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회에서 의사소통 수단의 변화[철학을다시 쓴다]-23

Spread the love

도시사회에서 의사소통 수단의 변화[철학을다시 쓴다]-23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지난번에 농경민과 유목민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화,?의식,?관습 이런 것을 이야기했는데,?오늘은 도시사회 중에서도 전제군주가 다스리던 행정도시가 아니라 이오니아 식민지라는 지중해 해안도시에서 성립한 도시사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멈췄습니다.?제가 농경사회에서는 시간을 두고 쌓은 경험이 지혜의 함수가 되고,?유목사회에서는 공간적인 경험의 확장이 지혜의 함수가 된다고 그랬죠.?그러니까 시간적인 경험의 축적이 지혜의 함수가 되는 사회가 있고,?공간적인 경험의 확장이 지혜의 함수가 되는 사회가 있는데,?최초의 서양식 철학자인 탈레스가 태어나고 활동했다는 이오니아 지방의 식민지인 밀레토스,?이런 상업 중심의 도시사회에서는 실제로 두뇌의 회전이 지혜의 함수가 되는 사회입니다.?물론 이 사람들은 뱃길을 통해 이곳저곳 많은 곳을 여행하고,?불평등 거래를 평등거래로 위장하는 데 필요해서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그 지역 언어를 익히고,?말하는 최초의‘코스모폴리탄’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말하자면?‘세계인’들이죠.

지중해 연안 뱃길로 여러 군데를 다니면서 거래를 해야 하니까,?수시로 바다에 나가 장사를 하면서 자기들이 힘이 세고,?다른 사람들이 힘이 약할 때는 수시로 서로 노략질을 하는 해적으로 바뀌기도 하고,(호머 서사시의 주인공인 오디세우스도 해적선에 붙들려 가서 오랫동안 고생한 적이 있죠.)?때로는 떼강도로 바뀌기도 하고 때로는 장사꾼으로 거래를 하기도 하고 하는데,실제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 대체로 도둑놈 기질이 있는 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혹시 이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상처되는 말이 아니기를 바랍니다.(하하.)

어쨌든 지난 시간에도 잠깐 이야기했습니다만,?조그만 해안도시에 아시리아인,?바빌로니아인,?리디아인,?페니키아인,?인도인,?이집트인 등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는데,?그 좁은 도시 공간 안에는 생산지가 없어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외부에서 의식주에 필요한 것도 끌어들어야 하고,?그 밖의 살림밑천이 될 만한 물건들도 끌어들여야 하는데,?그러기 위해선 내부 결속력이 생겨야 하고,?그것이 생기기 위해선 일정한 규율에 따라서 위계질서가 성립할 필요가 있습니다.?이?‘하이라키’(hierarchy)를 설립시키는 데 두 가지 계기가 작용할 수 있죠.?물리적인 강제가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설득입니다.

‘폭력적인 국가 기구’와?‘이념적인 국가 기구’의 원초적인 형태가 이 도시에서 나타난다는 것,?어차피 도시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식민주의자의 습성을 내면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했습니다.?생산지에서 생산의 교란이 일어난다는 것은 도시민으로서는 목숨이 걸린 중요한 문제입니다.?먹을 것이 제 때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면 도시 사람들은 굶어죽거나 도시를 떠나야 합니다.?생산지를 확보하고 생산물을 장악하는 것은 목숨이 걸린 문제입니다.?주변 생산 공동체를 설득해서 고분고분 양식을 내놓게 할 길이 막히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바로 이때가 폭력적인 국가 기구가 작동을 하는 순간입니다.?도시 거주자들은 외교관이나 교사 같은 설득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도 필요하지만 폭력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군대나 경찰도 그 내부에서 같이 길러 내야합니다.?살려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도시인들이 주변 생산 공동체를 식민화하는 작업은 불가피한 생존 조건이 됩니다.?한걸음 더 나아가 더 안정된 삶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해외식민지까지 두게 되는데,?델로스 동맹 이후로 아테네 제국주의가 걸었던 길이 바로 이 길이었습니다.(나중에 로마도 같은 길을 밟게 되지요.)

농경공동체에서는 마을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최소 단위였으니까 말로 소통이 가능했고,?유목민들도 소단위로 천막을 치면서 흩어져 다녔기 때문에 의사소통 수단이 말이었습니다.?그런데 지중해 연안의 광범한 지역에 장삿길이 열리고 삶터가 넓어지면서 말만 가지고는 문제를 해결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그 대안으로 글을 통한 의사소통이 요구되지요.?시골에서는 말과 행동이 다르면?24시간도 버텨내기가 힘듭니다.?유목사회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지요.

그러나 도시인들의 삶은 대부분이 서로에게 은폐되어 있고,?거리로도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말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길이 차츰차츰 막히게 됩니다.?서로 속셈이 달라 말 따로 행동 따로 하더라도 쉽게 가려볼 수가 없습니다.?말로는?‘그쪽에서 소 한 마리 보내면 여기서 곡식 세 말 보낼게’?하다가도 곡식을 구하기 힘들어지면 소 한 마리를 받고도?‘내가 언제 세말 보낸다고 그랬어??여기 흉년이라 한말 보낸다고 그랬지.’?하고 시치미를 떼면 할 말이 없거든요.?그러니까 계약을 글로 맺어야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온 거죠.

이렇게 세계의 온갖 생산물이 도시로 모이게 되면서 삶의 양식은 급속도로 바뀌게 됩니다.?단일 공동체에서는 생산하고 소비하는 양식이 비교적 단순합니다.?자산은 거의 모두 유기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농경사회에서 생산되는 것,?재산가치가 있는 것은 거의 모두 유기물이고,?유목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온갖 물류가 이곳을 거쳐 이동을 하기도 하고 머물기도 하는 도시사회에서는 상황이 바뀝니다.?돈으로 바꿀 수 있는 환전가치가 큰 무기물들이 유기물을 대신해서 도시인들의 자산가치를 무한히 부풀리게 하지요.

유기물이 의식주에 꼭 필요한 것인데도 교역품목에서 뒷전에 밀리고 무기물들이나 사치품들이 더 활발히 거래된 까닭은 어디 있을까요??유기물은 수요가 일정하지 않습니다.?도시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아 보았자 곧 썩어버려서 하루아침에 자산가치가 없어져버리기도 하고 가격탄력성이 없어서,?이른바?‘한계효용의 법칙’이라는 기묘한 법칙이 작용해서 조금만 공급이 넘쳐버려도 똥값이 됩니다.?유기물은 도시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을 만큼만 공급받으면 되고,?떼돈을 벌어 주는 것은 사치품이나 금,?은,?보석,?향신료나 비단 같은 것입니다.?다행히 사치품들은 무게도 적게 나가 짐이 가벼워요.오늘날에도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유럽과 교역을 하는데 흘수선이 잠기도록 과일이나 곡식 같은 것들을 잔뜩 실어 가지만,?내려올 때는 동당동당 기계 하나 달랑 싣고 내려오는 일들이 벌어지죠.?옛날부터 육로를 통해서건,해로를 통해서건,?장사꾼들은 큰 위험부담을 안고 장삿길에 나서야 했는데 위기의 순간에 짐이 가벼워야 빨리 달아날 수 있고,?싸워도 홀가분하게 싸울 수 있으니까 그렇게 된 측면도 있어요.?이런 이야기 웃자고 한 이야기죠?(일동 웃음.)

 

0 replies

Leave a Reply

Want to join the discussion?
Feel free to contribute!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