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 (上)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에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페미니즘 이론과 사상을 발전하고 확대하는 데에 기여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한 달에 두 번씩 [매달 초, 중순] 연재할 예정이며, 매달 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다룰 것입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 및 업로드 담당 – 서누)

 

 

서양 근대철학의 이상은 인간에서 시작한다. 그 이상은 인간의 능력으로부터 출발해, 세계를 향하고, 인간에게로 되돌아온다. 모든 인간의 평등에 대한 사상들이 이때부터 생겨났다. 그런데 여기에는 큰 약점이 있었다. 그 ‘인간’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예컨대,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1632-1704)는 모든 인간에게 사유 재산을 가질 권리가 있음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영국에서 여성의 재산권이 온전히 보장된 것은 1882년 재산법 통과에 이르러서였다. 또한 ‘사회계약론’으로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한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그의 저서 <에밀>에서 자연적 본성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의 이성 능력이 다르고, 그 차이에 따른 양성의 역할이 다르다고 말했다. 루소에 따르면, 여성은 본성적으로 도덕적 자유를 성취할 만한 정신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구성원 즉 시민으로서의 자질이 결여되어 있다. 루소는 남녀의 차이를 자연적인 것으로 설명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차별 대우를 정당화했다. 그리하여 루소가 주장한 ‘천부 인권’은 여성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었다. 한편 프랑스 대혁명 이후, 1789년 프랑스에서 라파이예트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발표했고, 같은 해 남성 시민들에게 비로소 ‘보통 선거’에 가까운 투표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프랑스 여성들이 투표를 통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무려 1944년에 이르러서였다.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이 <여성의 종속>을 저술하던 19세기의 영국에서 위와 같은 성차별은 제도뿐만 아니라 생활양식 전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성은 생물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주로 남성과의 차이에 의해 규정되었으며, 이러한 차이는 역할 분리로 나타났다.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가 뚜렷해지면서, 남성은 공적 영역에서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여성은 순결한 존재로 사적 영역을 지키면서 남성을 위안하고 돌보는 역할만을 맡아야 했다. 그럼에도 19세기 후반, 20여 년간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여성의 고등교육 기회 확장, 여성 노동시장의 증가, 투표권이나 산아제한에 대한 캠페인 등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반드시 수행해야만 한다는 전통적 관점에 대해 여성들이 자각하고 도전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밀은 ‘남성에의 여성의 종속’은 문명사회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남성과 다를 바 없는 여성의 완전한 자유와 평등의 쟁취를 목적으로 <여성의 종속>을 쓴다. 그리고 여성 억압은 여성을 지배하고자 하는 남성들의 강렬하고 뿌리 깊은 감정 외에 정당한 이유나 근거 없이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지적한다. 특히 그는 ‘모든 인간의 평등’이라는 이념이 확산되어 점차 철폐돼 가던 노예제와, 그에 반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여성 억압을 비교하면서 사회에 탄원한다.

밀에 의하면 자유와 평등의 추구는 선험적 진리이며, 공공의 이익(general good)을 위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떠한 법적 차별도 용납할 수 없다. 그런데 ‘남성의 여성 지배’라는 제도는 이러한 선험적 진리에도 어긋나며, 공공의 이익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도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다른 대안, 예컨대 ‘여성의 남성 지배’나 ‘두 성의 동등한 지배’가 시도된 후에 적극적인 비교를 통해 판단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의 여성 지배’라는 원칙은 힘센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한다는 강자의 법칙 외에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러나 문명과 도덕이 발전한 사회에서 강자의 법칙은 인간사회를 규율하는 원리로서 적절하지 않으므로, 이마저도 ‘남성의 여성 지배’의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없다.

한편 여성은 지배 받아야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논거로 남성의 여성 지배를 정당화하는 사람도 있었다. 밀은 일반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은 정말로 ‘그러한 것(본성)’혹은 ‘그러해야 하는 것(당위)’이 아니라, 관습적인 것이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역사적 사례를 들어 반박한다. 봉건 시대에 귀족의 평민 지배는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이제는 모두가 정당하게 인정하는 일반 시민(당시의 농노)의 정치 참여는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 고대의 스파르타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한 신체적 훈련을 받았고, 이를 통해 당시의 사람들은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능력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남성의 여성 지배’는 여성의 자발적 동의에 의한 것도 아니다. 밀이 <여성의 종속>을 저술하던 당대에는 ‘남성의 여성 지배’에 부당함을 느끼며 직접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을 글로 쓰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었고, 선거권 운동과 더불어 교육권, 노동권 보장을 획득하려는 정치적 집단들이 조직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성은 어떠해야 한다는 지속적인 세뇌와 정치적 운동에 참여했을 때 우려되는 남편의 학대 때문에, 여권 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여성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면서, ‘남성의 여성 지배’는 여성의 자발적 동의에 의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여성의 전반적 지위가 내려가느냐 올라가느냐를 따져보는 것이 한 민족 또는 한 시대의 문명 발전 정도를 가늠하는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밀은 앞선 논의들을 종합하며 불평등한 권리의 구조는 인간 발전의 전 과정, 즉 역사의 흐름과 인간사회의 진보적 경향, 그리고 미래와 조화롭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와 낡은 과거를 가르는 기준은 인간이 출생조건에 의한 억압에서 벗어나 능력과 기회를 이용하여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자신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문제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사자가 스스로 해결하도록 놔두는 것이 발전을 이루는 사회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단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법과 제도에 의해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현대의 사회 원리에 어긋나는 거의 유일한 사례이며, 현대 세계의 진보적 흐름과 대립되는 것이라고 본다.

특히 밀은 당대의 결혼 제도가 여성에게 전적으로 불(합)리한 제도임을 자세히 밝힌다. 결혼한 여성의 법적 지위를 살펴보면 [노예제와 같은 법적인 신분 차별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남편의 노예와 다름없다. 아내는 결혼식 단상에서 남편에게 평생의 복종을 맹세하고 나면, 평생을 통해 그것을 지켜야 한다. 여성은 남편이 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며, 남편의 허락 없이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나아가 아내는 어떤 것도 소유할 권리가 없다. 상속을 통한 것이든, 노동을 통한 것이든. 여성이 어쩌다 재산을 가지게 되더라도 그것은 결혼과 동시에 사실상 남편의 소유가 된다. 아내의 것은 무엇이든 남편의 것이 됨으로써 ‘법 안에서 한 사람’이 되지만, 그 규정은 반대로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만이 자녀에 관한 법적 권리를 갖는다. 여성은 남편의 대리로서가 아니면,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다.

 

(영화 ‘서프러제트’ 中, 여권 운동에 참여하여 가정을 잘 돌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를 다른 집에 입양 보내는 주인공 모드의 남편. 여기에서 모드는 반대할 권리가 없어 아이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든 남성이 여성을 노예처럼 부리고,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이 실제 결혼생활에서 받는 대우와 상관없이 이 제도는 그 자체로 부조리하다. 이 제도를 악용할, 사악한 남성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이 제도에 의해서 목격되는 불평등은 정당한 것이 아니며 잠재적 폭압을 합법적으로 유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제도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선한 사람들이 아니라 악한 사람들을 염두하고 만들어져야 한다. 모든 남성은 결혼하는 순간 남편으로서의 완전한 법적 권력이 부여되고 보장되지만, 남편들 중 그 누구도 결혼 전에 절대권 행사에 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고 법도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두 사람 중 어느 한 쪽은 관계를 취소할 수 없는데, 이들의 자발적인 결합에서 한 사람이 절대적인 주인이 되는 것은 옳지 못하며, 특히 법이 누가 주인이 되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아이리스 영 (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정의란 무엇이며, 부정의란 무엇일까? 억압당하는 집단은 부정의를 겪고 있다고 주장하며, 정의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억압이란 무엇이며, 누가 어떻게 억압당한다는 것일까?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차이의 정치와 정의>에서 유명한 ‘억압의 다섯 가지 모습들’을 제시한다. 영은 철학에서 논의되어 왔던 기존의 정의론을 비판하면서, 정의와 부정의는 분배 문제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억압’과 ‘지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억압이란 “사회 구성원의 일부가 사회적으로 인정된 환경에서 좋은 기술들을 익히고 사용하는 것을 막는 제도적 과정 체계”(p.99.)를 뜻한다. 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자기-표현(self-expression)과 관계된다. 한편 지배는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할지 결정할 때 참여하지 못하게 금제하거나 막는, 또는 행위조건들을 결정하는데 참여하지 못하게 금제하거나 막는 제도적 조건들”(p.99.)을 말한다. 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자기-결정(self-development)과 연결된다. 영은 이런 억압과 지배를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정의라고 주장한다.

물론 영이 분배 부정의, 즉 재화나 지위에서의 불평등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배 문제는 정의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분배의 문제가 정의의 전부라고 간주하게 되면, 우리는 그러한 불평등한 분배 부정의를 낳은 생산조건과 제도적 맥락, 노동 분업의 문제, 의사결정 권력 문제, 문화의 문제를 보지 못하게 된다. 또한 분배에만 주목할 경우, 분배와 관련될 수는 있지만 그보다는 더 포괄적이고 구조적인 ‘억압’이라는 문제는 도외시된다.

억압이라는 용어는 우선 전통적으로 독재국가에서 탄압받는 시민들을 일컬을 때 사용되거나, 제국주의 식민지 국가나 공산국가들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영에 따르면 억압은 심지어 발전된 서구 자유주의 국가에서도 존재하며, 반드시 억압하는 자가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억압은 제도적인 조건이기에 단순히 사회적 지위나 생산관계로 인해 누군가가 특권을 얻고 누군가는 차별을 당하는 상황 자체도 억압이 된다.

억압이라는 용어가 부정의의 문제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된 배경은 주로 신 사회 운동, 즉 사회주의 이후의 다양한 정체성 운동인 페미니즘, 게이/레즈비언 해방운동, 아프리카계 미국인 운동, 환경 운동의 약진 덕분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억압을 경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은 이러한 현실 운동의 주장들에서 출발한다. 주로 이들이 억압을 개선하거나 종식해달라고 요청할 때, 어떤 억압의 양상들이 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은 이러한 억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면서, 이 억압당하는 집단들은 착취, 주변화, 무력화, 문화제국주의, 폭력이라는 억압을 체계적으로 겪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착취(exploitation)’는 “일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목적(의도)에 따라서, 그리고 이들의 이익을 위하여 그 통제 하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 즉 “사회집단의 노동 산물이 타 집단에게 이득이 되도록 이전되는 항상적 과정”(pp.123-124)을 일컫는 용어로, 물론 맑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용어이다. 그러나 영은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 문제를 넘어서 여성의 에너지가 남성으로 이전되는 ‘젠더 착취’로 착취 개념을 확장시킨다. 젠더 착취에는 두 가지 양상이 있는데, 예컨대 여성이 보수를 받지 못하고 가사 노동을 하게 되는 것처럼 물질적 노동의 과실이 남성에게 이전되는 것과, 성애화 된 직종에 종사하거나 직장에서 긴장관계를 누그러뜨리는 노동에 종사하게 되는 것처럼 여성의 정서적, 성적 에너지가 남성에게 이전되는 것이 있다. 영에 따르면 이런 착취는 단순히 노동 산물이나 에너지에 대한 착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착취하는 집단은 착취를 통해서 부나 이윤뿐 아니라 권력을 소유하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둘째는 ‘주변화(marginalization)’로, 이는 “노동 시스템이 사용할 수 없거나 사용하지 않으려는”(p.131) 것을 일컫는다. 청년 실업이나 노인, 신체 장애인과 정신 장애인, 재취업에 실패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주변화로 인해 고통 받는 집단에 해당된다. 주변화를 경험하는 집단은 불안정한 고용과 실업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복지에 의존한다는 비난 등으로 인해 의미 있는 노동과정에 참여하지 못한 채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는 억압을 경험한다. 따라서 영은 “어쩌면 주변화야말로 가장 위험한 억압 형태일지도 모른다”(p.132)고 설명한다.

세 번째, ‘무력화(powerlessness)’는 “간접적 의미에서의 권한이나 권력조차도 전혀 가지지 못하는 것”, “명령은 무조건 따라야 하지만 명령을 내릴 권리는 거의 갖지 못하는 상태에 처한 것”(pp.137-138)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의사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할 권력 자체가 박탈당한 상태이기 때문에 무력화인 것이다. 예컨대 비전문직 노동자들은 고소득 전문직 노동자들에 비해 업무에서의 자율성이 거의 없고 독자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불가능하며 상급자의 지휘나 감독만을 받기 때문에 자신의 일에 대한 전문성이나 통제력을 가지지 못한다. 공사장의 인부는 전기 기술자, 건축 기술자 등 숙련 노동자에 비해 천시당하거나 권한을 갖지 못한다.

네 번째 억압은 ‘문화 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이다. “지배 집단의 경험과 문화를 보편화하고 유일한 규범으로 확립하는 것”(p.142)으로서, 이는 지배 집단이 자신들 역시 특수한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관점이나 견해가 보편적인 것인 양 강요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예컨대 백인 이성애자 남성들이 흑인이나 여성들은 열등하다는 레테르를 붙이거나 동성애자들은 난잡하다는 식으로 표지를 붙이는 방식이다. 이러한 피억압 집단을 향한 지배 집단의 편견이나 선입견이 보편적인 문화로 제시됨으로써, 피억압 집단의 관점이나 정체성은 배제되고 차별 당하게 된다.

마지막 억압은 ‘폭력(violence)’로서, 영에 따르면 폭력은 단순히 개별 행위자의 행위가 아닌, 사회적인 맥락에서 비롯될 수 있는 체계적인 속성을 가진다. “폭력이 개인적으로 저지르는 도덕적 잘못이라는 점을 넘어서서 사회 부정의의 한 현상이 되는 것은 폭력이 가지는 체계적 속성, 즉 폭력이 사회적 실천으로서 존재한다는 점이다.”(p.148) 다시 말해, 특정한 제도와 사회적 실천이 특정한 집단의 구성원에 대한 폭력 행위를 부추기고 관용하고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사회적 환경(맥락)이 결국 그 폭력을 재생산하기 때문에,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체계적 폭력(systematic violence)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을 성폭행하거나 동성애자를 구타하는 행위에는 그러한 행위들을 방조하고 묵인하는 제도적이고 사회적 맥락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이렇게 억압의 다섯 가지 양상을 통해 영은 지금까지의 분배 중심의 정의론이 문화 제국주의나 폭력과 같은 억압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이런 억압들은 ‘사회집단’으로서의 약자들에게 가해진다는 특성이 있다. 영은 집단을 단순히 이런저런 속성들로 자의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집합체(aggregate)나, 혹은 가입과 탈퇴가 비교적 자유로운 공식적인 결사체(association)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정의론은 개인이 집단 이전에 있다는 자유주의적인 인간관을 전제한다고 비판하면서, 이처럼 개인들의 묶음들로 집단을 바라보는 관점은 피억압 집단이 발생하게 된 사회․역사적 맥락을 도외시함으로써 억압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존의 정의론은 억압당하는 사회집단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락시킴으로써 차이를 은폐해 왔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집단이 다 억압 받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미국에서 가톨릭 신도들은 독특한 관행과 상호 친밀성을 가진 특유한 사회집단이기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억압받는 집단은 아니다. 영에 따르면 “한 집단이 억압 받는지 여부는 다섯 가지 조건(착취, 주변화, 무력화, 문화제국주의, 폭력) 중 한 가지 조건이나 그 이상의 조건들을 충족하는지에 따라 정해진다.”(p.120). 예컨대 영의 ‘억압의 다섯 가지 조건’을 고려해 봤을 때, 사회집단으로서의 ‘남성 집단’은 인종, 성적 지향, 계급이나 학벌 등으로 차별받을 수는 있어도, 적어도 남성으로 억압을 경험한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영은 이처럼 억압에 대한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집단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억압들을 범주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어떤 제도나 정책이 이 억압의 범주들 중 하나를 강화한다면, 그것은 부정의한 것이 된다. 영은 이 기준들을 통해 차이를 가지는 사회집단들이 경험하는 억압을 제거해 나가는 정의를 주장한다. 동일성을 통해 차이를 없애기 보다는, 차이를 의식하고 이를 인정하는 것이 좀 더 정의롭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녀는 젠더 중립적인 정책보다는 젠더 의식적인 정책을, 집단들의 의사가 반영되는 참여 민주주의로서의 집단 대표제(group representation), 소수자 우대 정책 등을 제시한다. 차이를 고려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분배를 넘어서는 쟁점들을 정의에 수용하라는 영의 이런 주장은, ‘급진 민주주의(radical democracy)’ 개념을 통해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 등의 사회집단 간 차이를 민주주의에 수용할 것을 주장하는 무페와 라클라우의 정의론, 분배/인정의 이원론적인 정의관을 주장하는 프레이저의 정의론, 좋은 삶을 정의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는 역량(capability) 접근법인 누스바움의 정의론과 같은, 분배 정의론이 오히려 차이를 무시하고 억압을 강화하는 지점을 비판하는 다른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들의 입장과도 공명하는 듯하다. 영은 물론 이런 차이가 본질적이거나 영속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차이를 가질 뿐 아니라 억압당하고 있는 집단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현실이다. 결국 영의 입장처럼, 추상적인 원칙이나 동질적이라고 가정되는 시민 공중이라는 망상에 근거할 것이 아니라, 억압당하고 있는 집단들에게 가해지는 부정의를 제거해 나가는 것이 진정으로 ‘정의’가 아닐까?

 

(두 편으로 연재된 영에 관한 글 잘 읽으셨나요-? 4월에는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예속>에 관한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아이리스 영 (上)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에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페미니즘 이론과 사상을 발전하고 확대하는 데에 기여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한 달에 두 번씩 (매달 초, 중순) 연재할 예정이며, 매달 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다룰 것입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 및 업로드 담당: 서누)

 

 

3. <차이의 정치와 정의>, 아이리스 매리언 영(Iris Marion Young) (1949 – 2006) (上)

 

유민석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영은 정의와 사회적 차이를 연구한 저명한 미국의 정치철학자이자 시카고 대학 정치학과 교수로, 1990년 저작 “정의와 차이의 정치(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에서 지금까지의 정의론을 분배 중심 정의론으로 비판하며 ‘차이의 정치’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존 롤즈의 “정의론”으로 대변되는 평등 지향적인 자유주의적 정의관이나, 로버트 노직의 자유지상주의 정의론, 그리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공동체주의적 정의관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의 정의관은 주로 파이를 어떻게 분배할지 혹은 플루트는 누가 차지해야 하는지와 같은 부나 재화, 지위 등의 분배 문제에만 관심을 두거나, 철로에서 누구를 구해야 하는지와 같은 일어날 법 하지 않은 극한상황(도덕적 딜레마 상황)에서의 도덕추론을 따지는 데에만 관심을 뒀을 뿐, 성소수자가 당하는 억압이나 여성들이 느끼는 차별과 같은 매우 첨예한 사회적 문제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를테면 롤즈의 유명한 ‘원초적 입장’이나 ‘무지의 베일’ 같은 가상의 장치들은 물론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를 정초하기 위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일상에서 소수자들, 약자들이 느끼는 억압, 차별의 문제와는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과연 ‘정의의 두 원칙’이 억압당하는 자들의 현실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 영은 이런 정의관을 예리하고 통렬하게, 조목조목 비판한다. 정의/부정의에 대한 문제는 분배가 아닌, ‘지배’나 ‘억압’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배 중심의 정의론이 대체 무슨 문제라는 것일까? 영에 따르면, 사회 정의에 대한 사유를 사물, 자원, 소득, 부와 같은 물질적 재화의 할당 또는 사회적 지위, 특히 직업의 분배에만 집중하는 경향은, 분배 문제에 버금가게 중요한 ‘의사결정 권력 및 절차’, ‘노동 분업’, ‘문화’에 대한 문제들을 무시하고 간과하게 한다.

예컨대 시민이나 노동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기업이나 국가의 의사결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그 결정 과정에서 누군가 배제되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경우, 그런 의사결정 권력 및 절차의 문제는 비록 비-분배적인 것이지만 부정의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많은 여성들이 돌봄 노동과 가사 노동에 쏠리게 되는 현상과 같이, ‘누가 노동을 할지 그리고 누가 어떤 노동을 하게 되는지’에 관한 노동 분업 역시 분배적인 것을 넘어서는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여성이나 동성애자가 미디어에서 편견에 의해 비하되고 혐오당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분배와는 무관하지만 심각한 부정의라고 할 수 있다.

영은 기존의 분배 중심 정의관이 개인주의적이며 이성 중심적이고 남성 중심적이라고 비판한다. 롤즈의 정의론에서 알 수 있듯이, 원자적이고 불편부당한 개인을 전제하거나 동질적인 공중을 강조하는 식이다. 특히 영은 포스트 구조주의와 페미니즘의 입장을 끌어온다. 기존 정의론들의 기저에는 일종의 근대적 이성 중심주의와 사회존재론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이성과 정신을 지닌 백인 이성애자 남성은 감성과 신체의 영역을 여성, 동성애자 등과 같은 ‘타자’에게 속한 것으로 전가시킨다.

이로써 아이리스 영은 ‘동질적 공중’을 전제하는 정의관을 비판하며, 다양한 사회 집단이 경험하는 억압을 인정하는 ‘이질적 공중’을 내세우는 ‘차이의 정치’를 그의 정의론으로 제시한다.

정의에 관해서는 크게 이상적인 정의의 원칙이나 가상적인 계약을 제시하는 초월론적 접근법과 현실의 부정의를 발견하고 제거해 나가는 내재적 방법이 대비된다. 영은 후자의 방식을 택한다. 현실을 분석하고 규범적인 진단을 하는 비판 이론 전통, 상호주체성과 신체와 감정을 복권시키는 페미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통찰,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실의 피억압 집단들의 투쟁과 운동에서 얻은 교훈을 결합하여, 영은 다양한 차이를 가지는 피억압 집단들로 이루어진 이질적 공중들의 차이의 정치를 주장한다.

이러한 영의 주장은 실은 20세기 후반에 폭발적으로 급증한 신 사회 운동, 즉 맑스주의 이후의 여성 운동, 게이레즈비언 운동, 흑인 운동 등 현실 운동에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이들 신 사회 운동은 모두 억압과 부정의에 대한 요구를 주장하면서 등장하였다. 이들은 모두 단순한 사람들의 무리인 ‘집합체’나 자발적인 ‘결사체’와는 다른,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억압을 당하는 ‘사회 집단’으로서의 특징을 가진다.

그동안의 정의론은 분배 중심적이었으며, 이와 다르게 부정의의 문제는 지배와 억압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이러한 차이의 정치의 도전에 대해 정치철학적으로 과연 어떤 답변을 해야 할까? 아니, 질문을 달리 해보자면, 부/재화의 보다 공정한 소유나 분배에 대한 논의가 정의의 문제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회는, 여성이 돌봄 노동과 성별화 된 노동에 종사되는 노동 분업의 문제, 시민들이 관료화된 행정조직의 의사결정에서 배제되는 문제,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혐오당하거나 구타당하는 문제, 즉 차이의 정치의 도전에 대해 준비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울스턴크래프트 (下)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에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페미니즘 이론과 사상을 발전하고 확대하는 데에 기여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한 달에 두 번씩 (매달 초, 중순) 연재할 예정이며, 매달 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다룰 것입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 및 업로드 담당: 서누)

 

 

2. <여권의 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下)

 

김은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여권의 옹호, 초판본>

 

 

  • 여성 교육의 평등권을 주장하다

 

“최근 여성 교육에 관심이 높아졌지만 아직도 여성은 경박한 존재로 간주되고 있고, 풍자나 교훈으로 여성을 교육하려는 작가들은 여전히 이들을 비꼬거나 동정한다. 여성은 몇 가지 기예를 익히면서 어린 시절을 허송하고 관능적인 심미안을 기르고, (그 외에는 다른 출세할 방도가 없는 관계로) 자기보다 나은 상대와 결혼하겠다는 욕망을 추구하느라 심신의 힘을 잃어간다. 이 욕망은 여성을 일종이 동물로 전락시키기 때문에, 결혼한 여성은 옷을 차려입고, 화장하고, 아양을 떠는 등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는 어린아이같이 행동하게 된다. 하렘에나 적합할 이 나약한 여성이 과연 현명하게 가정을 이끌고 자기가 낳은 가엾은 아이들을 제대로 길러낼 수 있을까?”

울스턴크래프트는 18세기 근대 계몽 사상가들이 주창한 이성과 인간에 대한 전망에 깊은 신뢰심을 갖는다. 문명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루소와 달리, 그는 문명의 발전을 막는 것은 권력의 부패일 뿐 역사의 발전을 신뢰하고 인간 평등의 보장을 희구한다. 인간 이성에 대한 전적인 확신을 통해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이성을 갖고 있으며, 여성이 복종해야 할 대상은 아버지나 남성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이성으로 제시한다. 그는 여성의 정신이 남성의 정신과 조금도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여성도 이성을 지닌 온전한 인격체로 주장한다.

따라서 울스턴크래프트는 남성과 똑같이 여성에게도 이성과 인권이 있으며 이를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교육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제시한다. 울스턴크래프트에 따르면, 여성들의 날카로운 감각을 남자들을 유혹하는 데 사용할 것을 가르치는 잘못된 교육은 무엇보다도 사회에 아무런 기여 하지 못한다. 여성다운 부드러움과 순종만을 강요하며 여성을 사회적인 인간이자 자립하는 존재로 만들지 않는 기존의 여성교육은 문제가 있다.  또한, 울스턴크래프는 가정교사에 전적으로 의지 하거나 혹은 기숙학교에 보내는 등 기존의 교육체제가 가지는 문제점들 역시 조목조목 지적한다. 교육에 대한 대안적 정책 역시 내세우는데, 가정 교육과 공공교육의 구별 없는 국립 통합제 학교 설립을 제창하기도 한다.

이러한 울스턴크래프트의 주장은 여성에게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할 것으로 나아간다. 그는 근미래를 내다보며, 앞으로는 여성들도 정부에서 대표자로 일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기 한다. 그리고 여성들이 단순히 가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의사, 산파, 간호사 등의 사회적 활동을 할 것이며, 회사 경영, 농업 종사, 장사와 판매 역시 할 것이라 제시하면서, 공적인 공간과 직업의 선택에서 여성 역할을 강조한다.

무엇보다도 『여권의 옹호』에서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에게 호소한다. 그는 여성이 스스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갖고 독자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이성을 갈고 닦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합리한 기존의 사회상을 개선하고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성이 교육을 통해 자신의 인권을 회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 여권의 옹호가 지닌 영향, 한계 그리고 교차성

 

당대의 상황으로 인해  『여권의 옹호』에 담긴 주장은 바로 실행되지 못한다. 그러나 울스턴크래프를 비롯한 초기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의 사상은 여성을 둘러싼 다른 약자들과 연대하면서 영향을 확대한다. 페미니즘 사상은 여성으로 하여금 가부장제에서 자신의 처지와 노예의 지위를 견주어 생각하고, 이로 말미암아 당대 여성들은 그 누구보다 노예 폐지론에 찬성한다.

특히  『여권의 옹호』에 찬동한 중산층 여성들은 노예의 노동이 야만적인 설탕 사업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후, 노예무역을 중지시키고자 직접 나선다. 가정 살림에 관여하는 여성들은 1791년 노예 폐지론자들이 조직한 설탕 불매운동에 참여한다. 노예들이 일하는 재배장의 환경에 경악한 여성들은 가정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주부이자 티타임의 주재자로 설탕 소비를 줄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강력한 정치 운동으로 승화된다.

확실히 당시 여성의 지위로 인해, 불매 운동을 조직한 여성들은 청원서에 서명하거나 의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능동적 역할을 담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가족의 식료품을 구입하는 책임을 지닌 가정의 경영자로서 그들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설탕 소비의 주체였기에 그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미국 독립혁명 당시 차 불매 운동을 벌인 미국 여성들의 역할에 감명을 받은 영국 여성들은 설탕 불매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불매 운동이 크게 유행한다. 설탕 불매운동에 그치지 않고 여권의 옹호의 주요한 주장은 이후 참정권 운동으로 번지면서 실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여권의 옹호』에서 밝힌 울스턴크래프트 의견은 중상층 여성만을 위한 운동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그는 여성의 활동의 공적 확장을 주장하나, 참정권에 대해서는 짧게 언급한 후 지나간다. 게다가 울스턴크래프트는 대체로 개인주의적 시민 도덕 양성에 목적을 두어 교육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온건적 노선을 표명한다. 무엇보다도  『여권의 옹호』는 성도덕과 가족제도에 있어서 여전히 영국 중상층의 통념과 관습을 따른다. 성역할 구분에 문제를 제기 하나, 인간의 표준을 여전히 남성으로 규정했을 뿐 아니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여성의 영역을 가사, 육아로 한정한다.

무엇보다도  『여권의 옹호』는 중간계급 여성만을 자신의 주요한 독자로 삼는다. 울스턴크래프트에 따르면, 중간계급은 귀족처럼 허영으로 부패하지 않았고 노동자 계급처럼 빈곤의 무게에 압도당하지 않았다. 독자층을 중간계급으로 설정한  『여권의 옹호』는 상류층을 따라하는 중간계급 여성의 허영을 주요하게 비판하며 건전한 시민으로서 중간계급의 여성의 자리매김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결국  『여권의 옹호』가 상정하는 이상적 여성은 이성의 발달을 위해 교육과 정신 수양에 힘쓰고 자녀를 올바른 시민으로 양육하는 어머니이자, 가정과 사회 공동체에 이바지 하는 성실한 동반자이다. 이러한 여성은 보수적 입장을 대변할 뿐 아니라 대다수의 여성 노동계급을 배제하고 그에 기반 하여 중간계급 여성의 성장을 도모한다. 이러한 점에서 울스턴크래프트 입장은 다른 페미니스트들에게 비판을 받는다. 백인 중상층 이성애자 여성을 여성의 표준을 설정하는 초기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이 기준 밖에 있는 주변화된 여성들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음으로써, 또 다른 차별을 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을 통해서, 페미니즘은 동일한 여성이 아니라 다양한 여성들에 대해서 논의하기 시작한다.

특히 주목해 볼만한 논의는 “인종과 섹스의 교차로를 탈주변화하기: 차별금지 정책, 페미니즘 이론 그리고 반인종주의 정치 관한 흑인 페미니즘의 비판(Demarginalizing the Intersection of Race and Sex: A Black Feminist Critique of Antidiscrimination Doctrine, Feminist Theory and Antiracist Politics)”에서 제시한 킴벌리 크렌쇼(Kimberle Crenshaw)의 교차성에 관한 분석이다. 크렌쇼는 흑인 여성의 경험을 왜곡시키는 단일 축(single-axis) 분석과 흑인 여성 경험의 다차면성(multidimensionality)을 대조한다.

크렌쇼는  단일 축에 따른 틀(framework)이 주로 집단의 특권층에 기대어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이 그러한 것처럼, 살아있는 여성의 경험을 단일 축의 범주로 묶어버릴 경우에,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대한 개념과 이해 그리고 개선책에서 조차 흑인 여성을 지워버린다. 크렌쇼에 따르면, 인종 차별은 특권적 흑인 남성의 관점에서, 성차별의 경우에는 특권적 여성에 맞추어져 다루어진다. 이는  흑인 여성을 페미니즘 이론과 반인종주의 정책 담론에서 몰아낸다. 그러나 배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미 확립된 구조에 그저 흑인 여성을 포함시킨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흑인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에 주목하는 것이다. 흑인 여성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차별을 경험한다. 흑인 여성으로 겪는 교차적 경험은 인종주의와 성 차별을 합한 것보다 훨씬 크다. 크렌쇼는 교차로에서 네 방향으로 오가는 차량의 예를 통해 교차성을 설명한다. 교차로를 통과하는 차량과 마찬가지로, 차별은 한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고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 교차로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어떤 방향에서 이동해서일 수도 있고, 때로는 모든 방향에서 이동하는 경우 때문일 수도 있다. 흑인 여성은 교차로에 있기 때문에, 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로 인해 차별을 당할 수 있다.

흑인 여성은 때때로 백인 여성의 경험과 유사한 방식으로 차별을 경험한다. 또한 때때로 그들은 흑인들과 매우 유사한 경험을 공유한다. 그러나 흑인 여성은 빈번하게 인종에 기초한 차별과 성에 근거한 차별이라는 두 가지 차별을 동시에 경험한다. 이 경험은 인종 차별과 성 차별의 합계가 아니라 분명히 “흑인 여성”에 대한 차별이다. 흑인 여성의 경험은 차별 담론이 제공하는 일반적인 범주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그러나 기존의 범주적 분석은 흑인 여성의 요구와 필요를 담은 경험을 무시한다. 흑인과 여성의 교차성을 고려하지 않은 분석은 흑인 여성이 인종과 여성 모두에서 종속화 되는 특정한 방식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여권의 옹호』가 출판된 지 몇 백 년이 지난 현재 여성의 교육권과 참정권은 법적으로 보장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권의 옹호』는 현재 진행중이다. 교육의 평등권이 실재적으로 달성되지 않은 나라도 여전히 많고, 교육 이외에도 그가 제기한 질문들 중 여전히 미완으로 남은 과제가 많다. 예리한 통찰력과 역사에 대한 폭넓은 시각으로 오늘날에도 독보적 가치와 현재적 울림을 잃지 않는 비전을 울스턴크래프트는 제시한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도 유효한 『여권의 옹호』의 혁명적 통찰은 당시 여성 차별의 문제를 성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만이 아니라, 정치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신분이나 경제력의 차이의 억압과 함께 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의 일부로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에 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여동생에게 남긴 편지에서 스스로 표현한 바와 같이 “닦인 길을 밟아가기 위해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며, 삶에서 그가 한 선택들은 당대의 사회적 규범과 충돌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불행 속에서조차 자신의 존재를 그렇게 강렬히 느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에 대해서 버지니아 울프가 한 다음의 말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내가 죽는다든지, 나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건 차마 상상할 수 없어요. 내가 존재하길 그친다는 건 불가능해요.’라고 외쳤던 그는 서른여섯 살에 죽었다. 하지만 그는 한을 풀었다. 그가 죽은 뒤 130년 동안 수백만의 사람이 죽고 잊혀졌지만, 우리는 지금도 그의 편지를 읽고, 그의 논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녀의 실험,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결실을 맺었던 고드윈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당당하고 열정적으로 인생의 정수를 휘어잡았던 울스턴크래프트를 생각한다. 그러니 그는 분명히 일종의 불멸을 얻은 셈이고 여전히 우리와 더불어 생생하고 살아있고 따지고 실험하고 있다.”

 

 

(두 편으로 연재된 울스턴크래프트 글 잘 읽으셨나요? 3월에는 영(I. M.  Young)의 <차이의 정치와 정의>를 담은 글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울스턴크래프트 (上)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에서 <페미니즘 고전들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페미니즘 이론과 사상을 발전하고 확대하는 데에 기여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한 달에 두 번씩 (매달 초와 중순) 연재할 예정이며, 매달 한 철학자와 그 저서를 다룰 것입니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 및 업로드 담당: 서누)

 

1. <여권의 옹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 (1759-1797) (上)

 

김은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여성과 철학 분과)

 

“나는 여성이 처한 비굴한 의존 상태를 위장하기 위해 남성이 선심 쓰듯 내뱉는 귀엽고 여성스러운 어구들과, 여성의 성적 특징으로 간주되어온 나약하고 부드러운 정신, 예민한 감성, 유순한 행동거지 등을 거부하고, 아름다움보다 덕성이 낫다는 걸 밝히려고 한다. 남자든 여자든 한 인간으로서 자기만의 개성을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목표이므로, 모든 것이 이를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 가부장제에 핍박받는 여성들을 목격하다

 

여권의 옹호의 저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1759년 영국 런던 근교의 스피털필즈에서 에드워드 울스턴크래프트의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사회생활 실패의 울분을 어머니에게 폭력으로 푸는 아버지와 모습과 불행한 부모의 결혼 생활을 목격하면서 남자에게 여성을 종시키는 불합리한 결혼제도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당시 여성은 결혼과 함께 모든 법적 책임과 권리를 남편에게 양도하게 되었기에, 폭력 앞에서 저항할 길이 없었다. 기혼 여성은 채무의 책임은 없었지만 대신 계약서에 서명도 할 수 없었고, 소송도 불가능했으며 심지어 법률적 효력이 있는 유언을 남길 수도 없었다. 당연히 그 어떤 경제활동도 불가능했고 가정의 모든 경제권만이 아니라, 유산으로 물려받은 아내의 재산과 함께 자식마저도 모두 법적으로 남편에게 속해 있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이러한 여성의 비참한 처지를 어머니의 경우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찍 결혼한 동생 일라이저마저도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목도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남편에게 의탁하는 여성의 고달픈 처지와 결혼 생활의 비참함을 재확인한다. 그는 일라이저를 탈출시켜 자신이 돌보았고, 여성이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제력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다. 이러한 각성은 울스턴크래프트를 경제적으로 독립적이면서 교육받은 여성으로서 삶을 살도록 만든다. 그는 가정교사와 귀족 부인의 비서로 일하고, 이후 1784년 이슬링턴에 여학교를 설립한다.

학교 경영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첫 저작인  『여성 교육론』 저술 후 런던에서 머물다 혁명의 와중에 있는 프랑스로 건너가 계몽주의 세계를 몸소 체험한다. 울스턴크래프트의 삶은 당시의 통념과 관습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역동적이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파리에서 만난 미국인 길버트 임레이(Gilbert Imlay)와 결혼하지 않은 채 첫딸을 낳는다. 그러나 임레이의 새로운 애인으로 파탄이 난 관계는 울스턴크래프트를 절망하게 만들었다. 그는 강물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다행히 선원들의 구조로 살아난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 울스턴크래프트는 영국인 아나키스트 철학자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을 만난다.  울스턴크래프트와 고드윈은 평등한 관계를 실험하고 실천했으며, 두 번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그들은 결혼한다.

울스턴크래프트의 본격적인 저술 활동은 1788년부터는 런던의 저명한 출판업자 조지프 존슨이 발간하던 당대의 대표적인 급진주의 계열 잡지 『어낼리티컬 리뷰』에 서평, 번역문, 에세이 등을 기고하면서 시작된다. 토머스 페인, 윌리엄 고드윈, 윌리엄 블레이크 등 당대의 진보적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존슨의 출판사에 근무하는 동안 첫 소설 『메리』와 『창작 동화집』을 저술한다. 그 중 울스턴크래프트를 유명하게 한 책은 바로  1792년 출간한 『여권의 옹호』이다.

『여권의 옹호』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세상에 이름을 알린, 울스턴크래프트는 프랑스 혁명과 공포정치를 직접 경험한 후 『프랑스 혁명의 기원과 진전에 관한 역사적·도덕적 견해』를 저술한다. 영국으로 돌아온 뒤 1796년에는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에서의 짧은 체류 동안 쓴 편지』를 펴낸다. 그러나 그의 저술 활동은 더 이상 계속될 수 없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두 번째 딸을 출산한 뒤, 열흘 후에 불행히도 산욕열로 세상을 떠난다. 남겨진 울스턴크래프트의 딸 역시 세계 문학사에 이름을 남겼는데, 그는 바로 『프랑켄슈타인 : 현대의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 or, The Modern Prometheus)』의 작가 메리 셸리(Merry Shelly)이다.

 

 

  • 이성(reason)에 남녀는 없다

 

1792년  『여권의 옹호』는 단 6주 만에 쓰였다. 울스턴크래프트는 1789년 혁명 후 프랑스 의회에 제출된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 페리고르의 1971년 프랑스 제헌국민의회의 대한 보고서를 읽고 탈레랑의 교육 법안에 반대하는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하였다. 교육 법안은 공화국의 모든 소년에게 국민교육을 시행한다는 내용을 담았지만, 교육의 대상에 소녀는 포함되지 않았다.

인간의 이성과 권리에 대해 그 어느 시기보다도 진보적이었던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여성에 대해서는 기존의 습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8세기에 계몽주의가 부르짖던 ‘인간의 권리’라는 말 속에 인간은 오로지 ‘남성’만을 의미했다. 당대 가장 진보적이라 불린 로크나 루소 같은 사상가들조차도 여성은 자연적으로 남성보다 약한 존재이기에 남성과는 절대로 평등해질 수 없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진보적 남성 지식인들이 주장하는 인권의 범위 속에 여성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여성은 그저 남성의 보호 아래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성이나 인권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성 지식인들 중 아무도 여성이 남성과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던 것이다.

그러나 급진적 민주주의자인 울스턴크래프트는 인간에게는 누구나 이성과 불멸의 영혼이 있고, 이성을 지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계몽주의적 신념을 가졌다. 그 누구보다 계몽주의 사상사인 울스턴크래프트는 남성만을 인간으로 상정한 계몽주의의 한계를 계몽주의로 맞섰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책을 통해 남성 계몽주의 지식인들의 사회개혁 이론 속에 배제한 여성문제를 논쟁에 포함시키면서, 여성도 인간이며 당연히 누려야 할 인권이 있음을 주장한다.

책에서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을 남성의 보조적 역할로만 보는 기존 사회의 관념에 도전하고 비판한다.

“나는 루소부터 그레고리까지 여성교육과 풍속에 대해 글을 써온 모든 작가들은 분명히 여성을 더 부자연스럽고 나약한 존재, 그래서 사회에 더 무익한 존재로 만드는데 일조해왔다고 단언하는 바이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여러 사상가를 비판하고 최초의 엄마인 이브를 나약하게 그린 밀턴을 향해 “유순한 가축 같은 존재로 살아가라니, 그런 모욕이 어디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또한 그는 여성을 이렇게 수동적인 존재이자 같은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루소를 비롯한 많은 사상가들의 여성 비하의 풍조를 정면에서 조목조목 분석하며 문제시 한다.

특히 울스턴크래프트는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루소의 『에밀』을 “여성의 매력을 찬미하면서도 그들을 억압하는 저 해로운 책”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열등한 이성을 지닌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것이 곧 자연법”이라는 루소의 의견에 반대한다. 『에밀』에서 루소는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서술하면서 여자아이의 교육에 대해서도 다룬다. 에밀은 시민으로 성장을 고무 받는 반면 소피의 교육은 이후 성인으로 성장할 에밀의 배우자인 이상적 부인을 목표로 한다. 소피는 인내심과 수동성을 특징으로 지니고 주어진 환경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적응을 잘하는 존재로 설명된다. 루소는 소피를 스스로 생각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심신의 약함을 알고 자연의 목소리를 따르고 오직 사랑하는 남자의 생각에 자신을 의탁하는 존재로 제시한다.

처음에 『여권의 옹호』는 익명으로 출간되지만, 폭발적인 반응과 책의 유명세에 응답하며, 울스턴크래프트는 2판에서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하지만 호응만큼이나 반발도 거세 울스턴크래프트를 ‘사색하는 뱀’, ‘페티코트를 입은 하이에나’라 부르기도 했다.

 

(하편에서 계속됩니다-)

서일- 잊혀진 어느 무장투쟁 사상가의 초상 [길 위의 우리 철학] – 9

김정철

 

1.

흔히 “강을 건넌다.”는 말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다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미 결정이 되어 돌이킬 수 없거나,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 수단으로 “강을 건넌다.”라고 말한다. 일제의 탄압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위해, 생계를 위하여 국경의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갔다. 특히 함경도 지역은 예로부터 척박하고 살기 힘든 땅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서울에서 2천리나 떨어진 이곳에 귀양을 보내거나 이 지역 출신 사람들을 차별한 사례도 보인다.

도리이 류조(鳥居龍蔵)가 1910년 무렵 경원 동림고성에서 촬영한 두만강의 모습. 이 무렵 많은 사람들이 이 강을 건너 만주지역으로 넘어갔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http://dryplate.museum.go.kr)

 

특히 경원(慶源)은 조선시대에 6진으로 개척한 최북단 지역이다. 이성계의 조상이 묻혀있는 곳이라 하여 “경사의 근원”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인데, 두만강만 건너면 바로 중국으로 이어지는 국경에 위치한 탓에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땅이었다. 그럼에도 이 지역은 “산세가 높고 척박하며, 춥고 곡식이 자라기 힘든 곳이었다. 가끔씩 호인(오랑캐)들과 소금이나 고기를 거래하여 겨우 삶을 유지하는데, 이마저 없으면 굶으며 떠돌기 십상”이라며, 갖가지 지원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일제의 지배 이후에도 이 곳은 여전히 살기 힘든 지역이었지만, 독립투쟁을 전개하고자 했던 이들에게는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생존을 위해 북간도로 건너간 사람들이 이미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었고, 국내에서 더 이상 활동이 어려워진 독립운동가들은 북간도로 넘어가 다음 기회를 노리고자 하였다. 무장투쟁을 주도한 다수의 인물들이 북간도 지역을 거점으로 삼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2.

필자가 소개할 서일(徐一, 1881~1921) 역시 경원 지역 출신으로 두만강을 건너간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서일은 어렸을 때 한문을 배우고 함일사범학교의 전신인 경원유지의숙을 졸업한 뒤 교육활동에 종사하였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해박한 지식과 설명방식은 이 시기에 길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0년 국내활동이 어려워지자, 서일은 가족들과 함께 두만강을 건너가 명동학교를 세웠다. 그러다 1911년 무렵 대종교를 접하고 입교한 뒤 북로군정서의 전신인 중광단을 조직하였다. ‘중광(重光)’은 나철이 잊혀진 한얼의 정신을 “다시 드러내 밝혔다”는 뜻으로 쓴 말이다. 서일이 죽을 때까지 지속한 무장투쟁과 종교적 수행의 시작이었다.

백포(白圃) 서일(徐一, 1881~1921)의 초상화

 

그는 나철의 가르침을 빠르게 깨우치며 대종교의 중심인물이 되었고 교세 확장에 앞장섰다. 여기까지의 행적만 보면 서일은 교육자 출신으로 대종교에서도 그 능력을 인정받아 대종교를 이끄는 길로 나갈 듯하다. 실제로 나철이 죽은 뒤 대종교의 2세 교주 김교헌은 1919년 대종교의 도통을 서일에게 물려주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일은 이를 거절하고 5년을 보류하였다. 종교적 지도자가 되는 길보다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이 더 우선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본이나 종교적인 권력을 세습하려고 애쓰는 오늘날 보기에는 참으로 낯선 광경이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무장투쟁의 성과가 바로 청산리 전투이다. 서일은 이 청산리 전투를 주도한 북로군정서의 총재였다. 북로군정서는 서일이 만든 중광단에서 시작된 조직이었다. 여기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김좌진과 이범석 등이 소속되어 있었는데, 당시 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중에서도 최정예로 꼽혔다.

 

놀라운 것은 서일이 무장투쟁에 임하던 중에도 종교적 수행과 교리 연구를 병행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는 군영 안에 수도실을 따로 설치하여, 매일 수행과 연구를 거듭했다고 전해진다. 그 성과는 <오대종지강연五大宗旨講演>(1914) <회삼경會三經>(1917) <삼문일답三問一答>(1921) <진리도설眞理圖說>(1921) <구변도설九變圖說>(1921) 등의 저술로 나타났다.

 

1918년 당시 편집된 대종교 경전 <사책합부四冊合附>를 살펴보면(「사책합부(四冊合附)」, 『국학연구』, 국학연구소, 2012 참조) 기본 경전인 <신사기神事記>, 나철이 지은 <신리대전神理大全>을 제외하고는 <회삼경會三經>과 <도해삼일신고강의(圖解三一神語講義)>가 거의 대부분의 분량을 서일의 저작이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분량만으로 그 중요도를 따지기는 어렵고, 서일의 저작이 기본 경전들에 대한 상세한 주석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서일에게 뛰어난 교리 해석 능력은 물론 교육활동에 매진했던 이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서일이 그만큼 대종교의 교리를 명확히 이해했고, 완성도 있는 저술을 했다는 뜻이다.

 

3.

그렇다면 대종교는 사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먼저 대종교를 다시 드러내 밝힌[重光] 나철은 <신리대전>을 지어 최고의 존재인 한얼이 이 세계의 인간과 어떤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지 ‘삼일三一’의 원리를 통해 밝혔다. 곧 나철은 한얼(一)과 인간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원리를 드러낸 것이다. 나철의 중광은 사상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개인적인 깨달음이나 외래 사상에 의존하지 않고 역사적으로 가려져 있던 고유정신을 ‘재발견’해 낸 점은 대종교 특유의 주체의식을 잘 보여준다.

 

서일의 <회삼경> 역시 나철이 드러낸 주체의식을 더욱 구체화시킨 결과였다. <회삼경>에 대해 대종교의 3세 교주 윤세복은 “철리(哲理)를 인생철학으로 집대성한 책”이라고 평하였는데, 그의 말대로 <회삼경>은 인간이 왜 이 세계에서 방황하고 길을 잃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하면 다시 한얼과 하나가 될 수 있는지 당시의 말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곧 한얼과 하나가 될 수 있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의 구체적 과정을 제시한 것이다.

 

<회삼경>에서 서일은 인간을 느끼고[感] 숨쉬며[息] 부딪히는[觸] 세 길(三途) 위에서 방황하며 고통 받는 존재로 설명하였다. 그는 이러한 방황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한얼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뿐이라고 이해했다. 한얼 정신의 회복이란 곧 우리가 어디로부터 나왔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말한다. 깨달음은 감정을 절제하고(止感), 호흡을 조절하며(調息), 신체의 정결함을 유지하는(禁觸) 개인적인 세 가지 수행법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는 세 검(三神)을 거쳐 이 세계를 창조한 최고의 존재인 한얼(一)로 향하고, 문화적으로는 외래의 정신인 세 나(三我), 곧 유불도(儒佛道)를 아우를 수 있는 근본정신인 한얼(一)로 향하게 된다.

 

이렇게 <회삼경>에 드러난 대종교의 주체의식은 매우 중요하다. 일제의 침략에 나라를 잃고, 외래의 각종 사상이 범람하던 무렵 서일을 비롯한 대종교인들은 주체의식을 외부가 아닌 근원적인 정신에서 찾고자 하였다. 대종교 계열의 지식인들이 역사연구(김교헌)와 한글연구(주시경, 김두봉)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도 대종교 특유의 주체의식과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서일이 일제와의 치열한 무장투쟁 속에서도 교리 연구를 병행해야만 했던 배경은 무엇일까? 독립군을 양성하고 운용하는데 있어 대종교의 교세 확장은 매우 중요했다. 철저히 무장한 일제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군비와 무기를 꾸준히 조달해야 했고, 독립군을 양성하는 과정에서도 강력한 주체의식을 고취할 필요가 있었다.

 

대종교의 교세가 불과 몇 년 사이에 크게 확장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종교의 주체의식 속에 조국의 독립과 새로운 민족국가의 건설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만주는 단군이 처음으로 민족을 다스린 지역이나 다름없었기에 이 지역 주민들은 대종교에 자발적으로 협력할 수 있었다. 실제로 서일의 활동 시기는 대종교의 전성기로 표현된다. 서일의 교리 연구 병행도 이러한 맥락에서 평가할 수 있다.

 

4.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승리 이후 일제의 토벌작전은 더욱 집요해졌고, 만주지역의 독립군들은 서일과 홍범도를 주축으로 ‘대한독립군’을 구성하여 시베리아로 떠났다. 이때 노령 자유시에는 대한독립군단 외에도 여러 독립군 집단이 집결해있었는데, 러시아는 자유시에 집결한 독립군들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했다. 이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독립군 내부에서도 군통수권 갈등이 일어났고, 결국 공산당에 포위되어 사살되거나 포로로 잡혔다. 대한독립군의 상당수를 잃자, 서일은 조직을 재정비하려고 했으나 밀산에서 다시 마적의 습격을 받으며 결국 자결하고 말았다. 무장투쟁과 종교적 교리 연구를 쉼 없이 병행했던 서일은 이렇듯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였다.

중국 길림성 청파호에 있는 대종교 삼종사 묘역. 나철(羅喆), 김교헌, (金敎獻) 서일(徐一)이 안장되어 있다.

(출처: 통일뉴스 http://www.tongilnews.com/)

 

이 모든 일들은 서일이 대종교에 입교한 뒤 불과 10년 사이에 일어났다. 북로군정서의 총재로서 무장투쟁의 선봉에 섰던 모습과 대종교의 교리 연구와 교세 확장에 힘쓰던 두 가지 모습은 지금 생각해보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서일이 대종교의 주체의식을 몸소 실천한 결과였다.

 

불과 100년 전에 있었던 일임에도 오늘날 우리가 서일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공간은 중국 길림성 청파호에 있는 삼종사 묘역(사진) 뿐이다. 경전의 형태로나마 그의 목소리가 전해진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대종교의 존재 자체가 낯설어진 현실은 안타깝지만, 서일이 보여준 사상가로서의 면모와 실천적 행보는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따름이다.

 

40년 남짓한 세월동안 서일은 같은 시기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지식인들과 비교해보더라도 지극히 어려운 길만을 선택하며 살아갔다. 처음 가족들과 두만강을 건너는 길에 서일은 앞으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을까? 매순간 거리낌 없이 어려운 선택과 실천의 길을 걸어간 그의 모습에, 실천의 순간마다 머뭇거리며 방황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기고자: 김정철(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현재 17세기 조선의 예학사상과 관련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음악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하며, 역사와 문화 전반에 관심이 많다.

 

블로그진 ‘길 위의 우리철학’은 한국현대철학을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한국현대철학분과’에서 만든다. ‘길’은 과거로부터의 역사이기도 하고, 오늘의 삶이기도 하고, 미래로 열린 희망이기도 하다. 그 위에 서서 우리는 언제나 어느 길이 더 나은 길인지, 바른 길인지 생각하고 선택한다. 그렇게 ‘길’은 지향志向이기도 하고, 그래서 철학이기도 하다. 한국현대철학분과는 앞으로 월 2회 블로그진을 통해 우리철학이 서 있었던 길, 우리철학이 만들었던 길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1. 광장에 서다 – 촛불의 승리 그리고 박정희 시대의 종언 [길 위의 우리 철학] -1 : 박영미
  2. 대통령 탄핵, 그 후 – 박은식(朴殷植)의 개혁론, 독립운동, 임시정부 [길 위의 우리 철학] – 2 : 이지
  3. 송곡의 길가에서 최시형을 만나다 [길 위의 우리 철학] –3 : 구태환
  4. 붉은 얼굴의 경계인(境界人), 신남철 [길 위의 우리 철학] – 4 : 이병태
  5. 어린이를 노래하는 방정환을 만나다[길 위의 우리 철학] – 5 : 김세리
  6. 국가의 철학, 철학의 부재(不在), 안호상 – [길 위의 우리 철학] – 6 : 박민철
  7. 정치의 중심에서 주변을 배회한 타고난 근대인 몽양(夢陽) 여운형 [길 위의 우리 철학] – 7 : 유현상
  8. 우리, 나라, 사랑 – 윤치호와 관련한 애국에 대한 단상 [길 위의 우리 철학] – 8 : 배기호

 

 

 

 

 

 

 

 

 

[안내]한철연 2016년 가을 제51회 정기학술대회(12월3일,토)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6년 가을 제51회 정기학술대회

주제: 21세기 유교의 향방―탈경계시대, 유교 부흥과 전유
일시: 2016년 12월 3일 (토) 오후 12:30 ∼ 6:00
장소: 경희대학교(서울) 본관 2층 대회의실
 

  안녕하세요? 한철연 학술2부입니다.
  이제 가을의 막바지에서 어느 때 보다 황량하게 느껴지는 겨울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철연 가을 정기학술대회(심포지엄)가 열립니다. 이번에는 ‘21세기 유교의 향방─탈경계시대, 유교 부흥과 전유’라는 주제로 동양철학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장을 만들었습니다.

  20세기 전반기, 전통사회의 토대였던 유교는 몰락의 길을 걷는가 싶었으나, 20세기 후반 유교는 동아시아에서 열띤 열기 속에서 부활하였습니다. 하지만 유교가 현대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의미 있는 토론보다 ‘동아시아의 특수한 근대화’를 설명하는 논리, 또는 정당화의 논의에 머물렀습니다.

  90년대 아시아적 가치 논쟁을 필두로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국제적인 호소력을 갖기에는 미진합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유교’는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중국과 한국 모두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는 과거 80년대 중국에서 일어난 문화열에 관한 객관적 조망과 현대신유가에 대한 비판적 토론을 한 바 있습니다. 그러한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이제 다시 소리 없이 확산되어가는 탈경계시대 ‘유교’의 다양한 흐름과 방향을 점검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부디 많은 회원들께서 참석하시어 우리의 학술 얘기와 지금의 현실 얘기를 같이 논할 수 있는 치열한 토론 자리를 만들어주시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학술2부 드림

 

학술대회 일정

일 시 발 표 및 내 용 비 고
제 1부

12:30~

14:30

12:50~

13:00

개회사

축사

회장

이사장

13:00~

13:30

1부 다시 유교의 시대가 도래하는가?

발표주제 1

21세기 중국, 제국인가 민주인가-소프트 파워와 모더니티의 문제

발표자: 조경란(연세대학교)

논평자: 이지(이화여자대학교)

1부 사회자 :

이병태(경희대학교)

13:30~

14:00

발표주제 2

 21세기 유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경계를 넘을 수 있는가?      – 어울림의 공동체 사회 건설의 논리를 중심으로

발표자: 이철승(조선대학교)

논평자: 김원열(한국철학사상연구회)

14:00~

14:30

발표주제 3

  유교와 현자 지배 체제 – 현대 중국의 정치 체제

발표자: 손영식(울산대학교)

논평자: 김동민(한밭대학교)

  14:30~

14:40

쉬는 시간  
제 2 부

14:40~

16:50

14:40~

15:10

2부 탈경계시대의 유교, 회고와 전망

발표주제 4

  유학과 서양철학의 만남은 어떻게 이뤄졌나?

발표자: 박영미(한양대학교)

논평자: 김재현(경남대학교)

2부 사회자 :

박민철(건국대학교)

15:10~

15:40

발표주제 5

  탈경계시대, 여성주의 유교는 가능한가?

발표자: 김세서리아(이화여자대학교)

논평자: 한영희(전북대학교)

15:40~

15:50

쉬는 시간
15:50~

16:20

발표주제 6

  유학과 서학: 유학의 변용과 확장

발표자: 김선희(이화여자대학교)

논평자: 김갑수(호원대학교)

16:20~

16:50

발표주제 7

 안회의 눈물 – 도통(道統)은 정말 계승되었는가?

발표자: 김시천(숭실대학교)

논평자: 심의용(숭실대학교)

16:50~

17:00

쉬는 시간  
종합

토론

17:00~

18:00

전체 집담회 및 종합 토론 종합토론 사회자:

김교빈(호서대학교)

종합토론 이후에는 약 30분 가량 총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오시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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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는 길 위치와 교통편 자세한 안내(홈페이지 접속)

http://www.khu.ac.kr/university/campus/seoulcam_location.do

주차료 : 학회, 행사 참석자 1,500원/4시간

오딧세이적 주체, 오이디푸스적 주체, 사드적 주체: 영화 ‘아가씨’와 주체의 담론들 [나인당케의 단상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상이한 형태의 주체들이다. 영화는 각기 다른 권력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주체들의 관계의 형태들을 보여줄 뿐 아니라, 이 관계들이 전복되며, 하나의 주체가 다른 형태의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 즉 주체의 고양 과정 역시 보여준다. 즉 영화 곳곳에는 주체의 위치변경과 고양을 암시하는 장치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아가씨>는 한 편의 성장드라마이자, 계몽주의 시기에 연원을 두고 있는 ‘교양(Bildung)소설’의 현대적 버전으로 읽히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주체의 고양의 귀결이 주인공이 속한 하나의 세계(한 평생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집)의 붕괴와 성공한 탈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즐거움은 극대화된다.

 

여러 가지로 <아가씨>의 전편과 같은 느낌을 주는 <친절한 금자씨> 역시 이러한 주체의 고양을 화두로 던진다. 그런데 금자의 변신이 배신과 감옥생활 속에서 얻은 스스로의 깨우침에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복수라는 달성해야 할 분명한 목적에 의한 것이라면, <아가씨>에서 두 여성의 각성은 서로가 서로의 삶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한 것이다. 즉, 주체의 각성이 가능한 조건에 대한 물음은 주체들 사이의 새로운 관계설정에 대한 물음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새로운 관계설정은 금자가 자신의 딸 앞에서 죄를 고백함으로써, 즉 내러티브의 결과로 도달한 지점이다. 그러나 <아가씨>에서는 이러한 관계의 전도가 그 자체로 사건을 촉발시킨다.

 

이 점은 서로를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희생물로 대하던 두 사람이 어떻게 이 관계를 전도시키고 소통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고찰 속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질문을 이렇게 요약해 보자. 오딧세이적 계략의 두 주체는 어떻게 타자에게 자신을 개방하는가?

 

오딧세이적 주체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에 등장하는 신화 속 오딧세이의 모험과 귀향 과정을 “주체의 근원사”로 파악하여, 그 안에서 근대적 주체의 원형을 발견하는 것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 그 중에서도 아도르노가 작성한 오딧세우스에 대한 보론의 핵심이다. 그에 따르면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목적(이타카로의 귀향)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지략을 도구적 합리성으로 사용하는 근대적 부르주아 주체의 원형이다.

 

02691_D잘 알려진 시레네의 노랫소리에 관한 에피소드에서 오딧세우스는 부하 병사들이 시레네의 유혹을 듣지 못하도록 그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은 뒤 자신은 배의 돗대에 몸을 묶어 이 유혹을 통과한다. 키르케의 유혹과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위협을 물리치기 위한 과정에서도 오딧세우스는 지략을 발휘해 위기를 극복한다. 자신의 지략을 통해 상대를 물리치고 목적을 달성하는 주체의 모습 속에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부르주아적 차가움(bürgerliche Kälte)”의 원형을 발견한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타자를 희생시키는 근대적 주체의 유아론적인 태도 속에는 먹잇감을 희생시켜 자신을 보존하려는 맹수의 냉혹함이 내포해 있다. 이타카에 도달한 오딧세우스는 아들과 함께, 자신의 아내를 유혹하던 구혼자들을 잔혹하게 살해한다. 물론 서사시인 호메로스는 이 과정을 모험담이자 영웅담으로 미화한다. 부르주아적 주체의 영웅담을 ‘기업가 신화’로 포장해 미화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눈에 간계를 사용해 목적을 달성하는 오딧세우스의 모험담은 그 자체로 근대 부르주아 주체의 냉혹함의 원형일 뿐이다.

 

히데코와 숙희는 모두 이루고 싶은 자신의 이상을 위해 상대를 희생시키려는 계략의 주체였다. 숙희는 히데코를 백작과 결혼시킨 뒤 정신병원에 보내 그녀의 재산 중 일부를 가로채 신분상승을 이루려는 목표가 있었다. 히데코는 거꾸로, 그러한 숙희를 속여 자기 대신 병원에 가두고, 자신은 숙희의 이름을 빌려 이모부 코우즈키의 집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누리려고 했다. 둘은 모두 백작이라는 고리의 매듭과 공모하여 서로를 희생시키고자 했던 오딧세우스적 계략의 주체들이었던 것이다. 히데코가 백작과 결혼하도록 앞장서는 숙희의 모습과, 숙희의 어리숙함을 확인한 뒤 안도하는 히데코의 모습은 그러한 계산적 주체의 냉혹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 계략적 태도의 반전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아가씨와 하녀. 서로 양 극을 이루는 두 주체는 서로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일찍 부모를 잃고 외톨이로 살아가는 히데코를 씻기고 입혀서 아름다운 공주로 만드는 것에 보람을 느낀 숙희는 히데코의 어머니가 된다. 그녀는 모든 것을 가진 히데코에게서,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소문난 미인이었던 어머니의 사진을 보여주며 ‘난 엄마만 못하다는데…’ 하고 하소연하는 히데코의 모습은 전설적인 소매치기였던 어머니의 모습을 소문으로만 기억하는 숙희 자신의 모습의 투영이다. 모든 지각은 투사 과정이라고 <계몽의 변증법>의 저자들은 말한다. 히데코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한 숙희의 마음은 그러나 대상을 자기화하려는 동일성원칙의 주체와는 다르다. 그것은 오히려 상대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알고 함께 아파하는 미메시스적 주체의 모습에 가깝다.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나봐’라는 히데코에 말에 ‘어머니는 아가씨에게 널 낳고 죽으니 괜찮다고 하실 거에요’라고 말해주는 숙희. 이 말은 그 자신이 여두목에게 직접 들은 말이기도 하다. 자신의 아픔을 위로해주는 말로 상대를 위로하는 숙희와, 그러한 위로의 말로 상처를 달래는 히데코의 동병상련은 이 두 주체가 서로를 희생물로 보지 않고 또 다른 나의 모습으로 느끼는 계기가 된다. ‘넌 내가 불쌍하니? 난 네가 불쌍해’ 하고 자살을 시도하던 히데코는 말한다.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연민하는 관계는 불행하다. 그러한 관계는 연민하는 자와 연민을 받는 자 사이의 위계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가 각자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이뤄지는 아픔의 공유는 둘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만든다. 연대는 그러한 수평적 관계에서 비로소 가능하다.

 

두 주체는 이제 여성적 연대를 이룬다. 계략을 통한 주체에서 연대하는 주체로 고양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연대의 계기는 상대의 고통에 대한 연민, 그리고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이해하는 공감이다. 그러나 두 주체의 관계는 공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두 여성은 자신들이 각기 다른 남성적 주체들 – 이모부와 백작 – 의 또 다른 희생물이라는 자각에 이른다. 이제 이 상호 연대는 또 다른 주체들에 대한 대항의 관계로 전화된다. 고통받는 자들의 연대는 그러한 고통을 자신의 양분으로 삼는 다른 주체들의 지배에 대한 거부의 원천이다. 이 또 다른 주체들, 그들은 극도의 거세컴플렉스를 지배본능으로 전화시킨 남성들이다.

 

오이디푸스적 주체

 

IngresOdipusAndSphinx잘 잘려져 있듯이,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유아가 겪는 최초의 성애가 어머니를 대상으로 한 근친적인 성격을 가지며, 아이는 어머니를 소유한 아버지의 존재로부터 자신의 존재 위협을 느끼고, 이 관계를 내면화함으로써, 즉 아버지의 지배권을 인정함으로써 오이디푸스기를 극복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오이디푸스적 주체는 그의 근원적 사랑의 대상을 상실했다는 결여감을 무의식 속에 간직하고, 내면화된 아버지의 권위(초자아Überich)에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이드Es)을 희생시켜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다.

 

프로이트는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오이디푸스를 극복하는 과정을 서술한다. 그에 따르면, 남자 아이는 처음에는 여자들도 자신과 같은 남근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우연히 보게 된 다른 여자아이의 성기에 남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아이는 자신의 남근도 거세될 수 있다는 공포를 겪는다. 아버지의 지배질서는 이러한 거세위협을 가하는 존재로 체험된다. 이는 아이가 그토록 쉽게 원초적 사랑의 대상인 어머니를 포기하고 아버지의 규범을 받아들이는 이유로 설명된다. 오이디푸스적 주체는 동시에 거세위협을 겪는 주체이며, 그러한 위협 앞에 자신을 희생시킨 주체다. 이 위협의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아이는 스스로 아버지가 되는 길을 택한다. 즉 스스로 지배자의 위치에 오른다면 남근이 거세되지 않을 것이라는 상상 속에서 자신을 아버지와 동일시하게 된다. 남성적 리비도가 지배본능과 결합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여자 아이는 자신에게는 없는 남근을 남자는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뒤 그것을 부정하거나 거세 위협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들은 이 사실을 즉각적으로 수용하고 남근선망에 빠진다. 즉 남자가 되고 싶고, 남근을 갖고 싶다는 불가능한 소망을 갖게 된다. 이제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맞물려, 여아는 자신을 결여된 존재로 자각한다. 이는 여자 아이가 수동적인 존재로 자라나는 이유로 설명된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서, 신경증의 발병은 이 두 콤플렉스, 즉 거세콤플렉스와 남근선망의 극복과 관련되어 있다.

 

왼 손의 다섯 손가락이 모두 잘리고, 오른 손에도 구멍이 뚫리는 극한의 고통을 경험하고 죽음에 이르는 최후의 순간 백작의 입에서 발화된 말은 “자지를 지키고 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는 것이다. 이 순간은 실제로 히데코의 이모부가 그의 성기를 거세시키기 직전에 벌어진 상황이다. 남근을 지키고 죽는 것이 다행이라는 그의 말 속에서 백작은 극단적인 거세콤플렉스를 겪는 오이디푸스적 주체로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박찬욱의 이전작 <올드보이>의 오대수 역시 혀를 희생시킴으로써 남근을 지킨 인물이다. 누나의 죽음에 복수하려는 이유진이 그에게 ‘이유진의 자지가 아니라 오대수의 혀가’ 자신의 누나를 (상상) 임신시켰다고 분개하자, 오대수는 그에게 무릎을 꿇고 자신의 혀를 스스로 절단한다. 이처럼 누나를 임신시킨 ‘상징적’ 남근을 제거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실제적 남근을 지킬 수 있었고, 딸인 미도와의 근친적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백작과 오대수는 모두 남근을 지키려는 남성 주체들의 거세공포를 재현한다.

 

백작의 거세공포는 거꾸로 그로 하여금 자신의 남근이 갖는 ‘권위’에 집착하게 만든다. 숙희를 협박할 때 그는 그녀의 손을 자신의 성기에 강제로 접촉시킨다. 이것은 자신의 말에 ‘남근’이라는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남근에 맹세하건데’ 나의 말은 장난이 아니라는 위협이다. 그는 여성의 남근선망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그러나 숙희는 그의 위협에 순종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에게 ‘어린애 장난감 같은 X대가리’를 치우라고 함으로써 이 남근의 권위를 조롱해버린다.

 

히데코의 이모부 코우즈키 역시 남근의 형상을 자신의 권위의 지표로 삼는다. 남근의 권위를 상징하는 뱀의 형상은 넘어서는 안 될 금기를 지시한다. 이 비밀 장서관에서 행해지는 일들을 알려고 해서도 안 되고,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의에 의해 도망쳐서도 안 된다. 뱀 조각은 넘지 말아야 할 한계를 지칭한다. 뱀은 그의 장서관에서 행해지는 음란한 독서회를 지키는 수호신이다. 히데코와 함께 도주하는 날, 숙희는 히데코가 강제로 낭독해야 했던 책들을 내다버리고 이 뱀 조각을 잘라버린다. 그것은 오이디푸스적 주체들이 만들어 놓은 남근의 권위와 금기에 대한 도전이며, 동시에 ‘남근선망은 없다’는 것을 반항적 행위로 표현한 것이다.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두 여성은 남성의 고환을 상징하는 방울들을 주고받으며 사랑의 유희를 나눈다. 권위와 금기를 상징했던,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남근은 이제 남성들의 질서에서 벗어난 두 여성들의 유희의 대상이 된다. 남근은 선망의 대상이기를 중단하고, 그 권위적 역할은 상대화되며 가치저하된다. 이제 두 여성은 오이디푸스적 주체를 극복하는 안티고네적 주체로 거듭난다. 오이디푸스의 (누이이자) 딸인 안티고네는 테베의 새로운 왕 크레온이 내린 금기, 즉 자신의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매장하지도, 장례를 치러주지도 말라는 명을 어기고 그의 시신을 매장한다. 지배자의 금기를 어긴 안티고네의 행위는 ‘인간의 법’과 ‘신의 법’의 이항대립이라는 사고를 낳았다. 인간의 법은 죽은 자에 대한 원한으로 그의 시신 매장을 금지했지만, 신이 내린 법은 사랑이라는 원초적 감정이 실정법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계명을 뜻한다. 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 안티고네는 죽음을 자초한다. 히데코와 숙희는 남근의 권위가 부여하는 법을 어김으로써 신의 법을 실행에 옮긴 안티고네의 후예들임을 드러낸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귀족 집안의 상속녀 히데코의 삶을 망치는 것은 동시에 그녀를 구속에서 해방시켜 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좁은 삶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는 남근이 부여한 금기와 질서에 순응해 왔던 삶을 붕괴하는 것과 동일한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붕괴는 기존의 주체가 새로운 주체로, 즉 자기 욕망에 대한 무한한 긍정의 주체로 탄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무한한 욕망을 즐기는 사드적 주체 말이다.

 

사드적 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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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즈키의 비밀 장서관에서 열리는 낭독회에서는 사드를 흉내낸 일본인 작가의 포르노 소설이 낭독된다. 코우즈키는 실제로 사드의 <소돔 120일>에 등장하는 사악한 주인공들을 연상시킨다. 자신의 욕정을 실행하기 위해 닥치는대로 살인을 하고 음모를 벌는 사드의 인물들과, 아내를 버리고 새로 맞은 일본인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하며 조카를 자신의 욕망에 동원하는, 그리고 관음증적인 성적 도착에 탐닉하는 코우즈키는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선과 악의 경계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원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얻으려 하는, 악덕의 관능을 예찬하는 사드적 인물이다. 그의 대저택과 비밀장서관은 <소돔 120일>에서 6개월 간 향락과 폭력의 잔치가 벌어진 블랑지스 공장의 대저택을 연상시킨다.

 

<소돔 120일>은 사드가 12년간의 감옥 생활중 쓴 책으로, 이 책에서 묘사된 악덕과 폭력, 광기, 온갖 종류의 도착적 성행위들은 악덕을 지지하고 도덕에 분개했던 작가 사드의 상상력의 결정체였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고, 바스티유 감옥이 습격을 받아 그가 풀려난 뒤, 그는 좀 더 절제되고 명료한 언어로 자신의 사상을 가다듬는다. 그의 성과 정치에 대한 관점이 집약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규방철학>에서 사드는 프랑스혁명이 몰고 온 악습에 대한 대대적인 철폐작업이 일상을 구속하는 구 시대의 성도덕에 대한 폐지와 해방으로 한발 더 나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생땅쥬 부인의 별장 규방에서 벌어지는 향락은 이제 새로운 시대 리베르탱이 지녀야 할 철학적 입장을 배우고 그것을 몸소 구현하기 위한 교육의 역할을 맡는다. 구 시대가 강요하는 성도덕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데 모든 힘을 기울이라는 돌망세와 쌩땅쥬 부인의 가르침은 새 시대의 리베르탱들에게 전달하는 사드의 호소였다. “한 마디로, 성교하고 성교해라. 바로 그것이 네가 세상에 나온 이유다. 네가 가진 힘과 의지 말고는 네 쾌락에 구속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새 시대의 도덕은 성과 욕망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욕망이 제기하는 충동과 그 흐름이 곧 도덕이 되는 것이다. 이 도덕은 인간이 종교의 허울을 쓰고 만들어낸 관습이 아니다. 새로운 도덕, 즉 향유하라는 도덕은 자연이 우리에게 욕망을 부여하고 그것을 실현할 신체적 에너지를 줌으로써 명령한 우리의 존재 목적을 실현하는 일이다. 즉 자연이 부여한 목적이 바로 입법의 원리가 된다.

 

집 밖으로는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히데코는 <규방철학>에서 모친의 강요로 수녀원에 가야 했던 소녀 으제니를 닮아 있다. 돌망세와 생땅쥬 부인의 교육을 받는 학생 으제니는 넘쳐나는 호기심과 놀라운 습득력으로 그들의 스승들을 들뜨게 만든다. 히데코는 숙희의 제자가 되어 그녀에게 성적 욕망을 해소하는 법을, 그리고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스스로를 기꺼이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에게 내맡기고 탈주를 실행하는 히데코는 자신의 충동 외에 그 어떤 도덕적 규칙에도 순응하지 말라는 사드의 계명에 충실한 사드적 주체다. 즉 <아가씨>에는 두 가지 사드적 주체가 등장하는 것이다. 하나는 <소돔 120일>의 사드적 주체인 코우즈키이고, 다른 하나는 <규방철학>의 사드적 주체인 히데코다. 이들 중 누가 진정한 사드적 주체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사드는 도덕적 판단에 무관심했던 인물이고, 누가 ‘진정한’ 주체냐는 식의 물음에는 하품을 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어떤 욕망의 주체를 긍정할 것인가 하는 물음은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히데코와 숙희는 오딧세이적 계략의 주체에서 연대하는 미메시스적 주체로, 오이디푸스적 남근선망을 거부하는 안티고네적 주체로 고양되는 과정에서 으제니의 모범에 따라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는 사드적 주체에 도달한 어떤 주체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아가씨>는 주체의 담론에 대한 영화로 이해될 수 있다.

 

섦 [별과 달과 바람의 노래]-17

 길

김설미향(그림책 작가)

한없이 낯선, 한없이 내려가는 그 길을 가면
체를 걸러 면을 만들라고 하고
한없이 위를 보라한다.
위를 보면 길을 걸을 수도 없다.
아래를 보고 한발한발 걸을 때
구멍송송 걸른 체 사이로 버려질 것은 버려지고
사이로 들어오는 바램은 얼굴에 맞닿아 바람을 일으킨다.
그 곳에는 굳이 채워야 할 것도
내세워야 할 것도 필요하지 않다.
바람 한점 없는 굽은 땅에
저절로 바람은 분다.
바람은 항상,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
내가 머무는 곳에, 내가 가는 곳에.

2016-6-29

작가의 블로그 http://dandron.blog.me

이시대와철학2016-6-29 길 copy


작업노트

아직 푸른 잎이 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앙상한 나무를 마주할 때
나무의 선을 따라 그려지는 가지의 선은 사람들의 발길 닿는대로
만든 길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지는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여 무수한 길을 만들어내듯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가 있는 인위가 만들어낸 복잡한 공간 현상에서
새로운 곳으로 떠나 자연이 숨쉬는 산을 오르고 내려가며
아무것도 없었을 그 곳에 많은 사람이 밟고 지나갔을 새 길이 다져져 있음을 봅니다.
자연의 한숨 한숨과 이웃하며 사람들의 공간을 내려다보면
삶을 너무 틀에 가둬 살았다는 생각이 들고 가슴 한 곳의 무거움이
어느 한 순간 가벼움으로 바뀝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참으로 시원해지는 순간입니다.
어렵지 않게 스스로의 발이 가는 길을 바라보기도 하며
노래하는 새들을 바라보기도 하며, 척박한 공기에 어느 순간 바람이 불어오면
어지럽게 춤을 추는 나무를 보기도 하며, 세상의 소리도 듣기도 하며
바람의 노래를 듣기도 하며 자신이 만들어가는 길에서 가는 방향에 따라
새롭고 다른 형태의 길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밟아가는 그 모두의 여정은
아름다운 길이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