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회원들의 철학적 책읽기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서평/특별기고]

강신익(인제대 의대 교수/인문의학연구소장)

이 책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는, 현대 정신의학이 다양한 문화의 자생적 문제해결능력을 무시하고 미국문화의 잣대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재단함으로써 발생하는 사태들에 대한 보고서이다. 저자는 거식증, 외상후장애증후군(PTSD), 정신분열병, 우울증 등 서구에서 발견되고 분류되고 관리되어 온 대표적 정신질환이 홍콩, 스리랑카, 아프리카의 잔지바르, 일본에서 퍼져나가는 양상을 세심히 관찰해 보여준다. 그리고 서양의학은 토착문화의 자생력을 파괴하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중 홍콩과 일본은 우리와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지역이어서 특히 관심이 간다.

아마 현대의학이 인류를 참혹한 질병의 고통에서 구해준 은인이라고 믿는 독자라면 무척 당혹스러울 것이다. <질병 판매학>, <더러운 손의 의사들>, <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의 주머니를 털었나> 등 현대의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많은 책들이 출판되기는 했어도 의학이 인류구원의 보루라는 믿음은 우리 사회에 아직 굳건하다. 이 책들은 제약회사가 처방권을 가진 의사를 합법적으로 또는 탈법적으로 매수해 불요불급한 처방을 남발하도록 조장한다고 폭로한다. 실제로 약을 처방하는 대가로 제약회사가 의사나 의료기관에 지불하는 리베이트의 문제가 여러 차례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00년에 있었던 의사들의 파업은 의약분업을 통해 약품의 유통마진을 줄이려는 정부와 의사집단의 이해가 충돌한 사건이었다. 문제를 이렇게만 보면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조정과 합의가 해결책이다. 실제로 의사파업은 힘에 따라 이해관계를 재분배하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문제를 좀 더 근원적인 곳에서 찾아낸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축적해 가는 삶의 지혜, 즉 공동체마다의 문화다. 그런데 미국의 의사들이 중심이 돼서 만들어낸 정신질환분류(DSM)에는 서양과 다른 세계관과 삶을 담을 공간이 없다. 따라서 서양의 정신의학은 서양인의 삶에서 형성된 정서와 문제를 기준으로 다른 문화권의 삶을 재단할 수밖에 없다. 홍콩의 거식증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날씬한 외모에 대한 무의식적 동경이 이 병의 원인이라는 서양식 설명은 실제 사례와 거의 들어맞지 않는데도 말이다. DSM은 특정 문화권에서만 발견되는 증상을 포함하기도 한다. 한국인에게만 있는 ‘화병’이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서양의 교향악에 국악 가락 한 소절을 집어넣는다고 그 음악이 국악이 되지는 않는다. 이 책은 그런 문화적 불협화음에 관한 것이다.

문제를 이해관계보다 더 큰 문화의 틀 속에서 찾아낸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이로써 우리는 의료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다. 이것은 20세기 중반 이후 현대의학을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대두된 여러 학문 중 하나인 의료인류학의 접근법이기도 하다.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하버드 대학의 아서 클라인만은 대만에서의 정신병 연구를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문화적 연구의 길을 열었다.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서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문화적 폭력일 뿐 아니라 현지민을 새로운 의료상품의 소비자로 만들어 사회경제적으로 수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거식증과 정신분열병의 사례가 주로 문화적 폭력에 대한 것이라면 외상후증후군과 우울증의 사례는 주로 문화적 폭력이 경제적 수탈의 수단이 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외상후증후군과 우울증은 각각 서구식 훈련을 받은 심리상담사와 거대 다국적 제약기업의 큰 시장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현지인들을 서양인처럼 앓게(미쳐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세계가 미국처럼 미쳐가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현지 문화에 대한 무지와 무시라면 다른 하나는 미국인들의 몸과 마음이 되어버린 그들 자신의 문화에 대한 반성의 부재다. 이 책의 초점은 전자에 있지만 후자에 대해서도 마땅히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이것은 의료인류학이 갔던 경로이기도 하다. 최초의 의료인류학자들은 과학에 바탕을 둔 서양의학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식민지와 후진국에서는 건강에 관한 각종 미신과 토착신앙 때문에 서양의학이 잘 수용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위해서는 그들의 신앙과 문화를 연구해야만 했다. 그런데 후진국의 신앙과 거기에 바탕을 둔 토착의학을 연구하다보니 비교분석을 위해 같은 방법으로 서양의학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문화적 장막에 가려 보이지 않던 서양의학의 전제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서양의학의 보급을 위해 시작된 연구가 이제는 오히려 서양의학의 문제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된 것이다. “다른 문화의 믿음들을 깊이 탐구하면 우리 자신의 문화적 편향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다.”

이 책은 서양의 정신의학이 다른 문화권에서 만들어내는 문제들에 관한 것이지만, 거꾸로 다른 문화의 시선으로 서양의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일상에 대한 과도한 의료화가 다양한 맥락 속에서 자동적으로 습득된 문제해결 능력을 무력화하여 오히려 병을 만든다고 주장하는 이반 일리히의 <병원이 병을 만든다>, 그리고 프랑스의 정신의학이 식민지 알제리인의 정신을 파괴하고 지배하는 양상을 비판한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에서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진단명을 쓰지 않지만 50대 이상 세대라면 히스테리와 신경쇠약이라는 서양에서 발명되고 수입된 증세에 익숙할 것이다. 실제로 그런 증상을 앓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유명 연예인들의 잇단 자살은 우울증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고 아마 그 발병을 더 촉진시켰을지도 모른다. 천안함 사건에서 생존한 승조원에 대해 실시했다는 외상후장애증후군 치료는 과연 어떤 문화적 전제에서 출발한 것인지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혹시 치료를 빌미로 틀에 박힌 가치를 주입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책은 이러한 현실적 반성 외에 우리들 자신의 본성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생물학적 존재인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문화에 길들여진 존재라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이 책은 이 점을 상기시켜 준다. 대중은 문화적 권위의 지지를 받는 틀 속에서 질병을 이해하고 경험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그 문화적 권위가 교회였지만 근대 이후 급속히 과학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20세기 이후에는 자본과 소비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19세기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던 히스테리 환자들은 이 분야의 문화적 권위였던 의사 샤르코가 진단하고 분류하고 기술한 그대로의 증상을 겪었다. 오늘날의 소년소녀들은 TV에 등장하는 연예인의 외모와 행동과 소비패턴을 규범으로 삼고 닮으려 한다. 그래서 성형과 미용과 다이어트의 열풍이 분다. 이것은 “무의식이 감정의 고통을 당대에 이해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시도”의 결과다. 이렇게 문화적 기대와 개인적 경험이 상호 작용하고 우리의 생물학적 몸은 문화적 경험과 기대를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한다. 몸과 문화는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생물-문화적(Bio-Cultural) 현실이다.

21세기의 문화적 권위인 자본은 바로 그 생물-문화적 현실을 파고들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새로운 생물-문화적 현실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자율적 문제해결 노력이 아닌 약품의 소비가 규범인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 확대되면 모든 사람이 그 새로운 생물-문화적 현실의 구성요소가 된다. 책 속에 인용된 애플바움의 말처럼 “완벽한 건강이라는 유토피아적 가능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부지중에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에게 우리가 가진 자유의 도구들을 마음대로 통제할 고삐를 넘겨주고 말았다. 과학의 객관성, 의료의 윤리와 공정성, 환자의 이익을 위해 일하겠다는 맹세를 스스로 지키는 한에서 의학에 자율성을 부여할 특권은 이제 그들 손에 있다.”

의료인의 전문가로서의 자율성과 대중의 의료인에 대한 신뢰를 되찾고 환자가 의약품의 소비자가 아닌 자기 건강의 주체로 바로 설 수 있을지의 여부는 바로 이와 같은 사회문화적 메커니즘을 바꿀 수 있을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이 책이 의료와 관련된 모든 논쟁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삼우반, 2003[청춘의 서재]

윤지미(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오웰이 이 책을 쓰기까지

영국인인 조지 오웰George Orwell (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1903.6.25~1950.1.21)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한겨레, 2010. 이하 『위건 부두』)에서 자신이 ‘상류 중산층 가운데 하급’, ‘특권 계급 출신이지만 돈은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론상으로는 상류층의 에티켓과 관습, 문화를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런 삶을 영위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부류로서 ‘두 가지 차원을 동시에 살아야 하는’ ‘피곤한 신분’이었다. 또 자신을 ‘부르주아의 완충재 같은 계급’이라고도 표현했다.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스쿨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서 입학했다.

에릭이 이튼스쿨을 다니던 때는 1917년부터 1921년까지이다. 1차 대전과 러시아 혁명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에릭에 따르면 영국에서도 유례없이 혁명적인 분위기가 만연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위험한 진보 작가의 책이라 분류되었던 것들을 모두 읽고 자신을 막연히 사회주의자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정말 어떤 것인지도 알지 못했고 노동계급이 인간이라는 개념도 없었으며 책을 통해서나 그들의 고통을 안타까워할 뿐이었지 실제로 그들 가까이 갈 때는 여전히 그들을 혐오하고 경멸했다고 고백한다. “돌이켜보건대 그 시절 나는 시간의 절반은 자본주의 체제를 비난하는 데 쓰고 그 나머지는 버스 차장의 무례함에 분을 터뜨리느라 허비한 것 같다”(『위건 부두』, 191쪽)

이튼을 졸업했지만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할 성적이 되지 않았던 그는 1922년 미얀마(구(舊) 버마)로 건너가 5년 동안 ‘인도 제국 경찰의 일원’으로 일했다. 스무 살이 채 안 된 나이였다. 이튼 시절, 젊은이들에게 1차 대전 참여를 부추기기만 한 기성세대의 비겁함과 또 전쟁을 무능하게 지휘했던 노년층에 코웃음을 치며 기성세대가 내세우는 정통성과 권위에 반항을 했다지만 이튼에서 전수받은 대영제국의 국민이라는 교육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진 못했나 보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도 식민지의 관료였다. 그러나 에릭은 – 수입이 많고 안정된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권층 노릇하기 쉬운 – 식민지의 경찰직을 선택하고 나서야 제국주의의 실상과 마주친다.

1927년, 휴가를 받고 영국에 도착한 에릭은 제국의 경찰 노릇을 그만하겠다고 결정한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찰직을 떨쳐낸 에릭은 희망했던 작가가 되기 위해 1928년 친척이 살고 있는 파리로 옮겨와 습작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미얀마에서 보냈던 시간들로 인해 괴로웠다.

“나는 5년 동안 압제의 일원으로 복무했고 그만큼 양심의 가책이 컸다. 잊히지 않는 숱한 얼굴들 때문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모른다. 법정에 선 피고들, 사형수 감방에서 최후를 기다리는 죄수들, 나에게 윽박질당하던 부하와 냉대당하던 늙은 농부들……내가 느낀 죄책감은 너무 엄청나서 속죄를 하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과장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일을 5년 동안이나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번민 끝에 결국 얻은 결론은 모든 피압제자는 언제나 옳으며 모든 압제자는 언제나 그르다는 단순한 이론이었다.”(『위건 부두』, 200쪽)

“나는 내 자신이 단순히 제국주의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인간의 모든 형태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스스로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어졌다. 그들 중 하나가 되어 그들 편에서 압제에 맞서고 싶어졌다……당시에는 실패만이 유일한 미덕처럼 보였다.”(『위건 부두』, 201쪽)

“그렇지만 나는 노동 계급의 처지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실업에 관한 통계를 본 적은 있었으나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부끄러울 것 없는’ 빈곤도 최악의 수모를 당한다는 너무나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위건 부두』, 202쪽)

“그들은 ‘하류 중에서도 최하류’였으며 그런 그들이야말로 내가 접촉하고 싶었던 부류였다. 그때 내가 진심으로 원한 것은 번듯한 세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길을 찾는 것이었다…… 일단 그들 사이에 섞여서 그들에게 받아들여진다면 나는 밑바닥까지 내려간 것일 테고 그러면 죄책감을 얼마간 떨쳐버릴 수 있으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것이 불합리한 생각인 줄은 당시에도 알았다.”(『위건 부두』, 203쪽)

파리의 접시닦이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하 『밑바닥 생활』)은 바로 그 속죄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는 파리와 런던에서 경험했던 밑바닥 생활을 가족과 친지들이 알고 당황할까봐 필명을 만들어 1933년 1월 9일 책으로 엮어낸다. 전체주의를 철저히 거부했던 ‘조지 오웰’이란 이름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옮긴이에 따르면 “유럽의 두 도시의 하층민 생활 체험을 바탕으로 구성된 르포르타주 작품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은……작품의 전반부는 1929년 늦가을의 파리 생활을 주로 반영했고 후반부 영국생활은 1928년 겨울에서 1931년 여름 사이에 그가 직접 체험하거나 간접적으로 취재한 내용을 재구성했다.”(『밑바닥 생활』, 286쪽)고 한다. 오웰도 이렇게 말한다. “거기 적은 일들은 재구성되긴 했어도 전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위건 부두』, 205쪽)

1929년 10월 뉴욕 증권 시장의 폭락 여파가 유럽에도 번져나갔다. 1931년, 영국에서도 대공황이 시작되었고 4명 중 1명이 실직자로 전락한다. 약 300만 명 정도가 실직했으며 실업수당으로 겨우 기아와 노숙을 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더불어 기아와 노숙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빈곤은 이웃의 일로 번져갔다. 암울하고 불안정한 시기였다.

오웰은 ‘하류 중에서도 최하류’의 생활을 파리에서부터 시작한다. 아침부터 욕설이 들리는 여관에 거처하면서 밑바닥 사람들의 언어와 일상들을 빠짐없이 체험한다. 겨우 연명할 일거리인 영어 교습이 끊기고 난 뒤부터는 그야말로 진짜 밑바닥이 되었다. 그러던 중 그곳에서 사귄 친구(보리스)의 도움으로 호텔의 접시닦이가 된다. ‘노예의 노예’라는 접시닦이 일은 부르주아의 완충재 역할을 하는 ‘하급 상류중산층’ 오웰의 계급적 이중성을 무너뜨렸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끊임없이 서두르고, 장시간 노동과 탁한 공기를 견디는 것이다. 그들은 이 생활을 탈출할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급료로는 한 푼도 모을 수 없고, 일주일에 60시간에서 100시간의 노동이 다른 일에 훈련할 시간을 남겨주지 않기 때문이다.”(『밑바닥 생활』, 102쪽) “그들의 생활이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 놓는다.”(『밑바닥 생활』, 152쪽)

오웰은 밑바닥 현실과 밀착되어 있는 살아있는 글들로 20세기 초반의 빈민층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하급 상류층으로 살았던 그가 최하류층을 겪으며 쏟아내는 빈민층의 생활과 노동 강도에 대한 비유들도 당시 노동 현장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런데 오웰의 글은 무겁게 흐르다가도 번뜩이는 재치를 보인다. 오웰의 묘사에 흠뻑 빠져들어 마치 내가 호텔 지하 일터에 있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껄껄 웃게 하는 풍자와 해학들을 만나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것들이 과장스럽거나 요란하지 않다는 것이다.

해학에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오다가도 어느새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이것이 오웰 글의 묘미인 것 같다. 노동자들의 고단한 생활과 환경이 곧 나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그 진실들을 외면하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소‘썰’>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때와 같은 수준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내 이웃에 있기 때문이다. 생계를 꾸려가야 할 노동자이든, 등록금을 마련해야 하는 대학생이든 아직도 궂은일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 ‘건너기 힘든 계급의 강’을 넘어서기 위해 첫차를 타고 막차를 기다린다. ‘언젠가는 나도 돈을 모으면……’

런던의 부랑인

파리에서 생활하면서 런던에 있는 친구에게 직장을 부탁했던 오웰은 선천성 정신박약자를 돌보는 일이 생겼다는 친구의 편지를 받고 프랑스를 떠나지만 런던에 도착해서야 그 일이 어그러진 것을 알게 된다. 만일 지금처럼 그때도 휴대폰이 있었다면 부랑인 생활을 하지 않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위건 부두』에 따르면 오웰은 이미 부랑인 생활에 뛰어들기 위한 준비 기간을 거쳤다.

오웰은 부랑인들과 일상을 함께했다. 그리고 그들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방치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기에 앞서 부랑인들과 섞이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묘사한다. 오웰은 자신의 상류층 언어 습관에 신경을 쓰면서 첫눈에 신분이 들통이 나 염탐자로 오해 받고 부랑인들에게 거부당할까봐 긴장했지만 그저 그들과 같은 차림새 하나만으로도 부랑인의 무리에 낄 수 있었다고 한다. “옷은 즉시 나를 새로운 세상에 들여놓았다.”(『밑바닥 생활』, 168쪽)

그렇게 즉시 부랑인이 된 오웰은 그들을 따라 구세군 구호소를 돌아다닌다. 그리고 최악의 구호소는 있지만 완전한 구호소는 어느 곳에도 없을 뿐더러 최소한을 갖춘 구호소도 없다는 사실을 영국민에게 알린다. 외부와 단절된 구호소 안의 참담한 환경들이, 일다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 부랑인들의 허기진 현실이, 그에 따른 무기력함이 오웰의 ‘기록’을 통해 밝혀진다.

부랑인들은 부랑하도록 법률로 강제되어 있다. 구호소에는 하루밖에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부랑인은 당시의 법률 상황에서는 부랑하든지 굶어죽든지 해야 하므로 부랑인이 된다. 오웰은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악폐들뿐만 아니라 해결책도 제시한다. 런던에서 사용하는 속어와 욕설들을 따로 정리한 장도 있다. 또한 당시 파리와 런던의 물가까지도 잘 기록해 놓았다.

영국 사회의 한 면을 기록한 오웰의 이 책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구호소의 환경을 개선하는 데에도 일조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오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웰의 선택

지금 우리 사회는 창의성을 강조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창의성을 발휘해야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물과 현실의 상황을 직시하지 않은 채 떠올린 상상력과 창의력은 허술할 뿐이다. 편견과 획일성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만일 오웰이 밑바닥 생활에 관해 글을 쓸 때 귀동냥에만 의지했다면 그렇게 생동감 있는 표현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의 현장 체험은 상상력과 글재주를 더욱 빛나게 했다. 호텔 작업장과 구호소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 이유도 오웰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리스’를 친구로 사귀지 못했다면 속죄 행위의 하나로 여긴 접시닦이 일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오웰이 속죄만 하고 그 상황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허울뿐인 공리주의(최대다수의 최대행복)를 낳은 나라의 극빈자 상황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기록 혹은 보고 문학이라고 하는 ‘르포르타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사실과 진실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통로이다. 오웰은 ‘하류 중에서도 최하류’란 주제를 선택하였고 노동환경과 노동자 의식의 관계, 상류층과 하류층의 의식 등을 관찰하고 비교하면서 당시의 사건과 사실들을 충실히 묘사한다. 오웰의 밑바닥 생활이 빛을 발하게 된 것은 자신의 빈곤한 상황에만 집중하지 않고 최하류층의 열악한 상황과 그들의 환경에서 비롯되는 비열함까지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를 견디게 하는 최소한의 경비들도 꼼꼼히 적고 있다.

르포계에서는 ‘취재력이 곧 표현력’이란 말을 한다. 이것은 현실의 모습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심층적으로 포착해야 한다는 것으로, 상상력만으로는 창의성을 키울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열정이다. 언제나 그릇된 압제자에 저항하고, 언제나 옳은 피압제자와 연대하려는 열정. 그 열정은 르포를 완성하려는 의지를 잃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작가 스스로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마치 그것은 열정이 준비한 선물과도 같다.

오웰은‘실패만이 미덕’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성공과는 거리가 먼 밑바닥으로 간다. 그러나 끼니를 며칠씩 거르고, 접시를 닦고, 부랑인과 함께 떠돌면서도 상류층의 징표인 ‘h’발음을 없애지는 못한다. 하지만 노동계급과 최하층민에 대한 편견은 오웰에게서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하류층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열심히 일하지만 늘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삶의 질곡을 이해하게 된다.

진정한 르포는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를 변화하게 하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두 번 다시 모든 부랑인이 불량배 주정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고, 내가 1페니를 주면 걸인이 고마워하리라 기대하지 않겠으며, 실직한 사람들이 기력이 없다고 해도 놀라지 않겠고, 구세군에는 기부하지 않을 것이며, 옷가지를 전당 잡히지도 않겠으며, 광고 전단지를 거절하지도 않겠고, 고급 음식점의 식사를 즐기지도 않으련다. 이것이 시작이다.”(『밑바닥 생활』, 284쪽)

나는 오웰이 이후의 다른 작품 속에서도 파리와 런던에서 있었던 최하류의 생활에 관해 언급하는 것을 읽게 되면 속죄로 시작했던 그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는 것만 같다. 그런데 혹시 “왜 최하류층인가?”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 사회, 한 국가에서 가장 가난한 계층의 의식주 상태를 보면 그 사회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사람 보라고 건네는, 개 이야기들[아이들과 책보며 두런두런]

한참 전부터 박기범의 그림책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특히 그가 쓴 개 이야기들 – <새끼개>, <어미개>, <미친개>는 읽는 동안은 물론이고 읽은 뒤에도 여운이 오래 남아서, 말이 되든 안 되든 그 느낌을 나누고 싶었다. 박기범은 <새끼개>, <어미개>를 같이 냈고 몇 년 뒤 <미친개>를 썼다. 아이들과 이 책들을 볼 때는 꽤 시간을 들여 찬찬히 내가 읽어 주었다. 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좋았다. 아이들에게도 나와 비슷한 여운이 남는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같이 볼 이유는 충분했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보따리를 풀려고 하니 쉬 나오질 않는다. 요즘 자꾸 떠오르는 건 <미친개>다. 하지만 박기범이 책을 내놓은 순서대로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네 마음을 알 수 있을까?

– 새끼개(박기범 글, 유동훈 그림, 낮은 산 펴냄, 2003년) ·어미개(박기범 글, 신민재 그림, 낮은 산 펴냄, 2003년)

 

[새끼개, 어미개 표지]

나는 형제가 다섯이다. 우리 어릴 때야 형제가 여럿인 집이 드물지 않기도 했지만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모두 형제가 없이 자란 터라 “딸, 아들 상관없다. 많이만 낳아라.”하시는 시어머니 말씀을 기분 좋게 따르다 보니 다섯까지 낳게 됐다고 어머니는 곧잘 이야기하신다. 그런데 어머니는 당신 자식들만으론 성이 차지 않았나 보다. 어릴 적, 개를 자주 키웠던 걸로 기억한다. 게다가 작지 않은 어항에는 물고기들이 늘 뻐끔거리고 있었고 마당에 걸린 새장에선 새들이 종알댔다. 집 안팎으로 화초도 넘쳐났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언제나 꽤 많은 사람들과 동식물이 오글거리는 배경이 함께 있다.

한데 참 이상한 일이다. 지금 나는 어떤 동물도 기를 엄두를 못 낸다. 어쩌다 선물로 받은 작은 화초도 무럭무럭 크도록 길러보질 못했다. 다른 형제들은 어린 시절의 배경을 지금까지도 자연스럽게 이어와서는, 결혼하고 아이들 낳고 화초에 재미를 붙이거나 개를 기르기도 하는데 나는 같이 사는 사람도 동물도 화초도 없다.

일곱 살 때던가, 집에서 기르던 개가 없어졌다. 동네를 헤매며 개를 찾다가 자전거 뒷자리에 우리 개를 싣고 가는 아저씨를 봤다. “어, 아저씨! 그 개······” 어린 내가 웅얼웅얼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아저씨는 뒤를 힐끗 돌아보더니만 무심히도 휘리릭 내달아 가버렸다. 사람들이 개를 품에 안고 가는 걸 보면 이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새끼개> 책표지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읽기도 전에 이미 슬펐다. 책을 읽다가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자전거 뒷자리에 실려 끌려가던 어릴 적 우리 개 기억이 되살아났던 것 같다.

새끼개는 엄마 젖을 뗄 무렵, 개 파는 가게로 팔려갔다가 아이가 둘 있는 집으로 가게 됐다. 아이들은 새끼개를 무척 좋아했다. 서로 개를 안겠다고 달려들었고, 비행기를 태운다고 높이 들고 윙윙거리며 맴돌거나, 여름날이면 시원한 물을 욕조 가득 채워서는 목욕을 시켜주기도 했다. 그런데 새끼개는 아이들이 건네는 손길을 좋아하지 않았다. 비행기를 태워주면 어지러웠고 목욕물은 몸서리나도록 차갑기만 했다. 새끼개는 ‘순돌이’라는 자기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점점 사납게 짖어댔다. 하지만 아이들은 겁먹은 개의 눈망울을 착한 눈빛으로 받아들였고 새끼개가 힘들어 그르릉거리면 장난을 거는 줄로만 알았다.

 

[<새끼개> 중에서]

새끼개는 답답하고 무섭고 힘들었다. 그는 자기를 가만 놔두라고 간절히 호소하느라 짖는데 사람들은 개가 왜 이리 거칠어지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들 어머니는 자꾸 병이 나고 사나워지는 새끼개를 결국 개 파는 집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가게는 온갖 개들이 각자의 이유로 울어대는 소리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쿠워어엉, 커어헝. 커헝” 낯설고 불안한 새끼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다른 개들과 마찬가지로 목청을 돋우어 짖는 것뿐이었다.

하늘이 파랗게 좋은 어느 날, 가게 주인이 개장을 청소하는 틈을 타, 새끼개는 주인의 팔뚝을 물고는 급기야 탈출을 했다. 앞으로 내달리며 새끼개는 자유의 기쁨을 맛보지만 그것도 잠시, 떠돌이 생활은 쉽지 않았다.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몇 날 밤을 보내다가 새끼개는 저도 모르게 옛 주인이 살던 아파트 쪽을 향한다. 마침 먼발치서 두 아이 목소리가 들린다. 두 아이는 새끼개 대신 새로 사온 개와 즐거이 노는 중이었다. 그리움과 반가움이 솟구친 새끼개는 두 아이를 향해 달려가다가 그만 차에 치이고 만다. 온 몸이 길바닥 위로 납작 뭉개진 새끼개. 파노라마처럼 지난 시간들이 스쳐간다.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처럼 새끼 개의 꼬리가 살랑 움직였지만 그뿐이다.

박기범은 <새끼개>를 쓰고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책에 나오는 아이들이 자꾸 자기 자신인 것만 같았다고 작가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그는 아름다운 세상과 평화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바람과는 거리가 멀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는 인간방패 반전평화단이 되어 이라크로 달려갔다. 전쟁에 반대하는 우리나라 아이들의 편지와 이라크 아이들의 답장을 직접 전해주는, 위험하고도 아름다운 우편배달부 일을 기꺼이 했다.

박기범은 그가 겪고 느끼는 현실을 빼거나 보태는 것 없이 담담하게 풀어가는 편인데 놀랍게도 그의 책을 읽고 나면 늘 마음에 물이 가득 고이는 느낌이다. <새끼개>는 박기범이 개의 눈을 빌어서 쓴 아주 섬세한 현실 고발이다. 아니, ‘고발’이란 말은 너무 세고 거칠다. 그의 문장은 결이 더없이 섬세하니까. ‘안타깝고 슬픈 현실 보고서’ 정도가 낫겠다. 어쨌거나 박기범은 현실 보고에 그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연이어 쓴 개 이야기, 박기범이 꿈꾸는 화해의 이야기가 <어미개>다.

 

[<어미개> 중에서]

신문지나 종이 상자를 거두어 근근이 생활하는 할머니는 동물 병원 앞에 묶여 있던 떠돌이 개 ‘감자’를 데려와 같이 살고 있다. 언젠가 ‘어른의 흔적’을 보인 뒤로 감자는 수시로 새끼를 배고 낳는다. 그때마다 새끼들이 젖을 뗄 무렵이면 할머니는 새끼개들을 개장수에게 넘긴다. 아주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전쟁으로 어머니도 잃고,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된 남편과도 헤어진 할머니. 이젠 자식들마저 멀리 떨어져 산다. 이런 할머니가 이별의 아픔을 왜 모를까마는 어려운 형편에다 좁은 집에서 감자가 낳는 새끼들까지 다 거둘 수는 없다. “감자야, 괜찮다. 언제 떼도 새끼는 떼는 게야. 때가 되면 다 어미 품을 떠나는 게지.”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어른이 되고 새끼를 낳고 또 얼결에 이별의 인생을 배우면서 감자가 새끼를 배고, 낳고, 떼어내기를 일고여덟 차례. 그러면서 감자와 할머니는 같이 늙어간다. 사람보다 빨리 나이 들어가는 감자는 할머니와 친구가 될 만큼 늙은 ‘할망구 개’가 됐다. “할머니랑 살아서 좋아요.” “그래, 나도 너하고 사니까 이렇게 좋네.” 이제 둘은 눈빛만 보아도 마음을 안다. 감자는 나중에 죽으면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도 좋으니 할머니와 헤어지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몇 해를 더 살다가 어느 날 할머니는 잠든 채 깨어나질 않는다. 그리고 죽은 할머니 곁을 이틀 꼬박 지키던 감자도 숨을 놓는다. 지금 할머니와 감자는 나무로 다시 태어나, 같이 살자던 소원대로 서로를 향해 가지를 마주 뻗으며 살고 있다.

<어미개>가 나중에 쓴 작품이라지만 사건의 시점은 <어미개>가 <새끼개>에 앞서 있는 듯 보인다. 두 책을 읽다 보면 순돌이는 감자가 낳아 팔려간 새끼들 가운데 하나일 것 같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박기범은 <새끼개>에 담을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현실을 <어미개>를 쓰며 조금이나마 뛰어넘고 싶었으리라. 그런데 나를 오래도록 뒤흔든 책은 아무래도 <새끼개>다. 뭐랄까, ‘비뚠 사랑’이나 ‘엇나간 소통’ 같은 말들이 떠오른다. 자기 의도와는 상관없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이해하기 힘든 슬픈 관계 같은.

어릴 적 잃어버린 개는 내 첫 ‘상실의 기억’이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 중에도 개나 다른 동물, 곤충을 기르는 아이가 제법 된다. 생명의 소중함이라든가 보살핌과 배려 같은, 긍정적 가치관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말도 맞다. 그런데 내 경우를 보면 개와 같이 뛰놀던 즐거운 추억이나 그들을 보살피던 아름다운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웅크린 채 끌려가던 개, 어느 날 아침에 어항을 들여다보니 아프다는 언질도 없이 물 위에 둥둥 뜬 채 죽어버린 물고기 – 이런 기억만 깊고 흉한 상처로 마음 깊은 곳에 각인돼 있다.

요즘은 ‘애완동물’을 넘어서서 ‘반려동물’이란 말을 쓴다. 인간의 세상으로 그들을 데려와서는 먹이를 가공하고, 인간 생활에 맞춰 그들의 생리와 모양새까지 가공하면서 도대체 진정한 반려가 가능한 건지 나는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녀석들이 행복할까. 녀석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 물고기, 새, 개와 함께 ‘반려’를 기대하며 자라던 내 경험에서는 좋은 과정이 사라진 채, 녀석들 속을 몰라 답답하다가 결국은 하나같이 떠나버리는 마침표만 살아 있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많이 무겁고 당황스런 결말이다. 생각보다도 더 나는 겁이 많고 약한 사람일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새끼개>를 읽고 쓴 글]

그러면서도 나는 사람들과 지내는 어떤 동물에게든 무척 친근하게 굴었다. 내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마음을 들킨 적이 있는데 ‘똘똘이’때문이다. 똘똘이는 내가 시골에서 지낼 때 만났던 개다. 똘똘이네 집은 내가 오가던 길목에 있어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쳤다. 만날 때마다 나는 늘 인사를 건넸다. “똘똘아, 잘 잤어? 나는 아침에 된장국 먹었는데 너는?” “나 밭에 갔다 올게. 넌 이제 뭐할 거야?” “나 막걸리 한 잔 했다~. 밤이 깊은데 왜 여태 안 자?” “똘똘아, 곧 비가 올 것 같다. 난 비오는 날 좋아해.” 이런 식으로. 내가 주책없는 수다쟁이라면 똘똘이는 무척 담백한 녀석이었다. 내가 뭐라고 주절대든 녀석은 거의 짖지도 않고 눈만 껌뻑이며 가만 앞을 응시하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 서너 달이 지났을까, 그날도 나는 똘똘이에게 말을 걸었다. “똘똘아, 오늘 꽤 덥네. 점심 먹었어?” 녀석 앞에 쭈그려 앉으며 인사를 하는 참인데 똘똘이가 갑자기 내 얼굴로 바짝 다가서며 고개를 쑥 내미는 게 아닌가. 언제나 똘똘이의 다정한 응답을 기다리긴 했지만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아~악!! 아니아니, 난 아직 너랑 뽀뽀할 생각은 없어!” 뒷걸음치며 나도 모르게 소리를 꽥 질렀다.

만날 때마다 간이랑 쓸개랑 다 빼줄 것처럼 살살 녹는 목소리로 온갖 애교를 떤 건 나였다. 이제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다가서려는 똘똘이를 나는 순식간에 치한으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내 고함소리에 우뚝 멈춰선 똘똘이는 천천히, 정말이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외면했다. 다시는 나를 보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몸짓이었다. 그 장면은 마치 운동 경기 중계나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을 천천히 돌리는 것하고 똑같았다. 똘똘이만큼 나도 나한테 놀랐다. 내 겉과 속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뭔가 사태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아니 똘똘아, 그러니까 내 말은······” 똘똘이는 들은 척도 안 했다. 외면한 얼굴을 절대 되돌리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날마다 똘똘이에게 빌었다. “똘똘아, 제발 화 풀어. 이리로 고개 좀 돌려 봐, 응?” “똘똘아, 나를 조금만 이해해 주면 안 될까? 사실, 뽀뽀는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똘똘아, 제발 용서해 다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별별 사과를 다 해도 똘똘이는 내가 곁을 지날 때마다 꼭 외면했다. 빌고 또 빌기를 보름은 족히 된 걸로 기억한다.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똘똘이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봐 주었다. 어찌나 좋던지, 고맙다고 인사하는 내 목소리마저 떨렸다. 그 뒤로는 똘똘이 앞에서 절대로 촐싹대지 않게 됐다.

사실 나는 ‘소통의 참맛’을 누구보다 많이 누리는 사람이다 생각한다. 아이들과 만나면서 나는 말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마음을 나누는 기쁨을 맛본다. 아이들이 무척 예민한 존재라는 것도 새록새록 배운다. 기분이 좋아서 내 눈과 입이 동그래지기 시작하기만 해도 아이는 금방 기쁜 표정으로 빛난다. 어떨 땐 아무 말 않고 곁에 앉은 아이 손에 내 손을 얹는데 백 마디 말이 필요 없다는 걸 느낀다. 내 슬픔이, 기쁨이, 때로 안타까움이 아이 손에서 팔로 스르륵 달려가서는 순식간에 아이 마음으로 들어앉는 게 ‘보인다’.

하지만 아이 행동이나 표정에서 뜻을 찾지 못할 때도 많다. 좋은 선생님이 되려면 아이가 왜 이런 말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지 잘 아는 게 먼저일 텐데 도무지 모르겠다 싶을 때가 있다. 뭐든 그렇지만 특히 아이에 관한 한, 성급히 단정하기보다는 모른다고 유보하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한편 있다. 아이는 모든 가능성을 품은 존재니까.

지금은 중학생인 동우가 초등학교 3학년 때다. 처음 동우와 만났을 땐 자기 나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애기 같은 목소리를 내서 조금 놀랐다. 같이 시를 짓는 시간, 동우 시에는 별과 언덕과 고통이란 단어가 곳곳에 등장하며 무척 성숙한 느낌을 주는 시를 써서 나는 또 놀랐다. 동우는 말투를 쉬 고칠 수 없어서 스스로도 스트레스를 제법 받았을 게다. 그래서 우리와 만나며 위로를 많이 받은 것도 같다. 글을 같이 쓴 뒤로 친구들은 동우를 달리 보는 듯했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문도 자자했는데 사람들 앞에서 잘 부르려고 하질 않았다. 아주 나중에야 어렵사리 한번 듣게 됐는데 동우는 글로만 노래를 잘 하는 게 아니었다. 어디서 그렇게 놀라운 고음과 미성이 나오는지, 친구들 노래에 허밍을 넣는데 정말 일품이었다. 동우는 글노래, 입노래로 우리를 감동시켰다. 동우네 모둠 이름은 ‘웃음바다’였는데 우리는 이래저래 웃을 일이 참 많았다.

‘웃음바다’ 친구들과 같이 음악을 듣겠다고 삐걱거리는 CD재생기를 들고 간 적이 있다. 기계가 고물이라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미리 걱정까지 털어놓고는 음악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중간에 기계가 헛돌기 시작했다. 어쩌지, 난감해 하는 순간 동우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달려가더니만 발로 거세게 CD재생기를 걷어찼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아니, 동우야! 기계는 때린다고 말을 듣진 않아!!” 평소 내 목소리에 비하면 강도가 제법 세서 심하게 나무라는 모양새가 됐다. 갑자기 뚝 멈춰 선 동우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 그때 나는 동우 행동이, 눈빛이 무얼 의미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자리로 돌아가 앉은 동우는 그 전과는 달리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아무래도 잘못은 동우가 아니라 내가 한 것만 같은 불안감.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날 수업을 되짚다가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드러난 동우 행동은 거칠었을지 몰라도 사실은 그게 동우의 사랑 아니었을까? ‘너 왜 우리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드는 거야? 우리 친구들이 음악을 들으며 행복해 하는 게 안 보여?’ 이런 마음으로 기계를 걷어찬 건 아닐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아까 상황은 완전히 다른 빛깔을 띤다. 그리도 소심하던 동우가 하면 안 될 거친 행동을 한 건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 느낌이 맞는지 알 길은 없었지만 내 기분도 덩달아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나무라듯 말했을 때 동우가 짓던 표정은 자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실망과 항변을 같이 담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그 다음 수업 때 “동우야, 내가 네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한 것 같아. 선생님 좀 도와줄래?” 조심스레 물었지만 동우는 끝내 아무 대답도 안 해줬다.

김호경(어린이 철학선생님) /

정말이지 이럴 순 없어![아이들과 책보며 두런두런]

「이럴 수 있는 거야??!」(페터 쉐소우 글·그림, 한미희 옮김, 비룡소, 2007년)

들지도 못할 커다란 가방을 질질 끌며, 그러느라 뒤에 한가득 먼지까지 거느리고 한 소녀가 공원에 나타난다. 표정이 심상치 않다. 소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긴장해서 침을 꼴깍 삼키지 않고는 첫 장을 넘길 수 없다는 듯, 제목도 “이럴 수 있는 거야??!”다. 그리고 첫 장을 넘기면 공원에서 소녀를 바라봤을 누군가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에 우리는 무슨 일인지 몰랐어요. 갑자기 그 여자 애가 나타났거든요.

할머니들이 잘 들고 다님 직한 새빨간 가죽 가방을 끌고 소녀는 그렇게 공원에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는 화가 잔뜩 나서 씩씩대며 소리친다. “이럴 수 있는 거야??!”

몇 걸음 걷다가는 또 도무지 참을 수 없다는 듯“이럴 수 있는 거야??!”를 되풀이한다. 풀밭에서 한가로이 쉬고 있던 사람들, 간식을 나눠 먹던 사람들, 뱃놀이를 하던 사람들 – 공원에 있던 누구나 놀란 건 물론이고 도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마침내 한 사람이 용기를 내서 묻는다.

 

“너 왜 그러니?”

작은 여자 애는 악을 쓰듯 소리쳤어요. “엘비스가 죽었어!”

아, 사람들은 소녀가 보인 모든 태도가 이해간다. 그리고 다들 엘비스를 추억하며 소녀를 위로한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못하는 게 없었던 엘비스! 나도 엘비스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떠올린다. 그런데 소녀의 표정은 풀리질 않는다.

“가수 엘비스가 아니야. 내 엘비스라니까!”

소녀는 엉엉 울며 가방을 열어 보인다. 그 안에는 노란 새 한 마리가 죽어 누워 있다. ‘소녀의 엘비스’다.

 

소녀 곁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마음 아파하며 인사를 건넨다. “안됐다, 정말 안됐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심지어 개까지 “멍멍.” 그때 한 친구가 불쑥 말한다, “엘비스를 묻어 주자.”

이제 공원에선 경건한 장례식이 벌어진다. 촛불을 들고, 꽃을 들고, 향을 피운 장례 행렬. 엘비스를 묻은 무덤가에서 사람들은 소녀가 들려주는 추억을 듣는다. 가수 엘비스만큼이나 아름답게 노래했을 엘비스의 노랫소리도 소녀를 통해 듣는다. 모두들 조금 울고, 서로 꼭 끌어안는다.

아이들과 세상살이를 생각하며 만나다 보니 ‘삶과 죽음’이란 주제로도 가끔 이야기를 나눈다. 자연 재해나 전쟁으로 세계 어디선가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기사를 보기도 하고 대통령의 죽음을 놓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런 이야깃거리가 아이들의 흥미를 잠시 돋우는 데 그치거나 심지어 지루한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느낌이 들 때 무척 씁쓸하다. 아이들에겐 전쟁으로 죽어가는 또래 친구들 이야기보다 친구 집 강아지가 죽은 게 더 큰 사건이다.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이는 할아버지의 죽음보다 우리가 못 만나는 게 더 속상하다. 어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가시려는데 아이는 전화해서 떼를 쓴다. “우리 수업 그냥 하면 안 돼요?” 하지만 아이들이 그렇게 느끼니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이 추상적이거나 먼 데 있지 않다는 걸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아이들이 ‘나’에서 벗어나 ‘우리’와 ‘그들’을 보는 눈을 뜨는 게 ‘아름다운 성장’이라면 그 길이 만만치만은 않음을 곳곳에서 느낀다.

어쨌거나 출발은 ‘나’다. 그러나 조금씩 ‘우리’와 ‘그들’로 건너가는 일, 그리고 그 안에 나도 있음을 발견하는 일. 아이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그 길을 찾고 싶다. 틈나는 대로 아이들과 가까운 공원에라도 나가는 편이다. 나는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많이 생각하는 쪽보다는 많이 느끼는 쪽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가르칠 수 있는 생각은 한계가 뻔하지 않을까. 반면 자연이 주는 느낌은 내 생각보다는 더 크고 깊을 터. 내가 설명하고 보여주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보고 느낄 테니까. 아이들도 밖으로 나가면 굳이 많은 얘길 나누지 않아도 좋아한다. 표정과 온몸으로 뿌듯한 수업을 했다는 확인 도장을 늘 찍어 준다.

예쁜 꽃을 보면 일단 꺾으려는 아이, 곤충을 발견하면 죽이려 드는 아이들이 있다. 꽤 오래 전 일이다. 그날도 아이들과 공원엘 갔다. 막 공원에 들어서는데 이미 들떠 있던 두 아이가 개미를 발견하고는 마구 짓밟는다. 그 순간, 아이는 정말 신나는 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겁을 하며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안 돼!” 숨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개미네 동네에 놀러 와서는 개미들을 그렇게 죽이니 우리가 밖으로 나온 게 잘못이구나!” 별 생각 없이 장난 좀 치려 했을 뿐일 아이들은 금방 풀이 죽는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다음 수업을 할 때다. 수업하는 방에 파리가 들어왔는데 아이들은 피하려고 호들갑이다. 썩 내키진 않았지만 나는 ‘어른답게’ 적당한 도구를 써서 파리를 잡았다. 파리를 탁 내려치는 순간 한 아이가 소리친다. “안 돼요, 그것도 생명이잖아요!!” 또 다른 아이, “파리가 뭘 어쨌다고 그렇게 잔인하게 죽여요?!” 어이쿠, 이를 어쩌나. 파리님은 이미 돌아가셨는데!

지난주의 교훈을 금방 삶으로 실천하는 아이들.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엄청난 죄인이 되어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보면서 아이들이 제안한다. 파리 장례식을 해 주자! 아이들은 종이를 돌돌 말아 ‘파리관’을 만들고 파리에게 상황 보고서와 사과문을 썼다. 우리는 양지바른 곳을 찾아 편지와 함께 파리를 묻어주고 숙연하게 묵념까지 드렸다. 그 뒤로 아이들은 수업하다가도 종종 파리를 생각하고 그의 안녕을 기원하곤 했다.

또 생각나는 일. 아이들과 미술관에 갔다. 숲에 둘러싸인 미술관이어서 그랬을까, 미술관 밖은 말할 것도 없고 전시실 안까지 남생이무당벌레가 무척 많이 들어와 있었다. 이미 관람객에게 밟혀 죽은 놈들도 꽤 됐다. “얘들아, 바닥에 무당벌레가 엄청 많다. 조심해야겠어.” 우리는 결국 미술관에서 ‘딴짓’만 했다. 벌레를 밟을 새라, 발끝으로 걸으며 무당벌레 구경에 정신이 팔렸으니까.

그러다가 한 아이가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선생님, 벌레가 넘어져서 일어나질 못해요!” 뒤로 나자빠져 바동거리는 무당벌레를 발견한 거다. 얼른 벌레를 바로 놓아주고 나는 아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기특한 녀석! 그 뒤로 아이들은 너도나도 넘어진 벌레찾기에 빠졌다. “여기도요, 선생님!” 아이들이 부르는 대로 이리저리 겅중거리며 무당벌레를 바로 놓아주느라 얼마나 바쁘고도 신났던지.

그런데 이건 웬 일, 한번은 아이가 부르는 데로 가보니 이번에 바동거리는 놈은 무당벌레가 아니라 바퀴벌레다. 흠! 잠시 멈칫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바퀴벌레도 얼른 바로 눕혀 주었다. 휘리릭 달려가는 바퀴벌레를 보며 즐거워하는 아이.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아이들은 달라진다. 콘크리트 바닥에서 말라비틀어진 도토리를 발견하고는 묻어주는 아이. 아스팔트 틈을 비집고 피어난 민들레를 들여다본다고 오래 쭈그려 앉아 있는 아이.

황당하고 유치한 동화 같기도 하다. 나와 만나면서 아이들이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바보가 되는 건 아닐까? 감상주의자가 되는 건? 그런데 나는 아이들 그런 모습이 참 좋다.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를 다분히 조장한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모기 한 마리도 죽이지 않는 ‘착한 선생님’이다. 아이들 믿음대로 살아야 할 것 같아서 실제로 파리, 모기도 죽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꿈틀대는 벌레를 사랑하기는 나도 힘들다. 집에 나타나면 녀석들이 빨리 제 갈 길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짝 들어서 밖으로 내놓거나, 영 징그러우면 한동안 못 본 척하며 나가길 기다린다. 아주 커다랗고 시커먼 거미가 목욕탕에 나타났을 때는 차마 집어 내놓을 수가 없어서 녀석과 꽤 오래 동거하느라 불편을 겪기도 했다.

지난 여름, 이사를 했다. 집으로 올라오는 언덕길에서부터 집 담장까지, 담쟁이덩굴이 푸르게 덮여 있어서 무척 좋아했다. 베란다 앞으로 나뭇가지가 무성히 뻗어 있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이사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어느 날, 집 목욕탕에서 지네를 발견했다. 처음 나타났을 때만 해도 여느 때처럼 녀석이 알아서 나가주길 바라며 그저 조심조심 지냈다. 혹시 방심할까 봐 목욕탕 문에 ‘벌레!’라고 써 놓는 정도의 조치는 취했지만.

며칠 뒤, 이번엔 내 잠자리에서 지네가 나타났다. 어렴풋이 잠이 들다가 어깨가 근질거려 툭 치고 보니 지네였다. 나는 순식간에 공포영화 속 여주인공이 되었다. 꽤 깊은 밤이었는데 마루로 뛰쳐나가며 소리를 지르고 지르고 또 질렀다. 그날 밤 나는 온몸을 최대한 오그리고 소파에서 잤다. 녀석은 녀석대로 놀랐을 터, 급하게 내 어깨를 한방 물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는 숨바꼭질 하듯 며칠을 내리 이불과 옷에서 나타났다.

집은 더 이상 편안한 안식처가 아니었다. 들어올 수도 안 들어올 수도 없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지네에 관한 정보를 속속 보내왔다. 지네는 높은 데를 잘 오르지 못한다기에 침대를 장만했다. 지네는 부드럽고 따뜻한 섬유를 좋아한단다. 밤마다 이부자락이 절대 밑으로 늘어지지 못하도록 돌돌 말고 자느라 잠을 깊이 자지 못했다. 지네는 밝은 데를 싫어한다 해서 한 달이 넘도록 밤에도 불을 못 껐다. 어두운 구석 어디선가 녀석이 숨 쉬고 있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고 그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지네가 축축한 담쟁이덩굴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아, 이놈의 아름다운 자연이 문제였던 거다. 그리도 좋아 보이던 담쟁이덩굴, 정원의 나무들, 자연이 어쩌고, 생명이 저쩌고, 존경하는 소로우와 니어링 부부 – 모두가 거추장스러웠다. 지네는 금슬이 좋아서 보통은 쌍으로 다닌다는 얘기를 들은 뒤로는 이 집에 한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가 우글거리고 있을 거란 공포를 떨쳐버릴 수 없었다. 장마가 끝날 무렵(딱 내가 이사한 즈음이다!)부터 10월까지 지네는 무럭무럭 자란다나, 이런! 찬바람 부는 11월로 들어설 때까지 나는 사색이 돼서 지냈다.

지네와 맞닥뜨린 뒤 무척 많이 배우고 느꼈다.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관념적이었는지. 내 ‘생명 사랑’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두 달 넘게 내 생활과 마음은 터무니없이 헝클어져갔다. 한편으론 지네에게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죽음 앞에서 “이럴 수 있는 거야?!” 외치던 내가, 지네를 만난 뒤부터는 스스로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럴 순 없어!!”

나는 경험에서 지혜를 배우길 바란다. 그러나 경험주의자의 오류에 빠지고 싶진 않다. 「이럴 수 있는 거야??!」를 읽고 한 아이가 소녀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네가 사랑하는 새가 죽었으면 슬퍼해야지, 왜 화를 내?”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 나 또한 어떤 사태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거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법을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다.

고백성사를 하듯 아이들에게 지금 내 상황을 들려줬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이 평소 선생님한테 배운 대로 해법을 말해 준다. 지네에게 친절하게 편지를 써서 주자고!

 

우리 아이들이 당나라 때 한유(韓愈)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한유가 지방 관리로 부임했을 때 그 지역에 악어가 나타났다고 한다. 악어가 가축을 잡아먹고 농산물에 해를 입히자 농민들 시름이 깊었다. 악어를 쫓아내기 위해 한유는 어떻게 했을까? 글쎄, ‘악어문’을 써서 악어에게 줬다나.

내 이제 악어에게 약속하노니, 사흘 후까지 무리를 거느리고 남쪽 바다로 옮겨가서 천자께서 임명한 나를 피하라. 사흘에 불가능하거든 닷새까지, 그것도 안 되면 이레까지 할 것이다. 그때까지 옮겨가지 못한다면 이는 끝내 옮기려 하지 않는 것이다. 천자께서 임명한 관리를 무시하여 옮겨 피하지 않거나, 어둡고 완악하여 백성과 물건에게 폐해를 입히는 것은 모두 죽일 만하니, 나는 재주와 기예가 뛰어난 사람들을 뽑아 강한 활과 독화살을 잡고서 악어와 싸워 반드시 죽이고야 말 것이다. 악어는 후회하지 말라.

한유는 양, 돼지 한 마리와 함께 ‘악어문’을 물에 던졌는데 놀랍게도 그 뒤로 정말 악어가 사라졌다고 한다. 나는 지금도 아이들이 써 준 ‘지네문’을 책상 위에 고이 펼쳐 놓고 있다.

김호경(어린이철학 선생님) /

내가 가장 슬플 때[아이들과 책보며 두런두런]

오늘 소개할 그림책은 제목에서 보듯이 슬픔을 소재로 한 책입니다. 슬픔을 소재로 한 그림책이나 동화책은 물론 많지만, 오늘 소개할 책은 슬픔을 다루는 방식이 여느 그림책과 좀 다릅니다. 이 책에는 주인공이 어떻게 해서 슬픈 일을 겪게 되고 또 어떻게 슬픔을 딛고 일어서는지를 보여주는 그런 통상적인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 책은 다만 슬픔의 이런저런 모습을 마치 정물화 그리듯 담담하게 보여 주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슬픈 사람이나 슬픈 사연이 중심이 아니라, 슬픔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려는 그런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슬픔을 역경이나 고난의 한 부속 요소로만, 그래서 극복 대상으로만 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어린이 책이든 어른 책이든 슬픔 자체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책을 지금까지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읽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글이 그나마 비슷한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그 글도 슬픔이라는 감정에 초점을 맞춘 글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무튼 이 그림책이 우리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는 까닭은 무엇보다 슬픔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려는 흔치 않은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내가 가장 슬플 때』

앞서 이 그림책이 여느 그림책과 다르다고 했지만, 이 책만큼 그림책의 장점을 잘 보여 주는 책도 드문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감정을 생생하게, 때로 절묘하게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 오른쪽 그림을 볼까요. 책을 펼치면 맨 처음 나오는 그림인데, 어떤 얼굴을 그린 것인지 한번 짐작해 보기 바랍니다. 작가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내가 슬퍼하는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그림 속의 내가 행복해 보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실은 정말 슬프지만 행복한 척하는 겁니다.
내가 슬퍼 보이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봐
행복한 척하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실은 울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림을 그린 퀜틴 블레이크는 세계의 수많은 어린이들로부터 사랑받는 그림책 화가입니다. 스케치도 하지 않고 그린 듯한 그의 그림이 무척 가볍고 자유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는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움이 배어 있습니다.

출처:『내가 가장 슬플 때』

그림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위의 그림과 짝을 이루는 그림인데, 책장을 넘기면 같은 주인공의 다른 표정이 나옵니다.

슬픔이 아주 클 때가 있습니다.
슬픔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나를 온통 뒤덮지요.

그럴 때 나는 이런 모습입니다.
슬픔 앞에서는 꼼짝할 수가 없습니다.

두 그림을 잇따라 보자니까,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보아뱀에게 잡아먹힌 코끼리 그림이 생각납니다. 알쏭달쏭한 겉모습에 이어 뜻밖의 실제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독자들의 호기심과 공감을 단박에 이끌어내는 점이 꽤 닮았습니다. 슬픈 얼굴 하면 우리는 상투적으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떠올리기 쉬운데, 뜻밖에도 활짝 웃는 얼굴에 이어 이런 참담한 표정을 만나게 되어 잠시나마 충격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두 번째 그림은 눈물을 흘리거나 오열을 터뜨리는 단계를 넘어 넋이 나간 듯한 극한의 슬픈 상태를 보여줍니다. 작가 마이클 로젠은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을 때 이런 모습이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아마 누구라도 슬픔을 꽤 실감나게 그렸다는 인상을 받을 것 같습니다. 폐인과도 같은 인물의 모습에서 풍겨나는 무력감은 사실 슬픔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말대로, 슬픔이 찾아오면 우리는 그야말로 ‘꼼짝할 수가 없습니다.’

슬픔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의욕을 잃게 만들고 또 어떤 적극적 행위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물론 우리는 슬픔을 잊기 위해 짐짓 다양한 행위를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책에서도 그리고 있듯이, 친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억지로 즐거운 일에 빠져 보기도 하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못된 말이나 괴상망측한 행동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행동은 결국은 하릴없이 해 보는 발버둥 또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슬픔은 그 어떤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서도 쉽게 해소되지 않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슬픔은 노여움이나 미움, 두려움 같은 다른 감정들과 그 점에서 구별됩니다. 다른 감정들은 그 감정을 불러일으킨 특정한 대상의 현존이나 양태를 반드시 전제합니다. 그렇기에 괴로움을 해소하려는 적극적 행동이 어떻게든 가능합니다. 그러나 슬픔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슬픔은 대상의 ‘현존’이 아니라 대상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연인과의 이별이나 자식의 죽음과 같이, 슬픔은 우리가 사랑하고 애착을 느끼는 대상이 사라지고 없을 때 찾아옵니다. ‘없음’으로 말미암아 생긴 감정이므로 슬픔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고, 말 그대로 꼼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그림의 시선처리에서 재미있는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그림에서는 눈동자의 초점이 또렷이 살아 있는 반면, 두 번째 그림에서는 초점이 사라진 흐트러진 시선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그림의 주인공이 어딘가 쳐다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아무 데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에는 그가 보고 싶은 사람, 시선을 보낼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슬픔에 빠진 사람은 대상의 부재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슬픔을 이겨내는 일이 가능하다면, 이론적으로 단 두 가지 방법이 가능합니다. 대상의 부재를 현존으로 되돌리든가, 아니면 우리의 애착심 자체를 끊는 방법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야 슬픔을 이겨낼 수 있겠지만, 그러나 대상의 현존을 우리가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애착심을 끊는 일이 쉬운 일도 결코 아닙니다.

슬픔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이 언젠가는 사라지거나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슬픔의 근원은 결국 죽음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벗어날 수 없다면 슬픔에서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작가가 다음과 같이 슬픔의 ‘편재성’을 노래하는 대목은 결국 슬픔과 죽음의 동근원성을, 따라서 인간의 유한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슬픔은 어디에 있는가?
슬픔은 어디에나 있다.
어느 곳에서든 나타나 너에게 온다.

슬픔은 언제 오는가?
슬픔은 언제라도 온다.
언제라도 나타나 너에게 온다.

누가 슬픈가?
모든 사람이 슬프다.
슬픔은 모든 사람에게 오고 너에게도 온다.

우리는 슬픔을 막아낼 방도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슬픔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이겨낼 방도도 없습니다. 우리로서는 그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내맡겨 애착심이 사그라지면서 슬픔도 옅어지기를 기다리는 길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우리가 한사코 슬픔을 피하거나 억지로 슬픔을 이겨내려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슬픔을 담담하게 인정하고 마치 평생을 함께할 오랜 친구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우철(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 /

진정한 깨달음이란?[아이들과 책보며 두런두런]

오늘은 여러분에게 흥미로운 그림책을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기상천외한 환상과 모험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미하엘 엔데가 쓴 『보름달의 전설』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어느 은자(隱者)의 구도와 깨달음이라는 매우 이색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가 무엇인지 알쏭달쏭해서 적잖은 여운이 남기 때문입니다. 구도의 과정은 어떠해야 하는지, 또 진정한 깨달음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독자 스스로 대답할 여지를 남겨 놓고 있는 책인데, 이 점에서 그야말로 ‘철학 그림책’이라 부를 만합니다.

작가가 던지는 생각거리를 함께 살펴보기 위해 이야기를 먼저 간단히 개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세상에 천사와 악마가 있다고 믿던 때, 애인의 배신과 아버지의 파산으로 세상에 회의를 품게 된 젊은이가 세상을 등진 채 성스러운 책들을 공부하며 진리를 찾는 데 열중한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책이 지푸라기처럼 덧없는 것’이라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글을 읽게 되자 젊은이는 지체없이 책과 공부방마저 버리고 떠난다. 그리고 어느 외딴 골짜기에 들어가 오로지 영원과 대화하며 궁극의 진리를 구하는 데 전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은자가 머무는 골짜기에 한 거칠고 사나운 사내가 찾아온다. 그 사내는 약탈과 살인을 일삼은 도적으로서, 은자와 똑같이 세상으로부터 배신을 당했으나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은 사뭇 달랐다. 성자는 도적을 제자로 삼아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려고 노력하지만, 도적은 가르침을 이해하지도, 죄를 회개할 줄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은자에게 진리가 계시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보름달 뜨는 밤에 찾아오기 시작하고 곧 주님이 직접 찾으실 것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은자는 이 사실을 불경스런 제자에게 비밀로 하지만, 이 무렵 스승에게서 이상한 변화를 감지한 제자는 몰래 만남의 현장을 찾아가 가브리엘 대천사를 활로 쏘아 죽인다. 천사가 떨어진 자리에는 오소리 한 마리가 화살이 꽂힌 채 죽어 있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오소리 몸에 들어간 악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제자는 ‘성스러운 것은 성스러운 자에게만 보인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겼기에 속임수를 간파할 수 있었다. 성스럽지 않은 자신에게 성스러운 존재가 보였으므로 가짜라고 확신한 것이다. 뒤늦게 크게 깨달은 스승은 제자에게 고백한다.

“나는 내가 네 영혼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네가 내 영혼을 구했구나. …… 아무튼 나는 내가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나는 너에게서 배우고 싶구나. 자, 돌아가자.”

어떻습니까, 이렇게 줄였는데도 이야기가 꽤 흥미롭지 않나요? 이야기의 초점은 평생에 걸친 은자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마지막 반전에 있습니다. 이 반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은자는 희로애락에 시달리는 이 세상을 허울과 속임수의 세계라고 보고 미련 없이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직 영원의 세계만 바라보며 고행과 명상을 거듭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런 노력 끝에 찾아든 것은 진리의 깨달음은커녕 속임수의 나락이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대답의 실마리는 스승과 제자의 처지가 역전되는 상황에 숨어 있을 겁니다. 다시 말해, 어떤 점에서 스승이 제자의 제자가 되고 제자는 스승의 스승이 될 수 있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제자는 무지몽매하고 신을 믿지 않을 뿐더러 자신의 죄도 회개하지 않는 문제투성이 인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승에게는 없는, 그래서 악마의 속임수를 꿰뚫어볼 수 있었던 세 가지 미덕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감각세계에 대한 예리한 관찰 능력이었습니다. 제자는 대천사 가브리엘을 만나기 시작한 무렵부터 스승의 눈빛이 미세하게나마 불안한 빛을 띠기 시작했음을 눈치챕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은자의 동굴에 평화롭게 찾아들던 동물들마저 발길을 끊은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이 모든 변화를 불길한 조짐으로 여기고 제자는 스승이 만나는 대천사 가브리엘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의 두 번째 미덕은 스승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었습니다. 제자는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흉악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스승에게 감화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승의 가르침이라면 조금도 허투루 듣지 않았는데, 그 하나가 ‘동물의 몸에 들어가 온갖 허튼 짓을 하는 나쁜 정령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는 주변세계가 점차 불길한 징조를 보이자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혹시 그런 사악한 일이 벌어진 건 아닌지 의심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 ‘성스러운 것은 성스러운 사람에게만 보인다’라는 스승의 또 다른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겼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활용하게 됩니다. 스승을 철석같이 믿고 따랐다는 점에서 그는 누구보다 훌륭한 제자였던 셈입니다.

마지막으로 꼽을 수 있는 미덕은 제자가 자신이 어리석고 불경스러운 존재라는 점을 철저하게 자각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자각이 있었기에 가브리엘 대천사가 자기 눈에 보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것이 천사가 아니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것은 성스러운 사람에게만 보이는’ 법이니까요. 제자는 미천한 자기 자신에 대한 뚜렷한 자각이 있었고, 이 덕분에 악마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던 겁니다.

이렇게 제자의 세 가지 미덕을 이렇게 찾아 놓고 보니, 『보름달의 전설』이 담고 있는 교훈이 조금 분명하게 이해될 듯합니다. 오랜 세월 고행과 수도를 거듭해 온 은자가 학식과 덕성에서 높은 경지에 오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흉악무도할 뿐 아니라 회개할 줄 모르는 일개 도적을 교화시키기 위해 헌신한 점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자의 세 가지 미덕을 고스란히 결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오로지 영원의 세계에만 눈을 돌리고 있었던 탓에 주위 감각세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했으며, 죄를 회개할 줄 모르는 제자에 실망한 나머지 믿음을 갖지 못하여 대천사와의 만남을 비밀에 부쳤으며, 마지막으로 진리의 깨달음에 대한 열망에만 사로잡힌 나머지 자기 자신의 한계를 돌아보는 냉철한 자각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은자가 마지막 장면에서 제자에게 배우고 싶다고 한 것은 바로 그런 미덕들과 관련된 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고 보면 은자가 평생 고행과 명상을 통해 공부한 것이 헛된 공부였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제자에게 배우겠다고 스스럼없이 자청한 것이 이미 큰 도량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고 또 겸허한 반성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은자와 도적의 만남, 그리고 마지막 반전을 통해 미하엘 엔데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요? 희로애락의 세상을 초탈하고 달관의 경지에 이르는 것도 좋지만, 자칫 그 ‘초월의 욕구’가 지나치면 오히려 눈이 멀게 되어 미망의 세계로 빠질 수도 있다는 경고 아닐까요?

김우철(한국철학사상연구회) /

아직도 설렌다, ‘아름답다’는 말 [아이들과 책보며 두런두런]

『아름다운 책』(비룡소)을 소개합니다.(편집자)/

 

『아름다운 책』(클로드 부종 글·그림, 최윤정 옮김, 비룡소 펴냄)

선생님을 생각하면 저 깊은 곳, 가슴 밑바닥부터 저절로 기분 좋게 찰랑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 과거, 현재, 미래까지도 동시에 환하게 빛나는 느낌.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분이 담임선생님이 되셨다. 선생님은 생물을 가르치셨다. 내가 아직까지 과학 쪽을 기웃거리는 데도 그분 영향이 틀림없이 크다. 생물학과 과학을 넘어서, 인간과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첫눈을 뜨도록 친절하게 도닥여주신 분이기도 하다.

그 분 곁에서 자라던 중학 시절은 언제 돌아봐도 내 인생에서 가장 기분 좋게 빛나는 시간이다. 선생님은 염색체, 완두콩, 멘델을 징검다리 삼아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도록 자연스럽게 이끌어주시곤 했다. 언젠가 생물 시간, 선생님은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마음으로 결정해 보는 것도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을 설명할 땐 ‘어떤’ 사람이라는 형용사를 붙일 수 있는데 그 형용사는 과학 법칙을 넘어서 우리 자신이 만들고 결정할 수 있다는 말씀도 기억난다.

“멋있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 훌륭한 사람, 재미있는 사람······. 이제부터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그 길로 나갈 수 있다. 자,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그 며칠,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사랑하고 깊이 존경하는 선생님의 말씀이니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꽤 여러 날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말을 고르는 일이 곧 내 인생을 결정하는 일 같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조심스레 건져 올렸다.

막상 대답을 찾고 나니 내 안은 순식간에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픈 열망으로 가득 찼다. 그러니까 그 뒤부터 나의 성장기를 감히 말한다면 ‘아름다움을 찾아 헤맨 과정’이라 해도 괜찮겠다. 내 마음은 아름다움과 관련 있는 모든 말과 내용을 모으는 이야기 상자와도 같았다.

눈물이 주르르 흐르거나 가슴이 콩당대는 책을 찾아 읽었고 아름다운 말씨, 아름다운 행동이라면 무엇이든 흉내 내려고 했다. 친구들에겐 다 괜찮다, 너그러이 품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거리에서 불쌍한 사람을 만나면 지켜보고 쫓아가고 가진 푼돈을 털어 주기도 했다.

아름다움을 쫓으면서 내가 어렴풋이 깨달은 건 아름다움은 아무래도 겉에 있는 게 아니라 안에 숨어 있는 것 같다는 사실. 안에서 가만가만 스며나와서는 그 빛과 향기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행복하게 해 준다는 사실. 그런 건 쉬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안타깝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했다.

내 작은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조차 만만치 않다는 걸 느낄 즈음, 한 개인의 아름다운 삶과 사회적으로 아름다운 삶 사이에 미묘한 틈이 있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크게 보면 분명 하나이련만 내 깜냥으로는 도무지 통일시킬 수가 없어 분열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저러한 굴곡을 겪으면서도 절대자에게 신심을 바치듯, 중학 시절 선택한 ‘삶의 잣대’를 마음 깊이 품고 살아온 것 같다. 멋진 말이나 용기 있는 모습, 감동을 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볼 때면 지금도 아름답단 말이 먼저 나온다. 세상의 구체적인 차이들이 내 감성의 거름망을 거치면 그저 아름답다, 한 마디로 획일화되곤 한다. 나는 점점 더 단순무식하게 느끼고 판단하고 행동하면서 이렇게 나이 들어간다.

어쨌거나 선생님 덕분에 나는 상대적으로 내면에 충실한 삶의 태도를 배웠다. 참 고마운 일이다. 이 외모로 겉에 매달렸다면 틀림없이 절망만 깊었을 터이다. 그나마 결정되지 않았고 그래서 가능성을 많이 지닌 내면을 가꾸는 쪽으로 마음을 돌린 건 다행스런 선택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사람이나 사건을 만나면 가슴이 뛰고 설렌다.

나는 아이들과 만나는 일을 한다. 무슨 공부를 한다, 딱 꼬집어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는 ‘마음공부’를 한다고 얼버무리곤 한다. 마음공부라! 참 멋진 얘기지만 이렇게 외연이 넓어서야 무책임하단 말을 들을 법도 하다. 아이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내가 좋을 때는 “아름답다!”는 말부터 튀어나오는데, 이제 아이들은 으레 그런 줄 알고 자기들이 알아서 분류하고 때로 구체적인 차이를 되묻기도 한다.

아이들과 하는 주된 공부가 책 읽고 토론하고 글 쓰는 일이라지만 소소한 일상을 놓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많다. 수다를 떤다고도 볼 수 있는데, 우리 수다가 삶의 진실 어느 자락에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면 주저 않고 책을 덮는 편이다. 삶이, 이 세상이 커다랗고 심오한 책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하지만, 내 아이가 책을 많이 읽고 글 잘 쓰길 바라서 데려왔을 부모 입장에서는 속이 탈 때도 많으리라. 수업하는 몇 주 동안이고 책을 읽지 않을 때도 있다. 책을 읽는다 해도 다 큰 아이들과도 그림책을 자주 읽는다.

제목부터가 『아름다운 책』(클로드 부종 글·그림, 최윤정 옮김, 비룡소 펴냄)이라는 그림책이 여기 있다. 유아용으로 분류돼 있는 이 책은 내용이 아주 간단하다.

 

『아름다운 책』중에서

토끼인 형 에르네스트가 길에서 책을 한 권 주워온다. 동생 빅토르는 생전 처음 책을 본다. “그게 뭐 하는 건데?” “책은 읽는 거야. 글씨를 읽을 줄 모르면 그림을 보는 거고.” 형과 동생은 같이 책을 읽는다. 책 속 주인공은 당연히 토끼들이다. 재미나게 구슬치기를 하는 토끼, 용을 때려눕히는 토끼 이야기 같은 것들.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빅토르가 책을 보며 꿈을 꾸기 시작한다. “빅토르, 꿈을 꾸는 건 좋아. 하지만 책에 나오는 걸 그대로 다 믿으면 안 돼. 나름대로 판단을 해야지.” 무지무지 큰 토끼가 콩알만한 여우를 갖고 노는 장면을 보니 둘은 기분이 더없이 좋다. 자기들 같은 보통 토끼가 사자와 여우를 훈련시키는 장면에선 “진짜로 이러면 얼마나 좋겠어!” 한숨까지 나온다.

이렇게 둘이 책읽기에 빠져 있을 때 바로 앞에 진짜 여우가 나타난다. ‘크흐흐’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여우. 당장 잡아먹힐 순간인데, 둘이 가진 거라곤 책밖에 없다. “책! 그렇지!” 에르네스트는 책으로 여우를 내려치고는 여우 입에다 책을 쑤셔 넣는다. 여우는 책을 문 채 도망가고 만다. “봤지, 책은 정말 쓸모 있는 거야.” 에르네스트는 때를 놓치지 않고 동생에게 일러준다.

내가 평생을 마음으로 조물락거리며 애지중지한 말 때문인지,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내 마음을 붙잡았다. 책이 우리를 꿈꾸게 하고, 때로 현실을 바로 보게 하고,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다는 걸 두 형제는 책을 보며 직접 겪고 배운다. 형제를 보며 ‘그래, 책은 세상과 삶과 우리 마음 사이에 놓인, 참 재미있고 튼튼하고 믿음직스런 징검다리다’ 생각한다. 그런 생각 끝에 절로 흘러나오는 소리, “책은 참 아름답다!”

작가 클로드 부종은 다른 작품을 봐도 그렇고, 짧은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게다가 좋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재주가 있다. 다들 왜 그렇게 책을 읽어야 한다고 아우성인지, 몇 장 안 되는 이야기로 할 말을 다 한다. 현실을 보고, 꿈꾸고, 꿈을 이루기 위해 문제로 달려드는 것. 책을 보며 우리는 이런 힘을 얻는다. 그러니 책을 안 보고 어찌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책이 지닌 이런 힘을 ‘아름답다’고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나를 기분 좋게 한다.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고맙다, 책들아!
책은 웃음, 천진함, 무, 다정한 저녁들,
텅 빈 충만, 대 숲에 이는 바람의 직계(直系)다.
······
그것들은 내가 먹은 밥, 내가 마신 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느 덧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엄청난 다독가로 알려진 시인 장석주가 한 말이다. 책을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왠지 딱 시인이 되지 싶다. 장석주는 책을 보며 저리도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고 느끼며 몸과 마음을 키운다. 그리고 자라나는 존재가 시키는 대로 시를 쓴다. 그러면서도 장석주는 “엄정하게 말하자면 책읽기에 힘씀은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말 그대로 아주 엄정해서 가슴이 철렁할 정도다.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여우를 내려치는 것, 책읽기가 결국에는 삶으로,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얘기를 장석주는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지도 모른다. 클로드 부종이 재미있고 명쾌하게 책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면, 장석주는 따뜻하면서도 한편 처절하게 책의 힘과 자기 존재의 한계를 고백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책을 읽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를 휘어잡는 힘이 있다. 그래, 존재를 휘어잡는다. 그러니 책을 ‘제대로’ 읽는 사람은 책이 존재가 되고 삶이 되지 않을까. ‘책읽기가 삶으로,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고 앞서 한 말은 ‘책읽기는 삶으로, 세상으로 나간다’고 바꿔야 정확하지 않을까. 달려드는 여우를 책으로 물리칠 때 책밖에 없었던 건 우연일까.

가만 보니 ‘아름답다’는 말 하나 때문에 『아름다운 책』을 붙잡아서는 쩔쩔매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일치만이 아니라, 내가 부여잡는 아름다움과 이 책이 말하는 아름다움이 다르지 않다는 걸 밝혀 보겠다고 이리 헤매나 보다.

그런데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어떤 이야기를 자꾸 피해가는 느낌이 든다. 말로 하기 힘들 때도 많지만 어떤 건 말로 하고 싶지 않다. 말과 말 사이에 남겨 두고 싶다. 이런 느낌에 대해서도 언젠가는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 책을 읽다가 활자들 사이에 놓인 그 무엇에 사로잡혀 본 적은 없는지. 그건 작가가 만드는 게 아니라 책을 읽는 우리 자신이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이제 그 비슷한 느낌에 기대어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수밖에 없겠다.

나는 ‘아름다운 선생님’이 되고픈 꿈이 있다. 『아름다운 책』같이 재미있는 책을 보며 꿈을 키우고 다듬고 아이들과 꿈을 나눈다. 내가 중학교 시절에 만났던 선생님처럼 될 수 있을까? 선생님이 내게 주었던 느낌들을 나도 아이들에게 줄 수 있을까?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나를 만나며 어떤 느낌을 받는지는 자신이 없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곁에 있어서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었던 옛 꿈을 여전히 꾼다. 아이들과 있어서 감히 나 자신이 아름다운 사건이 되면 좋겠다던 어린 시절 바람을 아직은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이렇게 스스로 다독인다. 그저, 아이들이 가끔은 ‘이런 사람 만나서 좋다’는 생각을 하면 좋겠다고. 내가 내 삶을 치장할 소중한 형용사를 선생님과 함께 발견했듯이, 아이들이 자기 빛깔을 살릴 그 무엇을 찾는 시간을 나와 함께 가지는 거라면 참 좋겠다고.

김호경(어린이철학 선생님) /

[아이들과 책보며 두런두런] 잉쯔의 고민

여러분은 혹시 인적이 드문 곳에서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온 경험이 없나요? 주위에 아무도 없는데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오면 아마 누구라도 바짝 긴장하게 될 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사람의 겉모습만 봐서는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아저씨가 천사같이 고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일 수도 있고, 예쁜 얼굴로 상냥하게 웃는 아가씨가 실은 유괴범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알려면 겉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실제 행동을 봐야 합니다. 걸핏하면 남을 괴롭히고 때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쁜 사람일 테지요. 반대로,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필시 좋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번 다 같이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정말 사람의 행동만 보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까요? 글쎄요,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사람, 같은 행동을 두고도 누구는 좋다 하고 누구는 나쁘다고 하는 일이 너무나 자주 일어나니까요.

한번 우리나라 대통령의 예를 들어 볼까요.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어떤 말과 행동을 해 왔는지 모르는 국민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있는가 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도 있습니다. 이렇게 같은 행동, 같은 사람을 놓고 좋다, 나쁘다는 생각이 갈리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구분하는 일은 생각처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황금빛 붉은 태양이 푸른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일까요? 그렇지만 태양은 푸른 하늘에서 내려오기도 하잖아요? 나는 바다와 하늘을 구분하지 못하겠어요. 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도 구분하지 못하겠고요.”

이 말은 [우리는 바다를 보러 간다]라는 중국 동화책에 나오는 주인공 잉쯔가 한 말입니다. 잉쯔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1학년 여자아이입니다. 그리고 잉쯔가 말을 건네고 있는 사람은 마을 어귀에서 우연히 만난 어떤 낯선 아저씨입니다. 잉쯔는 이때 모르고 있었지만, 실은 이 아저씨는 도둑이랍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값비싼 물건을 이미 여러 번 훔쳤고, 그래서 경찰이 뒤쫓고 있는 사람이지요. 저지른 행동만 놓고 보면 이 아저씨는 분명 나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한 번 다시 생각해 봅시다. 혹시 이 아저씨가 좋은 사람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다시 말해,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인데도 나쁜 행동을 저질렀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여러분도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거짓말은 일반적으로 나쁜 행동이지만, 때로 좋은 마음에서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염려하여 불치병에 걸린 사실을 숨긴다면 바로 그런 경우지요.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상황에 따라서는 살인조차 좋은 마음에서 나온 행동일 수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를 생각해 보세요. 안중근 의사는 우리 민족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일본의 지도자 이등박문을 살해했습니다. 이 행동은 어디까지나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의로운 마음에서 나온 행동입니다. 이런 예에서 보듯, 사람의 행동만 갖고 섣불리 좋다, 나쁘다를 단언할 수 없는 측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잉쯔가 차차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저씨에게는 잉쯔와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6학년짜리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동생은 해마다 전교 일등을 놓치지 않는 아주 뛰어난 학생입니다. 품은 뜻도 커서, 학교를 졸업하면 바다 건너 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 하지요. 그러나 아저씨는 직업도 없고 무척 가난했답니다. 더욱이 늙은 어머니까지 보살펴야 하는 처지라서 동생을 위해 해줄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늙으신 우리 어머니는 희망 없는 나를 위해 우시다가 눈이 멀었단다. 어머니는 지금 내가 개과천선해 집을 잡히고 그 돈으로 조그만 장사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계시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줄은 모르신단다. 오직 책만 들고파는 내 동생은 나를 좋은 형이라고 생각하지. 당연하지, 내가 제 학비를 대니까. 지금 난 동생 유학 뒷바라지해 줄 생각밖에 없단다. 그러니 나 좋은 사람 아니냐? 잉쯔, 네 생각에 나는 좋은 사람이니, 나쁜 사람이니?”

아저씨가 왜 도둑이 되었는지 이제 짐작이 가나요? 아저씨는 동생의 유학을 돕고 눈먼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기 위해 도둑질에 나선 겁니다. 그러니 좋은 마음으로 나쁜 행동을 한 거지요.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는 보통 좋은 마음에서 좋은 행동이, 나쁜 마음에서 나쁜 행동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 좋은 마음에서 나쁜 행동이 나온 걸까요?

사실 아저씨의 경우를 잘 살펴보면, 두 가지 생각 또는 두 가지 도덕이 마음 속에서 싸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족을 잘 돌봐야 한다’는 생각과 ‘남의 물건을 훔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그것이지요. 아마 다른 사람들 같으면 두 가지 도덕을 다 잘 지키는 일이 어렵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일푼인 데다가 직업도 없는 아저씨로서는 둘 다 잘 지킬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하나를 저버리기로 마음먹은 겁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을 가리켜 흔히 딜레마(dilemma)라고 부릅니다. ‘도덕적 딜레마’는 어떤 행동을 선택하든 간에 어떤 도덕을 어길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내 친한 짝꿍이 다른 친구의 물건을 훔치는 걸 내가 봤다고 해 봅시다. 이 경우 나는 짝꿍의 행동을 못 본 척하면 나쁜 행동에 가담하는 꼴이 되고, 그렇다고 사실을 폭로하면 친구를 곤경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우정과 정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저버릴 수밖에 없는 거지요. 잉쯔가 만난 아저씨도 이런 딜레마에 빠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두 가지 도덕이 충돌하더라도 더 중요한 상위의 도덕이 있게 마련이므로 그 도덕을 선택하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이를테면 가족의 안위를 돌보는 일보다 공공의 질서를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므로, 가족을 위해 도둑질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지요. 물론 일리 있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어느 도덕이 더 우선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생각처럼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안중근 의사의 경우, ‘나라를 구해야 한다’와 ‘살인하면 안 된다’ 가운데 어느 것을 더 상위의 도덕으로 보았을까요? 문제는 안중근 의사의 대답과 간디의 대답이 같은 것일 리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 물음에 대해 정답 같은 게 있을 리 없습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 볼까요. 옛날 중국에서는 죄 지은 부모를 자식이 고발하면 오히려 자식을 사형에 처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국법보다 효도가 훨씬 더 중요한 도덕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그러지 않지요. 그러나 옛날의 도덕보다 오늘날의 도덕이 더 옳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어느 도덕이 더 중요하고 더 우선하는가는 개인에 따라,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쉴 새 없이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하고 판단하지만, 그 판단이 맞는지 안 맞는지를 확인할 길은 사실 없습니다. 생각이 같고 판단이 같은 사람을 얼마든지 많이 만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의 판단과 대립되는 다른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방법이란 없습니다.

요즘 한참 논란이 되고 있는 안락사 문제, 사형 문제, 낙태 문제, 환경개발 문제 등이 모두 그렇습니다. 이 문제들에 대해 사람들은 제각기 이런저런 이유로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입장으로 나뉘지만, 궁극적으로 볼 때 어느 쪽 판단이 옳은가를 입증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저 서로가 끊임없이 상대쪽을 설득하는 과정, 그래서 자기쪽이 다수파의 입장이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고 보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잘 구분하지 못하겠다는 잉쯔의 고백은 나이가 어려서 그런 거라고 간단히 치부해 버릴 문제가 아닙니다. 잉쯔가 만났던 아저씨는 결국 얼마 못 가 경찰에 붙잡히고 맙니다. 그러나 잉쯔는 경찰에 끌려가는 아저씨를 먼발치에서 보면서도 아저씨가 결코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답니다.

수평선을 자세히 보면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할 수 없듯이, 사람 사는 일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쉬 구별할 수 없는 것 아닐까요?

김우철(한우리독서토론논술 연구실장) / admin@admin.com

알랭 드 보통『행복의 건축』 [청춘의 서재]

공간이 움직이고, 삶이 꿈틀거린다.

마침내 집에 돌아와 혼자 있게 되어 복도 창 밖 정원 위로 어둠이 깔리는 것을 보면, 서서히 더 진정한 나, 낮 동안 옆으로 늘어진 막 뒤에서 공연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나와 다시 접촉을 하게 된다. 낮 동안 가라앉아 있던 장난스러운 면이 문 양옆에 그려진 꽃에서 힘을 얻기도 한다. 커튼의 섬세한 주름에서 온유의 가치를 확인하기도 한다. 허세를 부리지 않는 바닥의 거친 나무 판자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수수한 행복에 부쩍 관심이 생긴다. 우리 주위의 재료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품고 있는 최고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행복의 건축』중에서-

알랭 드 보통에 의하면 집은 일상에 매몰된 내가 진정한 나의 모습을 되찾는 공간이다. 나는 내 집 문고리, 커튼의 모양 속에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가치들과 추억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거기서 또 나는 희망을 발견한다. 집은 우리의 추억과 동시에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일 또 지칠 줄 알면서도 집을 나설 것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향해서 말이다. 우리는 수많은 공간 속에 존재하고, 그 공간이 움직임에 따라 삶 전체가 요동친다. 어릴 적 꿈이 어린 내 방, 맛있는 추억을 간직한 주방, 아빠와 뛰놀던 정원, 애인과 웃고 떠들던 교외 벤치… 공간은 사라지기도 하고 또 새롭게 탄생되기도 하면서 내 삶을 둘러싼다.

내가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을 마주한 건 하필이면 우리 동네에 재건축의 바람이 불어 닥칠 때였다. 온 동네가 술렁거렸고, 사람들은 걱정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각자의 집을 머릿 속에 그려봤다. 그 때, 나는 내 추억어린 공간이 사라지는 걸 원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이 나에게 행복을 말해준다고? 이러한 석연치 않은 의구심으로 나는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내 눈에 띄는 저 촘촘한 공간이 숨쉬고, 나에게 말을 걸고, 심지어 울렁이게 하고 벅차게 하는 마법을 느꼈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을 통해서 바로 이런 공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건축은 우리에게 여러 가치들을 기억해내고 생산해내는 작업이며, 무엇보다도 그 속에서 인간은 행복하기를 원한다.

건축 속으로…

어떤 사람에게 건축은 단순히 추위와 더위를 피하기 위한 공간에 불과할 수도 있다. 반면, 어떤 사람에게 건축은 아름다움의 현현일 수 있고, 신성한 존재의 거주공간일 수도 있다. 가까운 교회나 성당에 들어가면, 그 공간 자체가 주는 신성함이 나를 숙연하게 만든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에게 건축은 문화와 역사를 바꾸고 이끌어가는 공간일 수도 있다.

건축이 추위나 더위를 막아주는 집을 짓는 작업이라는 생각은 이미 넘어선지 오래이다. 서양적 전통에서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건축은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니콜라우스 펩스너의 말처럼, 링컨 성당은 건축이지만, 자전거 보관소는 건축일 수 없다. 그러면 건축의 본질은 아름다움인가?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건축의 미적 추구가 실용성의 문제에 부딪친 것은 이른바 건축 기술자들이 생겨나면서 부터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건축은 제작비용과 그것의 효용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싼 비용으로 가장 긴 거리를 연결하는 다리를 설계하는데 노력을 기울였지, 그 다리가 어떤 스타일로 지어져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 지나치게 미적 감각을 추구한 나머지, 아름다운 집이지만 정작 집의 본질적 기능을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높은 천장과 사방이 유리로 된 집의 경우, 미관상 아름다울 수는 있으나, 거주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건축은 기술과 예술 사이 어딘가에 있다. 스위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에서 아름다움을 제거하고, 건축의 과학과 기술을 도입하여 실용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새로운 건축을 원했고, 기술자이기를 자처했다. 그의 건축에 대한 생각은 ‘건축은 거주하는 기계’ 라는 간단명료한 정의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은 실용정신을 강조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 역시도 예술적 동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르 코르뷔지에가 그토록 실용주의를 강조했으면서도, 결국 ‘빌라 사부아(르 코르뷔지의 건축물)’를 “아름답지만 방수는 되지 않는 집”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바로 그의 예술적 충동이 꿈틀거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물이 말을 한다?!

건축물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건물이 말을 한다고?? 이 발칙한 알랭 드 보통의 주장에 당황해하지 말고, 그의 재미있고 발랄한 생각에 귀를 기울여보자. 내가 어떤 건물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단순히 외관상 예컨대, 아름다운 장식이나 구조를 보고 그렇게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외관상 건물이 아름다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건물이 보여주는 모습 (지붕, 구조물, 손잡이, 창틀, 내부의 인테리어) 이 좋은 생활이라는 관념에 부합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건축은 좋은 생활과 느낌의 관념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듣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건축은 마치 거대한 상형문자와도 같다.

건물이 말하는 바는 곧 그것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예컨대,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신의 성스러움과 숭배에 대해 말한다. 바꿔 말하면,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은 신의 성스러움과 찬미를 위해 지어졌다. 철학자 하이데거에 따르면, 그리스 신전의 건립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것을 성스러운 것으로 표현하면서 거기에 신을 깃들게 하는데 있다. 우리는 그리스 신전 또는 성당이 말하는 신의 존엄과 영광 속에서 고개를 숙인다. 인간은 성스러운 존재 앞에서 한없이 작고 불안에 떠는 불쌍한 존재 아니던가. 뿐만 아니라, 건축은 불행한 역사를 말하기도 한다. 나의 집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서대문 형무소는 단순히 낡고 흉물스러운 건물이 아니다. 그것은 일제 치하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건물은 우리에게 늘 말을 건넨다. 그리고 언제나 묵묵히 기다린다. 우리가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들어줄 때까지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건물이 은근하게 건네는 조언”에 언제나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때 비로소 건물의 돌, 흙, 지붕, 계단은 생생한 관념으로, 재미난 이야기꾼으로 거듭날 수 있다.

건축은 기억과 희망을 연결하는 행복의 ‘곳’이다.

건축은 삶을 위한 공간이자 거처하고 있는 사람의 의식의 내부이기도 하다. 예컨대, 집은 물리적 공간이자 내 기억과 애정이 담긴 심리적 공간이기도 하다. 알랭 드 보통에 의하면, 세계 곳곳에 있는 무덤들은 그 외관과 양식, 그 의미들이 모두 다르더라도 공통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기억하라’이다. 나의 집은 나의 역사를 담고 있다. 또 한 어떤 건물은 추억이 아닌 희망과 열망을 담기도 한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총독궁 천장에 그려진 네 명의 여인은 정의, 평화, 온유, 절제를 표현하는데, 이는 곧 베네치아 공화국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건축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있다. 거기에는 추억이 있고, 이상과 희망을 담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의 현존을 증명하는 ‘그 곳’이 있다. 하나의 건물에는 그것을 이야기하는 수많은 목소리가 있으며, 그 목소리가 내는 화음이 바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사실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 빛을 가득 담고, 곳곳에 추억과 희망을 불어넣는 작업만큼 행복에 기여하는 일이 또 있겠는가? 건축은 자기만의 스타일로 행복을 만들고, 그것을 우리에게 말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건축이 항상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가장 고귀한 건축이 때로는 낮잠이나 아스피린이 주는 작은 위안에도 못 미칠 수 있다.” 아름다운 건축물 속에서 나는 애인과 다툴 수도 있고, 반면 지하 월세방에서도 행복한 가족의 웃음이 쏟아져 나올 수도 있다. 진정한 건축은 외관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보다 더 큰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나름의 방식으로 말하고, 담아낼 줄 아는 탁월한 재주꾼의 창조이다. 그리고 바로 알랭 드 보통이 말하고자 하는 행복의 건축의 의미도 그런 것이다.

우리의 행복, 우리의 미래의 곳은 어디인가?

알랭 드 보통은 우리에게 건축은 행복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그럼 우리네 삶의 공간은 어떠할까? 대한민국 현실에서도 여전히 건축은 행복을 만들고 있는가? 언젠가 건축가 교수가 대한민국의 건축 현실 안에서는 르 코르뷔지에와 같은 건축가는 전혀 꿈꿀 수 없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왜냐하면 물질숭배가 극에 달한 한국 사회 속에 부동산 투기가 있고, 그 투기 한 가운데에 바로 건축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동안 건축의 의미나 역할, 알랭 드 보통의 말을 빌자면, 건축이 말하는 바에 전혀 귀를 기울일 수 없었다. 우리에게 건축은 단순히 내 한 몸, 우리 가족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만으로도 벅찼다. 그나마 그것은 나은 편이다. 언젠가부터 이제 건물은 부의 척도가 되어버렸다. 똑같은 건물이라도, 지역에 따라 그 값이 천차만별이고, 아름다운 건물은 단순히 값을 부풀리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한국 현실에서 건축은 좁은 공간에 보다 많은 사람을 밀어넣는 효용성의 산물이거나 아니면, ‘돈 버는 기계’일 뿐이다.

남산타워 전망대에 가면, 서울 도심이 한 눈에 보인다. 개성을 상실한 채, 높다랗게만 솟은 건물들이 반짝 반짝 빛나는 불빛으로 겨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나는 그 건물들이 나에게 뭐라고 속삭이는지 보다 내가 그 건물 속 어디에 살 것인지가 더 궁금하다. 저기 어디쯤에 내 집이 있을까? 어쩌면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행복의 건축은 대한민국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건물이 무엇을 말하든, 그것이 아름답건 실용적이건 간에, ‘내 공간’ 하나 얻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그 공간이 어떠하다는 의미부여는 그 다음에 생각해 볼 문제다. 치솟은 전세 값에 집에 대한 희망은 그만큼 멀어지고, 도심 곳곳의 재개발은 돈 있는 자만 살아남는 서바이벌의 장이 되어버렸다. 이 냉혹한 현실이 바로 대한민국의 ‘곳’의 현재이다. 그러면 우리는 도대체 언제쯤 건축의 행복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언젠가는 우리 미래의 ‘곳’을 만들어 줄 거라고 믿는다. 희망을 담는 것 또한 건축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알랭 드 보통의 책을 덮으면서, 나는 문득 아주 익숙한 유행가 가사가 떠올랐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 멋쟁이 높은 빌딩 으스대지만,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지만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님과 함께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값비싼 빌딩보다 초가집이 더 좋다는 이 소박한 희망이 자꾸만 서글프게 들리는 건 왜 일까?….

최진아(건국대 강사) /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청춘의 서재]

“일상적인 삶의 경험은 우리가 원하는 삶에 의해 부정되고, 그것은 다시 우리가 실제로 희망하는 삶에 의해 부정된다.”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뽑아 든 책에서 저 글귀를 만난 이후로, 알베르토 망구엘의 책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저 문장을 읽은 건 일종의 만남이었고, 내면에서 일어나던 일련의 심리적 사건들의 성격이 해명되는 순간이자 누군가의 진심 어린 위로를 받는 경험이었다. 청춘이라는 말에 어울릴 만한 기간은 아마, 일상이 결코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런 자아가, 맨 발로, 일상이라는 얼음판을 걸어야 하는 기간인지도 모르겠다. 물리적인 나이와는 또 다르게, 일상의 현실이 유일하고 압도적인 현실이 되는 순간마다 우리는 청춘에서 물러나게 되는 듯하다.

그런데 일상적 삶을 부정하든 긍정하든 간에, 현실의 삶과는 완전히 부합하지 않는 그 내면세계를 어디서 어떻게 갖추게 되는 걸까? 망구엘은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어떤 역사를 지니는지’를 조사하고 적어 내려가면서 이런 의문을 푸는데 도전한다. 책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을 찾아 헤매는가? 책을 읽는다는 게 무엇이길래 그게 우리를 매혹시키는지도 알고 싶어한다. 그는 『독서의 역사』에서 비록 시대는 달랐지만 ‘(책) 읽기’라는 경험을 공유하는 ‘독서가’들로부터 그것을 찾아내려 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또 어디쯤 서 있는지를 살피려고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읽는다. 이해하기 위해, 아니면 이해의 단서를 얻기 위해 읽는다. 뭔가를 읽지 않고는 배겨 내지 못한다. 읽기는 숨 쉬는 행위만큼이나 필수적인 기능이다.” 읽기라는 행위 전체에서 보면 “책장의 문자를 읽는 행위는 그런 기능의 다양한 모습 중 하나일 뿐”이지만, “문자 기록이 없는 사회에서는 시간 감각이 ‘일직선적’인 데 반해, (문자 기록을) ‘읽고 쓸 줄 아는’ 사회에서는 시간 감각이 ‘점증적’이다.” 그리고 시간적 제약을 뛰어넘은 그 점증적인 시간 감각이 일상의 현상적이고 휘발적인 성격을 드러낼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로 보인다.

사실, 저자는 스스로도 밝혔듯 서술방식으로서 “연대기적 순서나 논리적인 순서를 따르지 않았는데,” 그것은 체계에 기대지 않고 한 명 한 명의 독서가가 누린 삶과 책 읽기를 들여다보고 싶어 했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서술 방식은 책 읽기와 관련해서 그가 가진 의문이 무엇이었으며, 그것을 어떻게 풀어가는지를 쉽게 알아보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가 인용했던 독서가들의 ‘고백’을 빌린다면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음직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내면세계의 전부가 책 읽기를 통해 형성된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일부는 그렇다. 특히나 일상적 삶 내지는 ‘현실’과 내면세계와의 관계는 자의적으로나 타의적으로나 미세하게라도 거듭 수정을 반복하고 있을 텐데, 그것을 효과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대표적인 통로가 책 읽기이다. 게다가 잘하면 양자의 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기대가 번번이 좌절되기 일쑤인 일상 속에서 버티고 다시 일어서서 걸어 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원천은 다양하겠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책장을 넘기면서 그 힘을 길러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망구엘 또한 그랬듯 “책에 빠져들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싶은 욕망과 가능한 한 결말 부분을 늦추려는 욕망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겪어본 적 있는 이라면 누구든 책 읽는 것 자체가 너무도 재미있어서 단지 그 이유로 책을 읽어봤음직하다. 그러나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부 작품들을 제하면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무언가를 기대하고 찾는 심정으로 책장을 펼쳐 들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오직 몇몇 축복받은 그런 독서 경험에서조차도 무언가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는 검은 잉크로 뒤덮인 종이 뭉치를 살아 있는 것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애타게 찾고 있는 게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일이다. “우리를 마구 물어뜯고 찔러대는 책만을 읽어야” 하고, “책이 머리통을 내리치는 주먹처럼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그런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던 카프카의 이야기를 망구엘의 책에서 다시 그리고 마저 들어보자.

“요컨대 나는 우리를 마구 물어뜯고 쿡쿡 찔러대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만약 읽고 있는 책이 머리통을 내리치는 주먹처럼 우리를 흔들어 깨우지 않는다면 왜 책 읽는 수고를 하느냐 말야? 자네가 말한 것처럼 책이 우리를 즐겁게 하기 때문일까? 천만에. 우리에게 책이 전혀 없다 해도 아마 그만큼은 행복할 수 있을지도 몰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책들은 우리가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쓸 수 있단 말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마치 우리 자신보다도 더 사랑했던 이의 죽음처럼, 아니면 자살처럼, 혹은 인간 존재와는 아득히 먼 숲속에 버림받았다는 기분마냥 더없이 고통스런 불운으로 와 닿는 책들이라구. 책은 우리 내부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깰 수 있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

아마 이 문절과 만난 것만으로도 망구엘의 책을 들춰본 보람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듯싶다. 평범한 우리들과 달리 탁월한 독서가들이나 위인들은 공통적으로 자기환상을 껴안기보다는 무언가에 마비되어 있는 자신을 깨우려고 한 것 같다. 책 읽기는 즐거움도 아픔도 주지만, 책 읽기에서 더 고유한 건 삶에 편재된 고통을 간신히 견디게 하는 그 마취를 풀어버리는 것이라니.

그렇다면 책을 읽는다는 게 무엇이길래 우리의 내면을 뒤엎을 수 있단 말인가. 감지하다시피, 이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간단히 대답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물음인데 이에 대해 망구엘은 이 물음 앞에서 정직하게 대답하는 용기와 세련된 교양을 보여준다.

“독서가들이 멸종의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리는 가운데 오늘날의 우리 독서가들은 독서란 어떤 것인지를 배워야만 한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 독서 역사의 미래는― 마음 속으로만 읽어야 할 텍스트와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가야 할 텍스트를 구별하려고 노력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독서가의 해석 권한을 제한하는 데 의문을 품었던 단테에 의해 …… 두루마리식의 책 읽기가 지나치게 제한적이고 성가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에게 그런 방법 대신 책장을 넘겨 읽으면서 여백에 끄적거릴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초기의 책 제조업자에 의해 이미 탐험되었다.”

우리 독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 ‘책 읽기가 무엇인지’를 배우는 일이라고 지목한 망구엘은 사실상 ‘책을 읽는다는 경험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고백한 셈이다. 그리고서, 그는 역사상 실재했던 독서가들의 경험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시대를 거슬러 혹은 시대를 앞, 뒤로 오가면서 알렉산더 왕을 비롯하여 아우구스티누스, 중세의 필사자들, 와일드, 그리고 카프카나 릴케는 물론 무명의 여인들에 이르기까지 책을 읽는다는 행위와 그 힘에 대하여 탐색해나간다.

“기원전 3천년대 말 즈음,” “십중팔구, 적는 기술은 어느 가족에 가축 몇 마리가 있는지, 아니면 어느 지점으로 가축 몇 마리를 옮겼는지 따위를 기억하기 위한 상업적 목적에서 발명되었을 것이다. 쓰여진 기호는 기억력을 높이는 장치의 역할을 했다. 그림 속의 소 한 마리는 소 한 마리를 의미했기 때문에 그것을 읽는 자에게는 거래가 소로 이뤄졌다는 사실과 몇 마리의 소가 거래되었는지, 아마 소를 산 사람과 판 사람의 이름까지도 알려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인류가 뭔가를 적기 시작했을 때, 읽는다는 행위는 거래 내용을 파악하고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읽어줄 사람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뭔가를 쓴다는 행위의 목적은 그 텍스트를 보존하려는 것―다시 말해 읽혀져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새김은 동시에 한 사람의 독자를 창조해 낸 셈이다.”

더 나아가, 망구엘은 저자와 독자의 관계에 주목하면서 “독서가의 역할을 창조해 냄으로써 저자는 동시에 저자의 죽음을 선포하는데, 그 이유는 텍스트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저자가 존재를 멈춰야만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현존하는 한 그 텍스트는 언제나 미완으로 남는다. 작가가 텍스트에서 손을 뗄 때에만 그 텍스트는 텍스트로서 존재의 영역에 들어오게 된다. 이 시점에서 텍스트는 한 사람의 독자가 읽어 줄 때까지 조용한 존재로 남는다. 기호를 읽을 줄 아는 눈이 서판에 새겨진 형상 앞에 서는 순간, 그 텍스트는 왕성한 생명력을 얻게 된다. 이렇듯 모든 기록은 독서가의 호의(generosity)에 의존한다.”

쓰여진 기호가 생명력을 지니게 되는 순간은 그것이 읽힐 때이며, 독서가로서 임무는 그것을 읽는 것이다. 이제 추적해야 할 것은, 그 읽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며 또 그게 읽는 자에게 어떤 경험인지를 알아내는 일이겠지만 그것은 애초 완벽하게 대답될 수가 없다. 다만 “우리 존재는 읽은 만큼 성장”하고 “그 순환이 완성되는 과정은 단순히 지적인 과정만은 아니라는 휘트먼”의 믿음으로부터, 책을 통해 우리의 내면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이렇게 정리해 볼 수는 있겠다.

“표면적으로는 지적으로 읽어 어떤 의미를 파악하고 어떤 사실들을 자각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의식적으로도 텍스트와 독서가는 서로 한데 얽히면서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창조해 낸다. 그래서 우리가 텍스트를 섭취하여 텍스트가 가두고 있던 무언가를 풀어 낼 때마다 그 텍스트의 깊은 곳에서는 우리가 아직 파악해 내지 못한 다른 무언가가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고 책 읽기라는 행위를 알아내려는 우리의 시도가 애초 불가능한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이다. 텍스트를 읽을 때마다 우리가 아직 잡아내지 못했던 다른 무언가와 마주치므로 “어떠한 책 읽기도 결코 완성”될 수는 없다. 다른 한편 같은 책이더라도 매번 새로운 책 읽기가 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망구엘은 저 유명한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손질하여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결코 똑 같은 책으로, 아니면 똑 같은 페이지로 되돌아갈 수 없는데, 그 이유는 … 우리도 변하고 책도 변하고, 그리고 우리의 기억도 밝았다가 쇠해졌다가 또다시 밝아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배우고 까먹고 또 기억하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도 한다.”

“인생 여정의 단계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책 읽기라는 행위에서 책을 어떻게 읽어내느냐가 읽는 자로서 갖는 힘이다. 아카데미 내에서야 어떻게든 자의적인 읽기를 배제하고 형식화된 결과물들을 축적하려 함에도, 망구엘의 탐색에 따른다면 책 읽기는 어쨌든 독자와 텍스트의 결합 과정으로서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얼마간 ‘자의적’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서기 330년, 훗날 콘스탄티누스 대제로 기억될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누스”에게는 “오로지 한 가지 독서법만이 진실”이었는데, “종교 텍스트에 대해 한 가지 독서법을 요구하는 일은 만장일치 제국이라는 콘스탄티누스의 개념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원본에 보다 가깝게, 포용성은 보다 덜하게’, 이거야말로 당시에 베르길리우스의 시 같은 세속적인 텍스트를 읽는 데 유일하게 허용됐던 정통적인 독서 개념이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어째서 콘스탄티누스가 표준적인 독서법을 고집했는지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책 읽기가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똑똑히 자각하고 있었다. “아득한 옛날 성 금요일에 콘스탄티누스가 발견한 것은 한 텍스트가 갖는 의미는 독서가의 능력과 욕망에 따라 확대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텍스트를 대할 때 독자는 그 텍스트의 단어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역사적으로 그 텍스트나 저자와는 전혀 관계 없는 의문을 풀어 주는 메시지로 바꿔 버릴 수 있다. 이런 식의 의미 변질은 텍스트 자체를 확장시키거나 퇴보시킬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텍스트에 독서가 자신의 환경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무지, 맹신, 지성, 기만, 교활함, 그리고 계몽을 통해 책 읽는 사람은 원전과 똑 같은 단어로 그 텍스트를 다시 쓰면서도 원본과는 다른 이름으로, 다시 말해 그것을 재창조한다.”

콘스탄티누스는 독서가가 갖는 힘의 위력을 의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그것을 조정하려고 했음이 드러난다. 망구엘은 이를 통해 독서란 독자의 능력과 욕망에 따라 원본을 재창조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렇게 읽어야 좋다거나 바람직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책 읽기 과정이란 사실 텍스트의 재창조 과정임을 분명히 직시하면서 그로 인한 위험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데로 나아간다.

“독서가의 힘이라고 해서 모두가 계몽적인 것은 아니다. 하나의 텍스트를 창조할 수 있고, 그 텍스트의 의미를 다양화하고 그 텍스트로 과거와 현재를 비추고 미래의 가능성을 탐색해 낼 수 있는 똑 같은 행위가 살아 숨 쉬는 페이지를 파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독서가는 나름대로 책 읽기의 방법을 창조해 내는데, 그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독서가는 그 텍스트를 어떤 교의나 전횡적인 법, 사사로운 이익, 노예 소유자의 권리나 전제군주의 권위 등에 교묘하게 종속시킴으로써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책 읽기 과정이 독자의 역량에 따른 재창조 과정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읽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독자의 역량에 달렸기에 읽는 이의 그것이 반영될 수밖에 없으므로 순수한 객관적인 읽기라는 건 환상이지만, 그럼에도 텍스트에서 보이지도 않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독서라는 재창조 과정의 한계를 벗어난다. 망구엘은 비록 “의도적인 거짓말”만을 지적했지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책에서 그것을 보았노라고. 나 역시 망구엘의 이 책을 다 읽지도 잘 읽지도 못했다. 휘트먼이 분명히 드러냈듯 책 읽기는 완성될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저 거듭 읽기를 통해서 고쳐나갈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책과 내면세계 모두 변화를 겪는다. 망구엘은 무엇을 읽는다는 것 역시 힘을 행사하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독자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책 읽기라는 행위를 통해 보여주었다.

우리는 일상의 삶 속에서 무수한 좌절에도 다시 일어서고, 책에서 기대하는 그것을 번번이 찾지 못하더라도 다시 책을 쥔다. 책의 무엇이 다시금 책장을 넘기도록 하는지에 대해서는, 망구엘이 ‘마지막 페이지’라고 제목 붙인 첫 번째 챕터에서 맺음말로 인용했던 오르한 파묵의 어느 문절로부터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편도 마차 승차권으로는 한번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시는 삶이라는 마차에 오를 수 없다. 그렇지만 만약 당신이 책을 한 권 들고 있다면, 그 책이 아무리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당신은 그 책을 다 읽은 뒤에 언제든지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읽음으로써 어려운 부분을 이해하고 그것을 무기로 인생을 이해하게 된다.”

김정신(한국철학사상연구회) /