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발전한 문자[철학을다시 쓴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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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발전한 문자[철학을다시 쓴다]-24

 

 

윤구병(도서출판 보리 대표)

 

*이 글은 보리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임을 알립니다.

 

지난번에 제가 이야기했죠.?지역 탐사들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거래를 원만히 성사시켜야 하니까 다른 나라의 언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이렇게 해서 여러 나라 사이의 문화 융합이 일어납니다.?가치관이나 종교형태가 저마다 다르고 기록하는 방식들도 이집트사람이 기록하는 방식과 중국 사람이 기록하는 방식이 다 다른데 각 지역의 특수한 언어를 아우를 수 있는 일반 소통구조,?사람들 의식에 어떤 공통치가 있느냐 하는 것을 연구하다 보니까 언어학에 대한 관심과 일반 문법에 대한 연구들도 생겨나죠.

여러분들 가운데?‘뿌리 깊은 나무’?라는 잡지를 본적이 있습니까??그 잡지를 보면?‘1976년’을 글자로 어떻게 표기했습니까??그냥 우리 한글로?‘천구백칠십육년’이라고 표기했습니다.?사람들이?‘6’을 써놓고 거기에 월을 붙일 때‘유월’이라고 읽어야 하는데, ‘육월’이라고 읽고, ‘3살’이라고 써놓고?‘세살’이라고 읽지 않고?‘삼살’이라고 읽는 일이 있습니다.?아라비아 숫자로 쓰인 글을 보고 하나,?둘,?셋,?넷,?하루,?이틀,?사흘,?나흘 이렇게 읽지 않고 일일,?이일,?삼일,?이런 식으로 읽는다고 개탄하는 분을 봤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대답 없음)?사실 아라비아 숫자를 중국식으로 읽는 거죠.?그렇지 않습니까??일,?이,?삼,?사,?오,?육,?칠,?팔…?중국 한자를 우리식으로 발음한 것이죠.?아라비아 사람 탓이 아니죠??그리고 아라비아 숫자를 아라비아 사람들은 절대로 그렇게 안 읽죠??그러면 그것을 우리 방식으로 읽도록 어렸을 때부터 가르치거나 그렇지 않으면?‘뿌리 깊은 나무’처럼 정직하게 우리식 한자음인 천구백칠십육년으로 써야죠.?그런데 그걸 왜 아라비아 숫자로 쓰지 않았냐고 야단치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죠.?왜 야단치겠어요??습관이 안 돼서 눈에 안 들어온다는 거지요.?이게 시각을 통해서 정보가 한순간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는 건데,?이것은 도시사회에서 청각문화보다 시각문화가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합니다.

도시사회에서 문자가 발명되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정보가 시각화된 형태로 남아야 서로 믿고 의사소통을 원만히 할 수 있다는 의식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사람들이 시각 정보를 신뢰하고,?유기체와 함께 생겨나고 함께 사라지는 청각 정보에 대해서는 믿음을 잃었다는 것은 근본적인 사회변화의 출발을 알리는 현상입니다.

플라톤의 대화편을 보면,?이집트를 방문한 그리스 사람들에게 이집트 사람들이?‘네오이’(neoi)라고 부릅니다. ‘네오이’라는 말이 뭐냐면?‘풋내기들’, ‘젊은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어린것들’이라는 뜻도 있지요.?문화의 지층을 두고 말하자면 표면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삶과 땅속 깊이 뿌리내린 사람들의 삶의 결이 다르다고 할까요??아마 이런 사실을 두고 한 말일 겁니다.

제가 초기에 그 이야기를 했지요.?생명의 시간,?모든 생명체의 몸을 관통하는?(의식이 있는 생명체는 의식도 관통하겠죠.)?그런 생명의 시간 가운데서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나누어지게 되는데,?농경민의 의식 속에서는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하나였습니다.?달과 해의 순환이 자연의 시간을 규정짓는 것들이어서 자연의 시간은 순환하는 시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하루해가 떴다 지면 하루가 지나고,?날마다 해는 동쪽에서 떠올랐다가 서쪽으로 지고,?달이 차오르고 기우는 것이 되풀이되어 한 달이 되고,?이십사절기를 지내서 한 해가 되고,?이렇게 순환하는 시간의 질서에 맞춰서 사람이 살아갔기 때문에 자연의 시간은 농경민에겐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유목 생활을 시작하는 집단이 나타나게 되면서 인간의 시간은 자연의 시간에서부터 조금씩 갈라서게 된다,?목초지를 찾아다니는 동안 항구적인 계절을 유지해야 가축과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도려내서 그것을 항구화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그래서 유목민의 경우엔 인간의 시간이 자연의 시간과 더불어 병행해서 나타나는데 그것이 완전한 독립변수로서 자리 잡지는 못했다,?그런데 해안도시 사회에 들어서면서 자연의 시간은 종속변수에 지나지 않고 인간의 시간이 독립변수가 된다고요.?이 시간의식의 변화는 대단히 중요한 변화입니다.?여러분들이 현재 알고 있는 시계로 측정하는 시간,?유클리드기하학적인 공간,?이런 게 전부 인위적인 시공간입니다.?자연에 바탕을 둔 시공간이 아닙니다.?아이슈타인의 통일장 이론에 나오는 우주공간도 자연적인 공간이 아닌 인위적인 공간입니다.?여러분들은 하도 많은 학자들이 떠들어대서 이런 공간들이 실재하는 걸로 착각하기 쉽지만,?그런 시공간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규제하는?‘정지하는 것은 정지해 있고 마찰이 없는 한 움직이는 것은 일정한 속도로 수평운동을 한다’(관성의 법칙). ‘무게를 지닌 것은 중력에 의해서 낙하 운동을 한다’(중력의 법칙).?이런 이론들 모두 실재하는 운동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법칙으로 보기 쉽습니다.?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제가 여러분들 귀에 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인데,?현대인들이 받아들이는 인위적인 시공간 개념은 실재하는 시공간을 반영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이 이야기는 서양의 과학체계를 뒷받침하는 모든 가정들을 의심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저로서도 아주 조심스러운 화제여서 시간이 있으면 나중에 더 자세한 보충설명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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