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신화, 그 불편함에 대하여[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무한 경쟁 시대의 모성

왜 나는 요즘 여성주의(페미니즘)에 시큰둥하는가? 여성주의의 가치로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패배주의에 빠졌기 때문에? 여성주의에 힘을 보탰던 진보의 목소리를 사그라지게 만든 지금의 상황 때문에? 미래를 짊어질 젊은 층이 스펙 쌓기에 여념 없고 정치적인 무관심을 넘어서서 아예 보수화되는 듯한 모습이 목도되기 때문에? 혹은 여성주의를 못난 여성들의 푸념거리로 치부해 버리는 냉소주의가 만연하기 때문에?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막연한 낙관주의적 열정이 시들어버린 지금,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무기력감이 여전한 즈음이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길고 더웠다. 가마솥 더위, 불볕 더위, 찜통 더위에 부엌에서 가스불을 켜고 매일 밥해 먹는 것은 무엇보다도 끔찍한 일이었다. 당장 부엌문을 닫아 집안 살림 다 팽개치고 북극이든 남극이든 줄행랑치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다. 예전에 소설가 김훈의 에세이집 제목인 『밥벌이의 지겨움』이 나에게는 정말 엄마 노릇하기, 주부 노릇하기의 지겨움으로 다가 왔다.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이 삼복 더위에 어땠을까?

우리가 기억하는 어머니상은 언제나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 자신을 지워가면서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 감수하는 엄마이다. 이러한 어머니상은 당당한 현대 여성의 모습이 주류인 이 시대에 박물관에나 전시되고 말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성장한 현대 여성들은 이러한 어머니와 다른 것일까? 희생의 대명사였던 전통적 어머니와 자식 교육에 올인하는 요즘의 현대 엄마들은 모성에서 과연 차이가 있을까? 무한 경쟁 시대, 자식을 살아남게 하기 위해 현대의 엄마들은 더 지독한 모성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시대, 모성 이데올로기는 표나지 않은 채 교묘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막강한 모성 이데올로기는 미래를 바꿔 보려고 몸부림치는 여성주의자들이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철옹성, 산성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무한 경쟁 시대, 내 자식만 잘되고 남의 자식은 어떻게 되더라고 상관없다는 막가파식의 모성 이데올로기가 나를 숨막히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강한 모성을 대놓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나는 주변에서 별로 만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강한 모성과 강한 엄마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살벌한 경쟁의 시대, 그리고 무능한 엄마를 질타하는 사회.

나는 왠지 엄마가 주인공이거나 제목인 것은 나도 모르게 외면해 버리고 마는 의식적, 무의식적 습성이 있다. 나도 모르게 ‘엄마’라는 상표로 포장된 많은 드라마, 소설, 영화에 경계심을 갖게 된다. 왜일까? 이러한 것들이 모성 신화를 부추길 것이 뻔해서, 왠지 ‘엄마’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눈물샘에 자극되는 것을 두려워한 까닭에? 누구나 다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다 엄마가 있는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엄마는 영원한 소재가 되고 있다.

잃어버린 모성 신화를 찾아서

작년 2009년 인터넷에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이 은밀하게 독자들에게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 소설의 경우, 출판사들이 앞다퉈 베스트셀러를 만들려고 요란한 광고를 해 대는 것과는 달리, 독자들 스스로가 자기 고백, 고해 성사 식으로 『엄마를 부탁해』를 읽은 소감을 인터넷에 토해 낸다는 것이다. 이런 입소문을 타고 조용히 『엄마를 부탁해』는 100만부를 넘는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기사가 영 마땅치가 않았다.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커녕, 이 소설에 열광하는 독자들의 미묘한 심리가 이해되지 않거나 이해하고 싶지 않은, 어떤 마음의 뒤틀림이 있었다. 흥! ‘엄마’라는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감동적인 상징이 우리의 정서를 어떻게 뒤흔들고 있는 것일까….. 하는 꽁한 마음이 있었다. 그 후로도 나는 그 책을 읽지 않고 계속 피해 다녔다. 왜 그랬던 것일까? 그 책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 있었던 것일까? 왜 나 혼자서 그 책에 대한 일종의 마녀사냥(?)을 해대고 있었던 것일까?

예전에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은 기억이 있다. 문단에서는 신경숙 특유의 지독히도 섬세하고 내면을 긁는 문체를 놀라와 했다. 나는 『풍금이 있던 자리』에서는 그다지 감응을 얻지 못했는데, 우연히 손에 넣은 『외딴 방』을 읽고서는 신경숙의 또 다른 신선한 충격과 감동의 전율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가 유난히 더웠던 이번 여름 방학 때 미뤄 놓았던 숙제를 해 내야 하는 의무감에서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을 드디어 손에 넣고 읽기 시작했다. 내가 산 책은 벌써 137쇄를 거듭하고 있었으니, 137만부 이상 팔려 나갔다는 소리가 된다.

이 책은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한 줄의 문장으로부터 시작한다. 1인칭인나, 3인칭인 그, 그녀가 아니라, 2인칭 ‘너’가 등장함으로써 일단 독자의 호흡을 확 밀어 당긴다. 그리고 에필로그는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개월째다.”로 시작해,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로 막을 내린다. 소설 속에서 엄마는 아버지, 장남, 장녀 등 가족들의 무관심과 방치로 이미 실종된, 존재하지 않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다만 가족들의 기억의 편린 속에서만 엄마는 아련하게 혹은 선명하게 떠올려질 뿐이었다.

우리의 현실에서 엄마는 언제나 당연히, 우리가 호출하면 금방 달려 와 줄 존재로 각인된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엄마의 존재를 무시하고 망각한다. 엄마에 대한 이러한 미안함, 죄책감이 독자들을 다 한꺼번에 엄마의 실종 사건의 공범으로 만든다. 독자들은 눈시울이 뜨거워지거나 가슴이 뭉클해진다. 『엄마를 부탁해』를 한 번 손에 넣고 읽기 시작한 독자는 쉽게 책을 놓지 않는다. 이 독자들이 이 소설의 조용한 신드롬에 일조한 것이다.

이렇게 처연한 심정으로 이 소설을 읽었을 많은 다양한 독자들의 심정을 알 것도 같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좀 불편했다. 작가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으나, 엄마의 희생적이고 감동적인 모습보다는, 엄마를 희생양으로 삼아 만들어지는 ‘모성 신화’의 혐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 하필 힘빠지는 이 시절에 ‘엄마를 부탁해!’ 일까 하는 짜증도 섞여 나왔다.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는 매우 강한 엄마이다. 현대의 젊은 유능한 엄마와 속성은 다르지만, 마치 가제트 형사처럼 부엌에서 뚝딱 어떠한 것도 만들어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의 모습과 닮아 있다. 다만 가끔 끝없이 이어지는 농사일과 부엌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항아리 뚜껑들을 신나게 깨서 풀고, 헛돈 들여 다시 사는 일을 되풀이하기도 한다. 슬쩍 웃음이 나오는 인간적인 면모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 소설을 읽은 후, 나는 『엄마를 부탁해』의 신드롬 현상을 조망하는 몇몇 평론들을 읽어 보았다. 이 소설에 대한 평단의 평가는 다소 엇갈렸다. 대체로 남성 평론가들은 이 소설 속의 감동어린 엄마의 모습을 그린 작가의 노고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 반면에 여성 평론가들은 조금은 인색하게 엄마의 감동을 담거나, 엄마 바이러스, 엄마라는 유령, 엄마에 대한 비판적 읽기 등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공간에서 모성의 의미를 재평가하였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져서 이 책을 읽고 올린 독자들의 댓글을 대강 주욱 훑어 보았다. 이 소설의 그 엄청난 독자들의 반응을 일일이 다 점검할 수는 없었지만, 전반적인 기조는 알 듯도 했다. 이 책의 독자들은 누구인가? 그야말로 다양한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중년층 독자들의 목소리가 들려 오기도 했다. 장남, 장녀인 중년층은 유년기 시절 기억 속에 남아 있었던 엄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눈물을 훌쩍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아마도 장남 콤플렉스, 장녀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들이 불러낸 엄마 바이러스가 전염이 되어 엄마의 유령이 출몰하고 실종된 엄마를 애도하면서 자신 속 깊이 엄마에 대한 죄의식을 씻어 내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모계 사회로의 회귀인가?

한국 사회 현대 여성의 모성성은 전통적인 어머니상과 결별했는가? 혹시 현대판 새로운 모성 신화가 창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직도 우리는 엄마라는 유령을 신격화해서 모성 신화를 쓰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고달프고 힘든 삶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엄마를 희생양으로 삼는 교묘한 공범자들은 아닌가? 엄마라는 영원한 고향을 아우라로 만들어 엄마를 착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부권이 무너진 사회 속에서 여전히 우리들은 누군가 의지하고픈 도피처를 찾는 것일까? 아버지 없는 사회에서 이제 대신 어머니를 내세우고 있는가? 그러나 이 방법은 좀 비겁한 것은 아닐까? 전통적인 어머니를 불러내, 그 어머니를 희생양으로 세우고 그 희생양 속에 죄의식을 떨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엄마를 부탁해』의 에필로그에 나오는 피에타상의 성모마리아에 비유되는 어머니. 짐짓 모성 신화의 냄새가 나지 않은가. 불편하다. 성모마리아의 온화함 속에서 이미 사라져 버린 권위의 상징인 대타자를 찾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이 피곤한 시대에 영원한 안식처로 인식되는 어머니 품! 고단한 일상 때문에 어머니 자궁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본능 회귀가 있는가?

왜 『엄마를 부탁해』에 많은 독자들이 빠져 드는가? 권위적인 아버지가 사라진 시대, 사람들은 뭔가 허전해 하는 것일까? 우리는 피에타상에 각인되어 있는 성모마리아, 희생의 화신인 어머니를 다시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러한 신드롬 현상에 심드렁하다. 새로운 모계 사회로 가고픈 대중들의 열망을 슬쩍 엿보았기 때문일까?

여성주의자들은 미래 어떤 사회를 희망하는가? 대중은 어떤 사회를 희망하는가? 여성주의자들은 가부장제가 하루바삐 멸망하기를 희망한다. 대중의 바람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고단함과 불안함을 보듬어 줄 새로운 권위인 대타자를 희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열망이 새로운 모계 사회와 비슷한 것은 아닐까? 모계 사회로의 회귀! 여성주의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 전혀 달갑지 않다.

시중에 여성주의자들은 모계사회로의 회귀를 반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듯하다. 이것은 전혀 오도된 일임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 드센 여성들의 이미지를 한껏 받고 있는 여성주의자들이 부권을 패스받아 새로운 강권한 모권 사회를 건설하려고 한다고 생각한다면,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러한 일은 나도 뜯어 말리고 싶다. 어떤 신화도 만들어내지 않는 사회, 어떤 우상도 내세우지 않는 사회, 이러한 사회가 진짜 우리가 꿈꾸는 사회가 아닐까?

여성주의에 시큰둥한 요즘, 그래도 나는 모계 사회로의 회귀를 꿈꾸지는 않는다.

연효숙(연세대) / adin@admin.com

‘OO녀’에 대한 ‘꼴페’의 단상[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요즘 여자애들 왜 이래?

전국민의 일촌화에 힘쓰는 모 사이트 뉴스 페이지에 가면 하루가 멀다 하고 남녀가 편을 갈라 싸운다. 남성들은 요즘 여성들이 자기들 편의에 따라 남녀평등을 부르짖었다가도 남성들에게 남성다움을 요구하는 이중인격자 된장녀 혹은 꼴페(꼴통 페미니스트의 줄임말)라고 비난하고, 여성들은 자신들이 직장생활 가사노동 육아까지 도맡아 하느라 괴로운데 남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고 비난한다.

만약 그 기사가 여성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를 다룬 것이라면, 그 내용에 상관없이 댓글의 단골 메뉴는 군가산점제와 출산, 가사 분담, 명품과 된장녀 등이다.

이 싸움에 적극적인 건 남성 쪽인데, 남성들은 온갖 성폭력적 언어와 욕설까지 섞어가며 여성들을 이기적이고 개념 없고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최근에는 ‘OO녀’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젊은 여성에 대한 비난이 보다 강화되고 가시화되는 듯하다. 비난을 당하던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은 이제 특정한 이름으로 불리면서 그 존재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된장녀, 루저녀, 군삼녀, 개똥녀, 발길질녀에 월드컵 열기를 타고 응원녀까지 도덕적 비난을 받는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인터넷 뉴스와 게시판을 장식하고 있다. 기본적인 상식이나 예의를 지키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물리적인 피해를 주거나 (특히 남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젊은 여성들에 대해 사람들은 “요즘 여자애들 왜 이래?”라고 묻는다.

왜 젊은 (특히 비혼의) 여성들이 비난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단순히 여자들이 잘못을 더 많이 저지르기 때문일까? 혹시 이 현상의 이면에 다른 맥락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행위를 한 여성들에게 잘못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남성이라고 그만한 ‘나쁜 짓’을 안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응당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요즘 여자들한테 왜 이래?”

‘OO녀’ 비난: 성별화된 윤리

어떤 행위의 당사자가 남성일 경우에는 대체로 그 ‘악’의 수위가 높아서 법적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OO남’이라는 별명을 붙여 사회 구성원들이 도덕적 비난을 가할 필요성이 낮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사실 잔혹한 살인사건의 가해자나 조직폭력 가담자들은 거의 남성이며, 성폭력과 가정폭력의 가해자도 대부분 남성이다. 전 국민을 상대로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정치인과 자본가도 대부분 남성이다.

이들 역시 강도 높은 사회적 비난을 피하기 어렵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법을 통해서 처벌을 할 수 있고 시민들이 나서기 전에 국가와 언론이 공론화를 하기 때문에, 공동체 구성원들의 도덕적 비난이 처벌을 대신할 필요가 없게 된다.

실제로 문제가 되었던 OO녀들은 대부분 법적 처벌이 곤란한 행위를 했지만, 공공질서를 해하거나 우리 사회에서 중요시하는 관습 또는 가치를 따르지 않은 경우이다. 개똥녀나 패륜녀가 그랬다.(*개똥녀 사건 당시인 2005년에는 처벌 근거가 없었다. 이제는 동물보호법에 따라 동물의 배설물을 치우는 것이 의무화되어 이를 어길 시 벌금을 물게 된다.)

하지만 발길질녀나 고양이 학대녀는 상황이 다르다. 남성이 벌건 대낮에 길거리에서 여성을 때리거나 임신한 여성에게 심각한 폭력을 휘둘러 유산에 이르게 한 사건들은 적지 않지만, ‘발길질녀’ 사건처럼 공론화되지도 않았고 사람들은 그 가해 남성에게 따로 별명을 붙여주지도 않았다. 또 많은 남성들이 고양이나 개와 같은 동물들을 심각하게 학대하고 죽이는 사건이 여러 번 있었지만, ‘고양이 학대남’이라는 말이 떠돌았던 적은 없었다.

법적 처벌이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동일한 유형의 행위에 대해서 그 행위 주체의 성별에 따라 비난과 낙인찍기는 그 방식과 강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OO녀’ 현상을 법적 처벌이 불가능한 일에 대해 도덕적 비난을 통해 처벌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어떤 행위에 대한 도덕적 가치판단과 그 판단에 따른 비난의 방식이 이처럼 성별화되어 있다고 한다면, 필자가 당장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OO녀 현상을 여성의 변화와 이에 대한 남성들/남성적 사회의 반응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소위 순종적이어서 그동안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젊은) 여성들의 비도덕적 행위가 상대적으로 큰 충격을 준다고 보는 것이다.

남자들의 비도덕적 행위는 워낙 빈번해서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지만, 남성에 비해 공공질서를 잘 지켜왔고 또 폭력과 관련해서는 주로 피해자였던 여성들이 규칙을 어기고 가해자가 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더군다나 여성이 가하는 ‘폭력’의 피해자가 남성일 경우, 남성들은 거의 공황에 빠지고 적극적이고 거칠게, 그리고 발 빠르게 이에 대응한다. 된장녀와 루저녀에 대한 비난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제 된장녀라는 말은 행위 당사자뿐 아니라 그와 비슷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는 듯 보이는 여성들을 싸잡아 이르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된장녀와 루저녀는 OO녀의 유형 중 남녀 간의 대립적인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들인데, 이들의 죄목은 간단히 말해 ‘남성감정상해죄’이다.

이들의 ‘잘못’은 사실 불분명한데, 왜냐하면 방송에서 표현한 자신들의 생각이 불특정 다수의 남성들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 뿐, 누군가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거나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된장녀는 돈 많은 남자를 노골적으로 밝힌 죄, 루저녀는 남성의 외모를 능력과 결부시켜 평가한 죄 때문에 비난을 당했다.

페미니스트로서 이 여성들의 사고방식에 결코 동의할 수도 없고 남성들이 기분이 상하고 화가 나는 것은 이해할만하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남성들의 반응은 사실 좀 호들갑스럽다. 텔레비전에서 남성들이 여성의 몸을 쇠고기 돼지고기처럼 부위별로 평가하고 여자는 예쁜 게 곧 착한 거라고 말하는 것이 어디 하루 이틀 일이던가?

예쁘기만 하면 왕자님하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감언이설로 어리고 젊은 여성들을 거울 앞에 묶어두는 것은 가부장제이고, 그 거울에 비친 여성의 모습이 바로 된장녀 아닌가? 전세계의 수많은 여성들이 매일 겪어내는 일들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도 되지 않는 말 몇 마디에 남성들은 상처를 받고 화가 나고 인격을 침해당했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이 보여주는 분노의 가장 큰 이유는 외모와 능력 면에서 이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그렇듯이) 특정한 젠더 역할과 이상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들의 분노가 정당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필자가 궁금한 것은 각종 OO녀들에 대한 비난의 이유가 아니라, 그런 현상이 최근 몇 년 간 폭발적으로 나타나는 사회문화적 혹은 심리적 맥락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여성/ 여성적인 것의 배제와 편집증적 남성 주체

OO녀 비난 현상은 단순히 여성들이 더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이거나 여성들의 비도덕적 행위가 사회 구성원들의 비난 말고는 달리 처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이것은 분명히 여성의 ‘타자화’와 관련된다.

여성의 타자화는 이중적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사회와 문화는 여성을 배제한 채로 남성중심적으로 구성되며, 나아가 이 가부장제 질서는 여성/여성적인 것이 남성/남성적인 것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자를 열등한 것으로 취급한다. 이 질서에서 여성은 남성과는 다른 여성으로서 존재해야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차이가 아니다. 이는 남성이 가진 것을 갖지 못했다는 의미이거나 또는 가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의 차이이다.

OO녀 현상은 최근의 일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여성들은 남성과 유사한 행위를 하고서도 늘 더 비난받고 낙인찍히며 나아가 특별한 이름을 부여받아왔다. 성을 판매하는 여성들은 타락한 ‘윤락녀’로 불려왔지만, 남성인 성구매자들에게는 어떤 이름도 붙여지지 않았다. 또 다른 양상도 있다. 똑같이 록밴드를 좋아해도 남자애들이 좋아하면 마니아, 여자애들이 좋아하면 그루피라고 한다. 스포츠 신문이나 자동차 관련 잡지들을 사서 읽는 남자들은 패션잡지를 읽는 여자들만큼 할 일 없고 생각 없는 사람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남자들이 술판을 벌여놓고 나라걱정을 하면 그저 뉴스에서 귀동냥 한 걸 그대로 읊어도 토론이지만, 여자들이 커피를 마시며 일상의 희로애락을 나누고 덜어낼 때 그것은 쓸데없는 수다가 된다.

여성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문화적 현상들과 여성들의 욕망은 저급한 것으로 여겨져 온 것이다. 그것이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여성들의 젠더 정체성으로부터 길러진 것이든 아니면 진정한 여성 고유의 것이든 또는 그 둘 사이에서 개별 여성들이 겪게 되는 갈등과 협상과정으로부터 선택된 것이든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여성들을 낙인찍거나 가치절하하는 것은 남성중심의 문화에서는 너무나 익숙한 일이다.

최근에 좀 달라진 점이라면 소위 요즘 여성들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젊은 여성들은 더 이상 순종적이고 조신하고 착하지 않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했거나 독립하기를 원하며 자신의 성적 욕망을 표현하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느라 자신의 생각을 감추기만 하는 건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달라진 여성들의 모습을 페미니스트 주체라고 일반화할 수도 없거니와 앞에서 본 OO녀들은 오히려 남성중심 문화의 폐해를 무의식적으로 모방한 경우라고 말 하는 게 오히려 더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라도 우리는 여성들이 ‘히스테리’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주장들을 단순하게 받아들였을 때 히스테리가 여성의 병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자유롭게 말 할 수 없는 여성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히스테리아의 위치에 있었다. OO녀들의 욕망이 비록 ‘진정한’ 자기 욕망, 혹은 여성적 주체의 욕망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그들이 발화를 한다는 것은 분명 작은 변화이다.

그렇다면 남성들은? 남성들은 이런 변화의 속도만큼 빠르게 변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 변화에 대한 반응을 통해서 그동안 감춰져 있던 징후를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편집증이다. 사실 편집증에 걸리는 것이 주로 남성이라는 점은 그렇게 유명하진 않다. 편집증은 과도한 나르시시즘의 극단적인 경우의 하나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망상을 갖는 증상을 보인다. OO녀 현상에서 어쩌면 남성들의 편집증적 징후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성들의 변화에 남성들은 과도한 공포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나르시시즘적인 남성 주체가 자기를 중심으로 구성한 사회와 문화 속에서 여성들이 점점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들이 그 문화 자체를 위태롭게 할 때, 남성 주체는 그 주체의 자리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느낌으로써 엄청난 피해의식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

물론 이것은 그저 망상이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대개의 남성들이 편집증적 징후를 보일 뿐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성들의 항의가 단지 몇몇 여성들에 대한 맹비난에서 그치지 않고, 남녀 모두에게 압박을 주는 젠더 정체성의 가부장적 규정들을 바꿔내자는 주장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것은 역시 너무 큰 바람인 것일까?

황주영(서울시립대) /

나는 강간을 당했지만,말하지 않을 것이다[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지난 5월과 6월 두 번에 걸쳐 ‘버라이어티생존토크쇼’라는 독립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한 번은 NGA(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의 월례상영회에서, 또 한 번은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의 독립다큐멘터리 정기상영회에서였다. 두 상영회 모두 영화가 끝난 후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져서 감독의 영화작업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고민들을 생생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또한 그 자리에 모인 관객들과 함께 영화에 대해 공감하면서 감동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지난날의 나의 성폭력과 관련된 경험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렸다. 영화 속 그녀들과 감독의 진지하고도 유쾌한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영화를 보면서 나는 아픈 기억들을 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되새길 수 있어서 행복했다.

 

‘버라이어티생존토크쇼’ 포스터

모자이크 없는 버라이어티 쇼

‘버라이어티생존토크쇼’는 “모자이크? 음성변조? 그딴거 재미없어! 껍질을 벗고 나온 유쾌발랄한 수다”, “벌거벗고 세상과 마주하기. 피해자가 아닌 ‘독립생존자’로서의 목소리”를 모토로 내걸었다. 감독은 2005년 우연히 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하는 ‘생존자말하기대회’에 촬영을 나갔다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뉴스미디어에서는 사건 자체가 부각되는 데 비해 ‘피해자’들이 자신의 입으로 성폭력 경험을 얘기하는 것에서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감독은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과도 별반 다르지 않게 느꼈던 이런 경험들을 담아내서 영화를 만들기로 하였다. 영화 속 인물들의 생존담과 인터뷰, 평범한 남녀의 인터뷰, 성교육과 성문화 관련 다양한 이슈들, 뉴스와 사건들의 삽입 장면 등은 우리 시대 성문화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이러한 ‘보여주기’와 ‘말하기’를 통해 바로 우리가 말하고 들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버라이어티생존토크쇼’ : 우리 시대 성문화의 현재, 그리고 여성의 목소리

영화가 시작되면 성폭력사건에 관한 뉴스 방송 화면을 보면서 감독이 분노를 터뜨리다가 합기도장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전체의 발랄한 분위기와 맞닿아 있으며 세상을 향한 감독의 ‘하이킥’을 표현하는 장면이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관객들은 이 장면에 대해 질문을 많이 던졌다. 감독은 “운동을 하는 것이 호신술과 실제로 상관없으며, 자신의 몸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성폭력 경험에 대해 당사자인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로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또한 여성의 몸에 대한 경험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한 여성화가가 하는 말에서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생존자말하기대회에서 그녀는 어린 시절 경험을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하얀 스크린천에 새겨진다. “나는 강간을 당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작은 말하기 모임’에서 만난 네 명의 인물들의 삶에 들어간 카메라는 그녀들이 성폭력 경험을 다시 기억해내고 말해가면서 건강하게 자신의 삶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그녀들의 목소리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인터뷰는 우리 시대의 남녀의 성적인 경험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건강한 성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시도들도 보인다. 감독은 인물들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목소리들을 함께 배치하고 있다. 동시에 에필로그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을 (나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로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작은 말하기 모임에서 만난 매이는 당시 성폭력 사건 재판이 진행 중에 있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작은 말하기 모임에 처음 갔을 때 놀랐다고 말한다. 자신도 나름대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의연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발랄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그녀들은 피해당한 여성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공간을 찾아간 감독은 그녀들의 얘기가 살아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카메라에 그 공간을 담을 수는 없었다.

작은 말하기 모임에서 그녀들이 하는 말들은 검은 스크린에 자막처리가 되어 나온다. 하지만, 그녀들의 수다가 유쾌하고 발랄한 만큼이나 자막도 유쾌하고 발랄하다. 심지어 “당했어요”라는 말이 검은 스크린에 새겨질 때도 그 말은 무섭고 어둡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발랄하게 느껴질 정도다.

생존자 말하기 대회

성폭력상담소에서 2003년부터 진행한 생존자말하기대회는 처음엔 비공개였지만, 지금은 공개적으로 진행된다. 같은 곳에서 진행하는 작은말하기 모임은 외부에 공개되지는 않는다. 감독이 영화를 촬영하는 중에 그 공간에 생존자인 당사자 외에 여성학 연구자나 활동가가 참여해도 되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이러한 논쟁은 성폭력을 겪은 여성들이 타자화되거나 대상화되는 느낌이 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있었다. 안전한 자리라는 것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에 제한을 두지 않을 것을 주장하는 여성들의 경우는, 모든 여성이 생존자의 잠재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모든 여성이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영화 속 인물 중 한 명인 보짱은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이런 얘기들이 알려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보짱은 2007년 생존자 말하기대회에서 자신이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운동단체에서의 성폭력 사건의 경우, 조직의 논리와 부딪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것을 사건화하기도 힘들고, 또 사건화되었을 경우에 가해자의 인권을 유린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는 등 다른 사건들보다 복잡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보짱의 말은 그런 문제의 전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는 자신이 원래 남자같은 존재로 남학생들과 막역하게 어울려 지냈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여자임을 인식하게 됐다고 말한다. 자신이 여자로서 남자와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여자로 사는 게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현재 그녀는 여성학 연구자로 살아가고 있다. 감독이 내레이션을 통해 말하는 것처럼, 그녀가 여성학에 몰두한 이유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외부의 외침으로 이어지길 바라기 때문인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의 두 부류 – 남자와 생존자

그렇다면 이러한 성폭력들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통념처럼 ‘남성의 어쩔 수 없는 성욕, 여성의 잘못된 행실’로 인해 일어나는 것일까? 달빛시위 장면에서는 ‘왜곡된 성문화와 가부장제, 그리고 부당한 성폭력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발하는 목소리들이 들린다. 그녀들이 외치는 구호는 발랄하고 유쾌하다. 이를테면 “야한 옷이 무슨 상관 (술 마신 게 무슨 상관)? 성폭력은 가해자 탓!, 보호가 아니라 자유를 원한다!, 밤길이 위험하면 니들부터 들어가라!”는 구호들.

감독이 인터뷰한 중년의 한 남성은 여성들의 노출이 성폭력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또 다른 한 남성은 “사회적 통념으로 볼 때 안 좋은 부분이 여자쪽이 무거웠던 것은 사실인데, 그게 억압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한다. 영화를 보는 나도 이 말에 실소가 나왔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관객들은 이 말에 특히 어이없어하는 반응을 보인다.

달빛 시위 장면을 보여주면서 감독은 말한다. “나 역시 이 사회에서 생존자임을 깨닫게 된다. 21세기 대한민국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남자와 생존자.”

“아들아 축하해, 첫 사정.”

한새는 성교육 강사이다. 그녀와의 인터뷰, 그녀가 성교육을 하는 장면,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아들을 키우는 장면 등은 우리 사회의 성문화의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 한새는 생존자 말하기 대회에서 20년 동안 잊혔던 기억을 꺼내며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성교육 강의를 하던 중 자신 안에서 감쳐져 왔던 것들이 올라와서 강의를 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생존자 말하기와 작은 말하기, 성교육 강의를 해 나가면서 서서히 바뀌어 갔다고 한다.

그녀는 중학생인 아들에게도 성에 대해 건강한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한새의 아들은 성에 대해서 비교적 건강하고 자유로운 태도를 보여준다. 아들은 학교 답사를 다녀왔다가 엄마에게 도자기로 된 성기를 선물로 사왔다. 한새는 아들이 처음 사정을 했을 때 파티를 열어주었고, 아들이 자기에게 축하하는 내용을 담은 동영상을 만들었다.

그녀가 강의하는 학교에서는 유쾌한 분위기로 성교육이 진행된다. 하지만 남학생과 여학생들의 태도는 다르다. 남학생들이 훨씬 더 적극적이고 재미있게 반응한다. 여학생들은 한새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오히려 거침없고 솔직하게 말한다. 한 여고생은 여학생들조차 ‘걸레’라는 말을 쓰는 것을 비판하면서 “똑같은 몸이고 사람인데 왜 그런 말을 여자한테만 쓰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남자들의 인터뷰는 그들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성에 대한 인식을 획득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주로 야동을 보고 자란 남자들에게 각인되는 것은 여자는 (야동에서와 같은) 그 행위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오양비디오가 나왔을 때, 한 인터넷 회사의 가입률이 증가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콧구멍을 후비는 것으로 남녀간의 성관계를 이해했다는 한 남성의 얘기는 잘못된 성지식이 불러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이다.

한새는 자위에 대해서도 원래 죄책감을 갖고 있었으나 자신이 성교육 강사를 하면서 교육을 받던 중 그게 ‘괜찮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보지, 그리고 전시하기’라는 제목으로 한 대학의 성문화 연구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그린 성기가 전시된 장면에 대한 여학생들의 반응은 “민망하다, 창피하다”는 것이다.

수업을 들은 한 여학생은 이러한 수업내용에 대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부정적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그것은 개인의 사적인 영역이라면서 그림이 알려지거나 신상이 공개되는 게 두렵다고 말한다. 감독은 여기서 “은밀함은 안전을 요구한다. 그런데 안전이 깨졌을 때 해야 할 많은 얘기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며 다시 질문을 던진다.

성폭력 – 누군가에겐 추억, 누군가에겐 잊고 싶은 기억

자비는 성폭력 가해자에게 봉사를 시킨 발랄하고 유쾌한 여성이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야한 놀이를 하던 사촌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대화 중 “사촌들이 문제야”라며 깔깔거리며 말하지만, 이는 실제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가 가까운 사람, 잘 알고 있는 지인의 경우에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감독은 어린 시절 사진들을 스크린에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말하지 않은 비밀들, 기억들을 떠올린다. 겹겹이 감춰진 이야기들. 왜 말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다시 자신에게 질문한다. 야한 놀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비는 그 당시 야하다는 것은 알았으나 성폭력이 뭔지는 몰랐던 것 같다고 말한다.

성숙한 여자아이를 성적으로 괴롭혔던 자신들의 경험담을 남자들은 아무렇잖게 말한다. 반면에 여자들의 경험담은 어떠한가?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 남자들은 대개는 “다 어렸을 적 일인데 괜찮지 않냐”는 것이다. 남자들은 그 당시의 경험이 전혀 성희롱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남자들 대부분은 여자들이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말하지만 여자들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뒤늦게 그것이 폭력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한다.

해맑은 표정을 하고 눈을 반짝이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성교육을 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감독은 어디까지가 놀이이고 어디까지가 섹스인지 질문한다. 해맑은 아이들이 장차 자라서 성인이 되어가면서 성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올바로 획득하고, 그래서 남녀 모두가 건강하게 성적인 욕망을 항유할 수는 없는 것일까하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 해맑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들이 서로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 누구에겐 추억거리고 누구에겐 잊고 싶은 기억이 되는 현실이 슬프다.

2008년 달빛시위 장면.밤길을 사수하라!밤길이 위험하면 너희먼저 들어가라!

의도는 없었지만 순간 욕정 때문에…

하지만 “예전 기억을 논할 것도 없이 지금 벌어지는 현실만으로도 벅차다.”는 감독의 말처럼, 당장에 성폭력 사건이 벌어질 경우는,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만만치가 않다. 영화 촬영 중 성폭력 사건이 진행중이었던 매이의 가족들은 가해자측과 합의를 해 버렸다. 영화 속인물들과 감독은 신나는 록음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여전사들처럼 재판장으로 향한다. 매이의 가해자는 군인이라 재판은 군부대 법무부에서 이루어졌다. 그녀들은 헌병대가 군부대 앞에서 신분증을 받는 순간 이미 위축되기 시작한다.

재판정의 재판과정은 목소리만 녹음되어 있다. 변호사의 말은 여전히 낡은 잣대로 이루어지는 우리 사회 성폭력 사건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가해자가 의도가 없었음을 강조하면서 ‘순간 욕정’에 의해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가해자를 변호한다. 재판이 끝나고 그녀들은 약간은 풀죽은 듯한 모습으로 군부대를 떠난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가부장제적인 잣대로 성폭력 사건을 다루면서 피해자들이 더 고통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요즘에 특히나 더 심각해지고 있는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에 대한 토론회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한 여성 토론자는 아동의 성폭력을 입증하기 위해 처녀막 파열을 증명하라는 재판부의 판결이 있었고, 아이의 부모는 죽어도 그런 일은 할 수 없다고 했다면서 낡은 법제도에 대해 통렬히 비판한다. 성폭력 사건이 다뤄지는 과정에서 우리사회의 보수적이고 낡은 통념들을 보여주는 문구와 기록들, 뉴스 헤드라인 등이 화면 속에 비춰진다. 그리고 사회의 권력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수많은 성폭력 사건에 관한 뉴스 장면이 보인다.

성폭력 뚫고 하이킥!

이러저러한 성폭력 경험을 한 여성들은 그 경험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후유증을 겪게 된다. 인터뷰를 했던 여성들은 그녀들이 성폭력 경험으로 인해 받게 됐던 스트레스와 후유증을 토로한다. 어떤 이는 그 경험들로 인해 성에 대한 거부감이 든다고도 말한다.

성폭력 사건으로 후유증을 치루고 있지만 작은 말하기 모임을 통해 도움을 받고 자신도 씩씩하게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매이는 예전의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옥탑방에서 반지하방으로 이사를 간다. 아무리 씩씩한 그녀지만 밖에서 택배기사가 “000씨”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맞아, 택배기사는 멍청하게 택배요! 이러지 않아. 저렇게 이름을 부르지”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그녀는 아직도 마음이 복잡한 가운데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합기도 체육관에서 격투를 벌이는 감독의 모습이 비춰지는 가운데, 그녀는 말한다. “많은 여성을 만났다. 그녀들의 삶이 내 삶과도 맞닿아 있는 것을 알았다. 난 여자다. 그래서 도전해야 할 것들이 많다.”

영화를 마칠 때쯤에 작은 말하기 모임에서 카메라를 허락했다. “우리의 공간은 좁고 안전을 요구하겠지만 생존을 위한 말하기를 넘어 버라이어티한 욕망을 세상 밖으로 쏟아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는 감독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앞으로 좀더 적극적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듣게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몸과 마음에 새겨진 여성주의 담론의 가능성

두 번에 걸친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이 분명히 강조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성폭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성폭력에 대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 수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지만 피해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성은 은밀하고 위험한 것이며, 여성의 성은 보호되어야만 하는 것이라는 성에 대한 왜곡된 통념이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인식을 넘어서 여성의 성과 몸에 대해 여성 스스로가 인식하고 통제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편,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남성과 동등하게 말해지거나 하나의 목소리(보편적 여성)가 아닌 각기 다른 개인의 경험을 담아낸 목소리를 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에서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낸 시도는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감독의 내레이션을 통해 진행되는 영화는 성폭력과 왜곡된 성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관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 성과 관련한 여성의 경험은 몸의 경험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음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이러한 영화의 테제는 프랑스의 여성주의 철학자인 이리가레의 논의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이리가레는 라깡의 정신분석학을 여성주의적으로 재전유하였는데, 그녀는 라깡과는 달리 상징계(담론)가 상상계(담론이전)에 의해 변화될 가능성을 강조한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몸의 차이는 ‘차별’의 근거가 되는 해부학적 운명이 아니다.

오히려 여성과 남성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성적인 경험의 차이(존재론적 조건의 차이)는 여성주의적인 적극적인 담론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여성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다양한 경험을 보다 적극적으로 담론화할 때 가부장적으로 왜곡된 상징계가 아주 조금이라도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성폭력은 교통사고와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 말은 성폭력 경험이 아무것도 아닌 경험이라는 말이 아니라 성폭력에 붙어 있는 왜곡되고 부풀려진 가치들로 인해 피해자들이 오히려 더 발언할 수 없는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한편 감독은, 영화를 본 남성관객들이 많이 불편해 한다고도 말했다. 그녀는 “여성의 시각으로 영화를 진행하니 불편해 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가 이 시각으로 보는 법을 배워왔는가. 이 영화는 당연한 사고들에 대한 문제제기이다.”라며 영화가 여성의 목소리와 시선을 담아낸 영화임을 분명히 강조했다.

‘버라이어티생존토크쇼’는 한 편의 독립다큐멘터리이지만 어떤 여성주의적 담론이나 이론 못지않게 여성의 목소리를 가장 적극적이고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하나의 ‘담론’으로 기능하고 있다. 실제 생존자들을 만나고 그녀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영화를 만들어간 점에 있어서, 영화 속에서 생존자들의 모습과 현재 진행 중인 성문화의 현실을 가로질러 보여주는 점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40여 차례에 걸친 공동체 상영을 통해 보다 많은 관객들을 만나면서 여성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당대 여성주의적 담론의 가장 적극적이고 강렬한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가장 끔찍한 경험이자 말하기 힘든 은밀한 영역일 수도 있을 성폭력의 경험을 보다 진솔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자신들을 드러내면서 복잡한 심경의 변화를 겪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성폭력 경험을 자신의 온전한 삶의 경험으로 보다 건강하게 만들어 나간다.

고통을 벗어나 ‘독립적 생존자’로 유쾌하게 살아가기

지금까지 영화 속에서 여성은 통상적인 남성의 환타지를 반영한 어머니나 창녀로 ‘재현’되곤 했다. 감독은 관찰자로서 여성에게 거리를 두고 여성을 재현해 왔다. 영화 속 시선이 여성의 목소리에 가까운 경우든, 남성의 시선을 더 많이 담아내는 경우든, 여성은 피해자나 고통받는 존재로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버라이어티생존토크쇼’는 소재나 내용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과정, 그리고 이후에 영화를 상영하는 과정에서 가장 ‘개인적인’ 목소리로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을 가장 적극적인 ‘정치적’ 담론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녀들이 들려주는 목소리와 감독의 끈질긴 문제의식은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독립적 생존자’로서 유쾌하고 발랄하게 살아가는 그녀들의 모습은 비슷한 경험을 했을 피해자에게는 당당한 생존자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용기를 주며 우리들에게는 왜곡된 성문화와 관계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 속 ‘작은 말하기 모임’이 들려주는 생존자들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에서는 소수의 작은 목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현재도 많은 관객들과 만나면서 여성주의적 담론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김수현(서울시립대학교) /

가족과 사회와 여성 [배운년 나쁜년 미친년]

MB 정부와 한국의 가족.

가족문제와 관련하여 MB 정부 최대의 쟁점은 출산과 육아이다. 이는 곧 가족, 여성의 문제이며 대한민국 가족의 현실을 반영한다. 2009년 11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위원장 곽승준)가 밝힌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인 1.22명이다. 언제 1.0명 이하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국가의 출산율은 그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지표이다. 인구가 줄어들면 그만큼 국가 경쟁력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만큼 중요한 출산율 관련 국가 정책이라는 것이 가관이다. 낙태의 문제는 여러 가지 철학적, 윤리적 문제를 갖는 문제이므로 섣불리 속단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결정할 권리 중에 하나가 낙태의 문제이며, 원치 않는 임신이나 미성년자의 임신 같은 경우 무조건 낙태를 못하게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런데 MB정부는 출산율 하락을 저지할 목적으로 낙태를 어렵게 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게다가 지난 2월 3일엔 불법낙태 시술을 한 산부인과를 ‘프로라이프’라 자칭하는 산부인과 의사협회가 고발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한가지 어이없는 출산율 관련 MB 정책은 초등학교 조기입학에 관한 것이다. 현재 만 6세인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앞당긴다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는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겨 육아 비용을 줄이고 청년들이 조기에 사회 진출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2009년 11월 25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국의 각 교육청이 2009년부터 ‘3월 1일부터 익년 2월말까지’인 초등학교 취학연령 기준일을 ‘1월 1일부터 12월 31일’로 고쳐 입학생을 받은 사실에 대해 한 번만이라도 숙고했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정책이다. 과거에 일찍 입학하기를 희망하는 부모는 7세 입학을 반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 학부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에 일찍 진출하는 것보다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유아교육을 받기를 원하고 있으며 학교에 가서는 학습내용을 빈틈없이 따라가고, 동갑네의 친구들과 잘 어울리기를 바란다. 청년실업 대란의 대한민국 대학생들은 조금이라도 사회진출을 늦추기 위하여 휴학을 반복한다.

정부의 인사들이 가정에서 직접 아이를 먹이고, 놀아주고, 학원 보내고, 학교에 보내 보았다면 쉽사리 뱉을 수 없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낸다. 어느 부모가 아이 유치원비 절약하는 좋은 길(?)이 생겼다고 만5세아를 학교에 보내고 아이를 더 낳겠는가. 스펙 쌓아야 한다며 학원거리를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이제 만5세로 낮아진다. 현실적으로 아이가 학교에 간다고 부모의 일이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는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양육을 맡아주지만 초등학교 1학년은 12시 20분이면 학교에서 밥먹고 집에 온다. 맞벌이하는 부부는 아이가 혼자 하교하고 학원갈 걱정 때문에 이제는 사설 경호원을 고용하는 경우마저 생기고 있다.

가족과 사회

이러한 문제는 비단 대한민국 가족의 고립된 현실이라고 볼 수 없다. 가족은 여러 방면에서 사회와 맞닿아 있다. 가족과 사회의 구체적인 관계에 대하여 좀더 알아보자.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해방이론가면서 가족에 관한 정치철학적 입장을 선구적으로 개척한 미셀 바렛과 매리 매킨토시는 가족주의와 가족중심주의를 구분하여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가족중심주의(familism)는 정치적으로 가족옹호 이념을 유포하는 것, 가족 자체를 강화하는 것을 지칭한다. 가족주의 이데올로기(familialism)는 가족의 가치라고 생각되는 것을 본떠 만들어진 이념을 말하기도 하고, 여러 사회 현상을 가족과 비슷하게 만들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또 더불어 출산율이 하락하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들은 가족을 유지 강화시키기 위한 여러 정책을 펼치고 있다. 가족이 없으면 국민의 재생산도 기대하기 어렵다. 또 국민이 없으면 경제활동을 할 수도 없다. 이렇게 가족은 국가를 유지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가는 가족을 기본 단위로 하여 여러 가지 복지제도를 만들고 혜택을 준다. 미디어는 국가의 이러한 정책에 발맞추어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이것이 가족중심주의이다.

한편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기업 홍보물에서 ‘○○가족’이라는 말은 가족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적인 작업의 장에 사적인 가족이라는 개념을 끌어들여 전 직원 모두가 회사를 내 집처럼 생각하고 열심히 일해주기를 바라는 의도로 이러한 표현을 쓴다. 그러나 이러한 가족주의 이데올로기는 회사의 직원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일하게 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작업장에 적용시켜 더 많은 이익을 남기려는 기업의 계산이 깔려있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사회는 가족과 상당히 유사한 면을 보인다. 우선 가족 안에서의 남녀 역할은 현대 사회에서 어느 정도 고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즉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도식이다. 뒤에서 다시 보겠지만 이러한 도식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전통사회는 사실 바깥일 집안일의 구분이 확실한 사회구조가 아니었다. 여성이 담당한 직조(織造)는 국가 생산력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바깥일 집안일이라는 구도는 자본주의가 시작되고 난 후에 굳어진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구도가 자본주의의 전개와 더불어 사회 전반에 확산된 것이다.

우리가 흔히 집안일이라고 하는 일들을 생각해보자. 그것은 요리하고 청소하고 환자를 간호하고,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고, 바느질하고 봉사(서비스)하는 일들이다. 남자가 하는 바깥일은 한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갈 수입을 가져온다는 의미에서 높게 평가된다. 그러나 화폐를 벌어들이지 못하는 여성들의 집안일은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는다. 과거보다는 오늘날,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그 영역은 ‘집안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비서, 건물 청소부, 간호사, 선생님, 식당종업원 등등의 직종은 거의 여성들의 전유물이라고 할 만큼 여성들의 일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한 이렇게 여성들의 일에 사회가 내리는 가치평가는 낮으며 그에 비례하여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이 지불된다. 이렇게 고정화된 남녀 역할에 대한 편견은 인간불평등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가부장주의와 사회구조

가족과 사회의 유사성을 좀 더 확대 적용해보자. 가족에서 나타나는 가부장주의는 사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평등부부, 평등가족이 많이 확산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가부장주의는 가족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 가부장주의는 한 가족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가부장(남성)이 그 집안의 실권을 쥐고, 가부장을 중심으로 모든 일이 처리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가부장제에서는 위계질서가 존재하며 남성은 여성보다 우위를 차지한다. 따라서 여성이 하는 일은 남성과의 정당한 분업 속에서 가치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하위에 속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상위에 속하는 사람과 같은 일을 하더라도 차별을 받기 마련이다. 이러한 가부장주의가 사회에 적용됨에 따라 여성이 하는 직종은 당연히 낮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임금차별을 받지 않는 여성의 공직 진출이 과거보다 눈에 띄게 늘고 있지만 여성은 여전히 직급이 낮은 5급 미만에 90퍼센트 이상이 몰려 있다. 또 직장 내에서 남성과 여성은 승진의 기회에서 차별을 받는다.

물론 여성이 남성보다 능력이 뒤져서 승진을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출산과 육아를 전담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 때문에, 회사는 근무평가에서도 남성과 여성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근무 환경도 출산과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여성을 위해 조성되지는 않는다. 회사가 육아에 도움이 되는 조건을 직장 내에 마련하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출퇴근 시간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데려 오는 시간에 맞춰 조정해 주지 않는다. 사회가 정한 시간표에 맞추어서 일하지 못하는 여성은 가족 안에만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암묵적으로 동의되고 있다.

가부장을 위주로 가족의 일들이 구성되는 위계적인 모습과 사회가 구성되는 모습은 매우 친화성을 갖는다. 위계적 구조가 효율성은 갖겠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이 반드시 나오게 마련이다.

가족,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이렇듯 가족과 사회는 많은 측면에서 유사성을 갖는다. 가족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가 되고 사회의 문제는 곧 가족의 문제이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출산율의 문제도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바닥을 친 출산율을 높이는 방법은 낙태 금지도 아니고 초등학교 조기 입학도 아니다. 출산에 따르는 가장 실질적인 문제, 즉 유치원 무상교육, 현실적인 육아 보조금이 필요하다. 또 공교육에서 특기교육까지 해결할 수 있는 복지 시스템의 질적, 양적 성장만이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출산율은 높여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형제와 자매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 부담을 개인 여성에게 개개의 가족에게 지우는 것은 잘못되었다. 여성의 건강은 곧 아이의 건강이다. 아이는 어머니의 아이가 아니라 사회의 아이이다.

철학자들이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그렸지만,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어쩌면 마르크스가 말한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사회’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욕망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러한 장소는 있다. 바로 가족이다. 아버지가 되었든 어머니가 되었든 생계를 부양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일을 하고 온 가족은 그 노동의 대가를 필요한 만큼 쓴다. 유토피아는 없는 장소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유토피아를 꿈꿀 권리가 있다. 가족과 사회는 친밀성을 지녔다. 다만 지금까지는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친밀성이 두드러졌을 뿐이다. 가족의 이러한 유토피아적 이상을 사회에 실현할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강지은(건국대학교) / admin@admin.com

소크라테스와 시민불복종의 문제[고전은 숨쉰다]

시민불복종과 관련한 소크라테스의 역설.

공자는 “나이 일흔에는 마음이 하고 싶어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논어 위정편 4장)”고 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바로 그 나이에 사형이라는 극형을 선고 받고 독배를 든다. 과연 그는 그런 극형을 선고받을 만큼 뭔가 심각하게 법도를 어건 것일까? 그의 죄목은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나라가 믿는 신을 믿지 않고 다른 새로운 영적인 것들을 믿는다는 것이었다. 이 죄목으로 봐서는 그가 윤리적· 종교적인 면에서 심각하게 법도를 어겼다는 혐의를 받은 셈이다.

그러나 이 죄목은 구실이고, 그가 기소된 진짜 이유는 당시 집권을 한 민주정권의 정적들 중 일부를 이들이 젊은 시절에 소크라테스가 교육시킨 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도 유력하게 제시되곤 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죄목이 부당하다고 여겨 법정에서 무죄를 입증하고자 했고, 또한 선고 후에도 크리톤과 대화하는 가운데 배심원들의 판결이 정의롭지 못했다는 생각을 넌지시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크리톤≫ 50c, 54c). 하지만 그는 친구인 크리톤의 탈옥 권유를 물리치고 독배를 든다. 그가 탈옥을 거부한 이유는 ≪크리톤≫에서 접할 수 있는데, 여기서 그는 국가와 법의 명령에는 그것이 무엇이든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식의 견해를 제시했던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악법, 즉 정의롭지 못한 법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철학자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변론≫에서는 악법은 단호히 지키지 않을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접하게 된다. 이를테면 아테네 법이 철학하는 것을 금한다면, 소크라테스는 이에 불복종하고 철학함을 그의 사명으로 부여한 신에게 복종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 준다. 그리하여 그는 시민불복종과 관련해 ‘소크라테스의 역설’이라 해도 좋을 큰 논란거리를 후세에 남겼다.

그가 보여준 일견 모순된 측면들은 그를 완고한 준법정신의 화신으로, 혹은 시민불복종의 선구로 해석되게 했고, 전문 학자들뿐 아니라 일반인의 수준에서도 격론을 불러일으켜 왔다. 과연 소크라테스의 실제 입장은 무엇일까? 그는 시민불복종을 어떻게 보는 것인가? 그는 악법이나 악한 법적 명령도 지켜야 한다는 보는 것인가, 아닌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소크라테스의 사전에 없다

악법도 지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악법도 법인가 하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왜냐하면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악법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명시적으로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음을 보여주는 전거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더욱이 그는 당시 아테네 법이 악법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크리톤≫ 54c).

그는 자신이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법이 아니라 배심원들의 잘못된 판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그건 훗날 누군가가 ≪크리톤≫의 일부 내용을 참작해서 만들어 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가 ‘악법도 법이다’ 혹은 ‘악법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전히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지켜야 한다고 본 것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인 ≪크리톤≫과 ≪변론≫은 이런 문제를 검토할 수 있는 일차적인 자료일 뿐 아니라, 우리가 왜 국가와 법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가, 우리에게는 시민불복종의 권리가 있는가 하는 정치철학적 혹은 법철학적 문제 뿐 아니라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위의 두 대화편을 악법 즉 정의롭지 못한 법이나 그런 법적 명령에도 복종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초점을 맞춰 살펴볼 것이다.

≪크리톤≫과 ≪변론≫에서 상충되는 측면들

≪크리톤≫과 ≪변론≫에서 시민불복종 문제와 관련해 상충된 것으로 보이는 점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크리톤≫ 자체 내에서 그런 점을 짚어보고, ≪크리톤≫과 ≪변론≫ 사이에서도 그런 점을 검토해보기로 한다.

≪크리톤≫은 의인화한 법률과 국가가 등장하는 지점(50a6)을 중심으로 전반부(46b-49e)와 후반부(50a-53a)가 구분된다. 후반부는 특히 복종의 의무를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여기서도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법률과 국가가 시민을 어린이와 노예에 비유하여 연설하는 대목이다(50c-51c). 그 중 일부를 인용해보자.

“조국이 무언가를 겪어내라고 지시하면 두들겨 맞는 것이든 투옥되는 것이든 잠자코 겪어내야 하며, 조국이 당신을 전쟁터로 이끌어 당신이 부상을 당하거나 죽게 되더라도 지시사항을 이행해야 한다. 이와 같은 것이 정의로운 것이다… 나라와 조국이 지시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행하거나, 아니면 정의로운 것이 본래 어떠한지에 대해 나라를 설득해야 한다”(51b-c).

여기서 ‘…무엇이든 이행하든가 아니면…설득해야 한다’는 구절은 해석하기에 따라 시민불복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대체로 위 인용문은 국가와 법의 명령에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곤 한다. 이렇게 이해되는 게 옳다면 소크라테스는 정의롭지 못한 법적 명령에도 복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철학자가 된다.

그러나 ≪크리톤≫ 전반부에는 후반부와 상충되는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있다. 거기서는 정의의 원칙들이 제시되는데 가장 기본적인 정의의 원칙은 “결코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49b)는 것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정의롭지 못한 법적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용인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리톤≫의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는 상충되는 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변론≫에서도 ≪크리톤≫ 후반부와 다른 논조를 접하게 된다.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철학―고발자들은 철학하는 일을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을 그만둔다는 조건 아래 배심원들이 자신을 석방해주되 계속 철학을 하다가 붙잡히면 죽게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를 상정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조건으로 자신을 석방하고자 한다면 배심원들보다는 철학함을 자신의 사명으로 부여한 신에게 복종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한다(29c-d).

소크라테스가 해온 철학적 활동은 사람들이 몸이나 돈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혼이 훌륭하게 되도록 혼에 대해서 마음을 쓰도록 설득하는 것이었는데, 그는 이런 일 말고 “다른 일을 하진 않을 것이며, 설령 몇 번이고 죽는다 할지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30a-c)라고 결연한 의지를 보인다.

이 예를 통해 우리는 정의롭지 못한 법적 명령에 대해선 단호히 복종을 거부할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접하게 된다. 이처럼 목숨보다도 철학을 더 귀하게 여긴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배심원들이 그를 석방해주되 철학을 금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해보자.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처신했을까?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

그런데 철학을 금하는 법적 명령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불복종은 실제 상황이 아니라 단지 가정적 상황이다. 그리고 아테네의 재판 절차상 현실적으로는 배심원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철학을 금하는 조건으로 석방을 제의할 수도 그런 판결을 내릴 수도 없었다. 브릭하우스와 스미스는 이런 점을 주목하여 소크라테스가 시민불복종의 한 사례를 보여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견해를 편다.

그러나 우리는 철학 금지령의 예를 통해 소크라테스가 크게 정의롭지 못한 법적 명령에 어떤 태도를 취할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예가 가정적 상황 속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여기서 분명히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현실 속에서 그가 크게 정의롭지 못한 법적 명령을 받았을 때 그가 단호히 복종을 거부했으리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이런 의지는 ≪변론≫의 또 다른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과두정의 주요 인물인 크리티아스와 카르미데스를 한때 교육시킨 바 있다고 해서 과두정을 옹호하는 인물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실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30인 과두정권의 명령을 거부한 일도 있었다.

이 정권이 살라미스 사람 레온을 부당하게 사형에 처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를 포함해 다섯 사람에게 그를 연행해 오도록 지시했을 때, 그는 이 일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보아 연행에 가담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이 일을 회고하며 배심원들에게 “만약 그 정권이 빨리 무너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저는 이 일로 해서 처형되었을 겁니다”라고 말한다(32c-d).

이 예도 브릭하우스와 스미스는 시민불복종의 사례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적어도 시민불복종이 성립하려면 30인 과두정권이 적법하게 집권하고 적법하게 명령을 내렸다고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정권이 적법하게 집권하거나 적법하게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하더라도, 레온의 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적법성 여부와 상관없이 정의롭지 못한 명령에는 단호하게 복종을 거부했으리라는 것이다. 실상 그는 레온의 연행이 불법적인 일이어서가 아니라 정의롭지 못하고 불경건한 것이어서 명령을 거부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시민불복종과 관련해 소크라테스의 일관된 모습 찾기

적어도 ≪변론≫의 두 예와 ≪크리톤≫ 전반부에서 나오는 정의의 원칙은 소크라테스가 악법을 지켜선 안 된다는 입장, 즉 시민불복종의 입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크리톤≫ 후반부에 나타난 의인화한 법률과 국가의 입장 즉 법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식으로 준법을 중시하는 입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크리톤≫ 후반부가 논란거리가 되는 것은 이 부분의 의인화한 법률과 국가를 소크라테스의 대변자처럼 봄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같은 소크라테스의 견해가 대화편의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왜 달라졌는가가 문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점을 피하는 한 가지 방식은 후반부에서 의인화한 법률과 국가의 견해를 소크라테스의 견해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소크라테스는 법률과 국가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웨이스가 이런 관점을 취하고 있다. 그녀는 법률과 국가가 등장하는 후반부를 탈옥을 권유하는 크리톤을 설득하기 위한 ‘고상한 거짓말’ 즉 한갓 수사적 연설로 이해한다. 이러한 해석은 크리톤이 이해력이 부족하고 비철학적이어서 소크라테스가 그와 철학적 논의를 하는 것을 포기한 것으로 전제한다.

그러나 크리톤을 철학적 논의가 불가능한 인물로 보는 것이나, 소크라테스가 단지 설득만을 위해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고 보는 것이 과연 옳은지는 의문이다. 소피스트들을 상대로 논쟁하는 때에는 이들의 논리를 역으로 이용해 설득만을 위한 논의를 전개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런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크리톤≫과 같은 플라톤의 초기대화편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웨이스의 해석에서는 ≪크리톤≫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단절적으로 보는데 이것도 적절한 이해로 보이지 않는다. 주의 깊게 살펴보면 소크라테스가 전반부에서 정의의 원칙에 관한 논의를 한 후에 후반부에서 그 원칙들에 근거해서 탈옥의 문제를 검토하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크리톤≫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관계를 웨이스처럼 단절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연속적인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런 해석들 사이에도 큰 관점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소크라테스가 시민불복종의 옹호자로서 일관된 모습을 지닌 것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있는가 하면, 이와 반대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우선 소크라테스를 시민불복종을 부정하는 철학자로 보는 해석부터 검토해보기로 한다.

브릭하우스와 스미스는 ≪크리톤≫의 전반부에 나오는 정의의 원칙도 ≪변론≫의 두 예도 시민불복종의 예가 아니라고 본다. 그들은 특히 정의의 원칙을 철저한 준법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하기까지 한다. 이런 해석은 일단 수긍이 잘 안 간다. 왜냐하면 “결코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정의롭지 못한 법적 명령에 복종해선 안 된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의롭지 못한 법적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결국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하는 셈이 되니 말이다.

그러나 브릭하우스와 스미스는 소크라테스가 정의롭지 못한 법적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정의롭지 못한 짓이 아니라 정의로운 일로 보았다고 해석한다. 법이 정의롭지 못하더라도 준법 자체는 정의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크리톤≫의 전반부와 후반부 다 철저한 준법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함으로써 그 두 부분 사이에 상충되는 점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문제는 소크라테스가 준법 자체를 정의로운 것으로 보고, 그래서 정의롭지 못한 법에 복종하는 것까지 정의로운 것으로 보았다는 그들의 해석이 옳은가 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변론≫의 두 예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적법하게 내려진 명령이라 하더라도 정의롭지 못한 명령에는 단호히 불복종할 의지를 갖고 있으며 실제로 불복종 행위를 할 철학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 1권의 논의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거기서 소크라테스가 트라시마코스에게 “그러나 그들(통치자들)이 제정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스림을 받는 이들로서는 이행해야만 하고, 또한 이게 정의로운 것이겠군요?”하고 묻는다. 이 물음은 옳게 제정되지 못한 법, 곧 정의롭지 못한 법을 지키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지를 묻는 것인데, 논의 맥락을 볼 때 소크라테스는 이 물음에 대해 부정적 답을 갖고 있다.

즉 정의롭지 못한 법에 복종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정의롭지 않은 것이라면 그로서는 불복종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이 된다. 그러니까 ≪변론≫과 ≪국가≫의 예들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옳다면 ≪크리톤≫의 정의의 원칙도 시민불복종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그러면 브릭하우스나 스미스와 달리 소크라테스를 시민불복종의 옹호자로 보고, 웨이스와 달리 ≪크리톤≫의 전후반의 논의에 단절이 없다고 볼 때 이 대화편의 후반부는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까?

크라우트는 ≪크리톤≫의 후반부에서 준법을 가장 강력하게 강조한 부분(50c-51c)이 “나라와 조국이 지시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행(복종)하거나, 아니면 정의로운 것이 본래 어떠한지에 대해 나라를 설득해야 한다”(51b-c)는 결론에 이르고 있음을 중시한다. 설득이라는 선택지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법에 대한 불복종의 여지를 남기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전반부에서 언급된 또 하나의 정의의 원칙, 즉 “합의한 것들은 이행해야 한다. 그것들이 정의로운 한에서.”란 원칙도 중시한다. ‘그것들이 정의로운 한에서’라는 단서는 불복종의 여지를 남긴다는 것이다. 크라우트의 견해는 주목할 만한 견해이긴 하나 그와 관련해 많은 논란이 있어서 여기서는 그 논의로 들어가는 것은 생략하고, 그 대신 기존의 해석과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기로 한다.

≪크리톤≫의 후반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크라테스가 “신이든 인간이든 더 훌륭한 자에게 불복종하는 것은 나쁘고 수치스런 것이라는 점을 나는 알고 있다”(≪변론≫ 29b)는 말을 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인용문에서 더 훌륭한 자에는 신과 인간에 더하여 법률이나 국가도 포함될 수 있을 텐데, 이들의 명령들이 서로 상충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 소크라테스는 더 상위의 훌륭한 자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그는 ≪변론≫에선 재판과정에서 철학할 것을 지시한 신의 명령에 복종할 것인가, 철학을 금하는 법적 명령(배심원들의 명령)에 따를 것인가의 기로에서, 그는 주저 없이 법적 명령에 불복종하고 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쪽을 택하고자 했다. 여기서 신의 명령이란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는 아니라는 점을 언급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위해 법적 명령에 불복하고자 했다기보다, 철학함이라는 보편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을 위해 그렇게 했다. 그가 지키고자 한 것을 단순히 철학하는 일보다는 비판적 사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차원으로 확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크리톤≫에서는 법이나 국가의 명령과 상충되는 신의 명령이 상정되어 있지 않다. 이 대화편의 후반부를 이해할 때 이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서는 국가나 법의 명령이 무엇이든 그것에 복종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법의 명령과 신의 명령이 상충되는 경우에도 오직 법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크리톤≫에서는 국가나 법의 명령과 상충되는 신의 명령이 상정될 상황이 아니어서 준법이 강조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크리톤≫에서는 왜 신의 명령이 상정되지 않은 것인가? 소크라테스가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던 ≪크리톤≫의 상황은 ≪변론≫의 상황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이미 재판에서 그는 국가의 법적 명령에 복종하기보다는 철학하라는 신의 명령에 복종하겠다고 했고, 몇 번을 죽게 된다 하더라도 철학을 그만둘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이는 그가 사형에 처해진다 해도 철학을 그만둘 수 없다는 의지의 표명이며, 그 결과 그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는 사형 대신 해외 추방형을 택할 수도 있었고, 이는 당시 아테네 사람들도 원했던 것이기도 했지만, 그것을 거부했다. 추방되어 신의 명령대로 철학하는 일이 더 이상 가능한 상황이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변론≫37c-38b).―≪크리톤≫에서는 탈옥해서 다른 나라로 갈 경우 철학하며 지낼 수 없으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그러니 이제 그에게 남은 길은 법정의 사형선고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친구인 크리톤이 탈옥을 권유하지만, 그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다.

혹 탈옥이 신의 뜻이라고 그가 생각했다면 ≪크리톤≫에서도 법의 명령과 상충되는 신의 명령(탈옥하라는 명령)이 상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의 명령이 상정되지 않았다. 그러니 그는 탈옥이 신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이 점은 이 대화편의 마지막 구절에서 확인하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신께서 이렇게 인도하시니, 그대로 하세나.”라는 말로 탈옥 반대 논변을 마무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시민불복종론에서 본 소크라테스의 탈옥 문제

끝으로 오늘날의 시민불복종론에 입각해보다면, 소크라테스가 탈옥을 거부하고 독배를 든 것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롤즈가 시민불복종의 요건으로 거론하는 것을 정리해보면, 불복종은 공개적, 비폭력적, 양심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불복종자는 처벌을 받아들이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소크라테스는 시민불복종의 요건들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롤즈가 말하는 요건들은 당연히 수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요건들은 소크라테스의 행위를 이해하는 데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변론≫에서 보는 재판 상황에서 그가 한 이야기에 따를 경우, 법정이 그를 석방시켜주되 철학을 금하는 명령을 내렸다면, 그는 그 명령에 불복종했을 것이다. 우선 그는 불복종행위로서 철학하는 일을 일반범죄자처럼 은밀하게 하지 않고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했을 것이고, 처벌을 피하고자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런 불복종의 자세는 레온에 대한 부당한 체포 명령과 관련해서 그가 실제로 보여주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변론≫의 두 예를 보면 소크라테스는 시민불복종의 요건들에 맞게 불복종 행위를 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한 철학자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옳지 않은 법적 명령에도 복종해야 하는 경우가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점은 ≪크리톤≫에서 보게 된다. 거기서 그는 사형 판결이 정의롭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50c, 54c), 탈옥을 거부하고 그 판결에 복종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탈옥을 거부한 것을 시민불복종의 요건들에 비춰서 검토해 보자. 그 요건들에 비춰볼 때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 감옥에 있던 소크라테스가 법정의 판결에 불복종하고 탈옥을 했다면 그것은 시민불복종이라고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우선 그 일은 비폭력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해도 공개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교도관에게 뇌물을 써서 감옥을 나오고 변장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양심적인 것으로 보기도 힘들뿐더러, 그렇게 탈옥하는 그에게는 처벌을 받으려는 의지가 있다고 볼 수도 없을 것이다. 탈옥해 해외로 간다는 것은 아테네 법정에서 내리는 일체의 법적 처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탈옥했다면 그는 일반 범죄자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고, 시민불복종자와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가 법정의 사형판결에 불복종하여 탈옥을 감행하지 않은 것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올바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정의롭지 못한 판결에 복종하여 독배를 들고 탈옥을 거부했다고 해서 그를 시민불복종의 옹호자가 아니라고 본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그는 분명 시민불복종의 선구라 할 수 있다. 다만 롤즈도 그랬듯이 그는 시민불복종의 요건을 충족시키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기백(정암학당 연구원) /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11월 6일 개강[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2]

우리 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11월 6일 개강

니체, 푸코, 들뢰즈 등 12명의 현대철학자

프레시안 기사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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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 일찍 왔다. 아직 나의 때가 오지 않았다. 우리가 신을 죽인 이 엄청난 사건은 아직도 방황 중이다. 이것은 아직 인간의 귀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니체는 탄식했다.
19세기 후반에 활약했던 그는 1900년, 20세기의 문이 열리기 직전에 세상을 떴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일찍 온 21세기의 철학자였다.20세기 초반, 과학기술생철학, 실존철학, 현상학, 윤리학, 해체론, 후기

무한 경쟁으로 내몰고 있는 팍팍한 우리 사회는 사람들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있다.

이 땅의 사람들은 자유와 삶의 근거를 갈망하며 새로운 소리를 손으로 더듬거리고만 있다.?그런 사람들의 손을 잡고자 니체 계열의 사상가 열두 명의 향연을 마련하고자 한다.

니체를 비롯해서 쇼펜하우어, 베르그송,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화이트헤드,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데리다, 레비나스, 푸코, 들뢰즈까지
열두 명의 철학자들이 들려주는 삶의 노래에 여러분을 초대하니
이 노래를 가슴으로 듣기를 희망한다. <프레시안>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진행하는 <우리 눈으로 본 서양철학사>의 3번째 강좌가 오는 11월 6일 시작됩니다.
지난해 시작된 이 강좌 시리즈는 지금까지 2차례의 서양근대철학사 강좌(10강 및 8강)와 마르크스주의사상사 강좌(16강)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니체를 비롯한 현대 철학자 12명의 사상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관심 있는 분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강좌 : 우리눈으로 본 서양현대철학사 2

-일시 : 2012년 11월 6일 ~ 12월 18일 까지(11월 27일 휴강),
2013년 1월 8일 ~ 2월 12일 까지 (매주 화요일, 12강)

-시간 : 오후 7시30분-10시

-장소 :
서울마포구 서교동 민족의학연구원 2층 강당(약도 참조)

-수강료 : 24만원(
커플 수강료: 36만원, 두 분이 함께 신청하실 경우) 개별 강의 수강료는 3만원

-수강 신청: 수강료를 계좌로 입금 하신후
이메일 혹은 전화연락을 주시면 등록이 가능 합니다. (계좌 : 국민은행, 292501-01-121940, 예금주 프레시안)

-강의 문의 및 수강신청 연락 :
admin@pressian.com(문의02-722-8546 민정훈)으로 부탁드립니다.
?-강의실 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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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실 찾아오는 방법 : 지하철 2호선 합정역 2번출구로 나와 뒤돌아보면 빵집과 옆으로 샛길이 있습니다. 그 길로 10분정도 걸어오면 왕복 4차선 도로가 나옵니다. 거기서 편의점이 있는 오른 쪽으로 30M 지점에 태복빌딩(민족의학연구원)이 있습니다. 그 건물 2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강의 일정
1강 : 11월 6일 쇼펜하우어: 의지와
조화될 때 고통의 바다를 건널 수 있다 (박은미, 건국대 교양학부 강의교수)

2강 : 11월 13일 니체: 중심 가치의 전복과 새로운 가치 창조의 철학자 (연효숙, 연세대 외래교수)

3강 : 11월 20일 베르그송: 직관, 즉 내재적이고 심층적 의식의 생성과 변전으로서 권능 – 신비주의자, 권능의 구현자 (류종렬, 창원대 외래교수)

4강 : 12월 4일 하이데거: 서구 형이상학의 본질을 다시 묻다 – 니힐리즘의 극복시도, 그리고 나치즘 (서영화,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5강 : 12월 11일 비트겐슈타인: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 – 언어와 삶 (김성우, 兀人고전학당 연구소장)

6강 : 12월 18일 화이트헤드: 존재의 계보 – 화이트헤드의 발생학적 생성 (최종덕, 상지대 교수)

7강 : 2013년 1월 8일 사르트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존재와 무 (이순웅, 숭실대 외래교수)

8강 : 1월 15일 메를로퐁티: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 화가의 시선과 몸 (조광제, (사)철학아카데미운영위원)

9강 : 1월 22일 데리다: 해체란 무엇인가 – 글쓰기와 차이 (이정은, 연세대 외래교수)

10강 : 1월 29일 레비나스: 타자의 얼굴과 환대의 윤리 (문성원, 부산대 교수)

11강 : 2월 5일 푸코: 근대 이성의 본질을 폭로하다 – 광기, 권력, 폭력 (박민미, 대진대 외래교수)

12강 : 2월 12일 들뢰즈 : 들뢰즈의 반복과 영원회귀 (김범수, (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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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강사 선생님들이 미리 밝히는 강의 요지입니다

1. 쇼펜하우어: 의지와 조화될 때 고통의 바다를 건널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 철학자로 분류되지만 정작 자신은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았던 철학자이다. 니체는 허무주의자로 이해되기는 하지만 운명애를 말하는 철학자이다. 쇼펜하우어와 니체, 닮은 듯 다른 두 철학자는
모두 삶을 부정하는 듯하면서도 결국은 삶을 긍정해낼 방법으로 각각 동고(同苦, 고통을 함께 함)와 운명애를 주장한다. 두 사람 모두 이성이 아닌 의지에 주목했는데 쇼펜하우어는 의지의 부정을. 니체는 의지의 긍정을 주장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관조하는 자’가 될 것을, 니체는 끊임없이 자신을 초극해가는 ‘초인’이 될 것을 주장한다. 현대철학의 중요한 개념인 ‘의지’에 대한 두 철학자의 다른 접근은 현대철학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 꼭 넘어야 할 산이다. 자신의 이성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의지의 움직임을 예민하게 감지해내는 현대인들에게 의지의 관조, 동고나 초극은 궁금한 그 무엇일 것이다.

2. 니체: 중심 가치의 전복과 새로운 가치 창조의 철학자

흔히
망치를 든 철학자로 불리는 니체. 니체의 망치에 의해 소크라테스 이래 전통 서구 철학의 중심 가치는 해체되고 뒤집혔다. 니체는 이성 우위의 철학적 전통에 감성을, 로고스 중심주의에 미학적 가치를 내세웠다. 또한 니체는 도덕의 계보를 진단하여 새로운 도덕적 가치를 제시하였다. 그의 철학을 통해 서양 근대까지의 시대가 마감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 셈이다. 흔히 현대를 ‘포스트의 시대’라고 한다면, 이러한 포스트 시대의 새로운 가치의 지평을 열어 준 장본인 역시 니체이다. 하이데거, 푸코, 데리다, 들뢰즈 등도 각기 니체 철학이 보여준 영감을 통해 철학의 독특한 색깔을 지니게 되었다. ‘신은 죽었다’의 외침과 초인의 등장이 현대인의 삶에 어떤 울림과 의미를 줄지 생각해 보면 흥미진진할 것이다.

3. 베르그송: 직관, 즉 내재적이고 심층적 의식의 생성과 변전으로서 권능 – 신비주의자, 권능의 구현자

일반적으로 니체와 베르그송은 생철학자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다. 니체의 생은 도덕을 기준으로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는 인격을 중심으로 한다면, 베르그송의 생명은 자연 내재의 깊이 있는 근원적인 의식을 토대로 삼고서, 이 내재적 본성으로서 의식의 표출이자 생성의 인격을 중심으로 한다. 니체가 인간의 의지의 권능에 의해 현재의 고착된 삶을 전복하고 새로운 인격인 초인을 추구하였다면, 베르그송에서는 내재적 권능의 발현이 어떤 사람에서도 발현될 수 있으나, 이는 권능을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과 노력에 달려있으며, 이를 실현하는 자를 신비주의자라 한다. 니체에서 초인이 출현이 지난하듯이 베르그송에서 신비주의자는 드물고 어렵다. 그런데도 두 철학자는 새로운 인격상을 구축하려 했다.

4. 하이데거: 서구 형이상학의 본질을 다시 묻다 – 니힐리즘의 극복시도, 그리고 나치즘

하이데거는 그동안 문학가로 알려져 왔던 니체를 서구 형이상학의
역사 내에서 본질적인 사상가의 지위로 격상시킨다. 그런가하면 니체는 서구 형이상학과 기독교를 ‘힘에의 의지’라는 사상으로 해체한 망치의 철학자로 알려져 왔지만, 하이데거는 니체를 서구 형이상학의 완성자이자 니힐리즘의 완성자라고 평가한다. 한편 하이데거가 1933년 프라이부르크대학 총장을 10개월 남짓 역임하면서 어떠한 형태로든 나치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1936년부터 4년간 니체에 대한 강의를 통해서, 하이데거는 나치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 입장을 피력했다고 한다. 본 강의에서는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에서부터 나치에 대한 하이데거의 비판적 입장을 니체 철학에 대한 하이데거의 해석을 통해 생각해 보려 한다.

5. 비트겐슈타인: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 – 언어와 삶

이번
강연은 언어분석철학자로만 알려진 비트겐슈타인을 쇼펜하우어 계열의 삶의 철학자로 소개하려고 한다. 참혹한 1차 대전의 참호 아래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를 썼다. 수학과 언어의 한계는 삶의 문제와 분리할 수 없다. 언어의 본질을 탐구함으로써 유아론과 본질주의와 같은 문법적 환상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비트겐슈타인은 진정한 서양의 선사이다. 기이한 그의 삶과 철학을 그의 번득이는 통찰과 단호한 침묵과 연결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6. 화이트헤드: 존재의 계보 – 화이트헤드의 발생학적 생성

니체 도덕의 계보는 실체론적 도덕 기원에 대한 반거였다. 화이트헤드의 존재론 역시 전통의 플라톤 실체 존재론을 부정하고 과정 존재론을 제시하는 반거이다. 실체 기원론에 대한 부정은 그 두 철학자 사이에서 공통되는 존재-인식론적 계보학의 출발이다. 본 강의는 니체로부터 현대
생물학까지를 관통하는 통합적 시선을 통해 ‘과정(process) 사유’를 잉태하게 된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을 바라본다.

7. 사르트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존재와 무, 변증법적 이성 비판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말하는 ‘무’는 인간의 자유의 근거이다. ‘무’란 무엇인가를 부정하는 힘이다. 인간은 저마다 누가 뭐래도 ‘아니야’라고 말하고자 한다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주체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체가 관습적으로, 혹은 신이라는 이름으로 선포된 인간에 대한 본질적 규정을 거부한다면, 이런 주체가 곧 실존이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말한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포하며 ‘초인’에 대해 말한 데 대해 사르트르는 ‘무화하는 힘을 가진 실존’으로 응답한 것이다.

8. 메를로퐁티: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 화가의 시선과 몸

서양 근대 철학에서 데카르트 이래 그어진 주체-대상의 이분법은 나와 타자가, 나와 세계가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야기했다. 주체-대상의 이분법을 극복하는 문제에 대해 니체가 육체의 중요성을 선언했다면, 메를로퐁티는 현상학을 통해 육체와
감각 및 인식의 관계를 정교하게 논증했다. 메를로퐁티가 현대회화의 역사는 형이상학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때, 그는 화가의 눈으로 본다는 것이 깊이, 색, 선, 운동을 단순하게 재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탐구 속에서 우리는 ‘세계의 살’로서의 몸으로 연결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9. 데리다: 해체란 무엇인가 – 글쓰기와 차이

데리다는 단지 서양 근대 철학만이 아니라, 서양 철학 대부분이 그리고
지식 체계 대부분이 이성 중심적으로 그래서 로고스 중심적으로 구성되었다고 비판한다. 그 비판의 근거로 ‘차이를 만드는 차이’로서 ‘차연’을 제시한다. 이것은 흔적, 유보, 원문자와 같은 다양한 용어로 대체되기도 하는데, 데리다는 이를 철학자들의 논의 속에서 ‘소문자 a’에 대한 언급 내지 역할을 추적하면서 나아간다. 이성 중심주의적, 로고스 중심주의적 체계 안에 ‘흔적’처럼 남아있는 그리고 작용하는 ‘차연’의 가능성을 소문자 a를 통해 제시함으로써, 이성 중심주의적 체계를 해체하려고 한다. 이런 발상은 데리다 고유의 것이기는 하지만, 과거 철학사를 거슬러 가면, 하이데거도 니체도 그런 발상의 근간이 되는 것을 이미 제시한다. 그러나 데리다는 하이데거보다는 니체가 차연의 가능성을 먼저, 제대로 파악하여 철학자의 ‘웃음’, ‘유희’, 등을 사용하여 주장했음을 인정한다.

10. 레비나스: 타자의 얼굴과 환대의 윤리

레비나스의 철학은 이성 중심의 전체성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니체 철학의 정신과 함께 한다. 특히 레비나스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비롯하여 존재론 중심의 서구 철학을 극복하고자 한다. 존재론은 세계에 대한 명료한 파악을 지향하며 그래서 우리에게 익숙한 동일성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우리 삶의 근본적인 면모는 그런 테두리 밖의 타자와 맺는 관계에서부터 성립한다. 타자는 우리에게 이미 다가와 있지만 우리가 장악하지 못하는 낯선 자이고, 우리 삶은 이 낯섦을 궁극적으로 떨쳐버릴 수 없다. 오히려 우리의 삶의 가장 우선적인 국면은 이런 타자의 부름과 거기에 대한 우리의 응답으로 꾸려진다. 이것이 존재론에 앞서는 윤리적 관계다. 서구적 계몽이나 이성의 횡포는 이와 같은 타자적 측면을 무시하는 뻔뻔함에서 비롯한다고 레비나스는 생각한다.

11. 푸코: 근대 이성의 본질을 폭로하다 – 광기, 권력, 폭력

푸코는 니체의 ‘계보학’을 이어받고, 니체의 계보학을 더 철저하게 구현한다. 니체의 계보학은 사건이나 제도, 이념이나 가치 발생의 의미, 목적, 유용성이 우연적으로 교체되고 재배열되고 새롭게 해석되는 기호에 대한
해석학이다. 푸코는 니체의 생각을 이어받아 계보학적 방법론을 구축한다. 푸코는 서구 근대인의 사유의 역사 속에 끊임없이 작동하는 권력망에 주목한다. 그는 광기, 범죄, 성욕에 대한 역사를 서술하면서 전통적인 역사학이 지향해 온 거창하고 거시적인 총체적 담론 체계를 확립하려고 하지 않고, 미시적 비판 형식과 방법을 취한다. 그리고 광기, 범죄, 성욕에 대한 서구 근대인의 사고 방식에 대해 보여주는 과정에서 푸코는 우리를 부자유스럽게 만드는 권력의 촘촘한 그물망을 폭로한다.

12. 들뢰즈 : 들뢰즈의 반복과 영원회귀

“20세기는 들뢰즈의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푸코의 말이다. 이 말을 하게 된
배경은 질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이라는 저서를 남겼기 때문이다. 질 들뢰즈는 남들이 이미 자신의 철학을 구축했을 시기에 앞선 시대의 철학자들을 연구하는 재미없는 학자였다. 그 시기동안 그는 베르그송, 흄, 니체, 스피노자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중 니체 연구는 매우 흥미롭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은 들뢰즈가 그 당시까지 다져왔던 여러 철학자들의 존재론을 ‘차이’와 ‘반복’이라는 개념으로 엮으면서 하나의 철학으로 확장시킨다. 들뢰즈의 차이는 일반적으로 무엇과 무엇이 서로 다르다는 의미를 담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다른 것이 들뢰즈가 말하는 차이이다. 그런데 이 차이는 궁극적으로 반복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들뢰즈는 반복을 말하면서 영원회귀의 반복을 제시한다. 니체의 영원회귀, 긍정과 기쁨의 철학을 들뢰즈가 사용하면서 미래의 반복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로 발전시킨 것이다. 들뢰즈가 말하는 영원회귀의 반복은 이름 없는 평민들, 익명으로 불려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에 해당한다. 이 과정은 신이나 영웅에 의해 형성되었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시도일 것이다. 들뢰즈의 영원회귀의 반복, 그것은 지금 도래하고 있는 세계의 이정표일 수 있지 않겠는가. 문명의 발달로 이성에 대한 자신감이 가득했던 인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파시즘을 쓰라리게 겪었다. 이 잔혹한 경험으로 인해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는 확신이 흔들렸다. 이 믿음은 이제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 믿음에는 본래부터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이때 니체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드디어 그의 때가 온 것일까?구조주의 등으로 불린 이질적인 사조들이 니체라는 샘에서 물을 길어 올렸다. 니체가 ‘내 말은 귀를 갖지 못했구나!’라고 탄식했지만 20세기에 그가 한 말의 ‘귀’들이 수도 없이 출현했다. 우리는 니체의 말과 그 ‘귀’들을 새로이 읽으며 서양 현대 철학사를 다시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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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의 계절(歲寒之時)에 느끼다[청춘의 고전 시즌2]-①

?세한의 계절(歲寒之時)에 느끼다[청춘의 고전 시즌2]-①

 

세한의 계절(歲寒之時)에 느끼다-전호근(경희대학교)
김민수(서울교대 시간강사)

 

“우리의 삶 속으로 추위가 온다는 것은 시련인데, 시련이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 준다. 날씨가 추워졌을 때 삶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난다.”(전호근 교수)
전호근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너는 홍대 앞 클럽 가니? 나는 홍대 앞에서 철학한다.’라는 다소 시대상을 반영한 도발적인 문구로 상상마당+한국철학사상연구회+프레시안이 공동 기획한 <청춘의 고전>이 지난해 ‘영화+철학’으로 시즌1을 마친데 이어 올해 ‘그림+철학’으로 시즌2를 시작하였다. 시즌2의 제목은 ‘그림에 say’이다. 그림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전호근 교수가 강의 중에 말했던 바와 같이, 그림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이 없다면 부차적인 것이거나 쓸모없는 일이 될 것인데, 어떻게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우선 감상자의 미적 체험이 없이는 보일 수 없는 그림을 누군가가 말로서 대신 체험하게 해 준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밖에 부는 바람 때문일지 아니면 시대적 요청일지, 여하튼 아직은 모를 어떤 힘에 의해 ‘그림에 say’라는 실험이 시작되었다.

‘인문학의 위기’ ‘철학의 위기’라는 세간의 표현이 무색하게 홍안의 청년에서부터 백발의 노년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수강생들이 자리를 꽉 메운 강의실의 풍경에 전호근 경희대 휴마니타스칼리지 교수도 다소 놀랐다. “이렇게 많이 올지 몰랐습니다.” 다산, 연암, 추사의 원전 강독 강좌에 정평이 난 전호근 교수(이하 전교수)가 대중 강연 속으로 나와서 처음 던진 인사말이었다.“인문학은 어려운 학문입니다. 그리고 제 강의도 그렇습니다.”라고 운을 떼며 전교수는 곧바로 강의를 시작하였다. 인문학이 기성복을 사듯 몸에 맞는 적당한 것을 쉽게 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옷을 지어서 입는 것이라면,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 가며 직접 옷을 지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전교수의 설명이었다. 물론 그 옷을 만드는 과정에는 애써 짠 옷을 풀었다가 다시 짜는 실패의 경험도, 서툰 바느질에 손끝이 찔리게 되는 아픔의 경험도 함께 들어 있다.

우리가 고전을 읽을 때 겪는 어려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일상생활에 쫓기면서 기성복을 골라 입듯이 편안한 것만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고전은 불편한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멀리 있으면서도 낮선 ‘어떤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전 그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전은 진리만을 말할 뿐인데, 진리와 멀어지게 된 거리가 고전을 어렵게 만든다. 고전 읽기의 어려움 정도는 현존 상황에 대한 익숙함 정도와 비례한다. 이런 의미에서 전교수는, 『논어(論語)』를 예로 들어, 역사적으로 분서갱유를 당한 과거의 금기가 오늘날에도 ‘공자가 죽어야한다’ 혹은 ‘공자는 멍청이의 원조이다’라는 터무니없는 말로서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비판적 시각에서 언급하면서, “우리가 고전을 어떻게 읽느냐가 바로 ‘고전’의 수준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여서 “좋은 책이란 현실이 진리를 외면할 때 금지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역사적으로 우리의 선대 지식인들이 어떻게 고전을 읽어왔는지 안다면, 그 앎 속에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고 말한다.

1. 세한도에 머문 조선시대의 불멸의 정신

전교수가 세한도에서 읽은 것은 조선시대의 ‘불멸의 정신’이었다. 전교수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불멸의 정신은 다름 아니라 성리학의 ‘리(理)’이며 이것이 사대부의 정신이었는데, 그 마지막 정신이 세한도에 있다”는 것이다. 창밖의 세찬 바람도 저 멀리 달아나게 할 정신. 그 정신이 이 세한도에 있다는 것이다. 추사는 단지 ‘그림’만을 잘 그리는 제자보다는 먹이 스며들듯 정신이 깃든 ‘문자향’을 잘 드러낸 제자를 편애하였다는데, 그 이유를 전교수는 추사가 그 어느 것보다 더 높게 추구한 불멸의 정신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전교수는 ‘추사의 세한도가 왜 명작인가?’라는 물음에 대에 대해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할 때, 우리는 단지 ‘그림’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자의 ‘향(香)’이라 할 수 있는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전교수가 강의 자료로 가져와 보여준 추사의 세한도 그림에는 우선 흰 여백이 있었다. 그리고 여백 한 가운데에 갈필로 그려진 소나무 두 그루와 문이 정면으로 나 있으면서 비스듬히 놓인 집이 있었고, 왼쪽에는 잣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오른쪽 상단에는 그림의 제목인 세한도(歲寒圖) 글씨가 있었고, 그 옆으로 제자인 이상적(李尙迪)에게 준다는 우선시상(藕船是賞)이라는 글씨가 있었다. 이어서 추사(秋史)의 또 다른 대표적 호(號)인 완당(阮堂)이라는 글씨와 함께 본명인 정희(正喜)라 씌여진 낙관이 찍혀 있었다. 오른쪽 하단에는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의 장무상망(長毋相忘)이 낙관처럼 찍혀 있었다. 그 이외에 어떤 세찬 바람은 없었다. 4층 강의실 너머로 가로수들을 심하게 흔드는 바람보다 훨씬 더 거센 제주도의 바람이 불었을 법한데, 세한도에 바람은 없었다. 추사의 정신 속에는 바람이 이미 지나간 이후였다.

전교수는 세한도가 그려진 때가 세밑 겨울이 아니라 의외로 여름이었다고 한다. 나무도 실제 소나무의 모습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전교수는 조선 문인화의 정수인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언급하면서, ‘진경(眞景)’은 “눈에 보이는 단편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둘러본 이후에 생긴 ‘참눈’으로 일체를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참눈’은 바로 문인(文人)의 정신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교수는 겸재(謙齋)가 진경으로 산수를 보았듯, 추사가 세한을 보듯, 우리도 그렇게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진경(眞景)으로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전교수는 하나의 예를 들었다. 예는 봉은사 판전현판(殿板, 1856) 글씨로 낙관부의 ‘칠십일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이 암시하듯 추사의 마지막 글씨이다. 전교수에 따르면, 이 글씨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보면 그저 초등학생 친구가 쓴 글씨로 “똥 싸질러 놓은 듯한 글씨”일 뿐이다. 이 말은 예전에 초등학생이었던 전교수의 딸이 추사의 글씨를 보고 했던 말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무거운 세상의 짐을 내려놓고 붓의 무게마저 내려놓은 노인의 마음으로 보면 “해탈하고 나서야 알 듯한 글씨”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말은 전교수의 어느 벗이 일전에 대화를 나누다가 했던 말이라고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예를 들면서, 전교수는 “그림을 제대로 본다는 것은 삶을 통한 체험의 무게와 작품의 내면에 깊이 닿는 ‘순간의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체험의 무게가 무겁지 않으면 작품 내면의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문학이나 예술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작품을 뚫고 나가는 ‘해탈’인데, 추사의 마지막 작품에는 그 ‘해탈’의 경지 즉,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에 도달한 경지가 있다는 것이 전교수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덧붙여 전교수는 이런 설명은 아무리 애써 말해도 작품을 보는 감상자에게는 부차적인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작품 앞에 마주선 감상자가 직접 자신의 경험 속에서 느끼는 그 ‘순간’을 반드시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면 말이란 쓸모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추사의 세한도에 대해서 말할 때에도, 그림에 대해서 ‘이렇고 저렇고 어쩌고 저쩌고’ 말(say)하는 것은 어쩌면 아무 쓸모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전교수는 다빈치의 모나리자 앞에서 혹은 램브란트의 말년의 자화상 앞에 설 때에도 마찬가지라고 언급하였다. 흔히들 모나리자에 대해서 색채의 원근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혹은 눈썹이 없어 미완성 때문이라는 등등의 말, 램브란트가 빛을 만들기 위해서 계란 흰자를 사용했다는 등의 말로서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경험의 ‘순간’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전교수는 고흐가 친구와 함께 미술전시관에 갔다가 램브란트의 작품 「유대인 신부」(1665년 작) 앞에 서서 몇 시간을 꼼짝 안하고 서 있다가 친구에게 “내가 이 그림을 2주 동안 계속 감상할 수 있다면 나의 수명 중에 10년을 줄여도 좋을 것”이라고 말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작품을 볼 때에는 그러한 ‘순간’의 체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덧붙여, 전교수 “나의 경우에는 10분쯤 줄여도 좋을 것”이라고 말하며, “어쨌든 10년이든 10분이든 수명을 줄여도 좋다고 인정한다는 대단한 것 아니냐”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유발하면서 청중과 호흡하는 강의를 진행해 나갔다.

2. 추사, 태사공, 공자의 세한(歲寒)

“우리가 세한도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단지 그림의 이렇고 저러한 면이 아니라 그 그림 속에 담긴 추사의 생각을 보아야 한다.”라고 말하며, 전교수는 세한도의 발문(跋文)을 읽기 시작하였다. 세한도의 발문은 단지 천만리 밖 먼 곳에서 여러 해에 걸쳐 책을 구해다가 추사의 유배지인 제주도에 가져온 제자 이상적에 대한 고마움을 기록한 단순한 발문이 아니다. 발문에는 추사가 느낀 세한의 의미가 담겨 있으며, 이 발문이 소나무와 잣나무 두 그루와 집 한 채가 있는 그림과 함께 세한도라는 작품이 완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추사의 발문에는 옛 성인인 태사공(太史公)과 공자(孔子)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낀 세한의 의미가 함께 들어 있다.

“태사공은 이르길, ‘권세와 이익으로 만난 관계는 권세와 이익이 다하고 나면 사귐 또한 끝난다.(以權利合者 權利盡而交流)’고 했다. 그대 또한 도도하게 흘러가는 세상의 한 사람인데 초연히 스스로 도도히 흐르는 권세와 이익의 밖에 있으니 그렇다면 그대는 권세와 이익으로 나를 보지 않는 것인가? 태사공의 말이 틀렸단 말인가?” 이 말은 곧, 태사공의 시대에도 그렇고 추사 당대에도 그러하듯, 세상의 도도한 흐름은 오직 권세와 이익을 좇아 그것을 얻기 위해 마음과 힘을 그토록 허비하는데, 그러한 권세와 이익으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바다 멀리 초췌하고 바싹 마른 늙은 추사에게 오기를 마치 세상 사람들이 권세와 이익을 좇아가는 듯 하는 제자 이상적을 고맙게 여겨 추사가 한 말이다. 이 말은 우리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전교수는 태사공의 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추사가 제주도 유배지에서 감내해야 했던 세한의 계절은 곤궁함이고 누추함이고 고독함이었다. 전교수는 “우리는 누구를 볼 때, 그 사람이 이룬 훌륭한 성취만을 보고 그 사람의 삶을 모른다.”고 언급하면서 추사의 실질적인 삶은 비참했다고 언급한다. 전교수는 비참했던 추사의 제주도 유배 생활은 당시 그가 남긴 수많은 서간들에 잘 드러나 있다고 언급하면서, 가족들과 친지들에 보낸 서간들에는 기가 막히는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숱한 풍토병과 눈병에 시달려 약을 구해달라고 하는 등등의 구구절절한 내용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추사는 겨울에는 한풍으로, 여름에는 무더위와 높은 습도로 고난과 역경의 삶을 연명해야 했었다. 추사의 세한도에 담긴 단아하고 굳건한 정신은 단지 도도하고 강건한 성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유배로 올 수밖에 없었던 세상의 풍파, 즉 세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세한의 계절에서부터 비롯해서 세한의 계절을 이기고 난 이후에 생겨난 것이 흔들림 없는 ‘불멸의 정신’이다. 그 정신이 흔들림 없이 표현된 것이 다름 아니라 세한의 이후에도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 두 그루, 그리고 고즈넉한 집이다. 이렇게 보면, 추사의 세한도에는 세한의 계절을 모두 거치면서도 그 시간을 이겨내고 극복한 숭고미가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그 정신에는 세한의 계절에 놓인 세계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태사공에 이어서 전교수는 발문에 적힌 공자의 말을 읽어나갔다. “공자께서 이르시길,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고 하셨다. 이 말은 『논어(論語)』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구절을 태사공이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온 세상이 어지러워진 뒤에야 비로소 깨끗한 선비가 드러난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언급하면서 인용한 것이며, 이 말을 다시 추사가 발문에서 인용하여 적은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해 추사는 발문에서,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계절을 통틀어 시들지 않으니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도(歲寒之前) 그대로 똑같은 소나무와 잣나무일 뿐이고, 날씨가 추워진 뒤에도(歲寒然後) 똑같은 소나무와 잣나무일 뿐인데, 성인께서는 단지 날씨가 추워진 뒤의 소나무와 잣나무만을 칭찬하셨다.”고 적고 있다. 그러면서 이어서 제자인 이상적이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도 그리고 추워진 후에도 변함없는 것을 언급하면서, 추사는 “그렇다면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것이 없겠거니와 이후의 그대는 또한 성인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적고 있다.

 

전교수는 세한지전(歲寒之前)과 세한연후(歲寒然後)를 구분하면서, 소나무와 잣나무가 날씨가 추워진 이후에도 여전히 굳게 푸르른 것은 변함없는 ‘인(仁)’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전교수는 직접 강의 자료로서 준비해온 사마천의 「백이열전」 중의 한 글을 읽으면서 탐욕스러운 재물에 목숨을 걸기보다는 인덕을 쌓고 깨끗하게 행동했던 백이, 숙제(伯夷, 叔齊)의 ‘인(仁)’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공자의 70명 제자 중 유독 배우기를 좋아하고 성품이 훌륭했다는 ‘안연(顔淵)’의 ‘인(仁)’을 이야기했다. 비록 백이, 숙제는 굶어 죽고, 안연도 쌀겨조차 배불리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여 끝내 일찍 죽고 말았지만, 깨끗한 선비는 세상의 권세가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부귀를 가볍게 여겼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전교수는 온 세상이 어지러워진 이후에야 그 속에서 깨끗한 선비가 드러남을 백이, 숙제, 안연을 통해서 이야기한 것이다. 이렇듯, 추사가 태사공과 공자와 함께 느낀 세한의 의미는 곧, 세한의 계절을 겪은 이후에야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문인(文人)의 정신이다.

3. 날씨가 추워진 이후(歲寒然後)에 먼 곳에서 찾아온 벗.

공자는 『논어』 「학이(學而)」편에서,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하냐(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사람이 알아주지 못해도 노엽게 생각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냐(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라고 말했다. 사람이 알아주지 못해도 노엽지 아니한데, 날씨가 추워진 이후(歲寒然後)에도 먼 곳에서부터 벗이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아마도 추사는 멀리서부터 찾아온 제자 이상적과 그가 스승의 오래된 벗으로부터 구해 온 책들을 보며, 젊은 시절에 청나라 연경에서 함께 배우고 때때로 익히며 기쁜 시간을 함께 보낸 스승과 벗들을 생각하였을 것이다.

전교수는 강의의 마무리 즈음에 이르러, ‘먼 데서 찾아 온 벗’이라는 화두를 꺼내며 ‘1984년 5월 어느 날… 버디 있어 먼 데서 찾아오니…’라고 적힌 강의 프리젠테이션 화면을 띄웠다. 1984년 5월 어느 날은 전교수가 눈물을 흘렸던 직접적인 체험이 담겨 있는 날이었다. 전교수에 따르면, 그날은 종로 어느 골목에서 젊은 날의 전교수가 눈물을 흘렸던 날이었는데, 그 이유는, 코를 따갑게 만들며 눈을 뜰 수 없게 만드는 자욱한 최루 가스 때문이었다. 아울러 전교수가 눈물을 흘렸던 그 날은 또한 때마침 방문하여 종로 인근에 있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그 가스로 인해 눈물을 흘렸던 날이었다. 그때, 요한 바오로 2세가 어느 연설장에서 한 첫 말이 “버디 있어 먼 데서 찾아오니….”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전교수의 추측에 따르면, ‘버디 있어’라고 잘못 발음한 것을 보니 누가 원고를 대신 써준 것이 아니라, 교황이 직접 썼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전교수는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에 오면서 “2,500년이라는 시공간을 관통해서 왔었다”고 말하였다. 전교수에 따르면, 요한 바오로 2세는 논어를 읽고 감명이 들어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를 첫 인사말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먼 곳에서부터 찾아온 벗을 너무 즐겁게 반겨서 최루 가스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전교수가 개인적 체험을 거론한 것은 단지 주관적일 뿐인 한때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역사를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었다. 전교수는 사마천의 어느 한 문장을 기억하여 말하면서, 역사가는 “지나간 일을 기록함으로써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다.(述往事思來者)”라고 말하였다. 즉, 역사가의 서술 작업은 과거를 정확하고 진실하게 기술함으로써 과거 속에 올바른 미래를 기약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역사 서술은 문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회적 존재이자 역사적 존재인 인간이 역사에 대한 책임이 없다면, 우리가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더러 아울러 미래 또한 아무런 전망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교수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면서 전교수는 4.19세대들은 후대인들에게 자신들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알리는 데 성공했다면, 5.18세대들은 후대인들에게 자신들의 역사 속에 담긴 성과와 과오를 알려주는 데 실패했다고 언급했다.

전교수에 따르면,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당대의 뛰어난 사람을 벗으로 사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교수는 이런 의미에서 “당대의 뛰어난 벗이 있어 직접 찾아갈 수 있다면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그러나 만약 당대의 뛰어난 벗이 없다면, 옛 사람을 벗으로 사귈 수 있다”고 말한다. 옛 사람을 벗으로 사귀는 것이 곧 역사를 읽는 것이자 역사 속에 오래도록 남은 고전을 읽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교수는 이덕무(李德懋)가 “책을 읽다가 그 사람을 만날 수 없어서 너무나 아쉬운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늦은 시간까지도 강의실을 가득 메운 수강생들에게 “우리는 책을 읽다가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러면서 전교수는 이 물음에 대해서 “만약 이 기준에서 볼 때, 우리가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면, 우리는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이다”라고 답하였다.

‘먼 곳’이란, 단지 지리적으로 이동 거리가 먼 곳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벗이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권세와 이익을 쫓아 자신의 온 정열을 쏟으면서도 벗을 보지 못한다면, 그는 ‘먼 곳’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먼 곳’이란, 시공간적 의미에서, 단지 지금으로부터 오래 전의 사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래 전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그의 생각을 문헌을 통해서 읽고 헤아리고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 벗은 아주 가깝게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교수는 고전이란 바로 우리가 벗으로 여긴다면 아주 가까울 수 있으면서, 그 반대로는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언급한다.

날씨가 추워진 이후에 추사에게 찾아온 벗은, 먼 곳에서부터 어렵게 책을 구해서 제주도로 찾아온 제자 이상적뿐만 아니라, 그 책을 전해준 당대의 벗들, 그리고 그 책 속에 담긴 아주 오래된 벗들이었다. 이 벗들을 만나 즐거운 마음에, 세한연후(歲寒然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知) 된다는 공자의 말을 빌어, 추사는 비록 거리는 멀리 있지만 가까이 온 벗을 반긴 것이다. 그러면서 그 반가운 마음을 추사는 세한도에 담은 것이다. 그리고 이 세한도를 받은 이상적이 그해 연경에 찾아가 추사의 벗들에게 그 마음을 보였을 때, 그 벗들 또한 즐겁고 반가운 마음에 서로들 찬시(讚詩)를 덧붙여 썼던 것이다. 우리도 세상살이의 풍파 속에서 경험하는 것이지만, 벗들은 세한연후에야 비로소 ‘먼 곳’에서부터 찾아온다.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더라도 바람이 지나간 연후에는 벗이 찾아온다.

전교수는 강의 중반부에서 “예술가가 외롭고 고독한 존재인 줄 알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외롭고 고독한 존재이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살아간다.”고 말을 하였는데, 어쩌면 우리는 외롭고 고독한 존재임을 정녕 몰라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진지한 ‘순간’을 삶에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혹은 불편한 진실로 여기고 살아간다. 전교수의 말 속에는 전교수가 추사의 ‘세한도’를 통해서 전해주고 싶은 결론이 암시되어 있었다. 즉, 우리가 외롭고도 고독한 존재임을 알면서도 세상의 추운 한파를 견뎌 낼 때, 세한연후(歲寒然後)에는 먼 곳에서 벗이 오는 기쁜(樂)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강의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르렀을 때, 강의실 밖에는 여전히 봄꽃을 시샘하는 세찬 바람이 불어 가로수는 흔들렸다. 하지만, 세한도 안의 소나무와 잣나무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강의를 마무리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안 전교수는, ‘세한의 계절(歲寒之時)에 느끼다’라는 시대적 화두를 던지며, “우리의 삶 속으로 추위가 온다는 것은 시련인데, 시련이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해 준다. 날씨가 추워졌을 때 삶의 가치가 비로소 드러난다.”라는 말로 강의를 끝마쳤다.

4. 세찬 바람을 뚫고 가까운 곳에서 찾아온 벗

이윽고 강의의 여운이 남겨진 가운데, 청중의 질문 순서가 이어졌다. 첫 번째 질문은 “못된 사람이 잘 사는 현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였다. 이에 대해 전교수는 “못된 것은 못된 것이라고 서술하는 것이 역사이고 사마천은 그렇게 했다. 사마천은 역사 속에 미래를 담은 것인데, 지금의 우리 상황은 사마천의 시대보다는 나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역사를 서술하는 것 이외에도,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좀 더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하였다. 두 번째 질문은 “이상적이 가져온 책은 추사가 원했는가? 아니면 이상적이 알아서 가져온 것인가?”였다. 이에 대해 전교수는 “둘 다 맞다고 할 수 있다. 추사는 연경에 있던 벗들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최신의 책들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는데, 제자 이상적이 그 마음을 헤아려 알아서 가져온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답하였다. 그 외에 세 가지 질문이 더 이어졌고, 전교수는 차례대로 답하였다. 질문자 중에서는 일산에서 고등학생과 함께 온 어머니도 있었다.

소위 인문학의 위기, 철학의 위기를 겪는 동안 학자들은 현실과 대중에 다가가지 못했던 자기반성을 시도하였고, 이제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멀리 있는 것으로만 여겼던 ‘벗들’을 찾아 나섰다. 춘삼월이라 하지만 아직 봄꽃을 시샘하는 세찬 바람이 불어옴에도 불구하고, 그 바람을 뚫고서 상상마당 4층 강의실로 우산을 접듯 바람을 접고 ‘벗들’이 들어왔다. 벗이 있어서 먼 곳에서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만약 그렇다면 마치 제자 이상적이 먼 곳에서 찾아왔을 때 추사가 세한도를 건네며 고마움을 표현했듯이, 이제 우리의 선학자들도 ‘벗들’에게 어떤 울림의 말을 해서 고마움을 표현할지 기대해 볼 일이다. 울림이 클 때 벗들도,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기쁨이 있을 것이다(學而時習之說也). 다음 두 번째 강연은 4월 14일 6시에 상상마당 4층 강의실에서 열리며, ‘구스타프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과 여성의 몸’이라는 주제로 이현재 서울시립대 HK교수가 강연자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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