육부장)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장탄식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을 아끼지 않는 어느 국가 기관 종사자들의 전사적 열망 때문이란다. 하지만 난 그들의 순정을 믿는다. 그들이나 나나 ‘자유와 진리’를 위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서, 그들은 내곡동 어느 골짝에서.

1960년대 이래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던 이 은밀하던 기관은 구제금융기의 경제적 위기를 맞아 ‘정보는 국력’이라는 대단히 경제적인 모습을 잠시 보였다가 어느새 ‘진리와 자유를 향해 무명’으로 ‘헌신’할 줄 아는 위대한 변신을 하게 된다. 경제적 가치로만 폭주하고 있는 이 한심한 세상에서 참으로 고고하게도 ‘진리와 자유를 향한 무명의 헌신’을 외치다니…역시 그대들은 ‘은밀하게 위대하게’ 사는구나.

‘자유와 진리’에 대한 이들의 이름 없는 헌신은 작년 이후 줄곧 너무도 교묘하게 수행되고 있다. 그들이 행한 ‘NLL 공작’과 ‘사이버 여론 조작‘이라는 것은 사실 민주주의의 살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찬란한 부활을 위한 ‘고육지계’다. 이건 ‘자유와 진리를 향해’ 헌신해 온 동업자만 알 수 있는 직감인데, 내가 보기에 그들은 민주화 이후 민주화의 의미를 마구 ‘민주화’시켜 결국 ‘홍어 삼합’과 함께 좆으로 가공한 ‘우중’의 가공할 행태에 격분한 나머지 민주주의의 진리와 자유를 위해 악명을 뒤집어쓴 헌신의 가시밭길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죽어가는 민주주의의 회생을 위한답시고 이름과 명예를 걸고 싸우고 있는 데 반해 우리의 전사들은 민주주의의 진정한 부활을 위해 이름 따위는 제쳐두고 달려든다. 상대가 안 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들의 이름 없는 헌신은 민주주의의 번영을 위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진리를 들이대면서 반민주주의의 doxa를 물리치는 것도 방법이지만, doxa의 거짓됨을 분명히 드러내게 함으로써 진리에 기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997년에 세운 ‘북풍공작’이 그 좋은 예다. 이 황당한 계획에 꼬여들게 만든 그들의 교묘함이란 정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그러니까 우리의 전사들을 욕하는 건 이제 그만 두기 바란다. 오늘은 저들의 품 안에 안겨 그들 입 안의 혀 노릇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내일 이들의 무명의 헌신은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의지와 행동을 더욱 단련하는 데에 좋은 망치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대들이여 민주주의를 위한 반민주주의 행보에 더욱 표독스럽게 매진하기를. 그대들이 더러워질수록 민주주의는 더욱 아름답게 빛날테니…. 건투를 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성명서-죽어가는 민주주의를 되살려야 한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성명서

죽어가는 민주주의를 되살려야 한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논란과 함께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나라가 시끄럽다. 나아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조·중·동 신문은 대화록의 전체적인 맥락을 무시하고 왜곡보도를 일삼고 있다. 공개된 회의록만 보아도 이들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텍스트만 읽고 콘텍스트는 읽지 못하는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NLL포기 발언’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무마하려는 정치적 의도 속에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이 ‘국정원의 자발적 댓글 공작정치’ 이상의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정상회의록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혹의 핵심에는 김무성 의원이 있다. 지난 6월 25일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 총괄본부장이었던김무성 의원은 “지난 대선 때 이미 내가 그 대화록을 다 입수해서 다 읽어봤다”라고 발언하였다. 국가 기밀인 정상회의록이 특정 정당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사실로 확정된다면 박근혜 정부는 물론이고 국가의 위상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국가 정보기관이 특정 정치 세력에게 국가기밀을 넘겨 선거에 개입하였기 때문이고 국가의 공공성 그 자체, 중립성의 근간을 뿌리째 뒤흔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정원 수장은 “국정원의 명예와 직원의 사기 진작을 위해 공개했다”고 말하는가 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이 땅의 국가가 ‘공적인 것’(res publica)으로서의 국가(Republic)인지 반문하게 만든다.

우리는 다시 묻는다.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묻는다. 그리고 이번 사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다. 일찍이 스피노자는 민주주의를 다중의 표현으로, 자유로운 인간들의 정치적 행위로, 모두에 의한 모두의 통치로 이해하였다. 즉 민주주의는 절대적 힘의 표현이며, 따라서 구성적 행위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국정원 선거개입은 자율적인 주체들의 정치적 행위라는 민주주의의 구성행위 그 자체를 무기력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는 민주주의와의 이별을 의미한다. 이번 사태는 민주주의를 구성할 수 있는 대중의 권능(potestas)을 무력화하고 민주주의를 실제적으로 생산하는 힘(potentia) 또한 상실하게 만든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조사 계획서는 조사범위를 “전 국정원장의 불법 지시 의혹 및 국가정보원 여직원 등의 댓글 관련 등 선거 개입 의혹 일체”로 한정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이번 사건이 단순한 ‘국정원 댓글 사건’이 아니며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라는 점을 지적한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자율적 존재의 힘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대중의 힘을 드러내는 것 그 자체를 부정당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절대적 민주주의를 향한 집단의 힘과 실제적인 민주주의의 구성을 통해서만 풀어낼 수 있다. 민중의 힘의 표현과 그 힘을 통한 실제적인 민주주의의 구성이 민주주의의 참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실제적인 민주주의를 구성하고자 하는 힘을 더욱 증가시킬수록 우리 모두는 더 많은 권리를 갖는다. 우리의 권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힘을 표현할 때 생긴다.

따라서 한국철학사상연구회는 이번 사태에 대해 침묵할 수 없었다. 진정한 민중의 권력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은 정치를 민중의 사회적 힘에 종속시키는 과정이다. 민주주의는 수많은 선열들의 피와 땀을 먹고 자랐다. 인간 존재는 고갈되지 않는 자유를 향해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한 여정 역시 멈출 수 없다. 이 땅에서 철학은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주체가 바로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이 삭제될 수 없는 시간성 속에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따라서 우리는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는 힘을 조직하는 한편, 통치 권력의 부정성과 언론의 위선을 폭로하면서 관료적인 경직성과 이데올로기적 감옥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 어떤 권력도 억견과 위선으로 생성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꺾을 수 없다.

2013년 7월 16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전설의 슈팅 게임 썬더포스V[보고 듣고 생각하기]

?정해진 길은 없다[보고 듣고 생각하기]

전호근(경희대 교수)

 

#이 글은 2013년 7월 9일 한철연MT에서 진행된 강의의 강의록임을 밝힙니다.

 

전설의 슈팅 게임 썬더포스V

 

서기 2106년 인류가 만든 무인 탐사 우주선 이시바나가 명왕성 바깥 카이퍼 벨트에서 정체불명의 기체를 견인하여 돌아온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apkiyusul&logNo=20177789543

2108년 지구통합정부의 연구기관이 극비리에 조사한 결과 정체불명의 기체는 현생 인류의 기술로 만들 수 없는 고도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전투기로 판명된다. 기체는 ‘위대한 자들이 만든 쇳덩어리[Vastian’s Steel]’라는 뜻으로 바스틸로 명명되었고 통합정부는 곧바로 기계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2139년 바스틸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인류는 남태평양에 바스틸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무인인공섬 바벨을 건설하고 인공지능 관리 시스템 가디언을 제작한다. 이 기술로 인류는 에너지 문제와 환경오염 등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한다.

2145년 인류는 바스틸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우주 이민계획을 수립하고 제1차 우주선단을 위성궤도상에서 건조한다.

2150년 인공지능 가디언이 독립을 선포함과 동시에 인류를 공격하여 위성궤도상의 우주선단은 조종불능상태에 빠지고 지구상의 바스틸 테크놀로지 시설은 괴멸된다. 이 전쟁에서 인류의 1/3이 희생된다.

살아남은 인류는 전투기 바스틸을 복제한 유인전투기 RVR-01 GAUNTLET을 개발하여 가디언과의 싸움에 나선다. 썬더포스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당신은 건틀렛의 조종사다. 이제 인류의 생존은 오직 당신에게 달려 있다.

 

가디언이 인류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

I am cyborg humanity.

Cyborg animals.

Cyborg flowers.

A cyborg world.

And my name is the Guardian.

Soldier / Human, listen to me.

All the things created using Vasteel / that surpass human power have been destroyed by me / by you. Their number was too great, but has now been reduced to the proper level.The world will continue as it was before. The living creatures of this planet will continue to rejoice in / fear battle, and die in / live by combat. But even in a world of minor warfare, one overslight could mean…

“RVR-01 Gauntlet”…destroyed.

“RVR-02 Vambrace”….operational.

The existence of Vambrace will once again cause humanity to embrace mass death and destruction, just as Vasteel did. This I know. You know it too, do you not? Soldier / Human.

If you wish to safeguard the future of humanity, you must make sure humans can never again gain access to Vambrace…….

Soldier / Human, May fortune be with you…… (작곡: 츠쿠모 햐쿠타로 九十九百太郞)

 

어느 게임 블로거의 프로필

△ My Main NICK : RVR-12

△ 희망 : 게임을 굉장히 좋아하긴 하지만 희망직업은 음악가

△ 좋아하는 것 : 이탈리안 파스타를 포함한 면요리, 클래식, 게임음악, Thunder Force

△ 싫어하는 것 : 게맛살과 참치통조림을 제외한 모든 해산물 , NEXON, 미라클 큐브, 아카이럼

남의 취미를 함부로 욕하는 사람

△ 나의 역린이자 절대 금칙어 : 장애인

△ 내가 선호하는 장르 : 레이싱, 액션, 슈팅

△ 내가 선호하지 않는장르 : 1대1 격투액션, 명령식 RPG

△ 2012년 12월 기준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중인 게임 : 메이플스토리

△ 좌우명 한 마디 : 하고 싶은 것은 하되 끝까지 품위를 지키자. 게임은 기본적으로 매너있게!

악플러와는 일체 말을 섞지 말것.

 

어느 레즈비언 부부의 선택

아이를 원하던 레즈비언 커플(샤론 더치스노와 캔디 매컬로)이 기왕이면 자기들처럼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이를 갖기로 작정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듣지 못하는 것은 문화적 정체성의 하나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아이를 갖고자 하는 일념으로 5대째 청각장애인 가족에서 정자 공여자를 찾아서 청각장애를 가진 아들을 얻었다. 사람들이 비난하자 그들은 듣지 못하는 것은 장애가 아니며, 자신들과 같은 아이를 갖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청각장애라고 부르는 것을 장애가 아니라고 하는 이들의 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마이클 샌델,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절름발이 신도가와 정나라 자산

춘추시대 정나라의 명재상인 자산은 신도가라는 절름발이와 함께 백혼무인을 스승으로 모셨다. 스승을 뵙고 나면 자산은 항상 신도가가 먼저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한참 뒤에 나갔다. 병신과 나란히 걷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자산이 신도가에게 오늘은 자신이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나갈 테니 신도가더러 한참 뒤에 나오라고 요구했다. 신도가가 까닭을 묻자 자산은 말했다. 자신은 한 나라의 집정자고 신도가는 절름발이인데 어떻게 나란히 걸어 나갈 수 있겠느냐고.

놀란 신도가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온전한 다리를 가지고 온전치 못한 내 다리를 비웃는 자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발끈하고 성을 내다가도 백혼무인 선생을 뵙고 나면 깡그리 잊어버리고 평화로운 마음을 되찾았다. 내가 선생과 노닌 지 19년이 되었는데, 한 번도 내가 절름발이인줄 몰랐다. 그런데 지금 그대가 하는 말을 듣고 비로소 내가 절름발이인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대가 지금껏 나의 내면과 교유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나를 밖으로 드러나는 육체에서 찾고 있으니 또한 잘못이 아닌가?

자산이 깜짝 놀라면서 얼굴색을 바꾸고 태도를 고치고서 말했다.

“내가 잘못 했네.”

 

덕이 충만한 사람들의 형상[德充符]

어떤 사람의 내면에 ‘덕(德)이 가득 차 있다는 부호(符號)’가 덕충부(德充符)다. 곧 도를 체득한 사람의 내면성이 밖으로 드러난 모습, 형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장자의 본뜻은 덕이 충만한 사람에 부합하는 형상이 따로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실은 형상에 구애되지 아니하는 것, 형상을 초월한 형상을 드러내는 데 있다. 그 때문에 장자는 세상 사람들이 추하다고 여기는 절름발이나, 꼽추, 언청이 같은 불구자를 들어 그들의 입으로 도를 말하게 한다. 그로테스크한 기형불구의 인간들이야말로 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역설적 우언을 통해 장자는 외형적인 모습에 구애받고 그것을 꾸미는데 집착하는 세상 사람들의 슬픈 어리석음을 크게 꾸짖고 있다.

신도가와 자산의 이야기에서 자산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 곧 부(富)와 영(榮)의 상징이다. 반면 절름발이 현자인 신도가는 무가치, 곧 천(賤)과 욕(辱)의 상징이다. 장자는 이 두 사람을 초월자인 백혼무인(伯昏無人) 앞에 세워놓고, 참으로 덕이 충실한 사람은 귀천을 잊고, 미추(美醜)를 포용하고, 만물을 자신이 품에 노닐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덕충부에 등장하는 해탈자의 면목은 모두 세상에서 상처받은 사람, 학대받는 사람, 추한 사람, 천한 사람들이다.

장자는 덕충부의 또 다른 주인공인 곱사등이 애태타(哀??)를 절대자로 묘사하고 그의 입을 빌어 말한다. 혹은 生하고 혹은 死하고 혹은 길이 존재하고 혹은 금방 사라지는 인간 사회의 천변만화가 모두 ‘事之變, 命之行’ 곧 만상의 끊임없는 변화, 운명의 유전에 지나지 않는다고.

시시각각 멈춤이 없는 일체만상의 변화, 운명의 유전은 밤낮으로 우리의 눈앞에 교대로 나타나는데 인간의 인식능력으로는 도저히 그것을 규명해 낼 수 없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것들을 서열화하고 우열을 나눈다. 인간 세계의 불행은 대부분 그런 자들의 어리석음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장자는 그러한 변화를 있는 그대로 내맡겨 두어야 불행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다리가 하나인 사람도 있고 다리가 둘인 사람도 있다. 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듣는 사람도 있다.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보는 사람도 있다. 길은 걸어 다니다보니 생긴 것이고 사물의 이름은 그렇게 부르다보니 그렇게 붙여진 것처럼. 본래 그러한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손석춘이 쓴 “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보고 듣고 생각하기]

손석춘이 쓴 “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

 

나태영(한철연 회원)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통합진보당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언론이 이승만의 3·15부정선거와 비슷한 사건으로 대서특필해간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선출 방법만 보더라도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과 얼마든지 단순 비교가 가능하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부정선거라며 이승만까지 덧붙여 몰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여론몰이에 휩쓸린 사람들에게 정말 묻고 싶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비례대표 순위는 어떻게 결정하고 또 했는가. ? 더러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통합진보당과 경선 규칙이 다르다고 반박한다. 과연 그러한가. 좋다. 두 당은 통합진보당과 달리 당 지도부가 당 안팎의 인사들로 임명한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회’에서 결정했다. 그렇다면 그 심사위에서 결정한 순위대로 모든 게 이뤄졌을까? 그 과정에서 당 지도부의 영향력으로 순위가 조정된 사람은 없는가? ? 바로 그렇기에 조중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진보의 죽음을 들먹이는 사람들과 이 책이 서 있는 자리는 확연히 다르다. 진보정치 세력이 직면한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 또한 수구-보수세력과 민주세력은 달라야 한다.” (21, 22쪽)

 

김대중이?

 

“그렇다면 김대중 대통령이 가장 잘한 것은 무엇일까? 이건 후임자인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적 문제와 연결되는 것인데, 그 시절에도 미국과의 BTI 논의가 있었는데, 한미 FTA 논의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풀어주고 시작한 ‘4대 선결 조건’을 보면서 그는 BTI 논의를 아예 접어버렸다. 실무자로 정부에 참여하면서 본 것 중에서 미국 앞에서 당당한 외교를 했던 그가 놀라웠다.” (『김대중을 생각한다』중 우석훈 글, 275쪽)

 

이랬던 김대중이 한미서민패죽이기 협정을 옹호했단 말인가? 노무현을 도와주려고?

 

?“25 김대중의 신자유주의 도입을 IMF 구제금융 탓으로만 돌리는 논자들이 직시해야 할 사실이 있다. 구제금융을 모두 갚고 심지어 대통령에서 퇴임한 뒤에도 김대중은 노동계와 시민사회에서 노무현이 강행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고 나섰을 때, 자신은 찬성한다고 밝혔다.”(76쪽) 1970년대 김대중 경제정책은 상당히 진보적이었다. “김대중을 ‘김대중’으로 만든 것은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대중의 경제체제’를 제시한 그는 박정희식 경제성장의 대안을 갖춘 진보적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76쪽)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당한 이후로는 김대중 경제정책은 더 이상 진보적이지 못했다. 한미서민패죽이기 협정을 지지했다는 사실이 그 증거이다. 김대중이 미국과 양자협정 접었으면서도 한미서민패죽이기 협정 옹호했다는 사실 참 거시기 하다. 그래도 김대중은 북조선과 남한 통일에 대해서 약 40년간 힘썼다. 참 다행이다. 진보정당 사람들이 배워야 할 점이다. 진보정당 사람이라면 한미서민패죽이기 협정 폐기를 몇 십년간 외쳐야 한다. 지금 그들은 꿀 먹은 벙어리들이다. 억장이 무너진다.

 

진보당은 패권주의 사과하라!

진보당이 민주노동당일 때 대의원대회 결과는 국민참여당과 합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민주노동당은 그 명령을 어기고 민주주의 원칙 무시하고 국민참여당과 합친 사실 사과하라! 우선순위 정해서 뛰라!

한미서민패죽이기협정 폐기 물고 늘어져라!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의 당 대회를 앞두고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기정사실화하는 행태를 보면서, 또 그런 행보에 자극받아 진보신당이 당 대회에서 최종적으로 합당을 반대하는 결정을 내리는 걸 보면서 나는 참담했다.”(72쪽)

 

노동당(진보신당)은 진보당(통합진보당)에게 ‘종북’이라 말한 것 사과하라! 『 신자유주의의 탄생』이라는 책을 쓴, 세계노동운동사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장석준이 ‘도로 민주노동당’ 어쩌구 저쩌구 말한다.

사과하라!

노동당은 한미서민패죽이기협정 폐기 물고 늘어져라!

홍세화가 말했다.

다시 만날 수 있게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 하지 말자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때 잘한 일 참으로 많다.

물론 자주 까먹었지만 잘한 일 참으로 많다.

 

?“2 …한나라당이 추진 의사를 밝히고 있는 비정규직 임금 차별 해소는 과거 민노당(서평자 덧붙임: 정확히 민주노동당)의 핵심 정책이었다. 2004년 당시 민노당 의원 10명과 여야 의원 6명은 근로기간 및 근로시간 등의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었다.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기업 부담 등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 임금 차별을 허용할 수밖에 없다”며 이 법안에 반대했었다. 민주당이 비정규직 대책의 일환으로 제시한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 사유 제한도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반대했던 것이다. …”(20쪽)

 

이 책 20쪽 21쪽에 민주노동당이 잘한 일 도배질 한다. 독자 여러분 이 책 사서 확인하기 바란다.

“객관적 현실은 진보정치 세력이 집권하기에 가장 토양이다.”(13쪽)

손석춘 말에 나는 적극 공감한다.

 

21세기 대한민국 성적표가 이렇다.

자살자 거의 세계 1위,

애 낳지 않는 비율 세계 1위,

비정규직 노동자 약 50프로,

진보정당이 여당 될 까닭 너무도 많다.

그런데도 진보정당 지지율 7프로도 되지 못하는 까닭은?

영향력 약 80프로 차지하는 수구언론이 빨갱이 사냥해서,

장남 야당 민주당이 못나서,

진보정당이 실력이 부족해서, 진보정당이 사람 아우르는 길 몰라서 진보정당이 여당이 되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번 품은 뜻을 끈질기게 밀고 나가지 못해서 그런다고 나는 생각한다.

“ “그동안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생활고로 부부가 자살하며 남긴 유서의 첫 문장이다.”(11쪽)

 

 

당신의 돈, 당신의 비즈니스를 생각한다[지금, 경제를 다시 생각한다]

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한다-10, 11강

 

박민미(동국대 외래교수)

* 당신의 돈, 당신의 비즈니스를 생각한다

 

당신에게 돈이란 무엇인가? (대안 화폐, 지역 화폐, 대안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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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습:

1. C-M-C(구매를 위한 판매목적=사용 가치)

2. M-C-M(판매를 위한 구매목적=교환 가치. 후자의 화폐는 자본으로 전화. 이미 자본. 유통에서 더 많은 화폐가 끌려 나온다. 이 과정의 완전한 형태는 M-C-M’이고, 여기서의 M’=M+ΔM이다.

3. ΔM은 어디서 오는가? 노동력 대가로 지불되지 않은 잉여 가치. 기존 패러다임에서는 공장단위로 분석되었으나(Marx), 현대 패러다임에서는 사회적 공장이라는 개념으로 대체된다. 잉여 가치가 붙는 단위가 단지 공장이 아니라, 전체 사회에 편재한 비물질적 노동과 관련된 사이클을 돌면서 잉여 가치가 부가된다(Negri).

4. 더욱이 화폐가 금본위제에서 브레튼우즈 협정 체결로 미 달러 금본위제로 갔다가 1971년의 닉슨 쇼크 이래 화폐가 제국권력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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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John Protevi 정리 도표 번역 푸코 사회 권력 도표

(http://www.protevi.com/john/Foucault)

전성기

1650-1789

1780-1820

1820-1968

1850-현재

1980-현재

권력 양식

주권 권력

사회 권력

규율 권력

생명 권력

통제 권력

권력 이론

법률 이론

이데올로기

미시물리학

통치성

신자유주의적 이론

일차적 행위자

법률가

전문가

주체

자기 기업가

일차 타깃

신체들

영혼들/권리들

생산적정치적 능력들

삶들: 개체/인구

자기(개인) 자본

타깃에 접근하는 일차적 방법

고통

기호들

훈련

연구/고백

진단/시장 조사

목표 달성 위한 일차적 실천

의식(예식)

표상

연습/시험

규범화/위험 관리

치료/투자

최강 형식

신체형

극적 처벌

판옵티콘

약리유전학

희망 산출물

복종

공동체

유순함

자동통제

투자에 대한 최적 대가

지식 형식

법전

철학에세이

서류더미

통계 매뉴얼

가격 그래프

특권적 과학

법률학

철학적 심리학

인간 과학들

정치 경제

미시경제학

통제의 경제적 형식

선취(단순세금)

공공 작업

벌금/보상

복지/보험

(공적/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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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역 화폐

<!–[if !supportEmptyParas]–>?출처: http://edunstory.tistory.com/589

지역 화폐 운동은 1983년 캐나다의 마이클 린턴이 ‘LETS (Local Exchange Trading System)’라는 지역 화폐를 사용한 데서 유래한다. 지역경제의 자립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특정 지역에서 통용되는 화폐로 상품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체계이다. 마음 맞는 이들끼리 서로의 용역을 살 수 있는 현대판 품앗이이다. 해당 지역과 공동체에서 회원들끼리 통용되는 지역 화폐와 현금을 적절히 섞어 상품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정에 기반한 합리적인 대안 화폐 시스템이다. 또한 지역 화폐는 대량 생산대량 소비대량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원 고갈과 환경 오염의 악순환을 끊어보자는 취지로 확산되고 있는 환경을 생각한 녹색 운동이기도 하다.

현재 영국은 400개 이상, 프랑스는 250, 미국과 일본은 약 200개 등 세계적으로 2,500여 개의 지역화폐 제도가 있으며 점점 더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지역 화폐 운동을 활발히 시행하는 사례가 있다.

대전 한밭레츠

대전시 대덕구 법1동의 한밭레츠 (www.tjlets.or.kr)1999년 활동을 시작한 지역화폐 운동 조직으로 580여 가구의 회원을 가진 국내 최대의 지역 화폐 조직.

한밭레츠는 두루라는 한밭레츠만의 화폐단위를 사용하는데요, ‘널리또는 두루두루라는 뜻이 담긴 순우리말인 두루는 회원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원화와 등가원칙을 적용해 1천두루= 1천원에 해당하는 값으로 정해졌다.

한밭레츠 회원이면 누구나 두루로 거래할 수 있고, 모든 가맹점의 거래는 30% 이상 두루를 쓰도록 되어 있다.

한밭레츠에서는 집수리·농사일·외국어·컴퓨터 교육·자동차 정비 같은 전문기술과 함께 편지쓰기·친구 되기·아이돌보기와 같이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서비스를 품앗이 품목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한의원 2곳과 의원 4, 치과, 동물병원, 약국, 채식식당, 건강학교, 카페, 포구사, 목공예점, 컴퓨터수리점, 자전거포, 유아용품점, 학원, 인쇄소 등의 가맹점이 있어 두루 거래를 활발하게 만드는 매개체 구실을 하고 있다.

송파품앗이

서울 송파구 삼전동 송파구민회관 2층의 송파구 자원봉사센터에서는 지역화폐 운동인 송파품앗이 (www.songpavc.or.kr)를 운영하고 있다.

99년 자원봉사자를 중심으로 시작된 송파 품앗이의 회원 자격은 18세 이상의 송파구와 인접 지역 주민이며, 품앗이 센터에 거래할 물품과 서비스를 신고함으로써 거래를 시작한다.

거래가 끝난 뒤에는 품앗이 센터에 거래 내역을 통보하도록 되어 있는데요, 센터는 회원의 거래 내력을 정기 소식지에 실어 모든 회원에게 알린다.

송파품앗이에서는 물건과 서비스를 교환하기 위해 SM(송파 머니)을 단위로 하는 가상의 화폐를 사용한다.

SM의 가치는 현금과 동일하며, 현금과 혼합해 사용할 수도 있는데, 거래내역은 자원봉사센터에 보고하고 거래자들은 각자의 통장에 +또는 SM 거래액을 기록한다.

서비스나 물건을 제공한 사람은 +로 저축을, 제공을 받은 사람은 로 빚을 지게 되는 시스템이다.

거래 품목도 자동차 수리, 학습 지도, 피부관리, 미용, 컴퓨터 교육과 수리, 피아노·미술 레슨, 사진 촬영, 버스 대여, 수지침 등으로 다양한 송파품앗이에서는 99년 이후 1767건의 거래가 이루어져, 현금 2432만원, 4550SM 등 모두 6982만원어치가 거래되었다.

경남 함안 녹색대학의 녹색화폐 사랑

지역과 괴리된 으로 전락한 대학을 지양하고 생명체로서의 대학을 만들자는 90년대 중반의 대안대학 운동 속에 잉태된 녹색대학 (http://www.green.ac.kr/)은 생태공동체를 지향하며 녹색문화학, 녹색살림학, 생명농업학, 생태건축학, 등 독특한 분야의 전공수업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녹색대학의 가장 특별한 시도는 대안화폐운동이라 할 수 있는데, 녹색대학은 야생화사업단, 천연염색염료 사업단, 생태마을사업단, 건강식품사업단 등으로 구성된 그린네트워크의 배후 지원을 받아 지역화폐(녹색화폐)를 통용시키고 있다.

은행도, 이자도 없는 이 녹색화폐의 액면가는 일반화폐와 11로 교환되며 사랑(SA)’이라는 단위를 사용하는데요, 녹색대학이 조폐공사에 의뢰해 액면가 30억원 어치의 녹색화폐 20만장을 인쇄하였고, 이 돈은 실제로 위조방지 처리까지 돼 있다.

교수와 교직원은 급여의 25%를 녹색화폐로 받고, 학생들은 등록금의 25%를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녹색화폐로 낼 수 있으며, 녹색화폐는 학교 주변에서 이미 음식 값으로 치러질 정도로 지역화폐로 싹을 틔우고 있다.

특히 체인형태의 유기농 녹색가게인 신시(http://www.shinsi.com/)는 그린네트워크의 지원을 받아 전국 55개의 매장에서 녹색화폐를 통용한다고 한다.

각 가게에 설치된 중고 생활용품 교환 코너에 물건을 가져다주면 녹색화폐를 받을 수 있고, 그 녹색화폐로 유기농산물을 구입할 수도 있다.

서울시에서도 품앗이 화폐인 S(Seoul)-머니(가칭)를 도입한다고 한다.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남을 돕고 그 대가로 남의 도움을 받아 서로 돕는 나눔의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가 실현되려면 많은 사람의 공감이 필요하다.

에드가 칸의 <이제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라는 책은 타임 뱅크, 타임 달러를 소개하고 있다. 타임 뱅크는 영국에서 시작된 운동으로, 한 사람의 한 시간 노동을, 그 노동의 종류가 무엇이든지 동일한 가치로 쳐주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지역화폐 운동의 하나였다. 에드가 칸은 이 운동에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원칙을 확인한다. 첫째, 모든 사람은 나눌 것이 있다. 둘째, 1시간은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 셋째,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 넷째, 공동체는 사회적 자본으로, 사회적 자본은 공허한 개념이 아니라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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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밭 레츠-<지역 화폐와 여성주의>의 논의를 중심으로

지역 화폐의 대안성은 1. 경제적인 면, 2. 공동체, 3. 지역 사회 개발론, 4. 생태주의, 5. 소비자주의 등 다양한 면에서 주목된다. 대안성은 크게 대안 경제와 공동체, 두 축에서 설명된다. 지역화폐운동은 20세기 초 이래 국가통화의 대안으로 생겨났다. 대체로 시장경제가 위축되었을 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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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Time Dollar

Hours

도입 시기

1983

1986

1991

시발 지역

캐나다 밴쿠버코트니

미국 워싱턴 DC

미국 이타카시

운영 실태

전세계적으로 1,500여 개

미국 38개주 67개 시스템

북미에서 39개의 시스템이 운영 중

특징

교환 거래의 일반적인 유형을 말함

시간당 서비스 가치를 동일하게 취급, 노동 시간을 저축해줌. 서비스 중심 거래.

시간을 기준으로 하여 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화폐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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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츠의 도입은 지역 경제 침체에 따른 지역 주민의 실업이 주된 요인이었다. 1983년 캐나다 벤쿠버 코목스 벨리라는 소도시에 살고 있던 마이클 린턴(Michael Linton)이 실업으로 자신의 목수 기술과 일대일교환을 시도하다가 새로운 화폐제도인 레츠를 생각해냈다. 일대일교환이 어려움에 부딪히자 다자간 교환을 시도했고, 레츠 시스템 내에 있는 사람들 간 거래를 해나갔다. 1985년에는 500명의 회원이 연간 30만 달러 가치의 거래를 했다.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전세계적으로 1,500여 개의 레츠가 운영되고 있다.

한국에 레츠가 소개된 것은 1996<녹색평론>이다. 19983월 신과학운동조직인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모임을 시작으로 지역화폐운동이 확산되었다. 사회적 배경으로는 1998년의 IMF 체제로, 기존 경제 시스템에 대한 위기의식이 작용했다 할 수 있다. 당시 신문, 방송, 시민단체들에서 지역화폐운동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고조되어 주로 실업자 구제책의 일환으로 제시되었다. IMF 구제금융체제가 오지 않았다면 지역화폐제도로서의 레츠가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소개되고 확산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지역 화폐를 복지관 등에서 사업으로 한 경우 대부분 사업비가 끊기면 바로 마감하는 식이어서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현상은 서서히 활동 중단이 되어가던 지역 확폐가 2008년 미국 금융위기와 세계 경제 위기 이후로 다시 지역화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을 전후로 지역화폐 활동을 시작한 단체들은 다음과 같다. 대전의 어린이 도서관 중심의 동별품앗이(관저품앗이, 짜장마을 어린이도서관, 호숫가마을품앗이), 인천(인천여성노동자회, 인천평화의료생협, 참좋은 품앗이 등), 서울(서울시 복지재단의 e-품앗이, 관악건강가족지원센터의 한마을 품앗이), 경기(과천무지개교육마을의 어울림품앗이, 성남문화재단의 성남문화통화, 의정부 시민단체 중심의 의정부레츠), 경상권(부산 여성회의 사하품앗이, 부산동원복지관의 가마골품앗이, 대구여성노동자회, 경주여성노동자회) 등 많은 지역에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다음은 새로운 관심 이전의 지역화폐 상황에 대한 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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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폐 공동체

참여 주체

지역 화폐명

도입

시기

비고

미내사 FM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모임

미래머니

(future money)

19985

활동 중단

민들레 교육통화

출판사 민들레

민들레

19991

활동 중단

서초품앗이

서초구청/주민

그린머니

(green money)

19992

중단 뒤

2009년 재개

작아장터

녹색연합 출판사

없음

19993

활동중단

송파품앗이

주민/자원봉사센터

송파머니

(songpa money)

19998

활동 침체기

동작 자원봉사은행

동작구 자원봉사센터

없음

199911

활동 중단

한밭레츠

주민

두루

2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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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품앗이

주민

아리

200011

자원봉사센터와 연계

안산 고잔품앗이

고잔1동사무소

지역주민

고잔머니(GM)

20026

활동 중단

구미 사랑고리은행

구미 요한선교센터

고리

2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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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품앗이

광명그루

주민/광명시

평생학습원

그루

20043

활동 중단

대구 지역화폐

늘품

대구 달서구 본동

종합사회복지관

늘품

20054

활동 침체기

대전은 본래 1990년대 들어서 금강 제2휴게소 건설 반대운동을 벌인 환경보전대전시민연합(1991), 녹색연합 전신인 배달환경연구소(1991)가 활동하며 환경운동의 텃밭을 마련하고 있었다. 이후 1997년에 대전·충남 녹색연합이 창립되어 재활용, 유해폐기물 적정 처리운동, 생태천 복원운동 등 활동을 하고 있었고, 아나바다 상설장터 녹색가게 또한 운영하고 있었다. 1993년 창립된 대전환경운동연합 또한 설립되어 환경운동을 지속했고, 1990년 주부아카데미 수료생을 주축으로 구성된 살림의 집을 모태로 한 한밭살림소비자협동조합이 설립돼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 운동과 지역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동호회에 그칠 수 있을 정도의 취약한 출발이었으나, 2000년의 의약분업 논쟁 중에 2002년 민들레의료생협이 출범하면서 민들레의료생협에 가입했다가 한밭레츠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되었다. 내과, 치과, 한의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민들레의료생협은 지역화폐로 전액 진료를 받을 수 있는데, 실무자 급여를 두루로 지급함으로써 지속될 수 있었다. 대안학교인 대전 꽃피는 학교또한 레츠와 상호작용하면서 커나간 터전이다.

거래 총액에서 두루 비율은 30% 이상이 원칙으로 자원 봉사나 재활용품 거래처럼 100% 두루로 거래되는 경우도 있고 농산물처럼 30%가 두루 거래인 경우도 있다.

철학자 와트는 ‘”돈이 없기 때문에 서로 가치를 교환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측량 단위가 없어서 집을 짓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고 말했다. 기존 화폐 시스템은 돈이 있어야 거래가 가능하나, 두루에서는 두루를 벌든 쓰든, + 거래든 거래든 거래 자체가 공동체에 도움이 된다는 게 기본 생각이다. – 거래로 시작하더라도 이를 줄이기 위해 거래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 공동체 및 두루의 활성화 방법이라는 것이다.

두루의 교환 가치는 (1) 서로의 상황과 조건이 고려되면서 만들어진다. 그럼으로써 공동체 내에 두루를 많이 가진 회원과 빚이 많은 회원 간에 자연스러운 재분배가 이루어진다. (2) 유용성과 쓰임새에 따라 가치가 만들어진다. 주지하다시피 시장에서 상품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구분되었다. 물건과 노동력이 그 쓰임새에 따라 필요한 사람과 교환해야 한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두루 가격은 서로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조정해가며 사용 가치를 반영해 거래가 이루어진다. (3) 부담이 덜 되는 가치. 전문가가 레츠를 통해 회원들에게 자신의 재능과 노동력을 나누는 경우도 있고, 기존 시장보다 대여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4) 신뢰를 바탕으로 자원가 가치가 순환된다. 레츠가 매개되어 맞교환 방식이 아니므로 물건과 노동력이 순환될 수 있다.

지역 화폐가 가지는 순기능의 또 다른 면은 기존 시장에서 배제되거나 저평가되었던 노동이 가시화된다는 것이다. 가사 노동이나 동네의 여러 일들(가령 지역 주민을 위한 이동 영화 상영 자원 활동, 어르신 건강 교실 등)의 일이 가시화되고 인정을 받는다. 그리고 경력이 단절되었던 여성의 일자리 만들기가 가능해진다. 전업 주부였던 회원, 은퇴 후 어르신 등이 천연 비누 등 친환경 천연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고, 이를 가르치면서 강사로서 활동하는 경우, 재활용 빨래비누를 만들고 냄비 받침을 만들어 제공하는 경우 등이다. 그리고 간호와 같은 보살핌 노동이 가시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가사노동과 보살핌 노동에서 기존 시장 체제에서는 감정 노동의 가치가 무시됨으로써 노동 소외를 낳았다면 지역 화폐의 호혜 시장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노동을 관리하는 주체가 된다는 큰 차이점이 있다.

(3) 반월가 시위

월가 점령 시위는 금융업계의 탐욕에 대해 누적되었던 불만이 표출된 사건이었고, 다중의 창의적인 대응을 보여준 사례였다. 발단은 소비자의 직불 카드 사용에 수수료를 매기려 한 대형 은행에 대한 반발이었지만, 더 근원적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끊임없이 채무를 지움으로써 부를 불려가는 은행의 비도덕적 관행에 대한 반발이었다.

? ‘월가를 점령하라시위대의 은행 계좌 옮기는 날’(Bank Transfer Day) 포스터. 미국의 100달러 지폐에 새겨진 벤자민 프랭클린이 얼굴에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가이 포크스는 1605년 영국 국왕 제임스 1세를 살해하려던 화약음모 사건에 연루돼 처형당한 인물로, 2005년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통해 재조명을 받으며 최근 전세계 99%의 시위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제공

5일은 월가를 점령하라시위대가 금융권 탐욕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은행 계좌 옮기는 날’(Bank Transfer Day)로 정한 날이다. 월가 시위대가 지난 929, 대형 은행의 계좌를 5일까지 지역의 소형 은행이나 주정부 및 지역공동체가 운영하는 신용협동조합 등으로 옮기는 운동을 시작한 이래로 한달여 만에 신용협동조합에 65만명의 신규 계좌가 늘어났다고 신용협동조합 위원회가 이날 밝혔다. 이를 통해 신용협동조합에는 45억달러(5130억원)가 새로이 계좌에 편입했다.

이처럼 월가 시위대의 목소리가 행동으로 옮겨진 것은 사회적 불평등을 호소하는 월가 시위대의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는 데다, 특히 대형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가 내년부터 직불카드에 매달 5달러의 수수료를 물리겠다는 방침을 밝힌 데 대해 소비자들이 거세게 반발한 영향도 크다. 실제 지난 9~10월 신용협동조합의 신규계좌 개설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38%나 늘어났는데, 새로이 늘어난 계좌의 상당수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서 넘어온 소비자들이다. 시티그룹, 제이피모건체이스, 웰스파고 등 다른 대형 은행들도 최근 몇 주 동안 계좌 폐쇄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금융 쪽의 소비자 운동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대형 은행들의 계좌 폐쇄가 이어지고 뱅크오브아메리카가 결국 직불카드 수수료 부과 입장을 철회한 것은, 월가 점령 시위가 구체적이고 합법적으로 거둔 첫 전리품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크다. 로스앤젤레스의 자영업자인 크리스텐 크리스티안(27)은 최근 뱅크오브아메리카 계좌를 폐쇄하고, 신용협동조합에 두 개의 계좌를 개설했다. 그는 <에이피>(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소비자들이 깨어나고 있고, 우리가 선택권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2011116일자 한겨레 신문)

(4) 신용권그라민 은행

그라민 은행의 사례: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p3project&logNo=10144861682

(UNESCO, http://www.unesco.org/education/poverty/grameen.shtml의 번역)

그라민 은행(Grameen Bank)은 기존 은행 시스템과 다른 운영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라민 은행은 다른 은행들과 다르게 담보를 요구하지 않으며 대출자와 은행 간의 신뢰와 엄격한 관리를 통해 운영된다. 또한 대출자들의 창조성, 책임 의식, 참여 의식을 토대로 설립되었다. 그라민 은행은 초기 가입 시 고객의 신용도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데, 이는 전반적인 사회발전 과정에서 촉매제 역할을 한다. 그라민 은행이 신용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가난한 사람들이 신용을 얻음으로써 사회, 경제적인 지위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용은 은행과 관련된 업무를 이용하는 것이 불편했었던 사회 빈곤층들에게 경제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라민 은행을 처음 기획한 사람은 현재 그라민 은행 총재를 맡고 있는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 교수이다. 그라민 은행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은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 빈곤층을 위한 은행업무시설 확충

? 비합리적인 이자율로 빈곤층을 착취하는 고리대금업자 축출

?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실업자로 전락한 잉여 인력을 위한 자영업 일자리 창출의 기회 제공

? 가난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치, 경제, 사회적인 상호 협력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

? 이전까지 반복되었던 낮은 수입, 낮은 저축률, 낮은 투자악순환을 낮은 수입, 낮은 신용, 낮은 투자에서 높은 수입, 높은 투자, 높은 신용의 발전적인 선 순환체계 구축

1976년부터 1979년까지 시행된 이 프로젝트는 조브라(Jobra)마을(그라민 은행 프로젝트가 첫 번째로 시행된 곳으로, 치타공(Chittagong)대학이 위치한 곳)과 주변의 인근 마을들이 향후에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후, 중앙은행의 지원과 국가소속 상업은행의 협력을 받으면서, 그라민 은행 프로젝트는 탄가일(Tangail) 지역(방글라데시의 수도인 다카(Dhaka)의 북부지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그라민 은행 설립자는 신용을 경제 발전을 위한 강력한 무기이자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말한다. 신용이 높을수록 재원 확보가 용이해지며 그에 따라 경제적인 지위도 높아진다. 신용은 재정 자원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며 가난한 사람들, 특히 가난한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해방이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이전까지 시행되었던 담보 대출은 가난한 사람들의 신용권을 부정했다. , 담보대출을 요구하던 기존의 은행 시스템은 빈곤층이 그들을 둘러싼 사회 경제적 빈곤과 그에 따른 어려움에 끊임없이 대항할 수밖에 없는 위치로 내모는 격이 되었던 것이다. 그라민 은행의 운영 방식은 모든 사람들이 정당한 방법으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데에 중점을 둔다. 그라민 은행은 대출을 재원 확보의 수단으로 삼는다. 대출을 재원 확보 수단으로 사용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성장 잠재력이 있는 기술들을 사용하여 임금과 고용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이에 따라 더 높은 소득을 내며,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된다. 또한 자영업을 통한 경제 활동은 가난한 사람들이 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게 한다. 그리고 자영업 운영은 가난한 사람들이 자급자족적인 기반을 확보하게 도와준다. 유누스 교수는 자영업 운영을 통한 생계 유지는 실업 수당이나 복지 급여와 같은 복지 시스템을 조성하는 것보다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 효과적입니다.”고 말했다.

그라민 은행은 담보도, 보증인도 없이 오로지 신용으로 대출을 해주는데, 그렇다고 무조건은 아니다. 채무자 5인이 모인 모임에 가입하고, 이 모임이 8개 모인 더 큰 모임에 소속되어 총 40인이 서로 관련된다. 만일 한 사람이 채무를 갚지 못하면 나머지 사람들의 대출이 제약되는 방식이다. 따라서 채무자는 자신과 같이 어려운 처지에 모인 사람들의 신용권을 지켜주기 위해 스스로 채무를 상환해간다. 그래서 그라민 은행의 원금 회수율은 98%에 달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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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P2P 금융대출 및 투자

금융 소외 계층 대상의 품앗이 대출팝펀딩도 주목할 만하다. 팝펀딩은 신용도가 낮아 은행·카드사 등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는 금융소외계층에게 개인대출자들을 연결해주는 팝펀딩 사이트(www.popfunding.com)2007년부터 시작했다. 영국의 조파’(Zopa)와 미국의 프로스퍼’(Propser) P2P(Peer to Peer) 금융 모델에 착안했다. 이곳에서는 과거 두레에서 이뤄졌던 십시일반 품앗이처럼 품앗이대출이 이뤄진다.

대출 신청자가 신청 사유와 상환계획, 필요 금액을 제시하면, 개인 투자자들이 대출 금액과 이자율을 입찰하는 역경매 방식으로 대출이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개인투자자들이 모여 대출 신청자에게 질문하는 과정을 거쳐 대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처럼 평가·심사 과정에서 집단 지성이 작동한 결과, 지금까지 팝펀딩에서 이뤄진 대출의 상환율은 평균 93%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대형 대부업체의 상환율이 평균 89%라는 점과 비교하면 상당히 양호한 결과다. 2012년말까지 팝펀딩에서 이뤄진 대출 건수는 모두 1600여건에 금액은 30억원을 넘어섰고, 성사된 대출 금리는 평균 11%를 기록했다.

팝펀딩은 지난해 2월에는 자금과 고객이 필요한 소기업이나 프로젝트에 개인 후원자들을 연결해주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굿펀딩(www.goodfunding.net)을 개설했다. 팝펀딩이 대출을 연결한다면, 굿펀딩은 투자(후원)를 연결하는 곳이다.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모아 후원 형태로 지원하고, 성과가 나오면 그 결과를 함께 공유하는 형태다. 신생 벤처는 초기 자금을 확보하면서 상품을 판매하거나 홍보하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외국에서는 킥스타터가 대표적이고 국내에서는 굿펀딩 외에도 텀블벅, 개미스폰서, 오마이컴퍼니 등이 있다.

(원낙연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원 2013326일자 한겨레신문)

돈에 눈 멀 것이 아니라, 돈이 행복한 삶의 수단일 뿐이라는 것을 자각한 다양한 실천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함께 지혜를 모아 냉혹한 금융 자본의 겨울을 종식시키고 따뜻한 돈, 윤리적인 돈에 대한 대안을 찾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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